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9
[풀벌레 울음]
[잔잔한 음악]
[달미의 놀란 숨소리]
글씨체가 도산이랑 똑같네?
(지평) 네, 도산이랑 같아요
내 생일
글씨체도
생일도 똑같아?
어떻게?
(도산) 또다시 바람이
돌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5년 전 그때처럼
[새가 지저귄다]
(성환) 아, 도산아, 남도산!
(어린 도산) 네, 나가요
(성환) 어,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가족들의 환호]
그래, 밥 먹어, 밥 먹어, 어, 어
야, 그, 네가 나간다는 수학 올림피아드가
그게 중등부랬나, 고등부랬나?
- 고등부요 - (성환) 거봐! 고등부 맞잖아
(친척1) 오, 대단하네
- (친척2) 이야, 누굴 닮은 건가? - (친척1) 과외시켰어요?
아, 우리가 과외시킬 돈이 어디 있어요
아, 날 닮은 거지 야, 너 기억 안 나? [친척1의 당황한 신음]
내가 어릴 때 주판알 예술로 튕겼잖아, 응?
(성환) 쫙, 165… [가족들의 웃음]
(친척1) 핏줄이네, 핏줄이야
(친척2) 이야, 부전자전! 좋겠습니다, 형님! [가족들의 웃음]
뜯어 가지고 쭉쭉 빨아 먹어, 그냥
옳지, 옳지, 응 [차분한 음악]
(금정) 머리 더 좋아지겠네 [가족들의 웃음]
(도산) 그때 난 모든 문제를 풀고
딱 한 문제만 남겨 놓고 있었다
평소에는 쉽게 풀었을 그 문제가
이상하게 날 괴롭혔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딱 한 줄
[다가오는 발걸음]
그 문제의 풀이가
눈에 들어왔다
[깨달은 숨소리]
난 그 바람의 이름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 셔터음]
[사람들의 박수]
그러나 딱 한 줄
그 한 줄을 봤다는 이유로
아홉 개를 푼 나의 실력은 [성환이 말한다]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여자1) 뭘 잘했다고 울어!
애한테 진 게 뭐 억울한 일이니?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도산) 메달이 너무나 무거웠다
(금정) 사람들 이렇게 많은 데서 지금…
(도산) 그래서 결국 난
(어린 도산) 이거 가져요
저 필요 없어요 [성환의 당황한 신음]
(성환) 인마
아, 양보할 게 따로 있지 메달을 양보하면 어떡해
(금정) 아, 우리 애가 저렇게 욕심이 없어요, 욕심이
[차분한 음악] 욕심이 없어
(도산) 욕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난 자격이 없었다
[금정과 성환이 대화한다]
- (여자2) 축하드려요 - (금정) 네, 감사합니다
[바람이 솨 분다]
(도산) 그날 시험장에 불어왔던 바람은
행운의 바람이 아니라
[무거운 음악] [성환의 한숨]
(성환) 대체 뭐가 문제냐, 어?
왜 대학을 그만둬
남들보다 무려 6년을 득 보는데 왜!
(금정) 말을 해 봐
왜 그랬어, 어?
도산아
[성환의 한숨]
(도산) 훗날
내 자존감을 허무는 [흐느낀다]
매서운 돌풍이었다
(지평) 딱 한 시간입니다, 한 시간만 편지 속의 남도산인 척해 줘요
이쁘다
(도산) 불어오는 바람이 물어다 주는 행운
그 행운을 난 잡아 버렸고
(지평) 이거 서 대표 좀 갖다주세요
이걸 팀장님이 왜…
세차하는데 나오더라고
(도산) 또다시 난
(도산) 저희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요
(달미) 씁, 원두는 뭘로 할까?
나 이거
- 저거? 주황색? - (달미) 응, 응
- (달미) 이거, 이 색깔로 주세요 - (도산) 주황색, 네 [종업원이 대답한다]
(도산) 이거
어? 이거 한참 찾았는데
이거 어디서 났어?
사무실에서
아, 사무실
[잔잔한 음악]
저기, 도산아
[컵을 탁 내려놓으며] 어?
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어…
(도산) 15년 전 그때처럼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달미의 고민하는 신음]
이 커피랑 달달이 케이크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냐?
그러게 [헛기침]
잘 어울린다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마우스 클릭음]
[달미의 헛웃음] [키보드 소리가 계속 들린다]
[마우스 클릭음]
[발랄한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표정이 왜 저래요?
(사하) 초 단위로 일희일비하네?
눈길 리뷰에 답변 달고 있어요
선플 봤나 보다
[천둥이 콰르릉 치는 효과음] [성난 숨소리]
(철산) 악플 봤어
인제 키보드 워리어 모드여 저, 저거 봐 봐
저, 키보드 다 부수겄다, 어유
(사하) 우리 대표님 평판에 연연하는 스타일이었네?
저기, 실례합니다
(연호) 말 좀 물읍시다
혹시 여기가 인재컴퍼니입니까?
아, 아니요, 여기 앞인데
- (달미) 저 따라오세요 - (연호) 아, 감사합니다
저 아저씨 계란을 들고 있는데?
뭐?
"인재컴퍼니"
[달미가 노크한다]
(인재) 웬일이야,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다 오시고
(달미) 손님 오셨어
여기예요
(연호) 저기
원인재 대표님이 누구신지…
딱 보면 모르시겠어요?
(달미) 지금 여기 다들 쎄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여기, 여기 날로 먹고 계신 분
여기 있잖아요
제가 원인재입니다, 무슨… [달미의 놀란 비명]
[어두운 음악] (연호) 야! 너구나?
우릴 몽땅 자르겠다는 년이 너야!
- (대명) 다 뭐야, 이거 - (연호) 놔, 이거 안 놔? 놔!
(연호) 야, 이씨
[연호가 소리친다] [달미의 다급한 신음]
(연호) 이야! [도산의 다급한 탄성]
[직원들이 연호를 제지한다] 놔! 안 놔?
[소란스럽다]
(연호) 놔! 너희들이 뭔데!
