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5
(정혁) 이번엔 양초가 아니고 향초요
맞소?
맞아요
[차창이 쓱 내려간다]
(승준) 동무 지금 바람맞은 거 같은데?
(단) 태워다 줘서 고맙습니다
- 잘 가시라요 - (승준) 기래요, 잘 지내라요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요
[차창이 쓱 올라간다]
(세리) 아니, 어떻게 딱 그 자리에
딱 그 타이밍에
초 한 자루 딱 들고 말이지
딱 사람 설레게
해 봤지?
해 봤어
보통 솜씨가 아니잖아
뭐, 이런 걸 우리말로는
'기술 들어간다' 막 그러는 건데
왜요?
(주먹) 하트는 사랑 아닙니까?
남조선에서
이거는 좋아한단 뜻입니다
그럴 리는 없갔지만
뭐가?
기래도 설렜다니 하는 말인데
혹시나 있을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고지를 해야 할 것 같소
뭐가 그렇게 복잡해
뭔데요, 그냥 말해요
난 여자가 있소
뭐라고요?
결혼을 약속한 여자요
잠깐만
(세리) 뭐라 그랬죠, 좀 전에?
- 결혼을 약속... - (세리) 아니, 그 전에
- 여자가 있다... - (세리) 아니, 그 전전에
혹시나 있을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래, 그거
(세리) 나 그 말 되게 기분 나쁜데? [정혁 숨을 후 내뱉는다]
혼란? 무슨 혼란? 내가? 왜? [익살스러운 음악]
나 지금 한 개도 안 혼란스럽거든요?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리정혁 씨한테 여자가 있든 말든
[세리의 황당한 웃음]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왜? 나도 남자 있거든? 아니, 많거든, 서울에?
- 많다고? - (세리) 그럼요
지금쯤 줄초상 났을걸요? 나 죽은 줄 알고?
그래서 내가 빨리 돌아가야 되는 거고
남자 만나러 돌아간다는 거요?
음, 겸사겸사죠, 남자도 만나고
아, 또 원래 가기도 해야 되고
그럼 가야지, 뭐, 내가 여기 사나?
그러란 얘긴 아니고
(세리) 그러라고 해도 안 그러거든요?
암튼 난 기분이 좀 그러네
리정혁 씨 지금 나한테 선 그은 거잖아 내가 그 선 넘어갈까 봐
적절한 비유요
걱정 마요
(세리) 나는 원래 선을 굉장히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내가 운전하면서도 딱지 한 번을 안 끊어 본 사람이야
선을 진짜 딱딱 잘 지키고 앞만 딱 보고 옆은 아예 보지도 않고
운전할 땐 옆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그게 중요해요? 그게 포인트야?
(세리) 치
배우 출신입니까? 어케 이쪽 말을 그케 잘합니까?
아, 사기꾼이 못하는 게 어디 있어요
나 제주도 사투리까지 다 해요 [천 사장의 탄성]
잠깐 세워 봐요
[천 사장과 운전기사가 되묻는다] 아, 멈춰 보라고!
(천 사장) 거, 왜 그럽니까?
아니, 아는 사람 같아서
동무 아는 사람이 여기 어데 있다고
- 그건 그렇지? - (천 사장) 날래 타시오
너무 닮았어
[옥금이 중얼거린다]
(옥금) 저기...
여기는 왜...
누굴 찾아왔습네까?
리정혁 동무를 찾아왔습니다
(옥금) 이 시간에요?
(월숙) 우리 정혁 동지와는 어케 아는 사이입니까?
내가 왜 말해야 합니까?
[옥금의 놀란 숨소리]
(월숙) 나는 이 동네의 인민반장이야요
어디 통행증 좀 보자요
[월숙이 코를 훌쩍인다]
기래서 뭐, 정혁 동지와의 관계는 말하지 않갔다는 겁니까?
약혼녀입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옥금의 놀란 숨소리]
방금 뭐라 그랬소?
리정혁 동무의 약혼녀라고 했습니다
[옥금의 놀란 신음]
[당황한 신음]
[옥금의 당황한 신음] 저, 가자
(세리) 치
그렇게 안 생겨 가지고 양다리라니
(정혁) 양다리라니, 기건 아니라고 보는데
아니긴, 약혼녀가 둘인데
신문에 날 사건이라고요, 지금
당신은 내 약혼녀가 아니지 않소
나더러 약혼녀라면서요
내가 그랬나? 그쪽이 먼저 그런 거 아니야
그때는 며칠 후 사라질 사람이라...
못 사라졌잖아, 못 사라졌다고!
아, 그 얘기를 왜 자꾸 해?
(세리) 그리고 양다리 꼬이면 어쩔 거예요?
우리 다 자빠지는 거예요
꼬일 일 없소
(세리) 왜 없어요?
막말로 약혼녀인데 여기 올 수도 있지 그게 계산이 안 돼요?
지금 러시아에서 류학 중에 있소
- (세리) 아... - 당분간 여기 올 일 없단 얘기지 [흥미진진한 음악]
(정혁) 내가 그 정도 계산도 없었을 것 같소?
난 바보가 아니오
(세리) 치...
[감성적인 음악]
[의미심장한 음악]
[작은 소리로] 그거지? 꼬인 거
리정혁 씨 바보 맞네 이제 어떡할 거야
오랜만입니다
러시아에서 언제 돌아온 거요?
며칠 됐습니다
연락도 없이 미안합니다
(단) 삼촌이 정혁 동무에게 차를 빌려줬다고 해서 가지러 왔습니다
(정혁) 아, 차라면 내가 주말에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그랬군요
(정혁) 여기 이 여성은...
(단) 기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정혁 동무 많이 궁금해합니다
일간 평양에 오라요
양가 부모님 모시고 식사하자요
차 열쇠 주면 오늘은 이만 가 보갔습니다
이 밤에 혼자 운전하고 가는 거 위험하오
(정혁) 이곳 길은 평양과 달리 험하기도 하고
기럼 어캅니까?
데려다줄 테니 같이 갑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은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작전을 수행 중인 동지요
[의미심장한 음악]
기렇습니까?
네, 뭐, 그렇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요?
기래도 계속 볼 사이입니까?
다시 볼 일은 없소
(세리) 네, 맞아요
어, 저희는 그...
전략적 도, 동맹 관계? 어, 뭐, 그런 거라서
그 일만 끝나면 볼 일 없어요 절대, 평생, 영원히
그러니까 다른 오해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제 말투 좀 이상하시죠?
저는 11과 대상이랍니다
어떤 특별하고 기구한 사연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돼요
상관없습니다
(세리) 뭐, 그럼 오해는 안 하시는 거 같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만 집에 가 볼까 봐요
약혼녀분 잘 데려다주시고요, 그럼
[잔잔한 음악]
왜요?
(정혁) 집이 뭐, 딴 데 있소?
어두운데 나돌아다닐 생각 말고 문 잘 잠그고 있으시오
곧 오갔소
갑시다
[걱정스러운 한숨]
우리 오늘이 몇 번째 만나는 건지 압니까?
오늘로 일곱 번째입니다
(단) 그중 부모님과 다 함께 만난 것이 네 번
다섯 번째 만났을 때 약혼식을 치렀지요
벌써 7년 전이고 말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소?
