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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어리랏다

 


 

S# 1 수 구 문

 

(낡고 찌들인 성문

부감-

성문앞에 차일치고 와글대는 장사치들

길가에 띠엄띠엄 십여채 초가집

문밖으로 문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나레이션 수구문.... 이조 오백년간 한양의 성곽을 지켜온 조그만 관문,

세세년년 오랜 풍상 지내오며 수많은 내외우환 격어 온 이 나직한 성문이 수구문이야말로 오백년 이조 사직의 온갖 추하고 천한 면 면을 도맡아 맡아 온 천박한 구실을 감당해온 문이기도 했다.

(카메라 크레인다운하면서

계속되는-)

해설 장안의 시체가 모두 이 문을 지나서만 나갔다해서 시구 문이라 부리 기도했던 이 수구문 밖으로 한발만 나서도 그곳에는 염병환자를 갖다버리는 염병 막이 있었고 가난한 서민의 시체를 거적에 밀어 내 다버리는 시체막이 있었으며 또한 야견이 들끊는 공동묘지 벌판엔 죄인의 목을 자르는 죄수참형장도 있었다.

(수구군사 뛰어나와 길을 티운다.

저만치 보이기 시작하는 수거의 대열)

 

S# 2 수구문 앞길

 

(바라보는 사람들

다가오는 수거의 대열)

나레이션 때문에 자연 이 수구문 주위에 흡반을 붙이고 서식하는 무리야말로 이조 사회에서 가장 천한 대우를 받는 천민계급이 대부분 그들의 어둡고 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말탄 금부도사의 위용

뒤를 따르는 요란한 기치와 창검

덜컥거리는 십여대 수거 안엔 큰칼 쓰고

머리풀어 산발한 죄인들의 참담한 형상

형상-

말발굽 수레바퀴 카메라 앞을 지나가면서

그 요란스러운 소리 화면이 찢어지게 고조되어

가다가-

 

S# 3 형 장

 

(스산한 바람-

불쑥 나서는 망나니 만석의 얼굴

검불 붙은 턱수염에 조는듯한 표정

건너편에 불쑥 나서는 망나니 용팔의 얼굴

다부진 체격에 히죽 웃는 모습

넓은 공터에 십여개 말뚝

그 말뚝 앞에 일렬로 비끌어 맨 죄수들의 모습

형장 한가운데 무어라 중얼중얼 들리지 않게 판결문을

낭독하는 금부도사의 근엄한 얼굴

뺑 둘러선 사람들 틈에서 벌써 가족들의 곡성이

울리기 시작했고 상둣꾼 철성의 패들은 슬금슬금

그 울부짖는 가족들 옆으로 다가선다.

이제부터 실속있게 장사를 해볼 심산들이다.

금부도사 판결문을 다 읽었는지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 참형-”

긴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중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우기 시작한다.

더욱 곡성이 크게 울리는 가운데 무서우리만치 시퍼런

큰칼을 들고 만석이 나선다.

양쪽에서 하나씩 베일 모양이다.

형장엔 이상한 긴장이 감돈다.

만석 큰칼을 들고 묵묵히 앞으로 나선다.

말뚝에 비끌어 매어진 젊은 죄인이 고개를 들어

만석을 바라본다.

ZOOM IN 되는 그 애원의 눈길

표정없이 굽어보는 만석

오들오들 떨리는 그 눈동자

천천히 들어올리는 그 눈동자

천천히 들어올리는 만석의 큰칼

다음 순간-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척 내려치는 만석의 칼날

툭 떨어져 구르는 목

뿜는 피

고조되는 염불-

고조되는 곡성-

저쪽에서 춤을추던 용팔의 칼날이 휘익 섬광을

그린다.

사람들 틈에서 여인 한사람 스르르 기절을 한다.

성큼성큼 다음차례로 다가서는 만석

후들후들 떨면서 흐느껴 우는 또 한사람 죄수

물끄러미 굽어보는 만석

칼날이 또한차례 원을 그리면

무기미한 음향과 함께

발아래 툭 떨어지는 목

울음바다

염불소리-

저쪽에 용팔이도 흥이난 듯 칼춤이 더욱 빨라지면서

무감동한 얼굴로 다음차례 옮기는 만석

이미 혼이 나간 듯 축 늘어져 있는 죄수

칼날이 또한번 원을 그리고

용팔도 춤을 추며 이쪽으로 오는데

다음차례 기다리던 노인 한사람)

노 인 이놈!.... 이놈들.... 내가 무슨죄 있다구 이놈들.... 상감께 충성 한것두 죄냐이놈들

(게거품 문 입에서 헛소리가 흐르고 불길 치솟는

두눈은 후들후들 떨린다.

히죽히죽 웃으며 춤을추는 용팔

칼날이 떨어지는것과 동시에)

노 인 이놈어디다 칼질이냐?

(벌떡 일어서면서 빗나가 어때쭉지를 내리찍는

칼날)

노 인 : (발악하듯이 쳐죽일놈!

(부욱이를 갈며 몸부림 친 순간 초인적인 힘인가?

우두둑 끊어지는 밧줄)

노 인 ..... 이놈!

(허옇게 눈알 뒤집힌채 피거품 물고 달려드는 무서움)

“ ?”

(용팔도 겁결에 뒤로 피하고

허우적허우적 팔을 휘두르는 그 악귀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서는 만석

사정없이 노인의 복장을 퍽 걷어차면

풀썩 고꾸라지는 노인

그 순간!

휘익 바람을 가르는 만석의 칼날

목이 댕겅 떨어지며 사방으로 뿜어나는 핏무리

만석의 얼굴에 튀는 핏방울

아직도 푸들거리는 목 없는 동체

지긋이 굽어보다 턱수염에 퉁긴 핏자욱 쓰윽 딱아

내는 만석의 표정없는 얼굴 위에

주제음악 쏟아지며 메인 타이틀 망나니”)

 

S# 4 하 늘

 

(하늘을 향해 우쭐우쭐 춤을 추는 용팔의 큰칼

그 배경 위에

크리짓 타이틀)

 

S# 5 장 막 안

 

(휘익!

장막을 헤치고 들어서는 용팔

대기하고 있는 금부나졸 한사람

-단 바가지에 담겨있는 술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용팔

뒤따라 어슬렁 들어선 만석

우선 냉수 한모금 입에 물더니 두눈 지긋이 감고

무어라 마음속에 주문을 외우곤 칼 위에 확 뿜는다.

핏물이 얼룩져 흐르는 칼

만석 묵묵히 칼자루 끝에 붙었던 부적을 떼어내

헝겊과 함께 닦으면)

나 졸 자아 자네 목값은 여섯이고.... 자넨 다섯명!

(엽전뭉치 뚝뚝 갈러 던져주고 나간다.

말없이 엽전뭉치 허리춤에 꿰어차 그제야

바가지 술 듬뿍 퍼담어 시원스레 들이키는 만석

그 표정없는 얼굴 위에

타이틀 끝나고- )

 

S# 6 수구문 앞

(쨍쨍한 오후의 햇볕-

장사치들 악다구니도 한물간 듯 한산한데

양반댁 하인차림의 삼용이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온다.

땅땅 끝을치는 석수쟁이 쇠돌

삼용 머뭇거리다 그쪽으로 다가선다. )

 

S# 7 석수집 앞

 

(웃통 벗어붙인채 일을 하는 쇠돌)

삼 용 : (쭈빗대며저어...

(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삼 용 : (조금 크게저 말 좀 물읍시다.

쇠 돌 : (그제야 고개들며뭐요?

삼 용 여기 형장이 어디쯤 있오?

쇠 돌 : (퉁명스레끝나오끝났어.

삼 용 ?

쇠 돌 오늘은 벌써 끝났단 말이오.

S# 8 무당집 방 안

 

(어둠컴컴한 골방안에

음산스런 무당이 푸념 소리)

“ 엇쇠 잡귀야 물러서라 여기는 너희 놀곳이 아니다바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에 불을 들고 이리가니 검신 님이 예계신다 저리가니 화신 님 제계신다엇쇠 잡귀신아 썩 물러서라.”

(상위에 큰칼 가로놓고 묵묵히 앉어있는 만석

신이나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무당

옷깃이 흩어지고 앞가슴이 열리고....

기다리기에 저으기 심통이 난 듯)

만 석 : (불끈아따 푸닥거린 그만허구 어서 부적이나 한 장줘요.

무 당 : (김샌 듯원 성미두 급하슈.... 부적이란 그냥 내준하고 효험이 있는즐 아슈?

만 석 효험이야 있건 없건 달라면 주는 게지

(무당 곱게 눈을 흘기며 부적을 한 장 내준다.

묵묵히 받아 칼자루 끝에 꾹꾹 붙이는 만석)

무 당 술이나 한잔 하고 가시지.....

(무릎을 짚으며 다가 앉는다.

벌려진 풍만한 앞가슴

게슴치레 정염이 흐르는 눈)

만 석 술은 뭔놈의 술.....

(무뚝뚝이 내뱉고 불끈 일어서면)

무 당 정말 그냥 갈라오?

(바지 가랭이 잡고 다시한번 애원의 눈길 보내지만

투박한 손길 툭 뿌리치고 돌아서는 만석)

 

S# 9 형 장

 

(썰렁해진 형장

훌쩍훌쩍 우는 선비 한사람을 붙잡고 칠성이 열을 올려

흥정한다.)

칠 성 글세 생각해봅쇼 아 시상에 목 떨어진 시체를 좋아서 다룰놈이 어디 있습니까?

(선비의 하인인듯한 사람이 화가나서 대든다.)

하 인 아무리 그러기로서니 이 날도적 같은 위인아.

칠 성 아따 싫으면 관둡쇼 제기

(훌쩍이던 선비 그렇게 하라고 고갤 끄덕인다.)

칠 성 : (개의치않고여보게 저 시체두 나르게 이봐 이봐 그건 이쪽 모가지야.

모가지하구 몸뚱이하구 바뀌지 않게 잘해.

(움막 같은데서 천으로 칭칭 감은 시체를 들고 나오는 상둣꾼

이상하게도 목이 붙어있다.)

칠 성 아 일손 바쁜데 뭘 꾸물럭거려허노인허노인!

(움막속에서 두눈이 탱한 늙은이 하나 송곳과 실 같은걸 손에 들 고 나온다. )

칠 성 아 빨랑빨랑 꿰매지 뭘하는 거요?

허노인 : (피묻은 손을 홰홰 저으며)거 양반님들이라 잘 잡숴서 그런지 아직도 피가 멎질 않으니.....

(혀를 끌끌차며 도로 쑤욱 들어간다.

하인 삼용이가 놀란 눈 두리번거리면 쭈빗쭈빗 다가온다.

곰방대 꺼내무는 칠성)

삼 용 : (다가서며저어.... 말 좀 물읍시다.

칠 성 : (굽신하며예 뭡니까?

삼 용 사람을 찾을까해서.....

칠 성 누굴 말씀이오?

삼 용 : (말하기 거북한 듯저어..... 죄인의 목을 치는.....

칠 성 망나니 말씀요?

삼 용 

칠 성 : (퉁명스레망나니 지금 여게 없오갔오.

삼 용 : (낙심해서그럼 어딜가야 찾을수 있을깝쇼?

칠 성 백정촌으로 가보슈

삼 용 : (의아한 듯백정촌입쇼?

칠 성 : (귀찮은 듯이사람 백정촌두 모르나아 망나니 백정중에서두 제일 흉폭한 놈을 골라쓴단 말이오것두 여직 모르슈?

 

S# 10 백정촌

 

(산밑 개천가 넓은터에 움막같은 초가집 이삼십채 흩어져 있다.

백정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백정촌이다.

여기저기 소가죽이 아무렇게나 널려있고 소뼉다귀가

무더기 무더기 쌓여있다.

두리번 거리며 올라오는 삼용

입구에 어린아이들이 소대가리 골속에 밀짚을 쑤셔

박고 무언가 죽죽 빨아먹고 있다.

삼용 등공일 캥긴 듯 조심스레 올라간다.

선지피를 들고가던 아낙들이 의아스레 쳐다본다.

비쩍 마른 늙은이 하난가 봉창 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가서는 삼용

무어라 묻는다.

가는귀가 먹었는지 엉하고 한동안 묻던 늙은이가)

늙은이 으응용팔이를 찾는구먼 용팔이는 지금 야견 박살나갔어 야견박살.

S# 11 공동묘지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다.

어느 무덤에 시체를 파먹던 야견 한 마리 휙 고개를 든다.

저아래 구능으로 이리쫒기고 저리쫒기고 야견의 무리들

그리고 그뒤로 뺑 둘러서 꽹과리를 두드리며 포위를 좁혀오는

백정의 무리

철퇴를 든 자

몽둥이를 든 자

1 칼을 휘두르는 자

으르렁대는 야견들의 흰이

핏발선 눈동자

좁혀지는 포위망

꽹과리 소리

히죽히죽 웃으며 신이나서 내닫는 용팔

살기어린 백정들의 눈 눈

긍지에 몰린 개 한 마리 으르렁 흰이를 들어내는데

퍽하고 철퇴로 대가리를 부수는 수성)

수 성 닷냥 벌었군

(음산스런 미소-

용팔 언던위로 성큼 올라서는데 휘익 무덤을 뛰어 넘어

덤벼드는 개

섬광을 그리는 칼 날

공중에서 그대로 두토막이 나는 야견)

용 팔 나두 닷냥 벌었네.

(히죽 웃는다.

헐레벅떡 올라오던 삼용

그 끔찍한 광경에 그만 뻣뻣해진다.

여기저기서 야견을 때려잡는 백정들의 모습

철퇴가 떨어지고 몽둥이가 나르고 비명과 함께

죽어가는 야견들의 처참한 모습

거품을 물고 버둥거리던 개 한 마리 벌떡 일어나 왕!

하고 백정 한 사람을 물고 늘어진다.)

백 정 아이구 나죽어사람살려!

(처참한 비명

용팔 칼을 잡고 뛰어가 개와 함께 딩구는 발아래

칼바람을 일으킨다.

목이 떨어지는 야견

히죽 웃는 용팔

힛히히..... 따라웃는 백정들

도무지 사람같지 않다.)

용 팔 : (둘러보며전부 몇마리야?

백정 1 : 열댓마리 되나보이

용 팔 인제 겨우 고거야저어 염병막 쪽에 한번 더 훓으세

백정 2 : 아무렴! (비웃듯나라에서 시키시는 일인데 돈두 벌구

충성두 하구 장히 좋은가?

(우루루 돌아서는데 아직도 멍청히 서있는 삼용)

백정 1 : 뭐요?

삼 용 : (겁먹은 듯저어..... 저는 용팔이란 분을 만나뵐까 하구......