너희들이 뭔데 우리 일터를
야!
(도산) 달미야, 괜찮아?
[달미와 인재의 거친 숨소리]
어, 괜찮아
괜찮아? 안 다쳤어?
어
- (대명) 대표님, 괜찮으세요? - (이수) 안 다치셨어요?
[인재의 거친 숨소리] [달미의 멋쩍은 숨소리]
(연호) 너희들이 뭔데 우리 일터를 날려! 어? [카메라 셔터음]
어? 너희들이 뭐야! [무전기 작동음]
난 포기 안 해! 난 반드시 다시 온다!
(도산) 와, 장난 아니네
(철산) 긍게
(연호) 놔, 이놈들아!
(양원) 뭐야? 뭐, 무슨 일이에요?
아, 그, 하운건설 직원이래요
(용산) 인재컴퍼니에서 만든 무인 경비 시스템 때문에
해고 위기랍니다
아휴, 돈을 벌면 뭐 하냐 인간미가 없는데
[용산이 혀를 찬다]
인간미만 넘치면 뭐 하냐 돈이 안 되는데
[현의 한숨]
[철산의 헛웃음] (도산) 왜 저렇게 진지해?
말을 참 싸가지 없게 하네요
- 뭐, 잘나가요, 저 사람? - (도산) 예, 잘나가긴 해요, 응
저 나이에 리조트 회원권까지 있으니까
(철산) 아, 글면 뭐 한대? 초심을 잃었잖애, 쯧
딱 내 이상형이네
나 돈 많고 초심 잃은 사람 좋아하는데
(사하) 어디 리조트 회원권일까?
[코웃음 치며] 리조트 회원권?
그, 개나 소나 다 있는 거?
나는요, 별장 있어요
[익살스러운 음악] - 아, 그 별장? - (도산) 프라이빗 비치
(사하) 진짜? 그렇게 안 보이는데
[코웃음 치며] 우리 집이 매생이 양식장을 한다고 했잖아요, 예?
오리 쫓을라고 움막을 이쁘게 지어 놨는디
카, 움막에서 보이는 바다가
[익살스러운 효과음]
코타, 코타키나발루? 치
(철산) [비웃으며] 사, 산토리니?
다 싸대기를 갈겨 불지, 예?
지구에서 아주 최고로 멋진 어떤
석양을 본당게요 [철산의 탄성]
[박수를 딱 치며] 아, 맞아, 맞아 지금이 딱 좋은디, 시기가, 어
우리 그 도로를 같이 이렇게 드라이브로…
어디 가요? 예?
아, 저, 진짜예요!
아야, 니들이 얘기 좀 해 줘 봐 봐
(용산) 아, 그, 갯벌에서 조개도 잡을 수 있어요
(도산) 진짜 풍경 예술인데, 거기
(철산) 그곳의 온도, 습도…
근데 누구신지…
최양원이라고 합니다
(이수) 아, 기자님이시구나
예
[변기 물이 쏴 내려간다]
[흥미진진한 음악]
[달미가 손을 씻는다]
- 저기, 달미야 - (달미) 잠깐, 내가
내가 먼저 말할게
(달미) 혹시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 건데
아까 내가 한 행동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으면 해, 응
(인재) 의미?
(달미) 어, 그냥 반사적인 행동이야
언니가 아니라 다른 누가 있었어도 나는 똑같이 막아 줬어
내가 좀 보호 본능이 남달라, 어
뼛속까지 이타적이랄까?
그래서 친구들이 나보고 출마하래 난 정치에 뜻은 없고…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없던 일로 쳐, 됐지?
어
[흥미진진한 음악]
(달미) 그게 끝이야? 뭐 할 말 있지 않았어?
없어
있었는데, 무슨 말 하려고 했는데
[물티슈를 부스럭 든다]
아…
너 엉덩이에 꼬리 달렸어
꼬리?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씨, 젠장
- (알렉스) 뭐 보고 있어요? - 깜짝이야
(지평) 아, 좀 있으면 12기 데모데이잖아요
자료들 좀 뽑아 봤어요
[영어] 오, 또 그 시간이네
[한국어] 아, 소문에 투스토가 12기에 찜한 팀 있다던데?
(지평) 실리콘 밸리로 진출시키겠다는 말 돌아요
진짜입니까?
[영어] 확실히 그렇죠
[한국어] 아, 소문 좀 더 내줘요, 좀
(지평) 에이, 이미 정한 눈치인데
어디입니까?
그야 비전이 있는 쪽이죠, 당연히
[밝은 음악]
비전?
어느 팀요?
돈 많이 버는 팀? 아니면 사용자가 많은 팀?
그야 당연히 돈 많이 벌어다 줄 쪽이죠
(알렉스) [영어] 아, 이번 데모데이 아주 기대가 큽니다
[한국어] 둘이 같이 오네요?
어떤 의미도 없어요
같이 오려고 온 게 아니고
- 알았으면 딴 시간에 왔겠죠, 네 - (인재) 그냥 우연히 만났어요
서 대표님은 한 팀장님이랑 미팅이죠?
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오실 거예요
- 네 - (선학) 원 대표님은 나랑 같이 가죠
네
(선학) 얘기 들었습니다 봉변을 당했다면서요?
(인재) 괜찮습니다
하운건설 사람이라던데
그쪽 일도 협업 진행 중입니까?
네, 정한은행에서 소개해 주셨어요
하운건설 쪽도 AI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셔서
(선학) 소식 들었습니다
경비들이
하운건설 앞에서 시위를 한다면서요?
네
그거야 당연히 예상했는데
솔루션 제공자인 저희한테까지 와서 행패를 부릴 줄은 몰랐어요
[차분한 음악]
(선학) 그걸 행패라고 생각합니까?
네?
(선학) 음…
지금까지 원 대표 하는 거 보면서 한 번도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방금 그 행패란 말은 좀 걱정이 되네요
[헛웃음]
행패가 아니면 뭐죠?
난
리스크라고 봅니다
위험하단 뜻입니까?
