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프롤로그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 Ca. 다가가면 반바지만 입은 채 갑판 위에 누워있는 남자, 최해갑(45)이다.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 긴 수염에 썬글라스를 낀 기이한 모습. 죽은 듯 자는 듯 꼼짝 않는다. 잠시 후 해안경비정 한 대 다가와 외친다.
해경1
(마이크) 이봐요!
해갑
...
해경
아저씨!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해갑
...
해경2
죽은 거 아냐?
해경1
아저씨 내 말 들려요? 아저씨!!
해갑
(뭐라고 중얼거린다)
해경1
뭐라구요?
해갑
(몸을 일으킨다) 남쪽이 어디요.
해경2
...뭐라는거야?
해갑
어디가 남쪽이냐고.
해경1
(잠시 보다가) 탈북자요?
해갑
지랄하네. 이 근처에 섬하나 없나?
해경
섬? 무슨 섬이요?
해갑
지도에는 없는 섬.
해경1
뭐요?
해경2
(해경1에게 손가락을 돌리며 제정신 아니라고 표시한다)
해경1
이봐요. 오늘 비바람 예보 있으니까 서둘러 돌아가요.
해갑
못가.
해경1
예?
해갑
기름이 떨어져서 못간다고.
cut to,
경쾌한 음악과 함께 육지를 향해 달려오는 해안경비정. 그 뒤로 해갑의 배 끌려온다. 배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해갑.
긴머리와 수염이 바람에 춤을 춘다.
타이틀 남쪽으로 튀어
가원초교 (D)
학부모 참관수업 중인 2-3반 교실 전경. 십여 명의 학부모가 교실 뒤편에 서 있다. 그들 사이에 단아한 여인 안봉희 (해갑처, 40)가 보인다. 칠판에 써진 글씨 <주제: 우리집 가훈>. 아이 하나(지호)가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여선생(담임, 오선생)이 서 있고 학부모와 아이들의 시선 지호에게 몰려있다.
지호
아빠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이 되는 거였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면 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아빠는 친구랑 놀지도 않고
여자도 절대 안 만나고 공부만 열심히 하셨다고 합니다.
뒤에 서 있던 어른들이 웃는다.
지호
아빠는 대통령은 못되었지만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되셨습니다.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아빠에겐 여자친구가 많이 생겼는데 그 중에서 제일 예쁜 사람을 골라서 결혼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엄마입니다.
아이들 일제히 뒤를 돌아본다. 뒤에 서 있던 다소 뚱뚱한 여인 하나가 민망해하며 웃는다. 교실 뒤 쪽에 앉은 아이들 수근거린다.
아이1
쟤네 아빠 공부 너무 많이해서 시력이 안 좋은가 봐.
아이2
큭 그러게말야.
지호
현재의 달콤한 유혹을 포기하면 달콤한 인생이 보장된다.
바로 우리 집 가훈입니다. 전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합니다.
지호가 발표를 마치자 아이들과 어른들 박수를 친다.
담임
지호는 훌륭한 아빠를 둬서 참 좋겠다 그죠?
(아이들 대답) 자 다음은 최나래 !
해갑의 막내딸 최나래(9)가 앞으로 나가서 서고 봉희가 미소와 함께 손을 살짝 흔든다.
나래
(또랑또랑) 우리 아빠는 공무원을 국가의 앞잡이라고 싫어하십니다.
지호엄마 어이없는 표정이고 담임이 당황해한다.
나래
그 이유는 국민에게 뻔한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cut to) 국민연금관리공단. 여직원이 해갑을 마주하고 서 있다.
여인
선생님, 국민연금은 은퇴자의 생활을 도와주는 선진 사회시스템입니다.
변변한 저축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겠죠?
해갑
그런 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오.
여인
굶어죽는 사람을 나라에서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겠어요?
해갑
하! 나라가 언제부터 굶는 사람들을 챙겼습니까?
여인
선생님은 노인이 돼서 비참하게 죽고 싶은 건 아니시죠?
해갑
지금 협박하는거요 공무원이?
여인
국민연금 납부는 국민의 의무입니다. 계속 안내시면 재산이 차압됩니다!
해갑
멋대로 정해놓고 국민의 의무다?
좋소. 그럼 난 오늘부터 국민 안합니다.
여인
예? 이민 가시게요?
해갑
이민을 왜 가. 여기 사는 채로 국민노릇 관둔다고.
한국 사람이라고해서 반드시 한국 국민이어야할 이유는 없어.
(다시 교실)
봉희 므흣한 얼굴로 서 있고 지호와 지호엄마를 제외한 사람들 재밌어하는 얼굴들이다.
나래
또한 정부는 부자들 세금은 적게 낼 궁리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뜯어가려고 애쓰는
집단이라고 하셨습니다.
(cut to) 계고장 스티커를 붙이는 남자(한전직원). 뒤에서 손이 나와서 스티커를 확 떼어낸다. 해갑이다.
한전직원
(용지를 주며)
마지막 계고장인데요. 이달 말일까지 전기요금 안내시면 전기 끊습니다.
꼭 내시고요, 내시면 저한테 연락 한번 주세요.
해갑
(물끄러미 용지를 바라보다)
TV 수신료를 빼라고.
한전직원
예?
해갑
kbs가 민영방송과 마찬가지로 광고로 돈을 벌면서 왜 시청료를 받아?
한전직원
그건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영방송 수신료는 국민의 의무입니다.
해갑
(물끄러미본다)
(cut to)
이층에서 낡은 티비 한 대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한전 직원 기겁을 한다.
해갑
한번만 더 귀찮게하면 그 텔레비전처럼 박살을 내줄테다.
(다시 교실)
교실분위기 사뭇 달라져있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나래의 아빠소개는 계속된다.
나래
아빠는 학교도 꼭 다닐 필요는 없다고 하십니다. 아빠가 다녀봐서 아는데 학교는 국가가 국민을 지배하기 편하게 세뇌시키기 위해 있으며 인간이 한 번 세뇌당하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cut to)
해갑이 혼자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가게 안에 놓여있는 대형티비에서는 국가간 축구경기가 방송되고 있고 대부분의 손님들 티비에 열중하고 있다. 사람들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해갑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너무 시끄럽잖아.
손님
이봐요 이거 한일전이야. 월드컵 최종예선이라고!
해갑
그래서 뭐.
손님
(눈을 부라린다) 당신 애국심 없어?
해갑
지랄하네. 애국심 물말아 먹었다.
뭔놈의 애국심이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와.
해갑이 일어나 티비로 다가가 전원을 꺼버리더니 리모컨을 막걸리 주전자에 담그고 씨익 웃는다. 사람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해갑을 본다. 잠시 후 집단으로 해갑에게 달려들고 난투극이 벌어진다.
(다시 교실)
사람들 어처구니없는 표정이고 봉희가 고개를 스윽 숙인다.
나래
인류의 불행은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몰라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 가훈은 가지지 말고 배우지 말자입니다.
담임
(심각한 표정으로) 최나래, 아빠나 엄마 오셨니?
나래
(봉희에게 시선)
담임이 봉희를 본다. 아이들이 뒤를 돌아본다.
봉희
(웃으며) ...나래 엄마예요
담임
(애써 웃으며) 어머니. 나래가 벌써 사춘기인걸까요?
봉희
(상냥하게)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담임과 학부모들, 황당한 얼굴로 봉희를 본다.
지하철 입구 (D)
민방위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거리. 인도는 비어있고 차도엔 차들이 멈춰있다. 지하철역 안에서 사람들이 올라온다. 민방위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계단 옆으로 붙어 서는데 해갑은 멈추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간다. 훈련 요원 하나가 호루라기를 불며 해갑을 부른다.
민방위 요원
이봐요! 훈련하고 있는 거 안보여요? 들어와요.
한 번 돌아볼 뿐 그대로 걸어 나가는 해갑. 열 받은 요원이 해갑에게 뛰어간다. 머리와 수염으로 가려진 해갑의 얼굴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요원.
민방위 요원
훈련 중이라는 말 안 들립니까?
해갑
(빤히 보다가) What?
민방위 요원
(당황) 어... 아아이엠 소리. 위 해브...
해갑
지랄하네. 영어만 쓰면 그저 굽신대지...
민방위 요원
(벙찐) 장난합니까?
해갑
이런 훈련을 왜 해.
민방위 요원
몰라서 물어요? 전시상황을 대비한 국민의 안위를 위한 훈련아닙니까!
해갑
그럼 전쟁 안 나게 하면 되잖아.
훈련요원
(황당)
해갑
(어깨에 손을 올리고) ... 전쟁 안 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싶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건넨다) 알고 싶으면 찾아 와.
해갑, 스크랩된 신문기사를 요원에게 쥐어주고는 정지된 도시 속으로 걸어 나간다. 손에 쥐어진 기사를 보는 요원. 기사에는 해갑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화면에 크게 팡팡 뜨는 자막)
‘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최해갑/ 최근작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 살 자유’/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잇단 수상/
혹자는 그를/ 개혁을 실천하는 몽상가라고 부르고/ 혹자는 정부스나이퍼라 부르며/ 혹자는 진정한 자유인이라부른다/
훈련 요원, 머리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해갑의 뒷모습을 본다.
학교운동장 (D)
해갑의 외아들 최나라(13), 친구들(관모, 성학이)과 농구를 하며 놀고 있다.
관모
나라 너네 아빠 무사하셔?
나라
왜?
관모
위험인물이잖아.
나라
(말없이 슛, 노 꼴)
관모
(리바운드하며) 너네 아빠 용기있는 사람이래. 우리 아빠가.
나라
(공 뺏어가며) 탐나면 너 가져.
관모
...탐나지는 않아.
나라
임성학. 오늘 학원 가지말고 모여라가서 만화보자.
성학
안 돼. 몇 번 빠진 거 들켜서 어제 엄마한테 경고 먹었어.
봉희와 나래가 운동장을 나오고 있다. 농구대 앞에서 놀고 있는 나라를 부르는_
봉희
나라야!
나라
(봉희를 보는) 엄마! 학교 왜 왔어?
봉희
나래 발표회 있었어. 집에 같이 가자. 더 놀거니?
나라
친구랑 좀 더 놀고 갈게.
봉희
그래 그럼. 우리 먼저 간다.
봉희와 나래가 돌아서는데 봉희에게 뛰어오는_
나라
엄마!
봉희
응?
나라
그 아저씨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는거야?
봉희
글쎄. 볼 일 끝나면 가시겠지. 불편해?
나라
나보다 누나가 더 불편해해. 화장실도 맘대로 못간다고.
봉희
금방 가실거야. 좋은 분이니까 잘해드려.
나라는 친구들한테 다시 뛰어가고 봉희와 나래가 학교를 나간다.
학교 교문 앞 (D)
몇 명의 여자아이들이 학교 정문 앞에 모여 소녀시대 춤을 따라하며 놀고 있다. 학교에서 나오는 봉희와 나래. 그 중 한명이 나래를 부른다.
아이1
나래야. 잘 가.
나래
응 잘 가.
아이2
나래야 너 부러워. 학원 안 가두 되구.
아이1
그래. 너 진짜 좋겠다. 우리에게도 자유를 달라!
꺄르르 웃는 여자아이들. 학원버스 와서 서고 아이들을 태우고 떠난다. 나래가 멀어지는 학원 버스를 물끄러미 본다.
봉희가 나래를 본다.
봉희
나래야. 너두 학원 다니고 싶어?
나래
그래도 돼?
봉희
왜 안 돼?
나래
아빠가 싫어하시잖아.
봉희
싫어하시겠지만 그렇다고 하겠다는 걸 못하게 하신 적은 없잖아.
나래
응...
봉희
아빠한테 말해볼까?
나래
(생각해보더니) ... 안 다닐래.
봉희
왜?
나래
내가 학원가면 다른 누군가가 학원을 못 다니게 될 거야.
내가 하나를 가지면 다른 누군가가 하나를 잃는 거니까
봉희
...나래야. 너 아빠 영화 봤니?
나래
(끄덕인다) 아빠 팬까페에서.
봉희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빠 영화는 좀 더 커서 봐도 되는데...
동네 (D)
허름한 동네를 걸어오는 해갑. 사람들, 로빈슨크루소같은 행색의 해갑을 쳐다보고 지나간다.
찻집 들녘 1층 (D)
2층짜리 임시가옥. 1층은 전통찻집이고 2층은 가정집이다. 간판 대신 ‘들녘’이라고 적힌 깃발이 꽂혀있다. 가게 안엔 양복차림의 남자 둘이 차를 시켜놓고 신문을 보고 앉아있다. 주방 앞 테이블에선 개량한복을 입은 30대 남자(홍만덕)가 라면을 먹고 있다.
남자2
라면냄새 좋습니다.
만덕
(사투리억양에 표준말 쓰려고 애쓰는) 죄송합니다. 제가 밥을 몬 먹어서.
남자1
드세요 드세요. 근데 여주인께서 오늘은 안보이시네.
만덕
예. 오늘 발표회 때문에 애들 학교에 가셨습니다.
... 여기 단골이신가봅니다.
남자1
단골은 아니고...
근데 그 쪽은... 여기 종업원이신가...?
만덕
아입니다. 저는 여기 바깥어른 고향 후배됩니다.
남자1
아... 고향후배.
근데 요새 바깥어른 통 안보이시는 거 같던데... 어디 가셨나...?
이때 문이 벌컥 열리고 해갑이 들어선다. 남자1,2 신문으로 얼굴을 스윽 가린다.
해갑
봉희야 !
만덕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절한다.
만덕
선배님 저 만덕입니다.
해갑이 만덕을 본다.
학교운동장 (D)
나라와 관모 성학이 학교 정문을 나와 걷는다. 골목을 지나치던 나라가 다시 가서 골목 안을 본다. 껄렁한 중학생 무리들이 초등학생 하나를 둘러싸고 겁을 주고 있다.
나라
저거 혁이 아냐?
성학
혁이 맞네. 나라야 그냥 가자.
성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혁이를 윽박지르고 있는 기수.
기수
빨리 내놔 !
혁이
안 돼요. 이거 학원비에요
기수
갚으면 되잖아.
혁이
안 돼요. 엄마한테 죽어요.
기수
새끼 갚는다잖아 !
기수가 혁이 손을 억지로 벌려 쥐고 있던 만 원짜리 몇 장을 나꿔챈다. 어쩌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서 있는 혁이. 기수가 다가오는 나라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나라
(돌아본다) 잠깐만!
기수
(돌아본다)
나라
돈 돌려줘요. 혁이 아빠없이 가난해요.
기수
뭐?
나라
중학생이 초딩 돈이나 뜯고 부끄러운 줄 알아요.
싸늘한 얼굴로 기수가 나라에게 다가온다. 관모와 성학이 벌벌 떨며 구경하고 서 있다.
기수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나라
(눈에 힘주지만 좀 떨린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요.
기수
(얼굴 일그러진다)
나라의 얼굴에 기습적으로 주먹이 날아오고 나라 순식간에 코피가 터진다.
기수
너 돌았지. 하긴 얘네 식구들 다 제정신 아니잖아. 구제불능 불순분자.
나라가 코피를 철철 흘리며 기수를 노려본다. 기수 눈을 치켜뜨고 낄낄댄다.
기수
불순분자가 뭔지 아냐? 남 잘사는 거 배 아파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거든.
기수 사정없이 나라 배를 가격한다. 나라가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는다.
패션디자인학원 (N)
해갑의 첫째 딸 최민주(18), 다부진 인상이다. 실습실에 혼자 남아 연필자국을 따라 천에 초크로 그리고 있다. 이미 작업된 수십 장의 천이 옆에 쌓여있다. 소리와 함께 민주의 핸드폰에 ‘우리 딸, 아빠 오셨으니까 일찍 와~’ 라고 뜬다. 민주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민주. 바바리를 입은 땅딸한 남자(이선생, 30대)가 강의실 창가에 서서 민주를 보고 웃는다.
민주
(놀라는) 선생님!
찻집 1층 (N)
봉희가 주방에서 부추지지미를 굽고 있고 해갑과 만덕이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나래가 지지미접시를 테이블로 갖다 놓는다.
해갑
개발?
만덕
예. 자식들 회유에 집이며 땅이며 팔고 다 나가고 오갈 데없는 노인분들만 남아계시지예.
해갑
도대체 손바닥만한 섬에 뭘 개발한다는거야
봉희가 지지미접시를 들고 테이블로 와서 앉는다.
만덕
형수님 죄송합니다 며칠간만 신세 좀 지겠습니더.
해갑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있어.
봉희
(해갑을 힐끗 본다) ... 만덕씨 아직 그 집에 살아요?
만덕
예. 묘지들은 다들 이장해 나가고 그 땅이 이제 나라땅이 됐십니더.
거다가 헬기장을 만듭답니더.
해갑
나라땅이라니? 거기가 왜 나라 땅이야?
만덕
그게 애매해졌심더. 형님 할아버지가 그 땅을 섬에다가 내놓았잖습니까.
근데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땅주인을 찾다보이 그 땅이 개인이 아이고 들섬으로 돼있으니까
나라가 홀라당 먹은 거지예. 그걸 주도한 사람이 김하숩니더.
