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1회
1. 태국 방콕 도로 / 낮
이글대는 태양. 뜨거운 도로 위를 달리는 고급 세단. 말쑥한 수트 차림의 선우.
굳은 얼굴로 운전 중이다. 속도를 높여 달리는 선우의 차. (장일이 진노식 회장을 만나러 갔다는 걸 안 선우는, 장일이 모든 걸 끝내러 갔단 예감. 장일이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진회장이 있는 리조트로 가는 길이다)
2.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 / 낮
다양한 향신료와 낯선 약재들, 오래된 중국풍의 건물들로 빽빽한 거리. 오토바이와 택시, 사람들로 북적대고 시끄럽다.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 이장일, 걸어간다. 쓸쓸하고 건조한 표정. 소중한 걸 잃은 것 같은 눈빛. 사람들 속에 섞여 걷다가 건물과 건물 틈 으슥한 사잇길로 들어선다.
3.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 건물 / 낮
허름하고 칠 벗겨진 사무실. 천장에선 선풍기가 돌아간다. 장일, 서 있다. 팔뚝에 문신을 한 런닝셔츠 차림의 태국 남자, 작은 007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열어 보인다. 작은 권총이 들어있다. 장일, 돌돌 말린 달러 지폐뭉치를 탁자에 툭 던진다.
4. 태국 리조트 일각 / 어스름
장일, 걸어간다. 한발 한발 내딛어 가는 발걸음에서 슬픈 살기가 느껴진다.
어디론가 방향을 트는 발. 가는 곳을 잘 알고 있다. 한 손에 감싸 쥔 총이 살짝 보인다.
5. 태국 리조트 스위트 룸 / 어스름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선우. 텅 빈 방, 창문이 열려 커튼이 바람에 날린다. 깨끗이 정리돼 있는 장일의 방이다. 책상에 흰 봉투 하나가 놓여있다. ‘선우’ 라 쓰여진 봉투. 선우, 봉투에서 편지를 빼 읽어보다 바로 집어던지고 달려 나간다.
6. 리조트 일각 / 노을
휠체어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진노식 회장. 몸은 쇠잔해진 느낌이나 눈빛은 강하다. 재기를 노리는 맹수처럼. 옷차림도 고급스럽고 말쑥하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 진노식 회장 근처로 와 멈춰 선다. 이장일, 노식을 바라본다.
노식;(먼 곳 응시한 채)노을이 참 좋구나.
장일;.......
노식;근사하지 않니. 난 여기가 참 좋아.
장일;.....부러우세요?
노식;부럽다니.... 여긴 내꺼야.
장일;이젠 회장님 소유가 아니죠.
노식;말했잖아. 다시 찾아 놓으라고.
장일;(딱하다는 듯, 경멸하는 듯 픽 웃는다)
노식;모든 걸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 놓을거야. 난 포기란 게 없는 사람 이다.
장일;유서는 제가 써놨습니다.
노식, 그제서야 장일을 보면 권총을 겨누고 있다. 노식, 멈칫 하는 눈빛.
장일;제 것도, 회장님 것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노식;.......(기죽지 않는다. 장일을 빤히 보는)
장일;살아있는 한 당신은 끝없이 죄를 지을거야.
노식;(웃는)넌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장일;(총 겨눈 채 말없는)
노식;시궁창에서 탈출하고 싶어 쩔쩔매는 모습이...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거든. 너한테 사다리를 놔 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었구나.
장일;피 묻은 사다리인 줄 몰랐습니다.
노식;알았으면 포기했겠나.
장일;..............
노식;넌 처음부터 알았어. 피 묻은 사다린 걸 알고도 올라섰어.
그래서 난 니가 맘에 들었다. 비열한 놈이라서. (웃어보이는)
장일;(울컥하는. 한발 가까이 다가와)안녕히 가십시오. 진노식 회장님.
선우(E);장일아!
장일;!! (뜻밖의)
장일, 돌아보지 않은 채 노식을 겨누고만 있다.
장일;잘 왔어, 김선우..... 좋은 구경하고 가라.
선우;장일아. 이제 그만 하자.
장일;김선우가 회장님 아들이었음 얼마나 좋았을까요..
참 안돼셨습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 큭큭)
노식;..... 니 애비를 닮아서 어리석구나.
장일;(총의 해머를 뒤로 젖히며)예, 맞습니다. 난 지금 당신한테 던질
뜨거운 석탄을 잡았어요. 내 손이 먼저 탈테니까 어리석죠. 그래도
당신 그 독사 같은 눈알에 시뻘건 석탄을 쑤셔 박을 겁니다.
노식;(지지 않고 노려보는데)
장일,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선우 노식 앞에 다가서 가로 막는다. 장일, 멈칫. 그러나 독이 오른 듯 선우에게 한발 다가와 이마에 총을 겨눈다.
선우;.............
선우, 긴장의 눈빛. 그러나 이내 풀고 엷은 미소. 눈물이 살짝 어리는 눈으로 장일을 바라본다. 쏘라는 눈빛. 장일, 선우의 그 눈빛이 아프고 자존심 상한다. (선우는
장일에 대한 측은지심이 깊다. 장일을 인간적으로 불쌍해하고 사랑한다)
장일;................
두 사람, 서로를 마주보는 눈빛. 오래 전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되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장일,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갖다 댄다. 선우, 장일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어 덮치는데서 ‘탕’ 하는 총소리........
7. 여수의 한 고등학교 일각/ 아침
학교 뒤편 담벼락, 가방을 든 남학생 가뿐하게 뛰어내린다. 학교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데 담벼락에 ‘김선우 kill’ 빨간 락카로 쓰여진 낙서. 낙서를 보고 픽 웃고 걸어가는 낙천적이고 유쾌한 발걸음. 명찰엔 ‘김선우’. 선우, 걸어가는 앞으로 나타나는 세 사람. 금줄과 똘마니1,2. 금줄, 교복 셔츠 밖으로 금목걸이를 한 줄 걸었다.
선우;(아무렇지 않게)시험공부 많이 했냐? (가는데)
금줄;(막아서며)땡보 형님 뜬댄다. 오늘. 학교로.
선우;(무관심)그래서.
금줄;너 한번 데려와라 나한테 주문한 게 안 먹혀서 직접 오시는 거 같은 데..... 내 체면이 뭐가 되냐.
똘마니1;(손가락 뚫린 가죽 장갑 한 짝을 공손히 건넨다)
금줄;(장갑을 한 쪽 손에 끼며)나도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 드려야지.
선우;시험 보는 데 지장 있음 나 불쾌한데.
금줄;(푹 웃는)니가 언제 시험이랑 상관있었냐?
선우;담에 보자.
선우, 무시하고 가는데 금줄 허리 뒷춤에 차고 있던 쌍절곤을 꺼내들고 선우에게 달려간다. 선우, 뒤에서 달려오는 금줄을 잽싸게 피해 주먹을 휙 날리고 이 위로 터질 듯한 박수소리.
8. 교실 / 아침
남녀 합반이나 남학생 수가 좀 더 많다. 이장일, 교탁에 나와 담임 앞에 서있다. 상장을 읽는 담임(50대 남자).
담임;이장일. 위의 사람은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에 이에 표창함. (장일에게 상을 건네며)다시 한번 박수!
학생들 박수치고. 장일, 미소 지으며 상을 받고 자리로 들어와 앉는다.
담임;오늘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 열심히 해서 우리 반이 1등 한 번...
(해 보자)....
이때 드르륵 뒷문 열리는 소리. 아이들 뒤돌아보면 옷매무새가 조금 구겨진 김선우, 들어서며 담임한테 머쓱하게 인사한다. 장일도 뒤돌아봤다가 관심 없다는 듯 고개 돌린다. 두 사람은 같은 반이지만 한 번도 얘기 안 해 본 사이.
담임;김선우 저거, 이장일 발끝도 못 따라가는 놈... 이번에도 반 평균
깎아 먹기만 해봐.
선우, 듣는 둥 마는 둥. 장일 근처의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담임 못마땅하게 혀를 쯔쯔차다가 시선 거두고
담임;다들 시험기간 동안 최선을 다한다. 알았나?
학생들; 네!
9. 학교 복도 / 낮
빈 복도. 조용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폭력배 느낌의 사내 세 명,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간다. 땡보와 불량배1, 2다. (금줄의 똘마니1,2와는 다름) 한 교실 복도 창으로 눈가가 벌겋고 입술 터지고 코에 솜을 틀어박은 금줄, 내다본다. 금줄 머리 위를 강타하는 선생의 몽둥이. 금줄 머리 아래로 푹 사라진다. 땡보와 깡패들 금줄의 교실을 스쳐 지나간다.