아니요
리스크는
위기란 뜻이죠
위험하곤 달라요
그 정도 차이는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지평) 보니까 리뷰에 다 답글 달고 악플들하고 배틀 뜨던데
아니, 보니까
아, 표현이 너무 과격하잖아요
(달미) 눈길이 배터리를 다 잡아먹어서 개판이래요, 개판
아니, 뭐, 다른 표현 많잖아
좀 떨어진다, 아쉽다
아니, 개판이 뭐야, 개판이
우리 개발자들이 보면 얼마나 힘 빠지겠어요
[달미의 한숨]
[조작음]
(지평) 아마추어는 VOC를 감정으로 대응하죠
프로는 데이터로 대응하고
(달미) 지금 제가 아마추어 같다는 말인가요?
네, 내가 서 대표라면
유저만큼 고객 유치도 신경을 쓸 겁니다
(달미) 아니, 유저가 고객이잖아요
(지평) 보통은 그렇지만 눈길은 다르죠
눈길은 유저가 수익이 되는 사업 모델이 아니잖아요
눈길의 고객은 이 사업에 공감하는 재력 있는 사람들이죠
현재 눈길의 고객은 모닝그룹 하나입니다
사업 모델과 수익 모델을 분리해야 돼요
[차분한 음악] 그리고 고객을 유치하려면 신경 써야 할 게 바로 홍보입니다
서비스 취지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을 하고
그다음에 고객을 유치하는 거죠
그리고 홍보는…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니에요
홍보는 언론을 이용하는 게 좋아요
(지평) 인터뷰 그리고 이슈를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홍보해야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어요
[도산이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철산의 탄성]
(도산) 나 진짜 많이 변했어
15년 전 일 솔직히 기억 잘 안 나, 아니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그냥 네가
그때의 나를 몰랐으면 좋겠어
- 왜? - (도산) 나 그때 되게 별로였어
(도산)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괜찮지도 않았거든
- (철산) 천재여, 천재 - (용산) 응
(도산) 잠깐만
내가 지금 배터리 효율을 좀 높여 봤거든?
뭐, 앞으로 열받게 하는 댓글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달미) 응
(인재) 좋은 아침
(대명) 대표님, 뉴스 보셨어요?
- 뉴스? 무슨 뉴스? - (대명) 네
(영상 속 양원) 하운건설은 AI로 만든 [영상 속 시위 소리가 들린다]
경비 인력 감축 솔루션을 개발한
인재컴퍼니와 협력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하운건설 산하 경비업체들이
(인재) 행패가 아니면 뭐죠?
[흥미진진한 음악] 난
리스크라고 봅니다
[영상 속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현) 이야…
시작도 하기 전에 네거티브로 초를 치는구나
(영상 속 양원) 집단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수) 결국 기사를 냈네
- 저 기자 알아요? - (이수) 네
(이수) YGN 최양원 기자라고
명함 받아 놨는데
(정) [헛웃음 치며] 저 기자 삼산텍으로도 기사 썼어요
(양원) 아, 모닝그룹이 올해 사회 공헌 사업으로
삼산텍의 눈길을 선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부기반홍이라는 말이 있어요
회장님, 저, 카메라 말고 저를 보고 대답해 주시겠어요?
(두정) 아, 예
예, 부기반홍이란 말이 있어요
이 말꼬리에 붙은 파리가 천 리를 간다는 뜻이죠
후배들이 내 꼬리에 붙어 가고 싶다는데 어쩌겠어요
선배인 제가 매달고 가 줘야지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눈길에 자금 지원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천호) 어? 삼산텍
또 매스컴 탔네? 대박
(TV 속 두정) 좋은 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삼산텍 서달미 대표한테 많이 고맙습니다
[TV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 서달미가 누구냐? - (천호) 예?
대표잖아요, 삼산텍 대표
쟤가 왜 대표니?
우리 도산이는 어쩌고?
도산이가 얘기 안 했…
나요?
무슨 얘기
[휴대전화 진동음]
- 여보세요? - (천호) 야, 너 지금 어디야
나?
나 지금 달미 데려다주고 집에 가고 있는데, 왜?
(천호) 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헛기침]
지금 진돗개 하나야
오늘은 딴 데 가서 자고 와
왜?
너 부모님한테 대표가 서달미라는 거 말씀 안 드렸냐?
(천호) 아무튼 오늘 오면 안 돼, 알았지? [한숨]
끊는다 [통화 종료음]
(도산) 아…
(용산) 아니, 원 회장은 왜 우리한테 말도 없이 인터뷰를 했대?
(철산) 아, 그것이 문제가 아니지
니는 왜 또 아버지한테 서 대표 얘기를 안 했냐, 어?
이 투자 계약서 어찌 찍었어
아버지 도장 몰래 갖다 찍었지
(철산) 이런 미친놈이, 이게, 이게, 이게, 씨
그거 사문서 위조여 니 형사 처벌 받고 싶냐?
형사 처벌보다 아버지가 더 무서웠나 보지
오늘 가서 사실대로 말씀드릴 거야
(용산) 아, 작살날 텐데
(도산) 그러니까 마시잖아
맨정신으론 작살날 자신이 없으니까
- 뭐라고 말씀드리게? - (철산) 응, 시뮬레이션 한번 해 보자
우리가 체크 쪼까 할랑게
알았어
[차분한 음악]
속여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도산) 대표 자격도 능력도 없는 놈이
눈 가리고 아웅을 좀 길게 했네요
(철산) '니 그 여자가 꼬셨제?'
'꼬셔서 대표 자리 넘겨준 거 아니여?' 이러시믄?
아니에요, 아버지
애초에
별거 아닌 놈이
(도산) 그냥 창업하겠다고 나댄 겁니다
제가 틀렸어요, 제가
개차반이라 죄송합니다
주접떤다
야, 네가 개차반이면 우린 뭐야
- (용산) 뭐, 개똥차반이냐? - (철산) 글지
(철산) 코딩으로 1등 먹은 놈이 그러면 쓰겄냐
근데 아버지
(도산) 틀려서
불꽃놀이를 봤거든요?
