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1
[밝은 음악]
[자동차들 경적]
[사이렌이 울린다]
"샌드박스"
[사람들의 환호]
[사람들의 환호]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사람들의 탄성]
"샌드박스"
[러닝 머신 조작음]
영실아, 오늘 스케줄 얘기해 줘
[인공 지능 스피커 작동음]
[인공 지능 음성] 오후 2시 스타트업 릴레이 강연이 있습니다
장소는 샌드박스입니다
(지평) 영실아, 오늘 날씨 얘기해 줘
[인공 지능 음성] 당신의 오늘 운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평) [영어] 영실아, 오늘 날씨 어때?
[인공 지능 음성] [한국어] 오늘은 운명의 신이
당신의 잔잔한 일상에 미풍을 불어 보내는 날입니다
왜 저래?
영실아, 운세 말고 날씨, 날씨!
[인공 지능 음성] 과거에 스쳤던 인연을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밝은 음악]
[입바람을 후 분다]
[입바람을 후 분다]
[인공 지능 음성] 조심하세요
그 인연은 봄날의 미풍처럼 다가오지만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훗날 한겨울의 높바람처럼 심술궂게 돌변해
당신의 순조롭던 인생의 항로를
이리저리 바꿔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상수) 인재야, 회사, 회사로 가?
[자동차 리모컨 조작음]
[자동차 시동음] [타이어 마찰음]
[통화 연결음]
(동천) 네, 선배
(지평) 어, 오늘 투자 심의 말이야
그, 인공 지능 스피커 장영실이도 리스트에 있지?
(동천) 어… 네, 집현전 테크 거요?
그거 빼, 걔 바보야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어
어, 그래요?
다국어 지원에 자연어 처리도 수준급이라던데
뭐래, 수준급?
야, 언저리급도 안 돼
(지평) 날씨 얘기하라니까 말도 안 되는 운세 얘기하고 있고
조상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어디 감히 장영실 이름을 달고 그따위 헛소리 하고 있어
잔말 말고 빼 [통화 종료음]
[밝은 음악]
여보세요? 팀장님 [통화 종료음]
한 팀장님, 한지평!
아, 영실이가 뭐라고 했길래 [헛웃음]
기분을 잡치셨을까
"샌드박스"
"샌드박스"
[청중들의 웃음]
(용산) 저, 원인재 대표님께 질문 있습니다
네, 성함이?
(용산) 김용산입니다
혹시 오늘 대표님 기사 댓글 보셨습니까?
[지평이 휘파람을 분다]
(철산) [용산을 툭 치며] 뭔 소리야
[옅은 한숨]
봤죠, 당연히
(인재) 저 무병장수할 거 같아요 욕 하도 먹어서
[청중들의 웃음]
(용산) 재벌 아버지 덕에 성공했다는 악플이 많던데
샌드박스에서 시작했으면 인정한다는 댓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시작하라?
(인재) 윤 대표님
여기 이 샌드박스가 왜 샌드박스입니까?
(선학) 음…
애들 놀이터에 보면
그, 넘어져도 다치지 말라고 깔아 놓는 모래 있죠?
그 모래에서 따왔죠
창업하다 실패해도 다치지 말라는 의미로다가요
[청중들의 탄성] [선학의 웃음]
(인재) 그러니까 실패하면 다칠 분들이 와야지
나처럼 재벌 아버지 덕에 멀쩡할 사람이 여길 차지하면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 아닌가?
[청중들의 웃음]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저요
그런 악플들 신경 안 씁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무관심은
세상 하찮은 것들에게 하는 복수라고
그래서 나 신경 끊었어요 복수하려고
답변 됐습니까?
(용산) 네
지금, 지금 나보고 하찮다는 거냐?
응, 알아들었으면서 뭘 또 물어
[용산이 씩씩거린다] (인재) 다음 질문
[청중들이 저마다 외친다]
(인재) 중간의 체크 남방, 남자분, 네
(남자1) 네, 전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선웅이라고 합니다, 네
[마이크가 삑 울린다] 안녕하세요?
서달미라고 합니다
[잔잔한 음악]
[청중들이 웅성거린다]
서달미?
- (선학) 왜, 아는 사람이에요? - (지평) 예?
아니요
네
말씀하세요
보니까 훌륭한 선택 참 많이도 하셨더라고요?
(달미) 그런 거 말고 솔직하게
이기적인 선택은 없었나요? 서인재 씨?
[청중들이 웅성거린다]
서인재? 원인재 아니데?
왜 성을 바꿔?
- 안티여, 뭐여 - (용산) 서로 아는 사이 아니야?
있죠, 나도 사람인데
(인재) 속물 같은 선택이지만
절박한 선택이었죠
근데 서달미 씨
제 이름은
원인재입니다
[어린 달미가 흥얼거린다]
(어린 인재) 서달미, DDR 좀 그만해
양말 다 빵꾸 나겠다
(어린 달미) 응?
[어린 달미가 서랍을 탁 닫는다]
언니, 언니도 같이 뛰자
둘이 하면 엄청 신나던데?
난 DDR보단 펌프
그래? 그럼 나도 오늘부터 펌프
(아현) [종이를 탁 흔들며] 사직서가 무슨 일기니?
매일매일 써대게?
(청명) 아현아, 그러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 봐
나한테 정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하나…
(아현) 우리 다 굶겨 죽일 아이템이겠지 [시디플레이어 조작음]
(어린 달미) 언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청명) 아, 나 20년을 남의 회사에서
똥개처럼 죽어라고 일만 했다!
이제 좀 내가 좀 하고 싶은 일 좀 하면서 좀…
(아현) 똥개가 줄 끊고 도망쳐 봤자 들개밖에 더 돼?
들개 되면 둘 중 하나야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난 내 딸들 굶겨 죽이는 꼴 못 봐!
