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
S#1 프롤로그
-어두운 방, 신문기사를 오려내고 있는 누군가의 손.
-승진家의 가계도, 관련 기사들, 크고 작은 메모들이 빈틈없이
붙어있는 벽 위. 방금 오려낸 기사를 붙이는 손.
‘승진그룹 차건호 회장과 며느리 민서연 사장 교통사고로 사망’
벽에 붙은 기사 사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카메라,
사진 속,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들, 119요원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 몰려든 구경꾼들로 어수선한 사고 현장과
가드레일에 충돌하여 반파된 차량의 모습. 그 모습 천천히...줌인
되다가 풀화면에서 정지되면, 사고 차량에서 천천히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실사화면으로 바뀐다!
-(실사) 사진속의 장면이 살아 움직이며, 현장의 소음이 들려온다.
카메라, 그와 상관없이 사고 차량 안으로 쑤욱 들어가면,
뒷좌석, 피범벅이 되어 죽어있는 차건호와 민서연의 모습에서!!!
-(현재) 새로이 벽 위에 붙는 기사(차준표의 얼굴이 함께 실린)!
‘故차건호 회장의 장남 차준표 차기 승진그룹 회장으로 내정’
-‘차준표 승진그룹 회장 내정자 취임 축하 파티에서 의문의 화재’
기사와 함께 실린 승진家의 저택 사진. 천천히 줌인 되다가,
풀 화면에서 정지, 카메라, 저택 안으로 쑤욱—빨려 들어가면서,
-(실사) 빠르게 저택의 후미진 일각으로 달리는 카메라.
아직 화염에 휩싸인 별채 지하실 쪽에서 막 구조한 어린 도현(7세)
을 품에 안고 뛰어나오고 있는 소방대원!
품에 안긴 채 겁에 질려있는 어린 도현의 얼굴!
-(현재) 승진그룹 가계도에서 ‘차도현’이라는 이름을 찾아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는 누군가의 손!
-이어 계속해서 벽에 붙는 기사들 컷컷컷!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차준표 차기 회장 내정자 중태 의식 없어’
‘승진그룹의 차기 주인은 누가 정재계 초미의 관심사’
‘故차건호 회장의 부인 서태임 여사 승진그룹 회장으로 취임’
-‘화재 현장 속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승진그룹의 황태자,
승진家의 비극을 딛고 행복한 인생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가십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조잡한 기사와 파파라치 사진.
미식축구 경기를 끝낸 도현(17세)이 동료들과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모습. 마치 ‘나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환한 도현의 웃음 CU되는 위로,
쿼터백 (E) Set!
S#2 미국 / 도현의 학교(하이스쿨) / 미식축구장 (낮)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필드!
긴장감 속, 공격 시작 라인에 대치하여 서있는 선수들의 모습!
(자막) 미국. 2004년 가을.
쿼터백 hut!!!
쿼터백의 외침과 함께 시작되는 선수들의 격렬한 몸싸움!
정식 경기는 아니고, 친선 경기쯤. 지켜보는 관중들의 함성소리.
하늘로 솟구친 볼을 날듯이 튀어 올라 멋지게 잡는 도현(*17세.
마스크에 가려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고), 덩치 큰 미국선수들의
태클을 피해 전력 질주해 가다가, 앞을 가로막는 상대 수비수를
피해 멋지게 몸을 날려 터치다운 라인 안으로 굴러 떨어진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도현을 향해
달려오는 동료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는 달려오는 동료들을 얼싸
안고 기뻐하는 도현의 청량한 웃음에서,
S#3 미국 / 도현의 학교 / 샤워실 (낮)
경기를 끝낸 선수들 장난을 쳐가며 샤워 하고 있다.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떠들썩한 분위기.
샤워를 마친 미국 선수들, 나갈 때마다 샤워기 아래서 머리를 감고
있는 도현의 어깨를 치고 나가며 최고였다고 말해주고.
기분 좋은 도현, 옆에서 샤워중인 알렉스(한국인)와 마주보며 괜히
씩 웃는다.
S#4 미국 / 도현의 학교 / 탈의실 (낮)
샤워를 마친 도현과 알렉스가 들어와 각자의 로커 앞에 선다.
알렉스 (로커 문을 열며 불쑥)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도현 (역시 문 열다가 ? 보며)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알렉스 (상의를 꿰입으며) 너 처음 봤을 때 말이지, 청교도나 몰몬교, 아미쉬
셋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 난 몰몬교 쪽에 무려 100달러나 걸었고.
도현 (하하 선하게 웃으며) 내가 그렇게 성령이 충만해 보였어?
알렉스 (답답) 그게 아니라, 너무 모범적이고 금욕적이고 정직한 인간이잖아!
그런데 거기다 풋볼까지 잘해? 이거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
나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데, 너 이렇게 사는 거, 진정 안 피곤하냐?
도현 이렇게 사는 거? 내가 어떻게 사는데? (정말 모르겠는 표정에서)
S#5 미국 / 도현의 학교 / 복도 (낮)
안경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돗수 높은 뿔테 안경에 치아 교정기를
장착한 미국 여학생 한명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온다.
(*이하 모든 대화는 영어로 / 알렉스와 도현의 대화는 한국말로)
여학생1 (수줍게) 도현, 저번 문학 시간에 발표한 네 시, 정말 좋았어.
그래서 말인데, (브로슈어를 내밀며) 문학반에 들어오지 않을래?
너와 시적 영감을 교감하고 싶어.
보면, 미식축구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단정하고도 심히 모범생스러운
옷차림으로 알렉스와 함께 서있는 도현.
도현 (브로슈어 받으며, 상냥한 미소로) 고마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게.
여학생1, 너무 좋아 주먹 쥔 양손을 좌우로 흔들며 수줍게 뛰어가고
알렉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도현을 바라보는데,
이번엔 ‘Save the Africa’라 적힌 패널을 목에 걸고,
한 손엔 검은 염소 한 마리를 끌고 다가오는 남학생1.
남학생1 도현, 학교 신문에 실린 ‘세계 식량의 날’ 특집 칼럼 잘 봤어.
너무 좋더라. 우린 아프리카에 염소를 보내고 있어. (브로슈어를
내밀며) 함께 하지 않을래? (치약광고 모델처럼 씨익 웃고)
염소 음메에에~~~(도와줘~하듯 우는 데서)
이하 연이어 컷컷컷!으로 보여지는.
남학생2 (군밤장수 스타일의 북극곰 머리모양 모자를 쓰고, 브로슈어 건네며)
우린 알래스카 북극곰의 생존을 위해, 유전 개발을 반대하고 있어.
함께 하지 않을래?
여학생2 (귀와 코, 입술에 온갖 피어싱, 눈에는 다크서클, 브로슈어 내밀며)
우리는 자살방지를 위한 선행 관 체험을 하고 있어.
함께 죽어보지 않을래?
남학생3 우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모임을,
여학생3 우린 국제 지뢰 금지운동을,
남학생4 우린 NGO활동을 감시하는 NGO활동을 하고 있어.
학생들 (떼창으로) 함께 하지 않을래, 도현?!!!
하고 보면, 복도를 지나는 동안 받은 브로슈어들이 양손에 가득하고,
머리엔 북극곰 모자를 썼고, 가슴팍엔 이런저런 단체들의 배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도현의 모습! 그런 도현의 모습 위로 찬란한
조명과 경건한 쌍투스(M)가 울려 퍼지며,
도현 제안해줘서 고마워.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볼게.
(공익 광고 모델 같은 선한 미소를 짓는 위로)
알렉스 (E)(약간 흥분해서) 이렇게 사는 게 진정 안 피곤해?!!
S#6 미국 / 도현의 학교 / 식당 (낮)
식판에 음식을 담고 있는 도현과 알렉스.
알렉스 (앞 대사 연결) 너의 모범적이고도 금욕적이며, 범세계적인 친절이
어떤 폐해를 가지고 왔는지 도저히 안 느껴져? 넌 우리 학교
마이너들과 너드(nurd)들에게 마하트마 간디 같은 존재야.
도현 (그저 선하게 하하하 웃는데)
여학생4 (E) 도현.
소리에 보면, 촌스러운 꽃무늬 치마에 카디건, 흰 커버
양말까지 갖춰 신은 여학생 한명이 도현 앞에 와서 선다.
알렉스 (여학생의 차림새를 보며) 뭐야, 이번엔 귀농운동 단체야?
도현 (하지 말라고 식판 든 팔꿈치로 알렉스를 가볍게 툭 치며)
나랑 같이 학생회 활동하는 에비게일이야. 10학년.
(상냥하게, 영어로) 무슨 일이야 에비?
여학생4 (까칠한 모범생 성격) 집에 가는 길에 제니퍼한테 이것 좀 전해줄래?
다음 주 학생회 회의 안건이야.
알렉스 (얄미워서, 영어로) 니가 직접 전해주면 되잖아!
여학생4 (신경질적으로 알렉스를 보며) 며칠 째 학교에 안 나오니까 그렇지!
연락도 안 되고! (도현에게) 부탁해. (쌩--가 버리고)
알렉스 싸가지. 들어주지 마.
도현 (사람 좋게 웃으며) 됐어. 어차피 가는 길인데 뭐.
