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8
용산 님, 퇴근 안 해요?
아, 오늘 작업한 거 분리해서 백업 좀 마저 하고 갈게요
백업을 시도 때도 없이 한대요?
백업은 시도 때도 없이 해도 모자라요
맞아, 나 대기업, 나 대기업, 예?
(철산) 엄청 큰 대기업 다닐 때
백업 안 해서 1억 날릴 뻔했잖아요 와…
여기 2층에 입주한 저스트원데이 알죠?
- 용산 님, 수고 - (용산) 네
(철산) 예, 알죠, 이번에 40억 투자받은 데
- 아야, 수고해라잉 - (도산) 고생해 [용산이 대답한다]
(달미) 거기도 이번에 해커한테 랜섬웨어 공격받아서
1억 내놓고 합의 봤대요 [철산이 문을 철컥 닫는다]
(철산) 진짜요?
오메, 이 느자구없는 해커들 때문에 마음 놓고 성공도 못 하겄네
소 잃기 전에 미리미리 외양간 고쳐 놔야지
(사하) 그러니까 소가 없는데 왜 외양간을 고치냐고
털릴 것도 없는데 왜 백업부터 하냐고요
(달미) 그래도 준비는 해야죠
갑자기 투자자들이 물밀듯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도산) 맞아, 사람 일은 몰라요
(철산) 모르지
지금은 영 거시기하다 싶은 사람도
아, 열, 열렸네? 사하 님 [철산의 웃음]
어느 순간 마음에 빡 꽂히는 인연이 될 수도 있어요
어유, 야, 왜
그 반대도 있지 않나?
[어두운 음악] [용산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사하) 죽고 못 살 인연이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을 싹 바꿔서
악연이 될 수도 있죠
(달미) 사람이든 인생이든 변덕스럽긴 매한가지네요
예측을 허락하질 않아
(도산) 코딩도 그래요
뭐, 정전이니 해킹이니
온갖 변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있죠
(두정) 방금 남도산이 난동 부린 거
(도산) 그래서 우린 늘
CCTV 따서 법무 팀에 넘겨
(도산) 백업이란 걸 합니다
(달미) 많이 다쳤네
아휴, 엔지니어 손은 피아노 치는 손만큼 조심해야 한다던데
(도산) 괜찮아, 별거 아니야
아!
아파? 병원 갈까?
아니
그냥 쪼끔 까진 거야, 어
그래도
[잔잔한 음악]
[달미가 입바람을 호호 분다]
- 달미야 - (달미) 응?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데?
넌 내가 왜 좋아?
응?
어, 그야…
너 전에도 이거 물어봤었지?
어?
(도산) 그랬어?
기억 안 나는데
손
이 손 때문에 좋아
오늘 완벽한 내 편이었어
잊지 못할 거야
(달미) 다 됐다
[발랄한 음악]
[카메라 셔터음]
(철산) 어유, 어유
차라리 먹을 거나 주지 꽃이 뭐대, 꽃이? 어유, 쯧쯧
(용산) 그러게, 남자가 센스가 없네, 어?
외장 하드, 무선 키보드 많잖아, 좋고 오래 가는 거
아, 긍께, 아유
(철산) 왐마? 이짝은 또 뭐 하는 짓거리대?
자기는 뭐, 체온이 40도인가?
(용산) 남녀노소 공평하게 36.5도구먼 옷은 왜 벗어 줘, 옷은, 쯧
아주 부질없는 짓거리들 하고 앉았…
[당황한 신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부질 있네, 부질 있어
허벌나게 있어
아휴, 철산아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잉, 그렇지?
글게
우리도 저 반열에 오르는 날이 올까?
아, 당연히 오지
(용산) 이 새끼도 올랐는데 우리라고 못 오르냐
[철산과 용산의 웃음]
- 용산이 네 말이 맞아, 응 - (철산) 그렇지?
(도산) 이 손이 장땡이야, 진짜 장땡
[익살스러운 효과음] - 뭔 소리대? - (용산) 뭐래?
[발랄한 음악] (도산) 야, 야
오늘 진짜 코딩하기 딱 좋은 날씨 아니냐? 어?
야, 하늘
야, 하늘 왜 이래, 왜 이렇게 좋아
뭐야, 야, 하늘 왜 이렇게 파래
아, 찰칵
잠깐, 바람, 완벽해
야, 오늘 날씨 진짜
미, 미쳤다, 오늘 진짜
- (도산) 찰, 찰칵 - (철산) 니가 제일 미쳤어, 씨
진짜 미친 걸까? 왜 저러는 거야
노래 가사잖애, 아이유 '좋은 날'
좋아서 헤까닥한 거여, 저거
[용산의 한숨]
(용산) 아휴
저게 반열에 오르는 길이라면 철산아, 난 가지 않으련다
아니, 나는 갈란다
(철산) 너는 여기 있어
아, 찰칵
[철산의 다급한 신음] (용산) 야, 어디 가!
야!
(달미)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사하가 인사한다]
[달미와 사하가 감사 인사를 한다] (여자) 가자
[달미의 한숨]
(도산) 무슨 얘기 했어? 어?
(달미) 우리 솔루션에 들어갔으면 하는 것들 얘기해 주셨어요
(철산) 아! 아, 뭐라 말해 주셨을까요?
(사하) 일단 이미지 인식
텍스트 인식 수준이 아주 높아야 돼요
빠르게 움직여도 인식하는 수준까지
손 글씨 인식은 당연하고 지폐랑 동전도 반드시
시각 장애인들한테 거스름돈 속이는 놈들이 있대요
[영어] 개자식들
[한국어] 가능하죠?
- (용산) 아니요, 야! - (철산) 아니요, 야! [도산이 '네'라고 대답한다]
(도산) 아니, 이 정도는 다른 시각 장애인 어플에도 다 있잖아
우리만의 차별화된 기능이 필요하죠
(사하) 난 개발자들이 된다고 할 때가 제일 섹시하더라
[철산의 헛기침] (용산) 어, 됩니다, 다 돼요
- (철산) 뭐여, 너 그 길 안 간다며 - 차별화의 길이라면 가야지, 씨, 쯧
(용산) 무슨 기능이 있을까? 어?
[숨을 들이켠다]
저 개가 말을 하게 할 순 없을까?
(달미) 요
하, 그것은 개발자가 아니라 신의 영역이죠
[철산의 웃음] 그렇죠?
말도 안 되는 거 아는데
나라면 그게 제일 필요할 거 같아요
(달미) '내 앞에 몇 명이 있니?'