약혼 다음이 결혼
이게 순서가 맞긴 하지요
기렇지만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사랑이 빠졌습니다
(단) 이제 우리 사랑도 해야지요
결혼할 건데
난 순서대로 빼놓지 않고 다 할 겁니다
협조해 주시라요
노력하갔소
참, 어머니께 전화해야갔습니다 우리 함께 간다고
[TV 뉴스가 흘러나온다]
[익살스러운 음악]
(명은) 어떠니?
어, 뭐...
[명석의 놀란 신음]
아이...
좀 튀니?
아, 뭐, 예, 예
(명은) 이건?
(명석) 누나가 시집가네?
요 아새끼래 성의 있게 답변 못 하간?
내가 몇 년 만에 사위랑 상봉을 하게 생겼는데
아, 엄밀히 말해서 아직 사위는 아니지
[명은이 입바람을 후 분다]
그냥 예의만 갖추면 되는 거 아니갔어?
- 예의? - (명석) 응
[구성진 음악]
(명석) 어, 머리는 좀 묶으라
소복 귀신인 줄 알고 기절할 수도 있갔어
(명은) 너는 셧업하고 앞에 나가 대기하고 있으라
(명석) 아, 왜!
우리 정혁이가 차만 달랑 놓고 가 버리면 어칼라 기래 [명석의 신음]
[발로 퍽퍽 차며] 반드시 잡아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라, 알간? [명석의 신음]
[라이터를 탁 켠다]
(명석) 이야, 리정혁이!
(명석) 아이고, 아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는 하고 가야디, 어?
[명석의 헛기침]
[엘리베이터 도착음]
- 어서 오시라요 - (명석) 응
[엘리베이터 문이 탁 닫힌다] 운전공 동무, 수고가 많소
13층 눌러 주시오
(운전공) 백화점 사장 동지 집에 가누먼요
자고 갑니까? 숙박 일지를 써야 해서
(정혁) 아닙니다, 잠깐 들르는 겁니다
이야...
몇 년 만의 재회라 반가웠갔구나, 둘이
(명석) 정혁이가 오죽 좋았으면 여기까지 데려다주러 왔갔어, 어?
단아, 정혁이가 무뚝뚝한 거 같아도
이런 진실된 남자가 없어, 어
다른 남자들 같아 보라
안 본 지가 7년인데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났디, 어?
양다리, 세 다리
못된 놈들 중엔 여자 데려다가 막 동거도 하고 막 기래
- (단) 삼촌 - (명석) 와 기래?
- 조용히 가자요 - (명석) 어
[초인종이 울린다]
(명석) 누나, 버선발이야
(명은) 응, 왔어? [익살스러운 음악]
오랜만에 뵙는데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음, 아니야, 아니야, 늦기는 하나도 안 늦었어
결혼이 늦었지
(명은) 어서 오라, 밥 먹어야지
- (정혁) 아닙니다 - 차렸어
벌써 차렸다고
(명은) 우린 보통 이 시간에 밥을 먹으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오라
(명석) 난 아까 먹었는데?
넌 아직 집에 안 간?
- 어서 이쪽으로 - (정혁) 네
[웅장한 음악]
[명석이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뭐, 기냥 평소에 먹던 대로 차렸어
고맙습니다
편하게 먹으라, 편하게
(명은) 들어
우리 단이 러시아서 공부 마치고 돌아온 걸 어케들 알고
중매쟁이들이 한 번만 보자고
아, 임자가 있대도 어찌나 쫄라대는지
나 요새 피곤해, 베리 타이어드
쫄라? 누가?
(명석) 아니, 나는 기런 얘기 진짜 처음 들어서
[명은이 숟가락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 아 해 보라 - (명석) 아
이거나 씹으면서 아가리 닥치고 있으라
(명은) 어서 들라
잘 구워졌어, 먹어 보라
씁...
도플갱어인가?
아, 너무 닮았는데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냄새를 킁 맡는다]
[승준이 개운한 숨을 내뱉는다]
(승준) 벌써 다 드신 겁니까?
(세리) 오빠가 그 얘긴 안 해요?
내 별명 짧은 입 공주라고
웬만큼 맛있지 않고선
세 입 이상 먹히질 않아, 뭐가
(승준) 아, 여기 셰프도 잘하는데
아, 다음엔 더 신경 쓸게요
안 써도 돼요, 다음은 없을 거니까
오빠분이 그런 얘긴 안 해서 잘 몰랐는데
(승준) 이쁘네요 난 다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학벌도 완벽하고
젊은 분이 안목도 뛰어나서
투자도 그렇게 족집게처럼 잘하신다면서요?
(세리) 그래서 우리 둘째 오빠가
그쪽한테 아주 홀딱 넘어갔던데?
과찬이십니다
근데 구승준 씨
난 안 넘어가요
내 눈엔 다 보이거든?
당신 지금 큰 거 한탕 하려고 공들여 밑밥 까는 거잖아
(세리) 나랑 결혼해서 다 갖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안 될 거 같네
[흥미진진한 음악]
난 눈칫밥을 너무 먹고 자라서 눈치가 백 단이거든
그냥 우리 둘째 오빠 주머닛돈이나 털어먹고 끝내요
와인도 별로네
그 집에선 제일로 똑똑했는데
요샌 잘 사나?
[창문이 덜컹거린다]
[밤새 울음] [바람이 휭 분다]
[익살스러운 음악]
[세리의 헛웃음]
(세리) 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
아니, 누가 보면
내가 기다리느라 목 빠진 사람처럼 보이겠네
하, 참...
나 정말 모냥 빠져서
우습다
[웃음]
우스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긴박한 음악]
[한숨]
[익살스러운 효과음]
무슨 일들이신지...
(옥금) 아까 다 봤슴다
뭘요?
얼마나 상심이 큽니까?
아닌데요?
한참 봐야 사람 같은 놈을 내 많이 봤지만
설마 우리 정혁 동지가 그럴 줄은 내 몰랐소
(월숙) 이거이 뭐이니, 이거이
(영애)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얘기하자우
이럴 때는 탈맥을 해야 해
- (옥금) 기렇지요 - (월숙) 기렇지요
- (옥금) 들어가자우 - (월숙) 가자, 들어가자우
(세리) 아니, 아니, 저...
저기...
탈맥이 뭐예요? 치맥도 아니고
아니, 탈맥을 모릅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탈피 명태랑 맥주죠, 찰떡궁합
(명순) 한번 맛보면 아주 꿈에도 나옵니다
(여자들) 찧읍시다
(세리) 아, 저, 미안하지만
왜 밤중에 여길 와서들 이러시는지...
(영애) 자, 다들 쭉 땁시다
(여자들) 땁시다!
(옥금) 자, 자, 자
[저마다 시원한 숨을 내뱉는다]
(옥금) 사실 우리가 그동안 삼숙 동무더러
도덕 없다, 도덕 없다 기러지 않았습네까?
- (월숙) 그렇지 - (옥금) 기런데
오늘 우리가 만난 여성은 그, 얼마나 도덕이 없는지
우리 삼숙 동무는 새 발의 피였습네다
그, 도덕 없다는 게 뭐 싸가지 없다, 그런 건가요?
- 싸가지 없다? - (명순) 응? [흥미진진한 음악]
(옥금) 그거 뭔진 몰라도 느낌이 아주 세고 좋은데
아랫동네 욕입니까?
그렇죠
유사어로는 싸갈머리, 싹퉁바가지, 재수꽃다발
뭐, 그런 게 있고요
(옥금) 오...
