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1
[차분한 음악]
(스태프1) 네 체온 측정 부탁드립니다
손 소독 해 주시고요
[체온계 작동음]
QR 코드 체크해 주시고
[체온계 작동음]
안심 콜 전화해 주셔도 됩니다
체온 측정 부탁드립니다
손 소독도 해 주세요
코로나 방역 수칙에 따라 보호자분 입장이 제한됩니…
어? 나희도 선수 아니세요?
(중년 희도) 네, 안녕하세요
(스태프1) 어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런 데서…
[스태프1의 반가운 탄성] [중년 희도의 웃음]
아유, 네
(중년 희도) 들어가
엄마 차에서 핸드폰으로 보고 있을게
네가 발레를 얼마큼 좋아하는지만 보여 주고 와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민채) 그 생각을 어떻게 버려?
1등 하려고 온 건데
(중년 희도) 1등 하는 거 안 중요해
(민채) 엄마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설득력 없다
치
[체온계 작동음]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상 속 진행자) 다음은 참가 번호 11번
명경중학교 2학년 김민채 학생입니다
잘해라
(스태프2) 김민채 학생
김민채 학생, 들어가실게요
민채 학생, 들어가실게요
[잔잔한 음악]
(진행자) 참가 번호 11번 김민채 불참하였습니다
다음은 참가 번호 12번…
[차 문이 달칵 열린다] (중년 희도) 김민채!
[중년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김민채
(민채) [한숨 쉬며] 나 학원 차 타고 갈 테니까 먼저 가
(중년 희도) 너 지금 포기한 거야?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무슨 경우야?
(민채) [한숨 쉬며] 이미 졌어
최윤서 하는 거 봤을 거 아니야
어차피 못 이겨
(중년 희도) 못 이기면 뭐?
못 이기면 어떻게 되는데?
1등 아니면 의미 없어?
(민채) 없어
[어이없는 숨소리]
나 발레 그만둘래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민채) [한숨 쉬며] 나 가출했어, 할머니
여름 방학 동안만 있을게
[민채의 한숨]
(민채) 도망친 곳이 결국 엄마 방이네
치
[민채가 달그락거린다]
(재경) 우리 민채 발레 그만두겠다고 했다면서?
응? 뭐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어?
사람들은 보통 하고 싶은 게 딱 있는 거야?
너 발레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었어?
벌써 5년이나 했잖아
[한숨]
지금은 모르겠어
뭐라도 하는 게 뭐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재경) 음…
해야 돼서 하는 거 말고 꿈은 있어?
꿈 없다고 말하는 거 어른들은 허용 안 하던데?
[잔잔한 음악] (민채) 꿈 같은 게 필요하긴 한가?
다들 취업 얘기만 하잖아
그러게
이게 너희들의 시대구나?
[발랄한 음악]
되는 건가?
에이, 안 들어 볼래
(민채) '펜싱 연습 경기'
[민채의 놀란 숨소리]
[탁 소리가 울린다]
(민채) 응?
뭐지?
엄마 일기장?
"희도, 펜싱"
"나희도 펜싱 일기장"
와, 이걸 손으로 다 썼다고?
이 정도면 벌칙 아니냐?
[옅은 탄성]
'그 애'?
엄마의 구남친?
[놀라며] 헐, 대박
[달칵] [밝은 음악]
(희도)
(희도)
(희도) 다녀올게!
(학생1) 오늘 순두부찌개
(학생2) 김치찌개 아니야?
[저마다 대화한다]
[희도의 휘파람]
(학생3) 쟤 펜싱부 아니야?
(학생4) 수업 왜 들어왔대?
(학생5) 시험 때만 들어오는 거 아니야?
(희도) 수업 일수 채우러 왔다
됐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
너희들끼리 추측하면 답이 나오냐?
(학생6) 1교시 영어야
그래? 열심히 해
쌤이 나 깨우라고 시키면 펜싱부라고 말해 주고
컨디션 조절 중
(학생6) 응, 알겠어
[기분 좋은 탄성]
나 오늘 되게 기분 좋은 날이거든?
푹 자게 도와줘라, 짝꿍
왜 기분이 좋은데?
토요일이잖아
[피식 웃는다]
(희도)
[수업 종이 울린다]
[시끌시끌하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희도) 사장님! '풀하우스' 11권 수요일에 나오죠?
한 권 빼 주세요
(희도)
[희도의 가쁜 숨소리]
(희도) 어?
에이씨
(희도)
(남자1) 충무로가 죽어 간다!
우리 미래의 기반이 될
한국 영화 문화 산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자국의 영화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미국에 비해서
경쟁력이 전혀 부족하다고…
(여자1)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남자1이 계속 연설한다]
(남자1) 충무로가 죽어 간다!
(사람들) 죽어 간다, 죽어 간다!
(희도) 사람들은 무언가 잃어 가나 보다
그렇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난 뭔가를 잃기엔
너무 열여덟이니까 [강조되는 효과음]
[경쾌한 음악]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희도)
(남자1) 충무로가 죽어 간다!
(사람들) 죽어 간다, 죽어 간다!
"태양고등학교"
[가쁜 숨소리]
[탁 치는 소리]
(희도) 그리고 꿈이자 동경인 그 애
그 애는 천재다
[관중들의 함성]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
"싱가포르 1997 이탈리아 페란테, 한국 고유림"
[버저가 삐 울린다] [유림과 관중들의 환호]
(캐스터) 고유림 선수 금메달입니다!
고유림 선수가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 줍니다! [벅찬 숨소리]
[TV 속 유림의 벅찬 탄성] (TV 속 캐스터) 아 정말 멋있습니다!
