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1부
S#1 굴다리 아래 공터 일각 (새벽)
황량하고 지저분한 굴다리 아래 음침하고 으슥한 공간...
골판지나 신문지를 이불 삼아 잠이 들었거나, 술을 마시거나,
삼삼오오 모여 야바위를 하는 노숙자들의 모습.
이때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거칠게 와서 서고,
차안에서 내리는 덩치 두 명. 살벌한 표정으로 노숙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잡아 올려 확인하기 시작한다. 찾는 얼굴이 아니면
거침없이 패대기치고 다음 노숙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덩치들.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낡은 수첩에 몽당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초로의 사내, 덩치1에 의해 얼굴이 확 들려진다.
벙거지 아래로 보이는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 덥수룩한 수염,
얼마나 안 닦았는지 알이 뿌연 뿔테 안경, 그나마 한쪽 알은
깨져 금이 가있고...찾는 얼굴이 아닌지, 홱 놓고 가려다가
어쩐 일인지 멈칫 서는 덩치1.
덩치1 잠깐. (사내를 돌아보며) 뭔가 낯이 익어. 잠깐 안경 좀 벗어봐.
(하며 안경을 벗기려는 순간)
사내 (고수다운 잽싼 몸놀림으로 그 손 턱 막는)
덩치1 (저도 모르게 움찔)
사내 (좀 전의 액션과는 완전 다른 굽실거리는 말투, 비굴한 웃음)
죄송합니다...제가 얼굴이 팔리면 안 되는 처지라서요....
덩치1 (좀 전의 불꽃 액션은 내가 잘못 봤나? 얼른 다시 가오 잡고)
이 영감탱이 수상한데. (멱살을 확 틀어쥐며 일으켜 세우는데, 사내의
손에서 툭 떨어지는 낡은 수첩) 이건 또 뭐야? (하며 집으려는 순간)
사내 (또다시 고수다운 잽싼 몸놀림으로 덩치1의 손을 팍 쳐내는)
덩치1 (또 움찔! 보면)
사내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가 저만치 날아간 수첩을 집어 품 안에
넣고는, 덩치1을 향해 또다시 굽실거리는 말투와 비굴한 웃음으로,
사내 죄송합니다....이건 제 밥줄이라서요....
덩치1 이거 또라이 아냐? (하며 팔을 비트는 순간)
사내 (그 손을 반사적으로 확 잡아채고는) 손도 제 밥줄이라...
덩치1 (확 열 받아서) 이 새끼가! (사내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덩치2 (E) 찾았다!
덩치1 (소리에 돌아보면)
덩치2 (숨어있던 노숙1을 끌고 나와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새끼가 우리 사장님 돈을 20억이나 날려먹고는 튀어?!
노숙자1 (덩치2의 발에 짓밟히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살려주세요!!
덩치1 너 운 좋은 줄 알아! (멱살을 확 놓아주고 가는데)
순간 사내의 뿌연 안경알이 챙---! 매섭게 빛을 발하더니(C.G)
바닥에 뒹굴던 낡은 장우산을 집어 들어 덩치1의 다리를 손잡이로
걸어 당긴다. 덩치1, 컥, 다리가 걸려 넘어진다.
‘저 새끼가!’ 험악한 표정으로 사내를 향해 다가오는 덩치2!
사내 덩치2의 가랑이 사이로 우산대를 질러 넣어 그대로 위로 팍
쳐올린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타구니를 부여잡으며 주저앉는
덩치2! 언제 일어났는지 뒤에서 각목으로 사내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덩치1! 우산대로 막아내며 피하고는 덩치1의 가슴팍을 우산 끝으로
찌르는 사내. 컥!
사내 (그제야 제 말투로) 미안하지만 머리만은 절대 안 되겠는데.
내 진짜 밥줄이거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덩치들 한꺼번에 덤벼드는데,
장우산 하나로 덩치들을 상대하는 사내의 화려한 액션!
순식간에 곤죽이 되어 낙엽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지는 덩치들!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린 채 보고 있는 노숙자들!
덩치1 (널브러진 채로) 저 새끼....정체가 대체....뭐야?
사내 무식은 자랑이 아니야. 주먹 쓸 시간에 책 좀 사봐.
장우산을 바닥에 툭 던지고는 뒤돌아가는 사내.
어느 순간 구부정한 허리가 점점 펴지더니, 마침내 꼿꼿한 자세로
걸어가는 사내! 그 걸음 점점 빨라지면서,
S#2 세주의 저택 앞 (아침)
웅장하게 열리는 저택의 문. 낡은 코트를 벗어 던지며 그 문으로
들어서는 사내. 깨진 안경을 벗어던지고, 턱에 붙였던 수염을 떼
내버리고, 저만치 정원 끝에 위치한 본채를 향해 걸어가는 사내는
바로 세주다! 정원의 나무를 손보고 있던 정원사, 조형물을 청소하고
있던 도우미들과 강비서 등이 ‘오셨습니까, 작가님?’ 인사를 하고.
S#3 세주의 저택 / 샤워부스 (낮)
깔끔하고 럭셔리한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하는 세주.
세주 (E) 작가는 머리뿐만 아니라, 손, 발, 엉덩이로 글을 씁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가끔은 변장도 불사하죠.
S#4 세주의 저택 / 드레스룸 (낮)
백화점 명품관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럭셔리한 의상들과 소품들.
적당한 것을 골라내어 입는 세주.
세주 (E) 글이 막힐 땐 어떻게 하냐구요?
S#5 인터뷰-광고 촬영 세트장 (낮)
세주 양복 광고 촬영 중 잠깐 짬을 내어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이다. 스타일리스트가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손봐주고 있는
가운데 기자(패션잡지)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세주.
세주 (E) (생각해보지 않아 어려운 질문이라는 듯) 글쎄요...글 막힘은
투덜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꾸며낸 변명이
아닐까요? 아,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영화배우이자 각본가인
스티브 마틴이 한 말입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S#6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앤티크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진 집필실.
스타 작가의 모습으로 완벽히 변신한 세주가 들어와 책상 앞에
앉는다. 안경을 끼고, 자료(예의 그 낡은 수첩)를 대충 훑어본 후에,
어느 샌가 눈빛이 집중 모드로 변하더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S#7 세주의 저택 / 주방 (낮)
강비서(여. 40대)와 도우미, 배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린
자세로 서서, 벽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째깍째깍째깍....초침이 12시 5분 전에 정확히 겹쳐지는 순간,
강비서 작가님 마감 오 분 전입니다.
멘트가 떨어지는 순간, 익숙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도우미.
앤티크한 쟁반 위에 예쁜 쇼트케이크가 한 조각 놓이고,
우유와 설탕을 가득 넣은 코코아를 만들어 쟁반 위에 올리고,
마지막으로 코코아잔에 얇은 계피막대 하나가 커피스틱처럼 꽂힌다.
완성된 디저트 쟁반을 들고 절도 있게 나가는 도우미.
세주 (E) 집필은 체력전이죠. 평소 식단조절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지만, 몽쉘브루의 쇼트케이크와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코코아만은 포기가 안 되더군요. 마감 후에만 먹습니다.
뭐 저에 대한 포상이랄까요?
S#8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스토리가 절정을 향해가는 듯 완전히 몰입된 눈빛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세주. 마침내 화룡정점을 찍듯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탁! 찍는 순간, 벽시계가 정확히 정각을 알리고!
이어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도우미.
책상 위에 디저트 쟁반을 올려놓고는 조용히 목례를 하고 나간다.
흐뭇한 표정으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는 세주.
이어 계피 막대를 시가처럼 입에 문다.
세주 (E) 담배요? (농담조의 웃음)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구시대적인
작가가 있습니까? 이 년 전부터 금연 중입니다. 계피 막대는 훌륭한
대용품이죠.
계피 막대를 입에 문 채 흡족한 표정으로 양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갖다 대고는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창밖 정원 풍경을 바라보는 세주.
그렇게 탈고 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강비서 들어온다.
강비서 원고 메일 전송 완료했습니다. (태블릿 PC를 보며, 오늘의 스케줄을
보고하는) 1시 30분에 저작권 관리 담당 변호사가 방문할 예정이고,
2시 30분엔 담당 주치의가 정기검진 차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후 계간지에 실릴 단편을 마감하셔야 하고,
세주 (OL) 강비서님.
비서 (멈추고) 네.
세주 정원이 너무 을씨년스럽네요. (고개만 뒤로 돌려 비서를 보며,
가진 자의 미소로) 사슴이나 한 마리 키울까요?
S#9 세주의 저택 / 정원 (낮)
두 마리의 사슴(!)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 위로,
앵커 (E) 작가 한세주씨의 소설 <언페어 게임> 영문판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습니다.
S#10 뉴스 화면
5씬에서 봤던 양복 광고 속 세주의 모습, 북투어를 위해 공항을 빠져나가는 세주의 모습들이 자료화면으로 펼쳐지고.
앵커 (E) 한세주 작가의 해외판권을 관리하는 KGL매니지먼트에 따르면,
<언페어 게임>은 공식 출간 5일 만에 순위에 포함됐으며,
최근 5쇄에 돌입했습니다. 뜨거운 현지 반응에 힘입어
미국 7개 도시와 유럽 5개 도시를 도는 북투어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S#11 시카고 풍경 인서트
시카고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S#12 시카고 카페 (낮)
앤티크풍의 찻잔과 가구, 소품들로 꾸며진 이국적인 카페 안.
작은 마을에서 진행되는 이색적인 느낌의 사인회다.
한쪽에 세주의 포스터와 <언페어 게임>영문판이 진열되어 있고.