10. 교실 / 낮
영어 시험 중인 학생들. 장일, 거침없이 쓱쓱 답을 체크하며 문제를 풀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 선우, 긴 문장에 줄을 치며 해석하느라 애쓰고 있다. 머리 아픈 듯 벅벅 긁기도 하고... 나름 열심히 풀고 있다. 시험 감독은 젊은 여선생, 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다. 장일, 거침없이 자신감 있게 문제 풀어간다.
교실 앞 문, 위협적으로 드르륵 열린다. 깡패들 셋 들어온다. 아이들 놀라 깡패를 보고는 선우를 쳐다본다.
선우;......... (진짜 왔네 싶은)
땡보;이장일 어딨어.
장일;(시험지에 시선 둔 채)!!
선우; ??
땡보;이장일 앞으로 나와.
학생들, 의외라는 듯 장일을 돌아본다. 선우도 멀뚱한 표정으로 장일을 본다. 장일은 시험지만 보고 있다.
여선생;지금 시험시간입니다. 나가주세요.
땡보;지금 나오면 곱게 데려가고, 우리가 찾아낼 때까지 버티면 코뼈가
주저앉아서 가게 된다.
여선생;이보세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깡패1, 다가와 여선생을 잡고 교실 문 밖으로 밀친 후 교실 문을 쾅 닫는다. 장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땡보, 두리번거리며 장일에게 다가간다. 답안지에 쓴 이름을 보는 땡보.
땡보;너구나, 이장일이가.
장일;(쏘아보는데)
땡보;(멱살을 잡아)느이 아버지 어딨어.
장일;이거 놔.
땡보;니 애비가 우리 돈 갚을 때까지, 넌 우리랑 있는다. 나와.
땡보, 장일을 거칠게 일으켜 세워 끌어낸다. 장일, 땡보를 한 대 친다. 땡보, 웃긴다는 듯 장일을 세게 한 대 갈기자 장일, 몇 걸음 비틀해 선우 책상으로 퍽 쓰러진다.
선우;.........
깡패1,2 장일을 얼른 일으켜 우왁스럽게 끌고 나간다. 땡보 그 뒤를 따라나가며 교실 문을 쾅 닫고. 학생들, 다시 시험지로. 선우도 다시 시험지로 시선을 돌리려다 연필을 던지고 일어서 나간다.
11. 학교 복도 계단 / 낮
끌려가는 장일. 선우, 뒤에서 날아와 옆차기로 장일을 끌고 가는 깡패를 걷어찬다. 쓰러지는 깡패2.
장일;(놀라 돌아보고)!
땡보;(선우를 본다)이 새낀 또 뭐야.
선우;(감정없이 건조하게)쟤랑 같은 반.
땡보;......(선우를 빤히 보고 명찰로 시선)니가 그 유명한 김선우구나.
선우;쟤 여기 전교 1등이야. 시험은 보게 해줘라.
깡패1, 달려들어 선우를 치는데 선우 날렵하게 피하고 깡패1의 팔을 꺾는다.
깡패2;(아파서)아..... 아.....
선우;쟤네 아버지가 빌린 돈을 왜 여기 와서 따지냐. 무식한 놈들아.
선우, 깡패 2의 팔을 한 번 더 꺾어 밀쳐 넘어뜨린다. 땡보와 깡패2, 선우에게 달려든다. 선우, 2대 1로 싸운다. 선우, 피하고 때리고 능수능란하다.
장일;.......
쓰러져 있던 깡패2도 일어나 싸움에 가세. 1대 3의 싸움. 선우, 계단 난간을 잡고날아 다니듯 몸을 가누며 셋을 팬다.
장일;.........(갈등하는.......주먹도 움찔...)
장일, 싸움을 보다 고개를 돌려 교실 쪽으로 걸어간다. 뒤에선 퍽퍽 치고 깨지는 소리. 장일, 뒤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들어간다.
12. 교실 / 낮
장일, 책상으로 돌아와 앉는다. 학생들 힐끗 보곤 다시 문제 풀고. 장일, 조급하다. 시험지에 코를 박고 빠른 동작으로 체크하고 읽어 내려간다. 잠시 후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입가에 피가 맺힌 선우가 들어온다. 아무렇지 않게 피를 쓱 닦으며 장일 옆을 스쳐가는 선우.
장일;(시험지에만 시선, 옆을 지나가는 선우를 느낀다)..........
선우, 털썩 앉아 시험지 풀기 시작. 장일, 시험문제 다 풀었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 슬쩍 곁눈질로 선우 쪽을 본다. 장일, 선우가 보이도록 답안지를 옆으로 빼놓는다. 선우, 시험지를 다음 페이지로 뒤집다 시선이 문득 앞으로 머문다. 장일이 일부러 보라고 옆으로 빼놓는 답안지. 장일, 일부러 더 잘 보이게 비스듬히 들어 보인다.
선우;.............
장일, 선우가 보고 있나 슬쩍 돌아본다. 선우와 눈이 마주친다. 장일, 잘 보이게 계속 들고 있다. 선우, 답안지에서 시선 거두고 혼자 풀기 시작한다.
13. 동네 골목 / 낮
가방을 든 장일, 걸어온다.
선우(E);아까 뭐냐.
장일, 멈칫. 보면, 모퉁이에 선우가 서 있다. 불쾌한 표정.
선우;너 아까 뭐한거야.
장일;........
선우;답안지 일부러 보여준 거지.
장일;........아깐 고마웠다. 중간고사 끝날 때까지 보여줄게.
선우;(픽 하는 비웃음)
장일;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거 말곤 없잖아.
선우;내가 뭘 해 달랬는데.
장일;넌 아까 왜 따라 나왔니.
선우;그럼 보고만 있냐.
장일;그 놈들 또 올꺼야.
선우;그런데.
장일;도와주면 고맙겠다. 난 너한테 답안지를 보여줄게.
선우;죽든 말든 니가 상대해. 난 등수에 관심 없다. (간다)
14. 선우네 집 옥탑마당 / 초저녁
낡은 주택의 옥탑. 플라스틱 화분이지만 잘 자란 화초들 여러 개 늘어서 있고 평상이 있다. 다양한 아령과 줄넘기 벤치프레스 다이 놓여있다. 옥탑마당과 방 2개인 안채. 안채에선 경필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 ‘와하하하.... 내 아들 와....하하하....’
15. 선우 방 / 초저녁
소설책들이 많은 책장 ‘몽테크리스토 백작’ ‘모비딕’ ‘위대한 개츠비’ 등등.
경필과 선우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 여러 개 액자로 놓여있다. 성적표 들고 좋아서 하하하 웃고 있는 경필.
선우;(성적표 잡아채며)별로 오르지도 않았어요. 유난 떨지 마.
경필;맨날 싸움질만 하고 다녀서 애비 속을 시커멓게 만들더니
이제 마음잡았네. 아이구 기특한 놈. (껴안고 뽀뽀)
선우;으으...(밀쳐내며)자존심 건드리는 놈이 있어서 이번엔 교과서 좀
읽고 시험본거야.
경필;야... 그 놈 누군지 몰라도 고맙네. 다음엔 20등 안에 드는거다?
선우;아버지 닮아서 나 머리 나빠. 기대하지 마.
경필;내가 가방끈만 짧지 머리는 좋아.
선우;그럼 엄마 머리가 나빴나부지.
경필;느이 엄마 똑똑한 사람이었어. 그런 말 하지 마.
선우;둘 다 머리 좋음 난 누구 자식이야?
경필;나가자, 아버지가 갈비 사줄게.
선우;물건 받으러 간다면서. 늦겠다, 빨리 가봐.
경필;필요한 거 없어? 아버지가 다 사줄게.
선우;(귀찮아서)없어없어.
경필;일단 시내까지 같이 나가. 얼른! (겉옷을 들어 선우 얼굴에 던진다)
16. 동네 거리 / 초저녁
트럭 운전석에 타고 있는 경필과 조수석엔 껄렁하게 앉아있는 선우.
선우;오늘 가면 언제 와?
경필;이번엔 물량이 좀 많으니까.... 사나흘 걸릴 걸.
선우;우리 아지트에 가서 고기도 구워먹어야 하는데.
