<이 산> 1부
<프롤로그>
# 대궐일각, 낮
#1 누군가의 손에 의해 그려지는 상궁 나인들의 움직이는 모습들
- 궁 안에 잔치상을 들고 움직이는 수라간 나인들의 모습
#2 움직이는 붓! 그려지는 그림들! 섬세하게 나타나는
여인들의 움직임
-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추는 모습이다.
#3 누군가의 손이 화폭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 궁 안에 시립해있는 금군들의 모습이다.
#4 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지는
- 탑전의 영조임금과 정순왕후의 위엄 가득한 모습
두 사람 환하게 웃고 있다.
# 대궐 정전 뜰, 낮.
그림 속의 무희들이 실제의 모습으로 연결되며
수십명의 무용수들이 화려한 군무를 추고 있다.
이리저리 돌고 휘도는 여인들의 몸짓이
선녀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화면이 커지면, 넓고 넓은 궁궐의 정전 뜰에
수백 명의 궁인들과 병사들이 시립해 있고
수많은 당상 당하관 조정 신하들이 열을 지어앉아
잔치상을 받고 있다.
이들을 수발하는 수십 명의 궁녀들...
탑전에는 영조임금과 정순왕후과 흐뭇한 얼굴로
무희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다.
오늘은 왕비 정순왕후의 생신 잔치연이다.
넓은 궁궐 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
궁궐 한 쪽 켠으로 카메라 이동하면,
40여명의 화원들이 곳곳에 앉거나 서서 이십여 명의
다모들 시중을 받으며 기록화를 그리고 있는데!
화원에게서 착착, 그림을 건네받은 다모들은
다음 종이를 펼쳐주고 물감을 풀고 물을 간다.
모두가 기계처럼 숙련된 솜씨!
뒤로는 화학생도들이 이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또 한편으론 십여 명의 일꾼들이 작업도구와 물감을
분주히 나르고 있다.
(마치 오늘날 기록영화를 찍는 듯 행사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는 사진가 같은 역할의 화원 모습이
충분히 보여지도록 한다)
#화폭 1
잔치상을 받고 있는 중신들의 밝게 웃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화폭 2
시립해있는 상궁 나인들의 엄숙한 모습과
음식 시중하는 수라간 나인들의 모습들
#화폭 3
별감들과 금군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총을 든 병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조총 포수의 그림속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린다.
# 대궐 정전 뜰 (낮)
불을 뿜는 총구! 이와 함께 등장하는 수백의 병사들!
금군들의 사열의식이다.
수백의 궁수부대와 창기병, 그들의 도열과 군례!
이어지는 무술대련과 시범.
이들 무리들이 도열을 끝내고 한 쪽으로 빠지면
조총을 든 100여명의 포수들이 등장한다.
조총병들 침림하고 있는 영조에게 예를 표한 후
포수군관의 신호와 구령에 따라 10여명이 한줄로 도열해
하늘을 향해 예포를 발사한다. 탕!탕!탕!
열을 짓는 두 번째 포수들!
일제히 하늘로 총구를 세운다.
바로 그 때, 포수 중 너댓 명이 갑자기 총을 내려
영조임금을 향해 발사한다...!! 탕!탕!
그러나 탄환은 영조를 비껴가 시립해있는 대전내시를 맞추고
총을 맞은 내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연달아 쓰러지는 상궁 한명
놀라는 영조임금과 정순왕후!
확 물러서는 궁녀들과 내관들, 중신들!
내관 전하 전하!
정순왕후 전하 전하!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사열식장.
탑전으로 몰려드는 금군들!
포수 몇 몇이 달려드는 금군들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다른 쪽에서 나타난 낯선 병사들이 임금이 있는 탑전으로 몰려온다.
이를 막아서는 금군들.
총과 칼을 들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상궁과 내관들의 부축을 받아 급히 피하는 영조임금과 정순왕후!
이들을 부축하는 궁녀와 내관들...
그러나 피신하는 영조임금의 반대편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난다.
