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15회
[영상 지지직 돌아가는 소리]
(오수) 둘이 잔다
안고?
아니, 따로따로
(오수) 남자는 침대, 여자는 거실
아오, 답답한 남자 놈
진짜 라면만 먹고 잤네
[오영, 나지막이 웃음]
[잔잔한 음악]
[영상 되감는 소리]
[잔잔한 음악]
[영상 되감는 소리]
택시! 택시! [딸랑딸랑, 풍경 울리는 소리]
[걸을 때마다 계속 딸랑거리는 풍경 소리]
신사를 잡으려고 이미 오수랑 딜은 끝났어
근데 오수 놈이 널 빼고 가자는데
(김 사장) 어때?
난 아무래도 너 없는 오수는 못 믿겠어서
머리가 돌아가네
형은 나 없으면 게임이 안 되지
오케이, 그렇게 해
단, 형은 모르게 하는 거 잊지 말고
[긴박한 음악]
[대화하는 소리]
사장님, 보시죠
[오토바이 쌩, 달리는 소리]
[슬픈 음악]
[술 졸졸 따르는 소리]
[술병 탁, 놓는 소리]
오토바이까지 태워줬는데 기분이 별로야?
[탁, 잔 내려놓는다]
[소주를 콸콸 따르는 소리]
[탁, 병 내려놓는다]
[탁, 잔 내려놓는다]
와 [쯧, 혀를 차며]
[탁, 잔 내려놓는다]
[술을 콸콸 따른다]
[탁, 세게 병 내려놓는다]
[쨍, 술잔 부딪히는 소리]
아 [술 마시고 '캬아' 하는 소리]
[탁, 잔 내려놓는다]
좋다!
아우, 후 [쓰다는 듯이]
(장 변호사) 오수가 돈을 놓고 갔다
가져가라 그랬는데 수표 다발 하나면 된다면서
그거 하나 들고 가더라
(장 변호사) 대체 그놈은 왜 여길 온 건지...
[호로록 차 마시는 소리]
오수가 널 진짜 좋아했나 보다
듣고 싶지 않아요
근데 여기 꽃 좀 심어야겠다
(장 변호사) 요즘 꽃 심을 때 맞지?
뭘 심을까?
- (장 변호사) 향기 좋은 꽃으로 - 아뇨
그냥 놔두세요
왜?
수술하고 나서 제가 할게요
그럼 내가 물이라도 줘야겠다
(장 변호사) 시들시들해
참
병원 들어가는 날 모레로 하루 미룰까 봐요
[잔잔한 음악]
감기 기운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몸이 좀 안 좋아서...
[물뿌리개 탁, 놓고 황급히 걸어간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조 박사님이 지어주신 약이 있어요
영이야
너 혹시... 수술 안 받고 싶은 건 아니지?
[가볍게 웃으며]
제가 왜요? 조 박사님 믿을 만하다면서요
그리고 만약 제가 수술을 거부하면 아저씨가 가만 안 계실 거잖아요
절 기절시켜서라도 병원에 데려가실 거잖아요, 안 그래요?
[살며시 웃으면서]
아는구나
난 널 꼭 수술시킬 거다
(장 변호사) 희망이 보이거든
참, 내일 김천 가신다고 했죠?
[돌아서는 발소리]
안 맡을까 봐
네 곁에 있을래
억울한 살인 사건 용의자라면서요
(오영) 가세요
안 가
허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참, 내 인생이 그러네요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서 아저씨가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사람도 구하지 못하게 하고
[달그락, 찻잔 내려놓는 소리]
[막대기 펴고 탁탁거리는 소리]
[막대기 젓는 소리]
너 영이한테 왜 돈 안 받았냐?
목숨 걸고 개폼 잡냐?
[희선 한숨 소리]
내가 너 살리려고 애쓴 건 알아, 몰라?
알아
아는 놈이 이래?
아는 놈이
영이가 큰맘 먹고 준 돈을... 안 받고 맨손으로 그냥 와?
