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12월의 열대야 1
#1. MBC 라디오 스튜디오
환하게 켜져 있는 ON-AIR램프.
전유성,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 부스 안, ‘전화노래방’코너가 한창이다.
전화선을 타고 참가자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두 진행자 예의 그 포근함으 로 노래를 따라부르며 응원해주고 있다.
너무나 진지하게 열창하고 있는 참가자, 가수가 못된 그의 인생이 안쓰러울 정도다.
부스 밖에선 PD와 작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장감 넘치는 방송 뒷풍경 스케치.
PD 담 참가자 누구야? 얼른 대기시켜!
#2. 서울근교 서오릉 길
녹음 우거진 8월의 서오릉 길.
시원하게 뻗은 그 길 어딘가에서 어울리지 않게 쿵짝쿵짝 씬1의 노래 울려퍼지고 있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 팔고있는 행상트럭의 라디오 소리다.
두어 대의 행상트럭 뒤로 운전학원의 연수용 차가 줄지어 대어져 있고, 강사들과 연수 생들이 주변 나무그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한
숨 돌리고 있다.
라디오 노래 합창으로 따라 부르며 컵차기 하고 있는 강사들, 그들에게 각종 먹거리와 음료를 경쟁적으로 갖다바치는 아줌마연수생들,
그완 반대로 젊고 예쁜 연수생에게 캔 건네며 작업중인 강사와 새초롬하게 받아 마시는 여자연수생, 자신만의 노하우인 양 뱃 살 빼는
요가동작을 열성적으로 가르쳐주고 또 배우고있는 다른 아줌마연수생들..
기태, 한 아줌마와 헤어져 오면 한 남자 손수건에 얼굴을 가리고 비스듬히 누워있다. 기태 그 사내옆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방금 받은
봉투에서 상품권 꺼내 금액 확인하며 좋아라 하고있다.
기태 (상품권을 흔들며 다가온다) 난 말이야.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이래서 좋아. 잘 가 르쳐주잖아?(핸들 흔드는 손동작을 하며) 그럼
꼭 이런 걸 들이댄다 말이야? 고맙 지.. 뭐어~
정우 .....
기태 야아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택시 때려치우는건데.. 야 내가 어디 가서 선생님 강 사님 소리 들으며 상품권씩이나 받겠냐?
정우 (씩 웃고 만다)
기태 거기다 이쁜 걸들은 좀 많냐? 거의 여탕이잖아? 지들이 지발루 찾아오지! 내돈 안 들지(상품권 손가락으로 툭툭치며) 짭잘하잖아
? 게다가 우리 강사님!! 아니시냐? 작업환경 죽이잖아!
정우 (수건걷고 일어나면 정우다)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넌 나중에 정치해 라.
기태 야 이건 다르지. 이 상품권은 말야. 사랑과 정열을 넘나드는 상징이라고나 할까. 연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꽃이란 말이지. 지금
저 아줌씨의 우리 그이는 남편이 아니라 나란 말야. 이제는 잊어버린 아련한 첫사랑!! 하하하(호탕하게) 사랑의 신 은 원래 장님이란
다. 자식아!
정우 그 장님이 눈을 뜨면 저주의 신이 된댄다 강사님아!
기태 너 오늘 흡입력 좀 있는데 (오! 오늘 말빨 좀 되는데..) 어째 처절한 게 경험담 같 다? 뭐야? 찢어졌냐?
정우 (웃음 끊어지고 순간 어두워진다)
기태 어? 뭐야? 진짜 찢어졌어? 이 자식 이거 진짠가부네! 나는 그냥, 통 안 찾아오길래 한번 찔러본 건데.. (미안해진다)
정우 (지혜 생각으로) ... ...
그때 그 분위기 확 깨며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영심의 목소리.
영심 (E, 노래) 보고싶고~ 듣고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 알고싶은 것도~ 하고싶 은 것도~ 많은 아이 영심이~ (연습을 많이 한
듯, 그러나 무지 떨며) 안녕하세요? 알고싶고 듣고싶은 거 많은 꿈 많은 사춘기 소녀 영심이가 아줌마가 되어 돌아왔습 니다! 반가워
요 여러부운!
기태 (괜히 머쓱해서 다리를 만지며) 왜 이렇게...쥐가나냐...
정우 ... ...
#3. 라디오 스튜디오
최유라 (웃음) 그럼 성도 오씨세요? 만화영화의 영심이가 오영심이잖요.
영심 (E) 네. (떨며, 또박또박 노력하는 게 더 부자연스런) 저도 오영심입니다.
전유성 반가워요 오영심씨. 만화 캐릭터중에 내가 젤 좋아하는 게 영심이예요. 일단 외로 워도 슬퍼도 절대 안우는 캔디가 아니잖아요
. 아니 외롭고 슬프면 울어야 그게 사 람인 거지,
최유라 (O.L) 맞아요. 영심인 울고싶을 때 울고 짜증나면 짜증부리고, 동생하고도 늘 싸우 구, 만화캐릭터지만 얼마나 인간적이예요!
꿈두 많구 호기심두 많구 정두 많구.
전유성 그 영심이가 자라서 아줌마가 됐다? 아줌마 영심이, 정말 궁금한데요?
#4. 종합병원 신경외과 과장 방
지환, 뇌연구에 관한 발표자료 작성중이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근사하다. 이지적이고 세련되고, 몸 전체에서 단정함과
고급스런 기품이 느껴진다.
(E) 노크소리.
지환 네.
간호사, 라디오를 들고 들어온다.
지환 뭡니까?
간호 (라디오 틀며) 아까 사모님이 전화로 부탁하셔서...
지환 (언뜻 이해가 안돼서) 뭘요?
간호 (볼륨을 올려준다)
전유성 (E) 결혼한진 얼마나 됐어요?
지환 (?)
영심 (E) 올해로 딱 10년 됐어요.
지환 (어?)
최유라 (E) 어머 10년이나 됐어요? 목소린 되게 어려보이시는데?
영심 (E) 예에. 제가 스무..살에 결혼했거든요. (주책맞은 웃음)
지환 (아내다!)
최유라 (E) 아니, 뭐가 그렇게 급했대?
전유성 (E) 사고 쳤죠?
영심 (E) 예에..
간호사 (키득키득)
지환 (굳어진다)
최유랑 (E) 그럼 경태랑?
영심 (E) 경태요? 아뇨! 우리남편 이름은 지환인데? 민,지.환!
‘신경외과 전문의 민지환’ 선명한 명패와 함께 굳어있는 지환의 모습.
최유라 (E, 웃으며) 그러니까 제 말은 경태같은 따뜻한 남잘 만나셨냐구요? 왜, 다른 사람 들 죄 영심이한테 뭐라 그럴 때 항상 경태
만은 영심이 편이 돼주잖아요. 늘 귀기 울여주고 위로해주고, 일편단심 영심이만 쫓아다니잖아요. 남편분도 그러세요?
지환 (참나!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간호사 (대답이 너무 궁금해서 귀 기울이는)
영심 (E) 우리남편은 경태하군 다른데.. 그리구 전 제가 쫓아다녔어요! (주책맞은 웃음) 남편이 제가 사는 섬에 공중보건의로 왔거든
요. 진짜루 첨 보는 순간 첫눈에 확 반 해갖구요 진짜루 죽어라 쫓아다녔어요. 다들 인간승리, 땡잡은 거라구. 지금두 잘 생겼지만 우
리남편 10년 전엔 진짜루 멋있었거든요. (하는데)
지환 꺼요
간호사 (재밌게 듣고있다가 무안) 곧 사모님 노래.. 하실텐데. 이 코너가 전화노래방 코 너거든요.
지환 끄고나가요.
간호사 예. (끄고 나간다)
지환, 조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에 몰두하려는데, 열린 문틈으로 박장대소 하는 간호사들의 웃음소리가 신경 쓰여 문밖으
로 시선을 준다.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아내의 노랫소리.
<♬ 안개 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지환 (무거운 표정, 절망감 같은)
#5. 영심의 시댁 거실
영심이처럼 머리를 바싹 당겨서 하나로 꽉 묶은 영심, 포대기에 아기를 업은 채, 수화 기 부서질 정도로 꽉 잡고 수화기에 대고 온몸
을 불사르며 열창하고 있다!
<♬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영심, 푹 빠져서 영심다운 감정과 제스처로 열창한다.
#6. 영심의 시댁 졍원
거실에서 영심 노래하는 뒤로 나여사 급하게 대문열고 들어오는 것 보인다. 화가 많이 나있다.
라디오 통해 영심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있는 가운데, 펄쩍펄쩍 뛰고 있는 나여사!
<♬ 가슴 터질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7. 영심의 시댁 거실
한참 취해서 노래부르고 있던 영심, 갑작스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두 눈이 휘 동그 래진다.
계속 성마르게 두드리는 소리. 당황한 영심, 생방송 중이라 끊을 수도 없고, 우왕좌 왕 난처해하며, 그래도 계속 꿋꿋이 노래 부른다.
<♬ 보고싶을 때 못보면 눈물 흘리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그때 벌컥 현관문 열쇠로 열며 나여사, 뛰어들어오고,
화들짝 놀란 영심, 수화기 든 채 부리나케 2층으로 도망가며 끝까지 노래부른다.
<♬ 들판에서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 받고싶어서~>
나여사 너! 너! (따라 쫓아가며 지르는) 끊어! 빨리 끊어 너! 끊어! 안 끊어? 당장 못 끊 어?
도망가고 잡으러가고, 잠에서 깬 훈이까지 그 소동에 가세해 마구 울어댄다.
#8. 영심 부부방
뛰어들어온 영심, 방문 꼭꼭 잠그고, 엉덩이 들썩들썩 우는 훈이 달래가며 끝까지 노래 를 부른다.
<♬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
나여사 (E, 문 쾅쾅 두드리며) 문 열어 문! 열어! 빨리 열어 문! 안 열어? 안 열어 너?
#9. 라디오 스튜디오
전유성과 최유라, 박장대소하고 있고, PD와 작가들도 완전히 뒤집어져 배꼽잡고 웃고 있다. PD, 끊지 말고 계속 진행하라는 사인 두
진행자에게 보낸다.
영심 (E, 영심의 노래 훈이 우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
나여사 (E, 동시에 들려오는) 너, 시에미 말이 말 같지두 않아? (문 쾅쾅) 끊어! 전화 끊 어 당자앙! 애 울잖아 애? 훈이 울잖아 훈이
이?