해갑
김하수?
만덕
국회의원있잖습니까.
문이 열리고 나라가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온다.
해갑
우리 아들 오랜만이네. 이리와서 막걸리 한잔 해.
나라가 대답없이 계단으로 간다. 나라의 뒷모습을 보는_
해갑
어이 최나라. 돌아서봐.
나라
(돌아서면 얼굴 엉망이다)
봉희
어머 나라야! 너 누구랑 싸웠어?
나라
...
해갑
싸운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았구만.
쇠파이프로 무릎 뒤 쪽을 후려치랬잖아. 그거 한 방이면 니가 이겨.
나라
쇠파이프를 어떻게 갖고 다녀.
해갑
아빠 젊었을 때는 매일 갖고 다녔다. 야구방망이라도 없어?
나라
됐어. 아빠랑 말 안 해.
나라가 계단을 올라가고 봉희가 해갑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는 나라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간다.
해갑
(이층에 대고) 두려움을 버려라! 그게 중요해!
(만덕을 보며) 저 놈이 요새 사춘기야.
만덕
초등학생인데 벌써예?
해갑
우리 때하고는 다르지.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저놈 오줌 눌 때 훔쳐봤는데 고추에 털이...
해갑, 나래를 보고는 입을 다문다.
동네 (N)
이선생이 민주와 함께 동네를 걸어온다.
이선생
이 동네는 왜 이리 깜깜하냐.
민주
우리 아빠가 가로등을 깼어요. 이놈의 도시는 밤에도 너무 밝대요.
cctv도 눈에 띄면 다 망가뜨려요.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는 거 기분나쁘다고.
이선생
니가 아빠를 닮아서 특이하구나.
민주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난 세상에서 아빠같은 남자가 제일 싫어요.
이선생
아빠가 어떠신데?
민주
가난을 무슨 훈장처럼 여기는 몽상가요.
이선생
(흥미로운 표정)
민주
선생님, 보시다시피 저 잘 살고 있으니까 이제 오지마세요.
학교 다니는 애들이나 신경쓰세요. 전 걔네들이 더 걱정이에요.
이선생
(빤히 본다) ...
민주
(당황)왜요?
찻집. 이층/거실/방 (N)
불 꺼진 거실. 민주가 계단을 올라와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간다. 나래 잠들어 있다. 나래의 가슴에 놓여있는 책,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민주, 어이없이 웃으며 돌아서는데_
나래
언니... 오빠 고추에 털났대.
민주
(돌아보는) ...아빠 그랬지.
나래
(끄덕끄덕)
민주
(한숨) 정말 싫다. 이 집을 떠날 때가 됐어.
나라방 (N)
만덕이 바닥에 누워있고 나라는 스탠드를 밝힌 채 책상에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다.
나라
...아저씨,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알아?
만덕
... 알지.
나라
가르쳐줘.
만덕
정.공.법
나라
정공법?
만덕
두려움의 대상을 제거하는거다.
나라
제거? 죽여?
만덕
그럴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나라
...아저씨. 우리 아빠하고 엄마가 불순분자야?
만덕
... 때린 놈이 그라더나.
나라
...
만덕
아빠와 엄마는 왕년에 용감한 투사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셨제.
나라
어떻게 ?
(cut to)
대기업 앞 노동자시위대. 그 속에 젊은 봉희가 보인다. 젊은 해갑이 앞에서 메가폰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여줍시다!!!’ 라고 외치자 시위대 일제히 드러눕는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 들리고 비명과 함께 사람들 흩어진다. 봉희만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 자리에 누워있다. 봉희가 눈을 떴을 때 해갑이 내려다보고 서 있다.
만덕
...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말이다.
(cut to)
젊은 해갑과 봉희가 흔들리는 배 위에 서 있다. 봉희의 배가 불러있다. 두 사람의 시야로 들어오는 섬 하나.
만덕(소리)
경찰 수배가 떨어졌을 때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고향인 들섬으로 오셨지.
cut to,
봉희는 섬사람들의 도움으로 민주를 낳고있고 해갑은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끌려간다. 해갑이 형사들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만덕(소리)
아빠는 모진 고문에도 단 한 명의 동료도 팔지 않았다.
(cut to)
감옥에서 나오는 해갑을 봉희와 꼬마 민주가 맞는다. 꼬마 민주가 해갑에게 두부를 내민다.
(나라 방)
만덕
옛날 아빠와 엄마 별명이 뭔지 아나.
나라
아니...
만덕
아빠 엄마 이름이 뭐꼬.
나라
최 해갑, 안 봉희
만덕
최 게바라와 안 다르크다 !
만덕과 나라의 시선이 어딘가에 머문다. 시선을 따라가면 벽에 나란히 붙은 체 게바라와 잔다르크 화보.
그 위로_
만덕(소리)
... 저건 누가 붙였노.
나라(소리)
아빠가.
만덕(소리)
...
나라(소리)
...아저씨 우리 아빠 얘기 다 믿지는 마.
찻집. 1층 (N)
음악에 맞추어 해갑과 봉희가 부둥켜안고 부루스를 추고 있다.
봉희
할아버님은 왜 들섬을 두고 지도에도 없는 섬을 찾겠다고 떠나신거야?
해갑
들섬에서 살 수 없도록 몰아냈으니까.
봉희
누가?
해갑
들섬을 팔아서 이익을 보고 싶었던 사람. 그 놈들한테 할아버지가 눈엣 까시였겠지.
봉희
...피는 못 속인다 진짜.
해갑이 봉희의 허리를 꺾으며 속삭인다.
해갑
다르크. 방으로 가자.
찻집 전경(N)
찻집 들녘에 불이 꺼진다.
찻집 1층 (D)
해갑이 보자기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있고 봉희가 머리를 자르고 있다. 디자인 가방을 매고 민주가 내려온다.
해갑
우리 큰 딸. 아빠 왔다.
민주
응 오랜만. 나 늦었어.
민주,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나간다. 뒤이어 나라가 내려온다.
나라
다녀오겠습니다.
해갑
어디가.
나라
어디긴. 학교지.
해갑
왜 날이면 날마다 사서 고생이냐.
나라
뭘?
해갑
뭐하러 학교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냐고. 정가고 싶으면 하루걸러 하루씩만 다녀.
그래도 괜찮다.
나라
(괜히 나래에게 짜증) 최나래, 뭐해 빨리 안 내려오고!
나래
(내려오며)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해갑
나래 넌 안 돼. 학교가지 말고 아빠하고 놀자.
나래
안 돼 아빠. 나래는 학교가 재밌어.
해갑
너 이미 세뇌당했구나. 슬프다.
나래
엄마 오늘 배식 당번인 거 알지?
해갑
아빠가 갈거다.
나라
안 돼! 아빠 학교 오지 마. 아빠 학교 오면 나 도망가버릴거야!
나라 뛰어나가고 나래가 미안한 얼굴로 해갑을 돌아보며 나라를 따라간다.
봉희
(보자기 걷으며) 됐어. 이제 머리감고 면도 해.
해갑이 이층으로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만덕과 만난다.
해갑
넌 또 어디가. 이렇게 일찍.
만덕
고향 친구 좀 만나러갑니다
해갑
(만덕이 든 가방을 본다) 뭐냐?
만덕
...친구줄 선물입니다.
해갑
(코를 킁킁거린다) 냄새가 구수하다..?
만덕이 애매하게 웃으며 나가고 해갑이 나가는 만덕과 만덕이 들고나가는 물건을 돌아보고는 이층으로 올라간다.
동네 (D)
나라와 나래가 걸어가고 있고 만덕이 뒤에 따라온다.
만덕
야들아. 아저씨한테 지하철 타는 거 좀 가르쳐 도고.
나라
어디 가게?
만덕
역삼역.
나라
아저씨 지하철 한 번도 안타봤어?
만덕
(끄덕인다)
나라
쫌 복잡한데...
(나라가 가방에서 지하철노선표를 꺼내 보여준다) 내 설명 잘 들어.
만덕
(끄덕인다)
찻집 1층 (D)
봉희가 할머니 한 분(태경할머니)과 마주 앉아있다.
봉희
(차를 따르며) 드세요. 속이 따뜻해질거예요
태경할머니
나래는 부자녀캠프 가?
봉희
아뇨. 나래아빠가 보내겠어요?
태경할머니
내가 속이 상해죽겠다. 우리 태경이는 오늘도 울면서 학교를 갔어.
봉희
태경이가 부자녀캠프 가고싶대요?
태경할머니
(끄덕인다) 아빠하고 둘이 여하룻밤 자고와야 된다는데 태경이는 아부지가 없는데 어째 가냔말이다.
근데 그거 가고 싶다고 몇날며칠을 떼를 쓰고 운다.
해갑이 이층에서 내려온다.
해갑
안녕하세요 태경할머니. 부자녀캠프가 뭡니까.
태경할머니
나래아빠 오셨네.
봉희
시간됐어. 당신은 빨리 학교 가.
학교 (D)
해갑이 학교로 들어온다. 복도 입구에 놓인 음료수 자판기를 유심히 보는 해갑. 복도를 지나가면서 교장실 유리 너머를 본다. 교장이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자고 있다. 못마땅한 해갑의 표정.
교실 (D)
탁자에 카메라가 세팅되어있는 교실. 몇몇 반찬이 한 쪽에 치워져있다. 해갑이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에게 밥과 반찬을 담아주고 있다. 한 아이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서 있다.
해갑
왜? ....더 줘?
아이1
다른 반찬도 주세요
해갑
다른 반찬 뭐?
아이1
(치워진 반찬들을 가리키며) 저거요.
해갑
안 돼!
저런 음식들을 먹으니까 니가 힘도 없고 약하고 쪼그만한 거야!
아이1
나 우리 반에서 제일 커요.
해갑
...키만 큰 건 소용없다. 눈이 맑고 귀가 밝아야지.
(귀를 기울이며) 너 이 소리 들려?
아이1
(같이 귀기울이며) 무슨 소리요?
해갑
봐라. 니가 햄버거 피자 이런 거 좋아하니까 이 좋은 소리가 안 들리는거야.
아저씨는 들린다.
아이1
무슨 소린데요?
해갑
기다려봐. 햄버거 콜라 이런 거 안 먹으면 너한테도 들릴거다.
자 다음!
애가 고개를 갸웃하고 지나가고 나래가 배식판을 내민다. 해갑이 흐뭇한 얼굴로 나래에게 밥을 담아준다.
해갑
(작게) 아빠 오니까 좋지?
나래
(끄덕인다)
cut to_ 밥 먹고있는 아이들 앞을 왔다갔다하는 해갑. 아이 하나가 손을 든다.
아이
(카메라 가리키며) 카메라로 뭐 찍어요?
해갑
아저씨는 영화감독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 때 세상은 평화로웠고 인간은 행복했지. 인간에게 국민이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우리는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 비극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
13번! 13번 누구?
아이13
(아이 하나가 손을 든다)
해갑
이렇게 국가는 사람에게 번호를 붙인다. 편리하게 훈련시키기 위한 방도야.
나래짝꿍
(속삭인다) 저 아저씨 누구야?
나래
(선뜻 답 못한다) ...
해갑
복도에 놓여있는 음료수 자판기가 어떤 이유로 너희들이 돈을 넣어주기만을 기다리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나.
너희가 먹고 있는 음식의 맛과 질이 떨어진만큼 누구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는지 궁금하지 않아?
이때 교실문이 열리고 중년의 대머리 선생과 수위들을 데리고 들어선다.
대머리선생
당신 뭐야. 지금 뭐하는야.
해갑
뭘 말이오.
대머리선생
(핏대를 세운다) 애들한테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냔말이야!
이 카메라는 뭐고. 당신 누구야!
해갑
그러는 당신은 누구야.
대머리선생
끌어내.
해갑
(수위가 양쪽에서 해갑을 잡는다) 이번 기회에 애들에게 설명 좀 해주시지.
복도에 왜 자판기가 있는지 애들 음식이 왜 이따윈지...
대머리선생
(어깨를 친다) 이 사람이 진짜. 경찰 불러.
해갑
어허 왜이래. 뒤가 구린 인간이 꼭 폭력부터 쓰지. 꼭 대머리 독재자 닮아가지고.
대머리선생
(눈을 희번득이며) 뭐?
대머리선생이 머리로 해갑의 얼굴을 들이 받는다. 해갑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_
해갑
얘들아 봤지. 내가 먼저 안 때렸다.
해갑이 대머리선생에게로 돌진한다.
12. 파출소 (D)
해갑이 콧구멍에 휴지를 박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 옆에 눈이 퍼렇게 멍든 대머리선생 앉아있다.
대머리선생
처음부터 학부형이라고 밝혔으면 이렇게까지는 안했을겁니다.
해갑
당신은 밝혔어? 다짜고짜 끌어내라고했잖아!
대머리선생
요즘같은 세상에 낯선 사람이 교내를 어슬렁거리는데 누가 그냥 놔두겠어요.
경찰1
(대머리선생에게) 이 분 여기 단골입니다.
경찰2
(해갑에게) 이봐 아저씨 제정신이에요?
애가 다니는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면 어쩌자는거요. 애가 학교를 어떻게 다니겠어요.
해갑
당신들 그 학교 문제 있는 거 알아? 나를 조사할게 아니라
경찰2
시끄러워요. 이름!
해갑
내 이름 몰라? 단골인데?
경찰
(자판을 탁탁 친다) 최해갑.
주민번호.
해갑
내가 그 긴 걸 어떻게 외우나.
경찰
주민등록증.
해갑
없어. 짤라버렸어.
경찰
(황당한 얼굴)
해갑
지난 번 영화 찍을 때 주민등록증을 가위로 짤라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고.
그래서 내가 카메라 앞에서 잘랐지.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경찰2
(빤히 보다가) 김순경. 이 사람 잡아.
해갑에게 달려드는 경찰들, 해갑의 몸을 잡고 손을 강제로 잡는다. 경찰들에 포위 된 채 버티는 해갑, 손을 꽉 쥔 채로 지문을 찍히지 않으려고 버틴다. 문이 열리고 봉희가 파출소로 들어선다.
29. 파출소 앞 (D)
파출소를 나오는 해갑과 봉희를 차 안에 앉은 (#7의) 남자 둘이 카메라로 찍는다.
29. 공안실 (D)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해갑과 봉희의 다정한 모습이 떠 있다. 그 옆 매직판에 써 있는 글씨들을 카메라가 훑는다.
최해갑(정부고발다큐 영화감독, 80년대 대학생 노동자 연대 파업시위주동으로 체포 4년 수감)/
증조부 최보령(일제시대 들섬봉기주동, 행불)/ 부 최명환(정부청사점거농성주동, 행불)/ 처 안봉희(80년대 학생노동운동주동)/
매직판 앞에 막대를 든 중년 남자(공안실장) 서 있고 그 앞 양쪽에 #7의 남자둘 (공안 1,2) 서 있다. 카메라가 뒤로 확 빠지면 한 남자의 뒤통수가 나타난다.
뒤통수
완벽하구만.
실장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지금은 일반인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뒤통수
좋아.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빈틈없이 준비해.
실장
예. 이미 몇 달전부터 (공안1,2를 가리키며) 얘들이 붙어 다닙니다.
뒤통수
(공안1,2를 본다) 똑똑한 애들이야?
실장
(약간 망설이다가) ... 학벌이 좋습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공안1,2. 누가 봐도 그리 똑똑해 보이지는 않는다.
뒤통수
지난번 인도네시아 일 있고나서 우리가 흥신소보다도 못하다는 말 듣는다는 거 알지.
실장
... 죄송합니다.
뒤통수
(봉희를 유심히 본다) ... 그나저나 안사람이 미인이구만.
실장
저 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저 여자 아주 무시무시한 독종입니다.
(cut to)
(앞 씬의 노동자시위대 현장 연결) 해갑을 올려다보며 누워있던 봉희,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떨어진 지랄탄을 집어 경찰에게 냅다 던진다. 놀라운 속도로 멀리 날아가는 지랄탄을 보며 놀라 입을 벌리는 해갑.
실장(소리)
그 뿐이 아닙니다.
(cut to)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제히 옥상을 보고 있다. 물에 젖은 듯한 봉희가 결연한 얼굴로 건물 옥상에 서 있다.
실장(소리)
농성이 길어지면서 분열의 조짐이 보이자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였죠.
‘중단없는 투쟁!’을 외친 봉희, 몸에 불을 붙이려고하는데 사람들 틈에서 고무호수를 든 해갑이 뛰어나온다.
해갑
(울부짖는다) 안 돼!!!
해갑이 봉희를 겨냥해 물을 쏘고 물을 맞은 봉희가 뒤로 사라진다.
뒤통수(소리)
쯧쯧... 미모가 아깝구만...
한정식집 (D)
방 하나에서 떠들썩한 소리 들려오고 있다. 방으로 들어가면 들섬이 고향인 젊은이들 예닐곱 명이 모여 있고 식사와 함께 낮술을 한 듯 다들 기분 좋게 취해있다. 이때 30대 남자 하나(윤태)가 40대 남자(박상무)를 데리고 들어온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박상무
자자 그냥 앉아계세요. 식사들은 다들 맛있게 하셨습니까.