경필;이번 주말에 가자.
선우의 시선에 들어오는 차창 밖의 두 사람. 장일, 용배와 걸어가고 있는 모습. 트럭이 다가오자 장일, 용배의 팔을 잡아 차도에서 멀어지게 끈다. 차가 멀어져도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선우;저 사람이 아버진가.....?
경필;누구?
선우;우리 반에 재수 없는 놈 있어.
경필;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지내. 너 때문에 내가 주름이 자글자글해.
선우;내 걱정 하지 말구 아버진 큰 병원에나 가봐.
경필;아버지 말짱해.
선우;근데 왜 맨날 약봉지 끼고 살아. 아버지 병원 안가면 나도 학교
안가.
경필;알았어 알았어. 갈게.
선우;맨날 말만....
17. 거리 일각 / 초저녁
트럭 서 있고 선우, 내려서 운전석의 경필을 보고 서 있다.
경필;책 사고, 곰탕 한 그릇 뜨끈하게 먹고 가. 보통 말고 특으로 먹어.
곱빼기루. 집에 가선 과일도 꼭 먹구.
선우;아우 알았어요, 잔소리는....
경필;다녀오마.
선우;운전 조심해. 서울도착함 저녁 꼭 챙겨 먹구, 술 마시지 말구.
경필;알았다 이놈아. 니 잔소리가 더 심하다.
트럭 움직여 가고 선우, 열심히 손을 흔든다. 경필, 손 흔드는 선우를 백미러로 보며 애잔한 눈빛.
18. 거리 공중전화 / 밤
서 있는 트럭. 경필, 공중전화 부스에 수화기를 잡고 서 있다. 필사적이다. (경필은 간암 선고를 받았고, 믿기지 않아 재검사를 신청한 상태)
경필;진노식회장님과 꼭 좀 통화를 해야 합니다. 김경필이라고 전해드리 면 아실 겁니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벌써 여러 번 전화 드렸는데 요...
19. 호텔 연회장 / 밤
‘김영훈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포스터 붙어있는 로비. 책을 쌓아둔 접수대.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辰勝그룹 진노식’ 화환 제일 앞에 놓여있다. 진노식,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한다. 많은 사람들 진노식에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진주목걸이를 건
우아한 차림의 마희정, 노식 옆에서 우아하게 인사하고 있다. 차실장, 휴대폰(두툼한 구형)들고 노식 곁으로 온다. 악수하는 사람이 좀 빠지길 기다렸다가
차실장;회장님, 김경필이란 분이 계속 연락을 해오셨는데요.
노식;누구?
차실장;김경필이라고 하면 아실 꺼라고....
노식;........(떠오른다. 불편한 이름)
차실장;꼭 좀 통화를 해야겠다고 벌써 여러 차례 비서실로....
노식;.......연결해.
20. 거리 공중전화/ 밤
통화중인 경필.
경필;형님? 저 경필입니다. 김경필이요... 기억하시죠?
21. 호텔 소규모 연회장 / 밤
출판기념회장 옆 다른 소규모 연회장. 텅 비어있다. 노식 혼자 앉아서 핸드폰으로 통화중.
노식;기억하다마다.... 오랜만이구나.
경필;형님. 꼭 좀 만나주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노식;......그래 만나는 거야 뭐 어렵겠어.
경필;내일이라도 뵐 수 없을까요? 형님 편한 곳으로 제가 가겠습니다.
노식;(거부감 드는).....전화상으론 얘기하기 힘든가.
경필;......
노식;여보세요.
경필;형님 약혼녀 은애씨가 낳은 아이가 살아있습니다. 형님 아들이요.
노식;.........! (표정이 굳는다)
경필(F);출산 중에 은애씨는 죽었지만 아이는 살았어요. 형님! 듣고 계십 니까.
노식, 표정 굳어진다. 희정, 문 열고 들어와 손짓하는
희정;여보, 빨리 와요. 당신이 대표로 축사해 달래.
노식;(알았다는 손짓)
희정;빨리 와요. (문 닫고 나간다)
노식;다신 이 따위 전화 하지 마라. (끊는)
22. 곰탕 집 / 밤
책이 든 서점 봉투를 옆에 놓고 구석자리에서 신나게 맛나게 곰탕을 먹고 있는
선우. 선우가 앉은 뒷자리로 장일과 용배가 들어와 앉는다. 용배, 종업원에게
용배;곰탕 둘 주십쇼.
선우 뒤를 힐끗 돌아보는데 장일이 보인다. 아는 척 안하고 밥 먹는 선우.
곰탕이 온다. 용배, 고기를 건져 장일의 그릇에 넣어준다.
장일;아버지 많이 드세요.
용배;내 그릇에 고기가 더 왔어. 어여 먹자. 여기 소주 반병만 주쇼.
종업원 소주 반 병, 갖다놓는다. 용배, 소줏 잔에 술 따르며
용배;장일아, 선생님이 뭐래. 너 정도면 서울대 붙고도 남는대지?
장일;.....(표정 밝지 않고)
용배;서울로 대학가게 아버지가 열심히 벌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부자의 대화를 듣는 선우.
장일;아뇨. 여기서 장학금이랑 생활보조비 주는 데로 가는 게
저도 마음 편해요, 빚도 많은데.... 제 걱정은 마세요.
선우;(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먹던 것 멈추고 혼자 미소)
땡보와 깡패 1,2,3 곰탕집으로 들어온다. 깡패 3, 쇠꼬챙이를 부탄가스 토치로 달구고 있다. 파랗게 일어나는 불길. 장일, 얼굴이 굳는다.
땡보;어유, 우리 아버님. 곰탕 쳐드실 돈은 있으시네.
용배;나가서 얘기합시다. 예? 제발....
땡보;오늘은 그냥 못 가요.
장일;(단호한)제가 나중에 갚겠습니다. 이자의 이자까지 다 계산해 두세 요.
땡보;(소줏병을 들어 장일의 머리에 부으며)애비나 아들새끼나 주제를
몰라.
용배;이보쇼, 나가서 얘기합시다. 내 아들한테 이러지 마요.
선우;...........(조용히 있는)
땡보;지금 받아갑시다, 우리 돈.
용배;내... 내가 석달 내로.......
깡패1,2 용배의 양쪽 팔을 잡는다. 땡보, 용배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빼 열어본다. 카드는 없고 만 원짜리 20장정도 나온다.
땡보;이것 봐. 있으면서 안 갚는다니까.
용배;이번 달 우리 생활빕니다. (무릎꿇고 앉아 비는)제발 돌려주세요.
그건 우리 아들 책값입니다. 선생님 제발 돌려주세요. (고개 조아리 는)
장일;(수치스럽고 모욕감)그만하세요!
땡보;아버님 우릴 너무 우습게 보시는 것 같아.
땡보, 깡패 3이 달구고 있던 꼬챙이를 뺏어 무릎 꿇고 있는 용배에게 다가간다.
장일;무슨 짓이야. 그만 둬! 내가 갚는다니까.
깡패3, 장일의 두 팔을 뒤에서 잡아 움직일 수 없게 한다. 깡패1,2 용배의 팔을 양 쪽에서 잡는다. 땡보, 다가가 용배의 한 쪽 팔을 우왁스럽게 잡아 끌어 달구어진 꼬챙이를 갖다 댄다.
장일;아버지!
용배;(비명을 참는.... )읍. . . .아....아악.....
장일;야 이 개새끼들아. 아버지! 아버지.....
이때 깡패3을 내리치는 의자. 깡패3, 푹 쓰러진다. 장일 놀라 돌아보면 선우다.
선우, 분노에 가득차서 울 것 같은 표정.
선우;자식 밥 멕이러 온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짓이야. 니들 오늘 죽었어.
땡보;(황당하다는 듯 째려보는)
23. 곰탕 집 옆 공터 / 밤
바닥에 푹 쓰러지는 선우. 덮치는 깡패1을 피해 일어나 걷어찬다. 4대1로 싸우는
선우. 팔을 손수건으로 감은 용배, 장일의 손을 끌고 곰탕집에서 나온다. 발걸음 옮기는데 장일, 돌아보면 곰탕집 옆에서 선우가 맞고 있다.
장일;빨리 병원 가보세요. (가려는데)
용배;(장일을 잡으며)어딜 가. 저 녀석 아는 애냐?
장일;같은 반이예요.
용배;어서 가자. 저런 데 휘말리면 안 돼.