- (금순) 재수꽃다발? - (향이네) 싹퉁바가지
(명순) 이야, 남조선 욕도 다양하구나
(월숙) 다양하구나, 어
(옥금) 기러네요, 어, 응!
그 싸가지가 딱 기러는 겁네다
[헛기침]
'정혁 동지 약혼녀란 말입니다'
[함께 짜증 낸다]
(옥금) [가슴을 탁탁 치며] 기런데 더 억장이 무너지는 건
우리의 정혁 동지가 그 여성을 차에 탁 태워 가지고
바람처럼 사라지더라 기겁니다
[여자들이 못마땅해한다] (명순) 저런 욕스런...
그러믄 삼숙 동무가 채인 겁니까?
응, 세게 채였디, 응
[여자들이 안타까워한다]
(월숙) 채였어, 세게 채였어 [여자들이 혀를 쯧쯧 찬다]
[세리 한숨]
(세리) 다들 걱정해 주시는 거는 너무 고마운데요
저희 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영애) 기거는 안 될 말이야
네?
모두가 알갔지만
난 사실 정혁 동지를 아주 좋게 보고 있던 사람이야
(영애) 기렇지만 만에 하나
자기 약혼녀를 두고 또다시 약혼을 했다면 기거는!
모가지를 꺾어 놔야 할 사안이야
예? 뭘 꺾어요? [흥미로운 음악]
[세리의 놀란 숨소리] (영애) 모가지만 꺾어?
뭐든 꺾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놔야디!
(옥금) 기렇죠 [여자들이 호응한다]
(금순) 고쳐 놔야지요
(명순) 이 마을의 도덕 차원에서도 가만두면 안 됩니다
- (금순) 맞습니다 - (월숙) 기렇지!
(세리) 아, 그...
당사자는 저예요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금순)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월숙) 이것은 가라앉힐 문제가 아니잖니, 이거는!
[여자들이 저마다 말한다]
(옥금) 자, 자, 자
(여자들) 찧읍시다!
덕질하다 탈덕하면 안티보다 무섭다더니
뭐라 그랬습네까? 탈덕? 탈덕이 뭡네까?
아니에요, 그냥 탈맥이나 하시죠들
아, 탈맥, 자, 한 번 더 하시죠
(옥금) 자, 자, 한 번 더 찧읍시다
[컵을 탁 내려놓는다] [한숨]
이야, 그, 사람 겉만 봐선 모르는 거구먼기래
(감시원) 예?
[만복의 한숨]
(영애) 내가 우리 대좌 동지에게 말하갔어
리정혁 중대장에게
부대 차원에서 아주 큰 불이익을 주자고
네?
아니, 기렇게 도덕성에 흠결 있는 사람이
어케 한 중대를 이끌어 갈 수 있갔어?
[여자들이 호응한다] - (옥금) 기렇죠 - (명순) 맞습니다
- (금순) 맞지요 - (여자) 그렇죠
사실은요
아까 여러분이 본 그 여성은
양가 부모님이 리 대위의 짝으로 밀고 있는 그런 분이에요
정략결혼 그런 거
기럼 삼숙 동무는...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 아시나요?
[여자들이 의아해한다] (명순) 누구야? 누구야?
(향이네) 아는 외국인이니?
미 제국주의 사람입니까?
- (여자) 난 몰라, 몰라, 몰라 - (월숙) 몰라, 몰라
견우, 직녀는요?
[여자들이 호응한다] - (옥금) 아, 견우, 직녀는 알지 - (명순) 아, 칠월칠석
- (옥금) 알지, 알지 - (월숙) 알지, 알지
네, 제가 바로 직녀예요, 여러분
- (월숙) 아하... - (명순) 아이고
너무 사랑하는데 운명의 벽이 높네요
[여자가 울먹인다] [익살스러운 음악]
(영애) 아니, 기럼 두 사람의 사랑이
부모의 반대라는 높은 턱에 가로막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이야?
정리가 아주 깔끔하네요 네, 바로 그거예요 [영애의 놀란 신음]
[여자들이 안타까워한다] (옥금) 어머나, 어쩌면 좋노
(세리) 워낙 효자라
부모님 뜻 거스를 수 없는 그 사람 입장
저는 충분히 이해하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알아주셨으면...
[감탄하는 숨소리]
딴 여자 태우고 평양 간 애인을 끝까지 감싸는
이 비단결 같은 마음씨 좀 보라
이야, 삼숙 동무 정말이지 진국이구나, 야
뭘요
우리 기분도 그런데 찧을까요?
- (영애) 기래기래, 이야... - 기래기래, 찧읍시다
(영애) 쭉 땁시다 [여자들이 저마다 호응한다]
(옥금) 이렇게 마음이 고운 것을
(단) 이제 역으로 갑니까?
들를 데가 있소
(명석) 거기가 어디가? 내 차 타라
아닙니다, 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 그럼
기래
(명석) 잘 가라
어유, 추워
(군인) 이 시간에 발바리차가...
뭐요?
"택시"
[한숨]
[타조 울음]
[문이 탁 닫힌다]
(윤희) 아이고, 정혁아, 연락도 없이
밥은 먹었니?
예, 긴데 웬 타조입니까?
응, 요샌 집 지키는 개 대신 타조 키우는 거이 유행이야
소리가 웬만한 개보다 크지 않니?
그렇구먼요, 아바지는요?
안에 계시지, 들어가자
(윤희) 그렇지 않아도 그저께 단이와 다녀갔어
그 아이는 더 고와졌더구나
(충렬) 올해 안에 식 올리자
(윤희) 올해 안이면 너무 빠르지 않아요?
약혼한 지가 7년이야 기래도 빨라?
기래도 단이 귀국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윤희) 정혁이도 전초선에 있는데
근무지가 평양이라면 또 몰라
번갯불에 콩을 볶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지요
따르갔습니다, 대신...
어려운 청 하나 드려도 되갔습니까?
(월숙) 왜 이렇게 팔짱을 끼고 난리네?
(옥금) 아유, 똑바로 걸어, 아이고, 아이고 [월숙의 술 취한 신음]
저기...
직녀별과 견우별 이어 줄 오작교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라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돕갔어
- 오작교요? - (영애) 응
아, 사실...
응, 말해 보라
우리 리 대위가 막 별 달고 진급하고
승승장구 잘나가고 그러면
부모님 마음도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요?
- 응? - (세리) 뭐...
씁, 예를 들어서
(세리) 견우별과 직녀별을 이어 주는
배려별 같은 거 받으면요?
(영애) 아!
- 아, 그게 그 얘기구먼기래 - (세리) 네
아이고, 기건 걱정 말라
내가 우리 세대주에게 얘기할 참이야
- 정말요? - (영애) 응
영애 언니
(월숙) 야! [옥금의 당황한 신음]
헤어지라!
결혼하지 말라!
애인은 애인일 때가 좋은 거야!
결혼하면 내가 좋아했던 남자는 사라지는 기야
없어져 버린단 말이야
그 남자가 좋으면 기냥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라!
기래야 사라지지 않아!
(영애) 아니, 이 동무 왜 이래! 많이 취한 거가?
(옥금) 죄송합니다
(영애) 어머나 [여자들의 놀란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영애 동지는 본인 세대주가 진짜 좋습니까?
(월숙) 왜, 대좌라 좋아?
