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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금자씨

 

  

 

 

1. 교도소 앞 (아침)

산타클로스 차림의 성가대원 일곱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아코디온을 멘 여자기타를 건 남자제각기 심벌즈트롬본캐스터네츠탬버린트라이앵글 따위를 들었다하얀 입김을 뿜으며 발을 동동 구른다진눈깨비가 날린다.

 

성가대원1

(하품 한번 하더니)

살아있는 천사라지요?

 

 

 

 

성가대원2

안에서두 다들, ‘친절한 금자씨라구 부른다잖아요...

 

초조한 듯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서성대는 전도사성가대원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커피만 홀짝거린다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얼굴에 희색이 도는 전도사양 손을 들어 벌린다일제히 종이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악기를 잡는 성가대전도사의 지휘에 맞춰 어설픈 연주 시작긴 담에 조그맣게 난 철문으로 초췌한 여인들이 나온다.

 

성가대

(합창)

내 나아갈 길에 높은 담과 깊은 함정 많도다.

나약한 내가 능히 넘을 수 없으니 누구의 도움 있을까.

주님의 숨결이 나를 불어 담을 넘게 함이요

주님의 손바닥다리가 되어 함정을 건너게 함이로다.

 

가족과 얼싸안는 사람들혼자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끝으로 금자 나온다물방울무늬의 헐렁한 여름 원피스 차림으로 걸어와 전도사 앞에 선다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양팔을 신나게 놀리는 전도사기다리는 금자코에서 하얀 김을 뿜으면서도 추위에 전혀 아랑곳 않는 표정이다노래 끝난다.

 

전도사

(두부를 내밀고타이르듯)

넣어줬잖아요겨울옷... 쯔쯧...

(금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향해다시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고생 많았죠십삼년... 정말 대견합니다.

 

 

2.전도사의 집 +TV몽타주()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전도사시간이 흐르면서 조명과 의상도 바뀐다탁자에 놓인 성경벽에 걸린 십자가화면 분할되며 뉴스 장면들 - 한 어린이의 인터뷰.

 

원모 친구

그래서 원모가요대마왕 구슬을 땄거든요... 빨리 집에 간다구 뛰어갔는데...

그 구슬이 원래 제 꺼거든요.....

 

스튜디오의 앵커.

 

앵커

....「동부이촌동 원모 어린이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수갑을 차고 최반장과 형사들에 둘러싸여 경찰서로 들어가는 금자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기자

... 어제 오후 범인이 자수함에 따라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줌 인해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송 카메라빗발치는 카메라 플래시마이크를 들이댄 기자들의 질문공세. TV소리 줄어들면서 여자 성우의 아름다운 목소리.

 

여자 성우

(소리)

이금자,「동부이촌동 박원모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녀 나이 스무 살이었다.

 

기자1

범행 동기가 뭡니까?

 

기자2

지금 심경이 어때요?

 

기자3

한 마디만 해주세요!

 

금자

(결심한 듯 입을 열면 주변이 조용해지며)

...심경은...담담하구요제가...원모를 죽이게 된 것에 대해서...

(갑자기 평정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며)

어우...어떡하지...

 

얼굴을 감싼 이금자의 모습클로즈업.

 

여자 성우

(소리)

사람들은 이금자의 어린 나이와 잔인한 범행 수법,

뻔뻔할 정도의 천진함에 충격을 받았다.

 

잡초가 우거진 공터에 선 기자뒤로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경찰들이 통제하는 가운데 기웃대는 구경꾼들.

기자

범인 이모씨가 박원모군을 감금했던 장소입니다.

범인은원모군이 너무 울어서 베개로 입을 막으려다 그만 질식사시켰다고...

 

컨테이너 박스 내부현장검증 진행 중형사들 중 최반장금자쿠션을 들어 마네킹의 머리로 가져간다고개를 돌리는 아이 아버지오열하던 어머니가 달려들자 막는 전경들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진다.

 

여자성우

(소리)

그러나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그 미모였다.

황색 언론들은 그녀를 올리비아 핫세와 비교하며 떠들었고.

부산에 사는 한 남자는 신문사에 공개 구혼편지를 보내 빈축을 샀는가 하면

어느 지각없는 감독은 이금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비난에 부딪치자 이내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실신할 듯 창백한 이금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TV화면소파에 앉아 시청하던 전도사스르르 내려와 무릎 꿇는다.

기도하는 그의 손과 쿠션을 누르는 금자의 손이 동시에 보인다.

 

여자성우

(소리)

그러나 그때 전도사는 보았다.

이금자의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 너머에 깃든 사탄의 존재를.

 

3.교도소 접견실()

 

탁자에 올려놓은 전도사와 금자의 손수인복을 입은 금자마주 앉은 전도사.

 

금자

왜 절 만나구 싶으셨어요?

 

전도사

(엄숙하게)

테레비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금자씨의 그 마녀처럼 사악한 얼굴 너머에 깃든 천사의 존재를...

 

눈물 글썽한 눈을 들어 전도사를 바라보는 금자천사처럼 아름답다.

 

금자

(소리)

천사그것은 사실일까요?

 

4.교도소(-)

 

금자

(소리)

과연 제 안에 천사가 깃들어 있을까요?

정말 그렇다면 제가 그토록 사악한 행위를 하는 동안 천사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고전 늘 그것을 생각했습니다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안의 천사는 오직 내가 부를 때만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을.

“어디 계신가요?  나와 주세요.”, “저 여깄어요

이렇게 천사를 부르는 행위바로 그것을 우리는 ‘기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교도소야말로 기도를 배우기에 이상적인 장소입니다왜냐면...

 

홈무비처럼 찍은 거친 화면 - 금자전도사와 나란히 무릎 꿇고 기도한다운동 시간에 고선숙 노인을 모시고 산보한다우소영과 나란히 엎드려 종이학을 접는다머리를 다듬어주는 김양희와 농담을 나누며 웃는다병든 마녀의 밥을 대신 타다 먹여준다장씨에게서 제과 기술을 배운다실종된 박원모 어린이를 찾는 전단을 자기 방 벽에 붙여놓고 기도한다오수희의 지도를 받아 학사고시 문제집을 푼다잠든 박이정 곁에 앉아 부채질을 해주며 성경을 읽는다.

 

금자

(그동안의 열변을 경건하게 마무리하며)

...왜나면,

여기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연단에 선 금자정중히 인사한다뒤에 걸린 현수막재소자 웅변대회주최소망선교회후원열린 교도행정 협의회고개를 끄덕이며 박수치는 소장 이하 교도관들몇몇 재소자들은 훌쩍이기까지 한다벌떡 일어나 열렬히 손뼉 치며의기양양한 얼굴로 이리저리 돌아보는 전도사페이드아웃.

 

5.교도소 앞(아침)

 

연결여전히 두부를 내밀고 선 전도사와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금자.

 

전도사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두부를 금자 얼굴 높이로 올리고)

어서요...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다시는 죄 짓지 말란 뜻으로 먹는 겁니다.

 

전도사의 손을 탁 친다두부가 떨어져 바닥에 뭉개진다경악하는 전도사.

성가대원4. 심벌즈를 놓쳐 떨어뜨린다.

요란한 소리가 멈추자 모질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 뿐모두 그녀를 주시한다.

 

금자

너나 잘하세요....

 

금자몸을 돌려 걷는다다들 멍청히 서서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본다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는 뒷모습음악과 함께 검은 화면으로 커팅제목이 나타난다.

 

6.서울역()

 

기차 도착선글라스 쓰고 내리는 금자뚜벅뚜벅 걷는다겨울외투를 껴입은 행인들이 힐끔거리며 돌아본다.

 

7.미용실 앞(저녁)

 

미용사와 손님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쳐다본다가게 주인 김양희어떤 여자를 꼭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가위와 빗을 든 양손으로 금자를 얼싸안은 양희눈물까지 뚝뚝 흘린다자막김양희, 1998-2002년 복역.

 

8.교도소 거실()

 

문 열린다.

 

교도관

손님 받어!

 

들어서는 김양희멀뚱히 바라보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철문 닫힌다.

 

양희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김양희입니다오년 받았습니다.

 

양희의 마음 속 목소리가 현실의 대사 위에 겹쳐 들린다.

 

양희

(소리)

미결 때 들었는데경주여자교도소에 가면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죄수1

몸 팔다 왔지?

 

양희

(소리)

그 여자 별명은 ‘마녀라고 했다.

 

죄수2

들어가 앉어.

 

구석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다리를 거는 죄수3, 넘어지는 김양희무관심해보이던 여자들이 서로 돌아보고 키득거린다눈물을 글썽이며 일어나 성경을 펴놓고 온화한 얼굴로 바라보는 금자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후 -

형광등 몇 개가 꺼지면서 어두워진다사진이 박힌 원모의 실종자 수배전단과연필화 몽타주가 박힌 금자의 용의자 수배전단이 나란히 붙은 벽 앞에 무릎 꿇은 금자누워 지켜보는 양희금자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양희고개를 돌리면 어둠 속에 누운 남자의 유령문신 잔뜩 한 몸에 러닝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남자풀리지 않는 매듭을 붙들고 씨름한다.

 

양희

...삼촌넥타이 안 하잖아?

 

기둥서방

여기선 필수야얼마나 높은 분들이 내려오시는 줄 아니?

(한숨쉬며)

...니깟년이 뭘 알겠니...

...답답해좀 풀어줘...

 

그의 목에 손을 갖다대는 양희넥타이를 잡아당긴다눈이 뒤집히고 숨이 넘어간다양희금자를 돌아본다.

 

양희

(눈이 마주치자고개를 끄덕이며)

기둥서방이에요...목을 조르고 있을 땐 기분이 굉장히 좋았는데...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고는)

...차라리 내가 죽을 걸 그랬어요이럴 줄 알았으면...

 

금자

(은은한 미소를 띠고)

그럼 죽어.

 

놀라 금자를 보는 양희.

 

잠시 후 -

나란히 앉아 기도하는 두 사람금자의 얼굴이 발하는 은은한 빛.

 

금자

(소리)

그리고 새로 태어나필요하면 몇 번이고...

 

훌쩍이는 양희의 뺨을 쓰다듬어주는 금자품에 파고드는 양희꼭 안아주는 금자.

 

금자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껍질이 벗겨지도록 박박 밀어서 죄를 벗겨내.

그럼 애기 속살루 변해...알았지?

 

양희

(소리)

금자 언니는이미 지나간 자기의 생을 애도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양희 얼굴도 점점 빛을 내기 시작한다.

 

9.교도소 밖()

 

운동장에서 바라본 ㅁ자 모양의 건물. 3층의 한 구석에서 점점 밝아지는 빛이 새어나온다.

 

양희

(소리)

...인제 경주에 새로 오는 살인범들은 다 큰일 났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줄 착한 성녀도 없고...?

 

10.골목()

 

가로등 환히 켜진 길손잡고 걸어오는 금자와 양희양희의 얼굴이 벅찬 기쁨으로 빛난다.

 

양희

(소리)

히히히...

 

11.금자 아파트()

 

불 켜자 드러나는 좁고 허름한 원룸 풍경작은 침대와 옷장미용실에서 쓰는 회전의자와 화장대거울부터 들여다보는 금자화려한 스타일로 변한 머리가 낯설다는 듯 만져본다.

 

양희

(옷장 안을 살피는 금자에게 다가가며)

...입던 건데급한 대루 일단 입어요.

(쭈뼛쭈뼛 다가서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더 좋은 것들 해주고 싶었는데...알죠제 맘?

 

금자

(뻣뻣하게 안긴 채)

힐은 없나?

 

양희

(포옹을 풀며)

...사실은 나 사랑했든 거 아니지그런 척만 한 거지?

(말없이 미용의자에 가 앉는 금자)

....괜찮아요그래도 쓸모가 있다는 게 어디야...

아무리 그래두 언니너무 변했어요...항상 눈웃음치구조곤조곤 말도 잘 했잖아...

(비밀 이야기라 하듯 속삭이며)

...벌써 작전 개시?

 

요염하게 다리를 포개고 앉은 금자대답 없다팬하면양희는 간 데 없고 텅 빈 실내계속 패닝다시 금자로담배 연기를 내뿜는다느닷없이 으하하 -  웃어 젖힌다울리는 소리시험 삼아 해봤다는 듯웃음기를 싹 거둔다.

 

잠시 후 -

원모와 자기의 수배전단을 거울에 붙이는 이금자누렇게 변색하고 둘레가 다 나달나달해졌다앞에 무릎 꿇고 앉는다비닐봉지에서 붉고 긴 양초를 꺼내 세우고 불을 붙인다봉지 안에는 같은 초가 수백 개나 담겼다.

 

잠시 후 -

기도 자세로 앉아 꾸벅꾸벅 조는 금자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미소까지 머금었다.

