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펫 시나리오
건물 안과 밖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들. 그들의 이야기에 따라 각 장면들이 교차된다.
다양하게 컬러(color)로 보이는 배경풍경과 달리, 사람들은 역광 속에 있는 것처럼
그림자 실루엣으로 보인다.(실크스크린 기법과 같은 이미지)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여자(지은이). 좀 떨어진 거리에 작고 여린 느낌의
여자가 남자(김정석)의 품에 안겨있다.
마주보고 서있는 두 사람-지은이의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서있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김정석, 지은이보다 작은 키가 확연히 보이고 어느 정도 주눅든 구부정한 모습이다.
김정석(과거 남)
넌 나보다 학벌도 좋고, 돈도 많이 벌구, 키도 크고…
나보다 잘난 여잔 부담스러워.
그녀가 더 편해… 내가 보호해 줘야 할 거 같구…
넌 남자 없이도 잘 살 여자잖아…
CUT TO
모여 있는 사람들. 수다를 펼친다.
수다1
정말 평범한 남자한테 차이더라니깐-
수다2
그러게, 자기보다 잘난 여자 감당 할 남자가 몇이나 되겠어?!
국장한테 개기다 패션지로 옮긴 거라며?
CUT TO
지은이, 한 팔을 쭉 펴서 강한 펀치를 앞에 있는 남자(국장)에게 날린다.
CUT TO
국제부 부장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지은이를 향해 감정 폭발하듯)
니 머린 폼으로 달구 다녀?! 술자리에서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구 국장 눈탱일 시퍼렇게 만들어놔?!
직장생활 몇 년째야?! 융통성은 밥 말아 먹었어, 너?!
CUT TO
수다3
사실 쌤통이다 싶지 않아?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그런 여잔 왠지 괜히 얄밉잖아-
수다4
맞아. 잘난 여자가 꼭 행복한 건 아니지.
그 잘난 것 때문에 되려 혼자 꿋꿋이 버텨야 하구-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어두운 거실이 썰렁해 보인다. 지친 모습의 무거운 걸음으로 들어오는 지은이,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축 늘어지며 엎드린다. TV 리모콘을 깔고 앉았는지 TV가 켜진다.
방송을 하지 않는 TV 화면의 흔들림과 ‘치지직‘-계속되는 소음만이 들린다.
TITLE & TOP CREDITS : OPENING THEME SONG이 흐르는 가운데, 아래 묘사되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1 EXT. 거리 – DAY (아침)
빈 공간-거리(도로,인도)의 윤곽선이 그려지면서, 거리에 따라 높이가 서로 다른 빌딩들이 솟아 오르면서 공간을 채워간다. 각 빌딩에 여러 프랜차이즈(스타벅스, 킨코스, 맥도날드,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센터, 24시간 편의점… 등)의 간판들이 붙여진다.
아침 러시아워 교통체증,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빠르게 메워지는 서울 거리 전경.
아침 전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서울의 곳곳을 시원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강인호- MP3
헤드셋, 레이어링 된 옷차림, 스포츠타입 선글라스, 근사한 자전거를 탄 모습이 거리에서
시선을 끈다. 강인호, 막 ‘커피빈’ 앞을 지나고 있다.
2 INT. 카페 – DAY
바쁘게 움직이는 가게 안. 계산대 앞에서 음료쿠폰북을 내밀고 점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무실 Assistant 김미성이 보인다.
김미성
분명히 전에 하나 덜 찍어줬다니까요. 채워주세요~, 네?
종업원
(친절한 미소, 그러나 냉정한 어조)
죄송합니다, 손님.
그 때 뒤에서 손이 내밀어지더니, 정확한 액수의 돈을 점원 앞에 놓는다.
지은이(O.S.)
바닐라 더블 샷!
김미성, 뒤돌아 본다. 반갑게 인사하는 김미성. 두통이 있는지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있는 지은이, 다른 손을 들어 기운 없이 아침인사를 건넨다.
짙은 남색 스트라이프 바지정장 차림, 시선을 모으는 액센트를 준 목걸이를 하고, 각종
신문과 잡지가 든 사각 가방과 핸드백을 든 지은이, 도도함과 정도를 풍기는 분위기로
가게 안에서도 눈에 띄는 모습이다.
3 INT. 사무실 빌딩 LOBBY / 엘리베이터 - DAY
여러 커피잔을 담은 받침대를 들고 있는 김미성, 지은이와 엘리베이터로 향해간다.
김미성
차라리 애완동물이 낫죠?! 남친한테 돈 쳐바르는 건 불확실한 투자에요.
(엘리베이터 앞)
정성을 들이면 뭐해요, 나중엔 궁시렁 거리며 배신이나 때리구,
헤어진 지 언젠데, 그 놈한테 쓴 카드 할부 값이 계속 날아오지,
정말이지 그때마다 꼭지가 돈다니까요!
우리 삐삐는 달라요. 제 삶의 안정제이자 활력소랄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파이팅 동작을 보이며)
그 녀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지- 아자!
김미성의 얘기에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 몇 명은 어색한 표정이 역력하다.
4 INT. 잡지사 사무실 / 여성 월간지(Lifestyle Fashion Magazine) – DAY
한 직원이 컴퓨터로 라디오 볼륨을 높이자 프로그램 DJ의 멘트가 들려오면서 사무실 전경이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라디오 DJ(V.O.)
애인과 애완동물, 펫(PET)의 공통점은 뭘까요?
같이 놀아줘야 되구, 온갖 것을 사다 바치며 뿌듯해 합니다.
그러나, 애인은 날 배신할 수 있지만,
펫은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날 떠나지 않죠!
남편과 펫을 한 번 비교해 볼까요?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면, 남편, 화를 내거나 벌써 자고 있죠.
하지만, 펫은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반깁니다!
그럼, 남편과 펫의 공통점은요?
바로, 어느 정도 정이 들면 내다버리기 힘들다는 겁니다.
인간은 결국 혼자일 수 없으니까,
애인, 남편, 혹은 펫이 하나라도 꼭 필요하겠죠? 그래서,
오늘도 우린 옆에 둘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
자료들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있는 책상, 화려한 패션, 뷰티 관련 화보로 장식된 벽.
창가 한쪽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여직원들. 김미성, 그들에게 심부름해온 커피를 돌린다. 여자들, 맞은 편 빌딩 사무실에서 와이셔츠를 갈아입고 있는 남자를 감상하느라 정신 없다. 감탄사와 품평회가 이어진다. 여직원들과는 다르게 별 관심 없는 듯, 자리에 앉아 자신의 모니터만을 보며 일을 시작하는 지은이. 바로 울려대는 휴대폰을 받는다.
지은이
엄마?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다.
지은이 모(母)(ON THE PHONE/V.O.)
니 아빠랑 이혼하기로 했다.
5 INT. 사무실 복도 – DAY
지은이
(무덤덤한 목소리)
맨날 결심만 하면 뭐해?
다른 전화 오는데, 나중에 엄마.
네, 아빠!
지은이 부(父)(ON THE PHONE/V.O.)
(조심스럽게)
니 엄마 전화하던?
지은이
뭔지 모르지만, 그 연세에 이혼당하면
아빠만 손핸 거 알죠? 먼저 꼬리를 내리세요.
지은이 부(父)(ON THE PHONE/V.O.)
벌써 오래 전에 잘라버려서 내릴 꼬리도 없다.
CUT TO
휴대폰을 끊고 창가에 기대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지은이, 두통이 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심의 모습이 혼자 서있는 지은이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6 INT. 뮤지컬 / 댄스 오디션 장 - DAY
노래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 경사를 타고 내려와 근사한 마무리동작을 선보인 강인호.
강인호 옆으로 다가가 자세를 잡으려는 여자무용수. 강인호, 망설인다.
무용감독
뭐 해?! 리프트 안 들어가?!
무용감독, 계속 재촉하고, 여전히 주저하는 강인호.
7 EXT. 오디션 공연장 앞 - DAY
계단참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강인호. 가방 하나가 사정없이 내던져지며,
강인호 전 여자친구
그 여자가 죽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아직도 그래?
너,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남자니?! 완전 실망이야.
(어조가 바뀌면서)
방 열쇠 내놔!
8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두통약을 먹는 지은이, ‘딥씨워터’를 얼굴에 뿌리면서 큰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 애쓴다.
다시 울리는 휴대폰. 휴대폰 베터리를 뺀다. 이어서 울리는 사무실 전화.
지은이
네, 지은이입니다.
민지민(ON THE PHONE/V.O.)
야, 내 전활 씹는 거야?!
지은이
(말허리를 자르면서, 지극히 사무적으로)
근무중. 나중에,
민지민(ON THE PHONE/V.O.)
(기회를 놓칠 새라 빠르게)
내 생일인 거 알지? 점심 때 꼭 나타나!
지은이, 피곤한 듯 수화기 내려 놓는다. 옆에 지나가는 서정민을 발견하고,
지은이
서정민씨!
(원고를 내보이며, 지극히 별 감정 없는 말투로)
이 섹션 SUB-TITLE이요.
여기 소유격을 쓴 거 같은데, 그럴 땐 apostrophe 빼고 i,t,s만 써요.
이건 it is의 축약입니다.
서정민
(순간적으로 괜히 무안해서 얼버무리듯)
아, 그런가요?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신 분이라…
지은이
그건 미국공부완 별 상관이 없는 거 같은데요
뭐 흔히 하는 실수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이영은 잽싸게 끼어들면서,
이영은
당장 영어학원 끊어 공부해야겠다.
그런 걸로 지선배에게 지적이나 당하구말이야.
(지은이를 향해)
그렇게 무안 주면 정민씨가 넘 불쌍하잖아요.
전개되는 상황과 반응에 약간 경직되어 황당해 하는 지은이.
9 INT. 빌딩 안 CAFÉ – DAY
다양한 맵시와 외모의 남자들이 타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이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지은이와 친구들. 단정하고 요조숙녀 같은 차림의 비서직 민지민, 자유롭고 개성 있는 맵시의 방송국 피디 김진아, 약간은 통통한 몸집의 유아영은 어린 딸을 챙기고 있다. 테이블엔 작은 생일 케익이 놓여있다. 약을 챙겨먹는 지은이.
유아영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은이를 쳐다보며)
또 위장약 신세니? 두통이야?
민지민
(자기 얘기에만 몰두하며)
엄마랑 싸우는 데도 지쳤어. 좀 있음 재취자리로 밀어낼 기세라니까-
그렇다구 아무 놈이나 잡고 늘어질 수도 없잖아…
이 넓은 세상에, 인구 반이 남잔데, 멀쩡한 남자 찾아 보겠다는 게
무슨 모래사장에서 요만한 큐빅 찾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한숨)
종신보험 들어야 하나?
몸서릴 치는 민지민. 남자들을 열심히 쳐다보던 김진아, 드디어 담뱃불을 끄며 참견한다.
(김진아의 이야기에 따라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 화면 아래에 보여진다)
김진아
결국 쫑 낼거면서, 이놈저놈 만나서 시간 죽이는 거 지겹지 않냐?!
그런 말 있잖아. 남잔 빈 택시 같은 거다-
목 빠지게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그래, 걸어가자‘ 하구 포기하면,
갑자기 여러 대가 무더기로 와 서거든.
순간 어느 택시를 타야 하나 망설이는데, 그 타이밍이 문제야.
까딱 하단 다른 년들이 잽싸게 타고 가버려서 황 된다는 거지.
(지은이에게)
안 그러냐?
지은이
(심드렁하게)
난, 꿋꿋이 걸어갈래.
김진아
또 또 무리한다. 넌 그게 문제야.
그러니 김정석 같은 놈들이 죄다 못 버티고 도망가지-
지은이
(순간 인상 찌푸리나, 곧 태연함을 가장하며)
도망가라 그래- 남자의 그런 열등감, 이제 지긋지긋해.
일에나 집중할래.
굳이 연애 하겠다고 없는 남자 찾아 헤매는 것도 구차하구,
지금부터 나한테 ‘남자’란 나보다 키 크고, 똑똑하고,
돈 더 많이 버는 놈만 인정한다.
지은이의 딱딱한 말투에 각기 다른 얼굴 표정을 보이는 지은이 친구들.
유아영, 화제를 돌리려, 주변을 둘러보고 민지민을 향해,
유아영
브래드 피트 닮았다는 남잔 대체 언제 나타나는 거야?
여기가 확실해?
지은이, 관심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갈 채비를 한다.
10 EXT. 사무실 로비밖/거리 – DAY
두통이 있는지 관자놀이를 계속 누르며 밖으로 나오는 지은이. 누군가 뒤에서,
지은이 국제부기자 후배(O.S.)
지은이 선배님!
고개 들어 옆을 보는 지은이. 빈틈없는 정장차림의 국제부기자 후배, 지나치게 반가워하며
지은이 국제부기자 후배
패션지로 가셨다며요? 너무 재밌겠다.
연예인들도 많이 보고 그러죠?!
부러워요~
지은이
(조심스럽게, 마지못해 묻듯이)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도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두 사람. 국제부 후배, 자기 얘기 하는 데만 정신 없다.
지은이 국제부기자 후배
낼부터 해외출장이요. 빡세게 여섯 나라 돌아요.
국제기관장들 인터뷰 기획인데, 아직도 믿기지 않은 거 있죠?!
선배님이 계셨다면 당연히 선배님 차지잖아요
아, 들으셨어요? BBC랑 타임지랑 엄청 큰 프로젝트 진행한다던데…
(지은이 앞에 다가와 서는 택시를 잽싸게 잡아 타면서)
먼저 갈게요 선배~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어요~
혼자 떠들어 대다, 훌쩍 가버리는 후배. 지은이, 떠나는 택시를 황당하게 바라본다.
11 EXT. 버스정류장 – DAY
이미 한 대의 버스가 손님을 태우고 있다. 또 한 버스가 정류장 끝머리에 서자,
지은이를 비롯해 사람들이 재빨리 버스로 향한다. 하지만, 문은 안 열리고.
순간 앞 차가 출발하자, 앞으로 속도를 내어가 서는 버스. 사람들, 버스를 따라 또 뛴다. 지은이, 지겹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며 한숨 쉰다. 걷기로 결심하고 걸음을 옮긴다.
이때 울리는 휴대폰. 지은이, 무심코 받는다.
대출업체직원(ON THE PHONE/V.O.)
안녕하세요? ‘다가져가 금융’입니다.
고객님~ 필요하신 자금 있으시면, 저희가…
지은이
(참는 듯 심호흡을 하고, 매정하게)
필요한 자금 없습니다!
(눈을 찔끈 감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V.O.)
도시생활은 이게 문제다. 자신을 돌아 보게끔 자극하는 것들이
예고도 없이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난다.
(목소리 톤이 바뀌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다 덤벼 보겠다는 거지?!
12 EXT. 노천 카페(겸 레스토랑) – DAY (늦은 오후)
양영수
무작정 덤빈 거지?
상처 난 강인호 얼굴을 양영수가 치켜들고 있다. 멍든 얼굴, 한 손에 붕대를 한 강인호. 양영수, 새롭게 테이블 세팅을 하기 시작하고, 지은수는 큰 화병에 꽃꽂이를 한다.
양영수(Cont’d)
니가 댄서지 복서냐?!
별 대단치 않는 거에 쓸데없이 무모해져 갔구… 습관되다 병 된다 임마
하고 싶은 거 땜에 쌩고생하는 거야 니 몫이지만…
강인호
(양영수 말허리를 얼른 자르면서, 뜬금없는 화제로)
으-- 스튜디오에서 자는 거 정말 싫은데-
따뜻한 물, 푹신한 침대, 깨끗한 화장실만 있다면,
난 영혼도 악마한테 팔 수 있어.
(장난스럽게 간절한 표정을 만들면서)
누가 주서다 안 키워줄라나…
양영수
니가 길 잃은 개새끼냐? 미리 말하는데, 나한테 빌붙을 생각마!
이참에 얌전히 집에 들어가던지,
그 폼 나는 물건들 팔아치면서 어떻게든 개겨보던가…
강인호
양영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놈! 걔네들은 내 목숨과 같은 것들이라구-
양영수
목숨 참 여러 개다.
지은수
목숨 같더라도 팔 물건이라도 있음 좋겠어요.
빈곤한 고딩은 정말이지… (진저리를 친다)
양영수
돈 잘 번다는 누님 뒀다 뭐하냐?!
지은수
(포기했다는 듯 작업하던 꽃을 내려놓고)
우리 누난, 설날이랑 생일 빼곤 ‘노동’을 해야만 돈을 주는 주의거든요. 집 땜에 대출받고 난리 치더니, 완전 긴축경제래나 뭐래나
(뭔가 심각하게 작당하듯)
쥐도 짱구만 잘 굴리면 고양이 머리꼭대기에 앉을 수 있겠다 싶어
생각이란 걸 이리저리 해 보고 있긴 한데…
강인호
(한숨 내 쉬고, 하지만 멀쩡한 표정으로 독백하듯)
구십만원이면 호텔에서 며칠이나 버티냐?
지은수
(귀가 번쩍한다. 강인호에게 냉큼 다가가 반갑게)
형!
13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중앙에 걸려있는 Yoshitomo Nara의
일러스트레이션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전시포스터.
바닥에 놓여있는 커다란 TV Set, PS2 기기, 조각맞추기 상자가 놓여있는 미니 탁자,
3인용 소파 옆에는 보색 대비가 강한 1인용 소파가 있다. 식탁에 앉아 야식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는 지은이. 지은수, 앞치마를 두른 채 바닥에 앉아 마른 빨래를 개고 있다.
지은이
지은수- 최근에 간이 좀 짜지는 경향이 있다.
지은수
부려 먹는 주제에 불평은!
지은이
‘의견’을 말하는 거야.
그리고, 너! 책 정리할 때 높이 좀 제대로 맞춰서 해.
신경 거슬려.
지은수
(레이스 브래지어를 흔들면서)
이거 빨래할 때 얼마나 신경 써야 되는 줄 알아?!
보여줄 남자도 없으면서, 속옷은 엄청 섬세한 것만 사들여요…
별 반응 없는 지은이, 식탁을 정리하려는데, 벌떡 일어나는 지은수,
지은수
내가 할게, 누나! 5천원!
지은이
외식업체 알바 시급이 4천원인데, 5분도 안 걸리는 설거지에 5천원?