아, 이 어린 선수가 펜싱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17살의 나이로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멋있다 [TV 속 캐스터가 계속 말한다]
(희도) 내 꿈은 그 애의 라이벌이 되는 것
[벅찬 숨소리]
물론 현실은 밟고 서 있는 곳이 다르다
[코를 훌쩍인다]
[희도의 한숨]
돌아오는 길은 좀 복잡해진다
[입술을 부르르 튕긴다]
사실은 나도
그 애처럼 빛나고 싶다
그런데 그 일이 터진 거다
[숨을 하 내쉰다]
IMF
하, 그딴 건 정말 나와 상관없는 줄 알았다
IMF 때문에 학교 예산이 줄었고
우리 펜싱부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의 당황한 숨소리]
펜싱부를 왜 없애요?
(코치) 야구, 농구 프로 팀들도
다들 구단을 매각하니 마니 하는데
이 시국에 고등학교 펜싱부 하나 없어지는 게 대수야?
그럼 저희는 어떡해요?
(코치) 학교마다 예산 줄인다고
성적 못 내는 운동부들 줄줄이 폐부시키는 마당에
너희들 받아 줄 학교가 있겠어?
[떨리는 숨소리] 막말로
[코치의 헛웃음]
너희들이 고유림도 아니고
아휴, 쯧
고유림이 있는 태양고는
안 없어져요?
고유림이 있는데 없애겠냐!
(코치) 예라, 이…
펜싱이 한두 푼 드는 운동도 아니고
이 시국에 다들 가정 형편도 힘들 텐데
다른 길 찾아
당장 내일부터 교실로 복귀한다, 알겠나!
아니, 쌤
이렇게 끝내시면 어떡해요?
[떨리는 숨소리]
이렇게 꿈을 뺏는 게 어디 있어요!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야
시대지
[감성적인 음악]
[코치가 혀를 쯧 찬다]
[떨리는 숨소리] [코치의 못마땅한 소리]
(희도) 시대
내 꿈을 빼앗은 건 시대? [문이 끼익 여닫힌다]
[키보드 조작음]
[풀벌레 울음] [채팅 알림음]
(희도)
(희도) 근데 방법을 모르겠어
[희도의 한숨]
[의미심장한 효과음]
'그 애의 세계'?
[자전거 경적]
[새가 지저귄다]
[탁 소리가 울린다]
[부드러운 음악]
[매미 울음]
(남자2) 이봐요, 학생
네?
신문이 10분이나 늦었잖아요!
(남자2) 신문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한테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아요?
(이진) 죄송합니다
(남자2) 신문이 안 와서 똥을 못 싸고 있다고, 지금 내가
제가 이 동네는 처음이라
한 시간 일찍 시작했는데도 좀 늦었네요
근데 그럴 수도 있잖아요
뭐요?
(이진) 저 이 동네도 처음이고 이 신문 배달도 처음이에요
그래서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그 처음이 오늘이니까 오늘까지만 서툴겠습니다
내일부턴 늦지 않을게요
(이진) 여기요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남자2의 어이없는 숨소리]
(남자2) 왜 웃어?
왜 웃어 주는 거지?
[비디오 플레이어 작동음]
[TV 속 재경이 말한다]
[탄성]
(TV 속 재경) 재정 경제부도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고 개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예금자 보호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소급 적용 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쓱쓱 문지르는 소리]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겨울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참여했던 금 모으기 운동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참했는데요
석 달 만에 모아진 금이 무려 225톤이었습니다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22억 달러가 넘는 금액입니다
[검을 툭 놓는다]
[보석함을 탁 닫는다] [떨리는 숨소리]
(TV 속 기자1) 알 수 없을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UBS 뉴스 김동현입니다
박세리 선수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TV 속 재경) 경제 위기로 지쳐 있던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통쾌한 한 방이었습니다
김연주 기자입니다
[TV 속 기자2가 말한다] (재경) 야, 저 선수 너랑 4살밖에 차이 안 나더라
(TV 속 기자2) 약 6시간의 숨 막히는 혈투 끝에 [재경이 피식 웃는다]
박세리 선수의 우승으로 경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박세리 선수는 아버지 품에 안겨…
나 태양고로 전학 보내 줄 수 있어?
[TV 속 기자2가 계속 말한다] (재경) 태양고?
그 고유림 있는 학교 말하는 거야?
(희도) 응
IMF인지 뭔지 때문에 우리 학교 펜싱부 없어졌어
전학 보내 줘
(재경) 잘됐네
그만둬, 펜싱
[이진이 중얼거린다]
(희도) 내가 펜싱을 왜 그만둬? [멀리서 개가 짖는다]
평생 펜싱만 하고 살았어!
이게 내 전부인데 뭘 그만두라는 거야!
넌 펜싱 왜 하니?
재능 없는 거 증명하려고 하니?
(재경) 해도 안 되는 거 집어치우고 공부 다시 시작해
나 펜싱에 재능 있어
그래서 시작했어
지금은 슬럼프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그리고 나 딴거 다 필요 없어, 그냥
그냥 펜싱이 좋아
성과도 없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재경) 전학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 시작해
(희도) 전학을 가든 어쩌든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엄마도 원래 하던 대로 내 인생에 신경 꺼
이제 와서 관심 있는 척하지 말고
(재경) 나희도
그 싸가지 참아 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
[희도의 한숨]
(희도) 결혼반지 팔았더라?