 

12.설원()

 

벼량 끝멀리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 산 풍경금자가 긴 줄을 잡고개처럼 엎드린 채 목에 줄을 맨 백선생을 끌고 간다머리는 백선생몸은 개발밑에 구부러진 스키를 붙여서 잘 끌린다가슴과 배 아래로는 막대기들을 줄줄이 받쳐서 다리를 굽힐 수 없도록 해 놓았다걸음을 멈추더니 백선생 앞에 무릎 꿇는 금자얼굴을 가까이 들이댄다.

 

금자

(백선생의 귀에 대고)

안녕히 가세요.

 

총을 빼들더니백선생 정수리에 수평으로 대고 쏜다총성과 함께 항문에서 피가 튄다목마처럼 앞뒤로 흔들흔들 하는 백선생테리어의 시신.

 

13.금자 아파트(새벽)

 

무릎 꿇고 엎드려 자는 금자흐뭇하게 웃는다.

 

14.골목 ()

 

구식 모드의 파란 코트를 여며 입고 하이힐을 신은 금자뚜벅뚜벅 걷는다.

짙게 눈화장한 얼굴.

 

15.아파트 복도()

 

긴 복도를 걷는 금자의 뒷모습초인종을 누르는데 벨소리 대신 웬 여자의 비명이 터진다.

 

16.원모네()

비명 지르는 원모 엄마허공에 들린 식칼.

 

원모 아빠

(소리)

도대체...왜 이러는 거요우리한테?

 

칼을 들고 원모 부모를 노려보는 금자탁자 모서리에 왼손을 대고 새끼손가락만 펴서 올려놓는다장식장에 놓인 원모 사진액자그 뒤 벽걸이 거울에 비친 실내 전경 - 금자칼을 높이 올렸다가 내리친다아아악 - 비명 지르는 세 사람금자를 붙드는 원모 아빠.

 

금자

(이를 악물고 칼을 다시 들어)

...용서해주실 때까지...용서해 주실 때까지...

 

원모아빠

(팔을 잡고)

알았어알았으니까...여보, 119에 전화해빨리!

 

원모 엄마

(송수화기를 붙들고)

...여기 동부이촌동인데요...한빛 아파트 9 802호요...

...저기손가락 짤라진...?

...여보거기 손가락 있는지 좀 보세요!

 

수건으로 지혈하다 말고 손가락을 찾기 시작하는 원모 아빠혼절하는 금자와마루를 기어 다니며 수색하는 부부.

 

17.아파트 앞()

 

피범벅을 한 채 들것에 실려 지나가는 이금자피크닉용 아이스박스를 든 구급요원도 지난다.

 

금자

(반쯤 정신이 나가서)

제발...용서를...용서를...

이어 산소마스크를 한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원모 엄마손을 내저으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앰뷸런스 떠난다.

 

여자 성우

(소리)

금자는십삼 년 동안 교도소에서 노동해서 번 돈을 몽땅 수술비로 써야 했다.

 

18. 「나루세」()

 

공손히 두 손 모으고 선 이금자손가락을 보며 혀를 차는 장씨재료를 잔뜩 안아 든 근식이 들어선다.

 

장씨

근식아 인사해라니 사수다이금자라고내가 얘기했지?

 

근식

(앞이 보이지 않아 옆으로 돌아서며)

안녕하세요말씀 많이...

 

금자와 눈이 마주치자 손에 힘이 빠져 재료들이 우당탕 쏟아져 내린다.

 

장씨

...내가 이쁘다고 했잖어.

 

근식

(무시하고 금자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금자

(고개를 젓고)

그냥 금자씨.

 

20.철공소 앞()

 

지저분하게 물건들이 쌓인 골목작은 공장 규모의 철공소.

 

21.철공소()

 

불꽃을 튀기며 쇠를 깎는 남편 너머포옹하고 있는 우소영과 이금자.

 

소영

(소리)

이금자...처음 들어왔을 땐 갓난애처럼 줄창 울기만 했지.

이게 아주 우울했던 거라.

 

22.교도소 거실 ()

 

구석에 무릎을 안고 훌쩍이는 금자다른 수감자들은 다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조용하다바닥에 엎드려 앉아 하트로 가득 찬 편지를 쓰던 우소영짜증스런 표정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죄수3이 읽던 잡지를 냅다 던진다.

 

소영

씨발년...질질 짜고 지랄이야재수 없게.

 

소영의 입술이 떨리며 눈에 물이 고인다억지로 울음을 삼키는 금자쪼그리고 앉아 심호흡을 다섯 번 한다.

 

여자 성우

(소리)

언젠가 어떤 남자가 가르쳐준 대로

금자씨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주저앉아 심호흡을 다섯 번 한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소영과 이금자를 바라보는 다른 재소자들조용히 잡지를 주워가는 죄수3.

 

소영

(소리)

뭘 봐...

 

23.은행()

 

머리에 뱀가죽 무늬 스타킹을 쓴 소영 부부.

소영

(멍청하게 쳐다보는 여행원들을 향해)

씨발년들아...재수 없게.

 

카운터에 올라선 부부트렌치코트를 훌렁 벗어젖힌다산적들처럼 어깨에 엽총탄대를 X자로 걸었다.

 

소영

(사제총을 겨누고)

모두 손 올리고 바닥에 엎드려!

 

남편과 마주 보는 소영스타킹 너머 두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 진다자막 - 우소영, 1990 -1996년 복역.

 

24.운동장()

 

재소자들의 피구 시합식은땀을 흘리며 선 소영금자가 날렵하게 피한 공을 맞고 맥없이 쓰러진다금자가 다가와 소영을 붙들고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본다재소자들교도관들 몰려온다.

 

 

소영

(소리)

만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나는 죽을 것만 같았는데...

 

25.병원()

 

두 병상에 마주 보며 누운 금자와 소영소영은 눈물을 흘린다.

 

소영

(소리)

사실은 만성 신부전 때문이었지만,,,하여튼 죽은 거 같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이 년이 지 신장을 떼어준다고 나서는 거야.

그게 무슨 교복에 달린 주머니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떼어주는게 아니잖아?

 

금자

(생긋 웃어 보이며)

씨발년...질질 짜구 지랄이야재수 없게.

 

26. 철송소()

 

21연결금자와 소영포옹 중이다.

 

소영

(남편을 돌아보며 혀 짧은 소리로)

여보오금자가 왔찌!

(무슨 일인가 다가오는 남편소영금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나저나,,,왜 이렇게 변했대...?

 

밝은 얼굴로 다가오는 소영의 남편손을 옷에 닦은 뒤 내민다.

 

27.은행()

 

살짝 고개 드는 행원을 향해 총구를 돌리며 고함치는 남편.

 

남편

우리 마누라가 엎드리라고 하시잖아.!

 

로우 앵글로천장을 향해 총을 쏘는 우소영슬로우 모션.

 

남편

(소리)

...그때 알았습니다아아나는 여신과 결혼했구나...

 

28.철송소()

 

총소리의 여운셔터를 내려놓고 소주를 마시는 세 사람.

 

소영

(남편에게 기대어)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딜 가도 두렵지 않았어...여보그치이-?

 

남편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가지 못했죠.

 

인서트각각 경찰들에게 끌려가면서 서로를 향해 뻗는 안타까운 손길.

 

소영

(소리)

왜 부부 감옥은 없는고양부부는 일심동첸데...

 

남편

(예뻐 죽겠다는 듯 우소영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며)

그게 천국이지감옥이양?

(금자에게)

어떻게 감사를 해얄지...

 

소영

여보오우리 금자 너무너무 위대한 작전을 준비중이거덩도와줄수 있찌?

 

금자노란색 책을 남편에게 건넨다「법구경」

 

잠시 후-

책장들을 떼어서 책상에 펼쳐 놓았다페이지마다 무슨 도면의 일부가 그려져 있다전혀 연결되지 않는 모양이다남편책장들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기 시작한다책상 구석에 수천마리 종이학이 가득 담긴 커다란 병이 보인다.

 

잠시 후-

마지막 퍼즐 조각을 제자리에 놓는다사제권총 설계도면이 완성된다스카치테이프를 가로세로로 붙이는 남편.

 

잠시 후-

벽에 붙여놓은 도면을 바라보는  세 사람.

 

남편

...어디서 난 겁니까꽤 오래된 것 같은데...

 

29.교도소 독방()

 

고선숙노인의 기저귀를 빼내는 금자몸이 불편한지 낑낑대는 선숙.

 

선숙

(다급하게)

금자 동무나는 틀렸어어서 몸을 숨기시오...

 

자막-고선숙, 1967-1991년 복역.

 

금자

이것만 닦고요...

 

선숙

닭고기는 나중에 먹고...

조심해개한텐 닭뼈 주는 거 아냐!

...저기 노란 책 좀 가져다 줘.

 

[법구경]을 가져다주는 이금자책을 품에 안는 선숙편안히 누워 눈을 꼭 감고

미소 짓는다.

 

여자 성우

(소리)

치매에 걸린 남파간첩 고선숙은 교도소의 골칫거리였다.

금자가 그녀를 돌보겠다고 자원했을 때 소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선숙

(꿈꾸는 듯)

거기가 종로였을까명동이었을까...

하필이면 거기 누웠는데우리 엄마 아빠도 너무 멀어 못 오시고...

사람들은 나를 안 밟으려고 피해가면서 “저기 여간첩이 죽었구나” 속닥거리는데..

가슴에 품은 긍지로 인해 나는 죽을 수도 없었다.

문명이란 바로 위생인 것을...

 

금자

사는 것도 투쟁이라고 하셨잖아요안 죽기 투쟁...

 

선숙

([법구경]을 내밀며 엄숙하게)

이 꽃을 너에게 준다.

동무에겐 원쑤가 있으니...

 

고선숙의 목소리 점점 작아지며 페이드 아웃.

 

30.교도소 독방()

 

선숙잔다벽에 기대앉은 금자, [법구경]을 탐독한다얼굴에서 빛이 나면서 책장이 밝아진다.

 

여자 성우

(소리)

훗날 고선숙은 풀려나 북으로 돌아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동식 침대에 누워 김정일이 베푸는 만찬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도 똥을 쌌으면 어떡하나...금자 동무는 걱정이 되었다.

 

31.아파트 앞()

 

다리를 건너 건물로 들어가는 금자.

 

32.아파트 계단()

 

계단 오르는 금자현관 앞에 서자 센서로 불이 켜진다계단에서 졸던 전도서가 벌떡 일어난다비명 지르는 금자.

 

전도사

밤늦게 어딜 이렇게 돌아다녀요...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표정의 금자에게)

...[나루세]가서 물어봤어요.

 

금자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을 누르더니)

...아저씨...정말 이러시기에요?

...글쎄...개나 소나 집 찾아오는 거 싫단 말이에요...

...알았으니까내일 봬요.

 

휴대전화를 탁 닫는 금자.

 

33.[나루세]()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망연히 선 장씨한숨 쉰다.

 

34,아파트 계단()

 

계단을 내려가 금자 앞에 서는 전도사.

 

전도사

금자씨왜 이렇게 변했어요...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우리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눈물을 글썽이는 전도사금자 뺨을 쓰다듬으며)

교회 나오세요?

 

금자

(물러서 가방을 뒤적뒤적 하더니[법구경]을 꺼내 보여주며)

개종했어요.

 

35.교도소 거실()

 

주눅 든 얼굴로 선 오수희자막-오수희, 1993-1994년 복역멀뚱히 바라보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

 

죄수1

간통이지?

 

수희

어머어떻게 아셨어요?

 

죄수2

낯짝에 써있다이년아.

 

구석으로 가라고 턱짓하는 죄수2. 애써 가슴을 펴고 고개를 쳐들어 당당하게 걸으려는 수희발을 거는 죄수3. 수희넘어지나 키득거리는 여자들엎어진 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 드는 수희코앞에 누군가의 발바닥이 보인다.

고개를 더 들면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마녀삭막하게 생겼다.

 

마녀

기어와.

(잠시 머뭇거리던 수희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기어온다.

자기 다리 위에 엎드린 수희에게)

벗겨.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는 수희금자와 눈이 마주친다.

금자슬쩍 외면하며 손에 든 성경책으로 눈을 돌린다.

죄수4가 손짓으로 바지를 벗기라고 가르쳐준다바지를 당겨 내리는 수희.

무릎을 세우고 가랑이를 벌리는 마녀)

잘 보여?

(울상이 된 채로 끄덕거리는 수희에게)

인사해...안녕?

 

수희

(울먹이며)

...?

 

36.샤워실()

 

욕조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은 마녀앞에 무릎 꿇고 앉아 아랫도리를 빨아주는 수희.

 

수희

(소리)

이 씨발년이그 유명한 ‘마녀.

 

37.전원주택()

 

바비큐 그릴 앞에서 고기를 뒤집으면서 우물우물 씹는 마녀.

 

수희

(소리)

간통한 지 남편과 상대 여자를 죽인 다음먹었다고 한다.

(화면 넓어지면아름다운 전원주택 전경마당 가운데 우뚝 선 마녀.