지은수, ‘아이~누나~’-은근이 애교작전을 펼친다. 지은이, 5천원을 꺼내 식탁에 놓는다.
지은수
저, 누나!
지은이
왜 또?
귀찮아지기 시작한 지은이. 지은수, 그 기세에 눌려 뭔가 말하려다 주저한다.
14 INT. 지은이 아파트, 욕실 – NIGHT
눈을 비비며 욕실로 들어오는 지은이, 세수하는 남자의 한쪽 엉덩이를 세게 치며,
지은이
크린징 오일 좀 작작 써 지은수!
상체를 획 일으켜 뒤돌아 보는 남자-강인호. 낯선 남자에 놀라, 엉덩이를 때린 손바닥과 강인호를 번갈아 쳐다보는 지은이. 강인호, 흥미롭게 지은이를 바라본다. 정지된 순간.
15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지은이, 1인용 소파에 근엄하게 앉아 있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지은수-
비굴하거나 약한 구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전개되는 상황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거실 주변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 강인호.
지은수
봐줘라 누나- 피치 못할 사정이라니까- 환자란 말이야, 저 형.
내가 보증하는데 끝내주게 괜찮은 형이야.
지은이
(코웃음을 치며)
남자들이 괜찮다고 하는 놈치고 괜찮은 놈 아직 못 봤어.
왜 나가는데, 넌? 용돈 번다며 여기 들어온 지 며칠 됐다구
지은수
엄마 아빠한테 다시 가야지. 생각해 봐 누나
신경 써야 할 자식이 바로 앞에서 알짱거리면,
부모란 자기들 문젠 뒷전이 되잖아-
이혼 소리도 쏙! 들어가는 거지. 나만 믿어!
지은이
(탐색하듯 뚫어지게 동생을 쳐다보며)
딱 일주일이다!
강인호, 도도하게 앉아 있는 지은이의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다.
16 INT. 편집장실 – DAY
편집장
3개월째야-
여기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원고 뭉치를 테이블 위로 내던지고, 일순 톤이 바뀌며)
보들리야르, 시뮬라시옹은 대체 뭐 하자는 짬뽕이야?!
힘 좀 빼라구. 여자들이 돈 내고 우리 잡지 왜 사겠어?
기분 좋아지려는 거지, 머리에 쥐나게 스트레스 받을 일 있어?!
지은이
제 생각엔,
편집장
(매정하게 말허리를 자르며, 나갈 준비를 분주하게 하면서)
어지간히 생각은 그만 하구- 다시 써와
억울한 소리 듣지 않으려면 더 잘해야 하는 거 알지?!
참, 자기 화보 진행해 봤나?
CUT TO
17 INT. 사무실 회의실 - DAY
이영은
인터뷰나 취재 컬럼이야 지선배 전공이고
워낙 능력 있는 분이니까 그 정도 추가야 잘 핸들링 하실 거 같은데요…
동료1
이번엔 특집이라 저희들 각자 배당도 많구,
서정민
다른 데서 땜 빵 가능 안 하시죠?
이영은
여기 우리 모두 그런 과부화 한번쯤 안 겪어 본 사람 어딨어요?
이럴 때 지선배 실력도 보여주시고,
당사자인 지은이는 가만히 있는 가운데, 서로 공방하듯 빠르게 얘기하는 스탭들.
지은이
제가 하지 않겠다는 말도 않았는데, 왜들 그렇게 애를 쓰세요?!
편집장
좋아, 잘해봐.
모두한테 해당하는 거야-
골백번 말하지만 잘하라구
마감 코 앞에 놓고 교정 수준이 아니라, 내가 직접 다시 하랴?
다들, 뻘쭘한 표정들이다.
18 INT. 회사 화장실 – DAY
서정민(O.S.)
왜 내가 한 팀이냐고? 그 여자 좀 무서운데-
지은이, 화장실 한 칸-양변기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두통이 난다.
이영은(O.S.)
각오 단단히 해- 영어 스펠링 땜에 까탈부리며 면박 주는 거 봐.
언제 어떻게 지적당할지 알아. 지 혼자 완벽해요.
지은이, 두통이 더 심해져 오만상을 찌푸린다. 이영은, 세수를 하고 있는 김미성에게
이영은(0.S)(Cont’d)
자긴 속도 좋다. 그런 일도 있었는데, 그 여자하구 잘 지내네.
(회상) 사무실 - DAY
지은이
(별 감정 없이 사무적으로, 뻘쭘이 서 있는 김미성에게)
계속 날 언니라고 부르는데, 내가 김미성씨 ‘언니’에요?
난 김미성씨 ‘선배’인데 여자인 거 뿐이라구.
BACK TO SCENE
김미성
(대수롭지 않은 듯)
맞는 말인데요 뭐-
전 하나라도 잘난 여자가 좋아요.
뭔가 치열하게 산 거 같은 그런 ‘화~’한 느낌을 주잖아요?!
화장실로 서둘러 들어오던 편집장, 서정민과 부딪치자 달려들면서 때리 듯, 따지듯이
편집장
서정민 이 자식! 너 맨날 여자화장실에서 뭐 하는 거야?!
서정민, 어설프게 변명하며 요리조리 피한다.
19 INT. 보드게임 카페 – NIGHT
민지민
내 말이- 우리가 아직 친구인건
같은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일걸-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지은이 친구들. 아이스크림통을 안고 있는 지은이,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인상 쓰고 앉아 방관하고 있다. 김진아의 담배연기에 계속 손사래를 치던 지은이, 작은 휴대용 가위를 꺼내더니 담배를 싹둑- 잘라버린다.
김진아
왜 이러셔?
(담배와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누구’와 다르게, 난 요것들로 인생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지은이
(소파에 고개를 깊숙이 뒤로 저치고 눈을 감으며)
나름대로 이제 포기할 건 포기했어.
그럼 좀 평온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가슴은 답답하고 머린 찌끈거리고…
민지민
(얼른 끼어들며)
펫 키워보는 건 어때? 우리 사장, 개 키우잖아-
그 영감탱이가 좀 나릇나릇 해졌다니까.
애인도 잘 챙기지 못해 파토나는 니가 펫은 잘 키우겠냐만,
김진아, 얼른 민지민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반응하는 민지민.
지은이, 그제야 자세를 바로 하며 진지하게 나온다. 기분 좋게 뭔가 되새기면서,
지은이
어렸을 땐, 강아지 모모랑 놀고 나면 기분이 좋았었어…
모모한텐 어떤 얘기라도 다 했었는데… 강아지라… 키워볼까?
김진아
하기야 어줍지 않는 남자보단 펫이 낫겠다
적어도 주인님 밖에 모르잖아-
20 SERIES OF SHOTS (휴대폰 <마이 펫>을 하는 지은이. 전반적으로 액정화면만 보인다.)
-“앉아” 지시하면 펫 위로 뜨는 말풍선 “뭐라구요?”
-“짖어” 지시하면 펫 위로 뜨는 말풍선 “피곤해요”
-“주의해” 야단치면 펫 위로 뜨는 말풍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목욕탕으로 펫을 데려가면 펫 위로 뜨는 말풍선 “필요 없는데-”
CUT TO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휴대폰을 향해 고함을 질러버리는 지은이 “이 개새끼가!!”
근처에 있던 사람들, 그 소리에 놀라 지은이를 희한하다는 듯 쳐다본다.
END OF SERIES OF SHOTS
21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거실 – NIGHT
목욕을 끝낸 지은이.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마시며, 김진아와 통화하고 있다.
지은이
도대체가 말을 들어먹어야지-
이건 스트레스 푸는 게 아니라, 사람 열 받게 한다니까-
김진아(ON THE PHONE/V.O.)
그래서?
지은이
굶겨 죽여버렸어
김진아(ON THE PHONE/V.O.)
그래서?
지은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22 INT. 잡지사 사무실, 회의실 – DAY
일 하면서, 휴대용 게임기기의 “펫 키우기”를 동시에 하고 있는 지은이. 액정화면 속
펫의 머리를 쓰다듬느라 연신 펜을 형식적으로 돌리고 있다. 어느새 다가온 김미성,
김미성
그거 현실적 스킨십이 없어 영 맘에 안 들어요.
왜 있잖아요, CF보면 침대에서 강아지와 뒹굴면서 장난친다거나,
뭐 그런 손끝이나 몸에 와 닿는 생생한 감각이 있어야죠!
23 INT. 사무실 – DAY
다양한 표정의 다양한 애완동물들이 전시하듯 빠르게 보여진다.
지은이
다들 ‘절 가져가주세요’ 하는 거 같아. 너무 여려 보여.
데려갔다 잘못되면 어떻하니…? 모모는 크고 튼튼하고 그랬는데…
김진아(ON THE PHONE/V.O.)
(짜증을 애써 참다 폭발하듯)
그럼 크고 튼튼한 놈으로 사던가-
대체 똑같은 고민을 며칠째 하는 거야?!
24 INT. 바(BAR) – NIGHT
양영수가 바텐더로 일하는 바. 강인호, 우유를 마시며 무용감독의 일장연설을 듣고 있다.
무용감독
얼마나 고민 해야 되는 거야? 니가 안무에 재능 있는 건 인정하잖아.
끼고 싶으면 “GIVE AND TAKE”- 기회 줄 테니까,
여자랑 듀엣 파트도 무조건 니가 맡아.
강인호, 무용감독이 계속 늘어 놓는 말보다 아까부터 바 한 쪽에서 여자들에게 지분거리며
행패부리는 일당이 신경 쓰인다. 쳐다보다 결국 일어나더니,
강인호
거 진짜 눈에 거슬리네… I’ll be back
강인호, 멀쩡하게 일하고 있던 양영수를 억지로 대동하며 무리에게 접근한다.
25 EXT. 지은이 아파트 근처 거리 – 늦은 오후
비가 내린다. 우산 쓴 지은이, 몸을 가누면서 걷는 데 집중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근처에 커다란 상자가 버려져 있어 길을 방해하고 있다. 지은이, 발로 한 번 상자를 툭 차면서 “뭐야, 이런데다가” 불평하고 가는데, 뒤에서 ‘저기요…’ 하는 약한 목소리. 뒤 돌아보면 상자에서 빼꼼이 얼굴을 내밀며 아는 채 하는 강인호-얼굴에 난 상처, 파리해진 낮빛.
놀라는 지은이. 상자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지은이 우산 속으로 쓰러지듯 들어와 지은이
어깨를 잡고 늘어지는 강인호. 당황하는 지은이. 우산 속이 마치 밀폐된 공간처럼 긴장감이 돈다. 강인호, 힘겹게 미소 지으며 “살려주세요” 약간 오버하듯 처연하게 지은이 품
안으로 쓰러지는 강인호다. 강인호와 우산을 동시에 잡으며 균형 잡으려 애 쓰는 지은이. 젖은 몸에 부들부들 떨면서 상처 난 얼굴을 애처롭게 보이며 지은이 품에서,
강인호
열쇠 잃어버렸어요.
세상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26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지은이의 간호를 받는 강인호, 기분이 좋다. 콜록거리며, 지은이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강인호
이렇게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는 여잔 처음이에요
순간 당황하며 조금 수줍어 하는 지은이. 벌떡 일어서다 순간 번뜩 정신이 들어,
지은이
근데 왜 여기로 온 거죠?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하지만,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강인호.
강인호
방세로 따지면 5개월하고 2주나 남았는데요.
지은이, 현 상황을 파악하고 얼른 휴대폰으로 지은수에게 전화 걸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숨을 크게 내쉬며 짜증을 애써 누르려는 지은이. 거의 한계에 다다른 표정이다.
지은이
돈을 냈다면 돌려 줄게요.
강인호
위약금이 오천만원인데…
(애처로운 표정을 보이며)
그리고 나 지금 상처 입은 짐승, 아니 동물인데…
지은이
(순간 황당, 다음 폭발하고, 점점 격양되면서)
이봐요! 당신! 야!
강인호
(얼른 달래는 자세로)
워~워~ 진정하세요. 나, 여기 아주 맘에 드는데-
깨끗하고 아늑하고. 예쁜 누나에다.
혼자 사는 거, 외롭고 재미없잖아요.
어이가 없지만, 못내 인내심을 발휘하는 지은이.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지은이
그건 당신 사정이구. 당장 나가요.
강인호
목숨 걸고 여기 널브러지면? 나 지금 상처 입은,
지은이
배째라는 거야 지금!?
지은이, 노려보더니 팔을 걷어 부치고, 강인호 가슴팍을 밀면서 현관으로 떠민다.
얼떨결에 현관문까지 밀려간 강인호, 상황을 깨닫고 반격을 시작. 문을 열고 힘껏 강인호를 밀어내는 지은이와 문을 잡고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다리로 버티는 강인호가 몸싸움을 하며 서로 소리를 지른다.
강인호
여기 있고 싶어요.
지은이
경찰 부른다!
강인호
잠깐! 그 쪽은 나랑 잘 맞을 거 같은데-
지은이
뭐가 잘 맞아?!!!
곧 이어 들리는 엘리베이터 소리. 문이 열리고 사람들 말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자,
지은이, 얼른 강인호를 끌어 들이며 현관문을 닫는다. 밖의 기척에 예의주시하는 지은이와 달리 태연한 강인호, 그러나 상처로 아프다. 지은이, 중얼거리며 거실로 들어 오더니,
지은이
강아지나 키우면서 좀 쌈박하게 살아 보려구 하는데-
보들보들~ 털도 만지고, 이쁜 짓 하는 거 보며 스트레스도 날려 버리구…
아아~ 근데 어떤 녀석을 데려올지 결정하지 못하겠어…
지은이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강인호, 약간은 장난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강인호
그거… 내가 할 수도 있는데…
지은이
뭘?
(순간 황당, 설마하니 조심스럽게)
강…아지?
멍하게 쳐다보는 지은이를 향해, 짓궂게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듯 끄덕이는 강인호.
강인호
굳이 강아지라기보다는 애완… 사람 정도?
의외의 제안에 당황한 지은이. 강인호가 서있는 옆 책장 한 곁에 놓인 ‘모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충동에 이끌렸는지, 조금은 거만한 어조와 자세를 취하면서,
지은이
애완동물이라면 여기서 나랑 같이 살 수 있지…
말 잘 듣고 귀찮게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키워 줄 수도 있어-
인권은 전혀 없는 펫으로서 말이야.
그건 자신 없지?!
(V.O.)
이 정도면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겠지?
강인호, 지은이 앞으로 다가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끓고,
지은이(V.O.)(Cont’d)
어머머- 뭐 하자는 거야 얘가? 설마?
강인호
잘 부탁드려용. 주인님~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은이 손을 살포시 다정스럽게 잡는 강인호.
할 말을 잃은 지은이- 믿을 수 없다. 이미 뭔가 통제를 벗어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순간, 기력이 다 했는지 바로 지은이 앞으로 쓰러지는 강인호, 지은이가 얼른 붙잡는다.
CUT TO (강인호 방)
강인호 머리에 젖은 수건을 갈아주러 들어온 지은이. 폭신한 이불에 파묻혀 자고 있는
강인호의 모습 위로 달빛이 감싸고 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자고 있는 강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지은이, 강인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만져본다. 왠지 모를 평화로움과 감동을 느끼며 살며시 미소 짓는다.
OVERLAP
잠에서 깨어 앉아 있는 강인호, 자기 앞에서 편안하게, 무방비상태로 잠들어 있는 지은이를 바라본다. 지은이,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가만히 잠꼬대를 하는데,
지은이
이리 와~ 모모~ 넌 변하면 안돼.
언제나 나랑 있을 거지? 니가 제일 좋아
강인호
은근히 재밌는 여자네-
27 SERIES OF SHOTS (화보촬영 날,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지은이의 모습)
INT. 지은이 아파트, 침실/욕실/거실 – DAY
-알람시계 소리에 힘겹게 일어나는 지은이
-샤워 끝내고 시계 쳐다보는 지은이
-강인호 음식을 후다닥 만들면서 계속 시계 쳐다보는 지은이
-분주히 옷을 갈아 입고 출근 준비하는 지은이, 계속 시계를 쳐다본다
-강인호, 분주히 움직이는 지은이를 관찰(?)하고 있다.
-지은이 헐레벌떡 나가 버린다.
INT. 지은이 사무실 – DAY (화보촬영 날,사무실에서의 바쁜 지은이의 모습)
-일어 서서 전화 받는 지은이
-나가려는 지은이를 붙잡고 업무 확인 받는 김미성, 서둘러 뛰어나간다.
-물건배달을 온 택배원, 퀵서비스맨
-다양한 브랜드 종이가방을 양팔에 잔뜩 들고 들어오는 직원
-분주한 사무실에서 얼른 나가는 지은이와 서정민
EXT. 거리 – DAY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면서도 통화에 여념 없는 지은이
INT. CAFÉ – DAY
휴대전화 통화하면서 노트북으로 뭔가 확인하면서,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는 지은이
END OF SERIES OF SHOTS
SEIRES OF SHOTS
28 INT. 화보촬영 STUDIO – NIGHT (화보촬영 중)
까탈스럽게 보이는 모델들, 통제가 어려워 보이는 아이들이 가득 찬 스튜디오에서 화보촬영준비하고 진행하는 전경이 계속 펼쳐진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속에 세트 준비하는 지은이와 동료들
-고고하게 앉아서 아이들을 피해 있는 모델들
-촬영 시작되면 소리 지르며 촬영하는 사진작가
-울고 있는 아이, 도망가는 아이, 이에 동문서주 하는 지은이
-세트를 망가트리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
-아비귀환 속에서 고고하게 커피를 마시는 지은이, 어느 정도 초월해 보인다.
END OF SERIES OF SHOTS
SERIES OF SHOTS
29 INT. 지은이 아파트 – NIGHTS
-침대 위에서 속옷 차림으로 컴퓨터로 일하는 지은이
-침대 위에서 대충 엎드려 있다,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나 다시 일하는 지은이
-이런 지은이 모습을 바라 보는 강인호. 흥미로운 표정이다.
END OF SERIES OF SHOTS
30 INT. 지은이 사무실 – NIGHT
퇴근준비를 하는 지은이. 허리를 굽히자 허리에 부친 여러 개의 파스가 보인다.
퇴근하려던 이영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돌아서 지은이 건너 편에 선다.
