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8부
정호집 전경. 이른 아침.
연희 소리 짐 쌀 것두 없어!
인상 방.
-봄, 급히 침대 내려서며 머리를 옆으로 묶고, 인상은 연희 앞을 막아선다.
연희 그냥! 지금! 몸만 나가!
인상 왜 그러시는데요.
이지 (문간에 서서 정순에게)언니가 뭐 잘못했는데?
정순 (모르겠어)
연희 (선숙)쟤 얼른 델구 나가요,
인상 (선숙이 봄에게 못가게 막으며, 답답)왜요...
-문간. 벙하니 바라보는 사람들 뒤켠의 정호, 얼른 돌아선다. 연희 눈에 띄기 전에,
거실 계단.
-정호, 급히 내려온다. 낄 자리가 아니다.
연희 소리 몰라서 물어?!
장회장 병실.
-영라, 병실에서 접견실로 나와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소리 낮춰 통화. (간밤에 장회장 곁에 있어줬다. 그래서 편안한 차림)
영라 몰라서 물어?
침실.
정호 (통화)모르니까 묻지! 도대체 또 무슨 말로 건드렸길래,
병실(접견실).
-영라, 병실 출입문과 멀찍이 떨어져서,
영라 이보세요, 걘 지금 자기한테 화내구 싶은 거잖아. 체면상 남편한테 험한 소린 절대 못하겠구, 마침 딱 좋은 화풀이 상대를 잡은 거 뿐이지. 그 요조숙녀 시어머니가.
침실.
정호 (통화)비웃지 말고 협조 좀 해!
병실.
영라 (통화)어떡하나. 글쎄 나두 잘 모르겠네. 워낙 원초적인 문제라...끊어, 나두 근무 중이야. 누구 덕분에 정리가 잘 돼서 다행이지만 이 사람 당분간 환자여야 하니까.(끊는)
침실.
정호 (통화)야야야야,
거실.
-계단 옆, 식당 출입문으로 급히 들어가는 태우와 박집사,
-현관 쪽에서 들어서던 경태가 계단 쪽 한번 보고는 급히 식당 쪽으로.
-계단 중간. 정순과 이지는 이지 방으로.
-연희와 선숙, 그 뒤 인상과 봄이가 우르르. 계단 내려오면서,
봄 제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 주세요.
연희 넌 잘못 그 자체야!
인상 어떻게요?
연희 차 태워 보내!
선숙 알겠습니다.
인상 (버럭)뭘 알아요!
선숙 사모님 지시를,
봄 저만 나가요? 저 혼자요?
침실.
-연희들 소리 들린다. 정호, 관자노리 짚고 적절한 타이밍 계산.
연희 소리 왜 따라 오니? 니 집에 가라는데!
봄 소리 반성하구 다시 와요?
복도.
연희 잘못이 뭔지 모른다며!
봄 (여전히 모르겠는)인상이 소파에서 재운 거요?
인상 나 그거 괜찮거든요?!
연희 이런 등신, (때리려고 손 올리는데)
-정호, 등장.
정호 무슨 일이야!
연희 (손 올린 채 돌아본다)
인상 (얼른 연희 손 잡아내리며 정호에게)엄마 좀 이상하세요,
연희 (뿌리치려)한인상!!!
인상 도대체 봄이가 뭐가 맘에 안드시는데요!
연희 하나부터 열까지 다!
봄 저두 어머님 맘에 들구 싶지만 제 인생의 목표가 오직 그거 하나만은 아니라서요. 그러느라 정말 중요한 걸 다 놓쳐버리면, 저는 저 자신이 미울 거고, 어머님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도 없을 건데,
연희 그걸 변명이라구 하구 있니? 나두 니 존경 받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냐!
정호 (연희를 어서 달래야. 인상에게)그 손 놔드리고, 방으로 모셔라.
인상 네,(슬몃 놓고)
선숙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정호 내가 알아듣게 얘기 할게. 우선 안정을 취해요.
연희 (돌아서며 분노의 눈빛 발사)
침실.
-선숙, 연희 데리고 들어온다.
선숙 너무 과하게 반응 하신 것 같습니다. 젊은 분들 사생활인데, 공연히 스타일만 구기(셨어요).
연희 그러게 뭐하러 일러요! 내가 알아야 할 것과 아닌 것, 그거 구분 못해? 알구두 가만 둬?!
이지 방.
-소파. 정순 품에 기댄 이지. 정순이 이지 어깨 토닥토닥.
이지 엄마 아빠두 싸우구, 언니 오빠두 싸우구,
정순 그럴 때두 있는 거지.
이지 엄마 아빠 쪽이 훨씬 심각하지. 2년에 한번이지만 2주일씩 가잖아.
정순 설마...며느리두 보셨는데.
식당.
-박집사가 경태와 태우에게 마실 것 한잔씩 준다.
박집사 이비서가 가끔 과잉이야. 젊은 사람들 사생활까지 뭐하러 보고하나.
태우 그것두 이비서 주요업무 중 하나죠. 솔직히 일일보고, 맨날 똑같구 지겹거든. 아들 내외 불화설 같은 거 나와주면 좋지. 뿌듯해. 할 일 하는 거 같구.
경태 불화설은 외려 부모 쪽 아니냐? 이미 중전마마 심기가 불편했잖아.
소거실.
-정호는 서서 가르침의 말씀. 인상과 봄은 조아리듯 앉아서 듣는다.
정호 그게 문제다. 집안 문제가 담장 밖을 넘어가선 안되는 것처럼, 둘만의 문제도 마찬가지야. 왜 어머니 걱정 하시게 만드냐. 나는 부모님 생전에 맹세코 단 한번도 부부간의 문제로 심려를 끼친 적이 없다. 우리가 그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너희를 부부로 인정했으면, 어른답게!
-혜옥이 문간에서 난감한 손짓.
정호 뭐죠?
인상, 봄 (돌아본다)
혜옥 아기 도련님 배고플 시간이라,
봄 아, 네, (선다)
인상 (선다)죄송합니다,
-봄과 인상, 정호 향해 죄송의 뜻을 표하며 급히 나간다.
-정호, 잠깐 당황, 지금 이슈가 뭐였더라?! 급히 나간다.
침실 앞 복도.
-정호, 급히 온다.
영라 소리 걘 지금 자기한테 화내구 싶은 거잖아.
침실.
-정호가 급히 들어선다.
정호 당신 괜찮아?!
연희 암말두 하지 마. 나 당신 모친 심명지 여사 원망 좀 해야겠어.
