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12
[차분한 음악] (용산) 우리 형한테도 이랬습니까?
이렇게 쉽게 안 된다 단정했어요?
- (철산) 형? - (사하) 무슨 소리예요, 이게?
(지평) 쉽게 단정한 거 아닙니다
이거 전형적인 에크하이어입니다
에크하이어?
에크, 크…
그, 그게, 그게 뭔디요?
당신네 회사 가치를 보고 인수하는 게 아니라
엔지니어를 고용하려는 거라고요
(지평) 계약이 끝나는 순간
당신네 팀은 바로 공중분해 됩니다
고, 공중분해요?
[자동차 리모컨 조작음]
자, 다 됐네요
(법무 팀 직원) 나머지 주주분들은 서면 진행 하겠습니다
(달미) 네, 알겠습니다
우리 투스토의 가족이 된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도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친 숨소리]
"투스토"
[엘리베이터 조작음]
[엘리베이터 조작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달미) 할머니, 이걸 누르면 영상 통화가 되는 거야
샌프란시스코가 여기보다 16시간 늦거든?
그러니까…
아니다, 그냥 계산하기 복잡하니까 영실이한테 물어봐
영실아, 샌프란시스코가 지금 몇 시지?
[인공 지능 음성]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재 시간은 오전 6시 8분이에요
알았지?
[잔잔한 음악] (달미) 자, 그럼 됐고, 이제 약
이 약이
[약통을 툭 내려놓는다]
[한숨]
할머니, 나 그냥 미국 가지 말까?
거,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
(아현) 너 없는 동안 내가 잘 보살필게 눈도 잘 살피고
어머니 때문에 할머니가 더 걱정이네요
내가 왜
[아현의 힘주는 신음]
(아현) 어머니, 이거 어머니 약 맞죠?
하나는 혈압 약이고 하나는 콜레스테롤 약
- 아니, 바뀌었어 - (아현) 응?
아니, 글씨가 왜 이렇게 조그맣게 돼 있어
(아현) 하나도 안 보이네 [달미의 한숨]
(달미) 그게 왜 안 보여요
뭐야, 왜 이렇게 글씨가 작아?
(원덕) 작기만 해?
다 똑같아서 맨날 헷갈려
그러네, 헷갈리게 돼 있네
(금정) 샌프란시스코는 겨울 날씨가 어때?
- 겨울옷 챙겨야 되지? - (도산) 네
딱 요렇게 챙겨 가면 될 거 같아요
(금정) 샌프란시스코에 그 친구도 같이 가는 거야?
서달미라고 했나?
아…
(도산) 네
(금정) 그 친구도 너랑 같은 마음인 거야?
잘 모르겠어요, 물어볼 수도 없고
근데 너무 알고 싶어요
그 친구가 시그널을 줬는데 네가 못 알아먹었겠지
(금정) 네가 눈치가 좀 없니?
응? 아닌데, 저 눈치 빠른데
저 애들이 진짜 눈치 빠르다고…
나 네 엄마야, 어디서 수작이야
죄송합니다
[발랄한 음악]
(도산) 그러면
어떻게 알아봐요, 그 시그널?
(금정) 음…
- (금정) 내가 정량적으로 설명해 줄게 - 네
- 좀 있으면 네 생일이지? - (도산) 네
네 생일을 그 친구가 기억하면 일단 30%
30%
그날 만나자고 하면 50%
50…
안 되는데
저 매년 생일은 용산이, 철산이랑 보내기로 했거든요
그날 걔들 만나면 나 너 호적에서 지운다
죄송합니다
그날 특별히 그 친구가 예쁘게 하고 왔다
그럼 70%
70%? 어?
맨날 이쁜데
특별한 건 어떻게 알아봐요?
- 맨날 이뻐? - (도산) 네, 진짜, 어…
맨날 맨날 이뻐요, 막
1분, 1초도 안 빼고
(금정) 아유, 아유 이런 날이 오네, 이런 날이 와
나머지는 네가 채울 수 있겠네
[휴대전화 진동음] 아이, 진작 이렇게 알려 주시지
아, 이제 감이 좀 오네요
(달미) 도산아, 자?
그 친구구나
네
(도산) 안 자, 아직 자기엔 이른 시간이지
보통 주중엔 10시 반에 자고 주말엔…
[금정이 도산을 툭 친다]
지워
- 지워요? - (금정) 응
[익살스러운 음악]
그 옷 벗어
(도산) 네
[도산의 아파하는 탄성]
(금정) 너 자는 시간이 궁금해서 문자 보냈겠니?
콜백 하란 소리잖아!
[도산의 신음] 당장 전화해
네
(금정) 아유, 아유, 갈 길이 멀다, 멀어
[금정의 한숨]
[문이 탁 닫힌다]
[신음]
[휴대전화 진동음]
- 어, 안 잤어? - (도산) 응, 무슨 일이야?
메일 확인 좀 해 볼래?
메일?
(달미) 아니, 우리 할머니 약 챙겨 주는데
비슷하게 생겨서 나도 막 헷갈리는 거야
(도산) 응
[잔잔한 음악] [달미가 숨을 들이켠다]
(달미) 그걸 우리 눈길이 구별해 주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데
우리 눈길 서비스를 일반 사람들로 확장하잔 뜻이야?
어
배리어프리를 거꾸로 하는 거지
와…
아,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이용자를 확장시킬 수 있는데
(달미) 그렇지?
