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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가 돌아왔다1


무용학원 - 자막 : 1987년 가을

(E)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 공심(15세)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빅클로즈업으로 화면에 가득

잡는다.

(E) 그 위로 쿵쾅쿵쾅 심장박동 소리 울리는데

공심의 눈동자가 부러움과 동경으로 흔들린다.

카메라 뒤로 빠지면 쿵쾅거리던 심장박동 소리 서서히 작아지고

낡은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벽에 바짝 붙어 선 공심, 풀샷으로 잡힌다.

(E) 음악 소리 커지는데.

카메라 돌면 발레복을 갖춰 입은 도경(17세), 아이들과 함께 발레 동작으로

선생님 구령에 맞춰 춤추고 있다.

선생 샤세샤세~

도경과 아이들, 구령에 맞춰 우아하게 앞으로 나가는 동작한다.

선생님 트위트트위트~

도경과 아이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발로 포인트 찍는.

선생님 피니쉬~!

음악 끝나고 도경과 아이들, 우아하게 피날레 인사 하면,

선생님 (손뼉 치며) 자오늘은 여기까지.

일동 (일제히)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연습실에서 나가고

도경과 아이들, 긴장 풀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일각에 서서 지켜보던 공심,

얼른 도경에게 가서 수건과 물이 든 잔을 가져다주는데.

도경 (받아서 꿀꺽꿀꺽 들이마시곤, 미소로) 콩심아 고마워~

공심 (기계적으로) 고맙긴 뭘. (도경의 빈 물 컵 받아들고 나가는데)

도경 (토슈즈 벗으려다) 콩심아~ (다리 아프다는 듯 쭉 뻗으면)

공심 (얼른 가서 묵묵히 토슈즈 벗겨준다)

도경 (해맑게 웃으며) 콩심아 고마워~

공심 고맙긴 뭘.

도경 (주위 돌아보며) 얘들아 영화 보러 가자. 더티 댄싱 개봉했대.

공심 (기대되고) 아아.. 페트릭 스웨이지 나오는 거?

도경 (무시하고) 보러가자. 내가 낼게!

일동, 우와 좋아서 환호성 지른다.

(시간경과)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학원생들 도경과 우르르 나가고,

공심, 도경이 벗어 놓은 토슈즈와 휘휘 벗어서 던져놓은 발레복을 개어서 짐

가방에 넣고는 어깨에 메고 서둘러 나간다.

무용학원 앞

도경과 아이들 차에 오르고 차문 닫자 도경네 승용차 막 출발하는데

도경의 짐가방 메고 학원 건물에서 서둘러 나오는 공심.

승용차 출발하는 거 보고 화들짝 놀라 뛰어간다.

공심 도경언니! 나 안탔어!!! (달려가는데)

차 그대로 붕 가버리고...

공심, 전력을 다해 뒤따라 뛰어가지만

어느새 멀어지는 도경네 승용차.

공심, 허둥대며 뛰어가다 신발 한 짝 벗겨지고 헐떡거리며 멈춰 선다.

먼지 폴폴 날리며 멀어져가는 차 뒤꽁무니를 원망스런 눈길로 바라보는데

공심 등 뒤 근처 팔각정에 앉아있던 할머니들 공심을 안쓰럽게 보고 있다.

할머니1(E) 쟈가 서울에서 부모 잃고 내려왔다는 이장님네 손녀딸인감?

할머니2(E) 아녀그 집 식모딸 공심이자누.

할머니3(E) 맞네. 공심이 조것이 그 집 손녀딸 따라댕기며 시중들고 산다나벼.

할머니2(E) 에미 팔자나 자슥 팔자나... 쯧쯧쯧...

우두커니 서 있는 공심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진다.

영화관

스크린에 더티댄싱의 댄스경연대회’ 장면이 나오고 있다.

주인공들 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마지막 동작에서 멈추면

객석에 앉은 도경과 학원생들 감동받은 눈빛으로 우와 하며 박수친다.

학원생들. 완전 멋져, 죽인다, 끝내준다.’... 등의 환호성 지르고.

논둑길 + 논 가운데 (저녁)

황혼이 지는 저녁 무렵의 논둑길.

공심, 도경의 짐가방을 힘겹게 메고 터덜터덜 혼자 걸어간다.

공심 (이 부드득) 나만 빼놓고.. 나쁜 것들!

생각 할수록 열불이 나 발에 차인 돌멩이 하나를 걷어차는데...

돌멩이 휙 날아가 논바닥에 떨어지자,

개구리, 폴짝 뛰어올라 공심 앞에 앉아 공심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공심 (어이없고) 야 뭘 봐? 비켜.

개구리 ... (미동도 않고)

공심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야? 이놈의 개구리를 그냥 콱! (밟으려는데)

(CG처리)

일순, 펑 하고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개구리가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지그프리드 왕자(발레복 차림)로 변해 공심에게 걸어와 손을 내민다.

공심, 놀라서 보는데 순간 화려한 발레복을 입은 오데뜨 공주로 변한다.

어느새 주변의 논이 숲으로 바뀌고 그 앞에 그림 같은 호수가 펼쳐진다.

(E) 백조의 호수’ 음악 흐르고.

백조들 날아와 공심의 주위를 맴돌며 음악에 맞춰 군무한다.

호수 근처를 훨훨 날아다니듯 행복한 표정으로 왕자님과 춤추는 공심.

봉희(E) 공심아~!

순간 음악이 뚝 멈춘다.

논 중앙에 선 공심, 정신 차리고 보면 논둑길 위에 봉희(15세)가 서 있다.

공심, 어, 왕자님~하며 왕자가 있던 자리 돌아보면,

왕자님 대신 허름한 옷을 걸친 허수아비가 웃는 얼굴로 서 있다.

파란색 추리닝에 낡은 운동화를 신은 자신의 차림새를 확인하고

아, 꿈이었구나 싶은...

봉희 (흐뭇하게 웃고) 너 정말 콩쿨에 나갈 거야?

공심 (고개 끄덕) 상 받으면 대학에 특기생으로 갈 수 있거든. 이 담에 도경

언니랑 같은 대학 가면 할아버지가 나도 서울 보내주신댔어.

봉희 도경누나 수발들라고 그러는 거지. 난 니가 그 누나 꼬봉 하는 거 싫은

데...

공심 (어깨 툭 치며) 싫긴 왜 싫어? 너랑 같이 서울 가면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는데.

봉희 (공심 어깨 툭 치며) 맞다. 그러네.. 그럼 꼭 상 받아라. 알았지?

공심 응!

봉희 (히죽 웃으며) 눈 감아봐.

공심 왜에?

봉희 얼른~ (호주머니에 손 넣고) 선물 줄게!

공심 (좋아서 눈 꼭 감는다)

봉희 (얼른 공심의 입술에 뽀뽀를 쪽 하는데)

공심 (눈 뜨고 입 가리며) 어우야누가 보면 어쩌려구?

봉희 아무도 없는데 누가 본다고 그래?

공심 (좋으면서) 어우야~

봉희 한번 해봐. 내가 봐줄게.

공심 (봉희 손잡고) 이건 파드되~ (뒷다리를 쭉 들어올리는)

봉희 (좋아서 히죽)

공심 잘 봐. 이게 그랑주떼야.

힘차게 하늘로 차올라 양 다리를 일자로 쫙 펴는데.