윤태
인사들 해라. 티브로 박상무님이시다.
들섬남1
아 예. 반갑습니더.
박상무
여러분의 고향인 들섬 발전을 위한 우리 티브로의 의미있는 사업계획이
환경단체의 무조건적인 트집잡기로 인해 법정으로 간 사실은 알고 계실거고.
들섬남들
(끄덕인다) 예 알지요.
박상무
우리 어르신들 아드님들 도움이 아니었으면 들섬의 발전이 또 한 번 좌절될 뻔 했어요.
변호사님 말에 의하면 현재 여러분의 협조로 인해 재판이 우리 티브로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 같다고 합니다.
들섬남들 일제히 박수친다.
들섬남들
잘 됐네.
박상무
우리 윤태회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윤태
아입니다. 저는 오늘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촌 놈이 서울 구경도 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고향 친구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우리 들섬 대표로서 티브로개발 본사에도 가보고말입니더. 티브로갔더니 사장님 상무님들이 내한테 다 잘부탁한다꼬 서로 손을 잡을라하고...
들섬남1
(비웃는) 점마 저거 감투 쓰더마는 출세했네.
박상무
여러분들이 저희들한테 협조한 이상 들섬개발은 퍼펙트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아 여기에는 들섬에 리조트가 세워지면 우리 티브로의 브라더가 되실 분도 계시고.
들섬남3
브라더예?
박상무
(웃으며) 형제가 될 거라는 겁니다. 저희 티브로의 브로가 부라더라는 뜻아닙니까.
(잔을 들며) 자 부라더끼리 한 잔 합시다.
들섬남들 일제히 잔을 든다.
박상무
들섬의 미래를 위하여!
윤태
티브로의 발전을 위하여!
이때 문이 벌컥 열린다. 만덕이다. 당황하는 사람들.
윤태
마만덕이 니가 여기 왠 일이고
만덕
한 번 모이자했는데 콧빼기도 안보여주더마는 여 다 모여있네.
윤태
(나무란다) 여는 니가 올 자리가 아이다. 퍼뜩 문 닫고 가라.
만덕
너그들한테 꼭 필요한 게 있어서 갖고 왔다.
(만덕이 들고 온 물건의 보자기를 풀자 다들 뭔가하고 본다)
보자기를 다 푼 만덕이 항아리 뚜껑을 열더니 준비해온 똥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만덕
엣다 이거나 처무라!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 여기저기 도망간다.
만덕
고향팔고 노모팔아서 기업에 굽신대는 이 지렁이만도 못한 놈들아!!
디자인학원 강의실 (D)
빈 강의실.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이선생. 민주가 줄자로 이선생의 신체사이즈를 재고 있다.
이선생
뭐하는건지 물어도 되겠니.
민주
제가 선생님 결혼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이선생
뭐?
민주
전 선생님처럼 신체결함이 많은 남자를 위한 수트를 만들 거예요.
선생님이 짧은 팔다리를 감추기 위해 바바리만 입는다는 거 다 알아요.
이선생
(...)
민주
선생님같은 외모에 이런 바바리 입으면 변탠줄 알고 여자들이 도망가요.
이선생
... 민주 아빠 팬까페 있는 거 알아? ‘아무것도 가지지않는 사람들’
민주
그래서요?
이선생
... 나 거기 가입했다.
민주
(본다)
커피숍 (D)
젊은 남녀들 십여 명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 사이에 이선생.
시삽
여기 이 분은 새로 가입하신 이평수회원입니다.
이로써 까페회원이 한자리수를 넘었습니다.
회원들 박수친다.
이선생
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회원
최감독님 영화는 다 보셨어요?
이선생
예. ‘주민번등록증을 찢어라’ 빼고는 다 봤습니다.
회원
어떠셨어요?
이선생
혼란스럽더군요.
회원
(웃으며) 처음엔 다 그래요.
시삽
감독님 오셨습니다!
해갑이 다가오고 회원들 열렬히 박수를 친다.
해갑
아니 무슨 박수까지...
시삽
안녕하세요 감독님. 제가 아가사 시삽입니다. 직접 모실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해갑
나 정도가지고 무슨 영광이야. 젊은이가 그렇게 꿈이 작아서야 쓰나.
회원들
아닙니다 감독님!
해갑
그냥 겸손한 척 해봤어. 으하하하
문이 열리고 공안1,2 들어와 회원들 자리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회원3
감독님.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국민이길 거부하고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해갑
자네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뭐지?
회원3
그야 뭐 남들처럼..
해갑
남들처럼 사는 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네는 이 나라가 원하는 훌륭한 국민이야.
탈퇴해.
사람들 웃는다. 이선생이 쭈뼛거리며 손을 든다.
이선생
감독님 작품들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해갑
아니 내 영화가 무엇을 말하다니.
내 영화를 다 봤는데도 그걸 모른다면 자넨 이 나라가 원하는 훌륭한 국민이야.
자네도 탈퇴해.
사람들 폭소가 터지고 이선생도 웃는다. 공안1,2 커피를 마시면서 해갑과 회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공안1
(혀를 차며) 젊은 것들이 이 시간에 저러고들 있으니 취직을 못하지.
그러면서 국가를 왜 원망해?
공안2
근데 최해갑 후배라는 자말입니다. 안 따라붙고 그냥 놔둬도 될까요?
공안1
멍청한 놈.
그 놈은 학력도 중졸에다 섬 밖으로 나온 적도 없는 놈이야.
그런 놈을 뭘 감시해. 최해갑 저 인간이나 잘 감시해.
공안2
...
공안들 뒤로 해갑이 일어서는 게 보인다.
회원
감독님 벌써 가시게요?
해갑
다음엔 부르지 마. 감독은 영화로 말하는거야.
그리고 너희들 뭉쳐다니지 마. 이 나라는 뭉치면 잡아간다.
회원들 또 까르르 웃고 해갑이 까페를 휘적휘적 걸어 나간다.
도로/다리 위 (D)
해갑이 한강 다리를 걷고 있다. 그 뒤를 공안 1,2가 따르고 있다. 다리 중간에 서서 한참동안 먼 곳을 응시하는 해갑. 해갑 뒤로 강을 보는 척하고 나란히 서 있는 공안1,2.
공안1
(혀를 찬다)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야.
공안2
위험인물 같아보이진 않는데...
공안1
그래서 니가 초짜라는거야.
최해갑은 뼛속까지 물든 인간이다. 절대 방심하면 안 돼.
해갑이 다시 걷는다. 따라가는 공안1,2.
공안1
(절뚝거리며) 저 인간 집까지 걸어갈 참이야?
해갑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덩달아 걸음을 멈추는 공안들. 그냥 가나 싶었던 해갑이 휙 돌아본다. 그대로 굳어버린 공안들. 해갑이 공안 둘에게 다가온다. 긴장한 채 꼼짝 못하는 그들에게 해갑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공안1,2
?
해갑
싸인해줄 테니까 종이 내놔.
공안1
예?
해갑
아까 봤어. 커피숍에서.
공안1,2
!
공안2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친다. ‘젊은이여!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고 휘갈겨 쓴다. 공안1,2 수첩을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해갑이 공안1,2에게 손을 내민다.
공안1,2
??
해갑
꺼내!
공안1
예?
해갑
주민등록증. 내 팬들은 다 찢었어.
공안1,2
(잠시 생각하다) ...아!
주섬주섬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공안1,2, 서로 마주 한 번보고는 주민등록증을 반으로 팍 쪼갠다. 해갑이 씨익 웃고는 걸어간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공안들.
찻집 앞 (N)
문 앞에서 만덕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민주가 집 앞으로 온다.
만덕
인자 오나.
민주가 대답없이 만덕을 스쳐 안으로 들어가다가 돌아본다.
민주
아저씨.
만덕
(본다)
민주
아저씨한테 똥냄새 나요.
만덕
!
찻집 2층 (N)
민주가 2층으로 올라오면 옷을 들고 해갑이 서 있다. 민주의 커다란 가방을 보는_
해갑
그 큰 가방에는 뭐가 들었냐. 니가 만든 옷이 들었냐.
민주
... 내가 만들고 싶은 옷 디자인 스케치.
해갑
아빠 옷도 만들어 줄거지?
민주
무슨 옷?
해갑
우리 큰 딸 결혼할 때 입을 멋진 옷.
민주
(시니컬하게) 난 결혼 안 할껀데. 그럼 옷 필요없겠네.
민주 방으로 쌩 들어간다.
해갑
쌀쌀맞기는...
만덕이 2층으로 올라오자 해갑이 옷을 건넨다.
해갑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버려.
만덕
예.
해갑
그 개량한복 꼭 버려. 알았어?
만덕
예.
해갑
(가다말고 돌아서며) 그런 방법으로는 안 돼!
만덕
!
나라 방 (N)
만덕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나라가 만덕이 가방 안을 들여다 보고있다.
나라
(놀란 얼굴로) 아저씨 이거 뭐야?
만덕이 나라에게서 가방을 뺏는다.
만덕
와 아저씨 가방을 뒤지노.
나라
엄마가 빨래할 거 갖고 오라고 해서.
...근데 아저씨 그거 폭탄이지.
만덕
...다이나마이트다.
나라
어디서 났어?
만덕
섬 공사장에 많더라.
나라
왜 갖고 왔어?
만덕
... 쓸데가 있다.
(나라를 빤히 본다) 사내끼리 비밀이다. 알제
나라
(끄덕인다)
만덕이 돌아서서 옷을 벗고 해갑이 준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원중 앞 (D)
나라와 성학 관모와 혁이가 골목에 숨어서 중학교 정문을 지켜보고 있다. 잔뜩 긴장한 얼굴.
성학
진짜 할거야? 우린 혁이하고 안 친한데...
나라
이젠 혁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야.
성학/관모
니 문제?
나라
(끄덕인다) 겁나면 빠져. 비겁하다고 안 해.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건 없으니까
성학/관모
고맙다.
성학이 돌아서자 관모도 따라간다. 혁이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
나라
(혁이에게) 너도 가도 돼.
혁이
난 쟤네들하고는 달라.
기수와 똘마니들이 껌을 짝짝 씹으며 정문을 걸어오는 게 보인다. 긴장하는 나라와 혁이. 심장이 파닥거린다.
기수가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 결심한 듯 나라가 기수 앞으로 나간다.
기수
어이 최나라. 덜 맞은 모양이지?
나라
사과 받으러 왔어.
기수
뭐?
나라
우리 아빠엄마보고 불순분자라고 한 거 사과해. 사과하면 용서해주께.
기수
이 새끼가 약을 처먹었나
나라
(결연하다) 불순분자는 남의 돈이나 뺏으면서 사는 정기수 바로 너 같은 놈이야!
표정 일그러지는 기수, 짐승처럼 나라에게 달겨든다. 기다렸다는 듯 나라가 괴성을 지르며 기수와 맞붙는다. 머리로 기수의 가슴팍을 들이받아 순식간에 담벼락까지 밀어붙인다. 똘마니가 뒤에서 나라를 떼어내 팔을 등 뒤로 잡아 젖힌다. 꼼짝없이 잡힌 나라. 휘익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다음 순간 나라의 왼손에 충격이 전해진다.
나라
(부르르 떤다) 죽여버릴거야 !
으르렁 거리는 나라를 향해 기수가 또다시 철근을 휘두르는데 나라가 기수에게 온몸으로 뛰어들어 뒤쪽으로 넘어뜨린다. 나라가 올라타 기수의 얼굴에 주먹을 먹인다.
나라
이 새끼... 개 새끼!!!
나라 손에서 흐르는 피가 기수의 얼굴로 떨어진다. 기수는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퉁켜 안고 신음소리를 낸다. 혁이가 나라를 기수에게서 뜯어낸다.
지하철 안 (D)
텅 빈 국철에 앉아있는 나라. 얼굴이 형편없다. 옆에 혁이가 앉아있다.
혁이
우리 왜 도망가는거야?
나라
정기수 죽었을거야.
혁이
... 어디 가는데?
나라
서쪽바다. 제일 처음 가출했을 때 갔던 곳이야.
... 너 가출해본 적 있어?
혁이
(고개를 젓는다)
찻집 (D)
문이 열리고 나래와 함께 나래 담임 오선생이 들어온다. 봉희가 뛰어나가 담임을 맞는다.
봉희
선생님 오셨어요?
담임
예 어머니. 가게가 아담하고 예쁘네요. 차냄새가 너무 좋아요.
봉희
앉으세요. (나래에게) 나래야. 아빠한테 선생님 오셨다고 말씀드려.
담임
(당황) 예? 아버님을 뵙는건가요?
봉희
(웃으며) 괜찮아요. 소문처럼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아요.
담임이 안절부절 못하고 해갑이 이층에서 내려온다.
해갑
어이구 선생님 오셨습니까.
담임
예. 안녕하세요 아버님.
해갑
이거 찾아뵀어야하는데 오시라고해서 미안합니다.
지난 번 일 있고나서 학교 수위들이 내 얼굴을 수위실에 걸어놓고 못 들어가게 합디다.
그분들 참 열심히 일해... 하하하
담임
(애미하게 따라 웃는다)
해갑
(뜬금없이) 선생님, 우리 애가 국기를 모독하는 행동을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해갑
어떤 행동을 말씀하시는건지..
해갑
국기를 태운다거나 찢는다거나
담임
아버님, 나래는 바르고 똑똑해서 그런 행동을 안합니다.
해갑
만약에 한다면 말입니다.
담임
나래는 그런 행동을 안합니다 아버님.
해갑
음... 선생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으신 분이구만.
좋습니다. 그럼 선생은 부자녀캠프라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담임
요즘 아버님들이 바쁘시기 때문에 애들하고 여행은커녕 대화할 시간도 없어서
학교가 대신 행사를 만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갑
선생은 그 학교에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다니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담임
(대답 못한다) ...
해갑
전교생 1058명중에 반이 넘는 600여명이 아버지가 없거나 같이 살지 않거나 휴일에도 일을 해서 1박2일동안 여행을 갈 수 없는 아빠를 둔 아이들입니다.
담임
(놀란다) 정말요? 굉장히 많은 숫자네요.
해갑
그렇습니다. 친구들은 당연히 하는 걸 나만 못한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상처를 받겠죠?.
담임
(끄덕인다)
해갑
부자녀캠프 없애자고 교장한테 건의해주시겠소?
담임
그건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서...
해갑
아이들이 상처를 받건 말건 선생은 상관없으시다?
담임
그건 아닌데... (고심 끝에)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갑
좋습니다.
자 그럼 가원초등학교와 계약된 급식업체 ‘아이사랑’에 대해 알아봤는데 문제가 많아요.
담임
문제라면...
해갑
아이사랑대표와 가원초 교장이 인척간입니다.
아이사랑에서 학교에 음료수자판기까지 관리하더군요.
담임
그것까지 제가 알아보기는 좀...
해갑
우리 아이들이 몸에 해로운 것을 먹도록 내버려두실 겁니까?
담임
(결심) ...알아보겠습니다.
해갑
(악수를 청한다) 잘해봅시다.
담임
(할 수 없이 손을 잡는다)
해갑
근데 결혼은 하셨나?
담임
예.
해갑
아하 아깝구만. 우리 집에 괜찮은 총각이 하나 있는데.
봉희
선배...
봉희가 난처한 얼굴로 해갑의 옷을 잡아당긴다.
어느 바닷가 (N)
낡았지만 제법 큰 배. 나라와 혁이가 갑판 위에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혁이
...근데 너 왜 나 도와줬어? 나랑 친하지도 않잖아
나라
나도 몰라. 그냥 참을 수 없었어.
혁이
고맙긴한데 일이 커졌다
나라
...
혁이
정기수한테 전화해볼까?
나라
죽었다니까.
혁이
확인은 해야지. (전화를 누르고 잠시 있다가 끊는다)
나라
죽었는데 받겠냐.
혁이
정기수가 받았어.
나라
뭐?
혁이
정기수 안 죽었다구. 그러니까 이제 집에 가도 돼.
나라
...
혁이
(전화기를 건넨다)
나라
나보고 정기수한테 전화하라고?
혁이
아니. 집에 전화해. 걱정하실거야.
잠시 망설이다 전화기를 받아든다. 전화를 누르는 나라. 벨소리가 한 참 울린 뒤에 수화기 너머에서 해갑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갑과 나라가 교차된다.
해갑
누구냐
나라
(찡그린다) ...
해갑
누구세요
나라
...나 나라.
해갑
전화해놓고 왜 말을 안 해.
나라
... 나 오늘 집에 안 가.
해갑
언제 올 건데
나라
...몰라. 어쩌면 안 갈지도 모르고.
해갑
그래 오고 싶을 때 들어와라.
나라
내가 집에 안 간다는데 걱정도 안 돼?
해갑
이렇게 전화까지 해주는데 뭐가 걱정이냐.
나라
엄마 바꿔줘
해갑
싫다.
나라
바꿔줘.