그리고 다시 목숨 걸고 도박판?
넌 이게 개과천선이냐?
(희선) 영이한테 있는 대로 온갖 양아치질 다 해놓고
주는 돈 안 받고 그냥 오면
걸레가 수건 되냐?
(희선) 야, 걸레면 걸레답게
양아치면 양아치답게 살아 [언성 높이면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그러게
양아치면 끝까지 양아치답게 굴어야지
왜 하필... 사랑을 해서
왜 하필... 사랑을 해서, 그렇지?
희선아
나 그 집에서 나올 때
당당하게 나왔다
나는 걔를 사랑하니까
응? 걔도 나를 사랑하니까
[가벼운 한숨]
걔는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헤어져도
한 번 쯤은
[애절한 음악]
우연이라도
만날 거라고
그렇게 믿고
나 그 집에서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게 나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근데...
영이가 그런 날 보고
'사랑했어' 하더라 [울음 참는 목소리]
좋았냐?
[살짝 웃는 소리]
그 말하는 영이는 어땠는데?
'행복했어' 하는데
[혀 차는 소리]
쓸쓸해 보이더라 [울면서]
[한숨 소리]
이 미친놈, 개새끼 [나지막이]
[깊은 한숨]
차라리 사기를 치지 [울먹이면서]
[감정에 복받친 한숨]
사랑을 하게 하지 말걸, 응?
(오수) 미친놈
하, 차라리 사기를 치지 [울면서]
나 같은 놈...
아이, 씨 [울면서]
사랑을 하게 하지 말걸
아이, 씨 [숨 내쉬면서]
[오수 낮게 흐느끼는 소리]
[오수, 한숨 쉬며 흐느낀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
[전화 안내음] 오수입니다
오수입니다
오수입니다
오수입니다
오수입...
[전화 안내음]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갬블장에 너도 들어갔다가 너까지 잘못되면?
절대 그런 일 없어
무철이 빠지면 형이랑 나랑 이길 놈 아무도 없어
게임도 주먹도
너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 일 끝나면 시골 가자
오수 살려
형한텐 아무 말 말고
(오수) 모닝 키스하냐?
모른 척해라
참, 형, 내가 우리 게임방 구하려고 했는데 못 구했어
김 사장하고 얘기 끝났어 넌 관심 꺼
알았어
진짜 알았지?
무철이 놈 빠졌다며 그럼 나도 안심이지, 뭐
믿는다 [의심스럽게]
믿으라니까
[수상한 느낌의 효과음]
[차가 덜컹덜컹 시골길 달리는 소리]
[밝고 잔잔한 음악]
(정현) 안 짜다니까, 일단 먹어보고 말씀하세요
- (오영) 좋은 아침 - (다 같이) 좋은 아침
영이 내려왔네
근데 아침부터 다들 모여서 무슨 일이에요?
그거...
내가 정현 씨한테 아줌마 음식 통 못 먹겠다고 푸념을 했더니
아주 잔칫상을 차려놨다, 야
(장 변호사) 새벽시장까지 가서
이야
(오영) 냄새가 너무 좋다
영이 니 이제 병원 들어가면 당분간 맛있는 음식 못 먹을 거 아니가
오늘 푸지게 먹어라
덕분에 나도 포식하게 생겼다, 야
자자, 다들 자리 잡고 앉으시고
9시 방향에서 3시 방향으로 연근전, 두부조림
해초 나물 무침, 명이 장아찌 조개 무침
(정현) 그리고 요 꽃게탕은 장 변호사 아저씨 거
영이 니 거는 요래 살 싹 발라놨다
맛 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맛있다
오오오! [애교스럽게]
[다 같이 빵 터져 웃는 소리]
거봐, 내가 맛있을 거라 그랬지? [만족스러운 웃음]
아침 드시고 아저씨는 김천 가세요
아저씨가 살인 사건 누명 쓴 사람 변호하는 일을 나 때문에 안 하신다네
- (오영) 그렇게 할 순 없잖아 - 영이야
대신 이 셋 중에 감시자를 붙이면 되잖아요
(정현) 내가 할게
내가 할게, 내가
(오영) 봤죠?