그러니까
그만두려면 이 집 가장부터 그만두고 관둬
[한숨]
아현아
받아
(아현) 받으라고!
[차분한 음악]
(어린 달미) 할머니, 할머니가 좀 말려 봐, 응?
아빠 할머니 말 잘 듣잖아
할머니가 말리면
말려서 들었으면 애초에 결혼부터 안 했지
(원덕) 야
(어린 달미) 그럼 할머니,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
(원덕) 아서라, 할머니가 가면 더 싸워
아차
인재 너 오면 주라고 이놈들이 맡겨 놓은 건데 어쩔까? 어?
(남학생1) 할머니, 지금 주면 어떡해요
[남학생들의 탄성] (원덕) 아, 그럼 언제 줘, 뭐, 내일 줘?
줘도 지랄이야, 쯧
부럽다
[어린 인재의 한숨]
버려요
지치지도 않나들
(어린 인재) 그 끈기로 공부하면 노벨상 타겠네
- (남학생2) 어? 차였네? - (남학생3) 괜찮아
야, 버리래, 너 차였어
[남학생2의 웃음]
(남학생3)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아
- (남학생3) 괜찮아 - (남학생2) 내가 소개시켜 줄게
아이고, 참 나
뭐 드릴까? 어
배고파서 본 거 아닙니다
[신호등 알림음]
[어린 인재가 상판을 탁탁 친다]
- 할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원덕) 어, 어
[잔잔한 음악] - (어린 달미)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원덕) 그래
(어린 달미) 아, 언니, 왜 그래
[힘겨운 목소리로] 아, 아, 언니
다음 거 타자, 응?
안 돼, 아빠 따라가야 돼
아빠? 아빠를 왜 따라가?
아빠 회사 관두면 엄마가 이혼한다잖아 말려야지
우리 다 뿔뿔이 흩어져 살고 싶어?
- 아니 - (어린 인재) 가자 [엘리베이터 도착음]
[어린 인재의 거친 숨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을 달칵 닫는다]
(범일) 뭐야 [쿵쿵 소리가 들린다]
내 돈으로
연봉 수천씩 받아 가면서
내 뒤통수를 쳐? 어? 어?
너희들한테 돈을 주는 사람이 누구야
나야, 점주야!
(청명) 저, 대표님, 이러지 마시고…
[청명의 신음] [어두운 음악]
[어린 달미의 놀란 숨소리]
(범일) 낄 자리를 봐 가면서 끼세요
아, 너구나
네가 점주들이랑 짜고 쳐서 가상 매출 만들었지? 어?
내 돈 받아 가며, 어? [청명의 신음]
(어린 달미) 아, 아빠…
(범일)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어? 어? 어? [청명의 신음]
[어린 달미가 울먹인다]
고소하고 싶으면 고소해
아니다, 내가 합의금 미리 줄게
얼마 줄까, 어?
얼마 줄까, 얼마, 얼마 [청명의 신음]
얼마, 얼마
(아현) 아빠가 맞아?
(어린 달미) 어, 그러니까 아빠가 다음에 사업한다 그러면
그냥 그러라고 하자
(어린 인재) 그래, 아빠 불쌍하잖아, 응?
얼마 준다던?
- (어린 달미) 어? - (아현) 합의금 미리 준다고 했다며
(아현) 얼마 준대?
한 천만 원 준다디?
엄마, 지금 돈이 중요해?
어, 엄만 돈이 중요해
더럽고 치사해도 돈이 먼저야
(아현) 아빠 회사 그만두면 너희들 학비는
인재 너 영어, 수학 학원 다 포기해야 돼
친구들 학원 갈 때 집에서 독학할래?
친구들 수학여행 갈 때 너희들만 못 가도 좋아?
[문이 철컥 여닫힌다]
너희들 앞날이 구만리인데
맞아서라도 돈 벌어 와야지
그게 가장이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
미안하다
우리 이혼하자
[어두운 음악] - 아빠 - 아빠
그래, 하자
인재, 달미
너희들 누구 따라갈래?
엄마 따라갈래? 아빠 따라갈래?
(달미) 그때 그 선택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
(인재) 했죠, 나도 사람인데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나랑 반대 선택을 한 사람은 잘 살고 있는지
후회는 안 하는지
왜 모든 선택엔 후회가 따른다잖아요
예외도 있죠
솔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서인…
아니
원인재 씨
[인공 지능 음성] 과거에 스쳤던 인연을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원덕) 뭐 드릴까? 어
배고파서 본 거 아닙니다
자, 자, 어
(중개인1) 자, 자
여기가 보일러실을 개조한 거라 겨울에 완전 찜질방이야, 응?
얼어 죽을 일이 없어요
여름엔 쪄 죽겠네요
보증금은요?
200에 월세 15
보육원에선 정착금으로 얼마 주디?
- 200요 - (중개인1) 200?
(중개인1) 보증금은 되는데 월세 낼 돈이 없겠네
먹고살 돈도 없죠
어휴, 나가자, 나가자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중개인1) 아아, 근데 그…
여기 적힌 한지평이가 누구야?
- (중개인1) 너야? - 네
(중개인1) 이야, 어린놈이 이런 재주도 있어?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1억? 상금 1억?
야, 인마, 이 돈이면 전세도 되지
- (중개인1) 대출 끼면 집… - 사이버 머니예요
사이버…
장난하나, 진짜
야
그럼 이런 모의 말고 진짜 투자를 한번 해 봐, 어?
이 정도 실력이면 사이버 머니가 아니라
진짜 돈도 꽤 만진다, 너
계좌 못 틉니다, 만 19세 이하라
왜 못 터, 내 아들도 텄는데
- 엄마, 아빠랑 같이… - (어린 지평) 엄마, 아빠 없습니다
맞는다, 미안
- (어린 지평) 가 보겠습니다 - 그래
(중개인1) 힘내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어!