몰려든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세주의 모습. 일각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페
주인(50대, 미국인, 남). 멋있다..영화배우 같다..수군대며 구경하는
카페 알바생들. (알바생들 중에는 한국인 유학생 한나도 있고)
CUT TO
창가 자리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는 세주.
모든 일정을 끝낸 후의 여유로움.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찻잔을
들어 마시다가 멈칫, 진열대 위에 놓인 낡은 타자기(1930년대에
제작된)에 시선이 간다. 왠지 모를 끌림에 다가가 타자기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으로 한 번 만져보는데,
소년 (E) 이 총 별명이 뭔지 알아요?
순간 불에 덴 듯 놀라 타자기에서 퍼뜩 손을 떼는 세주.
동시에 섬광처럼 팟 떠오르는,
S#13 인서트 (1930년대의 낡은 창고)
테이블 앞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가, 소년의 질문에
돌아보는 1930년대의 세주.
세주의 타자기 옆에 M1928A1 장총을 턱 내려놓으며 세주를
도전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년.
세주 (별로 관심 없는) 글쎄. 뭘까.
소년 총소리가 타자기 치는 소리랑 비슷하다고 해서, 시카고 타자기.
세주 (무관심) 간지 돋네. 그래서?
소년 펜은 칼보다 강하고, 타자기는 총보다 강하다.
세주 그런데?
소년 좋은 글 쓰시라고요. 여자 꼬시고 부귀영화 꿈꾸는 그런 글 말고
정말 위대한 글.
S#14 시카고 카페 (낮)
세주, 이건 뭐지? 멍....해져서 타자기를 바라볼 뿐인데.
(*이하 모두 영어대사)
주인 (E) 아름다운 물건이죠?
세주 ? (소리에 돌아보면)
주인 (언제 왔는지 세주 옆에 뒷짐 진 자세로 서서 흐뭇한 표정으로
타자기를 바라보는) 당신의 나라 한국에서 건너온 물건입니다.
1930년대 경성에서 개인이 제작한 타자기라더군요.
1930년대 경성....알 수 없는 끌림에 다시금 타자기를 바라보는
세주인데, 그 앞으로 불쑥 내밀어지는 세주의 책과, 펜.
주인 (미소로) 저도 한 권 부탁드려도 될까요?
세주 (웃으며) 물론이죠. (받아서 책에 사인하는)
주인 제 카페에서, 당신 사인회를 열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세주 (사인한 책 건네며, 미소로) 그럼 저 타자기 저한테 파시겠습니까?
주인 (짐짓 엄한 표정으로 검지 좌우로 흔들며) 노노노노.
당신의 팬이지만 저것만큼은 절대 드릴 수 없어요.
경매에서 어렵게 얻은 물건이거든요.
세주 (아쉬운 듯 흐음...한숨 내쉬며 타자기를 다시 보다가, 미소로)
잘 쉬다 갑니다. 그럼. (나가려는데)
진오 (E) 어이, 친구.
세주 ! (또다시 들리는 환청에 퍼뜩 뒤를 돌아보면)
흐뭇한 표정으로 세주의 사인본을 넘겨보고 있던 주인,
시선 느끼고는 왜? 하듯이 멀뚱멀뚱 세주를 바라본다.
잘못 들었군...피식 웃고는 손인사하고 나가는 세주.
다시 세주의 책을 흐뭇한 표정으로 넘겨보던 주인,
쨍그랑 유리잔 깨지는 소리에 ‘헤이, 한나! 왓츠더매러!’ 외치며
세주의 책을 타자기 옆에 탁 내려놓고 달려간다.
타자기와 나란히 놓인 세주의 책...표지에 실린 세주의 사진....
책 위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책장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빠른 속도로 촤르르르 책장이 넘어가는데서,
S#15 타이틀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조립하는 누군가의 손.
-타자기에 종이를 넣고 레버를 젖힌 뒤 자판을 치기 시작하는 손.
-조립한 총에 총알을 장전하는 누군가의 손.
-빠른 타이핑 소리와 함께, 무작위로 종이에 찍혀 나오는 활자들.
-장전된 총을 들어 자세를 잡더니 어딘가 목표물을 향해 조준하는
손. 계속되는 타이핑 소리. 마침내 방아쇠 당기는 순간,
타이핑 소리 멎음과 동시에 탕탕탕! 세 번의 총성과 함께 종이 위에
찍히는 세 개의 총알자국! 마치 스모킹건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이어 어지럽게 타이핑된 글자들이 반짝 빛을 발하며 떠올라 재조합되면,
타이틀 <시카고 타자기>
S#16 시카고 카페 외경 (밤)
어두운 밤... 쏟아지는 비...
카페 문 앞에 ‘CLOSED’ 팻말이 걸려 있고.
S#17 시카고 카페 안 (밤)
영업을 마친 불 꺼진 카페 안...
쇼트케이크 진열장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만...
그 불빛 속에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타자기...
카메라 천천히 타자기를 향해 다가가면...
어느 순간 타닥...! 저 홀로 움직이는 타자기!
S#18 시카고 카페 2층 / 숙소 (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던 카페 주인,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음악소리와 무언가 타닥거리는 소리에 번뜩 눈을 뜬다.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서랍 속의 호신용 권총을 꺼내드는 주인.
경계 태세를 취하며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S#19 시카고 카페 안 (밤)
긴장된 표정으로 홀 안으로 들어서는 주인.
순간, 시침 떼듯 뚝 멈추는 음악소리와 타자기 소리.
오싹 소름이 돋는 주인. 양손으로 총을 단단히 감싸 쥐고는 허공에
겨눈 채, 천천히 원을 그리듯 몸을 돌려가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덜컹, 떨어지는 액자!
헉! 해서 얼른 그쪽으로 총을 겨누는 주인!
이번엔 반대편에서 쨍그랑 바닥으로 떨어지는 유리가면 소품!
빠르게 몸을 돌려 그쪽으로 총을 겨누는 주인!
이때 오래된 축음기의 바늘이 저절로 레코드판으로 움직이더니,
1930년대의 재즈 음악이 큰 소리로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의자들이 우루루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뒤쪽에서 타닥타타타타닥타타타닥----! 기관총의 격발음 같은 소리!
패닉상태의 주인,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일단 총부터 탕탕탕! 쏘고
보면, 저 홀로 미친 듯이 글자를 찍어 내고 있는 타자기!
‘나를 한세주 작가에게 보내주세요’
‘나를 한세주 작가에게 보내주세요’
‘나를 한세주 작가에게 보내주세요’
‘나를 한세주 작가에게 보내주세요’
끊임없이 빠르게 문장을 찍어대는 타자기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다가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토해내는 주인의 모습 위로,
(E) 우루루루쾅----천둥번개소리
S#20 어느 허름한 창고 (밤)
창밖으로 들리는 천둥소리. 번뜩이는 번개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창고 내부. 허름한 책상 앞에 앉아 사제총기를 조립하고 있는 의문의
남자. 마침내 조립된 총을 들어 어딘가를 향해 겨누는데,
보면, 벽면 한 가득 세주의 사진과 기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남자가 겨누고 있는 세주의 사진이 점점 클로즈업되다가
화면에 가득 차는데서,
S#21 대형 서점 안 (낮)
화면에 가득 찼던 세주의 얼굴에서 줌아웃하면,
‘한세주 작가의 화제의 작품 <언페어 게임> 영화화 결정!’
이라는 문구와 세주의 얼굴이 크게 박힌 신간 광고 패널!
베스트셀러 서가에는 세주의 작품 <언페어게임>, <신드롬>,
<스토커>가 나란히 1,2,3위 칸에 진열되어 있고,
매대 위에 진열되어 있는 <언페어 게임>.
그 중 두 권을 집어 드는 누군가의 손. 설이다!
설 (한권은 옆구리에 끼고, 나머지 한권의 책장을 드르르 넘기며
책 냄새를 맡는) 아....이 새 책 냄새... (황홀한데)
누군가 설의 뒤통수를 팍 친다.
책 사이에 얼굴 사정없이 처박혔다가, 이씨...홱 돌아보면,
방진이다(*서점 알바 앞치마, 이름표엔 마방진).
방진 또 사냐? 또 사?
설 집에 있는 건 독서용! 요건 진열용! 요건 보관용!
방진 집도 없는 년이 한세주 책으로 성을 지을 기세야 아주.
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 몰라? 갑질 대신 덕질을 배워야
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고 지금! 방진 (흩어진 매대의 책을 재배열하며) 지랄로 쌈을 싸먹어라.
설 (이미 책 표지 보며 흐뭇) 글도 잘 쓰는 데 어쩜 얼굴도 이렇게
잘 생겼을까? 얼굴로 나라를 구할 기세야.
방진 (무심히)그러니까 복근으로 글 쓰고, 얼굴로 팔아먹는다는 소릴 듣지.
설 (순간 살벌한 표정으로 방진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며, 이글이글)
어떤 개쓰레기가 그딴 소릴 해.
방진 (컥, 겁에 질려) 억울한, 그런 억울한 소리를 듣는다 이거지.
‘억울한’을 빠트렸네, 내가. 이년을 매우 쳐라, 응? 멱살은 놓고.
하는데 울리는 설의 핸드폰. 주머니에서 ‘모든지혜’라는 스티커가
붙은 핸드폰을 꺼내 얼른 받는 설.
설 (순식간에 밝은 표정으로 싹 바뀌며, 씩씩하게) 네, 모든 지혜를
모아 뭐든지 해내는 심부름 대행서비스 모든지혭니다!
