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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임당 빛의 일기 1회

프롤로그

16세기 이태리 대저택 계단.

촛불 든 하인1, 앞장서 길을 밝히고,

음식 쟁반 든 하인2, 뒤따라 계단 오르고 있다.

동 2층 투스카니풍 거대한 방문 앞

하인1, 조심스럽게 노크하는데...

응답 없다

하인1, 다시 노크.

하인2, (이태리어)식사를 좀 하셔야 한다 속삭이지만

굳게 닫힌 문 열리지 않고

깊은 내상으로 으르렁대는 호랑이의 포효와도 흡사한

남자의 신음 소리 아주 위협적으로......

하인1,2 흠칫...

고개 절레절레 저으며 조심스럽게 음식 쟁반 문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계단을 되짚어 서둘러 내려간다.

동 살롱

16세기 이태리 귀족의 살롱.

르네상스 풍 장식품들과 초상화로 가득한 호화로운 실내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독주가 한창이다.

백작 가족과 손님들, 앉거나 혹은 서서 연주 감상하고 있는데

하인1, 들어와 백작에게 귓속말로 뭐라 뭐라...

백작, 잠시 미간 찡그리다 알았다는 듯 나가보라는 손짓

하인1, 목례 후 물러나고

연주 한동안 계속되다가

한창 클라이막스로 고조되는 타이밍에서

콰쾅!!(2층 방문 열어젖히는 소리 아주 요란스럽게)

그 바람에 연주 삑사리 나면서 멈춰지고,

사람들, 일제히 돌아본다.

동 로비

백작을 필두로 손님들과 하인들, 살롱을 빠져 나와

계단 위를 웅성웅성 올려다보면

동 계단 위(앙각. 백작과 손님들의 시선으로)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철릭을 입은

수염이 덥수룩 초췌 창백하지만 뭔가 이글이글한 느낌의

이겸이다......!

석 달간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삶과 죽음의 경계, 비통과 절망의 폭풍우 한가운데를

온 몸으로 처절하게 관통하다, 갓 빠져 나온,

광인 혹은 예지자의 느낌으로......!

카메라, 그 이글이글한 이겸 뒤 활짝 열어젖혀진 방문 안으로 들어가면

동 방안

두꺼운 커튼 쳐져 어둑어둑한,

화구로 마구 어지럽혀진 화가의 방이다.

커튼 틈새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투스카니의 햇살 속으로

갓 완성된 <미인도> 뿌옇게 보인다.

<미인도> 속 여인의

웃는 듯 혹은 슬픈 듯 오묘한 그 얼굴에서 ......(F.O)

지윤E 조선 초기 왕족 화가... 이겸.

한국대학교 강의실(낮, 현대)

(F.I)열심히 강의 중인 지윤의 얼굴.

스크린에 이겸(이암)의 모견도 띄워져있고,

강의실 안에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윤의 강의를 듣고 있다.

활기차면서도 명확하게, 강의를 진행해나가는 지윤.

지윤 남아있는 작품도 몇 점 없고 그 생애조차 불분명한 미스테리한 왕족화가야. 중종의 초상을 그릴 화가로 추천되었다는 기록만이 거의 유일하구... 조선후기 풍속화에서 보여지는 개그림들과 한번 비교해보자.(신윤복 <모견도>, <나월불패도>, 김두량 <흑구도> 등등 다른 개그림 연이어 슬라이드로 뜨면서)모견도에선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질거야. 아마도 왕족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겸이란 인간 자체의 성품이 고스란히 배어든 것일 수도 있겠지... 작품의 분위기로 보건데,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다음 그림은 (화면 넘기면 사임당 수박과 들쥐 초충도 뜨고)너희가 너무 잘 아는

학생들 (너나할것없이 얼른)신사임당. 초충도요!!!

지윤 설명해 볼 사람?

학생들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곧 민망한 듯 와하하 웃고)

지윤 (기가 찬다는 표정 지으며 강의 재개)잘 알다시피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앞서 본 모견도와 함께 조선 전기 그림으로선 매우 희귀한 채색화야.

택시 안(낮)

택시 안에서도 학생들 레포트 채점하느라 여념없는 지윤,

꼼꼼하게 읽어보며 A, A+, C, D- 점수 매기고 있고

고급 주택(민교수 집) 앞(낮)

지윤이 탄 택시, 어느 고급 주택 앞에 서고.

바리바리 가방 챙겨 들고 내리는 지윤.

잘 나가는 여신교수에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는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민교수 집 화장실(낮)

아주 곤혹스러운 얼굴로 뭔가를 집중하고 있는 지윤 얼굴 C.U.

카메라 천천히 뒤로 빠지면

후줄근한 스트라이프 무늬 면 티셔츠에 고무줄 바지, 머리는 질끈 동여맨 채 고무장갑 낀 손으로 피스톤 압축기 들고 폭풍과도 같은 변기 펌프질 중이다.

좀 전의 우아한 여인은 오간데 없이 영락없이 파출부 아줌마의 모양새다!

지윤 아후! 내가 이렇게해도 교수가 못되면 사람이 아니다 진짜!(신경질적으로 더욱 세게 펌프질 계속 하자, 콰아~하며 시원하게 변기 뚫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내려간다)휴우~(하며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데.)

휴대폰 벨소리...

고무장갑 한 쪽을 벗고 전화 받으며 이번에는 욕조에 담궈둔 이불빨래를 질겅질겅 발로 밟으며 통화중)응 혜정아. 나 아직 민교수님댁.

혜정F 여태? 그놈의 시간강사 딱진 왤케 떼기가 어렵다니? 내가 다 진저리가 난다!

지윤 (핸드폰. 웃으며)그르게... 몸부림을 쳐봐도 (한숨. 이불빨래 질겅질겅 감정 실어서 더 세게 밟으며 한숨처럼)이렇게도 안 떨어진다!

혜정F 이번 운동회 못 간댔지?

지윤 (핸드폰)응...중요한 발표있어 그날.

혜정F 내가 애들 챙길테니까, 걱정 말라구.

지윤 (핸드폰. 웃는)고마워 친구야...(그러다 핸드폰 시간 보고 화들짝)어머! 끊어야겠다. 교수님 오실 시간!

혜정F 그래그래. (아웃)

지윤 (앞치마 주머니에 얼른 휴대폰 집어넣고 다시 이불빨래 질걸질겅. 마음 아주 급한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

지윤, 퍼뜩 정신 차리고 얼른 현관으로

동 현관

민교수, 민교수 사모, 하교수(여. 지윤 후배. 갤러리 관장 조카)

골프 복장으로 왁자지껄 경쾌하게 들어선다.

 무슨 드라이브 거리가 그렇게 많이 나세요? 오늘 아주 깜짝 놀랐어요.

민교수 무슨! 작년보다 10야드는 준 것 같은데...

사모 호호호

지윤 (활짝 경쾌하게)어서들 오세요.

사모 어머 지윤씨?

민교수 일찍 왔네?

 (좀 얄밉게)오랜만 선배.

지윤 그렇네.(민교수 골프백 얼른 받아주며)공은 잘 맞으셨어요?

민교수 (거만하게)응!(거실로 가면서)시원한 것 좀.

사모 네.(주방으로)

지윤 (얼른 사모 뒤따르며 곰살맞게)오미자액 가져왔는데.

사모 오미자? 좋지!

지윤 얼음 동동 띄워서 시원하게 내갈까봐요.(곰살맞게 가는 뒷모습을)

 (못 말리겠다는 듯 코웃음 흥! 설레설레. 거실로)

동 주방

하나씩 뚜껑 열리며 식탁 위에 한가득 펼쳐지는 밀폐용기들 속에

겉절이김치, 잡채, 무쌈말이 구절판 등등 색스러운 음식들 ......

사모 세상에!(감탄하면서 음식 하나 집어먹어보며)맛나다!

지윤 간이 잘 맞으려나 몰라요.

사모 지윤씨 솜씨야 내가 알지! 번번이 미안해서...

지윤 집들이 하시는데, 제가 거들어야죠 당연히!

사모 (겉절이 먹으며)음, 딱 맞아 간.

E 마실 거 안줘?

사모 가요!(하는 동안)

지윤 (벌써 오미자 액 쥬스잔에 덜어 냉수타고 얼음 띄우고 있다. 자기 집 살림처럼 뭐가 어디 들었는지 척척 다 알고 있다)

동 거실

민교수 (꿀꺽꿀꺽 오미자 냉쥬스 마시고 내려놓으며)어, 시원하다! 뭐지? 오미자?

지윤 (옆에서 쟁반 든 채)네! 운동후 갈등해소에두 좋구요, 눈과 정신을 맑게 원기를 돋궈준대요!

사모 (마시던 잔 내려놓으며)서선생이 가져왔어요. 겉절이랑 집들이 음식도 잔뜩.

민교수 (듣는지 마는지 하교수에게)관장님이랑 라운딩 한번 나가게 해줘봐.

사모 그래, 자리 한번 만들어봐. 조카가 나가자는데 내치시겠어?

 (오미자 마시며 도도한 냉소로)이모가 좀 바빠야 말이죠...(잔내려놓고)

지윤 (그들만의 리그에 굴하지 않고 치고 들어가는 느낌)저건 못보던 그림이네요? 김종학 초기작 아닌가? 여름... 1980년 작.(벽그림 돌아보며)

 (어머? 하는 느낌으로)일반엔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작품인데, 어떻게 이걸 알어?

민교수 (힐끗 하교수와 눈빛 교환)......!

 (내가 선물한 그림인데... 하는 공모자의 눈빛을 사모와도 교환하는 동안)

E 엄마, 엄마!(모두 돌아보면)

 (민교수의 중학생 딸, 짜증이 잔뜩 나서 툴툴거리며 튀어나와)컴터 기사 왜 안 오는데! 인터넷이 됐다 안됐다 한단 말야!

사모 집에 있었니 너?

 (그러거나 말거나 버릇없이)과제 출력해야 된다구!

민교수 야야, 컴퓨터 안 되는 걸 왜 여기 와 짜증이야? 그리구, 집에 있음 나와서 인살 해야 될 거 아냐!(하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몰라 몰라!

지윤 내가 좀 봐줄까?(얼른 딸을 데리고 들어가고)

민교수 (그 뒤에서)저 놈의 버르장머리......!

 놔두세요. 요즘 애들 다 저래요.