콩쿨 대회장 무대

화려한 발레복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무를 추는 도경.

그랑주테 동작하는, 다리 쫙 펴고 무대 상공으로 날아오르는데...

이미지 씬

화려한 무대복의 도경과 낡은 추리닝을 입은 공심으로 화면 양분되고,

각각 공중으로 날아올라 중앙에서 부딪칠 듯 마주보고 멈춘 화면에서,

도경과 공심의 얼굴, 성인이 된 모습으로 바뀌고.

타이틀 <웬수들의 그랑주테> 뜬다.

도경집 전경 - 자막 : 2009년 여름

선웅(E) 엄마, 신발주머니 어딨어?

도경집 거실

선풍기 틀어놓고 츄리닝 바람으로 소파에 길게 누워 아침연속극 보느라

정신 팔려있는 봉희(37세),

선남(17세), 신발 신고 나가려던 중이고 선녀(17세), 선웅(10세), 등교할 채 비중이다.

도경(39세) (웅이 방에서 신발주머니 들고 나오며) 여깄다. 신발주머니.

선녀 엄마 내 핸드폰 못 봤어요?

도경 으이그, (식탁 위에서 가져와주며) 여기!

선남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나가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도경 오냐. 자나 깨나 차 조심, 여우 조심 알지?

선남 으휴엄마두 참.. (나간다)

선녀 (뒤따라 나가며) 다녀올게요.

도경 우리 공주님. 자나 깨나 차 조심, 늑대 조심 알지??

선녀 으휴맨 날 그 소리.. (나간다)

선웅 (배꼽 인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도경 (선웅이 궁둥이 토닥이며) 으이그 이쁜 우리 아들. 선생님 말씀 잘 듣

구.

선웅 네. 엄마. (후다닥 뛰어 나간다)

도경, 흐뭇하게 선웅 가는 거 보고 뒤돌아서는데

봉희, 드라마에 쏙 빠져 있다.

봉희 (흥분해) 저 못된 놈, 저저저.... (손가락질하며) 남자 망신 다 시켜요....

쯔쯔쯔..(윗옷 치켜들어 똥배 선풍기에 대며) 아! 열불 나. 여보! 수박

화채 좀 만들어 봐. 얼음 동동 띄워서...

도경 (한심해) 당신 출판사 안 가봐?

봉희 (들은 척 만 척 드라마에 몰입해 손으로 눈물 훔치며) 우리 은영이 불 쌍해서 어떡하냐?

도경 (성질나 리모컨으로 TV 확! 꺼버리는)

봉희 (도경 보며 짜증) 아~?

도경 (손 허리에 올리고) 지금 남 걱정하고 있을 때야? 출판서 가서 원고료

를 받아오든 쥐꼬릴 짤라 오든 해야 될 거 아냐? 우는 애 젖 준단 말 몰라?

봉희 왜 맨 날 나만 구박만 해? 출판산 내일 갈 거야. (리모콘 들고 다시 켠

다)

도경 그럼 있다 애들 학교 급식일 당신이 좀 가.

봉희 (인상 쓰며) 뭐? 나더러 급식 도우미를 하라구? 당신은 뭐하구?

도경 애들 학원비 밀렸다고 난린데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야지.

봉희 남자 체면이 있지 절대 안 돼! (TV에 집중하는)

도경 체면은 무슨... (한심하게 보는)

(E) 점심시간 알리는 벨소리.

고등학교 구내식당

하얀 모자와 유니폼 입은 도경,

배식구에서 학생들의 식판위에 닭다리를 올려주고 있다.

선남이 식판을 내밀자 닭다리 두 개 올려준다.

도경 (윙크 찡긋하며)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해.

선남 (귀엽게 눈 찡끗하며) 생큐 맘! (가고)

학생 두어 명 뒤에 선 선녀, 무표정으로 식판 내민다.

도경, 미소 지으며 선녀의 식판에 닭다리 두 개를 주려는데

선녀 (닭다리 안 받고 식판 옆으로 밀며) 난 패스.. (새침하게 간다)

도경 기집애. 새침하기는...

배식하는 동안 선남과 선녀 밥 먹는 모습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도경.

학교 일각

잔반통 밀고 가는 도경.

(E) 발레 연습곡 흘러나오고 있다.

무용실 창 너머로 학생들 발레 연습하는 거 보인다.

도경, 창가로 가서보면 선남이 연습복 입고 춤추는 모습 보인다.

도경 (흐뭇하게 보는) 으이구 이쁜 내 새끼!

다시 씩씩하게 잔반통 밀고 가는 도경.

문득 무용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발끝을 쭉 피더니...

잔반통 잡고 플리에... 데미 프리에..

잔반통에 왼쪽 다리를 올리고 바뜨망 탄쥬 동작을 해보는 도경!

학생들 두세 명 오다가 신기하다는 듯 서서보고,

도경, 학생들과 시선 마주치자 손가락으로 브이 해보이고, 서둘러 잔반통을

끌고 간다.

(E) 비행기 착륙음.

공항 입국장

한눈에 봐도 세련됨이 줄줄 흐르는 차림의 공심(37세).

이사도라 던컨처럼 스카프 두르고, 몸에 붙는 원피스 입고 도도히 입국장을 빠져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오성발레단 관계자들 공심에게 꽃다발 안긴다.

이사 마샤장, 귀국 축하합니다.

공심 (꽃다발 받으며 활짝 웃는) 감사합니다. 이사님! (활짝 웃는데)

공심의 얼굴 위로 카메라 플래시 터지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 몰려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다.

기자1 마샤장! 이번 귀국이 영구 귀국이라던데 사실입니까?

공심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네!

기자2 오성발레단 단장님으로 취임하시게 된 소감 한마디만!

동행한 보디가드들, 공심을 따라붙는 기자들을 저지하고 공심을 에스코트해

밖으로 나가는데...

그 위로 연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일각에 서 있는 말순(공심모)과 영심, 꽃다발 들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고속도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리무진 승용차.

달리는 리무진 안

공심과 말순(61세), 영심(33세). 뒷좌석에 앉아있다.

영심 (주위 둘러보며) 와 쎈데...오성그룹에서 리무진을 다 보내주고...

말순 그럼. 명색이 오성발레단 단장인데 이 정도 성읜 보여야지. 내 평생에

리무진 언제 타보나 했는데 딸 덕에 호강한다. (냉장고 문 열어보며)

와... 냉장고도 다 있고 멋지다. (음료수 꺼내 공심 주며) 먹을래?

공심 (눈살 찌푸리며) 왜들 이래. 촌스럽게.

말순 (음료수 따 마시며) 독헌년, 17년 만에 들어 와서 에미 얼굴 보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

영심 독하니까 프리마 발레리나로 성공한 거지. 엄마두 참.

말순 그려. 영심이 니 말이 맞다. 내 딸이지만 정말 자랑스럽다. (공심 손잡

아 올리며) 만세다 만세.

공심 (싫지 않게 미소 짓는)

영심 언니, 한국 정말 많이 변했지?

공심 그래. (가만히 창밖에 시선 주는)

콩쿨대회 공연장

한국 청소년 무용 콩쿨대회” 현수막 걸려있고

무대 위에서는 발레복을 입은 선남이 혼자 열심히 독무를 추고 있다.