(중태) 그렇게 하세요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왜
[낮은 한숨]
좋다, 그럼
병원 들어가는 건 내일 오후니까 내가 그때까진 꼭 오마
사람 하나 살렸다
[장 변호사 너털 웃음]
자, 어서 먹자
[수저 들고 먹는 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선희) 몰랐어? 입원 내일로 미뤘어
혹시 영이가 전화했어요?
아니, 장 변호사님이
수술 전 불안증 같대
내일은 꼭 온다더라
[의아한 느낌의 음악]
누나, 영이 수술하면 눈은...
수술에 대해선 말하지 말자
- 뇌종양은? - 묻지 마
또 올게요
저기, 수야
너 무철이 상태 아냐?
아니다, 가
[또각또각, 멀어지는 발소리]
안녕하세요
저기, 형이 진통제 좀 달라고 해서요
아니, 저기...
형이 부모님한테 꼭 안부 좀 전해달라고
미친놈, 자기가 하라 그래
내가 자기 따까리인 줄 아나
[한숨 쉰다]
[부릉, 버스 지나가는 소리]
[전화 안내음]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띡띡, 핸드폰 누르는 소리]
[전화 연결음]
어, 오 사장,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전화 줘
[평화롭고 잔잔한 음악]
[띡띡, 문자 보내는 소리]
(오수) 영이야
나야, 오수
이렇게 가끔 너한테 연락해도 될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냥 어쩌다
네가 잘살고 있나 궁금해지면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점점 커지는 막대기 치는 소리]
[신호등 안내음] 파란 불로 바뀌었습니다
[따르릉, 신호등 안내 소리]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막대기 탁탁 치는 소리]
[끼익, 버스 정차하는 소리]
[버스 시끄럽게 출발하는 소리]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음성 정보가 안 나와서 그러는데 혹시 주변에 누구...
몇 번 타세요?
7611번요
- 오면 알려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오수) 아, 왔네요
(정민) 감사합니다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막대기 탁탁 소리 내며 걷는다]
(기사) 아, 빨리빨리 타요
(정민) 죄송합니다
- 배차 시간 늦었단 말이에요 - 죄송합니다
- 올라가요 - 감사합니다
[띡, 교통 카드 찍는다]
[버스 시동 걸고 출발하는 소리]
선생님, 우리 어디로 가요?
- (복지사) 맛있는 거 먹으러 - 내가 다 먹는다, 피자, 보여줄게
(복지사) 동훈아, 장난 치지 말고
너희들 말 안 들으면 피자 안 사준다
그냥 복지관에서 피자 먹을래? 아니면 줄 설래?
늬들 줄 안 서? 혼난다!
(아이1) 줄 서요!
(아이들) 줄 설게요
(복지사) 얘들아, 말 좀 들어, 말 좀
간만에 콧바람 쐬는데
- (아이2) 줄 섰어요, 줄 섰어요 - (아이3) 가요
가자
내가 괜히 고집 피웠나? 교실에서 먹을걸
애들 너무 좋아해, 소리 들리지?
어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 정민아 - (정민) 미라구나
- (정민) 어디 가? - (아이1) 정민 누나?
(아이1) 우리 피자 먹으러 간다
(정민) 나도 가, 나도 먹고 싶어
(오영) 그래, 너도 같이 가자
(정민) 신난다
(미라) 그래, 가자, 가자, 가자
(미라) 다들 왼쪽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서 걷자
사람들하고 부딪히지 않게
(아이1) 그래
[버스 지나가는 소리]
[버스 정차 버튼 소리]
아저씨, 죄송합니다 차 좀 세워주세요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저씨!
[급하게 정차하는 소리]
[애절한 음악]
(아이1) 잘 먹겠습니다
천천히 먹어
(아이1) 맨날 좀 데려와주세요
[다 같이 즐겁게 깔깔대는 소리]
(기사) 손님, 저 차 경기 쪽으로 빠지는데 어떻게 할까요? 계속 갈까요?