용 팔 왜그러슈용팔인 난데

삼 용 : (반가운 듯아 네 그러십니까저어 긴히 여쭐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용 팔 : (어색한지말씀하슈.... 개백정한테 무슨 존대말이슈?

삼 용 : (용기가 나서저어 잠깐만....

(용팔을 끌고 저쪽으로 간다.

의아해 바라보며 내려가는 백정들

무어라 용팔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삼용

팔짱을 낀채 귀담아 듣는 용팔)

삼 용 : .....그래서 이렇게 찾아뵌거외다.

용 팔 .....

삼 용 : (몸이달아왜 안되겠습니까저희 주인께선 이백량을

내놓겠다고 하셨는데.

용 팔 그러니까 목은 치되 목을 떨어뜨리지 말고 죽여달라

그거아뉴?

삼 용 예 그렇지요.... 어떻게든 시신을 바로해서 모시고 싶은

효성심에서 하는 일입지요.

용 팔 : (곤란한 듯헌데 난 그런 재간 없쇠다.

삼 용 ? (낙망해서)그러면....

용 팔 만석이한테 가보슈 만석이는 그만정도 재간이라면 식은죽

먹기요.

 

S# 12 만석의 방

 

(만석이 네활개를 펼치고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있다.

파리똥이 묻은 얼굴에 파리들이 엉겨 붙는다.

방안에 고리짝이 하나

장짓문 문설주엔 시퍼런 큰칼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수염에 붙은 파리를 철썩 올려붙이고 돌아눕는데)

소 리 있나?

(들어서는 용팔)

용 팔 인석 팔자 늘어졌구나.

(부시시 눈을 뜨는 만석)

용 팔 : (밖에대고이리 들어오슈

(들어서려다 문앞에서 거꾸로 매단 칼을 보고

주춤하는 삼용)

용 팔 괜찮쇠다 우리네야 목치는게 직업이라 이렇게 칼을 거꾸로

매달아 놔야 악귀가 못찾아 온다오.

(그제야 쭈빗쭈빗 들어서는 삼용

의아히 일어나 앉는 만석

그 귀에대고 무어라 수근대는 용팔

물끄러미 삼용을 건네다보는 만석)

용 팔 이사람이 만석이요.

삼 용 : (엉덩이를 들썩이며아 그러시오나 저 관수다리께 사는

박삼용이올시다.

만 석 : (거북한 듯인사는 무슨......

(얼버무린다)

삼 용 지금 말씀 들으셔서 아시겠니만....

만 석 : (막으며알고 있쇠다헌데 내일 목떨어질 사람이 누구요?

삼 용 그분이 바로 오늘 처형 당하신 김판서대감의 둘째아우

되시는.....

만 석 그럼 그 글잘하신다는 김태영대감이시군.

삼 용 네 맞습니다우리 대감마님이야 천하가 알다시피 무슨 죄가

있습니까허구헌날 정자에서 글만 읽으신것두 죄입니까?

만 석 우리네야 그런 것 알바 아니구.....

삼 용 : (아직 흥분해서세상 무섭습니다..... 나라의 권세가 한번

바뀔적마다 이렇게 죄없는 사람이 무수리 목떨어지니.....

끔찍하지요.

용 팔 허어 우리네야 뭘 알겠오그저 목이나 쳐라 하믄 댕겅댕겅

자르는 수밖에.....

(삼용 쑥 들어가며 문에 걸린 큰 칼을 힐끗 본다.)

만 석 : (빙긋 웃으며그래 피한방울 안흘리고 칼등으로만 쳐서

고히 돌아가시게 할테니 그댁에서 이백량은 틀림없이

낸답니까?

삼 용 아 그야 여복 하겠습니까?

만 석 그럼 돈은 언제.....?

삼 용 오늘밤 주인께서 직접 전하신다고

만 석 그럼 이리 오라 하시오.

삼 용 : (거북한 듯여기는 좀......

용 팔 백정촌이라 그말이오?

삼 용 ...... 아니 그게 아니라 아시다시피 저희 주인은 지금

남의 눈을 피해 다니시는 분이시라.

만 석 : (생각하다그러면 오늘밤 이경에 저 시체막 앞에서

만나자 이르시오.

삼 용 ...... 시체막입쇼?

 

S# 13 시체막 앞 ()

(달빛이 은은한 공동묘지 한쪽에 가마니로

둘러쳐진 움막같은 시체막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조금 떨어진 둔덕에 쭈그리고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만석

저 아래쪽 시체막을 지긋이 쏘아본다.)

 

S# 13-1 같은 곳 (회상)

 

(어린날의 만석 <13>이가 훌쩍훌쩍 울면서

거적에 둘둘 감은 시체를 지고오는 지계꾼을 따라온다.

시체막 안으로 아버지의 시체를 갖고 들어가는 사람들)

만 석 : (몸부림 치며아버지아버지-

(사람들이 몸부림치며 어린 만석을 끌고 간다)

아낙 1 : 에휴양반이면 이렇게 죄없는 사람을 때려죽여두 되는건가

해두 너무하지 너무해.

 

S# 13-2 시체막 앞

 

(분노에 가득차서 쏘아보는 만석

시끄럽던 풀벌에소리가 뚝 그친다

사각사각 풀밭을 밟고 다가오는 소리가 난다.

만석 뻐끔 뻐끔 곰방대만 빤다.

발자국 소리 등뒤에 멎는다)

만 석 : (돌아보지도 않고)..... 갖고 오셨오?

(잘그락 잘그락 엽전소리가 나더니 그의 발앞에

엽전뭉치가 툭 떨어진다.

만석의 분노어린 눈길이 돌아본다.

거기 소복단장한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

달빛을 받은채 오롯이 서있지 않은가?

` 놀랜 듯 바라보는 만석)

여 인 .... 부탁.... 하겠습니다.

(쏘아보는 만석)

여 인 아무쪼록 시신만이라도 깨끗이.....

(슬픔이 왈칵 치미는 듯 돌아서 가려는데)

만 석 : (불쑥이것보슈.

(돌아보는 여인)

만 석 그런데 돈은 왜 이렇게 집어 던지시유?

여 인 ?

만 석 천한 쌍것으라 곱게 줄수 없다 그말이요?

(천천히 일어나 가까이 온다.)

여 인 : (당황해서아닙니다....소녀는 그런 뜻이 아니옵구....

(만석엽전뭉치를 집어 다시 툭 던져주며)

만 석 난 이런 돈 필요 없쇠다.

여 인 : (어쩔줄 몰라하며....죄송합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애처롭게 비는 얼굴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애잔하다)

만 석 : (지긋이 본다)....

(바람이 여인의 머리카락을 날린다.)

여 인 : (애원하듯소녀.... 정말 그런뜻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부친께선 아무 죄도 없습니다......바라옵건대.....

만 석 그렇다면......

(히죽이 웃는다.

여인 의아해서 바라본다

더욱 다가서는 만석)

여 인 : ......

(그 어떤 기미에 흠칫 놀라는 순간

덥석 손을 잡아쥐는 만석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 인 못된..... 무엄한 것!

(송충이라도 덜어버리듯 뿌리치고 홱 돌아서

뛰는데)

만 석 : (침착히칼질이 안먹는다고 두토막 세토막도 낼수 있오!

(무서운 협박

몇 걸음 허둥지둥 달아나다 그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리는 여인

침착히 쏘아보는 만석

번쩍이는 눈동자

말뚝을 박은 듯이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는 여인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서는 만석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갸날픈 여인의 어깨

가느다란 미소가 스치는)

만 석 난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 보다 우습게 아는 사람백정이요.

여 인 : .....

만 석 자칫 이놈의 비위를 건드리면 낭자의 부친은 두토막 세토막이

문제가 아니라.....

여 인 고만!....

(귀를 막는다)

만 석 : (히죽이어때말을 듣겠오?

(피나도록 입술을 꼭 깨물고 있는 여인

철철 넘치도록 흘러내리는 소리없는 눈물)

만 석 흐음그렇다면 이놈의 청을 들어준다는 건데....

(만석이 팔이 쓰윽 어깨넘어 넘어온다.

파들파들 떨리는 여인의 온몸

만석의 손이 옷고름을 탁 풀어헤친다.

꽈악 두눈 감는 여인

흐르는 눈물

이글거리는 만석의 눈동자

이윽고 왈칵 난폭스럽게 젖무덤을 움켜쥐고 만다.)

여 인 ......

(그자리에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덥석 두팔에 안아드는 만석

여인의 내음이 콱 코를 찌른다.

주위를 둘러본다.

저아래 시체막이 눈에 띤다

여인을 안고 성큼성큼 내려간다.)

S# 14 시체막 안 밤 )

 

(달빛이 비쳐드는 시체막 안엔

여기저기 거적이 깔려있고 이쪽저쪽 구석엔

가마니에 둘둘말은 시체 서너구

여인을 안고 성큼 들어서는 만석

시체막 한가운데 거적위에 척 눕힌다

기절한들 꼼짝않는 여인

파들파들 떨리는 온 전신

만석의 바쁜 손길이 앞가슴을 헤집는다

뽀얗고 탐스런 두 개의 유방이 달빛에 들어난다

이글거리는 눈

만석의 손길이 어느곁에 하체를 벗기기 시작한다.

풍만한 육체

백옥같은 육체가 하나씩 하나씩 은은한 달빛아래

알알이 들어나면서

만석의 호흡이 거칠어 가더니 이윽고 왈칵 덮쳐들고

만다.

숨을 몰아쉬는 여인

버둥거리는 백옥같은 지체

거칠어지는 호흡소리

시체막 가마니 사이로 얼굴이 보이던 구름이 가리고

캄캄한 시체막 안엔 여인의 신음소리와 만석의

숨찬소리가 고비를 넘더니-

다시 흘러드는 달빛

천천히 일어나 앉는 만석

죽은 듯 꼼짝않는 여인)

만 석 : .....양반 계집의 살맛은 어떤겐가 했을뿐이요.

(무겁게 한마디 씹어뱉듯 던지곤 천천히

일어나 어둠속을 사라진다.

간신히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는 여인

저쪽 구석에 해골이 딩군다.

겁에 질려 일어나려다 풀썩 고꾸라진다

아랫배가 당긴다

이를 악문다)

 

S# 15 언덕 밤 )

 

(달빛 흐르는 공동묘지 언덕위로 여인이 올라간다

아랫배를 움켜잡고 주저앉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진땀이 흐른다.

다시 일어서 내려간다

비칠비칠 넘어지며 자빠지며 내려가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없다

슬며시 언덕위로 나타나는 만석의 얼굴

묵묵히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허위적 허위적 그녀의 모습이 멀어지면서)

( F. O )

 

S# 16 형장 ( F. I )

 

(쨍한 햇살-

번쩍번쩍 큰칼이 햇빛을 반사하며 돌아간다.

히죽이며 웃는 용팔이 얼굴 위에 덥치는 곡성

큰칼을 내리들고 우두커니 서있는 만석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허나 웬일인지 어젯밤 여인도 보이지 않고 하인 삼용의

모습도 찾을길 없다.

목 끊기는 소리

만석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어느 말뚝에 묶인 선비 한 사람

지긋이 두눈을 감고 있다.)

만 석 대감이 김태영 대감이슈?

(김대감 눈을 들어 만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만석 무뚝뚝한 얼굴로 큰칼을 천천히 치켜든다

다음순간

햇빛을 크게 반사시키며 사정없이 칼날이

내려쳐진다.)

 

S# 17 수구문 앞길

 

(천으로 칭칭 감은 큰칼을 들고 만석과 용팔

나란히 걸어온다.

슬금슬금 피해서는 행인들

무슨 더러운 짐승이나 만난 듯 멀찌기 피해선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걷고있는 만석)

용 팔 한잔 안하고 가려나?

만 석 : .....

(생각에 잠긴채 대꾸가 없다)

용 팔 요샌 술을 안하면 통 잠이 와야지?

만 석 : .....

용 팔 먼저 올라 가려나?

만 석 ....그래

용 팔 녀석 싱겁긴....

(두 사람 헤어진다.)

 

S# 18 언덕길

 

(풀꽃이 쫘악 깔린 언덕길

저어 아래 흐르는 넓은 개천

만석 걸어온다.

저켠 언덕에 수성이 앉아 구슬픈 가락의 피리를

불고 있다.

어린딸들이 그 앞에 앉아 반지꽃을 따고 논다.

만석 멈춰서 그들의 모습을 지긋이 내려본다.

구슬픈 가락이 가슴을 파고 든다.

만석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뜬다.

어디선가 먼산에서 뻐꾸기 운다.)

 

S# 19 형장 저녁 )

 

(황혼이 붉게 물들어 오는 형장

피묻은 말뚝만 우뚝우뚝 보기흉한데

저쪽에서 남바위를 걸치고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S# 20 움막안

 

(더러운 거적으로 둘러쳐진 캄캄한 움막 안

웅얼웅얼 수심가 가락이 들린다.

허노인이 등을 돌리고 서서 목떨어진 시체의 목을

꼬매고 있다.

움막안은 여기저기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있고

잿더미가 산처럼 쌓인 한쪽에는 삼베로 칭칭 감은

시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

하노인 ..... 무슨 놈의 피가 아직도 이렇게 흐르는 게야?

(중얼대며 목없는 시체를 들어 잿더미 속에다 꾸욱

쑤셔 박는다.

흐르던 피가 멎는다.

잿더미 속에서 목을 찾아 들더니 손으로 툭툭 털고

돌아서 다시 흥얼거리며 꼬매기 시작한다.

움막 앞에 인기척이 난다.)

허노인 칠성인가들어오게

(그러나 문앞에 아무말이 없다)

허노인 그 누구요?

(고개를 돌려 이윽고 내다본다.

남바우를 걸친 아릿다운 아가씨 한분이 무서움에

떨고 있다.

어젯밤 시체막에 왔던 그 여인이 분명하다.)

허노인 허어그 웬 아가씨가 이런곳엘 다 오셨오?

여 인 : (겁에질려... 시체를.....

허노인 오 시체를 찾으로 오셨군 들어와 찾아 보시구랴....

어느댁 시첸데?

(공포에 질린 눈동자가 오들오들 떨면서 움막안을 둘러본다.

그러다 한곳에 딱 머물더니)

여 인 .....아버님.....

(와락 달려들어 부등켜 안는다.

깨끗하게 목이 붙어있는 김대감의 시체다.)

여 인 아버님아버님숙영이가 왔어요아버님......

(목 놓아 울기 시작한다.

허노인 애처러운 듯 이윽히 굽어본다)

허노인 원 딱두허지.... 끌끌.... 그래두 새악씨는 복이 트셨우

시신이나마 이렇게 깨끗하니 장히 좋은일이오.

