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5회
(오수) 영이야
영이야!
엄마가 물수제비만 뜨랬지 물에 들어가지 말고
우리 오빠 얼굴 한번 만져 보자
코가 높다
가자
당신 누구야?
누구냐고, 당신?
전 이명호라고 합니다
아, 피엘 그룹? 오수네지
그리고 보니까 당신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네
피엘 그룹 외동딸 약혼자, 맞죠?
오수 씨는 어디에? 피엘 그룹 오수 씨 말고 여기 살던?
아, 그 오수?
근데 그 오수를 왜 당신이 찾아?
완전 생양아치 도박꾼에 전과자에...
지금도 어디선가 무섭게 사기 치며 살고 있는 사기꾼 오수를...
당신이 왜 궁금해하지?
[추워하며 호, 입김을 분다]
미치겠네, 정말 옷이 젖어서 닦아도, 닦아도
괜찮아?
- 괜찮아 - 괜찮긴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
잠깐 있어
[쇼핑백 부스럭거리는 소리 차 문 닫는 소리]
다행히 오늘 입던 옷이 있다
잘한다, 그러게, 인마, 내가 뭐래? 조심하랬지?
(오수) 넌 대체 누구 닮아 그렇게 멋대로야? 대체 강물엔 왜 들어가?
앞도 안 보이는 놈이
너 설마 저번 날 지하철에서처럼
죽을라고 했어?
[소리 내며 웃는다]
오빠 네가 대체 누구 닮았나 궁금했는데
너 엄마 닮았구나 잔소리 심한 거 보니까, 재밌다
재밌어, 이게?
오늘 우리 집에 들어가지 말까?
미쳤구나, 너
[차 문 여는 소리]
옷 갈아입고 있어 내가 따뜻한 것 좀 구해올게
젖은 옷 입다 큰일 난다
가지 마
넌 내 말 안 들으면서 난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5분이면 돼, 꼼짝 말고 안에 있어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영이) 오빠!
(무철) 나 오수 그놈한테 빚 받을 게 있어서 현재 이 집 압수해서 사는 중이야
암튼 웃긴 놈이지, 오수는
근데 걔 이름이 왜 오수인지 알아요?
엄마가 걔를 나무 밑에 버렸대 그래서 '나무 수'자를 썼다네
오 씨란 성은 고아원 원장이 오 씨
그래서...
오수 [또박또박]
[무철 너털 웃음]
아
(무철) [책을 탁 던지면서] 이 여자 애인
오수 말이야
(무철) 암튼 여자들이란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몸 주고 마음 주고
(무철) 지금은 헤어졌다는데 모르지, 뭐 다시 만날지도
근데 걔는 왜 찾아요?
오수 씨가 찾습니다 두 분이 친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둘이 볼 처지가 아닐 텐데
무슨 말씀이신지? 두 사람이 형제처럼 친했다고 들었는데
가만 보니까 당신
오수 몰래 오수를 찾나 보네
아, 오수가 둘이라 헷갈리시는구나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시겠다 진짜 오수가 누구인지
재미있는 사진이 있네
(무철) 이제 봤네, 나도 이걸
거기, 그 귀여운 애 옆에 있는 애가
사기꾼 오수
[전화벨 수신음]
[전화벨 수신음]
여보세요
방금 전 이명호라는 인간이 날 찾아왔더라
뭔가 너에 대해 궁금한 게 많더라 오수야
아무래도 넌...
내손에 곧 죽겠다
이명호한테 뭐라 그랬어?
뭐라긴, 내 집에 온 선물로 사진 한 장 들려 보냈지
진짜 오수 사진
[긴장감 넘치는 음악]
네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뭐
78억이 적은 돈도 아니고
네 목줄 잡은 김사장도 있고
근데 설마 진실을 말했겠어?
안 그래?
난 거짓말 못 해, 오수야
사기꾼 오수가 피엘 그룹 오수를 흉내 낸다는 진실을
나만 알고 있긴 너무 아깝더라고
긴 말 말고 난 그냥 내 갈 길 갈게 넌 네 갈 길 가라
그러다보면...
(무철) 열흘 가고 한 달 가고 두 달 가고 드디어...