무대 바로 앞 심사위원 석 중앙에 앉아 심사하고 있는 공심.

스카프를 두르고 세련된 차림이다.

객석에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선남을 지켜보는 도경.

도경, 선남의 발레가 끝나자 정신없이 박수친다.

로비

도경, 선남 데리고 낙심해서 걸어 나온다.

도경 (선남 어깨 툭툭 치며) 괜찮아! 떨어지는 게 배우는 거야.

선남 (눈물 닦으며) 미안해 엄마.

도경 (강한 척) 사나이가 그깟 일로 우냐? 다음에 잘하면 되지. 힘내 아들?

선남 (힘없이 고개 끄덕이고)

화장실

화장실 한 칸, 위에서 카메라 비추고 보면

변기통 위에 앉아서 훌쩍이고 있는 도경.

도경 으휴속상해서 증말내 속이 이렇게 쓰린데 우리 아들 속은 얼마나

아플까? (휴지로 코 팽 푼다)

기분 좋게 들어오는 두 여자의 웃음소리 들리고.

학부모(E) 우리 학원 애들이 상을 싹 휩쓸었지 뭐예요.

원장(E) (기분 좋게 웃는) 호호호... 그러게요.

화장실 물 내리고 나가는 도경.

세면대 앞에서 물 틀고 손 씻는데

학부모 기대도 안했는데 우리애가 상을 다 타고... 이게다 원장님 덕분이예요.

원장 호호호... 다른 아이들이 워낙에 수준이하라 그런 거죠.

학원원장과 학부모 각자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고

도경, 배알이 꼴려 원장이 들어간 화장실 문에 대고 손에 묻은 물 팡!팡!

튕기고 나간다.

콩쿨대회 건물 앞 길

트로피 든 학생과 학부모들 앞서 걸어가고 있고

선남과 얘기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도경.

선남 다른 애들은 학원에서 안무 다 짜준다는데...

도경 학교 무용선생님께서 도와주시잖아.

선남 학원 다니는 애들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거랑은 차원이 틀리대.

도경 그래. 엄마가 내년엔 꼭 보내줄게.

선남 (기대에 차서) 정말?

도경 뒤로 좀 한참 떨어진 콩쿨대회 건물 입구에서 관계자들의 배웅 받으며

걸어 나오는 공심의 모습이 보인다.

건물 앞

관계자들과 인사하는 공심.

관계자1 마샤 단장님, 오늘 심사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공심 (미소로) 기회 되면 또 뵙죠.

건물 앞에 대기 중이던 오픈된 스포츠카에 올라탄다.

시동 걸고 차 출발시키는 공심.

건물 앞 길

선남과 걸어가는 도경.

선남 나 찬영이랑 약속 있어. 먼저 갈게요.

도경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선남 네. (선남 뛰어간다)

도경, 마음 짠해서 뛰어가는 선남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는데.

도경 (선남 간 쪽 보며) 에휴, 어떻게든 밀어줘야 되는데...

긴 스카프 바람에 날리며 달리는 공심의 스포츠카,

서서히 걸어가던 도경 옆을 지나치는데...

순간 화면 정지되며 팡~! 하고 스파크 일며 화면이 하얗게 밝아진다.

(White in)

공연장 대기실 - 자막 : 1993년 겨울

(White out)

공연을 앞두고 준비 중이라 어수선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르는 대기실.

하얀 발레복 차림의 학생들, 각기 화장도 고치고 스트레칭도 하고 바쁘다.

하얀 발레복 차림의 공심(21세),

머리에 작은 왕관을 쓰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화려한 발레복을 입고 화장대

앞에 앉은 도경(23세) 옆에 서서 땀 닦아주며 콤팩트를 찍어준다.

중간 중간 거울 보며 자기 얼굴에도 콤팩트 찍는데.

도경 (다리 만지며) 콩심아~

공심 (얼른 도경의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도경 프랑스 리옹발레단 단장님이 우리 공연 보러 오셨다는데 나, 그분 눈에

들 수 있을까?

공심 (상냥하게) 그럼. 언니가 주인공인데 당연히 언니만 보이겠지.

도경 아, 너무 떨린다. 물 좀 줄래?

공심 응. (얼른 물 가지러 가는데)

그 때 대기실 문 빼꼼 열리고 얼굴 들이미는 봉희(21세).

주윤발 삘 나는 포마드 옆으로 바른 헤어스타일에 바바리를 입고 있다.

봉희 (공심을 향해 반갑게 손 흔들며) 공심아!

공심 (좋아서 얼른 뛰어가며) 봉희야, 넌 여기 들어오면 안 돼.

봉희 (꽃바구니 건네며) 이거.

공심 (자기에게 주는 줄 알고 감동해) 어우야~

봉희 어떤 남자가 도경이 누나한테 전해 주래.

공심 (표정 바뀌며 꽃바구니 보고 부러운) 그래? 이쁘네.

봉희 (사랑의 총알과 윙크 날리며) 이따 봐~ (나간다)

공심 (좋아라 봉희에게 손 흔들곤 돌아서 도경에게) 언니한테 온 거래.

공심 꽃바구니 건네면, 도경 도도하게 받아서 꽃바구니에 꽂힌 카드 보는데

<나 오늘 미국으로 떠나요. 공연 못 보고 가서 섭섭해요. 도착하면 편지할

게요. 사랑해요. -현우->라 쓰여 있다.

도경 (충격 받아 멍하니 서 있는) ...!!!

공심 (오며) 언니... 빨리 준비해. 곧 공연 시작이야.

도경 (그대로 서 있는)

공심 언니, 왜 그래?

도경 오늘 떠난대.

공심 누구? 아... 그 남자애?

도경 (눈물 그렁해서) 나 어떡해...

공심 뭘 어떡해? 공연 앞두고...

도경 (꽃바구니를 아프게 보는데) 나 때문에 미국 가는 거야. 어떻게 해...

공심 (일순 눈 반짝하며) 그럼 가보든지.

도경 (갈등하는데) 공연은 어떡하구...

공심 언닌 지금 공연이 문제야?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도경 (망설이는) 그래도...

공심 (다그치는) 공연이 중요해? 걔가 중요해?

도경 ... (결심한 듯 뛰쳐나간다)

공심 어, 언니~ (뒤따라가려다 멈칫 서는)

공연장 밖

봉희, 주윤발처럼 성냥 물고 손으로 머릿결 뒤로 넘기며 나오는데

도경, 발레복 입은 채 미친 듯 뛰어나오다가 봉희를 밀치고 간다.

성냥에 입안이 찔리면서 놀라서 보는 봉희.

백 스테이지

교수, 몹시 화난표정으로 고개 숙인 무용과 학생들 사이에 서 있다.

교수 아니, 얘가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소리 빽) 도경이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몰라? (하다가 공심 쳐다보며) 너도 몰라?

공심 (움찔하고) 언니가... 공항에 간다고...

교수 (버럭) 뭐? 공연 앞둔 애가 거길 왜 가? 공심이 넌 안 말리고 뭐했어?

공심 ... (말 못하고)

교수 (어이없다는) 내참, 뭐 그딴 애가 다 있어? (열 받아 학생들 보며) 오늘 공연 취소야.

학생들,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교수, 나가려는데

공심 저기 교수님~!