(철산) 불꽃놀이?
겁나 난데없는 전개인디?
틀린 길로 잘못 들어섰다가
불꽃놀이를 봤는데
그게 되게 근사했거든요
왜 그랬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왜 거짓말했어?
처음엔
네가 웃는 게 좋아서 그랬어
지금은?
울까 봐
지금처럼 네가
울까 봐
(도산) 미치겠다
어떡하냐, 나
[흐느낀다]
(철산) 아야, 도산아, 인나 봐, 어?
니는 술을 왜 그렇게 처마셨냐, 아…
도산아, 인나 봐
[한숨]
얘 어쩌냐, 어디로 데리고 간대?
서 대표 부르자
어?
(철산) 뭐? 여기?
얘 왜 이래요?
(달미) 나랑 있다 좀 아까 헤어졌는데 [도산의 술 취한 신음]
(철산) 예, 그사이에 술을 살포시 혔습니다
(달미) 아니, 살포시 먹었는데 이렇게 돼요?
얘 무슨 일 있어요?
(용산) 대표님, 오늘 도산이 좀 집에서 재워 줄 수 있을까요?
네?
(철산) 아, 그, 이 꼴로 집에 들어가믄
얘 아부지한테 아주 아작이 나 부러요 [아파하는 신음]
향 꽂아야 돼요, 바로
저희 오피스텔로 데려가면 바로 쫓아오셔 가지고
[도산이 헛구역질한다] (용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아니, 그래도 좀…
힘들겠죠?
뭐, 힘들겠지만 해 볼게요
(철산) 아, 에이, 에이, 대표님, 아!
우리가 집까지는 델따 주지
아야, 너 택시 후딱 불러 봐야
나만 믿으쇼, 예
자, 도산아, 집에 가자 [흥미진진한 음악]
[도산의 술 취한 신음] 자, 하나, 둘
- 이거만 도와줘 봐요 - (달미) 아이고
(철산) 하나, 둘 [달미의 힘주는 신음]
자, 됐어, 인제, 인제 됐어 어유, 어유, 어유 [달미의 당황한 신음]
인제 됐어, 자, 괜잖애
아, 괜잖애요, 아이, 나 혼자 돼
[철산의 힘주는 신음] [용산과 달미의 당황한 신음]
- (철산) 괜잖애, 괜잖아 - (달미) 괜찮아?
(철산) [힘주며] 괜잖애
무슨 일입니까?
어? 한 팀장님
아, 뭐, 이런 쓸데없는 우연이…
(철산) 택시 잡혔어? 어?
[도산이 헛구역질한다] [철산의 놀란 탄성]
[흥미진진한 음악] 너 죽여 분다!
[도산이 헛구역질한다] 하지 마
아, 나 소름 돋아
- 뭐야 - (철산) 아, 기사님!
- (철산) 이것 좀 도와주세요 - (지평) 뭐래 [도산이 헛구역질한다]
[용산의 놀란 탄성]
[도산이 웅얼거린다]
(달미) 뭐?
[웅얼거린다]
(도산) [술 취한 목소리로] 미안해
[한숨]
(달미) 왜 이래, 진짜
(지평) 우리 집으로 가죠 아무래도 우리 집이 좀 더 편하고
(달미) 어, 우리 집으로 가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도산의 술 취한 신음]
- (달미) 도산아, 도산아 - (지평) 왜 이래, 왜 이래, 왜 이래
[익살스러운 음악] 야
- (달미) 아, 도산아 - 야, 도산아
- (도산) 아, 나 진짜 토할 거 같아 - 도산아
도산아, 달미 씨, 달미 씨 [달미가 당황한다]
잠깐만, 야, 야, 야, 야, 야! [도산이 헛구역질한다]
(지평) 야, 도산아, 운전하잖아, 도산아
[도산의 힘겨운 신음] (달미) 어, 누워, 누워, 그래
- (달미) 괜찮으세요? - (지평) 토했어요?
(달미) 아니, 토 아직 안 했어요, 토…
(지평) 깜짝이야
(원덕) 아니, 무슨 술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마셨대 그래, 응?
(지평) 그러게 말입니다
주제 파악 못 하는 놈이 주량 파악까지 못하나 봐요
너무 무겁죠?
전혀, 솜털 같아요
도산이 얘가 많이 부실하네
(지평) 얘 거북목에 골다공증인가 봐요
어디로 갈까요?
- (달미) 어? - (원덕) 이쪽
- (지평) 이쪽 - (원덕) 이쪽으로
(지평) 이야, 가벼운 거 봐
솜방망이 내 동생
[지평이 숨을 후 내뱉는다]
(원덕) 저기
아이고, 아이고
[도산의 술 취한 신음]
(지평) 아, 아유, 팔, 다리, 어깨, 허리야
- (지평) 아유, 아파 - (원덕) 뭐야
(원덕) [작은 소리로] 야, 솜털 같다며
아이고, 참
그냥 솜털 아니고 물먹은 솜요!
(지평) 아니, 솜 아니고 물 먹은 코끼리
코끼…
아니야, 코끼리는 귀엽기라도 하지
뭐 없어요?
무겁고 짜증 나고 그런, 아…
짜증 나고 그런 거?
[익살스러운 음악] 아유, 당 떨어져, 씨, 쯧
아이고, 야, 도산이가 속이 많이 안 좋긴 했나 보다
예?
[냄새를 킁 맡는다]
어유
[지평의 당황한 신음]
아, 이걸 언제 토했…
소리 소문 없이 했나 보네
아이고, 조신해라, 아유
- 조신? - (원덕) 응
지금 조신이라 그러셨어요?
[지평의 웃음]
할머니가 보기에는 이게 조신으로 보여요?
저게 조신으로 보여요, 지금?
야, 조용히 해, 달미 듣겠다
얼른 나와서 씻어
(지평) 씨…
[문이 드르륵 열린다] [도산을 퍽 때린다]
[지평이 도산을 퍽 때린다] [도산의 신음]
[문이 달칵 닫힌다]
(원덕) 아유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 이 옷밖에는 없는 거죠?
