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 4
1. 숲 속 / 낮
3부 엔딩 연결로..........무릎 꿇고 있는 장일.
장일;내가 너희 아버질 죽였다.
선우;.........
장일;선우야, 내 실수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치자. 그러니 날 용서해 줘. 경찰서 가지 마라.
선우;.....(동요없다. 나즈막히)너 미친거야.
장일;그래 미쳤다고 치자. 그러니까 내 말 들어.
지금 그대로 가면 나 너 다신 안본다. 제발 멍청하게 굴지 마.
선우;(말도 안된다는 듯 픽 웃으며)니가 우리 아버지를 실수로 돌아가시게 했다면.... 난 널 인간적으로 용서할거다. 하지만....밝힐 건 밝힐거야.
장일;선우야.... 그만 두자.
선우;어떤 말로도 날 설득할 수 없어.
장일;.............
선우;니가 우리 아버지를 해쳤어도 난 경찰에 진정서를 낼 거야.
선우, 장일을 외면하고 걸어간다. 두 사람만 있는 산 속. 선우, 걸어간다. 장일 무릎 꿇고 앉아있다. 선우,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간다. 장일, 눈가가 젖어들다가 일어선다. 주변에 부러져 나뒹구는 굵은 나무 가지를 집어 든다. 말없이 선우를 따라간다. 선우는 뒤에서 나는 기척에도 아랑곳없이 걸어가고. 장일, 나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 간다 두 손으로 움켜잡고 선우에게 달려들어 뒤에서 선우의 머리를 가격한다.
선우; !!
선우, 무릎이 푹 꺾인다.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풀려가는 눈으로 돌아보는데 장일 한 대 더 때린다. 선우, 푹 쓰러진다. 장일, 눈물이 터진다. 울면서 선우를 계속 내리친다. 머리, 등, 다리 닥치는대로.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장일. 나무를 집어던진다. 선우 등 뒤에서 안아 질질 끌고 간다. 선우, 눈이 풀린 채 의식을 잃은 표정. 머릿속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장일, 이성을 잃은 사람 같다. 흐느끼며 눈물과 땀으로 얼굴이 범벅된 채 주변을 살피며 선우를 끌고 가 비탈에 굴려버린다. 날카로운 돌들이 솟아 있는 거친 비탈로 선우, 굴러 떨어져 내린다. 한참을 내려가 바닷물로
풍덩 빠지는 선우. 장일, 진정서 봉투를 챙기고 나무에 묻은 피를 흙으로 미친 듯이
닦는다.
장일;(흐느낌, 울음 삼키는)흑. . .흑. . .흑.....
2. 바닷 속 / 낮
햇살이 비춰 들어오는 바닷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선우. 이마에서 흐른
피가 바닷물에 연하게 번져간다. 선우, 숨을 놓은 듯 움직임이 없다.
3. 산 속 / 낮
나무에 묻은 피를 돌로 찧어 짓이겨 없애버리는 장일. 나무도 멀리로 던져 버린다. 선우를 끌고 가며 생긴 흔적을 낙엽으로 덮어 헝크러 놓는다. 장일, 땀과 눈물을 닦고 옷매무새를 챙기고 진정서 봉투를 들고 걸어간다.
장일;(거친 숨소리. 뒤 안돌아보고 계속 걸어가는)
햇살에 비껴 반짝이는 바다. 멀어지는 장일.
4. 부두근처 폐 창고 / 낮
지금은 쓰지 않는 생선창고. 을씨년스럽게 칠이 벗겨져 있고 깨진 뜰채와 주낙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진정서를 태우는 장일. 두툼한 한 뭉치의 종이와 사진들이 타들어 간다. 재가 돼 떨어진다. 장일, 호스에 연결된 수돗물을 틀어 재를 씻어버린다. 장일, 긴장해 있다.
5. 거리 / 낮
장일, 걸어간다. 스케치북을 든 수미, 옆길에서 툭 튀어 나온다. 두 사람 피할 수 없게 마주친다. 두 사람 몇 초간 머뭇머뭇하다가
장일;........(가는데)
수미;혹시 김선우 못 봤니?
장일;..... 못 봤어.
수미;너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장일;.......아니.
수미;그래? ..... 어딜 간거지.
장일;선우는 왜.
수미;알 거 없어. (가고)
장일;........(걸음 옮기는)
6. 여수 장일 방 / 낮
장일, 오한이 난 듯 몸을 덜덜 떨며 들어와 커튼을 친다. 방을 어둡게 만들고 이불과 요를 마주잡이로 펴고 뒤집어쓰고 눕는다. 1초 2초 3초..... 다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책과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가방에 쑤셔 넣다가 갑자기 구토가 나는 듯 ‘우욱’ 하고 뛰어나가는 장일.
7. 선우네 옥탑 / 낮
계단을 올라오는 수미.
수미;선우야... 김선우!
수미, 문을 두드리며 부른다.
수미;야 문 좀 열어 봐. 너 안에 있지? 전화도 안 받고 너 어디 아파?
조용한 집. 수미, 평상에 앉아 추운 듯 어깨를 움츠린다. 큰 소리로
수미;너 집에 진짜 없어? 김선우!
옥탑 아래 골목으로 가방을 든 장일, 바쁜 걸음으로 간다.
8. 기차 안 / 낮
달리는 기차. 사람들 드문드문 앉아있는 텅 빈 객실. 무릎에 책을 펴놓고 멍하니
앉아있는 장일. 입술이 허옇게 말라있다.
금줄(E);어? 야, 범생이.
장일;(놀라 돌아보면)
금줄;(통로로 걸어오며 의아하단 표정)벌써 서울 가는거야?
장일;...........(침착하자 침착해 맘속으로 되뇌이는)
금줄;선우는 만났고?
장일;.....그럼.
금줄;경찰에 진정서 낸다던데 안 도와줬어.
장일;..... 도와주긴 뭘....
금줄;야, 그래두 나 같은 똘팍보다야 법대 들어간 니가 낫지. 난 그냥......
장일;(말 끊고 화제 돌리는)너도 서울가니.
금줄;난 할머니 댁에. 다음 역에서 내린다.
장일;그래 잘 다녀와라.
금줄;(빤히 보는)
장일;(기분 나쁘고 불안하다. 달리는 기차의 덜컥대는 소리까지 신경에
거슬린다)
금줄;너 선우한테 잘해 새꺄.
장일;..........
금줄;선우가 너한테 얘기 안했지?
장일;.........뭘.
금줄;땡보가 너한테 해꼬지 할까봐 선우가 목숨 걸고 막았다. 김선우 죽을 뻔 했어.
장일;.............?
달리는 기차. 장일, 쟈켓 깃을 세워 올리고 팔짱을 끼고 방어를 하듯 몸을 웅크리고 있다. 터지려는 울음을 무섭게 참고 있다.
9. 서울 장일 아파트 / 밤
불 꺼진 거실. 장일 가방을 내던지며 후다닥 들어온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미친 듯이 마신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장일. 멍하니 있다가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입을 막고 울기 시작하는 장일.