동 딸방

민교수 딸, 회전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 스마트폰 하고 있다.

지윤, 책상 밑에 쭈그리고 들어가 어지럽게 널린 선들 정리하다가

공유기에서 빠진 랜선 발견. 랜선 꽂아넣자 공유기에 파란 불 들어온다.

민딸 (내려다보며)멀었어요?

지윤 (책상 밑에서 기어 나오며)다 됐어. 어디 한번 볼까?

민딸 (의자 바퀴 굴려 옆으로 살짝 자리 비켜주면)

지윤 (어정쩡하게 무릎걸음으로 모니터 보는. 상태 표시창에 네트워크 연결풍선 뜬다.) 됐다!

민딸 (지윤 쳐다도 안 보고 바로 모니터로 시선 향하며)고마워요, 아줌마.

지윤 선생님!

민딸 (모니터에 시선 고정)네 쌤~

지윤 (싱긋)숙제 열심히 해! (나간다)

동 복도

지윤 (방에서 나오는데)

민교수 (어느새 앞을 막아서 있다)

지윤 (화들짝)엄마얏!

민교수 (큰 선심 쓰듯)안견, 금강산도 논문, 자네가 써봐!

지윤 (놀란 표정으로)네?

사모 (과일쟁반 들고 주방에서 나와 거실로 가며)축하해 서선생. 그 논문 맡기는거, 무슨 뜻인지 알지?

지윤 그럼요!!!(감격스럽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감사합니다!

민교수 500년만에 나타난 안견 진품이야! 피가 돌고 살이 돋게 작품 한번 만들어봐. (논문 목차 대충 휘갈겨 쓴 메모지 내밀며 암시적으로)여기, 논문 목차.

지윤 (얼굴 활짝 펴지며 아주 큰 기대감에 90도 꾸벅 절하며 받는다)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모 (거실쪽으로 가면서)이젠 서교수라 불러야 되겠네? 자리하나 날 거 같더라.

지윤 (감지덕지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꾸벅)감사합니다! 끝내주게 써보겠습니다!

글로벌 캠퍼스

택시 달려와 연구동 앞에 멈춰서면

후다닥 내려 건물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는 지윤.

민교수 연구실 안

비밀번호 누르고 급히 들어서는 지윤, 숨차서 헉헉 ......

<금강산도>일각 벽에 걸려 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도>를 드디어 실물로 보게 됐다는 감격에 글썽,

울컥,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데......

핸드폰 벨소리

민교수 전화다.

지윤 (얼른 핸폰 받으며)네 교수님!

F 논문 제목 안견의 금강산도 발견과 미술사적 의의로 바꿔!

지윤 네! (목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 낀 채 A4용지 한 장에 민교수가 휘갈겨 써 놓은 논문 목차 메모에서 안견의 진작 <금강산도>연구를 지우고, 안견의 금강산도 발견과 미술사적 의의로 제목을 바꿔 쓰면서)훨씬 좋네요!

F 오케이. 수고.(아웃)

지윤 (종료된 핸드폰 내려놓는다. 금강산도 앞으로 얼른 다가가 떨리는 심정으로 그림을 찬찬히 보기 시작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캠퍼스 전경

이런 저런 캠퍼스 풍경들...

민교수 연구실

머리 질끈 묶고 안경 쓰고 노트북 들여다보며 논문 작성 중인

지윤의 얼굴.

글이 안 풀려 영 답답하다......

벌떡 일어나

일각에 걸려있는 족자 속 <금강산도> 앞으로 다가가더니

가만히 보고 있다. 갸우뚱......

지윤 (혼잣말)이상하게 느낌이 안 오네... ! 이럴 리가 없는데...(아주 답답한데)

핸드폰 벨소리

이번엔 어머니다.

지윤, 시선은 <금강산도>에 고정한 채 핸드폰 받는데

정희F 늦니? 작은아버지랑 다들 오셨는데... 은수 경시대회 대상받은거 한턱 내는거.

지윤 (핸드폰, 화들짝)어머어머!

동 교정

정희와 통화하면서 헐레벌떡 퇴근 중인

지윤 (핸드폰)죄송해요 어머니.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총알같이 갈게요! (핸드폰 끊고 급히 뛰어가는데)

동 일각 해직강사들 농성중인 텐트 앞

해고는 살인이다. 강사 부당해고 즉각 철회하라!” “비민주적 대학행정 즉각 중단하라”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교육공공성 확보하라등등의 구호가 써 있는 텐트다.

해직된 시간 강사들의 농성을 주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한상현.

구부정하고 꾀죄죄한 시간강사들과는 단연 차별되는

발군의 외모에 건강한 젊은 피다!

상현 (구호 선창)해고는 살인이다! 강사 부당해고, 즉각 철회하라!

강사들 (따라서)철회하라! 철회하라!

상현 (선창)교육공공성을 확보하라!

강사들 확보하라! 확보하라!

종종종 뛰면서 그 앞을 지나치던 지윤,

순간적으로 구호 외치는 상현과 눈이 딱 마주치지만

무심하게 눈길 거두고

빈 택시를 향해 급히 달려가면서

지윤 택시!

지윤집 거실(낮)

40평대의 주상복합 고급아파트다.

사립 교복 차림 은수, 일각에서 <알도와 떠도는 사원> 탐독 중.

정희는 일가 어르신들 앞에서 은수가 타온 경시대회 상장 놓고 자랑중.

정희 이번경시가 보통 대회가 아니거든! 전국에서 수학으론 일등이라는 얘기잖아요? (좋아죽는)이제 국제중, 특목고코스는 수월하게 가는거니깐.

어른 어이쿠 대단하네!

정희 호호호, 요즘은 모르는 엄마들까지 팀수업하자고 아주 난리도 아니예요. 대치동에 소문 쫙 났다나 어쨌다나...

어른2 우리 형수님 그렇게 애를 쓰더니 말년에 얼굴이 훤히 피셨네..늦복이 터졌습니다!

정희 호호호 그런가요?(하는데)

지윤 (황급히 들어서며)숙부님,당숙님.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식사들은 어떻게?

어른1 자알 먹었지. 형수님이 상다리 뿌러지게 차려주셨어.

어른2 우리 조카며느린 교수라 했던가?

정희 (얼른)지금도 교수긴 한데 곧 완전하게 된답니다! 그렇지?(눈 찡끗 어서 대답하라는 듯)

지윤 (애교)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거실에 펼쳐진 과일쟁반 보면서)한과 들어온 거 있는데, 밀가루 안 쓰고 곡류로만 된 거.

정희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그거 내온다면서.

지윤 제가 내올게요. (주방으로 가고)

어른1 조카는 안와요?

정희 걔가 어디 보통 바빠야지! 저번에 경제 신문 인터뷰 나온 거 못 보셨나? (신나서 얼른 코팅해 거실 탁자 밑에 깔아놨던 놓은 신문 기사 꺼내놓으며)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펀드 매니저라구요 우리 민석이가! 투자자문사 차려 독립하자 마자 고객들이 돈보따릴 싸들고 몰려든대요!

동 주방(밤)

지윤 (한과 다과상과 오미자액 준비하고 있는데)

정희 (들어와서 말리며)너 들어가 공부해! 논문 써야 된다며.

지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하는데)

정희 (흐뭇)아범 사업 잘 돼, 우리 은순 경시대회 1등상에, 여기다 교수 며느리까지 갖추면 내가 부러울 게 없다!(흐뭇하고 기대되는)

지윤 (웃는데)

정희 참, 너한테 배달 온 거 있던데? (시침떼며)서재방에 갖다 놨어.

지윤 배달이요?

정희 가서 봐. 쪼~금 크더라.(시침 뚝)

지윤 (의아해서 나간다)

동 서재(밤)

지윤, 들어오면

잘 정돈된 고급 서재에 가득한 책들.

갓 배달된 훌륭한 새 책상...

지윤 (황홀한 듯 책상 표면을 손으로 훑어보며 감격)어머나 세상에......!

정희 (어느새 들어와 오매자액 들고와 책상위에 놓아주며)맘에 드니?

지윤 네! 어머니~(돌아보며 울컥)진짜 갖고 싶던 책상이에요. 비쌀텐데!

정희 (어느새 들어와)장차 교수 될 사람인데 책상이 이 정돈 돼줘야지! 화끈하게 질렀어 내가.

지윤 (감격해서 눈물 핑 돌 듯)어머니...!(정희 와락 끌어안는데)

정희 (지윤 등 토닥이며)나야 시대를 못 만나 하고픈 거 하나도 못하고 살았지만, 니들은 멋지게들 살어 알았지?

지윤 (포옹 풀고 정희 손을 잡으며)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니 진짜 최고세요!

어른1E 형수님! 술은 없어요?

정희 (크게)있지요!(지윤에게)넌 공부해! 나올 거 없어.(급히 나가려다)아 참, 담주 대치동 모임 잊지 않았지?

지윤 (멈칫, 그러나 티나지 않게)예에...

정희 팔자 좋아서 내가 그동안 그 집 시엄마랑 골프 다니고, 기도모임 가진줄 아니? 레오 엄마, 대치동 최고 돼지엄마야. 큰 애 서울대, 둘짼 과학고, 막내 늦둥이가 우리 은수랑 동갑아니냐. 다 전략적으로 핸들링한 거라구. 그런 엄마랑 미리미리 친해놔야돼 지금부터.

지윤 어머니처럼 멋진 할머니가 없는 애들은, 어떡하나 몰라요.

정희 걔들이랑 같니 우리 은수가! 목표치부터가 다르지! 겨우 시간들 맞춘거니까 세련되면서도 과하지 않게. 알지?

지윤 (씨익 미소)네.

동 아파트 외경(밤)

강남 한복판에 성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대단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촌 전경

지윤 서재(밤)

노트북 앞에서 일상복 차림으로 논문 작성 중인 지윤,

<금강산도> 사진을 확대해 붓의 터치와 먹선의 필치를 아주 유심히 보고 있다가......갸우뚱... 아주 답답하다.

족자의 재질을 확대해 꼼꼼히 살피다가

족자 무늬를 최대한 확대해 보면서

지윤 (석연찮다)단풍나무... 단풍나무라...... 일본 에도시대라는 얘긴데... 안견이랑 시대가 안맞아.. (머리 복잡해진다. 안경 벗고 갸우뚱 석연찮은데)

전화벨소리

지윤 (수화기)여보세요?