정호 그래그래, 들어주께. 고인께는 도리가 아닌 줄은 알지만,
연희 나를 속인 거 생각하면 정말 용서가 안돼. 당신이 지영라 꽁무니 쫓아다니다 결국 차인 걸, 마치 영라가 목맨 거처럼 교묘하게 포장해서,
정호 당신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그러셨겠니. 우리 어머니가 당신 고등학교 때부터 점찍었어요. 그 누구냐, 장졔스와 마오쩌뚱이 동시에 총애한 린바우! 그 대단한 린바우가 며느리 간택한 얘기 알지? 황하 이남에 사람을 수십명씩 풀어서 고르구 고를 때, 그 기준이 얼마나 까다로웠어?
연희 (듣자니 서럽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정호 당신은 그 이상의 심사를 통과한 유일한 존재야. 제발 자부심을 가져.
연희 (글썽)입을 꼬매 버릴까봐.
정호 (입?! 잠깐 막았다가 정색)이거 봐. 당신은 이 집안의 모후, 나의 중전이야!
연희 (흑)내 운명인가봐.
복도.
-침실 쪽에서 나오는 선숙. 거실 쪽에서 옷바구니 들고 오는 혜옥.
선숙 (끄덕)
혜옥 (오오)
거실.
-선숙, 식당으로 가며 태우에게 끄덕.
-태우, 끄덕.
-경태, 접견실 들어가며 힐끗.
식당.
-이지가 혼자 아침(팬케익과 과일 우유 등)을 먹고, 정순이 샐러드 접시를 놓아주는데 선숙이 들어온다.
선숙 전쟁 끝.
이지 진짜?
박집사 (주방에서)빨리 끝났네?
정순 아침상 차립시다.
아기 방.
-봄은 젖먹이고, 인상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인상 우린 싸우면 안돼.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봄 화해에 이용하신 거면 보람이 있잖아.
혜옥 (서랍장에 아기옷을 넣으며)영리하시네요.
인상 (계속 찍으며)네, 얘가 좀,
봄 그런 거 같아요.
침실.
-정호가 훌쩍이는 연희를 안고
정호 우리가 합심해서 지켜 나가야 할 게 얼마나 많니. 나는 매일 매순간이 전투야. 용기를 줘.
연희 어쩌겠어. 받아 들여야지...
정호 (토닥토닥)자, 또 하루를 시작해보자고.
연희 어...
형식 집. 거실/ 주방.
-진애가 아침 먹은 빈 그릇들 싱크대에 넣다가,
-탁자 앞의 형식과 철식,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를 넣고,
-진애, 사진 보며 입이 벙긋 벌어져 식탁으로,
진애 진영이 좀 봐...
형식 또 왔어?
진애 어...
-철식과 형식, 들여다본다.
진애 그새 또 컸지?
형식 (흐뭇)그러게...
철식 이건 뭐, 고무 인형에 바람 넣는 거처럼 크네.
-누리가 나온다.
누리 진영이야?
진애 어.
-네 식구 머리 맞대고 본다.
철식 외손자 사진 보면서 맘 바꿔 먹어요.
형식 바꿔 먹긴, 후세를 위해라도 법을 바로 세워야지.
누리 아빠 진짜 나갈려구?!
형식 그냥 해본 소린 줄 아냐? 새벽같이 일어나서 피켓두 만들어 놨어.
누리 (철식에게)진짜?
철식 에이고 참,
누리 (답답. 진애에게)아빠 좀 말려.
진애 정 할려면 제대로 해보던가.
형식 제대루 하지 그럼!
복도/ 거실. 아침.
-정호의 출근.한 차례 소동 끝에 한층 강화된 의전. 정호와 태우가 서재에서 나와 현관까지 가는 동안.
-복도. 서재에서 정호와 태우가 나오며 이야기. 연희와 선숙이 서 있다.
정호 연수원 성적 우수자 영입 계획은 5인회의 상정 이전에 개별접촉 및 2배수 내정하는 걸로. (연희 앞을 지나며 손을 들어보이고)
연희 (새침하니 끄덕)
선숙 다녀오십시오.
-정호, 태우에게 얘기 계속 하며 거실로.
정호 사무실 도착 예정시각이 몇시죠?
태우 특별 스케줄에 차질이 없다면 아홉시 반입니다.
정호 대산 팀 1차 정리 문서는 차 안에서 먼저 볼 수 있게 해줘요.
태우 파일 받아 놓겠습니다.
-정순이 식당 앞에서 목례. 접견실 앞 인상과 봄, 경태. 이지는 계단 중간에.
-정호, 경태 앞에 선다. 경태, 목례.
정호 할 얘기가 있어요. 밤에 봅시다.
경태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인상, 봄, 이지 다녀오세요.
정호 (현관 향하며 손을 들어보이고)
-현관, 정호가 나타나자 박집사가 현관문을 연다.
-거실 전체. 이지는 다시 올라가고, 정순은 식당으로, 인상과 봄은 접견실로, 복도 어귀의 연희와 선숙은 소거실로. 연희, 인상과 봄을 한번 노려보는.
접견실.
-경태, 문을 닫고 돌아서며, 책상 앞에 앉으려는 인상과 봄을 향해,
경태 니들 괜찮냐? 숨은 쉬구 살어?
인상, 봄 네, (왜요?)
경태 그럼 됐고, 자, 명료한 세계관 제3탄(하다가)아침마다 그렇게 좍 서서 배웅해?
인상 (봄을 한번 보고는)거의.
경태 내가 여러 집 다녀봤지만, 참 대단하다.
봄 (그러게요)
탈모 병원. 아침.
-정호가 모니터로 자신의 모발 상태를 보면서 의사의 설명을 듣는다. 의사, 마우스 움직여 부위를 가리키면서,
의사 모근이 극도로 허약한 상태에서 강제 탈모가 됐기 때문에, 여기 이 부위는 다시 날 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네요.
정호 (중얼)강제 탈모.
-플래시 컷. 형식이 정호의 머리칼 움켜쥐는.
의사 게다가 기존의 원형 탈모가 계속 진행 중인 걸 감안하면,
정호 저는 그럼 어떡해야 하죠?
의사 수술이 가장 확실합니다. 일단 삼천모 이식해보고,
정호 통증은?
의사 그래도 수술인데 아주 없을 수는 없죠. 마취 깨고 나서 회복과 착근이 되는 동안,
정호 시뮬레이션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통증에 좀 민감해서요.
의사 이걸 한번 보시죠.
정호 (헉!)
의사 삼천모 이식 직후의 두피 상탭니다. 짐작이 되세요?
정호 (눈을 질끈. 난 못해)
한송. 엘리베이터 안.
-태우가 문쪽에 서 있고, 정호, 혼자 이를 악물고 진저리.