아뇨, 저 차 앞질러서 사거리 앞에서 세워주시겠어요?
(기사) 네
[미라 웃으며 떠드는 소리]
[택시 부웅, 속력 내는 소리]
어머
진짜네
미라야, 왜 그래?
아저씨, 우리 뒤에 쫓아오던 택시 언제부터 있었어요?
택시? 모르겠는데
왜 그래?
아니야, 그냥
무슨 일이야?
그게...
오수 오빠 봤어
[잔잔한 음악]
택시 타고 우리 차를 지나쳐가는데
(미라) 널 보는 것 같았는데... 설마 했는데 진짜네
그래
얼굴은 어때?
괜찮아 보여?
모르겠어
별로 안 좋아 보여
뭐야, 너? [신경질 내면서]
네가 뭔데 맨날 나한테 와서 이래?
수하고도 너 계산 끝났다며
수가 그러든?
15년 자기랑 나랑 계산이 제 맘대로 끝났다고
넌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불행하지?
(희선) 언니 죽은 나보다 딸 죽은 우리 엄마, 아빠보다
네가 제일 불쌍하지?
웃긴다, 진짜
고작 짝사랑하는 여자 잃은 게 전부면서
(희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행한 척
내가 암만 이해할래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난, 나라도 날 이해하려고
뭐?
너도 세상도 다 나 이해 못 하니까
나라도 날 이해하겠다고, 난
세상에 사랑하는 여자 죽은 놈이 나 하나만은 아니겠지
(무철) 세상에 차인 놈도
가난한 식구들 때문에 인생 꼬인 놈도
세상에 찾아보면 널리고 널렸겠지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난 건 아니겠지
철드냐?
근데 희선아
나도... 내 딴엔 산다고 산 거야
열여섯 어린 나이에
엄마, 아버지, 동생들...
8명의 생계가 내 손안에 있었어
웃는 게 이뻤던 네 언니는
(무철) 울면서 내 앞에서 죽었고
'괜찮다'가 안 되더라고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안 살겠지 아예
근데 어차피 난...
이게 끝이고
희선아
세상 사람들 다 날 욕해도
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
미련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해주고 싶다
나라도 날 이해 안 하면
너무 안 됐잖아, 내가
[꽃다발 부스럭거린다]
[킁킁 꽃향기 맡는다]
좋다
꽃이란 게 이런 거구나
야
(희선) 너 어디 아파? 얼굴이 이상해!
병원 가 봐, 안 좋아 보여, 너
형님
- 병원 가시죠 - 내가 부탁한 거 잊지 마라
오수는 형님 맘 모릅니다
(감자) 희선이도 진성이도 다 모릅니다
형님께서 지금까지 온갖 욕 들어가면서 지들 곁에 없었으면
(감자) 김 사장 손에 벌써 오수도 진성이도 다 죽어 나자빠졌을 텐데
형님 이렇게라도 자기들을 지켜준 거
- (감자) 걔네 아무도... - 넌 집이나 정리해
[심각한 음악]
우리 조건 수락하지 않으면
너랑 게임 안 해
['쿠쿵' 하는 효과음]
김 사장이 사기 도박하는 거 뻔히 아는데
그 큰 돈을? 어우
좋아, 그렇게 해
하우스는 김 사장, 딜러는 너
카드는 장남 모치기 너희들이 가져오는 거로
하우스도 바꿔, 여기로
그건 안 되지
난 너희들 돈도 따야 하지만 김 사장 밟는 게 목적인데
김 사장 빠지면 너희들이 딸 판돈도 적잖아
안 그래?
좋아, 콜
김 사장한테는 게임의 모든 룰 너희들이 정한다 전해
안 된다 그러면
말자 그래
[코웃음친다]
일이 재밌어진다, 그렇지?