F 정민석씨 댁인가요?

지윤 그런데요?

F 계신가요?

지윤 (약간 의아하다)아직 안들어 왔어요. 누구시라 전해드릴까요?

F 은행입니다. 전화 왔다 전해주세요.(아웃)

지윤 (수화기 내려놓으며 갸우뚱)웬 은행?(갸웃 하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지윤 당신?(일어서 나간다)

동 안방(밤)

아주 피곤한 민석, 양복을 잠옷으로 갈아입는 중.

민석 양복 상의를 벗어 대충 의자에 걸쳐놓으면

동 주방(밤)

지윤, 녹즙을 갈아 컵에 따르고 쟁반에 받쳐 가지고 나온다.

동 안방(밤)

지윤 (녹즙 내밀며)마셔!

민석 (컵 받아 들어 조금 마시고는)어머닌?

지윤 피곤하셨나봐. 주무셔. 숙부님이랑 당숙님 한참 놀다 가셨어. 약주들도 한잔씩 하시고...

민석 (건성으로 들으며 옷 갈아입는다)

지윤 엄청난 그림이 들어왔거든. 안견 금강산도... 민 교수님이 진품이라 감정했고 선진그룹 갤러리가 소장해.

민석 ......(듣는지 마는지)

지윤 근데 영 필이 안 와.. 뭐랄까.. 붓 터치랑 먹선 필치가 답답한 느낌? 비단도 좀 석연찮구. 뭔가 우아하고 당당해야 되는데. 묘하게 느낌이...(하자마자)

민석 (냉소적으로)하극상이라도 하시게, 지도교수 상대로?

지윤 (무안해서)그게 아니라(하는데)

민석 (욕실로 들어가면서)깝치지 말고 손절매해! (냉정하게)골리앗 앞에 돌팔매질 할 일 있냐?

지윤 (투덜투덜)말을 해도 꼭...(민석이 벗어놓은 와이셔츠 등 챙기며)

동 부부욕실(밤)

민석 (세수 하는 중)

지윤 (민석 벗은 옷 들고 문간에서 들여다보며 밉다. 슬쩍 째려보고)참, 좀 전에 은행에서 전화 왔었어. 당신 찾던데?

민석 (세수하다 멈칫)......!(다시 어푸어푸 세수하고 수건으로 얼굴 닦는데, 눈 동자 핏발서 있다. 거울 속 자기 얼굴 보면서)......!

지윤 근데 왜 집으루 전화를 해 이 시간에?(하는데)

민석 (지윤 어깨 툭 스치듯 나가며 대꾸 없다)

지윤 으응?!(또 말을 씹네... 하는 느낌으로 불만스럽게 돌아보고)

동 안방(밤)

스탠드 불빛만 켜있는 침실.

민석 (잠옷차림. 피곤한 듯 자리에 누워 한 손등 눈 위에 얹은 채 잠 청한다)

지윤 (잠옷차림. 옆자리에 누우며)학회 가. 수욜 아침 9시 비행기.

민석 (눈 감은 채)어디루......

지윤 볼로냐.

민석 (눈 번쩍)볼로냐? 이태리말야?

지윤 응.

민석 (신경질적으로)갑자기 그럼 어떡해! 은순 어떡하고!

지윤 (O.L의 느낌)갑자기 아니거든! 지난달에 말했어 분명. 대치동 모임이랑 겹친다구. 어머니, 다른건 몰라도 은수 교육 문젠 굉장히 예민하신데, 난리 나는 거 몰라?!

민석 ......!(전혀 기억 없다)

지윤 허...!(팽 돌아눕는다)

민석 (피곤한 듯 짜증 섞어서 다시 눈 감고 엄지와 검지로 미간 주무른다)

지윤 (돌아누운 채 부글부글)......!

침묵만 흐르는 아주 냉랭한 침실이다......

갤러리 선 관장실(밤)

깔끔하고 럭셔리한 공간.

살짝 조도(照度) 낮은 조명아래,

비밀스럽게 전시된 금강산도를 감상하고 있는 선광장.

그 뒤에 대기하고 있는 민교수.

선관장 (음미하듯 보면서)금강산도......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볼때마다 새로운 전율을 준다고나 할까...

민교수 정확하십니다. 역시 관장님 심미안은...!

선관장 (돌아서 일각 소파에 앉는다)

민교수 (조신하게 마주 앉고)

선관장 (조용한 카리스마)금강산도에... 업계 이목 모두 쏠려있는거 아시죠? 청와대, 전경련 오찬 때도 화제가 됐다던데......(찻잔 내려놓으며 민교수 보며)

민교수 (득의만만한 표정)당연하지요. 안견이 남긴 유일한 금강산도 아닙니까. 국보추진은 따논 당상입니다. 미술 작품이라는 게 누가 소장 하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마련이죠. 앞으로 갤러리 선의 입지는(하는데)

선관장 (정색. 차갑게)민학장!

민교수 ......

선관장 저요, 예술을 돈으로만 판단하지 않습니다.

민교수 (당황하지만 이내 표정 수습)당연하십니다! 선 갤러리와 관장님의 위상에 대해 말씀드린 겁니다.

선관장 ......(도도하게 차 마시는)

민교수 (살짝 긴장하며 쳐다보는데)

선관장 민학장 노고, 충분히 압니다. (찻잔 내려놓으며)그러니... 그에 합당한 댓가를 드려야겠죠?

민교수 (회심의!)관장님! 아니 이사장님!

선광장 (민교수를 가만히 보는데)

민교수 지금 있는 김 총장, 임기내내 한 일이라곤, 학내 분위기 어수선하게 만든 것뿐입니다. 시간강사들 단속 하나 제대로 못하고... 관장님이 아니라 한국대학 재단이사장님께 드리는 충언입니다!(하는데)

선관장 (민교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차기 총장 선거가... 얼마 안 남았지요...

민교수 (딜하듯)문화부장관까지 가실 수도 있습니다 관장님께서도! 안견 금강산도 정도면 말입니다...

선관장 (노회하게)서로 윈윈 해야겠지요.. 우리 둘...

민교수 (회심의!)충성을 다하겠습니닷!

선관장 (차가운 미소 살짝)

민교수 (야망의 실현이 바로 코 앞에 와 있는 기분으로)......!

회심의 민교수와 노회한 선관장,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차 마시는데...

그들의 얼굴 위로 조명이 드리우며 어두운 그림자 지는.

송도 캠퍼스 전경(낮)

<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찾아서>밑으로 부제 <안견의 금강산도 발견과 미술사학적 의의> 학술토론회 시간과 장소 알리는 플랫카드 걸려있다.

교수 연구실(낮)

거울 보면서 옷매무새 가다듬고 준비하는 민교수.

민교수 (눈빛 번뜩이며 거울 보며 혼잣말)민정학... 총장! (회심의 미소. 매무새 가다듬고 돌아서는데)

동 발표장(낮)

현수막 걸려있고

내외국인 학생들 빼곡히 들어차 있는 글로벌한 대형 강의실.

맨 앞줄에 딱 떨어지는 세련된 이태리 양복차림의 민교수와 외국인 총장 비롯한 교수들, 선진그룹 회장 사모인 갤러리 관장, 하교수, 갤러리 선 직원들, 기자들 지켜보는 가운데

<안견의 금강산도 발견과 미술사학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사회자석의 지윤, 다양한 PT화면 활용하며 사회 보는 중.

지윤 (열정적으로)아시는 바와 같이 현재까지 안견의 진품은 몽유도원도 한 점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 일본 텐리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 만에 기적처럼 안견의 진품 <금강산도>가, 여기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관장 (민교수에게. 저 친구예요? 하는 느낌으로 눈짓)

민교수 (귀엣말로)앞으로 두루두루 써먹을 데가 많은 친굽니다.

관장 (끄덕)

상현 (들어와 빼딱하게 일각에 앉는다)

지윤 안견 연구의 권위자이신 한국대학교 인문대학장 민정학 교수님께서 안견 금강산도의 발견 경위와 의의에 대한 발표를 해주시겠습니다.(하는 동안)

민교수 (박수 받으며 연단으로)먼저, 이 자리에 서게된 것 자체가 감개무량합니다!

(시간경과)

지윤 (자료 보고 있는 동안)

민교수 아마도 미술사학자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벅차고 보람 있는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금강산도의 발견은,

/cut back

선관장 차기 총장 선거가... 얼마 안 남았죠?

민교수 그야말로 금세기 한국 미술사학계가 이룬 눈부신 쾌거이며 세기의 발견인 것입니다!(열변을 토하는 동안)

/cut back

선관장 서로 윈윈 해야겠죠.. 우리

(시간 경과)

객석 앞줄의 총장, 교수들, 갤러리  관장&직원들 끄덕끄덕...

청중들 박수치고

지윤 (화면에 Q&A를 띄우며)이상으로 민정학 교수님의 주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민교수 (자신만만 흐뭇하게 박수치는 청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상현 (O.L 벌떡 일어나 한 손 들고 우렁차게)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지윤 (당황해서 상현을 본다)...?

민교수 (일각의 남조교, 문조교 보고 눈살 찌푸리면)

남&문 (황급히 상현 쪽으로 뛰어 올라가는 동안)

교수1 (돌아보며)누구야 저거?

교수2 한상현이잖아.(흘낏 곁눈질로 민교수 가리키며)민교수한테 들이댔다 짤린...... 시간강사.

교수1 아... 그 골칫덩이.

교수2 (맞다는 듯 끄덕 하는 동안)

관장 (재벌가 사모님답게 표정 변화 없이 우아하게)

학생들 (웅성대는데)

남&문 (황급히 상현 끌어내려 하지만)

상현 (버티면서 우렁차게 투사처럼)<금강산도>를 보면! 필치는 비슷하나 안견 고유의 필법인 단선점준이 없습니다. 또 표구된 비단의 바탕 무늬가 단풍무늬입니다. 이는 일본 에도시대에 자주 쓰이던 문양으로 안견의 시기와는 차이가 있단 말입니다! 저 그림 <금강산도>, 과연 안견의 진품이 맞습니까? 예일대에서 안견 연구로 박사를 딴 민정학 교수 말이라면, 무조건 법이고 진리가 되냔 말입니다!

남&문 (상현을 끌어내려)

상현 (버티며)반대 의견 말 할 자유가 없는 대학은 죽은 학굡니다!