복도.
-정호, 태우, 정호 방으로.
-비서실. 양재화와 민주영, 통화 하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 하면서 정호 본다.
정호 방.
-정호, 창가에 서 있고,
-태우, 가방에서 서류철과 태블릿 등 꺼내 가지런히 놓고 조용히 물러난다.
-정호, 으으으, 신음. 두 주먹에 힘을 준다. 이 분노!
비서실.
-태우가 들어오고, 양비서, 민주영 소곤소곤.
태우 (자리에 앉는다)병원엘 아침에 들른 게 실수예요.
양 어떡하기로?
태우 (고개 젓는다)
주영 아픈 게 정말 싫으신가봐요.
양 손톱 밑에 거스러미 한번 일어난 적 없이 컸거든. 그 모친 심명지 여사가 그렇게 키우셨다. (내선 전화 집어 들고 버튼)어, 대표님 녹차 한잔 부탁해요...제가 갖고 들어갑니다...네.(끊고 일어선다. 옷자락 당겨 여미고)
정호 방 앞.
-차 쟁반을 든 양비서, 노크.
-비서실의 주영과 태우, 목을 빼고 본다.
정호 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호. 양비서, 정호 앞에 찻잔 놓아주고 바로 서서,
양 심신이 지치신 게 아닐까, 걱정 됩니다.
정호 (깊은 한숨)세태가 참 울적하네요...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어요.
양 차, 드십시오.
정호 (차 한모금)
양 제가 대표님 처음 뵌지 올해로 딱 25년입니다.
정호 어느 새 그렇게 됐네요...
양 대학교 2학년이셨는데, 저는 지금도 대표님 모습이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호 (쓸쓸히 미소)뭘 그럴라구요.
양 그동안 공사 불문, 많은 일을 성취하셨죠. 숱한 비난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늘 올곧은 길을 택하셨어요.
정호 그러려고 노력할 뿐이죠.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자주 돌아봐요.
양 그게 바로 대표님의 미덕입니다.
정호 과찬이예요.
양 당시에도 여늬 댁 자제들과 다르게, 언행이나 심성이 정말 남다르셨죠.
정호 (차 또 마시려다가, 본색)혹시 내가 너무 절제된 생활을 하는 거 아닌가요?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고 하던데, 아, 물론 농담이예요.
양 그럼 저도 농담 한 말씀 할까요? 대표님은 키가 크셔서 정수리 밀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호 (얼결에 손 정수리)
양 그러자면 농구선수 만큼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호 그렇죠(슬몃 내린다).
양 (정색)외람된 말씀이지만, 너무 심려 마세요. 카이사르도 머리숱이 적었고,
정호 (한숨)역시 내 심중을 읽어주는 건 양비서 뿐이네요.
비서실.
태우 하필이면 사돈이 그런 이쁜 짓을 할 게 뭐냐고, 그러잖아도 저건 스트레스 충만인데.
주영 대표님 저건 유전이라면서요.
태우 선대는 아니었어요.
주영 격세 유전.
태우 그렇구나...아...오늘 하루 어떻게 버티나. 대놓고 위로두 못하구 말야.
-양비서 온다.
주영 성공?
양비서 밥값 했다.
태우 감사합니다.
한송. 정호 방.
-정호, 변호사 질책 및 격려. 의사 앞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
정호 법리상 맹점이 없는데, 뭐 때문에 눈치를 보죠?
변호사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해고자 체불 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회장이 처가 쪽과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정호 그 문제는 별건으로 다뤄질 거예요. 우리가 장회장의 일부 자백을 사주 및 이용해서 검찰과 협상을 했다는 얘긴데, 자료 보세요. 해고 날짜와 지급 정지 시기가 같지 않습니까.
변호사 그 점을 문제 삼는 거죠. 서류상 날짜가 실제와 다르다는.
정호 탈법? 우린 그런 거 절대 없어요. 당 회계연도 세금 관련 기록을 어떻게 조작합니까.
변호사 해고자 연대가 면담 및 해명을 요구합니다. 집회 신고가 돼 있어요. 오늘 낮, 열두시, 이 앞에서요.
정호 무대응이 최상의 대응이예요. 이런 표현 어떻습니까. 담대한 침묵!
정호 집 침실.
-파우더 룸. 선숙이 연희의 어깨를 주무르고 눌러주는 등,
-연희,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한참 보다가,
연희 나 그새 늙었죠.
선숙 아닌데요.
연희 나 새사람 들이구나서, 몸두 마음두 너무 힘들었어. 한달 사이에 몇 년을 겪은 거 같구,
선숙 전혀 그런 노심초사를 겪으신 분 같지 않습니다.
연희 솔직하게 말해봐요. 무슨 시술이라두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선숙 저는 며느님 말씀에 동감이예요.
연희 저 애가 뭐랬길래?
선숙 기억 안나세요? 친구분들 오셨을 때, 어머님 자랑 첫 번째로 꼽은 게, 압도적으로 아름다우시다, 그거였어요.
연희 아아,
선숙 며느님이, 거짓말 못하는 성격인 건 인정하시지 않나요?
연희 (흡족)뭐, 그 점 하나는, (하다가)그런 장점두 없으면 하늘이 두쪽 나두 못받아 주죠.
선숙 그러니까요.
연희 (거울 속, 확인하듯 미소)
소거실.
-선숙이 봄의 앞에 작은 접시 놓는다. 깔끔한 목걸이가 담겨 있다.
봄 ?? (연희를 본다. 뭐예요?)
연희 어때, 맘에 드니?
봄 제 마음에요?
연희 여기 너 말구 누구 있어?
봄 (그렇구나. 멋쩍은 웃음)그냥 봐가지구는 잘 모르겠구...한 번 자세히 본 담에 말씀 드려두 돼요?
연희 (웃으며 끄덕)
봄 (집어서 손바닥에 걸쳐보고는)예뻐요. 깨끗해보이구.
연희 그럼 너 해. 선물이야.
봄 네?
연희 니가 아직 성년이 아니라 제대로 된 패물은 줄 수가 없지만, 이 정도는 그냥 옷에 딸린 거다 생각하구 주는 거야.
봄 잘 할게요. 고맙습니다.
연희 지금 해 봐. 어울릴 거야.
봄 아니요, 진영이가 젖먹을 때 뭐든 다 잡거든요. 파악반응, 그런 거,
연희 아아, (얘는 별 걸 다 알아. 웃어 보인다)그렇지. 난 한참 지난 일이라 다 까먹었다.
선숙 (접시 집어 내밀며)케이스에 담아 드릴게요.