교수 (보는데)

도로

바바리 입은 봉희가 운전하고, 발레복 차림의 도경이 뒤에 탄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영화 <천장지구> 오토바이 장면처럼...

도경의 발레복 옷자락 마구 날리고, 도경이 얼굴엔 아이라인이 번져 검은 눈물 주르르 흘러 얼룩지는데...

공연장 무대

화려한 왕관을 쓰고 오데뜨 발레복 차림의 공심, 무대로 나가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 아득하다.

(E) 백조의 호수 음악 나오고.

이를 앙물고 심호흡한 다음에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간다.

공심, 이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바뀌어 우아하고 멋지게 춤을 춘다.

공항 (몽타주)

로비/ 현우(18세), 서성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체념한 듯 돌아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다.

입구 문 열리며 뛰어 들어오는 도경, 봉희의 바바리를 걸친 상태다.

뒤따라 봉희 들어오고.

현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 사라진다.

도경, 에스컬레이터 위를 허겁지겁 뛰어올라간다.

출국장/ 티켓을 보이고 안으로 들어가는 현우.

뒤이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도경,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는 현우를 발견하고 현우야부르는데,

못 듣고 안으로 사라지는 현우.

달려오던 도경, 현우 모습 사라지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데

졸업발표회장 무대

화려한 왕관을 쓰고 오데뜨 발레복 차림의 공심, 무대로 나가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 아득하다.

(E) 백조의 호수 음악 나오고.

이를 앙물고 심호흡한 다음에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간다.

공심, 이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바뀌어 우아하고 멋지게 춤을 춘다.

선술집

봉희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도경,

발레복 위에 봉희의 바바리 걸친 차림이다.

봉희 누나, 그깟 놈 잊어버려요. 더 좋은 사람이 꼭 나타날 거야.

도경 (만취한 상태) 뭘 잊어? 니가 뭘 안다구?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야만 하는 내 심정을 니가 알기나 해? 찢어지는 내 마음 나봉희, 니

가 알어?

봉희 (고개 끄덕이며) 누나가 아파하니까 제 마음도 찢어지는 것만 같아요.

도경 (혀 꼬부라져서) 그래? (소주잔 들고) 그럼 찢어지는 가슴끼리 건배~!

봉희 (잔 들어 도경잔과 부딪치고)

도경 (원 샷 하더니 팩 꼬꾸라진다)

봉희 (도경을 흔들어 깨우며) 도경누나, 정신 차려요. 집에 가야지.

도경 (고개 들어 힘겹게 실눈을 뜨고 봉희를 본다)

봉희 ...?

도경 (봉희 얼굴 위로 현우 얼굴 오버랩 되고 눈물 그렁해서) 현우야...

봉희 (의아한) 어?

도경 돌아왔구나. 다시 돌아왔어! (봉희를 확 끌어안는다)

봉희 (안긴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누, 누나아...

공연장 무대

무대 커튼 올라가면 무대 위에 상기된 표정의 무용수들 일렬로 서 있고

왕자가 공주인 공심을 이끌고 나와 무대 중앙에 서서 청중을 향해 인사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꿈을 꾸듯 황홀한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보는 공심.

도경(E) 야! 니가 감히 내 오데뜨를 해?

문화대 일각

도경, 팔짱 끼고 선채로

마주 선 공심을 노려보고 있다.

도경 (노려보는)

공심 (시선 깔고)

도경 그래서 나한테 공항 가보라구 부추겼어?

공심 (말 못하고) ...

도경 (날카롭게) 너 당장 내 앞에서 꺼져. 거지같은 기집애야!

공심 (그 말에 눈 치켜뜨는데)

도경 (소리치는) 당장 꺼지라 그랬잖아.

공심 (째려보다가) 비켜. (도경을 탁 치고 간다)

도경 (눈에 불꽃이 팍팍 튀는데)

(F. O.)

콩쿨 대회장 건물 앞 길 (현실)

(F. I.) 도경을 스쳐지나가는 공심의 스포츠 카.

도경 보면, 오픈된 스포츠카에서 공심이 두른 긴 스카프 바람에 날리고.

도경, 멈춰선 채로 부러운 듯한 시선 잠시 주고는 다시 걸어가는데

벽에 공고란 주위에 모여 웅성거리는 학부모들.

뭔가 싶어 다가가는데...

도경 찬영이 엄마, 뭔데 그래?

찬영모 오성발레단에서 영재아카데미를 만든다네.

도경, 보면 공고란에 오성발레단에서 제 1기 아카데미 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도경 아카데미면 학원인 거잖아?

찬영모 이거 좀 봐. 수업료 전액 무료래잖아.

도경 (솔깃해서 보는데)

학모1 프랑스에서 단장을 스카웃했다더니 다른 발레단이랑은 스케일부터가

확 다르네.

학모2 오성 그룹에서 밀어주는 거잖아. 수업료 전액 무료에 해외유학 특전까

지 우와~

찬영모 어휴, 되기만 하면 로또당첨도 안 부럽겠네.

도경 (이거다 싶어 눈 반짝!)

문화의 전당 전경 (다른 날)

오성 문화 재단이 운영하는 공연장과 갤러리, 연주회장 발레단 등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센터다.

문화의 전당 공연장

(E) 공연음악 흐르고

발레단원들 연습복 차림으로 무대 위에서 연습중이다.

일각에 여기자 보며 서있고, 사진기자 연습 광경을 사진 찍는 중이다.

객석 앞에 서서 단원들 동작을 유심히 보던 공심,

아라베스크 동작에서 박수를 탁탁 치며 멈추라는 신호 보낸다.

여기자(E) 단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발레단 단장실

여기자와 마주앉아 인터뷰 중인 공심.

이사도라던컨처럼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세련된 정장 차림이다.

공심 호호호... 기자님두. 과찬이세요.

여기자 마샤 장께서 오성 발레단의 단장으로 오시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 사였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공심 국내에는 저에 대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여기자 (웃으며) 네에.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가 있으시다면...

공심 많은 분들이 발레를 부유층에 국한되었다고들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 아요. 저만해도 굉장히 열악한 여건 속에서 발레를 했거든요. 그래서 발레단 부설로 아카데미 개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자 ... (메모하며 보는)

공심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서 세계적인 발레리

나로 키우려고 합니다. 저도 리옹 발레단의 장학금을 받았기에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걸요. 재단 측과 협의 중인데 실질적이고도 아낌없는 지

원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 아카데미로 만들고 싶습니다.

여기자 와우... 정말 멋지세요. 마샤 단장님 덕분에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나올

날이 머지않게 느껴지는데요.

공심 (환하게 미소 짓는)

그때 노크하고 들어오는 진섭.

진섭 단장님! 나가실 시간입니다. 차 대기시켰어요.

공심과 여기자 일어서고,

여공심 어쩌죠? 특강이 있어 나가봐야겠네요.

기자 단장님 스케줄에 동행해서 취재하면 안 될까요? 방해 안 되도록 할게요.

공심 (흔쾌히) 네. 같이 가시죠.

진섭의 안내로 공심과 여기자가 나간다.

강의실

학생들 앞에서 강의 중인 공심.

학생들 손들고 질문 공세중이다.

학생1 (자리에서 일어나) 발레리나가 꼭 갖춰야 될 건 뭔가요?

공심 재능, 노력, 경제력?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발레리나에게 있어 가장 중

요한 것은...