혼비백산하는 영조임금과 정순왕후!
칼을 뽑고 달려드는 낯선 인물. 멈칫하는 영조.
날카로운 칼날이 영조임금의 얼굴을 향해 내리친다.
#영조의 침전 (밤)
헉, 하는 얕은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영조.
보면, 고요하게 가라앉은 영조의 침전 안.
영조, 식은 땀을 흘리며 당혹해하는데.
영조, 꿈의 잔영이 아직 남아있는지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이내 참혹함과 불안함이 뒤엉킨 시선으로
장지문 너머를 응시하는데
#1 궁궐 전경 (밤)
먹물같은 구름이 드리워져 창덕궁의 찬연한 단청마저
음울한 잿빛으로 느껴지는 새벽.
그 때, 교교하게 가라앉은 뜨락 어디선가
‘서걱’하는 괴괴한 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2 휘령전 (또는 시민당) (밤)
조심스레 이어졌다 잦아들고 다시 이어지는 불안한 마찰음.
쇳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은 창덕궁의 휘령전인데.
보면, 검은 형체들이 휘령전 뜨락에 놓인 뒤주에 톱으로 구멍을 내고 있다.
여명 아래 비춰지는 그들의 표정은 절박하고 비장한데.
그 때 바스락, 마른 풀을 밟는 인기척이 들린다.
일순 멈칫하는 이들.
동궁전 내시감 : 쉿, 멈추게!
톱질을 멈추는 내시들.
내시감, 긴장한 얼굴로 병장기에 손을 가져간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동궁전 내시1 : 소인입니다, 상전어른.
보면, 어둠 속에서 사람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 쪽으로 온다.
그 모습에 휴, 안도하는 내시감.
동궁전 내시감 : (안도한 얼굴로) 서두르게.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내시들 : 네 (다시 톱질을 한다)
동궁전 내시감 : (내시 1에게) 어찌 되었는가.
동궁전 내시1 : 명전전 쪽에도 금군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습니다.
동궁전 내시감 : 천우신조로군. 하늘도 우릴 돕고 있어.
그 때.
동궁전 내시2 : 상전어른, 뚫렸습니다!
동궁전 내시감 : ...!!...
보면, 뒤주에 구멍이 뚫려있다. 아아...드디어..!
내시감, 뒤주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는다.
동궁전 내시감 : (안을 향해, 떨리는 음성) ...저하...소인입니다. 내선이옵니다...
내시감, 간절함을 담아 본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다.
동궁전 내시1 : ...설마...벌써 숨을 거두신 것이...(흐린다)
동궁전 내시감 : ...!...
내시감과 둘러선 다른 이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린다.
동궁전 내시감 : (제발) ...저하...세자저하...
그 때, 뒤주의 구멍으로 하얗고 야윈 손이 힘겹게 내밀어지는데!
사도세자(소리) : (힘겨운) ...내...선...이냐...
동궁전 내시감 : ...!!! ...저하 ...!!
뒤주 밖으로 내밀어진 사도세자의 손.
순간, 내시감의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진다.
동궁전 내시감 : 예, 저하. 소인 내선입니다!
저하...옥체는, 옥체는 어떠하십니까.
사도세자(소리) : 나는...괜찮다...
동궁전 내시감 : ... 벌써 엿새 째 곡기조차 못드셨습니다.
어째 저하께 이런 망극한 일이 생긴단 말입니까.
...저하...조금만 기다려주시오소서. 소인들이 저하를 구해드릴 것입니다.
사도세자(소리) : ...내선아...아바마마께...전해드릴 것이 있다...
...듣고 있느냐...내가 죽기 전에 꼭...전해야 할 것이 있어...
동궁전 내시감 : 예. 저하. 하명하시오소서. 전하겠사옵니다.
소인이 목숨을 걸고 주상전하께...
하는데, 순간 헉, 하는 내시감의 얼굴이 확 굳어진다.
동궁전 내시1 : (놀란) 상전어른!!