주위를 에워싼 경찰차들총을 겨누며 마녀에게 다가가는 경관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운 나쁜 사람은 아니야.

딱 오 분만 빨아주고 울어버리자.

 

38.샤워실()

 

마녀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뒤로 이금자가 살며시 들어온다바닥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일한다.

 

마녀

(헐떡이며)

빼빼 마른 년들은 질색이야.

그러니까 이금자 그 년밥 좀 많이 먹으라구 해.

 

뭔가 끝난 듯 무릎이 꺾이는 마녀조용히 수희를 떼어놓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나간다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수희꽈당 소리가 나서 돌아보면타일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마녀비누를 들고 선 금자내려다본다울던 눈으로 물끄러미 금자를 보는 수희.

 

39.공방(저녁)

 

세련된 공예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실내오수희한테 안긴 금자멍하니 딴 데 본다.

 

수희

(포옹을 풀고 물러서며)

자기스타일 변했네왜 이렇게 눈만 시퍼렇게 칠하고 다녀?

 

금자

(시선 고정한 채)

친절해 보일까봐.



 

수희금자 눈길 간 곳을 돌아보면진열장에 놓인 물건들유디뜨 분위기로손에 남자 머리를 든 조상들다 같은데 남자 얼굴만 서로 다르다.

 

수희

남자 사진 갖고 와서 주문하면 만들어주는데...반응이 좋아.

...하나 해주까?

 

금자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고)

은으로 해 줄 수 있어?

 

수희받아 본다디자인 도면 -두 개의 길죽한 사각형 안에 그려진 물결무늬

 

수희

뭐야귀걸이야아닌가?

(대답 없자)

...그 새낀 찾았어?

 

금자

.

 

수희

죽였어?

 

금자

아직

 

수희

?

 

금자

바빴어.

 

수희

맛있는 걸수록 뒀다 먹는그런 맘?

 

금자

.

 

 

40.[나루세]()

 

진열장 안의 케이크 조각 중 하나를 가리키는 최반장 아내뒷짐을 지고 서서주방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최반장남편의 시선을 좇다가 금자를 발견하는 부인.

 

근식

(케이크를 꺼내며)

볼 줄 아시네요.

 

부인

주인아저씨가 일본에서 공부하셨다고...맞죠?

 

근식

(금자를 돌아보며)

이건 저 분이 만드셨어요저 분은 경주에서 공부하셨어요.

 

갓 구운 빵 쟁반을 들고 나오는 금자최반장을 발견하고 우뚝 선다쟁반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는다.

 

최반장

(손을 내밀며)

너무 변해서 몰라보겠네.

 

맞잡는 금자놓지 않고 가만히 서로 응시하는 금자와 최반장둘을 번갈아 쳐다보는 근식과 부인.

 

41.거리 ()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걷는 최반장 부부부인은 케이크 상자를 들었다.

 

부인

(홱 돌아보며)

누구야?

 

42.[나루세]()

 

반죽을 하던 근식금자를 향해 슬쩍 말을 건넨다.

 

근식

누구에요?

 

오븐 앞 금자돌아본다.

 

부인

(소리)

이뿌대?

 

43.거리()

 

앞만 보며 걷는 최반장

 

금자

(소리)

전에내 담당 형사.

 

44.[나루세]()

 

근식의 놀란 얼굴.

 

부인

(소리)

어머어머세상에...

 

45.거리()

 

입을 딱 벌리고 걸음을 멈추는 부인.

 

46.[나루세]()

 

근식

(떨리지만 억지로 웃어보이며)

에이-금자씨두...

 

금자

내가 딱 지금 니 나이 때 말이야...그러니가 내가 스무 살이고 니가 여섯 살일 때...

내가 딱 여섯 살 먹을 애를 잡아다 죽였어.



(근식을 향해 돌아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걱정 마먹지는 않았으니까.

 

부인

(소리)

어떻게 먹어...

 

47.거리()

 

징그러운 벌레를 털어내듯 케이크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부인.

 

부인

...사람 죽인 손으로 만든 거를!

 

착잡한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드는 최반장.

 

금자

(과거의 소리)

내가 죽였다니까요?

 

48.경찰서 신문실()

 

탁자 앞에 앉은 금자최반장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왔다 갔다 한다.

 

금자

(심호흡을 하고)

도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되요?

 

최반장

그럼그 구슬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봐.

 

금자

?

최반장

아까 니가보긴 봤는데 어디 갔는진 모른다고 한 구슬 있잖아...

원모가 젤 아끼던 대마왕 구슬.

무슨 색이야?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금자걸음을 멈추고 대답을 기다리는 최반장.

 

금자

...연두색.

(애써 당당한 척 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죽여 놓고 안 그랬다고 하는 수는 있어도 안 죽이고 죽였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예 엉엉 울며)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살인자 말이라고 안 믿는 거예요?

자꾸 이러시면 난 정말 속상해서 죽을 것 같잖아요...

 

최반장잠시 금자가 울며불며 지껄이는 보습을 내려다보다가 자기 앞에 펼쳐진 서류 파일을 탁 덮어 바로 앞에 던져준다울음을 뚝 그치고 내려다보는 금자 시점으로파일의 주황색 표지올려다보는 금자슬쩍 외면하는 최반장금자다시 파일을 내려다보면 점점 커지면서 화면에 가득 차는 주황색.

 

49.공터()

 

넋이 나간 금자컨테이너 박스로 호송된다경찰기자와 구경꾼들로 북새통이다유족들과 전경들의 실랑이.

 

50.컨테이너 박스()

 

현장 검증하는 금자마네킹의 손을 전깃줄로 예쁜 리본모양으로 만들어 묶어 놓는다기자와 형사들 틈에 섞여 지켜보던 최반장어이없어한다금자떨리는 손으로 쿠션을 잡으려고 하지만 바닥에는 노란색과 고동색두개의 쿠션이 있다망설이는 금자최반장을 본다최반장무표정한 얼굴로 딴 곳을 보며 오른손으로 자기 손목시계의 고동색 가죽줄을 문지른다금자자신 있게 고동색 쿠션을 집어 든다기자들 못 보게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최반장쿠션으로 인형 얼굴을 덮는 금자요란하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기자들이 금자 주변으로 더욱 격렬하게 모여든다가로막는 경찰들점점 힘을 주는 금자갑자기 인형 머리가 툭 빠진다밀던 힘에 의해 앞으로 엎어지는 금자사람들낮은 탄성을 내며 움찔한다울다 지쳐 혼절하는 원모 엄마달려들어 부축하는 남편최반장을 돌아보는 금자의기양양해 하는 얼굴이 진짜 살인자 같다.

 

51.[나루세]()

 

얼빠진 표정의 근식평온한 얼굴의 금자.

 

금자

게다가 난교도소에서두 살인을 했어.

 

반죽을 중단한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근식뻔뻔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금자.

 

근식

(울상이 되어 탄식하며)

...어휴-

 

근식황급히 작업을 재개한다꾹꾹 힘주어 누르는 반죽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들.

 

여자 성우

(소리)

혹시 근식은 바보가 아닐까...생각해보는 금자였다.

 

52.입양알선기관()

 

여직원

(직업적인 동정이 어린 표정)

말씀은 알겠는데요...

관련 법규에 따라서 그런 부분을 절대 알려드릴 수가 없거든요?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금자여직원브로슈어를 건네며)

대신 입양 사후 당담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금자

입양됐는지 만이라도 알 수 없을까요?

 

여직원

통지못 받으셨어요?

 

금자

교도소에 있었거든요.

 

53.옥상(저녁)

 

구석에 앉아앙증맞게 예쁜 티라미스를 먹으며 노을 구경하는 금자오들오들 떨며 보온병에 든 커피를 마신다.

 

여자 성우

(소리)

여러분에게 열아홉살 금자를 보여주고 싶다.

누구나 돌아볼 만큼 예쁘지만 전혀 까다롭지는 않았던 소녀이금자.

 

54.수족관()

 

푸른 유리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선 여고생 금자훌쩍이며 떨리는 어깨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다이버가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준다.

 

여자 성우

(소리)

불쌍하게도 소녀는지금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주저앉았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는 금자)

하지만 결국늦든 빠르든 모든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식으로 마음을 추스린다.

 

이리저리 서성대던 금자이윽고 결심했다는 듯 성큼성큼 걷기 시작한다.

 

55,옥상()

 

웅크리고 조는 금자.

 

금자

(소리)

안녕히 가세요.

 

총성흐뭇하게 웃으며 자던 금자몸을 일으킨다뻣뻣해진 몸을 펴고 잠시 스트레칭하다가 한바퀴 뛴다.

 

56.63빌딩 로비()

 

줄줄이 선 공중전화들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고 전화하는 열아홉 금자사람들 지나다닌다.

 

금자

백선생님저 금자에요이금자,,,작년에 교생 나오셨을 때...

맨날 구두 닦아드렸었는데...모르셨구나...

저보구섹시하게 생겼다구 그러셨잖아요-

(수줍다는 듯 몸을 꼬며 웃다가 이내반색하며)

맞아요기억나시죠?

? ... 별일은 아니구요...선생님제가 임신을 했는데요...

임신이요아니요임신!......

...선생님한테 가서 살면 안 돼요?

?...엄마 집은 좀 그래요그렇다구 아빠한테 갈 수도 없고...

?...걔는 덩치만 컸지아빠 노릇할라면 한참 멀었어요.

저는 쫌...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가 필요한데-

 

57.다세대 주택 현관 앞()

 

초인종을 누른 다음 콤팩트를 열어 거울을 들여다보는 열아홉 금자재빨리 립스틱을 바른다.

 

여자 성우

(소리)

아가야 걱정 마이 엄마가 있잖니?

(백선생문을 연다.

샤워하다 나왔는지 웃통 벗은 몸에머리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진다가슴에 털이 무성하다.

입술 바르던 금자백선생의 야성적인 모습에 할말을 잊는다.

손에 힘이 빠지는 듯 콤팩트를 떨어뜨리는 금자)

... 열아홉 소녀는 중얼거렸던 것이다.

 

58.거리()

 

자일에 매달려 빌딩 벽을 내려가는 금자가 조그맣게 보인다서툰 동작 때문에 아슬아슬해 보인다.

 

59.서류보관실()

 

어두운 방창밖으로자일에 매달려 내려오는 금자누런 포장용 테이프를 유리에 줄줄이 붙인 다음 망치로 때린다작은 소리를 내며 안으로 무너져 내리는 창,

 

잠시 후-

가느다란 플래시를 물고 이동식 서가를 뒤지는 이금자서류철을 꺼내 넘겨가다 마침내 찾아낸다캥커루와 함께 찍힌 여자아이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금자.

 

60.[나루세]()

 

다 만든 프랑보와즈 케이크를 들어 살펴보는 장씨

 

장씨

(소리)

타이밍이라고잠 안 오는 약이 있어요.

예전에동경에서 막 와가지고 큰 제과점 공장장 할 때..

 

61.거리()

 

회전하는 자전거 바퀴.

 

장씨

(소리)

일이 많을 때면 직원들 앞에서 제가 먼저 타이밍을 먹었죠 다들 절 싫어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내다보는 트럭 운전수의 당황한 얼굴.

길바닥에 엎어져 신음하는 장씨)

이거 먹구 자전거 탈 땐 조심해야 됩니다.

 

62.[나루세]()

 

배낭 차림으로 들어서는 이금자창 밖으로담배 피우며 서성이는 근식이 보인다슬쩍슬쩍 안을 들여다본다.

장씨

어이 무슨 일이야이 시간에?

 

금자

가불 좀 해주세요.

 

금자를 노려보고는 데코레이션을 계속하는 장씨손이 떨려서 진도가 안 나간다.

 

장씨

(소리)

부모님 계시는 경주로 내려갔습니다여자 교도소에 자원봉사를 나가게 된 것 다리를 절어서 장가 못 가면 어떡하느냐고 하도 걱정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장씨

(퉁명스럽게)

가불은 불가.

 

장씨 손에서 크림 튜브를 뺏어드는 금자데코레이션을 시작한다.

 

장씨

(소리)

삼 년째 되는 해어떤 유괴범이 만든 초콜렛무쓰를 맛보았을 때 저는 거의

죽고 싶었습니다.

 

63.교도소 작업식()

 

초콜렛무쓰를 조금 잘라 입에 넣는 장씨초조하게 지켜보는 금자,

장씨 눈을 감고 음미한다.

 

장씨

(소리)

죄수들에게 주어지는 재료란 초라한 것이죠.

그런데 이금자는 그걸 가지고 왕이나 먹을 법한 케이크를 만들어냈거든요.

 

64.[나루세]()

 

멋진 장식을 만들어내는 금자장씨외면한 채 곁눈질로 금자의 솜씨를 구경한다.

 

금자

삼개월치요.

 

장씨

(금자의 솜씨 좋은 손과 뻔뻔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러믄 못쓴다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혼잣말로)

...변했어.