#10. 서오릉 길.
모든 사람들, 일시정지 버튼 누른 것처럼 하던 동작들 일제히 멈추고 전부 라디오에 귀 를 기울이고 있다. 각각의 다양한 반응들 속에
..
영심 (E) 보고싶을 때 못보면 눈물 흘리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 런 사랑~♬
나여사 (E, 꽥) 야아- 오영시임-!
기태 앗싸! 영심이 파이팅이다!
정우 (어느새 웃고 있다, 그 얼굴 위로 흐르는)
<♬ 안개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 서!>
영심의 노래 대단원의 막을 내림과 동시에 소리내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정우. 환하게 웃어젖히는 정우! 유쾌한 정우의 웃음소
리가 시원하게 뻗은 서오릉 길에 울려 퍼진다.
#11. 저택 전경
재력과 계층이 한눈에 판가름되는 저택. 잘 가꾸어진 정원.
#12. 시댁 거실
나여사에게 혼쭐나고 있는 영심.
영심 (조아리며)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나여사 나가! 내집에서 당장 나가!
영심 (빌며) 자,잘못했어요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나여사 그러니까 나가!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구 조용히 짐 싸서 조용히 나가!
영심 (재빠르게 바닥으로 내려가 무릎꿇고 싹싹 빌며) 잘못했어요 어머니! 증말루 잘못 했어요! 다신 안그래요! 두번 다신 안그래요
어머니! 그러니까 노여움 푸시구 용서 해주세요! 네?
나여사 어머니? 어머니? 누가 니 어머니야 누가? 너란 인사가 어디 시에밀 알아보기나 하 는 인사니? 지나가는 똥개가 짖어두 너처럼
은 안한다아. 어디 시에미가 그렇게 끊 으라구 하는데두,
영심 (O.L) 생방송 중이라..
나여사 뭐어? 생.방.소옹?
영심 예 어머니! 어머니가 방송계를 모르셔서 지금 오해하시구 계신데요, 생방중에 노래 부르다 끊어버리면 바루 방송사고 터지는 거
거든요! 그럼 전유성씨랑 최유라씨가 얼마나 난처해지겠어요? 아깐 그래서...
나여사 뭐어 방송사고? 허이구야 인물 났다! 어엉? 방송계에 큰인물 났어! 전국 방방곳곳 에다 대고 지남편 망신시키구 시에미 개망신
시킨 물건이, 뭐? 누구랑 누가 난처해 져? 너 제정신 박힌 얘 아냐. 어엉? 느이 결혼한게 뭐 자랑이라구 그래 방송에다 대구, 남부끄
러워서 증말!
영심 잘못했어요!
나여사 아후 아후 그말두 지겹구 이젠! 10년을 귀 따갑게 들었더니 이젠 아주 신물이 난 다! 긴말 하지 말자 우리. 나, 너랑 길게 입
섞기 싫다! 진 빠지구 지친다!
영심 네 어머니. 그럼 짧게 끊어서 말씀하세요! 저두 되도록이면 짧게 대답할게요.
나여사 뭐야? 아후 혈압 올라! 아후 뒷골 땡겨!
영심 처,청심환 청심환 드려요 어머니?
나여사 (꽥) 없어져 당장!
영심 (움찔) 어,어머니?
나여사 이제는 너랑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 나가주면 고맙겠지만 니가 나가줄 인사도 아니 고 너랑 입씨름 하기도 지쳤다. 그저 내 앞
에서만 없어져. 얼른! 얼른?
영심 (쭈뼛쭈뼛 일어나는데 다리에 쥐가 난다!) 끙. (코에 침 바르며 한쪽 다리 뻣뻣하 게 해서 절뚝거리며 나간다)
나여사 물러터진 놈! 걸려두 어떻게 저딴 거한테 걸려가지구 이건 평생을...
영심 (상처받고)
#13. 어느 공원
영심, 목덜미의 땀 닦으며 아이스바 쭉쭉 빨면서 벤치에 앉아있다.
영심 그래두 서울산지 10년인데 난 왜 이렇게 갈 데가 없냐? 찾아갈 친구 하나 없구.. (아직도 분하다) 아니이! 일에지친 남편, 위로
나하자고 그런 건데 그렇게
까지 화내실건 뭐냐구우.
공원에 아이들 데리고 나온 엄마들. 아이들과 놀고 있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 영심. 아 이들 생각이난다.
영심, 갑자기 처량해져서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 폴더 열어보면 아이들 사진이 있다. 간절해서 보는 영심.
그때 영심의 핸드폰 울린다. 벨소리는 지원이 녹음한 것으로 ‘엄마 전화! 이쁜 우 리 엄마, 얼른얼른 전화 받으세요! 빨리요오!’
영심 여보세요?
끝순 (F) 내다.
영심 (약간실망 그러나 반가운) 엄마? 웬일이야 울엄마가 나한테 전활 다 하구?
끝순 (F) 마늘캉 죽방메르치(멸치) 올리보냈다. 올(오늘) 도착할끼라카대.
영심 (짜증, 저도 모르는 순간 사투리로 팩하는) 하이 참 엄마는? 시키지도 않은 일 왜 자꾸 하는데? 내가 보내지말라 했잖아? 몇번을
말했노 몇번을? 벌써로 노망이가?
#14. 남해 영심의 친정 마루 - 공원
화면 분할. 두 모녀의 감정에 따라 영심과 끝순의 화면 크기가 경쟁적으로 커졌다 작아 졌다 하며..
고쟁이 바람의 끝순, 방금 발목에 붙인 파스가 제대로 안 붙여졌는지 모서리 부분을 떼 내어 다시 붙이며 마루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
다. 몸이 좀 불편한 듯하다.
끝순 (버럭) 문디이 가시나 지랄하고 자빠진다! 주도 탈이가?
영심 (버럭) 싫다니까! 싫다 엄마! 진짜 싫다! 내가 싫다꼬 응?
끝순 (버럭) 누가 니처묵으라고 보냈나 속없는 가스나야. 사돈 어른 자시라고 보냈지.
영심 여기 마늘 멸치 못 먹고 사는 사람 없다.엄마가 바리바리 안 싸보내주도 잘 먹고 잘 산다니까?
끝순 받아서 입 안째지는 놈이 어딨노. 니 이쁨 받꼬 니한테도 친정 있다는 것도 보여주 고, 도대체 뭐가 그래 싫노? 뭐가?
영심 (엄마 맘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쟀든 싫다. 앞으론 보내지 마라... ...
끝순 시끄럽다. 가스나. 시집 보낼 때, 숟가락 몽댕이 하나 못사준 기, 그기 두고 두고 걸리가 그러는 고로... 아무 소리 말고 받아
쳐묵으라.
영심 (짠한) ... ... (기세 꺾여서) 알았다. 담에 보낼 땐 양 좀 줄이라. 아직 많다.
끝순 알았다. 잘 살재?
영심 잘 살지 그라문 내가 못살까봐. 너무 잘 살아서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할 정도다 와? 몸은 어떤노? 엄마는 괘안나?
끝순 (사실은 좋지 않으나) 괘안치 그라문. 안죽 나는 쌩쌩하다! 힘이 남아돌아가 그기 처치곤란이다 와? 민서방은?
#15. 공원
영심 민서방이야 맨날 그렇지 머.
끝순 (F) 지집은 뭐라캐사도 애교가 있어야 된데이. 뻣뻣하게 굴지말고 착착 앵기라 말 이다. 알아듣나? 내말 무슨 말인줄 알재?
영심 응.
끝순 (F) 전화비 올라간다. 고마 끊자. 들어간데이. (끊고)
영심 (아쉬운 듯 핸드폰 바라보며) 노친네, 들어가기는 맨날 어디로 들어간다꼬...(후회 된다)
#16. 영심의 시댁 현관 - 거실
영심 (살금살금 살피며 까치발로 들어가는데)
나여사, 턱하니 버티고 서있다.
영심 헉! 어,어머니!
나여사 (쏘아보고 있다)
영심 후,훈이 우유..먹일 시간이라서.. (울지도 않는데) 어! 훈이가 우네! 배고플텐데 빠,빨리 들어가서 밥 줘야지! (얼렁뚱땅 들어가
려는데)
나여사 (잡아 세운다)
영심 아버님..돌아오실 시간..인데! 저,저녁 준비 얼른 해야죠 어머니? 아버님이 다른 건 다 참으셔두 이 시장기하구 어머니 음식은
못참으시잖아요 왜?
나여사 (소포상자 발로 홱 밀며) 내다버려! 니네 집엔 마늘 멸치 못먹구 죽은 귀신 있니? 지겹다 증말!
엄마가 보낸 소포상자다! 개봉된 상자 안엔 마늘과 멸치가 들어있다.
영심 (엄마의 소포상자 가만히 응시한다)
나여사 뭐하니? 내다버리라잖아?
영심 그래두 사돈어른 생각해서 보낸 건데....
나여사 (O.L) 사둔? 누구랑 누가 사둔이야? 난, 니네모친이랑 사둔 맺은 기억 없다? 네 멋 대루 쳐들어와선 껌처럼 눌러붙은 거 아냐?
너나 느이 엄마, 칼만 안들었지 흉악 한강도랑 다른 게 뭐 있어? 뱃속에 든 아이 인질루 지환이 인생 뺏구 남의 집안 개망신시키구,
딸은 껌 엄만 거머리, 아주 가관두 아녔잖아 느이 모녀?
영심 ... ...
나여사 주제에 또 사둔노릇은 하고싶은가 부지? 나 참, 보자보자 하니까 감히 얻다 대구 사돈이야 사돈이?
영심 ... ...
나여사 내다버려! 난 내 집에 너 하나 있는 걸루두 숨이 턱턱 막히는 사람이야. 아 얼른?
영심 (밀고 나간다)
#17. 정원 - 창고
영심, 무게 때문에 힘들게 끌어서 창고로 향하며..
영심 바보같이.. 이 무거운 걸, 집서 우체국까지 거리가 얼만데.. 분명히 또 돈 아낀다 구 버스두 안타구 미련 곰탱이처럼 땡볕에 걸
어갔을 거야! 출가외인이라며? 못되 처먹은 딸년 내 알 바 아니라며? 도대체 왜 그러구 살아! 왜?
영심, 창고 안으로 들어오고 한쪽에 잘 놓아둔다.