'어떤 표정이야?'
'횡단보도는 어느 쪽이야?' 하고 물어보면
저 개가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요
(철산) 개가 어떻게 말을 한대요?
(용산) 그건 토니 스타크도 못 해요
아니야, 할 수 있어
(용산) 어? 네가 토니 스타크를 뛰어넘겠다고?
- (도산) 달미야 - (달미) 응?
진짜 천재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내?
내가? 어? 아닌 거 같은데?
(도산) 아니야, 진짜 천재 맞아, 진짜 천재야
(달미) 내가 무슨 생각을 해 냈을까?
내가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천재가 됐을까?
- 가자, 내가 가서 설명해 줄게 - (달미) 어?
- (도산) 가자, 빨리 - (달미) 내가, 내가? 내가 천재야?
지금 이 상황 나만 못 알아듣나?
뭐, 뭔 소리… 이게 뭐가 천재라는 거야, 이게
얼굴 처, 천재?
[익살스러운 음악]
는 사하 님인디
(도산) 자, 이게 우리 차별화예요
(사하) 인공 지능 스피커잖아요 이름이 뭐였더라?
[인공 지능 음성]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영실입니다
영실아, 횡단보도가 어디 있지?
[인공 지능 음성] 어디인지 보이면 알려 주고 싶어요
봤죠? 보이면 알려 준다잖아요
[밝은 음악] (도산) 그러니까 우리가 보여 줍시다
역시!
- (철산) 아, 보여 주자! - (용산) 그러면 되겠네
나만 또 못 알아듣는 거죠? 어떻게 보여 줘?
쯧, 사하 님
우리가 가진 기술이
뭐대요?
이미지 인식
(철산) [손가락을 딱 튀기며] 이츠 딩동
(용산) 그러니까 이미지 인식이랑 음성 처리 기술을
컬래버하면 어떻게 될까요?
얘한테 물어보면
(달미) 얘가 본 다음에
[휴대전화를 달그락 내려놓는다]
다시 얘가 얘기해 주겠죠
아, 얘를 통해서 쌍방으로 소통하게 하자?
(도산) 그렇죠
근데 영실이를 여기다가 어떻게 집어넣죠?
(철산) 이 영실이 API를
우리 어플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되는디
(용산) 그게 될까?
실시간 구현이 어려울 거 같은데
걱정 마, 되게 해야지, 할 수 있어
나도 어떻게든 되게 해 볼게요
[달미의 기합]
[저마다 기합을 넣는다]
(철산) 사하 님, 같이
[철산의 기합]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평) 안 됩니다
아니, 왜 검토도 안 하고 바로 안 된대요?
우리 아이디어가 얼마나 좋은…
좋죠, 아이디어 아주 좋습니다
(지평) 서비스 이름도 좋네, '눈길'
근데 이 좋은 게 왜 그동안 안 나왔을까요?
비슷한 건 나왔어요, 미국에
(지평) 알죠, 미국의 구글이랑 MS가 하고 있죠
근데 그걸 일개 스타트업이 하시겠다?
네, 하시겠습니다, 왜요? 안 될 거 같나요?
팩트를 말해 줘요?
아니면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말해 줘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요
그런 미래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대표님, 여기서 뭐 하세요?
(달미)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시죠?
(지평) 영실이 API 비용 계산해 봤습니까?
물론이죠
(달미) 미국에 비슷한 솔루션이 있길래
거기 사용량 바탕으로 예산 뽑아 봤거든요?
영실이 API 비용이 15초당 4원이고요
뭐, 1인당 하루에 5분 정도 사용한다 치고
DAU를 1,000으로 잡으면
1년에 API 비용이 29,200,000원
딱 3천 살짝 안 되는 돈이죠
그 돈은 어디서 마련하죠?
그야 서비스에 광고를…
(지평) 광고를 넣을 생각은 아니죠?
이 시각 장애인용 서비스에
투자를 유치하면 되죠
[한숨]
(지평) DAU가 천 명이면 3천만 원 만 명이면 3억
많이 쓸수록 마이너스인 솔루션에 누가 투자를 할까요?
어딘가 있겠죠
저희 솔루션을 듣고 마음을 움직일 투자자가
- (달미) 세상에 하나도 없을까? - (지평) 없어요
(지평) 투자자를 움직이는 건 딱 하나
- (지평) 돈입니다 - (달미) 아니요
(달미) 돈 말고도 다른 이유로도 설득할 수 있…
(지평) 없습니다
[버튼 조작음]
아니, 나만큼 삼산텍이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나?
(지평) 그런 내가 안 움직이는데
무슨 수로 다른 사람을 설득합니까?
팀장님이 움직이면요?
(달미) 내가 설득했는데 그게 먹히면요
(지평) 안 먹힙니다
그래도 해 볼게요
뭐, 뭐, 뭐야
이게 뭡니까?
(달미) 제 설득이 먹히면 거기 불이 들어와요
[지평의 헛웃음]
아, 소용없다니까, 참
저한테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있어요
시작부터 틀렸어요
투자자한텐 감성이 아니라 팩트와 데이터로 다가가야 합니다
한 15년쯤 됐나?
그때
도산이가 저한테 편지를 보내 줬죠
[잔잔한 음악]
(달미) 그 편지 덕에 깨달은 게 있어요
(어린 지평) 늘 곁에 있을 줄 알았어
늘 곁에 있고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어린 지평)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해서 귀한 줄 몰랐어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는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편지 덕에 알았죠
[도어 록 조작음]
[한숨]
[도어 록 오류음]
[도어 록 조작음]
(달미) 전요 [도어 록 오류음]
아주 대단한 걸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한텐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은 분들에게
우리 기술이 도움 됐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진짜 아주 조금이라도
그분들 일상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분명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 겁니다
[띵]
오!
거봐요, 설득됐죠?
어, 설득?
오, 이거 뭐야, 오, 에이, 이거 뭐야
(달미) 막 심장이 뛰고 설레고 그러죠?
이거 아니지, 아, 이거
(지평) 아, 이거 반칙이죠
아, 내가 언제 심장이 뛰었다고
이거 개발 실패네 이거 기기 오류예요, 에러예요
입은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심장은 솔직하죠
(달미) 팀장님의 솔직한 의견 잘 들었습니다
(지평) 아니, 아니, 잘 못 들었는데?