이영은
고생한 보람은 있겠어요?!
그거 알아요? 그럴듯한 이유 갔다 부쳤지만
한번쯤 골탕 먹어보라고 그렇게 많은 기획 배당 넘긴 거라구요.
사람들이 표현을 안 할뿐이지,
‘얼마나 잘났길래 두고 보자…’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대꾸도 하기 전에 나가버리는 이영은. 지은이, 억울함과 울먹이는 표정을 감추려 애쓴다.
31 INT. 지은이 아파트 – 현관 안 – NIGHT
바로 전 장면의 표정으로 현관문에 기대 있던 지은이, 갑자기 기운이 빠진 듯 주저 앉는다.
정말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지은이를 반기는 강인호,
강인호
어서 오세요!
지은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얼른 지은이 앞으로 다정히 가 마주 앉는다.
지은이
알고 있었어. 골탕 먹인다는 거쯤.
내 일이니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 한 거 뿐이야.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만 하고 말이야…
강인호
난 은이처럼 언제나 모든 것에 열심인 거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은이
(강인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넌 착한 아이구나. 왠지 상이라도 줘야 할 거 같다.
강인호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며, 천연덕스럽게)
정말? 그러면 샴푸 좀 해주라-
강인호, 한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건넨다. 이내 정신차린 듯, 지은이, 강인호 말을
무시하며 거실로 들어온다. 따라 들어오는 강인호, 붕대 감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강인호(Cont’d)
한 손으로 너무 힘들단 말이야.
머리 못 감아 비듬 뚝뚝 떨어지면 밟을 때마다 엄청 짜증 날텐데…
And, 난 펫인데- 주인이 펫한테 샴푸정돈 당연히 해주는 거 아니야?!
홱 돌아서는 지은이, 억지스럽게 장난스럽게 요구하는 강인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 상황전개를 나름 파악하려는 지은이. 곧 이어 이에 질 수는 없다는 각오.
수건을 받아 들고 욕실로 향하던 지은이, 갑자기 돌아서서,
지은이
너 왜 반말이야?
강인호
(지은이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천연덕스럽게)
펫한테 존댓말, 반말이 어딨어, 주인님?!
32 INT. 지은이 아파트, 욕실 – NIGHT
강인호, 욕조에 뒷목을 기대고 앉아 있다. 극락이 따로 없다는 표정.
지은이, 선글라스를 쓰고 강인호 머리를 샴푸해준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선글라스.
강인호
아~, 기분 좋다.
‘어디 가려운 데는 없으신가요?’라고 말해봐~
지은이
아주 매를 벌어라
강인호
선글라스는 왜? 봐도 되는데-
자~자~ 쑥스러하지 마시고. 난 펫인데 뭘-
지은이
(손바닥으로 강인호 머릴 ‘팍’ 때리면서)
그래, 버릇은 초장에 잡아 놓으랬다-
33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 – NIGHT
지은이가 음식을 식탁에 놓기가 무섭게 강인호가 달려와 인디언처럼 환호를 지르더니,
자리 잡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강인호
우와~ 맛 있는데!
다행이다- 요리 잘하는 주인 만나서~
어느새 흐믓한 표정을 짖는 지은이 얼굴. 그러나, 곧 혼란스런 얼굴이다. 중얼거리는데,
지은이
이건 불쌍한 얘를 거두어들이는 인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거야…
(강인호에게 재차 확인하듯)
너, ‘주인과 펫’ 그게 무슨 의미인줄 알아?!
강인호
지금 열다섯 번째 확인하고 있는 거 알아?!
왠지 엄청~ 잘 할 거 같은 자신감이 불끈 솟아 오르는데.
지은이
(받아들이고 결심하듯 긴 숨 호흡을 하고)
너, 이름이 뭐라구 했지?
강인호
이름? 아무거나 부르고 싶은 걸로 부르지.
좋아하는 배우이름이라든가, 캐릭터 이름이나…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쏘시지를 집어 들더니)
있잖아, 쏘시지는 문어 모양으로 해야 더 맛있는데…
지은이
(강인호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혼자서 무척 진지하게)
흠… 레오나르도?
(나름 심각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친근감 있게 삼식이? 돌쇠?
강인호, 못마땅한 듯 밥 숟가락을 식탁에 놓고 지은이를 바라본다. 지은이, 결심이 선 듯
지은이(Cont’d)
좋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모모’!
옛날에 키웠던 개인데…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았어…
강인호
동화책에 나오는 모모? 잠깐!
여자애잖아! 난 수컷인데!
34 INT. 백화점 애완용품 매장 – DAY
작은 강아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열심히 애완용품을 고르고 있는 중년신사- 지은이 부(父).
어느새 다가와 있는 지은이, 낯선 사람 보듯 아버지와 강아지를 번갈아 살핀다.
지은이
엄마가 진짜 서운하겠다.
지은이 부(父)
(무척 사랑스럽듯이 강아지를 들어 올리며)
이봉자 여산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간다, 등산 간다
난 귀찮은 짐짝 취급이잖냐?! 요 녀석은 잔소리도 안 하지,
니 엄만 드라마에 푹 빠져선 내가 나가는지 들어오는지도 건성이지만,
이 녀석은 쪼르르 달려와서 세상없이 반기는데… 너 그 기분 모를 거다.
지은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미소 짓는다.
바로 앞에 체크무늬 옷을 입고 있는 인형에 시선이 고정된다.
35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지은이
자, 이거
‘아가타’의 강아지 모양 목걸이를 내밀더니 강인호의 목에 걸어준다. 좋아라 손뼉을 치며,
지은이(Cont’d)
오호~ 잘 어울리는데.
지은이, 자기만족에 흐뭇! 강인호,쇼핑백에 든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보니 진짜 애완동물 용품들이다. 강아지밥도 있다.
지은이, 소파로 가더니 퍼즐맞추기 테이블을 끌어다 시작한다. 이번엔 1인용 의자가 아닌 긴 소파에 앉아 있다. 강인호, ‘디지몬 백과사전’을 들고 와, 지은이 무릎을 베고 눕는다. 지은이, 흠짓 놀라 반쯤 일어나는데, 강인호, 자신을 가리키며,
강인호
펫!
(지은이를 가리키며)
주인!
마지못해 수긍 했는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자리에 앉는 지은이, 퍼즐맞추기에 골몰하며,
강인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지은이가 여전히 퍼즐 맞추기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자,
강인호, 지은이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뉘어버린다. 요란하게 소리 내며 엎어지는 테이블. 위, 아래 위치로 아슬아슬하게 서로 몸이 닿아있는 두 사람.
왠지 모를 미소를 짓는 강인호와 달리, 순간적으로 당황한 지은이이다.
지은이
뭐야?!
강인호
집에 들어왔으면 이제 펫한테 신경 써줘야지-
흠… 생각보단 가슴이… 뭐, 있는 그대로 만족하도록 노력해 볼게.
지은이, 강인호를 걷어차고 일어선다. 엎어진 테이블을 발견하고 고함을 지른다.
지은이
여기까지 맞추는데 한 달 걸렸단 말이야~!
이 자식이! 당장 일어서!
강인호
(자신의 아랫도리를 쳐다보며)
난 아직 반밖에… 좀 자극이 필요한데…
지은이
(쿠션을 집어 던지며)
거기 말고! 내가 누구지?
강인호
지은… 주인님이요.
지은이
넌?
강인호
(마지못해 확인하듯)
… 펫?!
지은이
그래! 펫은 말 그대로 펫- 애완동물이야!
지금부터 이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겠다.
잘못했다간 언제든 방출된다는 긴장감을 잊지 않도록-
CUT TO
지은이가 작성한 ‘펫이 지켜야 할 규칙’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강인호.
36 EXT. 운동경기장 – DAY (강인호의 ‘주인’ 지은이에 대한 묘사 : 36~43)
양영수
신세지고 있다는 누님, 아니 니 주인님은 어떤 사람인데?
강인호
능력 있고 맹렬히 일하는 커리어우먼~
양영수
포스가 장난 아니겠다.
강인호(V.O.)
힘든 게 많은 거 같은데, 남한테 그런 모습 보이는 거
절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피곤한 성격이지만…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도 대단하긴 해.
37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 – NIGHT
지은이네 패션잡지 한 권이 라면 받침대로 쓰이고 있다. 라면 먹으면서 잡지 보는 강인호.
이 모습을 본 지은이, 기겁을 하며 작정하고 강인호를 혼내는데,
지은이
너! 그 잡지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뼈빠지는 고통이 있는 줄 알아?!
담부턴 목욕재개 하고, 독서등 켜고, 경건한 자세로 읽어!
38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강인호(V.O.)(Cont’d)
야근도 하루 세끼 밥 먹듯이 한다-
시원스럽고 근사한 동작으로 고난도의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강인호. 전화가 울린다.
강인호
넵! 지구방위대입니다.
화면이 반으로 분할되며,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전화하는, 녹초가 된 지은이 등장.
지은이
나 오늘 못 들어갈 거 같아.
강인호
에, 또? 나 외로운데.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지은이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
(순간 발끈해서)
그리구, 넌 내 애인도 남편도 아니라 펫일 뿐이야.
내가 늦던 안 들어가던 불평할 수 없는 거야- 알았어?!
(진정하고, 다시 다정하게)
저녁은 사먹어. 비상금 넣어 둔 데 알지?
CUT TO
지은이 말대로, 독서등 아래 깔끔한 모습으로 무릎 끊은 자세로 잡지를 보는 강인호,
경건한 제스처로 책장을 넘긴다.
39 INT. DANCE STUDIO – DAY
연습하고 있는 여자무용수들-부드럽고 하늘거리는 무용연습복을 입고 있다.
소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를 감상하고 있는 강인호와 양영수.
양영수
역시- 여자는 저런 야들야들한 맛이 죽이지 않냐?!
OVERLAP
40 EXT. 거리 – DAY
거리를 걷는 지은이. 지나가던 남자가 핸드백을 낚아 채자, 핸드백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핸드백으로 남자를 거침없이 때린다. 지나가다 구경하는 사람들.
41 INT. DANCE STUDIO – NIGHT
연습실을 청소하고 있는 강인호와 양영수. 청소하는 동작들도 무용연습 같다.
양영수
그렇게 야무지고 강한 사람이, 왜 너 같은 존재가 필요하데냐?
OVERLAP
42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강인호. 주변엔 안무 콘티가 널려져 있다.
막 퇴근해 들어온 지은이. 자고 있는 강인호를 깨운다. 그래도 안 일어나자, 소파에서
잡아 끌어낸다. 기겁을 하며 깨어나는 강인호, 주변을 두리 번 거리면서,
강인호
뭐야? 뭐? 드디어 지구의 종말이 온 거야?
지은이
모모, 샴푸해 줄게!
강인호
(아직도 잠에 취해서)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조금만 더 자면 안 될까?
지은이
(욕실로 들어 가면서)
당장 들어 와!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욕실 – NIGHT
지은이
치사하게 누굴 물 먹이려고 작정한 거야?!
내가 지 밥이냐구?! 가다가 벼락이나 맞아라-
머리 감기는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가자, 고통스러워 하는 강인호-“아! 아!”
OVERLAP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지은이, 강인호의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며, 계속 주절이 얘기하고, 가만히 듣고
있는 강인호.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 정말 주인과 충성스런 개의 모습처럼 보인다.
43 EXT. 공원 – DAY
애완동물들을 산책 시키는 일련의 사람들을 벤치에 앉아 쳐다보고 있는 강인호.
강인호(V.O.)
인간의 손에 키워지는 동물들은, 자기가 펫이란 사실을 알고,
주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어디까지 노력할까 궁금하다.
주인이 무얼 바라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그리 잘 알까?
(관객을 향한 듯 정면을 쳐다보며)
만만치 않은 주인이라 고달프겠다구?
천만에- 난 인간인 걸~
(가소롭다는 듯 약간은 거만하게, 옆에 있는 대상을 마주 본다. 앉아 있는 것은 큰 덩치의 강아지! 강아지를 향해)
얼마나 편하고 좋아?!
말도 통하고, 대소변도 내가 스스로 다 알아서 하고 말이야.
CUT TO
44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지은이의 ‘펫’ 강인호에 대한 묘사 : 44~52)
지은이, 보드에 가득 찬 사진 이미지를 확대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휴대폰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확인하면, 민지민에게 온 문자 –“축하! 축하! 도베르만이라며?!
나중에 나도 가끔 빌려주라~^^*” 문자 내용에 의아해 하며, 한숨지으며 혼잣말로
지은이
누가 도베르만을 키운다는 거야?
인간 남자애라구- 춤추는 인간 남자…
OVERLAP (지은이 PART와 강인호 PART가 교차)
45 INT. DANCE STUDIO – DAY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습하는 강인호와 동료 무용수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강인호.
46 EXT. 거리 - DAY
지은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택시에서 힘겹게 내리면서 통화를 한다.
지은이
지 혼자서도 잘 놀아-
근데, 좀 성가신 면도 있긴 해.
먹이를 챙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은근히 신경 쓰이게 하는 거 있지…
OVERLAP
47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숨을 헐떡이며 바삐 들어오는 지은이,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며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식탁 한쪽 모서리에 힘없이 걸쳐 있는 강인호, 연신 “배 고파 “, “밥 줘 밥…”, ”쏘시지는 문어 모양으로…꼭-“
48 INT. 도서관– DAY
옆에 책을 쌓아 놓고 바닥에 앉아 자료조사를 하고 있는 지은이,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낸다. “미안- 난 브런치(brunch) 생략- 모모 산책 시켜줘야 돼.”
OVERLAP
49 INT. 지은이 아파트, 지은이 침실 – DAY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는 지은이. 강인호, 이불을 확 걷어낸다. 웅크리고 누워있는 지은이.
지은이
쉬는 날엔 잠 좀 자자-
강인호
산책시켜줘야지.
주인이 이래도 되는 거야?!
지은이,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일어나 비몽사몽 간에 나가다, 문틀에 새끼발가락이 찧어
꽁꽁거린다. 그 모습을 재미있어 하는 강인호다.
50 EXT. 공원 – DAY
애완견과 접시던지기 놀이를 하는 젊은 여자가 보인다. 접시를 물어 온 애완견.
바로 옆에서 접시던지기 놀이를 하는 지은이와 강인호가 있다.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지은이가 건성으로 접시를 던지면, 강인호, 신나게 달려간다.
그 때, 옆에 있던 애완견도 강인호를 따라서 달린다. 서로 쳐다보는 지은이와 젊은 여자.
51 INT. 잡지사 사무실, 회의실 – DAY
지은이, 잡지를 열중하여 읽고 있는데, 제목이 “잘 키운 펫 하나 열 남자 안 부럽다”이다.
갑자기 동료1이 휴대폰 폴더를 세게 닫으면서
동료1
송영기 이 개새끼! 또 전화 안 받아!
동료2
남자들이 좀 유치하고 쪼잔하잖아. 곤란하니까 피하기만 하는 거지
이 말에 얼른 ‘모모’에게 전화를 걸어 보는 지은이. 기대에 찬 눈빛이다.
OVERLAP
52 EXT. 운동장 – DAY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는 강인호와 친구들. 강인호는 골키퍼다.
전화가 오자 얼른 골대 옆으로 가는 강인호. 지은이 전화다.
너무 기뻐하며 통화를 하는데, 그 사이 상대편이 골을 넣는다. 같은 편 친구들이
강인호에게 달려들어 때리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도 지은이와 얘기하느라 애 쓰는 강인호.
53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직원들 모두 퇴근 준비들을 하고 있다. 퇴근 후 무엇을 할지 얘기하며 삼삼오오 모인다.
편집장
(스파 쿠폰을 들고 흔들면서)
스파 갈 사람들?
이영은을 비롯한 몇 명이 손을 번쩍 든다.
서정민
(지은이에게)
술자리도 있는데- 붙으실래요?
지은이
무조건 집입니다!
54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피곤해 지친 지은이가 소파에 널브러지자, 얼른 지은이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는 강인호.
강인호, 지은이를 중심에 두고, 라틴음악에 맞춰 지은이 주변을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유혹하듯 과장된 육감적인 동작이 웃음을 유발한다. 지은이, 처음엔 황당해하다 이내 분위기에 맞춰 어설프게 동작을 만들어 본다. 순간 결정적 비트에 맞춰 강인호가 지은이를 뒤로 확- 젖히자, 빳빳한 허리가 걸리고 마는 지은이. 고통을 호소한다.
CUT TO
지은이, 허리에 찜팩을 대고 엎드려 있고, 그 옆에서 두 팔을 들고 벌받고 있는 강인호.
55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DAY
소파 가운데서 PS2를 하는 지은이. ‘無敗(무패)’란 큰 글씨가 써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시력보호를 위해 특수처리 된, 큰 고글을 쓴 강인호가 거실 바닥에 앉아, 손짓을 요란하게 하면서 게임 코치를 한다. 감탄사들을 연발하며 게임을 즐기는 두 사람.
OVERLAP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거실 가득 들어와 있다. 소파주변에서 각각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자고 있는 지은이와 강인호. 매우 평화롭고 포근한 광경이다.
56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서정민
부탁해요, 은이씨-
지은이
네.
건성으로 대답하지만, 서정민이 건네준 아이스크림에 벌써 군침이 돈다. 김미성, 흥분하며 다가와, 책상에 놓여 있던 지은이의 ‘딥씨워터’를 자신의 얼굴에 뿌려대고,
김미성
엄~청 멋있는 사람이 선밸 찾는데요.
57 INT. 사무실 복도 – DAY
복도에 나가 사람을 살펴보는 지은이. 저 앞에서 이영은과 담소를 나누는 남자가 있다.
차우성
지은이!
완벽한 정장차림,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차우성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만 한 지은이.
지은이
차선배?!
차우성
오랜만이다.
(회상) EXT. 대학 교정 – DAY
한무리의 대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눈에 띄는 모습의 차우성이 가운데 있고,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지은이-두꺼운 안경, 체크무늬 셔츠, 책을 한아름 안고 있다.
카메라셔터 소리 나면- 차우성 쪽을 바라보고 있는 지은이.
BACK TO PRESENT
58 INT. DAY BAR– DAY
지은이
컨설팅회사에서 꽤 비중 있는 자린가 봐-
분할되는 화면. 한쪽엔 지은이, 다른 쪽엔 친구들의 각 화면이 차례로 밀며 등장한다.