해갑
절대 안 바꿔줄꺼다. 엄마 보고 싶으면 집에 와. (전화가 뚝 끊긴다.)
끊어진 전화를 보며 열 받은 나라.
혁이
전화 줘. 나도 하게.
나라
(건네다 말고) 한 통만 더 하고.
나라, 어딘가 전화를 걸다가 꺼버린다.
찻집 이층 / 나라방 (N)
만덕이 나라 책상에 앉아 서울지도를 보고있다. 전화벨이 울리다가 끊긴다.
찻집 1층 (N)
해갑과 봉희가 앉아있다.
봉희
애 전화를 그렇게 끊으면 어떡해.
해갑
목이 마를 땐 콜라나 사이다처럼 단물은 도움이 안되는 법이야.
징징대는 놈한텐 이렇게 해야 돼.
봉희
나라 사춘기잖아. 아빠가 신경써야된대 그럴 땐.
해갑
하루 있다가 올 거니까 걱정 마.
외투를 걸치고 만덕이 내려온다.
해갑
어디가?
만덕
찾아봐야죠. 나라.
해갑
어딨는 줄 알고.
만덕
제가 사람 찾는덴 선숩니다.
해갑
내일이면 온다니까. 멀리 못 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내가 그랬어.
만덕이 꾸벅 인사하고는 나간다.
봉희
만덕씨말야. 섬에만 있어서 그렇지 영특해보여.
해갑
예삿놈 아니지. 남들처럼 잘 살 궁리 했으면 적어도 들섬에서는 한가닥했을 놈이야.
서해 (D)
‘에취’ 자신의 재채기 소리에 번쩍 잠이 깨는 나라. 비닐시트를 둘둘 감고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다. 벌떡 일어나는 나라. 옆을 보면 혁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한바탕 부르르 떨며 일어서는데 갑판에 누군가 앉아있다. 만덕이다.
나라
(놀라며) 아저씨!
만덕
(돌아본다) 깼나.
나라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 왔어요?
만덕
(나라가 준 지하철노선표를 보여주며) 이거보고.
... 혁이하고 통화했다.
식당 (D)
식당에 마주앉은 만덕과 나라. 앞에 설렁탕 놓여있다.
나라
(눈물 뚝뚝)
만덕
와 우노.
나라
우리 아빠하고 엄마는 나 가출했을 때 한 번도 찾아온 적 없어요.
만덕
(웃는다) 무라.
눈물도 잠시 배고팠는지 나라가 허겁지겁 먹는다.
나라
아저씨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생각해요?
만덕
뭐를.
나라
아저씨는 애들이 가출해도 찾지도 않고 학교같은덴 안가도된다 그럴 수 있어요?
만덕
(강하게 고개 젓는다) 아저씨는 중학교밖에 안다녀서 배움에 대한 한이 있다.
인간은 반드시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배워야한다는 입장이다.
나라
(질문해놓고 듣는 둥 마는둥 먹느라 바쁘다)
찻집 이층/민주방 (D)
민주가 짐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옷을 담고 있다. 나래가 슬픈 얼굴로 옆에 서 있다.
나래
언니도 오빠처럼 가출하는거야?
민주
(옷을 챙겨담으며) 나라처럼 하루 만에 들어오는 걸 가출이라고 안 해.
그리고 어른은 가출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하는거야.
나래
독립은 얼마동안 안오는거야?
민주
영원히.
나래
(금새 눈물이 맺힌다) 영원히?
민주
(끄덕인다)
찻집 1층 (D)
문이 열리고 만덕과 나라가 들어온다. 나라가 해갑을 보고는 멈칫한다.
해갑
겨우 하루가 뭐냐. 가출했으면 일주일은 버텨야지.
나라
날 찾지도 않았잖아.
해갑
멀리 못 갈 줄 알았으니까.
나라
언젠가는 멀리 갈거야. 두고 봐.
해갑
너 못해.
나라
왜!!
해갑
넌 아빠를 좋아하니까
나라
무슨 소리야. 난 엄마만 좋아해!!
해갑이 안으로 들어가는 나라의 발을 확 잡아당긴다. 땅에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는 나라.
나라
왜 그래!!!
해갑
그래. 밖에서 자보니 어땠냐. 잘만 해?
해갑이 나라의 팔을 목에 감고 뒤로 드러누운 자세에서 헤드록을 먹이고 들어온다. 비명을 지르는 나라.
나라
하지 마!
해갑
아니 좀 해야겠다.
나라
아파. 아프다니까!
해갑
약 오르면 아빠를 이겨봐
나라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해갑
아니 그런 얘기다. 최나라! 싸우자. 싸운 뒤에는 아무 말 하지 않는거야.
인간은 침묵할 때 가장 무서운 법이다.
해갑이 나라의 목을 아슬아슬할만큼 조이고 들어온다. 나라는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이를 악물고 버틴다.
해갑
어디 풀어봐라. 엉엉 울면 풀어주지.
나라, 어금니를 악물고 부르르 떨면서도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방에서 봉희가 나온다.
봉희
나라 왔니?
봉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내지만 봉희는 별 말이 없다. 야속해하는 나라의 표정. 잠시 후 민주가 가방을 들고 나온다.
민주
아빠 엄마 저 집나가요.
봉희
뭐?
해갑과 나라 땅에 누운 채 민주를 올려다본다.
해갑
하나가 들어오니까 하나가 또 나가?
민주
성공하면 연락할게.
해갑
(나라를 놓고 일어난다) 니가 말하는 성공이 뭐지?
민주
디자이너가 되는거요. 그 담엔 내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드는거고.
성공은 끝이 없지.
봉희
근데 왜 꼭 집을 나가야해? 그래야 성공한대니?
민주
내가 원하는 삶과 아빠 엄마는 어울리지 않아.
해갑
그래.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줘야지.
민주
학원근처에서 친구랑 자취할거야. 행복하세요.
민주가 가다 말고 바닥에 누운 나라를 본다.
민주
최나라. 누나 성공하면 데리러 올게. 잘 있어.
나라
(다급히) 누나 나 꼭 데릴러 와! 알았지?
민주 나가고 해갑과 봉희 멍하니 서 있다.
만덕
저대로 보내실 깁니꺼.
해갑
내가 보내는 게 아니라 본인이 가는거다. 부모라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꺾을 수는 없지.
해갑이 이층으로 올라간다.
동네 (D)
민주가 가방을 들고 내려가는데 누군가 가방을 잡는다. 보면 만덕이다.
민주
뭐예요?
만덕
나 때문에 나가는 거면 내가 며칠내로 갈 꺼니까 가지마이소.
민주
오바하지 마세요. 아저씨 때문에 가는 거 아니니까.
난 아빠 엄마처럼 못살아요.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민주, 가방을 뺏어 들고는 내려간다. 만덕이 보고 서 있다.
찻집 1층 (N)
봉희가 컬러도화지에 매직펜으로 ‘질경이차_ 눈에 좋아요’ 라고 쓴다. 잠시 후 그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글씨가 번진다. 이층에서 내려오던 해갑이 봉희를 본다.
학교 (D)
나라와 나래가 등교를 하고 있다. 혹시 기수일당이 있나 두리 번 거리는 나라. 무사히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앞서 걷고 있는 교장의 뒷모습. 나래가 뛰어가서 깎듯이 인사한다.
나래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웃으며 돌아보던 교장이 나라와 나래를 보더니 흠칫하고는 빠르게 걸어가 버린다. 나라와 나래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교장의 뒷모습을 본다.
나라교실 (D)
나라, 옆에 비어있는 혁이자리를 본다. 잠시 후 뒷문이 열리고 관모와 성학이 들어와 나라에게 온다.
성학
나라야. 그때 도망가서 미안해.
나라
(거만하게) 괜찮아. 너희같이 심약한 아이들은 충격받았을거야.
관모
근데 너 괜찮겠어?
나라
뭘?
관모
혁이 기수일당한테 보복당했어. 너 데려오라그랬대.
안 그러면 혁이를 계속 괴롭히겠다고했대.
나라
뭐?
성학
얻어 터져서 피떡이 됐다더라.
관모
혁이 전학간대.
나라
(충격)
찻집 1층 (D)
해갑이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편집에 몰두하고 있다. 문이 열리고 나래가 들어온다.
나래
다녀왔습니다.
해갑
오냐.
나래
엄마는?
해갑
엄마 시장가셨는데.
나래
(가방에서 공문을 꺼내며) 엄마한테 싸인 받아야 되는데.
해갑
뭔데. 또 무슨 쓸데없는 정보냐. 이리 갖고와봐.
나래가 해갑에게 공문 두장을 갖다준다. 한 장은 방과후 수업 업체 변경에 대한 공문.
해갑
(박박 찢으며) 돼지같은 놈.
또 한 장의 공문은 국책사업 홍보영상 관람에 대한 공문. 부모님 참석요망과 참석여부를 묻고 있다.
나래
부모님 꼭 모시고 오래.
해갑
지랄하고자빠졌네.
해갑, 찢으려다가 멈추고 공문을 다시 본다. ‘0월 00일 11시 학교강당. 해갑이 공문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나라가 다급히 들어온다.
나래
오빠 왜 그래?
나라가 대꾸없이 2층으로 올라간다.
찻집 2층/나라방 (D)
나라가 흥분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온다. 만덕이 푸쉬 업을 하고 있다.
만덕
왜 그래.
나라
정공법.
만덕
?
나라
정공법을 쓸 때가 왔어!
가원중 (D)
중학교 정문. 학생들이 수업을 끝내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문에서 가까운 골목에 서서 기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만덕과 나라. 나라가 눈을 반짝이며 기수가 나오나 두리 번 거리고 있고 만덕은 옆 화단가에 걸터앉는다.
나라
나쁜 놈 때문에 혁이가 전학가게 놔둘 순 없어요. 맞죠?
만덕
당연하지.
서로 말이 없는 두 사람. 잠시 후 교문에서 애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긴장한다. 애들이 웬만큼 빠져나간 운동장에 드디어 기수가 패거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나라의 안색이 변한다.
만덕
(턱으로) 저놈들이가.
나라
(끄덕인다)
만덕
딱 보기에도 기분 나쁜 놈이네. (사방을 둘러보며) 니는 저 편의점 안에서 기다리라.
나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의점 쪽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히죽거리며 학교에서 나오던 기수가 만덕의 부름에 걸음을 멈춰선다. 야구모자에 선글라스 차림의 어른이 자기를 부르자 긴장한 얼굴이다.
만덕
학생 이름이 정기수? 맞제?
기수
아저씨 누군데요?
만덕
배달이다. 학생한테 물건 배달 왔어.
기수
물건요? 뭔데요? (만덕의 빈손을 본다) 어딨어요?
만덕
따라와 봐. (골목 쪽을 가리키며) 저기 오토바이에 있으니까.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는 만덕과 기수, 그리고 똘마니들. 주변을 두리 번 거리는 기수. 뒤돌아 서 있던 만덕이 휙 돌아서더니 순간적으로 기수에게 다가가 팔을 잡는다. 만덕의 표정 싸늘하다. 만덕이 기수를 꽉 끌어안는다 싶은 순간 뻑하는 이상한 소리가 난다.
만덕
니 여기저기 미움 받을 짓 마이 했제.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봐라.
만덕이 팔을 풀어 밀쳐내자 기수가 그 자리에 웅크리고 주저앉는다. 똘마니들 겁에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다. 만덕이 발을 돌려 걷기 시작하고 벽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나라도 돌아서 뛴다. 만덕 옆으로 따라붙은 나라.
나라
괜찮겠지?
만덕
살짝 금 갈 정도만 안아줬으니까 걱정 마라.
헉헉거리며 만덕을 따라가는 나라.
지하철 안 (D)
만덕이와 나라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고있다.
집 안 (D)
띵동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켜지고 모니터에 나라가 나타난다. 앞치마를 두른 중년여인이 다가와 모니터를 본다.
아줌마
누구세요?
나라
죄송합니다. 집 안으로 공이 넘어갔어요.
아줌마 뒤로 양복차림의 남자(경호원)가 다가와 모니터를 본다.
남자
열어줘요. 애잖아.
고급주택가 (D)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라가 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 있던 큰 개 두 마리가 으르렁대고 나라가 겁에 질린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줌마가 나온다.
아줌마
(개들에게) 쉿! 가만있어.
(공을 주워주며 나라에게) 다음부터 놀이터 가서 해. 알았니?
나라
예. 죄송합니다.
나라가 꾸벅 인사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면 배드민턴채를 든 만덕이 기다리고 있다.
만덕
질했다. 쉽제?
나라
쉽기는. 호랑이만한 개가 두 마리나 있었어.
만덕
(웃는다) 좋은 정보다.
나라
아저씨 돕는 일이 이거야?
만덕
(끄덕인다) 오늘은 연습이다.
나라
그럼 한 번 더 해야 돼?
만덕
(끄덕인다) 한번만 더 해주면 내가 보답하는 의미로 들섬에 있는 내 배 니 주께.
나라
배?
만덕
(끄덕인다) 오래돼서 낡긴 했지만 들섬에서 제일 고기를 마이 잡은 배다.
나라 니하고 이름이 똑같다.
나라
?
이때 고급승용차가 들어와 아까 그 집 앞에 서고 집에서 나온 김하수가 차에 올라 떠난다. 만덕을 스쳐 지나가는 승용차.만덕이 차 안에 앉은 김하수를 본다.
다가구 골목 (N)
민주가 걸어오고 그 뒤로 이선생이 양손 가득 뭔가 들고 따라 온다.
민주
뭘 또 그렇게 사오셨어요.
이선생
니가 맨몸으로 나왔는데 하루 만에 준비가 되니.
민주
혼자 사는데 뭐.
이선생
모르는 소리. 혼자 사나 열이 사나 필요한 건 똑같다.
민주
선생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선생
내 평생 최고로 무리하는거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민주와 이선생. 민주, 별 생각없이 문을 열다가 기겁을 한다. 방에 해갑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제법 번듯한 원룸형 방엔 웬만한 가구들이 다 갖춰져 있다.
민주
!
해갑
들어와.
민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해갑
들어오라고.
민주가 이선생을 의식하며 쭈뼛거린다.
해갑
(고개를 내밀어 본다) 누가 같이 왔어? 같이 사는 친구?
이선생
(짐을 든 채 얼어붙어있다)
해갑
누구냐? 친구는 아닐꺼고... 집 주인?
민주
...
이선생
(벌벌 떤다) 가감독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해갑
(해갑이 이선생을 유심히 본다) !
찻집 2층/안방 (N)
불 꺼진 방. 해갑과 봉희가 누워있다.
봉희
...선배.
해갑
응?
봉희
민주 집 어때? 괜찮아?
해갑
...우리 집보다 잘 살더라.
봉희
...
해갑
... 봉희야.
봉희
응?
해갑
민주 2학년 담임 생각나?
봉희
응. 키 작고 머리 몇 가닥 없는.
해갑
어떤 사람이야.
봉희
잘은 모르지. 노총각이고... 착해 보이긴 하던데...
근데 왜? 만났어?
해갑
응.
봉희
어디서?
해갑
민주 자취집에서.
봉희
뭐?
찻집 2층/거실 (N)
어두운 거실을 나라가 살금살금 나온다.
혁이 집 앞 (N)
나라가 허름한 빌라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얼굴에 피멍이 든 혁이가 집에서 나온다.
혁이
왠 일이야 이 시간에.
나라
너 전학 안가도 돼.
혁이
(본다)
나라
정기수 이제 너 안 괴롭힐거야
혁이
어떻게 했는데 ?
나라
정공법.
혁이
그게 뭔데?
나라
나쁜 놈은 제거한다.
혁이
제거했어?
나라
(끄덕인다)
혁이
니가?
나라
다 알려고 하지 마.
혁이를 남겨두고 나라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나라가 외친다.
나라(소리)
혁아! 넌 원래 괜찮은 애라서 사실은 학교 같은 데 안다녀도 그만이야!
혁이가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빌라 안으로 들어간다.
가원초/강당 (D)
아이들과 선생들이 강당으로 모여들고 있다. 학부모들 모습도 보인다. 나래와 봉희도 보인다.
나래
정말 아빠도 온대?
봉희
그래. 아빠 오신다고 나보고 꼭 오라던데?
나래가 해갑을 찾아 두리 번거린다. 봉희도 두리 번거린다.
봉희
근데 나라가 안보이네...?
김하수집 주변 (D)
하수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공원에서 만덕과 나라가 동네주민인 것처럼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쉬지않고 왔다갔다하는 콕. 만덕이 시계를 본다.
가원초/강당 (D)
학생들과 학부모로 가득 찬 강당. 앞자리에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 주욱 앉아있다. 나래 담임 오선생, 유난히 긴장해있다. 앞에 내걸린 대형 스크린. 강당에 불이 꺼지고 자료화면이 뜬다.
김하수 집 앞 (D)
여전히 왔다갔다하는 콕. 만덕이 시계를 본다.
만덕
(시계를 본다) 잠시 후면 산책을 나갈거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경호원 둘이 집채 만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긴장하는 만덕과 나라. 만덕이 손으로 콕을 잡는다.