그럼 수익 모델도 생겨
어때? 만들 수 있겠어?
해야지, 할 수 있어
(도산) 어, 약 영상이랑 약 이름이 태깅된 데이터베이스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어, 약 이름들이 온톨로지로 돼 있으면
온톨로지?
(도산) 아, 온톨로지가 뭐냐면
약들에 대한 설명 같은 거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건데
투스토에서 이 아이디어를 좋아할까?
(도산) 좋아하지
안 된다고 하면 설득하자
(달미) 사실 기획서 초안 대충 써 봤는데
(도산) 벌써?
와, 진짜 빠르다, 빨라
(달미) 아, 투스토 고맙네
돈 걱정 안 하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좋다
그러게
(달미) 미국은 차 없으면 못 다닌다잖아
씁, 가자마자 차부터 사야 되나?
(도산) 음…
둘 다 사면 낭비지, 어
나만 살게, 나랑 카풀 하면 되지
아, 좀 부담스럽나?
아니야
나야 고맙지
(달미) 주택 청약은 어떻게 되나?
외국 가면 정지되나?
나 한 6년 부었는데
도산아, 자?
아니
안 자, 멀쩡해, 어
너 내가 준 박찬호 사인 볼 기억나?
(달미) 어
(도산) 그거 내가 왜 너한테 줬는지 알아?
달미야
자?
[새근거린다]
거기 쓰여 있는 꿈이
되게 막연했거든
[힘주는 숨소리]
(아현) 어머니, 오늘부터 저랑 같이 가요
(원덕) 아, 가긴 뭘 가
아, 일 보태지 말고 너 그냥 여기…
야
[흥미진진한 음악] 너 그 꼴이 뭐냐, 어?
왜요? 풀착장 한번 해 봤는데
[원덕의 한숨]
- (달미) 다녀오겠습니다 - (원덕) 어
엄마
엄마?
(아현) 너 지금 엄마라고 했니?
어, 어머니가 아니고?
어머니, 거꾸로 하셨어요
뭐를?
마스크
어쩐지 코가 답답하더라
(원덕) 아, 야, 일로 줘 봐, 일로 줘 봐 아유, 이렇게 해 봐
[원덕의 못마땅한 신음]
- 얘가 좀 어려워 - (원덕) 조용히 해, 쯧
- (달미) 다녀올게요 - (원덕) 어, 그래
(원덕) 아이고, 얘 거는 이거 되지도 않아 그런데, 이렇게
[문이 철컥 닫힌다]
(달미) 어? 도산아
(도산) 어, 이런 우연이
우연?
아, 여기 근처에 되게 괜찮은 영어 회화 학원이 있더라고
거기서 상담받고 오는 길인데, 와…
이런 우연이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달미) 이 근처에
영어 학원이 있다고?
응, 있더라고
[밝은 음악]
(달미) 있구나, 몰랐네?
거기 계속 다닐 생각이야?
(도산) 어? 그냥 좀 봐서
(달미) 아, 맞는다, 너 다음 주 월요일 생일이지?
30%
어?
아니, 어, 내 생일 맞아, 응
그날 뭐 해?
별일 없는데?
생일인데 별일 없으면 안 되지
그날 만날까?
그래
50%
(도산) 50%
- (달미) 뭐 해? - 아…
난 아바라
어? 나, 나도 아바라 커피는 아바라지
(종업원) 아이스바닐라라테 두 잔 나왔습니다
(사하) 감사합니다
뭐, 뭐, 뭐예요?
(달미) 왜 두 잔일까?
(도산) 사하 님은 혼잔데
(사하) 원 플러스 원이잖아요
하나 공짜인데 아무나 주면 좋잖아
그럼 제가 아무나 해도 되죠?
[발랄한 음악] (도산) 감사합니다
(사하) 도산 님 아아 마시지 않나?
아아보단 공짜를 더 좋아하죠
- 달미 너 아아지? - (달미) 응
(도산) 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종업원) 네
도산 님 눈치 없단 소리 많이 듣죠?
소름
나 얼마 전에 어머니한테 그 소리 딱 들었는데
[도산의 놀란 신음]
- 나 진짜 소름 돋았어 - (달미) 허, 대박
[도산의 놀란 신음]
(달미) 이쪽도?
[함께 놀란다]
안 그러면 나 어디 아픈가? [달미의 놀란 신음]
한 쌍의 바퀴벌레들이다, 진짜
(달미) 아, 사하 님
우리 지금부터 계속 영어로만 대화할까요?
(도산) 응?
(달미) 우리 실리콘 밸리 가면 계속 잉글리시만 써야 되잖아요
(도산) 좋은 생각, 어
미리 연습할 겸 사하 님 발음
프러넌시에이션 예술이던데, 음
여러분한테만 좋은 생각이죠
난 별로네요
달미 님, 혹시 투스토 쪽에서 연락받은 거 없어요?
없는데, 왜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잠깐만요, 먼저들 가세요 나 갈 데가 있어서
- (도산) 어? - (사하) 가요
(이수) 채용 공고 시안 메일로 보냈는데 검토하셨어요?
(인재) 들어가서 바로 검토할게요
(달미) 좋은 아침
[인재의 한숨]
너 보기 전까진 좋은 아침이었는데
(이수) 축하해요
투스토로 좋은 가격에 인수됐다고 들었어요
감사해요
언니는? 축하 안 해 줘?