아, 인천공항에서 물건 픽업 배달이요?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끊고는, 다시 순식간에 살벌한 얼굴로 방진을 홱 돌아보며)
그 개쓰레기를 만나거든 전해. 내 손에 걸리면 목을 졸라 얼굴의
즙을 짜버리겠다고. 그게 니가 아니길 빈다. (홱 돌아서 가고)
방진 암튼 저거도 정상은 아니야... 무슨 작가 덕질을 아이돌 빠순이
버전으로 하냐...(졸렸던 목 문지르는데)
방진 주위로 몰려드는 알바 동료들.
동료알바1 (설 쪽을 보며 속닥) 저 사람이에요? 한세주 신간만 나오면
초판부터 증쇄본까지 광란의 싹쓸이를 해간다는 친구가?
방진 (끄덕) 맞아.
동료알바2 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편집자?
방진 아니. (비장하게) 전...설...
S#22 시내 도심의 대로 (낮)
핑크빛 스쿠터에 헬맷을 쓴 설이 활기차게 달려온다.
방진 (E) 덕후계의 전설...
설의 스쿠터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 측면 광고판 속의 세주,
커피 잔 우아하게 들고는 미소 짓고 있다(커피 광고).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 짓는 설.
방진 (E) 팬픽계의 전설....
신호 대기 중인 설. 문득 고층빌딩의 전광판을 쳐다본다.
빌딩 전광판에서 세주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세주의 프로필 사진이나 자료화면을 배경으로,
한세주 작가 신작 <신드롬> 100만부 돌파! 신드롬급 인기!
<언페어 게임> 23개국에 번역 출간, 해외에서도 호평!
2달간의 해외 북투어 마치고 귀국! 정도의 자막이 차례로 나오고.
방진 (E) 남들은 다 아이돌 팬픽을 써대던 고딩 시절, 그 누구도 범접치
못한 문인을 대상으로 감히 팬픽을 써낸, 문인 덕후계의 신개념,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걸어간 파이오니어...
S#23 설의 몽타주(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린 시절의 설.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미친 듯이 읽고 있다.
방진 (E) 어릴 때부터 뭔가에 몰두하면 끝장을 봤어.
어린 설 (다 읽은 책을 양 손으로 탁 덮더니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난 소설가의 아내가 되겠어. (*하단 자막에 ‘전설(10세)’ 뜨고)
어린 방진 왜? (*하단 자막에 ‘마방진(10세)’ 뜨고)
어린 대한 (방진과 동시에) 왜? (*하단 자막에 ‘원대한(10세)’ 뜬다)
어린 설 몰라.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후부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실내 클라이밍 센터. 날랜 다람쥐처럼 암벽을 등반하는 고딩설.
방진 (E) 산악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암벽등반은 기본이고,
-유도장.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고딩설.
방진 (E) 각종 호신술을 익혀 웬만한 장정들도 일거에 제압 가능하며,
-태릉선수촌. 국대 체육복을 입고 선수들과 함께 운동장을
돌고 있는 고딩 설. (*어떤 종목인지는 아직 안 보여주고)
방진 (E) 청소년 시절에는 올림픽 유망주였다가 개인 사정으로 좌절,
-도서관.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있는 고딩설.
방진 (E) 운동선수의 뇌는 근육으로 되어있다는 편견을 타파하고,
딱 일 년 공부해서 당당히 수의학과에 입학,
동료알바1 (E) 우와~ 대단하다.
-대학 교정.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쓴 설과, 그 옆에 둘러선
왕방울, 방진, 대한, 만해가 함께 포즈 취하며 기념사진 찍는 모습.
방진 (E) 대학 졸업 후 당연히 수의사로서 맹활약할 줄 알았으나,
S#24 대형 서점 안 (낮)
동료알바2 설마 또 좌절? 대체 왜에?
방진 그 또한 개인사정. 뻐꾸기 우는 사연이랄까?
동료알바1 아까워라. 부모님이 한탄하셨겠네.
방진 한탄해줄 부모가 있었다면 뻐꾸기 우는 사연이 생길 리 만무하지.
동료알바2 고아야?
방진 뭐 비슷해. 암튼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알바계의 전설이란 닉네임을 얻었지.
동료알바1 뭘 하기만 하면 전설이 되는구나. 대단하네요.
방진 대단하긴.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미친 거지.
S#25 시내 도심의 대로 (낮)
여전히 전광판 속의 세주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설.
방진 (E) 현재는 그저 머리 좋은 빠순이. 문인오덕후일 뿐...
설 세상 혼자 산다 진짜. 전생에 나라를 지대루 구했나봐...
S#26 인천공항 입국 게이트 (낮)
촤르르 넘어가는 전광판이 시카고발 비행기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사람들 속에 세주, 홀로 아우라를
발산하며 걸어 나온다. 순간 꺄아아~ 터지는 함성 소리.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 일제히 세주를 향해 셔터 눌러대기 시작하고,
사람들 몰려들어 난리가 난다. 완전 아이돌급 인기.
고객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달려오고 있던 설, 입국 게이트 쪽에서
들리는 소란에 멈추고 돌아본다.
설 연예인인가....? (목 쭉 빼고 누군가 확인해보다가, 두 눈이 커지며,
믿을 수 없는) 한세주 작가다....!
마치 경호원처럼 세주를 케어해서 데리고 나가는 지석과 강비서!
세주의 동선을 우르르 따라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팬들!
설도 고군분투 따라가며 핸드폰 꺼내 사진 찍으려는데,
문자가 들어온다. 에이 씨...확인해보면,
한나 (INS/E) 어디 계세요? 무서우니까 빨리 G구역으로 와주세요.
설 아니 무슨 애야? 공항이 왜 무서워? (하다가, 퍼뜩 걱정)
공황장앤가? (사라지는 세주를 안타까운 눈으로 쫓으며)
에이 씨...일상이 덕질을 방해하네.
안타까워서 울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G구역을 향해 달려간다.
S#27 인천공항 일각 (낮)
상자 하나가 실린 공항카트를 앞에 세워놓고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서있는 한나(20대.여). 그 위로,
설 (E) 혹시 한나킴 고객님?
한나 (소리에, 퍼뜩 생각에서 깨어나서, 보면)
설 (달려와서, 밝게) 한나킴 고객님 맞으시죠?
한나 (버럭)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설 (움찔 놀라) 죄...죄송합니다....만, (휴대폰을 내밀어 시간
확인시켜주며) 정확히 48초 전인데요. (씩-웃는데)
한나 됐구요, (상자가 실린 카트를 무슨 불길한 물건 버리듯 얼른 설에게
밀어주며) 이거예요. 시카고에 있는 카페 사장님이 보낸 선물이라면
아실 거예요. 반드시, 꼭, 직접 전해주셔야 돼요.
그럼 부탁해요. (하고는 도망치듯 가버리고)
설 저기요, 보내시는 분 성함이,
불러보지만 소용없고, 흐음...한숨을 내쉬고는, 끙차, 상자를
들어 올려보는 설. 꽤 무거운.
설 (상자에 적힌 주소와 이름을 보며) 어디보자...받으시는 분 성함이...
한세주 작가...? (순간 눈이 커지며, 벅찬 감동) 설마...그 한세주?
S#28 달리는 세주의 차 안 (낮)
운전기사 옆에 강비서가 앉아있고, 뒷좌석에 세주와 지석.
세주는 작은 블루투스 키보드에 핸드폰 꽂아놓고 작업 중이다.
지석 (안타깝다는 듯) 아~ 내가 같이 가서 우리 한작가를 살뜰히 모셨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어쩌겠냐, 나는 또 나대로 여기서 빅픽처를 그리고
있어야지. 내가 말했지? 한세주 100억 프로젝트!
세주 (작업하는 채로) 갈지석 100억 프로젝트겠지.
지석 (짐짓 위하는 척 작업 중인 핸드폰 뺏으며) 아, 좀 쉬어라 짜식.
워커홀릭도 병이얌마!
세주 (홱 노려보며) 내가 누구 때문에 워커홀릭이 되었을까?
지석 (뻔뻔하게 고개 갸웃하며) 글쎄?
세주 (버럭) 이번 생에 못 쓰면 다음 생에 싸들고 가야 할 만큼
써야 될 원고가 산더미야. 쉴 수 있겠어 내가? 기저귀 차고
써야 할 판이야! 양심 있으면 일 좀 그만 벌여!
지석 (얼른 꼬랑지 내리며) 우리 한작가님 배고프시겠다.
강비서, 레스토랑 예약했지?
S#29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까르도 주방 (낮)
퐈이야~ 불길이 확 치솟아 오르는 스토브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대한! 유명작가 한세주 일행이 앉아있는 바깥 홀을 중간중간
의식하며 대따 멋있는 척 오버하고 있다.
대한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듯한 우렁참) T7에 스테이크 파스타 둘!
스페셜 하나! 수 즈브리가띠(Su sbrigati! 자, 빨리!)!
즈벨띠 즈벨띠(Svelti! Svelti! 빨리 해!)!
S#30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까르도 홀 (낮)
세주, 지석, 강비서 함께 요리를 먹고 있다.
지석 들어봐. 일단 연재소설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후에,
대한 (E, 주방 쪽에서 우렁찬) 벨리씨모! 벨리씨모! 하하하하하!!!
지석 (움찔 놀랐다가, 짜증) 아씨,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 (쯧,하고는)
이후 시나리오 각색 과정을 거쳐 영화로, 게임으로, 뮤지컬로,
등등등으로...한세주 콘텐츠를 활용하는 원 소스 멀티유즈사업!
세주 (무시) 강비서님, 저 오늘 하루는 스케줄 있어도 없고 싶은데요.
강비서 그러실 것 같아서 오늘 일정은 모두 비워놨습니다.
지석 그 출발점이 바로 너의 아이템인데,
강비서 저택 직원들은 아직 휴가 중인데, 호텔로 가시겠습니까?