만덕
작전 개시!
나라가 긴장한 얼굴로 뛰어 내려간다.
만덕
(다급히) 나라야!
나라
(돌아본다)
만덕
미안하다. 니 도움이 꼭 필요했어.
나라, 끄덕이고는 뛰어 내려가고 만덕이 있는 힘껏 콕을 김하수 집 마당으로 날린다.
가원초/강당 (D)
화면에 흐르는 홍보영상물. 4대강 선상체험단이라는 프랭카드를 단 작은 배 한 대에서 아줌마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나래
아빠 왜 안 와?
봉희
(갸우뚱) 아빠가 이걸 보러 오실 리가 없는데...
찻집 1층 (D)
해갑이 혼자 의자에 앉아 서툰 솜씨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찻집 이층/안방 (D)
화면에 흐르던 영상물이 순간 툭 꺼진다. 잠시 후 (숨어서 촬영한) 양복바지 입은 두 명의 남자 다리가 보인다. 사람들 어? 뭐지하는 얼굴들이다.
교장(소리)
캠프 업체에다 얘기했어?
대머리(소리)
예. 근데 다들 신청자가 적다고 투덜거리는데요.
교장(소리)
단가를 조금씩 더 올리라고 해.
놀란 대머리가 교장을 본다. 아직까지 사태파악이 안 되는 듯한 교장.
(다른 화면) 교장실 테이블이 보인다. 문소리가 들린다.
교장(소리)
오선생 무슨 일이야.
나래담임(소리)
2학년 방과후수업 만족도 조사한 자룝니다.
교장(소리)
교감 주지 뭘 나한테 갖고 와. 나가 봐.
오선생 나가는 소리 들리고.
남자(소리)
대신 음료는 좀 비싼 걸로 깔겠습니다.
교장(소리)
요새 애들이 싼 거 먹나. 다 고급이지.
대머리가 벌떡 일어나 영사실을 돌아본다. 대머리, 영사실에서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해갑을 본 듯한 착각에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유리에 비친 영사실은 비어있다. 교사 몇 명이 교장을 데리고 강당 밖으로 급히 나간다.
김하수집 앞 (D)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라가 벨을 누른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들리는 아줌마 목소리.
나라
아줌마. 배드민턴 공이 아줌마 집 마당에 떨어졌어요.
아줌마
또?
나라
금방 줍고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나라가 안으로 들어간다. 나라 콕을 줍고도 나가지않고 밍기적댄다. 현관문이 열리고 경호원이 나온다. 순간 만덕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친다.
만덕
나라야 도망가라!!
가원초/강당 (D)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들까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화면)
교장(소리)
아무튼 운 나쁘게 됐어. 나중에 다시 도모합시다.
남자(소리)
안된다니까 이러시네. 돈이 이미 3억 깨졌어요. 교장선생님한테 간 돈은 빼고도 말입니다.
교장(소리)
(당황한 목소리) 오선생이 여기 왠 일이야?
나래담임(소리)
어머 교장선생님. 식사하러 오셨어요? 저도 여기서 남편을 만나기로해서...
다른 선생들 일제히 나래담임을 본다. 오선생, 긴장하고 있지만 당당하려고 애쓴다. 영사실로 뛰어간 대머리와 몇몇 선생들, 영사실 문을 열지만 잠겨있다. 누군가 열쇠를 가지러 간 사이 대머리 참지 못하고 문을 부순다. 좀체 열리지도 부숴지지도 않는 문.
꿈.
만덕이 마당으로 뛰어 들어간다. 달려드는 경호원을 물리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뛰어드는 만덕. 방안에 있던 김하수가 잠옷바람으로 만덕에게 긴 칼을 휘두른다. 만덕이 피하며 품에서 총을 꺼내 김하수의 심장을 쏜다. 쓰러지는 김하수. 피가 바닥을 적신다. ‘작전 성공이다!! 만덕이 나라와 하이프이브를 하고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이거 엄청 비싼거야!‘ 하며 나라에게 준다. 둘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는다. 이때 죽은 줄 알았던 김하수가 깨어나고 아까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인 칼을 들고 나라에게 다가온다. 김하수는 모르는 중년남자로 바뀌어있다.
남자
너 6학년 5반 최나라지?
나는 중학생 정기수 아빠다. 니가 우리 기수를 죽였지. 맞지?
나라가 남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직전, 해갑이 나타나 칼을 든 남자의 머리에 총을 쏜다. 쓰러지는 남자는 어느새 김하수로 바뀌어있다.
해갑
어이 홍만덕. 내가 말했잖아 저놈들은 심장이 없다고.
저런 놈들은 여기를 쏴야 돼 알았어?
해갑이 총으로 자기 머릴 가리키며 크하하하 크게 웃는다.
경찰서 (D)
나라가 수갑이 채워진 채 유치장에 쪼그리고 잠들어있다. 자면서 히죽 웃는다.
찻집 이층/안방 (D)
해갑 역시 자면서 히죽거리고 있다. 잠시 후 누군가 해갑을 신발신은 발로 흔들어 깨운다. 눈을 뜨고 위를 보는 해갑. 경찰이 해갑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경찰서 (D)
해갑과 봉희가 뛰어 들어온다.
봉희
나라야!
나라가 봉희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린다.
나라
엄마!
봉희
이제 괜찮아. 겁먹지 마. 금방 꺼내줄테니까.
해갑이 형사들 앞으로 가서 책상을 쾅쾅 친다.
해갑
애한테 왜 수갑을 채워. 이제 열 세 살짜리야!
경찰
이 양반이 똥오줌 못 가리네. 국회의원집에 뛰어들었어.
열 세 살 아니라 세 살짜리라도 구속이야.
나라
(겁먹는)
경찰서 앞/차 안 (D)
공안1,2, 차 안에 앉아있다. 둘 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얼굴들이다.
공안1
(얼굴 문지르며) 홍만덕 개새끼...
공안2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홍만덕 감시해야된다고.
공안1
(노려본다)
공안2
(움찔하며) 근데 경찰이 최해갑 진짜 넘겨주는 겁니까?
대어라서 걔네들도 안놓칠라고 할텐데
공안1
멍청한 놈. 경찰 위에 검찰. 검찰 위에 뭐? 바로 공안이야.
죽쒀서 개 줄일 있어?
경찰서/조사실 (D)
늙은 형사와 마주앉은 해갑.
해갑
애는 내보내고 얘기합시다.
형사
(책상을 치며) 엄연한 공범자야. 당신이 내보내라마라 할 사안이 아니라고!
해갑
(차분한 목소리로) 애들대신 벌 받으라고 있는 게 어른이오.
형사
그래서 대신 벌 받겠다?
해갑
그럽시다.
형사
그래? 그럼 홍만덕새끼 벌도 대신 받지그래.
해갑
그럽시다.
형사
(꼬나본다)
해갑
홍만덕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형사
그 새끼 다이나마이트까지 들고 뛰어들어가놓고는 김하수가 싹싹 빌면서 시키는대로 하겠다니까
약속 꼭 지키라고 하고는 순순히 돌아섰대. 그러다가 경호원들한테 잡혀서 개작살이 난거지.
그걸 믿어?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해갑
(노려본다)...착한겁니다.
형사
애가 무사히 집에 간 줄 아는 모양이더라고.
처음에는 입다물고 있더니 애가 경찰서에 잡혀있다는 말을 듣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
해갑
(침울하다)
형사
홍만덕이 일하고 당신이 무관하다는 거 알아.
근데 당신 적이 너무 많아. 위에서 공범으로 잡아들이라는 의견도 나왔고.
맘만 먹으면 당신 식구들까지 이 일에 엮는 거 유도 아니야.
이때 문이 열리고 젊은형사가 들어와 늙은 형사에게 귓속말로 속삭이고 나간다.
형사
... 최해갑. 앞으로 국가 위상에 먹칠하는 영화 안 만들겠다고 약속해.
해갑
(본다) ...
형사
일절 해외영화제 같은데 내보내지 말 것이며, 만들고 있는 영화도 폐기처분하고.
해갑은 말이 없고 형사가 앞에다 서류를 내민다. 들여다보는 해갑.
형사
내 제안을 받아들일거냐고.
해갑
...
형사
싫으면 애는 두고 가고
해갑
(노려본다) ...
형사
어쩔거야.
해갑
(버럭) 인주!
동네 (N)
해갑과 나라가 동네 언덕을 올라온다.
나라
아빠... 아저씨 일은 실패한거야?
해갑
그래. 실패했다.
하지만 나라야, 만덕이가 한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방법이 잘 못되었을지언정.
넌 그걸 기억해라.
나라
이제 아저씨는 어떻게 되는거야? 사형당하는거야?
해갑
사형을 왜 당해.
세상에 죽어 마땅한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라
...아빠 나 퇴학당하는거야?
해갑
누구 맘대로 퇴학을 시켜. 그만두는거다. 그딴 놈의 학교는 다닐 필요없다.
걸어가는 해갑과 나라의 뒷모습.
찻집 안. (D)
해갑과 나라가 찻집으로 들어서다가 걸음을 멈춘다. 실내는 엉망으로 망가져 있다. 모든 물건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다. 그 가운데 서 있는 봉희와 나래.
봉희
경찰이 와서 뒤지고 가고 난 다음에 국세청에서 왔었어.
해갑
... 봉희야
봉희
(본다)
해갑
짐 싸!
봉희
(피식) 짐은 무슨. 우리 꺼 아무 것도 없어.
해갑
잘됐네. 하하하!
하늘 (D)
상공을 나르는 비행기.
찻집 1층 (D)
공안 1,2가 해갑의 텅 빈 집에 망연자실 서 있다. 바닥에는 폐기처분된 대량의 필름이 뒹굴고 있다.
비행기 안 (D)
앞뒤로 해갑과 나래가, 봉희와 나라가 앉아있다. 창밖을 보는 나라와 나래. 그 위로 오선생 목소리 흐른다.
오선생(소리)
나래야. 지금쯤 가고 있겠구나...
나래가 학교를 그만두게 돼서 선생님 너무 섭섭해.
민주집 (D)
민주가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깨작거리다 시계를 본다.
바다 위/배 (D)
섬으로 향하는 배. 해갑은 보이지 않고 봉희와 아이들이 뱃머리에 서 있다.
오선생(소리)
교장선생님이 아직은 안 나가고 버티고 있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것들과 계속 싸울 생각이야.
선생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나래 아빠 덕분에 내가 왜 교사가 되려고 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단다.
해갑이 멀미로 괴로워하며 배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있다.
오선생(소리)
... 나래 아빠는 용기있고 참 멋진 분이셔.
해갑이 벌떡 일어나 구역질을 하며 뛰어간다. 나래가 봉희에게 안겨 힘들어하고 있다.
나래
엄마 속에 메슥거려.
봉희
쫌만 참아. 바로 저기야... 저기 보이지?
작은 섬 하나가 시야로 다가온다.
봉희
나라는 잘 참네.
나라
우리 귀향살이 가는 거 같애.
나라가 핸드폰을 꺼내 안테나를 확인한다. 통화이탈.
나라
처음으로 핸드폰이 생겼는데 되지도 않고.
봉희
누나가 사줬어?
나라
(끄덕이며) 도착하면 바로 전화하라고 했는데...
들섬 언덕 / 만덕집 (D)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오르는 해갑과 식구들. 언덕 끝에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공터 한 쪽에 허름한 집 하나가 있다. 해갑이 본채 옆에 기역자로 붙은 별채 앞으로 가서 선다.
나라
설마 여기 아니지?
해갑
맞다. 우리는 앞으로 이 집에 산다. (기둥을 잡으며) 잘 있었냐?
해갑이 손을 집자 약간 기우뚱한다.
나래
나 들어가볼래.
말릴 틈도 없이 나래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나래가 발을 디디자 마루가 푹 꺼지고 먼지가 피어오른다.
집 뒤 우물가 (D)
해갑이 집 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애들에게 먹인다.
해갑
어때 맛있지?
나래
(끄덕인다) 응 시원해
해갑
여기는 명당이다. 이 물도 철분이 많아서 달고 몸에도 좋아. 여긴 농사도 잘되지.
나래
왜?
해갑
이 주변이 옛날엔 다 무덤이었으니까.
나라
(기겁) 무덤??
해갑
그러니까 이 주변 땅이 다 우리 조상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흙이다 이 말이야.
그래서 농사도 잘되고 물도 맛있고.
나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마시고 나라는 찜찜한 얼굴이다.
만덕집 마당 (N)
마당에 텐트 쳐져 있고 텐트 앞에는 모닥불이 피워져있다.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은 해갑과 식구들.
나라
전기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
해갑
전기가 왜 없어. 저기 발전기가 있잖아.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하루 딱 두 시간 발전기를 돌릴거다.
나라
(황당) 뭐? 그럼 9시에 자라는거야?
해갑
자든말든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나라
후...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는 꿈도 못꾸겠네...
해갑
우린 이제 국가가 보내는 그 어떠한 고지서도 없이 사는거다.
여긴 파라다이스고 우리는 자유인이다.
나라
자유인이 아니라 원시인 아냐?
해갑
그게 그거지. 으하하하
나래
여긴 학교도 없겠네.
봉희
20년 전엔 있었는데 아직 그대로 있을까... 내일 가보자.
cut to,
해갑과 식구들 텐트 속에서 잠들었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들섬 (D)
들섬에 아침이 오고 비로소 보여지는 아름다운 섬의 전경들.
만덕 집 (D)
해갑이 집 주변에 무성한 풀을 베고있고 봉희는 아침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텐트에서 나오는데 얼굴에 온통 붉은 반점들이다.
해갑
모기들이 호강했네. 야들야들한 서울애들 왔다고 신났어.
봉희
얘들아 밥먹자.
나라와 나래가 마루로 가면 상에 놓여있는 된장찌개와 갖은 야채들.
나라
...이게 다야?
봉희
맛있겠지?
해갑
대신 저녁은 생선파티다!
들섬선착장 (D)
선착장에 묶인 배들. 나라가 선착장으로 뛰어오고 해갑이 뒤를 따라온다. 뛰어오던 나라가 비슷비슷한 배들이 많은 걸 보고는 멈칫한다.
나라
어?
해갑
만덕아저씨 배 이름이 뭐래?
나라
이름?
해갑
그래. 배이름 말 안해줬어?
나라가 배 옆에 적힌 이름을 일일이 확인한다. 잠시 후 나라의 얼굴이 밝아진다.
나라
이거야!!!
(cut to)
바다로 나가는 작은 배. 선명하게 보이는 글씨 ‘신나라호’
바다 위/배 안 (D)
해갑이 나라에게 배조종법을 가르친다. 해갑이 나라와 함께 핸들을 잡고있다.
나라
아빠는 배조종을 언제 배웠어?
해갑
쿠바갔을 때 카스트로한테 배웠다.
나라
카스트로가 누구야?
해갑
위대한 혁명가지.
나라
...뻥이지?
(cut to)
해갑이 바다로 뛰어들어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다. 제법 큰 물고기가 작살에 찍혀 올라온다. 나라는 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해갑이 나라에게 외친다.
해갑
봐라 이 곳은 노동한만큼 보상이 따른다!
나라
(낚싯대를 들어올리며) 나도 잡았어!
들어올려지는 낚싯대 끝에서 파닥대는 물고기 한 마리.
해갑
멍청한 물고기다. 나라 너한테 잡히다니.
(cut to)
해갑이 나라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그냥 놨다가 허우적거리면 잡아주고 숨넘어갈만하면 건져주고하는 식이다.
해갑
아빠는 열 살에 국내기록을 깬 수영신동이었다.
나라
수영신동?
해갑
그래. 국가대표가 될 뻔했지만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못됐다.
나라
에이 또 뻥이지?
해갑
으하하하!
이때 배 한척이 신나라호 옆으로 지나간다. 배에서 노인(송노인)이 외친다.
송노인
만덕이 배 아이가? 만덕이 왔나? (해갑을 보더니 실망)
누꼬? 눈데 남의 배를 타고 나왔노?
해갑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 해갑입니다...
송노인
뭐라꼬 해갑이? 니가 해갑이라꼬?
해갑
(웃는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들섬초교 (D)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봉희와 나래. 학교는 가꾼 흔적없이 휑하다.
나래
엄마. 학교가 왜 이래?
봉희
다들 이사 나가서 학교가 문을 닫았나봐.
나래
(실망) 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봉희와 나래가 발길을 돌리는데 학교 안에서 풍금소리가 들려온다. 나래가 반가운 얼굴로 돌아본다.
학교 복도/교실 (D)
봉희와 나래가 풍금소리를 따라 교실 앞에 선다. 창문 너머에 아이들 셋(진미, 연수, 종태)이 풍금을 치며 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봉희와 나래를 아이들이 본다.
봉희
얘들아 안녕.
진미
아줌마 누구세요
봉희
우리는 어제 저 위 묘지터에 있는 집에 이사온 사람들이야.
연수
묘지터요? 그럼 만덕이아저씨 집요?
봉희
그래. 나래야 인사해.