(달미) 아
이것도 있는데 이걸로 드릴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요, 아, 됐습니다
(지평) 그, 옷은 나중에 빨아서 줄게요
(원덕) 아, 뭘 빨아서 줘요
가져가요
예
(지평) 저, 그럼 가 보겠습니다
(원덕) 당 떨어졌다며
어, 식사하고 가요
(달미) 저녁 안 드셨으면 드시고 가세요
아, 예, 그러면 딱 식사만, 예
(원덕) 자
[원덕의 힘주는 신음]
- (원덕) 자 - (지평) 맛있겠다 [원덕의 웃음]
- (원덕) 어, 얼른, 먹어 - (지평) 아, 잘 먹겠습니다
(원덕) 아이고
[지평의 만족스러운 신음]
(도산) 저…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익살스러운 음악]
방금 전까지 친구들이랑 있었는데
친구들이 널 버렸어
(지평) 나랑 서달미 씨가 주워 왔고
(도산) 아…
(원덕) 어, 야, 너도 앉아라, 배고프지?
어, 저, 저, 저, 응
[지평의 헛기침]
- (원덕) 어, 여기, 자 - (도산) 아…
(도산) 제가…
(지평) 국은 내 거야
(도산) 먹태랑 골뱅이를 먹었는데 배가 고프네요
먹태랑 골뱅이까지 죄다 토했거든
여, 여기다가
(지평) 아니, 나…
(도산) 아…
(달미) 너도 옷 갈아입어야겠다
[도산의 헛기침]
(도산) 고마워
속은 괜찮아? 머리는 안 아프고?
어, 괜찮아
미안해, 많이 고생했겠다
아니야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지평의 사레들린 기침]
- 그래도 돼? - (지평) 미친놈…
(달미) 응, 돼
술 다 깨려면 너무 늦으니까
오늘 여기서 자고 가
나도
[흥미진진한 음악]
자고 가도 됩니까?
- 네? 네? - (지평) 네?
아니, 왜?
도산이 혼자 두고 가는 건 불안해서요
우리는 각별한 사이니까
(지평) 아니면 지금 나랑 같이 가든가
잘 먹겠습니다
[익살스러운 효과음]
[도산의 짜증 섞인 숨소리]
(도산) 아휴, 진짜
[도산의 힘주는 신음]
한강 뷰 아파트에, 어?
킹사이즈 침대 놔두고 왜 하필 여기서 자겠다는 겁니까?
[지평의 한숨]
그쪽이야말로 부모님 계신 스위트 홈 놔두고 왜 여기서 자나?
아휴, 있는 놈이 더하네
뭐? 놈?
(지평) 놈? 놈?
지금 뭐라 그랬습니까, 예?
(도산) 아이고, 죄송합니다
있는 분으로 정정하죠
있는 분이 더하고 계시네요
내가 뭘 더했는데?
뭐가 있는데 나 당신보다 부족한 거 많습니다
(도산) 부족? 부족한 게 뭐가 있어요
(지평) 있죠, 많죠
아, 내가 당신보다 키가 4cm가 작잖아
[어이없는 숨소리]
나 거북목이에요
[헛웃음]
당신은 나이가 깡패잖아
(지평) 당신은 20대, 나는 반 70
한강 뷰 아파트에 그, 차보다 비싼 시계 있잖아요
아유, 당신은…
(지평) 당신…
하, 참,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지금
어유, 그래요 쥐뿔도 없어 가지고 좋겠습니다
어유 [박수 친다]
그래요, 쥐뿔 없고 딱 하나 있어요
(도산) 겨우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나한텐 전부인데
그걸 욕심냅니까?
그럼 바꿉시다
(지평) 한강 뷰 아파트랑 차보다 비싼 시계 줄 테니까
그 딱 하나랑 바꿔요
싫습니다
[도산의 힘주는 숨소리]
[한숨]
[지평의 짜증 섞인 신음]
- (지평) 아… - 아이, 정말 [발랄한 음악]
[지평의 옅은 신음]
음, 더워
[도산의 당황한 신음]
(지평) 음, 더워
[지평이 웅얼거린다]
[지평의 옅은 신음]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우스 클릭음]
[달미가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다]
[마우스 클릭음]
[훌쩍인다]
[잔잔한 음악]
[훌쩍인다]
(소영) 점점 시력을 잃어 가는 내 딸과
강주에 다녀왔습니다
눈길이
'수많은 해바라기가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라고 얘기해 주더군요
시력이 온전할 때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길이 말해 주는 '아름답다'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죠?
사는 데 너무 바빠
아름다움을 눈에 많이 담아 주지 못한 게 후회가 됩니다
리뷰가 아니라 부질없는 푸념이었네요
[마우스 클릭음]
(달미) 부질없는 푸념이라 하셨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귀한 푸념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 주고 싶은 마음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도 소영 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훌쩍인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 (달미) 도산이는요? - (원덕) 어?
(지평) 없어요, 가방도 없고, 옷도 없고
(원덕) 아, 벌써 갔다고? 인사도 안 하고?
설마
[휴대전화 진동음]
(원덕) 아유, 참
여보세요?
(도산) 오늘 일요일인데 뭐 해?
어, 나 별일 없는데 근데 너 어디야?
(도산) 그럼 지금 데이트 가자 할머니도 같이
지금? 데이트?
할머니도 같이?
[발랄한 음악]
(도산) 야옹, 야옹
가 [고양이 울음]
[대문이 철컥 열린다]
[도산의 당황한 신음]
(달미) 어? 이게 다 뭐야?
[대문이 철컥 닫힌다] (원덕) 차 샀어?
앞으로 제가 살 차입니다 지금은 빌렸고요
- (도산) 타세요 - (원덕) 어, 그래그래
(도산) 전기 차예요
'허'네, '허', 허, 어디 가는데?
- (도산) 먼 데 - 뭔데? 어, 뭐라 그랬어, 지금
먼 데
[차 문이 탁 닫힌다]
먼 데 어디
알면 이번에도 따라오게? 데이트인데?