고생 저한테 사세요
내 싸게 팔 테니까
[잔잔한 음악]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추워하는 숨소리]
(원덕) 아서, 그거 사기야
[천둥이 콰르릉 친다]
[어린 지평의 놀란 신음]
[천둥이 콰르릉 친다]
보증금 없고 월세 싸면 빤하지
(원덕) 관리비가 한 50 된다는 소리야
(어린 지평) 아…
잘 데가 없나 보지?
아니요, 있습니다
(원덕) 없으면 여기서 당분간 자
밤 8시에 장사 접고 아침 8시에 열거든
잘 데 있다니까요
바닥에 전기장판도 있어
(원덕) 그거 켜면 밤에 그냥 찜질방 저리 가라야
귓구멍 막혔어요? 잘 데 있다잖아!
저기 벚꽃나무 잘 뒤져 보면 새집 하나가 있거든?
(원덕) 거기다 열쇠 두고 간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의미심장한 음악]
[천둥이 콰르릉 친다]
[한숨]
[천둥이 콰르릉 친다]
[잔잔한 음악]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어린 지평의 거친 숨소리]
[어두운 음악]
[천둥이 콰르릉 친다]
[하품]
[찌뿌둥한 신음]
[힘겨운 신음]
[원덕의 놀란 신음]
맞는다, 내 돈
아, 안 왔겠지
잘 데 있다고 했는데 딴 데 갔겠지
아, 딴 데 어디?
딱 봐도 없어 보이던데
왔으면 좋지, 뭐, 에이
돈이야 더 궁한 놈이 가져가면 더 좋은 거고
나야 또 벌면…
되긴 뭐가 돼, 그게 어떻게 번 돈인데
[다급한 신음]
(원덕) 어머, 내 돈, 내 돈
내 돈, 내 돈
아휴, 아유, 주님, 죄송합니다
아유, 제가 사람을 의심했습니다 아이고, 주님
(어린 지평) 사과는 주님 말고 나한테 해야죠 [원덕의 놀란 신음]
[발랄한 음악] 들고 튈까 하다 말았어요
[어린 지평이 가방을 툭 든다]
그런 데 말고 은행에다 넣어 놔요
(원덕) 야, 순딩이
너 밥값 안 해? 어?
순딩이?
누구요, 저요?
(원덕) 아이고
난 당최 복잡해서 뭔 말인지 한 개도 모르겠다
네가 관리 좀 해라
(어린 지평) 제가 왜요?
저 갈 데 있어요
(원덕) 아침, 저녁쯤은 내가 차려 줄 수 있으니까
아, 얼른 받아, 팔 아파
[원덕의 못마땅한 신음]
할머닌 나 무섭지 않아요?
하, 너 같은 순딩이가 뭐가 무서워
저 순딩이 아니에요
이제 통장 비밀번호도 알았겠다 가게 열쇠도 있겠다
제가 나쁜 마음 먹고 사고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아, 어쩌기는
사람 잘못 본 내 팔자려니 해야지, 뭐
[부드러운 음악]
(중개인1) 그럼 이런 모의 말고 진짜 투자를 한번 해 봐
이 정도 실력이면 사이버 머니가 아니라
진짜 돈도 꽤 만진다, 너
할머니, 나온 김에 계좌 하나 더 만들죠?
(어린 지평) 할머니!
아, 할머니!
[마우스 클릭음]
[숨을 깊게 내뱉는다]
나 지금 되게 심란하니까 그만 좀 따라오실래요?
(어린 지평) 내, 내가 언제
저거 뭐야?
- (어린 달미) 할머니! - 어!
[어린 달미가 울먹인다] (원덕) 아유!
[빗자루가 툭 떨어진다] (어린 달미) 할머니
아유, 달미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할머니, 나 이제 혼자야
나 어떡해?
아유, 혼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유
(원덕) 언니 어디 있어?
엄마 따라갔어
(어린 달미) 엄마가 언니 데리고 떠났어
[잔잔한 음악]
[어린 달미가 흐느낀다]
할머니
[원덕이 어린 달미를 토닥인다]
괜찮아
나 어떡해?
할미 있잖아, 뚝
- 괜찮아 - (어린 달미) 할머니
[어린 달미가 엉엉 운다]
무슨 일 있어요?
(원덕) 지평이 너 꽤 달필이구나
아, 아까 내 손녀 봤지?
달미라고
걔 이름이 달미예요?
(어린 지평) 아유, 생긴 것처럼 이름도 촌스럽네
걔한테 편지 좀 써 줘
(원덕) 예전부터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그 또래가 쓴 것처럼 편지 좀 써 줘 봐 봐
왜요?
(원덕) 쯧, 친구라고는 자기 언니 하나인데
둘이 떨어졌다잖아
꽁으로라도 하나 만들어 주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쓰면 글씨 알아봐서 안 돼 네가 한번 써 봐라
아, 그러니까 왜요, 내가 왜
너 순딩이잖아
아, 순딩이 소리 좀 그만해요
(어린 지평) 사람 잘못 보셨다니까
[어린 지평의 한숨]
[어린 지평의 한숨]
[흥미진진한 음악] (원덕) 여자 친구로 할까?
(어린 지평) 내 글씨는 누가 봐도 남자 글씨인데
(원덕) 그래?
남자 이름으로 할까?
[원덕의 힘주는 숨소리]
일단 시작은
'달미, 보아라'
[어린 지평의 한숨]
'보아라'가 뭐예요, '보아라'가
(어린 지평) 할머니인 거 딱 티 나
그냥 깔끔하게
'달미야, 안녕'
'내 이름은'
이름 뭐로 해요?
아, 네가 한번 지어 봐
(원덕) 딱 봐도 똑똑하고 착하고 팔자 좋은 놈으로다가
네 이름으로 할까?