이봐요, 잠깐만, 서달미 씨
아…
[차분한 음악]
다시 생각해 봐요
이거 눈길이 아니라 고생길입니다
남 좋은 일 하다가 다 굶어 죽어요
당신이 다칠 수도 있다고
팀장님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달미) 제가 의외로
고생을 사서 즐기는 타입인가 봐요
[어이없는 숨소리]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커피 잘 마셨어요
[한숨 쉬며] 아…
[한숨]
어떡하지, 서달미
[문이 탁 열린다] - (선학) 설렐 만하네요 - 아이, 아니라니까…
(지평) 대표님
[선학의 웃음]
(선학) 잘될수록 대표가 고단해지는 사업 구조네요
투자받는 거밖에 답이 없으니까
어, 앉아요
아…
젊었을 때 이런 사업을 해 봐서 아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구걸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아주 피가 마르지
(지평) 그러니까요
(선학) 근데 말이에요
씁, 이게
'왜'는 확실하게 있네요
왜만 있어요, 왜만
뭘 할지 어떻게 할지는 없고 왜만
왜가 있으면 나머지야 어떻게든 만들어지겠죠
[선학이 종이를 사락 넘긴다]
그 그네 타는 꼬맹이처럼요?
그렇지
저, 대표님
(지평) 그거 아세요?
뭐요?
그, 원인재 대표랑 서달미 대표
서로 자매지간입니다
[차분한 음악]
뭐, 뭐라고요?
아니, 둘이 성이 다른데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자매가 따로 떨어져서 컸어요
서 대표는 아버지랑 원 대표는 어머니랑
아…
- 아니, 그럼 설마 - (지평) 네
그 그네 타는 꼬맹이가
원인재 대표일 수도 있지만 또
서달미 대표일 수도 있습니다
아…
꼴값 떨고 앉으셨네
"선행 나누기"
(달미) 어머, 죄송해요
아, 서 계셨구나
앉아 계신 줄, 너무 짧으셔서
(인재) 기왕이면 아버지 앞에서 하지 그랬니
[달미의 헛기침]
걱정 마 앞에선 더한 걸 해 주고 왔으니까
(인재) 얘기 들었어
남도산이 명패 박살 냈다며
기껏 생각해서 정보 줬더니 왜 그랬대
[긴장되는 음악]
그냥
(달미) 언니 뜻대로 해 주기 싫어서?
내 뜻?
[차분한 음악] (달미) 왜, 언니 옛날에
먹다 아니다 싶은 거 있으면 나 줬잖아
감 떫은 거, 꽃사과 신 거
빛 좋은 개살구
기억 안 나?
글쎄
맨날 속으면서도 난 먹었다?
(달미) 그 이상한 걸
바보같이
이제 바보짓 안 하려고
그래서 뱉었어
(사하) 서 대표님
(달미) 음, 회의 시간 다 됐네, 갈게
(사하) 가요
아, 그래
아무리 돈이 궁해도 저건 아니지
(아현) 내 나이에 저런 거 들면 디스크 와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네
(두정) 목소리 한번 듣기 힘들다?
이제 사춘기 다 끝났냐?
카드 좀 다시 열어 줘요
(두정) [살짝 웃으며] 이제 돈 다 떨어졌나 보구나
이번엔 꽤 오래 버텼네?
네
그냥은 카드 못 열어 줘 나도 받는 게 있어야지
뭔데요, 그게?
인재 데리고 들어와 그럼 카드 열어 줄게
데리고 들어오다니
인재가 집을 나갔어요?
몰랐냐?
[웃음]
이야, 가관이다, 너희 모녀 사이, 응?
(아현) 언제 나갔어요?
주총 때 그 깽판 치고 바로 나갔지, 응?
둘이 연락한 적 없… [통화 종료음]
여보세요, 아현아
이 여편네가
[통화 연결음]
여보세요? 인재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현) 인재 너 집 나왔다며?
어디 묵어? 호텔?
아니요, 샌드박스 근처에 원룸 하나 얻었어요
원룸?
(아현) 너 대표잖아, 대표가 무슨 원룸에 살아
많이들 살아
빌트인에 보안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요
(아현) 그러지 말고
그냥 눈 딱 감고 아버지 밑으로 다시 들어가서
- 엄마 - (아현) 아니, 보니까
아빠도 너를 아쉬워하는 거 같고 그리고 나도… [인재의 한숨]
그 말 하러 온 거면 나 먼저 들어가고
(아현) 아니, 아니, 아니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마저 먹어
[잔잔한 음악]
그래서
후련해?
(인재) 응
왜요, 아닌 거 같아?
아니
그래 보여
CSR 팀 리스트네요?
광고도 못 하고 유료 서비스도 못 하잖습니까
스스로 매출을 낼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대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지평) 올해 CSR 예산이 넉넉한 기업들로 리스트 업 해 봤어요
자, 봐 봐요
파란색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있을 기업들이고
빨간색은 오너 리스크니 탈세니 구설수 때문에
이미지 회생 프로젝트가 필요한 기업들이에요 [달미가 호응한다]
그 점을 잘 공략하면 아마 얘기가 좀 쉽게 풀릴 거예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부드러운 음악]
뭐가요?
맨날 브레이크만 거시더니
이번엔 액셀을 세게 밟아 주시네요
브레이크 없는 차는 속도 못 내요
벽에 박아야 서는데 속도를 낼 수가 있나
알죠
(달미) 앞으로도 종종 브레이크 밟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달미) 아, 팀장님
혹시 생일이 언젠지 여쭤봐도 될까요?
생일은 왜…
그냥 오지랖의 일환으로다가 챙겨 드리고 싶어서
언제예요?
5월 7일입니다
아, 지났네, 쯧
어? 5월 7일요?
네, 도산이랑 같아요
내 생일
[희망찬 음악]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철산의 피곤한 신음]
[철산의 기합]
[힘주는 숨소리]
[힘겨운 신음]
(달미) 저희 삼산텍이 개발한 눈길 솔루션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이미지 인식 기술과 인공 지능 음성 인식 기술을 결합해서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이 서비스 운영을 미그룹과 함께하면
미그룹에 대한 어떤 사회적 인식도 더욱 좋아질 거 같아요
(김 팀장) 명함 한 장 주세요
(달미) 네, 명함 드릴게요, 여기요
(김 팀장) 검토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엘리베이터 도착음]
(달미) 팀장님, 저희 눈길 솔루션은 단순히 이익을 좇는 게 아니라
시각 장애인과 저시력자들을 위한 어떤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어요
공익적 서비스 운영에 도움을 주시면
세계오일의 이미지가 아주 좋아질 거 같은데 [윤 팀장의 웃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한숨]
(달미) 아, 제가 지금 로비에 와 있는데
5분도 안 될까요?