세주 아니오. 집으로 가겠습니다. 저택 직원들은 예정된 휴가 일정 다
채우고 돌아와도 됩니다. 강비서님도 일찍 퇴근하세요.
지석 그러니까 이게 아이템이 빨리 나오면 빨리 나올수록 준비가,
강비서 얼마 전 스토커 사건도 있었는데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세주 괜찮습니다.
강비서 말로만 쉰다고 하시지 말고 오늘은 꼭 쉬십시오.
지석 (버럭) 나 누구랑 얘기하니, 지금? 나 황금거위 출판사 사장이야!!!
하는데, 대한이 후식 쟁반을 든 종업원과 함께 다가온다.
종업원은 포춘 쿠키와 후식이 담긴 접시를 놓아주고.
대한 (점잖) 한작가님, 식사 맛있게 드셨습니까?
세주 (비즈니스 미소) 네. 맛있게 먹었습니다.
대한 (종이와 펜을 내밀며) 실례가 안 된다면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친구 놈이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라서요.
세주 네. 그러죠. 성함이...
대한 전설입니다. 전설의 고향, 할 때 전설.
세주 (사인해서 건네며 미소) 특이한 이름이군요.
대한 (손가락 V로 만들며 슬쩍) 이왕이면 가게 안에 걸어놓게 두 장....
세주 (성가시지만 애써 자본주의 미소로) 성함이....
대한 리까르도입니다. (세주 사인하는 거 간섭하며) 까. 카가 아니고 까.
세주 (살짝 짜증, 표정 숨기고 사인 건네며) 여기...
대한 그라아찌에! 그라아찌에 따안떼! (Grazie! Grazie tante!)
재미로 포춘 쿠키도 한 번 열어보세요. 제법 잘 맞습니다.
세주 (살짝 귀찮은, 포춘 쿠키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나중에 열어보죠.
S#31 세주의 저택 정문 (낮)
설의 핑크빛 스쿠터가 달려와 저택 앞에 멈춰 선다.
스쿠터 위에서 저택을 바라보는 설, 저택의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되어 정신이 멍...해진다.
설 헐...이게 집이야 미술관이야?
멍....한 표정 그대로 스쿠터에서 내리더니, 시선은 저택에서
떼지 못한 채, 뒷좌석에 실었던 짐 상자를 내려서 들고는
정문 앞으로 가서 선다.
설 (멍한 채로) 그러니까....내가 지금... 한세주 작가님 집에 온 거란
말이지? (순간 현실감이 팍 들며) 아우, 심장 떨려....
설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하고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느닷없이 스쿠터로 달려가 백미러로 얼굴과 헤어스타일을 급하게
체크한다. 주머니에서 립글로스까지 꺼내 바르는 설.
S#32 세주의 저택 / 침실 (낮)
세주 샤워 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거울 앞으로 온다.
드라이어를 꺼내들다가 문득 거울 테이블 위에 놓인 포춘 쿠키에
시선이 간다. 뜯어보면 쿠키 안에서 나오는 종이.
(INS) 뮤즈들은 유령이라서 때론 초대받지 않은 곳에
나타나곤 한다 –스티븐 킹-
세주 뮤즈들은 유령이라서 때론 초대받지 않는 곳에 나타난다....?
싱겁다는 듯 피식 웃고는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버리다가
멈칫하는 세주. 문득 뒤쪽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에
뒤를 홱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자락...!
강비서 (E) 얼마 전 스토커 사건도 있었는데 혼자 정말 괜찮으십니까?
세주 여봐란 듯 창으로 걸어가 창문을 탁 닫는데,
띵동 초인종 소리. 돌아보는 세주.
S#33 세주의 저택 정문 (낮)
인터폰 앞에서 기다리며 멘트를 연습해보고 있는 설.
설 큼큼...(목소리 가다듬고) 택, 택, 택, 택, (목소리 톤과 높이
조절해보고는)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택뱁니다~ 택배여~
(예쁘게 연습해보는데)
세주 (인터폰, 경계의, E) 누구십니까?
설 !! (세주 목소리에, 얼른 인터폰에 대고 말한다는 게, 너무 긴장해서)
택배왔썹...(이씨 울고 싶은, 힙하퍼처럼 손동작) 맨~
S#34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세주 (뭐니 쟤? 하는 표정으로 인터폰 화면을 보고 있다가)
죄송하지만, 그냥 문 앞에 놔두고 가주십시오.
설 고객님께서 반드시! 꼭! 직접! 전해드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세주 제가 일하던 중이라서요. 부탁드립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주방 쪽으로 가는)
S#35 세주의 저택 정문 앞 (낮)
설 !! (거의 인터폰 속으로 들어갈 듯이 바싹 달라붙어서)
저기요, 작가님, 작가님? 잠깐만요, 작가님!
인터폰을 두드려보지만 아무 대답 없고, 순간 인터폰에 달라붙은
상태 그대로 절망스럽게 주욱--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앉는 설.
설 (벽에 등 기대고 앉아 넋두리)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분명한 게지...하늘이 주신 기회를 왓썹맨으로 날려먹다니.....
울고 싶어지는데...문득 어떤 느낌에 가만히 옆을 돌아보면,
언제 왔는지 정문 앞에 얌전히 앉아 설을 바라보고 있는
대형견(견우) 한 마리!
설 (순간 귀여워서, 언제 절망했냐는 듯이 미소 생기며) 어? 너 누구야?
너 이 집에 살아? (다가가서, 쓰담쓰담 예뻐 죽는) 아이구~ 예뻐라~
(견우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보며) 넌 좋겠다. 이 집 살아서.
(저택 쪽을 보며, 탄식) 아, 나도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집필실 구경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순간, 마치 설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지잉—소리와 함께
열리는 정문! 놀라 벌떡 일어나는 설! 마치 제 집인 양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견우.
문득 멈춰서더니 설을 돌아본다.
설 (설마...) 따라오라고?
견우 왈~!
설 ! (표정 환해져서 상자 들고 따라 들어가는)
S#36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세주 손수 만든 코코아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와 집필실 쪽으로
향하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멈칫 서는.
세주 누구....(하다가) 강비서님?
설 (E) 택뱁니다, 작가님. 문 좀 열어주세요.
세주 !!! (어떻게 들어왔지?)
S#37 세주의 저택 / 현관문 앞 (낮)
세주 현관문을 열면, 문 앞에 상자를 들고 서있는 설.
설 (밝게) 택배 왔습니다~
세주 (!!!) 대체 여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설 ? (영문을 몰라) 예? 아니 저는, 작가님이 문을 열어주셔 가지구,
세주 문을 열어줬다고? 내가? (눈빛 매섭) 당신 뭐야, 스토커야?
설 아아, 제 소개가 너무 늦었구나. 죄송해요, 저는, (상자 잠깐
내려놓고는, 주머니에 손 넣고 뭔가 꺼내려는 순간)
세주 (경계의) 잠깐!
설 (멈칫 정지되고)
세주 (매서운 경고) 난 유단자야. 무술 17단의 고수라고. 지금 꺼내려는 게
뭐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섣부른 판단의 책임은 온전히
그쪽 몫이야. 여자라고 안 봐줘 난.
설 ? (아주 잠깐 생각해보더니) 방금 신중하게 생각해봤구요,
또다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설. 반사적으로 방어태세 취하는
세주. 그런 세주 얼굴 앞에 척! 내밀어지는 ‘성수청’ 명함!
설 전, 모든 지혜를 모아 뭐든지 해내는,
세주 (명함 착, 뺏어가 보며) 신이 내린 신빨, 성수청 왕방울 선녀?
설 (헉!해서) 앗, 죄송해요. 실수했습니다. 그건 친구 엄마가 하는
신당 명함이구요. (얼른 주머니에서 ‘모든지혜’ 명함 다시 꺼내며)
전, 심부름 대행서비스 ‘모든지혜’에서 나왔습니다.
세주 (역시 경계의 눈빛으로 명함 착, 뺏어가 확인해보고는)
나중에 신원조회 해보겠습니다. (명함 주머니에 챙겨 넣는데)
설 (내려놓았던 상자 다시 들며) 자 그럼, 물건을 안에 들여놓겠습니다.
(설레는 심정으로 은근슬쩍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세주 (얼른 팔을 쭉 뻗어 문을 가로막는)
설 (세주의 팔에 걸려 비틀)
세주 문 앞에 놔두고 가세요. 그것도 나중에 확인해보겠습니다.
설 (웃으며, 다시 시도) 아니 이왕 배달 온 김에 제가,
세주 (막으며) 됐습니다.
설 (세주 팔 밑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며) 그래도 제가,
세주 (짜증나서 저도 모르게 버럭) 아, 됐다고!
설 (움찔 놀라서) 어머...성깔 있으시다.
세주 (가라앉히고, 얼른 다시 점잖은 말투로) 원래 확인 안 된 택배는
집 안에 들여놓지 않습니다.
설 왜요?
세주 세상엔 질투와 시기에 사로잡혀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는 인간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이를테면 스토커나, 자신의 글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피해망상증 환자들이나,
설 (억울한) 저는 스토커가 아니라 선생님의 열혈 팬,
세주 (OL) 협박장은 기본에, 눈만 도려낸 사진, 면도날, 동물 사체,
사제폭탄까지 아주 다양하게 배달돼 옵니다.
설 (몰랐던 일이다) 정말이요?
세주 몰래 집에 잠입해 몰카를 설치한 경우도 있고, 원고를 훔쳐가려는
시도도 있었고, 심지어 침대에 몰래 누워있다 들킨 경우도 있습니다.
해서 뭐든 함부로 집안에 들이지 않습니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눈빛 매서워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견우, 마치 세주의 말에 엿을 먹이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유자적 두 사람 사이를 지나 현관문 안으로
들어간다.