아유, 싫어요
얘 어때요?
(어린 지평) 똑똑하고 착하고 팔자 좋아 보이는데
(원덕) 도산, 남도산?
인물도 좋네
좋아, 얘 이름으로 하자
(어린 지평) '내 이름은 남도산이야'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용기 내 펜을 들었다'
야, 연필이잖아
- (어린 지평) 씁 - 아, 웃자고 한 소리야
'펜을 들었다'
연필인데
[어린 지평의 한숨]
- 근데 이 방법이 먹힐까요? - (원덕) 어?
아니, 할머니 손녀 말이에요
(어린 지평) 부모님 이혼하셨다지
죽고 못 사는 언니랑 헤어졌다지
꼴랑 이런 편지로 위로가 되겠어요?
[문이 철컥 열린다] (어린 달미)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청명) 야, 인마!
아, 이거 아빠가 몇 시간 동안 다 정리한 건데
아빠, 나 연애편지 받았다?
뭐?
- 연애편지? - (어린 달미) 어
- 글씨 대빵 잘 쓰지? - (청명) 음…
나랑 동갑이래, 남도산
이름 되게 느낌 있지?
에이, 뭐, 느낌은 무슨, 뭐
이름이 꼭 뭐, 레슬링 선수 같구먼
아니야, 수학 잘한대
완전 천재과지
그 편지 그거 영국에서 왔다 그러지? 어?
행운의 편지
(어린 달미) 아니야, 할머니가 전해 준 거거든?
들어 봐 봐
[어린 달미의 헛기침]
'느닷없는 편지에 당황하진 않았는지'
[잔잔한 음악] (어린 달미)
(어린 지평)
(어린 지평) 동생 같은 강아지였는데
(원덕) 이거 좋다, 이거, 잘 썼다
(어린 지평) 요즘 몽실이가 미치게 보고 싶어
어젠
(어린 지평)
[원덕의 웃음] (어린 지평)
안 웃겨, 나도 요즘 그래
(어린 지평) 늘 곁에 있을 줄 알았어
(어린 지평)
(어린 지평)
(어린 지평) 요즘 난 1분, 1초가 온통 후회뿐이야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원덕) 아이, 야
(어린 지평) 지금 이 1분, 1초도 선물 같은 시간인데
(원덕) 이렇게 쓰면 안 돼
(어린 지평) 이러다 또 후회하겠지
겨울엔 푸르렀던 여름을 [원덕이 만족한다]
여름엔 새하얗던 겨울을 그리워하며
그래서 난 결심했어
(어린 지평)
(어린 지평) 이게 설익은 용기를 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야
좋아한다, 서달미
이 편지를 쓰는 나의 지금이
어느 순간보다도 설레고 빛나고 있음에 너에게 감사하며
친구가 되고 싶은 남도산으로부터
너랑 진짜 동갑 맞아?
어? 비정상적으로 조숙한데?
아빠 때랑은 달라
요즘 애들 다 조숙해
나 봐 봐
야, 할머니가 전해 줬다고?
응, 할머니 가게 앞의 벚꽃나무 알지?
거기 새집에다가 답장 보내 달래
낭만적이지?
아, 근데
근데 왜 만나자고 안 해? 어?
좋으면 만나면 되지
아빠 땐 그래도 됐겠지
요즘 그러면 스토커 소리 들어
도산이 얘 괜찮네, 젠틀해
답장할 거야? 어?
글쎄
뭐, 얘가 워낙 나이스하잖아
무엇보다 나 때문에 거의 죽고 못 사는 느낌이니까
(어린 달미)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답장 한번 써 주지, 뭐
[어린 달미의 신난 신음]
(원덕) 야, 금방 튀겼다
- (여학생) 감사합니다 - (원덕) 응
[남학생들이 감사 인사를 한다] (원덕) 응, 그래, 맛있게 먹어라, 또
야, 그만 일어나, 공부해! [남학생4의 신음]
뭐 한다고 맨날 거기서…
어? 아이고, 네가 웬일이냐?
(청명) 달미 답장 갖고 왔어요
(원덕) 벌써 썼대?
아이고, 참 나
[원덕의 웃음]
아차, 저, 저 나무에다 넣어 놔
남도산이가 거기다 넣어 달랬어
어머니, 고마워요
덕분에 달미 기운 차렸어요
- 티 났냐? - (청명) 네
저한테만
[안도하는 숨소리]
달미는 뭐래? 믿는 눈치야?
아유, 다행이네
[함께 웃는다]
- 어머니 - (원덕) 어?
저 진짜 죽어라고 열심히 할게요
(청명) 그래서 인재 엄마랑 인재 다시 다 데리고 오고
내가 우리 어머니
건물주 만들어 드릴게요
맨날 지르기만 하고
너 그러다 사기꾼 된다
뭐, 일단 지르고 기를 쓰고 수습하면 되죠
1년만 기다려 주세요
1년만
[잔잔한 음악]
(원덕) 알았어, 빨리 저기다 갖다 넣고 가
[청명의 웃음] 가
(어린 달미)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달미) 언니!
(어린 인재) [신난 목소리로] 달미야!
"배달"
(청명) 짠!
(어린 달미) [놀라며] 대박
- (어린 인재) 달미야 - 언니!
[청명이 설명한다]
원 클릭 한 번으로
저희의 목표입니다
(은행원1) 오래 기다리셨죠?
(어린 인재) 도산이었나? 걘 만나 봤어?
(어린 달미) 아니, 아직
(어린 인재) 1년이 다 되도록 펜팔만 한 거야?
펜팔만으로도 진도 다 나가더라고 플라토닉하게
왜, 엄마랑 아빠도 펜팔로 시작했다잖아
그때랑 같나
아참, 언니
이거 깜빡했더라
(어린 인재) 그냥 버리지
(어린 달미) 아빠가 준 선물을?