아, 안 되시구나
그럼 혹시 다음 주에 시간은 어떻게 되세요?
(혜원) 다음 주에도 시간 어려운데
메일로 확인할게요
(달미) 혹시…
이혜원 팀장님 맞으세요?
네, 누구?
지금 통화하고 있는 삼산텍 서달미 대표입니다
아… [통화 종료음]
저, 미안한데
(혜원) 제가 지금 갑자기 가평에 일정이 생겨서
(달미) 오, 진짜요?
저도 마침 딱 지금 가평에 업무가 있는데
오, 같이 가요
제가 가면서 저희 사업 설명해 드릴게요
같이 가요
[난감한 숨소리]
그래요, 그럼
(여자) 영실아, 눈길 켜 줘
[인공 지능 음성] 네, 알겠습니다
[잔잔한 음악]
예, 누님, 요, 요것도 한번 찌, 찍어 보세요, 예
(달미) 저희 눈길은 시각 장애인분들의 곁을 지켜 주는
안내견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아…
예
저희 삼산텍이 이미지 인식 기술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호응한다]
(달미) 이 기술이 안내견의 눈 역할을 하는 거죠
(여자) 영실아
지금 이게 뭐지?
[인공 지능 음성] 만 원권 지폐 두 장과
천 원권 지폐 네 장이 있습니다
(철산) [작은 소리로] 예스, 야, 됐어
- 맞아요 - (용산) 정확해
(철산) 됐어, 됐어
(여자) 좋네요
정말 고맙고 좋아요
(달미) 이미지 인식 기술로 사물을 인식해서
그 인식 결과를 음성으로 알려 주는 거예요
이 눈길로 시각 장애인분들은 책도 읽을 수 있고
버스 번호도 알고 탈 수 있어요
그리고 우유를 보고 유통 기한이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
알고 살 수도 있고요
좀 사소하게 들리시겠지만
아주 엄청난 걸 해낼 겁니다
(철산) 뭐, 다른 것도 다 찍어 보세요, 예
다, 다 돼요, 우리 영실이 예, 다
아, 뭐여, 나여?
(여자) 영실아
지금 내 앞에 누가 있지?
[인공 지능 음성] 20대 남자가 멋을 내기 위해
알이 없는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함께 웃는다]
(사하) 정확하네
(용산) [웃으며] 이거 봐, 두 개 다 없어
(철산) 아, 뼈를 겁나 후드려 맞아 부렀다
(달미) 선주생명 창업주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게
모두가 함께 걷는 사회잖아요
이 눈길이 그 창업 정신에 딱 부합하는…
[내비게이션 음성]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개들이 왈왈 짖는다] (혜원) 다 왔는데 업무지가 어디예요?
아…
여기 근처예요
- (혜원) 그래요? - 네
[혜원이 안전띠를 달칵 푼다]
(혜원) 사업 취지는 너무 좋은데
우린 여길 지원하는 걸로 이미 예산 편성이 끝나서
아무래도 눈길을 지원하는 건 무리예요
아…
네
- 그럼 내년에라도 꼭 - (혜원) 그럼요
꼭 리스트에 넣어 놓을게요
취지가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혜원) 그럼 들어가세요, 대표님
네, 들어가세요
[통화 연결음]
여보세요, 한지평 나 이혜원인데
(달미) 아, 여긴 전봇대도 많은데
뭐 이렇게 핸드폰이 하나도 안 터지냐
아, 나 점점 더 산골로 들어가는 거 같은데
[짜증 섞인 신음]
[자동차 경적]
[자동차 경적] [달미의 놀란 탄성]
(달미) 아, 이게 뭐야 [발랄한 음악]
소똥?
[짜증 섞인 신음]
아씨…
아, 진짜
악!
아, 어떡해
[다급한 신음]
아이참
[자동차 경적]
[부드러운 음악] 어?
한 팀장님?
- 타요 - (달미) 여긴 어떻게…
아, 마침 내가 여기 일이 있어서
타세요, 얼른
(달미) 아, 근데
구두에 소똥이 묻었는데
소똥이 묻어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이…
[지평의 헛구역질]
(달미) 심하죠? 아!
(지평) 오, 나… 음!
뒤, 뒤로, 살짝 뒤로
이야…
(달미) 저 불연성 쓰레기 특수 마대
아직 안 쓰셨네요?
아, 그…
쓸 일이 없어져서
아…
근데 진짜 이 근처에는 무슨 일이에요?
뭐, 여기
여기 워낙 자주 와요
가평에 자주 올 일이 뭐가 있어요?
있어요
저, 저기…
[손가락을 딱 튀긴다] 잣칼국수
(지평) 아, 내가 잣칼국수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매주 와요, 매주
가평 하면 잣칼국수거든요
[지평이 숨을 후 내뱉는다] [지평이 살짝 웃는다]
아…
[헛기침]
눈 좀 붙여요 요즘 밤 많이 새운다면서요
괜찮아요
그리고 제가 남이 운전하는 차에서 잘 못 자요
아유, 운전 얌전히 할 테니까
억지로라도 눈 좀 붙이고 우리… [달미가 코를 드르릉 곤다]
[발랄한 음악]
(선학) 젊었을 때 이런 사업을 해 봐서 아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구걸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아주 피가 마르지
[타이어 마찰음]
[달미의 놀란 신음]
나 잤어요? 설마 나 잤어요?
네, 남이 운전하는 차에서
아주 곯아떨어지셨습니다
[지평의 헛기침]
(지평) 이건 슬리퍼
소똥 묻은 구두 신고 갈 수 없으니까
[잔잔한 음악] (달미) 아…
진짜 매번 너무 감사드려요
아이, 면목도 없고
아유, 감사합니다
신어 봐요
감사해요
(지평) 차라리 음성 처리 기술을 덜어 내면 어때요?
이미지 인식이랑 붙이는 것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데
그것만 빼면 좀 쉬워지잖아요
도산이가 그 어려운 걸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해내야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도산이한테는
이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돈 걱정 안 하고 마음껏 개발하게 해 주고 싶거든요
참 눈물겹네요
- 알겠습니다 - (달미) 아이고야
(달미) 그럼
[한숨]
(도산) 이건가? 이거, 이거?