데이트?
[밝은 음악]
[익살스러운 효과음]
(지평) 참… [자동차 경적]
[자동차 경적]
저, 둘이 데이트하는데 내가 따라가도 되나? 어?
아유, 할머니가 꼭 같이 가셔야 돼요
근데 진짜 어디 가는 거야?
이, 산토리니보다 멋진 데, 어
그런 데가 우리나라에 있어?
있어
- (달미) 와! - (도산) 와, 바다다!
[달미의 환호] (도산) 와! 산토리니, 산토리니
- (달미) 대박! - (도산) 산토리니, 산토리니
- (달미) 할머니! - (원덕) 달미야
(달미) 할머니!
[달미의 환호]
[원덕의 웃음] 와, 너무 이뻐
(원덕) 이야, 좋다, 진짜, 어?
아이고, 우아
[달미의 환호] 아유, 또, 저, 저…
[도산과 원덕의 웃음]
- (달미) 할머니! - (원덕) 아, 뛰지 마, 뛰지 마
(원덕) 알았어, 알았어
아, 여기가 아직 놀라긴 이른 게
해 질 때 진짜 예술이거든요?
(도산) 풍경이 진짜 진짜 예술이에요, 여기
저기 저 섬 탁, 탁
- (원덕) 야, 야, 도산아 - (도산) 네?
너 가 가지고 나 호미하고 그, 장화 좀 빌려 와라
- 네? - (달미) 그건 왜?
어? 아, 글쎄, 응
갔다 와, 응
- (원덕) 내가 가? - 아, 제가 가겠습니다
- (원덕) 어, 빨리 갔다 와, 어 - 알겠습니다
[원덕의 웃음]
(달미) 음, 좋다
[갈매기 울음]
[원덕의 힘주는 숨소리]
아이고, 와, 이거 크다
(원덕) 아이고, 어디 가
(도산) 이건 아니야
[큰 소리로] - (도산) 할머니! - (원덕) 어?
(도산) 제발 저쪽 좀 보세요!
저기 바다 풍경 예술인데!
야, 예술은 무슨 예술이야!
[원덕의 힘주는 숨소리]
풍경이 밥 먹여 주냐! 아이고
[원덕의 웃음]
아이고
(원덕) 우리 일주일은 족히 먹겠다, 이거
(도산) 아, 진짜 이러려고 온 거 아닌데
너 내 답글 읽었지?
(도산) 어?
아니, 그게…
고마워
[부드러운 음악]
저기 바다 이쁘지?
응, 이쁘다
아유, 또 이만해, 아유, 왕거니다
영실아
지금 뭐가 보이니?
[인공 지능 음성] 아름다운 바다에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달미) 도산이가
할머니한테 이걸 보여 주고 싶었대
(원덕) 그러게
고맙네
할머니
전에 나한테 물어봤었잖아
15년 전 도산이랑 지금 도산이 중에 누가 더 좋냐고
(원덕) 응
그 둘이 다를 수가 있을까?
뭔 소리야, 그게
아니,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나 이상하지?
이상하지, 그럼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해
너 도산이 좋아하잖아
[한숨]
좋아
너무 좋아서
(달미) 할머니
나 겁나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보기가 무서워
다 됐어요, 얼른 오세요!
- (도산) 다 됐어요, 다 - (달미) 어
- 할머니, 가자 - (원덕) 어, 그래그래
[헛기침]
- (도산) 삼겹살 맛집 - (달미) 맛집?
[입바람을 후후 분다]
음, 학생
(아현) 혹시 이 근처에 알바 구하는 편의점 없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전단지 붙은 데가 없네?
(직원) 요즘 그런 거 안 붙여요 다들 알바 앱으로 구하지
[흥미진진한 음악] 알바 앱?
앱 몰라요? 어플요, 어플
아…
저기…
길을 잘못 든 거 같지?
잠깐만
[차 문이 탁 열린다]
도로가 끝났네?
(도산) 돌아가야겠다
뭐 봐?
[부드러운 음악] (달미) 와, 나 별 저렇게 많은 거 처음 봐
(도산) 나도
길 헤맬 만하네
- 달미야 - (달미) 응?
좀 더 헤매 볼까?
집에 가기 싫구나?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달미) 부모님이랑 싸웠구나
(도산) 아니
어떻게 부모님이랑 싸워
그냥
그냥?
그냥
내가 별로 좋은 아들이 아니라서
늘 기대에 못 미치니까 그게 죄송해서 그러지
뭔지 알 거 같다
(달미) 넌 달처럼 환하고 싶은데
겨우 먼지 같은 별이 된 거 같다
이런 건가?
(도산) 응
- 달미야 - (달미) 응?
엄밀히 말하면 적절한 비유는 아니야
(도산) 별은 항성이고 달은 위성이거든
저기 별들이 먼지처럼 보여도 웬만한 별들이 달보다 어마어마하게 커
질량도 그렇고 에너지도 그렇고
치
이래서 공돌이들이 욕을 먹어 그렇지, 응
적절한 비유 같은데?
(달미) 너는 저기 있는
겨우 먼지 같은 별이 맞아
항성이고
달보다 어마어마하게 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
언젠간 부모님도 아실 거야, 나처럼
달미야
(달미) 응?
미안해
뭐가?
그냥
길을 잘못 들어와서
(도산) 진짜 별 많다
진짜 엄청 크다
[문이 탁 닫힌다]
[달미의 놀란 신음]
오, 우리 바지락 한 열흘…
아니, 열흘이 뭐야 한 달은 먹겠다
야, 널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 (원덕) 길어야 일주일 본다 - (달미) 치
할머니, 근데 이게 뭐야?
(원덕) 어?
아, 그거 알바생 뽑느라고 전단지 만들었지
(달미) 아, 전단지 요즘 누가 봐 내가 나중에 앱에다 올려 줄게
아, 됐어, 앱이니 뭐, 그런 거
요즘 그런 거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 중에서 뽑지, 뭐
[흥미진진한 음악]
(원덕) 저, 도산이는 집에 잘 들어갔대?