민교수 (열 받아)경비 뭐하나!

총장 (돌아보며)놔주세요.

남&문 (상현을 끌어내려던 손길 멈칫)......!

민교수 ......?(총장 돌아본다)

지윤 (사회자석에서 난감한데)

상현 (우렁차게)서지윤 선생에게 묻겠습니다!(지윤을 똑바로 응시하며)

지윤 (당황, 교탁을 꽉 잡은 손에 긴장으로 힘줄이 들어나 있다)......!

상현 민교수 직통 제자가 아닌! 학자의 양심을 걸고 대답해 보세요! 한 점 의혹도 없이, 안견의 진작이라 확신하고 있습니까?

지윤 ......!(창백해진다.)

모두 (지윤을 주목한다)

민교수 흥...(뻔한 걸 뭘 물어 하는 느낌으로 자신만만한데)

지윤 (진땀이 흐른다. 난감하다)......!

모두 (지윤을 주목)

지윤 (천천히)저는......

학생들 (약간 웅성웅성)

민교수 (어서 말 하라는 듯 자신만만 끄덕)

모두 (지윤을 주목)

지윤 (탄식처럼)잘..... 모르겠습니다......

민교수 (서늘하게 울그락 불그락)......!

교수들 (일제히 민교수 눈치 살핀다)

지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뱉은 거지 멍한 느낌, 민교수 퍼뜩 본다. 창백한 얼굴, 마음의 소리로)미쳤나봐. 무슨 소릴 한거야...!

민교수 (얼른 표정관리,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의연한 척)

지윤 (자기가 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얼어 붙어있다)......!

총장 재론의 여지, 있다는 뜻인가요?

학생들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을 치켜들고 동영상 촬영하는 학생들 )

지윤 (황급히 수습. 속사포처럼 빠르게)방금 표구 말씀하셨는데요, 단풍 무늬가 에도시대 직물에서만 보이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표구를 다시 하는 경우도 많아서 재료학적인 측면만 가지고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는 건 무립니다. 화풍과 필법의 특징으로 진위 여부를 결정 해야 하고 불가능할시 탄소측정방법으로 결론을 내려야하는데, 최종 판단은 역시 감정하는 사람이 돼야겠죠. 그런데, 안견 연구에만 30년을 몰두해 오신 민 교수님 앞에서 필치 운운하는 거야말로 어불성설 아닐까요. 진품명품 프로를 너무 많이 보셨나 봐요.(일사천리로 쏟아낸다)

 (크게 고개 끄덕끄덕)......!

기자들 후레쉬 터트리며

관장, 표정 변화 없이 우아하게 앉아있다.

지윤, 숨 가쁘게 쏟아놓고 나서 민교수 쪽 의식하며

긴장으로 탁상 꽉 쥔 손이 남몰래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발표장 건물 앞(낮)

어마어마한 외제차 스르르 와서

싸늘한 선관장과 하교수, 앞에 멈춰선다

기사, 얼른 뛰어내려 차문 열어주고

민교수, 깍듯이 90도 인사로

민교수 살펴 들어가십시오!

선관장 (차 문을 열어주는 기사의 안내에도 가만히 섰다가... 분을 못이기고 한마디) 가짜 금강산도라니, 이게 다 무슨 소리죠?!!

민교수 (긴장했지만 의연한 척)연못물 흐리는 미꾸라지야 어디나 한마리씩 있기 마련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요!

선관장 (싸늘하게)틀림없죠? 안견 금강산도. 민학장이 책임지는거예요?

민교수 (90도 인사로)네! 연구 인생 30년을 걸고 자신합니다!

선관장 (매정하게 올라타고)

하교수 (조수석에 타고 차 쌩하니 달려가 버린다)

민교수 (고개 숙여 인사 했다가 떠나는 차 고개 들어 보며... 답답한 듯 격한 숨 휴우!)

민교수 연구실 앞 복도(낮)

잔뜩 화가 난 민교수, 성큼성큼 오고 있고

그 뒤를 하얗게 질린 지윤, 전전긍긍 절절 메며 따라오고 있다.

민교수 (입속말로 안들리게 씹듯이 서늘하게)시건방진년!!!

지윤 (절절 메며)교수니임......

민교수 (성큼성큼)

민교수 (우뚝 멈춰 선다)

지윤 (당황, 따라 멈춰 서는데)

민교수 (돌아보며 얼굴색 싹 바꾸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학회 준빈 다 해놨지?

지윤 (안절부절 눈치살피며)교수님...(변명하려는데)

민교수 이슈가 됐잖아? 어차피 정신 나간 전직 애송이 강사 나부랭이, 아무 문제없어! 기사 한번이라도 더 나갈 거구. 괜찮아.(쿨하게)

지윤 ......!

민교수 볼로냐 학회 준비나 똑부러지게 해놔.(슬쩍 미소. 어깨 툭 쳐주고, 연구실로 성큼 들어가 버리면)

지윤 (얼굴 활짝 펴지면서, 큰 안도로... 닫힌 문을 향해 90도로 절하는)완벽하게 해 놓겠습니닷! (십년감수한 느낌으로 크게 한숨)휴우...!

자연별곡(PPL 낮)

정희, 은수 그릇 앞에 두고 도란도란 대화 나누고 있다.

정희 (담아온 그릇에서 떡갈비 챙겨 은수 그릇에 놓아주며)우리 은수 많이 먹어! 이거 떡갈비 맛있어 보이드라!

은수 네(싱긋 웃고 먹으면)

동 일각(낮)

지윤, 민석에게 전화를 걸며 서성인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지윤 (애가 탄다. 짜증)전화도 안받고 뭐하는거야 대체! 학회가는거 오늘은 말씀드려야 한단 말야! 못 살어 진짜!!(거칠게 전송버튼 꾸욱 누르는데)

민석 회사(낮)

벽 위에 J. 인베스트먼트(investment)회사명 박혀있는

사무실 분위기, 초비상이다.

한쪽에선 직원들, 주식차트가 떠있는 컴퓨터 모니터 보며 전화통화 하느라 바쁘고,

또 한쪽에서는 급박한 표정으로 컴퓨터 문서폴더를 삭제하고 있거나

서류책장 앞에서 박스에 서류를 마구 담는 직원들로

사무실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민석, 그 뒤에서 애가 타서 서성이며 유선전화기로 통화중

민석 (초조하게 다급하게)갑자기 금감원 조사가 말이 돼!!

직원1E 큰일났어요 대표님!! 알텍 주가가 이상해요!!

민석 (직원1의 소리에 전화를 끊고 얼른 책상으로 달려온다)

직원1 갑자기 곤두박칠 치고 있어요!

민석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에는 R텍 컴퍼니 그래프가 하한가에서 직선을 긋고 있다. 충격으로 일그러지며)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뭐야 이거!!(직원을 밀치고 앉아 신경질적으로 키보드 두드려본다. 경악하는)순식간에 100억...(수렁에 빠진듯)

직원1 (다급히)120억이에요 이젠!

민석 (핏발선 눈으로)어떤 새끼들이야!!!

동시다발로 전화벨소리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직원들 (패닉으로 사방에서 민석을 돌아본다)

민석 (멘붕와서 갈팡질팡)임전무! 임전무 어디 갔어?! 아까부터 왜 연락이 안되는 거야!!(답답해 미치겠는 표정으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왜 안 받아...(직원들에게)임전무 연락 된 게 언제(하는데)

문 벌컥 열리고

깔끔한 양복차림의 금감원 직원들 네다섯 명, 박스를 들고 들이 닥치며

금감 (금감원 신분증을 보여주며)금감원에서 나왔습니다.

민석, 얼굴 하얗게 질리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 떨어뜨리고는...

급박하게 책상을 밀어 막으며 창을 열고

금감원 직원들 놀라서 움직이려는 사이 잽싸게 창밖으로 뛰어 내린다.

갤러리 선 관장실(낮)

관장실 구석에 원통형 머그컵 세워 놓고 골프 퍼팅연습하고 있는 회장, 한손으론 휴대폰 통화하며

회장 (회심의 미소 지으며)수고들 했어...이젠 한입에 후루룩 잡술 일만 남았구만?(하는데 쪼르르 굴러간 공이 머그컵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자 인상 찡그린다)아구구구......

관장 (어느새 들어와 그런 회장 한심하고 역겹게 보며)멀쩡한 남의 회사 순식간에 말아먹구, 금감원까지 움직이셨다?

회장 (전화 끊고는 소파에 여유 있게 앉는다)야야 거, 돈 안되는 소리 그만하구

관장 (치를떠는)천박하긴!

회장 천박? 이 천박하신 몸께서 당신 머리 끝에서 발끝 까지 감은 그 명품들에, 갤러리까지 차려줬어. 이거 왜이래!

관장 시끄럽구(하는데)

회장 (일어서며)금강산도 담보로 500억 대출 받을거니까 서류 싸인해 넘겨.

관장 (발끈)누구맘대루!

회장 내맘이다!(나가버리고)

관장 (뒤에서 부르르 치를 떠는데)

지윤집 거실(낮)

지윤, 정희, 은수, 기분좋아 한껏 들떠서 들어서는데

집안 가구마다엔 차압 딱지가 붙어 있고

파출부 아줌마,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수 어?

지윤 (놀라)뭐예요 이게?(파출부 돌아보면)

파출 사장님 찾길래 열어줬더니...(난감하다)

은수 (차압 딱지 읽는다)압류물표목. 이 표목을 파괴하거나 무효케 한 자는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희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어리둥절 하는데)

남자1E 여기가 정민석이 집 맞지!

지윤 (퍼뜩 놀라서 돌아보면)......?

밀려들어오는 일군의 채권자들, 악다구니를 써댄다.

정민석이 어딨냐? 이렇게 해놓고 살면서 왜 우리 돈은 안 갚냐, 다 나와라 악을 써댄다.

은수, 놀라서 지윤 뒤에 숨어 움츠리고......!

지윤과 정희, 누구냐? 왜들 이러냐? 막으려 애를 써보지만

채권자들, 악다구니에 불가항력이다.

지윤, 은수를 뒤춤에 숨긴 채 큰 충격으로 어쩔 줄 몰라하고

채권자들, 지윤을 둘러싸고 악을 써대는데

정희 (암팡지게)뭐야, 당신들!