달미야,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엄마
재혼했어
[차분한 음악]
뭐?
(어린 인재) 그리고 우리 오늘 미국 가
새아빠가 그쪽으로 발령이 나서
새아빠?
응, 엄청 부자야
(어린 달미) 말렸어야지
(어린 인재) 어떻게 말려, 엄마가 좋다는데
아빤 어쩌고
엄마랑 언니 다시 데려오겠다고 기를 쓰고 일한단 말이야
(어린 인재) 그게 싫어
왜 사는 데 기를 써야 돼? 그냥 좀 살면 안 돼?
언니
새아빠 보니까 사는 게 되게 쉽더라?
(어린 인재) 뷔페도 쉽고 여행도 쉬워
옷 사는 것도 쉽고 남 일 같던 유학도 내 일처럼 쉬워
근데 아빠 봐 월급날 겨우 치킨 사 오잖아
그거 먹으면서 세상 맛있는 척 좋아하는 척하는 거
그거 너 안 질리디? 난 물리던데
기름 전 내 맡기도 싫어 진절머리가 나!
그래서 안 말렸어?
쉽게 살겠다고?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두고 봐, 그게 겨우인가
(어린 인재) 너도 그때 나처럼 엄마 따라왔어야 돼
너 선택 한참 잘못했어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시간이 말해 줄 거야 누구 선택이 맞았는지
(어린 인재) 그리고
나 서인재 아니고 원인재다
네 언니도 아니고
(어린 달미) 야, 서인재! [오르골에서 잔잔한 곡이 흘러나온다]
(어린 인재) 악! 뭐야!
- (어린 인재) 놔! 야, 이거 놔! - 야, 이거 놔!
[어린 인재의 비명]
(어린 인재) 이거 놔!
뭐 하는 짓이야!
(어린 달미) 너나 놔!
(어린 인재) 뭐 하는 짓이야!
(인재) 좋아 보이네, 걱정 많이 했는데
(달미) 걱정을 왜 해 부족한 거 없이 잘 살고 있구먼
할머닌, 건강하시고?
어, 몇 년 전부터 검은 머리 다시 나잖아
(달미) 회춘하시나 봐
아직도 할머니한테 빌붙어 사니?
[흥미진진한 음악] (원덕) 달미 너 때문에 수챗구멍 또 막혔잖아
이럴 거면 월세 내고 살아 이 계집애야
[한숨]
세상 사람들이 다 언니 같은 줄 아나 봐?
무슨 소리야?
언니
그 새아버지한테 빌붙어서 창업했잖아
[컵을 탁 내려놓는다] 그러니까
창업이란 게 혼자선 힘들더라고
(인재) 그러는 넌
강연에 기웃거리는 거 보니까 창업에 뜻이 있나 본데?
있지, 당연히
준비 중이야
파트너는 있고?
설마 할머니?
(달미) 할머니, 나 회사 때려치우고 핫도그 2호점 내 볼까?
너 핫도그로 한번 맞을래? 쯧
아니
있어, 다른 사람
(달미) 능력 있고, 똑똑하고, 유망한
그러니까 누구, 이름이 뭔데
있어, 언니 모르는 사람
언니 미국 언제 들어간다고?
음, 이달 말쯤?
(달미) 어
아직 답 안 했어
(인재) 능력 있고, 똑똑하고 유망한 친구 이름이 뭔지
이름?
도산이야, 남도산
남도산?
이름이 익다?
혹시 옛날에 그 펜팔?
이름을 기억해?
그럼
네가 자랑을 그렇게 해댔는데 까먹는 게 이상하지
(인재) 만나는 본 거야?
설마 아직도 플라토닉 뭐, 그런 거니?
하, 플라토닉은 무슨
에로스적으로도 만나고
(달미) 비즈니스적으로도 만나고
어제도 만났는데?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 효과음]
음…
그 친구가 그렇게 똑똑하고 유망해?
그럼
수학 올림피아드 최연소 금상 출신이잖아
[컵을 탁 내려놓는다] [달미의 헛기침]
(인재) 데려다줄게
(달미) 아니야
나 이따가 그, 도산이가 픽업 오기로 했어
그래?
너 혹시 다음 주 금요일에 시간 돼?
금요일? 왜?
우리 회사에서 네트워킹 파티가 있거든
네가 창업에 뜻이 있으면 인맥 넓히기 좋은 자리일 거야
뭐, 봐서
(인재) 참, 도산 씨랑 같이 와라
도…
도산이는 왜?
왜긴, 10년 넘게 널 아끼고 좋아해 준 남자 친구인데
인사 좀 하고 싶어서 그러지, 언니로서
아…
됐어, 그, 마음만 전할게
(달미) 낯가리는 친구라 그런 자리 불편해해
그래, 그럼
들어가
[밝은 음악]
고마워
뭐가?
난 늘 의심했거든
그때 내 선택을
근데 이제 그럴 필요 없겠다
무슨 소리야?
(인재) 까진 구두에 매직 칠해서 신고
없는 남자 친구까지 동원해 가면서 창업 운운하는 널 보니까
지금 네 처지가 어떤지 빤히 보이네
[어이없는 숨소리]
- 내 처지? - (인재) 할머니한테 빌붙어 살면서
회사에서 공 없는 야근이나 하면서
(인재) 뭐, 최저 시급만 못한 월급 받으며 살겠지
고마워, 다른 선택을 보여 줘서
덕분에 내 선택
의심할 일은 없겠다, 이제
[자동차 시동음]
출발하죠
[타이어 마찰음]
[자동차 경적]
[거친 숨을 내뱉는다]
무슨 짓이야?
그 네트워킹 파티
시간이랑 장소 줘 봐
도산이랑 같이 갈게
[헛웃음]
[버스 카드 인식음]
아…
미쳤구나, 서달미
허세도 정도껏 떨어야지
왜 그랬니, 달미야
[짜증 섞인 신음]
[발랄한 음악]
왜 저래?