장일의 손을 잡아끌며 빠른 걸음으로 가는 용배. 장일, 아버지한테 끌려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본다.
용배;뭘 자꾸 돌아봐. 어서 가자니까. 어서. (잡아끄는데)
장일;(짜증이 버럭)제발 좀!
장일, 용배의 손을 맵게 뿌리치고 달려간다.
깡패1,2와 싸우는 선우. 선우, 아래 깔려서 맞고 있다. 달려오는 장일, 선우 위에 올라탄 깡패2의 등을 있는 힘껏 발로 찍는다.
깡패2;윽! (옆으로 쓰러지고)
선우;........? (보면 장일이 서 있다)
장일, 바닥에 쓰러진 깡패 2의 배를 걷어찬다. 미친 듯이 분노가 폭발해 죽일 듯이.
깡패2;윽! 윽!
선우;(장일을 말리는)야 그러면 죽어.
장일;(계속 차는)죽어야 돼! 죽어! 죽어! 이런 쓰레기 다 죽어야 돼.
깡패3, 깡패들을 여럿 데리고 뛰어온다. 깡패2는 배를 잡고 쓰러져 있고 땡보 포함 열 명의 깡패들 선우와 장일을 에워싼다.
선우;.......
장일;......(어쩌지 싶어 선우를 보는데)
선우, 달려드는 깡패 하나를 주먹으로 치며 장일에게
선우;......뛰어!
24. 시장통 골목 / 밤
뛰고 있는 선우와 장일. 뒤로 깡패들 우르르 쫓아온다. 외진 골목으로, 상가와 상가 틈새로, 창고를 가로질러 열심히 달아나는 선우와 장일. 멈춰서 있던 과일트럭으로 올라타는 선우.
선우;빨리 타.
선우, 장일의 손을 잡아 끌어올린다. 붕 사라지는 트럭. 깡패들 우왕좌왕한다.
25. 바닷가 방파제 / 밤
물병 하나 돌려 마시며 숨 돌리고 앉아있는 선우와 장일. 한참을 숨 고르며 말이 없다.
선우;괜찮냐? 아까 제대로 한 대 맞던데.
장일;........(선우에게 시선 안주며)괜찮아.
선우;사채는 도대체 왜 쓰신거냐. 너희 아버진 사채 무서운 것도 모르신 대?
장일;..........
선우;미안하다.
장일;........재작년에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셨어. 매일 술을 마시고 도박에도 빠지더라구... 그때 생긴 빚이야.
선우;(한숨)
장일;돈 없고 힘없으면 어떤 꼴을 당하는 지 아까 봤지?
선우;악질한테 재수 없게 걸린거지.
장일;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야. 힘 없으면 밟혀.
선우;..........
장일;난 검사가 될거야. 오늘 우리 아버지가 당한 인두질, 내가 그놈들한 테 되돌려 줄거야.
선우;인두질 할려구 검사가 되진 마라.
장일;반드시 갚아 줄거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선우;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바로 그렇게 되냐. 참는 시간도 있어야지.
장일;.......(같잖다는 듯 보는)너 완전히 멍청한 놈은 아니구나.
선우;참는 시간을 잘 넘기면 내가 달라지게 돼. 막강한 힘이 생기기도
하고, 용서할 배짱도 생길 걸.
장일;뜬 구름 잡는 얘기 역겹고. 난 오늘을 잊지 않을거다. 돈과 힘을
가진 사람이 될거야.
선우;난 아까 너 다시 봤다.
장일;........(보면)
선우;아버지 원망도 안하고.... 주변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공부를 했다는 게....
장일;입 닥쳐. (자존심 상한다. 벌떡 일어나는)너 같은 놈한테서 그 딴
말 듣는 거, 반갑지 않다.
선우;........미안하다... 자존심 건드려서.
장일;(돌아보지 않고 가며)입 닥치라고 했다.
장일, 저만치 걸어가다가 푹 쓰러진다. 인기척에 돌아보는 선우. 장일, 쓰러져 있다.
선우;야!
26. 거 리 / 밤
장일을 업고 가는 선우.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하지만 서주지 않는다.
선우, 장일 업은 채 땀범벅이 돼 걸어가고.
27. 개인 병원 치료실 / 새벽
침상에 누워있는 장일.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새벽 하늘. 장일, 눈을 뜬다. 링거가 팔에 꽂혀있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 장일, 일어나 앉으면 침대 아래 바닥에서 보호자 간이침대 놓고 잠들어 있는 선우. 땀으로 머리카락이 말라붙어 탈진한 듯
자고 있는 선우. 장일, 한참을 보다가
장일;(처음으로 이름 부르는).......야!.........김선우..... 선우야.
선우;(눈 뜨고 벌떡 일어나 앉는)어!........ (장일에게 가까이)너 괜찮냐?
아픈데 없어?
장일;..........(미소)
두 사람, 처음으로 마주보며 짧지만 미소.
28. 교 실 / 아침
아침자습시간. 장일, 문제지 풀고 있다. 거의 다 찬 교실. 선우, 가방들고 와 자리에 앉는다. 장일, 선우를 쓱 돌아본다. 따뜻한 미소 살짝.
선우;(팔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만 아버지 팔 괜찮아?)
장일;(고개 끄덕)
선우, 다행이라는 듯 고개 끄덕여 주는데 담임, 신경질 적으로 교실 문 열더니 소리 지른다.
담임;김선우 어딨어. (버럭)김선우!
선우; 네?
담임;너 당장 나와.
선우;저요?
담임;그래 너 임마! 어제 너한테 맞은 놈이 장파열이래.
너 폭행으로 감방가야 돼 새꺄.
장일; !
플래쉬 백- 곰탕집 앞. 장일, 바닥에 쓰러진 깡패 2의 배를 걷어찬다. 미친 듯이 분노가 폭발해 죽일 듯이.
깡패2;윽! 윽!
선우;(장일을 말리는)야 그러면 죽어.
교실. 표정 변화없이 앉아있는 장일.
담임;당장 나와.
선우, 장일에겐 시선 안주고 바로 교실을 나간다.
장일;............
29. 학생부 실 앞 / 아침
학생부실로 다가오는 장일. 문 앞에 선다. 안에선 퍽퍽 때리는 소리 들린다.
담임(E);너랑 같이 싸운 놈 빨리 안 대?
선우(E);저 혼자 싸웠습니다. 정말입니다.
장일;(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는데)
담임;학교에서 손써서 형사 처벌은 간신히 면했는데 교육기강 확립 차원 에서 정학을 주라는 교감 선생님 지시다. 너 혼자 독박 쓰고 정학
맞을래?
장일, 손잡이를 슬그머니 놓는다.
선우(E);저 혼자 했습니다.
장일, 문 앞에서 돌아서 간다.
30. 운동장 / 낮
구석에 서 있는 경필의 트럭. 축구하는 학생들로 시끄러운 운동장.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의 경필, 공 차는 학생들 사이를 가로 질러 교사로 뛰어 들어간다.
31. 교무실 앞 복도 / 낮
무릎 꿇고 앉아있는 경필. 선우, 달려온다.
선우;아버지.
경필;(가라는 손짓하며)얼른 수업 들어가. 아버지가 해결하고 갈게.
선우;일어나요 아버지. 이런다고 되는 거 아냐.
경필;수업 들어가라니까. 아버지가 계속 빌면 돼.
출석부 들고 걸어오다 선우 부자를 보는 장일.
선우;아버지 왜 이래!
경필;용서해 주실 때까지 아버지가 빌거야. 넌 얼른 수업 들어 가.
선우;일어나요. (잡아끌어 일으키는)일어나!
경필;(버럭)교실로 올라가라니까!
그 앞을 못 지나고 기둥 뒤로 숨는 장일. 수업 시작 종 친다. 장일, 돌아서 간다. 표정 어둡다.
32. 운동장 / 밤
텅 빈 운동장. 걸어가는 선우와 경필. 경필, 작게 흐느끼며 손등으로 눈물 훔친다. 말없이 걸어가는 두 사람.
선우;죄송해요.
경필;.........널 잘 키우겠다고.... 근사한 놈으로 만들어 놓겠다고 내가 그랬 는데....
선우;..........
경필;선우야, 니가 정말 그랬어? 내 아들이 그럴 놈이 아닌데.... 니가
그런 거 맞어?
선우;.......
경필;아버지가 못나서 미안하다. (눈물 훔치는)
선우;그런 말 하지 마 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그런데 내 인생 이걸로 끝 아니야. 날 좀 믿어주세요.