지윤 (정희를 뒤로 빼돌리며)나랑 얘기해요!

남자1 당신 뭐야?

지윤 그러는 댁들은 누군데 남의 집까지 들어와 행패예욧!

여자1 (서류 들이밀며)이거 안보여? 당신 남편이 돈 빌려간 서류야!

정희 뭐어?!(충격)

지윤 (얼른, 당차게)그럼 거기 가 얘기해욧! 우린 아무 것도 모른다구요!

남자1 말하긴 뭘 말해, 핸폰 꺼놓구 잠수탔는데! 돈 받기 전까진 우리 이집에서 한발자국도 못 나가니까 그렇게 알어!

정희 (버럭)이것들 봐욧!

지윤 안나가면 가택침입죄로 신고할거예욧!

정희 (파출부 향해)아줌마 뭐해! 당장 경비실 불러! 아니 파출소!(하는동안)

은수 (지윤 뒤에서)무서워 엄마...

지윤 괜찮아!(은수를 끌어안고)

채권자들 좋아, 신고해 어디. 우리 지금 아무것도 눈에 안보이거든.

그래, 같이 콩밥 좀 먹어보자. 신고해!(아예 여기저기 자리잡으며 진

치고 장기전으로 가겠다는 모습들이다)

정희 (질린 채 당황하는데)......!

은수 (놀라서 울먹울먹)엄마아......!

지윤 괜찮아, 괜찮아.(은수 달래면서)......!

정희 이게 다 무슨 일이냐!(털썩 소파에 주저앉는 동안)

핸드폰 벨소리...

지윤, 황급히 핸드폰 꺼내 보면 발신 표시 제한번호다.

어떤 예감에 일각 구석으로 가서 살짝 핸드폰을 받아보는데

지윤 (핸드폰)여보세요?

민석F (O.L)대답하지 말고 들어! 지금 바로 고수부지로 나와. 은수랑 가끔 가던데 알지?

지윤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핸드폰 내려놓는다. 마른 침 삼키며 정희에게)

회사에 가볼게요! 은수 좀.(정희에게 은수 내밀고)

정희 (은수를 품어 안은 채 대답할 기력도 없다. 손짓으로 어서 가보라는)

지윤 (급히 뛰어 나간다)

도킹 장소 한강 둔치(낮)

지윤, 휑한 고수부지 한복판에서

핸드폰 귀에 댄 채 황급히 절박하게 사방 둘러보고 있다!

인근 장소 몸을 숨긴 채 지윤 쪽을 주시하던 민석, 막 지윤 쪽으로

다가가려 하는데

지윤을 미행해온 채권자들 차에서 급히 내리는 모습 발견.

민석, 급히 몸을 숨겨버리는데..

민석 찾느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 지윤, 360도 팬의 느낌으로...

지윤 (핸드폰 걸어)어디있는거야?

민석F (쫓기는 듯 초조하다)길게 통화 못 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말 잘 들어. 나 잠깐 피해 있어야 돼. 당신도 은수랑 어머니 모시고 어디로 피해있어. (아주 급하게)다시 연락할게!(끊는다)

지윤 (핸드폰)여보!여보!(어쩔 줄 몰라하며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절망적으로 내린다)

채권자들 몰려와 지윤을 둘러싸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동안

닥달당하는 지윤 뒤로 한강 야경 빨갛게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다.....

지윤 집 앞(밤)

이민가방 사이즈의 트렁크와 등산용 배낭, 스포츠 백, 은수 가방 등등

온 집안에 있던 가방들은 다 나온 듯

급하게 싼 짐들 줄줄이 놓여있고

망연자실 한 채 서 있는 지윤과 정희

은수, 이 상황이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두려운 듯 지윤을 올려다보며

은수 엄마...

지윤 (아무 말도 못해주겠어서 눈만 맞추고는 은수를 감싸 안아주는데 혜정 차 달려와서 세 사람 앞에 서고)

혜정 (차에서 내려서는 앞에 늘어선 짐들이며 세 사람의 꼴을 보고 기겁)이게 다 무슨 일이래~!!

지윤 (패닉이다. 울먹)너 밖에 연락할 데가 생각이 안나서...

혜정 잘했어! 가자! 어머니 얼른 타세요! (하며 문 열어주면)

정희 (표정도 말도 없이 힘없이 타고)

혜정 (가방들 차에 실으려 하나 척 들며) 얼른 실어! (하면)

지윤 (같이 하나 들고)

혜정의 집 주방(밤)

지윤 (식탁 의자에 망연자실 털썩 앉아있다)

혜정 (물 한잔 쓱 내밀며)마셔! 마시고 정신 좀 차려.

지윤 (좌절해서 두손에 얼굴 파묻으며 울먹)어떡해야할지 모르겠어. 이 판국에 학회고 공부고... 그딴게 다 무슨 소용이야!(하는데)

혜정 무슨 소리! 죽 쒸서 개줄일 있냐? 민교수가 너 이런 사정 봐줄 인간이야? 여태 고생한게 아깝잖아! 이럴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구 가서 딱 부러지게 하구 와. 어떻게든 교수돼야지! 그래야 은수아빠 일 수습하고 다시 일어설거 아냐!

지윤 (보면서)그러는 게... 맞겠지...?

혜정 당연하지!

동 방(낮)

서재방 일각에 지윤과 정희, 은수의 짐가방이 놓여 있고

정희, 핼쓱하게 넋 놓고 앉아 있는데

지윤, 출국 준비 마치고 들어와 마주 앉는다.

지윤 (단단하게)어머니 저 학회 다녀올게요.

정희 (마른침 삼키며)그래.

지윤 정신 바짝 차리고 의연해지셔야 돼요!

정희 그래야지.

지윤 이번엔 정말 임용 될 거예요. 그럼, 제 월급으로 살 수 있어요, 그이 돌아올 때까지... 그러니까 어머니도 단단해 지셔야 돼요. 저 없는 동안 은수 잘 챙겨 주시구요!

정희 (힘내려는)그래!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길이 생긴다 그랬다. (지윤 손 잡고)여긴 신경쓰지 말고, 가서 잘 하구 와!

지윤 (정희 눈 마주보며)네......!

동 주방(낮)

외출복 차림 창백한 지윤, 앞치마 두른 채 급하게 갓 볶은 고추장 고기볶음을 밀폐용기에 담고 있는 옆에서

혜정 (안타까워 뭐라도 돕고 싶은)멸치도 좀 챙길까?

지윤 그러자.

혜정 (멸치 꺼내 지퍼백에 포장해 넣으며)이번엔 진짜 어떻게든 교수 따내라! 멸치 아니라 고랠 잡아 바쳐서라도!

지윤 (절박하다)그럴거야! 죽으라면 죽는 시늉 하고, 신발 바닥을 핥아서라도 꼭 임용돼고 말거야!(고추장통 랩으로 꽁꽁 포장하고, 위생 비닐봉지로 또 한 번 포장해서 들고 총총 나간다)

동 거실(낮)

지윤 (고추장 볶음통 들고 나온다)

혜정 (멸치 지퍼백 들고 따라 나오고)

지윤 (벌려놓은 대형 여행가방 2개. 그 중 하나에 고추장통 넣는데, 이미 팩소주 스무 개 가량, 민교수 웃는 얼굴 표지에 있는 민교수 저서 20권, 한국토산품 기념품 선물류 등등으로 가방 두 개가 꽉 차 있다.)

유빈 (쪼르르 와서 들여다보며 말똥말똥)술 마셔요 이모?

은수 (테이블 앞에서 숙제하다 말고 의아하게 돌아본다)어...?

공항 입국 수속카운터 앞(낮)

민교수 (세련된 트렌치코트 차림. 출국 수속하는 줄에 서서 주위 둘러보는데)

지윤 (벨트로 동여맨 가방 두 개 끌고 끙끙 힘겹게 뛰다시피 와서, 가드라인을 열어 줄 중간으로 끼어들며 줄선 사람들에게)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민교수에게로 간다)

민교수 (눈살 찌푸리며)이민 가나? 그 짐은 다 뭐고!

지윤 (헉헉)교수님 저서랑, 이것저것... 헉헉. 죄송합니다. 여권 이리 주세요!(가방 두 개 끌고 교수 여권 받아 수속데스크로)

민교수 (명품 서류가방 정도만 들고 우아하게 뒤따른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위의 비행기 날개(낮)

동 지윤 좌석(낮)

창가 쪽 자리엔 뚱뚱남.

지윤, 불편하게 복도 쪽 자리에 앉아 피터 교수의 <동양미술사> 읽고 있는데, 여승무원 온다.

승무 (소곤소곤)서지윤씨 맞으시죠?

지윤 그런데요?

승무 민정학 교수님께서 찾으십니다.

지윤 아!(얼른 안전벨트 풀고 책 좌석에 엎어둔 채 승무원을 따라 간다)

좌석 위에 엎어져 있는 책 <동양미술사> 표지 속 피터 교수 얼굴 C.U

동 비즈니스석 민교수 자리(낮)

민교수 좌석에 거만하게 앉아 있고

지윤, 그 옆 복도에 승무원처럼 거의 무릎 꿇은 자세로

아이패드에 담긴

<Cultural Symbolism of Paintings

-Focused on comparison of Chosuns Folk Painting and the Netherlands’ Still Life Painting in the 17th Century->

(회화의 문화적 상징

-조선 민화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비교를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의 학회 PT 자료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지윤 (자료 넘겨 보여주며. 소곤소곤) 슬라이드 자료는 소재별로 정리해 넣었습니다. 왼쪽의 조선 민화 먼저 설명하시고 오른쪽 정물화로 넘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징에 대한 키워드는 그림 측면에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날 겁니다. 피티 넘기는 건 직접 하시겠어요?

민교수 응(끄덕끄덕)대본은?

지윤 (스크립트 민교수에게 보여주며)여깄습니다, 읽어보시고 수정할 부분 있으심(하는데)

민교수 칼라랑 디자인 왜이래!

지윤 (조심스럽게)아... 교수님께서 컨펌 하신건데요?(하는데)

민교수 (아주 싸늘하게)그래서?

지윤 (당황)고치겠습니다.

동 화장실 옆 복도(낮)

지윤 (화장실 옆 콘센트에 노트북 충전하면서 쪼그려 앉아 PT자료 수정중)

민교수 (화장실 가려다가 지윤 발견 불쾌하다)뭐하나, 여기서!