(사하) 응, 네
[용산의 기대하는 신음] [철산의 기합]
(철산) 자 [사하의 헛기침]
[봉지를 탁 내려놓는다]
응?
어디 갔지, 머리 끈?
[짜증 섞인 신음]
[봉지를 부스럭 든다]
[숨을 후 내뱉는다]
- (도산) 어? 달미야, 빨리 와 - (철산) 어?
- (철산) 빨리 와, 빨리빨리 - (도산) 빨리 와, 빨리빨리
- (철산) 아유 - (사하) 왜 이제 옵니까?
(철산) 아유, 고생하셨네
대표님, 우리, 어?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효과음]
[철산의 당황한 신음]
예, 우리, 우리 최종 테스트 겁나 잘 끝냈습니다잉
- (용산) 예 - (달미) 아, 진짜요?
(달미) 어땠어요? 인식률 잘 나와요?
어, 97% 넘게 나와 다들 만족해하셨고, 응
[익살스러운 효과음]
넌 어땠어?
어, 나도 다들 엄청 좋아해
(달미) 명함 좀 넉넉히 가져갈걸
다들 달라고 난리, 난리
(철산) 예, 그럴 줄 알았당게
이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잖아요, 예
[함께 웃는다]
자, 그럼 이제 성원이 됐으니 눈길 스토어에 올립니다, 예?
(철산) 아, 잠깐, 잠깐, 잠깐
우리 내기헐까요, 내기? 예?
일주일 동안 우리 어플 얼마나 다운받는지, 예?
오케이, 콜 맞힌 사람이 한턱내기
오케이, 그럼 난 시작은 소박하게 DAU 백 명
맞히면 내가 탕수육
[철산이 야유한다] 에이, 백 명은 너무 소박하지
난 천 명 봅니다
천 명 넘으면 내가 삼겹살 쏠게요
(지평) DAU가 천 명이면 3천만 원 만 명이면 3억
[흥미진진한 음악] (철산) 하!
오메, 다들 통이 겁나 작아져 부렀네
아, 천 명이 뭐대요? 만 명은 가야지
(지평) 많이 쓸수록 마이너스인 솔루션에 누가 투자를 할까요?
아,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어, 할 수 있다
- (철산) 어, 할 수 있어, 예 - (도산) 할 수 있어
(철산) 할 수 있다, 하나, 둘, 셋!
[저마다 구호를 외친다]
(철산) 아이고, 맞는 게 없어
이거 천 가면 내가 노래방, 예?
스트레이트로 열 시간 쏠게요!
- (용산) 오케이! - (철산) 멋있어
(용산) 자, 그럼 사고 한번 칩시다
어? 아, 이왕이면 전 세계에다 다 올릴까요?
이거 영어 지원도 되는데
에이, 전 세계는 아직 좀 이르지 않나?
왜? 업로드는 돈 드는 것도 아닌데
- (사하) 넣어요 - (철산) 맞아
(철산) 우리의 꿈이 글로벌 아니여, 글로벌 넣어, 넣어, 자
(용산) 오케이, 자, 그러면 업로드합니다
(철산) 자, 가자
자
- (용산) 두구두구, 두구두구 - 야, 노래방! 노래방!
- (용산) 두구두구, 두구두구 - (철산) 올라간다, 올라간다!
(달미) 주님, 제발, 제발
[경건한 음악] 천 명 이하로 부탁합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살고 봐야죠
그러니 주님, 부디
저희 눈길 이용자를 하루 천 명 이하로 끊어 주세요
제발, 제발
야, 무슨 기도가 그렇게 간절하냐? 어?
(달미) 있어
주님
믿고 갑니다
아멘
(원덕) 아멘?
아멘
[원덕의 힘겨운 신음]
- (달미) 근데 할머니 - 어
(달미) 천주교는 부적 같은 거 없어? 기도발 확 올려 주는?
(원덕) 왜, 아예 굿을 해 보지
(달미) 아, 뭐, 그런 거 없나?
에? 도어 록 어쩌고?
아, 고장이 나서 바꿨어
(원덕) 아, 야, 너도 너도 이거 하나 갖고 다녀
음, 열쇠 귀찮은데
[원덕의 힘겨운 숨소리]
- (달미) 왜 굳이 시대를 역행해? - 응?
(달미) 기술이 훨씬 좋고 편한데
그냥 도어 록 다시 달자, 할머니
할미 기술 싫어
노인네 따만 시키지, 뭐
기술이 왜 싫어
기술이 얼마나 편한지 보여 줄까?
(원덕) 뭐 해
(달미) 우리 삼산텍이 드디어 서비스를 시작했거든
- 뭔 서비스 - (달미) 눈길이라는 앱인데
시각 장애인용 어플이야
가, 갑자기 시각 장애인은 왜?
인공 지능인가 뭔가 한다더니
인공 지능 이용한 앱 맞아
도산이 아이디어인데
[차분한 음악]
- 도산이 아이디어라고? - (달미) 응
음성이랑 이미지 인식을 이용해서 그분들 눈을 대신해 준다
뭐, 이런 서비스지
뭐야, 피드백이 별로 없네?
아, 피드백?
그, 그게 뭔데? 어?
이용자들이 써 보고 의견 남기는 거
(달미) 됐다
할머니, 여기다가 '영실아' 하고 궁금한 걸 물어봐 봐
- 여기다? - (달미) 응
[헛기침]
영실아
내 앞에 누가 있니
[인공 지능 음성]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네요
어때? 신기하지?
아, 신기하네
[원덕의 감탄하는 숨소리]
[달미가 살짝 웃는다]
영실아
이 성경 구절 좀 읽어 줄래?
[인공 지능 음성]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저마다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사하) 새로 고침 좀 그만하죠?
그런다고 다운로드 수가 올라갑니까?
(용산) 아니, 안 믿겨서 그러죠
다운로드 수가 열 개도 안 되는 게 실화야?
(철산) 이러다 하루에 스무 개도 못 채우겄다, 아휴
아,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아, 속상해 죽겠네
속상해 죽겄다는 사람 표정이 아닌디?
[익살스러운 효과음]
(천호) 마케팅이 문제야, 마케팅이
(도산) 형
어떻게, 마케팅 전문가가 좀 나서 줘?
(도산) 뭐, 방법이 있어?
씁, 방법이야 찾으면 되지
[익살스러운 효과음]
없다는 소리잖아
- 어 - (용산) 응
(달미) 아유, 자, 다들 기운 냅시다, 예?
제가 치킨 쏠게요, 예?