(그제야 새삼 목이 깨끗하게 붙어있음을 깨닫는다.)

허노인 내 노상 얘기지만 그 만석이 칼솜씨는 귀신같단 말씀이야

온 이렇게 피 한방울 안흘히고 감쪽같이 처리 하다니....

(하면서 목뒤를 보여준다.

시퍼런 멍자리만 길게 났을뿐 아무 상처도 없다.

부지런히 품속에서 한웅큼의 엽전을 꺼내더니)

숙 영 어려운 일이시오나 소녀 불쌍히 보시구.... 아버님 시신을

오늘안에 묻어드려야 하겠아오니....

허노인 어이구 원 돈을 이렇게 많이.....

(송구해 쩔쩔맨다)

숙 영 제 사정 급박하오니 어서....

허노인 낭자께선 식솔이 한분도 안계시오?

숙 영 : (새삼 설움이 복받치며) .....집안에 하인배까지 모두 잡혀가고 .....

소녀 혼자 요행 몸을 패했습니다.

허노인 원 저런

숙 영 : (사정하듯하오니 어서.....

허노인 그럽시다.

(선뜻 응낙하고 관을 하나 잡아당겨 그 안에 김대감의

시체를 넣는다.

또 다시 섧게 흐느끼는 숙영)

 

S# 21 형장 저녁 )

 

(허둥대며 나오는 숙영

관을 지고 나오는 허노인을 돕는다.)

허노인 이와이면 좋은 자리루 택합시다..... 저리루........

(길을 잡아 올라가려는데)

게 섰거라!”

(뒤에서 덮치는 음성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오명 군졸들 우루루 몰려든다.

새파랗게 질리는 숙영)

군졸 1 : 네년이 여기 올줄 알았다김대감댁 딸이지?

숙 영 : (절망.....

군졸 1 : 가자 이년!

숙 영 : (필사적으로잠시 기다려 주시어요..... 저희 부친시신이라도 묻을

동안만....

(울며 애걸하지만)

군졸 1 : 듣기싫다가자 어서잡아오란 분부시다!

(우루루 달려들어 불문곡직 끌고 간다.)

 

S# 22 백정촌 밤 )

 

(활활 소리내며 타오르는 모닥불

그 옆에 백정들과 보부상패들 모여선 가운데)

마흔석장이요..... 마흔넉장이요..... 마흔다섯에 가서는......”

(소가죽을 한 장한장 던지며 세고 있다)

백정 1 : 모두 쉰한장일세

보부상1 : 얼마 안되는구먼

백정 1 : 허니 이번엔 맛돈 내야허네

보부상1 : 이거 왜이러나아 우리네 셈 흐린법 봤나?

(이때 저쪽 마을 어구 쪽에서)

이놈이놈!”

(왠 늙은이 하나 식칼을 휘두르며 마을을

쏘다닌다.

핏발선 눈동자

허공을 무섭게 쏘아보며 밤하늘에 식칼을 마구 찌르면서)

이놈이놈!”

(헛소리 치다가 또 어디론가 달려간다)

보부상1 : (모골이 송연해서거 왠 늙은이야?

백정 1 : (입맛 쓴 듯저 영감님두 소시쩍에 목치는게 직업이라

망나니노릇 삼십년에 온갖 악귀가 몸에 붙어 저렇다네

보부상1 : 원 제기 쯧쯧....

(그쪽으로 시선 던지면)

S# 23 어느 초가 안 밤 )

 

(초가집 툇마루에 술통을 하나 놓고 마주앉은 만석과

허노인

목 마른 듯 바가지를 쭈욱 들이키고 나서)

허노인 : .....그래 할 수없이 나혼자 묻어주고 이렇게 찾아오는

길일세.

(가슴에 충격이 큰 듯 멍청히 허공을 바라보는 만석)

허노인 거 무슨소린지 자네더러 그래두 좋은분이라고 하데....

(가슴 찌르르 해지는 만석

멍청히 허노인의 얼굴을 본다.

이때 키득거리며 들어서는 용팔

댓짜고짜 동이의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웬간히 취한 모양이다.

문밖으로 득보노인이 식칼을 휘두르며)

이놈이놈!”

(하며 지나간다.

용팔 재미 있다는 듯 킬킬 웃는다.)

허노인 웃지마라 인석아네놈도 늙고 병들면 저리된단 말여!

용 팔 누가 그때까지 산답니까까짓것 백정의 뼉다귀

아무때나 칵 죽어 없어지면 된단 말씀이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응수한다.

만석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S# 24 백정촌 밤 )

 

(어슬렁 나온는 만석

어둠을 향해 우뚝 선다.

저만치 길건너엔 아직도 득보노인이 이놈이놈!

하며 마을을 쏘다닌다.

지긋이 생각에 잠기는 그 얼굴에-

버둥거리는 그 백옥같은 지체

하고 입을 벌리는 고통에 일그러진 여인의 얼굴

아랫배 움켜쥐고 공동묘지 언덕아래 넘어지며

자빠지며 내려가던 뒷모습)

만 석 : .....몹쓸짓 했군.

( F. O )

 

S# 25 강대감댁 대문 앞 ( F. I )

 

(대궐같은 강유진대감댁 대문앞에 군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헌데 저쪽 구석진 담모퉁이에 아까부터 사람 하나

숨어서 엿보고 있다.

바로 숙영의 집 하인 삼용인 것이다.)

 

S# 26 동내실 후원

(고즈넉한 내실 뜰악

따거운 햇살만 가득한데

짤짤짤 고무신 끄는 소리가 나더니 이댁 정부인

이씨의 모습이 나타난다.

손에는 조그만 자막대기 하나

찬바람을 일으키는 표정이 저쪽 별당으로 향한다.)

 

S# 27 별당안

 

(섬돌아래 꿇어 엎드려진 서너명의 여인

쪽대문이 열리고 이씨 들어선다.

차거운 눈길 훓어보다가)

이 씨 고갤 들게 해라얼굴 좀 보자.

(양켠에 하인 두명 머리채를 잡아당겨 고개를 들어 올린다.

거기 치욕과 분노를 참고 있는 숙영의 얼굴

이씨 맨 끝에 앉아있는 숙영모 앞에 다가서더니)

이 씨 : (대뜸이년!

(독기서린 부르짖음과 함께 무조건 바람을 가르는 자막대기

새하얀 목덜미가 금새 부르터 갈라지고)

숙 영 어머니.....

(미친 듯이 울부짓으며)

이 씨 이년네아비가 우리 친정 오라버니를 귀양 보낼때를 생각 하면

치가 떨린다 이년!

(찰싹찰싹!

모질게 어깨쭉지를 후벼파는 자막대기

이를 악물고 수모를 참는 숙영모)

이 씨 : (식식거리며이년그뿐인줄 아느냐네년 시아범 놈이 우리 어머니를 종놈의 첩으로 팔아 먹은 생각을 하면 이가 갈린다이년우리 대감 나으리가 네년들 김가놈 세력밑에 쫒겨나 그 박대를 받으며 철치부심 이를 갈고 살아온 생각을 하면...... 이녀언잘 만났다 이년!

(부득부득 이를 갈며 미친 듯 후려팬다)

숙 영 : (절규하듯마님너무 하십니다...... 남정네들이 하시는 세력싸움....

어찌 우리네 아녀자들이 상관할 일입니까 너무하십니다마님!

이 씨 요년어린년이 어느 앞이라고 대꾸냐요년네년 집안 뼈다귀들이 씹 어먹어도 시원치않다요년!

(독기서린 자막대기가 숙영에게 나른다)

숙영모 : (터지듯그앤 놔두시오어린 것이 무얼 안다구

이 씨 그래두 터진 아가리에 할말은 있구나 이년

(저고리를 잡아 찢더니 그 흰 살결에 미친 듯 자막대기를

휘두른다.

허나 숙영모는 한마디 대꾸없이 매섭게 노려보며

그 매를 견디고 있다.)

이 씨 이년눈깔 좀 봐라 이 독한년!

(살점이 터지고 피가 퉁기고!

이윽고 아드득 입술을 깨물어 탁 피를 뱉어주는

숙영모)

이 씨 ..... .... 이년봐라!

(발광하듯 제성질에 못이겨 몸서리 치다가 머리를 동곳을

빼들더니)

이 씨 잡아라!

(두명 하인 숙영모를 꽉 잡으면)

이 씨 이년죽어봐라.

(얼굴이고 가슴이고 분간할 것 없이 온 전신을 무수히

찔러댄다.)

숙영모 ..........

(고통에 몸부림치고)

숙 영 어머니.... 어머니......

(애통해 몸부릴치고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전경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될 무렵)

숙 영 ............

(기어히 가물가물 기절하고야 만다.)

 

S# 28 성벽밑

 

(찌는듯한 햇살

저만치 수구문이 보이는 성벽 아래 오솔길

만석이 훨훨 걸어 내려온다.

성벽아래 외따로 차일 쳐진 주막

길가 미루나무엔 매미가 운다.

만석 주막 앞을 지나치려는데 불쑥 튀어나오는

용팔)

용 팔 : (히죽 웃으며어딜 가나?

만 석 .... 저 염병막 쪽엘 좀.....

용 팔 거긴 왜?

만 석 .... 그저

(심드렁한 대꾸다)

용 팔 : (은근히한잔 안하려나?

만 석 : ......

용 팔 : (의미있게 웃으며계집 일품일세

만 석 육실헐놈!

(별 흥미없듯 핀잔주고 휭 가버린다.

멍하니 바라보다 땀밴 베잠방이 활활 부치는

용 팔 녀석 요새 고이해졌단 말이야.

 

S# 29 주막안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차일을 들치고 들어서는)

용 팔 녀석 재미나 함께 보렸더니 제세가 여간 아닐세

(서운한 듯 투덜대며 평상에 앉는다.

술상 한쪽켠으로 밀어붙인 평상 위에는 허옇게

살찐 계집이 하나 벌거벗고 펼친채 나른해서

누워 있다.

용팔 술한잔 벌컥 들이키더니)

용 팔 에에.... 또 찌는구나 쩌

(벌거벗은 계집이 쿡 찌른다.)

용 팔 ?

(계집이 히죽이 웃는다.)

용 팔 ?

(계집이 말없이 용팔의 손을 끌어 진땀 흐르는 젖무덤에 댄다.)

용 팔 이년아 너두....

(철썩엉덩이를 소리나게 치더니 베장방이를 활짝

벗어 붙이며 덤벼든다.)

 

S# 30 염병막 부근

 

(저어 아래 염병막이 보이는 언덕위

대여섯 각설이패들이 엎드려 있다.

더러운거적으로 이중삼중 두껍게 둘러쳐진 염병막은

꼭 엎어논 바가지 같다.

언덕 아래서 곡성이 가까워 온다.

각설이들 목을 움추리며 숨어서 내다본다.

들 것 위에 환자를 얹고 염병막으로 다가오는 포졸들

그뒤에 울며불며 따라오는)

노 파 아이고이녀석아 삼십년을 고이 길러 염병막이 웬말이냐!

아이고 이녀석아 너한몸 바라고 살아왔는데 이제 나더러 어이

살란 말이냐죽어도 곱게 죽지 염병막이 웬말이여!

(구성진 곡성이 여기까지 들린다.

포졸들 더 이상 오지말라고 노파를 떼어놓는다.

더욱 몸부림치는 노파

포졸들 강제로 떼어놓고 환자만 들고 간다.

노파가 들것위에 보퉁이를 놔주고 주저앉아 통곡한다.

포졸들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염병막으로 뛰어

들어 잠시후 환자만 버리고 뛰어 나온다.

울며불며 몸부림치는 노파를 끌고 귀신이라도 나오듯

도망치고 만다.

각설이들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곡성이 멀어져 간다.

각설이들 서로 마주보고 싱긋 웃는다.

순간 와르르 승냥이떼들 처럼 민첩하게 염병막

쪽으로 치달아 내려간다.

망 보는 놈-

뛰어 드는 놈-

잠시후 염병막에서 보퉁이와 옷가지를 안고 나와

또다시 와르르 언덕위로 치달아 올라온다.)

각설이1 : 뭔가 봐라!

각설이2 : 히힛 떡이다!

각설이3 : 히힛 엿이다!

(녀석들 신나서 먹어대기 시작한다.

한놈이 바지 저고리 짚신 주머니등 이것저것 들춰 본다.)

각설이1 : 너 임마 빨가벗겨 왔구나.

각설이4 : 히힛..... 어짜피 죽을 녀석인데 뭘

(녀석들 좋아서 시시덕거리는데)

이놈들!”

(그뒤에 성큼 나서는 만석의 모습)

에쿠!”

(자즈러지는 각설이들)

만 석 : (빙긋 웃으며놈들 제버릇 개 뭇주는구나.

각설이1 : 헷헤..... 별수없읍죠 우리네야.......

각설이2 : (비위 맞추듯이렇게 여길 다 오셨습니까?

만 석 사실 나 자네들을 만나로 왔네

각설이1 : 쇤네를 입쇼?

만 석 .....

(잠시 망설이더니)

만 석 실은 내 어느 양반댁 규수를 한분 찾고 싶은데....

각설이1 : .....

만 석 자네들이 장안에 들어가 염탐을 해줘야 겠어.

각설이1 : (그제야 안심하고아 예..... ...... 그런일일랑 염려맙쇼.

(만석 허리춤에서 엽전 몇냥 꺼내주며)

만 석 말나지않게 은밀히 말일세.....

각설이1 : 어이구 이거 무슨 돈을 다아....

(황송해서 쩔쩔맨다.)

 

S# 31 무당집 방안

 

(상앞에 도사리고 앉은 무당

묵묵히 마주앉은 만석

무당 입속으로 무어라 한참 주문을 외우더니 밥상위에

쌀알을 주루루 쏟는다.

초조한 만석의 눈빛

쌀알을 굽어보는 무당의 열기어린 눈)

만 석 그래 규수는 어디쯤 있나?

무 당 : (비꼬듯).....

만 석 ?

무 당 죽었군

만 석 죽었어?

무 당 죽은거나 매한가지여!

만 석 아직 죽지는 않었구먼

(약간 희망이 어리는 얼굴

그런 만석의 얼굴을 뻔히 보다가)

무 당 귀신이 씌었군못된 귀신이.....

만 석 무어?

무 당 : (화난 듯패가한 김대감댁 대들보귀신이 씌었단 말여!

만 석 : (벌컥이런 제에기아 수십놈 수백놈의 목을 쳐두 끄덕없는 난데

뭔놈의 귀신이 붙어?

무 당 : (비웃듯그런데 부적은 왜 달래지?