(인서트)

- 허수아비 잡고 연습하던 공심(15세).

공심 (강한 어조로) 독기를 품는 겁니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 생각하고 악착

같이 매달려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학생들, 고개 끄덕이고. 다른 학생, 자리에서 일어나 공심에게 질문한다.

학생2 발레 때문에 잃은 것이 있다면요?

공심 (순간 움찔한다)

(인서트)

- 꽃이 피어있는 들판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쓴 공심에게

클로버 꽃으로 만든 꽃반지를 끼워 주는 봉희(20세).

공심(20세), 너무 행복한 표정이다.

공심 ... (글쎄 하는 표정으로) 사랑?

학생들 (환호하는) 우와!

공심 (미소로) 제 꿈이 원래 현모양처였어요.

학생들 (의외라는 표정으로 웃고)

학생3 실연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공심 (움찔)

(인서트)

- 꽃반지 끼워주는 위의 사진을 불에 태우는 공심.

아프게 눈물 뚝뚝 흘리는.

공심 제게는 발레라는 또 하나의 꿈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다부지게) 이젠

잃어버린 제 사랑도 찾을 거예요.

학생들, 박수치며 감탄하고 멋있다.’ ‘죽인다.’ ‘반드시 찾으세요.’ 등등

외친다.

공심 학생들의 호응 속에서 환하게 웃는.

강의실 앞 복도

공심, 강의실에서 나오는데 기자 달려온다.

기자 단장님! 강의 너무 좋았어요.

공심 (미소로 보는)

기자 단장님께서 사랑했던 그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공심 (보면)

기자 직업근성 때문인지 궁금해서요. 곤란하시면 답 안하셔도 되구요.

공심 (별 관심 없다는 듯) 글쎄요,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패스트푸드 점

제복 입은 직원들 청소하고, 남자매니저가 서류 들고 체크하고 있다.

문 빼꼼 열고 도경 들어온다.

직원 아직 개장 전인데요. 손님, 한 시간 후에 오세요.

도경 (매니저에게 꾸벅 인사하고) 저, 여기 주말 아르바이트 모집한대서...

직원 우리 매장은 아줌마 안 뽑아요. (매니저에게) 그쵸? 매니저님!

도경, 매니저 보고 꾸벅 인사한다.

도경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잘 할게요.

매니저 (들은 척도 안하고 일하고)

도경 (매달리듯) 매니저님, 한번만 시켜봐 주세요.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불쌍한 표정으로) 제가 꼭 일자리를 구해야해서요.

매니저 (위 아래로 훑어보며) 아줌만 안 쓴다니깐요!

패스트푸드 점 앞

도경, 투덜거리면서 걸어 나온다.

도경 아줌마가 할 일이 이렇게 없냐? 시켜보지도 않고 죄다 아줌마는 안 된

대. 아줌마가 힘이 얼마나 좋은데 그걸 몰라? (손 부채질하며) 아주 푹푹

찌는구만.

대형마트

카트 밀면서 장보는 도경, 김치 시식 알바하고 있는 봉선(39세)에게 다가간 다.

봉선 (포장한 김치 손님에게 건네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도경 많이 팔았어?

봉선 내가 누구냐? 판매의 여왕 아니냐?

도경 시식 알바 자리 안 났어?

봉선 지난주에 돈까스 자리 나왔었는데...

도경 (아쉬운) 돈까스? 딱 좋은데...

봉선 참, 도경아! 오늘 저녁에 동문회 있는 거 알지?

도경 (시식용 김치 하나 집어먹으며) 내가 언제 그런데 가는 거 봤어?

봉선 공심이가 온댄다.

도경 (깜짝 놀라 사래 걸려 켁켁 거리는데)

봉선 왜 매워?

도경 (목에 고추양념 걸렸는지 기침하며 다급하게) 물무울~!

버스정류장 앞

도경, 장 본거 들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도경 (혼잣말처럼) 십 칠 년만인가... 기집애, 결혼은 했을까?

한숨 푹 내쉬다가 무거운 듯 손을 바꿔들며 걸어가는 도경.

저만치 줄이 쫙 선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 매고, 광나는 구두 신고 머리에 힘준 봉희가 걸어온다.

도경 (봉희를 아래위로 보며) 어! 당신 그 옷 어디서 났어?

봉희 (히죽 웃으며) 세탁소에서 빌렸어.

도경 뭐? 어디 가는데?

봉희 (얼버무리며) 어어,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도경 (째려보며) 중요한 미팅이 동문회는 아니겠지?

봉희 (화들짝 놀라며) 어? 어..

도경 (추궁하듯) 공심이도 온다며?

봉희 (찔려서) 나도 몰랐어. 누나한테 들어서 아까 안거야. 지, 진짜야.

도경 그래서 공심이 온다고 세탁소에서 옷까지 빌렸냐?

봉희 (정색하며) 떽! 다들 차려입고 올 텐데 당신은 내가 꼬질꼬질하게 입고

나갔음 좋겠어? 이 사람이 지금~ (하다가 문득) 그렇게 못마땅하면 당신

도 오든지...

도경 (버럭) 내가 거길 왜가?

봉희 왜 나한테 승질이야? 알았어. 일찍 올게. 어, 버스 왔네.

빠른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타는 봉희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보는 도경.

도경집 동네

서민동네 풍경 펼쳐지고,

장바구니를 낑낑대며 들고 가는 도경.

바닥에 자리 펴놓고 원피스를 팔고 있는 장사꾼, 소리 높여 호객하고,

아줌마들, 여럿 몰려서 옷을 고르고 있다.

장사꾼 (걸쭉하게) 안보면 손해!! 잡으면 횡재!! 입으면 임자!! 자, 오천원, 오천

원, 눈물의 오천원이태리파숑 계의 대가 타올선생님의 작품!! 앙두레

김도 울고 갈 디자인자, 속는 셈 한번 치고 입어들 봐!! 결혼식이고,

계모임이고 동창회고, 오천원 한 장이면 대우가 틀려져!! 자, 오천원, 오

천원~~

걸음 멈추고 혹해서 아줌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도경.

도경(E) 첫사랑은 무슨~!

동네 미용실

미용실 가운 걸치고 머리 말고 있는 원피스 차림의 도경.

미용사 그럼 누굴 만나러 가는데 선남엄마가 머리를 다 해?

도경 오늘 동문회에 울 남편 졸졸 따라다니던 애가 나온대서.

미용사 (껌 짝짝 씹으며) 뭐 하는 여잔데? 결혼은 했구?

도경 (퉁명스럽게) 알게 뭐야.

미용사 그 여자가 선남아빠 마음 흔들기라도 하면 어떡하니?

도경 (못마땅한) 치, 지깟 게 흔들어 봤자지.

미용사 암튼 가정 있는 남자들한테 꼬랑지를 흔드는 년들은 그 꼬랑지를 잡아다

가 사정없이 패대기를 팍~ (흥분해서 고데기를 도경의 속머리에 대는)

도경 앗 뜨거~!!!

뷰티샵 전경

세련된 모습의 고급 뷰티살롱 건물.

직원(E) 뜨거우세요?

뷰티샵 마사지 룸

따끈하게 데워진 돌멩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공심의 벗은 등 위 척추 선을

따라 놓여진다.