창고 안, 이미 쌓여진 마늘과 멸치가 꽤 된다.
쌓여있는 엄마의 마늘과 멸치를 무거운 시선으로 훑는 영심.
영심, 풀썩 주저앉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녀의 두 눈에 소포상자에 적힌 엄마의 비뚤비뚤한 글씨와 이름이 들어온
다. 엄마의 글씨 참 악필이다! 영심, 가 슴이 저려온다. 엄마의 이름 위로 눈물이 뚝, 떨어진다.
영심 (눈물 닦으며) 씨이... (노래하는, 영심의 18번으로 마인드 컨트롤용이다) ♬ 하나 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
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 아니야~ 넷이 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라 라라라 랄라랄라라~ ~ (점점 씩씩하게) 여섯이면 여섯 이지 일곱이
될까~ 일곱이면 일곱이지 여덟이 될까~ 여덟이면 여덟이지 아홉 아니 야~ 아홉이면 아홉이지 열 아니야~ 랄라랄라 라라라라라 랄라랄
라라~
#18. 대학 건축학과 설계실
스터디중.. ‘병산서원’의 슬라이드 사진과 투상도, 단면도, 배치도 등이 걸려있다.
정우 이 만대루가 있기 때문에 병산서원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7칸의 좁고 기다란, 이 간단하고도 괴이한 건물에 병산서원의 집합적
질서가 축약돼 있어. 앞서 말한 대로 만대루는 인공적인 서원건축과 자연사이의 매개체야. 외부경관에 대한 픽쳐 프레임 이지. 외부의
자연경관을 수평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 아니라, 경치를 수직적으로도 쪼개고 있어. 만대루의 마루면과 지붕 사이로는 낙동강의 흐름만
이 포착되고, 지붕 위로는 병산이 독립된 배경으로 나타나고, 마루밑 아래층으로는 대문간이 들어와. 정확한 계산에 의해 사람의 통행
과 강물의 흐름과 산의 우뚝함을 독자화시키고 있 는 거지.
열의를 가지고 설명하는 정우와 달리 후배들은 저희들끼리 소곤거리고 있다.
혜진 야 뭐해? (빨리 하라고 채근한다)
태우 저,저기 혀,형?
정우 어. 왜?
태우 질문..이 있는데...?
정우 해. 뭔데?
태우 형, 정말루 지혜누나랑 헤어졌어? 소문이 사실이야?
정우 (순간 어두워진다)
태우 우리두 알아야 그에 상응해서 지혜누날 대하지. 뭣도 모르구 계속 형수님 형수님, 했다가는..
정우 (다시 표정 찾으며) 통과! 다음 질문!
준기 결혼..한다던데? 형 알구 있어?
정우 통과! ‘다른’ 질문!
혜진 찼어요? 차였어요?
정우 (이 자식들이 정말!) 차였다. 됐냐 이 웬수들아? 질문종료! (무심코 고개 돌리다 움찔한다)
문 입구에 지혜가 망연히 서 있다. 정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슬프다.
정우 (지혜를 응시한다)
정우와 지혜의 그 슬픈 눈빛 위로 들려오는..
태우 (E) 아니 형이 왜 차여? 왜?
준기 (E) 현실과 타협한거지. 순수한 사랑 혼자 다 하는 것처럼 순진한 척 착한 척, 난 아직 세상을 몰라요, 하다 결혼할 때 되면 갑
자기 세상이치에 득도하는 게 여자들 아니냐?
지혜 (정우 바라보며 쓰게 억지 웃음 만들어 보인다)
정우 (지혜 바라보며 복잡하다)
혜진 (E, 흥분) 지혜언니 진짜 나쁘다! 어떻게 7년씩이나 사귄 오빨 차구 딴 남자랑 결 혼할 수가 있어? 지고지순한 척은 혼자 다 하
더니 완전히 속물 아냐? (하는데)
정우 윤혜진!
혜진 (혼자 연민에 차서) 네 오빠!
정우 너, 나 좋아한댔지. 나랑 결혼할래?
합창 형! (모두들 깜짝 놀라서 이게 무슨 소린가?)
지혜 (?)
정우 시골에 혼자 계신 아부지 결혼하면 서울로 모실 생각이야. 연로하셔서 자주 아프 셔. 당뇨에 합병증두 있어서 니가 신경 많이 써
야 할거야. 그리구 시집간 동생이 있는데 남편이 양아치야. 툭하면 사고 쳐서 합의금 마련해야 되구, 합의금 잠잠하 다 싶음 도박빚
카드빚 독촉이야. 난 아직 다음 학기 등록금이 걱정이구 지혜 (처연한 심정으로 듣고있는)
정우 너 알다시피 나 졸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구 유학은 꿈도 못꿔. 걱정하지마. 열심 히 노력해서 건축사 사무실에 취직은 할거니까.
알지? 건축사 사무실 초봉이 얼만 지는. 이게 나야. 어때 윤혜진, 나랑 결혼할래?
혜진 (대답 못하는) ... ...
정우 쉽게 욕하지 마. 함부로 비난하지 마라. 지혜.. 아무한테두 비난받을 짓 한 거, 없 다.
지혜 (눈물이 핑 돈다)
#19. 대학 캠퍼스
나란히 앉은 정우와 지혜, 각자 멀리 다른 데 시선 주며..
지혜 그렇게 나 변호 안해줘두 돼.
정우 변호한거 아냐.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지혜 (느낌) 담학기엔 꼭 복학해. 등록금 마련 못했음 내가,
정우 (O.L) 했어. 복학할 거야 . 걱정, 하지마.
지혜 (또 끄덕) 결혼..날짜, 잡혔어. 다른 사람 통해 듣게 하구 싶지 않아서...
정우 (고통스럽다)
지혜 (처음으로 쳐다본다) 왜 아무말이 없어?
정우 잘 살아. 진심이야.
지혜 그럼 잘 살아야지. 너 찌르구 나 후벼파면서 하는 결혼인데, 어떻게 함부로 살아? 나, 정말 열심히 잘 살거야.
정우 그래.
지혜 미안..해. 너랑 결혼해서두 지금처럼 너 사랑할 자신, 난 없어. 당뇨 있으신 느이 아버지 봉양할 자신두 없구, 니네 매형 도박빚
카드빚 대신 갚아줄 아량두 내겐 없 어. 틀림없이 너 미워하게 될 거야. 죽도록 사랑한 만큼 죽도록 미워하게 될거야.
정우 ... ...
지혜 너하군 그러기 싫어!
정우 ... 내가 시간이 없다.. 일어나자.
지혜 ... ...
정우 그럼 좀 더 있다가 가던가. 간다. (가다가 돌아서서)
나도 너하군 그러기 싫어. 나두 이제는 아무 여자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간다. 아프다, 혹독하게 아프다) ..
지혜 (정우의 그 뒷모습에 가슴이 저려온다)
지혜, 뛰어가 정우의 손을 끌고 막무가내로 어디론가 간다.
정우 (?)
지혜, 무작정 그러나 간절하게 정우를 잡아끌고 어디론가로..
#20. 대학 건물의 로비- 엘리베이터 앞
지혜, 정우를 이끌고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더니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정우 지혜야?
지혜 (엘리베이터 버튼만 성마르게 누른다)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지혜, 정우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21. 엘리베이터 안 - 밖
문이 닫히자마자 지혜, 달려들어 정우에게 키스를 한다.
정우 지혜야? 송지,
지혜, 더 절실하게 키스를 퍼붓고..
정우 (천천히 몸을 떼내고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저 깊은 한숨만) ... 사람들 타.
지혜 (버튼을 죄 누르고는) 잊지마! 난 니여자야! (그렁그렁한) 잊지말라구! 송지혠 박 정우 여자야!
정우 .....
지혜 (눈물 또르르) 나쁜 년 이기적인 년 속물같은 년, 욕해두 좋으니까 평생 욕해두 좋 으니까, 딴 여자 니 맘에 들이지마! 내 자리
에 다른 여자 앉히지마! 나외엔 어떤 여자두 나만큼은 사랑하지마! 어? 어?
정우. 지혜를 끌어당겨 안고 격하게 키스를 한다.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들어오려던 사람들 깜짝 놀라서 일제히 멈춰서 바라보는데..
두 사람 개의치 않고 서로에게 열중한다. 엘리베이터 문 닫히고..
5층, 6층, 7층..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며 문이 열렸다 닫혔다, 그때마다 놀란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우와 지혜, 절실한 마지막 키스로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22. 영심의 시댁 전경 (저녁)
#23. 시댁 주방
훈이 업고 훈이한테 노래 불러주면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대가족 저녁식사를 준
비하고 있는 영심.
갈비찜 간 보고 불 낮추고, 보글보글 끓고있는 옆 솥에 썰어놓은 양파며 파, 고추 등을 차례로 넣고, 나물 무치고, 양념해둔 황태 오
븐에 넣어 온도 조절하고, 몇가지 일을 동 시에 척척 진행하고 있다. 베테랑 주부의 모습. 더운 듯 땀 닦고 손부채질 해가며..
영심 (불현듯 생각나서) 맞다! 차! (거실쪽 일견하고 빠르게 차 상 보며) 치매야 치매! 돌아서면 까먹구 돌아서면 까먹구.
#24. 시부모 방
영심, 훈이 업고 찻상 들고 손이 모자라 발로 문을 열며 들어오는데,
벌떡 일어나 그 찻상 받아주는 지혜.
영심 아우, 됐어. 아직은 손님이잖아. 편하게 있어.
지혜 (미소, 앉는다)
영심, 찻상을 시어머니와 지혜 앞에 놓는다.
나여사 참 빨리두 갖구 온다. (뭐라 한마디 더 쏘려다 지혜를 봐서 참는다)
영심 (차 만들어 찻잔 각각 놓아주며) 도련님은?
지혜 차에 뭐 좀 가지러 갔어요. 훈이, 저 주세요 (아직 입에 안 붙어서) 형..님.
영심 형님? 이제 하네! 형님 소리 들으니까 기분 좋다 (또박또박) 동.서!
지혜 (미소) 훈이, 풀어서 주세요. 제가 볼게요.
영심 증말? 그래줄래? (반색하며 풀며) 안그래두 내가 허리가 아파서, (하는데)
나여사 다시 못 업니? 네 입으루 아직 손님이라며? 네 허리 편하자구 손님한테 이게 무슨 경우야?