보면, 동궁전 내시감 가슴팍에 표창이 박혀있고
그 사이로 붉은 피가 베어나오고 있는데.
#3 동 뒤주 안 (밤)
어두컴컴한 뒤주 안. 사도세자의 실루엣만 느껴진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사도세자, 밖을 살피려 하지만
시야가 흐릿하고 흔들린다.
사도세자 : (불안한) 무슨...일이냐...내선...아...
#4 휘령전 (밤)
보면, 무장한 수십의 금군들이 내시들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
다 끝났구나 절망감이 어리는 동궁전의 내시들.
그러나 각오했던 일. 내시감, 결연한 눈빛을 빛내며 칼을 빼든다.
동궁전 내시감 : ...물러서지 마라.
그 때, 이들의 앞으로 내금위장이 나선다.
내금위장 : 감히 전하의 영을 어기고 시민당을 범하다니
내시감께서 어리석은 짓을 하셨소.
동궁전 내시감 : ...!...
내금위장 : (싸늘하게 본다)
동궁전 내시감 : (절박한) 부탁이 있소.
세자저하께 물이라도 드리게 해주시오.
허면, 칼을 버리고 순순히 포박을 받겠소.
내금위장 : (냉소어린) 포박 따윈 없소.
하고, 내금위장, 칼을 빼든다. 살려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시감, 그 의미를 눈치챈다.
동궁전 내시감 : (차갑게) ...왜 날 살려두면 세자저하의 무고함이 밝혀질까 두려운 게요?
내금위장 : (멈칫)
동궁전 내시감 : (절망에 찬) 당신들도 그들과 한패였소? 누구?
대체 누가 주상전하와 세자저하를 이간질하고 죄 없는 마마를
죽이려 한단 말이오!
내금위장 : (당황한) 닥쳐라. 뭣들하느냐. 어서 쳐라!
내금위장의 명령에 칼날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금군.
이미 죽기로 각오를 한 동궁전의 내시들은 금군과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그 뒤로 안타깝게 나와 있는 뒤주 속 사도세자의 손.
사도세자(소리) : ...안...된다...멈춰라...제발 멈춰...
그러나, 중과부적...사도세자의 절규 속에
내시들은 하나 둘 금군의 칼에 안타까이 스러져가는데.
그 위로.
송연(na) 1762년 윤 5월 19일.
그 날은 사도세자께서 아버지 영조대왕의 명으로 뒤주에 갇힌 지
엿새 째 되는 아침이었다.
#5 몽타쥬
#대궐 정전 뜰
만조백관들의 하례를 받고 있는 영조의 모습. 그 위로.
송연(na) 조선 제 21대 왕으로 보위에 오른 영조대왕께서는 강력한 왕권으로
이백년 만에 이 땅에 태평성세를 이룩하셨다.
그러나 노론 소론 남인...당색으로 나뉘어진 조정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투쟁으로
얼룩져 있었고.
#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세자의 모습.
거리에 나붙은 괴서. 이를 보는 영조의 노한 모습.
송연(na) 그 무렵 권력에서 밀려나있던 세력들이 사도세자저하를 앞세워
정권을 차지하려하자, 반대파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세자저하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 들판 - 측근들과 말을 달려가는 사도세자의 모습.
# 일각 - 측근들과 무언가를 모의하는 사도세자의 모습.
# 궐 일각 - 끌려나오는 사도세자.
송연(na) 결국 세자저하는 차츰 엇나가기 시작했고,
끝내는 영조임금의 미움을 받아, 불분명한 이유로 폐위를 당한 채
뒤주에 갇히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6 궐 일각 (밤)
바람을 가르는 쇳소리와 함께 내금위장의 칼을 맞고 비틀거리는 내시감.
내시감, 마지막 힘을 다해 허리춤에 있는 대나무 물통을 빼들고
뒤주를 향해 간다. 그러다 풀썩 쓰러지는 내시감.
데구르르...뒤주 앞으로 굴러가 멈춰서는 피묻은 죽통.