 

65.교도소 작업식()

 

장씨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녹차 쉬폰을 시식하는 교도소장눈을 감고 음미한다.

 

장씨

(소리)

시식해본 교도관들도, ‘세상에서 가장 쓴 맛을 본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달콤한 케이크라고들 품평했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소장장씨씨익 웃는다.

 

66.[나루세]()

 

카운터로 가 뭔가를 적기 시작하는 금자.

 

 

장씨

(소리)

결국 저는 경주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했습니다.

[나루세]를 차릴 수 있는 힘이 났거든요.

 

장씨

(기웃거리며)

....뭐하는 거야?

 

금자

(눈도 안 들고)

계좌번호요.

 

몸을 돌려 조리대를 내려다보는 장씨아름다운 케이크가 완성되어 있다탄식하는 장씨.

 

67.[나루세]()

 

금자 나온다서성이던 근식피우던 담배를 얼른 버린다.

 

68.술집()

 

찌개를 앞에 놓고 소주를 들이키는 근식.

 

근식

(무심코 담배를 물었다가 황급해 떼고 허락을 구하듯)

...담배...?

 

금자

...

 

근식

(불붙이고 연기를 내뿜고는 한참 있다가)

...저는요...가정도 일찍 꾸리고 싶고요...

결혼은 좀 존경할 수 있는 분하고...

(고개 푹 숙이고 한참 있다가취한 척하는 말투로)

...죄를 지었다...지었으면반성하고다시는 안 그런다딱 결심하구?

그런 거 아니겠어인생이이거저거 풍부하게 경험두 해보구 말야...

(제법 호기롭게)

안 그래금자씨?

 

금자

...사람 하나 더 죽일라구 그런다.

 

근식

?

 

빤히 바라보는 금자의 시선을 못 견디고 도로 고개 떨구는 근식.

 

금자

...내가 그렇게 좋니?

 

근식

.

 

금자

내가 섹시하다구 생각하니?

 

근식

...아니요,아니...

 

근엄한 표정으로 술잔을 드는 금자.

 

69.금자 아파트()

 

신도 안 벗고 현관에 쪼그려 앉은 근식.

 

근식

저는...얘기를 좀 했으면 싶은데...

 

실내의 금자지퍼를 내리고 원피스를 훌렁 벗는다무심코 돌아봤다가 황급히 고개 돌리는 근식금자 다가오자 당황해서 벌떡 일어선다.

 

근식

얘기는 그럼 쫌 이따 할까요?

(금자근식의 벨트를 풀어 바지를 벗긴다근식의 낮은 비명)

....저 겁 줄려구 이러시는 거죠?

정 떨어지라구 이러는 거죠?

 

금자

(눈을 들여다보며)

너는 여자가 이러면 정 떨어지니?

 

근식

(바로)

아뇨.

(침대로 가 얌전히 누운 다음 다소곳이 눈을 감고)

...하세요...

 

잠시 후-

마구 엉클어진 침대에 슈미즈 차림으로 걸터앉아 담배 피우는 금자누워서 금자를 보는 근식머리맡 재떨이를 가져다 옆에 놓아주고 도로 눕는다.

 

금자

(담배를 비벼 끄며 건조한 목소리로)

좋았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근식)

...별루라든데...?

 

근식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럴 리가....

 

벌떡 일어나 화장대 쪽으로 가는 금자바라보는 근식.

 

금자

(소리)

세상엔 좋은 유괴하고 나쁜 유괴가 있다구 그랬어백선생이.

 

근식

?

 

금자

(억양없이쉬지 않고 문장을 이어가며소리)

아이를 잘 데리구 있다 건강하게 돌려주는 건 좋은 유괴랬어어차피 부잣집이니까 몸값 조금 뜯어내도 망하는거 아니구며칠 속이 타겠지만 감동적으로 다시 만나면 더 화목한 가정이 된댔어그래 놓구 원모를 죽였어백선생이애가 자꾸 우니까 오 분만 더 울면 죽여버리겠다구 겁을 줬어그리고 정말 죽였어살았으면 딱 지금 니 나이였을 텐데죽였어근데 경찰이 목격자를 찾아냈어내가 원모 데리고 목욕탕 간 걸 봤대어느 날 시장에 다녀왔더니...딸애가 없었어백한상한테서 전화가 왔지내가 다 뒤집어쓰고 자수하지 않으면내 딸도 죽는다고그러니까....유괴범이 유괴범 아이를 유괴한 거야재밌지?...

 

(잠시후)

....재밌잖아!

(금자가 이야기하는 동안배경에서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과거의 소리들.

유괴 범죄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백선생의 음성.

원모의 천진한 “나 몇 밤 자면 집에 가는 거야나중에 또 데리러 올 거지누나?”,

원모 우는 소리뉴스 앵커의 목소리전화벨 소리갓난아기 제니의 울음소리.

금자의 절규..

갑자기 근식 가슴에 열쇠뭉치가 떨어진다.

금자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듯 자못 일상적인 말투로소리)

가운데 제일 큰 게 집 열쇤데...

저것 좀 부탁해안 꺼지게.

다른 거 건드리면 머리에 빵꾸 낸다.

 

눈을 돌리면 금자는 벌써 옷을 다 입고 촛불 켜진 제단을 가리키고 섰다.

 

근식

(혼란스런 얼굴로 열쇠와 금자를 번갈아 보며)

어디,,,가세요?

 

70.초원()

 

띄엄띄엄 거목들이 선 광야여름교복 차림으로 나무 그늘에 앉은 제니심심해 보인다하늘을 보면 구름으로 쓰인 글씨, ‘You have no mother' 차 소리에 돌아보면 거꾸로 선 화면택시가 급정거 한다금자 내린다고개를 완전히 뒤로 꺾고 누웠던 제니다시 하늘을 본다. ’no'를 이루었던 구름이 희미하게 흩어지고 있다.

 

71.자궁()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떠다닌다진공 상태의 물방울 안에 든 아기 제니입을 뻐끔거리며 신기한 듯 내다본다.

 

제니

(소리)

A long time ago, when everyday was night, I was in a bubble floating.

No one was there but a woman saying something weird.

옛날에매일 매일이 밤이었을 때 나는 물방울을 타고 세상을 떠다녔다.

거긴 아무도 없는데 어떤 여자의 괴상한 말만 들렸어.

 

심장박동 같은 박자 커진다물이 출렁 하면서 풍선 속 제니가 한 바퀴 돈다자장가를 부르는 금자의 콧노래소리자장자장 배를 다독이는지 파도치듯 물이 흔들린다귀를 기울이는 표정의 아기 제니.

 

금자

(소리)

말했지멋지게 자리 잡을 거라고...

백선생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엄마를 받아줬어.

엄마 이젠 학교도 안 가고 밥이랑 빨래 같은 거 조금 하고...

하루에 한 두 번씩만 선생님 기분 풀어드리면 된다....

....엄마가 열심히 할게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미친년처럼 키울 거야.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그럼내가 뭐라고 할 건지 알아?

이거 보세요...너나 잘하세요...히힛!

 

제니

(소리)

What did she say?

뭐라는 거야이 여자?

 

72.초원()

 

황량한 풍경 속에멀찍이 마주선 금자와 제니의 롱 쇼트.

 

금자

(소리)

먼저...Hello.

...I'm Lee kum-ja, from korea.

안녕하세요저는 한국에서 온 이금자입니다.

I had a baby 13 years ago.

저는 13년 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휘익먼지 바람이 일어 모녀의 치맛자락을 날린다.

 

73.금자 아파트(저녁)

 

노을빛이 물든 한영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는 손사전을 뒤지며 한 단어 한 단어 겨우겨우 써내려가는 금자.

 

금자

(소리)

I think it's your daughter now.

지금 당신들 딸이 그 아이인 것 같군요.

...I came here only to see her once and for all.

제가 여기 온 것은 아이를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서입니다.

 

74.제니 집 거실 (오후-저녁)

 

위스키 잔을 들고 앉은 늙은 히피 부부고양이를 데리고 가운데 앉은 제니맞은편에 방금 낭독을 마친 편지를 접어 핸드백에 넣는 금자부부서로의 얼굴을 보며 손을 맞잡는다.

 

양엄마

(떨리는 목소리로남편에게)

I need to smoke.

한대 피워야겠어요.

 

잠시 후-

 

일기예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TV화면.

미친 듯 웃는 세 사람의 소리.

고양이를 안고 소파에 깊숙이 앉은 제니.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TV를 본다.

주방 식탁에서는 양부모와 금자가 위스키잔과 마리화나를 돌리며 엉망진창으로 취해 웃는다.

느릿느릿해진 세 사람의 움직임과 말투.

양부모의 대사는 모두 유창한 한국어 성우 더빙.

 

양 엄마

당신이 부러워제니 같은 아이를 낳았잖아.

 

양 아빠

(탁자에 세워진 사진 액자를 가져와 보여주며)

이거 봐정말 귀엽지 않아인형같지?

 

활짝 웃는 제니의 사진 클로즈업

 

양 엄마

제니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사진 속 제니움직인다.

웃음을 거두고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75. 제니 집 앞()

 

초원에 집 한 채만 덜렁

 

76. 제니 방()

 

서로 등 돌리고 누운 모녀제니 머리맡에 앉은 고양이

 

제니

(또박또박)

What do you, call, Mom, in korea?

한국에선 엄마를 뭐라고 불러?

(반응이 없자 천천히 다시 한 번)

What, is, Mom,in korea?

한국말로 엄마가 뭐야?

 

금자

(잠시 생각하다가)

.금자씨

 

제니

(일어나 앉아 금자의 몸을 돌려 누이며)

Can you, take me, to Seoul, 금자씨?

서울로 데려가줄 수 있어요엄마?

자기와금자와머리맡 지구본의 서울을 차례로 가리키며 천천히 말한다.

금자

(벌떡 일어나 손을 내저으며)

No! your mother.your father.no!

그건 절대 안돼너희 양 부모님께서 싫어하실 거야.

 

77. 제니 집 거실(아침)

 

소파에 나란히 앉은 양부모

입을 해 벌리고 눈만 끔벅인다.

맞은편에제 목에 칼을 대고 선 제니.

금자풀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다섯 번 심호흡한다.

 

78. 공항(저녁)

 

카메라를 덮치듯 날아가는 비행기.

 

79. 금자 아파트()

 

바닥에 트렁크 두 개.

침대에 앉은 금자한숨 쉰다.

외투도 안 벗고 미용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면서 빙글빙글 도는 제니.

제니가 일으키는 바람에 제단의 촛불이 흔들린다.

 

금자

어쩐지일이 잘 풀린다 했어

 

80. 철공소 내실(저녁)

 

모여 서서 뭔가를 들여다보는 금자 모녀와 소영 부부.

 

남편

대포 같은 소리가 날 거예요화염도 크고워낙 원시적인 형태라

 

종을 건네준다.

이리저리 돌려보는 금자.

멋진 은세공 장식이 손잡이 양쪽에 붙었다.

신기해하는 제니만져보려고 하지만 금자가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탁 때린다.

 

소영

이런 건 뭐 하러후회하게 쏴주면 그만이지.

 

금자

(은장식을 쓰다듬으며)

예뻐야 돼뭐든지 예쁜 게 좋아.



 

남편

유효 사거리가 짧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가야 돼요.

(금자 손에서 총을 가져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고 이마의 땀이 보일 정도면 좋고.

(조준 자세를 취하며)

테니스랑 마찬가지예요좋은 폼은 평생 가지요.

어디 연습장 봐둔 데 있어요?

 

81. 골목()

 

가로등이 길게 늘어선 길을조금 떨어져서 말없이 걷는 모녀의 롱 쇼트.

 

제니

(소리)

I have a question.

물어볼 게 있어.

 

82. 금자 아파트()

 

일렁이는 촛불 빛이 어른거리는 원모와 금자의 수배전단.

제니의 잠옷 단추를 채워주는 금자.

침대에 눕힌다.

 

제니

whyd you dump me?

왜 나를 버렸죠?

 

금자

?

(이불을 잘 덮어주며)

내일은 소풍가자.

 

다독이며 허밍으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금자.

 

제니

I mean, whywhy

그러니까....

 

금자

그래그래소풍

 

말뚱말뚱 눈을 뜨고 엄마를 보는 제니,

노래하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눈을 강제로 감기는 금자.

도로 눈뜨는 제니또 감겨주는 금자.

 

잠시 후-

잠자는 모녀.

또르륵 또르륵 마루바닥에 뭔가 구르는 소리 들린다.

부시시 일어나는 제니.

잠결에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듯 두리번거린다.

계단 곁에서 혼자 구슬치기를 하며 노는 원모 유령손에 들린 주황색 구슬.

 

제니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Do you speak English?

영어할 줄 알아?

(놀라 손을 내젓는 원모)

Damn

제기랄

 

철퍼덕 자리에 눕는 제니도로 잠든다.

다시 구슬 구르는 소리

아무 것도 모르고 곤히 자는 금자.