알렉스 (답답해서 가슴을 팍팍 치면서 테이블 쪽으로 가며) 아우, 아우,
도현 (선하게 웃으며 따라가는 데서)
S#7 미국 / 도현의 차 안 + 제니퍼의 집 앞 (낮)
도현의 차(*재벌 3세답지 않은 소박한 모델)가 와서 선다.
시동과 함께 음악을 끄고, 부탁받은 회의 자료 챙겨들고는
제니퍼의 집으로 향하는 도현.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칫 한다.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다.
도현 ....? (보다가, 조심스레 노크하며, 영어로) 계십니까? (반응 없는)
실례합니다. (현관문을 살짝 열고 조심스레) 안에 아무도,
하는 순간, 물건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
!!! 뭔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도현, 본능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S#8 미국 / 제니퍼의 집 현관 + 거실 (낮)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비명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와 벽에
몸을 쿵! 부딪히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제니퍼(한국인
입양아)!
도현 (충격과 경악으로) 제니퍼!!!
피투성이가 된 제니퍼를 얼른 감싸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성난 야수처럼 다가와 제니퍼의 머리채를 확! 잡아 일으켜
세우는 제니퍼의 양부(미국인)!
양부 (영어) 나쁜 년! (따귀를 갈겨버리는) 나를 무시해?
제니퍼 (또 다시 바닥으로 쿵! 떨어지고)
도현 (말리며, 영어) 무슨 짓입니까! 당장 그만 두세요!
양부 (상관없이 바닥에 던져진 제니퍼를 발로 차며) 죽어! 죽어!! 죽어!!!
도현 (온 몸으로 말리며, 영어) 그만하세요! 그만! 그만!
양부 (순간 도현의 멱살을 잡아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입 닥쳐!!!
도현 (억! 짧은 비명과 함께 얼굴을 감싸 쥐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양부 (쓰러진 도현의 멱살을 다시 잡아 일으켜 주먹을 날리며) 누구야 넌!
저 년이랑 무슨 사이야!!! (바닥에 쓰러진 도현의 배를 발로 사정없이
차며) 대답해! 대답하라고, 이 개자식아!!!!
숨 쉴 틈 없이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에 속수무책으로 맞기만(!)
하고 있는 도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통에 꺽꺽!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도현 제니퍼.....경찰을 불러.....
제니퍼 (공포에 질린 멍한 표정으로 그저 벌벌 떨고만 있는)
도현 (고통에 신음하며) 제니퍼......경찰을......
그때, 도현의 명치를 적중하는 양부의 발길질!
순간, 마치 섬광처럼 도현의 머릿속에 짧게 떴다가 사라지는!
(F.C) 누군가에 의해 어두운 지하실 바닥으로 던져지는 도현(7세)!
도현 !!! (순간, 이게 뭐지?)
(F.C)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어린 도현을
향해 천천히...다가오는 그림자! 점점 공포에 질리는 어린 도현!
도현 !!!! (대체 뭐야 이건)
(F.C) 어린 도현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검은 그림자!
벽에 비친 그 그림자의 손이 어린 도현을 향해 치켜 올려지는 순간!
(현재)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는 도현의
눈동자!!! (*인격교대의 전조(前兆) 증상/ 도현은 아직 인지 못함)
도현 (본능적으로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제니퍼....
제니퍼 (멍....한 표정으로 떨고 있기만)
도현 제발 경찰을 불러 제니퍼!!!!!! (사력을 다해 소리치는 순간)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경찰1(여자),2(남자)!
경찰1 경찰입니다. 당장, 멈춰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도현에게서 떨어지더니 양 손을 들어
공격의 의지가 전혀 없음을 표시하는 제니퍼의 양부.
양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막혔던 숨과 고여 있던 피를
토해내며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도현.
경찰2, 순하게 응하는 양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미국 경찰상황에 맞춰 수정)
경찰1 (제니퍼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이웃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양부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 맞습니까?
제니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멍하니....허공을 응시하기만)
경찰1 (다시 확인) 양부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 맞습니까?
제니퍼 (멍한 시선은 허공에 둔 채 천천히....손가락만 들어 도현을
가리키더니) 저 아이가....무단 침입을 했어요.
도현 !!! (허리 쪽을 움켜쥔 채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가, 충격)
제니퍼 (멍한 채로) 아버지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그러니까.....정당방위였어요. 저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다가,
저 아이에게...맞았어요.
도현 !!! (멍해지며) 제니퍼!
경찰1 (도현을 밖으로 끌며) 일단 밖으로 나가죠.
도현 (끌려 나가며, 한국말로) 제니퍼.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진실을 말해, 제니퍼!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넌 평생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제니퍼! 제니퍼!!! (안타깝게 소리치는 데서)
S#9 미국 / 도현의 집 거실 (밤)
어두운 거실 위로 전화벨이 집요하게 울려대고 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거실의 불이 켜지더니 도현이 안으로
들어온다. 상처로 엉망이 된 얼굴. 지친 듯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데, 전화벨이 끊기면서
엔서링 머신이 돌아간다.
안실장 (F) 안실장입니다. 방금 우리 쪽 변호사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단 주거침입에, 폭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다행히 회장님과 신 여사님께선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도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욕실 쪽으로 향하는)
S#10 미국 / 도현의 집 욕실 (밤)
들어와 세면대 거울 앞에 서는 도현.
여기저기 찢어지고 멍이 들어 엉망이 된 얼굴을 살펴보는 위로,
안실장 (F) 마침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출장을 와있습니다. 오늘 밤 비행기로
갈 테니까 자세한 얘긴 그때 듣도록 하겠습니다.
상의를 벗어 상체의 상처도 확인해보는 도현.
통증이 느껴지는 갈비뼈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F.C) 양부에게 맞아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던 제니퍼.
(F.C) 누군가에 의해 어두운 지하실 바닥으로 던져지는 도현(7세)!
도현 !!!! (마음의 소리, E) 대체 뭐지? 뭐야 이게.....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두통(전조(前兆)증상의 하나).
뇌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한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다시 짧게 동공이 확장됐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는 눈동자!
이내 더 심해지는 두통! 한 손으로는 세면대를 짚고, 한 손으로는
더듬더듬 거울장을 열어 안을 헤집는 도현.
(인서트) 거울장 안. 떨리는 도현의 손에 겨우 잡히는 약병(두통약).
약병을 움켜쥐고 거울장문을 닫는 순간! 거울장문에 비친 도현의
모습! 이전까지의 선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서늘하고 살벌한
세기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세기 인격의 첫 출현!)
세기 ...... (거울을 노려보듯이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어느 순간 몸을
풀듯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움직여보더니)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씨익--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지는 데서)
(M)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시작되며
S#11 미국 / 어두운 거리 (밤)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음습한 거리.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양손은 후드 티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어딘가로 향해가는 세기의 서늘한 눈빛!
서늘한 시선은 정면에 둔 채 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내더니
한 개비를 멋지게 튕겨 입에 무는 세기. (*도현은 비흡연자),
S#12 미국 / 제니퍼의 집 앞 (밤)
어딘가에 도착해서 우뚝 멈춰서는 세기의 발.
그 옆으로 툭 떨어지는 불붙은 담배.
그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며 어딘가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세기.
보면, 불 꺼진 제니퍼의 집이다!
큰 보폭으로 현관까지 걸어가 초인종을 집요하게 눌러대는 세기.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하고, 집 안에 불이 켜지더니,
거친 욕설과 함께 벌컥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제니퍼의 양부.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니퍼 양부의 멱살을 잡아 미친 듯이
패기 시작하는 세기! 반항도 못하고 맞기만 하는 양부!!
양부 (공포에 질려, 영어) 누....누구야. 너 누구,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세기의 무릎에 명치를 강타 당하고, 허리가 꺾이는)
세기 (양부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허리를 바로 세우게 하고는, 한국말로)
소리를 낼 때마다 뼈가 한 마디씩 부러진다.
양부 !! (순간 푹 눌러쓴 후드 티 속의 얼굴을 알아보고) 너, 너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세워놓은 자동차 본넷에 머리가 쳐 박히는)
세기 (한국 말) 말 한 마디에 뼈 한 마디씩. 셧업, 오케이?
하고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주먹을 날리는 세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맞다가 결국 바닥에 나가떨어지는 양부!
어느 순간 쓰러진 양부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살벌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게 하더니,
세기 (살벌하지만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영어로) 다시 한 번 제니퍼에게
손을 대거나, 오늘 일을 신고하면, 조각난 네 뼛조각으로 퍼즐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될 거야. 오케이?
양부 !!! (초죽음이 된 상태에서 힘겹게 끄덕끄덕)
멱살을 확 놔주고는 그대로 뒤돌아 가던 세기, 어떤 느낌에 멈칫
창가 쪽을 돌아보면. 열린 커튼 틈 사이로 세기를 바라보며 서있는
제니퍼, 눈물이 꽉 찬 얼굴로 입 모양으로만 Thank you.......라고
말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그대로 무심히 뒤돌아 가는
세기. 바라보며 눈물을 뚝 떨어뜨리는 제니퍼.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세기의 뒷모습에서....팟! 암전!