유아영
네 첫사랑인지, 짝사랑인지잖아? 아무리 같은 빌딩에 있는 회사라도
그쪽도 생각이 있으니까 널 찾아온 거 아니니?
지은이
선밴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김진아
니 나이에 새롭게 콩깍지가 쓰인 다는 건 불가능하고,
예전에 씌인 걸로 어떻게 좀 해봐, 그럼.
유아영
너, ‘저 혼자서 뭐든지 잘해요’ 그런 거 절대 보여주지 말구,
‘저도 여자랍니다’- 알았지?!
민지민
야, 너 나보다 먼저 결혼하면 안돼!
59 지은이 사무실 – DAY
김미성(O.S.)
저, 선배님…
뒤 돌아보자, 김미성을 비롯해 여러 동료들이 기다리고 서 있다.
김미성
한잔 하러 갈 건데, 같이 가요~
지은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급하게 책상을 정리하면서)
미안. 일찍 들어갈 줄 알고 모모 저녁도 안 챙기고 왔거든-
다음엔 꼭 같이 갈게.
지은이,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급히 나간다.
김미성
모모? 선배, 애완동물 키우나?
서정민
요즘 은이씨 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이영은
얼마나 외로우면 펫을 다 키워… 처절하다.
김미성
지선배 찾아온 그 멋진 남자, 아세요?
이영은
잠깐이었지만, 첫 직장이 같은 신문사였어.
(뭔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면서)
그때도 꽤 괜찮았었는데, 더 탐나는 남자가 됐네-
60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여전히 ‘無敗(무패)’란 큰 글씨가 써있는 티셔츠를 입은 지은이와 커다란 고글을 쓴
강인호가 맹렬히 환호성을 지르며 PS2를 하고 있다. 순간, 휴대폰이 울리자,
갑자기 일어나 강인호를 밟아가며 전화를 받는 지은이. 약간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지은이
선배! 아니에요, ‘신문’ 보고 있었어요.
강인호, 고글을 벗고, 수줍게 통화하고 있는 지은이의 생소한 모습에 의아해한다.
기분이 상한 듯. 얼른 옆에 있던 신문뭉치를 가져가 지은이 한 손에 놓는다.
61 EXT. GALLERY(미술관) – DAY
한껏 멋 부린 여성스러운 차림의 지은이, 유리창으로 비친 모습을 보며 이리저리 살핀다.
새 구두가 불편한 듯 자꾸 신경을 쓴다. 차우성을 기다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긴장을
풀려 애쓴다.
지은이
날씨가 참 좋지요…
(목청을 가다듬고)
선배 넥타이가 멋있네요.
지은이(Cont’d)
(어색함에, 자조적으로)
어울리지 않게… 첫남자라 그런가…
차우성
(어느새 지은이 뒤에 다가와서)
벌써 왔어? 오늘 날씨 참 좋지?
지은이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선배 넥타이가 멋있네요.
CUT TO
INT. 갤러리 – DAY
전시를 관람하는 지은이와 차우성. 서로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한다.
새로운 하이힐이 불편한 듯 구두에 온 신경이 가 있는 지은이의 모습도 보인다.
이 데이트 장면이 DANCE STUDIO에서 강인호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교차되어 보여진다.
62 INT. DANCE STUDIO - DAY
연습을 마친 무용수, 뮤지컬 배우들이 흩어져 쉬고 있다. 강인호,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제목은 ‘ON THE STREET WHERE YOU LIVE’(영화 MY FAIR LADY 중).
구경하는 여자들, 강인호를 매우 흐믓하게 바라보며 서로 미소 짓거나 수근거린다.
강인호, 그런 주목 받는 상황을 나름 즐기는 듯 하다.
구경하는 무용수1
가슴 떨려! 어떡해, 어떡해!
구경하는 무용수2
여자랑 파드뢰는 안 한다며?
구경하는 무용수1
왜, 여자 싫어한대?
강인호 전 여자친구
지금까지 평-생 여자 속에 파묻혀 살아온 애야-
쟤 영국에 있었을 때, 거기 프리마돈나 상대로 공연에 뽑혔잖아
연습 중에 서포트 하는 손이 늦는 바람에, 여자가 떨어져서 다쳤는데,
그 여자 결국 발레 포기하고,
저 자식은 여태 죄책감 갖고 살고 있고… 바보 멍청이 같은 놈!
63 EXT. 지은이 아파트 앞 – NIGHT
차우성에게 업혀있는 지은이, 신경이 쓰이는지 등을 빳빳이 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지은이
정말 괜찮아요. 내려도 되는데…
차우성
(자기 기분에 젖어서)
내내 절뚝거렸잖아. 내 앞에선 강한 척 할거 없어-
넌 아주 야무져 보이는데, 자기 실속 챙기는 덴 허술하단 말이야.
괜한 데서 심각하게 진지하고… 그게 귀엽긴 하지만…
차우성, 혼자 신나서 계속 이야기하고, 지은이는 불편한 마음으로 맞장구를 칠 여유도 없다.
64 INT. 지은이 아파트, 현관문 앞 – NIGHT
지은이
조심해서 가세요.
차우성, 닫히려는 문을 잡더니 현관으로 들어온다. 지은이에게 은근히 다가오며,
차우성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유혹도 없는 건가?
지은이를 반기려고 나오던 강인호, 차우성을 보더니 얼른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얼굴을 내리며 진지하게 다가서는 차우성, 지은이에게 키스한다. 순간 들리는 개 울음소리. “멍! 멍!” 두 사람, 깜짝 놀라 떨어진다. 서로 어리둥절히 쳐다보다,
지은이
모모! 조용히 해!
조용해지는 아파트 안. 지은이,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 시작한다.
차우성
강아지 키워? 꽤 큰 개 같은데…
나도 개 무척 좋아하거든. 이거 반가운데-
이때, 고양이 소리-‘야~ 옹’. 더욱 당황하는 지은이,
지은이
아랫집에서 하루만 맡아 달라구해서…
이번엔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야~옹’ ‘멍! 멍!’
‘깨갱~깽!’ ‘야~옹!’ 지은이, 차우성을 억지로 현관 밖으로 밀어내며,
지은이(Cont’d)
녀석들이 많이 흥분했나 봐요.
내일, 전화할게요-
막 닫히는 현관문, 지은이 가슴을 쓸어 내리는데 이어 들리는 소리 - ‘음메~’
지은이, 전투적으로 돌아선다.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쿠션으로 맞아 소파에 쓰러지는 강인호. 지은이, 단단히 화가 났다.
지은이
있으면 인기척을 해야 할 것 아냐!
이 못된 녀석!
강인호
낮잠 자다 일어나니까,
웬 놈이랑 해괴망측한 짓을 하고 있잖아-
지은이
해괴망측? 지금 몇 신데 낮잠이야?!
뭐야, 그 눈빛은? 니가 왜 골을 내?!
강인호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구선.
남자가 생기니까 막 거짓말 한다 이거지?
순간, 뜨끔해 하는 지은이. 이 때 강인호의 풀어 헤친 상반신을 목격하고 갑자기 당황하며
지은이
왜 옷은 풀어헤치고 난리야?
강인호
(보란 듯이 천천히 옷을 벗으면서)
왜? 뭐 좀 느끼는 게 있어?
지은이, 얼른 몸을 돌려 외면하듯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지은이를 따라 가는 강인호.
지은이, 시선이 계속 강인호에게 가지만 애써 목청 가다듬고,
지은이
무슨 헛소리야? 펫이 펫이지 뭘 느낀다구-
강인호
그래… 오늘 보름달 떴는데,
보름달 밤에 늑대가 어떻게 변하는 지 알아?
지은이
늑대야 너?
강인호
개나 늑대나…
강인호, 서서히 다가오며 지은이를 거실 유리창 벽면으로 내몬다. 당황해 하며 몸이 바짝 움추려 드는 지은이.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물끄러미 지은이를 내려다 보던 강인호,
갑자기 몸을 돌려 티셔츠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지은이.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지은이
뭐야 저 녀석… 펫 주제에…
등 뒤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에 떠 있는 것은 ‘반달’이다.
CUT TO
창문에 남아있는 강인호 손바닥 자국. 지은이, 윈덱스로 유리창을 닦으면, 계속해서
나타나는 강인호 얼굴. 그 때마다 즉각 닦아내는 지은이, 연신 중얼거린다.
65 INT. DANCE STUDIO - NIGHT
달빛만이 안을 비추고 있는 스튜디오. 어둠 속에서 서서 생각에 잠겨 있는 강인호.
66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김미성
주인의 관심이 다른 것으로 옮겨가면
펫은 굉장히 불안해져서 엄청 심술을 부리는 거래요.
무척 열중하며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는 지은이, 간간히 메모도 한다.
OVERLAP
(회상) INT. 지은이 아파트, 침실/거실/욕실 이동 – DAY (아침)
눈을 뜨는 동시에 경악하는 지은이, 머리가 여러 갈래로 촘촘히 땋아져 침대 헤드에 묶여 있다. 화장대 거울에 립스틱으로 쓰여진 큰 글씨- “지은이 바보 똥꼬”, 옆에 붙어있는
폴라로이드 사진- 짓궂게 웃고 있는 강인호.
거실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강인호의 양말과 옷가지들.
지은이, 옷가지들 속을 헤쳐가며 냉장고로 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뚜껑을 연다.
텅텅 비어 있는 아이스크림 통- 안에 넣어진 폴라로이드 사진-
빈 아이스크림통을 들고 결연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인호.
어질러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빨래통에 넣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지은이.
생각 없이 양변기에 앉는다. 이어지는 비명소리. 변기뚜껑이 올려져 있던 것이다.
BACK TO SCENE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김미성(Cont’d)
우리집 삐삐는 내가 젤 좋아하는 신발에다 똥, 오줌을 막 싸더라니까요.
그럴 땐 혼내면 오히려 역효과 나니까, 다독거리는 수 밖에 없어요
녀석들이 단순해서 바로 헤헤거리며 졸졸 따라다니거든요.
지은이
(마치 이제야 이해한다는 듯 끄덕이며)
그렇구나. 고마워, 미성씨!
(혼잣말로 다짐하듯)
당분간은 비위를 맞춰줘야겠어-
67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지은이(V.O.)
모모… 나 오늘도 늦거든. 미안.
내가 푸딩 많이 사갈게~
막 음성메세지를 확인한 강인호. 시무룩하다.
강인호
집 지키는 똥개가 아니라구-
애정을 먹고 사는 펫이란 말입니다.
CUT TO
지은이 침실로 들어와 침대에 엎드린다. 베개에 베어있는 지은이 체취를 맡듯,
강인호
실컷 길들여 놓고, 이렇게 소홀하면 방황하게 되는데…
강인호, 침대 옆 미니 테이블에 놓여 있던 지은이 컵을 들어 루즈 자국이 있는 곳에 입을
대며 창가로 움직인다. 창문을 연다. 미풍이 강인호 머리카락과 커튼을 살랑살랑 움직인다.
강인호(Cont’d)
나 왜 이렇게 유치하냐…
68 INT. 잡지사 사무실 – NIGHT
지은이
모모, 나 오늘도 늦거든. 미안.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가지고 갈게~
김미성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은이를 보며)
음성 남기면, 강아지 모모가 말귀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요 정말?
당황스러워 어색한 미소를 짖는 지은이.
김미성(Cont’d)
가끔 궁금하지 않아요?
주인이 밖에 있는 동안, 펫은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요?
지은이
(당연하다는 듯 확신하는 어조로)
당연히 주인님 오시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지.
69 INT. 바(BAR) – NIGHT
활기차고 어느 정도 소란스런 젊은이들의 바BAR. 강인호가 친구들과 함께 있다.
양영수
차라리 기둥서방이 낫겠다. 적어도 인간대접은 받잖아.
강인호
뭘 모르시는군. 펫이 얼마나 조건 없는 애정을 받는데-
이래라 저래라 내가 되기 힘든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고…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강인호 친구
이상해!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강인호
자존심이니 그런 어려운 얘기가 아닌데-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펫이라면 자기 곁에 두겠다고 했거든.
(조금 멜랑꼴리하게 독백조로)
주인님을 사랑하면 안 되겠지?
나중에 버림 받으면, 펫만 불쌍하잖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강인호가 어이없기도 하고, 경외스럽기도 한 친구들.
양영수
(호기심 가득 찬 표정)
저기 말이야, 역시 그 방면의 봉사 같은 건 힘들지?
강인호
그 방면의 봉사?
(분위기를 바꿔, 너스레를 떨며)
아아- 힘들다마다.
난 원래 아침형 인간인데, 매일 밤 상대하게 하지,
졸려서 적당히 때우면, 제대로 안 한다며 금방 화내구,
그러면서 자기가 피곤하면 나 혼자 하는 거 보여달래잖아-
적당한 제스처에 구색까지 맞춰가며 얘기하는 강인호를 대단하다는 듯 경탄하며,
강인호 친구들, “오호~”
강인호
그렇게 재밌나… 격투기 게임이-
못 말린다니까 정말-
실망으로 짓궂게 강인호를 때리며 야유하는 친구들.
서너명의 근사한 미인들이 다가와 수작을 건다. 신나게 호응하는 강인호 무리들.
BACT TO SCENE
70 INT. 잡지사 사무실 - NIGHT
어느새 지은이 주변에 서너명의 동료들이 모여 야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은이, 계속 작업을 하며 얘기를 듣고 있다.
동료1
일이 없는 여잔 시집가기도 힘든 세상이야 지금은-
동료2
sex & the city의 캐리는 일주일에 칼럼 하나 달랑 쓰고
그렇게 잘 사는데, 우린 뭐냐구?
김미성
(살짝 자기 연민에 빠져서)
이렇게 노가다 인줄 몰랐어요. 이 팔뚝과 종아리만 보면…
이영은
편집장 봐~ 성공한 여자라고 남들이야 부러워하지만,
스트레스 받아 위경련으로 쓰러지고… 언제까지 편집장을 할 수 있겠어?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남잘 빨리 잡아야지…
서정민
능력 있는 남잘 만나려면 그대들도 능력을 키워야지~
지은이
(순간 하던 일 멈추고 단호한 어조로)
소위 자타가 공인하는 능력 있는 남잘수록 결국 현모양처를 원하지 않나? 첨엔 자기도 폼 잡고 싶어서 능력 있는 애인을 두겠지.
근데, 이 여자가 맞서거나 자길 주눅들게 한다고 느끼면,
바로 꽁무니 빼고선, 고분고분하고 애교 떠는 여자에게 결혼반질
건네는 게 현실인 거라고 봐
이영은
(비정하게 또박또박한 말투로)
경험담인가 보죠?
그런 논리라면 차우성씨랑도 끝이 뻔하겠네요?
순간, 어색해지는 분위기. 사람들, 눈치 보느라 어쩔 줄 몰라 한다.
분위기를 눈치채고 애써 무마하려는 지은이.
지은이
정말 맛있다, 이 케익!
모모 좀 갖다 줘야지-
김미성
(얼른 맞장구를 치며)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요. 길들이길 잘 해야 해요-
모모 입만 버려 놓으면 나중에 고생한다구요.
71 INT. 지은이 아파트, 강인호 방 – NIGHT
한 손에 작은 케익상자를 들고 서 있는 지은이, 웃으면서 방문을 활짝 연다.
지은이
모모! 나 왔어! 많이 기다렸지?!
세상 모르고 태평하게 곤히 잠들어 있는 강인호. 험하게 인상 구겨지는 지은이.
지은이
주인님이 왔는데…
기다리고 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질 못할 망정, 퍼 질러 자고 있어?!
CUT TO
지은이, 두 눈을 부릅뜨고 팔짱을 낀 채 정좌자세이다.
반쯤 눈을 감고 힘겹게 케익을 먹고 있는 강인호.
72 EXT. 거리 – DAY
빵집에서 나오는 지은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지은이
샘플 리스트 확인해서 분류해줘-
그래, 나중에 봅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뒤에서 지은이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는 강인호. 속삭이듯이,
강인호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어. 흉기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애인인 것처럼 이리 바짝 와봐.
(더 꼭 끌어 안으며, 입술을 지은이 귀에 바짝 대고)
허니, 나 보고 싶었어?
순간 귓가에 느끼는 간지러움과 떨림에 잔뜩 긴장했던 지은이, 얼른 수습하려 애쓰며
강인호를 밀치고 뒤돌아 본다. 미행하는 사람 같은 건 없다. 지은이, 막 뭐라 말하려는데, 잽싸게 지은이를 안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강인호. 지은이, 이제야 생각난 듯
지은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강인호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와~ 오늘은 끝내주게 예쁜데!
지은이
(강인호의 사탕발림에 기분이 우쭐해져)
좋아. 오늘은 봐줬다.
내가 어딜 가는 줄 알고 자꾸 따라 온다구 하는 건데?
강인호
(기대에 찬 눈빛으로)
호텔?
지은이
팔자 좋은 소리한다-
기획 리서치 해야지, 삐진 사진작가 달래러도 가야 되고…
계속 할 일을 얘기하며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지은이의 손목을 낚아채는 강인호.
지은이
뭐야?!
강인호
땡땡이! 끝내주는 차도 빌릴 건데-
73 EXT. 거리, 벼룩시장 열리는 곳 – DAY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인호와지은이.
상자 안에 강아지들을 넣어 파는 곳에서 멈춰 선다. 판매문구가 적힌 종이판- ”수컷판매/
8만원 /카드 할부 가능”-을 자기에게 가져가 장난치는 강인호. 지은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상인에게 건네는 시늉을 한다. 상황을 잘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한 상인.
CUT TO
계속해서 전화통화하는 지은이의 휴대폰을 뺏어 분수대에 던져 버리는 강인호.
황당하게 쳐다보다 기겁해서 달려드는 지은이를 끌고가 솜사탕과 풍선을 사는 강인호.
양아치들이 강인호, 지은이에게 휘파람 불어대고 키스를 날리며 옆에서 지나간다.
강인호, 주인을 보호하는 개처럼 지은이 앞에서 단단히 방어자세로 양아치들을 노려본다.
그런 강인호 모습에 기분 좋아라 하는 지은이.