10. 바닷가 비탈 일각 / 밤
어둠 속, 파도에 쓸려 뭍으로 점점 밀려오는 물체. 달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선우의 모습. 뭍 쪽으로 와서 닿는다. 죽은 듯 꼼짝 없이 엎드려 있는데 상처 난 손이 꿈틀 움직인다. 반쯤 멍한 눈빛으로 눈 뜨는 선우. 희미한 숨소리. 선우, 손이 닿는 곳의 돌이나 나무뿌리 삐져나온 걸 움켜잡는다. 있는 힘을 다해 기어본다. 몇 미터 기어 가다 힘이 빠진 듯 툭 놓는 선우. 죽은 듯 꼼짝없다. 다시 파도가 몰려와 선우를
바다로 쓸어가고 우는 듯한 바람 소리 윙.... 무섭게 불어온다.
11. 여수 장일의 방 / 밤
용배, 들어온다. 이불이 흩어져 있고 급하게 떠난 듯 책상에 책들과 티셔츠가 널 부러져 있다. 책상에 급하게 갈겨 쓴 쪽지.
장일(E);서울 갑니다. 진정서 접수는 안하기로 했으니 염려마세요.
용배;..................
12. 선우네 옥탑 / 낮
수미, 문을 두드리며 서 있다. 시끄럽게 부르는. (수미의 속내는 복잡하다. 선우가 죽으면 장일을 더 옭아맬 수 있어 좋고, 선우가 깨어나도 장일이 궁지에 몰릴테니 그 때 자신이 손을 뻗을 계산이 있어 좋다. 그러나 선우에 대한 미안함과 양심의 가책. 선우의 추락지점에 직접 가보진 않고 우회적으로 선우의 부재를 알리려는 속셈. 사고 목격한 날 수미도 괴로워하는 모습은 나중에 장일에게 그림을 들고 나타날 때 회상으로) 용배,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에서 선우네 집으로 걸어오고 있다.
수미; 선우야. (두드리며)야! 김선우. 자니? 야! (쾅쾅쾅)
아래층에서 푹 퍼진 차림의 아줌마 짜증난다는 듯 올려다본다.
아줌마;무슨 일이예요. 아침 댓바람부터 시끄럽게.
수미;(아줌마 말 무시하고)선우야! 문 열어 봐.
아줌마;그 집 학생 집에 없어. 어제 안 들어온 것 같아요.
수미;안 들어왔다구요?
용배, 계단을 오르다 멈추고 두 사람 대화를 듣고 있다.
아줌마(E);밤새 불이 꺼져 있더라구. 내가 부쳐준 장떡도 그대로 있고.
환장을 하고 좋아하는데.
수미 돌아보면 평상 한 쪽에 쿠킹호일에 곱게 싸여 있는 접시.
수미;외박 같은 거 절대 안 하는 앤데...
아줌마;애인이슈?
수미;혹시 누가 집에 찾아오고 그러진 않았어요?
아줌마;그제께 밤인가.... 친구가 찾아온 건 봤어요. 집에 자주 오던 친군 데.
수미(E);이장일 아녜요?
용배, 몸을 숨긴 채 숨죽이고 서 있다.
아줌마;내가 이름까지 어떻게 알어.
수미;그 친구랑 나가서 안 들어오는 거예요?
용배;..............
수미(E);그럼 같이 서울 갔나...
아줌마;남자들 술 마시고 하루 이틀 외박할 수도 있지.
수미;그럴 애가 아니라니까요.
아줌마;(귀찮은)아우 알았어요. 들어오면 애인이 걱정하더라고 전해 줄게 요.
용배, 얼른 계단을 내려간다.
13. 진승원 마당 / 낮
용배, 마당을 쓸고 정리하는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장일(E);아버진 대체 왜 그러셨어요!
용배(E);장일아 문 좀 열어 봐.
장일(E);진정서 안 낼겁니다. 걱정 말고 주무세요.
용배, 불안한 듯 쭈그려 앉는다.
용배;장일아, 아니지... 너한테 무슨 일 생김 아버진 못 견딘다....
14. 바닷가 벼랑 / 낮
외진 곳. 바위 틈 사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선우 쓰러져 있다. 소금기가 말라 얼굴과 머리에 허옇게 소금이 끼었다. 선우, 미동도 없다. 죽은 듯 보인다.
15. 도서관 / 밤
목장갑 끼고 책들을 무거운 수레에 옮겨 놓는 지원. 열심히 일한다. 수레를 끌고 서가로 가는 지원. 멀리 떨어진 열람실 한 자리, 장일 앉아있다.
두꺼운 민법 책 펼쳐놓고 줄치고 연습장에 써가며 외우는 장일. 잡념을 쫓으려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모습. 명식 다가와 장일의 어깨를 툭 친다.
명식;짱일!
장일;(깜짝 놀라는)
명식;놀래라.... 애 떨어질 뻔 했다....
장일;형....
명식;고판이 맥주 한잔 산다는데?
장일;고판이요?
명식;고기훈. 이번에 연수원 들어간 선배있잖아.
16. 호프 집 / 밤
장일, 미친 듯이 웃고 있다. 테이블엔 안주가 푸짐하고 맥주 여러 병과 위스키 한병이 다 비었다. 장일을 비롯해 남녀 학생 5명, 말쑥한 수트 차림의 20대 후반 남자 앉아서 신나게 웃고 있다. 다들 취하고 기분 좋은.
선배;(웃음이 그치지 않은 채)맨날 추리닝 입은 것만 보다가 백만 원짜리
정장 딱 입고 가니까, (여자흉내)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죠?
장일;(배가 끊어질 듯 웃고 있는. 과하게 웃는)
명식;인생은 사시 패스 전, 패스 후로 확실하게 구분되네요.
선배 진짜 용 되셨습니다.
선배;다 빚이야 임마. 연수원 들어가면 바로 대출한도 1억 주는 거 알지?
옷부터 구두까지 다 빚이야.
명식;그럼 오늘 술은 저희가 사는 겁니까.
선배;당연하지. 여기 위스키 한 병 더 주세요.
학생들 또 한 번 웃고 장일은 손뼉 치며 실성한 듯 계속 웃는다.
선배;야, 신입생. 너 오늘 기분 좋구나.
장일;선배님 보니까 반가워서요. (잔을 들며)자 건배! 원 샷!
잔 부딪히고 장일 한 번에 다 마셔버린다.
17. 포장마차 / 밤
라디오가 켜져 있는 포차 실내. 뉴스가 나온다. 목에 두툼한 목도리 (또는 스카프)를 두른 지원, 우동을 먹고 있다. 그릇 들고 국물도 마시고 허기졌던 듯 맛있게 먹는다.
장일(E);소주랑 우동 주세요.
장일, 들어와 구석 자리에 앉는다. 지원, 우동 먹는 데만 몰두해 있다. 장일도 지원을 보지 못하고 술기운에 고개 푹 숙인 채 앉아있다. 소주와 우동, 장일 앞에 놓인다. 장일, 소주를 따라 한 번에 원샷, 다시 따라 두 잔째도 마셔버린다.
뉴스(F);.... 20대 남자가 숨진 채 발견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장일; !!
뉴스(F);오늘 오후 세시쯤 (전남 여수시) 해양공원 앞 해안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20대 남자가 숨져있는 것을 인근에서 낚시하던 조모씨 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주변에 술 취해 웃고 떠드는 중년 남자들의 소음으로 뉴스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장일,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불안하다. 우동을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있다.