지혜 전 괜찮아요 어머니. 형님 혼자 힘든데,
나여사 (O.L) 얘가 벌써 손을 타. 저이 외숙모말군 통 아무한테두 안가려구 들어. 저녁에 저이 엄마가 와서 안아두 울구불군데 뭐. 그
리구 너 힘 딸려 애 못 봐. 애 보는데 예사 힘이 드는 줄 아니? 힘들어 안돼. 편히 있어. 응?
지혜 네 어머니.
영심 (다시 업으며 열 받아서 포대기 끈을 팍팍 잡아 댕기고 있다)
그때 재환, 예단함과 커다란 쇼핑백 어깨에 넘치도록 끙끙대며 들고 들어와 놓는다.
나여사 뭐가 이렇게 많아?
재환 다 엄마꺼래. 장간 내가 가는데 짭짤한 건 엄마야?
나여사 (반색) 내꺼? (쇼핑백 몇 갠가 빠르게 확인하고는) 얘는, 간단히 하자구 했잖아?
지혜 네. 그래서 다른 분들 껀 돈으루 준비했어요. 어머니가 알아서 해주세요. 여기요. (예단함 밀어준다)
나여사 (받아서 열어본다)
함 안엔 여러 개의 돈봉투가 들어있다. (*식구들 각자 봉투와 친척들은 한 봉투에)
영심, 몸 내밀어 들여다보다 자기꺼 발견하고 집어들며..
영심 (흥분) 어머! 내꺼네! 동서 이거, 이거, 내꺼 내꺼 맞지?
지혜 네.
영심 우와 나한테두 주는 거야? 푸헤헤. 캬우 신난다! (신나고 궁금해서 봉투 열어보는)
나여사 (지혜 눈치 보며 당황) 얘가 얘가, (만류하려는데)
재환 (그냥 놔두라고 나여사 팔을 잡는)
나여사 (잔뜩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단 지켜보는데)
영심 (깜짝 놀라서) 헉! (다시 확인) 이,이 천,만원? 이,이게 다 뭐야?
지혜 (미소) 한복 하시구 평상복두 두어 벌 하시라구 저이엄마가.. 형님 맘에 드시는 걸 루 직접 하세요.
영심 (봉투 지혜 앞에 탁-소리나게 놓으며) 도루 갖구가! 난 이런 큰돈 받을 수 없어! 동서 미쳤어? 무슨 결혼 한번 하는데, 나한테
이천만원이면 대체 이 봉투 안에 있 는 돈이 전부 얼마란 소리야? (손가락으로 봉투 개수 짚으며) 사천, 육천, 팔천, 이,일억! 헉! 이
,일억 이,이천, (하는데)
나여사 (무섭게 호통) 도대체 이게 지금 무슨 천박한 짓이야 너? 당장 관두지 못해?
영심 (움찔)
나여사 너, 무뇌아야? 생각 안해? 생각 못해? 어디서 배워먹은 행사머리야 이게? 지혜가 돌아가서 사돈어른들께 뭐라구 하겠어? 저 보
는 앞에서 봉투 열구 액수 세구, 내가 내가 너땜에 아주 얼굴을 못들어! 어?
영심 동서 앞에서 열어보면 안 되는 거였어요? 전 그런 줄은 모르구...
나여사 그럼 도대체 니가 아는 건 뭐니? 가방끈 짧아 무식한 건 어쩔수,
재환 엄마?
나여사 (애써 누르며)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거야? 도대체 자식한테 뭘 가르쳤는 지 원! 허! 그 잘난 마늘농사 짓는 거? 멸치
말리는 거? 배운 게 적으면 교양이라 두 있든가, 교양이 부족하면 상식이라두 갖추든가, 이거는 어떻게 된 게...
지혜 ... ...
영심 (무참하다)
재환 (분위기 바꾸려고) 엄마 이거 이거 밍크코트! 여,여기 가방두! 이건 옷이네 어? 자 좀 봐봐. 화장품두 있네 여기.
나여사 (스윽 펴다보고 밍크코트 너무 마음에 든다) 뭘 이런 걸 다 사둔두! (지혜 향해) 너무 예쁘다 얘. 그림 하시는 분이 되나서 역
시 안목이, 어머 세상에 이 빽! 어쩜 느이 어머니 고상한 취향은 이렇게 나랑 딱 맞으신다니?
지혜 (미소지어 보이는데 영심이 신경 쓰이고)
영심 (눈물이 핑 돈다, 그러나 이 앙다물고 꾹 참는다)
#25. 고급 스포츠센터 수영장
수영복 차림의 지환과 가흔, 출발지점으로 나란히 걸어오며..
가흔 내기하자.
지환 또 내기야? 너 요즘 내기 너무 자주 한다?
가흔 인생이 너무 재미없어 그런다. 하자? 니 인생도 다를 바 없잖어. 걸어.
지환 저녁 사기.
가흔 시시하다. 쇼킹한거 걸어.
지환 가슴보여주기.
가흔 지금 내가 보고 있는게 니 가슴아니니?
지환 그럼 니가 걸어!
가흔 음.. 다 보여주기!
지환 (홱 쳐다본다) 에?
가흔 승부욕 팍팍 생기지?
지환 농담하지말고 빨리 정해.
가흔 싫어! 니가 먼저 말했잖아. 이걸루 그냥 밀구 나갈래! 너 정색하는 거 보니꺼 갑자 기 그거 걸구 싶어졌어!
지환 야아!
가흔 싫음 니가 이기면 되잖아? 야, 셋하면 스타트다! 하나! 두울 셋! (먼저 출발하고)
지환 야, (안간다)
#26. 시댁 주방
푸짐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진 저녁식탁.
민원장, 나여사, 지혜, 재환, 각각 앉아있다.
영심, 마지막 반찬 식탁에 올리고 앞치마에 손 닦으며 자리에 앉는다.
민원장 들자. (먹고)
식구들 먹기 시작한다.
수현 (들어오며) 언니, 우리 아들 좀. 어떻게 얘는 나만 안으면 울어.
영심 (아까의 일로 뚱 부어서) 기저귀 보세요.
수현 기저귀? 안 갈았어?
영심 또 쌌나부죠. 애들이야 돌아서면 금방이잖아요.
수현 언니가 좀 해. 나 지금 배 무지 고파. 쓰러질 것 같애.
영심 (하루 종일 봤는데 정말 너무한다!) 저두 배 고파요.
수현 (흘겨본다)
나여사 웬종일 밖에서 시달리구 온 애한테 식사 한끼 양보두 못하니?
지혜 제가 볼게요. 저한테 주세요.
수현 (영심 쏘아보며) 아냐 됐어. 엄마, 나 지금 밥 꼭 먹어야겠거든 훈이 엄마가 좀 받 아줘. (영심 쏘아보며 나여사에게로 가 훈이
를 안기는)
영심 주세요. (일어나 훈이를 받아나간다)
수현 (상대도 안되는 게! 앉아 밥 먹는다)
지혜 (너무한다 싶어 식구들 둘러보는데)
식구들 일상사인 듯 무심하게 각자 밥 먹고있다.
#27. 시댁 거실
영심, 부글부글 열 받은 채 훈이 똥 기저귀 갈고 있다.
주방에서 쏟아지는 식구들의 웃음소리.
서럽다! 하지만 영심, 예의 오영심다운 씩씩함으로 세차게 머리를 젓고 이를 앙다문다.
주방에서 다시 웃음소리 들려오고..
영심 (듣기 싫은, 주방 쏘아보며) 훈아, 숙모랑 노래부를까? 좋아? 알았어 오케이! 잘 들어봐. 음. 음. 아아. (음정 잡는) 아아아아아
(시작한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 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목청 높여 주방쪽 향해) 셋이면 셋이지 넷 아니 야~ 넷이면 넷
이지 다섯 아니야~ 라 라라라 랄라랄라라~ ♬
#28. 시댁 주방
식구들, 들려오는 영심의 괴성과 해괴망측한 노래에 일제히 대화와 동작 멈추고 각각 인상 찌푸린 채 듣고있다.
(E) 여섯이면 여섯이지 일곱이 될까~ 일곱이면 일곱이지 여덟이 될까~ ♬(계속)
민원장 저거 몇까지 세면 끝나는 거냐?
재환 열 아닐까요?
민원장 흠.. (열까지 참아보기로)
(E) 아홉이면 아홉이지 열 아니야~ 랄라랄라 라라라라라 랄라랄라라~ ♬
재환 끝난다 본데요. (하는데)
(E) 열하나면 열하나지 열둘이겠느냐~ 열둘이면 열둘이지 열셋이겠느냐~ 열셋이면 열셋 이지 열넷 아니야~ ♬
끝난 게 아니다! 식구들 각각 표정.
지혜, 거실쪽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참, 특이하고 재미있는 여자다!
#29. 시댁 거실
영심, 훈이 공중에 번쩍 안고서 눈을 마주보며 노래부르고 있다.
그새 신나서 흔들고 뛰고.
#30. 고급 바
지환과 가흔, 칵테일 마시고 있다.
가흔 기권도 진거야. 약속지켜.
지환 기권이 아니라 내기자체를 안 한거야.
가흔 피. 난 져 줄 생각이었는데.
지환 니 몸은 유치원 다닐 때 우리집에서 목욕할때 다 봤어. 너는 몰라도 나는 다 기억 해.
가흔 그랬니? (LP 한 장과 CD 한 장 건네며) 선물! 에릭 사티야. 짐노페디 좋아하잖아 너. 엘핀 없지?
지환 응. (들여다본다)
가흔 씨딘 마스카니의 ‘까벨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들으라구. ‘햇빛 쏟아지던 날 들’ 이란 영화 속에 흘러서 요즘 다시 들
었는데 새삼 더 좋더라.
지환 너랑 많이 들었지.... ... (바텐더 향해 CD건네며) 좀 틀어줘요.
가흔 기억..하네? 난 또 나랑 한 추억은 결혼과 동시에 다 잊었는줄 알았지.
지환 ... ...
가흔 난, 민지환이랑 함께 한 그때가 내 인생에 유일한 햇빛 쏟아지는 날들이었는데. 넌 어때?
지환 ....
가흔 넌 어떠냐니까?
지환 뭐가?
가흔 어어?
지환 (음악 나온다!) 들어보자.
가흔 (그 말에 미소지으며 음악 듣는다)
두 사람, 그렇게 함께 음악을 듣고 있고..