경필;배고프지? 집에 가서 밥 먹자.
선우;(눈물이 난다. 얼른 다른 데 보며 짜증)지금 무슨 밥 타령이야.
두 사람 트럭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불 켜진 학교 교실 한 곳. 장일 서서 바라보고 있다.
33. 학교 로비 / 낮
‘김선우 정학‘ 공고 붙어있다. 어두운 얼굴로 그 앞을 지나가는 장일.
34. 학생부 실 / 아침
삭막해 보이는 작은 방. ‘선도’ ‘정훈’ 같은 문구 써 붙어 있고 몽둥이 회초리들이 벽에 걸려있다. 책상과 책상 사이에 손과 발을 대고 공중에 떠 푸쉬 업 하고 있는 선우. 문 열리고 장일 들어온다. 선우, 잠시 멈칫.
선우;깜짝이야. (계속 푸쉬업만)
장일, 굳은 표정으로 선우 앞에 와서 선다.
장일;......왜 담임한테 사실대로 얘기 안했니.
선우;사실대루 뭘. (계속 푸쉬 업)
장일;우리 아버지 돈 문제 때문에 싸우게 됐고, 나도 같이 있었다구.
선우;니까짓 게 몇 대 치기나 했냐.
장일;혼자 영웅심 느끼면서 우쭐해 있는거야?
선우;........(푸쉬 업 멈추는)
장일;너한테 빚지기 싫어.
선우;빚 없으니까 꺼져도 돼.
장일;그럼 혼자 뒤집어 쓴 척 하지마.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선우;(선뜻, 생각 없이 대답하듯)당연하지.
장일, 아무렇지 않고 흔쾌한 선우의 태도가 불편하다.
선우;내가 널 우습게 볼까봐 자존심 상한거냐?
장일;...........
선우;이장일, 너 지금껏 누굴 도와줘 본 적도 없고,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구나.
장일;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선우;니가 외로운 놈이란 걸 내가 몰랐다. 친구 해주까?
장일;니 까짓 게?
선우;얼른 수업 들어가. 빨리 검사돼서 그 놈들 인두질 해야할 거 아냐.
장일, 의자에 앉아있는 선우를 한 대 친다. 선우, 벌렁 나가 자빠진다.
선우;.....(턱을 아픈 듯 만지며)야 그새 좀 늘었네.
장일;(선우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내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마.
이 돌대가리야.
선우;(웃는)그래.
장일;날 친구로 생각했다면 꿈 깨. 난 너 같은 거랑 달라.
선우;그래, 그래. 올라가봐. 수업 시작했겠다.
장일;.......... (자존심 상하는)
선우;(멱살 잡은 손 밀치며)올라 가라니까.
밀쳐진 장일, 욱해서 선우를 친다. 선우, 계속 치라는 듯 손짓.
선우;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고 분하냐. 풀릴 때까지 쳐라. 내가 뻗을
때까지 쳐봐.
장일;잘난 척 하지 말랬지!
장일, 악이 솟듯 선우에게 달려들어 때린다. 선우, 한 대 친다. 두 사람 엉겨붙어 싸우는데 담임이 문을 벌컥 연다. 선우와 장일 서로 밀치며 떨어진다. 담임, 장일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담임;장일아, 여기서 뭐하는거야...
장일;......
담임;니가 여기 왜 있냐니까.
장일;선생님이 반 평균 떨어질까봐 걱정을 하시길래.... 제가 김선우한테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얘기하러 왔다가...
선우;..........
담임;이 놈이 싫다고 해서 시비가 붙었구나. (선우 머리를 한 대 맵게
때린다)무릎 꿇고 배워, 자식아.
35. 교실 / 밤
선우와 장일 두 사람만 있는 빈 교실. 형광등 빛 아래 칠판 가득 수학공식을 적고 있는 장일. 선우는 책상에 두 다리 올리고 앉아 딴전하며
선우;담임 퇴근했어. 우리도 가자.
장일;(분필 탁 놓으며)나머지 풀어봐.
선우;야!
장일;풀라구.
선우;가자. 배고프다.
장일;(버럭)풀라니까!
선우;.......(빤히 보는)
장일;(다가와 손에 책상에 분필을 놓는다)풀어.
선우;(분필 던지며)이제 연극 그만해. 담임 퇴근했다니까. (가방에 책을
쑤셔 넣는다)
장일;.........성적 오를 때까지 공부 시킬꺼야 그렇게 알아.
선우;그러던가 말든가. (가방 챙겨들고 일어서는)
장일;아까 그 얘기하러 내려갔었어. 공부 도와주겠다고. 즉석에서 지어낸 게 아니고.
선우;(앞 문 쪽으로 걸어나간다)
장일;안 믿어도 좋은데 사실이야. 내일 보자.
선우, 가방 든 채 칠판 앞에 선다. 분필을 들어 수학 문제 나머지를 푼다.
장일;.........
선우;(분필 내려놓는다)
장일;나 몰래 답안지 봤니?
선우, 주먹을 들어 한 대 치려하자 장일이 막는다.
선우;야! 그럴 땐 이렇게. 나 한번 쳐 봐.
장일, 가만히 서 있자 선우가 다가가 팔을 뻗으며
선우;주먹이 이렇게 올 땐 옆으로 비껴서 옆구리를 쳐. 해봐! 나 없을 때
그 놈들 또 오면 이렇게 상대해. 해보라니까!
한 교실을 제외하곤 모두 불 꺼진 교실. 불 켜진 창문으로 두 사람 치고 피하고 때리는 모습. 밤 깊어간다. F.O.
36. 병원 진찰실 / 낮
의사 앞에 앉아있는 경필. 슬픈 표정.
의사;재검사 결과도 역시 같습니다. 간암말기예요.
경필;..........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습니까.
37. 산 속 창고 / 낮
허름한 간이 창고. 커다란 작업대와 목공 연장들이 있고. 만들다만 작은 의자와 연필꽂이 등이 놓여있다. 수동타자기, 커다란 지구본, 낡고 금 간 칠판, 새장, 오르골....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금 간 칠판엔 ‘경필과 선우의 아지트. 암호는 ‘내 아들 짱’ ‘이라 적혀있는 분필글씨.
책상에 앉아 편지지에 자필로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있는 경필의 뒷모습. 항공봉투가 놓여있다. (문태주에게 긴 사연의 편지를 쓰는)
38. 진승원 / 낮
커다란 정원이 있는 대저택 느낌의 건물. 마무리 공사중. 전선과 마감재 돌들
널려있고 인부들 몇 명 부산히 움직인다. 진노식, 건물을 바라보고 서 있다. 진노식, 생각에 잠긴 표정. (노식은 경필의 전화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크게 마음이 흔들리진 않는다. 누구도 믿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
차실장;다음 주말쯤이면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노식;(말없이 고개 끄덕)갑시다. (움직이는데)
팔에 붕대를 감은 용배 뒷마당 쪽에서 달려나와 굽신거리며 진회장에게 달려간다.
용배;회장님 나오셨습니까.
노식, 용배 팔의 붕대에 배어나오는 진물과 연한 핏물에 눈살을 찌푸린다.
차실장;가서 일 보세요. 상처 관리 잘 하시구요.
용배;예, 예....
용배, 꾸벅 인사하고 긴 호스 들고 뒷마당 쪽으로.
노식;작업 중에 다친 건가.
차실장;악덕 사채업자한테 걸려서 저 꼴을 당하고 왔어요. 가불 좀 해달 라, 아들이 전교 1등인데 학자금 지원 같은 건 없느냐 맨날 아쉬 운 소리만 합니다.
노식;아들 자랑은 나한테도 했어.
차실장;이번 공사 마치는 대로 해고할 생각입니다.
39. 한식당 / 밤
커다란 한옥집을 개조해 만든 고급 한식당. 별도의 좌식 룸. 상이 차려지기 전 테이블. 한사장 옆엔 아내와 3남매(고등, 중학, 초등학생으로 구성된)주르륵 앉아있다. 사복을 입은 여고생 한지원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선 내리 깔고 있다.
한사장;저희는 회장님 가족 분들과 같이 식사하는 걸로 알고 왔는데....
노식;다음에 합시다.
한사장;.......(불길한 느낌에)요즘 떠도는 소문이 사실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노식;우린 다른 방으로 옮깁시다.
40. 한식당 / 밤
문 밖에 서서 듣고 있는 지원.