그 잘난 금 모으기 운동 하느라
감상 떨지 마
그냥 금덩이일 뿐이야
그냥 금덩이가 아니라
아빠 유품이야
잊었나 본데 너희 엄마 공인이야
솔선수범의 책임이 있는 사람
[어이없는 숨소리]
그래
사회에 솔선수범하는 앵커로 살아
어차피 가족한텐 안 하잖아 솔선수범
[희도가 씩씩거린다]
[신문이 퐁당 빠진다]
[흥미로운 음악]
야!
[대문이 덜컥 열린다] (이진) 아씨
[달려오는 발걸음]
[다급한 숨소리]
(희도) 오줌 누는 소년이 다쳤잖아!
뭐가 다쳤다고요?
오줌 누는 소년이 더 이상 오줌을 눌 수 없게 됐다고
(희도) '신문 사절' 안 보여?
신문을 사절한다는데 왜 사절을 안 해서
가만있는 애를 고자로 만드냐고!
[희도가 씩씩거린다]
씨, 내 말 안 들려?
이 동네는 소리를 안 지르면 대화가 안 되나? 씨
[의아한 숨소리]
(이진) 네가 반말하는 건 나도 반말해도 된다는 뜻으로 알게
그리고 '신문 사절' 붙여 놔도
신문 넣는 건 사회의 암묵적 합의야
'합'…
이제 알아듣게 얘기해 봐 뭐, 뭐가 다쳤다고?
[확성기로 호객하는 소리]
[이진의 한숨]
(이진) 저 짝퉁 동상 말하는 거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거
저게 짝퉁이야?
(희도) 저딴 게 원본이 있다고?
아니, 짝퉁이면 오줌 누는 소년이
오줌을 못 눠도 된다는 거야?
누구나 오줌 눌 권리는 있어!
그러니까 네 주장은 종이로 만든 신문이
저 금속으로 만든 동상을 부쉈다는 얘기잖아?
그래,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야, 상식적으로…
아, 상식적으로
이 신문에 부서질 정도면 이미 금이 가 있었다는 건데
[한숨]
내가 뭐, 어디까지 배상할까?
누가 배상하래?
그럼 뭘, 뭘 하라는 건데?
모르지!
난 그냥 화를 내고 싶었어
화가 나니까!
[희도가 씩씩거린다]
(희도) 조심히 가
[한숨]
[잔잔한 음악]
(집주인) 우리 집에 고등학생 딸내미가 있는데
걔가 전교 1등이야
새벽까지 공부한다고 방에서 불이 안 꺼져
그러니까 밤엔 시끄럽게 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아니, 근데 이사 날에 사람은 안 오고
짐부터 오는 게 어디 있어?
죄송해요, 아르바이트 면접 보느라 좀 늦었어요
(집주인) 벌써 이 동네 아르바이트를 구했어?
이사도 안 끝내 놓고?
예, 그, 집보다 돈이 좀 급해 가지고요
어린 총각이 반질반질하게 생겨서 생활력은 있나 보네
근데 총각이야? 대학생이야?
대학은…
복학 못 할 거 같아요
왜? IMF 맞았어?
집이 헤까닥했구나?
(집주인) 아이고
나 총각 얼굴 보고 세 안 주려 그랬다
오렌지족 그런 건 줄 알고
[어색한 웃음]
오렌지족은 이 동네 안 살아요
[멀리서 개가 짖는다]
(집주인) 맞아 [이진이 살짝 웃는다]
[한숨]
[한숨]
[한숨]
[강조되는 효과음]
[흥얼거린다]
[이진의 힘주는 숨소리]
[편안한 탄성]
[흥얼거린다]
(이진) 아
[흥얼거린다]
[버튼 조작음]
[강렬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힘주는 신음]
[편안한 탄성]
[숨을 후 내쉰다]
[쓸쓸한 음악]
[스위치 조작음]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똑똑 소리가 울린다]
[바코드 인식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희도) 이 동네 아르바이트를 혼자 다 하네?
[바코드 인식음]
'풀하우스' 11권 나왔지?
(이진) 다 나갔는데?
(희도) 안 빼놨다고?
사장님한테 못 들었어?
나 여기 VIP야
여기 내가 쓴 돈이 얼마인데 [이진이 의아해한다]
차례 기다려서 빌려 가는 그런 손님 아니란 말이야
(이진) 야, 이, 이 코딱지 네가 붙인 거야?
뭐라고?
사장님이 책 파손된 데 있는지
코딱지 붙여 놨는지 일일이 확인하라고 하셔서
파손된 건 보상받으라고 하셨는데
(이진) 이거 코딱지가 너무 크다, 이거
(희도) 나 아니거든!
나이가 몇 개인데 만화책에 코딱지를 붙여!
(이진) [헛웃음 치며] 어릴 땐 붙였나 보네
[이진이 달그락거린다]
[바코드 인식음]
너 우리 집에 배상할 거 있지?
너 그거 어떻게 배상할 건데?
'풀하우스' 11권이면 되겠어?
되겠어
[어이없는 숨소리]
내일 이 시간에 와, 빼놓을 테니까
[이진이 달그락거린다]
이 시간에는 못 오고 조금 늦을 거야, 할 일이 있어서
[바코드 인식음] (희도) 근데 오긴 올 거다
너 꼭 빼놔, 씨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펜싱은 계속하나 보네
[풀벌레 울음]
[흥미로운 음악]
(희도) 아무도 없네?
(찬미) 오늘 야간 없는 날이거든
[희도가 당황한다]
양찬미 코치님
저…
오늘은 코치님을 뵈러 왔습니다
(찬미) '오늘은'?
(희도) 아, 그…
저는 선중여고 펜싱부 나희도라고 합니다!
[찬미가 사과를 아삭 베어 문다]
근데 여기는 우짠 일로?