 

여자 성우

(소리)

오래전부터 금자는 원모를 직접 만나 용서를 빌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원모가 제니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몹시 서운해 했을 것이다.

 

83. 모란시장()

 

눈이 녹아 질퍽한 길.

돈을 지불하고 강아지를 넘겨받는 금자.

 

84. 국도()

 

운전하는 근식신이 났다.

조수석에 개를 안은 금자

뒷자리에 앉아 손거울을 들고 자기 뺨에 고양이 수염을 그리는 제니.

스트레오에서는 유행가따라 부르는 근식.

 

근식

주말은 가족과 함께멍멍이도 데리고그쵸?

 

뒷자리의 제니가 심심한 듯 자장가를 부른다.

졸린 듯한 시점으로 휙휙 지나가는 맑은 하늘의 흰 구름과 산들의 완만한 능선.

창 밖 풍경만 내다보는 금자오른팔을 뻗어 금자 왼손을 잡으려드는 근식.

얼른 손을 빼는 금자.

금자 품에서 빠져나온 강아지가 제니 손을 햝기 시작한다.

발톱을 세우듯이 손을 내밀고 무섭게 캬아~~겁주는 제니

 

85. ()

 

무릎까지 빠지는 눈발을 해치고 산을 천천히 오르는 세 사람.

금자의 자장가 멜로디에 제멋대로 가사를 붙여 부르며

마른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리고 다니는 제니.

 

제니

(노래)

No friend, no mother. I dont need anybody anyway

Just tell me where I am from

O wind, do you know.?

 

눈을 뭉쳐 던지는 근식.

제니 뒤통수에 맞는다.

계속 던지는 근식계속 무시하는 제니

하늘을 보고 한껏 공기를 들이마시는 금자모처럼 웃는다.

앞서 가던 제니가 우뚝 선다.

금자와 근식가서 나란히 선다.

아래 펼쳐진 풍경아담한 초등학교 폐교.

타조처럼 날개짓을 하면서 막 뛰어 내려가는 제니.

 

86. 폐교 운동장()

 

낡은 교사를 배경으로눈 쌓인 운동장에 홀로 선 금자

품에 안은 강아지를 내려다본다.

 

87. 교실()

 

분필로 칠판에 오빠라고 적는 근식걸상에 앉은 제니

앞에 빨간 종이를 펼쳐놓고 뭔가 열심히 쓴다.

 

근식

(자기를 가리키며)

.

(슬쩍 쳐다볼 뿐 관심 없는 제니빨간 종이를 접어 빨간 봉투에 넣는다.

근식주변을 살펴 금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슬쩍 를 지우고 라고 써 넣는다.

자기를 가리키며)

..아빠해봐.,..?

 

제니

(마음 속 소리)

Stupid.

 

88. 운동장()

 

강아지의 덜미를 잡고 심장에 총을 겨눈 금자차마 바로 보지 못하고 덜덜 떤다.

느닷없이 터진 총성에 놀라 엉덩방아 찍는 이금자.

눈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눈 덮인 산에 메아리.

가슴에 놓인 강아지 시체를 밀어 떨어뜨리더니 마구 뛰어 달아나는 금자.

 

아이들

(노래 소리)

where is father, where is father?

 

89. 영어학원()

 

교실에 앉은 대여섯 살의 어린 아이들

영어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

(노래)

here I am, here I am.

How are you this morning? Very thank you.

Run away, run away.

 

칠판 앞에 서서 양팔을 저어가며 지휘하는 백 선생.

노래를 따라 부르는 미소 띤 얼굴에서 페이드아웃

 

90. 백선생 집(-아침)

 

검소하게 꾸며진 실내

침울한 얼굴로 밥 먹는 백 선생

TV 저녁뉴스에 시선 고정.

텔레비전 위에 놓인 미니어처 요트

맞은편에서 조용히 식사하는 박 이정

페이드아웃.

 

잠시 후-

굳은 얼굴로 밥 먹는 백 선생

TV 아침뉴스에 시선 고정천천히 일어선다.

이정을 일으켜 세우더니 엎어뜨린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자기 바지를 내린다.

음식을 씹으면서 삽입하는 백 선생.

흔들리는 식탁 모서리를 꼭 붙잡고 몸을 맡긴 이정떨어지려는 숟가락을 붙잡는다.

이정 얼굴로 자막  박 이정, 1998-1999년 복역

 

이정

(몸이 자꾸 흔들려떨리는 소리로)

여보여보이따 친구하고약속이 있는데

저녁은 차려놓구 갈게요괜찮죠?

 

백 선생

(떨리는 소리로)

..니가 사면 안 된다..

 

이정

 

억눌린 듯 나직한 신음 소리를 내는 백 선생

바지를 올리더니 다시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다.

올라간 치마를 탁 내리는 이정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재개한다.

페이드아웃

 

91. 교도소 거실 (-아침)

 

박 이정의 귀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댄 마녀.

 

마녀

박꽃 뱀남자 피 빨아먹고 사는 년아

너 같은 년한테 딱 맞는 일이 있거든?

 

잠시 후-

 

.

다들 자는데 마녀 곁에 홀로 앉은 박 이정.

잠을 못 자 시뻘건 눈으로 마녀에게 부채질해 준다.

~~ 모기 소리가 나면 재빨리 손을 휘둘러 잡는다.

또 다른 쪽에서 나는 소리에 번쩍 깬다.

모기가 벽에 앉아 조심조심 다가가 탁 쳐서 잡는다.

흐믓해 하는 사이다른 모기가 와서 마녀의 발바닥을 문다.

 

잠시 후-

 

아침박 이정 뺨을 갈기는 마녀.

 

마녀

(연신 때려가며)

내가 뭐라 그랬어내가 뭐라 그랬어내가 뭐라 그랬어!

발바닥이 얼마나 가려운 덴 줄 알아!

(발로 찬다짓밟으며)

발바닥 긁으며 간지럽잖아안 긁으면 가렵구긁으면 간지럽구..안 그래이 망할 년아!

나보구 어쩌란 말야이 꽃뱀년아!

안 긁으면 가렵구긁으면 간지럽구?  ?

 

칸막이 너머 변기에 앉아 지켜보던 금자고개 돌려 자기 앞을 내려다보고 생각에 잠긴다.

 

92. 복도()

 

교도관과 나란히 식판 들고 걷는 금자

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 약병을 꺼낸다.

몰래 국에 무색의 액체를 뿌린다.

 

93. 의무실(저녁)

 

초췌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마녀

옆에 걸터앉아 식판에 담긴 밥을 먹여주는 이 금자.

 

마녀

내가 원래 위가 튼튼했거든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길고 지저분한 트림을 한다코앞에 있는 금자를 의식해 살짝 입을 가리며)

미안독하지?

 

금자

(기쁜 듯 웃으며)

괜찮아요언니.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국에 말아떠먹인다.

 

마녀

(빤히 바라보다가)

고맙다금자야넌 정말 친절한 아이

(말을 못 맺고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다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붙잡고)

내가 혹시 잘못한 게 있으면 이해해주렴.너는 다 이해하지?

(그윽한 눈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금자.

억지로 구역질을 참는 마녀뺨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눈물)

내가 포동포동한 애들만 좋아하는 거다 이해하지?

 

금자

(붙잡힌 손을 빼내고 억지로 밥을 떠 먹이며)

저두 어서 밥 많이 먹구 꼭 포동포동해질게요그러니까 언니두 밥 많이 먹구.

(플라스틱 약병을 꺼내 숟가락에 찍찍 뿌린 다음 입에 집어넣으며)

약두 많이 먹구

(밥을 넘기는 마녀갑자기 속에것들을 다 올려내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금자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나직이)

..빨리 죽어.

 

94. 운동장()

 

멀리서 보기에는 평온하지만 가까이 가면 두 셋씩 짝지어 속삭이는 죄수들의 긴장한 모습

 

죄수4

락스를 먹였다고?

 

죄수5

얼마동안이나?

 

죄수6

(흐뭇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3개를 들어 보이며)

삼년

 

죄수7

(감탄하며)

뱃속이 깨끗해졌겠구나!

 

죄수8

(가슴에 손을 대고)

~~친절한 금자씨!

 

이정

(소리)

그 후로 이금자는 마녀라는 별명을 물려받았지만 여전히 친절한 금자씨로 불리기도 했다.

누구나 친절한 금자씨를 도와주고 싶어 했고

누구도 마녀 이금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95. [나루세] ()

 

마주 앉은 박 이정과 금자.

멀리제니 와 노는 근식 보인다.

진열장의 케이크를 가리키며 연신   한다.

 

이정

(소리)

나보다 먼저 출감한 절도범 노수경이 백 선생이 있는 학원을 알아냈다.

 

96. 거리()

 

버스 타고 가는 전도사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이정

(소리)

얼마 후명문대를 졸업한 김성은 출소하자마자 그 학원에 취직했다.

성은은 내게 백 선생이 차를 바꾸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97. 영어학원 앞()

 

학원 건물로 올라가는 전도사

 

이정

(소리)

백 선생은 아름다운 자동차 딜러 박 이정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차를 샀을 뿐만 아니라 일년 후에는 나와 결혼했다.

 

98. 영어학원()

 

금자가 빵집에서 일하는 모습

귀가하는 모습근식과 함께 있는 모습 등의 사진들이 붙은 앨범 페이지를 넘기는 백 선생.

마주 앉은 전도사프린터에서 새 사진이 인쇄되어 나온다.

이금자와 박 이정이 함께 찍힌 모습을 보자 얼굴이 일 그러지는 백 선생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심호흡을 다섯 번 하더니 다시 소파에 앉아 전도사를 바라본다.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전도사고개를 푹 숙인다.

백선생이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건네자 냉큼 받아 넣는다.

 

전도사

주님의 사업에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99. 거리(저녁)

 

이정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천천히 걷는다신호음이 울린다.

 

이정

(소리)

오늘만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 노랭이만 죽으면 난 제일 먼저 구찌 매장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백 선생

(수화기 드는 소리에 이어)

여보세요

이정우뚝선다.

 

이정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여보저녁은 드셨어요?

 

100. 백 선생 집(저녁)

 

백 선생

당신 오면 먹지.

 

이정

(소리)

먼저 드시지 않구요.

 

백 선생 맞은편에 험상궂은 두 남자가 나란히 앉아

전도사가 찍어온 사진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두 여자 중 금자의 얼굴에 빨간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또 다른 사진제니 얼굴에도 빨간 동그라미

식탁엔 저녁상이 차려 진 듯 예쁘게 상보가 덮였다.

 

백 선생

기다릴 테니까 어서 와요.

 

101. 거리(저녁)

 

당황한 박 이정뛰기 시작하며 다른 곳으로 전화한다.

 

이정

이 인간이 아직 밥을 안 먹었대거든?

내가 가서 빨리 맥일 테니까

 

뛰어가는 이정의 뒷모습에서 페이드아웃.

 

이정

(소리)

이런 남편을 여섯 달이나 산 채로 데리고 산다는 건 정말 참기 힘든 일이었다.

 

102. 골목()

 

띄엄띄엄 가로등이 줄지어선 골목눈이 내린다.

검게 썬팅된 벤이 들어와 선다.

백 선생 집에서 보았던 두 사내가 내려 차 옆에 선다.

심드렁한 얼굴들이다전조등이 꺼진다.

 

103. [나루세]()

 

근식이 손을 흔들어 금자 모녀를 배웅한다.

 

104. 백 선생 집()


TV뉴스를 보면서 밥 먹는 백 선생

 

105. 골목()

 

작업복사내들가로등에 다린 뚜껑을 열고 퓨즈를 자른다.

3개의 가로등이 차례로 꺼진다.

 

106. 거리()

 

말없이 걷는 금자 모녀

제니 어깨에 팔을 두르는 금자기다렸다는 듯 몸을 밀착시키는 제니

 

107. 골목()

 

가로등 꺼져 어두운골목 끝차안의 사내1, 탈지면 봉투에 클로포름을 붓는다.

베토벤을 크게 틀어놓고 묵묵히 앉은 사내들

멀리 골목 입구에 들어서는 금자모녀컴컴한 반대편을 보고 멈춰 선다.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이내 다시 걷는 금자.

모녀의 뒷모습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멀리 차 문들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베토벤.

 

108. 백선생 집()

 

백 선생밥 먹는다피투성이가 된 채 맞은편 의자에 포박된 박 이정을 흘낏 보고 계속 먹는 백 선생.

 

109. 골목()

 

사내1이 금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

탈지면이 입을 덮었다.

 

여자성우

(소리)

금자는 순간호흡을 멈추고 악착같이 참았다.

 

금자를 밀어 자동차 뒷자리에 태우려 드는 사내1.

차 문짝에 발을 대고 완강히 버티던 금자결국 마취된 듯 축 늘어진다.

탈지면을 금자 얼굴에서 떼는 사내1,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덤벼드는 금자

 팔뚝을 물고 늘어진다.