봄 네.(접시에 내려놓으면)
-선숙, 돌아서고,
봄 근데 왜 주시는지...제가 마음에 안드시는데,
연희 뭐, 도저히 백점이랄 수는 없지만 솔직한 거 하나는 맘에 든다. 칭찬할 건 해야지. 어른된 도리루.
봄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늘 거짓없이, (하다가 고개 좀 숙이며 활짝 웃음)
연희 왜 웃어?
봄 좋아서요...(입이 자꾸 벌어져서 손을 들어 가린다)
연희 (얼핏 ‘예쁜 애구나’, 그런 느낌 스쳐서 얼른 선을 긋는다.의례적인 미소)이만 가 보렴.
봄 네,(선다)정말 고맙습니다.
복도.
-봄, 선숙에게서 케이스 건네받고 가면서 혼자 계속 웃음.
거실.
-접견실 앞. 봄, 인상에게 케이스 열어보인다. 이거 주셨다? 인상, 뜻밖. 진짜? 봄, 어...
-인상, 안채 쪽을 얼핏 보고는 웃으며 봄의 코를 쥔다. 그렇게 좋아?
한송 비서실.
주영 (메모지 보여주며)서형식씨 약식 재판 날짜예요. 1월 15일. 담당 판사 이재석.
양비서 (끄덕, 하고 고개들어 보면)
-변호사가 정호 방에서 나온다. 양비서, 주영이 건넨 메모지 서류철에 끼워 들고 일어선다.
정호 방.
양비서 담당이 연수원 37기네요.
정호 알죠. 이 친구 아버지가 금감위 말단으로 퇴직했어요.
양비서 아버지 앞으로 뭘 좀 보낸 다음에 통화하겠습니다.
정호 그래요. 내 이름으로 안부 인사 적어서.
양비서 벌금 200 정도로 부탁하겠습니다. 아마 노역으로 대신하겠죠.
정호 그럼 며칠인가, 40일?
한송 앞. 낮.
-큰길에서 건물 쪽으로 접어드는 형식, 피켓을 엉거주춤 뒤로 감추듯이 거꾸로 내려들고서,
-건물 앞, 경비원들이 평소처럼 서 있고, 멀찍이 통행 차단용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 앞, 형식이 피켓을 세워들까 말까, 머뭇거리다가 둘러본다.
-저만치 한 무리의 남자들이 둘러서 있다. ‘대산 복직투쟁위’ 조끼 차림. 통화하거나 서로 얘기 주고받는 모습.
-멈칫멈칫 다가가는 형식.
투쟁위 (통화)열한시 20분에 집결, 30분부터 풍물 시작, 바리케이드 점거와 동시에 정문 앞까지 진출, 열두시 정각, 한송 대표 및 고문단 외출 저지...
-형식, 투쟁위 사람들 사이로 목을 빼고 본다. 피켓 무더기, 확성기, 음료수 상자 등.
-피켓 문구들. ‘한송은 알고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한송을 고발한다‘ ’재벌가의 보디가드, 한송에게 묻는다‘ 등.
-투쟁위 한명이 형식에게 음료수와 조끼를 건네자, 형식, 얼결에 고개를 젓고 황급히 돌아선다. 자신이 내려든 피켓의 문구가 너무 옹졸하게 느껴진다.
부근 골목 안.
-식당들 뒤쪽인 듯.
-형식, 피켓에 붙인 종이를 떼낸다. ‘한정호는 반성하라, 사돈갑질 웬말이냐’ 가 온전히 떼내지지 않아 군데군데 찢겨진 채 붙어 있는 피켓. 형식. ‘사돈’을 기어이 떼낸 뒤, 음식물 쓰레기통 곁에 쳐박고 급히 간다.
정호 방.
-태우가 모니터 보면서 건물 앞 상황 보고.
태우 건물 앞 상황, 한산합니다.
정호 그럴 수 밖에. 전면 및 양 측면 50미터까지가 원래 우리 땅이거든. 도로 용지로 헌납한 거야.
태우 아, 그리고, (뒤로 돌려 재생)
-화면 속, 피켓을 내려들고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형식.
정호 누구지?
태우 서형식씨,
정호 뭐야, 그냥 가네?...
태우 네...
정호 사리분별이 있다면 반성 해야지...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부근 큰길 가.
-형식, 급히 모퉁이 돌아나온다. 겁도 나고, 어쩐지 후회스럽다.
형식 가게. 낮.
-형식이 온다. 진애가 작동 중인 도장기계 살피다가,
진애 했어?!
형식 했지...
진애 그 사람들 보게 했어?
형식 (앉는다)겁 좀 먹었을 거야. 비서가 나와서 제발 봐달라 그러더라고.
진애 그래서,
형식 조용히 얘기 좀 하자길래, 됐다 그러구 그냥 왔어. 봄이 생각두 안할 수 없구.
진애 봄이 생각해서라도 더 쎄게 했어야지! 봐줘 버릇하면 우습게 알아!
형식 그, 그렇긴 한데.
아기방.
-봄은 수유 중이고 인상이 침대에 걸터 앉아 책을 본다. 판례집 따위.
봄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 하시지?...
인상 (책장 넘기는)너 대입 준비 의논 하실 거 같은데?...과외 전문가잖아.
봄 (아파서 찡그리는)과외두 시켜주실래나?
인상 (본다)야 한진영, 살살 먹어.
봄 말 곱게 해. 애한테.
서재. 밤.
-연희, 정호, 경태, 소파에 앉아.
연희 저희가 선생님께 할 얘기라는 게 뭐겠어요. 애들 문제죠.
경태 말씀 하십시오.
정호 저 애, 성향 파악이 좀 되셨는지, 우선 그걸 알구 싶어요. 썩 뛰어나지두 않지만 그렇다구 과히 쳐지는 것두 아닌 거 같은데.
연희 대학이야 뭐, 꼭 최고를 고집할 수는 없죠. 애가 바보는 아니니까 집중해서 가르치면 여자대학 웬만한 데 들어가겠죠. 예절이나 안목, 그런 것두 훈련으로 웬만큼은 될 거구요. 그런데 성향이라는 건 참,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정호 오해없이 들어주세요. 저 애 부모에 대해서는 저희가 좀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요. 자식한테 그닥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요컨대, 내 자식과 어울리는 사람이 돼줬으면 하는 겁니다.
경태 결론은 원하시는 스펙이 나와 줄건지, 말건지, 그거 아닌가요?
연희 그렇...죠...
정호 다는 아닙니다만.
경태 간단히 말씀 드리죠. 서 봄 저 친구는 대학입시 수준이 아닙니다. 일단 인상이 사시 준비에 페이스메이커로도 손색이 없고요,
정호, 연희 네?...