한사장(E);진회장님이 저희 주주들을 포섭하고 차명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노식(E);주주들이 한사장 한테 등을 돌렸을 뿐 입니다.
한사장(E);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희 부경화학, 그렇게
호락호락한 회사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낼 겁니다.
노식(E);한사장은 이미 많은 부분 신임을 잃었습니다. 회삿돈으로 큰 딸
외국 연수까지 보냈다면서요.
지원;(주먹을 불끈)
한사장;우등생 열 명 뽑아서 학교에서 보내준 겁니다. 회삿 돈을 사적으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노식(E);주주총회 때 결과가 나오겠지요.
울분을 참고 있는 듯한 지원의 표정.
41. 선우네 동네 일각 / 밤
선우, 걸어가는데 금줄과 똘마니들 앞을 막아선다.
선우;.........
42. 한식당 골목 일각 / 밤
선우, 후다닥 뛰어온다. 앞에 주차된 차 여러 대. 선우, 차 문을 연다. 잠겨있다. 옆에 있는 고급세단의 문을 당기자 열린다. 뒷좌석에 기대앉아 숨을 고르는 선우.
선우;(숨차고 아픈 듯)흐....흐으. . . . .
선우, 뒷좌석에 눕는다. 한지원, 식당 안에서 나온다. 옆구리에 손을 얹고 잠시 분한 듯 열을 삭히는 모습.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뭔가를 찾는다. 식당 앞 화단에서 큼지막한 돌을 두 손으로 든다. 고급 승용차 앞으로 다가오는 지원, 돌을 들어 차 앞 유리를 내리친다. 선우, 깜짝 놀라 일어나 앉는다. 지원, 다시 한 번 유리를 내리친다.
선우; !!
지원, 돌로 계속 내리친다. 선우, 차안에서 숨죽여 바라본다. 거미줄 모양으로 깨져가는 앞 유리. 구멍이 뚫어진 유리창 사이로 선우의 두 눈이 보인다. 한지원, 깜짝 놀라 멈춘다.
지원;...........
선우와 지원 두 사람, 긴장감 속 눈 마주침. 지원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있다.
선우;.......
지원;........
금줄 패거리 우르르 달려와 주변을 돌아본다. 지원에게 다가와
금줄;저기! 이리 뛰어온 남학생 혹시 못 봤어?
지원;.........
금줄;파란 세타 입은 놈인데. 머리 짧고.
선우, 숨 죽이고 지원을 본다.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다. 지원, 흔들림 없이
지원;봤어요. 저 쪽으로 뛰어가던데....
금줄 패거리, 지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간다. 지원, 차 안의 선우를 본다. 선우, 차에서 나온다.
지원;.....(긴장하는데)
선우, 지원의 손에서 돌을 뺏는데 두 사람 손, 겹치며 스친다. 선우, 돌을 들어 앞 유리를 제대로 한방에 깨버린다.
지원; !!
선우, 유리창 깬 돌을 정원 멀리로 던져 버린다.
선우;고마워. (간다)
지원;.........(멀어져 가는 선우 바라보고 서 있는)
선우, 가다가 뒤돌아본다. 지원, 선우와 눈이 마주치자 멈칫. 식당으로 들어간다.
43. 한식당 앞 / 밤
진노식 걸어 나온다. 유리가 깨진 차를 본다. 차 옆에선 차실장, 식당 관리자에게 소리치는
차실장;주차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노식;.......
차실장;근처 불량배들 짓 같습니다. 다른 차를 불렀으니까 곧 도착할 겁니 다.
지원;(한 켠에 숨어서 미소)
44. 선우 방 / 밤
들어와 피곤한 듯 방바닥에 벌렁 눕는다. 천장보고 가만히 누워있는...
선우;.........(미소).....이상한 여자애야....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45. 교실 / 아침
아침자습시간. 장일, 영어문제집에 빨간 줄을 긋고 해석을 적고 있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선우. 옆에선 떠드는 아이들.
학생1(E);야, 엄청 이쁜 여자애 전학 오는 거 알어? 교무실에서 전학
수속 하는 거 봤어.
학생2(E);혹시 부경화학 사장 딸 아냐? 서울에서 내려왔다는데.
학생1;정말?
학생2;우리 아버지 부경 다니잖아. 사장 딸도 우리 또랜데 엄청 미인이래.
장일, 선우를 돌아본다.
장일;김선우!
선우;(부시시 눈을 뜨면)
장일;하나 틀리고 다 맞았다.
선우;(귀찮다는 듯 다시 엎드려 눈을 감는데)
46. 학교 운동장 스탠드 / 낮
토요일 오후. 하교 하는 학생들, 축구하는 학생들로 북적댄다. 장일, 캔 커피 마시며 책 보고 있고 선우는 철봉에서 노는 중. 턱걸이 하다 올라타서 빙 돌았다가... 무릎에 걸고 매달리는 선우. 장일이 거꾸로 보인다. 나달나달해진 영어참고서 들고 있는 장일.
선우;......(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툭)이장일.
장일;(책에 시선 둔 채)왜.
선우;너 서울로 대학 가. 학비랑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부쳐줄게.
장일;.........! (선우를 본다)
선우;나 돈 벌 자신 있거든.
장일;미친놈. (다시 책으로 시선)
선우;큰 데 가서 더 잘난 놈들이랑 겨뤄. 그래야 너도 큰다. 내가 니 꿈
이루게 해줄꺼야.
장일;왜 그러구 싶은데?
선우;너한테 친구는 나 하나밖에 없으니까.
장일;니 앞가림이나 해.
선우;(철봉에서 뛰어내리며)내말 들어. 난 그렇게 할거니까. 간다. (간다)
장일, 가슴이 찡하다. 멀어지는 선우. 장일, 가만히 앉아있다. 장일,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47. 거리 / 낮
비 내린다. 우산 쓰고 가는 장일. 갑자기 화구통과 스케치북을 든 여고생, 우산 속으로 뛰어든다. 수미, 긴장되고 날이 선 느낌. (수미, 피해의식과 외로움 속에 늘 두껍고 날이 선 갑옷을 입고 있는 느낌. 그림은 단 하나의 희망이자 구원의 밧줄. 그림에 관한한 간절하며 충실하다. 빨리 학원에 가고 스케치북을 젖지 않겠다는 생각에 남의 우산에 뛰어들 용기가 나온 것)
장일;(깜짝 놀란)........
수미;죄송한 데 큰 사거리까지만 씌워주실래요? 우산 파는 데가 없어서....
장일;......그러세요.
우산을 쓴 두 사람 걸어간다. 어색하고 긴장하고 있는 장일. 장일, 여고생의 옆모습을 본다. 예쁘다. 수미, 시선을 느끼고 장일을 보면 장일 얼른 앞을 보고 걷는다.
두 사람 횡단보도쯤에 와서 멈춰 선다.
수미;저 건물이 서울미술학원 맞죠?
장일;.....서울미술학원은 다음 사거린데....
수미;.......(낭패라는 듯 한숨 후).....네, 감사합니다.
수미, 스케치북을 가슴에 안고 화구통은 머리에 덮고 우산에서 나와 뛰어가는데 장일 뒤에서 따라가 우산을 씌워준다.
수미;....... !?
장일;어짜피 가는 길인데 씌워 드릴게요.
수미;........(자기 삶에 자주 없는 타인의 친절함... 이때 장일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우산 속 두 사람, 걸어간다. 수미, 장일의 교복을 보며
수미;경일고 다니시나 봐요?
장일;.....네.
수미;나도 그리 전학 가는데.
장일;........아...... (수미를 다시 쳐다본다. 말끔한 옷매무새와 머릿결)
대화가 끊기며 다시 머쓱해 진다. 말없이 걷다가
장일;미대 가실 껀가봐요?
수미;네.
건물 앞에 멈춰서는 두 사람.
수미;우산 씌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미, 장일에게 인사하고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장일, 수미 뒷모습 잠시 보다 걸어간다.
48. 학교 복도 / 낮
출석부 들고 걸어가는 장일.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뒷걸음질 두 발짝. 미술실 안을 들여다본다. 훌륭한 솜씨로 앞에 놓인 꽃병과 과일 정물화를 그리고 있는 여학생의 옆모습. 수미다.
49. 미술실 / 낮
수미, 그림 그리는데 몰두해 장일이 다가가도 모른다. 파레트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섞고 물통에서 수시로 붓을 찍어 색을 만들고 칠한다. 커다란 물통엔 ‘부경화학’ 로고와 글씨 찍혀있다.