알잖아, 나 빈말 못 하는 거 [차분한 음악]
내 기준 별로 축하할 일로 안 보여
- 질투야? - (인재) 충고야
그래? 난 질투로 들리는데
내 선택이 틀렸다고 우기고 싶은 거 아니야?
넌 내가 15년 전 일에 연연해서 이러는 걸로 보여?
어
언닌 15년 전의 남의 추억까지 훔치는 사람이잖아
[한숨]
그래, 미안하다
그 잘난 추억 반납할게
(인재) 근데 너 언제까지 고리짝 같은 옛날 일로 들러붙을래?
너처럼 뒤 보고 옆 보고 달리면 처져
앞만 보고 달려도 될까 말까야
이것도 질투로 들리니?
어
충고로 듣기엔 언성이 너무 높네
[한숨]
그래, 이게 질투인지 충고인지 오늘 안에 밝혀지겠네
(달미) 무슨 소리야?
(알렉스) 안녕하세요, 서 대표님
원 대표님도 같이 계셨네?
(달미) 어,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두 사람 요즘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잘 어울려 다니네?
다시 사귀는 건가요?
음, 글쎄, 한 50%쯤? 네
(사하) 여유 있네?
한 팀장님 쪽 신경 안 쓰여요?
쓰이죠, 쓰이긴 하는데
하긴, 둘이 미국 가면 한쪽은 자연스레 정리되겠네
그래서 한 팀장이 말렸나?
[어두운 음악]
뭘 말려요?
이 인수 계약 문제 있다고 한 팀장이 찾아왔었어요
무슨 문제요?
에크하이어라고 계약 홀드하라고 했는데
용산 님이 말렸죠
(사하) 한 팀장님 핸드폰 뺏고 초 치지 말라고 엄청 화냈는데
몰랐어요?
[엘리베이터 도착음]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영어] - (알렉스) 안녕하세요 - (도산) 안녕하세요
(알렉스) 안녕…
[한국어] 무슨 일이야?
도산아
어?
[문이 달칵 열린다]
(동천) 팀장님, 팀장님 지금 삼산텍 난리 났어요
- 왜 - (동천) 알렉스가
서 대표랑 디자이너 해고시키고
개발자 셋만 실리콘 밸리로 데려간다고 통보를 했어요
이건 사기죠
팀을 인수한다고 하셨잖아요
계약서에 그렇게 썼던가요?
(도산)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팀 인수하신다고, 예?
말은 힘이 없죠
[도산의 거친 숨소리]
(알렉스) 안타깝게 생각해요
본사를 열심히 설득했는데
제 능력 밖이더라고요
(철산) 서 대표님하고 사하 님은 우리 눈길 서비스의 핵심 인물인디요?
아, 그, 눈길은 더 이상 업데이트 필요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알렉스) 난 삼산텍의 기술에 아주 관심이 많은데
사람 인식 정확도에 대해 좀 알 수 있을까요?
경량화랑 사람 인식 기술이 이슈잖아요
똑같은 사양으로 테스트를 해 보면
어느 쪽 성능이 더 좋은지 답이 나오겠죠
[헛웃음]
그러고 보니
데모데이 때 기술 질문만 하셨네요
(달미) 서비스나 비전에 대해선 묻지 않으셨죠
정말 눈길 서비스를 유지할 생각은 있으십니까?
글쎄, 뭐, 그것도 본사 설득 중입니다
[어이없는 숨소리]
진짜 한 팀장 말이 맞았네
(철산) 그럼 진짜 개발자들 고용하려고 인수한 겁니까?
[영어] 이봐요
[한국어] 아, 좋게 생각해요
(알렉스) 좋은 가격에 인수돼서 다들 큰돈 만졌고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을 쌓을 그 기회도 생겼고
냉정하게 생각해서 나쁜 점이 하나도 없어요
(도산) 달미야
나 이 계약 엎을래
없던 걸로 해요
(알렉스) 아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한 사인이 없어지진 않죠
(도산) 받은 돈 그대로 뱉어 내면 되잖아요
엎을게요
[헛웃음]
(알렉스) 아, 뭐, 엎어도 상관없는데
이 계약서상으로는 위약금이 발생합니다
얼마였지?
(법무 팀 직원) 인수 가격의 두 배입니다
[어두운 음악]
(용산) 두 배면… [철산의 헛웃음]
(철산) 60억?
[철산의 한숨]
(대명) 분위기 살벌한데요?
(이수) 인수하자마자 피바람이 부는구나
(정) 개발자들은요?
(대명) 개발자들만 실리콘 밸리에 데리고 가겠대요
나머지 다 버리고
(이수) 남도산이 계약 엎자니까 위약금으로 두 배 물어내래요
[정의 어이없는 숨소리]
대표님 말이 맞았네요
이번 인수 축하할 일 아니었어요
그래서, 재밌어요?
네?
(이수) 아, 아니…
(인재) 개발은 지금 외주 인력들을 내부로 들이는 쪽으로 하고
영업 맡아 줄 사람을 알아보죠
전략 기획 가능한 사람이면 좋고
[영어] 왔군요
(알렉스) [한국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 그랬는데
- (지평) 삼산텍을 해체한다고요? - (알렉스) 네
- 눈길도요? - (알렉스) 네
필요 없는 사업과 인력은
[입소리를 딱 내며] 정비해야죠
저쪽은 뭐라고 합니까?