(희도) 코치님, 절 받아 주십시오!
저희 학교 펜싱부가 IMF 때문에 없어졌습니다
근데 저는 펜싱을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받아 주신다면 태양고로 전학 오고 싶습니다 [찬미가 사과를 아삭 베어 문다]
니 펜싱 몬하제?
예?
(찬미) 니 하는 거 봐라, 이거
야, 설득도 기술이다
우째 그리 센스가 없노?
무식하고 촌시럽고
니 펜싱도 딱 그래 하제?
네
알믄서 와 그라는데?
정통하니까요
뭐?
테크닉도 센스도 다 중요하지만
정통한 것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예
잘 들었십니다
잘 가입시다
(희도) 저, 코치님
[희도의 간절한 숨소리]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잘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잘하겠습니다!
저 좀 받아 주세요, 제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르겠는데
테스트받게 해 주십시오
야 봐라, 내가 와?
아이,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 진짜 뭐든 할 자신 있습니다
제발요, 코치님
그럼 와 보든가, 전학
(찬미) 아이데이, 아이다, 아이다
내 니한테 전학 오라고 한 거 아이다
내가 니한테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자?
대신 니가 온나
할 수 있으면
[밝은 음악]
[찬미가 사과를 아삭 베어 문다]
예
올게요, 전학
안 부르셨지만 제가 와 보겠습니다!
(희도) 안녕히 계십시오!
[비장한 음악]
(희도) 그래, 언제부터 엄마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학교 안이 시끌시끌하다]
전학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보내지면 된다
강제 전학
이것이 내 계획이다
동급생 폭행이라?
[입바람을 후 분다]
[오도독거리는 소리]
[학생들이 시끌시끌하다]
[학생들의 웃음]
(학생7) 야 얘네 없어, 없어, 없어
[학생들이 저마다 말한다] (희도) 나쁜 짓 중에도 착한 짓이 있다
[강조되는 효과음] [쨍그랑 소리가 울린다]
동급생을 폭행할 수밖에 없었던 대의와 명분
[발소리가 울린다] 나는 오늘 정의를 실현하는 동시에
내 목표인 강제 전학을 달성한다
고유림, 너의 세계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야
[학생7의 웃음]
[학생7의 아파하는 신음]
[긴장되는 음악] 너 지금 나 쳤냐?
[학생7의 어이없는 숨소리] (학생7) 뭐?
- 야 - (희도) 왜!
[학생7의 헛웃음]
아나
너 펜싱부 아니야?
근데?
[버럭 하며] 운동선수는 몸이 생명인 거 몰라?
[익살스러운 음악] (학생7) 조심 좀 해!
다치지 않게 앞을 똑바로 보고 다니라고
어깨 괜찮아?
(희도) 어
(학생7) 아유, 조심해
대회도 나가고, 어?
메달도 따고 그래야 될 거 아니야
아니, 저기…
(학생7) 가자, 그냥
[학생들이 대화한다]
야
[희도의 못마땅한 숨소리] (희도) 실패!
[흥미로운 음악]
아, 남일여고 이 미친년들
내가 오늘 제대로 밟아 준다
그때 나이트에서 시비 걸 때 조져 놨어야 됐어
[삐삐 알림음]
야, 애들 출발했나 봐
(학생8) 8282 떴어, 가자
(학생7) 가자
뒈졌어, 이씨
죽여 버릴 거야
[흥미진진한 음악]
[뼈가 우두둑거린다] (희도) 내가 다소 순진했다
강제 전학을 위해선 좀 더 확실한 폭행이 필요하다
오늘 내가 가담할 폭행은
[바람이 휭 분다] 집단 폭행
일명 패싸움
[흥미로운 음악]
나는 오늘 이 싸움에 휘말려 강제 전학을 통보받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경찰의 개입
[확신에 찬 숨소리]
[통화 대기음]
[버튼 조작음]
[통화 연결음]
여기 삼림아파트 뒤편 공터인데요
패싸움을 하는 거 같아 가지고요
빨리 와 주세요
(희도) 기다려, 고유림
[결연한 숨소리] 이번엔 진짜 너의 세계로 간다
[긴장되는 음악] (학생7) 쫄리긴 했나 보다?
저딴 새끼들까지 병풍 세워 놓은 걸 보면
어느 쪽이 네 깔인데?
[학생7의 한숨]
어느 쪽이어도 실망스러운데?
[학생9의 헛웃음]
미친년이 입만 살아 가지고
[학생7이 껌을 질겅질겅 씹는다]
[학생들이 피식거린다]
[학생7의 비웃음]
이게 처돌았나!
(학생7) 뭐, 이씨! [학생9의 아파하는 신음]
[학생10의 힘주는 신음] [학생9가 씩씩거린다]
[학생들의 기합]
[흥미진진한 음악] [소란스럽게 싸운다]
[다급한 숨소리]
오케이
(학생9) 아이씨! [학생9의 비명]
[학생7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3) 이리 와
[힘주는 숨소리]
[학생7의 비명]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희도) 저게 미쳤나
[남자3의 성난 숨소리] [학생7의 신음]
(남자3) 아, 이게 누굴 때려 죽으려고, 그냥, 씨
[날렵한 효과음]
[박진감 넘치는 음악]
넌 뭐냐?
[남자3의 신음]
아이씨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소란스럽게 싸운다]
[남자4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3) 아씨…
아나, 아유
[남자3의 아파하는 탄성]
[남자3의 힘주는 신음]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날렵한 효과음]
[아파하는 신음] [성난 숨소리]
[힘주는 신음]
[긴장되는 효과음]
[날렵한 효과음] [남자3의 아파하는 신음]
[박진감 넘치는 음악]
[남자3의 다급한 숨소리]
씨…
[남자3의 당황한 숨소리]
[남자3의 힘겨운 신음]
뭐야?