예? 기운 냅시다!
가자, 가자, 치킨 먹으러 갑시다 제가 쏠게요
자, 갑시다
아이, 갑시다, 가자, 가자, 가자
[잔잔한 음악] (달미) 힘냅시다, 기운 냅시다, 어?
내가 치킨 쏠게, 우는 거 아니지?
자, 갑시다, 치킨!
- (철산) 왜 울어! - (달미) 아, 빨리빨리
[달미가 재촉한다]
(달미) 이때까지 난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달미) 안녕하세요!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달미) 그러나 주님은
내 기도에 언제나 그렇듯 [도어 록 작동음]
(금정)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 뭐 좀 찾을 게 있어서요 - (성환) 어
- (천호) 어, 안녕하세요 - (성환) 어, 그래
도산이가 박찬호랑 찍은 사진 아직 있죠?
응, 있지, 근데 그건 왜?
(달미) 묘하게 응답하셨다
(천호)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찾았다
(성환) 뭐 찾는데?
[카메라 셔터음]
[천호가 액자를 탁 내려놓는다] 야, 뭐 하는 거냐?
바이럴 마케팅요
(달미) 짠! 오!
- (달미) 이모! 여기 양념 하나랑 - (종업원) 네
- (달미) 맥주 3천 더요 - (종업원) 네, 네
(용산) 아휴, 오늘따라 맥주가 참 쓰네요
왜요? 난 단데
(달미) 우리가 신나게 닭을 뜯고 있는 그 시각
다운로드 하나 늘었다
대단하다
괜찮아, 괜찮아
마셔, 마셔, 마셔
아야, 너 우냐?
(도산) 맥주가 오늘따라 맵네
(달미) 그 하나는 바로
어처구니없게도
[휴대전화 알림음]
'눈길'?
(달미) 저 멀리 LA에 사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였다
우아, 바람 너무 좋지 않아?
[달미의 기분 좋은 탄성]
(남자) 저기요, 창문 좀 닫죠?
달미야, 미안한데 창문 조금만 닫을까?
왜, 나만 좋나?
[도산의 당황한 신음] (달미) 알았어, 알았어
[발랄한 음악] 요렇게, 요렇게만, 요렇게만
요렇게, 요러면 됐죠? 어?
와, 여름 냄새
죄송합니다 [달미의 기분 좋은 신음]
[달미의 기분 좋은 탄성]
[달미가 계속 탄성을 지른다]
[도산의 힘겨운 신음]
(원덕) 아이고
얘 술 취해서
또 버스 창문에 코 박았지? 응?
(도산) 오, 아세요?
(원덕) 어, 이러고 술 깨지
나중에 자기 얼굴에 누가 낙서했냐고 길길이 날뛴다
(도산) 아, 진짜요?
[달미의 힘주는 신음]
[도산의 당황한 신음]
[도산이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문이 달칵 닫힌다]
(원덕) 어
이게 뭐예요?
(원덕) 어, 눈빛인지 눈길인지
그거 아주 잘 만들었더라
도산이 네 아이디어라면서
아, 네
내가 쓰고 소감을 좀 적어 봤다
그게 피드백이라며, 어?
[원덕의 웃음]
아,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야 됐는데
고마워
(원덕) 나중에 내가
눈길을 많이 의지할 거 같아
[잔잔한 음악]
15년 전에
지평이하고 처음 편지 쓸 때 말이다
그때 신문에 난 네 사진을 보고 이름을 골랐어
신문…
아, 그 수학 올림피아드요?
응
그 사진 속의 네 눈매가 참 똘망똘망하고 선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 이름을 골랐지
아, 저…
많이 역변했죠?
아니, 잘 컸지, 아주 잘 컸어
(원덕) 정변
(달미) 누구야!
누구야, 누가 또 내 얼굴에 낙서했어! [밖에서 개가 왈왈 짖는다]
[소리 지르며] 어?
(원덕) 야, 시작됐다, 야, 얼른 가
- 아, 올라가 봐야 되는데 - (원덕) 시작됐다, 얼른 가 봐
(원덕) 시작됐어, 또, 응
- (도산) 아니… - (원덕) 아니, 됐어
(원덕) 아까 내가 얘기했잖아
[새가 지저귄다]
(금정) 도산아, 도산아!
야, 도산아, 일어나, 얼른, 어?
- (도산) 어? - 너 지금 텔레비전에 나와
제가, 저요?
(금정) 빨리
(TV 속 찬호) 아, 아주 오랜 옛날에 그 남도산이라는 그런 작은 그…
(성환) 얼른 돌려 봐, 얼른 [TV 속 찬호가 계속 말한다]
(도산) 아, 저분이 왜…
(성환) 어, 지금 보고 있어? 어 [밝은 음악]
(TV 속 찬호) 스타트업을 시작했다는 아주 반가운 메시지였어요
(성환) 찬호?
[TV 속 찬호가 계속 말한다] 아이, 그럼, 막역하지, 그럼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어, 저기 나오네, 저기, 어
아니, 우리 조카가 찬호한테 문자를 쳤대요
아, 그랬더니 이 자식이 저렇게 바로 또 인터뷰까지 해 주네, 아이고
아, 마치 우리가 바란 거 같잖아
[성환의 웃음]
아, 잠깐, 잠깐, 잠깐 전화 들어온다, 어, 어
아이, 나 참
아이고, 차 회장, 어
아, 그래, 저 삼산텍이 우리 도산이 회사 아니야, 그럼
상장은 아직 멀었지
아니, 아주 뭐, 아주 먼 건 아니고, 어
어? 아니, 무슨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을 산다 그래
(TV 속 찬호) 그리고 그 소년 역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스타트업을…
(영상 속 찬호)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지평) 뭐야
(영상 속 찬호) 이 앱을 써 봤는데 시각 장애인들의 새로운 희망이 돼 주지 않을까
[영상 속 찬호가 계속 말한다] 박찬호가? 왜?
눈, 눈길을?
아, 어떻게…
(영상 속 찬호) 삼산텍 파이팅!
남도산 파이팅!
박찬호가 어떻게…
(철산) 예!
우리가 삼산텍이에요, 눈길 [직원들의 환호]
우리입니다!
[철산과 용산의 신난 탄성]
(철산) 1만, 1만
잘했어요, 서 대표님
(용산) 예!