S#13 미국 / 도현의 집 침실 (낮)
조명이 켜지듯 팟! 화면이 켜짐과 동시에,
번뜩! 눈을 뜨는 도현의 얼굴 CU!
눈을 좌우로 굴려보면, 자신의 침대 위다!
내가 왜 침대에 누워있지? (*욕실 거울 앞 이후로 기억이 끊긴 상태)
의아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다가 욱씬 쑤시는 갈비뼈에 손을 대는데,
문득 자신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찢어진 청바지와 후드 티,
그 위에 사정없이 튄 핏자국! 순간 침대에서 튀어나와 전신 거울
앞에 서보는 도현. 거울 속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충격과 공포로
하얗게 질리는데! 이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경찰인가?? 사색이 되는 도현, 서둘러 피 묻은 상의를 벗고는
옷장문을 열어(*이미 세기가 휘저어 놓아 엉망이 된) 새 티셔츠와
바지를 꺼내려는데, 탕탕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안실장 (E) (불안한) 안실장입니다. 안에 안 계십니까?
도현 ! (순간, 현관 쪽을 돌아보며 긴장이 풀리는)
S#14 미국 / 도현의 집 거실 (낮)
서둘러 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대로 멈칫 정지되는 안실장.
보면, 한 손엔 피가 튄 후드 티를 들고, 역시 피가 튄 청바지를
입고 선 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안실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도현!
안실장 !!! (도현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이게....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현 (멍한 채로) 안실장님....저 좀......저 좀....도와주세요.
안실장 (불안해지는)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도현 (O.L) 아무것도.....기억이 안 나요.
안실장 !!! (보는)
도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안실장을 보는 위로)
도현 (E) 그때.....처음 알았습니다. 제 안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요.
S#15 미국 / 심리치료실 (낮)
심리치료사(엄청난 거구의 40대 남자/ 한국인) 앞에 앉아 담담히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도현(27세).
(자막) 미국. 2014년.
심리 저런, 매우 놀랐겠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자신만만!)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심리치료사를 만났으니까요.
도현 (환한 미소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심리 자, 그럼 안심하고, 제게 그 괴물...(얼른 도리도리하며) 아, 아니,
미스터 차 속에 살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해보겠어요?
도현 (끄덕이고) 놈의 이름은 신세기. 저와 동갑이고, 굉장히 폭력적이며
잔인한 인격입니다.
심리 (고개 끄덕끄덕 경청하며, “세기= 헐크” 메모하는 위로)
도현 (E) 놈이 나타나면 주변은 금세 피바다가 됩니다.
심리 !!! (메모하던 손이 정지되는, 저도 모르게 의자를 좀 뒤로 빼는)
도현 ? (알아채고, 안심시키듯 환한 미소로) 아, 염려마세요.
폭력은 분노할 때만 씁니다. 다행히 어린 아이와 여자에게는
절대 폭력을 쓰지 않구요.
심리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계...계속하시죠.
도현 녀석은 허락도 없이 나타나 제 몸과 시간을 훔쳐 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전, 그놈이 제 시간과 몸을 훔쳐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낯선 곳에서 눈을 뜨거나,
S#16 미국 / 타투샵 (낮)
낯선 침대 위에서 번뜩! 눈을 뜨는 도현.
보면, 지이잉—소리와 함께 도현의 왼쪽 팔뚝에 “Mors sola”
라는 레터링 타투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겁해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는 도현.
“what the fuck!” 열 받는 타투이스트.
S#17 미국 / 심리 치료실 (낮)
심리 (움찔!)
도현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해오거나,
S#18 미국 / 노천카페 (낮)
노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도현인데,
그 앞으로 와서 앉는 미모의 한국인 여성.
미녀 (뭔가 끈적끈적한 말투) 안녕? 오늘은 젠틀하네?
도현 ? (전혀 모르는 여자다)
미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은밀하게) 난 어제처럼 섹시한 게 더 좋은데.
도현 ?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역시 몸을 앞으로 내밀고,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저기....실례지만 누구.....
순간 무섭게 서늘해지는 여자의 얼굴, 앞에 놓인 물 잔을
도현의 얼굴에 홱! 뿌리고 가버린다.
S#19 미국 / 심리치료실 (낮)
심리 ! (자기가 물을 뒤집어 쓴 양, 얼굴을 푸드득 털어내고)
도현 때론, 제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무서운 대가를 치르기도 했죠.
S#20 미국 / 폐건물 안 (밤)
(*실내 낚시터 같은 분위기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고, 두 발은 밧줄에 묶여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도현. 밧줄과 연결된 도르래의 끈을 잡고 있는
거구의 사내! 한 쪽엔 너무너무 무섭게 생긴 갱단 조직원들이
죽 늘어서서 참관을 하고 있고, 그들 가운데 홀로 의자를 놓고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참관하고 있는 아까 그 미녀!
그녀가 칵테일을 홀짝이며 ‘DOWN!’하면, 도르래 줄을 잡고 있는
사내에 의해 도현의 몸이 물에 처박히고, 그녀가 자신의 아리따운
네일아트를 심드렁하게 살펴보며 ‘UP!’하면, 도현의 몸이 다시
공중으로 올라간다. 또 다시 물에 처박히는 도현. 숨이 멎을 듯한
고통에 용가리처럼 거품을 품어내며 고개를 세차게 젓는 모습에서,
S#21 미국 / 심리치료실 (낮)
심리 !!! (짧게 진저리를 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상담 이어가는)
다...당신의 증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지하고 있습니까?
도현 물론입니다. 4년 전, 저의 주치의였던 닥터 스코필드에게 진단을
받았으니까요. (보며)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흔히들 다중인격이라고 하죠.
심리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슬쩍) 몇 명.....?
도현 네?
심리 그러니까, 미스터 차 안에 몇 명이나 살고 있는지....
도현 글쎄요....(곰곰 생각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인격은....
(손가락 하나 접는) 잔인한 인격의 세기....
(손가락 하나 더 접으며) 사제폭탄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페리박.....
심리 !! (마른 침을 꿀꺽)
도현 (손가락 하나 더 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요섭....
심리 !!! (순간 얼른 필기도구와 자료를 챙겨들고 일어나는)
도현 ??? 선생님?
심리 죄, 죄송합니다. 저는 미스터 차를 치료할 능력이 안 되는 것 같군요.
도현 (잡으며) 자, 잠깐만 DID환자를 치료해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심리 거짓말입니다. 샙빨간 거짓말이에요. (도망치듯 빠르게 문 쪽으로)
도현 (쫓아가며) 선생님! 선생님!
심리 (울듯이, OL) 쫓아오지 마세요, 제발! (쾅! 문이 닫히고)
도현 (닫힌 문 앞에 서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데서)
S#22 미국 / 야외 (낮)
오픈카를 타고 달리고 있는 도현. 심리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심란한 표정이다.
도현 (E) 내 안에 몇 명이 살고 있는지....나도 아직 잘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격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죠.
S#23 미국 / 도현의 집 거실 (낮)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도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가만히 일어나 목례하는 안실장을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가 번진다.
도현 (빠르게 다가오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안실장 ......(잠시 보다가) 회장님의 지시사항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도현 !! (순간, 표정이 경직되며) 할머니께서....제게 무슨.....
안실장 이곳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서둘러 입국하라는 명령이십니다.
도현 !!! 가, 갑자기 왜.....
안실장 차영표 사장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석 달 뒤에 잡힌 주총에서 회장님의 해임 건을 상정할 모양입니다.
도현 !!!
안실장 지금 회장님껜 지원군이 필요한 상태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라도
꼭 입국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실 겁니다.
도현 (심정이 복잡해지는,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소파에 털썩 앉고)
안실장 (그 마음 아는) 저는 회장님의 명을 전하러 왔을 뿐입니다.
결정은....도련님의 몫입니다.
도현 안실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아직....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
(보며) 숨길 수....있을까요?
안실장 (차마 대답할 수 없는) .......
도현 할머니와 어머니께 사실대로 말하면....이해해주실까요?
안실장 (역시 사정 알기에 대답할 수 없는) .......
도현 (예상했던 반응이다. 좀 웃으며) 둘 다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니까...갈 수 없어요. 이렇게 제가....괴물인 상태로는.
대사 끝나자마자 전구가 나가듯 팟! 암전되는데서.
S#24 비행기 안/ 퍼스트 클래스 (낮)
조명이 커지듯 팟! 화면이 켜짐과 동시에,
번뜩! 눈을 뜨는 도현의 얼굴 CU!
도현, 서둘러 주변을 살펴보면, 비행기 안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또 다시 멍해지는 도현인데,
얼굴에 신문을 덮고 잠들어 있던 옆 자리의 남자(*신문에는
‘이번에도 메가톤급 히트! 얼굴 없는 작가 오메가의 신작
<오메가3 살인사건> 50만부 돌파!’ 라는 책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고), 도현의 기척에 덮고 있던 신문을 내리는데, 리온이다.
리온 (반색) 어? 일어나셨네요?
도현 저, 실례지만 이 비행기 어디까지 가는 비행기입니까? (하는데)
기내방송 (E)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저희 비행기 인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리온 (스피커 쪽을 가리키며) ...라네요, 하하하.