뉴스(E);경찰은 낚시를 하던 도중 사체가 떠내려 왔다는 목격자 조씨의 말에 따라
지원, 돈 내고 일어서다가 장일을 본다.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다. 이상해 보인다.
뉴스(F); 해안가 일대의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숨진 남자의 신원을 밝혀내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일, 속이 메스꺼운지 얼른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놓고 입을 막으며 포장마차를 나간다.
18. 거 리 / 밤
지원 포장마차에서 나온다. 몇 발작 걸어가는데 장일, 가로수 앞에 쭈그려 토하고 있다.
지원;........
장일, 일어나서 골목길로 들어가는데 가다가 또 우욱 하며 주저앉는다. 불 꺼지고 문 닫힌 상가 골목, 장일 힘없이 기대 앉아있다. 술이 많이 취했다. 지원, 멀리서 장일을 보다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낸다. 한두 모금 정도 마시고 많이 남아있는 물병. 지원, 다가가는데
장일;(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다)왜 그러셨어요.... 난 이제 어떡하라고....
날 지옥으로 몰아넣고.... 그게 날 위한 거라고.... 아버지....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지원;...........
장일, 일어나 걸어가는데 비틀하며 벽을 손으로 잡고 의지한다.
지원;(다가가)괜찮으세요?
장일;(쳐다보지도 않고)비켜, 이젠 내 인생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원;정신 차리고 이 물 좀 마셔봐요.
장일;(물병 든 손을 확 밀쳐버린다. 발작하듯 소리치는)비키라니까!
비켜.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마.
장일, 길바닥에 옆으로 쭈그려 눕는다.
장일;난 이제.... 가고 싶지 않은 길로 가게 됐어요.....
장일, 잠자듯 눈을 감는다. 지원, 장일을 흔든다.
지원;이봐요. 여기서 자면 큰일 나요. 이봐요.
장일, 지원에게 흔들려 벌러덩 눕는다. 정신 놓은 듯 누워있는 장일.
지원;정신 차려요! 이봐요!
꼼짝 않는 장일. 지원, 걱정스런 눈으로 장일을 보다 생수병 뚜껑을 열어 물을 입에 한가득 머금는다. 옛 여인들 인두 다림질 하듯 장일을 얼굴에 ‘푸우’ 내뿜는다.
장일;(꿈쩍 없이 눈감고 있고)
지원;..............
지원, 안되겠다는 듯 생수병을 들어 장일 얼굴에 부어버린다. 차가운 물에 눈뜨고 일어나 앉는 장일. 머리 아픈 듯 감싸 잡는다.
지원;미안해요. 잠들게 두면 안될 것 같아서.
장일, 젖은 얼굴로 옆에 쪼그려 앉아있는 지원을 바라본다.
장일;........지원씨가 어떻게.....
지원;포장마차에 있다가 봤어요. 괜찮아요?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장일;..........
지원;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술 마신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요. 얼른 집에 가서 푹 자고 일어나요. 낼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 비우면 기운 펄펄 날거예요.
장일;(눈물이 날 것 같은)
지원;조심해서 가세요. (일어서는데)
장일;(지원의 손을 잡는다)
지원;..........!
장일;잠깐만........잠깐만 같이 있어주세요.... 정신 차릴 때까지만.....
지원;.......(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19. 상가 로비 / 밤
로비 1층 구내 카페나 라운지 같은 곳. 어둡고 텅 비어있다. 벽에 붙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지원과 장일.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다. 지원, 앞만 보다 고개 돌려보면 장일 벽에 기대 잠들어 있다.
지원;............
새벽녘. 어슴푸레 동이 터오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선 김이 오른다. 오픈 준비하는 점원. 장일, 눈 뜬다. 옆 자리 비어있다. 일어서려는데 목에 감겨있는 두툼한 목도리가 느껴진다. 만져보는 장일. 몸과 마음으로 온기가 느껴진다. 목도리를 더 꽁꽁 여미고 로비를 나가는 장일.
20. 장일 방 / 아침
책상 한 쪽에 곱게 접어 놓여있는 지원의 목도리.
21. 도서관 / 낮
서가 한 켠에서 책 꽂고 있는 지원. 명품 브랜드 쇼핑백을 내미는 장일.
지원;.........?
장일;어제 목도리........전철에서 졸다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지원;괜찮아요.
장일;받으세요.
지원;(쇼핑백 안으로 보이는 머플러를 보며)이건 좀 받기가 그런데요....
내 목도리보다 스무 배는 비싼 것 같은데....
장일;이걸 받아줘야 내가 덜 부끄러울 것 같은데요.
지원;..............
장일;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지원;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아버지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장일;...........
지원;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 마음 아프길 바라겠어요. 다 잘되길 바래서
그러시는 건데 우리가 이해 못하는 거죠.
장일;내가 어제 뭐라고 그랬나요.
지원;.....기억은 잘 안나요.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고... 못된 투정이었어 요. 그러지 마세요.
장일;알았어요, 지원씨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
지원;(웃는)
장일;또 봐요.
장일, 돌아서 간다. 지원, 쇼핑백 든 채 가만히 서 있다.
22. 선우네 옥탑 / 낮
햇살 쨍한 옥탑 마당. 금줄, 심란한 듯 서 있다.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방,
텅 비어있다.
23. 경찰서 / 낮
금줄, 형사 앞에 서 있다.
형사;진정서 접수? 아니, 안 왔는데 그 친구.
금줄;그럼 민원실에 냈나. 형사님 한번만 알아봐 주세요. 그 친구가
소식 두절 이예요. 진정서 낸다고 준비했는데.
형사;기다려 봐. (전화기를 든다)
금줄, 걸어 나온다.
형사(E);김선우 이름으로 접수된 민원은 전혀 없어.
금줄;이상하네......
24. 미대 작업실 / 낮
커다란 유화 캔버스에 나무 껍데기를 유채물감으로 붙이고 약초 부스러기도 같이
섞어 그림을 그리는 수미. 숲을 그리고 있다. 질감 독특한 그림.
수미, 맘에 안 든다는 듯 붓을 집어던지고 일어선다.
25. 산 속 창고 주변 / 낮
금줄, 소리치며 찾으러 다닌다.
금줄;선우야! 김선우! 어딨냐. 선우야.
금줄, 커다란 드럼통도 열어 보고.
금줄;........이 새끼 어디서 칼침 맞은 거 아냐... 선우야!
금줄, 돌아다니다 마른 이파리와 약초로 보이는 풀을 가득 쥔 수미와 마주친다.
금줄;너, 김선우 친구 맞지?
수미;.........그런데?
금줄;선우 못 봤니.
수미;못 봤어.
금줄;이 새끼 어디로 증발한 거지. 며칠 째 실종 상태야.
수미;니들이 어떻게 한 거 아냐.
금줄;(버럭)이게 미쳤나.
수미;니들이 손 본 게 아니면 어디로 여행 갔겠지.
금줄;감이 안 좋아. 그냥 어디 놀러간 건 백 프로 아니야.
수미;아버지 재 뿌린 데 가서 가끔 울다 오는 모양이던데.... 거기도 찾아
봤어?