[잔잔한 음악]
[종이를 퍽 뚫으며 점자 만든다]
[종이 뚫으며 점자 만드는 소리]
(왕비서)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각자 소중히 가슴에 품은 채
끝까지 떨어져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
무슨 일이야, 영이야? 영이야!
영이야, 너 무슨 일 있니?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죠
왕비서님을 모질게 내쫓은 사람이
한밤중에 전화를 했는데
욕은 안 하고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오영) '무슨 일이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라 그래?ㅑ
[평화롭고 잔잔한 음악]
왜? 잠이 안 와?
내일 수술 들어가는 게 무서워?
조금
혼자 뭐 해요? 매일
(오영) 집에 있다는 거짓말하지 말고
집에 못 들어가잖아 고집불통 아버지 때문에
말해봐요
매일 혼자서 뭐 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난 거짓말이 익숙해서
불쌍한 인생이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네가 나랑 농담을 주고받고
자, 수술하고 나서 또 이렇게 생뚱맞게 전화하고, 어?
끊어요
그래
[손으로 슥 벽 만지는 소리]
[탁, 불 켜는 소리]
[잔잔한 음악]
[화장품 뚜껑 돌려서 연다]
[탁, 화장품 놓는다]
[손에 쓱쓱 바른다]
이 냄새다
왜 왔어? 잠이 안 와?
어
오른쪽으로 세 걸음 가면 침대
(오수) 너 다른 남자들 방에도 이렇게 쉽게 들어오면 안 된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오빠 동생 사이에 팔베개는 안 돼
일단 차렷 자세로 자
어
[오수, 침대로 슥 들어온다]
팔베개해줄까?
어
자식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거 재밌네, 만져봐
느낌 와?
어
이건 산이고
(오수) 어린 왕자가 저 산에 올라갔어
알아, 그 대목 메아리랑 얘기하는 거
난 그 대목이 늘 안쓰러워
그냥 메아리인데, 혼자인데
(오수) 어린 왕자는 그게 대화라고 생각하는 게...
왜 동화는 다 슬프지?
[살짝 훌쩍인다]
[살짝 훌쩍인다]
[슬픈 음악과 훌쩍이는 소리]
[아까보다 더 많이 훌쩍인다]
[흐느낀다]
[흐느끼는 소리]
짐 싸고 있었구나?
영이야, 실은 여기 일이 좀...
아니다, 미라 좀 바꿔라
일이 왜요?
아니야, 미라 바꿔
저한테 말씀하세요 미라 병원 갈 짐 챙기느라 바빠요
미라야, 나 물 좀
그래
[경쾌한 발걸음]
아저씨, 빨리 와서 꽃게탕 끓여주세요
[멀어지는 발소리]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그게... 여기 일이 쉽지 않네 복잡해
일 안 맡고 그냥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용의자 엄마가 밤새 울며불며 도와달라고
일 보고 오세요, 뭐가 걱정이에요?
날 24시간 감시하는 미라 정현 언니, 중태 오빠가 있는데
그래도 내가 있어야...
(오영) 수술은 내일 아침이에요
오늘 밤은 지루한 검사들만 한다고요
이러다 수술실도 들어오시겠다
[헤헤, 살짝 웃음]
알았다, 내가 일 부지런하게 보고 밤엔 꼭 병원으로 가마
그래, 끊자
[경찰차 사이렌 소리]
[짧은 한숨]
[잔잔한 음악]
싫어, 아저씨 오면 너 인수인계하고 갈래
넌 1시까지만 있기로 했잖아
근데 아저씨가 4시에 온대 직장 면접 간다며?
지금 직장이 문제니? 괜찮아
미라야, 나도 친구 노릇 좀 하자
[서랍 드르륵 연다]
[달그락, 상자 꺼낸다]
이건 면접 선물
와 [감탄하는 어조로]
너 이거 정말 나 줄 거야?
면접 안 가면 안 줄 거야
야
그거 이쁘게 하고 면접 가
(오영) 난 아줌마 있잖아
미용실도 들렀다 가려면 늦어 어서 가
알았어, 그럼 가방 챙기고 아줌마 청소 끝나면 말하고 갈게
그래
참, 중태 오빠 아기들은 괜찮나?