경태 어떤 면에서는 투자 대비, 인상이보다 월등 낫습니다. 영어 실력, 문해 및 독해력, 판례 판독 및 연계, 추론 등, 저라면 저 소녀를 지금 즉시 인상이와 같은 커리에 투입할 겁니다. 5월에 검정고시, 그건 뭐 그냥 보면 되는 거고,
연희 (벙하니 정호를 본다.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정호 (경태를 본다.계속 해 봐)
경태 최연소 합격까지 바라 볼 수 있을 거예요. 검정고시 출신에, 혼전 출산 경험, 그 쯤되면 거의 신화의 주인공, 한송의 영재로 손색이 없죠.
정호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텍스트 하나 주고 가세요. 아침에 보자고.
경태 알겠습니다.
연희 여보...
정호 (기대감, 계산)
침실.
-정호,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고, 연희, 왠지 불안한.
연희 인상이가 눌리는 거 아닐까? 저애가 기가 쎄서?
정호 거 무슨 구태의연한 소리야. 21세기에.
연희 뭐가...당신은 아무렇지두 않어?
정호 쟤들 결혼을 진정 빛나게! 우리가 결코 아무나 받아들인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연희 (맞아...끄덕이는)
인상 방. 밤.
-봄, 책(혹은 모니터. 컴퓨터로 다운 받은)을 들여다보고,
-인상, 소파에 누워 마냥 흐뭇. 다리 건들거리며.
인상 생각만 해두 즐거워.
봄 (눈은 책. 건성)뭐가.
인상 니가 인정받을 기회잖아...아버지 화끈하게 놀래키는 거야. 헉 소리 나게.
봄 너보다 잘해두 돼?
인상 당연하지. 너는 완전 자가발전인데.
봄 자학하지 마. 과외빨두 아무나 받지는 않잖아.
인상 암튼...흐흐흐(상상만으로도 고소하다)
봄 (얼핏 보며 웃음)
누리 방. 밤.
-진애가 들여다 본다.
-방금 들어온 누리, 머리에 수건 동이고 클렌징 문지른다.
진애 더운 물 한 통 갖다 놨어.
누리 그걸로 어떻게 다해. 머리 감아야 되는데. 주방에서 칠리 덮어 써가지구 냄새 다 뱄어요.
진애 아침에 목욕탕 가.(간다)
누리 (짜증 누른다)
거실/주방. 밤.
철식 얘기 들어보니까 거기 정보 담당자가 민주환이 동생이더라고.
형식 (술따르다가 힐끗)뭐?
철식 경찰대학 출신인데, 오빠 땜에 임용이 안되는 걸 한송에서 뽑아 갔대요.
형식 그런 배경으로 어떻게 거기서 일을 하냐? 민주환이는 검찰 내부고발자 아냐. 너희 회사 위장 근무하다가 터뜨린 건데.
철식 나두 참 이상하다 싶어가지구 가만 생각을 해보니까, 봄이 시아버지가 비범하긴 비범해요. 거기 이쪽 경력 사람들이 꽤 돼. 시니어 중에는 옛날에 운동 하던 사람들두 있구.
-진애, 바삐 손놀려 뜨개질 하면서 듣기만.
형식 그러니까, 이쪽 저쪽, 중용을 취한다 뭐 그런 거야?
철식 그 사람이 자칭 타칭 균형인이라잖아.
형식 허허 참, 알수록 쫄리네.
안방. 밤.
-진애, 잘 준비 하면서 철식의 말 떠올린다.
철식 소리 우리 털릴 거 많아요. 찌질하고 챙피한 거 많다고.
-형식이 들어온다.
진애 솔직히 말해봐. 고백 타임을 줄게.
형식 뭘...
진애 왜 찔리는데?
형식 (선 채로 양말 벗는다)
진애 양말 뒤집어 벗지 마시구요,
-극세사 잠옷 바지 갈아입는 형식.
진애 뭔데?
형식 별거 아냐...도로교통법 위반 수준, 소액 사건이지...운 나빠봐야 벌금 오십만원 정도.
진애 그게 소액이야? 나는 만원 한 장도 거액인데?
형식 운이 아주 나쁘면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야. 정상적으로 판결한다면 사회 봉사나, 훈계 방면까지 될 수도 있고,
진애 판사가 그 전날 애 성적표 땜에 부부 싸움을 했다거나, 위에서 쪼였다거나 그런 일만 없으면? 그러기를 기대한다고? 법치국가에서?
형식 아, (그만 좀)
정호 집 거실, 다음 날 이른 아침.
-봄과 인상, 조심스레 계단 내려오면서 서재 쪽 살핀다. 봄, 책과 노트 들고 있다.
-서재에 불 켜져 있고,
-봄과 인상, 소곤.
인상 벌써 나와계셔...
봄 떨려...
서재.
-서 있는 정호, 돌아본다.
-인상과 봄, 엉거주춤 인사.
인상, 봄 안녕히 주무셨어요...
정호 넌 왜 따라 왔냐.
인상 그냥, 아니,당연히,
정호 시험두 손잡고 볼래?
봄 아니요. (인상에게, 가 있어)
인상 (떨지 마.)
소거실.
-인상, 들어서며 서재 쪽 돌아보고,
서재.
-정호, 봄이 들고온 군주론 영역본을 들고 앞 뒷 표지를 본다.
-봄, 긴장. 앞에는 노트 반듯하게 놓여 있다.
정호 마침 잘됐구나. 좋은 책이지.
봄 인상이랑 같이 읽으셨다면서요.
정호 (봄의 앞에 놓는다)챕터 투에니 원.
봄 아, (펼쳐서 몇 페이지 넘긴다)
정호 내용 중에, 요즘 말로 하면 자유경제의 기본 이념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찾아서 읽어봐.
봄 (잠시 생각)
소거실.
-앉지 못하고 벽에 붙어 서서 귀 기울이는 인상.
봄 소리 (영어)군주는, 능력자를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역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인상 (그렇지, 주먹 불끈)
서재.
-정호, 뒷짐 지고 서서 듣고,
봄 특정 기술에 탁월한 사람에게 명예를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상업이나 농업 등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추구하는 바를 평화롭게 수행하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누구든 뺏길까봐 두려워 재산 불리기를 겁내지 않도록, 정세가 불안해서 창업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정호 왜 그 대목이지?
봄 누구나 능력껏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도록 해준다는 건, 시장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복도.
-연희가 침실 쪽에서 나오다가 선다.
소거실.
-봄과 정호의 문답 소리 들려오는 중에,
-연희가 들어온다. 인상 멋쩍은 웃음.