장일;그림 정말 잘 그리시네요.
수미;.......(놀라 돌아본다. 점점 미소 번지며)비 오던 날.... 그 분?
장일;네, 맞아요. 전학 언제 오셨어요?
수미;월요일이요.
장일;그림 정말 잘 그리시네요.
수미;그림은 내가 최고예요.
장일;(웃는)
수미;저..... 해미리 가려면 여기서 먼가요?
장일;가깝진 않죠. 왜요?
수미;그 쪽 산비탈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장일;버스타고 한 시간이면 갈 거예요.
수미;네.....
수업시작 종이 울린다. 수미, 화구통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하나 꺼내 준다.
수미;나중에 봐요.
장일;(받으며)??
50. 학교 일각 / 낮
사람통행 없는 조용한 곳. 기대감으로 두루마리 펼쳐보는 장일. 연필 스케치화. 우산 쓴 장일, 옆을 보며 웃는 모습. 초상화와 순정만화풍으로 실물보다 미소년으로 그려져 있다. 스케치북 하단엔 ‘최수미’ 라 연필로 작게 써 있다.
장일;(미소)
51. 미술실 / 낮
장일, 미술실로 뛰어 들어온다.
장일;해미리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선물 주신 보답으로.
수미;........(놀람. 밝아지는)정말요?
장일;오늘 수업 끝나고 가실래요?
수미;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일이 좀 있어요.
장일;그럼 일요일은?
수미;(밝게)좋아요!
장일;그럼 일요일 한 시에 바다공원 앞에서 뵈요.
수미;네.
장일;(웃으며 나간다)
수미;............(미소 계속)
52. 동네 일각 / 낮
선우와 장일, 걸어온다. 장일, 기분 좋은 듯 혼자 생각에 잠겨 빙글빙글 미소.
선우;뭔일 있냐. 왜 실실대.
장일;그냥.... 나중에 얘기해줄게.
‘최광춘 神占’이라 쓰인 간판. 웃고 있는 광춘의 사진이 함께 들어가 있는 꽃분홍 글씨의 유치한 간판을 붙이고 있는 인부들. 청바지에 몸에 딱 붙는 붉은 셔츠를 입고 팔찌를 한 광춘, 옆에서 인부들에게 지시.
광춘;고거 보다 조금만 위로. ...아니 너무 올라갔다. 거기 거기.
오케이. 거기가 딱 시선이 머무는 데야.
선우, 광춘을 보며 긴가민가한 눈빛.
선우;.......광춘 아저씨?
광춘;......(돌아보며)
선우;아저씨 맞죠? 저 선우예요. 김선우.
광춘;야.... 김선우! 이 자식 키 큰 거 보게.... 너 이 동네 사니.
선우;네. 이사 오셨어요?
광춘;어쩐지 널 다시 만날 것 같더라니.....(장일 보며)친구냐?
선우; 네.
광춘;(장일보며)고 놈 눈빛하고는... (선우에게)너 얘랑 놀지 마.
선우;별 걸 다 참견이야.
광춘;(간판에 버럭)거 왼쪽이 삐뚤어졌잖아요. 어떻게 그거 하나 볼 줄
몰라, 돈만 받아쳐먹고. 밥만 먹고 똥만 싸면 장땡인가.
장일;(얼굴 찌푸린다. 경멸스런 눈빛. 가까이 하기 싫다는 듯 먼저 걸어간 다)
선우;수미는요?
광춘;몰라 그년 어디로 쏘다니는지.
선우;안부 전해주세요.
광춘;답답한 일 있을 때 와라.
선우, 부지런히 걸어가 앞서 가는 장일 옆으로.
장일;누구야?
선우;초등학교 친구 아버지. 옛날에 같은 동네 살았어.
장일;인상 참 안 좋다. (기분 나쁜 듯 뒤를 한 번 더 돌아보며 걷는)
53. 수미네 방 / 밤
수미, 옷을 꺼내 옷걸이에 두 벌 걸어놓고 거울 앞에서 대본다. 설렘. 미소.
54. 동 네 / 밤
장일, 가방 들고 걸어간다. 저 앞에 화구통 든 수미 걸어가고 있다. 장일, 궁금증. 수미를 따라간다. 예쁜 등이 켜진 멋진 대저택 쪽으로 걸어가는 수미. 장일, 따라가며 기대감에.... 대저택을 지나쳐 가는 수미. 장일, 의아하다는 표정. 계속 수미를 따라가는데 수미, 신점 간판 붙은 집으로 걸어간다.
장일;...... (걸음이 느려진다)
수미, 신점 집 앞에 이르러 살피듯 뒤를 돌아본다. 장일, 얼른 몸을 숨기고 수미를 본다. 수미,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도령복을 입은 광춘이 나온다.
광춘;너 마침 잘 왔다. 가서 막걸리 하나만 사와.
수미;싫어.
광춘;그럼 내가 이 꼴루 가리?
수미;언제는 부끄러운 걸 알았어?
광춘;내가 번 돈으로 밥 쳐 먹고 학교 다니는거야. 고마운 줄 알아,
이년아.
수미;고맙습니다 도사님. (집으로 들어간다)
광춘;저딴 걸 딸년이라고.... (가래침)컥 퉤!
광춘, 침을 뱉고 휘적휘적 걸어간다. 장일, 광춘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린다.
55. 장일 방 / 밤
<고난을 박차고 일어서라. 빛나는 내일이 증명하리> 문구 붙어있는 책상. 책꽂이엔 각종 상패와 메달 걸려있다. 잘 정돈된 방. 수미가 그려준 그림을 보고 있는 장일. 그림을 구겨버린다. 쓰레기통에 던진다.
56. 바닷가 공원 / 낮
예쁜 사복차림의 수미. 서 있다. 손목시계를 본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수미, 다리 아픈 듯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뭔가 상상하는 쓸쓸한 표정. 해가 기운다. 수미의 그림자 길어진다.
57. 대형 서점 / 밤
책 고르는 선우와 장일. 선우, 장일과 떨어진 책꽂이 앞에 서 있다가 유리창 밖으로 수미가 지나는 걸 본다.
선우; 어!? (장일에게 소리치는) 나 먼저 갈게.
선우, 밖으로 달려 나간다. 걸어오는 수미, 춥고 가시가 선 느낌.
선우;어! 최수미. 와.... 이게 몇 년 만이냐.
수미;........선우구나.
선우;너 왜 이렇게 이뻐졌어. 너 요즘도 미술대회 나가기만 하면 상 받니?
수미;당연하지.
선우;그저께 동네에서 광춘 아저씨 만났어.
수미;아는 척 할 필요 없어. 나도 밖에선 아는 척 안 해.
선우;너무 그러지마라 야.
장일, 서점에서 나오다 선우와 수미를 보고 멈칫. 수미, 장일을 본다. 장일, 모른 척 하고 지나간다.
수미;.........
선우;(장일에게)먼저 가.
장일, 무표정한 얼굴로 멀어진다. 수미, 말없이 장일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다.
수미;너 쟤랑 친해?
선우;친해.
수미;(말 끊어)쟤 우리 아버지가 무당인 거 알지?
선우;.......글쎄.
수미;가라.
돌아서 걷는 수미. 눈물이 핑글 돈다. 가슴속에서 비수 같은 게 솟는다.
58. 바다가 보이는 언덕일각 / 어스름
트럭이 서 있고 그 옆엔 경필. 선우, 가방 메고 걸어오다 앞에 서 있는 경필을
본다.
선우;어? 아부지. 여기 왜 이러구 있어.
경필;니 얼굴 보고 갈려구.
선우;저녁은 드셨어?
경필;그럼. 우리 잠깐 좀 걷자.
경필과 선우, 바닷가를 따라 걷는다.
경필;아들아, 손잡고 걷자. (손을 잡는데)
선우;(손을 뿌리치며)아줌마처럼 왜 이래.
경필;(다시 잡으며)선우 생일 금요일이지?
선우;(못이기는 척 손 놔두고)왜, 생일빵 해주게.
경필;생일날 시내로 나와. 진미관에서 7시에 만나자.
선우;촌스럽게 뭐냐.
경필;꼭 나와. 아주 중요한 분을 내가 모시고 갈꺼야.
선우;누구?
경필;앞으로 널 보살피고 도움을 주실 분이야.
선우;그게 무슨 소리야.
경필;니가 스무 살이 넘으면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까지 기다 리기 힘들 것 같아서.