대좌인 거 빼면 뭐 볼 거 있어 기냥 늙은 너구리 새끼지
[옥금 놀라서 신음하며] 와 이럽니까!
[침을 퉤 뱉는다] [옥금의 놀란 신음]
(월숙) 왜! 내 말이 틀렸습니까?
(영애) 에잇! 뭣들 하니! 끌고 가라! [향이네의 놀란 숨소리]
(옥금) 죄송합니다
(월숙) 너구리 새끼를...
[여자들이 제지한다]
너구리 새끼라 하는데 말도 못 하니!
(옥금) 와 이리 무겁노 [월숙이 계속 소리친다]
[성난 숨소리]
저 에미나이가 사방 분간을 못 하고 날뛰고...
(옥금) 아이고, 무거워!
- (옥금) 아이, 뭘 먹은 거야? - (월숙) 놓으라!
(옥금) 얼마나 먹은 거야? [여자들이 소란스럽다]
[한숨]
[월숙이 연신 소리친다]
[멀리서 개가 왈왈 짖는다]
[잠금장치를 탁 잠근다]
[닭 울음]
[맥주 캔이 툭 떨어진다]
[닭 울음]
[문이 드르륵 열린다]
외박이네요
밖에서 자고 온 건 아니니 외박은 아니디
밖에서 날 새우고 들어오면 그게 외박이에요
(세리) 어, 넘지 말아 줄래요?
[흥미진진한 음악] 거기가 삼팔선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선 넘지 말자고요
리정혁 씨도 원하는 바잖아
어, 금 밟았어
서로 선만 잘 지키면 전쟁 날 일 없으니까 주의 부탁할게요
화난 거요?
아니요? 내가 왜?
- 화난 거 아니면... - (세리) 아니라고요
(정혁) 그 칼 좀 내려놓고 얘기하면 안 될까?
어제 내가 잠이 안 와서 계산을 좀 해 봤어요
(세리) 어제 여기서 저녁 8시 좀 못 돼서 출발했으니까
평양에 10시엔 갔을 거고 커피 한잔했다 쳐
그래도 11시엔 출발할 거고
그럼 새벽 한두 시엔 도착을 해야 되는데 지금 몇 시예요?
어머, 아침 7시 반이네?
'곧 오갔소' 이러고 안 와
[헛웃음]
(정혁) 볼일이 있었소
그랬겠지
(정혁) 국제 육상 대회에 참석하는 국가 대표 선수단에
당신을 포함시키려 하오
뭐라고요?
그럼 항공편으로 유럽에 갈 수 있소
아니, 그거 알아보고 온 거예요?
(세리) 아니, 그럼 들어오면서 말을 좀 해 주지
성질낸 내가 뭐가 돼요
아, 근데...
뭐, 물론 내가 운동 신경도 좀 좋고 달리기도 곧잘 하긴 해요
아, 그렇지만 국가 대표로 뛸 만큼은...
(정혁)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한 예비 선수로 포함되는 거고
실제로 경기 뛸 일은 없을 거요
대회지에 도착하는 즉시 당신은 행방불명될 거니까
행방불명되면요?
돌아가는 거지, 집으로
비행기 출발이 언제예요?
(정혁) 다음 주 목요일이오
(세리) 목요일이면 주총 전에 도착할 수도 있어요
뭐, 준비할 시간은 좀 부족하겠지만 괜찮아
려권을 만들기 위해선 사진부터 찍어야 하는데
그런데요?
(정혁) 평양은 이곳과 다르오
의심 사지 않으려면 이것저것 좀 바꾸는 게 좋갔소
[놀란 숨소리]
(세리) 이 중에서만 골라야 된다고요?
예, 이거이 아주 대표적인 머리 모양들입니다
(월숙) 나는 기냥 이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릴까
기러면 영애 동지가 용서해 줄까
(옥금) 뭘 해도 용서해 줄 거 같지 않으니
보람 없이 빡빡이는 되지 마시라요
오케이!
[비장한 음악]
(옥금) 골랐소?
나는 '어서 가세요' 머리
난 진짜 어서 가야 되니까
(옥금) 탁월한 선택입니다
[자전거 벨이 울린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머리 뽕이 다 뒤로 가서 '어서 가세요'였구나
(옥금) 아유, 곱다, 고와 [흥미로운 음악]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옥금) 자, 자, 이거 입어 보시라요
노! [옥금이 당황해한다]
(옥금) 뭐이네, 이게 이걸 왜 걸치고 난리야?
(월숙) 뭐이가, 이거
(월숙) 에미나이가 정신없구먼
(세리) 음, 마음에 들어
(세리) 아니...
이게 촌스러운데 희한하게 힙해
(세리) 씁, 이 일 바지 이거
나 뉴욕 패션 위크에서 본 거 같아
이 패턴
(옥금) 자, 자, 자, 이보시라요, 뭔가 부족해
자, 요거 하나 둘러 보고
이야...
이제 좀 평양 맵짠녀랑 붙어 볼 만하갔슴다
자, 평양 가서 아주 그냥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오십시오
그게...
(세리) 꾸며서 납작하게 해 줄 일은 아니고요
어제 딱 만난 그 순간
이미 쌩얼로도 아주 납작하게는 해 줬어요
(월숙) 아니던데, 안 납작해지던데 [옥금이 풋 웃는다]
봤는데, 내가
(세리) 어머! 오, 이런 게 있네?
허, 너무 예쁘다, 얼마지?
기건 비쌉니다
(상인) 안 살 거면 딱 내려놓으시라요 때 탑니다
아니, 비싸면 얼마인데요?
만오천 원입니다
[옥금의 놀란 신음] 이야, 너무 비싸다, 야
(옥금) 너무 비싸네
돈은 있시오?
내가 태어나서 이 말 처음 해 보는데요
그래요, 나 돈 없어요
[닭 울음]
(명순) 여기가 제일 잘 쳐주는 데입니다
계십니까?
(전당포 주인) 아이, 또 왔네?
아직도 맡길 물건이 남았네?
오늘은 나 말고 다른 손님 데리고 왔습니다
11과 대상으로 남조선에 오래 있다 와 가지고
물건 하난 좋을 겝니다
아, 기래?
뭐를 맡길 거가?
[세리의 한숨]
2019년 FW 시즌 한정판으로 딱 다섯 개 나온 거
(세리) 본점에서 디자이너한테 직접 구매한 거예요
[전당포 주인의 의아한 숨소리] [흥미진진한 음악]
다섯 개 중의 하나는 내가 샀고 나머지 네 개는 누가 샀을까요?
들으면 진짜 깜짝 놀라실 텐데
패리스 힐턴이랑 미란다 커랑...
내 얘기 듣고 있어요?
가볍구먼
그렇죠, 바로 알아보시네요
(세리) 차고 있어도 안 찬 거 같은 착용감
우리 흥정할 시간 아끼죠
반의반만 받을게요, 2만 달러
에, 구리가 만 원에, 가죽이 7천 원 공임비가 2천 원
만구천 원은 줄 수 있갔네
내 친구인데 2만 원만 맞춰 주라요
기라지, 뭐, 2만 원
아, 아니...
2만 원이 아니라 2만 달러라고요
아, 이 아이가 어디를 봐서...
(남자1) 이거 좀 맡아 달라요
[전당포 주인의 한숨]
3만5천 원
저기요, 왜 내 시계가 이 벨트보다 더 싸요?