만 석 임잔 모르는구먼내가 칠성님을 믿는가검신님을 믿는가?

나는 나를 믿는단 말여부적을 찾는건 칼질을 하다 보니까

어떤땐 마음이 흔들려서 내마음을 꽉 잡아두려고 하는거야

알기나 해?

무 당 : (더욱 도사리며그래두 임자가 찾는 규수는 죽었어죽었어!

(그 음산스런 얼굴에서)

 

S# 32 거리

 

만 석 죽었다니.... 미친년!

(투덜거리며 걸어가는 만석

어깨까지 닿을듯한 얕은 기와지붕이 줄지은 장안

거리

만석 어디론가 향해간다.)

 

S# 33 숙영의 집 앞

(고래등 같은 기와집

커단 대문엔 널빤지로 가로질러 못박아 버렸다

멀찌기 떨어져 기웃거리는 만석

누군가 붙잡고 무어라 물어본다.)

행 인 김태영대감 댁이 맞소!

만 석 그댁 가솔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혹시.....

행 인 옛끼 여보슈..... 내가 그댁 사람들 알기나 한가.

만 석 : .....

행 인 : (아래 위를 훑어보며괜스리 이 앞에서 얼씬거리지 마슈.....

공연히 큰코 다치리다.

(휭하니 가버린다)

 

S# 34 어느 주막

 

(금부나졸 한 사람을 잡고 술대접을 하는 만석

정성스레 술잔 따뤄주며 무어라 묻는다.

거드름 피우며 술 얻어 먹으면서도 모른다고 고개

절래절래 흔드는 나졸

실망하는 만석의 얼굴-)

 

S# 35 강대감댁 후원 내실 앞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는 거간꾼 김진사

주먹코에 심통 사납게 생긴 인상

아녀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후원 안채 앞에 인도

된다.)

하 인 : (읍조리며거간꾼 김진사가 오셨습니다.

(안에서 카랑한 이씨의 목소리)

이 씨 : (소리그래이리 가까이 올라서라 해라.

(툭 불그러진 눈망울 굴리던 김진사 댓돌위에

성큼 올라서며)

김진사 여기 대령 했습니다.

이 씨 : (소리) (나직히에니년은 내가 좀더 두구 분풀이를 해야겠으니

에미년만 놔두구 다 쓸어가거라.

김진사 : (굽신하며예 알아모시겠습니다. (히죽이 웃으며계집하나에 오십량 씩 드리겠습니다.

이 씨 : (소리값이야 아무런들 상관없으니 될 수 있는대로 먼곳으로 팔아버 리도록 해라.

김진사 : (또 히죽 웃으며글랑 염려맙쇼

(굽신 절하면)

 

S# 36 광안

 

(거덕 소리도 요란히 열리는 광문

어두운 구석에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간호하던 숙영이가

휙 고개를 든다.

성큼성큼 들어서는 김진사

한사람 한사람 물건을 감정하듯 이윽히 훓어보다가)

김진사 : (숙영을 보며흠 이건 돈냥께나 나가겠군.

(무슨뜻인지 몰라 의아히 바라보는 숙영

어머니를 꽉 끌어 안는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짙어가면서-)

 

S# 37 백정촌 ( F. I )

 

(백정 두사람이 커다란 항아리를 낑낑대고 들고와

동구앞에 놓는다.

선지피가 가득하다.

아낙네들 그릇을 들고 모여든다.

제각기 퍼담아 분배해 간다.

아귀다툼 하다가 싸움이 난다.)

아낙1 : 아니 그래 네년만 먹구 사냐네년만 먹구 살어?

아낙2 : 누가 나만 먹구산대쌀한톨 못먹어본 애들 선지국이라도

실컷 먹이려는데 무거 나뻐뭐가 나뻐?

(그릇을 서로 잡아당기다가)

아낙1 : 에라 이년아 다 쳐먹어라!

(선지그릇 와락 뒤집어 씌워주면 온통 시뻘겋게 집어쓴)

아낙2 : ..... 이년 봐라!

(손톱 세워 와락 덥쳐들어 물고 할퀴고 딩구는 싸움

피투성이 두 여인이 처참하게 다투는데도 킬킬킬 재미있어라

웃어대는 남정네들)

 

S# 38 뚝 길

 

(풀꽃이 좌악 깔린 뚝길

도포 입고 어슬렁거리는 양반 앞에 수성이 다가선다.

양반 기다렸다는 듯 빙굿 웃고 무어라 쑤근거리더니

허리춤에서 엽전 몇푼 꺼내준다.

수성이 돈을 받고 굽신대며 물ㄹ 선다.

그러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S# 39 언덕 아래

 

(인적이 뜸한 언덕 아래 수성의 처가 어린 두 딸을

안고 있다.

수성의 침통한 표정으로 올라온다.)

딸 아부지 온다엄마 아부지 와

(기뻐 소리친다.

멍청히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수성 말없이 양반에게서 받은 돈을 아내에게

내준다.

착잡한 눈길로 받아드는 아내)

수 성 : (엽전 한입씩 딸들에게 주며너희들은 이걸 갖고 시구문 안에 가서

국밥 한그릇씩 먹고 오너라.

(신이나서 뛰어가는 딸들

그 뒷모습 처량히 바라보는 아내)

수 성 : (침통해 서있다가) .....가지.

(아내 체념한 듯 천천히 일어서며 더러운 앞치마를

벗어던진다.)

 

S# 40 뚝아래

 

(기다리고 있는 양반

아내를 끌고오는 수성

바라보다 히죽이 웃는 양반

수성 말없이 아내를 양반에게 인계한다.

양반 수성의 처를 끌고 저쪽 걔울가 무성한 나무

사이로 간다.

멍청히 서있는 수성

개울소리만 돌돌 들린다.

이윽고 저쪽 나무가지 사이로 훌훌 벗겨던지는

흰 옷자락이 보이고 벌거벗긴 아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뒤이어 이상한 신음소리.....

슬며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피리를 꺼내드는 수성

간장을 에이는 애처러운 가락이 거친 호흡소리를

지워버린다.

여기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거칠게 다루지는 말라는

호소일께다.)

 

S# 41 성벽 아래

 

(걸어오는 만석과 용팔

가늘게 들려오는 피리소리

문득 멈춰서는 만석

따라서는 용팔)

만 석 녀석 또 예편넬 팔아먹는군.

용 팔 : (역시 심난해서저놈의 피리소린 청승맞긴 제에기

(두 사람 다시 겉기 시작한다)

용 팔 그래 수소문 해봤나?

만 석 : ....아니.

용 팔 : (히죽 웃으며녀석 양반의 살맛이 좋긴 좋은게로구나.

만 석 : (생각에 잠겨난 어려서부터 양반이라면 이를 갈었지

용 팔 그래서?

만 석 그런데 난 양반한테서 존댓말을 들어보긴 그 규수가 처음이었네.

용 팔 .....

만 석 그리구 나더러 고맙다구..... 그 못쓸짓을 했는데도 말일세.

용 팔 .....

(용팔도 무언가 만석의 심정을 알것같다.)

 

S# 42 칠성네 상두막

 

(저만치 수구문이 보이는 칠성네 상두막

성큼 들어서는 만석과 용팔)

용 팔 칠성이 있냐?

칠 성 : (나오며어서 오게

용 팔 이녀석 왜 벌레 씹은 얼굴이냐?

칠 성 말마라오늘 내 재수가 없으려니 제에기

(화가난 듯 울그락붉으락 하다)

용 팔 아니 왜?

칠 성 하 참 우라질년같으니..... 아 기생 월선이란년 말이쎄

만 석 ?

칠 성 아 그년이 가마타고 지나는 앞길에 내가 관을 메고 건너가지 않았겠 냐그랫더니 이년이 쌍것이 지나간길 갈수가 있느냐고 가마를 돌리 라고 하더니 다른길고 가잖느냐 말야글세

용 팔 저런 우라질년!

칠 성 아 지년은 천한년 아닌가?

(가슴속에 분노 치밀어 오르는 만석)

만 석 정말이냐?

칠 성 아 그럼!

 

S# 43 골목길

 

(얕은 초가지붕 사이로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

갓쓰고 도포입고 양반으로 변장한 세사람 걸어온다.)

칠 성 그년이 받아줄까?

용 팔 아 비단 한필 선치 보냈는데 안받아?

(싱글거린다.)

 

S# 44 월선네 대문앞 저녁 )

 

(아담한 기생집 대문

도포자락 훨훨 날리며 호기롭게 걸어온다.

칠성은 예쁘게 싼 선물뭉치를 들고 있다.)

만 석 : (위엄있게이리 오너라!

(잠시후 고무신 소리 나더니)

동 기 : (소리뉘시옵니까?

만 석 우리는 멀리 호남땅에서 과거보러 한양에 온 선비들인데

명기 월선의 명성을 듣고 하룻저녁 객창의 수심이나

달랠까 해서 찾아왔다고 여쭈어라!

(크게 소리친다.)

용 팔 : (입속으로녀석

(혀를 내두른다.

잠시후 빼곡 문이 열리더니 예쁜 동기가 빵긋 웃으며)

동 기 어서 듭시어요.

(거드릅을 피우며 들어서는 세사람)

 

S# 45 방 안

 

(사르르 장짓문 열리고 동기의 안내로 들어서는

세사람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방안)

칠 성 어허허흠!

(위세를 부린다.)

동 기 잠시 기다려 주시옵소서.

(예쁘게 절하고 물러난다.

비단보료 비단방석이 어색하기만 하다)

용 팔 : (둘러보며히야좋긴 좋군

칠 성 !

(시치밀 떼고 점잖게 앉는다.

이내 사르르 문이 열리고 화려한 옷차림의

월선이

들어와 날아갈 듯 절을 올린다.)

월 선 월선이라 하옵니다이렇게 누지에 찾아주셔서!

만 석 : (점잖게객지에 나선 나그네 수심이라 너무 허물치 마오.

(용팔이도 긴장해서 얼핏 따라)

용 팔 헛헛.... 탐화봉접이라니 그 아니 좋소?

(칠성이도 지지않고 풍을 떤다)

칠 성 아무렴 영웅호색이라니 승될 것 있오?

(월선이 예쁜 이마를 수줍게 숙인다.

이윽고 떡 벌어진 술상이 들어오고 술잔이 돌아간다.

그러나 월선을 아까부터 만석의 옆자리에 예쁜

선물보퉁이에만 정신이 없다. )

만 석 듣자하니 그대의 가야금이 장안의 일품이라 하던데 그

청아한 가락을 한 곡조 듣고 싶소.

(월선 얌전히 일어나 가야금을 탄다.

용팔이 오금이 쑤셔온다.

발가락을 자꾸 까딱거린다.

가야금 산조가 흥취를 돋군다.

알지도 하고 고갤 끄덕이는 만석

따라서 끄덕이는 칠성과 용팔

이윽고 가야금이 끝나자)

만 석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내 선물을 주어야지

(하고 비단으로 싼 서물뭉치를 선뜻 내준다.

월선 두손으로 받으니 묵직하다.)

월 선 : (기쁨을 감추지 못해이게 무엇이 오니까?

만 석 : (빙그레끌러 보아라

(호기심 있는 눈으로 얌전히 끌르는 월선

빙그레 웃는 용팔

빙그레 웃는 칠성

허나 뜻밖에도 그속에선 기다란 뼉다귀 두 개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상위에 떨어진다.)

월 선 에그머니 이게 무엇이오?

만 석 헛허.... 그게 무슨 뼉다귀인지 알아보아라.

월 선 이건 쇠뼉다귀 아니오니까이 무슨 장난이....

만 석 아니다 그건 사람뼉다귀니라!

월 선 에그머니사람뻑다귀라니?

(새파랗게 질린다.)

만 석 : (침착히하나는 양반뼉다귀요 하나는 쌍놈뼉다귀인지 어느것이 양반 뼉다귀인지 알아 맞춰 보아라!

월 선 : (새파래서이게..... 무슨짓이오니까?

만 석 이년!

(순간 만석의 얼굴이 험악해지며 월선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만 석 우리가 누군줄 아느냐이년네년이 언제부터 양반의 뼈다귀만 알았 기에 천한놈이 지난 자리를 돌아다니느냐?

(호령이 추상같다.

자지러지는 월선)

만 석 칠천이라기 기생은 천한년 아니고 고귀한 신분인줄 알았더냐 이년!

월 선 : (새파래서아이구.... .....살려주시와요.

용 팔 : (히죽웃으며살려주기야 하겠지만 이년 양반의 살맛만 봐 왔으니 이 젠 쌍놈의 살맛도 봐야 하느니라.

(벌떡 일어나 월선의 옷을 쫙 찢어 던진다.

알몸이 들어나는 월선)

칠 성 : (뜻있게 웃으며이년한테 내가 수모를 당했으니 내가 먼절세

(히죽 웃으며 끄덕이는 용팔)

칠 성 : (술한잔 쭈욱하고가자 이년!

(벌거벗은 월선을 끌고 장짓문 격한 옆방으로 끌고 간다.

묵묵히 술잔드는 만석

킬킬 웃는 용팔)

용 팔 : (웃으며여보게

만 석 ?

(뼈다귀 하나 들어 보이며)

용 팔 이걸 저년의 게다가 쿠욱어떤가힛히.....

만 석 빌어먹을 녀석....

(킬킬킬 웃는 용팔

옆방에서 툭탁거리는 소리 들리다가)

칠 성 : (소리네년은 천한년 아니냐네년두 양반이더냐?

월 선 : (소리) .....

칠 성 : (소리무어네가 양반이야?

월 선 : (소리) (숨차면서).....실은 가난한 선비의 딸이었는데..... 거간꾼 김진사 에게 팔려서 ....... 아일 무거......

(술잔들다 문득 고개를 드는 만석)

만 석 : (입속으로)....거간꾼 김진사

(무언가 짚이는 생각에 잠기는 얼굴에서)

( F. O )

 

S# 46 성벽 아래 ( F. I )

 

(각설이패들을 모아놓고 마주선 만석)

만 석 : ....들으니 거간꾼 김진사라는 자가 그런 여인네들을 사다가 멀리 팔아 먹는다던데

각설 1 : 그렇습죠 참

각설 2 : 고걸 생각 못했단 말여!

 

S# 47 주막거리

 

(납작한 기와집이 줄지은 주막거리

각설이1가 패랭이 쓴 녀석을 끌고 부지런히 온다.)

 

S# 50 어느 주막 안

 

(왁자한 주객들의 소음

한쪽 평상에 커다란 삿갓쓰고 술잔을 기울이는 만석

다가서는 각설이와 패랭이)

만 석 : (반기듯아 오셨오?