(달미) 괜찮아요, 제정신이에요
[비명]
오, 오, 뭐야, 뭐 하는 거야?
얼씨구?
[웃음]
[달미의 웃음]
[지평의 웃음]
미쳤나?
[한숨]
[숨을 들이켠다]
아픈가?
어?
[타이어 마찰음]
(달미) 나 왔어요
(원덕) 왜 또 왔어?
[차분한 음악] 회사 쉬는 날은 그냥 쉬어 안 도와줘도 돼
(달미) 도와주긴
쥐꼬리만 한 월급에 쥐똥만 한 시급 보태려고 온 거구먼
나 시급 꼭 챙겨 줘요
에이그, 계집애 말본새하고는, 에이그
(달미) 할머니, 그…
도산이 말이야
또 도산이 타령이야? 응?
(원덕) 지겹지도 않냐?
벌써 15년이다, 15년, 에이그
할머니는 도산이 본 적 있댔지?
봤지
(원덕) 똑똑하고 잘생기고
아주 팔자 좋게 생겼지
너 이 할미 못 믿어?
믿어
믿는데
오늘따라 도산이가 보고 싶네
(달미) 딱 하루만이라도
왜
무슨 일 있었어? 어?
없었어
좋네요, 여기로 할게요
(중개인2) [놀라며] 아유, 좋은 부모님을 뒀네, 응?
등록금에, 오피스텔도 전세로 떡하니 얻어 주시고, 어?
아, 저, 계약 어떻게 할까?
그, 부모님 오시면 하는 걸로?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세요
그럼 계약은 누가
(중개인2) 아니, 저, 돈, 돈, 돈은 누, 누가…
계약은 제가 합니다 돈도 제가 내고요
아휴
아직 학생 같은데
돈은 있고?
네, 있습니다
(원덕) 이 돈 몽땅 찾아 주세요
(은행원2) 아예 해약하시게요?
(원덕) 예, 현금으로 부탁합니다
(은행원2) 네, 일단 통장 정리부터 하고 도와드릴게요
근데 왜 갑자기 해약을…
[기계 작동음]
아들이 사업하다가 집을 담보 잡혔거든요
이달에 이자 못 막으면 집에서 쫓겨난대서
- 아, 네 - (원덕) 예
고, 고객님?
이걸 다 현금으로 찾으신다고요?
예
8천 정도 되는데 이걸 다요?
8천?
8백 아니고요?
8천만 원인데요?
[놀란 숨소리]
주님
아이고, 감사하지만 이자 열 배는 과분합니다
(은행원2) 저, 이자 아닌데
고객님, 혹시 주식 하세요?
- 주, 주식… - (은행원2) 네
이거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낸 것 같은데
아, 그럴 리가
[잔잔한 음악]
설마 그 순딩이가…
(은행원2) 어떻게 할까요, 고객님?
이거 다 해약할까요?
예
(은행원2) 네, 잠시만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왜 이래, 해약이라니
(청명) 어머니, 이게 뭐예요?
[거친 숨소리]
어머니, 이 돈 이거 어, 어디서…
일단 그걸로 급한 불은 꺼 봐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혼자 버틸 수 있습니다
(원덕) 그냥 주는 거 아니야
투자야, 계약서 쓰고 나한테 지분도 줘
일찍 투자할수록 지분 많이 주는 거라며
어미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제대로 챙겨 줘
고맙습니다
[휴대전화 진동음] (청명) 엄마, 잠시만요
네, 여보세요?
예, 전데요
네? 누구요?
아니요, 아니요
아, 지금 가능합니다, 예 어디로 가면 됩니까?
어머니, 어머니, 저 먼저 좀 빨리 좀 가 볼게요 [원덕이 대답한다]
아, 예, 예 그, 주소 좀 찍어 주시겠어요?
아, 예, 근처네요 예, 금방 갈게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예, 갈게요
[버스 카드 인식음] [청명의 거친 숨소리]
[타이어 마찰음] [사람들의 놀란 신음]
[차분한 음악]
아, 죄송합니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좀 너무 급해 가지고
(남자2) 병원 가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머리에 피 나는데
아니요, 저 정말로 괜찮습니다, 예
지금 시간이 너무 없어 가지고 예, 죄송합니다
저, 저 진짜 멀쩡합니다, 아니
저 심지어 그, 좋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예
(청명) 잠깐만요, 예, 잠깐만요!
아, 죄송합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엄청 떨리네요
(선학) 아, 그…
꼭 오늘 아니어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예
자, 시작하겠습니다
[리모컨 조작음] (청명) 저희 배달 닷컴은
전국의 배달 음식 전문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 유저가 원 클릭으로 - (선학) 대표님
사업 계획서 이미 다 검토했습니다
아, 네
(투자자1) 네, 저흰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 네? - (투자자2) 앞으로
(투자자2) 모바일 기반까지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점
마음에 들고요
- (청명) 감사합니다 - (선학)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학) 그 점만 저희 생각과 같다면
투자를 진행할까 합니다
[리모컨을 툭 내려놓으며] 네, 말씀하십시오
(선학) 지금, 음…
사용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씁, 어느 부분에서 수익을 낼지 불분명하네요?
유료화는 아직입니까?
네
이미 대표님 돈은 거의 다 태우셨을 텐데
언제까지 유저 확보만 하실 겁니까?
아…
전 아직 수익보다는 유저 확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자2) 그럼 대표님이나 투자자나 한참 더 고생해야 된단 뜻인데
죄송합니다만 그 부분은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의 수익만 좇다가 유저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망망대해에서 표류 중이시네요
(선학) 그런 대표님들은 둘 중 하나죠
목말라 죽거나
아, 저, 굶어 죽는다고요?
