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3회
(무철) 돈 많은 동생이 생겼다고?
옆에 여자냐?
네가 급하긴 급했나보다 사기까지 치고
근데, 걔가 과연 78억이나 되는 돈을 쉽게 줄까?
근데 수야, 만약...
걔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
[지하철 들어오는 알림음]
[지하철 안내 음성]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이 역을 통과하는 열차입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나한테 온 목적이 돈이면
그 돈을 얻어 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지하철 경적 소리]
지금이야
지하철이 오면
내 등을 밀어
[지하철 경적 소리]
(오영) 지금이야
지하철이 오면 내 등을 밀어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
[지하철 달리는 소리]
[지하철 경적 소리]
(오수) 살고 싶어하는 내가 죽고 싶어하는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분명 너무도 다른데
왜였을까, 그 순간
난 그 여자가 나 같았다
처음으로 그 여자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영이가 왜 그 사람이랑 있어? 너랑 안 있고?
수를 그 사람?
뭐야, 순하게 생겨서 이중 인격자처럼
아유, 우리 왕비서님이 영이 때문에 걱정돼서...
영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고 했지!
(혜지) 그게 누구도,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아니, 걔가 남도 아니고 오빠잖아요
- (매니저) 뭐 해? 들어가! - 아, 왜? 자기가 엄마가?
비서면 비서답게 행동을 하든가 괜히 아를 잡고 난리고
아니, 그럼 오빠가 나타나서 동생이랑 얘기 좀 한다는데 얘가 안 된다 그래요
말 삼켜!
당신한테 맨날 '네네네' 하니까 우리가 만만해요? 웃겨, 아주
어디 남의 장삿집에 와서 소리를 버럭버럭!
우리 영이 아니면 당신 볼일도 없어
나 역시 그렇죠
영이 안전을 나랑 똑같이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면
내가 자기들한테 돈을 빌려 주고
돈을 주고
그런 호의를 베풀 이유가 없잖아
마지막 경고야, 행동 똑바로 해
왕비서님, 왕비서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저 여자가 지금 뭐래노? 돈을 빌렸다고?
그래! 인태 때문에 카페 담보로 돈 빌렸다, 왜?
- 아, 왕비서님, 나 어떡해 - 야! 니 죽을래!
- 왕언니 삐졌어, 이씨! - 야, 심중태!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만 돈인가? 지도 돈이면서
친구도, 왕비서도 동네 오빠도 돈?
천지 사방, 주위 사람이 전부 돈
- 왜? - 너랑 지하철은 다시 안 타
지하철 타자는 말 하지 마
왜 안 밀었어?
나 같으면 밀었을 건데
입 다물어, 그리고 말 조심해 혼나기 전에
- 어떻게 혼낼 건데? - 한 번 더 밀어달라 그럼 밀어서
죽고 싶단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천만 번 죽고 싶어도 살아지면 사는 게 인생이야
- 말 조심해 - 그 말은 너도
죽고 싶었을 때가 있었단 말로 들린다
언제?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
묻잖아, 언제였냐고?
지금 이 순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이
21년 만에 이 오빠를 만나서 기껏 바라는 게
죽여 달라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저번 날 네가 그랬지
21년 전엔 눈이 멀쩡했던 네가
지금은 눈이 아픈 걸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미안했다
내가 있어도 넌, 어쩌면 별수 없이 눈이 아팠겠지만
그래도 미안해
오빠가 너무... 늦게 와서
[잔잔한 음악]
- 밥맛 없어요, 그냥 자고... - 9시 방향에서 3시 방향으로
(혜지) 장조림, 고사리나물, 송이 볶음 육전, 콩나물 냉채
- 밥 안 먹을 건데 - 김치가 놓여 있다
- 국은 깔끔하게 무를 채 썰어 된장... - 놔두죠
(오수) 안 먹겠다는데 억지로
손님이면 손님답게 있다 가세요
난 영이와 21년을 살았습니다 오빠분은 어려서 고작 6년이지만
주제넘다 생각하시나요?