장염으로 입원했는데 지금은 괜찮대
내일 수술 전에 오빠랑 언니 병원으로 온대
어 [살짝 웃으면서]
(미라) 근데 저 점자책들은 왜 다 꺼내?
병원 가서 읽을 거 한두 권이면 되잖아
한 번씩 다 읽은 거라 읽는 속도가 빨라
(병원 직원) 밤 9시에 입실을 하신다고요?
죄송해요,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수술은 내일 아침이잖아요 검사는 다 했고
(병원 직원) 그래도 또 검사받을 게 더 있는데
짐은 오후에 들어갈 거예요 죄송합니다
밤 9시에 꼭 들어갈게요
(미라) 장 변호사님이 4시에 오신대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영이 곁에 꼼짝 마세요
(아줌마) 알았어
갈게요
영이야, 나 면접 잘 볼게
그래, 화이팅해!
입실이 원래 4시였는데 9시로 바꾸셨네요
누가 시간을 바꿨어요?
잘 모르겠네요 체크가 안 돼 있어서
조 박사님, 구 박사님은 지금...
수술 들어가셨어요
[성큼성큼, 발소리]
[안내 직원과 손님 말하는 소리]
아가씨가 이 점자책들 다 버리래요
예?
왕비서님이 만드신 점자책인데 수술하시고 나면 이제 필요 없다고
(기사) 아
방금 장 변호사님이 전화 오셨는데 곧 도착하신대요
아줌마는 기사님이랑 차로 병원 가서 병실 정리해놓으시고
두 분 다 계획대로 휴가 가세요
아니, 그럼 아가씨 혼자 이 집에...
왜? 내가 30분도 혼자 못 있을 거 같아서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가세요, 아저씨 오면 같이 갈게요 둘이 회사일 때문에 할 얘기가 있어요
어서요
알았어요, 수술 잘하세요, 아가씨
(기사)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저벅저벅 짐 들고 나가는 발소리]
[뭔가 수상쩍은 음악]
[문을 드르륵 연다]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막대기 휘젓다가 어딘가 부딪히는 소리]
[슬프고 잔잔한 음악]
[탁, 바닥에 내팽개치는 소리]
얘는 허브인데 향기가 하나도 없어 별로야
[막대기 짚으며 풀 밟고 지나가는 소리]
[주섬주섬 풀을 줍는 소리]
[또각또각, 가까워지는 발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전화벨 계속 울리는 소리]
형, 나중에 전화해
[띡, 전화 끊는 소리]
[띡띡, 핸드폰 누르는 소리]
[전화 연결음]
[낮은 신음]
[부시럭거리며 약 꺼내는 소리]
[탁, 물 집는 소리]
하아
[낮은 한숨]
[긴장감 흐르는 음악]
[전화 연결음]
[뚜르르, 전화 연결음 소리]
[전화 안내음] 장 변호사님입니다
장 변호사님입니다
장 변호사님입니다
장 변호사님입니다
[털썩, 열쇠 떨어지는 소리]
[잔잔한 음악 막대기 끄는 소리]
[문 드르륵 닫는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
네, 장 변호사님
영이가 왜요?
야, 나도 같이 가 나 좀 있으면 일 끝나
너 영이 보면 또 돈 달랄 거잖아 안 돼, 갔다 올게
그럼 영이 보면 나 안부나 전해줘
안부는 무슨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형 말대로 병원에 지키고 있다가 수술실 들어가면 올게
아니, 애가 왜 전화를 안 받아 어떡해, 택시! [울먹이면서]
[띡, 핸드폰 누르는 소리]
[전화 연결음]
[띠리리, 신호 가는 소리]
[탁, 전화 끊는 소리]
뭐? 환자가 직접 전화해서 미뤘다고?