우리 둘이 어떤 식으로든 계산을 치를 날이 오겠지
그렇지?
(무철) 서둘러라, 오수야
또각또각 시간이 간다, 응?
(희주) 무철 오빠
나 수 애기 가졌어
병원 갔는데 맞대
[밝은 웃음 소리]
오수, 이제 진짜 내 거 됐다
(희주) 축하 파티하자, 우리 다 같이
배달 조심해
[쓸쓸한 음악]
따뜻하다
이거 사러 갔었어?
영이야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말자, 우리
바다 가자
바닷가에 가서 오토바이도 타자
[차와 충돌하는 소리]
네가 어려서 그랬잖아
나중에 크면 나중에 나 자전거 말고 오토바이 태워준다고
그러지, 뭐
나쁜 놈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무철) 이놈하고 나하고는 수시로 연락이 돼요
채권, 채무 관계 때문에
뭐,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 줘요
내가 잡아다 드리지 그쪽한테
형님, 왜 그러십니까
형님
내가... 내가! [소리 지르면서]
너한테 이런 어린 자식들 데리고 다니지 말라고
골백 번, 수천 번
백만 번 말했어, 안 했어? [소리 지르면서]
그게... 저놈이 불쌍해서
(만두) 엄마가 아프대서...
돈이 필요하대
형님
네 엄마가...
지 아프다고
너더러 깡패질해서 돈 벌어오래?
그건 아닌데...
(무철) 어디서 핑계질이야, 이게!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
[계단 올라가는 소리]
(진성) 이리 와 [거친 말투로]
나와 [거칠게]
(진성) 나와, 이씨, 나와 [신경질 내면서]
(진성) 나와, 좀!
뭐야!
나야
너면, 뭐?
너면, 뭐?
괜히 손님 가는 길을 막고 건달 주제에
나와, 너!
아니, 왜 이래, 엄마
아오, 내가 이걸
내가 아버지 술 먹는 것도 골이 딩딩거리는데
왜 너까지 술 처먹고 난리야, 진짜?
맛있으니까 먹지
(무철) 진성아
너 오수 밑에 있지 말고 내 밑으로 와라
웃기고 자빠지셔
(진성) 업혀
저걸 진짜! [윽박지르면서]
왜, 귀여운데, 뭐
근데 진성이 동생 진미가 우리 집 단골이냐?
완전 죽순이에요
(진미 친구) 진미야, 진미야, 같이 가!
[탁탁, 달려가는 구두 소리]
쟤랑 같이
그래?
앞으로 진미 우리 집 VIP로 대우해 용돈도 주고
알겠습니다, 형님
오수야, 부지런히 한번 가보자
넌 네 갈 길 가고
난 내 갈 길 가고
[음흉한 웃음 소리]
[전화 연결음]
영이 바꿔요
[샤워하는 물소리]
지금 샤워해서 못 바꿔요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소리 지르면서]
(왕비서) 아무리...
남매라지만
다 큰 성인 남자, 여자예요 어디서 같이 한 방을 써? [윽박지르면서]
말씀드렸죠, 전에
왕비서님, 엄마 아니시라고
(오수) 전 지금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에요
걱정하실까 나름 배려지
[전화기 내던지는 소리]
[긴장감 흐르는 음악]
[오토바이 소리]
[신나서 소리지른다]
[신나서 지르는 소리]
희주야, 사랑해! [소리 지르면서]
나도!
(진성) 형 전화 안 돼?
영이한테 해보지
[전화 안내음]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둘 다 안 받아
웬일이지, 오늘 희주 누나 제삿날인 거 잊었나?
잊을 게 없어서 우리 언니 제사를 잊냐?
아니, 잊을 수도 있지, 뭐
(진성) 사람이 살다보면 산 사람 생일도 잊는데
죽은 사람 제삿날이 뭐라고 꼬박꼬박 기억하냐?
[전화 진동 수신음]
여보세요
오수야?
알았어
우리 아빠
[문 열리는 소리]
줘
아, 줘
[가방 뺏어가는 소리]
방에 희선이하고 단 둘이만 있나?
둘이 있으면 뭐?