이영은, 좀 떨어진 곳에서 지은이와 강인호의 다정한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CUT TO
다정하게 바짝 붙어 걸어가는 두 사람을 짓궂은 남학생들이 갈라 놓으며 잽싸게 통과한다. 이내, 앞뒤 마주보고 얘기하며 걷는 두 사람. 환한 웃음과 경쾌한 걸음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두 사람의 모습은 화사한 칼라 그대로 보이는데, 주변사람들은
그림자마냥 점차 검은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74 EXT. 벼룩시장 한 곳의 처마 밑 – DAY (늦은 오후)
비가 오고 있다. 잠시 비를 피해 서있는 지은이와 강인호. 신발을 벗어 들고 있는 지은이,
지은이
업어- 더 이상 못 걷겠어.
강인호
난 여자 업는 근육은 안 키웠는데-
떨어트릴 지 몰라. 그럼, 은이 발목이 똑 부러질 수 있구,
그 땜에 회사에서 잘리면, 평생 날 저주할거 아니야?!
강인호 말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강인호 등 뒤로 가서 자세 잡는 지은이.
강인호, 결국 지은이를 업더니 순간 휘청거린다. 강인호의 목을 와락 끌어안는 지은이.
강인호
마징가지?
지은이
뭐?
강인호
(음을 넣어)
무쇠팔- 무쇠다리-
지은이
(주먹으로 강인호 등을 내리치며)
로켓트 주먹-이다!
75 EXT. 거리 – NIGHT
강인호가 운전하는 차 안. 운전석 와이퍼가 고장 나, 조수석 와이퍼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간신히 운전하는 강인호. 조수석에 앉아 있는 지은이에게 잔뜩 기대어 운전하는 모습이다. 나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강인호. 불편한 지은이.
76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꽃꽂이를 하고 있던 지은수, 지은이와 강인호를 반긴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지은수를 노려보며 다가가는 지은이,
지은수
형! 도와줘!
남의 집 일이라는 듯,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딴 짓 하는 강인호.
지은수(Cont’d)
누나! 그냥 넘어가자.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나 땜에 에브리바디 해피하게 된 거 아니야?!
지은이
이 자식이- 입만 살아 가지고… 행복해, 너?
지은수
지갑도 두둑해 졌고… 그렇지.
지은이
(강인호에게)
넌?
강인호
엄청 해피하게 살고 있습니다.
거수경례에, 아주 만족스럽게 단언하는 강인호. 지은이, 좀 생각을 하는 듯.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화제를 바꿔 빠져 나가려는 지은수.
지은수
저거 밑반찬. 5만원. 엄마 집 나간 거 알지?!
전화해줘- 삐져있어.
(잽싸게 강인호의 팔을 잡아당기며 속삭이듯)
이리 와봐! 누나한테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지?
강인호
걱정이 되긴 하냐?
지은수
하기야, 형이 안 맞고 사는 게 다행이지만…
강인호
이따금 씩, 때때로…
지은수, 십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강인호의 팔을 잡고 위로하는 자세를 취한다.
지은이(O.S.)
지은수! 오늘 잘 거야?
지은수
갈거야! 아빠 아침밥 차려 줘야 돼-
CUT TO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은이,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강인호를 바라본다. 바닥에 앉더니
가만히 강인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기분이 좋아진다. 곧 앉은 채로 잠드는 지은이.
강인호, 눈을 뜨더니 덮고 있던 담요를 가만히 지은이에게 걸쳐준다. 이내 서늘함을 느낀 강인호- “춥다” 라고 말하면서 지은이에게 덮어준 담요를 뺏어 다시 자신이 덮는다.
77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지은이
에취!
재치기를 하고 흘쩍거리는 지은이. 책상에 놓여 있던 약봉투를 의아해하며 살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김미성, 얼른 지은이 쪽으로 오더니 추궁하듯,
김미성
그 사람과 무슨 관계에요? 약봉투 맡긴 남자요?!
김미성, 곧바로 지은이를 자기 모니터로 끌고 간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는 이영은.
김미성(Cont’d)
강인호! 촉망 받는 무용계의 기대주! 맞죠?!
몇 년 전에 로잔국제발레콩쿨에서 상 받고, 여기저기서 난리였잖아요.
제가 그때부터 발레 팬이 됐거든요.
무슨 이윤지 2년 전부터 발레를 안 한다던데… 정말 무슨 사이에요, 네?
몰랐던 사실에 놀란 지은이, 기사를 읽는데 정신 없다. 울리는 휴대폰- 지은이 엄마다.
김미성
어머, 선배 핸드폰 바꿨어요?!
78 INT. 의류매장 – DAY
지은이 모(母)
니 아빠가 생선 구우면 냄새 나고 탄다고 조리라고 그랬는데,
생선도 생선 나름이지 고등언 구어야 제 맛 아니냐?
고등어 구었더니 말귀도 못 알아 듣는다며, 나 보고 ‘병신’이랜다!
아니, 내가 이 나이에 그런 소릴 들으며 살아야겠니?
흥, 그 꽃분인지 뭔지 하는 개새끼랑은 아주 쌍으로 죽이 척척 맞아서…
지은이
엄마 강아지 좋아하잖아?
지은이 모(母)
그 개새끼가
지은이
강아지.
친절하게 정정한다.
지은이 모(母)
그년이 삼십년 넘게 같이 산 마누라보다 먼저 일 땐 달라.
이제야 좀 대접 받고 살까 했더니, 그 개새끼
지은이
강아지.
지은이 모(母)
만도 못한 대접을 받곤 못 살아, 난. 아니, 안 산다!
마누라 귀한 줄 모르구-
지은이
그래서, 가방 하나 딸랑 가지고 어디서 일주일이나 버틴 거야?
아까부터 울리던 지은이 엄마 휴대폰. 엄마가 계속 전화를 무시하자 대신 전화 받는 지은이.
지은이(Cont’d)
아빠!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리셨어요?!
슬쩍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엿듣는 지은이 엄마.
CUT TO
전화를 통화를 끝낸 지은이 엄마. 지은이 눈치를 살피며,
지은이 모(母)
난 늙은 딸래미 등 긁어주며 살긴 싫다-
더 어렵기 전에 괜찮은 놈 좀 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해봐~
지은이가 막 뭐라 대꾸하려고 하자, 얼른 매장에서 나가버리는 지은이 엄마.
79 EXT. CAFÉ – DAY
디저트가 놓여있는 테이블엔 두꺼운 책이 여러 권 놓여있다. 차우성, 원서 하나를 살피면서
차우성
잘 보고 돌려줄게.
희한한 얘기 하나 해줄까?
홍콩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여자 펀드매니저가 있는데,
업계에선 꽤 알아주던 실력자거든.
화가 지망생인 젊은 남자랑 같이 산다기에 그런가 했는데,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지은이, 특별히 관심은 없는 듯 커피에 설탕을 타고 있다.
차우성(Cont’d)
펫이래. 그 젊은 놈이 그 여자의.
생활의 모든 걸 전적으로 여자한테 의지하고 보살핌을 받는다나…
바로 당황하는 지은이, 설탕을 계속해서 잔에 넣으면서 차우성을 멍하니 쳐다본다.
차우성(Cont’d)
(지은이의 반응을 오해하며)
알아, 쇼크지?
지은이
(아주 조심스럽게)
선밴… 그런 거… 어떻게 생각해요?
차우성
저질이지-
표정이 굳어지는 지은이.
차우성(Cont’d)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쉽게 말해 여자 등쳐먹는 거잖아.
난 절대 싫어. 여자 밥 먹고 사는 거-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아니겠어?
자신의 손톱을 물끄러미 노려보고 있는 지은이. 분위기 눈치채는 차우성, 어리둥절해 한다.
80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두통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지은이, 약을 찾는다. 어느새 옆에 와 있는 편집장을 본다.
편집장, 지은이에게 아이스크림 한 통을 건네며,
편집장
진정하고 들어.
미성이 감기몸살로 쓰러져서 아까 집에 들어갔어.
서정민은 교통사고 났다고 전화 하나 딸랑 오고.
마감 삼일 남겨놓고 딴 사람에게 배당주는 것도 무리야…
혼자 커버 가능하지 물론?
81 INT. 잡지사 사무실, 화장실 – NIGHT
찬물로 세수하는 지은이. 언제 왔는지 옆에서 화장을 고치는 이영은이 있다.
지은이
이런 시간에 화장 다시 해?
이영은
맨 얼굴을 들고 다닐 순 없죠. 언제 운명의 남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지은이, 피식- 웃어버린다. 이영은, 마스카라를 정성껏 칠하면서,
이영은
연애엔 잼병인줄 알았는데, 그런 어린 남자애랑 어울려 다니구…
꽤나 즐거워보이던데요?
(지은이의 반응을 살짝 살피고)
놀라긴… 다시 봤어요. 양다릴 걸칠 줄은-
지은이
(애써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당당하게)
난 양다리 따윈 절대 하지 않아-
이영은
(지은이의 반응을 무시하며)
궁금해요. 결국 언젠간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되잖아요?
나중에 흉하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포기하시는 게…차우성은,
지은이
남의 사생활에 관심 끄시지?
그렇게 원하는 게 있으면 혼자 힘으로 손에 넣어보던가-
82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편집장을 비롯해, 지은이, 이영은이 서서 서로를 뻣뻣하게 바라본다. 긴장감이 흐르고,
지은이
확인전화 넣으라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영은
(퉁명스럽게)
전 못 들었는데요.
편집장
지금 누가 책임질 건가 따지자는 거야 들? 마감 내일이야!
지은이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설득해보겠습니다.
(이영은에게 파일 한 묶음을 넘기며)
인쇄소에 넘기기 전에 체크 좀 부탁해요.
이영은
다른 거 마감 땜에 전 무리에요.
지은이(V.O.)
이걸 그냥 꽉?!
파일뭉치를 소리 나게 책상 위에 내리치며 놓고, 이를 갈며, 똑똑 부러지게 냉정한 어조로,
지은이
무리라도 해요, 그럼! 그게 이영은씨 일이니까-
나한테 개인적으로 불만 있으면 확실하게 말해.
괜히 일하는데 ‘못 들었는데요’, ‘전 몰라요’ 하면서
치매환자처럼 굴지 말란 말이야!
83 INT. 잡지사 사무실 복도 – DAY
지은이
(90도로 허리 숙여)
정말 미안해요.
차우성
데이트하기 정말 힘들다. 아, 미안- 일 때문인데… 이해해.
이거 모모 갖다 줘-
(내미는 것은 애완견 용품- 에르메스 개 목걸이)
잡지에 났는데, 좋아 보여서… 언제 모모 데리고 같이 산책 가자.
은이가 바쁘면 내가 대신 봐줄게~
대꾸할 경황 없는 지은이, 대충 인사하고 바쁜 걸음으로 가버린다. 지은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자기 사무실로 향하는 차우성.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84 INT. 잡지사 사무실 – NIGHT
야근작업을 하는 지은이. 곳곳에서 몇몇 동료들은 자고 있다. 어느새 왔는지 지은이에게
야식을 건네는 차우성. 자리에서 일어서던 지은이, 순간 휘청거린다.
차우성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차우성에게 뭔가 하소연하고 싶어 애절히 쳐다보는 지은이. 그때 다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은이 등 뒤에 바짝 서서 ‘강한 버전의 지은이’가 이야기 하는 것이 보인다.
강한 버전의 지은이
연약한 척해서 어쩌려고? 저 남자가 대신 일해 줄거라 생각하는 거야?
걱정 듣고 싶어? 너도 참 별 볼일 없는 여자구나. 기껏 이런 일 갖구-
지은이
(애써 밝은 표정으로)
립스틱을 칠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나... ...
차우성을 반기며 다가오는 이영은, 최대한 애교 있는 표정과 제스처를 보이며,
이영은
인쇄소 가야 하는데, 이 시간에 택시 타는 것도 무섭고…
데려다 주실 수 있어요?
차우성, 지은이를 한번 쳐다보고, 이내 선심 쓰듯 이영은의부탁을들어준다.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지은이, 곧 정신 차리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CUT TO (시간경과)
망설이던 지은이, 차우성에게전화를건다. 순간 들려오는 여자목소리
이영은(V.O.)
여보세요?
지은이
(순간 당황해 말을 잊지 못하는데, 차우성목소리듣고)
아직 같이 있어요?
차우성(V.O.)
영은씨가 고민거리가 있대서 얘기 좀 들어주고 있었어.
아까 기회를 놓쳐서 못 물어봤는데,
(속삭이듯)
다음 주말에 회사 관련 행사가 있거든.
1박2일인데 같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 몰라 무표정으로 듣고 있는 지은이.
지은이
저... 생각해 볼게요... 우선 마감 땜에...
85 EXT. 지은이 아파트 – DAY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지은이, 현관 앞에 나와있는 강인호를 보자 순간 긴장이 풀어진다.
지은이
힘들어 죽겠다…
바로 강인호 품 안으로 쓰러지는 지은이.
86 INT. 지은이 아파트, 지은이 침실 – DAY
강인호, 자고 있는 지은이를 흔들어 깨운다.
지은이
좀 봐줘라. 추워… 보일러 좀 올려…
이불 속으로 파고 드는 강인호. 지은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어느새 다시 잠들었다.
INT. 어느 공간 – DAY (지은이 꿈 속)
화려한 시폰 블라우스를 입은 강인호, 보일 듯 말 듯 은근한 미소를 짖는다.
손목엔 체인이 걸려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은이(O.S.)
모모… ?
강인호
난 이제 모모가 아니야.
에드워드~ 이름, 끝내주지?!
어느새 등장한 섹시한 차림의 여자- 이영은이다! 강인호의 체인을 잡아 끌면서,
이영은
가자, 에드워드!
강인호
미안- 하지만, 요즘 은인 나한테 너무 소홀했잖아.
새 주인이 더 젊고, 가슴도 더 크고-
지은이를 향해 활짝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그러나 기꺼이 끌려가는
강인호를 향해 다급히 손을 뻗어 가며, ‘모모’를 연신 부르는 지은이.
BACKT TO SCENE
화들짝 눈을 뜨는 지은이, 기겁을 하며 일어나 앉는다. 이상한 느낌에 옆을 보니,
자고 있는 강인호 발견- 소리를 지른다. 태연히 눈을 비비며 깨어나는 강인호,
강인호
아, 은이야. 안녕~
지은이
안녕 못하다!
너 왜 말도 없이 내 꿈에…, 아니, 자꾸 내 침대로 기어드는 거야?!
강인호
뭐 어때- 아무 짓도 안 하는데-
지은이
(의심의 기색이 역력하게)
정말?
강인호
가슴만 살짝 만져봤어-
베개 들어 덤비는 지은이를 피해 짓궂게 웃으면서 잽싸게 도망가는 강인호.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강인호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 멈추냐?!
87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주방 – DAY
식탁에 놓여지는 냄비. 죽이다. 강인호,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죽그릇을 가리키며,
강인호
내가 만들었는데, 뭐 같이 보여?
지은이
(약간 망설이며)
…죽?!
강인호
딩동댕! 속 쓰리다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영어 알바에, 내내 야근에다… 좀 쉬지?
지은이
먹구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이 집 땜에 들어간 돈도 메꿔야 하구-
강인호
회사 가기 싫지?
지은이
(좀 뜸을 들이다)
응.
강인호
(기회를 놓칠 새라)
아까 회사에 전화했거든. 은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데,
한 이삼일 출근 못 한다고 말해놨어. 잘했지?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지은이를 바라본다. 지은이, 벌떡 일어나 강인호의 멱살을 잡는다.
지은이
뭘 어쨌다구?
(곧 울먹이며)
고마워~
초인종이 울린다. 강인호, 벽시계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짐을 챙긴다. 지은이, 문을 연다.
신을 신는 강인호, 일어서 나가려다 딸과 함께 막 들어 온 유아영과부딪친다.
강인호
미안, 아줌마! 좀 비켜줘요!
(지은이에게)
나 오늘 무지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마. 차비 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는 지은이. 강인호, 잽싸게 지은이 뺨에 살짝 뽀뽀하며,
강인호(Cont’d)
다녀오겠습니다.
유아영
아줌마? 난 얘랑 동갑이란 말이야!
강인호
(가다가 멈추고 돌아서서)
진정? 마흔 한 살 인줄 알았는데… 그럼!
유아영
(이미 사라진 강인호쪽을향해)
빌어먹을 자식! 그 구체적인 숫자는 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거야?
유아영 딸
(감동했다는 듯, 강인호나간방향을쳐다보며)
저 끝내주는 오빤 누구야? 엉덩이 땡땡하네!
유아영
(그제야 깨달은 듯)
저 놈은 뭐야?
CUT TO
유아영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지은이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얼떨결에 그런 상황이 되긴 했는데-
좀 지나고 나니까 아무렇지 않은 거 있지.
점점 느끼는 건데, 옛날 모모랑 정말 닮지 않았어?!
유아영
도대체 어딜 봐서 이미 죽은 개새끼랑 그 젊은 얘랑 닮았다는 거야?!
드디어 돌았구만- 너, 백년치 한꺼번에 웃긴다-
아무리 펫이니 뭐니 해도 그게 남자란 사실은 변함없어.
같이 살면서, 남녀 사이에,
지은이
(똑 부러지게 단언하는 어조로)
남녀 사이 그딴 거 아니라니까-
유아영
내 눈엔 페르몬이 철철 넘치는 남정네구먼-
(포기했다는 듯)
모르겠다- 니가 좋다면야… 그나저나 너, 차우성은?
지은이
(기운이 빠진 듯 한숨을 쉬며)
모르겠어- 선배와 있으면 정말 좋은데, 좀 긴장돼.
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날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거 있지.
OVERLAP
INT. 레스토랑 – NIGHT
열심히 이야기하는 차우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 지은이의 속마음이 들린다.
지은이(V.O.)
계속 맞장구 치는 것도 피곤하네. 렌즈 빼고 싶어…
립스틱 지워졌겠지? 아- 화장실 가고 싶다
차우성
잠깐, 화장실 좀… …
차우성이 자리를 비우자, 긴장이 풀어져 테이블 위에 축 늘어지고 마는 지은이.
BACK TO SCENE
지은이(Cont’d)
내가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런 여자가 되어있는 거야.
좋은 모습만 보이려다, 쓸데없이 지치구 피곤해져서…
모모하고 있을 땐 안 그런데…
유아영
모-모-?!