세주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설 작가님 개요.
세주 개? 내 개? 난 개털 알러지가 있어서 개를 키우지 않아!!
(손가락으로 현관문 안쪽을 가리키며) 잡아! 당장 잡으라고!!!
설 네? (눈빛 반짝) 그럼 집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세주 들어가! 들어가서 잡으라고 빨리!
설 ! (좋아서) 그럼 제 개는 아니지만 일단 잡겠습니다! (튀어 들어가고)
세주 (이씨...젠장...튀어 들어간다)
S#38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세주 들어와 보면 거실 바닥은 이미 개 발자국으로 난리가 나있고.
세주 (아아...양손으로 머리 감싸 쥐며 돌아버리겠는데)
설 (E, 집필실에서 들리는) 안 돼! 그건 안 돼!
세주 !!! (하얗게 질려 집필실 쪽으로 튀어 가고)
S#39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뛰어 들어오다 말고 헉! 그대로 문가에 정지되고 마는 세주.
보면, 뼈다귀 모양의 USB를 앞에 놔두고 얌전히 앉아있는 견우!
설은 이미 문가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네고시에이터처럼
‘이리와....착하지....?’ 견우를 살살 달래고 있고.
세주 (눈앞이 아득해지는 공포) 안 돼...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설 저거 혹시 USB메모리예요?
세주 (버럭) 저게 USB메모리로 보여? 저건 내 피눈물이야!
내가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취재한 내 피 같은 자료!
허리가 아작 날 때까지,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눈이 짓무를 때까지, 쓰고 또 쓴 내 눈물 같은 아이템!
(이 악문 소리로) 저 개가 저걸 먹는 순간 그쪽도 죽을 줄 알아!
설 (억울) 제 개가 아니라니까요!
세주 어쨌든 그쪽이 몰래 들어올 때 저 놈도 따라 들어온 거잖아!
설 (억울) 문이 저절로 열렸다니까요!
세주 (대형견을 확 노려보며) 너 그거 먹기만 해봐? 된장을 머드팩처럼
처발라서 들깨와 함께 솥단지에 처넣을 테니까!!
견우 (으르렁거리다가 컹컹컹 짖는)
설 자극하지 마세요! 흥분하잖아요! (하고는, 견우에게 살살)
착하지....? 이쪽으로 와....누나가 맛있는 간식 줄게....
견우 (USB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세주 (버럭) 미쳤어? 그쪽이 간식이라는 말을 하니까 반응하잖아!
(하고는, 울듯이) 안 돼....안 돼....먹지 마....제발....먹지 마....
설 착하지....? (천천히 다가가며) 그거 먹는 거 아냐....먹으면 아야 해...
일루 와 일루...(살살 달래는 중인데)
세주 (꿈쩍 않는 견우를 못 참고, 기어이 터지며) 너 이 개자식,
그거 먹으면 니 배를 갈라버릴 줄 알아!
순간, USB를 꿀꺽 삼키는 견우!
하얗게 질려 안 돼에에에-----!!! 절규하는 세주!
잽싸게 몸을 피해 작업실을 빠져나가는 견우!
세주 (거의 패닉상태) 뭐해, 잡아! 잡으라고!
설 제가 왜요? 이제 겨우 작가님 집에 들어왔는데.
세주 뭐든지 한다며! 모든 지혜를 모아 뭐든지 해낸다며!
따블!! 따따블!!! 따따따블!!!
설 !!! (순간 우주용사처럼 출동하고)
세주 (울고 싶은 심정으로 따라가는)
S#40 세주의 저택 근처 동네 일각 (낮)
신나서 도망가고 있는 견우의 뒤를 죽어라 쫓고 있는 세주와 설!
설 (달리며) 제가 잡을 테니까 작가님은 집에 가 계세요.
괜히 개만 자극하고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세주 (달리며) 미쳤어 내가? 그쪽이 아이템 도둑인지 어떻게 알고!
설 진짜 의심 많으시네? 저 이래 봬도 수의사였어요.
설마 사기극에 개까지 투입시켰겠어요?
세주 수의사였다면 더더더더 의심스럽지! 개를 훈련시켰겠지.
우리에 가둬두고 만두만 먹여가면서 살인병기로 키워냈겠지.
위급할 땐 적의 목을 물어뜯어라 그렇게 훈련시켰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설 와,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상상력 쩐다, 진짜.
세주 내 아이템 하나의 가치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매출이 얼만 줄이나
알아?
소리치다 말고 갑자기 멈춰서는 세주. 보면, 막다른 골목이고,
사면초가에 빠진 견우, 골목 끝에 멈춰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입가에 씨익—사악한 미소가 맺히는 세주.
설 제가 할 테니까 절대 자극하지 마세요.
세주 (살벌하게) 너 이 개새,
설 (얼른 세주의 입을 틀어막고는) 하지 말라고요 쫌!!
세주 (확 털어내며 기막힌) 지금 방금 내 입을 틀어막은 거야?
설 (세주를 잡아 앉히며) 살살 달래야 돼요. 아이 다루듯이 애정과
인내를 가지고 살살.....따라 해봐요. 착하지....? 이리 온...
세주 착하긴 개뿔, (하다가, 찌릿 쳐다보는 설의 눈빛에 마지못해)
차...착하지...? 이리 온....
세주와 설, 견우를 향해 나란히 앉은 채 마치 애정도 테스트를
하듯, 이리 와...이리 와...손짓한다. 어느 쪽으로 갈까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는 견우. 무지 간절한 두 사람의 모습.
드디어, ‘TV는 사랑을 싣고’ 배경 음악이 깔리며 슬로우 비디오로
달려가 설의 품에 와락 안기는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S#41 동물 병원 (낮)
벌컥 문이 열리고, 견우를 마치 아이 업듯이 등에 업고는
미친 듯이 뛰어 들어오는 설! 따라 들어오는 세주!
수의사 (차트 들고 입원견들의 상태 체크해보고 있다가)
어, 설아 너 오랜만,
설 (O.L) 선배! 응급환축이에요! 응급환축!
수의사 (달려오며) 어디가 어떻게 응급인데?
설 피눈물을 삼켰어요. 아, 아니, USB메모리를 삼켰어요.
당장 꺼내야 돼요! 안 그럼 사람 하나, 개 하나, 도합 둘이 죽어요!
수의사 (다급하게) 이쪽으루! 이쪽으루 얼른!
설과 수의사 수술실 쪽으로 급하게 들어가고, 수술실의 문이 쾅
닫히고 나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세주에서.
(점프)
설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온다.
세주 마치 분만실 앞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던 남편처럼
벌떡 일어나 설을 바라본다.
설 (웃으며 세주 앞에 USB메모리를 흔들어 보인다)
세주 ! (안도감에 표정이 환해지며, 메모리를 가져가려 손을 내미는데)
설 다행히 X-RAY를 찍기도 전에 응아를 해서, 수술이 필요 없었어요.
세주 ! (순간 그대로 정지되며) 응...아....?
설 관장할 필요도 없이 쾌변을 한 덕에, 고통 없이 순산했어요.
세주 쾌...변....(그 자리에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고)
설 요건(메모리) 제가 실행해보니까 무사히 작동이 되더라구요.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아, 비밀번호가 걸려있어서 내용은 못 봤으니 안심하세요.
자, 여기요. (하며 USB 건네려는데)
세주 ! (기겁해서 피하는)
설 ? (다시 내밀며) 제가 깨끗이 닦았어요.
세주 ! (그야말로 똥 피하듯 얼른 피하며) 의, 의뢰할 일이 하나 더 있는데.
S#42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세주의 모습.
설 ......(몰래 바라보며 설레는 미소)
세주 다 됐습니까?
설 (화들짝 놀라 얼른 노트북으로 시선 내리며) 말씀하신 대로
USB메모리에 있는 내용은 전부 메일로 보냈구요, 노트북과
메모리에 있던 내용은 전부 삭제하고, 포맷시키는 중입니다.
세주 (머그잔 커피 두잔 만들어 들고 오며) 노트북은 거의 새 거라 별루
시간 안 걸릴 겁니다. (커피 놔주며) 드시면서 하시죠.
설 아,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세주 (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설 ......(함께 마시며 컵 너머로 슬쩍 세주를 바라보는)
세주 ......(시선 느끼고 보면)
설 ......(이번에는 시선 피하지 않고 보는)
세주 저한테 뭐 할 말 있습니까?
설 ......(보다가) 저 기억 안나세요? 우리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는데.
세주 ......(가만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설 왜 웃어요?
세주 스토커들의 전형적인 멘트라서요. 나 기억 안 나냐, 예전에 우리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설 (억울한) 정말인데.
세주 (설과 동시에) 정말인데.
설 ! (보는)
세주 빠지면 재미가 없죠. 노래로 치면 후렴군데. (설을 정시하며,
도발하듯 피식) 그래서, 언제 만났습니까, 우리가?
설 ! (믿어주는구나) 그게 언제냐면,
세주 (OL) 백 년 전쯤? 아님 천 년 전쯤?
설 (안 믿는구나) ......
세주 왜 내게 집착하냐고 물으면 이렇게들 대답합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마라. 운명이란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된다.
어쩜 우린 전생의 연으로 묶여있을지도 모른다. 어때요?
준비한 답이랑 비슷합니까? 아니면 참고가 좀 됐습니까?
설 (서운한) 저는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의 첫 번째 팬으로,
세주 영화 미저리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죠. 나는 당신의 넘버 원 팬이라고.