(봄 소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이면서 부익부 빈익빈의 출발입니다.
정호 소리 니 생각이야?
봄 아니요, 경제 시간에 배웠습니다.
정호 선생이 전교조였나.)
인상 (작게)잘하죠?
연희 (은근히 부아)쟤는 과외두 안받았다며!
인상 그러게요.
연희 니가 그동안 얼마나 썼는지 계산이나 해봐.(나간다)
인상 (소리없이 웃음)
식당.
-선숙이 차주전자에 뜨거운 물 붓고 있다가 목례.
선숙 나오셨어요,
연희 기가 너무 살았어. 너무 저래두 안좋은데.
선숙 부적을 들킨 게 문제일까요.
서재.
정호 관점에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잘했다. 아침마다 내려와서 두 페이지씩 읽어라.
봄 네...
-인상이 소거실에서 손가락 브이자 흔들어 보인다. 봄, 슬몃 웃는데,
-아기 울음 소리.
봄 (엉거주춤 일어서며 정호를 보고)
정호 가봐.
복도.
-인상과 봄, 급히 나와서 아기 방으로 가며 허리 끌어안는다. 봄, 나 잘했어? 인상, 죽였어. 아버지 놀라는 거 막 보이더라.
서재.
-연희는 차를 따르고, 태우가 신문을 놓아주고 나간다.
연희 다행이네요.바보는 아니라서.
정호 쓸만해.
식당 일각.
-선숙과 태우, 서서 차 마시며,
태우 인제 밀어 주는 건가?
선숙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형식 집 주방/거실. 낮.
-계단. 철식이 올라오다가 손에 든 봉투(법원 등기우편물)를 반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형식, 담요를 머리까지 쓰고 거실 탁자 앞에 앉아 앓는 소리.
-주방의 진애는 렌지 앞에 서서 김이 오르는 죽냄비 젓고,
철식 (진애 눈치 보면서 형식에게)어디 아파요?
형식 어...(콜록콜록)
진애 양심이 아픈가봐요. 나한테 뭐 숨기면 꼭 저렇게 몸살끼를 내보여.
형식 진짜 아프다니까? 내보이는 게 아니라.
철식 양심이 아니라 낭시(ㅁ), 아닌가?
형식 거긴 다 나았어.
철식 다행이네.
진애 야채죽 끓이는데 같이 한그릇 할래요?
철식 아니요, 해장국 먹구 왔어요. (형식 향해 주머니를 가리킨다)
형식 (뭔데?)
철식 (진애를 힐끗)
형식 (진애에게)나 좀 누워 있으께. 다 되면 말해.
진애 전기 담요 올리구 푹 덮어.
형식 어...
-형제, 방으로.
안방.
-형제, 소리 낮추어,
철식 (주머니에서 접힌 봉투 꺼낸다)재소환 통지서요.
형식 (받아서 뜯는다)뭐하러 갖구 올라와. 이런 건 그냥 가게에 적당히 숨겨 놓지.
철식 좀 제때 출석하지 그랬어요. 벌금 늘어나요.
형식 (서류 보다가)너 혹시 돈 좀 있냐?
철식 핸드폰 요금도 연체요.
형식 (서류 접는다. 한숨)괜히 싸웠나봐.
철식 왜?...일인시위 또 나가 봐요...겁먹더라매.
형식 (쩝)
철식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그 대단한 변호사 사돈을 두고 이런 일로 고민한다는 게 말이 돼요?
형식 아니 뭐 고민이라기 보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건 전략적으로 하수 짓이다, 뭐 그런 뜻,
-진애가 들어온다. 죽이 차려진 소반 들고.
-형식은 요 밑에 서류 집어넣고 철식이 얼른 일어나 상을 받는다.
형식 어, 다 됐어?
진애 형제가 수군수군 할 때마다 가슴이 다 철렁해.
형식 암말 안했어.
-철식, 형식 앞에 상을 놔 준다.
철식 형수도 감기 옮지 않게 조심하세요.
형식 넌 밥상 들고 말을 하냐? 침튀게?
철식 들어요.
형식 (숟가락 들며 진애에게)잘 먹으께.
진애 살면서 망신살이 낄 수도 있는데, 인제는 안돼. 저 쪽 부모도 부모지만 애들한테 부끄럽지.
-형식은 죽을 먹고, 철식은 진애 눈치보고, 진애는 전화 한다.
진애 어어, 그래...별일 없니?...진영 애비는...싸워?
형식, 철식 (본다)
정호 집 인상 방. 낮.
-인상과 봄, 소파에 붙어 앉아(틈만 나면 비비고 치댈 때라)
봄 (통화)어, 부부싸움. 첨으루.
인상 그런 얘기 뭐하러 해!
봄 화해했는데 뭐.(다시 통화)응, 엄마, 재밌었어. 소득이 컸지.
인상 (괜히 좋아서 봄의 머리에 코를 박는다)
형식 안방.
진애 (농담)달력에 표시해라 얘. 그것두 기념일이야....그래서, 누가 이겼어?
형식 (정색하고 뺏어서)그럼 못 써! 똑똑한 니가 양보해야지. 어른들 보기두 그렇구,
진애 어른들은 왜 챙겨?
형식 너무 이길려구 들지 말구, 입바른 소리두 좀 참구, 그러는 거야. 우리두 적절한 때를 봐서 화해를 청할까 해요.
진애 어머머?
철식 (시선 피한다)
형식 뭔가 격차가 클수록 양가가 화목해야지.
인상 방.
봄 (통화. 웃음)아빠 갑자기 현자가 되셨나봐?
인상 뭐라시는데?
봄 (가만 좀 있어)다 좋아요...모르겠어, 나를 막, 막, 이뻐하시네?
인상 (새삼 흐뭇해서 작게 웃음)
봄 인상이 바꿔 드릴까?
인상 어,
봄 잠깐만, (인상에게)
인상 (받으며 바로 자세)인상입니다! 안녕하셨어요?!...네...아뇨, 그게 아니라, 봄이가 부모님 맘에 들게 하니까...진가를 알아보신 거죠 뭐.
봄 (인상의 어깨에 기대며 웃음)
정호집 서재, 밤.
-정호, 경태.
정호 저 애 스케줄이 어떻게 되죠?
경태 거창할 건 없고요, 괜찮은 입문서 한 권 읽고 바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검정고시는 하루 쯤 바람 쐬러 나간다 생각하고 보면 되겠고,
정호 한번 해보세요.
식당. 아침.
-봄, 인상 가족과 처음으로 함께 식사.