선우;그건 또 무슨 말이야.
경필;........
선우;그건 또 뭔 말이냐고.
경필;내가 니 옆에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
선우;왜! 새 장가라도 갈꺼야? 가세요, 누가 말려.
경필;...........(눈물이 그렁)
선우;.........아버지.....
경필;......
선우;!! 병원 갔던 거 결과 나왔어? 병원에서 뭐래.
경필;좀 안 좋대.
선우;뭐가 어떻게 안 좋은데?
경필;간암이래.
선우;..............
경필;...........
선우;아버진 앞으로 50년 더 살거야. 요샌 암으로 죽는 사람보다 이겨내 는 사람이 더 많어. 아버지도 그럴꺼야.
경필;(선우를 껴안는다)
선우;아버지 안 죽어. 맘 약하게 먹지 마. 나랑 약속해.
경필;그래.....
선우;(포옹 풀고)약속 어기면 가만 안 둬. 알았지?
경필;선우야.... 생일날 진미관으로 일곱 시까지 와.
선우;안 갈꺼야.
경필;기다린다. 올 때 까지 기다릴꺼야.
선우;(버럭)안 간다니까!
경필, 선우의 따귀를 때린다. 선우, 뺨 돌아간 채 굳어있다.
경필;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널 때리는 거다. 그날 꼭 나와.
선우;........
경필, 트럭에 탄다. 트럭, 떠난다. 저만치 사라지는 트럭. 선우, 갑자기 트럭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경필은 선우가 따라오는 것 못 보고 눈물 흘리며 운전만. 트럭, 잡을 수 없게 멀어진다.
선우;.........아버지........죽지 마.....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노을 비낀 바닷가에 홀로 서 있는 선우의 실루엣.
59. 진승원 마당 일각 / 낮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걸어오는 경필. 공사 마무리 단계라 전기줄과 공구등등이 널려있고 박스도 여러 개 어지럽게 널려있다. 마당에 서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서 있는 진노식.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다. 두 사람 잠시 어색하고 짧은 침묵 몇 초.
경필;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식;(안 반가운. 그러나 미소)그래 경필이... 오랜만이구나.
경필;형님, 아니 이젠 회장님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노식;편한대로 하려무나... 어떻게 지냈니.
경필;트럭으로 배달 일 하면서 말썽쟁이 자식 놈 하나 키우고
있습니다. 마누라랑은 오래전에 갈라섰구요.
노식;......안됐구나.
경필;형님은 그대로시네요.
노식;그대로긴... 많이 늙었지.
경필;(둘러보며)좋으네요.
노식;공사가 끝나야지 아직은 제 모양이 아니야.
두 사람,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미소 짓고 있지만 불편한.
60. 진승원 일각 / 낮
창이 넓은 회장 서재 같은 곳. 책상에 전화만 한 대 덜렁. 아직 천정 공사도 안 끝나 전등이 달리지 않고 전선만 삐죽이 나와있다. 공구와 테이프 등등 바닥에 있다.
테이블 없이 의자에 마주앉아있는 노식과 경필.
경필;은애씨가 낳은 형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보육원에 가 있는 걸 제가 찾아냈습니다.
노식;니가 왜.
경필;죄값을 치르고 싶어서였겠죠. 가짜 서류 꾸미고, 도장파고... 그저 형 님이 시키는대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면서 했죠. 은애씨네 집까지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노식;은애는 날 배신했다.
경필;.........형님.
노식;날 배신하고 문태주의 아이를 가졌어.
경필;형님의 열등감이 만들어 낸 의심입니다. 태주형을 의지하면서도
시기하고 질투 한 거 압니다.
노식;(웃는)허허.....
경필;태주 형과 저를 횡령과 사기로 몰아서 감옥에 보낼 때, 죽을 때까 지 진노식을 보지 않겠다. 복수할 가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다
다짐했어요.
노식;그런데?
경필;저 오래 못삽니다. 간암말기래요. 죽기 전에 가엾은 한 아이 인생
도와주고 싶어서요.
노식;(피식 웃는)돈이 필요해서 온 거면 무릎 꿇고 구걸을 해.
경필;.........(무릎을 꿇고 앉는다)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 아이만 거둬
주십시오.
노식;은애는 그저 하룻밤 같이 놀던 다른 여자들과 같아. 설사 애가 생겼 다 우겨도 내가 그걸 받아줄 이유는 없어.
경필;어떻게 임신한 약혼녀를 내칠 수가 있어요. 결국은 형님이 죽게 만든 겁니다.
노식;이제보니 너도 은애를 짝사랑했나보구나. 그 애가 그럼 니 아이는
아니냐. (웃는)
경필;.............
노식;그 애는 지금 어느 고아원에 있니.
경필;난 그 애가 문태주의 아이기를 바래요. 하지만 태주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죠. 형님 약혼녀도 그래서 사랑했을 겁니다 당신하곤 다른 사람 이라서.
노식;(순간적인 화, 경필의 뺨을 갈긴다)
경필;은애씨 아버지도 당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어.
노식;그 애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경필;당신이 변했을 꺼라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어. 당신 같은 아버질 갖느 니 차라리 고아로 사는 게 낫겠어.
노식;내가 그 애를 못 찾아 낼 것 같아?
경필, 울컥해 노식의 멱살을 잡는다.
경필;그 애한테 손을 댔다간 가만 안 둬.
노식;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할 수 없는 일 보다 많다.
경필;당신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나란 걸 몰라? 지금까진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돼줄꺼란 생각에 말 안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아냐.
노식;(쏘아보는)
경필;사기 술수 모함... 당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내가 밝히고 죽겠어.
뱀처럼 벌어서 이룬 재산, 한 순간 다 날아가게 될 껄.
노식, 경필을 주먹으로 친다. 경필 쓰러지자 달려들어 깔고 앉아 바닥에 놓인 공사연장 빠루를 집어든다. 경필을 찍듯이 내리치는데 경필 가까스로 몸을 굴려 피해나간다. 찍힌 자리 푹 파였다. 경필, 일어서 노식을 발로 찬다. 노식, 일어서 경필에게 연장을 다시 휘두르는데 경필 연장을 잡고 몸싸움을 벌이다 연장을 뺏어 던진다. 그리고 노식의 뺨을 친다. 노식, 경필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친다. 경필, 벽에 부딪혀 넘어지자 경필에게 올라타 경필의 목을 조른다. 순간적인 광기. 옆에 놓인 굵은 빨랫줄을 집어 목을 조른다. 경필, 핏발이 오른 얼굴로 노식을 밀치다 힘이 풀린다. 손이 스르륵 떨어진다.
노식;(땀이 가득.... 숨이 찬)헉. . .헉. . .흐. . . 흐.......
노식, 땀을 닦고 일어서는데 유리창으로 뭔가 비친다. 뒤 돌아보면 놀라 서있는
용배.
61. 산 입구 / 노을
옷을 깔끔하게 입고 걸어가는 선우. 표정 밝지 않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
장일(E);김선우!
선우;(돌아본다)
장일;우리 집 가서 저녁 먹자.
선우;지금?
장일;너 오늘 생일이잖아. 미역국 끓여 줄 사람도 없으면서.
선우;약속이 있어. 고맙다. 먹은 걸로 할게.
62. 산 길 / 노을녁
바쁘게 걸어가는 선우. 좀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는 장일.
장일;너 괜히 미안해서 그래?
선우;(멈춰서 돌아보는)진짜 약속 있다니까.
선우 뛰어가고.
장일;니 까짓게 무슨 약속.
선우;(뛰면서 장일 쪽으로 뒤돌아보는)거짓말 아니라니....(까).
선우, 앞에 있는 어떤 물체에 걸려 벌러덩 넘어진다.
선우;(아픈 듯)흐..... 뭐야 씨....
선우, 인상을 구긴 채 일어나 앉는데 앞에 허공에서 구둣발이 흔들리고 있다.
선우;!! (놀라 경직)
선우와 부딪힌 충격으로 계속 흔들거리고 있는 발. 시선을 따라 올라가면 목을 맨 남자의 시신 보인다. 허름하지만 말쑥하게 세탁해 입은 양복차림. 얼룩이 근데군데 묻어있다. 선우, 놀라움과 두려움에 주춤하며 물러선다. 그러다 문득 얼굴을 보는
선우;........아버지?......(다가가 가까이 본다. 이내 충격으로)아버지!
선우의 놀란 얼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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