지윤 (놀라 벌떡 일어서려다 노트북 챙기느라 엉거주춤)밧데리가 없어서... 이코노미석엔 콘센트가 없습니다.

민교수 (못마땅하다)

지윤 (얼른 노트북 화면 민교수 앞에 내밀며)이렇게 고쳐봤는데..어떠세요?

민교수 (성의없이 건성 보고)됐네.

지윤 네.(노트북 코드 뽑고 챙기는 동안)

민교수 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고)

볼로냐 풍경 몽타주(낮)

그림같이 아름다운 볼로냐 시내 풍경들...

두 개의 탑..

마조레 광장..

넵튠의 분수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

탑에서 바라본 산페드로 성당

볼로냐 대학 풍경

피엘라 거리의 작은 창(작은 운하가 있는 거리 이름) 등등.....

볼로냐 호텔 로비(낮)

민교수 로비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있고

동 카운터(낮)

지윤, 민교수와 자기 여권 들고 체크인 하고 있는데

피터교수(동양미술사 저자, 예일대 교수)와서 나란히 선다.

지윤, 피터를 알아보고 반갑고 설레는데...

피터, 여권을 꺼내다 실수로 펜을 떨어뜨린다.

지윤 (얼른 펜을 주워주면)히어.

피터 (함박웃음)감사합니다.

지윤 (놀라)어머, 한국말?

피터 아내가 한국 입양아입니다. 아내랑 같이 배워요. 아직 잘 못해요.

지윤 (웃으며)잘 하시는데요!

지윤 혹시 사인 해주실 수 있을까요?(정중하게 책 앞장을 펼쳐 내밀면)

피터 물론. (책에 사인을 해주며)이름이?

지윤 (영어)지윤, 지윤 서. Ji Yoon(알파벳으로 한자씩 또박또박 말해주는데)

피터 (사인해주다)오!(사인하던 펜으로 자기 이마 톡톡하며)나, 당신 알아요!

지윤 (의아하다)네?

피터 (사인한 책 돌려주면서)유튜브에서 봤어요. <금강산도>... 그거 진짜 맞아요? 난 좀 이상해요...

지윤 아? (난감하게 민교수 쪽 퍼뜩 돌아보는데)

동 로비 일각(낮)

피터를 발견, 반갑게 다가오던 민교수, 대화 듣고 멈춰 선다.

얼굴 일그러진다, 몹시 불쾌하다!

동 카운터(낮)

지윤 (민교수 의식하며 난감해 절절매는 동안)......!

피터 Whats wrong is wrong! 아닌 건 아닌 거죠. <금강산도>, (고개 절레절레 저으며)많이 이상해요. 다시 연구해야 합니다.(하는 동안)

민교수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 순식간에 확 바꾸며 아주 반갑게 와서)피터!

피터 오우, 프로페서 민!

민교수 롱 타임 노 씨!(아주 반갑게 피터와 악수한다)

지윤 (죄인처럼 쩔쩔매며 살짝 일각으로 빠진다)......!

유튜브 영상(낮, 지윤 시선)

농성중인 시간강사들 모습과

지윤의 발언을 악마의 편집으로 잘라 만든 영상이다.

소신 있게 을 편을 든 정의로운 존재 지윤과 상현 VS

갑의 대명사인 민교수와 재벌 선진 그룹, 갤러리 선을

갑과 을의 대결 식으로 희화화 한 패러디 물이다.

재벌 관장의 핸드백을 들고 졸졸 따라다니며 발뒤꿈치라도 핥을 배부른 돼지로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된 민교수......

동 로비 구석 일각(낮)

일각에서 핸드폰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지윤, 얼굴이 샛노래진다.

핸드폰 종료시키며

지윤 (충격)어떡해애!!!

동 로비 남자화장실(낮)

민교수 (핸드폰)조교라는 것들이 이런 거 하나 체크 못하고! (노발대발 난리났다)니들 싸그리 몽땅 짤릴 줄 알어!!!

남자 (외국인. 소변 보면서 이상하게 돌아보는 동안)

민교수 (뚜껑 열릴 지경)이런...!(화가 치솟아 얼굴 시뻘겋다 못해 검붉다.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통화 대기음

민교수 (씩씩 핸드폰 보면, 갤러리 선 관장님. 얼른 호흡 수습하고)관장님!(하는데

관장 (반화면. 아주 싸늘하게)뭐하자는 겁니까!

민교수 (핸드폰, 절절매며 호탕한 척)아무 것도 아닙니다... 애들 장난이예요. 노이즈 마케팅 측면으로도(하는데)

관장F (반화면. O.L의 느낌. 싸늘)됐구요! 당장 수습하세욧!

민교수 (핸드폰, 진땀 난다)걱정마십시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관장 (싸늘하게 아웃되고)

민교수 (핸드폰 끊으며 분노로 휙 돌아본다)......!

동 호텔 엘리베이터 안(낮)

민교수, 싸늘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지경!

크게 위축된 지윤, 몇 발 뒤에 찌그러져 있다

승강기 안을 덮은 폭발 일보 직전의 부글부글한 분노의 침묵을 깨며

지윤 (조심스럽게)6시에 공식 리셉션 시작입니다. 5시 40분 까지만 내려오심 됩니다. 가방 안에 비타민이랑 참가자들 나눠줄 선물 있습니다. 혹시 몰라 햇반이랑 매실 고추장 소고기 볶음도 준비했어요...

민교수 (터질락 말락 씩씩)......!

지윤 (일정표 내밀며 조심스럽게)여기 일정표(하는 순간)

엘리베이터 도착음

민교수 (일정표를 휙 낚아채서 싸늘하게 내려버린다)

지윤 ......!

지윤호텔방(낮)

테이블에 이멜 갓 전송한 노트북 화면 열린 채 놓여 있고

초조한 지윤, 핸드폰 들고 서성서성하며 빠른 말투로 혜정과 통화중

지윤 (핸드폰)게시중단 요청 보내놨지 당연히!

혜정 (반화면)유빈아빠가 유튜브 근무하는 친구한테 연락해본다 했으니까 기다려보자. 안 그래도 골치 아픈데 웬일이라니 대체!

지윤 (핸드폰)그래 부탁할게. 고마워.

혜정 (아웃되고)

지윤 (시계 보면 벌써 4시다)어머!

지윤, 리셉션을 위해 준비해 온 우아한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등 지퍼 반쯤 올리다 말고

가방 열어 화장파우치 찾는데...

없다!

지윤 헐! 화장품 파우치가...?!(완전히 뒤집어서 쏟아놓고 찾아보는데도 없다)어디루 간 거야?? (기막혀서)빼놓고 온 거야? 미쳤나봐. 어떡해, 어떡해!(거울속 맨얼굴 들여다보고는 드레스 지퍼 급히 마저 올리며 클러치 들고 뛰어나가다 다시 돌아와 구두로 갈아 신고 뛰어나간다)

동 호텔 로비 여성화장실(낮)

이태리 미녀, 파우치 앞에 놓고 정교하게 화장 고치는 중이다.

지윤, 옆에서 아주 간절한 눈빛 약간 비굴하게 사인 보내고 있다.

미녀, 마스카라 바르다 말고 거슬리는 듯 지윤을 힐끗 보면...?

지윤 (더듬더듬 간단 이태리어+영어로)혹시 립스틱을 좀 빌려줄 수 없을까? 깜빡 잊어먹고 화장품 파우치를 통째로 집에 놓고 왔어. 파티 시간이 임박한테 (클러치에서 작은 에센스병 꺼내 보이며)가진 건 이거 하나 밖에 없어.

미녀 (좀 싫은 듯)

지윤 (영어+이태리어+한국어. 마구마구 오버해서)바람난 전 남친이 약혼녀랑 같이 파티장에 와있어. 이게 얼마나 큰 재앙인지 이해할 수 있지?

미녀 (깜짝 놀라, 여자끼리의 동지의식으로 요란한 제스쳐. 지윤 안고 토닥여 응원하며 화장품 파우치 아예 쏟아서 분과 립스틱, 마스카라, 향수까지 다 내밀면)

지윤 (한국어)복 받을 거야. 고마워! 그라치에!(포옹하고 에센스병 쥐어주며)잇츠 마이 프레젠트!

동 호텔 연회장(낮)

지윤, 들어서서 둘러보면

민교수, 피터와 몇몇 교수들과 환담중이다.

다른 외국 교수는 핸드폰으로 영상촬영하며 파티장 스케치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데(이 영상촬영분 배경속 민교수와 지윤의 대화가 나중에 지윤에게 유리한 증거로 쓰일 예정)

지윤 (다가가)교수님(하는데)

민교수 (돌아보더니 싸늘하고 거만하게)가서 칫솔이랑 양말 사와.

지윤 네...?

피터 (의아하다)......?

민교수 (싸늘)못 알아들어?(씹듯이)칫,솔!양,말! 필립스 전동 칫솔 6923모델로!

지윤 지금...당장... 말인가요?

민교수 어!!!(왜 여러 번 말을 시켜!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로)지, 금, 당, 장!

지윤 ......알겠습니다. (의아하지만 돌아선다)

대형 마트(쿱마트) 계산대 앞(낮)

지윤, 전동 칫솔과 치약, 남자 양말 등을 계산하고 있는데

카톡 도착음

지윤, 핸드폰 열어보면

정희E 지윤아!

지윤 (계산 마친 쇼핑백 들고 나오면서 급히 카톡 보내며 나간다)

정희E 학회 잘 마치구 와! 나두 맘 단단히 먹을테니, 이럴 때일수록 힘 합쳐서 잘 이겨내보자. 파이팅이다?!

지윤E (문자를 치는)네 어머니. 식사 잘 챙겨드시구요!

동 연회장 입구(낮)

지윤, 쇼핑백 들고 들어오면

민교수, 피터를 비롯한 외국 교수들과 단체 기념사진 촬영 중이다.

지윤, 어정쩡 입국에 대기해있다...

(민교수와 다른 교수들 단체사진 가장자리에 쇼핑백 든 지윤 조그맣게 잡히도록. 후에 이 사진이 지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지윤 (촬영 끝나자 민교수에게 가서)양말3개랑 말씀하신 전동 칫솔이요. 혹시 몰라 치약도 샀습니다.

민교수 (지윤을 냉랭하게 돌아보며, 귓속말하듯)꺼져!