잘 들어갔겠지, 당연히
- 다녀올게요 - (원덕) 응
(성환) 당신한테 진짜 전화 안 왔죠?
나한테 숨기는 거 아니죠?
안 왔습니다, 내가 왜 숨겨요 [성환의 한숨]
아니, 이놈의 자식이 왜 전화를 안 받아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벨 소리]
[통화 종료음]
- (성환) 야, 이놈의 자식이 - (도산) 아, 아버지
(성환) 너, 너 뭐 하는 놈이야, 응? [도산의 신음]
내가 너 창업한대서 돈 대 줬지
생판 모르는 여자한테 회사 넘겨주라고
내 피 같은 돈 대 줬는 줄 알아?
죄송해요, 아버지
이거 놓고 얘기해요 동네 창피하게 뭐 하는 짓이에요
그 여자가 꼬셨냐?
꼬셔서 대표 자리 넘겨준 거지?
아, 아니에요, 아버지 저보다 대표 자격 충분한 친구예요
진짜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그냥 애초에 별것도 아닌 놈이 창업하겠다고 나댄 거예요, 죄송해요
[성환의 힘주는 신음] [금정의 당황한 신음]
네가 왜 별게 아니야
별거 아닌 놈이
수학 올림피아드 최연소 금상을 어떻게 타!
아, 아버지, 저…
저 그때 커닝했어요, 죄송해요
[무거운 음악]
[거친 숨소리]
(성환) 뭐, 뭐, 뭐?
아, 빵점짜리가 그동안 백 점짜리 흉내 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아, 제가 아무리 기를 쓰고 10점이 되고 20점이 돼도
아버지는 늘 실망만 하시니까 저도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
[속상한 숨소리]
죄송, 죄송해요
[성환의 성난 숨소리]
[확 내던진다]
[문이 달칵 열린다]
[훌쩍인다]
(도산) 아버지는 괘, 괜찮으세요?
(금정) 괜찮진 않지
근데 괜찮아지실 거다
걱정 안 해도 돼
홀가분해졌니, 이제?
네
아니
네, 홀가분해요
홀가분해서 죄송해요
홀가분한 게 뭐가 죄송해
네가 죄송할 건 따로 있어
네 얘기 남한테 듣는 거
그거 되게 속상해
[잔잔한 음악]
네가 죽을죄를 지은 거보다
그걸 늦게 아는 게 더 서운해
우리가 천호만 못해?
명색이 부모인데?
죄송해요
그래, 그거 진짜 죄송해야 돼
(지평) 죄지었어? 왜 숨어 있어? [차분한 음악]
(원덕) 너 혹시 이러는 이유가
우리 달미를 좋아해서냐?
아니요
[한숨]
(도산) 내가 방금 한다고 얘기했잖아 [달미의 웃음]
[함께 웃는다]
어, 뜨개질을 이렇게 자세를 딱 잡고
(달미) 두 개 다 하면? 두 개 다 하면?
(도산) 겉뜨기를 해
(달미) 왜 그랬어요?
왜 거짓말까지 하면서 우릴 도와준 거죠?
(지평) 아, 그게…
서달미 씨
- 난… - (도산) 달미야!
(지평) 먼 데 어디
알면 이번에도 따라오게? 데이트인데?
[한숨]
전단지
전단지다!
(아현) 구하면 열린다니까, 어머, 얘!
[여자3의 당황한 신음]
(여자3) 뭐예요, 아줌마?
미안해,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흥미진진한 음악]
(여자3) 뭐래, 누가 누구한테 힘들대
(아현) 아니, 겉만 보고 사람 판단하면 못써
나 진짜 힘든 아줌마야
학생은 할 거 많잖아
그, 뭐냐, 그…
어, 앱으로 찾아봐도 되고
[여자3의 한숨]
아, 살았다
어머님이 왜 여기서 나와?
아니야, 못 해
이 나이에 시집살이할 일 있어?
(아현) 아, 그래도 그 인간보다 낫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염치가 있지, 무슨 낯짝으로
(원덕) 너 도산이 좋아하잖아
(달미) 좋아
[잔잔한 음악] 너무 좋아서
할머니
나 겁나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보기가 무서워
[한숨]
- (지평) 무슨 고민 있으세요? - (원덕) 어?
(원덕) 아유
네가 여기 웬일이냐, 어?
- 이거 반납하려고 - (원덕) 어?
그냥 가지라니까
(지평) 아이, 알잖아요, 나 성격 깔끔한 거
아, 근데 아침부터 무슨 한숨을 그렇게 푹푹 쉬어요?
[한숨 쉬며] 걱정이 돼서, 쯧
달미가 의심하는 눈치야
예? 뭘요?
도산이도 의심하고 너도 의심하고
(원덕) 아휴, 어떡하면 좋냐, 쯧
맞는다, 그 편지
내가 그거 찾아다 주면 될까?
무슨 편지요?
아, 왜, 저번에
달미가 그, 인재 만나겠다고 도산이 찾을 때
(원덕) 선주시
옛날 우리 핫도그 가게 앞에 있던 벚꽃나무 알지?
그 안에 편지 넣어 놨다고 했거든
내가 그걸 찾아다가 도산이를 주는 거지
그럼 그 도산이가
달미한테 그걸 보여 주면 확실하게 믿겠다, 그렇지?
아, 선주시가 얼마나 먼데 번거롭게 거기까지 가요
아, 됐어요
야, 고속버스 타면 금방이야
후딱 갔다 오면 되지, 뭘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데요?
그래야
도산이랑 달미랑 안 다치니까
저는요?
네가 왜?
제가 싫어요
저 더 이상 달미 속이고 싶지 않아요
뭔 소리야, 그게?
아, 그만할래요
가서 도산이 가짜다
속여서 미안하다 얘기할 겁니다
야, 너 저번에 분명히
달미 실망시키기 싫다고…
예, 싫어요
(지평) 근데 지금 이대로는 더 싫어요
- 지평아 - (지평) 죄송해요, 할머니
그때 제가 거짓말했어요
저
달미 좋아합니다
[차분한 음악]
[천둥이 우르릉 울린다]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나 물어볼 게 있는데
(금정) 네 얘기 남한테 듣는 거
그거 되게 속상해
[통화 연결음]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왜 안 되는데요?