금줄;거긴 벌써 봤지. 없어.
26. 바닷가 벼랑 / 낮
금줄, 바다를 보고 있다. 두리번두리번 대충 보다 걸음을 옮기는데 어딘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 금줄, 내려다보면 낚시꾼 복장의 아저씨들 서너 명 모여 서 있다.
금줄;?
금줄, 달려온다. 엎어져 있는 남자를 뒤집어 본다. 얼굴에 생채기, 핏기 없는 선우.
금줄;선우야!
경찰 차, 앰블런스 차 사이렌 울리며 서 있다. 구조대원들 들 것을 갖고 선우에게 달려온다. 구조대원, 장갑을 벗고 목에 손을 대본다. 조심스럽게 감지하는 대원.
대원;...... 희미하게 맥이 있어. 살아 있어.
금줄;꼭 좀 살려 주세요. 선우 꼭 좀 살려주세요.
들 것에 실리는 선우. 안전장치 채우고 줄로 끌어올리는 대원들.
27. 도서관 / 낮
장일, 책 펴놓고 앉아있는데 삐삐가 울린다. 장일, 가방에서 삐삐를 꺼내 본다.
장일, 여수 지역번호 찍힌 삐삐 번호 보고 불안한 마음. 삐삐를 꺼버린다. 가방에 푹 쳐 넣는다.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표정.
28. 용배네 거실 / 밤
전화벨 울린다. 용배, 현관문 열고 들어온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급하게 전화 받는 용배.
용배;여보세요.....예... 그렇습니다만.....
표정이 굳어가는 용배.
용배;......어느 병원입니까?
용배, 전화 끊고 가만히 서 있다. 어두운 표정.
29. 수미네 거실 / 밤
화구통 든 수미, 들어선다. 광춘, 요란한 블라우스 입고 외출 준비하고 있다.
광춘;너 마침 잘왔다. 선우가 사고를 당해서 지금 응급실에 있대.
수미;(놀라)무슨 사고?
광춘;몰라, 벼랑에서 떨어진 것 같다는데... 지금 의식이 없대. 주머니에
있던 수첩에서 전화번호 찾아 전화했다고 하더라.
수미;어느 병원인데.
광춘;베드로 종합 병원.
수미;나 혼자 다녀올게 집에 있어.
광춘;갈 거야.
수미;(버럭)그 꼴루 어딜 가.
광춘;갈아입음 되잖아. (방으로 들어가서)
수미;선우 어떻대? 깨어날 수 있대?
광춘(E);몰라. 지 애비 죽은 데 맴돌다가 발이라도 헛디뎠는지.
수미;.......(슬픈 듯 한숨)
광춘;(다른 옷으로 입고 단추 채우며 나오는)혼자 애쓰는 거 안쓰러워서
지 애비가 데려가나부다. 불쌍한 것.
수미;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마. (나가는)
광춘;같이 가.
30. 응급실 / 밤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선우에게 다가오는 광춘과 수미. 광춘, 소리지르며 난리를 피운다. 금줄은 저만치 한 쪽 구석에 서 있다.
광춘;아이고 선우야, 이게 무슨 액이냐. 어쩌다 이랬어, 누가 널 이랬어.
눈 떠봐, 눈 떠봐 이놈아. 너희 아버지 죽인 놈이 너까지 이런거야.
수미;(순간 열 받아 이빨이 솟는)조용해 제발. 조용해. (광춘을 두들겨
패고 싶은 마음)
광춘;엊그제까지도 멀쩡한 놈이 왜 초죽음이 돼서 자빠져 있냐고 왜!
이놈이 운동신경이 얼마나 좋은 놈인데 발을 헛디뎌.
거짓말이야.
수미;(광춘의 입을 막으며 소리죽여)걔네 아버지한테 가서 따지지 그래.
선우도 니가 죽였냐고.
광춘;내가 못할 것 같아. 나도 양심이 있어. 나도 인간의 양심이 있다고.
의사;(다가온다)김선우씨 보호자 되십니까.
광춘;이 녀석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의사;아버님 되십니까.
광춘;이 놈 아버지는 돌아가셨구요. 저는 (수미 가리키며)이 놈 애비입니 다.
수미;친구예요.
의사;부모나 형제분은 안 계십니까.
수미;없습니다. 선우가 많이 안 좋은가요?
의사;호흡 맥박 다 불안정하고 현재 의식이 없습니다. 중환자실로 일단
옮겨야 할 것 같은데.... 보호자가 동의를 해주셔야만....
광춘;옮깁시다, 지금 당장.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지 돈이 뭔 상관이야.
광춘, 선우 발도 쓰다듬고 안쓰러워 쩔쩔맨다. 수미, 한 쪽 옆에 비껴 서 있는
금줄에게 간다.
수미;어떻게 된거야?
금줄;몰라... 깨어나면 선우가 얘기해 주겠지.
수미;안 깨어나면?
금줄;에이 씨X.... (눈물이 나는 듯 휙 돌아서 나간다)
31. 중환자실 / 낮
산소호흡기 쓰고 누워있는 선우. 유리창 밖에서 보는 수미와 광춘.
광춘;선우처럼 팔팔한 녀석이 바닷물에 코 박고 자빠져 있을 일이 뭐냐고.
난 이거 사고 아니라고 본다.
수미;..........
광춘;저 놈 저거 불쌍해서 어쩌냐....
수미;선우 독한 놈이야. 깨어날 거예요.
광춘;만일 선우가 죽으면.... 나 경찰에 가서 다 얘기할거야.
수미;(광춘을 본다)
광춘;정말이다.
수미;왜?
광춘;왜라니.
수미;그렇게 해서 좋을 게 뭔데.
광춘;.......그러는 넌 그렇게 해서 좋을 게 뭔데.
수미;선우 깨어날 거예요.
수미, 선우를 바라본다. 애잔하고 딱하고........
32. 병원 로비 / 밤
로비로 걸어가는 수미와 광춘. 광춘, 가다가 갑자기 놀라‘흡’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낮은 소리로
광춘;저기 온다.
수미;......... ?
광춘;(복화술 하듯 입술 안 움직이며)그 놈 아버지. 저 집으로도 연락이
갔나봐.
수미, 앞을 보면 심각한 표정의 용배 걸어오고 있다. 팔목으로 시선. 긴 팔을 입어 팔목이 보이지 않는다. 용배, 두 사람 의식 안한 채 옆을 지나쳐 간다. 수미, 돌아본다. 광춘, 수미의 고개를 돌려놓는다. 두 사람, 문으로 걸어가다가 광춘, 깜짝 놀라 뒤돌아 뛴다. 수미도 놀라 따라가 광춘을 잡는다.
수미;왜 이래.
광춘;저 인간 가서 선우 죽이면 어떡해. 가서 산소호흡기라도 끊어놓으면.
수미;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들까지 수십 명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광춘;.........
33. 병원 복도 공중전화 / 밤
사람들 통행이 뜸한 구석진 곳의 공중전화. 용배, 수화기 들고 서 있다.
용배;장일아... 너한테도 연락을 했다길래 전화했다. 선우가 다쳐서 의식이 없다. 벼랑에서 발을 헛디뎠나봐. 오늘 밤이 고비란다. 내 생각엔
아마 어렵지 싶다.