-화기애애. 인상에겐 긴장 없이 즐거운 식사가 거의 처음.
형식 집 주방/거실. 아침.
-진애, 봄이네 세 식구 사진 본다. 설거지 하던 중. 고무 장갑 낀 채.
-거실의 형식도 서서 봄과 진영의 사진 본다.나가려던 참.
진애 다 좋게 됐는데, 맘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
형식 그러게...멀어진 거 같구...
진애 내 딸 똑똑한 거 알아봐주구, 편견없이 이뻐만 해주면 무슨 얄미운 짓을 해두 다 용서한다, 그랬는데...기분이 꼭, 뺏긴 거 같애.
형식 (쩝)우리가 유치한 거지 뭐.
진애 나간다며.
형식 어, 가야지. (웃도리 집어들고)
진애 다녀와요.
형식 (나간다)어...
현관.
-형식, 신발 꺼내 신으며 전화 받는다. 소리 죽여.
형식 어, 뭐하냐?...얼른 와서 가게 좀 봐...나 오늘 재판 아냐...
샌드위치 가게 앞. 밤.
-승합차 서 있고, 철식이 기웃.
-주영, 테이크 아웃 봉다리 들고 나온다. 철식이 내린다.
-철식, 쭈삣 다가간다.
-누리가 안에서 교대 준비.
철식 민주영씨 맞죠?...경찰대학 나오시고, 민주환이 동생.
주영 (들켰구나. 웃음)아주 잘 아시네요.
철식 댁에 오빠랑 한 때 같은 직장에서 일했고, 뭐, 서 봄, 서누리 삼촌인 거는 굳이 말할 필요 없겠네요.
주영 (웃음)딱 걸렸어요...이런 일 거의 없는데...
철식 프로급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죠. 주환이한테서.
주영 미안해하면 꼭 걸리더라구요.
철식 미안하기는 한 거요? 이건 뭐, 스토커도 아니고, 딱 봐도 개인사찰인데.
주영 이해해주세요. 보고할 의무가 있어서,
철식 그거야 당신 의무고.
주영 이쯤 해두시죠. 진심으로 미안하니까.
-누리, 나오다가 멈칫.
철식 해명 및 즉시 중단한다는 언질은 있어야죠.
주영 알겠습니다. 연락 드릴게요. 그럼.
-주영, 간다.
-누리, 철식에게로.
누리 누구예요?
철식 (어이 없다는 듯 주영 뒷모습 보다가)어? 어어,
형식 집 거실.
-방금 들어온 철식과 누리. 형식은 저녁 무렵에 들어왔다. 울적한 분위기.
형식 야, 그럼 우리 다 사찰 대상인 거냐?
철식 그렇다구 봐야죠.
누리 기가 막혀. 나, 관리 받는 인생이 너어무 부러웠는데, 이런 관리라면 사양할래.
진애 봄이한텐 말하지 마.
누리 이건 뭐 남이나 다름이 없네(방으로).
형식 말을 해두!
진애 당신, 저번 날 일인시윈지 그거 할 때, 비서가 뛰어나와 좀 봐달라 그랬다며.
형식 (얼버무림)아니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니구, 생각해보니까 그냥 인사로, 모른 척 하기 뭣하니까,
철식 (힐끗)
진애 (일어서며 비아냥)그러게 아예 쎄게 할 것이지! (누리 방으로)
형식 쎄게 했으면 더 클날 뻔 했지, 이 사람아.
철식 (진애가 들어가는 것 확인하고는 나직)정말로 비서가 뛰어 나왔던 건 아니겠...죠?
형식 (쩝)실은 복대위 시위자들 모여 있는 거 보구 그냥 왔어. (본다)그러길 잘 한 거잖아. 안 그래?
철식 그러네.
형식 (서글픈)안그래두 내가 오늘 아주 그냥 얼어붙었어. 벌금을 200이나 때리더라구.
철식 무관하다고 볼수가 없네, 도저히. 겁 주는 거 아뇨.
형식 어떻게 내냐? 너 돈 좀 있어?
누리 방.
-진애는 침대에 걸터 앉아. 누리는 옷 갈아 입고 머리띠 맨.
누리 봄이가 왜 몰라야 되는데. 저 혼자 저렇게,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느닷없이 이쁨받구 살기까지, 우리가 저땜에 얼마나 가슴 졸였어? 난 작년그날 충격 받은 거 생각하면, 지금두 숨이 막혀.
진애 알지...
까페. 낮.
-철식이 들어서서 두리번.
-주영이 일어선다. 철식, 엉성하게 인사하며 다가간다.
-잠시 후, 커피 한잔씩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둘.
주영 저희 오빠 근황, 들으셨어요?
철식 전해만 들었죠. 저는 집행부도 아니고, 뭐 거의 이름만 걸어놓은 상태라... 어디 지방에서 요양 중이라면서요.
주영 네...사회생할은 포기했고, 제가 가장이예요. 저한테는 한송이 은인이죠.
철식 (그렇겠네. 혼자 주억거리다가)그래도 너무 충성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같은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벌일 것도 아니고,
-주영, 가방에서 봉투 꺼내 철식 앞에 놓아준다.
철식 ?...뭡니까?
주영 형님 되시는 분, 사안에 비해서 벌금이 좀 많이 나왔죠? 그걸로 내세요. 대표님 배려예요.
철식 (어이없고 무참하다)허허허,참...(본다)병도 주시고, 약도 주시고, 그런 거죠?
주영 (웃음)저는 업무에 관해서는 논평 안해요.
철식 그럼 사적으로 물어봅시다. 대체 어디까지 알아요?
주영 가봐야 겠네요(가방 추스르다가 보면)
-태우가 들어오다가 다시 나간다.
철식 ?
주영 (선다)만날 일 없기 바랄게요. 그럼,
-철식, 일어서는데 주영은 이미 뒷모습.
한송 비서실.
-주영이 들어온다. 태우, 얼른 딴전.
주영 나 감시하지 말아요. 없어 보여.
태우 (당황)내가 뭘.
한송 정호 방.
-주영의 보고.
주영 서누리는 메이저 방송사 대신 케이블 쪽에 지원해서 1차 통과, 2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호 2차 경쟁률은?
주영 1. 2배수 선발입니다...거의 붙죠.
정호 거기 부사장 우리 클럽에 초대 한번 하지. 적당히 명분 하나 만들어서.
주영 알겠습니다.
정호 집 다음날 이른 아침. 서재.
-봄, 정호와 마주 앉아 낭랑한 음성으로 원서를 읽고,
-인상이 뒤늦게 와서 봄의 옆에 앉는다. 봄이 영어로 읽고 인상이 해석.