한국이라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도현,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해보려는데,
스튜어디스 (지나가다 보고) 착륙 전엔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주십시오.
도현 (낭패인데)
리온 (오지랖 발동) 안 된대요? (자기 휴대폰 꺼내주며) 그럼 제 걸로,
(하다가) 아아, 내꺼도 안 되는구나, 참. 웬일이니, 나 왜 이렇게
웃겨 진짜. (도현을 툭 건드리며) 그쵸? 하하하하하하!
리온의 말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도현, 어서 빨리 착륙하기만을
기다리는 듯 초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는데,
세기 (E) 1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느낌이 어떤가, 친구?
S#25 인천 공항 / 배기지 클레임 가는 길 (낮)
미치겠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며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도현.
(인서트) 도현의 휴대폰 속 세기가 남긴 동영상.
세기 (즐기는 듯한 말투) 이봐, 이봐, 그렇게 보지 말라구.
남자라면 야망을 가져야지. 승진그룹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아?
아, 이삿짐은 내가 다 부쳤어. 짐 도착하면 내 물건들 좀 잘
보관해 두라구. 니 패션은 정말 최악이거든.
돌아버리겠는 도현, 휴대폰을 꽉 움켜쥐고는 달려가는 데서,
S#26 인천공항 / 주차장 (낮)
끼이익---달려와, 마치 카레이서처럼 한 큐에 후진주차 되는 승용차!
S#27 인천공항 주차장 + 리진의 차 안 (낮)
핸들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팍! 들면,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눈동자, 리진이다! 이때 울리는 휴대폰. 순간 더욱 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휴대폰을 꺼내 받더니 다짜고짜,
리진 저 오메가 작가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오멘간지 스쿠알렌인지, 내가
오늘 잡아다 드릴 테니까, 전화 좀 그만 하세요, 제발!
전화를 확 끊고는 돌아버리겠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어뜨리는 리진. 그 탓에 미스코리아처럼 사자머리가 되고.
언뜻 보면 광년이 같기도 한 그 비주얼로 이를 갈며,
리진 오리온, 너 오늘 주거써!
내려서 차문을 탕! 닫고는 공항을 향해 분노의 질주를 시작하고!
S#28 인천공항 내 발권 카운터 (낮)
발권 카운터를 향해 우사인 볼트처럼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도현!
도현 (카운터에 매달리듯 달려들어 다급히) 뉴욕행 티켓 부탁합니다.
비즈니스건 이코노미건 상관없습니다. 가장 빠른 걸로,
하다가 멈칫 굳는 도현. 저만치, 양복차림의 승진그룹 회장실 비서진
네댓 명이 도현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끝났구나.....! 허탈함에
눈앞이 아득해지는 도현인데, 다가와 깊이 목례하는 비서진.
비서1 회장님께서 차를 보내셨습니다.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도현 ...... (어쩔 수 없이 비서진과 함께 출입구 쪽으로 향하는데)
리진 (E) 야!!!!
도현 !!! (소리에 놀라서 보면)
손가락으로 정확히 도현을 콕! 찝어 가리키며 성난 사자처럼(머리는
이미 미스코리아 사자머리) 도현을 향해 다가오는 리진!
(*병원에서 뛰쳐나온 상황. 후줄근한 긴 야상 점퍼에 크록스 신발,
범상치 않은 비주얼!)
도현 !!! (당황스러운 표정 위로, E) 누구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하다가 퍼뜩) 설마.....(순간, 악몽처럼 떠오르는)
(F.C) 자신을 못 알아보는 도현에게 물을 끼얹던 미녀! (18씬)
(F.C) 거꾸로 매달린 채 물에 처박히던 도현! (20씬).
떠올리고는 공포에 질리는 도현이고, 여전히 손가락으로 도현을
콕! 찍은 채 점점 다가오는 리진!
리진 (도현의 코앞까지 와서) 좋은 말로 할 때 딱 나와.
도현 (겁에 질려) 이, 이, 이미 나와 있는데.....어딜 또.....
하는 순간, 도현의 뒤에 비굴하게 숨어있던 리온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는 리진. 아아아악----! 비명 지르며 끌려 나오는 리온!
도현 !!! (당신은....아까 그 비행기의 수다맨!)
리진 (끌고 가며) 너 죽었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기자들 전화가 수십 통씩 오는 바람에, 내가 도저히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병원을 탈출해서 왔겠냐.
리온 (머리를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어 기어이 리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현 뒤에 다시 숨으며)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도현 (당황, 리진을 진정시키려) 저, 저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시고 대화로 해결하시는 편이,
리진 (OL) 무슨 일인지 모르면 빠지세요!
도현 아, 예. (예의 바르게 얼른 옆으로 빠지는데)
리온 (도현을 다시 잡아다가 방패로 삼으며) 아, 빠지란다고 진짜 빠지면
어떡해요?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하다가 리진에게 다시 머리채가
잡히는) 아아아악----! 동생아, 사랑하는 동생아. 놓고 얘기하자.
놓고.
남매 사이에 끼어서 당황스러운 도현이고, 어떻게든 도현을
꺼내려고 안절부절 못하는 비서진.
리진 너 언제까지 내 이름 팔고 다닐래. 말 나온 김에 오늘 니 정체,
여기서 다 까발리자.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 여기 이 사람이 바로,
얼굴 없는 작가 오메,
리온 !! (기겁해서, 얼른 리진의 입을 틀어막으며) 죄송합니다! 진정
죄송해요! 제 동생이 많이 아픕니다.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요기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요기가, 많이 아파요. 불쌍한 아입니다.
도현 ! (순간, 리진을 보고)
리온 가자 동생아. 오빠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리진의 입을 막은 채로
질질 끌고 가고)
비서1 (남매를 향해 쯧! 혀를 차고는, 도현에게) 괜찮으십니까?
도현 괜찮습니다.
일단은 안심하는 도현. 그러다 문득 리온에게 입이 막혀 끌려가는
리진 쪽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짠해지는.....
S#29 인천공항 전용 도로 (낮)
전용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는 리진의 차.
S#30 달리는 리진의 차 안 (낮)
안전지대에 돌입하자 노래까지 부르며 신나서 운전하고 있는
리온이고, 조수석에서 그런 리온을 째려보고 있는 리진.
리온 (신나서 노래)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예~!! 당신의 쉴 곳
없네, 예~! (마이크로 쓰던 빈 생수병을 리진에게 돌리면)
리진 (생수병 낚아채서 리온의 등을 텅텅텅! 때리며) 좋겠다.
니 속에 니가 많아서. 다중인격이냐?
리온 말을 해도 꼭. 한 집에 정신병원 들락거리는 사람이 둘씩이나
되면 쓰겠니?
리진 너 언제까지 얼굴 없는 작가입네 하면서, 식구들을 니 대리인으로
써먹을 거야.
리온 신비주의는 나의 아이덴티티야. 덕분에 인지세 올라 저작권 부자
되고, 퍼스트 클래스 타고 취재여행 다니는 멋진 오빠가 되어주
었잖아. 그만 만족해 임마!
리진 (버럭) 그럼 필명이나 잘 짓든가! 멀쩡한 이름 놔두고 쪽팔리게
오메가가 뭐냐? 오메가가.
리온 맑고 투명하잖아. 난 오메가 뜨리가 그렇게 이쁘드라.
리진 (터지며) 야!
리온 이 자식이, 오빠한테 야가 뭐야 야가. 근본 없이.
리진 왕족이냐? 근본 따지게?
리온 왕족이면 클나지. 조선시대 왕실에서 쌍둥이는 불길한 징조였어요.
왕실에서 태어났으면 너랑 나 둘 중 하나는 궁녀나 내시 손에
빼돌려져서 강화도령이나 강화 소녀처럼 자랐어야 했다구.
그러니까 나한테 잘하란 말이야.
리진 어떻게 하면 얘기가 글루 튀냐? 너는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너’냐?
리온 그럼, 니가 강화 소녀겠니? 비주얼로 보나 품성으로 보나,
내가 강화도령이겠지.리진 왕족이면 큰일 난다며.
리온 재벌의 아들일 수도 있다는 얘기지, 내가.
리진 (빈 생수병으로 리온의 등을 탕탕 때리며) 그럼, 가! 가!
제발 니네 집으로 가!!!
리온 야, 야, 안전 운전! 안전 운저언! 아아아악----!
S#31 강한 병원 (낮)
병원 앞에 와서 끼익---멈춰서는 리진의 차!
얼른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면, 안에서 내리는 리진.
리온 (리진의 양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는, 진지하게) 병원 생활이
힘들겠지만, 잘 버텨내길 바란다. 마음만은 늘 함께 라는 걸 잊지 마.
리진 함께 할 생각은 넣어두고, 기자들한테 전화나 오게 하지 마.
리온 (감정 팍 깨지는, 애써 미소로) 뒤끝이 만리장성인 것도 정신과에서
치료 되니? (하는데)
이때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들어오는 119 구급차!
보면, 뒷문이 열리고 이동 침상을 내리는 구급대원들.
침상 위의 남자, 어디서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왔는지
몸 여기저기 까지고 깨진 상처투성이고,
알콜남 (양 옆에서 제압하는 구급대원들을 거칠게 털어내며) 놔라!