아니요
살아남거나
[희망찬 음악]
아무리 갈증이 나도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되죠
(선학) 비가 올 때까지 버텨야 살아남죠
창업 초기 단계에서 눈앞의 수익을 좇는 건
바닷물을 마시겠다는 소리죠
사업 계속 진행하시죠
다음 주 중으로 바로 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네
예 [헛기침]
(청명) 감사합니다, 예
와…
저한테도 이런 날이 오기는 오네요, 예
아, 아, 코피
[청명의 웃음]
아, 제가 너무 기뻐서 이…
코피가 다 납니다, 예
축하해요
(청명)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덕) 아이고
아, 순딩이 왔냐? 마침 잘 왔다, 야, 이것 좀 같이 들자
순딩아, 야! 이것 좀 같이 들자니까, 저…
[힘겨운 숨소리]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야, 어디 가?
서울 갑니다
서울은 갑자기 왜?
대학 붙었거든요
그동안 거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가는 법이 어디 있냐?
그러는 할머니는!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 (원덕) 뭐가? - 그거 할머니 돈 아니고 내 돈이에요
(어린 지평) 통장 명의만 할머니 거지 돈은 내 거라고!
내가 투자해서 불렸으니까
대단하네
1년 동안 열 배는 불렸던데
내가 불린 거 알면서 꿀꺽했어요?
그래서 은행에 같이 따라와 줬냐?
내 명의 빌리려고?
그건…
[차분한 음악]
네! 그래서 따라갔습니다
내 나이가 부모 없으면 얼마나 애매한 나이인 줄 알아요?
이제 어른이니까 꼴랑 200 쥐여 주고 보육원에서 나가래
그 돈으로 먹고, 자고, 입고 다 해결하래!
근데 은행 가면 애라고 계좌도 안 터 줘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니고
이런 거지 같은 나이가 어디 있어
(어린 지평) 근데
호구 할머니가 떡하니 나타났네?
그래서 따라갔습니다
뭐, 할머니가 고마워서 간 줄 알았어요?
그런 착한 짓은요
여유 있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괜히 착하네, 순하네
그런 헛소리에 놀아나 갖고 되지도 않는 편지나 써대고
아유, 내가 등신이지
내 돈 내놔요, 얼른!
어딜 가요, 아저씨한테 가서 내 돈 뱉으라고 해요, 당장!
[어린 지평의 성난 신음]
(원덕) [힘주며] 내가 네 돈을 왜 가져
그럼…
(어린 지평) 아저씨한테 준 돈은…
내 돈 줬어
[잔잔한 음악]
안녕히 계세요
[휴대전화 진동음]
어, 아빠
어떻게 됐어?
(청명) 달미야
아빠 투자받기로 했다
정말? 대박이네
아빠, 축하해
(청명)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빠가 꼭 성공해서
언니랑 엄마 다시 다 데리고 올게
왜?
너 아빠 말 못 믿겠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
잠깐만, 잠깐만, 달미야
음…
그 전에 아빠 얘기를 좀 들어 볼래?
(청명) 너 아빠 말 들으면 아마 마음이 바뀔 거야
아빠는 말이야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막 상상이 된다?
봐 봐
요즘에 핸드폰 쓰는 사람들 엄청 많지?
- (어린 달미) 어 - (청명) 자
그 핸드폰이 점점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그걸로 사진도 찍고
뭐, 음악도 듣고 인터넷도 하고 그러면?
참 좋겠지?
야, 인마
참 정도가 아니야
세상이 무지막지하게 달라진다고
(청명) 아빠는 말이야
그, 맞아서 회사 그만둔 거 아니야
그런 세상을 준비하려고 그만둔 거야
어때
아빠 대박 나겠지?
솔직히 말해도 돼?
야, 너 아직도 아빠 말 못 믿겠어?
음, 아빠는 말이야
믿어
대박 날 것 같아
야, 인마
근데 왜 자꾸 그렇게 울어 아빠 속상하게
안 울어
그냥…
치킨
치킨이 먹고 싶어서
걱정하지 마, 어?
콜라도 사 갈게, 어?
치킨 까짓것 그거 얼마 안 해
아빠가 그 정도 사 줄 돈은 있어, 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
언제까지?
음…
평생
그러니까 먹고 싶을 때 바로바로 말해, 응?
걱정하지 마
(어린 지평)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해서 귀한 줄 몰랐어
(어린 지평)
(어린 지평)
(어린 지평) 더 이상 후회로 나의 지금을 채우지 않기로
(청명) 좀만 기다려
아빠가 치킨 사 갈게
아빠
어, 왜?
사랑해
(청명) 너
치킨 사 준다니까 아빠 사랑해?
아니, 안 사 줘도 사랑해
알지?
내가 아빠 진짜 사랑하는 거
알지
하, 우리 딸
아빠도 사랑해, 응
[통화 종료음]
[어린 달미의 한숨]
그 엘리베이터 운행 안 합니다
- 이쪽 거 타시죠 - (청명) 아, 네
[엘리베이터 조작음]
(선학) 아
그, 세부 투자 조건은 다음 주 중으로 조율해 봅시다
네 [엘리베이터 도착음]
[엘리베이터 조작음]
[엘리베이터 음성] 내려갑니다
그…
(선학) 어어, 또, 또 코, 코피 나요
(청명) 어, 아…
(선학) 아, 저, 이, 이, 이거라도 써요
(청명) 아, 예
아유, 감사합니다
이거 나중에 빨아서 드릴게요
사업하기 참 힘들죠?
(청명) 예, 조금
아니, 저, 솔직히 좀 많이 힘듭니다
성공하면 대표님 소리 듣고
실패하면 사기꾼 소리 듣고
이 바닥이 참 무섭죠
[코를 훌쩍이며] 예, 그러니까요
아휴, 맨날 넘어지고 깨지고
아휴, 이 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모랫바닥이었으면 참 좋겠어요
그럼 마음껏 사업할 텐데
모랫바닥요?