마사지용 침대 위에 공심 엎드린 자세로 누워있고 여직원(20대)이 등 위에 돌멩이를 올리고 있다.

공심 으음.. (뜨거운 듯 신음 내뱉으며) 조금...

직원 (돌멩이 놓으며) 점점 몸속으로 시원한 기분이 파고 들 거예요.

공심 (기분 좋은 듯 눈 감고 느끼는) 음...

직원 (공심의 벗은 상체를 보며) 단장님은 목과 어깨라인도 예술이세요.

공심 호호... 그래?

그때 영심, 들어온다.

영심 (의자에 앉으며) 언니!

공심 (눈 뜨고) 목걸이 가지고 왔어?

영심 응.

직원 잠깐 그대로 계세요. 얼굴 마사지 준비할게요. (나간다)

영심 (궁금한 표정으로) 도경 언니도 나오겠네?

공심 (건성으로) 그러겠지 뭐.

영심 그 언닌 봉희오빠 뺏어가더니 둘이 잘 먹고 잘산대?

공심 (짜증내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영심 (못마땅해) 봉희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신경 무지 쓴다.

공심 아니야. (눈 감고)

영심 도대체 봉희 오빠가 뭐라고 아직도 못 잊어?

공심 (버럭) 아니라니깐!

공심이 몸 뒤척이는 바람에 굴러 내리는 돌멩이들.

영심. 놀라서 알았어. 알았어...’ 하며 돌멩이 주워 등에 올려주는데,

뷰티샵 일각

전면 거울 앞에 선 공심, 화장에 헤어 손질까지 마치고,

럭셔리한 원피스 입고 있다.

직원 (목걸이 목에 걸어주며) 단장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영심 이 정도면 도경 언니 기가 팍 죽겠는 걸.

공심 (거울 보며 흡족한 듯)

호텔 앞

공심의 스포츠카 호텔 앞에 서면 발렛 파킹맨 차 문을 열어준다.

명품 원피스를 차려입고 고급 선글라스를 낀 채 한 눈에 럭셔리함이

느껴지는 공심이 차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뒤이어 호텔입구를 향해 걸어오는 도경, 샤넬 문양이 새겨진 짝퉁 원피스로,

나름 멋 부린 차림새다.

호텔 로비

공심, 선글라스를 멋스럽게 머리 위로 올리고 자신감 넘친 표정으로 허리

꼿꼿이 세우고 섹시하게 엉덩이 흔들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간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엘리베이터 문 열린다.

엘리베이터 안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공심.

닫힘’ 버튼 꾹 누르는데 타다닥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숨 헉헉대며 잠깐만

~’ 하는데 공심, 무시하고 그대로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가슴 펴고 도도하게 서 있는 공심.

1층 엘리베이터 앞

도경, 놓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문을 거울삼아 머리모양새를

가다듬으며 서 있다.

호텔 동문회장

중앙에 <만석고등학교 총동문회> 플래카드 붙여져 있고

군데군데 같은 기수들끼리 모여 있는 모습이다.

십여 명 모여 있는 또래의 동창들과 둘러앉은 봉희, 주도하에 분위기 잡고

있다.

봉희 (스윙하는 시늉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딱 쳤는데 그대로 홀인원인

거야. 홀인원... 프로들도 생전 하기 어렵다는 홀인원을 내가 두 번이나

했다니까 그것도 1년에... 1년에 홀인원 두 번하는 것이 쉽게 있는 일이

야? 거의 기적에 가깝지. 내가 올해 운수가 확 트이려나 봐....

일각에 있던 봉선,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봉선 (궁시렁 거리듯 혼잣말로) 저 주댕일 확 꼬매 버릴 수도 없고... 으이그,

컴퓨터 게임에서 홀인원한 거 가지고 내가 못살아 증말~

동창1 우와, 홀인원을 두 번씩이나 정말 대단하다. 나봉희!

동창2 참, 너 요즘 유명인들 자서전 쓴다며?

봉희 (거들먹거리며) 응. H그룹 정회장 자서전 쓰고 있지.

동창1 와정몽팔 회장?

봉희 응. 대필 일 그만 두려고 했는데 정회장이 나 아님 안 된다고 하도 사정

을 해서 말야. 그 양반두 참아무나 시키면 되지. 꼭 나라네. 꼭!

동창2 이야, 대단한데! 봉희 니가 쓴 소설도 곧 나온다며?

봉희 그럼. 물론이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대형서점에 나봉희 이름 쫘악 깔

리는 거 시간 문제라구!

동창3 우와, 나봉희얼굴 보기 힘들어질 텐데 이참에 싸인이라도 받아둬야 하

는거 아냐?

봉희 싸인은 무슨... (팔 걷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줄 서라. 줄!!

동창들 앞에서 넉살좋게 얘기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봉희.

그때 누군가 우와, 장공심! 하는데,

일제히 입구로 쏠리는 동창들 시선으로 보이는,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들어오는 공심.

봉희 (놀라고, 가슴 뛰는) 공심아!

앞 다투어 일어나며 공심을 반갑게 맞으러 가는 동창 몇 명 있고,

몰라보겠다. 멋있어졌다.’ 등등... 말 오가며,

활짝 웃는 공심을 둘러싸고 자리로 오는 동창들.

봉희, 그대로 얼어붙어 서 있는데...

봉선 공심아~ (하며 달려가 공심을 끌어안고) 대체 이게 얼마만이래니?

공심 봉선언니~! (반갑게 봉선 안았다 떼고는 봉선 바로 뒤에 선 봉희를

발견한다)

봉희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공심과 눈 마주치자 썩소 지으며) 오..랜만이다.

일제히 시선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순간, 긴장감이 흐른다.

공심 (순간 움찔하다가 주위 의식하고 미소 지으며) 그래. 봉희야.

봉희 (멋쩍어서 씩 웃는)

봉선 (공심 손잡고) 기집애.. 귀국한지 삼개월 됐대며? 연락 좀하지 그랬어?

공심 (다정한 말투로) 좀 바빴어. 봉선언니~

봉선 발레는 계속 하구?

공심 응. 요즘은 발레아카데미 설립 준비하고 있어.

봉선 아카데미 설립? 이야, 장공심 완전 멋지다. 야~

공심 (미소 짓는데)

그때, 누군가 차도경 선배닷!’ 하는 소리에 순간 뒤돌아보는 공심.

도경, 걸어오다 공심을 보고 당황해서 멈칫 선다.

봉희, 얼른 내밀었던 손을 뒤로 감추고

역시 우리 만석고 퀸이야! 차도경 하나도 안 변했어’ 등등.. 동문들의

감탄사가 이어지고,

도경과 마찬가지로 도경을 보자 순간 얼어붙은 공심.

도경, 또각또각 걸어가 경직되어 서 있는 공심의 어깨를 툭 치며.

도경 콩심아 안녕? (고개 빳빳이 들고 지나치는데)

도경의 뒷모습 보며 짜증지대로인 공심.

봉희 (갑작스런 출현에 약간 놀란) 어 여보, 왔어? (얼른 자리를 빼주는데)

봉선 (다른 쪽 가리키며) 우리 동창들 자린 저기야!

도경 그래, 봉선아! (봉선과 동창들 있는 자리로 간다)

봉희 자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공심.

공심과 대각선으로 보이는 다른 자리에 도경이 봉선과 나란히 앉아있다.