지윤 (의아해서)네?

민교수 내눈앞에서 사라지라구! 가서 솥뚜껑 운전이나 햇!!!

지유 (몹시 당황, 떨리는 목소리로)교수님!(하는데)

민교수 (귓속말. 또박또박 씹듯이)상황 판단 그렇게 안 되니?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지윤 교수님!!!(창백해지는데)

민교수 전공 바꿔라, 좋은 말로 할 때! 다시는 나타나지 마! 이 바닥에 얼씬도 못하게 꽉꽉 밟아줄 테니까!!

지윤 (머리가 하얘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민교수 (악마같은 비웃음, 칵테일 홀짝이며 돌아서 간다)

지윤 (충격으로 파랗게 질린 채)......!

민교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칵테일잔 집어들고 파티에 합류 호탕하게 웃으며 즐기고 있다)

지윤 (멍하게 남겨진 것을)......!

피터 (일각에서 의아하게 돌아보고)...?!

동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낮)

창백한 지윤, 멍한 채로 엘리베이터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웨이터가 음료 카트를 밀고 와

연회장 문을 열고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그 찰나의 순간, 열린 문틈으로

민교수를 비롯, 학회 참가자들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 돌아보는데......

지윤만 빼고, 세상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것만 같다.

슬로우로 천천히 닫히는 연회장 문을 보면서 ,

그렇게 자기 인생의 문도 함께 닫히는 기분인데......!

동 지윤방 앞(낮)

창백한 지윤 걸어오고 있는데

방 문 열려 있고

복도에 지윤 가방이 나와 있다.

지윤 (의아하다)뭐야 이게?(급히 방 쪽으로)

동 로비 카운터(낮)

지윤, 영어로 격렬하게 항의중이다.

지윤 (영어)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거에요? 전 체크 아웃한 적이 없다구요!

직원 (난 내 할일을 했을 뿐, 영어)예약하신 분이 취소했는데,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죠?

지윤 (영어)그럼 제 이름으로 결제할게요!

직원 (안타깝다는듯 제스추어, 영어)어쩌죠? 지금 빈 방이 없는데...

몽타주(낮)

드레스 차림 지윤, 여행 가방 한 개를 질질 끌고 넋 나간 표정으로

볼로냐 거리를 헤매고 있다.

발길 닫는 데로 걷고... 또 걷는다......

눈물이 난다!

눈물 훔치며 뉘엿뉘엿 해가 지도록

볼로냐 구석구석 아름다운 거리 곳곳을

그 아름다움을 하나도 느끼지 못 한 채 허깨비처럼 헤매고 있다...

파리한 지윤, 넋이 나가 그렇게 헤매 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이태리 남자들, 지윤 뒤를 줄줄 따르며

남자1 (입술에 손가락 모으고 쪽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쫙 펴는 행동(beautiful) 혹은 기타 요란한 바디 랭귀지와 휘파람, 이태리어)아벨라...!

남자2 (이태리어)까리나(귀엽다)...! 우리랑 같이 와인 마시러 가지 않을래?

지윤 (그런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를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고 발밑이 꺼지는 느낌인데......)

두 개의 탑 전망대(낮)

산 페드로 성당과 볼로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

드레스 자락 바람에 휘날리며 멍하니 서 있는 지윤,

온통 머릿속이 새하얗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지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참담하고 비참한데)

핸드폰 울리고

지윤 (핸드폰, 꽉 잠긴 목소리로)여보세요.(하는데)

혜정 (반화면, 쏟아 붓듯이)어떻게 된거야? 너, 연구원 해직되고 시간강사 자리까지 다 짤렸대! 게시판에 강사 교체 공고까지 올라왔어!

지윤 (핸드폰, 깜짝 놀라)뭐?!

혜정 (반화면)거기서 뭔 일 있었던건데? 학회 참석 안하고 술 먹고 쇼핑하고 숙소 이탈까지 했다고 민교수 전화해 펄펄 뛰고 난릴 쳤대. 나라 망신이니 당장 짜르라고!!!

지윤 (핸드폰, 분노로)말도 안 돼!!!

혜정 (반화면, 씩씩)민학장 이 인간, 작정 하고 거덜 내겠다 달려든 거야!

지윤 (핸드폰, 숨이 막힐 듯한 충격이다)헉......!

혜정 (반화면)그놈의 금강산도 때문이지? 그렇지?

지윤 (핸드폰)허......!

혜정F 아후! 치사하고 야비한 자식! 제자마다 빨대 꽂아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던져 버린, 벼락 맞을 자식이야 그거! 그 인간 내세운 금강산도, 가짜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답이 안 나오는 싸움이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구!

지윤 (핸드폰, 충격으로)말도 안 돼. 말도 안 돼애!!!

해자 일각(낮)

패닉 상태의 지윤, 흐느끼며 여행가방 끌고 걸어오는데

거지같은 가방이 또 말썽, 속을 뒤집는다.

지퍼 열어젖히면 팩소주 몇 개, 민교수 책도 여러 권이다.

지윤, 책과 팩소주를 해자에 내던지며 울부짖는다.

지윤 거지같은 자식! 죽도록 부려먹느라 5년 씩 박사 안주고 뺑이 돌릴 때도 끽소리 한번 안했어! 입에 혀처럼 그 수발 다 들어줬구! (책 던지며)이 책도 내가 다 썼다구! 자료조사, 교정까지 내 손 안 거친 게 없어!!! 흑흑 (팩소주 던지며)더럽게 까탈스런 그 입맛 맞춰 팩소주에 고추장 볶고 햇반에 컵라면에...... 야아아아! 이 거지 발싸개 같은 자식아아!!!(켜켜이 쌓아 놓은 울분을 모두 토해낸다)철 바뀔 때마다 니집 된장, 고추장, 김장까지 몽땅 해다 바치고... 흑흑흑...!!! 엉엉엉!!!

남자3 (이태리어)이쁜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자4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과 제스츄어, 이태리어)내가 위로해줄까? 우리 같이 맛있는거 먹으면서 기분 풀자...!

그러거나 말거나 지윤 가방 안의 모든 것들을 해자에 쏟아 붓고는

마지막 남은 팩소주 하나까지 던지려다 말고

빨대 꽂아 쪽쪽 마시다

성에 안차는지, 박력 있게 북 뜯어서

원샷으로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남자3 (놀랍다는듯 제스츄어 취하며, 이태리어)그거 혹시 술 아니야? 이쁜이가 술도 잘 마시는데!

남자4 (이태리어)나는 술 잘 마시는 여자가 좋더라!

남자3 (이태리어)너두? 나두...!

그러거나 말거나 눈물범벅 립스틱 번진 입가를 손등으로 쓱 닦고

씩씩대며 돌아선다.

일각 한 여행객 핸드폰으로 지윤의 모습 찍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여행객.

해자(垓字) 옆 고서점 거리(낮)

지치고 불행한 지윤,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큰 가방은 해자에 버렸기 때문에

옷가지와 노트북 쑤셔 넣은 핸드백만 메고 있다.

구두 신고 온 종일 헤매 다녀 발이 몹시 아프다.

절뚝절뚝대다가... 일각에 세워져있던 아이스크림 트럭을 살짝 짚으며

한 쪽 구두 살짝 벗어 아픈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쉬게 하는 순간

아줌마 (뚱뚱한 이태리 아줌마, 수레에 뭔가를 가득 싣고 바삐 지나가며, 이태리어)비켜 비켜!

지윤, 피할 새도 없이 뚱뚱한 이태리 아줌마랑 부딪치는 바람에

고서점 박스를 뒤 엎으면서 휘청 넘어질 뻔 하는 걸

서점주인 아저씨가 얼른 잡아준다.

박스만 떨어져 책들 길바닥에 나뒹굴고

주인아저씨, 뚱뚱 아줌마 향해 요란한 손동작으로 격렬히 항의하고

뚱뚱 아줌마, 지지 않고 뭐라뭐라 시끄럽게 대들다가 가버리는 사이

지친 지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책들을 주워 담는다.

한자책 맨 뒤 겉면에 묻은 물 얼룩 퍼져나가면서 시에스타 디루나(달의 낮잠)시에부분 살짝 신비롭게 글씨 드러나지만 모르는 채

주인 남자와 함께 떨어진 책들을 주워 모으느라 여념 없다.

지윤 (영어)미안합니다...

주인 (이태리어)괜찮다, 아벨라만 안 다쳤으면 됐다

지윤 쏘리.(나뒹구는 헌책들을 같이 주워 담다가, 길바닥 물에 떨어져 젖은 책들 중에서 와인 얼룩이 엉겨 붙은 낡은 한문책의 일부분(수진방 일기 후반부 반쪽만 발견)미안해요. 이거 전부 살게요.(벗겨진 구두 신으며)

주인 (이태리어)안 그래도 되는데...... 이쁜이니까 특별히 싸게 줄게.

지윤 (10유로를 내밀고)

주인 (한자책과 젖은 책 두 권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주면서 지윤 손등에 키스)웃어요 예쁜이. 여긴 이탈리아야. 누가 알아, 깜짝 놀랄 행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지윤 (받으며 마지못해 웃어주지만, 슬픈 미소다)그라치에......

아주 허름한 호텔방(밤)

클러치백과 비닐 쇼핑백이 침대 맡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고

E하얀 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지윤, 작게 흐느끼는 소리...

망망대해 일엽편주로 허망하게 떠있는 기분,

몹시 절망스러운데......

핸드폰 벨소리......

시트 밑에서 손만 나와 머리 맡 클러치백 더듬는 동안 계속

핸드폰 벨소리 끈질기게 울리고......

더듬는 지윤 손길에 클러치백과 비닐 쇼핑백이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핸드폰과 젖은 책들 떨어져 내린다.

시트 젖히고 눈물 젖은 얼굴로 일어선 지윤,

핸드폰을 받으려는데 끊기고

문자도착음.

보면 민석에게서 온 문자다.

민석E 은수랑 엄마 부탁한다. 다시 연락할게!

지윤 (황급히 재발신 눌러보지만)

수신할 수 없는 번호라는 알 수 없는 영어 안내만 나온다.