아…
예전에 우리 딸내미가 그네를 타다가 무릎이 다 깨졌거든요
애 엄마가 다시는 그네 타지 말라고 난리를 막 치는데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요
그네 밑에 모래 좀 깔아 달라고
[따뜻한 음악]
[청명의 힘주는 신음]
[청명의 웃음]
(청명) 달미야
(선학) 그네가 재밌었나 보네요
(청명) 예, 그러게요
그래서 모래를 잔뜩 깔아 줬더니
아주 신나서 잘 타더라고요
이 바닥도 모랫바닥처럼 푹신하면
저도 신나서 마음껏 사업할 텐데
생각보다 딱딱하고 무섭고 그러네요
알죠
[엘리베이터 음성] 문이 열립니다
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봅시다
아, 네
(청명) 아, 저, 대표님
이 근처에 맛있는 치킨집 있습니까?
그놈의 꼬질꼬질한 운동화 내내 걸렸는데 이제 사 주네
신어 봐라
찔리라고 주는 건가?
뭔 소리야?
신발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말 몰라요?
(어린 지평) 나 이 신발 신고 도망가고 이 돈으로 부자 될 거예요
할머니보다 훨씬 더
그럼 할머니 억울하지 않겠어요?
(원덕) 음…
억울하겄지
화병 나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배알이 배배 꼬이겠지?
그럼 어떡해요?
지금이라도 돈 도로 드릴까?
아이고, 순딩이 끝까지 반항 참 알차게 한다
[원덕의 힘주는 신음]
약속해
지평이 너 나중에 성공하면…
(어린 지평) 됐네요, 계산할 거면 지금 해요
나중에 얼마나 불려서 받으려고
성공하면 연락하지 마
부자 되고 결혼해도 연락하지 마
잘 먹고 잘 살면 연락하지 마 나 배알 꼬이기 싫으니까
대신
힘들면 연락해
[잔잔한 음악]
(원덕) 저번처럼
비 오는데 갈 데 하나 없으면 와
미련곰탱이처럼 맞지 말고 그냥 와
열쇠 어디 있는지 알지?
[어린 지평의 헛기침]
(직원) 서울행 버스 출발합니다
(원덕) 버스 왔다
(어린 지평) 할머니
소원 없어요?
(원덕) 아, 뭐래, 안 들려, 쯧
소원 얘기해 봐요, 소원
(어린 지평) 나 빚지고는 도저히 못 살아
알잖아요, 내 성격 깔끔한 거
그러니까 소원 하나만 말해 봐요
아, 필요 없다니까, 쯧
아, 얼른 타
[어린 지평이 흐느낀다]
건강하셔야 돼요
[버스 카드 인식음]
[사람들의 놀란 신음] [남자3의 당황한 신음]
(남자3) 아, 괜찮아요? 아유
(청명) [말을 더듬으며] 아, 예
[어눌한 말투로] 치킨…
(남자3) 아, 예, 여기요
(청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손이…
이, 내 손이 왜…
왜 이러지?
(남자3) 아이고, 술 많이 자셨네
아, 나 술 안 먹었는데…
(남자3) 아유, 만취네, 만취
[웃으며] 아이참
[청명의 당황한 신음]
이게…
이게…
[잔잔한 음악]
(달미)
(달미)
(달미)
[어린 지평이 흐느낀다]
(달미)
(달미) 쓸쓸한 계절이었을 거야
[버스 문이 쉭 열린다]
(남자3) 하, 이러다 종점까지 가시겠네
(달미)
(달미)
(달미)
[잔잔한 음악] (달미)
(달미)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달미)
[원덕의 힘겨운 탄성]
아휴, 으악
(원덕) 아유, 힘들어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고마워라
아이고, 고마워라
저예요, 할머니 [원덕의 거친 신음]
누구?
순딩이냐?
[놀란 숨소리]
(원덕) 아, 왜 왔어? 어?
어디 아파?
아, 또 갈 데가 없어? 어?
[밝은 음악] [원덕의 반가운 숨소리]
(달미) 그때는 있다고 믿었고
지금은
있다고 믿고 싶은 도산아
보고 싶다
"로딩"
오, 됐다
됐다!
[도산의 탄성] (용산) 됐어?
오! 됐어?
됐다! 와! [철산의 놀란 탄성]
(철산) 오, 겁나 빨라!
- (용산) 됐어! - (철산) 와!
[용산과 철산의 신난 탄성]
- (용산) 너 해냈어 - (철산) 너는 진짜 천재여, 너는!
(철산) 야, 야!
- 남도산! 남도산! - 남도산! 남도산!
- (용산) 남도산! 남도산! - (철산) 남도산! 남도산!
(달미) 그래서 나는 이제
남도산
너를 찾아야겠다
[밝은 음악]
(청명) 아빠는 말이야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막 상상이 된다?
봐 봐
요즘에 핸드폰 쓰는 사람들 엄청 많지?
어
그 핸드폰이 점점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청명) 그걸로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카메라 셔터음]
뭐, 인터넷도 하고 그러면?
참 좋겠지
야, 인마
참 정도가 아니야
(청명) 세상이 무지막지하게 달라진다고
[카메라 셔터음]
(달미) 도산이 찾으려고
(지평) 걔는 우리가 만들어 낸 애잖아요 만든 애를 어떻게 찾아요
[도산의 당황한 탄성] [소란스럽다]
차라리 둘이 안 만나는 게 나아요
(원덕) 남도산 찾았대
(지평) 한 시간만 편지 속의 남도산인 척해 줘요
(철산) 배팅 한번 세게 해 봐
저희 삼산텍을 샌드박스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달미) 도산이 넌 긴 시간 위로가 돼 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도산) 많이 기다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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