주제넘으신 건 아니죠 제 법정 대리인인데
법적으론 오빠보다 한 수 위에 있지
영이의 심리적, 물질적 법정 대리인으로서 부탁드립니다
영이를 안전하지 않은 곳에 데려가지 마세요
오늘처럼 다시 한번 더 애가 다치는 날이면
- 당신을 강제적으로라도... - 장 변호사님
(전화기 너머 장 변호사) 어, 영이야
법정 대리인을 바꿀 수 있나요?
뭐?
그거야 네가 원하면...
- 근데 왜? - 그렇군요
제가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연락드릴게요
법정 대리인을 다른 말로 바꾸면 일개 고용인이죠
(오영) 언제든 자를 수 있는
하지만 전 왕비서님을 좋아해요
지금 왕비서님이 오빠한테 이러는 이유도
- 난 영이 널 위해서... - 날 위한다면
제발 지금 그 입 닫아요
[발걸음 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야, 완전 살벌, 영이 기집애 완전 재수
(진성) 21년을 키워준 엄마같은 사람한테 뭐? 일개 고용인?
내가 지금껏 왕비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완전 터닝
와, 싸가지, 싸가지 진짜...
- 잘됐네 - 뭐가 잘돼? 애가 싸가지가 없다니까
싸가지 없는 애 등쳐먹는 게 낫지 싸가지 있는 애보다
안 그래? 그리고 영이가 이 집안에서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건
그만큼 나한테 넘어올 확률이 높다는 거지
너랑 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사태를 이렇게만 두고보면 안 됩니다
오빠 오수가 재산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영이를 위해서만 집에 들어왔다고요?
피엘 그룹이에요 수천 억의 자산이 있는!
- 지금 순수를 믿는 건 어리석고 유치 - (장 변호사) 언제부터...
순수가 유치가 됐나?
먼저 갈게
왕비서님이 본부장님을 회장으로 밀기 위해
- 오 회장님까지 죽음으로 내몰면서 - 말 조심해
회장님 자연사야
[노크 소리]
[문 열리는 소리]
잠이 안 와
들어와
저 그림은 저기에 왜 있는 거야?
시각장애인 방 안의 물건은 안전하게 모두 발 밑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그 방향을 인지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손에 든 사진, 자리에 놔
[액자 놓는 소리]
근데 너 왕비서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너한테 엄마같은 사람인데
내가 싸가지가 없나 보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거나
왜? 그 사람이 널 힘들게 해?
겉으론 잘해주지만 내가 알지 못 하는 뭔가가 있나?
내가 알아서 해, 신경 꺼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난 이 책의 이 대목이 맘에 들어
'어떤 시간은 지독히 무겁고 길며'
'어떤 시간은 가볍고 짧다'
'그리고 때때로 전후가 바뀌거나'
'심할 때는 완전히 소멸되기도 한다'
(오수) 이 집은 나랑 같이 사는 형 네 집이야
그다음 대목이 뭐였더라?
[헛웃음]
- 기억이 안 나네 - (오영) 일 년 전에
내가 만난 그 남자
혹시 너?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네 목소리 분명히 어디서 들은 것 같았어
[책을 탁 던지는 소리]
상상력하곤, 심심해?
(오수) 아님 내 동생이 혹시... 걔가 맘에 들었나?
니네 정안인들은 보이지 않는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하지
아니, 우린 눈이 없는 대신 귀가 있어
네가 말할 때마다 어미의 끝이 너무 힘이 들어간 게 난 걸려
네 생각을 강요받는 느낌이거든
이를 앙다무는 습관이 있지, 너?
생각이 많단 증거지
내가 어떤 말에 자극받을까 내가 어떤 말을 좋아할까
끊임없이 잔머리 굴리지, 너?
[오수가 박수치는 소리]
맞아, 난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
네가 내가 하는 말이 모두 맘에 들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
[탁 치는 소리]
[약간 극적인 음악]
(오수) 그래서 네가 날 믿고
닫힌 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면
난 뭐든지 할 작정이야, 왜?