#31. 정원 (밤)
영심, 핸드폰 꾹 누르면 액정에 ‘우리 그이’ 뜬다. (*항상 오른쪽 귀에 댄다)
기다리며 머리를 빡빡 긁는 영심. 모기가 달려드는지 목을 철썩 때리고 머리 긁던 손가 락으로 침 묻혀 목에 바른다.
#32. 고급 바
지환 없고.. 울리는 지환의 핸드폰 액정을 가흔이 응시하고 있다. 액정엔 ‘영심’..
가흔,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핸드폰 받는다.
영심 (F) 왜 이렇게 전활 안 받아요? 어디예요? 병원이야?
가흔 ... ...
#33. 정원
영심 여보? 지원아빠?
가흔 (F) 안녕..하세요 영심씨? 이가흔이예요.
영심 (?) 네? ... 아 네에.. 안녕..하셨어요? 근데 우리 지원아빤..?
가흔 (F) 화장실이요. 지환이 지금 저랑 술 한잔 하구 있어요 영심씨.
영심 네에. 요즘 자주..만나시네요.
가흔 (F) 친구잖아요. 것두 아주 오래된 친구.
남자들, 때론 아내보단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이해하죠?
영심 (불쾌, 인상 확 쓰는) ... (잘근잘근 씹으며) 그럼요 이해하죠. 너무나 잘 이해하 죠. 집사람 기다리구 있으니까 친구랑 그만 좀
놀구 집으 루 돌아와달라구 말씀 좀 전해주실래요? 그럼 바빠서 이만. (확 끊고, 부아가 치밀) 남의 남편을 말끝마 다 지환이 지환이,
뭐어? 친구? 친구? 허!
지혜 (어느새 다가와서) 열 받으시는 일 있나봐요?
영심 어 동서! 열이야 웬종일 받지. 24시간 365일 받지. 허! 남자친구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동서, 남자친구 있어?
지혜 (흠칫) 네?
영심 첫사랑이든 그냥 친구든 아무튼 도련님 말고 만나는 남자, 없어?
지혜 갑자기 건 왜..?
영심 없음 결혼하기 전에 후딱 만들어! 나중에 억울해 하지 말구! 그거 진짜 억울하다?
지혜 억울하세요? 전 형님이 부러운데요. 첫사랑과 결혼하는 거, 굳이 첫사랑이 아니더 래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 쉽지 않은
축복 아닌가요?
영심 살아봐. 살아보니까 난 뭐 축복 쪽보단 억울 쪽이더라. 사는 게 힘들 때, 세상천지 에 내 편은 하나도 없구나 생각될 때, 아슴프
레하게 떠올릴 추억의 남자 있음 기운 나잖아. 추억 속에 있는 그 남잔 항상 내 편일테니까. 경태처럼!
지혜 경태요?
영심 있어! 만나지 못한 내 첫사랑! 푸헤헤.
지혜 ... ... (정우 생각하는, 애틋해진다)
#34. 산 (밤)
캄캄한 산길. 헤드라이트로 길을 만들며 정우, 산악자전거로 산 타고 있다. 땀이 비처 럼 흐르고 있다. 험한 산길을 힘들게 페달을 밟
으며 고행하듯 산을 타는 정우.
정우, 숨이 턱에까지 차서 호흡하기조차 힘들고 온몸이 천근만근 녹초가 된 상태인데도 꾸역꾸역 안간힘으로 페달을 밟고 있다. 정우,
순간 중심을 잃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아래로 구른다. 위험하게 구르는 정우와 정우의 자전거. 정우, 어딘가에 처박힌다.
헐떡거리는 정우.
지혜 (E) 결혼..날짜, 잡혔어. 잊지마 송지혠 박정우 여자야...
정우, 고개를 흔들며 다시 페달에 집중한다.
#35. 지환 서재
잠옷차림의 지환, 가흔에게서 받은 LP와 CD 들여다보고 있다.
지환, LP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푹신한 의자에 가 기대어 앉는다.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잔잔하게 흐르고.. 지환,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는데..
잠옷차림의 영심, 벌컥 들어온다.
지환 (눈뜨고) 노크 좀 해.
영심 부부 사이에 웬 노크? 안자요?
지환 먼저 자.
영심 내가 무슨 과분가, 맨날 먼저 자래. 애들하군 통화했어요?
지환 어.
영심 영어캠프 괜히 보냈나봐요. 꼴랑 이틀밖에 안됐는데 넘 보구싶구 걱정되구. 쪄죽진 않을까 여보? 말라리병 걸려오면 어떡하지?
지환 호준 지금 겨울이야. 겨울옷 챙겨보냈잖아. 그리구 말라리병이 아니라 말라리아야.
영심 (끄덕끄덕) 일두 안하구 책두 안보구 아무것두 안하면서 혼자 뭐해 당신?
지환 음악 들어. 먼저 자.
영심 (슬금슬금 다가가 옆에 앉으며) 그럼 같이 들어요 음악.
지환 (좀 짜증이 일고, 애써 참으며 눈을 감는다)
영심 (남편 따라 눈을 감는다) 야 좋네 음악! 나두 이런 음악 좋아해 여보. 앞으론 심심 하게 혼자 듣지말구 나랑 같이 들어요. 응? (
눈뜨고 기다린다)
지환 (눈감은 채) ... ...
영심 (다시 눈감고는) 있잖아 지원아빠, 내 친구 중에, (급조하는) 어! 수진이라구 수진 이라구 있거든, 근데 걔 남편이 첫사랑이랑
바람이 나서, 내친구가, 그러니까 수진 이가, 걔네가 같이 있는 불륜의 현장을 덮쳐서 (갑자기 감정이 개입되어) 그 두 년 놈을 확 그
냥, 간통죄루 집어넣었대!
지환 ... ...
영심 역시 간통죄는 무서운 거야 응?
지환 (눈감은 채) 걱정, 안해두 돼. 당신이 걱정하는 일, 절대루 없을 거야.
영심 (벌떡 일어나며) 내가 무슨 걱정을 했다구 그래 당신은? 내 친구 얘기라니까 여보? 내 친구 수정이!
지환 대신 당신두 가흔이랑 나 사이, 순수하게 봐줘. 가흔인 내게 소울메이트 같은 존재 야.
영심 뭔 매트? 솔 뭐?
#36. 2층 거실
영심, 소파에 꾸부리고 앉아있다.
영심 솔레미트? 홈매트두 아니구 글쎄 그게 도대체 뭐냐구? 아 몰라 몰라 몰라! 솔인 지 울인지 두구 보면 알겠지 뭐. (서재 바라보며
) 근데 언제 잘 건가? (긴 한숨)
영심, 리모콘 눌러 케이블방송 켠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다.
#37. 지환 서재
음악 감상중인 지환, 거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영화소리와 영심의 웃음소리에 좀 예 민해진다.
#38. 2층 거실
영심, 푸하하 영화 때문에 숨넘어갈 정도로 웃어대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소나기 패러디 장면이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던 영심, 문득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며 킬킬거린다.
#39. 영심의 공상 (‘엽기적인 그녀’ 의 장면)
병에 걸려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영심.
이어 견우의 시골집. 지환이 방구석에 이불을 덥고 누워 훌쩍이고 있다.
김인문과 송옥숙으로 분한 민원장과 나여사가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다.
민원장 글쎄 말이지. 이번엔 꽤 여러날 앓는걸 약두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는 오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나여사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를 업어줬던
그 소년을 같이 묻어달라구... 그것 두 산채루...
훌쩍이던 지환, 눈이 휘 동그래진다.
장면 바뀌어 무덤가.. 잠이 든 영심의 관이 닫혀지고, 무덤 자리에 안치된다. 이어 사 람들에게 잡혀와 무덤 속으로 던져지는 지환.
지환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부리자 사 람들이 삽으로 머리를 쳐서 무덤 속에 처넣고 묻어버린다. 아니면 관에서 벌떡 일어난 영심이
지환을 삽으로 내리쳐 물귀신처럼 함께 끌고 가든지.
#40. 2층 거실
어느새 잠들어 있는 영심, 자면서도 재밌다고 킬킬거린다.
지환, 서재에서 나오다가 TV 켜놓은 채 잠들어있는 영심 발견한다.
지환, TV 끄고 영심을 번쩍 안아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41. 부부 방
지환에게 안겨 들어오는 영심. 그새 잠이 깬 영심은 남편에게 안겨있는 사실에 몹시 기 분이 좋다. 자는 체 하는 영심!
지환, 영심을 침대에 잘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일어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지환의 팔을 턱하니 잡아끌고 지환의 목을 끌어안는 잠든(?) 영심!
지환, 어이가 없어 잠시 잠든 체 하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그냥 아무말 없이 휑하니 나간다.
영심 (어?) ... ... (차갑게 닫히는 방문 쳐다보며 섭섭해진다!)
#42. 산 정상 (밤)
서울의 야경이 보이는 어느산
능선을 타고 오르는 정우 마침내 정상에 도착 바로 쓰러진다. 격하게 숨을 고르는 정우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목걸이를 꺼낸다.
#42-1. 플래시 백 (엘리베이터 안)
키스가 끝나고 지혜 정우에게 목걸이로 된 반지를 걸어주고 자기가 끼고 있는 반지를 보여주며
지혜 손가락에는 끼지마 난...(가슴에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여기가 내자리야..
정우 .......
#42-2. 다시 산 정상 (밤)
정우 갑자기 목걸이를 던진다. 하지만 아직도 정우의 손에 들려져 있는 목걸이.
어느 순간 정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꾹꾹 참아왔던 그동안의 고통을 혼 자 그렇게 외롭게 토해내는 정우.
메아리쳐 되돌아오는 정우의 비명소리가 한없이 슬프다. (F.O)
#43. 호텔 연회장 (예식홀)
결혼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는 아름다운 신부 지혜.
신랑 재환, 싱글벙글 상기된 표정으로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을 가득 메운 하객들, 박수치고 환호하며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있다.
그 속에 가장 열심히 손뼉치고 있는 사람, 한복차림의 영심이다!
재환, 장인으로부터 지혜를 인계 받는데, 당황한 나머지 재환이 지혜의 팔짱을 껴 폭소 가 터진다.
영심, 재밌다고 지환의 팔을 치며 웃는다. 지환은 별 표정이 없다.
. 재환의 팔짱을 끼는 지혜. 신랑신부 팔짱을 낀 채 단 위로 올라간다.