이거 명품이라고요, 무려 한정판!
(전당포 주인) 의미 없어
우리는 근으로 재니까 이거 가죽을 더 썼어야지
너무 가벼워
이렇게 가볍게 만드는 게 기술이라고요
(세리) 이게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전당포 주인) 기래서 우리는 안 매긴다고, 값을
2만 원에 가져가기 싫으면 그냥 가라요!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기라문?
5천 원만 더 쓰시란 얘기지
기럽시다, 2만5천 원
고맙습니다
잘됐습니다 원래 이케 많이 안 쳐주는데
네
(세리) 이거 팔지 마요
나 금방 찾으러 올 거야
어?
이 시계 진짜인데
어머, 왜 이런 게 여기 있어? [잔잔한 음악]
아휴...
나 같은 사연 있는 사람이 또 있나 보네
(전당포 주인) 이거는 뭐, 돈도 안 받고 맡겨만 달라고 이랬던 기야
몇 년이 지났는데 찾아가질 않네
[한숨]
다음 주 목요일에 출국을 한다?
예
기것도 국가 대표 선수로 위장을 해서 항공편을 이용해 말이디?
위조 여권인 거가?
기거는 아닌 거 같습니다
평양 호텔까지 가서 여권 사진까지 찍었고
(만복) 926공장에도 들른다고 했습니다
뭐, 기렇다면 위조 여권이 아니고 정식 여권 아니갔습니까?
아니, 11과 사람들은 많이들
그, 비밀리에 출국을 하기 위해 신분 위장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동무는 그 여성이 진짜 11과라고 생각해?
예?
예, 그 녹취록을 보시면 아시갔지만
기케까지 수상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기래?
기래, 뭐, 베테랑 동무가 기렇다면 뭐, 기런 거갔지
- 수고했소 - (만복) 예
- (철강) 동무 - 예?
그, 리무혁이 시계 말이야
(철강) 왜 없었을까?
[긴장되는 음악]
[겁먹은 숨소리]
(철강) 관사며 부대며
리무혁이 아는 사람들까지 다 뒤졌는데
어디에 있을까, 그 시계
아, 글쎄요
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면
기케 무사히 넘어가진 못했갔지요
기렇지?
근데 찜찜하다 이 말이야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거이 리정혁이한테 가게 된다면
동무나 나나 끝이야, 잘 살피라
예
(부중대장) 중대 차렷!
중대장 동지!
5중대는 오후 훈련 받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부중대장 중위 황영범!
쉬어
(부중대장) 쉬어!
[긴장되는 음악]
중대원 몇이 보이지 않는데 어케 된 거가
상사 표치수, 하사 박광범 중급 병사 김주먹, 초급 병사 금은동
(부중대장) 이상 네 명을 보위부에서 소환해 갔습니다
[은동의 떨리는 숨소리]
(철강) 금은동 병사
아직 조사 시작도 안 했는데 와 울고 기래
고향에 오마니도 있고 동생들도 줄줄이 넷이나 있구먼기래
난 말이야
너희 넷 중의 딱 한 놈만 구해 줄 작정이야
가장 먼저 나에게 사실대로 고발을 해 줄 딱 한 놈만
기회는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
니가 말하면 니가 사는 거이고
말을 안 하면 다른 놈들 중의 한 놈이 사는 거야
니가 살아야 되지 않간?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철강) 자
아는 대로만 말하면 돼
그 11과 대상이라는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리정혁 중대장은 뭘 숨기고 있는지
수로 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을 빼돌려서
집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훌쩍인다]
준비됐으면 말하라
- (은동) 소좌 동지 - 응, 기래
내가 마지막 아닙니까?
뭐?
(은동) 아까 아까 우리 표치수 사관장 동지도
박광범 하사 동지도, 김주먹 동지도
다 불려갔댔으니
내가 마지막 맞지요?
기런데 아직 모르는 겁니까?
나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 쌍간나!
[은동의 겁먹은 신음] [문이 탁 열린다]
[긴장되는 음악]
(철강) 리정혁 대위 동무
지금 조사 중인 거 보이지 않아?
나가라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나를 잡고 물어보십시오
기건 안 되갔는데?
(철강) 리정혁 중대장에 대해서 캐내고 있는데
당사자가 진실을 말해 주갔어?
내 생각은 다릅니다
당사자만이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좌 동지가 직접 가서 말하십시오 그간의 진실을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전화벨이 울린다]
(철강) 여보시오
예, 대좌 동지
(대좌) 이거이 어케 된 거야?
그, 트럭 충돌 사고 마무리 아직 안 된 거야?
보위 사령부 부관 동지한테 문서가 날아왔어
용의 차량 운전수들하고 조철강 동무 싹 다 같이 올려 보내라고
기런데 나는 왜 같이 오라는 거야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이거이 당신이 다 책임지기로 한 사안 아니야?
기런데 왜 나까지 불려가야 하냐 이 말이야!
당장 내 방으로 오라!
이거 보라, 리정혁이
바쁘신 거 같은데 제 중대원들은 데리고 가 보갔습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아이) 귀때기 아들 새끼는 꺼지라!
(아이들) 꺼지라!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뭐야?
왕따는 남북을 가리지 않는 사회 문제로구먼?
(세리) 야!
이 새끼들
너희
왜 떼로 몰려다니면서 한 사람 괴롭혀?
(여자 아이) 이 아주매 뭐이니?
나는 특수 부대에서 나온 사람이야
(세리) 나 남조선 말 잘하지?
너희 내가 남조선 가서 무슨 일 했는지 알면
진짜 뒤로 자빠진다, 무서워서
얘네 아버진 귀때기란 말이야요!
귀때기?
직업엔 귀천이 없는 거야
얘네 아버지가 귀때기든 코때기든 입때기든
(세리) 너희들이 뭔 상관이냐고
너희 자꾸 약한 사람 괴롭히면 커서 표치수처럼 된다
표치수가 누구라요?
있어, 못생긴 사람
그리고 너희 한 번만 더 얘 괴롭히면
내가 리정혁한테 다 이를 거야
리정혁은 누군데요?
있어, 싸움 겁나 잘하는 사람
그 사람 알면 이젠 너희는 진짜 큰일 나는 거야
얼른 가! 안 가? 씁!
(세리) 너는 왜 맞으면서 가만히 있어
[우필의 옷을 탁탁 털며] 죽자 살자 덤벼야 함부로 못 한다고
동무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누가?
아부지가
아버지 훌륭하시네
근데 세상이 그렇게 꽃동산이 아니야 [잔잔한 음악]
(세리) 너 때리는 사람이랑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
때리는 사람은 자기가 나쁜 줄을 몰라요
맞는 사람만 아파
(세리) 그러니까 앞으로 누가 너 때리려고 하잖아?
그럼 이렇게 선빵을 날려
누나도 그랬습니까?
누나?
응, 누나도 그랬어
(세리) 그랬더니 안 괴롭히더라?
옆에도 안 오고
좀 외로워도 아픈 것보단 낫잖아, 그게
자, 가방 메
(알바생) 아, 저, 실은...
제가 며칠 전에 새벽에 청소하다가 뭘 듣긴 들었는데요
아, 근데 그 소리가 너무 희미해서
아, 그리고 같은 주파수 쓰는 무전기가 또 너무 여러 개라
뭐, 그래도 한번 들어 보실래요?