하, 싸우자는 얘기가 아닌데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알렉스) 뭐, 계약을 엎겠다는 둥
와, 엄청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사인했고
지금 번복할 단계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예, 알죠
지금이야 호의로 덮고 넘어갈 수준이지만
여기서 더 엇나가면
그땐 저쪽이 많이 다쳐요, 아시죠?
아, 그러니까 잘 좀 상황을 이해시켜 주세요
(알렉스) 아, 멘토잖아
나 가요
[무거운 음악]
(철산) 네가 아니라고 했잖애, 어?
한 팀장 말 다 개뻥잉게 믿지 말라며 근데 이게 뭐여!
다 맞는 말이잖애, 이 새끼야
(달미) 이게 무슨 소리예요?
너 대체 왜 그랬냐?
한 팀장이 하는 말이니까
- 야! - (용산) 맨날 초 치는 소리만 하잖아!
(용산) 안 된다, 문제다, 자격 없다 기운 빠지는 소리밖에 더 하냐고
언제까지 그 인간한테 질질 끌려다닐래
그 인간 말이 무슨 법이라도 돼?
우리 멘토잖아요!
당신한테나 멘토고 좋은 사람이지!
(용산)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기나 합니까?
그 인간은요
우리 형, 형을 죽인 인간이에요
[어두운 음악]
우, 우리한테 하듯이
우리 형 사업을 사사건건 트집 잡으면서
투자자들 다 쫓아냈어요
자금줄 끊기니까 사업도 실패하고
형은…
지금도 그래!
결국 투자자 쫓아내는 소리 하잖아
그러니까 듣지 마요 우리 형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문이 달칵 여닫힌다]
(사하) 한 팀장님
한 팀장님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투자자로서 의견을 얘기한 건데 트집으로 들렸다면
유감이네요
유감?
- (용산) 사람이 죽었는데 유감? - (철산) 야, 야, 김용산!
그때 내가 당신 형의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으면
죄 없는 LP들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어요
쓴소리라도 솔직한 말을 해야 돼요
그게 내 일이에요
쓴소리?
(용산) 그럼, 당…
그럼 당신이 지금 이 상황을 좀 얘기해 봐요
감정 싹 다 지우고
그 잘난 쓴소리 한번 해 봐요 솔직하게
어…
계약은 끝났고
내 탓 네 탓 따질 상황 아니에요
(지평) 굳이 따지자면 계약서 확인 안 한 당신들이 가장 큰 책임이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철산의 헛웃음]
[한숨]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투스토가 30억이나 주고 인수한 건
눈길 서비스의 사업성이 아니라
눈길 솔루션의 정확도 때문이에요
- (도산) 그만해요 - 그래서 두 사람이 해고되는 거고
그만하라고! 씨…
저들이 남는 겁니다
[문이 달칵 열린다]
[차분한 음악]
그렇게밖에 말 못 해요?
상처 주자고 작정했냐고
그 정도 말이 상처면 사업하지 말았어야지
[도산이 씩씩거린다]
[거친 숨소리]
[서로 연신 힘준다]
(철산) 아, 사하 님, 그, 이…
위약금 안 내고 계약을 엎을 방법은 없대요?
소송을 하면 되는데
승산이 별로 없어 보여요
(철산) 미안, 미안합니다
한 팀장님이 말릴 때 들었어야 됐는디
하, 진짜 미안합니다
[떨리는 숨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지평의 거친 숨소리]
[도산의 신음]
(지평) 이번 인수
나쁠 거 없어요
팀 해체되는 것만 빼면
오히려 좋은 조건이야
[지평의 신음]
눈길은 포기해요
[잔잔한 음악] 어차피 이번 건 아니어도
오래 못 갈 서비스였어
그 좋은 기술
좀 더 돈 되는 데 써요
[지평의 힘주는 신음]
왜 캐비어로 알탕을 만드나
눈길은 돈 많이 벌고 그다음에 그 돈으로
도와주세요
참 나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패 놓고 뭐, 도와 달라고?
(지평) 지금 이게 무슨 경우지?
[힘겨운 신음]
할머니가
절대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거친 숨소리]
뭘 얘기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길어
눈길
달미 할머니 때문에 시작한 서비스예요
할머니 눈이 많이 안 좋아요
머지않아 실명하실 거예요
[쿵 하는 효과음]
도와주세요, 제발
실, 실명…
[풀벌레 울음]
[힘겨운 숨소리]
매출 얼마 나왔니?
이상하네?
왜 3천 4백만 원이 나왔을까요?
아까는 1,900원이라더니
차라리 많은 게 낫네
[원덕의 한숨]
(원덕) 저, 저, 저 기름통 좀 요 앞 저 횡단보도에 갖다 놔
- 계산은 내가 할게 - (아현) 네, 어머니
[한숨]
[원덕의 힘주는 신음]
없네, 영수증이 어디 갔어
[차분한 음악] [원덕의 한숨]
[힘주는 신음]
(원덕) 영실아, 이거 좀 읽어 봐 줄래? 어?
[인공 지능 음성] 네, 알겠습니다
(지평) 많이 쓸수록 마이너스인 솔루션에 누가 투자를 할까요?