34. 서울 장일네 거실 / 밤
전화기 들고 서 있는 장일.
용배(F);그러니 선우 같은 놈은 잊어버리고 열심히 공부만 해.
방학 땐 내가 올라갈테니 넌 여기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말고.
알았지?.......... 듣고 있냐?
장일;네......
용배(F);그래, 들어가라.
장일, 전화 내려놓는다.
35. 장일네 욕실 / 밤
거칠게 세수 하는 장일. 거울을 본다. 불안해 보인다.
(E);초인종 소리
장일(E);누구십니까.
형사(E);네, 경찰입니다.
장일, 거울만 응시하고 있다. 외롭고 독한 눈빛.
36. 장일네 거실 / 낮
장일의 상상.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는 형사1, 2. 장일, 파스텔 톤의 밝은 색깔 셔츠나 스웨터를 입고 있다. 비극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형사1;이장일씨 되시죠.
장일;네, 무슨 일이십니까.
형사1;김선우씨 아시죠?
장일;그럼요, 친한 친구죠.
형사1;김선우씨가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37. 장일네 욕실 / 밤
거울보고 표정 연습해 보는 장일.
장일;(놀란 척)선우가요?
장일, 다시 표정 가다듬고.
장일;(충격을 받은 듯 깊고 낮은 목소리로)서... 선우가요?
선우가 왜요, 어쩌다가요?
38. 중환자실 / 밤
누워있는 선우. 손과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혈색이 안 좋다.
장일(E);교통사고가 난건 가요? 설마 자살은 아니죠? 어디서 발견됐는데 요.
39. 장일네 욕실 / 밤
거울보고 표정 연습하는 장일.
장일;선우가 어쩌다 그렇게 된겁니까. 네?
초인종 소리. 장일, 흠칫 놀란다. 가만히 있는데 다시 초인종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40. 장일네 거실 / 밤
현관으로 가 긴장 가득한 얼굴로 묻는 선우.
장일;(긴장)누구세요?
경비(E);경비실인데요, 학생 문 좀 열어봐요.
장일, 문 열면 경비아저씨 사과박스를 하나 들고 서 있다.
경비;이게 옆 동 703호로 잘못 배달됐었나봐.
플래쉬 백 -- 3부. 숲 속 창고.
선우;참! 내가 보낸 거 받았냐? 그저께 부쳤는데.
장일;아니. 뭘 부쳤는데?
선우;별 거 아니고... 내가 장난감 하나 만들어 보냈어. 시시해. (웃는)
장일, 풀어보면 둥그렇게 깎고 사포질을 열심히 한 듯한 아담한 목침과 목각 독서대(고시생들 많이 쓰는)가 나온다. 전기인두로 ‘이장일 합격 기원!’ 이라 써 있다.
장일;...........
장일, 멍하니 앉아있다. 눈물이 핑.....
장일;선우야... 미안하다.... 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어서 그랬어.
난 반드시 성공할 꺼야.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갖고, 너에 대한
죄책감 평생 안은 채 고통받으면서 살게. 그럼 됐지?.....
그럼 됐지 선우야.....
장일,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49. 빌딩 공사장 일각 / 낮
나동그라지는 금줄. 금줄을 따라다니던 똘마니 둘, 금줄을 내동댕이 친다.
똘마니1;이 쪽에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금줄;니들이 손 댄게 아니면 멀쩡한 놈이 갑자기 왜 뻗어. 땡보가 장택이 한테 잘 보일려고 가서 조진 거 아냐.
똘마니1;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땡보형이 김선우보다 싸움 못해요. 잘 아 시면서 그래.
금줄;.......(듣고 보니 그런)그럼 장택이냐.
똘마니2;장택이 형도 아니예요. 3박4일로 다 같이 온천 다녀왔어요.
금줄;어디 붙을데가 없어 우릴 배신한 땡보한테 붙냐.
똘마니2;우리 곤란해지기 전에 빨리 가세요.
똘마니들, 가고 금줄은 입가에 피를 닦고 돌아간 목걸이를 바로 한다.
42. 진승원 창고 / 낮
용배, 화분을 여러 개 놓고 분갈이 하고 있다. 전화벨 울린다. 용배, 긴장한다.
용배;(전화받아)여보세요.... 아, 회장님.... 지금 다 됐습니다.
43. 진승원 서재 / 낮
목장갑으로 책상에 놓인 난 화분을 조심스레 닦고 있는 용배.
노식;(창밖만 보며 앉아있다)진정서는 접수했습니까.
용배;.......안 했나 봅니다.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노식;(보면)
용배;김경필씨 아들이 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며칠 못 버틸 것 같습니다.
노식;사고는 어쩌다.....
용배;.... 잘 모르겠습니다.
노식;............(기분이 유쾌하진 않다)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까.
용배;벼랑에서 발을 헛디딘 것 같다고 합니다. 술 마시고 헷짓거리하다
그리 된 것 같습니다.
노식;그럴 인상은 아니던데.
용배;.........무슨 말씀이신지...
노식;.......장일 군은 잘 지냅니까.
용배;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노식;(고개를 끄덕끄덕)어서 훌륭한 검사님이 돼야지.
용배;또 필요한 거 있으심 불러주십쇼. (인사 하고 나가려는데)
노식;그 아들 녀석 장례는 용배씨가 신경 써 줘요.
용배;예.
용배, 나간다. 노식 일어나 자켓을 바로 하고 거울 앞에 선다.
41. 중환자실 앞 / 밤
선우를 보고 있는 용배. 똑똑 떨어지는 링거액, 심장 맥박이 체크되는 모니터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어둡고 슬픈 얼굴. 선우의 팔을 잡는다.
귓가에 다가와
용배;........선우야.... 니가 내 아들 죄 짓게 했냐....
선우;...............
용배;..... 그럼 안 된다.
용배, 돌아서 나간다. 선우, 눈 감은 채 누워있다. F.O.
+++++++++++++ 시간 경과 ++++++++++++++++
44. 진승원 로비 / 낮
인터뷰 중인 노식. 사진기자들 여러 명과 신문 기자들 여러 명 함께 앉아있다.
노식이 얘기할 때 마다 사진기자들 카메라 셔터 열심히 누른다. 노식, 멋진 포즈와 표정을 의식하며 사진 찍히고 있다.
기자;처음엔 작은 오파상으로 시작해서 부동산으로 성공하시고, 골프 리 조트에 이젠 부경화학까지 인수하셨는데요
노식;그래서 맘에 안 드십니까.
기자들;(웃고)
노식;부실 기업을 인수해 되살리는 건 우리도 좋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닙니까. 고용승계는 약속 드렸습니다. 향토기업으로 훌륭하게
성공했다.... 여기서 그치고 싶진 않아요. 부경화학도 원유가공산업과
화장품으로 분리해서 새롭게 키워 볼 겁니다. 앞으로 갤러리나 소규 모 공연장 같은 문화사업도 하고 싶고, 합작투자로 외국에 리조트 건설도 지금 추진중 입니다. 저는 꿈이 큰 사람입니다. (웃는)
45. 태국의 한 호텔 비즈니스 센터 / 낮
계약서에 싸인하는 문태주와 금발의 노신사. 악수하는 두 사람. 미스터 쿤, 미소지으며 조용히 서있다.