나래
안녕. 난 최나래야. 아홉 살이구.
연수
나도 아홉 살인데...
봉희
우리 나래 친구 생겼네.
나래
(좋아한다)
들섬 마을 초입 (D)
해갑과 나라가 잡은 고기를 꿰어서 들고 길을 지나간다. 맞은 편에서 경찰(권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해갑을 보더니 멈춘다.
권순경
고기 마이 잡으셨네예. 여기 낚시 잘 되죠
해갑
(흘낏) 이 작은 섬에 무슨 순경이야.
권순경
어느 민박집에 묵으십니꺼?
해갑
민박집이라니.
권순경
낚싯하러 오신 거 아입니까.
해갑
어제부터 이 섬주민이다.
해갑이 지나가고 권순경이 다급히 물어본다.
권순경
그럼 이사를 왔다이말입니까? 이느 집입니까
해갑이 대꾸없이 지나가자 나라에게 묻는다.
권순경
어느 집으로 이사왔노.
나라
(언덕을 가리킨다)
권순경
만덕이 집에? 이삿짐 들어오는 거 몬봤는데...
나라
(해갑을 따라가며) 우리 이삿짐 같은 거 없어요.
권순경
(갸우뚱) ?
섬마을수퍼 (D)
마을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 ‘섬마을수퍼’ 앞 평상. 봉희와 나래, 그리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봉희
학교는 언제 문을 닫았니.
진미
한달쯤 됐어예. 선생님도 육지로 가시고.
연수
우리도 금방 이사나갈거라예
가게할머니
(안에서 나온다) 이사를 어데를 가노. 니 아부지가 연락이 없는데.
연수
(시무룩해진다)
가게할머니
(봉희에게) 그 언덕빼기까지 뭐할라꼬 가서 사노? 여 빈집들 수두룩한데.
거는 밤에 귀신나온다.
나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가게할머니
밤에 도깨비불이 훨훨 날아다닌다아이가. 얼라들 간빼물라꼬.
나래
(기겁한다)
연수
우리 할매 장난치는거다.
봉희
할머니 근데 사람들이 정말 안보이네요.
가게할머니
몽창시리 다 이사 나가쌌는데 너거는 뭐할라꼬 여기로 왔노.
올라면 여 사정을 좀 알아보고 오등가안하고.
해갑과 나라가 가게로 온다. 아이스크림을 보자 잽싸게 가게 안으로 뛰어드는 나라.
봉희
나라야 너 친구한테 인사해. 진미가 너랑 같은 열 세살이래.
나라가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진미를 한 번 보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해갑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는 여전히 가게하고 계시네요.
가게할
해갑이 니 왔다는 얘기 들었다. 근데 단디 알아보고 안오고 우짤라꼬.
해갑
다 알고 왔습니다.
가게할
알고왔다꼬? 알면서 와 와시꼬?
해갑
(웃는다)
발전기/만덕 집 (N)
해갑이 발전기에 기름을 붓고 스위치를 켜자 시동걸리는 소리와 함께 만덕집에 불이 깜빡거리다 마침내 환해진다.
나래
불 들어왔다!
봉희와 아이들이 평상에서 식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갑이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해갑
봉희야 막걸리!
봉희
(봉희가 구워진 생선과 막걸리통을 들고 나온다)
나래
(생선을 보며) 이게 오빠가 잡은거야?
봉희
오빠가 잡은 건 지금 구워지고있지.
만덕 집 담 너머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만덕 집 (D)
다음날 아침. 해갑이 집 기둥을 단단히 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잠시 후 윤태와 권순경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권순경
안녕하십니꺼.
해갑
(본다)
권순경
(윤태를 가리키며) 여기 이 분은 이 섬의 청년회장입니더.
해갑
청년회장? 언제부터?
권순경
예?
해갑
청년회장은 홍만덕 아닌가?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윤태
(쓴 웃음을 지으며 명함을 내민다) 제가 새로 청년회장이 된 도윤탭니다.
해갑
(00부동산이라고 적혀있는 명함을 본다) 이 섬에 부동산이 뭐가 필요하다고.
윤태
여기는 곧 헐립니더. 헬기장이 만들질낍니다.
해갑
누구 맘대로.
윤태
여기는 국유집니다. 티브로가 여기를 나라로부터 샀고.
해갑
개판이구만. 여기가 왜 국유지야. 여기는 엄연히 들섬 소윤데.
들섬 주민이 되면 누구든 와서 살 수 있게 하라고 옛날 내 조부께서 이 땅을 섬에 내놓으셨다고.
근데 그걸 나라가 왜 먹어.
윤태
잘 모르시나본데 티브로가 땅을 넘겨받는데 법적인 아무 하자가 없었습니다.
해갑
아하 니가 바로 외지 놈들 땅사는 거 도와서 섬을 갈갈이 찢어놓은 놈이구만.
윤태
(발끈한다_ 말 조심하이소. 이게 다 들섬 발전을 위한 겁니다.
해갑
발전? 누구를 위한 발전인데! 니가 뭔데 섬발전을 운운해?
(윤태를 가리키며) 어이 청년회장. 너는 집 어디야.
윤태
(당황) 예?
해갑
니 집이 어디냐고. 니 집도 팔아먹었냐?
권순경
윤태씨는 육지에 삽니더. 사무실도 거기 있고.
해갑
잘한다. 이 섬에 살지도 않는 놈이 청년회장이야?
윤태
다들 이사를 나갔기 때문에.
해갑
다 나가긴 뭘 다나가! 니 눈엔 마을회관에 모여계신 어르신들이 안보여?
정치하는 놈 종자노릇이나 하면서 어디서 들섬 청년회장 행세야.
윤태
(열 받은) 말조심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갑
꺼져. 너같은 한심한 새끼 상대하기 싫으니까.
윤태가 씩씩거리며 나가고 권순경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 있다.
권순경
저... 만덕이 소식을 아십니꺼.
해갑
알면 왜! 너도 똑같은 놈이지.
권순경
아입니더. 지는 만덕이하고 친했습니더.
해갑
(기둥 작업을 다시 하며) 니가 만덕이 친구라면 더 이상 저놈 손에 놀아나지 마라.
만덕이가 돌아올 때까지 이 집은 내가 지킬꺼다.
권순경
(본다)
선착장 (D)
배에서 얼굴이 허연 공안1,2가 배에서 내리고 있다.
공안1
최해갑새끼 멀리도 왔네.
공안2
(힘든 얼굴) ...
비척비척 걸어가는 공안1,2에게 권순경이 다가온다.
권순경
낚시하러 오싰는갑지예. 요새 이 섬에 사람들 잘 안 오는데.
공안2
예. 며칠 민박하면서 낚시 좀 하려고요.
권순경
민박이 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저기 섬마을수퍼삐 안합니더.
공안2
아예. 감사합니다.
공안1,2 가는데 다시 쫒아오는_
권순경
(시계를 보며) 가만 있어보이소. 물때가 지금이 딱 좋은데 고마 지금 낚시 가이소.
민박집은 제가 얘기해놓겠십니더.
공안2
예? 아니 우리는 좀 쉬었다가...
권순경
(배를 보고는) 아 저기 배나가네. 아저씨! 고기 잡으러 갈끼지예?
여 이분들 좀 데꼬 나가이소! 낚시 오싰답니더.
로프를 푸는 사내 돌아본다. 해갑이다. 해갑을 본 공안1,2가 놀라 서로 마주본다.
해갑
(공안1,2에게) 타시오.
움직이지 않는 공안1,2.
해갑
빨리 타라니까. 기다리고 있잖아.
권순경
(낚시가방을 거들어주며) 퍼뜩 타이소. 사람들이 다 나가삐서 배 빌리기 힘들어예.
공안1,2
(권순경에게 떠밀려 배에 오른다)
권순경
(떠나는 공안1,2를 향해 손을 흔든다) 잘 갔다오이소. 오늘 회 실컷 드시겠네예.
울기직전의 공안1,2를 싣고 신나라호가 바다로 나간다.
배 위 (D)
배 조종하며 공안1,2를 유심히 보는_
해갑
당신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공안1
(백짓장같은 얼굴) 그그럴리가요.
해갑
서울에서 왔나?
공안1
아뇨. (잠시 생각하다가) ...분당
공안1의 목소리 파도에 묻히고 해갑이 무심히 바다로 시선 돌린다.
공안1
(입을 닦으며) ...너 낚시해본 적 있냐.
공안2
태어나서 배를 처음 탔어요.
바닷가 (D)
바닷가에서 봉희와 나래가 조개를 줍고있다. 연수와 진미 종태가 옆에서 같이 줍고 있다.
봉희
얘들아. 이따가 잔치할거야. 너희들도 와. 아줌마가 짜장면 만들어줄게.
종태
(얼굴 밝아지며) 짜장면예?
봉희
(끄덕인다)
나래
우리 엄마가 만드신 짜장면 진짜 진짜 맛있어!
진미
지도 해주실깁니꺼
봉희
당연하지!
아이들 좋아하며 바닷가를 뛰어다니고 봉희가 미소지으며 아이들을 본다.
바다 (D)
망망대해에 떠 있는 신나라호. 해갑이 낚시 중이고 공안1,2도 가까스로 낚싯대를 잡고 있다. 공안2가 미끼를 끼우다 지렁이가 꿈틀대자 헛구역질을 한다.
해갑
뭐해 빨리 안 끼우고. 물때 지나면 끝이야.
공안2
저기 선생님... 고기 많이 잡았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해갑
안 돼. 오늘 마을잔치할건데 아직 더 잡아야 돼.
...근데 낚시 처음 하나?
공안2
(끄덕인다)
해갑
(의아한 얼굴로) 처음 하면서 뭐하러 이 멀리까지 왔어?
공안1,2
(...)
나라/민주 통화(D)
나라가 가게 안에서 하드를 빨면서 햄버거를 먹고있는 민주와 가게 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민주
그럼 핸드폰은 안되는거니?
나라
여긴 핸드폰 안테나가 떴다 안 떴다 해. 거의 대부분 안 떠.
민주
요새도 그런데가 있니. 주소는.
나라
주소 몰라. 그 짐이 만덕아저씨 집인데 만덕아저씨 아버지가 조상님들 무덤지기셨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야.
민주
점입가경이구나. 귀신은 안나온대니?
나라
나올지도 모르지.
... 하지만 여기가 완전히 싫은 건 아니야.
민주
그래?
나라
아빠가 여기서 아주 열심히 일해.
민주
일을 한다구?
나라
집도 고치고 배 몰고 나가서 물고기도 잡아.
민주
정말? 믿기지 않는데?
나라
정말이야. 여기는 노동한만큼 보상이 있대. 고용주한테 착취당하지 않는대.
민주
으이구 또 그놈의 착취타령.
나라
누나 우리 안 보고싶어? 한 번 안 올거야?
민주
안 가. 그런 야만적인 삶을 살기에 난 너무 문명인이야.
나라가 전화를 끊고 나왔을 때 가게 앞 마당에 연수가 있다.
나라
(천원짜리 한장을 준다) 여기 전화비. 길게 통화한 건 그쪽에서 걸려온거야.
연수
(받는다)
나라
여기 핸드폰 터지는데 없어?
연수
내 따라와 봐.
섬마을/공사현장 (D)
나라가 연수를 따라 섬마을을 돌며 핸드폰 주파수를 찾는다. 가면 갈수록 공사를 준비하는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좀더 갔을 때 공사현장이 드러나고 흙을 파다만 포크레인 두 대가 괴물처럼 서 있다. 주변에는 환경단체에서 내건 프랭카드들이 걸려있다.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연수
여기는 될거야.
나라
(핸드폰을 보더니) 안되는데?
연수
어? 여기는 됐었는데.
나라가 황량한 공사현장을 둘러본다. 나라가 발길을 돌리는데 모래더미 속에서 다이나마이트 몸통 하나가 보인다. 나라가 꺼내서 본다.
섬마을슈퍼 마당 (D)
마을사람들이 모여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한쪽 평상에선 아이들이 짜장면을 먹고있다. 공안2, 마당 한 켠에서 생선을 굽고 있고 공안1은 그 옆에 불쌍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있다.
공안1
넌 속 괜찮냐?
공안2
예. 이제는 배가 고파요.
공안1
좋겠다. 난 아무 것도 못 먹겠다.
박노인
(공안1,2에게) 이리오소. 와서 같이 막걸리 한잔 합시다.
해갑이 상추쌈 두 개를 들고 공안1,2에게 다가온다. 공안1에게 쌈을 내미는 해갑. 공안1이 거부의 표정으로 해갑을 본다.
해갑
(입에 밀어넣어주며) 자. 이게 자연산이라는거다.
공안1
(할 수 없이 받아먹는다)
해갑이 공안2의 입에도 넣어주고 공안2 맛있게 먹는다.
공안2
(감탄의 얼굴로) 와 진짜 맛있습니다. (공안1에게) 그렇죠 형?
공안1
(공안2를 야속한 얼굴로 보며 끄덕인다)
해갑
(구워진 생선들 들고가며) 그만 굽고 와서 먹자.
공안1,2가 평상으로 다가와 사람들 틈에 앉는다.
송노인
빼빠지게 성게를 잡아오면 일본놈들이 몽창시리 다 쓸어가는기라.
일본놈들 성게하면 환장을 한다아이가. 노비가 따로 없었다카데.
보다 못한 해갑이증조할배가 들고 일어났다아이가. 그때 굉장했다카더라.
들섬 선착장에 마을사람들이 다 몰리나와가지고 이래는 못산다!! 한기지.
그 다음부터 섬사람들한테 함부로 못했다카더라.
가게할
그란데 그때부터 해갑이할배가 나라에 찍히갖고 뭐를 암 것도 못했는기라.
최씨가문에 참말로 모진 세월이 시작된기지.
김노인
해갑이할배 참말로 훌륭한 분이싰다카더라. 대대로 물리온 이 들섬 땅들 섬에 다 환원시키고.
그래 훌륭한 분을 악착같이 못살게 군 장본인이 바로 그 김하수 집안 아이가.
송노인
해갑이할배가 더 좋은 섬 찾아서 마을사람들 다 데리러 온다카고 떠났다카데.
그 뒤로 영영 소식이 없었고. 아까븐 사람하나 잃아삔기지.
섬마을 초입/차 안 (N)
승용차 한대가 섬마을수퍼를 향해 달린다. 차 안에 청년회장 윤태가 운전하고 있고 뒷자리에 깔끔한 양복차림의 남자(변호사)와 티브로건설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사내(건설과장)가 타고 있다.
건설과장
여기 아니잖아.
윤태
지금 이 집에 다들 모이서 잔치하고 있습니더.
변호사
(비웃으며) 잔치?
섬마을수퍼 (N)
사람들 다들 얼큰하게 취해있다. 송노인 옛날 가요를 부르고 있고 사람들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권순경이 제일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다. 노래를 끝낸 송노인이 공안1,2에게 노래를 권한다. 기겁하며 사양하는 공안1,2를 다그치는 노인들. 결국 상의 끝에 듀엣곡 하나를 선정하고 부르기 시작하는 공안1,2. 해갑이 피식 웃는다. 그 옆 평상에 가게할머니와 나래와 아이들이 앉아아서 조개를 까서 그릇에 담고 있다. 깐 조개껍질이 평상 밑에 수북이 쌓이고 나래가 큰 줄에다 하나씩 꿰고 있다. 큰 목걸이처럼 줄에 매달린 껍질이 찰랑거리며 소리를 낸다.
나래
목걸이 만들어서 언니한테 보낼까?
진미
커서 안된다. 목걸이는 보달보달한 걸로 해야지.
마루에 앉아 노래하는 공안1,2를 보는 봉희와 권순경.
봉희
그럼 권순경님은 혼자 사세요?
권순경
(고개 끄덕인다) 예. 조실부모했십니더.
봉희
얼른 좋은 분 만나셔야겠어요.
종태
순경아저씨 우리 선생님 짝사랑했는데...
봉희
(웃으며) 정말요? 그 분은 딴학교 가셨어요?
권순경
(부끄러워하며 머리 긁적인다) 예... 다 지나간 추억입니더.
이때 변호사와 김과장, 그리고 윤태가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사람들 일제히 쳐다본다.
변호사
최해갑씨가 누굽니까?
윤태
(해갑을 가리킨다) 저 사람입니더.
해갑
당신들 누군지는 몰라도 어른들이 계시면 인사부터 해.
변호사가 대꾸없이 윤태에게 손짓을 하고 윤태가 서류 한 장을 해갑에게 갖다 준다.
변호사
나는 티브로건설 변호사 윤성줍니다. 자 공사시행에 따른 최종 통고를 읽겠습니다.
폐사 티브로건설은 들섬의 토지개발사업에 착수하는 기일을 본 서면의 전달일로부터 30일 이내로 정하였는 바,
이곳에 무단으로 머물고 있는 자들에게 3일 이내에 신속한 퇴거를 요청한다. 만에 하나 퇴거통고에 응하지 않을 시에는 착공에 따라 들섬의 모든 가옥 및 건물 철거를 실행할 것이며 그 때 발생하는 파손은 물론 인적피해등에 대해 폐사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농성 등의 저항으로 공사착공이 지연 될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기로 하며 이상 이를 통고한다.