에이, 알면서, 이 자식이 [능글맞게]
아이, 진짜 징그럽게 왜 그래?
아이, 내숭은, 자슥이
나도 네 엄마하고 시골에서 단 둘이 있을 때
다 그러고 그랬어, 이 자식아
[웃음 소리]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제발 아버지 진미나 신경 써
애가 날이 갈수록 삐뚤어진다고
그러게 왜 진미 대학 갈 돈으로 소를 사, 소를 사긴?
아버지가 그렇게 술하고 소만 좋아하니까
진미랑 내가 소만도 못 하게 살잖아
아, 그건 네 할배가 죽기 전에 소 사라고 해서...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욕하더니 왜 똑같이 살아, 왜?
남들이 보면 엄마, 아빠는 식당일에 노가다인데
아들, 딸들은 뺀질뺀질 자식들만 나쁘지
내가 알바해서 대학 가려고 벌어놓은 돈도 죄다 들고 가서 소 사고
진미 대학갈 돈도 소 사고
돈만 보면 소에 미쳐서
네가 인마, 아무리 땍땍거려도
나 좋아하는 거 다 알아, 인마
엊그제 건달들이 다리 하나 짧다고 놀리니까
네가, 인마 이러고, 이러고 했잖아
(진성 아빠) 야, 야, 야
희주 제사 잘 지내고
희선이, 오늘은... 알지?
[웃음 소리]
진미나 챙겨요
(진성) 제발 걔는 대학 보내라고 나처럼 만들지 말고
어, 그래 [멋쩍은 듯이]
[계단 내려오는 소리]
- 어디든 - 오수 잡으러
너 형만 보이고 난 안 보여?
형 희주 누나한테 가있겠지
지지난해처럼 희주 누나 묻은 나무 밑에서 울겠지, 또
그럼 좀 놔두고 우리 둘이 오붓하게 희주 누나 제사 지내면 좀 안 돼?
뭘 봐?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몰라서 빤히 봐?
[계단 올라가는 소리]
(오영) 첫사랑 얘기 해달라니까
키는 얼마나 컸어?
예뻤어?
성격은?
순수? 발랄?
아니면 도도?
첫키스는 언제? 어디서?
그 얘긴, 할 얘기가 없어
이름이 뭐야?
잊었어
거짓말, 이름이 뭐야?
동생 이름이 문희선이니까
희영
희명?
희진? 희수?
그만해
희라?
아니면, 희... 주?
맞구나, 희주
희주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아
왜?
죽은 사람이라?
그래
죽은 사람 얘기를 뭐 하러 해?
우린 하잖아, 엄마 얘기 아빠 얘기
나중에 하자
나중이 언젠데?
넌 두 달 후에 떠난다면서
(오영) 나중에 언젠데?
나 죽고 난 다음에?
넌 안 죽어
난 죽어, 지금은 아니겠지만
첫사랑 얘기는 맨정신에 못 해
그럼 우리 술먹고 하자
맥주? 양주? 와인? 소주?
막걸리?
나 술 잘 마셔, 뭐 마실까?
술은 소주지
소주?
그래, 소주 먹자, 밤 새서
우리 두 남매가 오붓하게
재밌겠다, 빨리 가자
[얼음에 미끄러지는 소리]
[안도의 한숨과 웃음]
좋다
한번 우리 두 남매가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 보자
몰라
내가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나도 이해가 안 가더라고
걔네 엄마, 아빠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희주가 하도 날 좋다고 하니까
어느 날 시골로 전근을 가셨어
그래서 '아, 나도 이제 끝이구나' 했는데 웬걸
어느 날 '딩동'하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까
걔가 '안녕' 하며 웃으면서 서 있는 거 있지
도망쳤구나
응 [살짝 웃으면서]
그래서?
내려가라고 했지
근데 울면서 애가 안 가겠단 거야
어머, 그래서?
뭐가 그래서는 그래서야? 바로 그날부터 같이 살았지
잠도 자고?
물론, 나 남자거든
오 마이 갓 [웃으면서]
진짜? [밝게 웃으면서]
[즐거운 웃음 소리]
정말?