왜라니
(원덕) 달미랑 도산이랑 지금 멀쩡하게 잘 사귀고 있는데
(지평) 제가 안 멀쩡해요
신경 쓰이고
욕심나고 억울하고
나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그럼 그때 얘기하지 그랬냐
지금은 안 돼
이러면 안 되지
그러니까 왜 안 되는데요
왜 도산인 되고 난 안 되냐고요!
- 지평아 - (지평) 그래요, 맞아요
이러면 안 돼요
애초에 이러면 안 됐어요
애초에 할머니를 만나지 말았어야 되는데
저 진짜 잘 살고 있었거든요?
부족한 거 없이 잘!
괜히 그 순딩이 소리에 놀아나 가지고
되지도 않는 오지랖 부렸네요
[거친 숨소리]
그때처럼 또 등신짓 했어요!
(원덕) 지, 지평아!
(여자4) 아!
- (남자) 괜찮아? - (여자4) 어
- (남자) 가자 - 가자
갑자기 웬 비?
오늘 예보 없었는데
그러게요
이, 또 갑자기 비가, 응? 오고 그래요잉?
(철산) 참
[감성적인 음악]
저까지 같이 뛸까요?
우리 사하 님 비 맞으면 안 되니께, 응?
[익살스러운 효과음]
[달려오는 발걸음]
(용산) 오
야, 뭐 해, 빨리 뛰자
- 싫어, 꺼져 - (용산) 아이, 빨리 가
[감성적인 음악] - (철산) 꺼져, 싫어! - (용산) 빨리 뛰어
[힘주는 신음]
(달미) 밖에 비 와요?
(용산) [떨리는 목소리로] 예, 엄청 옵니다
(철산) 말도 못 하게 와요
아니, 오늘 비 예보 없었는데
도산이는요?
뭐, 오겠죠
(용산) 우리처럼 비 쫄딱 맞고 덜덜 떨면서
[철산과 용산의 떨리는 신음]
[걱정되는 숨소리]
(달미) 사하 님, 저 우산 좀 빌릴게요
저러고 싶을까? [문이 탁 닫힌다]
닦아요, 감기 걸리겠다
(용산) 어?
[문이 달칵 열린다] 이거 혹시…
[문이 달칵 닫힌다] 그린 라이트?
[철산과 용산의 웃음]
집에 가져가야지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용산아, 난데 혹시 지금 달미랑 같이 있어?
이미 우산 들고 나가셨다
어딜?
(용산) 너 비 맞으면 안 된다고 지하철역에 마중 나가셨어, 와…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알았어, 어
고마워, 응
[통화 종료음]
[무거운 음악]
(원덕) [울먹이며] 지평아
미안하다
내가…
내가 많이 미안해
[핸들을 탁 친다] 아…
(지평) 화내서 죄송해요
제가 선주시에 다녀올게요
가서 달미 편지 찾아다가
도산이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휴대전화를 달그락 내려놓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안내 방송음]
[안내 방송] 이번 역은 샌드박스입구 샌드박스입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주님
이게 다 제 업보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달미) 도산아
[잔잔한 음악]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많은 것을 잃어 가기만 했던
그해 봄
네 편지가 없었다면
나에게 봄은 어떤 계절이었을까?
피는 꽃보다
져 버린 꽃들을 아쉬워하는
쓸쓸한 계절이었을 거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진동음]
아
아니, 이게 왜…
[휴대전화 조작음]
(달미) 후회란 계절로 남았을 거야
그해
나의 봄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편지 써 줘서 고마워
그때는 있다고 믿었고
지금은
있다고 믿고 싶은 도산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남도산
너를 찾아야겠다
서달미 씨가…
여길 어떻게…
오늘 제가 깜빡하고
(달미) 할머니 핸드폰을 들고나왔어요
[휴대전화 진동음]
어?
아, 뭐야, 내 거 아니네?
[한숨]
(달미) 근데 할머니 핸드폰으로
이상한 문자가 와서
궁금해서 와 봤어요
팀장님이 여긴 어떻게 알아요?
팀장님 우리 할머니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예요?
[난감한 숨소리]
[당황한 숨소리]
팀장님 누구예요?
[무거운 음악]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통화 연결음]
(달미) 도산이는 누구죠?
[휴대전화 진동음]
팀장님, 제발…
무슨 얘기라도 좀 해 봐요
[어이없는 숨소리]
(도산) 달미야
나야, 도산이
어
너 할머니랑 휴대폰 바뀌었다며 나 그것도 모르고 계속…
- 도산아 - (도산) 응?
15년 전에
너랑 내가 편지 놔뒀던 데
기억나?
어?
어디야?
달미야, 그, 그게, 어…
대답해, 제발!
달미야, 너…
지금 어, 어디야? 내가 지금 갈게
(달미) 왜 대답을 못 해!
왜 여기에 네가 아니라 한 팀장님이 와 있어?
[잔잔한 음악]
달미야
그게…
그…
[통화 종료음] 여보세요? 달, 달미야
[통화 연결음]
[통화 종료음]
[통화 연결음]
[통화 종료음]
[통화 연결음]
[통화 종료음]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 소리가 들린다]
(도산) 다시 바람이
돌풍이 되어
나를 향해 매섭게 불기 시작했다
(달미) 재밌었니?
아니라고 해야지
네가 도산이 맞는다고 해야지
(도산) 꿈이 꼭 성공이어야만 합니까?
사람이면 안 돼요?
(지평) 모든 게 내 부탁으로 시작된 건 아닙니다
(달미) 다 가짜라고 하니까 나도 가짜 같아
(도산) 삼산텍이 여기까지 온 거 네가 만든 성과야
(달미) 그때처럼 와 줘라
넌 내 꿈이었어
(도산) 지금까지 나에 대한 거 다 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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