예, 예, 예, 예
[라디오가 지지직거린다]
(라디오 속 세리) 여기는 세리 1호, 여기는 세리 1호
[긴장되는 음악]
드, 드, 들었어? 어, 어때?
대표님 목소리 같아?
어, 대표님 목소리 맞는 거 같은데?
- 그렇지? 맞지? - (창식) 어
내가 이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질리게 들어서
아씨, 나 소름 돋아
(창식) 내가 이 목소리를 들으면 소름이 돋아 두드러기랑
몸이 기억하는 거 같아
그, 그, 그거 USB 좀 주세요
(수찬) 경찰에 신고하고 무선 발신지 조사해 보면
답 금방 나올 거 같아요
아, 예, 알겠습니다
[수찬의 다급한 숨소리]
- (창식)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혜지) 응, 자기야
어, 나 지금 어머니 집 앞
생각해 봤는데
난 지금 기도가 아니라 효도를 해야겠더라고
(혜지) 어머니
지난번에 정말 죄송했어요
그이도 어머니 뵐 낯이 없다고 저보고 대신 좀 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아시잖아요 그이 발리에 리조트 짓는 거
아버님 물러나시고 나면
거기 한 동을 프라이빗하게 빼서
어머님, 아버님 전용으로 해 드리자고 제가 그랬어요
발리? 좋지
왜, 우리 거기로 보내 버리게?
음, 아니요
저는 어머님, 아버님 오붓하게
우리 20년째 각방 쓰는 거 몰랐니?
아, 각방 쓰셨어요?
(혜지) 아니, 왜요? 아, 전 몰랐죠
진짜 너무 외로우셨겠다
(정연) 그래
피곤할 텐데 그만 가 보렴
나도 이제 쉬어야 되겠다
아, 아, 아, 그럼 어머니
저희가 여기 들어와서 살게요
(혜지) 집도 큰데 두 분이 각방까지 쓰시고 적적하시잖아요
저 며느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제가 어머니 딸 노릇 할게요 딸도 없으신데
너 방금 뭐라 그랬니?
제가 뭐라 그랬죠?
내가 딸이 없다고?
딸 있었죠
있었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너 지금 세리가 죽었단 얘기를 하고 싶니?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혜지) 죽은 게 아니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텐데요
- 가라, 그만 - (혜지) 저, 저, 저, 어머니
한마디만요
해
어머니 지분 있잖아요, 8%
(혜지) 그 의결권 저희에게 몰아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우호 지분이랑 합치면 해 볼 만할 것 같아서 그래요, 네?
어, 자기야
어, 안 먹혀
아니, 막 화를 내시더라니까, 어
뭘 뭐라 그래
내가 딸이 되겠다 그랬지
아유, 아, 성격 진짜 좀 이상하셔, 어
그러니까 각방을 쓰시지
아, 각방을 써서 저렇게 됐나?
아, 몰라
근데 자기 그 사기꾼 잡았어?
못 잡으면 어떡해
당신 동생이 잡으면 게임 끝인데
[의미심장한 음악]
[오 과장의 신음]
[기침한다]
불었어요?
버티고 있습니다
(세형) 에이씨, 뭘 버텨, 버티길
나라 지켜요?
아, 진짜 몰라서 그래요
돈 얘기 했어요?
- 아직... - (세형) 아이고
그 얘기를 안 하니까 버티지
(세형) 우리 빨리 갑시다
얼마 받았어요, 구승준한테
내가 열 배 줄게
이보시오, 오 과장 동무
그, 지금 와서 중국으로 다시 데려오라니
(천 사장) 암만 우리가 이런 일을 하지만 상도라는 거이 있어
보호해 주기로 하고 데려와 놓고 어케 그런 짓을 하오
뭐이? 열 배?
[흥미진진한 음악] 진짜 열 배를 준다 해?
나중에 전화하갔습니다 [통화 종료음]
나 진짜 너무너무 심심해
내일 평양이라도 갑시다
(승준) 옥류관도 가고, 카지노도 가고
그럽시다
- 진짜? - (천 사장) 내일 갑시다, 평양
오, 좋아
다들 그렇게 얻어터지고 라면으로 되겠어?
이 꼬부랑 국수도 맛있습니다, 어, 어
내가 모두에게 미안하게 됐어
(광범) 그런 말 마십시오 한배 탄 사람들한테
[치수의 헛기침]
(치수) 맞습니다 사과는 이 에미나이가 해야죠
모든 일의 원흉이 다 이 에미나이인데
(세리) 그래, 맞아
내가 사과할게, 모두에게
내가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주고 싶은데
다들 알다시피 나 돈 없잖아
이거라도 받아 줘라
[익살스러운 음악]
[정혁의 헛웃음]
(치수) 아니, 그 에미나이는 왜
그 하트 수신호를 우리한테도 날리는 거가?
(광범) 기거이 좋아한다는 뜻이라 하지 않았어?
- 아, 그건 그런데... - (은동) 좋아한다는 뜻입니까?
(치수) 다행입니다, 중대장 동지
저는 그 에미나이가 중대장 동지에게
흑심이라도 품고 있지 않은가 걱정했는데
이케 날리는 하트라믄 뭐 아무 의미 없는 거 아닙니까?
기렇디, 아무 의미 없지
자본주의는 하트도 줏대가 없구나, 야
심지어 광범 동지에겐 두 번 날렸습니다
(광범) 기랬어? 난 제대로 보질 못했는데
다들 조심해서 들어가라
나는 내일 세리 동무 려권 사진 찍으러
평양 호텔 사진관에 다녀와야 하니 그런 줄로 알고
(중대원들) 예!
(치수) 그...
(세리) 왔어요?
오늘은 내가 특별히 설거지해 줄게요
아, 근데 나 내일 여권 사진 찍어야 되는데
라면을 먹어서 어떡해 얼굴 팅팅 붓겠네
[세리가 식기들을 달그락거린다]
왜 그러고 섰어요?
[세리의 의아한 신음]
동무는 심장이 여러 개요?
어?
심장이 여러 개인 사람이 어디 있어?
뭔 소리지?
됐소
아유, 내 입만 아프지
[익살스러운 음악] 어?
오늘은 내가 침대 쓰갔소
아, 나 허리 배기는데
(정혁) 배기든가 말든가
[문이 탁 여닫힌다] 왜 저래?
뭐지?
[한숨]
망할 놈의 자본주의식 하트
[한숨]
[한숨]
[한숨 후 짜증 섞인 신음]
(명순) 기래서 그 약혼녀 동무가
우리 우필이 괴롭히는 아들 다 쫓아 줬다지 뭡니까
귀때기가 뭐가 나쁘냐고 막 그러면서
(만복) 귀때기가...
[연장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한숨]
좋지는 않디
아니, 뭐, 하고 싶어서 합니까?
시키니까 하는 거지
[무거운 음악]
(중위) 이 귀때기 새끼!
[신음]
야, 야
[만복의 신음] (중위) 니가 찔렀지?
너 아니면 보위부에서 내가 삥두 판 걸 어케 알아
너 때문에 까딱하면 나 혁명화 될 뻔했어, 알간?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소위) 미안하면 빨리 불라
너야? 아니면 다른 귀때기야?
다른 놈이면 넌 보내 줄 테니까
(만복)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중위) 니가 기케 나오면 할 수 없디
[만복의 떨리는 숨소리]
기래, 니 귀가 문제 아니니?