패랭이 이 양반이오?

각설이 

(기대에 찬 만석의 눈동자)

패랭이 돈은 있소?

만 석 글랑 염려마슈!

(허리를 헤쳐 보인다.

두둑한 돈전대)

패랭이 갑시다!

(왠지 떨리는 가슴 진정하며 따라나서는 만석)

 

S# 51 김진사집 뒷문

 

(산밑 으슥한 구석에 커다란 낡은 기와집

높은 뒷단 한쪽에 조그만 쪽대문

패랭이의 뒤따라 부지런히 걸어오는 만석

문을 두드리는 패랭이

조그만 쪽문이 열리고 얼굴만 쏙 내미는 하인

한사람-)

하 인 누구여?

패랭이 날세 열게!

하 인 저 사람은 누구여?

패랭이 강원도에서 온 유참봉이라구 나하곤 이종 사촌간일세

(삿갓 깊숙히 쓰고 서성대는 만석)

 

S# 52 뒷뜰

 

(여기저기 서너패 인신매매 상인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패랭이와 들어서는 만석

패랭이 여기저기 아는채 한다.

쓰윽 둘러보는 만석

저쪽에 커다란 광이 덩그렇게 서있다.

이윽고 김진사가 문서보따리를 든 하인과 함께 나온다.

광쪽으로 간다.

어슬렁 따르는 상인들)

 

S# 53 광 안

 

(어둑한 광속

한쪽 벽으로 기다란 마루가 깔려있고 거기 쭈욱

늘어서 혹은 앉고 혹은 누어있는 이삼십명 여인들

절그럭거리는 열쇠소리

여인들 또 왔구나 하는 듯 천천히 일어선다.

머리를 쓰다듬는 여인

옷매무새를 가꾸는 여인

열대여섯부터 사십대까지 각양각색이다.

쫙 열리는 광문

우루루 김진사를 선두로 들어서기 시작하면 저쪽 어두운 구석에

힘없이 일어나는 여인 한사람

숙영 눈치를 보며 마루기둥에 얼굴을 부딛는다.

눈두덩에 딱지앉은 상처가 다시 터지며 피고름이 흐른다.

누가 봐도 보기흉하고 쇠약해서 팔려갈 것 같지 않다.

어슬렁 들어서는 상인들

무슨 짐승이라도 감정하듯 하나 하난 감정하며 지나간다.)

상인 1 : 이건 몇살이냐?

하 인 열여섯이오

상인 2 : 저쪽 두 번째 있는 계집은 ?

하 인 열여덟이오.

상인 2 : 웃저고리를 벗겨봐라.

(웃저고리를 벗기는 하인

살이 피둥피둥 쩠다.)

상인 1 : 오십냥 놨다.

하 인 소 한 마리 값은 받아야 합니다.

상인 2 : 돼지 한 마리 값은 더 얹었다.

김진사 : (저쪽에서좋다 그 값에 해라!

상인 1 : 종문서나 만들어라

(척척 흥정이 오간다.

만석은 그들 뒤에서 삿갓 깊숙히 쓰고 숙영을 찾기에

정신이 없다.)

패랭이 없소?

만 석 안 보이네!

(초조한 듯 여기저기 눈길 돌린다.

장사는 무르익어 가는데

패랭이와 함께 조심스레 나아가던 만석이 순간 -)

만 석 !

(가느다란 부르짖음과 함께 바라보는 그 앞엔 피를 흘리며

멍청히 허공을 바라보는 숙영의 모습

가슴에 콱 뜨거운 것이 치미는 모습

그 여윈 모습상처난 얼굴-)

패랭이 저거요?

(대답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만석)

패랭이 : (성큼 다가오며너 이리 내려와 봐라!

(순간 공포에 질리는 숙영의 눈동자

두려운 눈길로 패랭이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내려서면-)

패랭이 몇살이냐?

하 인 스물이오.

패랭이 고갤 들어 보아라.

(살며시 고개를 드는 숙영

순간 콱 얽히는 두 사람의 시선

무서운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는 그날밤 그 남자)

하 인 돌아서 봐라!

만 석 아니 그럴 것 없소!

(가슴이 찡해지는 만석

형헌할 수 없는 눈길로 마주보은 그 얼굴위에 -)

패랭이 : (소리소한마리값 놨다!

김진사 : (소리허 그 안팔려가더니 이제야 팔리네.

하 인 : (소리종문서를 만들깝쇼?

패랭이 : (소리그래라?

 

S# 54 백정촌 밤 )

 

(용팔 쇠고기를 한 아름 둘러메고 싱글벙글 치달아 올라간다.)

S# 55 외딴집 밤 )

 

(산벌 외딴집

굴뚝에 연기가 오른다.

어둠을 헤치고 올라서는 허노인)

허노인 : (조그맣게만석이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는 만석)

허노인 옛네이거 다려 먹이게!

(한다발의 약초뿌리를 내준다.

벙글 웃고 받아드는 만석)

허노인 그래 지금 누워있나?

만 석 !

허노인 아니 무슨불을 그리 쳐때나?

(씽긋 웃는 만석

이때 쇠고기 메고 온 용팔 마루위에 철썩 놓으며)

용 팔 예라 싫컨 먹여라 인석아!

허노인 인석아 좀 조용해라!

용 팔 : (꿈쩍해서 조그맣게자구 있나요?

허노인 그렇다네!

(살금살금 물러서는 용팔

공연히 좋아 벙글대는 만석)

 

S# 56 방 안 밤 )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랫목 이불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숙영

눈길은 멍하니 천장을 본다.

지겟문 조심스레 열리고 약그릇 들고 들어서는 만석

엉거주춤 일어나는 숙영)

만 석 : (얼핏아 그대로 누워계시오.

(머리맡에 약그릇 밀어넣는 만석

방안에 고즈넉한 침묵이 흐른다.

멀리 부엉이가 운다.

만석 허리춤을 뒤지더니 종문서를 꺼낸다.

숙영앞에 슬그머니 밀어주며)

만 석 이거...... 종문서......

(숙영의 눈길이 오르르 떨린다.)

만 석 아무뜻도 없소그냥 임자께 사죄하는 뜻으로 드리는 게요.....

그날밤 내 정말 몹쓸짓을 했오!

숙 영 : ......

만 석 난 백정중에도 백정놈이오우리 아버지란 위인이 상한 쇠고기를 잘못 알고 양 반댁으로 들고 갔다가 볼기맞어 죽었소난 그때부터 양반이라면 이를 갈고 원 한을 품었소 그래서 망나니가 돼서 양반들의 목을 뎅겅뎅겅 잘랐소.

숙 영 : (놀란 듯)......

만 석 그런데 난 양반에게서 존댓말을 들어보긴 낭자가 첨이였소......

그런 몹쓸짓을 했는데도 낭자는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고 했소난 그때부터 낭 자께 사죄해야 다고 생각했소이것 받으시구 예서 몸조리 하시구..... 일가 친 척이라도 찾아가 편히 사시오.

(하더니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숙 영 : ......

 

S# 57 마 당 밤 )

 

(조심스레 나온 만석

마루끝 문설주에 큰칼을 소리안나게 거꾸로 건다.

악귀야 물러나란 듯 휘휘 두어번 손을 내젓더니 모깃불 짚혀논 마당에 멍석을 깔고 벌렁 눕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별도 총총하다.

부엉이가 운다.

빙그레 웃음짓는 만석)

( F. O )

 

S# 58 만석의 집 전경 ( F. I )

 

(숲속에 외딴 오막살이 초가집 아침 햇살이 비쳐온다.)

 

S# 59 마 당

 

(부엌에서 삐쭉이 고개를 내미는 만석

방문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서)

만 석 : (안에대고기침 하셨오?

(안에서 바스락 조용히 옷깃 스치는 소리)

만 석 내 밥상 갖고 오리라.

(벙글벙글 부리나케 부엌으로 간다.)

 

S# 60 방 안

 

(옷깃 여미며 어쩔줄 모르는 숙영

벌컥 문 열리며 커단 밥상을 안고 싱글벙글 들어서는 만석

이걸 어쩌나하듯 당황하는 숙영)

만 석 자아어서 드시오홀아비 솜씨라 허허...... 이거......

(밥상위에 시선 머물자 더욱 놀라는 숙영

갈비 불고기 육회 선지 산더미 같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그만 웃음이 터질뻔하는 숙영)

만 석 : (벙글벙글허허..... 이거허허..... 이거!

(뒷통수를 긁는다.

억지로 웃음을 참는 숙영)

만 석 허허.....숭보지 말구 어서 좀 드시오!

(수저를 잡아주며 강제로 권한다.)

만 석 : (기대어 차서어떻소맛이......

숙 영 : .......

만 석 자실만 하오?

숙 영 : (가늘게) .....

만 석 : (벙글벙글허허....됐오 됐어그걸 많이 드시오!

숙 영 : .......

 

S# 61 마 당

 

(공연히 싱글벙글 마당으로 내려서는 만석 갑자기 뒤에서)

뚜루루 ......엇쇠 엇쇠물러가라 검신님이 노하신다화신님이 노하신다패가 망신 대들보 귀신아물러가라 엇쇠 엇쇠!

(머리풀어 산발하고 미친년처럼 뛰어드는 무당 가슴 섬칫해지는 만석)

 

S# 62 방 안

 

(더럭 겁이 나는 숙영파랗게 질려 동정을 살피면)

 

S# 63 마 당

 

무 당 엇쇠이놈의 귀신 어디와서 홀리느냐감히 누구를 홀리느냐물러가라 사천 왕 예계신다주석철퇴 높이 든다두 귀에 방울달고 달강달강 떠나거라 벼락 같이 떠나거라,

(방문앞에 소금 휘휘 뿌리며 개거품을 물고 돌아 간다.)

만 석 : (버럭이년나가지 못해?

무 당 : (멍해서?

(뻔히 보다가)

무 당 씌웠구나씌웠어눈깔이 노랗게 잡귀가 붙었구나!

만 석 뭣이 어째이년!

(왈칵 멱살을 거머쥐고 밀어던진다그대로 푹 고꾸라지는 무당.

주르르 피 흐르는 입살기어린 눈동자)

무 당 미쳐두 더럽게 미쳤구나백정놈이 제분수를 알아야지 임자를 누가 여직 지켜줬는데그래 인제와서 나를 버려두구 보라지 흥두구 보라지!

만 석 아 안갈티여?

(눈 부릅뜨면 무서워 쫓겨가는 무당,)

무 당 두구 보라지두구봐인제 몇천억겹 잡귀들이 우루루 붙어서.....

(이를 갈며 내려가는 무당소름 까치는 악)

만 석 미친년 다 보겠네 검신님이구 화신님이구 올테면 와보라지

(떠억 버티고 서있는 만석정말 올테면 와보라는 그런 자세다.)

 

S# 64 방 안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숙영.

웬지 한없이 고맙기만 한 얼굴)

 

S# 65 상 가

 

(어물전 직물전 즐비한 상가어느 포목 가게 앞에 선다.)

만 석 그 치마 한감 끊어주슈.

상 인 네 네.....

만 석 저고리도 한감

상 인 네 네......

(척척 끊어준다돈을 치루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만석.

다음 집에서 고무신을 한 켤레 사들고 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

상인 1 : 저게 수구문 밖에서 목을 치던 망나니 아냐?

상인 2 : 그래그런데 치맛감이 웬일여.

상인 1 : 장갈 들었나?

상인 4 : 아니 저거한테두 시집갈 년이 다 있냐?

상인 1 : 참 별일 다 있네.

 

S# 66 만석의 집 마당

 

(조그만 보퉁이 들고 들어서는 만석 의아해 둘러본다.

마당 여기저기 숙영의 치마 저고리가 빨래해서 널려있다.

만석 빙그레 웃음 짓는다.

두리번 두리번 숙영을 찾는다.)

 

S# 67 방 안

 

(방문 벌컥 열리며 만석의 얼굴이 나타난다.)

숙 영 에그머니!

(수줍은 듯 얼핏 앞가슴을 여민다.

그러구보니 커다란 만석의 훗바지 저고리를 걸치고 있다.)

만 석 허허 그 옷 장히 좋소!

(상처가 만힝 아물은 숙영의 얼굴

커단 만석의 옷이 더욱 고혹적으로 어울린다.)

만 석 빨래를 했군 그렇지 않어두 여기 옷감을 사왔는데.....

숙 영 : ........

(너무 고마워 눈물이 핑도는 숙영의 얼굴)

 

S# 68 백정촌 마을 안

 

(풍각소리 요란하게 덮치며 신나는 축제

백정촌을 찾아온 남사당패의 춤이 신명나게 돌아간다.

둘러서서 싱글벙글 구경하는 백정촌 사람들

그틈에 끼여서 구경하는 만석과 숙영

숙영의 입가에도 살포시 웃음이 흐른다.

재주를 넘는 사람춤을 추는 사람

쟁반늘 들고 돌아가는 총각 한녀석

엽전을 던져주는 사람들

만석도 아끼지 않고 한웅큼의 엽전을 넣어준다.

풍각소리 더욱 신명나면서 시작되는 탈춤

슬며시 없어지는 만석

숙영 어디갔나하듯 찾아보다가 다시 구경에 여념이 없다.

우스꽝스런 탈이 우쭐우쭐 다가와 춤을 추며 돌아간다.

웃는 사람들

웃는 숙영

웬일인지 숙영의 코앞에 대고 탈이 자꾸 춤추며 다가온다.

웃으며 물러서는 숙영

짖궂개 다가오는 탈바가지

그러다가 불쑥 탈을 벗어던지면 만석의 얼굴이 나타난다.)

숙 영 아이!

(와르르 웃는 사람들)

 

S# 69 만석의 집 앞

 

(아직도 희열에 젖어 집으로 들어사는 두 사람)

 

S# 70 산 둥 성

 

(저어 아래 만석의 초가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둥성이 몸을 숨기 고 바라조는 사내 한 사람이윽고 굽어보다 소리없이 자리를 떠 돌아 서는 그 사람은 아그 옛날 숙영의 집 하인 삼용이가 아닌가웬일 인지 천천히 숲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 F. O )

 

S# 71 만석의 집 전경 ( F. I )

 

(밝아오는 새벽

참새떼가 시끄럽게 재잘거린다.

방안에 조용히 바스락거리며 일어나는 소리)

 

S# 72 방 안

 

(숙영 살며시 일어나 돌아않아 속적삼을 걸친다.

만석의 손이 슬며시 뻗어와 팔을 잡는다.

놀란 듯 돌아보는 숙영

빙그레 웃으며 은근히 잡아당기는 만석

부끄러운 듯 쓰러지며 다시 안겨드는 만석

힘있게 끌어안는 만석

숙영의 예쁜 몸매를 만석의 손길이 더듬어 내려 가면-)

숙 영 아이!