[아파하는 신음]
[남자3의 겁먹은 신음]
[날렵한 효과음] [남자3의 겁먹은 신음]
[꿀꺽 삼키는 효과음]
[날카로운 효과음]
[거친 숨소리]
(희도) 야, 이 싸움의 가해자는 나여야 하거든?
내 계획 방해하지 마
[사이렌이 울린다] 진짜 찔리기 싫으면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학생들이 소란스럽다] [차가 끼익 멈춘다]
[차 문이 달칵 열린다]
[호각이 삑삑 울린다]
[남자3의 신음]
[희도의 기쁜 숨소리] (남자3) 씨…
(희도) 제가 싸움을 주도한…
- (경찰) 학생, 안 다쳤어? - (희도) 네
(경찰) 야, 거기 안 서!
[익살스러운 음악]
(희도) 잡히려면
도망가야 되는구나
저기, 저기요!
저도 싸웠어요, 아저씨!
[헛웃음]
[답답한 신음]
난 왜 안 잡아가냐고!
[희도의 답답한 탄성]
나 전학 가야 된다고!
강제 전학 보내 달라고!
[칭얼거린다]
[탁 치는 소리]
[유림의 가쁜 숨소리]
[한숨] [탁 치는 소리]
[유림의 힘겨운 숨소리]
고유림
너한테 가기가 뭐가 이렇게 어렵냐
[한숨]
[하늘이 우르릉 울린다] 어?
[당황한 숨소리]
[차분한 음악]
[유림의 한숨]
아, 많이 오네
[달려오는 발걸음]
[희도의 가쁜 숨소리]
[탁 소리가 울린다]
[부드러운 음악]
뭐지?
(희도) 비 맞지 말고 쓰고 가!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유림) 누구야?
그냥 팬이야, 팬!
고마워, 잘 쓸게!
기다려, 고유림
나 진짜 네 세계로 갈게
[희도의 신난 탄성]
[벅찬 숨소리]
[웃음]
[웃음소리가 울린다]
[시끌시끌하다]
(희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애매한 탈선이 아니라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확실한 불법이다
밤과 음악
술과 담배
그리고 미성년자
뭔 일이 안 나곤 못 배기지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시끌시끌하다]
(희도) 탈선하기 좋은 나라다
단속 나온 경찰 하나 안 보이네
아, 이렇게 미성년자가 버젓이 나이트에…
(웨이터) 손님, 아, 레츠 고
(희도) 엄마!
[문이 달칵 열린다]
(웨이터) 자, 들어가시고
[희도가 콜록거린다]
자,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잉
[콜록거린다] [문이 탁 닫힌다]
[차분한 음악]
[콜록거린다]
(남자5) 아, 뭐야, 고딩 아니야?
(여자2) 화장 보면 답 나오지
누가 봐도 엄마 옷에 누가 봐도 고딩이잖아
[콜록거리며] 나 고딩 아닌데?
(남자6) 고딩 아니면 앉아
[한숨]
[희도의 헛기침]
(남자7) 야, 너 솔직히 말해 봐 몇 살이야?
야, 몇 살인 게 뭐가 중요해?
(남자6) 세상 빨리 알고 싶은 고딩한테
세상 좀 빨리 알려 주는 게 뭐 어때서
나 이 술 마셔도 되지?
[희도의 헛기침]
(남자6) 얘 봐라?
이런 데서는 따라 주는 술 마시는 거야
마셔
[이진의 한숨]
뭐 하냐?
(이진) 내보내
물 흐리지 말고
아이, 술 아까워
(남자6) [웃으며] 아, 이 새끼
집 망하더니 별걸 다 아까워하네
야, 깝치지 마, 내가 계산할 거야
핸드폰까지 없앤 놈한테 내가 술값 계산을 시키겠냐?
[무거운 음악]
너 오늘 나한테 부탁할 거 있어서 나온 거 아니야?
언제 얘기할 건데?
[한숨]
얘기 못 하겠지
아직 자존심을 못 버려서
돈 얘기 입이 안 떨어지지?
저기…
넌 닥치고 술이나 마셔, 이씨
[이진의 한숨]
(이진) 일어나
[작은 목소리로] 먼저 가 난 여기서 얽혀야 될 일이 있어
[희도의 헛기침]
[어두운 음악]
어딜 가? 앉아
야, 작작 해
(남자5) 아, 왜 그래, 이 새끼야?
(남자6) 왜 그러긴
망한 재벌 집 아들한테 열등감이 터져서 그러지
- 비켜 - (남자6) 가려면 혼자 가
얘 있고 싶다잖아
[퍽] [남자6의 아파하는 신음]
(남자6) 아이씨…
아씨, 야, 경찰에 신고한다
나이트에 누가 봐도 고딩인 애가 있다고
해 주세요, 신고 [흥미로운 음악]
[헛웃음 치며] 해 달라네?
(남자6) 어떻게 생각해?
내가 진짜 계획이 있어서 그래, 어?
[이진의 거친 숨소리]
(남자6) 너희 둘이 아는 사이지?
너 그래서 그러는 거지?
그럼 결정해
신고하고 걔 잡혀가는 거 보든가
아니면 다 같이 여기서 조용히 놀든가
[헛웃음]
어떡할래? 빨리 결정해
너 결정하기 전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시계를 잘그락거린다]
그래, 다 같이 나가자, 그냥
[비상벨이 울린다] [희도의 비명]
[희도의 가쁜 숨소리]
[한숨]
[웅성거린다]
(직원) 자, 모두들 입구로 대피하세요!