이거이 없으면 듣지를 못하갔지
듣지를 못하면 찌르지도 못할 거고
[만복의 비명] [중위의 신음]
[만복의 거친 숨소리]
(중위) 중대장 동지!
휴식일에 할 일들이 기케들 없니?
(무혁) 내가 할 일 좀 만들어 줄까?
(함께) 아닙니다!
[만복의 겁먹은 신음]
[어두운 음악]
[겁먹은 숨소리]
[만복이 흐느낀다]
[흥겨운 악기 연주가 흘러나온다]
(판매원들) ♪ 여행하는 손님들 안녕하세요 ♪
♪ 무엇이나 좋으니 요구하세요 ♪
♪ 판매차도 가벼이 밀고 나가면 ♪
♪ 차 칸마다 웃음꽃 활짝 핀다오 ♪
♪ 아, 아, 아 ♪
♪ 우리들은 열차 판매원 ♪
♪ 행복한 사랑을 ♪
♪ 싣고 간다오, 싣고 간다오 ♪
♪ 이 고장의 특산물 들어 보세요 ♪
♪ 향기로운 과일도 맛 좀 보세요 ♪
♪ 가슴마다 흐뭇이 안겨 드리는 ♪
♪ 여행길에 더없는 기쁨이라오 ♪
[판매원들이 계속 노래한다] (세리) 어? 리정혁 씨, 나와 봐요
나 이거
[기대에 들뜬 한숨]
(판매원들) ♪ 행복한 사랑을 ♪
♪ 싣고 간다오, 싣고 간다오 ♪
♪ 거리에만 매대가 있다던가요 ♪
(판매원들) ♪ 철길 위의 매대는 더욱 좋아요 ♪
(승준) 앉으시라우
(판매원들) ♪ 손님에게 정성을 바치어 가는 ♪
♪ 판매원의 이 영예 끝이 없어요 ♪
♪ 아, 아, 아 ♪
♪ 우리들은 열차 판매원 ♪
♪ 행복한 사랑을 ♪
♪ 싣고 간다오, 싣고 간다오 ♪
(승준) 브라보 [승객들의 환호]
여기 있는 맥주 다 주시라요
근데 여권 사진을 진짜 딱 거기서만
그 호텔 사진관에서만 찍을 수 있어요?
거기가 국가가 지정한 사진관이니까
거기에서만 찍는 거요
그렇구나
근데요
나 궁금한 거 있는데
[한숨]
내가 거기서
유럽 가서 행방불명되면요
아무 일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쪽한테 별일 없는 거냐고요 무슨 피해라든가
(충렬) 네가 추천한 사람을 대표 팀에 넣었다가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난 널 감싸 줄 수가 없어
그럴 마음도 없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걸 책임질 겁니다
[어두운 음악]
아무 일 없소
정말로?
다행이다
[기차 알림음]
(안내 방송 속 안내원) 열차에 계신 손님들에게 알려 드립니다
개성 평양행 제3 열차는
구간 정전 관계로 잠시 도중 정차하겠습니다
정전 시간은 대략 열 시간 정도로 예상되니 양해 바랍니다
열 시간?
잠시가 열 시간이야?
열 시간은 아닐 거요
- 그렇죠? - (정혁) 더 걸릴 거요
(정혁) 열서너... 대여섯 시간 정도?
말도 안 돼!
(세리) 여기서 뭐 해요
뭐 먹을 것도 이거 계란 이제 두 개밖에 안 남았고
장난해?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럼 밥은, 잠은!
(천 사장) 에이, 별걱정을 다 합니다
(승준) 걱정 안 하게 생겼어? 어? 열 시간인데?
내가 이상한 부분인가?
저, 저기 보시라요
[흥미진진한 음악] 뭐야?
뭐야?
(승준) 왜, 왜 뛰어, 왜, 왜 뛰어? 뭐, 뭐야, 뭐야
어마어마하게 밀려오는구먼그래
(승준) 아, 설명을 좀 하세요!
(천 사장) 거, 기다리면 알게 될 거 아입니까
어? 저 사람들은 뭐야?
(세리) 왜 갑자기 막 뛰어오는 거예요?
메뚜기 장사꾼들이오
메뚜...
저 사람들이 대체 뭐 파는데요?
(장사꾼1) 인조고기 있어요, 인조고기 팔아요 [장사꾼들이 저마다 말한다]
어, 인조고기! 여기 있시오, 여기 있시오
[소란스럽다]
[장사꾼들이 연신 저마다 말한다]
(장사꾼2) 장작 팔아요, 장작 팝니다
(장사꾼3) 담요 팔아요, 담요 있어요
- (장사꾼4) 통닭 사라요, 통닭, 어? - (장사꾼3) 담요 팔아요, 담요 있어요
[장사꾼들이 저마다 말한다]
(장사꾼4) 통닭 사라요, 통닭!
(세리) 아니, 옥수수 볏짚을 깔고
야외 취침을 하자는 거예요, 지금?
(정혁) 어차피 기차 안이나 바깥이나 추운 건 매한가지인데
밖에선 불을 피울 수가 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세리) 기차가 더 따뜻할 거 같은데
[세리의 겁먹은 신음]
(장사꾼5) 땔감 사라요
(장사꾼2) 장작 팔아요, 장작 팝니다!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장사꾼6) 장작 팔아요, 장작 팝니다!
(정혁) 아이고...
(장사꾼2) 장작 팝니다!
어? 저 사람들 이불 있네?
(세리) 파는 건가? 갖고 온 건가?
[발랄한 음악]
따뜻하고 좋네
다리도 뻗을 수 있고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나오길 잘한 거 같아
리정혁 씨도 앉아요, 따뜻해
(세리) 어? 옥수수, 감자
[정혁의 힘주는 숨소리]
어디 가려고요?
[한숨]
[감탄하며] 맛있겠다
리정혁 씨도 먹어요
(정혁) 음식 생각 없다더니 [세리의 놀란 신음]
너무 맛있어
[만족스러운 신음]
근데 리정혁 씨
(세리) 내가 아까 봤는데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세숫물도 사더라고요?
찬물은 50원, 더운물은 100원
더블이긴 한데 이왕이면 50원 더 쓰고 더운물이 낫겠죠?
아니, 여기서 살림 차릴 생각이오? 눌러살게?
(정혁) 사람이 무슨 물욕이 이케 많은지
하...
[기침한다]
너무 어이가 없다
아, 무슨 100원짜리 세숫물 한 사발에
사람을 무슨 욕망덩어리로 만들고 있어?
치...
나도 돈 있거든요?
내 세숫물 값은 내가 낼게요
돈이 어디서 났소?
시계 전당포에 맡겼지, 뭐
와, 여기서는 내 명품을 근수로 달아 주더라고
(세리) 근데 그날 사고 싶은 옷 다 사고 나니까 500원밖에 안 남았어
[한숨]
근데 거기 진짜 좋은 남자 시계도 있더라고요?
내 얘기 듣고 있어요?
여기 사람들은 내 얘기를 안 들어 들을 생각을 안 해
(세리) 아, 뜨거워
아, 너무 뜨거워
[세리가 입바람을 후 분다]
(정혁) 아휴...
[정혁이 입바람을 후 분다]
리정혁 씨는 참 좋은 사람이야
(정혁) 갑자기?