(더욱 부끄러워 파고든다.

이때 밖에서 작은 기침소리)

만 석 : (포옹을 풀며거 밖에 누가 왔소?

밖에서 !

(만석 주섬 주섬 일어난다.)

 

S# 73 마 당

 

(각설이 한녀석 머뭇대며 서있다.

지겟문 열리며 얼굴 내미는)

만 석 어 자네 웬일인가?

각설 1 : 저어 일전에 김규수님 자당어른의 소식을 알아 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만 석 : (후딱 나오며오 그래 알아봤나?

각설 1 : (머뭇대며.....

만 석 : (안에대고임자 어머님 소식을 알았다오.

(그 소식에 뛰어나오는)

숙 영 아니 어머님 소식을그래...... 어디 있답디까?

(기쁨과 기대가 가득찬 얼굴)

각설 1 : 근데 그게.....

(머뭇거린다.)

만 석 아 어서 말해보게.

각설 1 : .....강유진대감댁 앞을 며칠씩 망을 보고 있었죠.

만 석 응 그래서?

각석 1 : 근데 벌써 나갔다는 겁니다.

만 석 나갔다니 어디루......?

각설 1 : 글셉쇼..... 벌써 오래전에 자당분께선 가진 고문을 당하시구 어느날 하인 등에 업혀서 나갔다는 겁니다.

숙 영 !

(흐느껴 운다.)

만 석 그래 어디루 업혀가신 줄 모르나?

각설 1 : (더욱 머뭇거리며그런데 그게.....

만 석 : (다구치듯근데 뭐?

각설 1 : 이상하게도 그댁에서 닷새에 한번씩 저 염병막으로 음식을 나른다는 겁니다요.

만 석 : (흠칫해서염병막?

숙 영 : (경악해서아니 염병막이라뇨?

(그 어떤 무서운 예감이 번져가는 만석의 얼굴에서)

 

S# 74 염병막 부근

 

(숙영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오는 만석

무서운 불안에 오들오들 떨며 따라오는 숙영

저만치 염병막이 나타난다.

더러운 거적으로 움막같이 뒤엎은 염병막

벌써 퀴퀴한 냄새가 풍겨온다.

두 사람 멈춰 선다.)

만 석 : ......

숙 영 : ......

(불길한 예감

떨리는 가슴

만석 천천히 수건을 꺼내 입에 물면서)

만 석 임자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소!

(겁먹은 눈길로 바라보는 숙영

만석 수건 입에 물고 천천히 다가간다.)

 

S# 75 염병막 안

 

(썩은 거적을 들치며 슬며시 들어서는 만석

확 풍기는 더운 열기

코를 찌르는 썩은 악취

이구석 저구석에서 들리는 숨넘어가는 신음소리

부패해 꺼져가는 송장들

딩구는 해골

두리번거리는 만석

거적을 들치고 따라 들어서는 숙영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공포에 흡뜬 눈으로 둘러본다.

그때 폐부를 찌를 것 같은 숙영의 비명이)

숙 영 아 악 어머니

(미친 듯 뛰어들려는데 꽉 붙잡는 만석)

숙 영 ...... 어머니 어머니....

(몸부림치며 바라보는 저 구석에 죽은 듯 누워있는 한 사람의 여인

상처투성이 얼굴이 반쯤은 썩어가고 있는 틀림없는 숙영의 어머니다.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만석)

숙 영 어머니 어머니이게 웬일이세요어머니놔요놔요!

(고개를 들수 없는 듯 힘없는 눈길로 바라보는 숙영모-

썩어가는 뺨으로 한가닥 눈물이 -

그리거 가까이 오지말라고 천천히 손을 젓는다.

미친 듯 울부짖는 숙영

만석 이래선 안되겠다는 듯 숙영을 마구 끌고 나간다.

오면 안된다고 손만 조용히 허우적거리는 숙영모

흐르는 눈물

어깨 한쪽은 완전히 썩어 질퍽 물이 고여 있다.

만석 우악스럽게 숙영을 안고 나간다.

마구 발버둥치는 숙영)

 

S# 76 염병막 밖

 

(숙영을 안고 나오는 만석

발악하듯 울어대는 숙영)

숙 영 날 좀 놔줘요제발 놔줘요...... 어머니 어머니!

만 석 : (크게안돼어머니는 인제 죽는 사람이오 진정하고 내 말 들어요.

숙 영 안돼요안돼요!

만 석 : (마구 흔들며들어가면 병이 옮아어머니는 죽은 사람이오 말을 들어요!

(만석도 피잉 누물이 감돈다.)

숙 영 어흐흑!

(무너지듯 쓰러져 운다.

씩씩 숨결 거칠게 서 있는 만석

붉어진 눈자위

순간 숙영이 벌떡 일어나 만석을 붙들고 울며 애원한다.)

숙 영 차라리...... 차라리 어머니를 죽여 주어요.

만 석 : ....?

(흠칫하는 눈꼬리)

숙 영 : ...저렇게 며칠을 더 사실바에는 .... 차라리 죽여 드리는게 더 낫지 않아요?

하루를 더 사시면 하루가 더 고통이 아니어요?

만 석 ......

(깊은 신음)

숙 영 : (마구 울며어머니도 그게 소원일 꺼예요저도 소원이구요!

자아 여기 이걸루!

(허리춤의 은장도를 꺼내준다.

받아들며 침통히 생각에 잠기는 만석)

숙 영 어서소원예요어서!

(순간 휙 염병막 안으로 뛰어드는 만석)

숙 영 아 어머니!

(쓰러져 땅을 치며 통곡한다.

잠시후 염병막 거적이 들쳐지며 천천히

나오는 만석

그 손에 들려진 피묻은 장두칼을 보고)

숙 영 으윽...... ..... .....

(기어이 가물 가물 기절하고 만다.

침통히 우뚝 서서 굽어보는 만석

그 눈에 핑 감도는 굵음 눈물방울

조심스럽게 아내를 부축해 둘러메고 간다.

주먹으로 눈물을 북 닦는다.

축 늘어진 아내를 메고 울며 걸어간다.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운다.)

( F. O )

 

S# 77 백 정 촌 ( F. I )

 

(백정촌 한가운데 또 다시 그득히 쌓인 소가죽)

보부상1: 몇장인가?

백 정 일흔장일세

보부상1: 이번두 선금만 받게나.

(이때 뒤에서)

(소리) : 선금은 필요없소!

(성큼 성큼 걸어오는 만석의 모습

의아한 보부상과 백정들

만석 보부상패들을 쓰윽 훑어보며)

만 석 자네들이 이걸 사다가 저 용인마을 갓바치들에세 되넘겨 파는데 얼마씩 남나?

보부상1: 건 왜?

만 석 그 장세 내가 함세!

보부상2: 뭐이?

만 석 내가 돈이 좀 급해 허니 이제부터 이 장사는 내가 맡어 함세

보부상1: 아니?

(어이가 없지만 허나 할말이 없다.)

만 석 : (백정들을 보며자네들도 의의없지?

백 정 아 물론 만석이가 한다면야!

만 석 그럼 됐네!

(씽긋 웃는다.)

 

S# 78 강 가

 

(강가 넓은 갈대밭 길.

만석소달구지를 끌고 온다.

소 가죽이 잔뜩 실려있다.

땀을 씻는 만석.)

 

S# 79 갈대 밭

 

(키넘게 자란 갈대밭속에 웅크리고 모여있는 십여명의 보부상패들.)

보부 1 : (작게온다!

보부 2 : ? (둘러보며아주 깨끗이 해치워야 하네놈이 뚝심도 있거던!

(단단히 허리끈을 졸라매는 보부상패들.

가까이 오는 만석의 소달구지.)

보부 1 : 나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제히 내닫는 보부상들.)

 

S# 80 모래사장

 

(우루루 몰려나와 삽시간에 만석을 에워싸는 보부상들.)

만 석 ?...

(문득 긴장해 둘러본다.)

보부 1 : 네놈 우리 보부상들의 맛 좀 보아야겠다!

만 석 뭣이?

보부 1 : 싫으면 그 소가죽을 놓고 돌아가거라증뿔나게 나서지 말고.

만 석 : (눈꼬리 치뜨며그러고보니 네놈들 이득이 엄청 난게로구나.

보부 2 : 잔말말고 물러나지 못할까?

만 석 그렇다면 더욱 물러날 수 없다이놈들!

(쩌렁 울리는 호령.

포위망을 좁혀드는 보부상들.

몽둥이를 든 자.

비수를 꺼내는 자.

천천히 백사자을 자리를 옮기며 무섭게 쏘아보는 만석의 눈길.

“ 옛끼 이놈! ”

한놈의 몸을 날려 덤벼든다.

퍽 복장을 걷어차는 만석.

단번에 꺼꾸러지는 놈 피를 토한다.

때를 같이하여 이곳 저곳에서 덤벼드는 놈들.

넓은 강가 백사장에 처참한 싸움.

치고 받고 차고 던지고....

철퇴같은 만석의 주먹이 나루고 호령이 떨어지는 곳에-

퍽 코피가 터지고 눈알이 빠지고 맥없이 쓰러지는 놈들-

만석의 어깨에 떨어지는 몽둥이.

허나 몽둥이만 부러지고 끄떡없는 만석.

한동안 혼전이 벌어지고

피투성이 되서 쓰러지는 놈들.

나머지 서너명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며)

만 석 핫하.... 똥같은 녀석들....

(장판교의 장비처럼 호쾌하게 웃어댄다.)

( O . L )

 

S# 81 언 덕

 

(숙영언덕에 올라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순간 얼굴이 환히 밝아온다.

저 아래 빈 달구지를 끌고오는 만석의 모습.

숙영함빡 웃고 달려 내려간다.)

 

S# 82 계곡 아래

 

(달구지 끌고오던 만석문득 멈춰선다.

뛰어오는 숙영의 모습.

빙그레 웃는 만석.)

숙 영 : (달려와아이이제 오세요?

(원망섞인 목소리.)

만 석 아니 몸을 생각할 사람이 이렇게 뛰면 어쩌나뱃속의 애기가 놀라요.

(그 소리에 그만 수줍어 하는 숙영.)

만 석 일찍 온다는 게 그만... 자아이보라우.

(허리의 돈전대를 보여준다.)

만 석 이번길에 오백냥이나 남었네... 보부상놈들이 순 도적놈들이지.

숙 영 그래두 이틀씩이나.... 전 무서워서 혼났어요.

만 석 허허무섭긴... 어린애같이...

(밝은 햇빛아래 수줍게 웃는 숙영의 얼굴.

너무나 아름답고 고속적인 모습이라 지그시 쏘아보는 만석.)

숙 영 : ...왜그리 보셔요?

(짓궂게 바라보는 만석.

그만 부끄러워 몸을 움추리는 숙영.

순간 허리를 끌어안는 만석.)

숙 영 에그머니!

(두팔에 번쩍 안아드는 만석.

두리번 거린다.

저 아래 개울가 으슥한 숲속이 있다.

성큼성큼 내려가는 만석.)

숙 영 에그머니놓셔요.

(허나 빙글빙글 놓아줄 줄 모르는 만석.)

 

S#83 숲 속

 

(졸졸졸 개울소리.

숲속에 아내를 눞히는 만석.

무조건 저고리를 헤치며 덤벼든다.)

숙 영 에그머니무슨 짓이어요누가 보면 어쩌려구.

(발버둥치지만 연신 빙글대며 놓아줄 줄 모르는 만석.

새하얀 살결이 햇빛에 드러나고 숙영도 부끄러워 만석의 품속을 파고들면)

만 석 시체막으로 갈 걸 그랬지?

숙 영 아이.

(가슴을 때린다.)

만 석 하하....

(이윽고 거친 숨소리 숲속에서 들려오면-

길가에 버려진 소달구지.

움머황소가 흉보듯 길게 운다.)

( F . O )

 

S# 84 백정촌

 

( F . I

용팔큰 칼을 들고 부리타케 걸어 올라간다.

약간 볼멘 표정이다.)

 

S# 85 만석의 집 안

 

(집안에 허허대는 만석의 웃음소리.

캐득캐득 거리는 애기 웃음소리.

카메라 팬 다운 하면

마루에 누워서 두 다리 버둥거리는 애기.

C . U 되는 조그만 부랄.

그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만 석 허허... 고놈의 부랄-

(애기 부랄을 톡톡 건드리며 연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이 때 뒤에서)

용 팔 인석아아들 없는 놈 샘나서 어디 살겠냐?

만 석 네놈도 내 나이 돼봐라자식 귀한 줄 알테니

용 팔 전석 어른보고 농하네!

(부엌에서 나오던)

숙 영 오셨어요?

(상냥히 인사하면)

용 팔 저놈 아들 재세에 어디 살맛 납니까?

숙 영 : (살폿 웃으며글쎄온종일 저렇게 안나가시구...

만 석 : (그제야왜 왔나?

용 팔 금부에서 찾네!

만 석 또 어느 양반이 모함을 받았나?

(하며 어슬렁 일어난다.

숙영무어라 만류하려다 그만두고 만다.

큰칼을 찾아들고 내려서던 만석.)

만 석 인석갔다오마!

(애기 부랄 또한번 건드려보고 용팔과 함께 나간다.)

 

S# 86 산등성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곳에 만석과 용팔 나란히 나온다.

산등성이에 숨어보던 삼용.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S# 87 형 장

 

참형!”

(기다란 목소리.

염불소리 시작되면서

큰칼 춤추며 나오는 용팔.)

만 석 ?

(소스라치게 놀란다.

거기 얼마나 매를 맞았을까?

터지고 으깨진 피투성이 수성이가 말뚝에 매여있지 않은가?)

만 석 아니 자네?

(피멍이 든 눈망울을 이윽히 떠서 바라보는 수성.

분하고 원통한 온갖 사연을 하소하듯 바라본다.)

만 석 : (다그치듯웬일인가?

수 성 : (피잉 눈물고이며) ....그 양반놈을 죽였지.

만 석 죽이다니?

수 성 마누라가 말을 잘 안듣는다고 발길질을 마구하고 벌거벗은 몸에다 회초리질을 하

기에 하도 분하고 원통해서....

(주루룩 눈물 흘리면-)

만 석 ....

(목구명에 뜨거운 것이 치솟는다.)

뒤에서 빨리 참하라.

수 성 : (웃으며)....어서 베이게.... 자네 칼에 죽으니 그래도 기쁘이...

만 석 : (무섭게 굽어볼 뿐)....

수 성 백정의 뼈다귀... 죽는 게 차라리 속 편하네만...... 두고가는 자식들이 흑흑.....