어, 진짜라니까
내가 점자를 막 배울 때인데
난 핸드폰 문자로 친구한테
'너 건강하지?' 그걸 보내고 싶었던 건데
내가 걔한테 보낸 문자는
'너 간통하지?'였다니까
근데 걔가 진짜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랑 그래가지고
나한테 와서는 눈 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그래서
너 조심하라고
나 점쟁이 기질 있다고 했지
[둘이 크게 깔깔 웃는다]
왜 같이 누워서 자면 안 되는데?
왜? 허, 참 [어이없다는 듯이]
(오수) 이보세요
남자, 여자는요 같이 자는 게 아니야
너 남자야?
오빠잖아
오빠도 남자야
그리고 넌 그냥 내 옆에 누워 자는 게 아니잖아
날 만지겠다는 거잖아
만지면 안 돼?
참
- 아, 뭐가 궁금해? - 다
내 키는 186cm에 72kg이야
난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몰라
(오영) 누워, 여기
난 시각장애인이야
만지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우리 시각장애인이 만지는 건 모두 무죄
네가 궁금해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손가락은 나처럼 가는지 아니면 굵은지
굵으면 얼마나 굵은지
그래서...
네가 아빠를 닮았는지
보이지 않는 건 이런 거야
아무리 말해도 몰라
난 네가 떠나면
널 만진 내 손의 느낌이 있으니까 그럼...
난 좀 덜 외로울 것 같거든
아오, 좋다
만져
어딜 더듬고, 어딜 더듬지 말아야 하는지는 알지?
어
우리 오빠 키는...
한 뼘
두 뼘
세 뼘
네 뼘
다섯 뼘, 여섯 뼘
일곱 뼘
여덟 뼘, 아홉 뼘
우와 [감탄하면서]
[잔잔한 음악]
손이 부드럽네, 생각보다 훨씬
목소리가 까칠해서 거칠 줄 알았는데
그러면 정말 알아?
알 거 같아, 모를 거 같아?
글쎄
이렇게 만져도...
솔직히...
난 네가 잘 모를 거 같아
우리 시각장애인 기준에 넌 미남이야
어떻게 알았지?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늘 이렇게 팔을 만지잖아
그래서 남자는 팔이 두껍고 목소리가 좋으면 다 미남이라고 생각해
여자는 팔이 가늘고 목소리가 예쁘면 다 예쁘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너네 정안인보다 훨씬 심플하지
넌 커, 지금 내가 아는 건 그거
팔베개해줘, 엄마처럼
아까
강엔 왜 들어갔었어?
만약 내가 죽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딱 이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어
행복했어
오빠 네가 와서...
[잔잔한 음악]
이제
내가 왜 널 찾아왔는지
내가 찾아온 이유가...
돈이 아니라
오직 너 때문이었다는 걸
믿는 거야?
내 저의 같은 건
이제 안 궁금해?
영이야
오빠
가지 마
오빠...
안 가
옆에 있어
그래
옆에 있을게
네가 있으라면
언제든지
자
[잔잔하고 애틋한 음악]
(오영) 약속한 거다
(오수) 무슨 약속?
(오영) 내가 널 내 옆에 있으라면 넌 언제든 있을 거란 약속
어제 안 잤어?
좋단다, 어?
손
['크레파스' 연주]
잠깐만요
[피아노와 '크레파스' 노래 소리]
[애틋한 음악]
[차 문 닫히는 소리]
안전벨트 할 거야
[안전벨트 매는 소리]
나 그 남자 보고 싶어
오빠랑 이름이 같은 그 남자
오빠랑 있으면 있을수록 이상하게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나
- 소식 몰라 - 친했다면서 왜 몰라?
나한테 사기를 쳤어
좋은 놈 아니야, 사기꾼이야 잊어버려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나한테 친절했어
그때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는데도
오빠 네가 날 사랑한다는 말을 끝까지 전해줄 만큼
참, 오빠가 편지 맨 마지막 줄에
당신을 사랑한대
(오영) 아마 그 사람이 그 말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널 이렇게 편하게 볼 수 없었을 거야
그 사람
찾을 수 없어?
[전화벨 소리]
- 여보세요 - (진성) 형, 뭐야?