2012년 0월 00일, 통고인 티브로건설 상무이사 박성주. 통고 대리인 법무법인 바름 변호사 윤성주.
피통고인 최해갑
자, 우리는 통고를 했습니다. 문서를 받으세요
변호사가 해갑에게 또 다른 서류를 내민다. 해갑이 서류를 받아들고는 변호사에게 다가선다.
해갑
니들 말고 책임자들 오라고 해.
변호사
(위축되어 뒤로 물러난다) 저는 전달했습니다. 3일입니다. 3일 이후 일은 저희도 모릅니다.
해갑
3일까지 기다릴 거 없어. 어차피 안나갈거니까. (서류를 흔들며) 이런 건 말이야.
(서류를 죽 찢어서 던진다)
변호사
여여러분. 티브로는 분명 최종통고했습니다. 분명히 보셨죠?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증인입니다.
해갑
이 섬을 티브로에게 통째로 갖다 바친 김하수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책임자의 해명없이 공사를 시작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농담 같지. 가서 내가 누군지 알아봐.
김과장
이봐요. 지금 공갈협박하는거요?
해갑
공갈은 아니고 협박은 맞아.
우리 선조들이 니들같은 놈들이 집에 찾아오면 어떻게 했는 줄 알아?
(봉희가 소금됫박을 해갑에게 준다) 잡귀야 물러가라!
해갑이 변호사와 건설과장 윤태에게 소금을 뿌리고 마을사람들 모두 웃는다.
차 안 (N)
변호사
(머리에서 소금을 털어내며) 어디서 저런 괴물이 왔어?
윤태
(화가 단단히 났다) 가만 놔두면 안됩니더.
다된 밥에 코빠뜨린다꼬 남아있는 주민들까지 선동하고 있어예.
변호사
김과장. 애들 있지.
김과장
예.
세 사람 단호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들섬전경/만덕집 (D)
해갑이 감자 고구마 양파와 말린 생선등을 종이에 싸서 가방에 넣는다.
해갑
갔다오께.
봉희
같이 갈까?
해갑
아니야. 혼자 금방 갔다오지 뭐.
해갑이 마당을 가로질러 나간다.
선착장 (D)
배에 오르는 해갑. 시동이 걸리고 배가 출발한다. 멀어지는 신나라호. 잠시 후 검은 양복차림의 덩치 큰 사내 넷이 한 대에 두 명씩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 옆 도로를 달리고 있다. 권순경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따라간다.
마을회관 (D)
봉희가 할아버지들 이발을 해주고 있다. 가게할머니는 파마를 말고 앉아있고 김노인이 보자기를 두르고 깎는 중이다. 다른 노인들 대기 중이다. 나래가 옆에서 봉희를 거들고 있다.
김노인
나라엄마는 서울에서 미용실 했나
봉희
아뇨. 전통 찻집 했어요.
김노인
장사는 잘 됐나
가게할
니도 참. 잘됐으면 여까지 왔겠나. 요새 젊은아들이 커피 마시지 누가 그런 거 마시겠노
나라엄마! 내 말 틀맀나. 쫄딱 망해서 온 거 맞제.
봉희
아니네요. 할머님이 틀렸네요. 요새 젊은 애들이 얼마나 건강 챙기는데요.
소화 잘 되는 차, 잠 잘 오는 차, 염증에 좋은 차 이런 거 효능에 맞게 골라가면서 마신다구요.
김노인
그리 장사 잘 되는데 여까지 와 내리와시꼬?
봉희
돈 많이 벌까봐 무서워서 왔어요.
김노인
뭐어?
봉희
돈 많이 벌면 그만큼 쓸 데가 많이 생기잖아요.
쓸 데가 점점 커지면 점점 더 많이 벌어야 될 꺼고. 그게 무서워서 왔다구요
김노인
하이고. 참말로 듣다듣다 벨 웃긴 핑계 다 듣겠네
봉희가 소리내서 웃는다. 따라웃는 노인들.
항구근처 우체국 (D)
해갑이 우체국에서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아이스박스에 넣는다. 아이스박스 뚜껑에 최민주라고 쓴다.
만덕 집 (D)
송노인이 만덕 집 지붕을 고쳐주고 있다. 밑에서 나라가 보고있다.
나라
할아버지 이제 그만하고 내려와!
송노인
다됐다. 쫌만 기다리라.
나라
아이 참...
나라가 투덜거리며 지붕으로 올라온다.
나라
이제 내려가. 아빠 오면 나만 혼나.
지붕 위에 서 있던 나라의 눈에 검은 양복의 덩치들과 함께 마을을 향해 오고 있는 게 보인다. 어깨에는 뭔가 하나씩을 매고 있다.
나라
(겁먹은) 할아버지!
송노인
다 됐다. 이 것 하나만 낑구면 끝난다.
나라
누가 오고 있어.
고개를 들어 보던 송노인, 사색이 되어 나라를 주저앉힌다. 나라를 껴안고 지붕에 몸을 바싹 엎드린다.
항구근처 / 부동산 (D)
해갑이 부동산 하나를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부동산 벽에 걸린 들섬 개발 조감도를 본다. 바다 바로 옆에 거대하고 화려한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고 선착장은 멋진 요트들이 가득하다. 만덕집 자리는 헬기장으로 바뀌어있다. 해갑이 조감도를 빤히 보다가 걸어간다.
만덕 집 (D)
집으로 들이닥친 덩치들이 방문을 열며 사람들 찾는다. 아무도 없자 집기들을 때려부순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린다.
나라를 껴안고 지붕에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는 송노인. 집이 무너질 듯 기우뚱거린다. 나라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린다. 화들짝 놀란 나라가 ‘터졌어’ 라고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누르는데 그만 떨어뜨리고 만다. 지붕을 굴러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핸드폰. 기겁하는 나라의 입을 송노인이 막는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 속에서 민주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민주(소리)
나라야! 나라야!
오토바이를 세우고 권순경이 뛰어 들어온다.
권순경
이게 무슨 짓입니꺼. 안됩니더. 고만하이소. 누가 보낸깁니꺼.
덩치1
저 새낀 뭐야?
권순경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겨눈다) 당장 멈춰!!
덩치 둘이 건들거리며 권순경에게 다가온다. 차마 당기지 못하고 벌벌 떠는 권순경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덩치들.
(시간경과)
덩치들 가고없고 쓰러진 권순경을 송노인과 나라가 겨우겨우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해갑이 들어선다.
나라
아빠!
해갑
무슨 일이야.
송노인
깡패들이 왔었다. 다행히 아엄마하고 나래는 마을회관에 있고 우리는 지붕에 숨었다.
권순경이 말리다가 이래됐다.
해갑이 권순경 옆에 떨어져있는 총을 들고 나간다.
들섬 바닷길 (D)
해갑이 권순경을 자전거에 태우고 바닷길을 달린다.
티브로 공사현장 (D)
공사현장 임시사무소. 프로판 가스 위 냄비에서 뭔가 끓고 있고 여러 개의 소주병들이 놓여있다. 덩치들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데 벌컥 문이 열린다. 문 앞에 해갑이 서 있다. 돌아보는 덩치들.
해갑
니들이야?
덩치1
아마 그럴 걸?
해갑
이렇게 깡패짓 할 거면서 변호사놈은 왜 왔다갔어. 서류는 또 뭐고.
덩치2
그러니까 나가랄 때 말을 들었어야지. 겁대가리없이.
해갑이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쏜다. 놀라는 덩치들.
해갑
마지막 공포탄이었다. 다음은 실탄이다.
덩치들
(겁먹는다)
해갑
밖으로 다 나가!
선착장 입구 (D)
덩치들이 손을 머리에 올리고 일렬로 걸어가고있다. 그 뒤로 해갑과 권순경이 따라가고 있다. 선착장 한 쪽에 묶여있는 무동력 나룻배로 덩치들을 데리고가는 해갑. 공안1,2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란다.
해갑
타!
덩치들 어쩔 수 없이 나룻배에 올라타고 권순경이 밧줄을 푼다. 덩치들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는 나룻배.
해갑
열심히 저으면 이틀 안에 육지에 도착할 수 있을거다.
(권순경에게 총을 쥐어주며) 마음이 약해서 사람은 못쏘지?
그래도 아까 당한 게 있으니까 분하면 배 밑창 정도는 쏴도 돼.
권순경
(총을 받아서 배 밑을 겨냥한다)
해갑
가라.
덩치들 미친 듯이 노를 젓는다. 권순경의 얼굴에 희열이 번진다. 해갑이 지나가다가 공안1,2를 흘낏 본다. 공안1,2 못본 척 낚싯대를 노려본다.
해갑
물었어.
공안1,2
예?
해갑
고기 물었다고.
공안2 낚싯대를 걷어보면 제법 큰 고기가 올라온다. 공안1,2 환호한다. 그 너머로 정신없이 노를 젓는 덩치들의 모습이 보인다.
공사현장 사무실 (N)
건설과장 앉아있고 윤태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과장
(전화기에대고) 중장비 기사 다 불러. 애들 있는대로 다 보내고.
내일 당장! (전화끊는다)
윤태
경찰 동원하지그래요. 불법 무단점거 아입니까
과장
시끄러워져서 좋을 거 없어. 니가 모시는 김의원한테도 좋을 거 없고.
섬마을수퍼 (N)
봉희와 아이들이 가겟집에 와 있다. 나라와 나래 연수가 나란히 누워서 자고있고 봉희와 가게할머니가 앉아있다.
가게할
해갑이 혼자 집에 있나
봉희
예...
가게할
혼자 뭐하능고...?
봉희
모르죠... 오늘은 애들 여기서 재우라니까 시키는대로 해야죠.
가게할
(혀를 찬다) 나라엄마는 우짜다가 해갑이 겉은 문디를 만났노.
봉희
(웃는다) 그러게 말이에요.
봉희가 잠든 나라와 나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만덕집 (N)
해갑과 권순경이 마당 초입에 대형 수조통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권순경
끝까지 해볼 생각이십니까.
해갑
끝이 어딨어.
권순경
(본다)
선착장 (D)
다음날 아침.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고 구사대원들이 내리고 있다.
공사현장 (D)
구사대원들 이열로 정렬해 있고 그 앞에 구사대장과 건설과장이 서 있다.
구사대장
다시 한 번 얘기한다. 공권력이 투입되기 전에 오늘 반드시 이 일을 끝낸다.
만만하게 생각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얼마 전까진 노인네들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성가신 놈 하나가 이 섬에 들어왔다. 얼마 전 투입된 우리 식구 4명이 해경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뭐 자세한 건 알 거 없고... 어이 중장비! 타! 가자!
구사대원들 곤봉을 차고 마을로 향하고 중장비들도 출발한다.
파출소 (D)
전화를 받은 권순경이 파출소를 뛰어나간다.
섬마을수퍼 (D)
소음에 잠을 깨는 나라. 벌떡 일어나는 나라. 봉희는 보이지 않고 옆에 가게할머니와 나래와 연수가 잠들어 있다. 방에서 나온 나라의 눈에 거대한 포크레인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게 보인다. 이상한 느낌에 나래를 깨워 밖으로 나오는 나라. 포크레인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포크레인이 만덕이 집을 향해 가고 있고 나라와 나래의 얼굴 심각해진다.
나라
나래야 가자!
나라 미친 듯이 뛰고 나래는 넘어져 운다. 나래를 업고 뛰는 나라.
만덕 집 마당/섬마을슈퍼 교차 (D)
집 마루에 해갑이 각목을 든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해갑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포크레인. 마당으로 진입하는 포크레인. 해갑을 집어 삼킬 듯 뻗어나가는 갈퀴. 집 앞에 도착한 나라와 나래. 봉희와 마을 사람들 몰려와 있다. 갈퀴가 해갑을 향해 다가가자 사람들 경악한다.
나라/나래
아빠...
봉희
선배!
노인들
해갑아 피해라!!!
_섬마을슈퍼.
또 다른 포크레인이 슈퍼를 덮치고 있다. 연수와 가게할머니가 비명을 지르고 뛰어나오고 공안1,2도 기겁하고 밖으로 나온다. 공안들, 집을 부수고 있는 포크레인을 보고는 아연실색한다.
_만덕 집.
해갑을 향해 가는 포크레인. 꼼짝않는 해갑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보고있다. 해갑을 향해 다가가던 포크레인 갈퀴가 해갑을 덮칠 때 쯤 포크레인이 갑자기 기우뚱한다. 잠시 후 마당이 푹꺼지더니 포크레인 몸체가 폭삭 주저앉는다. 갈퀴가 해갑 바로 앞에서 멈춘다. 사람들 다 믿기지않는 얼굴로 주저앉은 포크레인을 본다. 열받은 구사대원들이 포크레인을 타고 넘어가 집을 때려 부수고 곤봉을 들고 해갑에게 덤빈다. 해갑이 휘두르는 각목에 구사대원의 곤봉이 휙휙 날아간다.
_들섬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_부서진 만덕집과 섬마을수퍼에도 비가 내린다.
_구사대장이 대원들에게 철수를 명령하고 빠져나가는 대원들.
_엉망이 된 집 마당에 덩그러니 남은 해갑과 식구들.
횟집 (N)
구사대장과 대원들이 회식을 하고 있다. 윤태가 끼어있다. 문이 열리고 흥분한 권순경이 들어온다.
권순경
오늘의 폭력사태 책임을 누가 질낍니꺼.
윤태
누가 지긴 누가 지노. 최해갑이지.
권순경
최해갑씨가 무슨 잘못입니꺼. 상부에 보고할거니까 그리 아이소.
윤태
(비웃는다) 어이 권순경. 똥오줌 좀 가리라. 이분들 상부에서 허락받고 오신 분들이다.
권순경
(믿기지않는 얼굴) 뭐라꼬예?
윤태
(소줏잔을 권순경에게 내민다) 자 한잔해라. 헛수고하지 말고.
권순경
(소줏잔을 탁 치고는 노려보고는 나간다)
윤태
(비웃는다)
민주 원룸 (N)
집으로 돌아오는 민주. 현관 앞에 배달된 물건을 발견한다.
(cut to)
해갑의 글씨로 ‘최민주’라고 써진 아이스박스 뚜껑을 보고있는 민주. 그 옆에 말린 생선과 감자, 고구마등이 놓여있다.
마을회관 (N)
사람들 마을회관으로 피신해있다. 아이들 나란히 누워자고 있고 나라만이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후 일어나 핸드폰으로 민주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실패가 계속된다. 노인들 누워서 대화중이다.
송노인
참말로 신기한 일 아이가. 멀쩡하던 마당이 와 갑자기 가라앉노.
박노인
귀신들이 도왔다카이그라네. 거가 귀신천지아이가.
가게할
맞다. 이장해가기전까지 만덕이가 무덤들을 얼매나 정성껏 관리했노. 그 공을 한기제
한 쪽 벽에 쪼그리고 앉은 공안1,2.
공안2
(작게) 최해갑이 안보입니다.
공안1
내 생각에 전쟁이 시작된 거 같다.
공안2
전쟁요?
공안1
(끄덕이며) 빨리 여기 뜨자.
공안2
허락받아야죠.
공안1
아직 핸드폰 안 돼?
공안2
안돼요.
공안1
(한숨) 그나마 슈퍼전화도 이제 안되겠구만.
공안2
...근데 최해갑은 지금 어딨는걸까요.
만덕집 (D)
해갑이 무너진 기둥을 세우려고 해본다. 부질없이 주저앉는 집 기둥. 마루에 털석 앉는 해갑의 눈에 대들보사이 놓인 상자가 들어온다. 꺼내서 보는 해갑. 상자 안에는 대량의 다이나마이트가 들어있다.
해갑
(혼잣말) 만덕이 이놈...
들섬 (N)
비가 그친 들섬이 빗물로 번들거린다.
마을회관 (N)
봉희가 초조한 얼굴로 마을회관 앞에서 해갑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권순경이 나타난다.
권순경
아무데도 안보이십니더. 어데 가신걸까예.
봉희
(걱정스런) ...
공사현장 (N)
어둠속의 적막한 공사현장. 잠시후 창고와 중장비들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차례대로 폭발한다.
마을회관 (N)
멀리서 피어오르는 불꼿 섬광. 마당에 서 있던 봉희와 권순경의 표정 얼어붇는다. 회관안에 있던 사람들 뛰어나온다.
공사현장 (N)
공사현장이 불타고 있다. 숙소건물에서 자고있던 구사대원들 뛰어나온다.
산등성이 (N)
들섬의 가장 높은 곳에 해갑이 서 있다. 불붙고 있는 공사현장을 보는 해갑의 굳은 얼굴.
마을회관 (N)
마을회관에 티비가 켜져있고 들섬 공사현장 폭발사고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앵커
남해안 들섬의 티브로건설 공사현장에서 원인을 알 수없는 폭발이 일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티브로건설은 지난 12월부터 들섬에 리조트개발을 위한 공사를 해왔는데...
공안1,2가 심각한 얼굴로 속보를 보고있다.