(찻잔 내려놓고 일어서며) 포맷이 다 된 것 같네요. 메모리는 가는
길에 버려주시고, 그 노트북은 선물로 드리죠. (친절 미소 장착)
S#43 세주의 저택 / 현관 앞 (밤)
설의 등을 거의 떠밀다시피 하며 배웅을 하고 있는 세주.
세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수고비는 넉넉히 입금하겠습니다.
설 (가기 싫은) 아니 저기, 마시던 커피나 마저 다 마시고,
(하다가, 아직 현관 앞에 놓여있는 택배를 발견하고는 얼른 잡으며)
그럼 제가 이거 확인해 봐드릴까요?
세주 (상자 뺏으며, 억지 친절 미소) 됐습니다. 사전 점검해주는 고용인이
따로 있습니다.
설 아니 제가 무슨 딴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걸 보내신
분이 꼭 직접 전해드리고 확인해 달라, 하도 강졸 하셔가지구
제가 책임감 때문에,
세주 이걸 보낸 사람을 알아요?
설 (다시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아 제가 아직 그 말씀을 안 드렸구나.
들어가서 천천히 말씀, (하며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세주 (막으며) 여기서 말씀하세요. 이걸 보낸 사람이 누군지.
설 (어쩔 수 없이) 시카고....
세주 시카고?
설 시카고 카페 주인이 보낸 선물이라면 아실 거라고.
(F.C-14씬의)
주인 노노노노. 당신의 팬이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드릴 수 없어요.
세주 !!! (표정 환해져서) 됐습니다. 제가 직접 풀어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현관문 탕 닫히고)
설 (두드리며) 저기요, 작가님! 작가님?
반응이 없자 실망하는 설. 그 위로,
동료알바1 (E) 그 언닌 왜 그렇게 한세주가 좋대요?
S#44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까르도 (밤)
방진, 동료알바1,2와 함께 간단한 요리 곁들여 맥주 마시는 중이다.
방진 워낙 독서광이었어. 인생의 시련기마다 책이 큰 위안이 됐대.
시련 많은 인생이거든 걔가.
동료알바2 그러니까 내말은, 백태민도 있고, 김영하, 천명관, 김연수도 있고,
좋아할 만한 작가는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한세주냐는 거지.
설 (E)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마세요.
일동 ? (보면)
설 (언제 왔는지 털썩, 동석하며, 서운한 말투) 운명이란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되는 거래요. 어쩜 우린 전생의 연으로 묶여있을지도
모른대요. (방진의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근데 기억을
못 하네 나를......
대한 (E, 환희의) 씨뇨리나~!!!
일동 돌아보면, 퇴근해 돌아온 주인을 맞이하는 대형견마냥 주방에서
튀어나오는 대한!
설 느끼해 죽겠다 진짜. 이탈리아 말 좀 하지 말라니까.
올리브오일 한통은 마신 것처럼 느끼하다니까!
대한 씨뇨리나, 내가 널 위해 정말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했어.
(뒤춤에서 세주 사인 꺼내며) 짜잔~
설 (일견하고는 맥주 마시며 심드렁) 으응. 한세주 사인?
일동 (충격!!!) 으응. 한세주 사인?
설 (세주에게 받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툭 올려놓으며 거만하게)
한 번 열어보든가.
방진 ? (열어보고는) !!! 서....설마 이 노트북이 한세주 거라는 건....
설 (별거 아니라는 듯) 그 집에 택배 배달을 갔는데 주더라고.
뭘 좀 도와줬거든 내가.
방진 우와, 대박! (노트북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기운 좀 받자. 이걸로 대본 쓰면, 공모 당선 될까? 응?
설 (거만) 봤냐? 이런 걸 성공한 덕후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디 한 번 보자는 동료 알바들과, 안 뺏기려는 방진과,
거만한 포즈로 앉아 맥주를 마시는 설로 어수선한 가운데,
땅바닥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바닥에 낙서하며 왕따처럼
시무룩한 대한.
S#45 성수청 앞 (밤)
설과 방진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는데, 성수청의 대문이 벌컥 열리며 나오는 왕방울.
허걱! 해서 도망가려는 설과 방진인데,
왕방울 (두 아이를 째려보고 있다가, 어떤 느낌에, 고수다운 포스로)
설이 너, 거기 딱 서봐.
설 (이씨...그대로 얼음 되고/방진은 빛의 속도로 대문 안으로 도망갔고)
왕방울 (고수의 포스를 풍기며, 설을 향해 다가오는)
설 (돌아서며, 웃는) 알았어. 늦었어. 취했어. 다신 안 그럴게.
아줌만 딸 방진이만 걱정해. 뭘 나까지 걱정하구 그래. 황송하게.
왕방울 (고수의 눈빛) 너...오늘 뭐 이상한 물건 날랐냐?
설 이상한 물건? 어떤 물건?
왕방울 이를테면 납골함 같은 거라던가.
설 아니? 근데 그건 왜요?
왕방울 뭐지? 너한테 뭔가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데...(고수의 눈빛으로
설을 훑어보다가, 문득 심장이 덜컹해서) 설마...(조심스레)
너 또 이상한 거 보이고 그러는 거....아니지?
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말) 아, 그건 왜 또 물어.
왕방울 보여? 안 보여? (대답해 얼른)
설 걱정 마. 안 보여. 언제 적 얘길 하구 그래.
왕방울 (안심의) 안 보이면 됐어 그래.
설 (무심히, 혼잣말처럼) 또 보이면 콱 죽어야지. 그것 땜에 엄마한테
버림받고, 올림픽도 못 나갔는데.
왕방울 저년이 또! 아, 니 엄마는 남자랑 눈 맞아서 도망친 거라고 몇 번을
말해!
설 (환해져서) 어머, 그 말 너무나 위로가 된다. (다시 정색) 이럴 줄
알았어?
왕방울 내 말은,
설 알아요, 알아. 얼른 들어가서 주무셔. 우리 왕방울 여사,
안 그래도 떨어진 신빨 더 떨어지겠네. 저 먼저 들어가요.
(성수청 대문 안으로 들어가고)
왕방울 이상하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저 놈의 기집애가
대체 뭘 나르고 온 거야? (에서)
S#46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바닥에 택배 상자와 포장지가 뒹굴고 있고,
장식장 위에 타자기를 조심조심 올려놓고 있는 세주.
이리저리 움직여 가장 훌륭한 각도로 맞춰놓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한 번 바라보는 세주. 매우 흡족한 표정이 되는데서.
(점프)
작업실 책상 앞에 단정히 안경을 끼고 앉아 집필 중인 세주.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된 듯 거침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몰입된 세주를 제외한 모든 배경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그 위로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1930년대의 스윙재즈 음악!
작업실이었던 공간이 1930년대의 낡은 창고로,
세주가 치고 있던 노트북이 타자기로 변해가고...!
진오 (E) 이봐, 저 녀석 좀만 가르치면 쓸 만할 거 같지 않아?
세주 ! (소리에 돌아보면)
S#47 세주의 무의식 속 (1930년대 낡은 창고) (밤)
낡은 창고 안. 역광이 들어오는 창가에 한 남자(진오)가 서있다.
1930년대 스타일의 양복과 모자...역광 때문에 역시 얼굴은 보이지
않는 남자가 어딘가를 턱짓한다. 낡은 탁자 위에 놓인 타자기 앞에서
작업 중이던 세주(*1930년대 의상), 사내의 턱짓이 향하는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조립하고 있는 한 소년이
보인다. 칠 부 멜빵바지에, 빵모자, 몹시 낡았지만 끈 달린 가죽
워커. 1920년대 미국의 슈샤인보이 같은 차림새다.
진오 뭐든 금방 배우고 빠르게 익혀.
소년 (조립을 끝내고) 끝났어요.
진오 (구식 스톱워치를 누르고는) 20초. (세주에게) 봤지?
(하고는 소년에게 총을 달라는 듯 손짓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총을 가져다주는 소년.
남자가 총의 조립상태를 확인해보고는, 흡족한 듯 소년의 모자 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기분 좋아진 소년이 웃는다.
세주 애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한마디 하고는 다시 타자기를 향해 돌아앉는데,
세주의 타자기 옆에 총자루 하나를 탁 내려놓는 소년.
세주 (힐끔 보고는) 뭐. 어쩌라고.
소년 이 총 별명이 뭔 줄 알아요?
세주 글쎄. 뭘까.
소년 총소리가 타자기 치는 소리랑 비슷하다고 해서, 시카고 타자기.
세주 간지 돋네. 그래서.
소년 펜은 칼보다 강하고, 타자기는 총보다 강하다.
세주 그런데?
소년 좋은 글 쓰시라고요. 여자 꼬시고 부귀영화 꿈꾸는 그런 글 말고
정말 위대한 글.
진오 (주먹으로 입가를 막으며 웃음을 참는)
남자 쪽을 홱 돌아보며 노려보는 세주.
피식 웃고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년의 모자챙을 장난치듯 툭
건드리는 남자. 순간 소년의 모자가 벗겨지고, 모자 속에 숨겨져
있던 긴 머리칼이 쏟아져 내린다. 남자를 노려보던 세주의 시선이
소년에게 머문 채 정지된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소년이,
아니 소녀가 웃는다. 역광에 비친 소녀의 얼굴이 보이려는 찰나,
S#48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팟! 눈을 뜨는 세주. 주변을 둘러보면, 책상 앞 의자에서 잠들었었고.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그 몽환적 기억을 되짚으며 잠시 멍...한 채로 있는데, 울리는 전화벨. 확인해보면 지석이고,
세주 (성가신 표정으로 받으며) 그만 좀 쪼아. 인간이 아침부터 쪼냐?
지석 (F) 아침은 임마, 벌써 오후 세 시가 넘었다.