비명 지르는 사내1, 주먹으로 금자의 배를 강타한다.

쓰러지며 차에 기대는 금자사내1, 손바닥으로 따귀를 쉬지 않고 다섯 번쯤 갈긴다.

주먹으로 배를 또 때린다미친 듯이 때린다금자바닥에 엎드려 신음한다.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는 사내1, 동료들 돌아본다.

벌써 축 늘어진 제니를 뒤에서 안고 선 사내2.

사내1,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벌떡 일어나 마주 서는 금자권총이 머리에 와 닿는다.

사내의 심장 뛰는 소리이마에 흐르는 땀요란한 총성과 함께 머리가 날아간다.

제니를 안은 채 뒷걸음질치는 사내2, 잭나이프를 꺼낸다.

제니 목에 댄다비틀비틀 다가가는 금자.

사내2. 제니를 안고 뛰기 시작한다금자따라 뛴다.

갑자기 멈추는 사내돌아서더니 제니의 목을 겨누며 칼을 치켜든다.

금자멈춰 서지 않는다덤벼들어사내의 손목에 총구를 바짝 붙이는 금자

다급한 상황에서도 금자는 자기 총의 유효사거리를 결코 잊지 않았다.

총성이 울리더니칼을 든 채 절단된 오른손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110. 백 선생 집()

 

백 선생식탁에 엎어진다.

피투성이 얼굴로 미소 짓는 박 이정

 

111. 아파트 앞()

 

택시에서 내리는 이금자얼굴이 말이 아니다.

마취된 제니를 업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112. 백 선생 집()

 

이정이 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금자

엎드려 자는 백 선생과 묶인 박 이정을 발견한다.

힘없이 미소 짓는 이정.

백 선생에게 다가가는 금자찌개 냄비에서 국자를 집어 들고 머리를 민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백 선생큰 대자로 누워 잔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내려다보던 금자

손을 뻗어 백 선생의 관자놀이에 붙은 무 조작을 뗀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준다.

방에서 가위를 가지고 나와 백 선생 머리칼을 마구 뜯어내듯 자른다.

미친 여자 같은 행동을 지켜보며 한숨 쉬는 이정.

 

잠시 후-

 

소파에 누운 제니이제 풀려난 이정금자를 도와 백 선생의 손과 발을 꽁꽁 묶는다.

 

여자 성우

(소리)

아무리 십삼 년 동안 계획하고 준비했다지만 금자는 일이 지나칠 정도로

잘 풀린다고 생각해왔다.

무언가 결정적인 순간에 틀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자주 금자를 사로잡았다.

 

제니의 옷 주머니에서 삐죽 나온 빨간 편지봉투를 발견하는 금자

잠깐 훑어 보더니 이정을 돌아본다.

 

금자

영한사전 어딨니?

 

잠시 후-

 

책상 앞에 앉은 금자사전을 펼쳐놓고 편지를 읽는다.

화면 양분된다한쪽에 편지 클로즈업다른 쪽에는 사전을 뒤지는 금자의 손과 사전의 글씨들forgive 를 용서한다dump를 내버리다 avenge에게 복수하다

explanation설명 등의 내용이 보인다한국어로 편지를 읽는 제니의 목소리 들린다.

 

제니

(소리)

내가 당신을 용서한다고 생각하지 마.

 난 아이를 버리는 엄마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

어렸을 땐 당신을 찾아가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했어.

하지만 당신을 죽이는 장면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건 당신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었어.

기왕 이렇게 됐으니까 복수까진 몰라도 적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해 줘.

미안하다고 한 번 말하는 걸로는 부족해적어도 세 번 이상은 미안하다고 해.

관대하지 않은 당신의 딸제니

 

113. 국도()

 

박 이정이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잠든 제니와 백 선생무감정한 눈으로 길을 응시하는 금자

 

금자

..좌회전

 

114. 운동장(새벽)

 

히터 틀어놓고 차에서 자는 박 이정과 제니.

 

115. 미술실(새벽)

 

재갈을 문 채 의자에 묶인 백 선생.

구석 책상 위에 가부좌를 튼 금자등을 꼿꼿이 펴고 두 손은 무릎에.

명상에든 수행자 같아 보인다.

백 선생이 꿈틀한다.

눈을 드는 금자양 손을 깍지 끼고 손바닥이 하늘을 보게 팔을 머리위로 쭉 뻗어 몸을 핀다.

 

116. 복도(새벽)

 

잠이 덜 깬 제니의 손을 잡고마루 복도를 쿵쾅쿵쾅 걸어가는 금자.

 

금자

(소리)

너 가졌을 때가 생각 나제니.

 

117. 미술실(새벽)

 

검은 커튼이 쳐져 어두운 실내.

재갈이 풀린 백 선생뒤통수에 총을 겨누고 앉은 금자.

맞은편 바닥에 우유 상자를 놓고 앉은 제니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손으로 턱을 받쳤다.

금자 하는 말을 동시통역하는 백 선생

 

금자

배가 불러오니까 지갑이 불룩해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하지만 니가 돌도 되기 전에 엄만 감옥에 가야 했기 때문에 널 포기 할 수밖에 없었어.

너는 아무한테나 웃어주는 헤픈 아이라서.

(턱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손이 볼을 밀어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제니)

어느 집에 가든지 모두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단 걸 엄만 알고 있었어

이제 이 사람하고 볼 일이 끝나면 널 다시 호주로 보낼려구 해.

엄마의 죄는 너무 크고 너무 깊어서 너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가질 자격이 없거든.

넌 아무 죄도 없는데니가 엄마 없이 자라게 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가)

..근데 그것까지두내가 받아야 될 벌이야.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하며)

잘 들어둬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속죄를 해야 되는 거야속죄 알아?

(통역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어토운먼트 근데어토운먼트를 하는 거야.

큰 죄를 지었으면 크게작은 죄를 지었으면 작게알았지.?

..엄마가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편지를 쓸게.

테이프도 듣고 학원도 다니고 가끔 너 보러

 

말이 맺지 못한다잠시 침묵이 흐른다.

 

제니

What are you gonna do about him?

..이 아저씨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거야?

(대답 못하는 엄마에게)

kill him?

죽일 생각이야?

why?

..?

 

금자

(머뭇거리며)

날 죄인으로 만들었으니까

 

제니

what kind of bad thing did you do?

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금자

이 사람이 어떤 아이를 죽였는데..엄마가 도와줬어.

 

제니

(저런-하는 , 걱정스런 눈빛으로)

should I say sorry to his mother?

..내가 걔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얘기해 줄까?

(픽 웃음을 터뜨리는 금자울면서 웃는다일어나 다가오는 제니엄마를 안아준다.

이를 악물고 총을 꼭 쥔 채 내려놓지 않는 금자)

do you like me?

Do you wish Im another girl?

엄마는 내가 마음에 안들지?

내가 다른 아이였으면 좋겠어?

 

금자

그건 아닌데.. 몇 가지는 좀 고쳤으면 좋겠어.

넌 어른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글씨를 좀 예쁘게 쓰길 바래.

 

제니

where you happy with me?

그래도 나랑 있어서 행복하지 않았어?

 

금자

(끄덕끄덕)

행복했어죄지은 사람이 그래선 안될 만큼.

(총을 내리고 제니를 안으며)

..제니..아임 쏘리아임 쏘리아임 쏘리

..정말로 아임 쏘리

 

엄마를 안고 제니의 손미안하다고 말하는 횟수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고 있다.

 

118. 운동장(아침)

 

제니를 태운 박 이정의 차가 출발한다.

금자몸을 돌려 교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119. 미술실(아침)

 

백 선생의 오른 눈에 총을 대고 내려다보는 금자.

재갈이 물린 채 왼 눈만 부릅뜨고 올려다보는 백 선생.

금자입술을 깨물고 공이치기를 뒤로 당긴다.

 

금자

안녕히 가세요.

 

눈을 감는 백 선생

시뻘겋게 충혈되도록 백 선생을 쏘아보던 금자힘없이 총 든 손을 내리고 외면한다.

눈을 뜨고 안도하는 백 선생금자가 다시 이를 악물고 총을 들이대자 움찔한다.

금자 또 한참 보다가 총을 내리고 심호흡 하더니 다시 올리고 세 번 반복한다.

가만히 겨누고 선 금자.

백 선생 애절한 눈빛으로 금자를 올려다본다.

결국 코트 주머니에 총을 쑤셔 넣고 금자돌아서서 고개를 푹 숙인다.

백 선생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어린아이의 음성,

선생님 일어나세요출근 해야죠..선생님일어나세요.

녹음된 아이음성이 그치지 않자 돌아서는 금자

신경질적으로 와이셔츠 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를 찾아낸다.

전원을 끄려다 멈추더니 뚜껑을 덮는다.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쪽에 대고 휴대전화 줄에 꿰인 단추머리끈플라스틱 포켓몸,반지구슬을 유심히 살피는 금자커다란 주황색 유리구슬을 빛에 비춰본다.

경악한 얼굴로 백 선생을 돌아본다.

눈이 마주친다.

얼어붙은 두 사람짧은 침묵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어 달려드는 금자권총 손잡이로 머리를 후려친다.

의자에 묶인 채 옆으로 스러지는 백 선생.

금자우왕좌왕 막 걷는다안절부절 못한다쓰러진 백 선생에게 발길질하는 금자.

두꺼운 커튼 자락을 확 잡아챈다.

`~뜯겨나가는 커튼백 선생을 덮는다.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뭉게뭉게 먼지를 비춘다.

무너지듯 주저앉아 천천히 다섯번 심호흡하는 금자겨우 진정하고 일어난다.

커튼을 젖힌 다음 의자를 일으켜 세운다.

울음을 삼키고 재갈을 풀어주는 금자,

휴대전화 줄을 백 선생 눈앞에 내밀고 대답을 기다린다.

 

백선생

(입 안에 고인 피를 뱉더니)

..금자야눈 화장이 그게 뭐냐

 

금자의 손백선생의 코를 꽉 쥔다,

한참 고요하다결국 숨쉬기 위해 입을 벌리는 백 선생

재빨리 도로 재갈을 물리는 금자무릎 끊고 앉는다.

백 선생 구두코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엄지발가락 위치를 확인한다.

오른쪽 구두코에 조심스럽게 권총을 가져다 대고 한 발 쏜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백 선생을 올려다보는 금자왼발에도 쏜다.

 

120. 미술실 복도(아침)

 

미술실 문을 열고 나오는 금자벽에 기대선다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기다린다.

두 번 헛기침해 목을 고른다.

 

금자

차 돌려

 

121. 국도(아침)

 

운전하는 이정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조 수석에 앉은 금자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금자

(혼잣말)

어쩐지너무 잘 풀린다 했어

 

 

122. 경찰서 앞()

 

약속이 있는 듯 시계를 보며 외출하는 최 반장

 

123. 커피숍()

 

창 밖 가로수 앙상한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금자 손에 들린 휴대전화 줄이 허공에 대롱대롱.

꼼짝도 않고 줄에 대고 물건들만 쏘아보는 최 반장.

맞은편에 앉아 지켜보는 금자.

 

금자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는 음성으로)

그때 진범을 밝혔으면 안 죽었을 애들이에요..그렇찮아요?



(고개 들어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런 맘 아시잖아요...네 명이에요.

 

최 반장생각에 잠긴다.

 

124. 백 선생 집()

 

이정과 함께 서재를 뒤지던 금자휴대전화가 울리자 받는다.

 

금자

오늘은 못 나간다 그랬잖아요

 

장씨

(소리)

그게 아니라..누가 찾아왔어.

 

금자

누가요?

 

장씨

(소리)

그게글쎄..

 

통화하면서 책상을 뒤지던 금자서랍을 길게 빼고 그 아래 눕는다.

올려다보면 서랍 밑판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은 구식 8mm 비디오 카세트들이 빽빽하다.

 

금자

누구라고 말 안 해요?

 

125. [나루세]()

 

장씨 고개 돌리면 케이크를 먹으며 이쪽을 흘끔흘끔 살피는 제니의 양부모.

캥거루와 코알라가 그려진 동물원 티셔츠에 헐렁한 니트 카디건을 입은여전히 루저 꼴여행용 트렁크 두 개.

 

장씨

(답답한 얼굴로)

뭔 말이 통해야지..

(수화기를 막고 양부모에게)

아노니혼고 데끼마스까?

(..일본말은 안 되세요?)

 

126. 벡 선생 집()

 

구식 8mm 캠코더와 모니터 캠코더에 카세트를 넣는 이정

최 반장과 나란히 소파에 앉은 금자

리모트 컨트룰러를 누른다.

영상이 시작되고 잠시 후 모니터 하단에 볼륨 표시줄이 나타난다.

을 향해 줄어든다이정최 반장 옆에 앉는다.

아예 처음부터 옆으로 몸을 돌려 앉은 이정한눈을 판다.

금자고개 숙이고 바닥만 본다혼자 화면을 응시하는 최 반장.