놓으라카이!! 니 안 놓제?! 고마 쌔리뿐다, 문디자슥들!!!!
리진 !!! (순간 이동 침상을 향해 뛰어가는)
리온 !!! (보면)
리진 (이동 침상 옆에 붙어 구급대원들과 함께 뛰며, 딸처럼 친근한)
아이구, 우리 아저씨, 또 오셨네? (다 꺼지라 마!! 소리치며
좀처럼 진정이 안 되는 환자) 에헤! 그러다 다쳐요. 다쳐어--
잘 생긴 얼굴에 스크래치 생기겠네! (계속 알콜남을 달래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리온 (걱정스럽게 보는)
S#32 강한 병원 / 응급실 입구 (낮)
구급대원들과 함께 이동침상을 밀고 들어오는 리진.
리진 (달려오는 응급의료진들에게) 알콜 디펜던스 환자예요.
만취상태라 이리터블(Iritable:흥분)하고, 심한 액팅 아웃
(acting out)상태니까 세데이션(Sedation:진정)시켜야 돼요.
의료진들, 이동침상을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입고 있던 야상 점퍼를 확 벗는 리진.
안에 입고 있던 흰 가운이 모습을 드러내고,
가운 가슴팍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오리진’이라는 명찰.
(*그렇다. 리진이는 광년이가 아닌 정신과 의사였던 것이다!)
벗은 야상을 옆의 빈 이동 침상 위에 대충 올려놓고,
손에 팔찌처럼 차고 있던 고무줄을 입에 꽉 물더니,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하나로 정리해 질끈 묶으며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리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
일각에 서서....그런 리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는 리온. 바라보는 입가에 가만히....미소 생기더니 뒤돌아 가는.
S#33 강한 병원 앞 + 리진의 차 안 (낮)
가시나무를 휘파람으로 불며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타는 리온.
시동을 걸려다가 말고 문득 뒷좌석에 놓아둔 백 팩을 가져온다.
가방 안에서 파일북 하나를 꺼내 펼쳐보면,
일목요연하게 스크랩되어 있는 오래된 신문 기사들.
전부 승진그룹 또는 승진家와 관련된 기사들뿐인데,
프롤로그에서 보였던 바로 그 기사들이다!!!
사진 속, 도현의 환한 웃음을 가만히...바라보는 리온에서,
(*리온은 승진家의 비극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을 준비 중.
취재를 위해 도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임)
S#34 서태임의 저택 외경 (낮)
(*예전 의문의 화재를 당한 승진家 저택과는 다른 저택)
웅장한 대문 앞에 두 대의 차가 와서 멈추고.
비서1, 앞 차에서 내려 차문을 열면, 안에서 내리는 도현.
도현 대문 앞에 가 서면, 앞차와 뒤차에 나누어 탔던 비서진이
도현의 뒤에 와 서고, 기다렸다는 듯이 안에서 열리는 대문.
S#35 서태임의 저택 / 정원 (낮)
비서진을 거느리고 걸어오는 도현.
일렬로 주욱 서서 도현을 맞이하는 가내 고용인들.
저택의 규모를 말해주는 듯 적지 않은 숫자고.
그들 사이로 걸어와 도현을 맞이하는 안실장.
안실장 (목례하며) 오셨습니까?
도현 (안실장을 보자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데)
신화란 (E) (찢어질 듯한) 어머님!!
도현 ! (순간 저택 쪽을 보는 데서)
S#36 서태임의 저택 / 거실 (낮)
청자로 된 녹차 잔 앞에 놓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서태임이고,
좀 과하다 싶게 치장한 신화란이 옆에 앉아 서태임을 추궁하고 있다.
신화란 이번엔 또 어디다 두셨어요? 우리 그이 어디다 감추셨냐구요오!!
서태임 ......(상대 않고 그냥 신문만)
신화란 어머님 치마폭에만 숨겨둔 지 벌써 21년째예요!! 우리 그이가 장기판
위의 말도 아니고, 의식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옮겨대면 몸이 남아나
겠어요?
서태임 .....(신문 넘기며 마이동풍)
신화란 (열 받는) 어머님 정말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러세요!!!
사방팔방 수소문해서 그이 있는 요양원 찾았다 그럼 빼돌리고,
겨우 다시 찾았다 싶으면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빼돌리고.
왜 번번이 사람 꼭지가 돌게 만드시냐구요!
서태임 (못마땅해서/ 탁! 보며) 말을 어디서 배운 거야 대체.
상스럽지 않으면 말을 못해?
신화란 예, 저 상스러워요. 상스럽지 않으면 말이 말 같지 않아 말이 안
나와요. 그러니까 이제 말씀해보세요. 세상사람 다 몰라도 저는
알아야 되는 거잖아요!
서태임 (결국 보던 신문 탁 내려놓으며 차갑게) 니가 뭔데.
신화란 (기막힌) 어머님.
서태임 너한테 무슨 자격이 있어 이리 당당해. 호적이 있길 해, 자식이
있길 해. 대체 뭐 믿구 갈수록 안하무인에 볼수록 후안무치야!
신화란 (너무 기막혀 쓰러지기 일보직전) 제....제가 자식이 왜 없어요!
서태임 ......(상대 않고, 다시 신문 탁 펼쳐드는)
신화란 우리 도현이, (독이 올라 점점 격앙되며) 준표씨 아들! 어머님 손자!
승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차도현이가 제 뱃속에서 나왔는데!!!
서태임 (결국 신문 확 접고 일어나며) 그 귀는 대체 뭐하는 물건이야!
이제는 니 씨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여태 끊긴 탯줄
붙잡고 미련 떨고 있는 게야!!! (하며 돌아서다 멈칫 서는)
도현 ...... (거실 끝에 서서, 대화 다 들은 듯 표정 있다가, 목례하는)
신화란 (아들 발견하고, 눈과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며) 도현아!!!!
(달려가 안으며 서태임에게 여봐란 듯) 언제 왔어? 언제 온 거야?
응? 아우, 얼굴 축난 거 봐. 속상해 죽겠네 그냐앙.
서태임 ...... (온기 없이 그저 담담히 보다가 식당 쪽으로)
도현 (보며) .......
S#37 서태임의 저택 / 다이닝 룸 (낮)
성찬이 차려진 식탁. 상석에 서태임 앉아있고,
신화란은 도현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다.
신화란 도미찜 좋아하지? 먹어 봐. 이번에 물이 아주 좋은 게 들어왔어.
도현 (웃어 보이며) 드세요. 알아서 먹어요. (하고는 슬며시
서태임 쪽을 한 번 의식했다가, 수저로 국 뜨는데)
서태임 (젓가락 들며) 배팅을 꽤나 거창하게 했더구나.
도현 ? (보며, 무슨 소린지 몰라서)
서태임 (구절판의 속 재료를 자신의 앞 접시에 조용히 옮겨가면서, 담담히)
귀국 조건으로 승진건설 사장 자리를 내노라 했다지?
신화란 ! (도현을 확 돌아보며, 니가 정말? 니 성격에?)
도현 !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순간 퍼뜩 떠오르는)
(F.C) 핸드폰 속 세기가 남긴 동영상 (25씬의)
“남자라면 야망을 가져야지. 승진그룹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도현 !!! (두 눈을 질끈 감는데)
서태임 섣부른 야심은 결코 미덕이 아니야. 아직은 시기상조다.
일단은 ID엔터 부사장으로 발령 낼 테니, 거기서부터 시작해봐.
도현 (사정 말하려 차분하게) 회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신화란 (자르며) ID엔터면 기준이가 이미 사장 자리 꿰차고 앉아있는
데잖아요. 우리 도현이더러 지금, 기준이 따까리 하러 들어가란
말씀이세요? 승진그룹 후계 서열 1순위가요?
서태임 (상대 않고) 회사 주식 5프로를 내놓으라는 말은 없던 걸로 하마.
대신 니가 회사에서 일한다는 조건으로 매년 니 생일 때마다
0.5프로씩 양도하기로 했으니 정변하고 얘기하면 될 거야.
도현 (다급해지는) 회장님, 잠깐만 제 말씀을,
신화란 (또 끼어들며) 1프로도 아니고 쩜오는 정말 너무 하시네.
우리 도현이, 아직 나이도 어린데 주식이라도 틀어쥐고 있어야
콧대 높은 이사들이 얘 말을 듣죠.
서태임 (무시하고) 독립해서 따로 살겠다는 네 의견은 받아들이마.
신화란 (발끈) 독립이라뇨?! 도현이가 왜 멀쩡한 제 집 놔두고 나가 살아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지금까지 외국에 나가 살던 애한테,
서태임 (OL) 누가 애라는 게야!!! 앞으론 한 기업의 부사장이야!!!
신화란 (찔끔)
서태임 (온기라곤 없는 사무적인 말투) 청담동 빌라 니 앞으로 돌려놨다.
안실장 시켜 필요한 물건 채워 쓰도록 하고. 네 요구대로 다음
주에 이사회를 소집했으니, 그날 정식으로 인사한 연후에 업무를
시작하는 걸로 알거라.
도현 !!! (막막해지는데서)
S#38 도현의 한국 집 외경 (낮)
S#39 도현의 한국 집(이하 도현의 집) / 거실 (낮)
모던하고 심플하게 꾸며진 도현의 새 보금자리로 들어서는
도현과 안실장.