지혜, 연신 은은한 미소지으며 수줍은 신부의 역할 잘 치러내고 있다.
#44. 운전면허학원 정우 몽따쥬
정우, 시험코스 따라 돌며 강습중이다. 수강생에게 설명하고 주문하고..
그러나 정우, 자주 딴 생각에 빠지는 듯 하고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시험코스를 한바퀴 돈 연수용 차, ‘불합격입니다!’ 불합격 판정 받는다.
수강생 속상해서 난린데, 정우는 다른 생각에 골똘하다.
어느 순간 정우, 갑자기 차에 오르고 정신없이 달려나간다.
미친놈처럼 면허학원 연습장을 마구 질주하며 차를 몰고 나가는 정우.
#45. 호텔 예식홀
대형스크린 통해 보여지고 있는 신랑신부의 영상사진.
태아 때 사진부터 백일 돌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의 사진이 내레이션과 함께 흐른다.
하객들 각 사진에 따라 다양한 반응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지혜 언젠가 재환씨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제대한 뒤에야 결혼을 생각해 봤다구요.
저는 다섯 살때 엄마가 흰원피스를 사주신 때부터 결혼을 준비해 왔어요. 그 원피스를 입고 머플러를 면사포처럼 쓰고 아빠 손을 잡고
서 신부입장을 연습한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왕자님을 그리며 차곡차곡 신부수업을 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은 친구들과 전쟁
놀이만 했대요. 아버님 어머님 이사람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감사드려요.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오늘부터 저
다른집 식구가 되요. 결혼 안 하고 두분과 살겠다고 한 어릴 적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네요.
엄마! 내가 딸을 낳으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키울 수 있을까? 어제밤 제 앨범을 보면서 저 많이 슬폈어요. 제 기억속에는 엄마아빠
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는데 사진속의 두 분은 점점 늙어가시더군요. 저는 저만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예뻤어요.
아빠! 엄마를 늙게해드려 죄송해요. 말썽만 부리고 엄마 속을 태우게 하면서 제가 엄마의 젊음을 훔친 거예요. 제가 떠나면 두분 속태
우실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 엄마아빠 더 늙지 마세요. 못난 딸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가 돼야 두분이 주신 사랑 다시
돌려드릴 수 있을까요?
지금 제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네요. 이 반지의 의미를 저는 잘 압니다. 영원히 한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겠지요.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열심히 사진영상 보던 영심,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사진속 지혜 엄마 의 모습에 쭈글쭈글한 제 엄마의 고생하는 모습
이 겹쳐지면서 영심, 흐느껴 운다.
지환 (놀라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영심 (입 틀어막은 채 도리질) 흑흑흑. (입 막은 채 슬픈 표정으로 다시 사진을 본다)
지환 (?, 사진과 영심 차례로 보며 상황파악 되어 한심해진다)
지혜의 편지 내레이션 절정으로 향한다.
영심 (마침내 오열한다) 엉엉.. 엉엉..
지환 (당황, 당혹) 이봐? 이봐 지원엄마?
휘 동그래진 식구들과 주변 하객들 일제히 쳐다본다.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고 있던 신부엄마, 깜짝 놀라서 영심을 쳐다보는데...
신부엄마와 눈이 마주친 영심, 불난 집에 기름을 얹은 듯 더 격하게 울기 시작한다.
지환 당신 증말 왜 이래? 사람들 보잖아? 손님들 걱정하잖아? 가라앉히구 진정 좀 해.
영심, 끄덕이며 애써 진정시키고 다소 안정을 찾아서 겨우 고개를 드는데, 일제히 걱정 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식구들과
수많은 하객들.
영심 (헉! 난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 ...
그 모든 시선, 특히 시어머니의 표독한 시선, 견디기 힘든 영심, 갑자기 70년대 영화속 여배우들 같은 오버액션으로 흑흑흑,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 훔치며 박차고 일어나 몸을 휙 꺾어 울면서 뛰쳐나간다.
지환 (난감해서 눈으로 좇는데)
영심, 여배우처럼 뛰어나가다 제 한복자락을 밟고 철퍼덕 넘어진다.
하객들 신음처럼 한마디씩.
지환 (일어나 가려는데)
민수현 (팔을 잡아당겨 앉히고, 창피해서 부글부글 끓으며 영심을 노려본다)
영심, 무지 쪽팔리고 무지 아프다! 아후 씨이-
영심, 슬금슬금 눈치 보며 일어나 이번엔 장금이처럼 한복치마 들고 뛰어나간다.
#46. 호텔 화장실
변기에 앉은 영심, 한복 치맛자락 볼썽사납게 올린 채 까진 무릎의 상처 들여다보며 핸 드폰 통화하고 있다. 마스카라가 번져 시꺼먼
눈은 호러 분장을 한 것 같다.
영심 왜 전화했긴? 그냥.. 엄마 목소리 들으려구 전화했지.
끝순 (F) 목소리 들었으문 고마 전화 끊어라. 전화비 올라간다. 내 먼저 들어 간데이. (끊으려는데)
영심 끊지마! 끊지마 엄마!
끝순 (F)... 니 시방 무슨 일 있나?
영심 아니. 무슨 일은 뭐.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자리서 뱅뱅 도는 오영심 인생, 제발 무슨 일 좀 생겨봤음 좋겠다. 걱정하지마.
아무일 없어.
끝순 (F) 근데 니 목소리가 와 그렇노?
영심 엄마!
끝순 (F) 와?
영심 엄마..!
끝순 (F) 그래 와?
영심 엄마..!
끝순 (F, 버럭) 가스나 이기 미쳤나? 늙은 에미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이고, 지랄 떨 지말고 할 일 없으문 자빠져 잠이나 자라 이
문디 가스나야!
영심 미안해 엄마!
끝순 (F) ...뭐시?
영심 엄만, 딸내미 결혼식두 못 봤잖어. 식장까지 와서 쫓겨나가구...
끝순 (F) 옛날 일은 와 또, 사진 봤다 아이가. 그라문 됐지 뭐.
영심 미안해! 증말 미안해 엄마!
끝순 (F) 야가 오늘 따라 뭐시 이래 미안하노?
영심 엄마 혼자 버려둬서.. 엄마 혼자 그렇게 버려두구 한번두 안 찾아가구, 엄마 서울 와두 번번이 여관잠 재우구, 내 손으루 따뜻한
밥 한끼 못 해주구.. 생일상 한번 못차려주구.. 엄만 늙어가는데 자꾸만 늙어가는데... (또 눈물보따리가 터졌다!)
#47. 호텔 예식홀 앞
정우, 예식홀 문앞에 서서 신랑신부의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영상사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사진 속 지혜는 재환과 다정한 포즈로 환
하게 웃고 있다!
정우, 웨딩드레스 차림의 지혜에게로 시선을 옮겨가면..
사진 보면서 신랑의 귀에 대고 연신 속삭이며 환하게 웃고있는 아름다운 오늘의 신부 지혜!
지혜에게 못 박힌 채 망부석처럼 망연히 서 있는 처연한 정우!
#48. 호텔 화장실 앞 - 호텔 예식홀 앞
영심, 아직도 훌쩍이면서 화장실에서 나오고 예식홀로 걸어간다. 시커먼 마스카라 눈물 이 자꾸만 주르르 흐르고.. 영심, 손등으로 눈
물 훔치며 홀 향해 가는데...
홀 안에서 막 홱 돌아 나오는 한 남자와 맞부딪치는 영심!
영심, 순간적으로 놀라 홱 쳐다보는데, 남자도 자신처럼 울고 있다!
울고있는 남자, 정우다!
정우의 시선에, 시커먼 눈물 흘리고 있는 영심!
정우 (!) ... ...
영심 (!!)... ...
정우가 먼저 외면하고 영심을 지나쳐간다.
영심, 고개를 돌려 정우를 끝까지 쳐다본다. 두사람의 첫만남 그렇게.. (F.O)
#49. 국선도장
도복차림의 국선도 수련생들 명상음악에 맞춰 수련중이다.
도를 닦듯 온 마음을 다해 정진하며 ‘입단행공’을 하고 있는 진지한 수련생들.
입단행공의 여러 동작과 자세들 잠시 보여진다.
이들의 수련을 이끌고 있는 사범, 명숙이다! 한데 그녀가 좀 이상하다. 학이 날듯 도인 처럼 행공 동작 펼치고 있는 그녀.
명숙 (동작하며) 맘을 비우세요! 욕심을 버리세요! 그리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자 천천히 호흡하세요! 우주에 내 몸을 맡기고
몸을 씻으세요! 마음을 씻으세요! 험한 입도 씻고 나쁜 생각도 씻으세요!
그때 그 엄숙함을 깨고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린다.
명숙 (핸드폰 가방에서 꺼내며) 미안합니다 중요한 전화가 있어서 폰을 켜놨습니다. 수 련, 계속들 하세요!
명숙, ‘여보세요? 사범 박명숙입니다!’ 엄숙하게 전화받고, 수련생들 계속 수련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명숙 상놈의 새끼 너 지금 어디야? (사이) 어디? 어디 이 새끼야? 너 이 새끼 오늘 아주 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끝장을 내자? 어? (
확 끊고)
#50. 경찰서
정우, 허겁지겁 들어와 찾는데, 익숙한 목소리 들려온다.
명숙 (E, 울부짖는) 야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사니? 어? 왜 이렇게 살아?
명숙, 잡혀와 조서 작성중인 수창을 마구 때리며 울부짖고 있다.
옆엔 교복차림의 불량한 고삐리 2명이 수창에게 흠씬 두들겨맞아 엉망이 된 몸과 얼굴 로 나란히 앉아있고, 또 그 옆엔 아이들의 보호
자가 씩씩거리며 서 있다.
정우,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명숙 왜 때렸어? 얘들 왜 때렸어? 왜? 너 또 술 처먹었니? (냄새를 맡는)
수창 술 안 먹었어.
명숙 근데 왜 때려? 술두 안 처먹었는데 왜 때려?