(진성) 뭐, 왜? 미쳤나?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형, 어제 집에도 안 들어가고 영이랑 뭐 했어?
뭐, 바닷가?
(진성) 형, 사업이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미친 거 아니야?
희선이 난리 났어 [소리 높이면서]
왜는, 형, 진짜 어제 희주 누나 제사인 거...
뭐냐, 너?
뭐? 오래 기억해줄게?
주둥이만 살았지, 넌
너 살겠다고 여자랑 희희낙락하면서 우리 언니 제사를 잊어?
- (희선) 감히 네가! - 희선아
누구야? 무슨 전화야?
- (진성) 희선아 - 전화기 들어
왜?
[비목 부수는 소리]
(진성) 아
야, 너 형이 만든 비목을 왜 깨? 미쳤어, 문희선?
네가 만들어준 비목 같은 거 필요 없어
넌 나쁜 새끼니까
내가 약속할게
네가 무철이 손에 안 죽으면 내가 널 죽여
오늘 일
절대 용서 못 해
[전화기 던지는 소리]
(진성) 아이
야, 희선아
형, 빨리 와
[전화 끊는 소리]
누구야?
왜 그래? 무슨 전화야?
왕비서님, 영이 좀 데려가세요
왕비서님은 왜? 우리 같이 안 가?
같이 안 가
제가 일이 있어서요
32번 국도 쪽, 봉암면이에요
제가 도로 쪽으로 나가 있을게요
목장 초입 길에서 만나죠
너 이상해, 왜 그래?
아까랑 달라, 남 같고
- 차가워, 왜 그래? - 조용!
[긴장감 흐르는 음악]
[왕비서 발소리]
어젯밤 일은
죄송했습니다
내가 내 주제를 아는데 감히 이래라저래라
죄송은 내가 저질렀죠
가자, 영이야
손
아무 데도 안 다쳤네, 다행이다
언제까지 내가 애처럼 이런 검사를 받아야 해요?
검사가 아니라 걱정이야
네가 다치는 게 싫어, 난
가요
오빠랑은 좋았니?
아주 많이요, 바다 갔어요
바람도 맞고 술도 먹고
오토바이도 타고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우리 둘이 이렇게 노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더 싫어졌겠구나
네
장 변호사님이 유언장을 가져 오신다는구나
왕비서님, 늘 절 걱정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있잖아요
'뇌종양은 만약을 모르잖니'
(오영) '그래서 내가 늘 널 과잉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만약은 모르니까'
그래서 그랬어요
네가 무슨 일이 나면
당연히 네 재산은 오빠 거다
굳이 유언장 같은 걸 쓰지 않아도
그럴까요?
그렇게 자비로우세요, 왕비서님이?
내가 싫다는 이명호를 아빠한테 소개시키고 결국은 약혼자로...
명호 씨는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그 사람은 싫다고 말했었죠! [소리치면서]
그렇게 날 못 믿겠으면서 왜 날 네 곁에 두니?
자르면 되는데
너한테 난 일개 고용인일 뿐인데
자르면 되잖아
왜? 내가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니?
안 보이는 널 위해 네 눈이 되고
안 보이는 널 위해 대신 회사를 운영하고
안 보이는 널 위해 주변을 감시하고
이렇게 널 데리러 다니고
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
뇌종양 때문이지 [단호하게]
추측하지 마라
내가 널 어쨌다는 네 생각 다 추측이고 억지야
아니
아니면 증명하면 되겠네
아무래도 넌 날 곧 버리겠구나
괜찮다, 네가 날 버려도
(왕비서) 널 지켜줄 사람이 생기면
내 운명은 버려지는 거라는 걸 나도...
벌써 생각하고 있었어
오빠가 좋은 사람이어서 널 안전하게 지켜주길 바랄게
그때까지 날 잘 이용하렴
[비목 떨어지는 소리]
[뭔가 떨어지는 소리]
늦었네
난 네가 일찍 다녀간 줄 알고 느지막이 왔는데
가
난 말이야...
여기 오면 늘 맘에 안 들어
왜 무덤이 하나냐고, 둘이어야지
사실이 그렇잖냐
희주 뱃속에 네 애가 있었으니까
나무를 2개 심었어야지, 안 그래?