[인공 지능 음성] '청명핫도그 천 원'
'감자핫도그 1,500원'
(원덕) 응 [원덕이 계산기를 탁탁 두드린다]
(달미) 왜요? 안 될 거 같나요?
그런 미래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원덕이 계산기를 탁탁 두드린다]
[인공 지능 음성] '치즈핫도그 두 개 3천 원'
'감자핫도그 한 개 1,500원'
(원덕) 응, 알았어
계산 끝
고생했다, 영실아
[원덕의 웃음]
보자, 보자
어?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어?
- 장사 마감하셨어요? - (원덕) 아, 했지, 그럼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아니, 아, 맞은 게 아니라
- 싸웠어요 - (원덕) 싸워?
아, 누가 우리 순딩이한테 싸움을 걸었어, 어느 놈이!
그냥 내가 잘못했어요
너 같은 순딩이가 뭔 잘못을 했다 그래, 쯧
아, 그 순딩이 소리 좀 하지 마요
나 순딩이 아니에요
네가 왜 순딩이가 아니야
내가 아는 놈 중에 제일로 순한데
아니라고요
(지평) 나 순딩이 아니에요
할머니
저 한참 잘못 봤어요
순딩아
(지평) 저요
남이 상처받든 말든 막말하는 개차반이에요
세상 잘난 척 다 아는 척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이라고요
[흐느낀다]
저 순딩이 아니에요
지평아
왜 그래, 어?
무슨 일이야
(지평) 할머니
할머니
얘가 왜 이래
뭐야, 어?
무슨 일이야, 대체
- (원덕) 어? -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내가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지평) [울며] 할머니, 미안해요
- (지평) 할머니 - (원덕) 그래
안 가고 뭐 합니까?
[한숨]
그냥 좀 이래저래 심란해서요, 예
지금 카페 문 닫았는디
(철산) 뭐, 이, 이거라도 드실래요? 저 입도, 입도 안 댔어요, 예
아바라죠?
같이 마셔요
예?
[부드러운 음악]
(철산) 아…
예, 예
철산 님도 소송을 해서라도 계약을 엎었으면 좋겠어요?
- 네 - (사하) 왜?
철산 님한텐 좋은 기회잖아요
실리콘 밸리 가고 싶어 했고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싫어요
사하 님은요?
소송까지 갈 마음 있대요?
아니요
(사하) 나 변호사였잖아
소송 그거 사람 진 빼요
길고 지치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그거 하기 싫어서 여기 왔는데 또 하라고?
하, 싫어
사하 님은 열도 안 받는대요?
난 열불 나 죽겄는디, 씨
나도 천불 나죠
당분간 잠도 안 올 거 같아
(사하) 그래도 잠은 몇 달 지나면 낫지
소송은 몇 년이네요
[사하가 컵을 잘그락 든다]
어, 한 팀장님
(지평) 아…
하, 할머니랑 할 얘기가 있어서
자, 잠깐 들렀어요
근데 한 팀장님 얼굴이…
그, 넘어졌어요
넘어진 상처 같진 않은데
[차분한 음악]
저…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을 해서
아니에요
필요한 말을 해 주셨어요
(달미) 저, 팀장님
예?
출출하지 않으세요?
(남자) 이모, 저희 얼마 나왔어요?
- (사장) 2만 원 - (남자) 2만 원?
- (여자) 이모, 잘 먹었습니다 - (남자) 이모, 수고하세요
- (사장) 고마워요 - (남자) 네
[달미가 입바람을 후후 분다]
우린 맨날 국수만 먹네요?
아…
이 시간에 문 연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달미) 오도독뼈라도 시킬까요?
(지평) 아, 됐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에요
[지평의 헛기침]
[입바람을 후 분다]
(달미) 팀장님
예?
저희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떤 답을 원해요?
팩트를 얘기해 주세요
(달미)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오지 않을 미래 말고
현실요
솔직하고 냉정하게
하, 그게…
(달미) 힘든 부탁일까요?
아니요, 뭐, 내가 힘들 게 뭐 있어요
듣는 쪽이 힘들까 봐 그러지
미안하고
팀장님
[잔잔한 음악] (달미) 아까부터 자꾸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저 팀장님 말 듣고 한 번도 힘든 적 없었어요
상처받은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 한 번도? - (달미) 네, 한 번도
두 번?
세 번?
[아파하는 신음]
뭐, 한 열 번 미만으로 상처는 받았어요
근데 바로 인정했네요
내가 봐도 한심했거든
맷집 세네, 서달미 씨
네, 저 맷집 세요
(달미) 그러니까 얘기해 주세요
저희 어떡해요?
투스토하고 이 계약으로 싸우자고 들면 이기지 못할 거예요
체급이 다를뿐더러 계약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달미의 한숨]
그럼요?
쯧
'이기지 못할 적이면 아군이 돼라'
라는 말이 있죠
[도산이 훌쩍인다]
[훌쩍인다]
[편안한 음악]
- (팬) 아, 감사합니다 - (찬호) 다음 오세요
[함께 인사를 나눈다]
- 이름이 뭐야? - (어린 도산) 남도산요
(찬호) 남도산
몇 학년?
(성환) 저기, 원랜 중학교 다녀야 되는데 대학 다녀요
월반을 해서
월반했어?