금발 회장;(불어)광산 개발권을 우리한테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주;(미소 지으며 굳게 악수)
46. 진승원 로비 / 밤
하우스 콘서트. 멋스런 식기들에 담긴 스낵바 차려져 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마희정과 윤주, 노래 부른다. ‘오 대니 보이’. 노래는 거의 윤주 혼자 하고 희정은 립싱크처럼 가늘게 따라하는 수준. 표정과 제스처는 희정이 더 성악가처럼 오바해서 감정에 푹 빠져있다. 윤주는 노래 부르며 웃긴다는 듯 희정을 한번 힐끗 보고.
희정.윤주;(노래)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오 대니 보이 오 대니보이 내 사랑 아.
초대된 손님들 앉거나 서서 와인과 칵테일 잔 하나씩 들고 노래를 듣고 있다.
흐뭇한 얼굴로 앉아있는 진회장. 노래 끝나면 모두 박수. 희정과 윤주, 인사한다. 희정, 큰 제스처로 프리마돈나처럼 인사.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담소한다. 희정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우아하게 웃고. 윤주는
칵케일 잔 하나들고 구석에서 창 밖 내다보고 있다. 노식, 혼자 있는 윤주를 보고 다가간다.
노식;노래 멋졌다.
윤주;엄마가 주책이죠 뭐.
노식;어쨌든 훌륭했어. 고맙다.
윤주;윤석이는 시험공부 때문에 못 왔어요.
노식;괜찮아. 아직 날 불편해 하는 것도 이해하고.
윤주;죄송해요. 저희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노식;유학 가는 건 결정했니.
윤주;유학을 가도 경영학을 공부할 거구요, 아님 졸업하자마자 일 배우고 싶어요. 저 회사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노식;나야 환영이지. 엄마만 설득해 봐.
희정(E);누굴 설득 한다구?
희정, 술잔 들고 다가온다.
희정;니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 여자는 예체능을 해야 시집을 잘 가.
줄리어드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와.
윤주;엄마는 예체능 안 해도 시집 잘 갔잖아.
희정;대신 두 번 갔잖아.
윤주;주책이야 진짜. (자리 피해버리고)
희정;내 농담 거슬렸어요?
노식;아니.
희정;하우스 콘서트 자주 합시다 여보. 얼마나 근사해. 우리도 있어 보이 고. 저 그릇들 오늘을 위해서 내가 덴마크에서 공수해 온 거예요.
노식;윤주 저 녀석, 욕심이 있어. 경영에 참여하고 싶어해.
희정;불안해요? 당신 꺼 뺏어 먹을까봐.
노식;............(씁쓸)우린 언제쯤 가족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요?
47. 진승원 마당 / 밤
고급 세단 여러 대 서 있다. 노식과 희정, 사람들 배웅하며 인사하는.
희정;다음 번 하우스 콘서트 때도 초대할게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희정과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노식, 나이 지긋한 남자와 차 앞에서 얘기 중.
남자;진회장, 자원 개발 투자엔 관심 없으십니까.
노식;관심이 없다기보단 그 쪽은 제가 잘 모릅니다.
남자;얼마 전에 태국의 커랜덤(사파이어, 루비계열의 광물)광산 개발권을
프랑스 제르맹 사가 거액을 주고 사들였어요.
노식;(예의상 관심있는 척 대답하는)아, 예.......
남자;개발권을 판 사람이 한국인이야. 재력도 있고 인맥 풀이 넓은 사람이 라는데 여수 출신이란 말이 있어요.
노식;....그래요?
남자;미스터 문이라고 불린다는데 한국 이름이 문태주... 라던가.
노식; !! (표정이 굳는)
남자;베일에 싸인 인물인데 20년 전에 감옥을 한번 갔었다는 소문도 있 고... 손대는 곳마다 광맥이 터지고 있다니
노식;(싸늘한 얼굴로 듣고 있는)
남자(E);다음 번 개발을 추진할 땐 나도 투자를 좀 하고 싶은데 선을 댈 수 가 있어야 말이지. 혹시 진회장 그 쪽으로 네트워킹이 되면 날 좀 연결해 줘요.
노식;알겠습니다.
남자;진회장은 언제나 명쾌해서 좋아. (차에 타는)
노식;고문님,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아십니까?
남자;거처를 알면 내가 벌써 찾아갔겠지.
노식;.........알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문을 닫아주는)
48. 진승원 로비 / 밤
파티 후 텅빈 공간, 꽃들 그대로 꽂혀있고 휑하니 보인다. 혼자 앉아있는 노식. 손에 브랜디 잔을 들고 시가를 물고 있다. 노식, 불쾌한 기운이 가득하다. 시기 질투 불안 경계심..... 노식, 갑자기 분노가 치미는 듯 브랜디 잔을 움켜쥐어 깨뜨린다.
노식;.......
50. 중환자실 / 낮
‘김선우’ 환자 이름 붙어있는 침상. 용배, 선우 보며 서 있다. 용배가 가리고 서
있어 선우는 환자복 입은 손과 발만 보인다. (성인 선우)
용배;너두 참 질기구나.... 장일이가 사시 준비한다. 우리 장일이 좀 편하 게 해줘라.
용배, 원망을 담아 보고 있는 위로 경필의 따스한 웃음소리 ‘선우야’ 부르는 소리 에코우로 멀리서 들려온다.
51. 산 속 창고 / 낮
불판에 고기 굽고 있는 경필. 선우, 칠판에 ‘경필과 선우의 아지트’ 라 분필로 쓰고 있다. (어린 선우 + 성인 선우)
경필;(뒤집으며)으차! 다 익었다. 얼른 와 먹어.
선우;오케이!
경필;우리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여기 와서 고기 구워 먹자.
선우;한 달에 딱 한번만 고기 사주겠단 소리네.
경필;들켰네! 하하하.... 자, (쌈 싸서)내 아들, 아...
선우;(쌈 사서)아버지 먼저 아..... 빨리 아.
경필;아........(받아먹고)아흐 매워, 마늘을 몇 개나 넣은거야!
선우;마늘이 남자한테 좋대. 다 먹어 빨리.
경필;(쥐어박으며)째깐한 놈이 뭘 안다고.
선우;나도 다 알아. 나도 많이 먹을거야.
경필;먹지 마. 공부 안 돼. 먹지 마. (장난치며 투닥투닥)
소줏병과 사이다병, 거의 다 비어있다. 나란히 사이좋게 서 있다.
경필;(기분좋게 취한)아버진 사내대장부가 아닌가봐. 꿈이 요따시만 해.
선우;꿈이 뭔데.
경필;선우 장가가서 며느리 손자보고 재밌게 사는 거. 이렇게 같이 고기
구워 먹는 거.
선우;진짜 시시하네.
경필;넌 꿈이 뭔데.
선우;(옆에 있는 지구본 휘릭 돌리며)난 아버지랑 같이 세계여행 하는 거.
파리 뉴욕 로마 런던... 이런 데도 좋지만 마지막으로 꼭 가보고
싶은 덴 여기야. 적도.