안실장 사람들을 시켜 간단한 가구와 살림은 구비해두었습니다.
지내시면서 필요하신 물건을 말씀해주시면,
도현 (미치겠는 심정으로 창턱에 털썩 앉아 한손을 이마에 올리는)
안실장 ......(보다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도현 (어이없어 웃음이 다 나오며)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실장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도현 미국으로 돌아가기엔 세기 그 놈이 판을 너무 크게 벌려놨어요.
안실장 회장실의 비서실장님과 화상통화로 직접 딜을 건 모양입니다.
모르는 입장에선....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현 (피식) 제가 숨길 수 있을까요?
안실장 숨겨야만 한다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도현 11년 동안이나 치료를 해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어요.
찾아볼 방법이 있긴 한가요?
안실장 찾아질 때까지 찾아보겠습니다.
도현 ! (가슴이 찡해져서 본다)
안실장 (감정의 동요 없이) 우선은 부사장님의 당숙, 즉 승진건설 차영표
사장 측을 경계하셔야 할 겁니다.
도현 (고맙다는 말 하려고) 안실장님....
안실장 (무슨 말 할지 알기에, 짐짓 못들은 척) 특히, 앞으로 한 회사에서
부딪히게 될 차기준 사장의 눈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장차 부사장님
의 대항마가 될 테니까요. 일단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 버티십시오.
도현 (기어이)(OL) 고맙습니다. 안실장님.
안실장 (잠시 눈썹이 꿈틀)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사양하겠습니다.
도현 미소 짓는데, 이때 울리는 휴대폰.
꺼내 보면, 액정화면에 뜨는 ‘기준이 형’
도현 ! (순간 긴장된 눈빛으로 안실장을 보면)
안실장 (담담하게 보는)
도현 (결심하고, 받으며, 짐짓 밝게) 어, 기준이 형!
S#40 기준의 사무실 (낮)
여유롭게 탁자에 걸터앉아 한손으로 야구공을 던졌다 받았다하며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는 기준.
기준 짜식, 입국했다면서 형한테 연락이 한 통 없어.
도현 (F) 하하. 미안해 형. 본가 들러 회장님께 인사드리고 이제 막
한숨 돌리던 참이야.
기준 오늘 저녁에 선약 없지? (왜?) 왜긴 인마, 간만에 한 잔 해야지.
(어디서) 주소 찍어 보낼게. (공중에 던졌던 공을 확 잡아채며)
오케이! 이따 보자. (끊고는, 야구공 수납 트레이에 내려놓고, 손님용
소파 있는 데로 와 주스 잔 들며) 목소리 여전한데요?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세상일은 난 몰라요, 순진무구 그 자체.
하고 보면, 맞은 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차영표.
차영표 (마시며) 귀국 조건으로 내 자리를 달라고 했다더구나.
기준 ? (잠깐 봤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자식, 한국
들어오기 진짜 싫었나 보네. 큰 할머니 앞에 서면 똥강아지마냥
귀 말아 접고, 꼬랑지부터 숨기던 놈이.
차영표 (찻잔 내려놓으며 담담히) 경계해라.
기준 (픽 웃으며) 경계해야 돼요?
차영표 (보며) 서자긴 해도 그룹 후계자 후보임엔 틀림없다. 주총까지 가까이
두고 지켜봐. 그러라고 니 밑에 넣은 거니까.
기준 (웃으며) 그게 그런 뜻이 되나요? 전 또 육촌 형제끼리 의기투합
해보라는 어른들의 깊은 뜻인 줄 알았죠.
차영표 만만히 보지 말고 약점을 찾아. 그 약점이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게다.
기준 남의 약점을 잡을 시간에 내 장점을 부각시키는 편이 빠르죠.
부각시킬 장점이야 차고 넘쳐서 탈이잖아요.
(여유 있게 웃으며 주스 마시는 위로)
안실장 (E) 약점을 찾으려 들 겁니다.
S#41 도현의 집 / 거실 (낮)
안실장 찾으려 들면 못 찾을 것 없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병원을 출입하며 치료받는 건 위험합니다.
도현 그래서 말인데요, 안 실장님. 닥터 스코필드를 좀 찾아봐주세요.
안실장 미국에서 부사장님을 치료했던 그 의사 말씀이십니까?
도현 그분이라면 분명, 저를 도와줄 방법이 있을 겁니다. (에서)
S#42 강한 병원 / 복도 (낮)
두둥! 흰 가운 위에 수놓아진 ‘석호필’이라는 선명한 이름 C.U.
보면, 가운자락을 멋지게 휘날리며 회진을 돌고 있는 석호필이고!
그 뒤를 따르는 의사들 속에 가운을 입은 리진의 모습이 보인다!
리진 (걸으며 주치의로서 보고하는) 허숙희, 28세 여성으로,
바이폴라 디스오더로 인한 그랜디오스 데루젼 환자입니다.
5주 전 저희 병원에 입원, 현재 D.T.와 G.T.를 병행 중에
있습니다.
석호필 (걸으며) 그랜디오스 데루젼의 원인을 스키조프레니아가 아니라
바이폴라 디스오더로 디디엑스한 근거는?
리진 (똘똘하게) 병력 및 임상 관찰 결과, 무드(기분)와 행동에 병적인
고양이 동반되어 G.D가 발생하였고 그 외, 환청 등 SPR에서
보이는 사고 흐름의 장애가 없었습니다. 또한, 리튬 처방 후
4주에 걸쳐 팔로우 업한 결과 인섬니아, 하이퍼액티비티에서
모두 호전을 보였습니다.
석호필 오케이! 그럼 만나볼까. (하고 병실 앞에 멈추면)
리진 (얼른 달려가 병실의 문을 여는)
S#43 강한 병원 / 허숙희의 병실 (낮)
안으로 들어서는 석호필과 리진 일행.
침대 위의 환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들어있다.
석호필 (상냥하게) 허숙희씨. (응? 반응 없는, 다시) 허숙희씨.
(응? 역시 반응 없는)
박선생 (리진을 쿡 찌르며 눈짓하면)
리진 (얼른 침대로 다가가 이불 위를 살짝 두드리며) 허숙희씨.....
(역시 반응 없자, 이번엔 좀 세게 두드리며) 허숙.....
하다가, 뭔가 쎄한....느낌이 드는 리진, 침대를 확! 들쳐보면,
덜렁 베개 두 개가 사람처럼 포개져있고, 그 위에 놓여있는
꽃분홍색 포스트 잇 한 장! 얼른 떼 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리진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박선생 (석호필 앞이라 긴장모드)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리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그게.....
박선생 읽어봐! 얼른!
리진 (죽고 싶은 심정으로 읽기 시작)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요.
가슴 떨리는 뮤직과, 반짝이는 조명, 오직 댄스로만 대화를 나누는
파라다이스로 난 지금 떠납니다. 부디 날 찾지 말아주시길...
박선생 (쿵! 불안해져서) 뭐야? (작게) 유서야? 아니면 이스케이프야?
석호필 (몹시 굳은 표정으로 홱 돌아 나가고)
박선생 (버럭) 오선생! 너 이 자식, 대체 환자 관릴 어떻게 하는 거야?!
당장 찾아와, 당장!!!!! (소리치고는 얼른 따라 나가고)
미치겠는 표정으로 포스트잇을 내려다보는 리진.
메모 속 ‘파라다이스’라는 글자가 천천히 줌인되는 데서,
S#44 클럽 파라다이스 외경 + 도현의 차 안 (밤)
두둥! 강남 노른자 땅 위에 자리 잡은 클럽 파라다이스의
화려한 야경. 그 앞에 도착하는 도현의 차.
안실장 (운전석에서) 근처에 있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십시오. 그리고, 술은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도현 (끄덕이고 차에서 내리면)
안실장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데서)
S#45 클럽 파라다이스 안 (밤)
쿵쿵쿵! 심장을 울려대는 음악소리와 화려한 조명 속에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2층 계단
쪽으로 향해가고 있는 도현.
S#46 클럽 파라다이스 / 2층 복도 (밤)
룸들이 모여 있는 복도를 앞서 걷던 매니저, VIP룸 앞에 멈춰서더니,
똑똑 정중히 노크를 하고는 도현을 향해 문을 열어준다.
도현, 안으로 들어가는데,
S#47 클럽 파라다이스 / VIP 룸 (밤)
들어서자마자 우우우우---! 쏟아지는 환호성에 그대로 얼어버리는
도현. 보면, 정면 상석에 기준이 앉아있고, 그 주변으로 예닐곱 명의
남녀가 빙 둘러 앉아 있다가 도현을 향해 일어서는데,
전부 모르는 얼굴들이다! (*아트팀 직원들이다)
도현 !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기준을 보면)
기준 (웃으며 일어나) 어서와. 반갑다. (지가 나올 생각은 않고)
이쪽으로 와, 악수 좀 하자.