(어이없다)
여유부리다 좋은 남자 놓치지 말고, 정말 좋아하면 행동을 해.
괜찮은 남잘 주변 여자들이 가만 두겠어?!
니가 해치워 버리지 않으면 뺏기는 거야.
어휴- 이 헛똑똑 답답아!
88 INT. 잡지사 사무실 복도, 엘리베이터 근처 – DAY
엘리베이터 근처 코너에 숨어서 차우성 주변을 지켜보고 있는 지은이.
차우성과 이영은이 웃으면서 정답게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곧 지나가던 다른 여성들도 한결같이 차우성에게 미소를 날리며 아는 척을 한다.
89 INT. 지은이 방 – NIGHT
침대 위에 어질러져 있는 속옷들과 작은 여행가방.
지은이, 최면 걸듯 연신 혼잣말을 하며 고민하면서 속옷을 고른다.
지은이
난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해… 좋아해…
흠… 상하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으면 너무 속보이나…
흰색은 너무 나 잡아 잡슈수 하는 거 같고…
어느새 지은이 등 뒤에 와선, 지은이 옆얼굴 쪽으로 바짝 상체를 내미는 강인호.
강인호
어디가?
지은이
(깜짝 놀라 순간 뜨끔하더니, 이내 얼버무리면서)
어… 1박2일로 출장 있어…
강인호
에~ 정말 싫겠다.
주말에 출장 보내는 회사라니- 용케 그런 회사에 붙어있네…
90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 – DAY
유아영
(음식통을 식탁에 내려 놓으며)
은이가 니 먹이 좀 갖다 놓으라고 부탁해서
강인호
(음식을 살피며)
에... 쏘시지는 문어 모양으로 해야 하는데-
유아영
잠자코 그냥 쳐먹기나 해!
강인호
(천연덕스럽게)
내일은 갈비찜 먹고 싶어
유아영
니가 무슨 재벌 아들이야?!
유아영 딸
(좋아하며, 강인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엉탱이 오빠!
91 INT. 호텔 RECEPTION DESK – DAY
체크인 중인 차우성. 지은이 휴대폰으로 긴급 문자가 들어온다.
“SOS! 모모–출혈증세. 위독함.” 지은이, 잠시 주춤하나, 곧 차우성에게 활짝 웃어 보인다.
이내, 신경이 쓰이는지 돌아서서 전화를 건다. 신호만 계속 가고 응답이 없다.
92 EXT. 호텔, POOLSIDE 칵테일 파티 - NIGHT(저녁)
야외수영장 근처에서 소규모의 칵테일 파티로 손님을 접대하는 차우성.
지은이, 옆에서 조금 불편하게 동참하고 있다. 다른 무리에 섞여있는 이영은도 보인다.
차우성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틈을 이용해 얼른 강인호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지은이. 아무 응답이 없다. 찌푸린 지은이의 얼굴.
93 INT. 호텔 객실 – NIGHT
분위기 좋은 객실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는 지은이와 차우성. 테이블에 놓은 휴대폰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지은이. 걱정이 점차 커진다.
차우성, 어느새 반지 케이스를 열어 보이며 지은이에게 내민다. 반짝이는 반지.
차우성
난 술에 취해도 필름 끊기는 일은 없어.
그 때 널 안은 건… 순간적인 감정도 아니었고. 4년이나 지났지만,
다시 널 만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너한테 내가 부족한 사람이니?
고개를 흔드는 지은이. 차우성, 지은이에게 반지를 끼워준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지은이.
차우성(Cont’d)
언제나 너랑 같이 있고 싶다-
CUT TO
욕실 욕조에 걸터앉아 강인호에게 전화를 거는 지은이. 여전히 신호만 가고 대답이 없다.
CUT TO
차우성, 지은이를 소파에 천천히 뉘면서 키스하려 한다.
지은이, 싫지는 않지만 강인호가 걱정이 되어 자꾸만 휴대폰을 쳐다본다.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도 신경에 거슬린다.
순간, ‘펑!’ ‘펑!’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지은이의 상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OVERLAP
EXT. 기자회견장 – DAY
기자 1
결혼반지를 더 높이 들어주세요!
기자 2
일을 그만 두시는 심경이 어떤가요?
지은이
그만 둘 생각은 아직…
기자 3
남자한테 정신이 팔려, 소중한 펫이 쓸쓸히 죽어갔다는데,
사실입니까?!
당황하는 지은이. 밀려드는 취재진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BACK TO SCENCE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우성을 밀쳐내며 일어나는 지은이.
지은이
정말 미안해요, 선배! 가봐야겠어요!
모모가 많이 다쳤는데… 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고 왔는데…
지은이, 허둥지둥 나가버리고. 상황파악이 힘들기만 한 남아 있는 차우성- 불쌍하다.
94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멍한 지은이의 얼굴. 시선을 따라가면, 캐릭터그림의 밴드를 감은 검지손가락을 자랑스럽게 쭉 펴 보이고 있는 강인호가 보인다. 지은이,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못 내고 있다.
반면, 지은이를 보고 무척 좋아하며 능청스럽게 나오는 강인호.
강인호
다행히 피가 멈췄어-
은이 얼굴도 못 보구 혼자서 죽는 줄 알았다구.
지은이,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집어 들고 돌아서서 힘없이 현관으로 향한다.
강인호(Cont’d)
또 어디가? 환잘 두고-
95 EXT. 호텔, POOLSIDE – NIGHT
POOLSIDE 테이블들이 정리되고 있다.
기운 없어 보이는 차우성, 한 테이블에서 호텔 직원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느새 다가와 옆에 앉아 이야기에 동참하고 있는 이영은.
차우성
그 상황에서 제 친굴 놔두고, 개밥 챙겨준다며 갔다는데…
나 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호텔직원
그 여자에겐 친구분이 개만도 못한 놈이네요?!
96 EXT. 거리 포장마차 – NIGHT
혼자 안주도 없이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는 지은이가 보인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다.
주변 허름한 테이블에 쌍쌍이 또는 무리 지어 술자리를 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지은이, 손가락에 낀 반지를 힘껏 응시하며 만지작 거리다 기운이 빠진 듯, 독백하는데,
지은이
지은이! 너 왜 이렇게 복잡하니?!
그냥 기뻐해야 되는 거 아닌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차우성에게전화를건다. 응답하는 여자목소리에 얼른 전화를 끊어버리는 지은이. 곧 ‘차선배’ 발신명으로 전화가 들어온다. 다시 들려오는 여자목소리.
이영은(ON THE PHONE/V.O.)
나에요. 이영은. 전활 했으면 얘기를 해야지요
지은이
차선배는?
AT HOTEL POOLSIDE PARTY
이영은
우성씬 지금 전화 받을 상황이 못돼요.
나도 온 김에 내일 가려구요.
(지은이가 전화 끊는 신호를 듣고, 휴대폰을 향해)
그렇게 강하지도 못한 주제에...
BACK TO SCENE (포장마차)
전화를 끊고, 무슨 결심 하듯 소주잔을 충동적으로 들이키는 지은이.
CUT TO
많이 취한 지은이에게 주인 모를 개가 다가와 옆에 앉더니 꼬리를 흔들어준다. 지은이, 개를 쳐다보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순간적으로 울컥하더니, 개를 끌어 안고 중얼거린다.
97 EXT. 호텔 산책로 – NIGHT
어느 정도 취기가 든 차우성, 맞은 편에 있는 큰 개를 노려보고 있다. 심술 맞게 개를 향해 돌멩이를 차버린다. 열 받은 개, 차우성을향해돌진하고,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차우성.
98 INT. 지은이 아파트, 현관 – NIGHT
지은이, 술에 잔뜩 취해 현관문턱에 주저앉아 있다. 앞에서 걱정스럽게 앉아 있는 강인호.
지은이, 고개 들어 강인호를 보는데… 순간 강인호가 아니라 진짜 강아지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보니, 강인호.
지은이
샤워할래!
강인호
화장만 지우고, 자고 나서 나중에 하지-
강인호가 말리자, 손을 뿌리치면서 욕실로 기어가려 한다.
지은이
한다면 하는 줄 알아!
깨끗, 산뜻해지고 싶단 말이야! 난, 그렇게 살 거야!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목욕 후 소파에 앉은 지은이, 무릎에 강아지가 누워있다.
지은이, 망설이며 똑바로 자기 무릎 쪽을 내려다보질 못하고,
지은이
모모-
강인호(V.O.)
응?
목소리는 강인호이나, 모습은 계속 진짜 강아지로 보인다.
지은이
너… 진짜 개 아니지?
강인호(V.O.)
내가 개로 보여?
지은이
(스스로에게 말하듯)
실제 개였는데, 그 동안 내 눈에 사람으로 보인 건가?
벌떡 일어나는 지은이, 방으로 들어간다. 문은 그대로 열어 놓은 채.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지은이 침실 – NIGHT
침대에 누운 지은이, 방문턱에 서있는 모모(실제 강아지)를 본다. 손짓을 하며,
지은이
이리 와- 모모- 같이 잘까?
지은이, 강아지를 가슴에 안더니 침대에 다시 눕는다. 강아지를 계속 쓰다듬으며 독백하듯,
지은이(Cont’d)
남들이 뭐라 해도 전엔 무시가 됐는데, 요즘은 이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결혼을 해야 하나?
정말 좋아해온 사람인데…
때를 노치면 영영 되돌릴 수 없을까?
자신도 없구,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
혼자 사는 것도 더 늙으면 외롭고 힘들겠지?
강인호(V.O.)
안 하면 되잖아. 언제까지나 내가 곁에 있을게.
지은이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으면서)
훗! 차라리 평생 펫이랑 살까… 그럴까?
눈을 뜨고 강아지를 쳐다본 순간, 강인호다. “으아앗!” 기겁하는 지은이, 벌떡 일어나며 강인호를 발길로 밀어 제친다. 강인호, 굴러 떨어진다. 손으로 강인호를 가리키며,
지은이
모모가 인간으로 돌아왔다!
강인호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고 일어나면서)
원래 인간이라니깐-
지은이, ‘개였는데..., 분명 강아지였는데...’ 주절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침대에서 떨어진다.
CUT TO
강인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지은이. 강인호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지은이
두개-
강인호
이건?
지은이, 강인호의 손을 두 손바닥으로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지은이
됐어. 이젠 괜찮아.
지은이가 자신의 손을 내리려 하자, 도리어 강인호가 그 두 손을 잡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서로의 손을 통해 감촉과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강인호, 지은이의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거의 입술이 닿을 무렵, 지은이,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벌떡 일어나, 강인호에게 등을 돌린다.
지은이
나, 잘래-
거실로 나가 방문을 닫는 지은이. 하지만, 방문을 등지고 있어, 담요자락이 문틈 밖으로
나와 있다. 강인호, 문 앞으로 가 선다. 아무 움직임이 없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틈으로 나온 담요자락이 거실 안으로 쏙 들어간다. 지은이가 문가에서 떨어진 것이다.
지은이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는 강인호. 소파에 누운 지은이, 혼란스런 감정에 뒤척거린다.
99 EXT. DANCE STUDIO 밖 - DAY
일광욕을 하듯,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얘기하고 있는 강인호와 양영수.
강인호
그만둘까? 외국 가는 거?
양영수
뭔 소리야?! 그 대단한 안무가가 널 보겠다는데-
그런 기회 쉽게 또 오지 않는다-
그 여자 때문에?
강인호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멀리 응시하며)
쫓아올 사람이라면, 마음 놓고 도망이라도 쳐볼텐데…
길들어진다는 거… 중독 같아- 이젠 거기서 나와야 하나?
복잡한 생각과 미묘한 감정에 흔들리는 강인호의 목소리. 독백하듯,
강인호(Cont’d)
그녀는 나랑 있어서 행복할까?
100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DAY
진공청소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정신 없어 보이는 지은이. 그 와중에 노래연습하고 있는 강인호. 곡명은 ‘Hopelessly devoted to you’. 그런 강인호 모습에 잠시 넋 놓고 쳐다보던 지은이, 정신 차리고 청소기를 강인호 쪽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버린다.
그런 지은이를 약간은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노래를 멈추는 강인호.
강인호
바보 같이 어떻게 이딴 걸 생각해 냈어?
지은이
그래, 나 바보다- 월찬줄 뻔히 알고 오고 싶다는데 뭐라구 해?!
선배가 모모 보는 걸 너무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
갑자기 개 짖는 소리. 강아지(꽃분이)가 거실 한 복판에서 꼬리를 맹렬히 흔들며 짖는다.
강인호, 그런 강아질 들어 올려 마주보며,
강인호
애가 내 대역이란 말이지?!
이왕이면 도베르만이나 시베리안 허스키, 그런 걸로 준비하지-
지은이, 갑자기 시간을 확인하더니,
지은이
으악- 벌써 시간이! 모모, 어서 나가!
강인호
우아~ 인정머리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는 저 말투!
지은이
잔말 말고 어서 나가!
문이 열리고 떠다 밀린 강인호가 막 들어 오려던 차우성과 마주친다.
순간 얼어붙은 세 사람. 제일 먼저 상황 수습하는 강인호, 차우성 손을 덥석 잡더니,
강인호
강인호입니다. 동생… 육촌 동생입니다.
‘은이’한테 영어 배우는 날이라-
지은이
(어색하게 맞장구를 치며)
애도 참. 학원 가야지 않아?!
(강인호 등을 밀며)
늦겠다. 얼른 가-
CUT TO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실내 곳곳을 감상하는 차우성. ‘꽃분이’를 발견하고 들어 올리며,
차우성
생각보단 작은 녀석이네… 요녀석 까불이처럼 생겼잖아-
바로 꽃분이가 차우성 윗도리에 오줌을 싼다. 기겁을 하는 지은이와 차우성.
CUT TO
샤워를 마친 차우성이 머리를 털면서 나온다. 상체는 벗은 상태다. 기다리고 있던 지은이, 차우성의 벗은 몸에 살짝 얼굴 붉히며 마른 티셔츠를 건넨다.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려 하는데, ‘우당탕!’ 현관문이 열리고 강인호가 뛰어들어온다.
강인호
내가 깜빡 잊은 게 있는데! 오늘 학원 안 하는 날이더라-
차우성, 상황을 모면하려 자리를 뜨려는 지은이의 손을 잡아 약지 손가락을 들어 보며,
차우성
반지는?
지은이
(당황, 얼른 강인호 눈치를 살핀다)
긁히면 안 되잖아요.
차우성
(자랑스럽게 강인호에게)
누나한테 프로포즈 했거든-
순간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강인호. 불편한 지은이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차우성.
CUT TO
만만치 않은 적수를 만난 듯, 승부욕을 보이며 “GUITAR HERO”의 게임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강인호와 차우성. 지은이가 그 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두 사람을 흘긋흘긋 쳐다보며, 불편한 자세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강인호의 환심을 얻고자 즐겁게 게임을 하려 애쓰는
차우성. 강인호, 괜한 경쟁심을 발휘하며 이런저런 재주를 부리며 천연덕스럽게 행동한다.
지은이 시선을 따라가면, 강인호 연주 모습은 슬로모션에 후광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여지고, 차우성의 모습은 평범한 모습으로 보인다. 혼동을 느끼는지 고개를 크게 흔드는 지은이.
이때, 왁자지껄하게 들어오는 지은이 친구들- 차우성과 강인호를 미쳐 보지 못하고,
김진아
이 앙큼한 기집애!
꽃미남 알현하러 이렇게 행차하셨다!
거실 한 복판에 덩그러니 대면하게 된 무리들. 서로가 할 말을 잊은 채 쳐다본다.
정적을 깨듯, 유아영 딸, 강인호에게 얼른 다가가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천진난만하게,
유아영 딸
안녕! 엉탱이 오빠!
(강인호 다리에 매달려)
정말 사랑해~
101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주방엔 설거지한 그릇들이 잔뜩 쌓여있다. 아직 정리 정돈이 안 끝난 거실.
지은이, 피곤에 지쳐 겨우 앞치마를 풀며 소파에 털퍼덕 앉는다.
지은이
오늘 같이 복잡한 상황, 딱 질색이야-
강인호
그래서 언제 결혼하는데?
평소와 좀 다른 강인호의 어투. 지은이, 순간 어색해 한다. 화제를 돌리려 애쓰며,
지은이
너도 그래- 심술이야? 아님, 장난이야?
나가 있으라고 했는데. 얹혀 사는 주제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어?!
강인호, 그 말에 상처 받았다. 순간 말 실수를 깨달은 지은이, 살짝 자책한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허탈하게 한숨 내쉬고, 강인호에게미소지으며조심스럽게, 다정하게
지은이(Cont’d)
밤참이라도 만들어 줄까?
강인호
됐어.
조금은 냉량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강인호, 지은이를 무시하고, TV를 보기만 한다.
CUT TO
INT. 지은이 아파트, 침실 – NIGHT
지은이
(안절부절 방안을 서성이며, 거실 쪽을 연신 눈치 보면서)
뭐야, 저 녀석?! 신경 쓰이잖아-
102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회의 중- 지은이 자켓에 꽂혀있는 ‘아가타’의 브로치, <I ♥ Dog>이 유난히 눈에 띈다.
사진작가, 화려하게 치장된 고양이를 들어 올리며, 과장된 어조와 제스처로,
사진작가
엘리자베스를 센터폴드로 가죠?
김미성
지선배님 펫도 얘길 들어보니 굉장한 거 같아요. 그쵸?
서정민
재주도 많은 거 같던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은이, 조금은 흥이 나기 시작해서, 수줍게
지은이
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불러요.
사진작가
그래 봐야 깡총거리며, 멍멍 거리는 거겠죠.
그런 것들은 영 혈통의 우아함이 없어서…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 지은이, 정색을 하며 변론을 한다.
지은이
우리 애는 발레, 모던댄스, 힙합, 구별해서 완벽하게 해요.
특기는 ‘그랑주테’구요. 그게 엄청~ 어려운 기술이라구요.
상도 많이 받았어요. 게다가, 아무거나 만들어 줘도 맛있게 잘 먹고,
사진작가
아무거나 잘 먹으면, 그거 똥개네요!