(고갤 떨군다.)

뒤에서 뭐하는거냐빨리 참수하라!

(와락 뜨거운 눈물 치솟는 만석.

서서히 칼을 치켜든다.

와들와들 떨리는 칼날.

순간 두 눈 꽉 감고 힘껏 내려치면

힘없이 툭 꺽어지는 수성의 몸체.

서서히 뻗어가는 그 허리춤에서 스르르 떨어지는 때묻은 피리-

지그시 굽어보는 만석의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가다가-)

 

S# 88 만석의 집 마루 ()

 

(가슴에 분노 억누른 채 어두운 허공을 바라보고 앉은 만석.)

만 석 : (토하듯백정놈은 살지말라는 그런 세상이오!

숙 영 : ......

만 석 나야 망나니지만.... 저거야 무슨 죄가 있겠소저 녀석두 백정이란 말이오저놈두

목 베는 일을 시켜야 한단 말이오?

(흐느끼는 숙영.

이 때 밖에서 조심스럽게 들리는 헛기침 소리.)

만 석 거 누구요?

소 리 저올시다.

(싸릿문 밀치며 슬며시 들어서는 삼용.)

만 석 : (놀래아니당신은?

숙 영 : (놀래아니삼용이 아냐?

삼 용 아씨....

(와락 달려들어 넙죽 절을 한다.)

숙 영 이게 웬일이냐이게.....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삼 용 실은 그간 쭈욱 숨어 살아왔습니다요아씨 마님!

숙 영 숨어살다니?

삼 용 실은... (둘러보며백부되시는 김치삼 대감께서 시골에 은신해 계십니다요.

숙 영 : (더욱 놀라무어큰 아버지가 살아계셔?

만 석 아니그 정승판서를 지내셨단 분 말인가?

삼 용 .... 헌데 실은...

(또 둘러본다.)

만 석 아니 왜?

삼 용 실은....

숙 영 어서 말을 해봐!

삼 용 실은... 지금 대감님과 함께 찾아왔습니다요.

숙 영 무어?

만 석 아니무어?

삼 용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어둠속으로 휭하니 나간다.

와락 그 어떤 두려움이 앞서는 숙영.)

만 석 아니정승판서를 지내셨다는 분이 우리집을 다 오시다니...

(너무도 황송하고 두려워 어쩔 줄 모른다.

삼용의 안내로 들어서는 김치삼 대감.

방갓 깊게 드리우고 사람의 눈을 피하듯 조심스레 들어서는 모습.

그만 얼결에 그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는 만석.)

김대감 허허... 자넨가?

(허연 수염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는다.

너무도 황송한 만석.)

김대감 숙영인 넌 왜그러고 섰냐?

(멍하니 선 채 바라보는)

숙 영 : (입속으로...부님이...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이 짙게 드리우는데)

김대감 헛허.... 왜 그러구 섰는게냐헛허....

(빙그레 웃는 모습 길게 잡아서-)

( F . O )

 

S# 89 만석의 집 전경

 

( F . I

새벽-

아직 먼동이 트기도 전인데 조심스럽게 열리는 싸릿문.

소리없이 살며시 나가는 만석.)

뒤에서 저 좀 보세요.

(흠칫하는 만석.

어느결에 따라나온 숙영.)

만 석 : (어색한지난 자는 줄 알았지.

숙 영 : (차근히이렇게 묻는 것이 도리 아닌 줄 아오나... 지금 어디가는 길이셔요?

만 석 : (우물쭈물아니 뭐.... 누가 소잡을 일이 있다하길래...

숙 영 백부님 만나러 가시는 건 아니시죠?

만 석 : (펄쩍아니여!

숙 영 어젯밤 백부님이 무슨 별다른 말씀 없으셨죠?

만 석 ... 아니여.

숙 영 숨기시면 안돼요.

만 석 .... 아니래두.

(우물쭈물 내려간다.

그 뒷모습 이윽히 지켜보는 숙영.

어쩐지 자꾸 불안하기만 하다.)

 

S# 90 산 길

 

(치달아 올라가는 만석.)

 

S# 91 어느 정자

 

(멀리 시원한 강이 보이는 숲속에 외따른 정자.

수염이 허연 양반님네 서넛이 둘러앉아 누군가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김대감 올때가 지났는데....

(이 때 숲속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만석.)

김대감 오는구먼.

(정자 아래 읍조리는 만석.)

김대감 왔느냐이리 올라오너라.

만 석 : (황감해소인이 어찌 감히...

김대감 괜찮으니라어서 올라오너라.

(쭈볏 쭈볏 읍한 채 올라서는 만석.

그 우람한 체구를 감탄하듯 지켜보는 양반님네들.)

김대감 여기 큰절 드려라형조참판을 지내셨던 서기호 대감이시니라.

(넙쭉 큰 절을 드리는 만석.)

김대감 이쪽두..... 도승지를 지내신 윤삼륙 대감....

(돌아가며 절을 올리는 만석.

끄덕끄덕 수염을 쓸어내리는 양반들.)

김대감 내 어젯밤두 자네에게만 은밀히 얘기했네만 우리들이 이렇게 다시 힘을 모아 상감

을 뫼시기로 했네..... 이미 상소문을 올리고 대궐네서도 내통이 있으니 이젠 다 된

성사나 다름 없네.

만 석 .

김대감 : (더욱 은근히그러니... 자네도 이젠 내 조카사위야!

만 석 : (몸둘 바를 몰라황감하신 말씀....

(고개를 끄덕이는 양반님들.)

김대감 내 조카딸을 그동안 그렇게 돌봐주었다니 나두 고맙네만.... 망나니 조카사위야 볼

수 없지 않은가?

만 석 : (가슴 철렁).....

김대감 내 이번에 다시 출세를 하면 자네에게 벼슬을 줘야겠네.

(그만 가슴이 벅차도록 고마운)

만 석 황감하옵니다황감하옵니다.

(꿇어 엎드려 넙쭉 절을 올린다.)

김대감 그래야 자네도 재 조카딸년과 한세상 떳떳이 살 수 있질 않은가?

만 석 황송하옵니다.

김대감 그러니... (둘러보며이리 가까이....

(만석을 끌어 당겨 그 귀에 대고 무어라 한참 소근거린다.

차츰차츰 그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하는 만석.

비장해지는 얼굴-

이윽고)

김대감 : ... 알았나?

만 석 잘 알겠습니다.

(끄덕이는 얼굴에 망나니 특유의 잔인스런 그림자가 짙어가다가-)

 

S# 92 강유진 대감댁 담장 ()

 

(교교한 밤-

뜰악에 벌레 소리.

강대감댁 높은 담장 넘어 스르르 올라오는 번쩍이는 큰 칼.

뒤이어 소리없이 올라서는 복면한 만석의 얼굴-

번뜩이는 눈동자.)

 

S# 93 강대감댁 안방 ()

 

(불꺼진 방.

비단금침 위에 네 팔개를 벌리고 코를 고는 돼지같은 강유진 대감.

그 곁에 모로 누운 이씨.

살며시... 살며시... 소리없이 열리는 장짓문.

들어서는 짚신.

번들거리는 복면의 눈동자.

큰 칼 아래로 늘어뜨리고 한발한발 다가서는 모습은

너무나 대담하고 너무나 태연하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강대감의 목줄기.

그 목줄기에 스르르 갖다대는 칼 끝.

지그시 굽어보는 만석의 눈동자.

한동안 그대로 굽어보다가

짚신 끝으로 툭 어깨를 건드리는 만석.

잠결에 끙하고 돌아눕다가 번쩍 눈을 뜨는 강대감.

지그시 굽어보는 복면 쓴 사내-)

강대감 : ............

만 석 : ...

강대감 ...

(순간 부쩍 힘을 주어 눌러버리는 만석.

....”

비명도 못지르고 퍼득거리는 사지.

그 때 퍼뜩 눈을 뜨는 이씨.

소스라쳐 악을 쓰려는데

가슴을 깊숙히 쑤셔박는 칼날.

두 팔 허우적거리다 쓰러지는 이씨.

그제야 천천히 칼날 뽑는 만석.

이불을 당겨 푹 뒤집어 씌워주고 지켜보는 만석.

이불 아래 개울처럼 흘러내리는 피.

그제야 천천히 물러나는 만석.)

 

S# 94 대청 앞 ()

 

(댓돌 아래 선뜻 내려서는 만석.

피묻은 칼.

때마침 모퉁이를 돌아오던 군졸 두명.)

군졸 1 : (놀란 듯... 뉘요?

군졸 2 : (복면을 보고아니당신 뭣하는 사람이오?

(순간 허공을 가르는 두 번 칼짓에 둔탁한 음향과 함께

굴러 떨어지는 네토막.

어둠을 달려 담장을 뛰어넘는 비호같은 만석의 모습.)

 

S# 95 수구문 앞

 

(왁자한 장사치들.

문안으로 들고나는 사람들.

칠성네 상두막 앞에 모여 웅성대는 상두꾼들.)

칠 성 거 쥐도 새도 모르게 자객이 들었다는군.

상수 1 : 여편네까지 죽였다며?

상수 2 : 끔찍허지.

(그 옆에 듣고있던)

용 팔 그깐놈 잘 죽였지.

 

S# 99 박치근 대감댁 대문 앞 ()

 

(대문 앞에 모닥불 지피고-

군졸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한쪽 어두운 담장아래 뛰어넘는 복면 쓴 사내용팔이다.)

소 리 : 누구냐?

소 리 웬놈이냐?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는 용팔.

씩 웃고 어둠속으로 냅다 뛰어 달아난다.)

소 리 자객이다!

소 리 잡아라!

(아우성 소리-)

 

S# 100 동 안채 ()

 

소 리 무어자객이 왔어?

(장짓문 벌컥 열리고 버선발로 나서는 박치근 대감)

박대감 어디냐잡았냐?

(소리치는데-

어두운 대청 기둥 뒤에서 큰 칼 들고 살며시 나타나는)

만 석 박대감이슈?

박대감 에쿠웬 웬놈....

(순간 바람을 가르는 큰 칼.

핏방울 퉁기며 댓돌 아래 구르는 두토막 몸뚱이.

그 때 건너방문 벌컥 열리며)

노 파 ...이놈내 아들을 죽이다니.....

(두 손 허우적이며 덤벼드는 노파.

그러나 용서없이 그것마저 두토막내고

휘익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만석의 모습.)

 

S# 101 만석의 집 마루

 

(두 다리 버둥대며 노는 애기.

그 곁에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만석.

소중한 보물인 양 부랄을 쓰다듬어 본다.)

만 석 엑키이놈 또 쌌구나!

(번쩍 안아든다.

캐득캐득 웃는 애기.

만석휘휘 둘러보더니 애기의 귀에 대고)

만 석 인석아너도 조금만 있으면 망나니 핏줄이 아니란 말여허허..

(이 때 들어서는 허노인.)

허노인 잘있었나?

만 석 허노인이 우리집에 왠일이슈?

(부엌에서 맞받아 쪼르르 나오는)

숙 영 제가 잠깐 만나뵙자 여쭈어서 오신거에요.

만 석 그래?

(숙영허노인을 끌고 뒷곁으로 간다.

어딘가 석연치 않는 만석의 표정.)

 

S# 102 홍대감댁 사랑 앞 ()

 

(불켜진 사랑방 방문 안에서-)

웬놈이냐?”

(벌떡 일어서는 그림자.

순간 퍽 내려찍는 만석의 그림자.)

으악!”

(또 하나 그림자 벌떡 일어나더니

만석을 붙들고 늘어진다.

아우성 소리.

걷어차는 만석의 그림자.)

자객이다!”

잡아라!”

(사랑방으로 몰려드는 하인들군졸들.

이 때 선뜻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복면 쓴 사내.

용팔이다.)

여기있다!”

잡아라!”

(용팔히쭉 웃더니 큰 칼을 휘두른다.)

!”

(피뿜고 넘어가는 놈.

쓰러지는 놈.

그 때 벌컥 문짝 차던지고 피묻은 칼 움켜쥐고 뛰어나오는 만석.

그 악귀같은 형상.)

으악!”

(무서워 피하는 놈들.

때를 같이 해 저쪽 큰 대문이 좌악 열리고

몰려드는 군사들.

만석과 용팔그 열려진 대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해간다.

휙휙 칼바람 일으키고 몇놈이 쓰러지고

마악 대문을 넘어서 내뛰려는데

용팔의 등줄기를 찌르는 창끝)

용 팔 !

만 석 왜그래?

용 팔 괜찮아.... 뛰세!

(칼바람 일으키며 어둠속으로 내뛴다.

감히 접근은 못하고 고함만 치다가 따르는 군졸들.)

 

S# 103 밤 길 ()

 

(내뛰는 두 사람.

순간 풀썩 고꾸라지는 용팔.)

만 석 아니용팔이!

용 팔 : ....틀렸네....

(그 등줄기에서 콸콸 흐르는 피.

질리는 만석.)

만 석 임마...

(울부짖는다.

가까워 오는 아우성소리.)

용 팔 어서... 내목을 베게.. 저놈들이 알면....수구문밖 망나니란걸 다 알테니...

만 석 임마!

(더욱 가까워 오는 아우성)

용 팔 녀석울긴...

(어쩔줄 모르는 만석)

용 팔 어서...

(하더니 제칼로 제 가슴을 푹 찌른다)

만 석 : (발을 구르며임마 용팔아...

용 팔 : ....까짓 ....백정놈의 목숨인데...

(고갤 떨군다.

저쪽 달려오는 발자국들

저기다!”

게 섰거라!”

만석 두눈 질끈감고 용팔의 목을 친다.

구른는 목을 안고 냅다 뛰는 만석

뛰어오는 군졸들)

S# 104 시체막 앞 ()

(용팔의 목을 안고 시체막을 뛰어가는 만석)

S# 105 시체막 안 ()

 

(와스슥 뛰어드는 만석

용팔의 목을 시체막 한구석에 숨긴다.

이 떄 바스락 하는 소리!

만석의 무서운 눈길이 휙 나르면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기는 두 그림자

휙 몸을 날리는 만석)

만 석 어떤 놈이냐?

(멱살을 잡아끌면

피묻은 손에 식칼을 들고 바들바들 떨고있는

문둥이 내외)

문둥이 ...문둥이 올시다.

만 석 여기서 뭘하구 있었지?

(험악한 눈 흡뜨면)

문둥이 간을...

(잠시 생각하던 만석용서없이 칼바람을 일으킨다.

비명도 못지르고 쓰러지는 문둥이 내외.)

만 석 : .....보았으니 할수 없다!

(험악한 눈초리.