순간, 기준 오른쪽에 있던 직원들이 도현 지나가라고 몸을 피해
자리를 비켜준다. 어쩔 수 없이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통과하여
기준 옆으로 가는 도현. (길 비켜준 직원들에게 목례하는 예의)
기준 (손 내밀어 악수하며) 모범생 스타일은 여전하네. (웃고는 사람들에게)
자, 여기 계신 젠틀맨은, 다음 주부터 우리 ID엔터와 함께 해주실
차도현 부사장님입니다.
직원들 (이미 올지 알고 있었던 듯 우우우—환영의 박수)
기준 (도현에게) 이분들은 우리 ID엔터 영화제작파트 아트팀 직원들.
직원들 (‘잘 부탁드립니다’ ‘팍팍 밀어주십쇼’ 등등 자유롭게 인사)
도현 (긴장되지만, 여유를 가장하고) 처, 처음 뵙겠습니다.
기준 자자, 오늘 든든한 물주를 두 명이나 무셨으니, 나가서 마음껏
즐기십시오. 눈부신 업무 성과로 보답 받겠습니다.
직원들 (하하하 웃고는 ‘그럼 말씀들 나누십시오.’ 하며 밖으로 나가고)
기준 (도현에게) 앉아. 한 잔 해야지.
도현 (앉고, 웃으며) 뭐야. 이런 자리였으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기준 (술 만들 잔에 얼음 채우며 피식) 말해주면 뭐. 또 전문가 선생들
모셔다가 헤어랑 의상 컨셉 잡고, 매너 컨설턴트 모셔다가 애티튜드
강의 받고, 밤새 인사말 준비하고 그러게?
도현 (비꼬는 말임을 알지만, 애써 미소로)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기준 (내숭 떨고 있네) 진짜잖아.
도현 (멈칫, 보면)
기준 (픽 웃으며) 내가 널 몰라? (언중유골) 하긴 회장님 눈이 시퍼런데,
대충하고 살 순 없겠지. 눈 밖에 나면 곤란한 처지니. (다 만든
술잔 건네며) 마셔.
도현 (불쾌하지만 참는, 받은 잔 가만 내려놓고, 빈 잔에 생수 따르는)
기준 (도현 하는 냥 보다가, 픽 웃으며) 모범생. (하고 마시는)
도현 근데, 어떤 자린지 정도는 알려 주는 게 예의 아냐?
기준 (마시다가) 아, 그 예읜 지켜야지. 우리 ID엔터에 변화가 좀
생겼거든. 삼고초려해서 모신 아트팀장과, (언중유골) 예고편 없이
등장한 부사장. 굳이 말하자면 두 사람의 입국 환영 겸,
입사 축하파티?
도현 아트팀장?
기준 아, 지금은 잠시 파우더룸에. (장난스럽게 슬쩍) 엄청난 미인.
(하다가) 어, 저기 왔네. 삼고초려.
도현 ? (보면)
VIP룸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돌아 서는 여자, 채연이다!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도현!
그런 도현을 재미있다는 듯 관찰하는 기준의 표정에서.
리진 (E) 틀림없어? 확실해?
S#48 강한 병원 / 로비 (밤)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리진.
리온 (F) 틀림없다니까!
리진 (뛰어가며, 으름장 놓듯) 너 또 소설 쓰는 거 아니지?
S#49 심부름센터 안 (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는
어느 사내의 등짝이 보이고, 그 곁에 서서 통화 중인 리온.
리온 그렇다니까아! 내가 무려 칠 년 동안이나 거래해 온 곳이야.
오죽하면 사장님 별명이 ‘위치 추적계’의 그리섬 반장이겠냐.
틀림없어. 범인은! 아니, 허숙희씨는! (손가락으로 척, 사내가 조작
중인 컴퓨터 위치추적 화면을 가리키며) 병실 안에 있어!!! (에서)
S#50 강한 병원 / 허숙희의 병실 (밤)
벌컥!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리진!
확인해보면 역시 아무도 없고. 휴대폰을 꺼내 단축키를 누르는 리진.
(인서트) 액정화면.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과 함께 ‘허숙희’ 뜨고.
이때, 병실 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진동음!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리진. 분명 침대 밑에서 진동음이 들리고 있다!
리온 (F) 근데 난....그 파라다이스라는 말이 그렇게 걸린다?
그게 이승에 존재하기가 쉽지 않거든. 아무래도 유서 아닐까?
불안함과 긴장감으로 천천히....침대를 향해 가는 리진.
어느 순간, 결심한 듯 고개를 확 숙여 침대 밑을 보면!
침대 바닥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허숙희의 핸드폰!
리진 ! (서둘러 핸드폰을 떼어내서 열어보면, 역시나 꽃분홍색 포스트잇
메모가 붙어 있는, 보는 위로)
허숙희 (E) 핸드폰 위치 추적은 노노. 제발 날 파라다이스로 보내줘요.
리진 !! (불안함에 심장이 떨리는데)
이때, 기적처럼 허숙희의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리는!
보면, “위스키의 명가 모데라또 30주년 기념, VIP 무료 시음 행사.
클럽 파라다이스 청담동’ 그리고 클럽 파라다이스의 전화 번호!
리진 !!!! (순간 핸드폰을 꽉 움켜쥐더니, 감격해서) 있어! 이승에도
파라다이스가 있어---!!! 강남구 청담동에-----!!! (소리치는 위로)
(E) 와아아--! 사람들의 함성소리 겹쳐지면서,
S#51 클럽 파라다이스 / 1층 댄스 플로어 (밤)
함성을 지르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디제잉 파티가 시작되어 더욱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신나게 뛰고 있는 ID엔터 아트팀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S#52 클럽 파라다이스 / VIP룸 (밤)
도현, 기준, 채연 만이 남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채연이 상석에 앉아있고, 도현과 기준이 마주 앉은 상태.
채연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고 있는) 아, 미치겠다. 그럼 너 그때
일부러 안 나온 거였어? 지선이가 너 좋아하는 거 알면서?
기준 지선이면, 명성 그룹 둘째? 둘이 괜찮을 거 같은데 왜.
채연 그치? 둘이 꼭 영국식 기숙학교 모범생들 같지 않아?
기준 명문 호그와트 출신의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 커플?
채연 (재밌어서 깔깔 웃으며) 어, 딱이다. 딱.
도현 .....(생수 잔 들어 마시는)
기준 .....(그런 도현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채연 암튼 걔가 먼저 부탁을 하드라고. 그래서 기껏 자리를 만들었더니,
얘가 끝까지 안 나오는 거야. 그날 나 선물로 받은 가방, 바로
돌려줬잖아. 아, 그거 꽤 마음에 들었었는데.
도현 .....(빈 잔에 다시 생수 채우는데)
기준 (피식 웃으며) 그래서 취하겠니?
도현 (멈칫, 보면)
기준 가만 보면, 다른 건 다 관대한 놈이 여자 문젠 필요 이상 냉정하게
굴더라. 명성그룹 둘째면 나쁘지 않잖아.
도현 ....(보다가) 호감도 없었고, 앞으로 생길 거 같지도 않은데
괜한 여지를 주는 건 비 매너잖아.
기준 마음은 있는데 고백은 못하겠고...그런데 또 마음은 깨끗이 접히질
않고, 그래서 비겁하게 훔쳐만 보는 거.... (여유 있게 도발) 그게
더 비 매너 아닌가?
도현 ! (표정 굳고)
채연 ? (도현 반응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고) 뭐야. 진짜야?
도현이한테, 깨끗이 접히지 않는 여자가 있어?
기준 (재밌는) 왜, 나한테 물어 그걸. 도현이한테 직접 물어야지.
채연 (도현에게) 있어? 진짜야? 그게 누군데?
도현 (가만히....시선 들어 채연을 보는)
채연 (궁금한 눈빛을 반짝이며 도현을 보는)
기준 (그런 도현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남직원 둘!
남직원2 (질렸다는 듯) 아우, 아직도 얘기 중이세요, 나오세요, 쫌!
(채연 잡아끌며) 다들 팀장님 댄스 신고식 보겠다고 난리예요 지금.
(나머지 한 손으론 기준 잡아끌며) 사장님도 나오세요.
남직원1 (도현 잡아끌며) 부사장님도요.
도현, 사양하려는데, 이미 분위기와 술에 취한 직원 둘, ‘에이, 오늘은
갑과 을이 함께 허심탄회 하자면서요오~’ 하며 밖으로 잡아끌고,
난감한 표정의 도현.
S#53 클럽 파라다이스 / 2층 일각 (밤)
기준과 채연을 담당한 남직원2가 앞장서고,
그 뒤에 남직원1, 자꾸 도망가려는 도현을 마치 연행해 가듯
팔짱을 껴서 옥신각신하며 플로어로 데리고 가고 있는데,
도현 (끌려가며) 그럼 전화 한 통만, 딱 한 통만 걸고 곧 내려가겠습니다.
남직원1 (의심의 눈초리로 꼬나보는)
도현 (한 번만 봐줘, 하듯 휴대폰을 꺼내 들어 보이며) 급한 일이라....
남직원1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몸만 돌려 층계를
내려가다 삐끗해서 그대로 계단을 구르는 남직원1!
도현, 엇! 놀라서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도도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남직원1.
그제야 긴장이 풀려 2층 발코니 앞에 놓인 테이블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도현. 너무나 길고 힘든 하루인데.....