그러면 네가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거든
의심이 들면 의심해
근데 너무 오래는 하지 마
이런 의미 없는 목걸이 말고
나한테 주기로 한 건 다른 게 있지 않나?
네가 떠나는 날 나를 다시 만날 때
반드시 그걸 사가지고 오겠다면서 갔는데
설마 우리가 한 그 약속이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지?
내 약혼자 이 본부장은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며
나보고 너한테 맘을 다 주지 말라더라
설마 네가 가짜일까 싶지만
나도 확인을 해야겠어서
네가 나한테 약속한 그걸 가져와
내가 울면 네가 날 늘 그걸로 달랬잖아
너랑 나랑만 아는 추억은 조작할 수 없으니까
그걸 가져오면 내가 널 믿어줄게
짜식, 의심도 많지
얼렁뚱땅 넘어가진 못할 거야
(진성)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 왜요? - 저 속옷이 없는데
아, 그거 좀 있다 갖다드릴게요
[탁 떨어트리는 소리]
- (명호) 왕비서님께 말씀하지 마세요 - (아줌마) 네,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발소리]
김 부장, 난데, 오빠 오수 유전자 감식할 검체를 확보했어
(명호) 영이 혈액 샘플 뽑았던 우리 회사 병원에 3일 후 유전자 감식 예약해 둬
아니야, 내일 양주 컨퍼런스 갔다가 병원에 직접 갈 거야
그게 마음이 놓이겠어
(명호) 어
[한숨 쉬며] 어우, 씨
이제 우리 어떡해, 형?
맞다, 형, 내가 지금 차로 가서 박으면 되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내가 지금 차로 뒤따라가서 박을게
- 그러다 너까지 다치면? - 그럼 뭐 방법이 있냐?
어, 희선아, 너 지금 어디야?
제가 늘 강조하죠
우리 플로리스트는 그냥 꽃집하는 아가씨나 아저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린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곡식 한 알도 정성스럽게 다루는 농사꾼같은 마음으로 꽃을 만진다면
위로와 희망이 넘치는 작품이 나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수강생들) 수고하셨습니다
어쭈, 잘 뛴다, 너, 많이 컸다!
아씨, 열라 빨라, 진짜
아우, 진짜 이런, 씨...
(희선) [한 대 치면서] 아유, 그냥
아이, 진짜...
[멋쩍은 웃음 소리]
- 언니야 - 응?
나 딱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한 번만, 다신 언니 지갑 손 안 댈게
응? 한 번만
내가 진성이랑 착한 네 엄마, 아빠만 아니었어도 내가
아니었으면 나 벌써 죽었지 나도 알아, 이 일진 언니야
그러니까 나 딱 한 번만 봐주라
지금 당장 나 대신 샵 들어간다 뒷정리하고 나올 때까지 가게 본다
네, 씨이
어, 진성아, 가고 있냐?
(희선) 네가 먼저 그 집으로 가면 그 집 다락으로 가
거기 가면 구석에 검은 봉지 있거든?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네? 옥탑방 도배하는데요
저기 다락에 있던 물건들은?
그거 다 버렸죠, 좀 전에 쓰레기차가 다 가져간 것 같은데
아저씨! 아저씨, 스탑!
[차 경적 울리는 소리]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
(희선) 아, 음식물 분리수거도 모르나
벌받으려고 먹을 거 죄다 버리고
(희선) 에비! [진성 놀란다]
눈 찢어진다
저 배신의 아이콘같은 기집애
(진성) 암튼 너, 나중에 봐 내가 그냥 가만 안 둘 거니까
네가 나 사랑하는 거 알거든?
너에 대한 사랑 내가 곧 정리할 거거든
[쓰레기 봉지 뒤지는 소리]
- [환호하면서] 와, 찾았다! - 찾았어? 어머, 와! [다 같이 환호한다]
어휴, 이뻐
[살짝 뺨 때리는 소리]
남의 집 살이, 힘드네, 정말
[살금살금 걸어가는 소리]
[놀라는 숨소리]
[다급한 발소리]
쟤, 쟤, 쟤 [버벅대면서]
영이, 영이가 눈이 보여, 형 영이가 눈이 보여!