수창 아니 저 싸가지 없는 새끼들이 교복 처입구 담배를 피잖아? 나도 못피는 2천O백원 짜리 담배를! 내가 저 새끼들이 담배만 쓰레기
통에 버렸어두 참으려구 했지. 근데 저 새끼들이 기냥 길거리에다 냅다 버리잖아 담배꽁초를! 그래서 내가 좋은 말루 주워서 쓰레기통
에 버리라구 했지. 그랬더니 저 새끼들이 눈깔을 치켜뜨면서,
명숙 (기가 막힌다) 뭐야 그러니까 지금 담배꽁초 쓰레기통에 안버렸다구 얘들을 저 지 경으루 줘팼단 말야? 이 새끼야 니가 주우면
되잖아? 넌 그놈의 그 주먹 땜에 망할 거야! 내 눈탱이 이 꼴루 만든지 얼마나 됐다구, 세상 분풀일 왜 주먹으루 해 이 등신아아?
경찰 아줌만 왜 맞았는데요?
명숙 잘 밤에 도복 처입고 수련한다구, 제가 국선도 사범이거든요.
경찰 예에. 합의하실 거죠?
보호자 글쎄 그 이하룬 절대루 못해요! 알아서 하쇼!
경찰 (명숙을 쳐다본다)
명숙,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탁-하고 올려놓는다. 돈이 아니라 이혼신청서다.
경찰 (어! 수창을 본다)
수창 (이혼신청서 일견하고 경찰 보며) 냅둬요! 얘 취미생활이예요! 샐러리맨들 왜 때려 치지두 못할 거면서 안주머니에 사표 넣구다
니잖아요. 그거랑 똑 같은 거예요. 가 방안에 수두둑 해요! 좀만 기다려요! 우리 형님, 돈갖구 올거니까!
명숙 (펄쩍 뛰며) 너 오빠한테두 전화했어?
수창 그럼 너 돈 있냐?
명숙 허1
정우, 그 모습 그냥 지켜보고 있다. 동생도 매제도 절망스럽다.
#51. 시댁 정원
영심과 지혜, 이불빨래 양쪽으로 잡고 탈탈 털어서 널고 있다.
지혜 가세요! 아주버님이 어머님한테 잘 말씀드려 주신다잖아요? 건호 지원이두 호주 가 구 없구 좋은 기회잖아요. 한번두 못가셨다면
서요?
영심 가군싶은데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네. 어머님이 허락해 주실까?
지혜 아주버님이 결혼 10주년 선물루 휴가 주시는 거라면서요. 아주버님 선물인데 그것 까지 어머니가 뭐라 그러시겠어요? 저두 옆에
서 거들게요.
영심 증말? 증말 동서?
지혜 네 형님.
영심 고마워 동서! (좋아서 어쩔줄 모르다 문득) 안되겠다. 그럼 훈인 어떡해?
지혜 훈이..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제가..보죠..뭐. 휴가..잖아요.
영심 (감동) 허! (지혜의 손을 덥썩 잡으며)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지혜 (순순한 마음만은 아니라서) 아뇨 저야 뭐...
영심 나, 너무 좋다 동서? 이 집에 내편이 하나 생긴 거 같아서!
지혜 네에..
#52. 경찰서 마당
정우와 명숙, 걸어나온다.
정우 정말 괜찮겠어?
명숙 놔둬 오빠! 안 괜찮으면 지가 어쩔 건데? 오빤 신경 쓰지마!
정우 니 신랑말구 너 말야! 정말 괜찮겠어?
명숙 괜찮구 말구. 저딴 인간쓰레기 없는 게 백배 나! 유치장 집어넣구 나니까 이 속이 다 후련하네 뭐! 진짜야?
정우 합의 못하면 구속인데 합의금은 있어?
명숙 내가 돈이 어딨어? 돈 삼백이 누구 집 개 이름이야? 먹구 죽으려구 해두 내 수중엔 돈 백두 없다! 냅둬 오빠! 가만히 나둬! 나,
이번엔 저 인간 진짜 시껍 시킬거야! 나 말리지마 오빠? 이번엔 오빠두 나 말리지마? 엉?
정우 알아서 해.
명숙 어?
정우 너 알아서 하라구.
명숙 (어? 이게 아닌데?) 어어. (다른 날과 다른 오빠 이상해서 살피는데)
그때 명숙의 핸드폰이 울린다.
명숙 네 여보세요? (사이) 어머 안녕하세요 아저씨? 잘 계시죠? 웬일이세요 저한테 전활 다 주시구? (사이, 조금 놀라고) 네? 아부지
가 또요?
정우 (쳐다본다)
명숙 네. (사이) 네. 그럼 내려갈 때까지 아저씨가 저희아부지 좀...(사이) 네. (끊고)
정우 아부지가 왜?
명숙 또 쓰러지셨대. 요즘 부쩍 더 자주 이러시네. 이게 벌써 몇번째야?
정우 ... ... (근심 어린 표정)
#53. 시댁 전경 (밤)
#54. 영심 부부방
영심,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짐을 싸고 있다.
엄마에게 줄 보약, 옷, 속옷. 화장품, 비타민제, 영양제, 염색약, 편한 운동화, 구두, 기타 등등... (*엄마를 생각하는 영심의 마음이
느껴지게)
평상복 차림의 지환, 들어온다.
영심 (마음 졸이며) 어떻게 됐어요? 허락, 하셨어요?
지환 (무표정으로 끄덕)
영심 (지환의 목을 감고 안으며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고마워 여보! 진짜 진짜 고마워 여보! 푸헤헤. 어머니한테 댑다 야단이야 맞았
지만 도련님 결혼식장에서 운 거 나 참 잘한 것 같애! 그것 때문이지? 당신, 나 남해 보내주려구 맘먹은 거?
지환 ... ...
영심 (안은 채) 결혼하구 첨 떨어져 있는 건데 당신 불편하지 않겠어? 속옷이며 셔츠며,
지환 (O.L) 괜찮아.
영심 저기.. 나 없는 동안 당신, 만날..거야?
지환 누구?
영심 당신 솔매트. 만일 나 없는 동안 당신, 아니다! 나두 없는데 만나지말라구 한다구, 그래! 만나든지 말든지! 나두 멋진 남자 만나
면 되지 뭐! 당신두 없는데! 혹시 알 아? 낼 버스 탔는데 장동건 같이 잘 생긴 남자가 내 옆자리에 타게 될지!
지환 (몸을 떼내고) 편히 갔다와. (나가며) 먼저 자. 난 늦을 거야.
영심 여, (뭐야?) ... (섭섭하다! 그리고 좁혀지지 않는 남편과의 거리감, 외로워진다!) (F.O)
#55. 정우 옥탑 (아침)
#56. 정우 옥탑방
정우, 여행가방에 간단히 짐 챙겨 넣고있다.
기태, 승용차 키 던져준다.
기태 부드럽게 다뤄줘.
정우 어!
기태 많이 안 좋으시다냐?
정우 가봐야 알지 뭐. (무거운 표정으로 여행가방의 지퍼 채운다)
#57. 시댁 대문 앞
여행가방과 쇼핑백 바리바리 든 영심, 신나서 안에서 나오고, 나오자마자 대문에 대고 인사한다.
영심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아.
무거운 짐 들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58. 고속버스 터미널 승강장, 버스 안
영심, 남해행 버스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찾았다!
마구 설레는 영심. 버스에 오르고.
영심, 어깨며 양손에 짐꾸러미 들고 좁은 통로를 이리 치고 저리 치며 좌석을 찾는다.
OO번. 선반에 짐 올리고 잔뜩 들뜬 기분으로 자리에 앉으려던 영심, 갑자기 화들짝 놀 란다.
영심 허! 거기서 뭐해요?
어떤 여자(소영 호스테스) 하나가 죽어라 머리를 처박고 몸을 숨기고 있다.
소영 (쉬- 조용히 하라는 절박한 제스추어)
영심 (끄덕끄덕)
소영 (앉으라는 제스추어)
영심 (앉고, 소근) 왜 그러는데요?
소영 (소근) 깡패들한테 쫓기구 있어요. 밖에 검은 양복 입은 놈들 있나 봐줄래요?
영심 (창밖을 살피다) 예 있어요! 셋이나 되는데요? 한명씩 나눠서 버스로 올라가는데 요? 이차루두 오는데요!
소영 후우 죽었다 이젠! (부들부들 떨고)
영심 (걱정스런)
영심, 잽싸게 가방들 내려서 여자를 가리고, 팩우유 꺼내 우유를 벌컥 마신다.
깡패, 버스에 올라 빠르게 둘러보며 여자를 찾고 있다. 거의 영심의 자리까지 왔다.
영심, 갑자기 입을 막은 채 뛰쳐나가며 오버액션으로 토하는 시늉하며 깡패의 옷에다 넘기지 않고 입안에 뒀던 우유를 왜액 쏟아낸다.
깡패 으이 씨 뭐야 이거?
영심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 (토하는 시늉 오버액션으로) 왜액 왜액.
깡패 (어! 또 온다! 뒤로 물러난다)
영심 (깡패 향해 다가가며) 왜액 왜액. (빨리 먼저 좀 나가라는 손사래하며) 왜액 왜액.
깡패, 하는 수 없이 옷 닦으며 휙 한번 훑어보고는 돌아나간다.
영심, 왝 왝거리며 깡패를 버스 밖으로 쫓아내고는 혀를 쏘옥 내민다.
#59. 고속도로
시원하게 달리는 고속버스.
버스 안.. (*호스테스 요란한 염색머리에 마를린 몬로 점 있다!)
소영 (껌 질겅질겅 씹으며 답답한 듯 가발 홱 벗는다) 증말 고맙다 언니! 나 오늘 언니 덕분에 십년감수했어! 그 순간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후 머리 좋아 언니?
영심 (으쓱하다가 가발 신기해서 가져다 만져본다!)
소영 (핸드백 뒤지며) 아이 뭐 좀 줄 게 없나? 안돼겠다. 이거라두 받아. 딱 한번 썼어. (자기입술 가리키며) 아까 터미널상가에서 샀
거든. (립스틱 건넨다)
영심 (받고 뚜껑 열면 새빨간 색이다!) 고마워요. 근데 깡패들한텐 왜..?
소영 (열린 빽에서 명함 꺼내 건넨다)
영심 (받고 보면 ‘OO룸싸롱 O번 아가씨 고소영’)
소영 (껌 질겅질겅 씹으며) 빚이 좀 있는데 치사한 새끼들이 나 이제 늙어 손님 떨어졌 디구 섬으루 팔려구 하잖아. 한번 섬으루 잡혀
가면 평생 나오지두 못해. 거기서 인 생 막살하는 거지.