열 받은 지은이, 사진작가와 서로 노려본다. 편집장, 현재 분위기에 눈치 없이 기분 좋게,
편집장
우리집 강아진, 기특하게 수학을 백점 받아왔지 뭐야-
우리 딸래미~
103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 NIGHT (저녁)
이것저것 분주히 음식 만드는 데 분주한 지은이, 혼자 중얼거리는데- ‘모모’와 파티 할
생각에 연신 즐거워한다. 휴대폰이 울린다-차우성 전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는다.
차우성(V.O.)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서 지금 퇴근 할건데, 저녁 같이 할래?
지은이
(순간 주춤하며)
아, 저기… 미안해요.
아직 사무실인데 일이 끝나지 않아서… 많이 늦어질 거 같아요…
거짓말로 불편해지는 지은이의 얼굴.
104 INT. 공연장 – NIGHT
리허설 연습하는 강인호와 동료들. 남성 군무와 강인호 독무 섹션의 안무들이 보여진다.
점점 속도를 더해 가며 빨라지는 스텝과 힘있게 변해가는 몸동작들. 땀에 젖은 남자들.
105 INT. 잡지사 사무실 밖 – NIGHT
음식 TO-GO 봉투를 들고 서 있는 차우성. 김미성으로부터 지은이의 퇴근사실을 듣는다.
차우성, 어리둥절해 하더니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106 INT. 지은이 아파트 – NIGHT
음식들로 가득 찬 식탁.
CUT TO (욕실)
거품목욕을 하고 있는 지은이, 혼자서 연신 중얼거리는데
지은이
설마 거짓말 눈치 못 챘겠지?
호텔 일도 그렇고... 화난 건 아닐까?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서 빼긴-’ 이라던가
‘너 아니면 여자가 없을 줄 아냐?!’ 라면서 이영은과그렇게...
(속상한 듯 거품을 내리치며)
모모는 왜 지금 없는 거야?!
CUT TO (다음 날)
늦었는지 바삐 출근하는 지은이. 식탁을 휙~ 지나친다.
달랑 한 요리만 식탁 가운데 놓여있고, 나머지 음식은 깔끔히 치워져 있는 식탁이 보인다.
107 INT. DANCE STUDIO – DAY
누군가 강인호에게 다가오더니, 손님이 왔다고 전한다. 강인호, 밖을 쳐다보고 나간다.
108 INT. CAFÉ – DAY
이영은
그 여자랑 같이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까놓고 묻겠는데, 그 여자와 무슨 관계야?
강인호
(조심스럽게 이영은을 응시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까놓고 말해 주인과 펫인데.
잠시 할 말을 잃은 이영은.
이영은
그 여자가 조건 좋은 남자랑 사귀고 있다는 건 알아?
결혼해서 가버리면 당신 신세도 처량해질 텐데.
강인호
나한테 뭘 부탁하고 싶은 건데요?
이영은
부탁이 아니라 조언을 하는 거야.
너도 남자라면 그 여자,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을 거 아니야?
강인호,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전개되는 상황에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능수능란하게 테이블 위에 놓인 이영은의 손가락들을 부드럽게 스치듯 만진다.
순간, 당황하며 얼굴을 살짝 붉히는 이영은. 강인호, 이영은을 가만히 쳐다보며,
강인호
손톱 모양이 참 예쁘네. 손등도 부드럽구…
누굴 위해 이렇게 부지런히 가꾸지?
(목소리 톤을 바꾸고)
내가 그 사람 곁에 있거나 떠나는 문제는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을 내가 계속 줄 수 있느냐에 달렸을 뿐이야.
내 걸로 만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계산서를 들고 일어서는 강인호. 앉아있는 이영은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이영은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똑 부러지는 강인한 어조로,
강인호(Cont’d)
혹시 오늘 일로 시끄럽게 만들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여자한텐 일반적으로 약하지만, 뭐 예외란 늘 있는 거니까-
109 INT. 레스토랑 – DAY
지은이
(너무도 진지하게)
혹시 뺑소니 차에 치어, 모모가 산속에 버려진 거 아닐까?
김진아
(희귀동물 보듯 지은이를 쳐다보며)
필사적인 사람 앞에서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건 아니라고 봐.
지은이
하지만 이런 적이 없었는데…
김진아
하지만 좋아하네. 지극히 건강한 성인 남자야.
이삼일 안 들어 온다고 걱정할 거 없어.
게다가 자기 의사로 안 들어오는 건지도 모르잖아?!
주인이 미워서 도망갔을 수도 있고. 뭐 짚이는 거 없어?!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려는 지은이. 심호흡을 하며 일어선다. 애써 미소 지으며,
지은이
먹이나 준비해 놓고 기다리지 뭐.
김진아
지은이! 니들 그런 관계, 부럽다고 재미있어 하긴 했는데-
서로 상처 받지 않고, 계속 그런 상태로 자신 있는 거야?
110 INT. 지은이 아파트 – NIGHT
장을 본 봉지를 들고 들어오는 지은이.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거실로 막 들어서는데,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 불을 켠다. 발치 아래 누워있는 강인호 발견. 엉거주춤 일어서 앉는 강인호. 피곤해 보인다. 반갑기도 하고 화나기도 한 지은이, 강인호에게 따지듯이,
지은이
너,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순간 말을 멈추고, 진정하며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지난 번엔, 생각 없이 심한 말했어. 미안해-
강인호
됐어- 리허설 땜에 며칠 못 들어온다고 포스트잇에 써 붙였는데,
못 봤어? 걱정해 준거야?
지은이
못 봤다. 걱정 안 했어-
다 안다는 듯, 미소 짓는 강인호. 아무렇지 않게 지은이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 안는다. 지은이, 순간적으로 긴장하지만 곧 편안해진다. 고요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흐른다.
강인호
저… 나, 이런 말 해도 될까?
지은이
(다정하게)
뭐든 얘기해- 착하지, 우리 모모--
강인호
(지은이를 올려다 보며, 조금씩 장난끼가 스민 얼굴로)
있지… 은이 똥배가 쬐금 더 나온 거 같아.
지은이
이 썩을!
순간 열 받은 지은이, 강인호를 걷어찬다. 엄살 부리듯 과장된 몸짓으로 떨어지는 강인호. 쿠션으로 때리며 장난끼 가득한 격투를 벌인다. 사방에 퍼지며 떨어지는 쿠션 알갱이들.
CUT TO
지은이, 거실 바닥에 퍼져있는 쿠션알갱이들을 담느라 고생하고 있다.
강인호, 식탁에 놓여 있던 음식들을 살펴본다.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다.
111 EXT. 잡지사 사무실 빌딩, 옥상 - DAY
지은이
상하이요?
차우성
적어도 3년은 있어야 할거야.
너라면 거기서 얼마든지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지 않나?
일을 그만 둬두 난 환영이다. 답변, 더 기다려야 되니?
CUT TO
옥상에 혼자 남아, 멀리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지은이.
112 INT. 고기(곱창)집 – NIGHT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고 시끌벅쩍한 소리가 가득한 고기집.
화려하고 산뜻한 모습의 지은이 일행, 다른 손님들과 눈에 띄는 대조를 이룬다.
김진아
뜸들이다, 빈 택시 다 가버린다.
지은이
니들이 있으면 걸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김진아
너와의 우정과 남잘 맞바꿀 생각 전혀 없어, 난.
유아영
딸래미, 서방님이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가야 돼.
민지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소개팅이건 선이건, 더 빡세게 밀어 부쳐서 ‘쇼부’를 봐야지!
김진아
(턱으로 지은이를 가리키며)
‘쇼부’를 봐야 할 사람은 저분이시다-
지은이, ‘쇼부’란 단어에 심사숙고 하는 진지한 자세로 나온다.
113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지은이 방 – DAY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옷과 신발들. 지은이, 데이트 준비에 정신 없다.
그 앞에서 성의 없이 동참하고 있는 강인호. 지은이, 또 다른 옷을 들어올리며,
지은이
이건? 선배가 좋아할까?
강인호
(건성으로)
응
지은이
똑바로 안 해, 너?
아주 중요하단 말이야, 내일은.
립스틱을 발라 보느라 정신 없는 지은이, 그런 지은이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강인호.
CUT TO
강인호, 벽에 붙여놓은 괴물버전의 차우성 그림을 향해 비장하게 다트를 하고 있다.
CUT TO
데이트를 위해 완벽히 준비된 지은이, 거울 앞에 서서 최종점검을 한다.
심호흡을 하더니,비장하게 결연한 모습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지은이
결론을 내자.
서둘러 집을 나간다. 거실 TV 위에 놓여 있는 지은이 휴대폰이 보인다.
114 EXT. 도로변 – DAY (늦은 오후)
차우성
문자 보냈는데, 혹시 몰라 음성 남긴다.
중요한 일이 갑자기 생겨서 말이야.
늦게라도 이따 얼굴 좀 보자- 너희 집으로 갈게-
차에 타고 시동을 건다
115 INT. 레스토랑 이벤트 룸– NIGHT (저녁)
고풍스런 서가로 꾸며진 레스토랑. 격식 있게 차려입은 강인호와 동호회 회원들.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태권V 부활 프로젝트’에 대한 토의를 하고 있다.
갑자기 울리는 강인호의 휴대폰. 모르는 전화번호다. 전화를 받는 강인호.
지은이(ON THE PHONE/V.O.)
선배?
강인호
은이?
지은이(ON THE PHONE/V.O.)
모모? 니가 왜 선배 전활 받아?
강인호
내 전환데. 무슨 일 있어?!
바로 전화를 끓어버리는 지은이. 강인호, 잠시 생각하다 얼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116 EXT. 거리 - NIGHT (저녁)
사람들로 부적되고 있는 버스정류장. 정체되어 가고 있는 도로. 하나 둘씩 불빛을 밝히는 상점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처음 만난 듯 수줍게 인사하는 사람들, 무리 지어
떠들썩 하게 걷는 젊은이들, 애완동물을 데리고 걷는 사람들- 거리를 채우고 있는 그 속을 강인호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117 EXT. 예술의 전당, 야외 무대 주변 - NIGHT
야외콘서트가 시작되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지은이, 공중전화박스 근처에서 초조하게 머뭇거리고 있다.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놓고 이리저리 지은이를 찾는 강인호. 패닉상태에
빠진 지은이를 발견한 강인호, 걸음을 점점 빨리 하더니, 이내 달려간다. 강인호를발견한지은이. 안도해 하는 표정. 두 사람, 끌어 안는다. 지은이, 숨을 크게 내쉬고, 강인호에게
떨어져 그 앞을 정신 없이 서성이며,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빠르게 재잘거린다.
지은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어… 벌써 공연은 시작되었지…
가버리면, 정말 잘못 될 거 같아서…
왜 영화에서도 그러잖아. 간발의 차이로 뒤죽박죽 되는 거.
또 가버리면, 인내심도 배려도 없는 여자라구 할 거 같구…
전에 남자들은 내가 그런 여자라고 했거든. 그래,
선배한테 급한 일이 생긴 거야. 좀 더 기다리자… 전화해서 알아 보려구…
근데, 번호가… 그 사람 번호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전혀-
어떻게 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전화 번홀 기억 못할 수 있지?
제대로 프로포즈 승락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들은 듯, 그제야 강인호를 제대로 쳐다보며)
어떻게 니가 여기 있는 거야?!
강인호
집에 가고 싶어?
지은이
집에 가서, 궁상 떨며 울고 있긴 싫어!
강인호
(강인호, 자연스럽게 살짝 지은이를 끌어 당기며)
좋아. 오늘은 은이의 찰흙이 되어줄게.
오물닥 조물닥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되는 찰흙입니다, 주인님.
지은이
너, 너무 익숙한 거 같다, 이런 거.
강인호
방금 나한테 반한 겁니까?
OVERLAP
분수대 주변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은이와 강인호다.
강인호
어디선가 읽었는데, “남녀관계란 섬세한 춤을 추는 거 같다” 라고 하더라.
근사한 말이지?! 파트너랑 아름다운 동작을 함께 만든다는 거-
근데 그게, 내가 까닥 잘못하면 상대방 동작이랑 엉켜 잘못 되거나,
어쩔 땐 파트너가 다치기도 하고… 그걸 아니까 내 역할이 무서워지더라구.
난 아직 어리니까… 그런가?!
지은이
(강인호 넥타이를 끌어 당기며)
넌 절대 어리지 않아. 끝내주게 섬세한 것 뿐이라구.
(강인호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남자한테 전적으로 의지만 한다거나,
100% 남자만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어-
같이 하는 거지
강인호, 지은이의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왠지 홀가분한 기분까지 든다.
지은이를 일으켜 세우더니, 왈츠 자세를 취한다. 약간 어색해하며 쑥스러워하는 지은이. 야외콘서트에서 울리는 음악에 따라 강인호,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지은이를 리드하며 춤을 이끈다. 엉성한 몸동작으로 강인호를 따라가면서 나름 즐거워하는 지은이.
118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강인호
(기분 좋게 취한 지은이를 소파에 간신히 눕히면서)
다 왔어. 신발 벗어야지.
지은이
(발을 들어올려)
자, 벗겨줘!
강인호
(신발을 벗기면서)
다른 것도 홀랑 다 벗겨버린다?
지은이
맘대로. 뭘 하든 상관없어!
기분 째지니까.
강인호
(지은이 옷 단추를 풀던 손이 힘없이 멈춰버리며)
그렇게 말하면 의미가 없잖아.
내 이름을 불러주면, 뭐, 해 볼 수도 있는데…
지은이
이름? 너야 ‘모모’잖아. 모-모-!
강인호
아니랍니다.
시무룩한 강인호. 어느새 골아 떨어진 지은이. 무방비한 지은이의 모습을 쳐다보던 강인호, 얼른 지은이 뺨에 키스하며 뺨을 어루만진다. 순간 이상한 느낌에 현관 쪽을 보니, 어느새 들어왔는지 차우성이 서있다. 차우성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지은이, 술기운에
일어나 강인호얼굴을감싸며, 자기 얼굴을 바싹 갖다 댄다.
지은이
뭐해?! 다 벗긴 거야?!
차우성,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두 사람을 쳐다보기만 한다.
119 EXT. 사무실 빌딩 옥상 – DAY
차우성
그러니까, 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그 개새끼가
그 애새끼라는 거잖아, 지금.
지은이, 차우성의 거친 말에 잠시 주춤하다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차우성에게 다가간다.
그런 지은이를 거부하는 차우성.
차우성(Cont’d)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
(힘겹게 뭔가 억누르면서)
지금은 도저히 안 되겠다!
자리를 떠나는 차우성. 지은이, 포기하듯 눈을 감아버린다.
120 EXT. 기차(전철)역 플랫폼 – DAY
지은이
(눈을 감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통화하는데)
협찬품에 손상 간 건 어쨌던 우리 잘못이니까
(잠시 상대편 얘길 듣다, 기겁을 하며)
삼천만원?! 말이 보석이지 결국 돌덩어리잖아?!
(이내 심호흡하더니)
알았어. 끝나는 대로 밤에라도 올라올게-
어느새 앞에 와 앉아 있는 강인호, 서류봉투를 건넨다. 정신 없어 보이는 지은이.
강인호
괜찮아?
지은이
너랑 상관 없으니까 신경 쓰지마.
강인호
(굳어지는 강인호 얼굴 표정)
나랑 상관 없어?
지은이
그래.
강인호
(일순 화가 치민다. 애써 억누르며)
정말 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이군! 뭐라구 둘러댔어?
하긴, 은이 수준에 걸 맞는 고상한 인간이라면, 나 같은 펫 따위랑
침대에서 뒹구는 거 정돈 쿨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인간일지 모르지!
정말 궁금한데, 난 은이한테 뭐지?
지은이
(순간 당황, 주춤거리며)
넌… 그러니까… 내…
(지쳤다는 듯)
너까지 왜 그래? 날 좀 내버려 둬! 걱정 마!
그런 일 있었다고 너보고 당장 나가라고 안 할 테니까-
강인호
이건 알아둬. 은이가 돌봐주지 않아도 나,
죽거나 그러지 않아. 갈데 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난 우리가…
지은이
그래? 그럼 너도 가! 가버리면 되겠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죄책감을 심어주지 못해 안달들이야?!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급하게 물건을 챙겨 일어나는 지은이, 몸을 돌려 가려 한다. 강인호, 지은이 팔을 끌어 당기더니 키스한다. 지은이,있는 힘껏 강인호를 밀어내며,
“이 바보!” 강인호의 가슴팍을 친다. 지은이를 노려 보더니, 등 돌려 가버리는 강인호. 어느새 지은이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이때 울리는 휴대폰 전화벨 소리.
지은이
네?
결혼정보업체 담당자(ON THE PHONE/V.O.)
안녕하세요? 결혼정보업체 ‘라스트 찬스(Last Chance)’입니다.
가입 특별 이벤트에 대해 알려드리려고요. 저, 고객님…
지은이
누가 당신네 고객이야?!
121 SERIES OF SHOTS (115A~G)
1) EXT. 전철역 출구 외부 – DAY
상행,하행 에스컬레이터가 나란히 있는 외부.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강인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이다.
2) EXT. 전철역 출구 외부 – NIGHT
긴 계단이 야간조명으로 어둠 속에서 빛난다. 급히 내려오는 지은이.
3) INT. DANCE STUDIO – DAY
무용연습을 하다 갑자기 멈추는 강인호. 기운 없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만 한다.
4)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DAY
책을 읽고 있는 지은이.
5) EXT. 공원 – DAY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강인호.
6) EXT. 거리 – DAY
같은 시간대, 다른 장소에 있는 지은이와 강인호.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각각 비를 피해 근처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각각의 가게 창 밖에서 펼쳐지는 거리 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지은이, 강인호.
END OF SERIES OF SHOTS
122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지은이, 기운 없이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다.
맞은 편 저 쪽에서 서정민, 김미성에게 그런 지은이를 가리킨다.
김미성
잘은 모르겠는데, 기르던 강아지가 집을 나갔나 봐요.
서정민
꽤나 좋아했나보네~
CUT TO
서정민, ‘고양이를 찾습니다’란 전단지를 지은이에게 건네며, 상냥하게
서정민
제 여자친구가 고양이 잃어버렸을 때 썼던 건데요…
모모 사진 주시면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내밀어진 전단지를 무심히 보는 지은이. 순간, 강인호 사진이 박힌 ‘모모를 찾습니다’란 내용으로 바뀐 전단지로 보인다. 얼른 고개를 흔드는 지은이.