[막대기 탁탁 치는 소리]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똑똑히
저, 저 음흉한 게 불을 껐다고 진짜로
만약 쟤가 눈이 안 보인다면 불이 켜진 지 어떻게 알겠어, 그래, 안 그래
- 그냥 우연히... - 우연 좋아하네
벽을 잡고 걷지도 않았다고
처음에 스위치를 그냥 지나쳤다가
불 켜진 거 보고 다시 와서 벽 쪽의 스위치를...
(진성) 아오
(진성) 아이 씨 [짜증 내면서]
형, 영이 저게 혹시 다 보이는 게 아닐까?
어쩜 저게 우리가 가짜라는 것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백화점에서 내가 본 건?
그러네
근데 쟤는 이 밤에 어딜 가는 거야?
혹시... 금고?
[막대기 탁탁 두드리는 소리]
[어깨 두드리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 넌 잠도 없냐? - 쟤 왜 안 죽여?
동생이 죽음 유산 상속은 당연히 오빠잖아
혹시 쟤 여자로 느끼냐?
설마 인간적인 고뇌?
- 네까짓 게 - 설마
인간적인 고뇌? 나까짓 게?
쟤를 죽임 돈이 나온다고?
쟤가 사고사면 경찰이 사고 뒷조사를 할 거고
그러면 내 신상이 들통날 텐데
(오수) 그건 어쩌고?
쟤 주변에 똑똑한 그룹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사후감식도 없이 오빠라고 78억을 덜렁?
그러냐?
역시 넌 머리가 좋아
벌써 그런 계산을 다 했단 얘기네
안 할 리가 없지
나같이 악랄한 놈이, 안 그래?
희주가 죽고도 뻔뻔스럽게 밥 처먹고 잠 자고 숨쉬고
사는데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남이야 오죽할까
내가 살기 위해 어떤 짓도 해, 난
난 그럼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문 열리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의자 덜컹거리는 소리]
"여권- 오수"
[차가 끼익 서는 소리]
뭐야, 늬들, 차 가는데 찻길에서
눈이 멀었나, 이것들이
뭐라는 거예요? 여기 길도 넓은데 그냥 가면 되지, 왜 우리한테...
죄송합니다, 전 시각장애인이에요
아, 그렇구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시구나
어쩐지
아가씨, 세상 무섭습니다 조심히 가요
[차 출발하는 소리]
(미라) 영이야, 가자
[문 열리는 소리]
[책 황급히 접는 소리]
[옷장 문 닫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종이 접는 소리]
아줌마가 바빠서
빨랫감들을 챙기러 왔어요
[옷 부스럭거리는 소리]
식사해요
[문 닫히는 소리]
[문자 수신음]
[긴장감 넘치는 음악]
근데 영이야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진성) 넌 다 안 보여? 하나도? 전부?
왜 가끔 조금씩 보이는 사람도 있잖아 아주 흐릿하게라도
영화에서 보면 그렇던데
영이는 전맹이에요 아무것도 못 봐요
그럼 내가 어젯밤에 본 건 뭐지?
그제인가, 암튼 네가...
거 뭐랄까, 그래, 나랑 눈이 딱 맞는 느낌이 들었잖아, 웃기게도
그래서 난 네가 뭘 좀 보나 싶어가지고
- 근데 괜히 모른 척 우릴 속이는 건 - 진성 씨
그만해요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무례하게 느껴지네요 왕비서님이
뭘 찾으셨나요? 제 방에서
[긴장된 음악 흐름]
(오수) 여권, 주민등록증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면허증, 그리고...
아버지의 기사들
[책 떨어지는 소리]
어머니가 혹시나 해서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를 만나 해주셨다는 친자 확인서
[종이 떨어지는 소리]
이것들이 아니면
혹시 이거?
[종이를 탁 내던지는 소리]
지금 식사하실 기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저랑 좀 나가실까요?