[소란스럽다] 빨리 나가요, 나가세요!
웨이터들, 빨리 대피시켜, 손님들!
너 미쳤어?
[웨이터의 가쁜 숨소리]
(웨이터) 형님들, 누님들 빨리 대피하십시오
(남자6) 아, 이 새끼 집 망하더니 사람 변한 거 봐라
누가 변해? 내가?
너 아니고?
아나, 씨, 집 망하니깐 다행인 게 있네
누군가의 바닥을 보는 거
(이진) 야, 처음부터 나한테 이렇게 해 보지, 어?
[무거운 음악]
난 또 우리가 친구인 줄 알았잖아
[소란스럽다]
(이진) 버스 끊기기 전에 빨리 들어가라
(희도) 야! [희도의 성난 숨소리]
너 미친 거야?
이게 무슨 난리인데!
넌 지금 이게 무슨 난리인데?
집에서 '풀하우스'나 볼 것이지
어울리지도 않는 날라리 흉내 왜 내는데?
내가 시시하게 날라리 흉내나 내자고
이러는 거 같아?
이건 내 인생의 중요한 계획의 일부라고!
(이진) 무슨 계획?
고딩이 겁도 없이 나이트 와서
부킹하고 술 마시는 게 무슨 계획이냐고
너 경찰서 가고 싶어?
어, 가고 싶어
(희도) 그게 내 계획이었어
가서 미성년자가 나이트 간 거 걸렸어야 됐고 [한숨]
학교에 연락이 갔어야 됐고
학교에서!
[한숨]
날 강제 전학 보냈어야 됐다고
(이진) 너 지금 강제 전학 가고 싶어서
이런 계획을 세웠단 거야?
왜? 그럼 안 돼?
[답답한 한숨]
너 왜 법이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줄 알아?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이진) 너 여기서 무슨 일에 휘말리는 상상 했어?
실제로 일어날 일이
네 상상의 범주 안에나 있을 거 같아?
전혀 아니야
이런 데 오면 네 인생에 없어도 되는 일
없어야 되는 일
없는 게 훨씬 나은 일들이 생겨
나쁜 일을 저지를 때
성인의 상상력과 미성년자의 상상력이
천지 차이라서
[한숨]
[한숨]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되는데?
하루아침에 꿈을 뺏겼어
[잔잔한 음악]
[떨리는 목소리로] 펜싱부는 없어지고
나는 펜싱이 계속하고 싶어서 미치겠고
엄마는 펜싱 그만두고 공부나 하라고 하고
(희도) 나 펜싱에 재능 있어
그래서 시작했어
지금은 슬럼프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그리고 나 딴거 다 필요 없어, 그냥
그냥 펜싱이 좋아
(희도) 코치 쌤이 그러더라
내 꿈을 뺏은 건
자기가 아니라
시대래
대체 시대가 뭔데 내 꿈을 뺏을 수 있냔 말이야
시대는
충분히 네 꿈 뺏을 수 있어
꿈뿐만 아니라 돈도 뺏을 수 있고
가족도 뺏을 수 있어
그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빼앗기도 하고
오늘 네 계획이 망한 건 내가 망쳐서가 아니야
틀린 계획이었기 때문에 망한 거야
다시 세워, 계획
재수 없어
너 나한테 받을 거 있지?
[멀리서 개가 짖는다] [셔터 문이 드르륵 내려온다]
[이진이 손을 탁탁 턴다]
(이진) 배상은 이걸로 끝내는 거다
근데 너 몇 살이야?
스물둘
[놀란 탄성]
너 그 반응 실례야
(희도) 아니, 난 한 스무 살쯤 되는 줄 알았어
요
내가 그동안 너무 반말을 했네
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존대해
에이, 그건 아니지
우리가 그동안 섞은 반말이 몇 개인데
[희도가 책장을 사락 넘긴다]
[한숨]
꿈을 지키려는 거
계획은 틀렸어도
네 의지는 옳아
[한숨]
난 맨날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근데 넌 얻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더라
나도 이제 그렇게 해 보고 싶어
[잔잔한 음악]
근데 진짜 집이 망했어?
어
세게 망했어
에이, 젊을 때 망해 보고 그러는 거지, 뭐
[웃으며] 60 다 돼서 망하는 거보다 낫잖아
[희도의 웃음]
그게 우리 아빠야
아니, 내 말은…
(이진) 그래서 나는 부모님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됐거든?
근데 넌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도움 청할 데가 있다는 건 네 나이만 가진 특혜니까 누려
놓치면 아깝잖아
그러게
'풀하우스'에서 누구 제일 좋아해?
라이더
남자 주인공
역시 사람들은 부자를 좋아하는구나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거든
(희도) 그럼 난 잘생긴 라이더 보러 빨리 가야겠다
갈게
(이진) 잠깐만
이름이 뭐야?
[잔잔한 음악]
대여 기록 남겨야 돼서
희도
나희도
넌 이름이 뭔데?
그냥 묻는 거야 통성명이 예의니까
백이진
신문 사절은 취소야, 백이진
[옅은 웃음]
(희도) 사고 칠 용기는 있었는데 [키보드 조작음]
엄마를 설득할 용기는 없었어
나한텐 엄마가 재일 높은 벽일지도 모르겠다
[채팅 알림음]
[키보드 조작음] (희도) 나도 가끔
니가 너무 궁금해
어디에 살고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꿈꾸는지
[채팅 알림음]
[피식 웃는다]
그건 그래
[키보드 조작음]
[새가 지저귄다]
할 말 뭔데?