동창들과 하하호호 화기애애하게 담소 나누는 공심.

봉선 쟤 발레아카데미 만드는 중이래.

도경 (그 말에 입 삐죽) 지깟 게 무슨...

(시간 경과)

도경, 동창들과 삼삼오오 대화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여동창1 (도경에게) 도경아, 넌 어쩜 몸매가 그대로니? 원피스 넘 이쁘다. 그거

샤닐 꺼 같은데... 맞지?

도경 어? 어. (어색하게 미소 짓는데)

여동창1 어쩐지 명품이라 때깔이 틀리다니까.

대각선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공심, 은근히 동창들과 대화 나누는

도경의 말에 신경이 간다.

공심 (도경을 곁눈으로 보며 마음의 소리) 나봉희가 좀 버나보지? (입맛 쓰게

다신다)

동문회장으로 보이는 남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장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님들, 후배님들, 우리 다 같이 건배 한 번 할까

요? (잔을 드는데)

동문들, 일제히 호응하며 자기 잔에 술 채우고 건배하려 잔을 든다.

회장 자, 만석고등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일동 위하여!!

잔 부딪히는데 도경, 투두둑 어깨 죽지가 툭하고 뜯어지는 소리에 움찔한다.

뜯어진 곳을 얼른 팔로 손이 가리는 도경.

어색한 자세로 겨우 건배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도경 (봉선에게 귓속말로) 봉선아, 나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볼게.

봉선 (공심 때문에 그러나싶어) 왜?

도경 (일어서고) 있다 집에서 보자. (둘러보며) 얘들아, 다음에 보자. (나간

다)

봉선 이제 시작인데 벌써 가면 어떡해?

도경 있다 얘기할게. 나 먼저 간다. (나간다)

봉선 (봉희에게 눈치 찌릿 주며) 나가 봐.

봉희 도경을 뒤따라 나가고

공심, 무슨 일인가 싶어 호기심어린 눈길로 보는.

호텔 복도

봉희, 앞서 가는 도경을 뒤따라 걸어간다.

봉희 여보, 난 더 있다 가야하는데... 내가 총무잖아.

도경 맘대로 해.

봉희 그럼 나 다시 들어간다~ (뒤 따라 가다가 멈춰 서는데)

도경 (귀찮아서) 그래 가라 가. (그대로 걸어가는)

그 말에 이때다 싶어 좋아라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는 봉희.

돌아보고 기도 안찬다는 표정으로 인상 찌푸리는 도경.

도경 일찍 들어와! (소리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 대답만 하고 들어가는 봉희.

도경 마누라 먼저 간다니까 저 인간 아주 살 판 났네. (발길 멈추고) 아참!

(화장실 쪽으로 간다)

호텔 화장실

도경, 거울로 자기 팔 들어 살펴보면

겨드랑이 부분이 실밥이 나가 뜯어진 상태다.

도경 누가 짝퉁 아니랄까봐 (실밥 잡아 뜯으며) 이 조악한 바느질 하고는.

도경, 핸드백에서 휴대용 반짇고리를 꺼내는데

공심, 들어오다 도경 발견하고 멈칫하다가 세면대 앞으로 온다.

도경, 공심 보고 얼른 팔을 내려 겨드랑이 부분을 감추는데

공심, 도경 옆에 서서 콤팩트 꺼내 화장 고친다.

세면대 거울을 통해 눈싸움 지지직하는 두 사람.

도경 외국물 먹더니 너 많이 변했다.

공심 (콤팩트 두들기며 무심하게) 봉희랑은 잘 살어?

도경 그럼 잘 살지.

공심 선배 애가 셋이라며? 뒷바라지 하려면 돈 많이 들겠다.

도경 니가 걱정할 일은 아니구.

공심 큰 아들이 발레 한다던데?

도경 (어찌 아나싶어 보는)

공심 (거울 본 채 콤팩트로 얼굴 찍으며) 봉선언니 말이 선배 닮아 소질이

다분하다던데.

도경 (그 말에 으쓱) 응. 좀 한다는 소리 들어. (자랑스럽게) 오성 발레단에서

하는 아카데미 들어갈 거야.

공심 (그 말에 흘깃 보는)

도경 장학금까지 주면서 유학 보내준다고 해서 한번 보내볼까 하구...

공심 (의미심장한 미소) 거기 들어가기 쉽지 않다던데...

도경 (물 잠그고 자연스럽게) 공심아, 거기 티슈 좀 줄래?

공심 (무의식중에 옆의 티슈를 톡 빼서 드는데)

도경 (받기도 전에 도도하게) 고마워~

공심 고맙긴 뭘... (하다가 아차싶어) 선밴 손 없어? (티슈로 자기 손 닦고

휴지통에 넣는다)

도경 (기가 막혀 보다가) 너 무용학원 차린대며?

공심 (자랑스럽게) 우리 아카데미가 바로 오.. (오성 발레단 하려는데)

도경 (말 자르고 티슈 뽑아 손 닦으며) 유학 갔다 와서 별 볼일 없으면 개나

소나 무용학원 차리더라.

공심 (어이없어) 뭐?

도경 너 아직 결혼도 안했다며? 어떡하니? 그 나이에 애 낳기 힘들 텐데...

공심 (기분 상한) 선배가 걱정할 일은 아니구...

도경 쯔쯔쯔..나이를 생각해야지. 너도 낼 모레면 사십 줄인데... 나이 더 들

면 재취자리도 힘들어, 얘~. (새침하게) 나 먼저 실례! (화장실 칸에 들

어가 문 닫는다)

공심 (도경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노려보다가 쌩하니 나간다)

호텔 다른 복도

공심, 화가 나서 씩씩대며 걸어온다.

공심 (열 받은) 어쩜 하나도 안변했네. 저 왕! 싸가지!!!

호텔 동문회장

공심 들어가 보면 봉선 옆자리에 동창1이 앉아있다.

공심 여기 내 자린데...

동창1 (공심 보고) 야, 도경이 집에 갔는데 왕년의 첫사랑끼리 나란히 앉아라.

동창2 맞아. 공심이 너 봉희 옆으로 가.

봉희 (좋아서) 흐흐... 그래 공심아. 이리 와.

공심 (미소 지으며 가서 봉희 오른쪽 옆자리에 앉고)

동창3 (왼쪽 옆자리에 앉아서) 장공심! 내가 너 옛날에 좋아했던 거 알어?

공심 어머 그랬니? 호호호..

호텔 화장실 양변기칸 안

슬립차림으로 변기 뚜껑 위에 앉은 도경,

원피스 벗어든 채로 소매를 꿰매는 중이다.

호텔 동문회장

봉희 동창들 모인 자리, 술잔 여러 번 돈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동창3 (공심에게) 너 아직 결혼 안했다며?

공심 응.

동창3 설마 봉희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봉희 (움찔한다)

공심 당연 아니지. (다정하게 부르는) 봉희야, 오랜만인데 우리 건배 한번 할

까?

봉희 (난처한) 어? ... (머뭇거리는데)

동창2 그래. 옛 연인들끼리 러브샷 한번 때려라.

동창3 얌마. 도경 알면 어쩌려구. 공심아, 나랑 어때?

공심 (빙긋 웃으며) 그럴까? (잔 드는데)

봉희 (잔 얼른 들고 껴들며) 에비옛정을 생각해서도 그건 안 되지.