네
가봐
[띡, 핸드폰 누르는 소리]
[띡띡, 핸드폰 누르는 소리]
[전화 연결음]
[쿵쿵 뛰어가는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영이야
안녕
그래, 안녕
네가 한 전화를 못 받아서 전화했어
잘 지내나 문득 궁금하기도 해서
괜찮지?
그래
근데 영이야, 너 어디야?
너 오늘 입원하는 날 아니야?
맞아, 지금 병원이야
아니, 병원엔 내가 있어
[전화벨 울리는 소리]
(오수) 너 어디야?
[전화 안내음] 장 변호사님입니다
들켰네
집이야
문득 수술대 위에 눕는 게 겁이 나서
맨몸으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혼자 누울 생각 하니까 끔찍하더라
하지만 걱정 마 지금 장 변호사님이 오시는 중이야
이제 곧 병원에 갈 거야
초인종 울린다
장 변호사님 오셨나 봐
(선희) 장 변호사인데 영이랑 연락이 안 된대
[긴장감 흐르는 음악]
영이야, 영이야, 너 비디오 봤어? 어? [다급하게]
아니
영이야,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을 비디오에 녹화했어
너 온실로 가 너 지금 온실로 가서...
더이상 너한테 들을 말이 없어
말했잖아, 이해한다고, 널
넌 들을 말이 없어도 난 할 말이 있어 영이야, 전화 끊지 말고 내 말 들어
[뚝, 전화 끊는 소리]
[더듬으며 전화기 탁 놓는다]
영이야
[긴장감 흐르는 음악]
택시 (나지막이)
택시
택시, 택시
[빵빵, 차 경적 소리]
[끼익, 급정거하는 소리]
[탁, 차 문 닫는다]
[퍽, 한 대 맞고 쓰러지는 소리]
[퍽, 발로 때리는 소리]
[오수, 낮은 신음]
[오수, 헉헉대는 소리]
미안한데 우리 얘기 나중에 해 지금 영이가...
[퍽, 오수 얼굴 맞는다]
[탁, 멱살 잡고 차에 쿵 부딪히는 소리]
[탁, 탁, 주먹으로 치는 소리]
우리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나중에! [소리 지르면서]
[가쁘게 숨 몰아쉬는 오수]
영이가 위험해, 내가 지금 안 가면 영이가... 영이가... [복받치면서]
(무철) 보기 좋다, 네가 하는 사랑이
[가쁘게 숨 내쉬는 오수]
정말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정말 사랑이 있네
[가쁘게 숨 내쉬는 오수]
[잔잔한 음악]
너랑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오수, 숨 고르는 소리]
가
[잔잔한 음악]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오수) 나중에 우리 얘기하자
[달칵, 차 문 여닫는 소리]
[끼익, 차 급하게 출발하는 소리]
[비장한 음악]
[뚜르르, 전화 신호 가는 소리]
(오수) 나는 영이에게 그 말만은 해야 했다
잘못했다, 사랑한다
우린 끝이 아니다, 다시 또 만나자
[샤워기 물 졸졸 흐르는 소리]
(오수) 우연이라도 한 번은 널 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모든 말들은 차마 변명 같아 하지 못했어도
[샤워기 물이 졸졸 떨어지는 소리]
(오수) 영이야! [다급하게]
나는 영이에게 그 말만은 해야 했다
상처뿐인 세상에서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그래도 영이 너는
내가 인간답게 살아볼 마지막 이유가 됐는데
나도 너에게 그럴 수는 없느냐고
허무한 세상
네가 살아갈 마지막 이유가 나일 수는 정말 없는 거냐고
[탁탁, 황급히 계단 오른다]
영이야!
[화장실 문 박차고 들어가는 소리]
[가쁜 숨소리]
[덜컹, 급박한 효과음]
[샤워기 물이 졸졸 흐른다]
영이야 [다급하게]
영이야!
[오수, 놀라서 급하게 숨 몰아쉰다]
영이야! 영이야! [놀라서 소리 지르면서]
영이야! 영이야!
영이야!
아, 영이야, 아... [복받치면서]
영이야! [소리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