응,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빠가 되고 그럴 것 같다는 생각
글쎄
앞날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아서
왜요?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흘러가 버리면 마음이 좋지 않으니까
[정혁이 손을 쓱쓱 턴다]
그랬던 적이 있어요?
[잔잔한 음악]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있었소
그래서 마음 아팠구나
인도 속담에 그런 말이 있대요
잘못 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에 데려다준다고
(세리) 나도 그랬어
내 인생은...
늘 잘못 탄 기차였어
그래서 한 번은 중간에 다 관두고 싶어서
그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있었거든?
그래 놓고 또 지금 봐요
잘못 타도 너무 한참을 잘못 타서
무려 삼팔선을 넘어 버렸잖아
[소리 내 웃는다]
그래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지는 몰라도
생각은 해 봐요, 앞날
난...
내가 가고 나서라도
리정혁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어떤 기차를 타고라도
꼭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좋겠어
(장사꾼6) 장작 팔아요, 장작 팝니다!
낭만이 넘치네
낭만사 하겠어
아이, 정신 좀 차려요
아, 거, 피곤하면 내한테 기대시라요
(승준) 에? 미쳤어요?
아씨...
[한숨]
어떻게 기차가 여기보다 더 춥냐, 어?
아휴...
이 아저씨 왜 이래, 진짜!
[승준의 못마땅한 한숨] 아, 참...
이렇게 10년을 어떻게 살지?
[승준의 힘주는 신음]
[차분한 음악]
[기차 경적]
[소란스럽다]
오...
[세리의 놀란 신음]
[세리의 탄성]
오, 여기는 완전 다르네?
(정혁) 두리번거리지 마시오
촌스러우니
(세리) 잠깐만요
뭐라고? 촌스러워?
허, 촌스러움의 완전히 극단적인 반대말이 있다면
그게 나예요, 나라고
내 말 또 안 들어
같이 가요
아...
(승준) 아유!
차 타면 두 시간도 안 걸릴 걸 기차를 타고 17시간이 걸렸어, 지금
여기선 종종 있는 일입니다
종종 있어서는 아니 돼!
그리고 뭐, 다신 안 돌아갈 거야? 짐이 이렇게 많아
(천 사장) 뭐, 이거저거 싸다 보니까 기케 됐습니다
그렇군
(사진사) 자, 이제 찍겠습니다
여기 보시라요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다 됐습니다
(세리) 아, 저기...
나 눈 감은 거 같은데 다시 한 장 찍어 달랄까요?
되었소
이 사진의 목적은 본인 확인이니
너무 이쁘게 찍히면 곤란하지
너무 이쁘게 찍혀야 본인 확인이 될걸?
나오시오
아니면...
(세리) 우리 같이 한 장 찍는 건?
아니...
나 가고 나면 다신 볼 일 없을 텐데 기념으로
기념할 이유도, 기억할 이유도 없을 거 같은데
[멋쩍게 웃으며] 그러네, 정말
나도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직원) 어서 오십시오
(천 사장) 천수복 이름으로 된 거 찾아주시오
(직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직원) 1511호입니다
(천 사장) 가시오
(승준) 내 짐
아, 나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까 먼저 밥부터 먹읍시다
아유, 나 배 엄청 고파
- 예, 그럽시다 - (승준) 응
[흥미진진한 음악]
[통화 연결음]
어, 나요
지금 평양 호텔 왔소
아, 눈치 못 챘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 지금 보위부 조 소좌 쪽은 무슨 일이 났는지 연락이 안 되오
어, 근데...
그쪽에서 열 배를 주기로 한 거 믿어도 되오?
아이, 그, 사람 넘기기 전에 확실히 돈부터 입금이 돼야...
핸드폰 내놔
아이씨...
[통화 연결음]
(오 과장) 아유, 천 사장님 전화를 왜 그렇게 끊어
오 과장 이런, 씨...
네가 돈을 그렇게 나한테 처받고도 네가 이럴 수가 있어, 지금?
(승준) 갑자기 왜 이러는데?
(오 과장) 이씨...
(승준) 야, 여보세요, 야
열 배를 누가 주는데, 누군데!
승준아, 내가 사람 하나는 참 잘 보지?
(세형) 너 머리 하나는 기똥찬 놈이야
네가 거기 있으니까 내가 널 못 찾지
(승준) 아...
이 와중에도 야단칠 건 치시고 칭찬할 건 딱딱 칭찬해 주시고
제가 이래서 형님을 존경합니다, 예
맺고 끊는 게 확실하셔서
(세형) 시끄럽고
넌 여기 오면 뒈질 준비나 해
내 돈 다 토해 놓고
아, 이 새끼...
(승준) 형님
아,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이게 사업을 하다 보면...
(세형) 여보세요 [의미심장한 음악]
여보세요
왜 말을 안 해?
- 근데 형님 - (세형) 뭐?
윤세리 잘 있어요?
(세형) 느닷없이 갑자기 세리는 왜 찾아? 슬프게
세리 이제 없어 나도 보고 싶다, 세리
난 보고 있어서, 세리
방금 뭐라고?
아니에요, 걔 왜 없는데?
왜 없긴, 죽었으니까 없지
죽어요?
아, 왜?
그거 네가 알 거 없고
씁, 하긴 넌 조만간 하늘나라 가서 만나면 되겠다
만나면 이 오빠 안부 좀 전해 줘라
그럴게요
전할게요, 안부
조만간 그럴 수 있을 거 같네
맞지? 윤세리
아니, 어떻게 여기...
[세리의 당황한 신음]
(세리) 어? 어? 어디, 어디 가는 거야
[당황한 신음]
이건 무슨 운명이지?
아, 구승준 그냥 죽으란 법은 없나 보네?
- 아니, 무슨... - (승준) 이야... [긴장되는 음악]
누구신지?
윤세리, 우리...
헤어지자, 우리
나도 지금 딱 그 말 하려고 했는데
확실히 하자고
내가 헤어지자고 한 거야, 내가 찼어
(세리) 뭐, 네가 어디 가서 나 사귀었다 여기까진 말해도 돼
근데 나를 찼니, 나를 버렸니
그런 헛소리 하기만 해라
대한민국 재벌 무서운 거 알지?
죽는다, 진짜
누난 늘 이런 식이지
상처 좀 받을 거 같다 싶으면 선빵 날리고
기다릴 거 같으면 먼저 확 가 버리고
(남자2) 누나도 나중에 딱 누나 같은 사람 한번 만나 봐
끝도 없이 누나 기다리게 하는 사람
[헛웃음]
그럴 일 없어 [흥미진진한 음악]
난 절대 누구 혼자서 기다리는
그런 쭈글쭈글한 짓은 안 하거든?
[술 취한 신음]
리정혁
왜 이렇게 안 와
우라질
[한숨]
[감성적인 음악]
(세리) 리정혁 씨 지금 나 보호하고 있잖아요
(정혁) 보호가 아니라 관리 감독
내가 그쪽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지켜주는 사람도 아니고
(세리) 나 안 들키고 잘할 수 있을까요?
(세리) 키 놓고 갔어...
(단) 이런 상황이 두 번째면 기분 나빠야 하는 게 맞지요?
(승준) 남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요
(세리) 쫓아 올라오진 않았고요 같이 왔어요
난 그 남자랑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조금 전에
(승준) 나 말고 한 사람 더 키핑할 생각 있어요?
뉘기요, 이 여자?
(세리) 좋아서 생각이 많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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