문득 플로어를 내려다보면, 직원들과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채연과 기준의 모습, 기준이 채연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면,
웃음을 터뜨리는 채연.
도현 .....(바라보며 씁쓸한데)
허숙희 (E) 많이 외로우신가 봐요?
흠칫해서 보면, 언제 왔는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웬 묘령의 여인.
허숙희 (손등으로 턱을 괴고 앉아 도현을 바라보고 있는) 아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음....마음의 상처가 깊은 분이네요. 느껴져요.
세상에 나 혼자란 느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있는 느낌,
도현 !!!! (굳어지는 얼굴 위로)
허숙희 (E) 내 안의 난폭한 어둠이 언제 뛰쳐나올지 몰라 두려운 느낌!
허숙희 그 느낌 아니까... (미소 짓고는,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인서트) 명함. ‘강한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숙희’
도현 ! (보면)
허숙희 맞아요. 나....(다리를 바꿔 꼬며 거드름) 정신과 의사예요.
대화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하다가 멈칫 플로어 쪽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리진이다!)
도현 (명함을 도로 밀어주며) 감사합니다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려는데, 도현의 팔목을 와락 잡는 허숙희.
도현 ??? (놀라서 보면)
허숙희 (시선은 플로어 쪽에 둔 채 진지하게) 저 좀 도와주세요.
도현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인파 속에서 허숙희를 찾아 헤매고 있는 리진의 모습!
허숙희 제 환자예요. 병동을 탈출해서 날 미행한 거 같아요.
도현 ? (낯이 익은 듯하다가) !!!! (퍼뜩 떠오르는)
(F.C) 산발한 사자머리를 하고, ‘오죽하면 내가 병원을 탈출해서
왔겠냐.’ 소리치던 리진의 모습.
(F.C)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요기가, 요기가, 많이 아픕니다.’
도현 !!!
허숙희 제가 나가서 구급차를 콜할 때까지만 도망 못 가게 좀 붙잡아
주세요. 부탁할게요. (몸을 홱 돌려 나가려는데)
도현 (잡으며, 거절하려) 잠시만요.
허숙희 (진지한 눈빛으로) 아주 위험한 여자예요. 과대망상증 환자.
도현 !!! (리진 쪽을 확 돌아보는데서)
S#54 클럽 파라다이스 / 1층 댄스 플로어 (밤)
요란한 음악 속에 이리저리 인파를 헤치며 허숙희를 찾고 있는 리진.
사람들과 부딪쳐 눈총을 받을 때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데, 문득 어떤 느낌에 2층을
바라보면, 난간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도현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서 뭐라 뭐라 말하고 있는 허숙희의 모습!
리진 !!! (찾았다! 2층을 향해 달려가고)
S#55 클럽 파라다이스 / 2층 일각 (밤)
심각한 표정으로 서서 허숙희의 말을 듣고 있는 도현인데,
리진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E) 허숙희씨이!!!!!
도현 !!! (소리에 놀라서 보면)
마치 공항에서처럼,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리진!
순간 전광석화처럼 몸을 돌려 반대편 계단을 향해 달아나는 허숙희!
리진, 간발의 차로 허숙희를 놓치고, 막 도현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재빨리 리진을 막아서는 도현! 도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박는 리진!
리진 (아씨, 급해죽겠는데 뭐야! 확 쳐다보며) 뭐예요?!
도현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잠시만 여기 계시죠.
리진 아,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이미 계단 내려가는 허숙희 가리키며)
저기 저 여자분, 제 환자예요! 병동을 무단으로 탈출했다구요!
도현 (리진을 안타깝게 보는 위로, 떠오르는)
허숙희 (E) 분명 내가 병동을 탈출한 환자라고 말할 거예요.
물론 자신은 의사라고 주장하겠죠.
리진 나는 저 여자분 주치의예요! 비켜요! (도현을 피해 가려는데)
허숙희 (다급한 어조, E) 과대망상이에요! 절대 믿어서는 안 돼요!!
도현 ! (얼른 앞을 막아서는)
리진 진짜 안 비켜요?! (반대쪽으로 피해 가려면)
도현 (또다시 막아서며) 죄송합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잠시 저랑 얘기를...
리진 (순간 1층 출입구에 거의 도달한 허숙희를 발견하고, 급해져서)
비켜요! (안 비킨다) 쫌 비키라구!! 아, 비키란 말 안 들려!!!!
온몸으로 확 밀쳐내고 쫓아가려는 리진의 어깨를 붙잡는 도현!
거의 반사적으로 그 팔을 잡아 유도기술로 넘겨버리는 리진!
사정없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도현!
순간,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는 도현!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는데...
순간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도현의 눈동자!
도현 !!! (인격교대의 전조증상임을 느끼고)
리진 !!! (도현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다가와) 이봐요, 괜찮아요...?!!
(미안해져서) 그러게 비키라고 했을 때 비켰으면,
리진을 확 밀쳐내고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달려가는 도현!
그런 도현을 보며 잠시 괴로운 갈등을 하다가 에잇! 허숙희를
쫓아 일단 클럽 밖으로 달려나가는 리진!
S#56 클럽 파라다이스 / 2층 화장실 칸막이 안 (밤)
화장실 칸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구석에 구겨지듯 앉는 도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재킷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간신히 뚜껑을
열고 알약을 꺼내 입에 넣으려는데...더욱 심해지는 두통!
순간 약통을 놓쳐버리고, 바닥에 흩어지는 알약들!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참아내는 도현. 더욱 가빠지는 호흡!
도현 (이를 악물고 간절하게) 안 돼.....안 돼.....제발......채연이 누나가
있어. 밖에 기준이 형이 있다구.....안 돼.....!!!!
경련하듯 괴로워하던 도현의 고개가 어느 순간 푹 꺾이고.
잠시 후, 정적 속에 천천히....고개를 드는 도현의 변한 눈빛!
세기다!!!
S#57 클럽 파라다이스 / 2층 화장실 (밤)
쾅!!! 화장실 문이 거의 부서질 듯 열리며, 안에서 나오는 세기!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보다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폭주족1,
폭주1 아 씨, 깜딱이야! 너 땜에 다 튀었잖아!!! (눈을 부라리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거울 앞으로 와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는 세기.
도현의 옷차림....정말 마음에 안 들고. 문득 폭주1의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세기, 다짜고짜 폭주1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세기 딱 내 스타일인데? (살벌하게 미소 짓는데서)
S#58 클럽 파라다이스 / 1층 일각 (밤)
쿵쾅쿵쾅! 심장을 뚫을 듯한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희뿌연 드라이아이스 연기 사이로 유유히 걸어 나오는 세기!
현란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귀의 피어싱! 손가락의 해골 반지!
체인 달린 검은 가죽재킷, 가죽바지, 워커(화장실 폭주족의 옷!)!
완벽 변신한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세기!
그 포스에 쫄아 길을 터주는 사람들!
막 플로어에서 나오던 기준, 그런 세기와 스쳐 지나는데....
기준 (무심히 일견하고 가다가, 멈칫) ....!!! (설마 차도현? 다시 한 번
돌아보는데서)
S#59 클럽 파라다이스 앞 골목 (밤)
클럽 앞에 응급호송차가 세워져 있고,
보호사들이 허숙희의 양팔을 포박해 뒷문으로 태우고 있다.
옆에서 허숙희를 진정시키는 리진.
리진 자꾸 움직이면 더 다쳐요. 가만히 계세요, 허숙희씨.
허숙희 (버둥거리며) 이것 놔! 놓으라니까!! 그 누구도 날 구속할 수는 없어!!!
박선생 (내다보며) 출발할 거니까 얼른 타, 오선생.
리진 네. (차에 오르려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F.C)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던 도현의 모습(55씬).
리진 ....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박선생님, 먼저 가세요!
바로 뒤따라갈게요!
박선생 야, 오리진! 너,
말을 막듯 뒷문을 탕 닫는 리진. 구급차 출발하고 나면,
곧바로 몸을 돌려 클럽으로 향해가는 리진인데....
언제부턴가 입구 옆에 기대서서 그런 리진을 바라보고 있는 세기!
리진, 너무 변한 모습의 도현(세기)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가는데, 순간 리진의 손목을 확 낚아채는 세기.
리진 ! (누구? 보다가, 그제야 알아보는) 어? 아까 그....(하다가,
아래위로 상태 살피며) 괜찮으세요? 아니 근데 옷은 또 언제
갈아 입으셨대?
세기 기억해. (하며, 리진의 손목을 잡아 올리는)
리진 뭐...뭘...요..?
세기 .... (리진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시선을 내리는)
리진 .... (그 시선 따라서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면)
째깍, 째깍, 째깍, 원형의 시계판 속에서 시계 초침이 움직여가고....
마침내 시계바늘이 정확히 10시를 가리키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긴 정적이 흐르는데....
세기 2015년 1월 7일 오후 10시 정각. (다시 리진에게 시선)
리진 (그게 뭐? 세기를 쳐다보는)
세기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간.
리진 .....!!!
이건 뭐지? 뭐지? 뭐지?!!! 몹시 당혹스런 표정이 되는 리진.
그런 리진을 보며 그제야 씨익 웃는 세기의 얼굴에서 엔딩.
-<킬미 힐미>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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