(혜지)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영이가 눈이 안 보이고 나서 내 마음도 닫혀버린 것처럼
영이 나한텐 까탈스러웠지만 밝은 애였어요
친구들도 잘 사귀고
근데 눈이 안 보이고 나서 모든 게 변했죠
영이가 부잣집 애니까 친구들이 대놓고 왕따는 안 시켜도
영이가 아끼는 인형을 가져가고
더 커서는 돈, 가방, 반지, 목걸이
술을 먹이고 외박을 시키고
외박이 나쁜 건가요?
나이 스물 넘어 술 마시는 게 어때서요?
- 영이는 시각장애인 - (오수) 그러니...
시각장애인인 영이는
집구석에 가만히 틀어박혀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붙박이 가구처럼
처박혀 살아야 한다?
세상이 위험하다면 제가 옆에 있죠
세상에선 저, 집안에선 왕비서님
우리의 역할 분담은 그렇게 끝내죠
그럼 전 영이랑 외출 좀 하겠습니다
- 우리가 아직 서먹해서 - (왕비서) 미안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역할 분담을 끝낼 만큼 전 오빠분이 미덥지가 않네요
[전화벨이 울린다]
어, 이 본부장
뭐? 오늘 온다고?
자네 컨퍼런스 간 거 아니야?
뭐? 유전자 감식?
[긴장감 흐르는 음악]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오수 씨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요
(명호) 비밀리에 하는 거라 안 새어나갈 겁니다
잘했어
어, 희선아, 따라 붙었어?
당근 따라 붙었지
거래처 흉내 내서 출장 간 이명호 호텔 알아내서 잠복근무 서고
이제 막 고속도로 진입 진성이는?
지금쯤 회사 병원 앞에 가있을 거야
혹시나 해서 24시간 가있으랬어
머리는 죽이게 빨라
- 수고하자 - 어
너도 영이가 준 수수께끼 잘 풀어 화이팅!
수야!
저기 혹시... 수니?
(중태) [크게 웃는다]
맞구나!
이 동네에서 못 보던 사람이라 혹시나 하고 불러본 건데
나야, 임마, 한 때 너의 정신적 지주, 중태 형 [밝게 웃으면서]
(중태) 반갑다
뭐? 네가 유언장을 써?
왜? 전 그런 거 쓰면 안 돼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제가 만약 오빠에게 모든 유산을 넘긴다는 유언장을 쓰고
- 법정 대리인을 오빠 오수로 바꾼다면 - (왕비서) 오수 씨는...
법정 대리인이 될 수 없어
네가 그룹 회장 직을 대행할 수 있는 이유는
주주총회에서 내가 네 법정 대리인이 되는 걸 승인했기 때문이야
지난 21년 동안 나는 네가 내 딸이었는데
너는 내가 여전히...
아버지의 정부, 비서, 간병인 보모...
그리고 일개 고용인밖에 안 되는 거니?
[기막힌 한숨]
왕비서님 말만 들으면 제가 정말 나쁜 애네요
21년을 엄마처럼 보살펴준 사람을
고작 그렇게 대접하다니, 그렇죠?
- 이 집안의 재산이 탐이 났다면 -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죠
왕비서님 능력이라면
저도 알죠, 왕비서님의 능력
전 왕비서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회장 직을 대행할 수도, 회사 주식을 처분할 수도, 그 어떤 것도
(오영) 왕비서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다는 것도 알죠
그리고...
절 이렇게 무능하게 만든 사람이
왕비서, 당신이란 것도 전 알죠
[긴장감 흐르는 음악]
아빠가 자연사라고요?
그걸 내가 믿을 것 같아요?
- 영이야, 임마! - 놔둬요
뭐라고 하는지 듣게
내 눈이 뇌종양 때문이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내가 그걸 정말 다 믿는 것 같아요?
영이 얘가 뇌종양이라고요?
[긴장감 넘치는 음악]
아줌마, 눈이 이상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안 보여, 아줌마
(왕비서) 저보고 이제 와 이 집을 나가 새 인생을 시작하라고요?