123 INT. 빌딩 LOBBY - DAY
말쑥한 차림의 강인호, 두리번 거리다 누군가를 발견한 듯, 발걸음을 옮긴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차우성. 일정한 거리를 두고 두 남자, 마주 보며 멈춰 선다.
CUT TO
EXT. 빌딩 밖 - DAY
차우성
노력이 정말 가상하긴 한데,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그딴 걸 보고 너처럼 이해할 수 없어.
더 화가 나는 건, 너처럼 남자의 프라이드가 전무한 어린 놈과
내가 동급으로 비교가 됐다는 거야-
강인호
(차우성의 거친 말에도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난 내가 한심하다거나 자존심이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말 해도 영향을 받진 않아요. 난 그저 그녀가
차우성
(어느새 발끈하여 강인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그녀? 가지가지 하는군.
(인내심 발휘한 듯, 멱살을 풀고)
하기야… 그 여자에게 그런 취급 당한 너도 불쌍한 놈이다.
돌아서 가는 차우성.
CUT TO
INT. 빌딩 LOBBY – DAY
강인호
어이! 아저씨! 마지막 말은 정말 맘에 안 들어!
달려들어 차우성에게 한 방 먹이는 강인호. 차우성, 갑작스런 공격에 나가떨어진다.
상황 파악하고, 일어서는 차우성. 서로 마주보며 공격하려고 폼 잡으면서 몸들을 푼다.
어느새 몰려든 구경꾼들. 나가려고 로비에 들어선 지은이, 서정민, 이영은, 김미성도 있다.
엉겨 붙여 주먹질이 오가는 두 남자. 본인들은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 눈엔 영 엉거주춤한 동작들이다.
김미성
왜 지선배 애인이랑 친척동생이?
이영은
육촌동생 좋아하네- 사실은…
이영은의 폭로 직전 상황도 모른 채, 싸우는 두 남자에게 정신이 팔린 지은이.
김미성, 서정민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영은의 말을 기다린다. 이영은, 무슨 이유인지
하려던 말을 참으며 다른 말로 얼버무린다.
이영은(Cont’d)
자기 걸 지키려는 거겠지…
두 남자, 어느새 다시 빌딩 밖으로 나가며 싸우고, 구경꾼들도 따라 나간다.
지은이의 “그만!” 소리에, 마지막 한방을 강인호에게 날리는 차우성. 둘 다 비틀거린다.
자리를 떠나려는 강인호에게 달려가는 지은이. 강인호, 씩- 미소 짓더니 일어난다. 자리를 뜨는 강인호. 지은이, 바닥에 앉아 있는 차우성에게 몸을 숙이면서 괜찮은지를 묻는다.
홀가분한 듯, 분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차우성.
124 INT. 지은이 아파트, 거실 – NIGHT
벽 중앙엔 Yoshitomo Nara의 <Oh, My God! I Miss You>,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What’s Happening to Me?>가 걸려있다. 썰렁한 거실에 TV가 혼자 떠들어 대고
있다. 욕실에서 강인호의 강아지 목걸이를 발견한 지은이, 거실로 나온다.
목걸이를 쥔 채 열려있는 어둡고 텅 빈 강인호의 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침실로 들어간다.
125 EXT. 잡지사 사무실 근처 공원 – DAY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지은이, 차우성. 서로 큰 어색함은 없어 보인다.
지은이, 미안한 기색이지만, 의외로 태연하기도 하다. 반지상자를 차우성에게 건넨다.
차우성
(반지 상자를 만지작 거리며)
내가 어떻해야 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은이
미안해요. 저 땜에 선배가 기분 나쁜 경험하게 한 거-
선배 좋아해요. 동경도 하고. 그건 거짓 없는 마음이에요
근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 알았을 뿐이에요.
어떤 말로 해도…
차우성
됐어- 이제 알았다. 애쓰지 않아도 돼.
너한테 구질구질 하게 변명하거나 사과하라는 거 아니야.
서로 치고 받고 나니까 속은 후련해지더라.
그 자식, 어리지만 꽤 괜찮은 남자던데- 순간 질투까지 났어.
(포기했다는 듯 긴 한숨에 헛기침 하고 미소 지으면서)
사실 나도 속이 좀 좁거든. 길가다 못 본채 해도 욕 하진 말아라-
지은이, 편안해진 마음으로 미소 짓는다. 일어서는 차우성.
CUT TO
펀치게임(OR 두더지 게임)에 온 힘을 쏟아내며 화풀이 하는 차우성. 게임 점수에 감탄하는 구경꾼들.
126 EXT. 백화점 야외 카페 - DAY
쇼핑을 끝낸 듯 다양한 쇼핑백들이 의자 주변에 널려 있다.
민지민
인생의 비극이야-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가질 수 없는 건 더 많아-
(이내 스스로 기분 전환하듯)
아~ 주드 로 같은 남잔 어디에 쳐 박혀 있는 거냐구?!
김진아
주드 로의 엉덩일 본 순간, 그런 남자라면 모셔다 놓고
내가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화제를 바꾸며, 지은이에게 관심을 돌리고)
이제 꺼내봐. 뭐길래 어제 밤에 온 걸 아직도 미적대며
혼자 보지도 못하는 거야?!
지은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 메일을 연다. 강인호로부터온영상메일.
화면 속의 강인호, 비를 맞으며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얘기를 시작한다.
강인호
그렇게 하고 나와서 맘에 걸렸어. 있지, 난 모모가 좋았다.
조금은 어려운 역할이었지만, 다른 모습의 나였지만, 좋았어.
밖에서 아무리 깨져도 모모가 돼서 돌아가면 소중하게 대해지고…
고마워- 내가 은이 무지 좋아하는 거 알지?!
공연에 왔으면 좋겠다-
(갑자기)
에~취!
(옆을 향해)
야, 그만 뿌려. 감기 걸리면 죽음이야.
옆에서 살수차를 뿌려대고 있던 친구, 다가와서,
양영수
이왕 빌린 거 화끈하게 다 쓰지 그래?
강인호
이만하면 감동했을 거야-
(지은이 방향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소리 지르는데)
난 지은이가 진짜 보고 싶다!!!
다른 친구들, 신나게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기뻐하며 감동하는 지은이
127 INT. 경찰서 – NIGHT (전날 밤)
경찰
한밤중에 주택가에서 물 뿌리고, 고함 질러대고, 이유가 뭐야?!
강인호
(조심스럽게)
나무의 싹이 움틀 때라… 호르몬 분비 조절이…
128 INT. 뮤직컬 공연장 – NIGHT
관객석에 앉아 있는 지은이, 민지민, 김진아, 유아영, 유아영 딸.
조명과 한껏 어우러져 보이는 결혼식 무대장면. 강인호가 감정이 듬뿍 담긴 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온다. 중간에 가담하는 결혼식 하객들의 군무 댄스 동작들과 코러스.
노래가 점점 고조를 항해 가고, 강인호와 여주인공의 듀엣 춤이 이어지면서,
무대의 열기와 관객석의 즐거움이 가득 채워진다.
민지민
뿅 간다! 그치?
지은이, 특별히 대꾸는 하지 않지만, 얼굴 가득한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
129 INT. 댄스 공연장, 분장실 주변 – NIGHT
공연을 마치고 나온 강인호 주변에 많은 여자들이 열광을 하며 에워싸고 있다. 지은이,
꽃다발을 든 채 여자들 뒤에 서서 강인호를 시선으로 쫓고 있다. 한 여자가 강인호를
자랑스럽게 끌어 안는 모습을 보며, 머뭇거리는 지은이. 꽃다발이 힘없이 내려진다.
강인호, 돌아서서 가는 지은이를 쳐다본다.
130 EXT. 지은이 사무실 근처, 야외 카페 – DAY
강인호
이제 와?
지은이
왠 일이야?
강인호
(다정한 미소)
공연 와줘서 고마워. 꽃다발은 주고 가지 그랬어?
(의자에서 일어나 지은이 앞에 무릎을 끓어 앉더니)
그리고 이거-
주머니에서 발찌(토르말린과 방울이 엮어져 있는 긴 가죽 뱅글)를 꺼내더니 지은이
발목에 천천히 감아주며 말을 이어간다. 의아해 하는 지은이.
강인호
토르말린인데 치유 효과가 있대.
내가 없어도 괜찮도록- 일종의 부적이야.
방에서 내 짐 다 뺐어. 다음 주에 벨기에로 가거든.
지은이
이렇게 갑자기?
어리둥절해 하는 지은이를 부드럽게 가만히 껴안는 강인호.
강인호
지금까지 거기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잊지 못할 거야.
강인호, 무방비 상태의 지은이에게 살짝 키스를 하더니, 돌아간다.
조금 가다 다시 지은이 쪽으로 돌아서더니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강인호
다음 번엔 좀 더 찐한 뽀뽀다!
131 INT. 지은이 아파트, 강인호 방 – NIGHT
깔끔하게 청소 된 텅 빈 강인호의 방에 들어 선 지은이.
순간, 빛의 변화로 지은이가 서있는 강인호의 방 전경이 예전에 강인호가 있던 장면의
따뜻한 색깔의 공간으로 변하더니, 다시 어둡고 차분한 지금의 강인호 방으로 돌아온다.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주저앉는 지은이, 적막함과 허전함에 감정이 복받친다.
132 INT. 지은이 아파트, 지은이 침실 – DAY
해가 중천에 뜬 시각이지만, 어두컴컴하고 너저분한 지은이의 방. 침대보를 둘러 싸고
뭉개는 지은이. 곧 지은수가무서운기세로문을열고들어오더니커튼을열어재치고,
지은이가 덮고 있던 이불을 확- 뺐어 들치며 잔소리를 하며 방 정리를 시작한다.
김진아도 따라 들어와 있다. 지은이, 별 미동이 없다. 김진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김진아
너 기어 나올 때까지 담배 펴댄다.
그제야, 일어나 앉는 지은이.
김진아(Cont’d)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는 연애가 어디 있냐?
그 녀석 가는 날이 오늘이라며?
지은이
뭘 어쩌라구?
김진아
넌 뭘 하고 싶은데?
지은이
그게… 정작 아무 말도 그 애한테 제대로 한 게 없는 거 있지.
즐거웠다던가, 고맙다던가, 행운을 빈다던가…
미안하고, 아쉽고, 속상하기도 하구…
김진아
그럼, 가서 그렇게 얘기하면 되겠네-
뭐 그런걸 싸매고 누워 고민하니?!
잠시 후 벌떡 일어나는 지은이. 결심이 섰는지 정신 없이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133 EXT. 거리, 도로 주변 – DAY
꽉 막힌 차도 쪽으로 달려 오는 지은이, 마주 오던 서너 마리의 개들과 부딪혀 여러 개의 개 끈에 다리가 엉킨다. 가까스로 개 줄에서 풀려난 지은이가 손을 들자 택시 한 대가
급정거한다. 지은이, 타자마자 택시기사를 재촉한다. 출발하는 택시.
CUT TO
INT. 공항 – DAY
MOVING WALK 위를 뛰어가며 계속 전화를 해보는 지은이.
134 SERIES OF SHOTS
’한 달’이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지나간다(129A~I).
도입 장면은 칼럼 글인 것처럼 지은이가 입력하는 대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위로 지은이의 나래이션(voice-over)이 흐른다.
지은이(V.O.)
오늘도 힘겹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했다.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단한 일이 어디쯤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의 시간은 큰 변화 없이 늘 그래왔던 거 같고,
별 대단한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난
분명 어떠한 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한 순간이라도 행복하기 위해 또 어떤 선택을 하고 반복적인 후회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시 잠시라도 행복 하려고 할 것이다.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잡지사 전체 회의 중. 앉아 있는 사람들,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INT. 술집 – NIGHT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는 지은이, 조금은 편안해 보인다.
INT. 지은이 아파트 – DAY
집에서도 일을 하는 지은이. 지은수, 제대로 갖춰 입고 청소하고 있다.
INT. 잡지사 사무실 – DAY
분주히 움직이는 사무실. 새로운 잡지 COVER 화보를 벽에 붙이는 직원.
EXT. 야외 공연(전시)장 – DAY
계단에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즐겁게 바라보며 간식을 먹고 있는 지은이와 친구들
INT. 화보촬영 STUDIO – DAY
유명인사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은이.
INT. 카페 – DAY
쌍쌍이 앉아 있는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 지은이, 혼자 앉아 일을 하며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이 전혀 외롭거나 꿀꿀하지 않다.
END OF SERIES OF SHOTS
135 EXT. 도로변 – DAY
분주하고 꽉 막힌 서울 도심 거리 한복판. 택시 한 대가 서자 양쪽 방향에서 급하게 달려온 여자와 남자가 문을 잡는다. 서로 쳐다 본다. 놀라는 지은이, 반가워 하는 강인호!
지은이, 순간 강인호의 멱살을 움켜쥐더니 인도 한 쪽으로 힘차게 끌고 간다.
강인호
무… 무슨 일이야?
지은이, 순간 강인호에게 한 방 날린다.
지은이
무슨 일?
너, 일방적으로 혼자 지껄이다 사라지고,
비행기 탑승은 왜 그렇게 빨리 해버리는 거야.
강인호
공항에 왔었어?
지은이
그래, 것도 생쇼를 하면서 갔다. 왜!
강인호
왜?
지은이
(순간 당황)
왜? 왜라니? 그게, 그러니까…
난 주인이고, 넌 펫이고, 난 아직 널 버릴 생각 없었어-
주인 곁에 늘 있는 게 전세계 애완동물의 철칙이래매?!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잠깐- 너, 여기 왜 있는 거야?!
지은이의 무대뽀 행동에 마냥 기분 좋은 강인호. 목청을 가다듬더니,
강인호
우선 한 달만 갔다 오는 거였는데…
사람도 만나고 알아볼 것도 있었고- 어떻게 할진 더 생각…
지은이
뭐야?! 아주 가버리는 거 아니었어? 으씨-
도대체 연락처는 왜 남겨 놓지도 않은 거야?
억울하다는 듯, 강인호에게 발길질을 하는 지은이. 강인호, 나름대로 애쓰며 피하면서,
강인호
돌아와서 연락하려구 했다니까-
지은이
그래 잘도 연락해서 여기서 부딪치냐?!
강인호
어제 왔단 말이야- 이따 하려고 했어-
지은이
어제 왔는데, 이따가 해?!
핸드백으로 여기저기 때리는 지은이를 간신히 피하고 있던 강인호. 서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서로를 쳐다본다.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응시하듯 얼굴을 쳐다본다.
지은이에게 다가오는 강인호. 노을빛이 끼어들며 짙어져 간다. 지은이 얼굴 위로 석양빛이 번져간다. 지은이의 얼굴을 감싸며 부드럽게 바라보는 강인호. 갑자기 수줍어진 지은이. 강인호가 키스하려 하자, 장난치듯 얼굴을 뒤로 뺀다. 지은이가 다가가자, 살짝 피하는
강인호. 서로 장난치다, 이내 키스한다. 강인호와 지은이의 모습이 점점 멀리보이면서,
전체 전경에 지은이와 강인호의 모습이 묻혀진다.
강인호(V.O.)
예쁘다. 은이가… 물들어 가고 있네.
나도 은이한테 물들어 가고 있어.
지은이(V.O.)
으웩- 닭살이야, 닭살! 왕유치!
강인호(V.O.)
무슨 여자가 이러냐?! 그런 말엔 감동 먹어야지?!
지은이(V.O.)
감동 좋아하시네-
어디서 순 영양가 없는 것만 배워가지고…
INSERT “현재 – 또 다른 월요일”
136 EXT. 잡지사 사무실 빌딩 밖 – DAY (늦은 오후)
빌딩 회전문으로 나온 지은이, 하늘을 향해 심호흡을 한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기운차고
상큼한 미소를 짓는다. 서울 빌딩 숲 사이로 길게 쭉 뻗은 가로수 길을 걸어가는 지은이,
곧 인파 속에 파 묻힌다.
END CREDITS: 크레딧 올라가면서, 한 쪽 면에 에필로그 씬이 이어진다.
EPILOGUE
INT. 지은이 아파트, 주방/거실 – DAY
강인호
자, 맛있게 먹어야지, 니콜(Nocole)~
지은이에게 음식을 떠 먹이려는 강인호. 불만 가득한 지은이 목에 걸려있는 강아지 목걸이.
지은이
왜 내가 니콜이야?
강인호
니콜 키드만-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거든.
자, 착하지? 우리 강아지, 빨리 먹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은인 전혀 펫의 소질이 없구나-
지은이
(어쩔 수 없이 받아 먹더니)
맛이 뭐 이따위야!
먹이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넌’ 주인실격이야!
강인호
지은이! ‘너’가 아니지.
‘인호 주인님~’ 자, 말해봐.
지은이
(기가 막힌 듯 강인호를 쳐다보다)
그깟 게임에 졌다고 내가 이런 장단에 놀아나다니…
(벌떡 일어나면서)
샤워나 해야겠어.
강인호
내가 씻겨줄까?
지은이
낼 니 무덤 파고 비석 세우고 싶어?
CUT TO
신문을 읽고 있는 지은이의 젖은 머리를 정성스러운 손길로 드라이어로 말리는 강인호.
강인호
뜨겁습니까?
지은이
아니요-
강인호
자, 니콜! 이젠 산책 나가자!
CUT TO
EXT. 공원 – DAY
과자 받아 먹기 놀이를 하고 있는 지은이와 강인호.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모습으로 휴일 오후 한 때를 보내는 공원의 모습이 보인다.
강인호, 앞쪽을 바라보더니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든다. 지은이도 같은 방향을 쳐다본다.
강인호
누나!
지은이
무슨 누나?
강인호
친누나-
지은이
넷이나 있어?!
강인호
하나 더 있는데, 지금 유학중이야.
지은이
근데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저들이 여기로 오는 건데?
강인호
글쎄...1%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미래 올케에 대한 호기심이지 않을까 싶은데-
지은이
제정신이야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나가 다섯이나 있으면서 니가 감히 결혼을 꿈꿔?!
OVERLAP
공원의 큰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지은이와 강인호. 서로의 귀에 하나씩 끼어 있는 이어폰.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강인호와, 강인호의 무릎 사이에서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지은이. 화사하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오후 한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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