수학 올림피아드 금상 출신이에요
최연소, 최연소
와, 너 천재구나
예, 수학 천재, 야구 천재
[함께 웃는다]
(찬호) 하이 파이브 한번 해야겠다, 야
와, 천재네
꿈은 뭐야?
제 꿈은 친구들하고
[성환이 소곤거린다]
필즈상이랑 노벨상을 타는 게 제 꿈입니다
(어린 도산) 아버지, 근데 필즈상이 뭐예요?
있어, 그런 거
(금정)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찬호) 그래그래, 일로 와
[성환과 금정이 말한다]
이거 봐 봐
'폴로 유어 드림'
'유어 드림', 알았지?
그래
(성환) 자
도산아, 여기
공 들고, 응
- (금정) 자 - (성환)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찬호) 파이팅 하자, 파이팅 남도산 파이팅!
남도산 파이팅! [카메라 셔터음]
(녹음 속 도산) 너 내가 준 박찬호 사인 볼 기억나?
그거 내가 왜 너한테 줬는지 알아?
달미야
자?
거기 쓰여 있는 꿈이
되게 막연했거든
그래서 많이 헤맸고
근데
너 처음 봤을 때
그 막연했던 꿈이 되게 또렷해졌어
다 네 덕분이야
[문이 달칵 열린다]
[부드러운 음악]
[책을 가방에 툭 넣는다]
[대문이 철컥 여닫힌다]
달미야, 여기 웬일이야?
도산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도산) 아…
이거 그, 넘어졌어
너도?
'너도?'
아니다
하, 둘이 싸웠구나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너 생일이잖아, 오늘
잊었어?
아…
깜빡했어
하긴
우리가 요즘 일이 좀 많았다, 그렇지?
달미야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밤새도록 공부를 좀 했거든?
(도산) 그, '스타트업을 위한 소송 매뉴얼'이란 책을 봤는데
거기 우리랑 비슷한 케이스가 있더라고
(도산) 여기 이 로나 테크 케이스가 우리랑 제일 비슷하거든
인수하자마자
와, 날씨 죽인다
그러네
인수하자마자 기업 변호사가 이사로 등록해 가지고
(도산) 임원들을 다 해임했대
[버스 벨이 울린다] 이게 미국 케이스긴 한데
[버스 안내 음성] 다음 정차할 역은 샌드박스입니다
그냥 내리지 말자
회사 가야지
너 오늘 생일이야
기억 안 나? 우리 만나기로 했잖아
그거야 투스토 건이 터지기 전 이야기고 지금은 다르지
다들 기다릴 텐데
다들 오늘 각자 땡땡이치기로 했어 [도산의 한숨]
- 웃어 봐 - (도산) 응?
[카메라 셔터음]
[카메라 셔터음]
[당당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형님
오, 어, 왔어?
(천호) 이야, 축하한다
너희들 덕에 내가 처음으로 지분을 돈으로 바꿔 봤다
예, 근디 저는 뭐, 딱히 축하받고 싶지 않습니다
(천호) 이야, 이런 대인배를 봤나
30억 잭 팟이 터졌는데 초연한 거 보소
저도 뭐, 그런 줄 알았는디요
뭐, 빚 청산에 세금 다 떼고
저희 3년 인건비 제항께 뭐, 얼마 남지도 않대요, 예
(천호) 하긴
너희가 그동안 돈 한 푼 못 벌고 땡빚으로 버티긴 했지
아무튼 뭐든 말해 부탁할 게 뭐야?
아… [헛기침]
저 저것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저거? - (철산) 예
"스타 그랜드 호텔"
여기는 왜?
여기 안의 프렌치 레스토랑 되게 맛있대
내가 예약했어
가자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너랑은 이런 데 처음 와 봤다, 그렇지?
(도산) 그러게, 좋네
그, 아까 말한 미국 케이스 말이야
여론전을 같이 썼더라고
우리도 이 방법 어때?
그, 왜, 우리 눈길 호의적으로 기사 써 준 기자 있잖아
최 뭐더라? 최…
도산아
넌 언제부터 코딩 잘한다는 걸 알았어?
어?
나 열세 살쯤인가? 그때 알았…
아, 아! 최양원 기자, 최양원
열세 살에 어떻게 알았는데?
그게…
미로 게임을 하는데
딴 애들은 길 찾는 동안 난 길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었거든
[놀란 신음]
열세 살에 그게 어떻게 돼?
나한텐 코딩이 편한 말이야
그래서 알고리즘 짜는 게 더 편했어
달미야, 그것보다 우리 인수 건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너 같은 천재가 나올 확률은 얼마쯤 될까?
[차분한 음악]
한 10만분의 1?
달미야
[칼을 댕그랑 내려놓는다]
알렉스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널 알아봐 줄 확률은
한 천만분의 1?
그거 엄청난 확률이야
그 확률을 못 뚫고 묻히는 천재들도 많잖아
얼마 전까지의 너처럼
[책장을 사락 넘긴다]
[한숨]
따지고 보면 로또보다 더한 확률인데
놓치기 아깝잖아
화, 확률?
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똑같아
공평하게 대단해
그리고 나 개발 빼곤 다 엉망이야
(도산) 언어 영역은 낙제 수준이고 메타포도 몰라
뭐, 피아노, 그림 예체능 쪽은 꽝이고
이게 디저트 포크인지 샐러드 포크인지도 구별 못 해
나 천재 아니고
바보 천치야
됐지?