야, 글로벌로 올린 게 신의 한 수네
인도에서만 5천이야, 5천
이러다가 DAU 3만 찍겠는데? [직원들의 박수와 환호]
DAU가 3만이면
1년에 10억…
(철산) 자, 가죠, 내가 노래방 열 시간 쏠랑께
[철산과 용산이 신나한다] (사하) 가자
[직원들의 환호]
[휴대전화 진동음]
- 여보세요? - (경찰) 남도산 씨 되십니까?
예, 맞는데요
(경찰) 여긴 양진경찰서입니다
네?
경찰서요?
[감성적인 반주가 흘러나온다] (달미) ♪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 또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야 ♪
♪ 너의 기억 그 속에서 난 ♪
♪ 눈물 흘려 너를 기다릴 뿐 ♪
(철산) 이 좋은 날 선곡이 왜 저런대? [달미가 계속 노래한다]
기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나?
패러독스?
(달미) ♪ 그대 떠나보낸 내 가슴에 ♪
(철산) 저기…
[달미가 계속 노래한다]
우리 듀엣 하나 할까요? 듀엣
'잔소리'
♪ 늦게 다니지 좀 마 ♪
듀엣
솔로?
(달미) ♪ 다가와 또 난 ♪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통화 종료음] 도산이 이 자식은 깜깜무소식이야
[어두운 음악] [밖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경찰)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남도산 씨를 재물 손괴 및 협박으로
모닝그룹 원두정 회장이 고소를 했어요
- 네 - (경찰) 워낙 피해액이 적어서
(경찰) 합의만 좀 해 오면 정상 참작이 될 텐데
합의해 올 수 있겠어요?
합의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경찰) 뭐, 검찰에 송치돼서 조사받겠죠
재수 없으면 재판까지 갈 수도 있고
골치 아파지죠
[경찰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쿵 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 음성] 내려갑니다, 1층
[한숨] 문이 닫힙니다
[달미의 한숨]
(달미) 아, 어떡하지?
모닝그룹은 죽어도 싫은데
[한숨]
그냥 눈길 확 접을까?
[달미가 머리를 벽에 쿵쿵 박는다]
[짜증 섞인 숨소리]
어?
뭐야?
하루 종일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갔었어?
그, 잠깐 어디 좀 갔다 왔어
(달미) 그건 뭐야?
(도산) 아, 이거 눈길 피드백 노트인데
너한테 전해 주래
아, 진짜? 나한테?
[잔잔한 음악]
[달미의 놀란 신음]
와, 진짜 꼼꼼하게 적으셨다
글씨가 꼭 우리 할머니 글씨 같네
(달미) 전맹은 아니시고 저시력 같은데
아, 시력을 잃어 가시는 분이구나
이거 보니까 진짜 보람이 막 느껴진다
이분 누구야? 만나 뵙고 싶다
달미야
(달미) 응?
놀라지 말고 들어
[달미가 흐느낀다]
(달미) [울며] 할머니 어떡해
고마워, 도산아
뭐가
그냥 다
눈길 만들어 준 것도 고맙고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사실대로 얘기해 준 것도 너무 고맙고
하, 나 진짜 자꾸 왜 이러냐, 진짜
[달미가 흐느낀다]
달미야
할머니가 그러셨어, 응?
달미 너 이쁘게 웃는 거
오래 보고 싶다고
(도산) 그러니까
응? 웃어 봐
나 운 거 티 나?
응, 좀 나, 아니
(도산) 많이 나
- 많이 나? - (도산) 응
(달미) 안 되는데
티 나면 안 되는데
어떡해
못 봐 주겠다, 진짜
- 괜찮아? - (도산) 괜찮아
(도산) 아, 여기
- 이쪽에? - (도산) 응
[문이 철컥 닫힌다]
[원덕이 손톱을 탁 깎는다]
[원덕이 손톱깎이를 탁탁 친다]
(원덕) 어, 어서 와, 저녁은?
(달미) 먹었어
이리 줘 봐, 내가 깎아 줄게
(원덕) 아유, 됐어, 내가 깎아
(달미) 됐어, 내가 깎아
[원덕의 힘주는 숨소리]
이게 뭐야, 엉망진창이네
할머니
내가 눈길 열심히 만들게
어?
열심히 만들어서
할머니…
[슬픈 음악]
[헛기침]
많이 안 불편하게 해 줄게
내가 꼭
달미야
할머니, 나 오늘만
딱 오늘만 울고
진짜 맨날 웃을게
그러니까
아…
아유, 이 콧물 봐라
아이고, 이쁜 내 강아지
[달미가 흐느낀다]
원 회장님
지금쯤 도착하셨으려나?
대기실에 계실걸?
원 회장님?
웬일이야, 님 자를 붙이고
[차분한 음악]
지금부터
(달미) 없던 존경심을 끌어모아 보려고
가면 뵐 수 있나?
없겠지
그 난동을 부려 놓고 무슨 염치로
최소 접근 금지야
그럼 언니가 같이 가 줘라
언니라면 들여보내 줄 거 같은데
내가? 왜?
나
가서 언니네 아버지한테
바짝 엎드려서 빌어 볼까 하거든
빌어?
갑자기 왜 이래
자존심도 없니?
나 지금 벼랑 끝이야
그딴 거 챙길 여유 없어
[한숨]
데려다줘
바보짓 제대로 보여 줄게
따라와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뵈러 왔어요
(수행원) 들어가시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도산아
달미야
(두정) 아주 보기 좋다?
둘이 같이 빌러 왔냐?
네가 여길 왜…
[어두운 음악] [상수의 헛웃음]
(상수) 서로 몰랐나 본데요, 아버지?
(두정) 내가 재물 손괴랑 협박으로 고소를 했거든
합의 못 받아 오면 인생에 빨간 줄 생기는데 별수 있나? 응?
빌어야지
(상수) 서 대표님은 여기 왜 오신 건가?
(달미) 저희 눈길 서비스에
모닝그룹 CSR 자금을 지원받으러…
(상수) 와…
[상수의 헛웃음]
너희 상상 이상이다, 어? 염치없기가
잠깐
(두정) 그래, 지원?
생각은 해 볼게
(상수) 아버지
둘이 같이 내 앞에서 빌면
아버지
(두정) 사업하는 놈들인데 가르쳐 줘야지
너도 알잖냐
객기가 통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주머니 가벼운 놈들이 입까지 가볍게 놀리면
어떤 고생을 하는지 깨우쳐 줘야지
안 그러냐?
사람 일 한 치 앞도 몰라, 그렇지?