세주 (놀라 벽시계를 확인해보면, 오후 3시 10분이고)
S#49 황금거위 출판사 복도~사무실 (낮)
복도를 걸으며 세주와 핸드폰 통화중인 지석.
복도 벽을 따라 한쪽 유리벽에는 출판사 대표소설 전시되어 있고,
다른 쪽 벽에는 대표작가인 세주의 홍보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지석 한작가답지 않게 웬 늦잠이야?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한 손 들어
답례해 가며) 고용인들 휴가 보내놓고 에라 만만디다,
에라 케세라세라다, 그러구 있는 거 아냐?
세주 (F) 때맞춰 황금알 낳아주잖아. 언제 마감 어긴 적 있어?
이럴 거면 차라리 배를 갈라. 목을 조르든.
지석 짜식, 말 이쁘게 하는 거 봐. 농담 따먹자는 얘기가 목 따자는 얘기루
들렸냐? (사무실로 들어와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손인사하며, 비서가
건네는 커피 들고는 자신의 자리로 향해가며) 나는 다만,
S#50 세주의 집필실 + 지석의 사무실 (낮)
지석 (책상 앞에 앉으며) 투자자들한테 내일까지 아이템이 뭔지는 알려줘야
될 거 같다는 말을 전하려고,
세주 1930년대 경성.
지석 ! (커피 마시다가, 눈빛 반짝) 잡았구나, 아이템!
1930년대 경성이면, 시대물?
세주 여자 독립투사와 문인의 러브스토리.
지석 (벌떡 일어나며 환호) 언빌리버블!!! 한국의 스티븐 킹 한세주 작가의
러브스토리라니! 아이러빗! 이것만으로도 광고가 되겠어!
S#51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세주 됐지? 끊어. (전화 끊고는, 다시 벽시계 확인해보는데 기가 막힌)
내가 요즘 너무 과로했나....
정신 차리려는 듯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어떤 느낌에 가만히...타자기 쪽을 돌아보는 세주.
왠지 빨려 들어갈듯 묘한 기운에 사로잡혀 바라보는데,
또다시 울리는 핸드폰소리에 퍼뜩 정신이 드는.
세주 (받으며 짜증) 그러니까 배를 가르고 말자고! (지석인 줄 알았다가,
멈칫) 아, 강비서님...무슨 일로, (하다가) 개요? 무슨 개요? (에서)
S#52 동물병원 외경 (낮)
설의 스쿠터가 달려와 멈춘다.
헬맷을 벗고, 서류봉투를 챙겨들고는 동물병원으로 들어가는 설.
S#53 동물병원 안 (낮)
수의사 (핸드폰 통화중) 예....알겠습니다....예....
(끊고는 난감한 한숨 푹 내쉬는데)
설 (들어와 서류봉투 건네며) 선배, 부탁하신 논문자료 가져왔구요,
(정중하게 배꼽인사하며) 언제나 모든지혜를 애용해주셔서 감사,
수의사 (심란한) 설아, 쟤(캐리어 안에 들어있는 견우) 어떡하냐?
설 (?) 쟤가 왜요? (덜컹해서, 달려가 살피며) 상태가 안 좋아요?
수의사 그게 아니라, 방금 한세주 작가 비서랑 통화했는데,
죽어도 못 데려가겠단다.
설 정말 작가님 개가 아니래요?
수의사 아니래.
설 이상하다. 이 녀석 완전 그 집 주인 행세하던데.
이놈 오니까 대문까지 열어주고...
수의사 아무래도 유기견인 거 같은데 성견이라 입양도 힘들 것 같고...
너도 안 되겠지?
설 (속상한) 키우고는 싶은데 저도 친구 집에 얹혀사는 처지라...
수의사 하긴 얘 처지나 니 처지나 별 다를 것도 없겠다...
설 ......(견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심) 이따 밤에 알바 끝나고
제가 직접 작가님한테 부탁해볼게요.
수의사 소용없어 야. 알러지 때문에 안 된다는데 무슨 수루.
설 정원도 넓고 고용인들도 많은 거 같았어요. 대신 키워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캐리어 틈으로 손가락 넣어 견우 쓰다듬어주며)
어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일지 몰라요.
S#54 대형 서점 (낮)
세주 서가 앞에 서서 참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총기관련 서적이다. 네댓 권은 이미 뽑아들었고,
다른 책도 더 살펴보는데, 누군가 분류와 상관없이 서가 위에
두고 간 책 한 권에 시선이 간다. 집어서 보면, 백태민 작가의
<인연>이다. 작가 소개와 함께 실린 태민의 사진.
세주 ......(보며, 표정 무겁게 가라앉는데)
태민 (E) 한작가?
세주 (보면)
태민 (환한 미소로 다가오며/손에는 골라든 책) 맞구나, 한세주.
세주 (표정 굳고, 무시하고 가려는데)
태민 많이 바쁘냐? 시간 괜찮으면 차나 한 잔 같이 하자.
세주 내가 왜, (서늘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한마디 해주려는데)
두 사람을 알아보고 모여든 사람들, ‘한세주다, 백태민이다,
완전 잘 생겼다’ 소곤대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사람들 시선 의식되는 세주. 짜증 숨기고 이내 비즈니스 미소로,
세주 싫겠어? (하며 앞서 가고, 웃으며 뒤따르는 태민)
S#55 카페 (낮)
세주와 태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태민 (허물없는 친구처럼 밝고 환한 말투) 아버진 얼마 전 십년동안
붙잡구 계시던 장편 탈고하셨어. 조만간 전집형태로 발간될 거야.
이제 다신 장편 안 하신대. 막판에 탈장까지 되셨거든.
세주 (창밖에 시선 둔 채 커피만)......
태민 어머닌 여전히 그림 삼매경이시다. (웃고는 커피 마시려다가) 아참,
세라 프랑스 유학 간 건 알지?
세주 (마시던 찻잔 내려놓으며) 그 얘기 지금 왜 하는 거냐.
태민 (커피 마시다가 보며) 어?
세주 (짐짓 미소로) 천애고아 앞에 내세울 유세거리가 그거밖에 없어
그러는 건 아닐 테고.
태민 (웃으며) 차식, 그야 한 때 한 지붕 덮고 살았던 사람들이니까,
세주 (OL) 그 지붕 열고 나와 딴 지붕 덮은 지가 언젠데,
그 뒷이야기까지 들어야 돼 내가.
태민 (보는)
세주 흥미 없는 연재소설, 끝까지 읽으라는 것만큼 고역이야.
선물 받은 책이든 강매당한 책이든 재미없으면 덮을 권리가 있어.
예전에 덮었어. 열지 마. 재미없어.
태민 강매 당했다고 생각했냐?
세주 (피식) 선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태민 (진심 마음 아픈 듯) 끝까지 선물이 돼주지 못한 건 우리 가족
모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세주 동냥그릇 채워주듯 그러면...맘이 좀 편해?
태민 (좀 민망해져서 웃으며) 왜 이렇게 삐딱하게 굴어, 인마. 난 그냥
가끔 이렇게 사석에서 편하게 이야기나,
세주 공석도 힘든데 사석까지 굳이 왜.
태민 (좋게) 한작가.
세주 공석은 비즈니스 마스크라고 해야 하나, 자본주의 미소라고 해야
하나, 암튼 프로정신 앞세워 노력하니까 곧잘 되드라만,
사석은 가망이 안 보여. 그러니까 만들지 마. (일어나 가려는데)
태민 (O.L) 아버지가 니 걱정 많이 하신다.
세주 (멈칫 선다, 서늘하게 내려앉는 표정)
태민 니가 위험한 글 쓰는 게 늘 걸리시나봐.
세주 (거슬리는) 위험한 글?
태민 옛날 분이시잖아. 아무래도 너 장르물 위주니까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고 생각,
세주 (OL) 위험한 글은, (말 끊고, 태민을 정시하며) 십년 전에 이미 썼지.
태민 (표정 내려앉는)
세주 너랑 나, 두 사람의 인생을 망쳤으니까.
태민 (보며) ...... 세주 그보다 더 위험한 글이 있었을까?
태민 ......
세주 아까운 시간 갉아먹지 말고 글 써. 나처럼 미친 듯이. (가면)
태민 ......(찻잔 들어 천천히...한 모금 마시고는) 나처럼...미친 듯이...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비식 웃는)
S#56 세주의 저택 / 거실 + 주방 (밤)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세주.
그대로 주방으로 향하려다가 멈칫 정지된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 노이즈가 심한 1930년대
스윙재즈 음악이다...! 민감하게 집필실 쪽을 돌아보는 세주.
S#5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경계의 눈빛과 몸짓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세주.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자락...
오래된 축음기 위에서 저 홀로 돌아가고 있는 레코드 판...
누군가 꺼내 읽은 듯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몇 권의 책들...
누군가 검색한 듯 세주의 기사가 떠있는 노트북 화면....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드는 세주, 열린 창문으로 천천히...걸어가는데,
벽에 걸린 유진오닐 초상화의 눈동자가 세주를 따라갔다가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사실 모른 채 창문을 닫으려다가 멈칫
정지되는 세주. 바람에 날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종잇조각.
집어서 보면, 언젠가 자신이 휴지통에 버렸던 포춘 쿠키 종이다!
(INS) ‘뮤즈들은 유령이라서 때론 초대받지 않은 곳에 나타나곤
한다. -스티븐 킹-’
세주 (어쩐지 소름이 돋는, 떨쳐내듯 주변을 둘러보며 짐짓 강한
말투로) 누구야. 누가 허락도 없이 내 집필실에,
하는 순간, 띵동! 초인종소리. 날카롭게 돌아보는 세주.
S#58 세주의 저택 / 현관 앞 (밤)
세주 경계의 눈빛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오다가 멈칫 정지된다.