봄과 인상 (영어)군주는, 두 종류의 통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을 무기로 삼는 것과 힘을 무기로 삼는 것. 하나는 짐승의 방법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방법이다. 군주는, 두 가지 무기를 다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에게 통치받는 백성은 대개 나약하고 비열하기 때문이다.
-연희, 목빼고 보다가 돌아선다.
침실. 아침.
-정호, 출근 준비.연희가 거든다.
연희 저애 친정, 그냥 둬도 돼? 이뻐서가 아니라.
정호 신경 쓰지 마. 인제 내가 아무리 작은 걸 줘도 그저 감사하며 살 거야. 소박하고 청렴하게.
연희 남들 보기 좀 그렇잖아.
정호 그게 외려 모양이 좋아. 청렴한 집안의 수재 소녀.
한송 정호방
-민주영, 정호에게 보고 중.
주영 벌금은 납부한 걸로 확인 됐습니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호 계속 주시하시고,
주영 네. 디엘미디어 이 부사장님 클럽에 와 계십니다.
정호 몇 분 쓸 수 있죠?
주영 30분 후에 상재그룹 계열사 매각 건으로 킥오프미팅.
정호 김비서 수행 부탁합시다.
주영 알겠습니다.
복도.
-태우와 정호, 엘리베이터로.
비서실.
-주영, 양비서. 일본어 섞어서.
양비서 디엘미디어 부사장 만나시나?
주영 네...근데 큰딸 취직은 굳이 부탁 안해도 될 거 같다던데요.
양비서 신경 쓰고 배려한다는 걸 보여줘야지.
주영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
양비서 단돈 200만원, 식사 한번으로 심금을 울리면서 겁주기.
형식 거실/주방. 밤. 며칠 후.
-옷을 갈아 입은 누리가 식탁 앞에 앉고, 진애가 라면을 남비 째 식탁 위에 놓는다.
진애 감이 어때? 통과 될 거 같애?
누리 모르겠어. 근데 부사장이 나한테만 질문 엄청하더라?
진애 (응?!)
누리 붙으면 그냥 다닐까봐. 괜히 지상파 미련두지 말구.
진애 글쎄...그게 나을래나...
누리 (먹으려다)왜? 기분 안좋아? 서운해?
진애 그게 아니라...
누리 뭐가? .
진애 아빠가 나 몰래 사고치구 벌금을 200이나 맞았는데, 비서 시켜서 그걸 주더랜다.
누리 (벙)
진애 혹시 니 일까지 다 알구서 손을 써주는 거 아닌가 싶어.
누리 (젓가락 놓으며 허허허)찍소리 말구 살면서 던져 주는 거나 받으라는 건가?
진애 꼭 그렇게 말할 건 아니지만.
정호 집 접견실. 밤.
-접견실. 뒷짐 진 정호, 책상 위 인상과 봄의 책이며 필기노트 등 넌지시 살피고 돌아선다.
-번호키. 정호, 생각껏 눌러보지만 열리지 않는데,
-문 앞, 봄과 인상이 들여다본다.
정호 (무안하다)열어라.
-문이 열리면, 정호 나간다.
정호 일찍들 자.
인상, 봄 (머쓱)네...(들어온다)
인상 노친네, 괜히 들어와가지구,
봄 난 좋은데?
-둘, 책상 위 주섬주섬 치운다.
인상 인정 받아서 좋아?
봄 그거 싫어할 사람이 어딨어...꿈만 같애. 진짜 힘든 일 많았는데.
인상 (멈추고 본다)언제가 젤 힘들었어?...
봄 (짐짓 웃음)
인상 (미안해)
봄 (웃으며 글썽)
회상. 봄의 방. 지난 해 5월.
-놀라 글썽이는 진애, 경악한 누리.
-여고생 봄, 눈물만 뚝뚝. 책상 위, 두 줄 표시된 임신 테스터.
-진애가 봄의 손 잡으며 묻는다.
진애 우리 다 진정하자. 진정하구, 엄마가, 물어보께? 어, 언제 그랬니. 얼마나 됐어?...
봄 9주...
누리 그동안 몰랐단 말야?!
진애 (봄의 손 힘주어 잡는다. 덜덜)가자, 엄마랑, 병원에,
봄 갔었어...(주머니에서 초음파 사진 꺼내 보인다)
-초음파 사진을 든 진애 손이 덜덜덜.
누리 (울먹)야...아직, 그냥, 올챙이,
봄 못하겠어. 낳구 싶어.
-바닥을 짚으며 무너지는 진애, 누리도 선 채 이마를 짚고,
봄 (안간힘. 울음 참으며 또박또박)인제 곧 얼굴 생기구, 눈이랑, 손가락, 막 나온대. 확인서 내구 신청하면, 한 달에 15만원 쯤 지원해준대.
형식 뭐라는 거냐, 지금?
-세 모녀 돌아보고, 문간의 형식, 분노로 하얗게 질려
형식 누구냐.
봄 (삐질, 울음 터진다. 어린애 모드)나쁜 애 아냐, 아빠. 우리 사랑해서 같이,
누리 그게 무슨 사랑이야! 불장난이지!
형식 어떤 놈이냐고!
진애 여, 여보, 앉아봐요, 누리 너두, 겁주지 말구,응? 찬찬히, 찬찬히, 실은 나두 누리 너, 바로 저기 서 있는 남자랑 혼전 불장난으루,
형식 거, 거, 입 다물지 못해?!
누리 (더 놀라)엄마 지금 뭐라 그랬어?!
봄 (울다 말고)진짜?!
형식 지금 그 얘기 할 때가 아니잖아!
진애 (봄의 등짝을 후려친다)왜 나쁜 거만 닮어, 왜...응?! 난 그래두 스무살은 넘었다!
봄 (다시 운다)그때까지 어떻게 참어.
누리 단속을 했어야지!
봄 했는데 실패했단 말야...엉엉엉...
형식 (흐흐흑)
봄 아빠, 제발 울지 마...
형식 니 청춘이 아까워서 그러지, 임마...최소 강금실인데...
-누리와 진애도 망연자실, 탄식과 눈물. 온 가족이 흑흑, 엉엉.
접견실. 밤. 현재.
-인상이 봄을 감싸 안고 서 있다. 말없는 위로와 격려, 맘껏 받아주는 봄.
침실. 밤.
-침대 위 정호와 연희. 각자 골돌.
-사이.연희가 정호를 휙 돌아본다.
연희 여보,
정호 어,
연희 쟤만 붙으면 어떡하지?
정호 (심각)그러게.
연희 (벌떡 앉는다)안되는데.
8부 끝.
8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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