피시방 (N)
관모와 성학, 혁이가 컴퓨터로 들섬에 관한 얘기를 보고있다. 화면에는 들섬에 대한 기사. 놀란 얼굴로 마주본다.
관모
여기 맞아. 나라가 간 곳이.
성학
나라 이제 어떻게 되는거냐.
관모
... 지금이 기회야.
성학
무슨 기회?
관모
우리에겐 나라를 버리고 도망갔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잖아.
성학
그렇지...
관모
나라를 구하러가자
성학
거기까지 어떻게 가? 거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
혁이
내가 가는 방법 인터넷으로 찾아봤어.
관모/성학
(혁이를 본다)
관모 성학 혁이 서로 눈을 맞추더니 후다닥 뛰어나간다.
민주집 (D)
기자(소리)
들섬은 개발과 관련한 주민들의 찬반이 팽팽했으며 현재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주해가고 남은 10여명의 주민들이...
티비 화면에 불타는 공사현장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잠시 후 민주가 벌떡 일어난다.
공항 (D)
민주가 바삐 공항 게이트로 들어가면서 이선생과 통화한다.
민주
선생님. 저 동생들한테 가요. 네. 가서 다시 전화드릴게요.
제가 SOS치면 와주세요. 아셨죠?
항구 (D)
기자와 환경단체 회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그 한 켠에 민주가 앉아있고 그 뒤로 관모 성학 혁이 앉아있다. 들섬행 배가 없다는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 몰려가 항의한다. 잠시 후 환경단체회장이 따로 배를 불렀다고 말하고 사람들 환호한다.
학교옥상 (D)
학교 옥상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봉희와 나라 나래가 옥상에서 해갑을 찾지만 해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얼굴.
바다 (D)
들섬을 향해 오고 있는 배. 민주와 관모 성학 혁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뱃머리에 서 있는 민주와 아이들의 눈에 멀리서 타오르는 횃불이 보인다.
학교 앞 (D)
운동장으로 진입하는 구사대원들. 교문 앞엔 각종 환경단체를 비롯한 각종 단체 회원들이 저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회원
티브로는 삽질을 멈추고 즉시 들섬을 떠나라!
국회의원 김하수는 들섬을 죽이려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그 옆에 개발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여 역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찬성주민
개발은 발전이다. 들섬의 발전을 방해하는 환경단체는 물러가라!
그 중 누군가가 튀어나와 환경단체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낸다.
누군가
환경은 얼어죽을 환경이야? 개발이 뭐가 나빠?
이 섬에 살지도 않는 인간들이 와 남의 땅에 와서 감나라 배나라고!
그 중 누군가가 튀어나와 환경단체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낸다.
환경회원
티브로는 삽질을 멈추고 즉시 들섬에서 철수하라!
서로 구호를 외치다가 말싸움이 집단 난투극으로 번진다. 이때 섬전체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싸움을 멈추고 사람들 일제히 옥상을 본다. 옥상 난간에 메가폰을 든 해갑이 나탄난다. 해갑을 본 봉희와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누군가
최해갑씨 한 번 말해보소. 당신은 누구편인지.
(단체를 가리키며) 타지에서 온 이 사람들 편입니까. 들섬의 발전을 바라는 우리 편입니까.
우리라꼬 평생 고기만 잡으란 말입니까. 자식들한테 가난을 대물림하라는 말입니까!!!
환경회원
최해갑씨 말씀해주세요. 들섬은 청정구역으로 정해진 섬입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 아름다운 섬을 파헤치는 게 과연 옳은 일입니까??
해갑
(메가폰에 대고) 나는 그 누구편도 아니오. 나는 나만의 깃발을 흔들 뿐이오.
환경회원
(발끈하며) 어느 편도 아니라니요.
그럼 최해갑씨 당신은 지금 그 옥상에 왜 올라가 있는 겁니까. 이 들섬을 지키기 위해서 아닙니까?
찬성주민
어느 편도 아이라니. 그기 말이가뭐꼬.
니 할부지 아부지 어무이가 다 이 들섬에서 사싰고 니 피가 이 들섬핀데 들섬 사람들이 남들맹키로 기 피고 살고 싶다는데 와 찬성도 반대도 아인데!
해갑
시끄러!
나와 내 가족은 여기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난 여기 있다. 그 뿐이다.
김하수 지역구사무소/들섬 교차 (N)
_ 김하수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인터뷰를 하고있다.
하수
어르신들 귀한 땅과 집 최대한 보상금 받아드렸지, 평생 구경 못해본 아파트에 살게 해드렸지,
자식들 취직까지 보장해줬습니다. 절은 못받을망정 내가 왜 비난을 받아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현재 들섬에서 농성중인 최해갑이라는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80년대 대학과 사회를 혼란으로 빠트린 바로 그 용공세력의 핵심인물입니다.
그자는 지금도 검찰은 물론 국정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잡니다.
영화나 만들며 헛상상이나 하는 자가 발전을 알겠습니까? 삶의 질을 알겠어요? 그건 정치을 해본자만이 해줄 수 있는 일니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점거농성입니까. 그 아름다운 들섬에 폭도가 왠 말입니까.
학교 옥상 (D)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진압대원들이 옥상을 향해 공격탄을 쏜다. 해갑이 날아온 공격탄에 얼굴을 맞고 엎드린다.
일제히 탄식하는 사람들. 잠시 후 피를 철철 흘리며 해갑이 다시 난간에 나타난다.
해갑
악마의 속삭임이 있기 이전에 이 섬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웃끼리 부모자식끼리 삿대질을 하고 머리채를 잡고 칼부림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민주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선다. 해갑을 발견한 민주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해갑
...여기는 남단 끝 섬이다. 더 가면 바다다. 그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아래에 서있는 봉희와 아이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가리킨다)
저기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갈 데가 없는 사람을 가라고 떠미는 것은 바로 저 바다에 뛰어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떠밀려서 많은 사람들이 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 섬을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낙원으로 만들고 싶었던 내 할아버지와 내 아버지도 바다로 뛰어들었다.
... 갈 곳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낙원을 뺏지마라.
마을노인들 울고 민주 나라와 나래도 운다. 공안1,2도 훌쩍인다. 굳은 얼굴로 서 있던 봉희가 어딘가로 간다.
섬마을슈퍼
봉희가 유리병에 휴지가 꽂힌 병들을 가방에 담아 학교 쪽으로 뛰어간다.
학교비상계단
_봉희가 권순경의 도움으로 학교 뒤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학교운동장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구사대원들.
학교비상계단
각목을 들고 왔다갔다 하던 해갑이 발소리에 긴장하며 돌아본다. 봉희가 화염병을 들고 서있다.
해갑
안봉희!
봉희
(해갑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거봐. 안다르크 없으니까 안되지.
봉희가 불 붙인 화염병을 양손에 들고 옥상 난간에 선다.
봉희
우리는 여기서 살고싶다 이 개새끼들아!!!
진압대원들을 향해 화염병을 날리는 봉희. 날아간 화염병은 진압대원들 가운데로 떨어지고 대원들 기겁을 하며 피한다. 민주와 아이들이 봉희의 입에서 욕이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해갑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봉희를 본다. 뒤이어 옥상으로 날아오는 돌멩이들. 해갑이 봉희를 뒤로 낚아챈다.
해갑
비켜!
다시 난간에 올라서는 해갑. 화염병을 연달아 날리고 대원들 이리 저리 피한다. 잠시 후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상공에 헬기 한 대가 나타난다. 해갑이 날아온 돌멩이를 헬기를 향해 다시 던진다. 헬기유리창을 맞고 떨어지는 돌멩이. 헬기가 잠시 멀어지더니 해갑과 봉희에게 더욱 가까이 내려온다. 세찬 바람이 해갑과 봉희를 날릴 듯 불어제낀다. 둘이 꼭 껴안은 채 바람을 견딘다. 바람에 횃불이 꺼진다. 다음순간 총소리와 함께 그물 총이 발사된다. 공중에서 거대한 그물이 펼쳐지더니 그대로 해갑과 봉희를 덮어씌운다. 무거운 그물 무게로 인해 바닥으로 넘어진 해갑과 봉희를 그물채 헬기가 들어올린다. 탄식하는 사람들. 민주가 우는 나라와 나래를 끌어안는다. 공안1,2를 비롯한 사람들 입을 딱 벌린 채 이 모습을 보고 서 있다.
들섬초교
경찰들이 사람들을 마을회관 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 옆에서 경찰하나가 통화 중이다.
경찰
예. 배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환경단체회원들도 연행할겁니다. 예.
대원들에 의해 회관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공안1,2를 대장이 본다.
대장
어이 거기.
공안1,2
(본다)
대장
당신들 환경단체야?
공안1,2
...낚싯꾼입니다.
공안1,2 안으로 들어간다.
파출소 (N)
해갑과 봉희가 의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앉아있다. 권순경이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다.
권순경
죄송합니더...
해갑
니가 왜 죄송해. 걱정말고 본분에 충실하게 해.
권순경
(울먹인다) 죄송합니더.
마을회관 (N)
사람들 회관에 다들 모여서 켜져있는 뉴스를 보고있다.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최해갑이 오늘 밤 남해의 작은 들섬에서 전격 체포되었습니다. 최해갑은 오는 12월 선거를 대비해 진보세력의 정치화를 꾀할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 김세연(까페시삽이 잡히는 장면) 홍만덕등과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특정 정당 음해, 특정 정치인 테러등의 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 달에 있었던 김하수 국회의원의 오물습격과 자택 테러 사건이 바로 최씨의 지시로 일어난 일임이 현장에서 검거된 홍만덕의 자백으로 드러났습니다.
... 지난 달에 있었던 김하수 국회의원의 자택 테러 사건 현장에서 검거된 홍만덕은 최씨가 주요 정부시설 침입 및 파괴를 직접 지시했으며 최씨의 지시를 받고 사회 각층에서 활동 중인 간첩이 십여 명 더 있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권만연 검찰총장은 이번기회에 우리 사회의 안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종북좌익 세력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다시 한 번 천명했습니다. 특히 영화 만화 미술등 예술계 전반의 좌익화는 대중에게 파급될 영향력으로 볼 때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이는 이번 최해갑감독의 들섬 불법폭력농성으로 드러났다고...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가게할
저기 다 무신 말이고.
나라
다 거짓말이야. 우리 아빠 간첩아니야. 만덕아저씨가 그랬을 리가 없어. 다 거짓말이야!
송노인
근데 어째저래 거짓말을 맹글어내노. 세상에 만덕이가 간첩이라니 개가 웃을 일이다.
공안1,2 구석에 찌그러진 채 눈치를 보고 있다.
(시간경과)
사람들, 쪼그리고 누워 있다. 나래가 민주 품에 안겨있다. 나라가 교실 구석에 등을 보이고 누워있다. 그물에 씌워져 들어 올려지는 해갑과 봉희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라. 민주를 비롯한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구석에 앉은 공안1,2가 보고 있다가 둘이 시선을 마주친다.
파출소 (N)
대장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자고 있다. 권순경이 그 옆에 앉아있다. 문이 열리고 공안1,2가 대원과 함께 들어온다.
대장
뭐야.
대원
저기 이 분들이 대장님 만나야된다고.
대장
(공안1,2를 본다) 뭔데.
공안1
(신분증을 내민다) 국가기밀이오.
대장
(신분증을 들여다보다가 권순경에게) 확인해봐.
공안1,2
(권순경을 보고 권순경도 공안을 본다.)
밖으로 나가는 권순경. 대장과 공안1,2의 어색한 순간. 잠시 후 권순경이 다시 들어온다.
대장
알아봤어?
권순경
예. 무조건 협조하랍니다.
대장
그래?
권순경
예.
대장
(공안1,2에게) 들어가십시오.
공안1
(들어가다말고 대장에게) 지금부터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알았어?
대장
예!
파출소 소장실 (N)
문이 열리고 공안둘이 들어온다. 해갑과 봉희가 공안1,2를 본다.
공안1
최해갑씨.
해갑
(고개들어 쳐다본다)
바닷길 (N)
나라가 자전거 뒤에 나래를 태우고 어딘가로 달리고 있다. 그 뒤로 권순경의 오토바이에 민주를 태우고 따라온다.
파출소장실 (N)
소장실 창문이 열려있고 해갑과 봉희는 보이지 않는다. 공안2가 조용히 창문을 닫는다.
공안2
선배님.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오늘 가장 멋있습니다. 존경합니다.
공안1
...주민등록증을 빠갤 때부터 이건 운명이었어.
바닷가 (N)
초조한 얼굴의 해갑과 봉희, 신나라호 갑판 위에 서 있다. 어둠속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나란히 나타난다. 아이들을 본 봉희 왈칵 눈물을 쏟으며 뛰어가 안는다.
(시간경과)
선착장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서 있고 그 옆에 권순경이 서성이고 있다. 배 위에 서 있는 봉희, 민주, 나라, 나래. 해갑이 그들 앞에 선다.
해갑
엄마 아빠는 잠시 여행 떠나는거다. 반드시 돌아 올 거야.
나라
아빠보다 더 커버리기 전에 돌아오는 게 좋을 걸?
해갑
최나라. 아빠를 따라하지 마라. 하지만 비겁한 사람은 되지 마. 알았지?
나라
(고개를 끄덕인다)
해갑
두려워하지 마. 널 이해해주는 한 사람은 반드시 있으니까
나라
엄마처럼?
해갑
우리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만데... 아빠가 데려가서 미안하다.
나라
괜찮아. 아빠만큼 좋아하진 않아.
해갑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나래가 훌쩍 훌쩍 울기 시작한다. 해갑이 나래 앞에 앉는다.
해갑
우리 나래...
나래
(훌쩍인다)
해갑
우리 나래는 언제나 아빠 편이었지.
나래
(해갑 목을 끌어안으며) 아빠 가지마.
해갑
아빠 가는 거 아니야. 금방 올거야. 그동안 기다릴 수 있지?
그리고 우리 나래가 오빠 지킬 수 있지?
나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가?
해갑
(끄덕인다) 오빠는 툭하면 가출하잖아.
그러니까 우리 나래가 오빠 지켜야지. 그래야 엄마 아빠가 안심할 수 있어. 그럴거지?
나래
(울면서 끄덕인다)
나래를 안은 해갑이 아까부터 말없이 서 있는 민주를 본다.
해갑
...우리 큰 딸,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동생들 부탁한다.
민주
...
해갑
...아빠가 원망스럽냐.
민주
(눈물 뚝뚝 흘린다) ...미안해 아빠. 미워해서 미안해.
민주가 해갑에게 안기고 봉희와 나라도 안긴다. 해갑식구들 모두 끌어안은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밑에서 권순경이 본다. 권순경 코끝이 찡해진다. 잠시 후 아이들 배에서 내려와 권순경과 나란히 선다. 배가 움직인다.
해갑
지금부터 지도에 없는 섬을 찾으러 간다.
우리는 다시 만날거다. 그때까지 반드시 웃으면서 기다려라! 알았나?
해갑의 웃음소리와 함께 신나라호가 멀어진다.
봉희
얘들아 사랑해!!
나래
아빠! 엄마! 사랑해!!
나라
아빠! 엄마! 꼭 돌아와!!!
민주
(혼잣말) ... 돌아오지 마. 둘이 행복한 곳으로 떠나.
어둠 속으로 점점 사라지는 배. 아이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렇게 서 있다. 서서히 암전.
에필로그1
화면 다시 밝아오면 학교 옥상에 가득 찬 사람들. 민주 나라 나래 신선생 오선생 관모 성학 혁이모습까지. 저마다 환경 보호와 개발 반대를 한목소리로 외치며 깃발을 휘두르고 있다. 문 너머에는 음악소리와 함께 농성자들을 위한 위문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노래소리에 맞춰 박수치고 노래 부르는 옥상 위의 아이들. 그 위로 뉴스와 화면이 이어진다.
진압된 것으로 알려졌던 들섬사태가 주동자 최씨 부부의 탈출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티브로의 들섬 개발 소식과 함께 농성자 무력 진압소식이 외부에 퍼지면서 환경단체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들섬으로 몰려들어 농성에 가담하고 있으며 들섬 개발 반대 여론이 전국민에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로서 농성 한달 째를 맞고 있는 들섬 초교에는 팔순 노인부터 7세 미취학 아동까지 학교 옥상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음식물 전달과 위문 공연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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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수 국회의원이 들섬 개발과 관련 공문서 위조 뇌물수뢰 폭력교사등의 부정행위로 오늘 경찰에 전격 체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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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갑씨 부부가 들섬에서 행방을 감춘지 100일째인 오늘 최씨의 영화가 인터넷에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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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갑감독의 팬까페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 회원이 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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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티브로는 오늘 보도자료를 통해 들섬개발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농성 100일만에 들섬은 다시 평화를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에필로그2
_ 들섬초교 교실. 이선생과 민주가 수업중인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_맑고 청아한 바닷가를 나라와 나래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멀리서 작은 배 한 대가 들섬을 향해 오고 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깃발. 경쾌한 음악과 함께 크레딧 오른다.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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