희주 거 하나
그리고 이 세상에 얼굴도 못 내민
네 새끼 거 하나
[때리는 소리]
[때리며 싸우는 소리]
애를 낳아서 뭐 하게?
나 같은 놈 낳을 게 뻔한데
이 엿 같은 세상에 나 같은 놈을 왜 또 만들어, 왜?
가지 마
수야, 가지 마
우리가 잘 키우면 되잖아
네가 어때서?
너네 집에 가! [소리 지르면서]
내 앞에서 얼쩡대지 말고
애기 좋아하네
수야
가지 마, 나 버리지 마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
(희주) 수야, 수야!
[오토바이 가는 소리]
희주야
[퉷, 침 뱉는 소리]
[싸우는 소리]
[수가 소리 내며 때린다]
(수) 으아
[주먹으로 때리는 소리]
(수) 어이 [소리 지르면서]
[긴장감 넘치는 음악]
(희주) 수야!
수야!
(희주) 수야!
수야! [경적 울리는 소리]
[경적 소리, 충돌하는 소리]
내가 희주를 사랑한다고 했지
근데 네가 더 사랑한다고 했지
그래서 난 알았다고
잘해주라고, 희주는 내...
내 전부니까
내가 사랑한 첫 여자고 마지막 여자니까
네가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내가 사랑한
근데 임신한 걸 알고 버려
그땐 네가 지를 사랑하니까
지가 네 애 가진 것도 네가 좋아할 줄 알고 신나서 너한테 말했는데
넌 걔를 버리고 토껴?
난 그때 너무 어렸어!
그때 19살인데 너무 어렸다는 변명은 말아!
(무철) 너 네가 부모한테 버려진 몸이라
다른 건 몰라도 네 아이 가진 건 무서웠다고 말하면
내가 널 여기서 끝내, 왜냐?
그때 희주도 19살이었고
넌 널 버린 애미, 애비보다 더 모진 새끼니까
난 걔가 죽을지 정말... 정말 몰랐... [올먹이면서]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알았어야지!
걘 네 말이 하늘이었으니까
부모도 버리고 너한테 갔었으니까!
이 약은 내가 너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아주 어렵게 구했거든
사체 부검에도 안 걸릴 만큼 약효가 뛰어나지
단순 심장마비사
빠르고 정확하게
네가 먹어도 좋고 아니면 가짜 동생 영이를 줘도 좋고
난 네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 중
가짜 동생을 죽인다에 한 표 던진다, 왜냐?
넌 구더기가 들끓는 쓰레기니까
[주저앉는 소리]
[흐느끼며 우는 소리]
아시다시피
회사 지분은 왕비서님과 주주의 허락 없이는 매각할 수 없어서
(장 변호사) 이 유언장엔 회사 지분을 뺀 현물과 부동산만 넣었습니다
왕비서님 몫은 아마 회사 지분을...
필요 없어요
장 변호사님도 절
영이 덕이나 보려고 있는 간신배 정도로 취급하시나 봐요
아니, 전, 전 그게 아니고
사실 회장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편찮으셔서
회사 운영은 왕비서님이 다...
영이가 바닷가를 갔대요
되게 좋더래요
생각해보니까 바다 본 지가 저도 꽤 오래됐더라고요
나중에 저 바다 좀 데려가주세요 장 변호사님
데이트 신청이에요
데, 데, 데이트는 무슨 [당황하면서]
그냥 바람 쐬러 가는 건 몰라도 [떨리는 목소리로]
[서류 챙기는 소리]
돌아가신 형님이 들으면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치실...
아, 저, 그, 그게 아니고...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어떻게 감히 왕비서님하고 데이트를...
근데 서해안이 낫겠죠?
아님, 도, 동해안? [버벅거리면서]
[밝게 웃는 소리]
재밌으세요, 참
왕비서님, 어떤 순간에도 외로워 마십시오
늘 제가 곁, 곁에 있습니... [버벅대면서]
저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크게 넘어지는 소리]
[멋쩍은 웃음 소리]
[밝은 웃음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점자책 만들고 있구나
이거, 장 변호사님께 부탁했다며?