(희도) 그…
전학 가고 싶다는 거
그거 진심이야
나 이대로 시시하게 펜싱 그만두고 싶지 않아
계속 성적 안 나오고 못하고 있는 거 맞는데
나 진짜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도와줘
노력하는 게 맞아?
(재경) 너 이 옷 입고 어디 갔어?
내 화장품도 손댔지?
화장하고 이 옷 입고 어딜 갔길래
술 냄새, 담배 냄새 묻혀 왔어?
[떨리는 숨소리]
나이트
너 미쳤어? 응?
미칠 만큼 간절했어
나이트 가서 경찰한테 걸려서 강제 전학 당할 생각이었어
(재경)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어
[버럭 하며] 지금 이게 노력하는 사람의 태도야? 어?
[재경의 답답한 숨소리]
나희도
너 펜싱 시작할 때 천재 소리 들었어, 응?
누구보다 우월한 시작이었어
근데 지금 넌 어디 있니?
아직도 펜싱 신동 거기 머물러 있잖아
남들이 갈고닦고 나아가는 동안 너 혼자 제자리잖아!
나도 그래서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재경) 그럼 죽을 만큼 열심히 했어야지!
나이트나 들락거리고, 어?
야, 이딴 만화책이나 보고 있으면서
무슨 펜싱이고 전학이야!
[만화책이 툭 떨어진다]
[희도의 떨리는 숨소리]
(희도) 엄마가 뭔데 '풀하우스'를 찢어?
엄마가 저 만화책보다 나은 게 있는 줄 알아?
[울먹이며] 엄마 내 경기 보러 한 번도 안 왔지?
나 경기 지고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할 때마다
나 위로해 줬던 거
엄마가 아니라 저 만화책이었어
근데 무슨 자격으로 저걸 찢냐고!
뭐가 나아서!
[울먹인다]
[무거운 음악]
엄마한테 오늘 전학 가고 싶단 말 하려고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모르지?
강제 전학 가려고 나이트 갈 때보다
엄마랑 대화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
엄마는 나한테 그런 존재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아빠 돌아가신 이후로 쭉
[문이 덜컥 열린다]
[떨리는 숨소리]
[문이 탁 닫힌다]
[한숨]
[책장을 사락거린다]
[놀란 숨소리]
(희도) 아이씨
[희도의 속상한 숨소리]
[멀어지는 발걸음]
[기어 조작음] [차 키를 달칵 돌린다]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나 신재경이야
오랜만이다
[쓱쓱 문지르는 소리]
[희도의 힘주는 숨소리]
(희도) 아, 아이, 아이씨
이거 어떡하냐고
아씨, 용돈 받고 나서 싸울걸
물어 줄 돈도 없는데
[희도의 짜증 섞인 탄성]
[삐삐 알림음]
[희도의 힘주는 신음]
[삐삐 조작음]
[삐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진) 명진책대여점입니다
오늘 '풀하우스' 11권 꼭 반납해 주세요
나희도 학생
[전화기 조작음] [흥미로운 음악]
(희도)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거친 숨소리]
내용은 다 생각나는데
대사도 다 생각나는데
나 어떡해!
[희도가 칭얼거린다] [흥미로운 음악]
[풀벌레 울음] [다가오는 자동차 엔진음]
[탁 잡는 소리]
[덜컥거리는 소리]
(이진) 아이씨, 문이…
야, 갖고 있어, 갖고 있어 봐
[익살스러운 음악]
좀 늦으셨네, 어?
[당황한 숨소리]
(희도) 안녕히 계세요
뭐야, 왜 저래?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진) 이, 뭐야, 이거?
야, 나희도!
[희도의 긴장한 숨소리]
야, 이건 뭐야, 이거?
[흐느낀다]
야, 왜, 왜 울어? 어?
왜 울어?
[희도가 엉엉 운다]
야, 이게…
(이진) 뭐? 엄마가 뭐, 엄마가 뭐라고?
(희도)
(이진) 마, 말을 또박또박해 봐
[이진이 의아해한다] (희도)
(이진) 뭐? 야, 마, 말…
(희도)
[희도가 엉엉 운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한숨 쉬며] 아니…
[이진이 키득거린다]
[이진이 중얼거린다]
(이진) '내가 널 좋아하면'
[피식 웃으며] '외', '외 않'…
[킥킥댄다]
[새가 지저귄다] [매미 울음]
[찬미가 사과를 아삭 베어 문다]
[놀라며] 양찬미 코치님 기다렸습니다
(찬미) 오랜만이다?
(희도) 죄송합니다
전학 오려고 최선을 다해 봤는데
모든 계획이 다 실패했습니다
[한숨]
그래서 제 실력을 보여 드리러 왔습니다
욕심나는 실력인지 아닌지 직접 보시고 판단해 주십시오
[희도가 지퍼를 직 연다]
[힘주는 숨소리]
저 칼도 갖고 왔습니다
[긴장되는 효과음]
[휙휙 도는 효과음]
[강조되는 효과음]
[긴장되는 효과음]
[강조되는 효과음]
[흥미진진한 음악]
1차 테스트 합격
(찬미) 따라온나
[기뻐하는 탄성]
(찬미) 니 돈 좀 있나?
아…
[작은 목소리로] 혹시 아직도 뒷돈 받으세요?
[헛웃음]
돈 좀 있냐고 [흥미로운 음악]
[동전이 잘그랑거린다]
- 600원 있는데요 - (찬미) 600원, 오케이
(찬미) 600원 줘 봐
자, 하나, 둘, 셋, 넷
니 300원 줘 봐
니 300원, 내 300원, 응?