지윤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너만 힘드냐! 결혼하면 공부만 하게 해준다며어! 이게뭐야아! 이, 이기적인 자식아! (포효하는데)

E 쿵! 쿵!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 투덜대며 벽을 치는 소리)

지윤 (핸드폰 내려놓고)납-뿐 자식!(눈물 훔치며 씩씩, 핸드폰 끊고 돌아서다가... 바닥에 떨어진 책들 대충 집어 들어 테이블에 올리다가, 한문책에서 눈으로 쏙 들어오는 金剛山圖(금강산도)네 글자......!(놀라)금강산도......??(의아하다. 침대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그 부분 문장을 손가락으로 한 글자 씩 짚어 가며 중얼중얼 읽기 시작하는데)......

금강산(낮, 과거)

경치 좋은 금강산 일각.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더미 속으로

미련 없이 던져 넣어지는 산수화, 초충도, 이겸의 초상화 등등......

마지막으로 <금강산도>가 불 속으로 던져 넣어진다.

유려한 푸른색의 금강산도...

그림 맨 끝 쪽에 이겸과 사임당의 첨시(添詩)와 이겸의 비익조 인장...

그 유려한 푸른색에 불이 옮겨 붙어 사라지려 하는데...

지윤E (아주 더듬 더듬)여역...투...치... 금강산도...어화...염...중... 불고이,,,이별의성군이귀의. 기삼일간. 사지흔적...도몰지 여주면지 월지은지의.... 금강산도조차 불속에 던져버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 그를 떠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사흘은 낮잠 자는 달이 모습을 숨기듯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울부짖으며 달려와 불구덩이 속 그림들을 꺼내려 몸부림치는 이겸!

그런 이겸을 뒤로 한 채

미련 없이 돌아서 산을 내려가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

이겸, 필사적으로 불구덩이 속에서

금강산도를 꺼내려한다.

타들어가던 금강산도 일부와 산수화 한점을 간신히 구해서

가슴에 끌어안고 털썩 무릎으로 앉으며

으아아아......!

하늘 향해 울부짖고 있다......

그런 이겸 뒤로

점처럼 멀어져가는 여인의 아스라한 뒷모습......

(이 씬의 여인(사임당) 얼굴은 안보이게)

볼로냐 지윤 호텔방(밤. 현실)

노트북 화면에 네어버 한자사전 켜져 있고

반쪽 한문책, 엎어진 채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달빛이 신비롭게 테이블 위를 비추자 한문책 뒤표지 하단에서

시에스타 디루나글자와 문장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지윤 (창밖 볼로냐 경치 내려다보며 골똘히)금강산도...? 겸재...? 단원...? 아니면 설마... 안견?(아주 혼란스런 표정으로 한문책을 돌아보는데) 안견 금강산도...?!!

달빛받은 책뒷면에서 돋아오른 씨에스타디루나 고어체와 문장(가문 상징)......!

돌아서서 테이블 쪽으로 와서 다시 한문책을 집어 들려던 지윤,

그제야 시에스타 디루나글자와 문장을 발견하고 놀라서

지윤 (혼잣말)씨에스타... 디루나? 달의... 낮잠? 이런게 원래 써있었었나?

(혼란스럽고 이상한 듯 급히 한문책 여기저기를 다시 살핀다)

몽타주(낮, 이튿날)

아주 절박한 지윤, 투스카니 시골 여기저기를 다니며

한문책의 시에스타 디루나부분을 내밀며 이곳을 아는지 수소문중.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멋진 이태리 할아버지들...

체스를 두는 여유로운 할배들,

시골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등등 주로 나이든 사람들에게 묻고 있지만

지윤 (이태리어)시에스타 디루나를 찾고 있는데요...

할머니 (귀가 잘 안들리는듯 고개 갸웃하며 큰 목소리로, 이태리어)뭐라고?

지윤 (옆의 할아버지에게, 이태리어)시에스타 디루나요!

할아1 (할머니 보며 뭐라는지 모겠다는듯, 이태리어)뭐라는거지?

할머니 (역시 모르겠다는듯, 이태리어)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어!

그래도 지윤,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찾아 헤매는 중이다.

투스카니 마을 광장 부동산 소개소 앞(낮)

크게 실망한 지윤, 터덜터덜 허탈하게 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가게 앞에 붙어있는 매물 정보를 보고 크게 놀란다.

펜화로 그려진 낡은 집그림 앞에 시에스타 디루나’ 글씨 선명하다.

지윤 (놀라)씨에스타 디루나!!! (표정 점점 환해지면서)시에스타 디루나!!!

트럭안(낮, 투스카니 들판을 달리고 있는 트럭)

농부 (운전하면서 아주 유쾌하게)시에스타 디루나!

지윤 (희망차게)시에스타 디루나!

투스카니 벌판(낮)

너무나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인 그림같은 들판,

그 아름다운 길을 지윤을 태운 트럭이 달리고 있다.

운전석에는 사람 좋게 생긴 이태리 농부,

농부 (이상한듯, 이태리어)나도 가본적 있는데... 정말 좋은 곳이죠! 그런데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닌데, 거긴 어떻게 알고 있는거요? 이탈리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나봐요!

지윤 (알아듣지 못하고)시에스타 디루나...!(이 말만 반복하고 있다)

시에스타 디루나 앞(낮)

트럭에서 내린 지윤,

고택을 느낌으로 본다......

시에스타 디루나낡은 글씨와 문장이 덤불에 반 넘어 가려져 있다.

오래도록 비어 있던 집인 듯...

뭔가 묘하고... 신비스런 분위기다.

어지러운 관목 울타리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동 고택 현관 앞(낮)

지윤, 고풍스러운 문고리를 잡고 쿵쿵 두드려 본다.

인기척 없다...

다시 문고리를 쿵쿵 두드려 보는데...

이태리 할아버지, 마당 일각에서 땔감을 한아름 들고 오다가 지윤 봤다.

할아 (이태리어)누구?

지윤 (놀라 돌아보는데)......!

동 고택 안(낮)

콜콜콜 따라지는 빛깔 좋은 투스카니 와인 두잔...

할아버지, 일각에서 와인 따르는 동안

지윤, 한문책 든 가방 멘 채

홀린 듯 집 안 여기저기를 느낌으로 둘러보고 있다.

인기척 없이 텅 비어 있는

묘하게 환상적인 느낌의 낡은 저택.

뭔가 환상적이며 우아한 느낌이다......

동 살롱(낮)

바람에 휘날리는 낡은 커튼.

살롱 가득 들어차는 투스카니의 찬란한 햇빛.

살롱 바닥 하프시코드 놓여있던 자국......패여 있다.

플래시 백(낮, 과거 / 씬 3)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독주가 한창이다.

백작 가족과 손님들, 앉거나 혹은 서서 연주 감상하고 있는 모습 퍼뜩

동 살롱(낮, 현실)

지윤, 묘한 기시감이다......!

밖으로 나온다.

동 계단(낮)

2층으로 올라가는 지윤,

난간을 잡고 한 칸 한 칸 느낌 있게 천천히 계단 오르고

플래시백(낮, 과거 / 씬 1)

촛불 든 하인1, 앞장서 길을 밝히고,

음식 쟁반 든 하인2, 뒤따라 계단 오르고 있다.

동 계단 중간 대형거울 앞(낮)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와 거울 앞을 지나는 지윤,

씬 6에서 이겸의 화실로 나왔던 방으로 통하는 비밀문이 거울뒤에 있는 설정!

지윤, 뭔가 강렬한 느낌으로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는데...!

플래시백(낮, 과거 / 씬 5)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철릭 차림으로

수염이 덥수룩 초췌 창백한 이겸의 이글이글한 느낌 퍼뜩!

동 거울앞(낮, 현실)

지윤 (강렬한 느낌에 휘청하는데)......!

할아 (어느새 나타나 지윤 부축하며, 영어)괜찮아요 레이디?

지윤 (끄덕끄덕)아임 오케이. 잘 생각해 보세요! 뭐가 더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이태리어 앱 실행시켜 들려주고)

할아 (웃는, 이태리어)지치지도 않는 레이디네. 이 집은 우리 아버지 때부터 맡아서 관리하던 곳이야.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니까.(하는 사이)

지윤 (계단을 오르고)

동 회랑(낮)

깊이감 있는 텅 빈 긴 회랑.

할아버지, 거봐라 아무 것도 없다고 어깨 으쓱

그런데 지윤은 이 건물이 주는 아주 특별한 느낌에 매혹된다......!

천천히...

뭔가 안타깝고 애절한 느낌으로 회랑을 느낌으로 돌아보는데......!

순간,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라 지나간다!

엄마야! 지윤 깜짝 놀라 움츠리는 순간

와장창 아주 큰 소리

놀라 돌아보면, 계단 중간 벽에 걸려있던 거울이 떨어져 내려 박살나있다.

지윤, 깜짝 놀라고

할아버지, 급히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동 계단 깨진거울 앞

할아 (떨어져 내린 거울 보면서)이건 분명 길조야 길조!(아주 요란하게 제스처)

지윤 (뒤따라 와서 본다. 어리둥절 하는데)

할아 (아주 좋아하며)자 레이디! 좋은 날엔 축배를 들어야지. 어서 가자구. 마침 아주 좋은 와인이 있다오.(하며 지윤을 이끌려는데)

거울 걸렸던 자리에 낡은 나무문이 있다.

문 손잡이 쪽으로 작은 구멍 뚫려 있고 희미한 빛이 나온다.

지윤 잠깐만요!(홀린 듯 벽 뚫고 나온 희미한 빛을 따라가서 구멍 속 들여다보면)

동 구멍 안 공간(낮, 지윤 시선)

뿌연 어둠 속에 묘한 벽장이 열려 있고

그 속에 희미하게 미인도가 걸려있다......

동 방안(낮)

지윤 (한국어, 다급히)저 안에 뭐가 있어요!(할아버지 돌아보면)

할아 (의아한 듯 따라서 들여다보는데)......!

(시간경과)

닫혀 있던 비밀문 열리고

수백년 동안 닫혀있던 비밀의 방이 눈앞애 나타난다.

가구마다 흰 천 덮여 있고 수백년의 침묵으로 고요한 방안에

살짝 열려진 벽장 안에 걸려 있는 미인도 족자 한 점.

그 발치에는 작은 트렁크 하나.

지윤과 분위기가 매우 흡사한 미인도와 마주한

지윤과 할아버지, 경외감으로 얼어붙었다......

매혹된 듯 멍하게 미인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윤의 얼굴에서

- ST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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