경필;적도면 더운 데 아냐?
선우;이렇게 불룩한 데루 태양을 바로 받으니까 뜨겁겠지? 낮에는 여름,
밤에는 겨울인 곳도 있대. 태초의 원시림 같은데도 있고.
경필;그런 미친 데가 왜 가보고 싶어.
선우;날 닮은 것 같아서.
경필;하긴... 니가 미친놈처럼 뜨겁지.
선우;아버지는 왜 고아원으로 날 찾으러 왔어?
경필;............
선우;엄마 아빠 돌아가신 거 알고 있었는데 매일 밤 기도하면서 우겼어.
나타나게 해달라고.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온거야. 내 나이 열 살에
기적을 경험했다는 거 아냐.
경필;내가 니 기도소리 듣고 간 거야 임마.
선우;뻥 치시고 있네. 소주나 더 드세요. (소줏잔에 마지막 조금 남은
소주 탁탁 털어 따르며)난 아버지가 우리 아빠라서 참 좋아.
선우, 소줏잔을 들고 옆에 있는 경필에게 건네려는데 경필 사라졌다.
선우;...........아버지?
선우, 벌떡 일어나 둘러본다. 창고 천장에 거미줄 먼지가 가득하고 방금 쓴 칠판의 글씨 희미하게 지워져 간다. 선우, 창고 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경필,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선우;아버지! 아버지 어디 가 아버지....
경필(E);(멀어지며)오지 마 선우야. 돌아가....
뛰어가는 발 따라 올라가면 성인이 된 선우.
선우;아버지 같이 가. 아버지.....
52. 중환자실 / 낮
헉헉.... 대는 소리. 옆 병상의 환자 차트 보고 있던 간호사, 고개를 돌려본다.
간호사;(인터폰 들어)이 선생님 불러. 김선우 환자 의식 돌아왔어요.
선우의 손과 팔 조금씩 움직인다. 성인이 된 선우의 얼굴.
선우;......(힘든 숨소리)흐으...... 흐으. . . . 으. . . .
선우, 눈 감고 누워있다.
의사;김선우씨 내 말이 들립니까?
선우;... (괴로운 신음같은)흐으... 으....
의사;여기가 어딘 지 아시겠어요?
선우;...............
의사;여기가 어딥니까 김선우씨.
선우;.........(숨소리만)
의사;제 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선우;(손가락을 움직인다) 의사;네 잘하셨어요. 선우씨는 조금 다쳐서 병원에 와 계십니다.
다행히 의식을 바로 회복하셨으니까 이제 좋아지실 겁니다. 기운 내 세요 선우씨.
선우, 힘들고 지친 듯 눈 감고 대답 없다. 거친 호흡만 계속.
53. 학교 공중전화 / 낮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의 공중전화.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는 장일.
금줄(F);(들뜬)범생아, 나다 금줄. 선우 의식 돌아왔다.
장일;..............
금줄(F);니가 제일 많이 걱정할 것 같아서 메시지 남긴다. 또 연락할게.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학생들 속에 장일, 춥게 얼어붙어 있다.
54. 창 고 / 밤
전화벨 울린다. 용배,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데 전화벨 끊어진다. 용배, 장갑을 벗어 털고. 장화를 벗고 구두를 신고 퇴근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용배;네, 관리실입니다.
간호사(F);여기 베드로 병원인데요.
용배;아, 예.....
간호사(F);김선우씨가 의식을 찾으셨습니다.
용배;...............
용배, 전화기 내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움직이지 않을 태세로 가만히 있는.
55. 병원 복도 / 밤
광춘과 수미, 뛰어간다.
56. 중환자실 / 밤
면회복으로 갈아입은 수미와 광춘, 선우 앞에 서있다.
수미;김선우.
광춘;선우야.....
선우, 눈 감은 채
선우;..........음......
광춘;(반가워서)아이구 선우야! 내 기도가 먹혔구나. 저승길 저만치 갔다 이제서야 돌아왔구나. 이게 몇 년 만이냐, 이놈아.
수미;나야 수미. 최수미.
광춘;난 수미 애비고. 우리 목소리 알아듣겠니. 응? 선우야.
선우;.............(숨소리만)......
수미;(불안한)선우야.....
선우, 눈을 반쯤 희미하게 뜬다. 초점은 없다.
광춘;선우야.... 우리 알아보겠니?
선우;.........(멍하다).........
수미;(불안한)선우야.........
선우;.......(멍하다)
57. 서울 장일 방 / 밤
전화기 붙들고 있는 장일. 신호는 가는 데 안 받는. 장일, 불안정하고 날카로워져 있다.
장일;전화 좀 받아요 전화 좀! (수화기로 전화 내리치며)불안해서 미치겠 단말이야.
전화기를 뽑아 던져버린다. 박살나는 전화기.
58. 진승원 일각 / 밤
차실장과 노식, 찻잔 놓고 앉아있다.
노식;알아봤나?
차실장;인도네시아, 태국,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정보만 있지 구체적인 건 없습니다. 현재 어디 있는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소수의 팀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노식;.....그렇게 보안 속에 움직이는 덴 이유가 있겠지.
차실장;...........
노식;.... 뭔가를 도모하고 있단 소리야.
59. 방콕 반얀트리 호텔 버티고 Bar / 밤
천장이 없어 하늘이 바로 보이는 61층의 오픈 바. 마티니 한잔을 들고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태주.
쿤; 글랜트 회장과 암스텔담 미팅은 월요일로 확정했습니다.
태주;수고했어.
쿤;그 후엔 스톡홀름에서....
태주;그 다음은 다 취소해 줘.
쿤;........특별한 이유라도....
태주;...........
태주, 말없이 잔의 술을 다 마셔버리고 계속 풍경만 응시하는. 쿤은 조용히 태주의 답을 기다린다.
태주;아들을 찾으러 가야겠어.
60. 중환자실 / 밤
선우, 눈을 반쯤 떴다 감았다.... 멍하니 바보가 된 것처럼 누워있다.
수미;선우야, 나 수미야.
선우;...................
수미;장일이 안 불러도 되겠어? 너랑 제일 친한 친구있잖아.
선우;........(멍한).........
수미;이장일 기억 안나?
광춘;그만 가자. 스트레스 받을라.
수미와 광춘, 돌아서 가는데
선우;아버지가.....
수미 광춘 깜짝 놀라 돌아본다. 침상 가까이 온다.
수미;선우야. 너 정신 드는구나.
광춘;아이구 이놈아 우리 알아보겠니.
선우;아버지가......
광춘;그래, 내가 얘 애비다. 내가 수미 아버지야.
선우;아버지가 이따 오신대. 기다려야 돼.
수미.광춘;(뜨악해서 마주본다)
61. 병원 복도 스테이션 / 밤
광춘, 의사를 잡고 매달린다.
광춘;저 녀석 바보가 된 겁니까? 우리를 몰라봐요.
아버지가 죽은 것도 모르고.
의사;오랫동안 누워있다 깨어나는 경우 한동안 헛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땐 바로 잡으려고 하지마시고 그냥 들어주세요.
광춘;(한숨)
수미;.........돌아오긴 돌아오나요?
62. 장일 방 / 새벽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장일. 장일, 침대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나 옷을 입는다.