도산아 [도산이 포크를 댕그랑 내려놓는다]
나 여기 갑갑해서 더는 못 있겠다 먼저 나가 있을게
(달미) 도산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도산) 알아, 아는데
너라면 가?
눈길도 팀도 버리고 가?
가
난 무조건 가
너처럼 능력만 있으면 난 가
난 싫어
그냥 여기가 좋아, 여기면 다 돼
샌드박스든 쪄 죽을 옥탑이든 그냥 여기가 좋다고
(달미) 야!
[한숨]
사람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가라, 좀!
나 쪽팔려
구질구질해
그 대단한 사람이 널 선택하고 난 버렸잖아
네가 맞고 난 아니라잖아
이걸 꼭 내 입으로 얘길 해야 돼?
그게 싫어서
근사한 데서 쿨한 척 멋있는 척 결론 내겠다는데
좀 맞춰 주면 안 돼?
달미야, 제발, 어?
도산아
넌 편지 속 그 도산이가 아니야
[어두운 음악]
[달미가 가방을 뒤적인다]
나도 네 꿈이 아니고
헤어지자는 뜻이야?
허상을 붙잡고 땡깡 부리지 말잔 뜻이야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우리가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꿈만 먹고 살아, 안 그래?
갈게
(도산) 나 오늘 생일이야
(달미) 알아
이 얘기 하려고 만나러 온 거였어?
(달미) 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얘기 하려고?
[잔잔한 음악]
(달미) 응
[허탈한 숨소리]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비가 쏴 내린다]
[흐느낀다]
[달미가 엉엉 운다]
[차분한 음악]
(도산) 야, 야! [용산의 당황한 신음]
[용산의 당황한 신음] [도산의 거친 숨소리]
용산아, 용산아, 너, 너 괜찮아? 어?
어, 어, 괜찮아, 어, 어
야, 이 미친놈아
이게 뭐라고 죽어!
(도산) 이러고 가면 나 어쩌라고, 어?
너까지 나한테 왜 이러는데
너까지 왜!
(용산) 야, 야, 뭔 소리야 내가 왜 죽어, 안 죽어, 어?
아, 안 죽어
뭐? 왜…
아니, 커피 마시다가 떨어트려 가지고 밑에 보고 있었던 거야
[흐느낀다]
[당황한 숨소리]
야, 너 무슨 일 있어?
(용산) 그래서 결국 헤어진 거야?
[차분한 음악] [한숨]
미안하다, 나 꼴 보기 싫겠다
오버하지 마
이게 네 탓이야?
용산아
너 회사 관두고
여기 합류할 때 그랬지?
회사 부품이 된 거 같았다고
(도산) 그래서 때려치웠다고
우리 이대로면 다시 부품 되는 거야
알아
그렇게 돈이랑 경력이 좋아?
그 결심 다 돌릴 만큼?
넌 내가 돈이랑 경력 때문에
투스토 가고 싶은 걸로 보이냐?
아니면 뭔데
(용산) 도산아
난 우리가 그 인간한테 실패로 기록되는 게 싫다
(도산) 그 인간? 뭐, 한 팀장 얘기야?
(용산) 너 기억 안 나?
한 팀장이 딱 이 자리에서 그랬잖아
(지평) 투자 안 한 곳 중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제로
없습니다
난 이 두 번째 기록을 깨고 싶지가 않아요
(용산) 그 인간이 말한 기록에
우리 형이 있어
그때 그냥
딱 결심했어
그래, 한 팀장이 있는 샌드박스 가야겠다, 가서
그 인간이 말한 그 대단한 기록
깨부숴 줘야겠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야
돈 때문이 아니야, 그냥…
형 때문이지
그러니까 제발 도산아
우리 실패로 기록되지 말자
응?
[잔잔한 음악]
(상수) 다들 원인재 대표 사임에 동의하십니까?
(함께) 동의합니다
그럼 전원 이의 없이 사임에 동의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네
(선학) 원 대표님, 웬일입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문이 드르륵 여닫힌다]
(원덕) 아이고
아이고, 아유, 일찍 일어났네? 어?
밤새웠어?
할머니
[잔잔한 음악]
내가 코스모스라고 했지?
그렇지
좀 있으면 가을인데
피기도 전에 져 버리나 봐
달미야
내년엔 필까?
[달미가 훌쩍인다]
- 여기를 개발자들이 쓰면 되겠네 - (정) 응
너희들 뭐냐?
아, 얘기 못 들었냐?
우리 사람 더 뽑기로 했다
(용산) 그래서 이 사무실 쓰냐?
- 어 - (철산) 아야
(철산) 좀 빠지거든 설쳐라 우리 아직 안 빠졌다
가, 가, 나가, 아유, 씨
나가, 알짱대지 말고
[철산의 한숨]
난 여기서 인사할게요
[차분한 음악]
(철산) 저기, 사하 님
거기 가서
가끔 연락해도 된대요?
글쎄
할 이유가 있나?
그렇죠?
잘 가요
건강하고
네
아야, 여기 단체 사진 니들이 챙겼냐?
(용산) 아니
서 대표는
짐 언제 찾으러 온대?
아, 안녕하세요
(선학) 이 그네 소녀가
서 대표님이라면서요?
그걸 어떻게…
원 대표가 말해 줬어요
(선학) 이 소녀 자기가 아니고 서 대표님이라고
언니가요?