죽통에서 흘러나온 물이 핏물이 되어 대지를 적신다.
내금위장 : 시체를 치우고 말이 새지 않게 군사들을 단속하게.
종사관 : 예.
내금위장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시체를 치우는 금군들.
그리고 이내, 다시금 깊은 적막에 쌓이는 휘령전 뜨락.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홀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오열이 새어나온다.
사도세자(소리) : ...제발...죽이지 마라...저들은...아무 죄가 없어...
내선아...거기 있느냐......영도야...살았느냐...살아있느냐...으어어헉...
뒤주 속, 말 못하는 짐승의 흐느낌마냥 처절한 오열이
무섭도록 적요한 휘령전 뜨락을 아프게 울리는데.
그 위로.
송연 (na) 그 날은 1762년 임오년 윤 5월 19일이었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저하께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아침...
그리고...
#7 도성 밖 한적한 길 (낮)
송연(na) 그 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내 운명이 시작된 날이었다.
멀리 동이 터오는 가운데.
한 어린 소녀가 10개월 정도된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씩씩하게 산길을 걸어오고 있다.
흙먼지로 얼룩진 초라한 입성 차림의 소녀는
총기로 반짝이는 맑은 두 눈과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뺨을 가진 어린 송연이다.
밤새 걸어왔는지 몹시 지쳐보이는 얼굴.
그 때, 앞으로 멀리 도성의 전경이 펼쳐지자 환하게 밝아지는 송연.
송연 : (아...드디어) ...다 왔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킨 어린 송연의 표정. 그 위로.
#8 견편방 도화서 일각 (낮)
십 수 명의 화원들이 각종 의궤도 (행사장을 도회한 그림)
조하도 (경출일 때 신하들의 하례를 그린 그림)
배반도 (반열을 정해 늘어선 그림)
찬실도 (제사음식 차리는 방법을 그린 그림)
등을 그려내고 있는 긴장감 넘치는 작업현장.
신중하고 날렵한 화원들의 손놀림에서 그려지는 것들은
마치 생물이라도 되는 양, 생생하고 절묘한데.
보면, 건물 밖 창틀 너머로 까치발을 하고 안을 구경하는 송연.
까만 눈이 호기심으로 더욱 반짝거리는데.
송연 : (신기하다) 저게 조하도구...저건 찬실도 그리구 저건 배반도!
(하고 조금 들떠서, 등에 업은 아이에게)
있잖아 욱아, 우리 아부지도 여기서 그림을 그리던 훌륭한 화원이셨대.
그 때, 안에서 다모 두어 명이 쓰레기를 들고 나와 버린다.
쓰다 남은 물감과 망가진 붓, 그리고 파지들이다.
송연, 그것을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잠깐 망설이다가.
송연 : ...저...이거 버리시는 거에요?
다모들, 뭔가, 하는 표정으로 송연을 보는데...
다모 : 그래. 버리는 거야.
그 때, 한 쪽에서 오던 장태성.
멀리 송연을 보고 부른다.
장태성 : 송연아, 가자.
송연 : (놀라 돌아본다) ...예, 아저씨!
#9 오정남의 집. 방 안 (낮)
오정남과 장태성, 송연이 있다.
오정남, 예리한 눈빛으로 송연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데.
오정남 : 성송연이라 했더냐?
송연 : ...예...어르신.
오정남 : 어린 것이 영민하게 생겼군.
송연 : (긴장한 얼굴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장태성 : 죽은 제 아비가 화공으로 썩기엔 아까울만큼 비상한 친구였습니다.
오정남 : 그래, 생각시루 들이기엔 괜찮은 재목이네.
송연 : ...!...
장태성 : (안도한다) 헌데 궐 안이 뒤숭숭해 오늘 생각시를 들일란지 모르겠습니다.
오정남 : 듣자하니, 만사를 평상처럼 유지하라는 하명이 계셨다네.
(슬몃, 비열한 미소) 이미 눈 밖에 난 세자야.