63. 중환자실 / 밤
선우, 눈감고 있다.
수미(E);장일이 안 불러도 되겠어?
수미(E);너랑 제일 친한 친구말야.
수미(E);기억 안나? 이장일.
선우;......장일이.......
장일(E);(반가운 소리로 부르는)선우야!.....선우야!....... 선우야!
선우, 거친 숨 내쉬며 눈꺼풀도 희미하게 파르르 떨리는.
선우;(숨 가빠지는)헉. . .헉. . . 헉. . .
플래쉬 백 -- 4부 숲 속.
걸어가는 선우, 뒤에서 따라오는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흙과 낙엽들을 밟는 발자국 소리. 선우, 인기척 느끼며 걸어가는데 뒤에서 강한 타격. 빛이 팍 꺼졌다 눈부시듯 환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시야가 점점 흐려지며 옆으로 세상이 기운다.
장일(E); (장일의 거친 숨소리 삼키는 울음소리 메아리처럼 윙윙 울린다)
선우(E);장일아.....
카메라 선우의 시각으로. 옆으로 눕는다. 퍽퍽 하는 둔탁한 소리 웅웅거리며 어지럽게 들린다. 선우의 시각으로 깜빡깜빡 하면서 어디론가 끌려가고 비탈길로 굴려진다.
선우(E);나한테 왜.... 이러냐.... 장일아....
병실, 선우 온 몸을 떨며 숨이 가빠진다.
선우;헉. . .헉. . . .
의사;김선우씨, 김선우씨!
선우;(쇼크가 오려는 듯 숨 가빠지고 팔 다리가 굳는)헉... 헉....
의사;제세동기 준비하고 바이탈 사인 체크해.
선우;(소리 지르는)으아아아...... 아...... 으아아아.....
의사, 선우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링거액을 조절한다. 중환자실 유리창으로 다가오는 용배. 유리창을 통해 선우의 쇼크를 본다.
용배; !
선우, 두 팔을 버둥대고 발작하듯 괴로워한다. (선우의 기억은 장일이 쳤다는 것까지만. 그 전의 기억은 아직 혼미한 상태)
용배;...........(불안하고)......
선우;으아아아.... 으아아아......
용배;.........(두려움. 혼잣말)안 돼......
의사와 간호사 선우의 팔 다리를 잡는다. 소리 지르며 버둥거리는 선우.
64. 기차 / 아침
달리는 기차. 장일, 메마른 표정으로 앉아있다.
65. 병실 / 아침
4인 병실. 선우 눈 감고 있다.
수미;선우야.
선우;.....(눈을 뜬다)
수미;내가 누군지 알겠어? 나 수미야.
선우;......수미?
수미;그래 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잖아. 기억 안나.
선우;.......(희미한 미소)그림 잘 그려....
수미;(반가운!)그래, 선우야. 나 그림 잘 그려. 이제 기억이 돌아왔구나.
선우;수미야....
수미;그래 그래 얘기해.
선우;우리 아버지한테 전화 했어?
수미;.........
선우;늦게 오지 말라고 전화해.
수미;그...그래.
선우;고맙다.
수미;선우야.... 너 어쩌다 이렇게 다친거야.
선우;.........
수미;어쩌다 사고가 났는지는 기억 안나?
선우;(말하기 싫다는 듯 눈을 감는다)기억 안나. 묻지 마.
수미;...........
선우;몇 시야?
수미;열 두시.
선우;늦었다 집에 가.
수미;뭐가 늦어.
선우;밤 열두시.
수미;낮 열두시야. 너 볼려구 점심도 안 먹구 달려왔어.
선우;불 좀 켜 봐. 어두워.
수미;(천장을 보며)불 켜져 있는데.
선우;.....(눈을 떴다 감았다)전등있는 거 다 켜 봐.
수미;다 켜져 있잖아. 봐봐.
선우,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하다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난다.
수미;너 왜 이래. 아직 이렇게 움직이면 안돼.
수미, 일어나 앉는 선우를 부축한다. 선우, 어깨에 닿는 수미의 손을 더듬더듬.
수미 얼굴을 쳐다본다. 초점 없다.
수미;........(혹시... 하는 불길함)선우야....
66. 안과 진찰실 / 낮
휠체어에 앉아있는 선우. 안과 의사, 불빛을 비추고 안구 검사중이다.
67. 병원 복도 / 낮
휠체어에 낮아있는 선우. 수미, 휠체어를 밀고 간다. 무심하게 멍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선우. 휠체어 멀어져 간다.
68. 병원 로비 / 낮
장일, 걸어온다. 수미, 가방들고 나가다 장일을 보고
수미;이장일.
장일;(깜짝 놀라서 선다)
수미;선우 보러 온거니.
장일;..........응.
수미;선우가 널 기억 못할지도 몰라.
장일;........
수미;사고 때 머리를 다쳐서 그런 지 기억이 많이 지워진 것 같아.
장일;........(안도의 눈빛)
수미;그리고..........
장일;(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수미;가서 만나봐라. (짧고 건조한 한숨 내쉬고 가버린다)
장일;............
69. 병실 / 낮
침대에 멍하니 기대 앉아있는 선우.
안과의사(E);사고 때 충격으로 각막에 손상이 온 것 같습니다. 보통 후두 엽에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각막이 분리되는 경우가 있어요.
각막분리가 되면 뇌가 인지를 못하게 되고.....
선우;놀구 있네. 누구 맘대로.... (웃는)
선우, 소리 지른다.
선우;불 켜! 어두워.
병실 다른 병상의 환자와 보호자들 선우를 바라본다.
선우;불 키라구, 불. 어두워 안 보인다구. 불 켜!
선우, 침상에서 비틀하며 내려서 벽을 잡고 더듬으며 외친다.
선우;불 키라고 했잖아.
70. 병원 복도 / 낮
선우, 비틀거리고 사람에 부딪히며 초점 없는 눈으로 걸어온다. 다리 절룩거리면서
선우;불 켜! 의사 어딨어. 의사 어디갔어! 불 좀 키라구 불!
장일, 걸어오다 마주 오는 선우를 본다. 온 몸이 굳어 멈춰선다.
선우;(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나 좀 안과에 다시 데려다 줘요.
돌팔이가 거짓말 하는 것 같아.
장일;...........
선우, 미친 사람처럼 걸어간다.
선우;어두워.... 안 보여....
선우, 지나가는 사람들 잡는데 사람들 피하고 간호사 달려오고.
간호사;김선우씨 이러지 마세요.
선우;놔! (간호사 손 뿌리친다)
선우, 허부적대고 가다 앞에 서 있는 장일의 팔을 잡는다. 초점 없는 눈.
선우;선생님 나 안과에 좀 데려다 줘요. 부탁합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
장일;.......(부들부들 떨며 가만히 서 있는)
선우;안과가 어딨냐니까.
장일;...........(지옥을 만난 기분)
선우, 화가 나는 듯 장일을 밀쳐버린다. 비틀하며 물러서는 장일.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선우.
선우;거짓말이지, 거짓말이야. 누가 불을 다 끈 거야! 불 키라구. 불 켜!
불 켜어!
선우, 절규하듯 소리 지르는데서!
.적도의 남자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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