엄마하고 취미가 똑같구나 사진기 좋아하는 거
근데 그 많은 사진기는 다 어디 있니?
여기를 꾹 누르면 녹화도 가능하대 이건 전원
근데 사진 찍으면 인화는 하니?
아뇨, 그냥 셔터 소리가 좋아서 사는 거예요
영이야, 우리 사진 찍을래?
생각해보니까 너랑 나랑 단둘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잖아
우리 사진 찍자
- (왕비서) 우선 너 먼저 - (오영) 안 찍고 싶어요
어, 그래
미안
이건 네가 말한 유언장
복사본과 원본 한 부는 장 변호사님이 가지고 계신다
갈게
왕비서님
왜? 사진 찍어줄까?
오빠랑 이름이 같은 오수 씨를 찾고 싶어요
왠지 모르지만 자꾸 그 사람이 생각이 나서
오빤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한 번은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부탁할게요, 들어주실 거죠?
왕비서님이 왕비서님을 이용하랬잖아요
그래, 알아볼게
[문 닫히는 소리]
(오영) 음
전엔 엄마랑 오빠 네가 날 보러 오면
너무 커버린 내가 낯설까 봐 영상 편지를 남겼는데
어, 이젠...
내가 죽은 다음에
오빠한테 줄 선물로 이걸 남겨야 하나 싶다
[약한 한숨]
아무래도 난 뇌종양이 재발된 것 같아
두 달 전부터 두통이 잦거든
[애틋한 음악]
온몸으로 그걸 다 느껴
병원에 가야 할지 말지 고민 많이 했는데
오빠랑 있으면서 정리했어
난 다신 수술 안 해
다시 머리를 열고
차가운 수술실에 나 혼자 들어가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뼈가 녹아날 것처럼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가 이어지고
그사이 넌 가고
싫어
내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너랑 지금처럼 즐겁게
행복하게 지낼...
오빠 네가 왔나 보다 보러 가야지
[부딪히는 소리]
[샤워기 소리]
영이를 죽이면 사후 감식이 좀 걸리긴 하지만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샤워하는 물 소리]
사과받으러 왔어
나한테 그렇게 명령조로 소리친 사람
21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없었거든
인생 편히 살았네
가, 피곤해
사과해, 아니면...
이유를 말해주든가
너 많이 피곤한 스타일이구나
나 다친 것 같아
네 방 가 약 발라
손목 반경 3cm 정도
[문 세게 닫히는 소리]
[수건 내던지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왜? 내 방 가서 사과하려고?
받아줄게
[문 여는 소리]
[문 닫는 소리]
(오수) 왼쪽 옆에 의자
(오영) 나한테 화내고 어디 갔었어?
네가 갑자기 차가워진 이유가 궁금해
(오영) 지금도 이상해
방안의 기운이 차갑고 무겁고
- 뭔가 너한테 안 좋은... - 희주한테 갔었어
희주? 네 첫사랑?
어제가 걔 죽은 기일인데
잊었어, 그래서...
무덤에
[약 떨어지는 소리]
난 위로가 뭔지 잘 몰라서
자리에 가
앉아
위로가 안 되나 보다
[약 굴러가는 소리]
이건 뭐?
부적
부적?
친구 놈이
아주 어렵게 구한 약인데
죽고 싶을 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맘이 아주 편해진대
그런 약이 정말 있어?
그럼
그럼 이거
나 줘
[잔잔하고 슬픈 듯한 음악]
그럴까?
그냥 그거...
너 줄까?
어
(오영) 근데 너 그거 알아?
너한테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거
(오수) 살면서 지금 같은 순간을 나도 모르게 한 번 쯤은
미치게 기대하고 있었다
(왕비서) 한 방, 한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영이 결혼 서두르죠 당신이 떠나기 전에
게임 오버야, 희선이가 지금 영이한테 형에 대해서 다 불러 갔어
네 오빠가 지는 착하고 다른 오수는 사기꾼이래?
(오영) 그랬어
(희선) 잘 들어라, 네 오빠가 너한테 온 이유를 말해줄게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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