영심 (호기심으로 여자를 훑어본다, 염색머리, 점, 새빨간 입술, 질겅질겅)
소영 (풍선껌 불며) 폰번혼 그대루니까 도착하면 전화 한번 해. 내가 근사하게 한번 쏠 게. (껌 손으로 쭉 늘어뜨려 말아서 다시 입안
으로 넣고 질겅질겅, 다시 풍선 불 며) 근데 남핸 왜?
영심 친정에..
소영 어어 친정? 좋겠다! 친정두 있구! 결혼두 하구! 남편두 있구!
영심 (글세 좋은가?) ... ... (창 밖을 본다)
그때, 영심 옆으로 정우가 지나간다.
영심의 고속버스와 정우의 승용차가 잠시 나란히 달려간다.
정우의 승용차, 어느 순간 고속버스를 앞질러 달려간다.
#60. 고속도로, 정우의 승용차 안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정우의 표정이 침울하다.
차에서 냄새가 난다. 여기저기 살핀후 창을 여는 정우.
#61. 고속도로 휴게소 진입로, 버스 안
영심 (휴게소 발견하고 흥분) 허 휴게소야! 휴게소 소영씨! 우리 휴게소 휴게소 들어가 나봐!
소영 (?) 언니 똥 참고 있었어? 휴게소 들어가는 게 뭐..?
영심 나 첨이거든 고속도로 휴게소!
소영 에에? 그럼 고속버스두 처음?
영심 (끄덕끄덕) 고등학교 졸업하구 바루 시집을 가서..
버스 주차되고.. 기사, 시간과 차량번호 잘 확인하라는 방송하는 가운데..
소영 그래두 여행은 다녔을 거 아냐?
영심 제주도에만 두 번. 제주돈 비행기 타구 가잖아. 근데 뭐 사먹을 거야? 난 호두과 자! 맞다! 오징어두 사먹어야지! 흐흐흐. 근데
여긴 무슨 오징어 팔어? 맥반석오 징어? 버터구이 오징어? 참, 휴게소에선 진빵두 판다면서? 맛있겠다!
소영 (쩝!)
영심 (벌써부터 일어서서 기다리는)
버스가 서고 영심 1착으로 내려 휴게실 쪽으로 가면 똑같은 모양의 버스가 옆에 주차한다.
#62. 고속도로 휴게소
카센터..
정우의 차, 본넷 열려있고 정우와 정비기사 대화중이다.(전문적인 대화들)
주차장..
버스에서 내린 영심, 휴게소를 신기한 듯 황홀한 듯 찬찬히 둘러본다.
영심, 휴게소건물 향해 덤비듯 달려나간다.
#63. 영심 몽따쥬
*화장실 안
-영심, 호텔화장실처럼 잘 꾸며놓은 화장실 감탄하며 액자도 구경하고 격언도 읽어보고 유아용 침대도 구경하고..
-세면대 앞, 호스테스 영심에게 가발을 씌워주고, 영심 재밌다고 푸하하.
*영심 가발 쓴 채, 휴게소 곳곳을 신나게 구경하고 코너마다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참 많 이도 산다.
#64. 휴게소 맥반석 오징어 가판대 앞
영심, 핑크빛 가발 쓴 채 오징어 굽혀지기 기다리고 있다. 비닐봉지엔 각 코너마다 산 음식들이 넘쳐난다.
정우 (E) 남해가 경기도 어디껜줄 아냐 벌써 도착하게...?
영심 (남해 ?) (돌아보는데)
정우, 스트레칭 하면서 몸을 풀며 핸드폰 통화하고 있다.
정우 야 니 차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핸들 밑에 있더라. 몰랐지. 학원차들이야 다 옆에 있잖아. 고치고 있어
영심 (근사하다! 정우 동작마다) 우와! (정우 근육 보고) 우와! (잘 생긴 정우 얼굴 보 고) 우와!
정우 알았어, (사이) 도착해서 전화할께!
정우, 걸어나간다.
영심, 조금 전에 정우가 했던 스트레칭을 해본다. 몸이 뻣뻣해서 안 된다!
영심 (뒷모습에 대고) 후우- 젊어 좋겠다 넌!
#65. 휴게소 주차장, 다른 버스 안
영심, 아이스 바 빨며 차번호 확인도 안하고 ‘부산행’ 차에 덜렁 올라탄다.
영심, 버스에 오르고 자리를 찾아가는데 손님들 거의 내리고 텅텅 비어있다.
영심, 시간 확인하고 갸웃하고는 자리에 앉아 열심히 아이스 바 먹는데...
방송 (E) O시 OO분에 출발예정이던 차량번호 OOOO 남해고속 고속버스에 아직까지 승차하 지 않으신 승객은 다른 승객들이 기다리고 계
시니 한시바삐 승차하여 주시기바랍니 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반복)
영심, 전혀 자신인 줄 모르고, 한아름 사들인 비닐봉지 안의 먹거리들 그저 흐뭇해서 하나하나 확인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66. 휴게소 주차장, 원래 버스 안
20분 이상을 기다린 승객들 기사 향해 원성이 자자하고, 기사는 짜증나 죽을 지경이다.
소영 (밖에서 기다리며) 아후 이 언닌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어?
기사 (소영 향해) 안 타실거에요? 갑니다.
소영 (쩝! 타며) 아후 진짜!
#67. 휴게소 주차장, 다른 버스 안
승객들, 하나둘 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좌석들 다 찬다. 버스기사마저 타고 출발준비하는데
영심 잠깐 만요 아직 사람 안탔거든요. 아후,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출발할 때 다 됐 는데!
그때, 20대 커플 급히 버스에 올라 영심의 좌석 앞에 와서는...
남자 어 여긴 우리 자린데?
영심 (깜짝 놀라)네? (좌석 번호보고)아닌데 여긴 내 자린데.
잘못타신 거 아니에요? 이거 남해가는 거거든요!
그소리에 앞에 앉아있던 남자 벌떡일어나며
남자 남해라꼬요? 부사이아이고?
여자 부산 맞아요 이 아주머니가 잘못 안거에요
영심 예? (불현듯 옆자리 보며 아직 돌아오지 않은 호스테스에 생각이 미치고)
영심, 벌떡 일어나 주변의 사람들 확인하고, 선반 위를 확인한다. 기사를 향해
영심 이거 남해가는 버스 아닌가요?
기사 (두리번 보다) 어..... 쪼기 가는게 남해 버스네.
영심보면 멀리 버스가 휴게소를 벗어나고 있다. 영심, 허겁지겁 내려 버스를 향해 뛰어가지만 버스는 이미 고속도로로 접어돌었다.
영심 스톱. 스톱.
버스 이미 가고 없다.
넓은 주차장에 휑하니 버려진 영심, 혼자 난감해서 어쩔줄 몰라한다.
시간경과..
영심, 널판 종이에 “남해 만원 버스 놓쳤음” 들고 지나가는 차마다 다가가 굽신거린다. 억지웃음지으며
번번이 거절당하고 기운이 쑥 빠져 늘어져 있는 영심, 봉지에서 오징어 꺼내 다리를 툭 뜯어 질겅질겅 씹어먹는데.. 카센터 앞에 정우
다!
영심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어! 남해!
영심, 후다닥 카센터로 뛰어가다가 순간 끽 멈춰선다.
영심 싫다 그럼 어떡해? 내가 아무리 사정사정 해두 저쪽에서 싫다 그럼 그걸루 끝 아 냐? 어떡하지? 아후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영심, 사냥물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긴장한 눈으로 연신 정우의 동태 살피며 오징어 다 리 질겅질겅 씹으며 궁리한다!
#68. 휴게소 주차장, 카센터
정우, 돈을 지불하고 차에 오른다.
시동 켜고, 정우의 차 출발한다.
#69. 휴게소 출구, 정우의 차안
정우, 다른 쪽에서 나오는 차 없나 확인하고 속도를 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뛰어들어 끽 급정거한다.
깜짝 놀란 정우, 눈이 휘 동그래져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확인하는데...
웬 여자가 자신의 차를 막고 서 있다. 핑크색 요란한 염색머리에, 새빨간 립스틱, 얼굴 엔 마를린 몬로 점까지 만든 영심이 몹시 숨차
고 다급한 표정으로 서 있다.
정우 (?) ...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영심, 조수석 문을 열고 허겁지겁 올라타서는 죽어라 머리를 숙인 채 몸을 숨긴다.
정우 이봐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영심 (호스테스가 했던 그대로 쉬- 조용히 하라는 절박한 제스추어)
정우 (?) 아니 이것 봐요?
영심 (펄쩍 뛰며 쉬- 조용하라고 또 한번)
정우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소근거리며) 무슨 일입니까? 네?
영심 (소근) 깡패들한테 쫓기구 있어요. 밖에 검은 양복 입은 놈들 있나 봐줄래요?
정우 (둘러보지만 없다! 소근) 안 보이는데요?
영심 (소근) 있어요. 잘 찾아보세요? 셋이나 되는데?
정우 (아무리 둘러보지만 없다! 소근) 정말 없어요! 한명도 안 보이는데요?
영심 그럼 이놈들이 떼루 화장실 갔나? (눈치보며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저기요? (두 손 모아 싹싹 빌며) 이렇게 이렇게 부탁하는데
요, 저 좀 저 좀 살려주세요 네? 놈 들 손에 잡히면 저 오늘 죽어요! 지금두 트렁크에 갇혀있다가 겨우 탈출한 거예요! 콜록콜록. (힘
들어한다)
정우 (!)
영심 콜록콜록. (호흡 곤란한 듯) 어디까지 가세요? 가시는 데까지만이래두 어떻게 안될 까요? 콜록콜록.
정우 ... ... (뭔가 찜찜하지만 하는 수 없이 차를 출발시킨다)
영심 (혼자 몰래 쾌재를 부른다)
#70. 고속도로, 달리는 정우의 차
시원하게 달려오는 정우의 차.
정우, 곁눈질로 영심을 쳐다본다.
정우의 시선에.. 요란한 핑크머리, 마를릴 몬로 점. 새빨간 립스팁, 질겅질겅 껌 씹으 며 볼썽사납게 풍선껌 불고있는 영심!
영심, 곁눈질로 정우를 쳐다본다.
영심의 시선에, 잘 생기고 건장한 젊은 남자 정우!
영심과 정우, 그렇게 남해로 향하고 있다!
-제1부 끝-
.12월의열대야↲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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