뒤주에서 죽어나간들 주상께서 눈 하나 꿈쩍 하시겠는가.
장태성 : (그렇구나)
오정남 : (짐짓, 허허 웃어보이며) 나 같은 장사치가 조정 일을 뭘 알겠나.
(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 채비시키게.
장태성 : 예
송연 : (표정)
#10 동. 마당 (낮)
장태성, 강보에 쌓인 아이를 받아 안고 있고
그런 동생을 보는 송연의 눈시울이 붉다.
장태성 : 욱이는 산현 의원 댁에 업둥이루 보낼게다.
그 댁 아이로 잘 클 것이니 행여 나중에라도 찾아선 안된다. 알겠느냐?
송연 : (겨우) ...예
장태성 : 궁에 가서 잘해야 한다.
꼭 궁녀가 되서 널 거둬주신 행수어른 은혜에 보답해야 해.
송연 : ...예 아저씨.
장태성, 송연을 짠하게 보다가 돌아서는데.
이제 이별이다...동생을 보는 송연의 마음이 울컥하는데.
송연 : 잠깐만요 아저씨!
장태성 : (본다)
송연 : (간절한) 욱이랑 잠시만 같이 있게 해주세요.
#11 동. 뒤뜰 (낮)
작은 고사리 손이 붓으로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
보면, 송연이 도화서에서 얻은 파지와 물감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아이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잘 그려낸 그림이다.
송연 : ...어때 욱아? 아부지랑 어머니랑 닮았니?
송연, 동생을 짠하게 보다가 다른 파지를 펼치고 붓에 물감을 묻힌다.
송연 : 자...이번엔 우리 욱이 차례. 이건, 누나가 가질 거야.
예쁘게 그려서 맨날 맨날 볼려구.
밥 먹기 전에두 보구 자기 전에두 보구
그래야 나중에라두 욱이 보믄 누나가 알아보지.
송연,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 강보에 쌓여 새근새근 잠든 어린 동생을 본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송연.
송연 : (헤헤 웃으며) ...근데 어른되면 얼굴이 변할텐데 어떻게 알아보지?
너, 이따만한 주먹코에 두꺼비 얼굴로 변해버리믄
누나 챙피해서 너 봐두 모른 척 할 거다!
그 때, 아이가 졸린지 칭얼거린다.
송연, 얼른 아이를 얼르며
송연 : 아냐, 농이야 욱아! 누나가 장난 친 거야!
누나 너 보러 갈 꺼야. 몰래라두 가서 꼭 우리 욱이 만날 거야.
그러니까 욱아! 우리 아부지처럼 어머니처럼 꼭 그렇게 커야 돼!
누나가 너 알아볼 수 있게! 꼭 그래야 돼 알았지?
어린 동생을 품에 꼭 안는 송연.
목구멍까지 차오는 울음을 애써 참는 어린 송연의 모습이 애틋하다.
#12 동궁전 안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산의 모습.
이 때 새손궁상이 들어온다.
세손궁상 : 저하, 저하...
산 : 어찌되었느냐?
세손궁상 : 황공하지만, 전해드리지 못했다 하옵니다.
워낙 금군의 경계가 심한지라, 도저히 시민당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옵니다.
산 : 허면 어찌한단 말인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아바마마께서 벌써 엿새 째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계시는데...
안되겠구나. 내가,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세손궁상 : 저하 안됩니다. 가시면 아니되옵니다. 아무도 시민당에 들이지 말라는
어명이십니다.
#13 궐 다른 일각 (낮)
훈육내시와 남사초 달호 등이 있고
그 뒤로 수십 명의 어린 상직소환들이 오종종 걸어가고 있다.
어린 대수, 아까와는 다른 명랑한 얼굴로 옆의 견습내시와 속닥거린다.
두루뭉술 몸에 웃을 때 헤 벌어지는 입이 마냥 천진하다.
상직소환들의 모습 위로,
상직소환 (자막 : 어린 견습내시) 자막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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