(선학) 아버지한테 모래를 깔아 달라고 했다면서요
그네 타겠다고
그것도 언니가 얘기해 줬어요?
(선학) 아니요, 그 얘긴
서 대표 아버님한테 직접 들었어요
[잔잔한 음악] 저희 아버지요?
(선학) 난 그 얘기가 그렇게 참 좋더라고요
오죽 좋았으면 여길 다 만들었을까
(청명) 달미야
(선학) 딸한테 그네 타는 거 가르쳐 주고는 싶은데
다치게 하고 싶진 않고
그 마음이 나한테도 와닿았어요
아, 근데
그걸 전하는 게 참 쉽지 않네요
서 대표 치킨 좋아하죠?
네, 많이 좋아하죠
어떻게 아세요?
그날
아버님 인사였어요
아, 저, 대표님
(청명) 이 근처에 맛있는 치킨집 있습니까?
계약 따내고
딸한테 맛있는 치킨을 사 주고 싶었나 봐요
야, 인마
근데 왜 자꾸 그렇게 울어 아빠 속상하게
안 울어
그냥…
치킨
치킨이 먹고 싶어서
걱정하지 마, 어?
콜라도 사 갈게, 어?
치킨 까짓것 그거 얼마 안 해
아빠가 그 정도 사 줄 돈은 있어, 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
감사합니다
얘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잔잔한 음악]
[휴대전화 진동음]
(철산) 사하 님, 요즘도 잠이 잘 안 온대요?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 영상 하나 만들어서 보냅니다
잠 안 올 때 한번 보세요
(영상 속 철산) 예, 안녕하세요, 사하 님
저는 이 숫자를 외우면 잠이 잘 오고는 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기를 빌어요, 네
[헛기침]
[작은 소리로] 원주율 파이는
3.14
15926
5358
뭐야
(영상 속 철산) 97932384
[심호흡]
[숨을 깊게 내뱉는다]
[키보드를 탁 두드린다]
[부드러운 음악] [마우스 클릭음]
(달미) 저 맷집 세요
그러니까 얘기해 주세요
저희 어떡해요?
'이기지 못할 적이면 아군이 돼라'
라는 말이 있죠
[엘리베이터 도착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럼 우리 이제 한 팀 된 거 맞죠?
(도산) 네
저…
사실 제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오늘따라 뭐 부탁할 게 있다는 사람이 참 많네
(알렉스) 갑시다, 가시죠
(알렉스) 앉아요
내 생각에 두 사람 다 같은 걸 부탁하러 온 거 같은데
눈길 맞죠?
네
[밝은 음악]
[인재가 말한다]
그럼 이전 회사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었어요?
(인재) 뭐, 또 질문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정) 그럼 주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영상 속 철산) [작은 소리로] 238462
643383
[영상 속 철산이 숫자를 계속 읊는다]
(승무원) 음료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철산) 아…
아이스바닐라라테 된대요?
아, 그건 없는데
아, 그렇죠? 예
아유, 말이 안 되지, 아, 모지리네
(철산) 주스, 주스 하나 주세요
[철산의 헛웃음]
(현) 수고하셨어요 [저마다 인사를 나눈다]
(이수) 어떠세요?
(인재) 음, 개발자 쪽은 대충 추려지는데
전략 기획 쪽이 아쉽네요
저, 그럼 다시 수정해서 공고 올려 볼까요?
(인재) 그래요
[노크 소리가 들린다]
[밝은 음악] 안녕하세요, 서달미라고 합니다
(인재) 여긴 어쩐 일이야?
채용 공고 보고 왔습니다
뭐 하는 짓이야?
인재컴퍼니 전략 기획 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원인재 대표님
(이수) 대표님
(대명) 왜 이러…
(인재) 어디 한번 얘기해 봐요
우리 회사에 왜 지원하고 싶은지
네
(달미) 갈게
(도산) 나 오늘 생일이야
(달미) 알아
이 얘기 하려고 만나러 온 거였어?
(달미) 어
[숨을 후 내뱉는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 얘기 하려고?
(달미) 응
[잔잔한 음악]
[허탈한 숨소리]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달미) 도산아
너 혹시 일부러 헤매 본 적 있니?
난 오늘 일부러 헤매 봤어
우산이 있는데도 비 맞아 본 적 있어?
오늘 난 맞아 봤어
무지 덥고 꿉꿉했는데
맞으니까 엄청 시원하더라
그렇게 한 30분 걸었나?
비가 그치고
내 눈앞에
말도 안 되게 멋진 풍경이 나타났어
어마어마하게 큰 무지개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그런 무지개였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주 가끔 헤매 보는 것도 괜찮겠다
아주 가끔
지도 없는 항해를 떠나 보는 것도 근사하겠다
[흐느낀다]
(달미) 저도 3년 전이랑 달라요
할 수 있어
[달미의 비명] [타이어 마찰음]
(천호) 철산이 브이로그 보셨어요?
거기 도산이도 간간이 나오는데
(지평) 3년은 꽤 긴 시간이잖아요 관계가 변할 만큼
(도산) 오랜만에 휴가 길게 받았는데 한번 들어가 봐야지
달미 만나려면 상무님 허락 받아야 합니까?
(지평) 나 자격 있는 거 같은데
(달미) 저희 솔루션이 랜섬웨어에 감염이 됐어요
(도산) 나야, 도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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