그러게요, 예측을 허락하질 않네요
그래서 늘 준비가 필요하죠
[흥미진진한 음악]
(두정) 나야, 뭐 기술 잘 모르니까 이쯤에서 그럼
(상수) 가시게요?
(두정) 잘 부탁해, 응? [휴대전화 진동음]
내가 해커톤 때 찜한 팀이야
(상수) 아유, 제안서만 봐도 딱 알겠더라고요
(지평) 원두정 회장 만나고 있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녹취하세요
끝나고 잠깐 들러요
(두정) 자, 그럼 수고들
[문이 탁 열린다]
(상수) 아, 앉아, 앉아, 앉아
그, 인재 동생이라고? 어?
- 네 - (상수) 내가 인재 오빠니까
(상수) 뭐, 오빠다 생각하고 얘기할게
(녹음 속 상수) 뭐, 거창한 꿈을 가지고 온 거 뭐, 알겠는데
그런 생각 버려
우린 이미 엔지니어 셋업 끝냈고
우리가 필요한 건 딱 알바야
그게 너희들이고
녹, 녹취를 했어?
더 있으니까 들어 봐요
(녹음 속 두정) 노가다다 생각하면 노가다고 경험이다 생각하면 경험이 되는 거야
젊다는 게 뭐야
열정, 응? 그 열정을 우리가 산다고
(달미) 분명 솔루션 제공에 5천만 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씁, 아까 여러분들 홈피 보니까 썰렁하던데
(두정) 메인에 우리 로고 써요
모닝그룹 협력 업체
(녹음 속 두정) 이거 한 줄이 5천보다 가치 있지, 어?
(달미) 밖에 젊은 친구들이 꽤 왔더라고요
강연 주제가 좋아서인지 기자들도 왔던데
이거 들으면 재밌는 기사가 엄청 쏟아지겠죠?
'청춘들을 응원한다는 원두정 회장'
'뒤에서는 청춘들 등골 뽑아 먹어'
- 와, 헤드라인 죽이네 - (두정) 그래서
이걸 기자들에게 넘기겠다?
(달미) 왜, 기업 이미지는 기자들 펜대에서 무너진다잖아요
그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시간과 돈이 꽤 들 테고
[두정의 초조한 숨소리]
모닝그룹 CSR 자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 아닐까요?
[밝은 음악] (두정) 너, 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협상 쪽이 서로 더 듣기 좋은 말 같은데요
아, 저게 미쳤나, 저게
(달미) 추락하기 전에 막는다 생각하시고
모닝그룹 CSR 자금
저희 눈길 지원하는 데 쓰시죠?
아니, 저 양아치 같은…
가만있으세요
물론
합의도 해 주셔야 합니다
"선행 나누기"
실리콘 밸리에는 '페이 잇 포워드'라는 문화가 있죠
(두정) 성공한 선배 창업가들이
후배 창업가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는 문화를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 성공한 선배인 제가
이 자리에서 그 정신을 몸소 보이고자 합니다
올해 모닝그룹 CSR 사업으로
샌드박스 12기
삼산텍의 '눈길'을 선정했습니다
[TV 속 청중들의 환호]
[웅성거린다]
[청중들의 환호]
(두정) 시각 장애인의 동반자 눈길을
선배인 이 원두정이가 응원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청중들의 환호]
(청중) 멋있다!
멋있다!
(달미) 자
- (지평) 이게 뭡니까? - 가평에서 잣칼국수 포장해 왔어요
(달미) 이거 포장 안 된다는 거 엄청 졸라서 해 온 거예요
맛있어야 되는데
이거 왜…
이거 먹으러 가평까지 간다면서요
(달미) 덕분에 눈길 운영비 마련해서 고맙고
또 뭐, 지난 생일도 챙겨 줄 겸 겸사겸사
아, 이거
여기 만드는 법 적어 놨어요
예
- 갈게요 - (지평) 아, 서 대표님
(지평) 저기, 이거
사업 계획서 조금 손봤어요
이제 데모 데이도 준비해야 되니까
감사합니다
(달미) 갈게요, 맛있게 드세요
(지평) [머뭇거리며] 예, 예, 맛있게 먹을게요
고마워요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이게…
만들어야 되는구나
[풀벌레 울음]
[달미의 놀란 신음]
와, 진짜 꼼꼼히도 달았다
글씨체 완전 한석봉이네
응?
(달미) 이 글씨…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의미심장한 음악]
[달미의 놀란 숨소리]
글씨체가 도산이랑 똑같네?
(지평) 네, 도산이랑 같아요
내 생일
글씨체도
생일도 똑같아?
어떻게?
[밝은 음악]
(지평) 아, 이게…
잣이 안 보이는데
잣 맛이 나네?
이…
이야…
[입바람을 후후 분다]
[뜨거워하는 숨소리]
[만족스러운 신음]
[지평의 시원한 숨소리]
[지평의 힘주는 숨소리]
[자동차 시동음] [안전띠를 달칵 채운다]
(지평) 응?
[자동차 경적]
(지평) 마침 잘 만났네요
이거 서 대표 좀 갖다주세요
이걸 팀장님이 왜…
세차하는데 나오더라고
달미가 팀장님 차 탔어요?
네
- 왜요? - (지평) 씁, 그건…
얘기하지 말라 그러던데
갈게요
(지평) 어, 팔, 팔, 팔 조심, 갈게요
[기어 조작음]
[자동차 경적]
(지평) 아, 마침 잘 만났네
이거 서 대표 갖다주세요
이걸 팀장님이 왜…
세차하는데 나오더라고
달미 거 맞아요? 다른 여자 거 아니에요?
어?
다, 다른 여자 없습니다
팀장님 모솔이에요?
아니, 얘기가 왜 그리로 튑니까?
팀장님, 그, 집도 가까운데 차 말고 자전거 타고 다니세요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서, 아시겠어요?
(도산) 갈게요
[차를 탁탁 친다]
(지평) 아, 저, 저…
저…
아유, 씨
아, 꼴 보기 싫어
[감성적인 음악]
(달미) 너무 좋아서
나 겁나
(도산) 겨우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나한텐 전부인데
- 그걸 욕심냅니까? - (지평) 그럼 바꿉시다
(성환) 너 뭐 하는 놈이야
(도산) 실망만 하시니까 저도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
(달미) 도망치지 마
너는 달보다 어마어마하게 커
(지평) 신경 쓰이고 욕심나고 억울하고
(달미) [울먹이며] 왜 거짓말했어?
울까 봐
(도산) 지금처럼 네가 울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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