[동전이 짤랑거린다]
[찬미의 힘주는 신음]
니가 내 제자가 될 확률은 50 대 50이데이
니가 생각했던 거보단 꽤 높은 확률이제?
2차 테스트 시작
[강조되는 효과음]
아, 2차 테스트가 짤짤이구나
홀? 짝?
[강조되는 효과음]
짝! [강조되는 효과음]
(찬미) 홀 [흥미로운 음악]
아, 저 아직 300원 남았어요, 쌤
기회 한 번만 더 주세요
[희도가 살짝 웃는다]
[동전이 짤랑거린다] [찬미의 힘주는 숨소리]
[숨을 후 내쉰다]
홀? 짝?
홀!
[흥미로운 음악]
(찬미) 짝!
[동전이 잘그랑거린다] (희도) 어?
(찬미) 2차 테스트 불합격
어, 아니, 어…
잠시만요! [부스럭거린다]
[희도의 다급한 숨소리]
[무거운 효과음]
올인
[긴장되는 효과음]
저 마지막 기회 한 번만 더 주세요
[흥미진진한 음악] [간절한 숨소리]
제발요, 한 번만요
[동전이 짤랑거린다] (찬미) 아수라발발
[긴장한 숨소리] 아수라발발
아수라발발 발발 발발 발발
발발 발발발!
[긴장되는 효과음]
타
짝!
[간절한 숨소리]
자
(찬미) 홀 [익살스러운 음악]
[동전이 잘그랑거린다] [희도가 엉엉 운다]
(희도) 아이, 코치님!
이런 거는 펜싱 실력이랑 아무 상관 없잖아요!
와 상관이 없노? 어?
선수가 뭐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뭐, 다 성공하는 줄 아나?
[칭얼거린다]
(찬미)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다
경기는 운발
그라고 기세지
아유, 씨, 니 봐라, 그거
운 드럽게 없어 가지고
[시무룩한 숨소리]
근데 또 운발은 내가 좋다
쯧, 선수는 코치 운발 따라가는 기라
2차 테스트 합격
다음 주부터 태양고로 등교해
[밝은 음악]
정말이에요?
그, 게임은 게임이니까 요건 놔두고 가고이
예, 당연하죠
[벅찬 숨소리]
(희도) 감사합니다!
쌤, 진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희도의 들뜬 탄성]
(찬미) 안녕
(희도) 감사합니다!
[문이 탁 닫힌다]
[찬미의 힘주는 숨소리]
와, 씨
모녀가 소통을 안 하는구먼
[차분한 음악]
(찬미) 너무 대단한 분이 오셔가 존댓말이 나올라 칸다
잘 지냈니?
잘 지내야겠다
살다 보니 신 기자가 내 학부형으로 다 찾아오고
말했다시피 우리 딸이 펜싱 하는데…
(찬미) 안다
[부스럭거리며] 느그 딸 내 앞에 와서 무릎 꿇었다
지 받아 달라꼬
같은 부탁이제?
(재경) 응
근데 내 딸인 줄 어떻게 알았어?
니 남편 장례식장에서 봤다
너 거기 왔었어?
(찬미) 응
근데 니는 안 왔데?
다음 주부터 등교시키라
고마워
(찬미) 고마울 거 없다
니 부탁 때문에 해 준 거 아이니까
내가 땡기 갖고 델꼬 온 기다
근데 니는
내한테 부탁은 해도 사과는 안 할 긴가 봐?
니는 내가 니 이해해 줄 줄 알았제?
와 대답이 없노?
딸 맽기는 입장 되니까 옛날같이 몬된 말이 안 나오나?
못되고 싶었던 적 없어
[차분한 음악]
이해받고 싶었던 적은 있어도
[한숨]
[풀벌레 울음]
[재경의 기가 찬 숨소리]
[기어 조작음]
삥 뜯겼니?
어
그럴 거면 운동은 뭐 하러 하니?
안 맞고 삥 뜯기려고
타, 갈 데 있어
싫어
(재경) 그럼 교복 사이즈는 내가 알아서 산다
(희도) 무슨 교복?
태양고로 전학 가려면 교복 사야 할 거 아니야
그 꼬라지론 어차피 못 가겠네
[기어 조작음]
[밝은 음악] (희도) 갈게, 갈 수 있어!
나 지금 가!
[문이 탁 닫힌다]
(희도) 고유림
나는 오늘 드디어 너의 세계로 간다
[옷매무새를 탁 가다듬는다] 기다려
[결연한 숨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희도) 어!
[탁 소리가 울린다]
백이진!
백이진!
나 오늘 드디어 전학 가!
심지어 태양고로!
나 펜싱 계속할 수 있게 됐어!
내 나이만 가진 특혜 너 때문에 누렸어!
고마워!
[벅찬 숨소리]
뭐야, 갔냐?
못 들었냐?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다 용서할 수 있어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니까! [말소리가 울린다]
[희도의 기분 좋은 숨소리]
축하해
[힘찬 음악]
(희도) 진짜 너의 세계에 왔어 고유림
(희도) 고유림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혹시 사귀어?
(이진) 너 보면 내 생각이 나
열여덟의 나 같아
(희도) 나 이거 보고 있으면 행복해져
(유림) 아, 너구나, 7반 이쁜이가
(희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 말에 반대야
(찬미) 15점을 먼저 내는 쪽이 승리를 거둔다이 [버저가 삐 울린다]
프레
알레 [버저가 삐 울린다]
(이진) 난 네가
뭘 함부로 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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