이정눈길은 다른 방향으로 고정한 채 손만 뻗어 탁자 위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간다.

이정이 담배 피우는 동안 조용히 일어서서 나가는 최 반장.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모니터를 외면하고 앉은 두 여자.

 

127. 금자 아파트(저녁)

 

침대 모서리에 앉아 캠코더를 눈높이로 들고 들여다보는 제니

고양이 노는 모양이 재생되고 있다.

고양이가 그리워 우는 제니꺼져가는 촛불을 새 양초로 옮겨 붙이는 양 엄마.

멀리 옷장 앞에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만 놀려 제니의 짐을 싸는 양 아빠

 

128. 폐교 운동장(저녁)

 

4대의 승용차한 대의 SUV가 나란히 주차된 가운데경차 한 대가 들어온다.

멀리불 켜진 교실 하나.

 

129. 교실(저녁)

 

초등학생용 걸상에 조용히 앉은 남녀노소 9명 유족들의 면면,

드르륵문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돌아본다.

 

130. 복도(저녁)

 

마루바닥에 놓인 포터블 발전기

 

동하

(소리)

엄마엄마..

 

131. 교실(저녁)

 

동화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

동화 아빠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엎드린다.

 

동화 엄마

(절규)

동화야!

 

모두 교탁 위에 놓인 TV 모니터를 주시한다.

교탁 옆에는 스탠드에 꽂힌 마이크엠프

 

동화

(소리)

저 좀 데리러 와 주세요엄마무서워요.

 

모니터 화면 

겁에 질린 얼굴로 의자에 앉은 동화단추 달린 옷을 입었다.

동화에게 다가가는 백 선생의 젊은 모습.

흘낏 카메라를 돌아보는 얼굴에서 프리즈 프레임

사람들 시선을 돌리면리모트 컨트롤러 든 금자.

 

금자

(침착하게)

힘드시더라도 이 얼굴을 잘 봐두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새 비디오카세트를 끼우는 금자

 

금자

..다음은 구십 오년에 살해된 세현 입니다.

 

세현이 얼굴이 재생된다.

세현 아빠손등으로 눈두덩을 연신 눌러댄다.

독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누나뒤에서 부스타에 물을 끊이는 최 반장.

 

세현

(소리)

..아빠쌈 안하고 공부 열심히 할 테니까 돈을 꼭 보내주세요

 

모니터 화면

실내 전경의자에 올라선 은주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썼다.

멀찍이 떨어진 데 앉아줄을 잡아 당기는 백 선생.

은주 발 밑에 의자가 쑥 빠진다.

칭얼대던 소리도 뚝 끊긴다.

경악하는 사람들담담하게 보던 은주 할머니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은주 할머니를 앉히는 사람들

금자카세트를 바꿔 끼운다.

 

금자

..이천년유재경.

 

재경 아빠포켓용 술병을 홀짝인다.

재경이 울음소리가 이어지다가 재생이 끝난다.

걸상을 들어 책상을 거듭 내리치는 재경 아빠.

말리던 유족들결국 한 덩어리로 엉켜 운다.

 

잠시 후-

 

모두 금자 하는 말을 경청한다.

 

금자

(최대한 담담하게)

백 선생은 강남의 영어학원 교사였습니다.

거기서 희생자를 고르고사건을 저지른 다음 학원으로 옮겨갔죠

언제나 자기 반 아이들은 피했기 때문에 한번도 경찰의 용의 선상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몹시 귀찮아했던 백 선생은

유괴하자마자 비디오로 찍어놓고 곧바로 죽이곤 했습니다.

범인과 협상하는 동안 여러분이 전화로 들으셨던 아이들 음성은

이미 죽은 다음에 비디오에서 복사한 것입니다.

선택 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법적인 처벌을 원하시면 저기 계시는 최 반장님께 인도 할거구요

(쟁반에 녹차와 커피를 받쳐 들고 유족 사이를 돌아다니는 최반장.

 커피하고 녹차 있는데요’…)

좀 더 신속하게 개인적인 처형을 원하신다면 바로 여기서 당장가능합니다.

 

재경 엄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 놈한테두 자식이 있나요?

 

금자

임신 시킬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경 아빠

그럼 도대체 그 돈을 다 갖다 뭐했대요?

 

금자

저축을 했습니다물론 그 돈은 여러분께 돌려드릴..

 

동화 엄마

(말을 끊으며)

새끼도 없는 놈이 머어썬다고 돈을 달라꼬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고오!

 

금자

(망성이다가)

..요트를..사려고 했답니다.

 

탄식하는 사람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페이드아웃

 

132. 운동장()

 

멀리 보이는 교사.

 

133. 교실()

 

동화 엄마가 일어선다

모두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동화 엄마

어짜피 경찰은 머곤봉만 들었지그 노무 범인도 몬 때리잡았다 아입니꺼.

경찰에 넘기바짜 재판도 끝도 엄씨 할기고,

마마 그 기자 새끼들 하며 온갖 노무 인간들 그 노무 호기심에..이따라마 

 

재경 아빠

(술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주삑거리며)

아  끔찍하다끔찍해

 

재경 엄마

(조심스럽게)

재판해봐야 어차피 사형일 텐데그 재판하고 사형집행두 다 비용 드는 일이고,

세상에 돈 안 드는 일 없잖아요

다 국민의 혈세 아니겠어요그러니까

 

원모 아빠

금자씨 한테 맡기는 게 어떨까요?

감옥도 갔다 왔으니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은데.

 

세현 누나

비겁해요우리 아이들이잖아요.

 

원모 아빠

그럼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안 하고 싶은 사람은 안 하고 자율적인 방향으로..

 

세현 누나

아예 그 새끼한테 여기서 죽을래재판 받을래물어보죠자율적으로?

 

동화 아빠

(원모 아빠에게)

쪼매 전에는 경찰에 넘기뿌자카이디만 고담새는 금자씨한테 맽기자카디이만

인제는 마마 혼자 빠지겠다꼬도대체 우짜자는 깁니까?

 

잠시 후-

 

원모 부모를 뺀 나머지 사람들한 팔을 올리고 있다.

 

금자

원모네두 다수결에 따라주셔야 합니다아시죠?

 

원모 아빠

(아내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심장이 약해서

 

재경 엄마

(답답하다는 듯)

나도 약해요심장..

 

금자

그럼 원모 아빠만 하세요한 집에서 한 분만 참여하시면 되겠죠.

(좌중을 향해)

괜찮으시죠?

 

세현 누나

(냉소적으로)

나중에 원모 엄마가 우리 다 고발하면 어떡해요?

 

은주 할머니

자기 남편이 껴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재경 아빠

이혼 할 수도 있잖아?

 

원모 아빠

증거를 남기면 되잖아요우리 다 사진을 찍어 둡시다.

아무리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구 해두 사진이 있으면

 

동화아빠

(발끈해서 말을 끊으며)

양심의 가책저런 새끼 죽이는데 무신 놈의 양심의 가책?

부짭아 놓고 안 죽이마 그기 바로 양심의 가책 이라카는기라.

 

금자

제가 한 말씀 드릴게요.

저는 교도소에서도 살인을 한 사람입니다.

십삼 년 준비해서 백 선생을 잡은 것도 저고요

만약에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밀고를 한다면

더 이상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원모 부모님은 저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분들이고전 이 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모 부모님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믿으시고 이 문제는 여기서 정리했으면 합니다.

(조용히 둘러본다아무도 반발하지 않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한 사람씩 들어가고 다른 사람은 기다리는 걸로 할까요?

아니면 한꺼번에 들어가는 걸루할까요?

 

동화 엄마

머슬 하나식 해기양 한꺼번에 해뿌리지

 

세현 누나

이렇게 사적인 일 딴 집하고 같이 할 이유가 없어요아빠안 그래?

 

대답 없이 얼굴만 쓰다듬는 세현 아빠

 

재경 엄마

(옆에 앉은 재경 아빠를 곁눈질하며)

혼자 들어가면 무섭지 않을까요위험할 수도 있구.

 

은주 할머니

그 정돈 각오해야지

 

재경 아빠

(약간 취해서)

각자 하구 싶은 대루 합시다까짓거!

뭐 꼭 통일할 필요 있나갈비탕 집 온 것두 아니구.

(일제히 쏘아보는 사람들재경엄마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오래 노려본다.

잠깐 위축되는 듯해 보이던 재경 아빠이내 다시 기세등등 해져서 전처에게)

뭐어-, 이혼한 마당에 꼭 부부 동반해야 되나어차피 인제 남남 아냐씨발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 숙이는 재경 아빠.

원모 엄마가 손을 듣다.

원모 엄마

저기요한꺼번에 하는 건너무 쉬운 거 같아요.

 

원모 아빠

(놀라 돌아보며)

여보..?

 

원모 엄마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우황청심환 가져왔거든?

(남편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당신은 그때 금자씨 손가락도 못 만졌잖아..

 

다들 놀라 쳐다보는 가운데 카메라엠프에서 빠져나온 케이블을 따라간다.

 

134. 옆 교실()

 

케이블을 따라 복도로옆 교실에 설치된 스피커로 움직여가는 카메라.

컴컴한 교실재갈 물고 의자에 묶인 백 선생.

의자 아래에는 넓게 비닐을 깔아놓았다.

 

금자

(소리)

그럼원모 아버지는 안 하시고 원모 어머니 혼자 하시고

은주 할머니도 혼자 하시고

세현네 따로재경이네 하고 동화네 같이 하시고..

이렇게 하면 됐나요?

 

예예 .. 다들 동의하는 소리

 

동화 아빠

(소리)

가입시더고마!

 

부시럭 부시럭퉁탕거리는 소리책걸상 끌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는 백 선생

 

금자

(소리)

잠깐만요잠깐만요

 

책 걸상 소리 딱 멈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백 선생

 

135. 교실()

 

금자

들어가는 순서를 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눈만 끔뻑거리며 마주보는 사람들책상에는 각종 흉기들

 

잠시 후-

 

창 앞에 선 세현 아빠밖을 내다보며 담배 피운다.

길쭉하게 접은 쪽지들이 담긴 종이컵을 들고 다가가는 최 반장.

세현 아빠하나 뽑아 펴 본다.

다가와 같이 들여다보는 세현 누나원모 엄마쪽지를 펼치면 숫자 1이 적혀있다.

 

136. 복도()

 

부엌칼을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우황청심환을 먹는 원모 엄마빈 손의 원모 아빠

무쇠 부엌칼 든 재경 엄마와 군용 대검을 든 재경 아빠회칼 든 동화 엄마장도리 든 동화 아빠쇠막대기를 든 세현 아빠긴 과도 든 세현 누나아무 것도 안 든 은주 할머니의 순서로 앉아 대기한다.

각기 제비 뽑기한 종이조각을 들었다.

교실에서 못질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비닐 우비와 수술용 고무장갑을 전달 받는 사람들.

전 남편이 무뚝뚝하게 내민 술병을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한 모금 맛보는 재경 엄마

아예 들이붓듯이 콸콸 마셔버린다.

당황하는 재경 아빠머쓱하져서 세현 아빠에게 괜히 말을 건다.

 

재경 아빠

세현 아부지..그거 갖구 되겠어요?

(자기 칼을 보이며)

쓰구 드리까?

 

세현 아빠

(가방을 뒤적거리면서우물거리는 말투로 들릴 듯 말 듯)

..괜찮은데

 

커다란 날을 꺼내는 세현 아빠나사식으로 쇠막대기와 연결해 도끼를 완성한다.

최 반장이 장도리를 들고 교실에서 나온다.

 

최 반장

들어가시죠

(하얗게 질리는 원모 엄마입술이 떨린다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팔을 꽉 붙든다.

손을 힘들게 떼어내고 일어서는 원모 엄마

차마 못 가는 발걸음을 옮기며 교실 문을 열려다 돌아본다.

슬쩍 외면하는 남편최 반장원모 엄마의 칼을 빼앗아 들고)

다들 보세요

(칼날을 아래로 향하게 눕혀 잡은 모양을 보여주며)

이렇게 하면찌를 때 날 끝이 위로 미끄러지면서 잘 안 들어 갑니다.

(찌르면서 칼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모양을 보여주며)

그럼 손이 미끄러져서 다치는 수도 있구요.

(칼날이 위로 가게 쥔 모양을 보여주며)

그러니가 항상 이렇게 잡아주세요.

(칼끝이 아래로 가게 세워 잡고)

아니면아예 이렇게

(허공에 휘둘러 보이며)

찍으시든지.

 

137. 옆 교실()

 

컴컴한 실내바닥에 놓인 갓 달린 막대 형광등.

백 선생 곁에 선 금자.

의자 다리에 긴 각목을 두 줄로 대고 못을 박아 마루바닥에 고정시켜 놓았다.

그 아래 비닐

손으로 자기 심장을 누르고 백 선생을 내려다보는 원모 엄마우비를 입었다.