보면,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견우를 쓰담쓰담 하고 있던 설,
세주를 보고는 반색하며 일어난다.
설 (반갑게) 안녕하셨어요, 작가님?
세주 (표정 굳는다) 여긴 또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설 예? (했다가) 아, 벨을 누르고 보니까, 이미 대문이 열려 있더라구요.
제가 들어오면서 잘 닫았어요. (해맑게) 문단속 잘 하셔야겠어요.
세주 (굳은 채로 보며)
설 저기 수의사 선생님한테 말씀은 전해 들었는데요, 얘 사정이
너무 딱해서요. 작가님한테 한번만 더 부탁드려보려고,
세주 창의력을 좀 키워보는 게 어때?
설 네?
세주 패턴이 너무 똑같지 않아? 난 절대 열어준 적 없는 문이
그쪽만 오면 저절로 열리거나 열려있고,
설 (억울) 그건 정말이에요.
세주 (OL) 설마 사기극에 개까지 동원 했겠냐 펄쩍 뛰었지만, 언제나
개 핑계를 대고. (비식) 하긴, 범죄에 개를 이용하면 경계심이
느슨해지긴 하지.
설 범죄....라니요?
세주 (서늘) 당신 정체가 뭐야 대체.
설 (세주의 태도에 당황해서) 작가님.
세주 집필실에 들어왔다 간 것도 너야? 몰래 훔쳐보던 시선도 너였어?
설 (팔짝 뛰듯) 저 아니에요!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저는 그저,
(하다가 덜컹해서) 설마...스토커가 침입했어요?
세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쪽이 더 잘 알 텐데.
설 (!!!) 지금....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억울해서)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선생님의 첫 번째 팬,
세주 (OL) 당신 같은 인간들 아주 잘 알아. 열성 팬이라는 이름으로,
좋아한다는 이유로, 동경한다는 핑계로, 상대를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 가둬 놓고 집착하다가, 그 환상이 깨지면 바로 안티로 돌아서서
협박과 공격을 일삼는 인간들.
설 !!! (충격이고)
세주 꺼져. 경찰을 부르기 전에. 난 당신 같은 팬 필요 없어.
(문을 쾅 닫고 들어가고)
설 ......(닫힌 문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견우 보면)
견우 (순하게 바라보고 있는)
설 ......(애써 웃으며) 가자. 아무래도 작가님은 널 가족으로 안 받아
줄 거 같애. 싫다는 사람한테 강매하듯이 널 떠넘길 순 없잖아.
S#59 거리 (밤)
설, 견우의 목줄을 잡고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문득 패스트 푸드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는 설.
보면, 햄버거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창가자리에 앉아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는 20대의 남자 대학생. 그 모습 위로 겹쳐지는,
대딩설 (E) 주문하신 햄버거랑 커피 나왔습니다.
S#60 플래시백 / 패스트푸드점 (2008년 겨울)
설(22세. 대학생. 알바), 주문대 위로 햄버거와 커피가 놓인
트레이를 밀어놓으면, 그 트레이 받아드는 사람, 세주다.
대딩설 맛있게 드세요. (하고는, 테이블로 가 앉는 세주 보고 있는데)
알바생 (설에게 속닥이는) 저 사람 또 왔네?
세주 (햄버거 입에 물고 노트에 뭔가 열심히 쓰는 모습 위로)
알바생 (E) 매일 오픈 하자마자 들어와서 제일 싸구려 햄버거 하나,
커피 한잔 달랑 시켜놓고는 하루종일 있다 가잖아. 벌써 한 달째야.
대딩설 (그런 세주 가만 바라보는 위로)
알바생 (E) 가끔 남들이 먹다 남긴 햄버거나 감자튀김도 주워 먹더라.
알바생 노숙잔가?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대딩설 얼핏 보니까, 소설 쓰는 거 같던데....?
세주 (가끔 쓰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쓰며 미소 생기는)
대딩설 .....(집중한 모습이 보기 좋다. 보며, 따라 미소 생기는)
S#61 현재 / 거리 (밤)
설 ......(떠올리며 피식) 기억할 리가 없지...그게 언제 적 일인데...
어쩐지 씁쓸하고 조금은 서운해지는데, 이때 갑자기 설의 손에서
벗어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견우!
설 (놀라서) 어? 야, 너 어디 가! 위험해!!
달리다 말고 설을 향해 돌아서더니 왈왈왈!! 짖고는, 다시 뒤돌아
달리기 시작하는 견우. 일단은 견우를 쫓아 달리기 시작하는 설.
S#62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트북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 세주.
한창 몰입해서 작업 중인데,
소년 (E) 좋은 글 쓰시라고요.
세주 (자판 치던 동작이 멈칫 정지되고)
소년 (F.C) 여자 꼬시고 부귀영화 꿈꾸는 그런 글 말고 정말
위대한 글.
혼란스러운 세주. 떨쳐내듯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려는데, 집중이 안 되는. 결국 안경을 벗고는,
서랍을 열어 안정제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가는.
S#63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안정제를 들고 주방 쪽으로 향하다가 멈칫 서는 세주.
보면, 반쯤 열려 있는 현관문....! 세주 경계의 눈빛으로 천천히
현관문을 향해 가는데...순간, 팍! 정전이 되며 사방이 어둠에
휩싸이는!
세주 누....누구야....?
어둠만. 정적만.
세주 설마 아직도 안 가고 있었던 거야? 분명히 경고했잖아.
경찰을 부르기 전에 당장,
스토커 (E) 작가님....저 기억 안 나세요?
낯선 사내의 음성에 경직되는 세주!
이때 지지지직—소리와 함께 점멸을 반복하는 거실등.
그 불안한 불빛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 한 손에 사제권총을
들고 세주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는 바로 20씬의 스토커다!
세주 !!! (손에 쥔 사제권총을 봤고)
스토커 삼년 전부터 매일...한 통씩...작가님께 메일과 편지를 드렸었잖아요.
세주 (달래듯) 이...일단 그 총부터 내려놓고 얘기 합시다.
스토커 답장이 없어 실망했는데...작가님이 소설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셨잖아요. 이 세상에 복수하라고.
세주 (강하게) 총부터 내려놔요!
스토커 (상관 않고 천천히 다가오며) 전 그게 저한테 하는 말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어요. 이 소설은 내 이야기다, 작가님이 연재소설을 통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작가님 말대로 모두 제거했어요.
세주 !!! (설마 싶어) 제...제거하다니..뭐..뭐를....
스토커 절 괴롭히던 놈들이요.
세주 !!! (경악) 지...지금...내 소설을 읽고 살인을 했다는 말이야?
스토커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세주 (충격과 공포) 당신 미쳤어?!!!
스토커 그런데 왜 소설의 마지막을 그렇게 쓰셨어요? 왜 제가 죽어야 하죠?
난 작가님 말대로 쓰레기들을 제거한 것뿐인데...
세주 그 소설은 당신 이야기가 아니야!!
스토커 (순간 세주를 향해 총을 겨누며) 거짓말하지 마! 내가 너한테 해준
이야기잖아!
세주 !!! (공포에 질리고)
스토커 (총 겨눈 채로 광기어린 분노) 니 말대로 했는데 왜 내가 죽어야
돼, 왜!! (눈에 살기가 돌며) 니가 날 망쳤어. 니 소설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하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스토커를 향해 몸을 날리는 세주!
탕!!! 빗나간 총알에 장식장의 유리가 와르르 무너지고!
스토커를 덮친 채로 팔을 비틀어 총을 뺏으려하는 세주!
바닥에 깔린 채로 있는 힘을 다해 세주의 이마에 총을 조준하려는
스토커! 총구가 향하는 순간 있는 힘껏 팔을 꺾어버리는 세주!
악! 비명과 함께 스토커의 손에서 빠져나와 날아가는 총!
총을 잡으려 몸을 날리는 세주를 뒤에서 덮치는 스토커!
불안하게 점멸하는 불빛 속에 벌어지는 두 남자의 몸싸움!
마침내 세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스토커, 잽싸게 총을 집어 들고
세주를 향해 겨누는 순간, 갑자기 팍! 정전이 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탕!! 총성이 들려오는! 잠시 정적...
또다시 지지지직--점멸하다가 팟! 하고 환하게 들어오는 거실등!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실내를 살펴보던 세주, 뭔가를 발견하고는 충격으로
멍해진다. 보면, 스토커를 향해 총을 겨누며 서있는 설!
설이 겨눈 총구 앞에 겁에 질려 양손바닥을 보이며 서있는 스토커.
설 (스토커를 향해) 웃기지 마. 소설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멍청인 없어.
당신의 인생을 망친 건 바로 당신이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설의 매서운 눈빛. 그 위로,
동료알바1 (E) 근데 올림픽 유망주였다고 했잖아요? 무슨 종목이었어요?
S#64 인서트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까르도)
(*설이 동석하기 전의 상황)
방진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사격.
동료알바2 사격? 근데 왜 그만 뒀어? 부상?
방진 아니. 총을 잡으면 자꾸 이상한 환영이 보인대.
그래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대.
동료알바1 어떤 환영?
방진 전생. 전생에 자기가 총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
동료들 !!
방진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전설로 불렸어.
S#65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완벽한 저격 자세와 매서운 사수의 눈빛으로 스토커를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는 설. 그 위로,
방진 (E) 전설의 저격수...
사로잡힌 듯 멍...하니 설을 바라보고 있는 세주. 그 위로,
(F.C-47씬) 모자가 벗겨지는 순간, 쏟아지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웃는 소년의 얼굴, 바로 설이고!
그 얼굴에 겹쳐지는 현재의 설.
그런 설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는 세주에서.
-<시카고 타자기>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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