아뇨, 제 새 인생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어요
영이가 절 왕비서가 아닌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제 팔을 잡았던 바로 그 순간
전 분명 보모가 아닌 엄마였어요
[잔잔한 음악]
(왕비서)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피아노의 주인이 부럽지 않았죠
영이가 유언장을 못 쓰게 해주세요
오수 씨가 재산이 아니라 진짜로 영이 생각해서 여기 왔단 판단이 들면
그땐 제가 여기를 떠날 거니까
그때까지만
놀랬나보다
뭐? 유언장?
그래, 유언장 어떤 이유로든 내가 죽으면
아무런 조사 없이, 이유 불문 내 유산 전부를 널 주겠단 유언장을 쓰겠다고
단 조건은 네가 날 죽여주겠다는 약속
어때? 내 거래가 맘에 들어?
좋아, 써, 유언장
죽여줄게
넌 계속 날 의심하고 시험하지
내가 아무리 널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온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널 위해서라고 말을 해도
넌 끊임없이 내가 너한테 돈 때문에 왔다고 믿지
- 그래 - (오수) 그럼...
유언장을 쓰고 나서 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겠네
- (오수) 그렇지? - 그렇지
짜식, 너 웃긴다, 진짜
그딴 유언장은 쓰지도 못할 거면서 말만...
- 그럴까, 과연? - 그만
쓸데없는 말 말고 오늘은 오빠랑 계획대로 신나고 화끈하게
- 오케이? - 내 숙제는 풀었어?
왜 안 가져와?
애가 타나보다, 응? 이야, 재미있네
- 피하는구나 - 마음대로 생각하셔요
(오수) 영이 얘가 뇌종양?
그럼 그게 재발되면?
[신나는 음악]
[사람들 환호]
[탁 치는 소리]
[사람들이 크게 환호한다]
무서워?
죽길 각오하는 마음은 뭐고 무서워하는 마음은 또 뭐야?
[탁 치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많아
(오수) 내가 이제 널 뒤에서 안을 거야
죽기 살기로 이 음악을 느껴봐 봐
안을게, 널 보호해야 하니까
[사람들의 환호성]
입은 내가 앙다무는 게 아니라 네가 앙다물고 있어
그냥 편하게 내 팔을 놓고
나한테 기대서 음악을 들어 봐
[사람들의 환호성]
괜찮아, 오빠가 있잖아
그래, 여긴 사람이 너무 많다
가자
[사람들 환호성]
[탁, 총 쏘는 소리]
맞았어?
너무 멀어
[탁, 총 쏘는 소리]
(여자) 와, 맞았다! 자기 완전 잘해!
옆 사람은 맞았나 본데?
저 사람들은 못생기고 흔해 빠진 인형
난 널 위해 아주 작고 예쁜 풍경을 맞출 거야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는
[탁, 총 쏘는 소리]
[총 던지는 소리]
여기요, 한 발 더요
나도
나도 쏠래
좋아
(오수) 자
조준은 내가 하고 쏘는 건 너
방아쇠 잡아 봐
- 이렇게 당겨? - 그렇지, 그렇지
자, 그럼 어디 해보자
안 맞아도 실망 말고
조준 됐고... 땡겨!
[탁 소리 나며 떨어지는 소리]
- 와 - 맞았어?
맞았어
진, 진짜?
[오수 웃음 소리]
- 진짜 맞았어? - 응! [다 같이 웃으면서]
(사람들) 왼쪽, 왼쪽요!
- (사람들) 왼쪽! 왼쪽요 - 오른쪽!
- (사람들) 아뇨, 왼쪽요 - (사람들) 왼쪽이에요
- (사람들) 좀 더 오른쪽 - (사람들) 왼쪽
- (사람들) 왼쪽으로요 - (사람들) 오른쪽
- 영이야, 오른쪽, 오른쪽 - (사람들) 아니에요, 왼쪽, 왼쪽
(사람들) 왼쪽으로요!