마주 노려보는 백 선생갑자기 원모 엄마가 백 선생 재갈을 풀어주자 놀라는 금자

 

원모 엄마

(목이 갈라져 겨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왜 그런 짓을 했어요이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도대체..

 

백 선생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사모님

 

138. 복도()

 

억눌린 듯 낮은 비명이 울린다.

탄식하거나외면하거나숨을 들이쉬거나눈을 감으며 조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은주 할머니만 빼고 모두 우비를 입었다.

원모 엄마가 나오자일제히 쳐다본다.

홀가분한 얼굴의 원모 엄마.

고무장갑을 낀 최 반장피 묻은 칼을 받아 든다.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남편에게 다가가는 원모 엄마어깨에 손을 얹는다.

원모 아빠아내에게 안겨 억제된 울음을 떠드린다.

서로 손을 붙잡고 일어서는 동화네와 재경네들어간다.

 

139. 옆 교실()

 

백 선생을 둘러싼 네 사람의 얼굴

 

동화아빠

(차분해지려 애쓰며 속삭이듯)

이칸 다고 죽은 아가 살아 돌아오는 거는 아니잖아여보그자?

 

아내말없이 칼을 들더니 이를 악물고 한 발 나선다.

거의 동시에 나머지 셋도 덤벼든다.

비명이 잇달아 터진다.

백 선생을 에워싸고 흉기를 휘두르는 네 사람의 뒷모습.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금자.

 

140. 복도()

 

비명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가운데 ,

세현 누나가 과장되게 크고 빠른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현 누나

..다들 짱짱한 집안이신 거 같은데요

저거 보세요동화 엄마..세무 가죽에 피 튈까봐 부츠 벗구 하는 거

이 상황에서 이해가 돼요?

저희는요그 놈에게 영어학원두 엄마가 호텔 청소하면서 보낸 거거든요?

몸값 못 맞춰서온데 다 손 벌리구 다녔어요.

결국 은행에 집 넘어가고친척들 사이에서도 왕따되고

 

은주 할머니

우리 며느리는 자살하고 아들은 이민 갔어

 


말문을 닫은 세현 누나네 사람 나온다.

벌떡 일어난 세현 아빠누나도 뒤따라 일어선다.

세현 누나돌부처처럼 꼼짝도 못하고 선 아빠를 끌고 들어간다.

세현네가 들어가는 동안최 반장이 네 사람으로부터 무기를 받아든다.

앞만 보고 꼿꼿이 앉은 은주 할머니

 

141.옆 교실 ()

 

달에게 이끌려 들어오는 세현 아빠막상 백 선생을 보더니 순간 멈추고 얼굴이 시뻘개진다.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치켜들고 덤벼든다.

 

세현 누나

(아빠를 붙잡으며)

아빠!

(도끼 든 팔을 꼭 붙들고)

..아빠..우리가 끝이 아니잖어은주 할머니두 계시니까..?

 

식식거리면서 핏발 선 눈으로 백 선생을 노려보는 세현 아빠

 

142. 복도()

 

백 선생 비명소리.

일을 끝낸 사람들은 앉아있지 못하고 각자 이리저리 서성인다.

홀로 앉은 은주 할머니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다.

문이 열리면 기진맥진한 세현 아빠쓰러져 막 운다.

세현 아빠를 일으키는 사람들대걸레를 가져 와 바닥의 피를 닦는 최 반장.

어수선한 가운데 조용히 일어서는 은주 할머니.

 

143. 옆 교실()

 

백 선생을 내려다보는 은주 할머니동정의 빛은 조금도 없이 냉정하다

 

144. 복도()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는 은주 할머니.

교실에 들어가는 최 반장.

 

145. 옆 교실()

 

최 반장조용히 다가가 백 선생의 목덜미에 꽂힌 가위를 뽑아 들여다본다.

빨간 손잡이의 가위1-3 황은주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무릎에 힘이 빠지는 듯 주저앉는 금자심호흡한다.

 

잠시 후-

 

의자와 백 선생의 구석에 치워졌다.

세현 누나와 동화 부모재경 엄마가 비닐의 네 귀를 들고 섰다.

재경 아빠가 아래로 양동이를 갔다대자가운데 고인 피 웅덩이를 긴 칼로 찔러 넣는 금자.

비닐이 터지면서 양동이로 쏟아지는 피.

비닐을 든 넷넓은 담요를 개듯이 둘씩 다가서면서 착착 접는다.

재경 아빠는 양동이를 들고 나간다.

세현 아빠와 은주 할머니는 여기저기 찍힌 피 발자국을 대걸레로 삭삭 지운다.

최 반장 동화 아빠는 시선을 들것에 옮긴다.

 

잠시 후-

 

최 반장 소형 자동카메라를 들고 앵글을 잡는다.

어두운 실내에 플래쉬가 터지면서 유족들 실루엣이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사라진다.

좀 떨어진 데 서서 지켜보는 금자.

 

146. 운동장()

 

학교 건물에서 불빛 하나가 흔들리며 나와 앞장선다.

그 뒤로 사람들들것을 들고 따른다.

 

147, 뒷산()

 

최 반장이 곡괭이로 언 땅을 찍어 놓으면나머지 사람들은 양쪽으로 새끼줄을 연결한 긴 삽으로 힘을 합해 파들어 간다.

땀을 흘리는 남자들한데 모여 오돌오돌 떠는 여자들.

 

잠시 후-

 

구덩이 안에 누운 백 선생.

무기 상자와 피 묻은 의자우비와 장갑비디오카세트 따위도 던져진다.

사람들한 삽씩 흙을 퍼 넣기 시작한다.

 

금자

죄송한데요..

(동작을 멈추고 돌아보는 사람들)

잠깐만 물러서 주시겠어요?

(사람들 물러서자 한 발 나서면서 총을 빼드는 이금자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두발을 쏜다백선생 턱과 빰에 작은 구멍이 난다.

금자총을 던진다메아리마저 사라지자)

고맙습니다.

 

잠시 후-

다 덮은 무덤 위에서 천천히 자리를 옮겨가며 발을 굴러 땅을 밟는 유족들의 롱 쇼트.

사람들 입김금자 웃는다.

기괴해 보일 만큼 오래 고정된 미소.

 

148. 금자 아파트()

 

방송이 끝나 노이즈만 가득한 TV 화면

좁은 침대에 세 사람.

제니 좌우로, TV보던 자세 그대로 상체만 뒤로 누워 자는 양부모

우두커니 앉아 천장을 보는 제니.

 

149. [나루세]()

 

촛불이 꽂힌 케이크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금자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

 

세현 아빠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자 당황하던 사람들하나 둘 따르기 시작한다.

 

다함께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사랑하는..

 

머뭇거리며 단조로 변한다.

각자 자기 아이 이름을 부르다 흐지부지 노래를 멈춘다.

침묵.

 

세현 아빠

(우물우물)

..미안합니다꼭 생일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은주 할머니

생일이라고 치지 뭐.

 

다함께

(멈춘 곳에서 노래를 이러과장된 활기를 담아)

..생일 축하합니다.

 

사람들촛불을 향해 입을 모아 후 우~~

아무 장식도 없는 검정 초콜렛 케이크를 아홉 조각으로 잘라 나눠주는 금자

포크로 조금씩 떼어 입에 넣는 사람들

시큰둥하던 얼굴에 경탄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놀랄 만큼 맛있다는 눈빛을 주고받는 사람들너도나도 한 입씩 크게 떼어 먹기 시작한다.

조용히 지켜보는 금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

접시에 포크 긁히는 소리

옆에 앉은 세현 누나몸을 기울여 귀엣말한다.

 

세현 누나

저기..돈은..계좌로 넣어주나요?

(무슨 말인가 잠깐 생각한 금자고개를 끄덕인다세현 누나슬쩍 종이쪽지를 내리고)

..저희 번호..

 

안 듣는 척하던 사람들잠자코 종이와 펜을 꺼내 계좌번호를 적는다

금자에게 전달한다.

어색한 침묵

 

세현 아빠

불란서에서는이렇게 말이 끊어질 땐 천사가 지나가는 거라 그러든데

 

재경 어마

잠깐 기다려 볼까요말하지 말구

 

동화엄마주머니에서 단추를 몰래 꺼내 손에 쥔다.

원모 엄마는 주황색 구슬은주 할머니는 머리끈재경아빠는 구슬 반지를 각각 꺼내그리고 세현 아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 거린다.

모두 안타까운 눈빛으로 허공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쓴다정적이 흐른다.

딸랑딸랑 종 울리는 소리 문이 벌컥 열린다.

근식이 들어선다.

놀라서 우뚝 서지만 금자를 발견하고 안도한다.

 

동화 아빠

눈이 오는갑네!

 

사람들내다보면 아기 머리 만하게 떨어지는 눈송이들

부자연스러우리만큼 과장되게 환호하는 사람들.

 

150. 금자 아파트()

 

제니도 잠들었다.

창밖에 내리는 눈.

 

151. [나루세화장실()

 

눈 화장을 지운 금자립스틱을 바른다

벽에 붙은 거울을 본다.

속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담배를 꺼내 문다.

또르르 구슬 구르는 소리 들린다.

내려다보며 주황색 구슬이 바닥을 굴러온다.

누가 조종하는 것처럼 타일 사이 홈을 타고 정확히 금자 오른발 구두 끝에 와 부딪힌다.

주워드는 금자눈을 들면 반대편 구석에 쪼그려 앉은 원모 보인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금자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원모,

연기로 코끼리기린캥거루 같은 동물 모양을 만들며 장난친다.

용서를 바라는 표정으로 원모를 애타게 바라보는 금자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원모의 태도에 서서히 낙담한다.

 

금자

(변명하듯)

원모야내가

 

불현듯 말을 멈추고 상대를 다시 보는 금자

어느새 청년으로 성장한 원모가 똑같은 옷을 입고 역시 담배를 피우며 앉았다.

재빨리 치마를 아래로 내려 속옷을 가리는 금자

청년 원모잠자코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다음 일어선다.

금자안타깝게 올려다본다.

원모금자를 내려다보며 딱하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저어 보인다.

엉거주춤 앉아나가는 원모를 멍하니 보는 금자

 

152. 금자 아파트()

 

침대 앞에 나란히 선 여행가방 세 개

제니 얼굴 위로 흘러 들어오는 담배 연기고양이 모양을 이룬다.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깨어나 앉는 제니타조처럼 두리번거린다.

집 안이 연기로 자욱하다.

 

153. [니루세()

 

눈이 내려 환해진 거리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빵집 창문에어린아이들처럼 매달려 내다보는 사람들 실루엣.

슬그머니 문이 열리고손에 케이크 상자를 든 금자 나온다.

걷는다.

황급히 따라 나온 근식몇 걸음 좇다 말고 서서 뒷모습을 지켜본다.

결국 슬금슬금 따라 걷기 시작한다.

코트를 입지 않아 추워 보인다.

 

근식

(노래 소리)

솔솔솔 오솔길에

 

154. 거리()

 

눈 맞으며 집에 가는 금자

케이크가 망가지지 않도록 상자 든 손을 높이 올리고 조심조심 걷는다.

열 다섯 발자국쯤 뒤에서 비실비실 뒤따르며추워 떨리는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근식.

 

근식

(노래)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한번쯤 뒤돌아

(큰 소리로)

제니정말 보낼 거예요?

(대답을 기다리며 노래 재개)

..?

(대답이 없자 노래 계속)

발걸음만 하나씩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

 

빨간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금자의 뒷모습

 

여자 성우

(소리)

이금자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155. 금자 아파트 앞()

 

가로등 아래 눈이 내리고잠옷차림으로 건물을 나서는 제니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더니걷기 시작한다.

 

여자 성우

(소리)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근식

(노래)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종소리만 하나씩 세며 가는지빨간 구두 아가씨 멀어져 가네~

 

156. 골목()

 

초입에 들어서는 금자걸음이 빨라진다.

가로등 세 개 꺼진 어둠 속에하얀 옷 입은 제니가 희미하게 보인다

 

여자 성우

(소리)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끝내 얻지 못했다.

(뛰어가 제니를 꼭 끌어안는 금자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근식)

..그래도..그렇기 때문에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몸을 떼는 금자케이크 상자를 내민다.

열어보는 제니

두부 모양의 하얀 생크림 케이크

금자

Be white live white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like  this

생크림처럼 하얗게 살라고

 

서슴없이 손가락으로 크림을 푹 찍어 입에 넣는 제니음미한다.

 

제니

(또 크림을 찍어 금자 입에 넣어주며)

You, too.

엄마두

(금자무릎을 굽히고 크림을 빨아먹다가 문득 눈을 들면

하늘을 향해 입 벌리고 까치발로선 제니)

more  white

더 하얗게

 

제니를 따라 하늘을 보는 금자얼굴에 눈을 맞는다.

근식도 뭐가 있나 싶어 고개를 든다.

가만히 선 세 사람

 

여자 성우

(소리)

..안녕

 

제니

(소리)

..금자씨

 


 

 

                                         <>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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