용팔의 목을 다시한번 잘 감추고 어두운 시체막을 급히 빠져나간다.)

 

S# 106 뚝 길 ()

(터벅터벅 뚝길을 걸어가는 만석.

주먹으로 눈물을 북 씻는다.)

만 석 : ....용팔아내 훗날 후히 장사 지내주마!

(먼동이 터오르는 을씨년한 하늘.

또한번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는다.)

 

S# 107 만석의 집 (새벽)

 

(애기를 안고 마루 끝에 꼬박 밤새워 앉아있는 숙영.

슬며시 들어서는 만석.

숙영을 바로 보지 못한다.

마루 끝에 힘없이 앉으며)

숙 영 : ....새벽녘에.... 삼용이가 다녀갔어요.

(먼동만 바라본 채 조용히 뇌까린다.

무언가 체념한 얼굴.)

만 석 : (건성)... 다녀갔나?

숙 영 이제껏.... 저에게 숨겨 오셨지만 전 이미 다 알구 있어요...

만 석 : ...

숙 영 오늘 새벽... 큰 아버님이 상감의 부름을 받고 입궐 하셨대요.

만 석 입궐?

숙 영 거사가 성공하셨답니다상감마마의 칙지를 받으시겠죠.

만 석 : (기뻐서 펄쩍 뛰며됐다됐어.

(우루루 뛰어가 애기를 번쩍 안아든다.)

만 석 이놈아넌 이제 백정의 자식이 아니라 벼슬아치의 자식이여.

(슬픈 듯 바라보는 숙영.)

숙 영 그렇지가 않아요우린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해요.

만 석 무어무슨 소릴 하는게요?

숙 영 : (왈칵모르시는 말씀이세요양반들의 내막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세요그사

람들은 이제 우리를 죽일거에요.

만 석 : (놀래아니백부께서 우리를 죽인단 말여?

숙 영 : (울며그래요그들의 권세싸움은 그런거에요이제 당신을 죽일꺼에요우린 빨리

도망쳐야해요그동안 허노인을 통해서 우리가 도망가서 살 곳을 마련해 두었어요.

당신이 모은 재산으로 땅도 마련했어요멀리 도망가서 우리끼리 살 수 있어요.

만 석 : (버럭그렇지 않아난 이일에 목숨 걸었어!

숙 영 제발 내 말 한번만 들어주세요우린 피해야해요.

만 석 : (반신반의)그럴 리가....

숙 영 한번만 들어주는 셈치고 잠시 상두막으로 피신 하세요.

만 석 : ....그래두 그럴 리가...

숙 영 제발.... 제발....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반신반의 하는 만석의 얼굴에서-)

 

S# 108 어느 대감댁 대문 앞

 

좌의정 대감 납시오!”

(길게 뽑아대는 음성.

궁궐같은 대문.

그 앞에 늘어선 수많은 군졸.)

좌의정 대감 납시오!”

(웅성대는 사람들.

기기 사모관대하고 보무당당히 걸어나오는 김치삼 대감의 모습-

그 위엄있는 얼굴.

일제히 읍하는 사람들.)

김대감 : (걸어나오며잡았느냐?

삼 용 : (따라나오며아직...

김대감 빨리 손 쓰지 않고 뭘 하는게냐금부나졸들을 끌고 백정촌으로 빨리 가거라.

삼 용 .

김대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려라.

그 비정한 얼굴.)

삼 용 .

김대감 망나니같은 천한 놈이 양반의 계집을 끼고 살았다는 죄죽어 마땅하다.

삼 용 !

김대감 그리고 조카 딸 숙영이도 우리의 비밀을 알고있는 이상 살려둘 수 없다알았느

?

삼 용 !

(김대감의 냉엄한 표정이 또 바쁜 듯 어느곳으로 급히 가면서-)

 

S# 109 백정촌

 

(아침 햇살 속의 조용한 백정촌 전경.

그 주위로 소리없이 이중 삼중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금부나졸들-

싸늘해오는 분위기)

 

S# 110 칠성네 상두박

 

(초조한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은 만석.

저 쪽에선 숙영과 허노인이 무어라 수근수근 얘기가 많다.

이 때 성큼 들어서는 백정 1)

만 석 어떻게 됐나?

백 정1 : 말도 말게지금 우리 백정촌에 금부나졸들이 쫘악 깔렸네무시무시하이.

만 석 !

(처절한 신음소리.

이 때 또 뛰어드는 칠성.)

칠 성 지금 수구문 안팎이 온통 나졸들일세눈에 횃불을 켜고 야단들일세.

(푸르르 떨리는 만석의 안면근육.)

만 석 저런 죽일...

칠 성 이거 난감한데...

허노인 모두 진정하고 내말을 듣소.

(위엄있게 한마디 던지면

그리 쏠리는 시선.)

 

S# 111 백정촌

 

(부녀자들의 아우성소리

이집저집 마구 뒤지는 금부나졸들.

끌려나오는 백정들

수라장이다)

 

S# 112 수구문

 

(철통같은 경계망

쫘악 깔린 나졸들

행인의 통행을 일일이 검색하는데 저쪽에서

짤랑짤랑 요령소리 울리며 다가서는 한채의 상여

허노인이 앞장섰고 구슬피 불러대는 상두군 소리

바라보는 나졸들

이윽고 수구문 앞에 당도하면

막아서는 나졸들)

 

S# 113 상여 속

 

(꽈악 웅크리고 엎드린 세식구

아내와 자식을 병아리 품듯 품고 숨소리

죽이고 있는 만석)

나 졸 : (소리어느댁 상여냐?

백 정 : (소리제 자식놈 입죠.

(바들바들 떠는 숙영

진땀 흐르는 만석

숨막히는 순간 순간 -)

 

S# 114 수구문

 

(이윽고 통과하라고 지시하는 나졸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상여

가네가네나는 가네 북망상천 나는 가네-”

울리는 요령소리)

 

S# 115 상여 속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숙영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만석.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숙영

아내에게 시선 돌리는 만석

순간 너무도 분하고 너무도 억울해 울컥 느껴운다.

포근히 가슴에 안아주는 숙영

체면도 잃고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죽여 우는 만석

구슬픈 상두꾼 소리)

 

S# 수구문 앞

 

(이제 보이지 않는 상여

칠성 안심하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산발하고 왈칵 뛰어드는 무당)

무 당 : (게거품 물고엇쇠물러간다 귀신아잘도간다 귀신아!

(흠칫 놀라는 칠성)

무 당 : (악을 쓰며)칠성님은 못속인다미륵님은 못속인다년놈이 상여속에 숨어간다.

엇쇠엇쇠.

수문장 : (뛰어오며뭐라구방금 뭐라구 했지?

무 당 년놈이 저기 숨어가오저기...

(하는데)

이년!”

(무서운 고함과 함께 덤벼들어 퍽!

복장을 걷어차는 칠성.

꼬꾸라져 끼득끼득 숨넘어가는 무당.)

수문장 무슨짓이냐?

칠 성 : (분노에 떨며방자한 년....

(그제야 알겠다는 듯 휙 돌아서며)

수문장 잡아라상여를 잡아라!

(그순간 퍽수문장의 등줄기를 내려찍는 칠성의 칼날!)

수문장 !

(흠칫하는 나졸들.

칠성피묻은 칼을 들고 야차처럼 버티고서서)

칠 성 못간다한 놈도 여기를 못 벗어난다!

나 졸 이놈미쳤구나!

칠 성 그래미쳤다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미쳤다양반들은 우리를 이렇게 속이구 죽여

도 좋단 말이냐.

(순간 퍽칠성의 가슴을 찌르는 길다란 창.)

칠 성 !

(창날을 움켜쥐고)

칠 성 못간다못간다...

(썩은 기둥처럼 쓰러지면

우루루 뛰어가는 나졸들의 발.)

 

S# 117 들 판

 

(인적이 없는 들판.

내려놓는 상여에서 기어나오는 만석의 세 식구.)

허노인 빨리... 빨리...

숙 영 감사합니다할아버지!

만 석 : (비장해서영감님!

허노인 내 걱정일랑 말구... 어서... 저 고개를 넘으면 이미 배편이 마련되어 있을걸세.

만 석 .

(하더니 아기를 받아 제 등에 업는다.)

만 석 질끈 동여매주오!

(비장한 각오 서린다.)

 

S# 118 들 길

(등에 아기를 질끈 동여 업고

한손에 숙영을 끌고

한손에 칼을 들고

줄달음으로 내뛰는 만석.)

 

S# 119 언 덕

 

(숨이 차서 올라오는 만석네 일행.)

숙 영 : (숨이 차서조금... 쉬었다...

(하는데)

숙 영 !

(하는 가느다란 부르짖음.

숙영의 시선 따라 홱 돌아보면

저어 언덕 아래 새까맣게 몰려드는 나졸의 무리.)

만 석 !

(무섭게 쏘아보는 눈초리)

숙 영 : (공포에 질려가요어서...

만 석 !

(다시 돌아서 몇걸음 띠는데)

만 석 !

(등성이 넘어 앞길을 가로막고 내려오는 나졸의 무리.

새파랗게 질리는 숙영.)

숙 영 여보...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만석의 얼굴.)

만 석 내곁에 꼭 붙어있어야 하오!

숙 영 : ...!

만 석 갑시다이길로!

(아내의 허리를 한 손으로 질끈 감아 안고 옆길로 나간다.)

 

S# 120 숲 길

 

(숲길을 헤치고 나서는 만석.

이 때-)

숙 영 저봐요...

(거기 뺑 둘러서 한발한발 다가 내려오는 나졸의 무리.

무섭게 바라보며 공터로 나서는 만석.

숲속에서 나오던 무리 뒤를 에워싸면

비장한 각오 서리는 만석.

한손에 큰 칼 단단히 움켜 잡고)

만 석 ... 이놈들올테면 와라!

(부드득 이를 간다.

더욱 좁혀드는 나졸들-

쨍한 햇살-

넓은 공터에 아무 말없이 다가서는 나졸들.

이윽고)

만 석 이놈!

(만석이 울부짖으며 돌격해 나가면 확 덤벼드는 놈들.

쨍그렁칼이 부딛고 만석의 칼이 무섭게 바람을 가르면)

으악!”

(피뿜고 넘어가는 놈.

필사의 기력으로 칼을 휘두르는 만석.

그 야차같은 모습.

한 손에 아내를 끌어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실로 비장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만석의 칼.

햇빛을 반사하며 엄습해 오는 칼.

...........

핏무리가 퉁기고-

시체들이 나뒹굴고!

무서운 칼날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어라 저도 모르는 소리 울부짖으며 필생의 기력으로 싸우는 만석.

만석의 넙쩍다리 쑤시는 칼.

만석의 어깨쭉지를 찌르는 칼.

그러나 끄떡없이 돌격해 간다.

덤비고 또 덤빈다.

앞의 놈을 베고...

뒤의 놈을 베고...

또 한번 뜨끔하는 얼굴피가 솟는다.)

만 석 ... 이놈들!

(마지막 기력... 저돌적으로 지쳐가면

한칼에 쓰러지는 두 놈.

그 무서운 형상에 도망가는 나졸들.

온통 피투성이 몰골.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휘딱 아내를 굽어본다.

어느결에 칼을 맞았는지

허리 아래가 반쯤 헤집어지고 피가 콸콸 솟는다.)

만 석 ...여보...

(허나 이미 죽어있는 숙영.

와스스 와스스 숲을 헤치며 다시 다가오는 나졸들의 발자국 소리.

무섭게 일그러지는 만석의 얼굴.

어쩔줄 모르고 둘러보다가 아무렇게나 마구 나뭇잎을 긁어모아 덮어준다.)

만 석 : ...내 오리다.... 꼭 찾아 오리다...

(급한 손길.

대강대강 덮어주고 다시 큰 칼 움켜쥐고 뛰어 올라간다.)

 

S# 122 언덕 위

 

(숨이 턱에 차서 올라오는 만석.

헉헉 거리며 아래를 굽어보면

저 아래 강가에 대여진 나룻배 한 척.

곰방대를 물고 기다리고 있는 사공 한사람.

그 피투성이 얼굴에도 희열이 번지는)

만 석 봐라아가야저것만 타면 된다저것만 타면 백정이 아니야... 망나니도 아니란 말

이다.... 헛허.... 나룻배만 타면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어....

(껑충 뛰어 내린다.

어디서 그런 힘이 있는지 높은 언덕을 단숨에 뛰어 내린다.)

 

S# 123 백사장

 

(뱃사공이 만석을 발견하고 일어선다.

다가오는 만석.

그 피투성이 모습.)

뱃사공 아니?

(무척 놀라면)

만 석 어서애기좀 받아주슈.

(등에서 애기를 내리는 뱃사공.

불같이 울어대는 애기.

저만치 와스스 뛰어오는 나졸들.)

만 석 어서...

뱃사공 안타시오?

만 석 애기만.... 난 저놈들을....

뱃사공 알았소!

(불끈 일어선다.)

만 석 : (칼자루 힘껏 쥐며사공어른.... 부탁 하겠소.

뱃사공 : (노를 잡으며말씀 안해도 알고 있소허노인에게서 죄다 들었소돈은 받았으니

약속은 지키겠소.

만 석 그애를... 그애를...

뱃사공 염려마시오훌륭히 키우도록 하겠소.

(불끈 배를 미는 만석.

떠나가는 배.

다가오는 나졸들.

칼을 힘있게 고쳐잡는 만석.

쨍한 햇살-

멀어져 가는 배.

다가와 말없이 포위하는 나졸들.)

만 석 오너라이놈들!

(칼바람을 일으키고 덤벼든다.

싸움!

무서운 싸움!

몇놈이 쓰러지고-

만석의 넙적다리를 찍는 칼날.

풀썩 한 무릎 꿇는 만석.

그래도 쉬지않고 휘두르는 칼.

멀어져 가는 배.

그 순간 어깨쭉지를 내찍는 칼날.

벌렁 나자빠지는 만석.

뿜는 피-

도리깨질 하듯 둘러서서 난도질하는 나졸들.

그러나 일분이라도 아니일초라도 시간을 지체하고픈 만석.

허위적거리는 칼날.

기어이 모래밭에 쓰러지는 만석.

모래와 피에 엉킨 눈을 떠 바라보면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배.

정신을 일어가는 만석.

생명을 잃어가는 만석.

눈 뜬채 그대로 픽 숨져버리면

그제야 말없이 물러나는 나졸들.

그러나 아아그러나!

죽어버린 만석은 아직도 칼자루 꼭 쥔 채 허우적 거리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는 칼날.

굳어버린 심장!

흡뜬 눈-

카메라 ZOOM BACK 하면

거기 점같이 멀어져가는 애기 실은 배-)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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