한겨울에 이런 오락은 옳지 않아
- (사람들) 왼쪽, 왼쪽! - (남자1) 확 튀겨!
[풍선 터지는 소리]
[사람들 손뼉 치며 환호하는 소리]
(사람들) 왼쪽!
[사람들 환호 소리]
[사람들 손뼉 치며 환호하는 소리]
(오수) 제 동생은 눈이 보여요 분명히 눈이 보여
(오영) 어디 있어? 얼굴 닦아줄게
아니, 괜찮아
감기 들어, 닦자, 가만히 있어
[잔잔한 음악]
[차 문 잠그는 소리]
[긴장감 있는 음악]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요 시원하게 볼일 보세요
[부딪히며 종이 떨어지는 소리]
- 이 사람 진짜 - 미안합니다
저기요! 저기요!
[급히 달리는 발소리]
(명호) 저기
서류 봉투가 바뀌었네요 그쪽이랑 저랑
[희선이 콜록, 기침]
- 무슨 그런 말씀을, 이거 내 건데 - 아뇨, 그쪽에서 가져간 게 제 겁니다
보시죠, 서류 봉투에 저희 회사 로고
이건 로고가 없죠?
[서류를 탁, 준다]
(의사)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오늘 안에 될 겁니다
네
엄만 왜 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을까?
보러 오려고 했지
'나중에'
내가 널 보러 가자고 하면 엄만 늘 그랬지
'나중에'
'나중에'
엄마도 몰랐겠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
몰랐어, 엄마도
결과는?
(명호) 무슨 일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결과가 너무 늦으면 내일 회사에서 만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무거운 음악이 흐른다]
[열쇠, 자물쇠 달그락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막대기 탁탁거리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문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문 세게 닫는 소리]
[문 드르륵 열리는 소리]
[삐걱하는 소리]
[잔잔한 음악]
(영이 엄마) 영이야, 엄마 봐봐, 수야, 엄마
수야, 엄마
영이야, 영이야
영이야, 오빠가 귀여워서 그래 우리 영이 너무 귀여워서
알았어, 엄마가 안아줄게
♪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
♪ 다정하신 모습으로 ♪
(오수2) 엄마, 이렇게 찍으면 돼? 이렇게?
가위, 바위, 보!
영이야, 엄마 봐봐, 엄마
수야, 엄마 봐야지, 엄마
- (오수2) 엄마, 빨리 와! - 빨리!
빨리 와, 엄마!
- (오영) 빨리 와! - 빨리 와, 엄마!
[서럽게 우는 소리]
엄마! [울먹이면서]
나 영이야
이 방 엄마 거라고 들어오지 말랬는데
[서러운 울음 소리]
들어왔어,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지 마
엄마랑 아빠 이혼하지 마
내가 엄마 말 안 들었으니까
[서러운 울음 소리]
집에 와서 나 좀 혼내줘
응? 엄마!
엄마! [서럽게 울면서]
[서럽게 흐느낀다]
지하철이 오면 내 등을 밀어
단 조건은 네가 날 죽여주겠단 약속
엄만 왜 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을까?
(오영) 엄마! [서럽게 울면서]
나 좀 혼내줘!
풍경!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왔습니다
[종이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막대기 부딪히는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발소리]
[달칵 소리]
[계단 내려오는 발소리]
[달랑, 벨소리]
누구야?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
(왕비서)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희선) 같이 꽃 심을래요?
- 들어가고 싶어 - (오수) 도와줘, 해봐
도와줘
(오영) 쟤 언니랑 사귀었어?
(희선) 우리 언니 죽을 때 네 오빠 오수가...
(오수) 영이랑 친해지는 게 지금은 무엇보다 우선이야
내 눈에 즐거운 건 이유가 안 돼
(오영) 네가 즐거워?
- 여기가 오수 씨 댁인지요? - (무철) 오수? 어떤 오수?
(무철) 피엘 그룹 오수? 아니면 사기꾼 오수?
형 지금 거기서 나와 중태가 형 상처 위치 정확히 알아
거기서 빠져나와, 형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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