봉희,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공심과 러브샷 하려는데

조금 떨어진 대각선 자리의 봉선 난처한 표정이다.

봉선 난 안본 거다. (손으로 눈 가리고)

공심, 맥주잔으로 러브 샷 하려고 봉희에게로 팔 돌리는데,

공심의 눈에 도경이 들어오는 거 보인다.

공심, 일부러 더 친밀한 자세로 봉희에게 바짝 몸 붙이고 러브샷 하는데...

봉희, 장난스럽게 히죽 웃고.

도경, 걸어 들어오다 그 모습 보고 입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다.

봉선 (손가락 벌려 그 사이로 보다가 도경 발견하고 허걱) 도경아!!!

그 소리에 일제히 시선 돌리는 일행, 순간 다들 놀라서 얼어붙고.

도경, 무서운 눈빛 쏘며 무슨 말을 할 듯 입술을 씰룩거린다.

일동 도경의 입술만 쳐다보는데...

호텔 동문회장 (도경의 상상)

도경,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러브샷 포즈 상태로 얼어붙은

공심과 봉희 앞으로 또각또각 걸어간다.

도경 (차갑고 냉정하게) 유부남한테 꼬리 살살 흔드는 년들은 다시는 그딴

짓 못하게 그 꼬랑지를 확 잘라버려야 돼!

(CG처리)

공심, 헉! 놀라서 보면 난데없이 꼬리가 생기는 듯 옷 뒤가 들썩이더니,

꼬리가 옷을 뚫고 나와 쭉쭉 길어진다.

봉희 여 여보.. 그게 아니라...

공심,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도경을 쳐다보고

도경, 공심의 꼬리를 잡더니 사정없이 돌리며 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도경 (손 탁탁 털며) 어디 남자가 없어서 내 남자를 넘봐!

일동, 경악하며 보는...

호텔 동문회장 (현실)

다들 도경의 입만 쳐다보며 초긴장으로 굳어있는데

굳은 표정의 도경, 또각또각 걸어가 어느새 공심 앞에 선다.

공심 (잔 내려놓고 무표정으로 도경을 보면)

도경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콩심이 너! 그동안 많이 굶었나보구나.

공심 뭐? (얼굴 빨개지고)

도경 (파들파들 떨고 있는 봉희에게) 여보가자!

봉희 (멍하고) 어, 그래.. (얼른 일어선다)

봉희, 뒤도 안돌아보고 도경을 따라 나가고

공심, 분해서 도경의 뒷모습을 보는데...

호텔 앞 (밤)

열 받아서 씩씩거리며 가는 도경, 눈치 보며 뒤따라가는 봉희

봉희 난 그냥 건배만 하려고 한 건데 공심이가...

도경 (휙 돌아보며) 앞으로 공심이 나 몰래 만나기만 해봐.

봉희 (쫄아서) 만날 일 없지. 내가 걔 만날 일 뭐 있겠어.

도경 정말이지?

봉희 (귀엽게 웃으며) 나는 오직 차도경 뿐이야... (손으로 하트 날리는) 딴

여자애들은 다 쭈글쭈글 상태가 안 좋은데... 우리 여보야는 멀리서 딱 보는데 광채가 나요. (손 귀에 대고 흔들며) 반짝반짝~

도경 (싫지 않은) 치이...

도로 + 공심 차 안 (밤)

생각만 해도 분한지 운전 중에 입술을 잘근 깨무는 공심.

공심 (부르르 떨며) 동문들 앞에서 나를 망신시켜? 뭐? 개나 소나 무용학원?

(콧방귀 뀌며) 흥어디 두고보자구!

도경(E) 빠 샤세~!

도경 집 거실

도경이 선남의 옆에 서서 발레 자세 교정해주고 있다.

소파에 앉아서 책보고 있는 선웅도 보이고..

도경 (인상 쓰며) 오른 쪽 다리 앞으로 드미플리에 하고 점프!

선남 (점프하지만 안 되고)

도경 (소리 꽥 지르며) 오른 쪽 다리 각도는 45도야. 오른 쪽 손은 씨손느

똥베... 몰라?

선남 (바닥에 주저앉아 힘 드는지) 왜 이렇게 잘 안되지.

도경 자, 힘내자. 우리 아들. 합격해서 에펠탑 보러 가야지~!

선남 응. 오성아카데미 들어가서 유학 꼭 갈 거야. (일어서는데)

선남, 다시 동작 해보는데 한 번에 성공한다.

도경 (박수 치며) 바로 그거야. 실수만 안하면 합격은 따논 당상이야.

선남 (땀 닦으며 기분 좋게 웃는)

봉희 방 (밤)

방금 샤워 마친 듯 젖은 머리의 봉희, 침대에 길게 누워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인서트 - 동문회장>

동창1 내 특별히 니들 주려고 가져온 거다. 이걸로 오늘 밤 실력 좀 발휘해

봐.

봉희 이게 뭔데?

동창1 (봉희 손에도 무언가 쥐어주며 씩 웃는) 자식... 알면서...

봉희 (손바닥 펴보면 비아그라 알약) 이게 뭐야?

동창1 (윙크하며) 뭐긴? 비아~거시기지 뭐. 잘 되면 한턱 쏴?

봉희 (감격해서 고개 끄덕끄덕)

현실로 돌아온 봉희, 계속 고개 끄덕거리고 있다.

굳센 각오를 한 표정으로 침대 옆 스탠드 위에 놓인 알약을 꿀꺽 삼킨다.

이때 방으로 들어오는 도경.

도경 벌써 자려구? 피곤한 건 난데 왜 당신이 먼저 뻗었어?!

봉희 (느글느글하게) 나 자는 거 아냐. 당신 오늘 동문회서 보니까 너무 예쁘

더라.

도경 (뭔 말 하려는가 싶어 빤히 보는)

봉희 (애교스럽게) 내가 당신에게 특별 선물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도경 선물? (주위 둘러보며) 어딨는데?

봉희 (한층 더 느글) 선물이 바로 나야... 오늘 지글지글 불타는 나를 당신에 게 선물하고 싶어.

도경 당신이 삼겹살이야? 지글지글 불타게? (그래도 싫지 않은 듯) 그래. 좋

아. 우리 오랜만에 기분 좀 내볼까?

봉희 (도경의 허리 감싸 안으며) 그래. 우리 오늘 불타는 침대를 만들어보자

구. 내가 오늘 끝내줄게!

봉희, 도경을 향해 입술을 쭉 내민다.

도경, 역시 입술을 쭉 내밀며 봉희 입술에 갖다 대려는 찰라,

(E) 방문 두들기는 소리.

두 사람 급히 입술 떼고.

선녀(E) 엄마 약 줘!!

도경 어 잠깐만... (스탠드 쪽으로 살피며) 어딨지?

봉희 뭔데?

도경 (계속 찾으며) 변비약.

봉희 변비약?

도경 (침대 밑까지 샅샅이 찾으며) 응. 선녀가 변비가 심해서 아무리 노력해

도 안 나온대잖아. 내가 한방에 나오는 걸루 구해놨는데.. 어디 갔지?

봉희, '한방에?' 하고는 그때서야 아차 싶다.

놀래서 스탠드 서랍 여는데 나오는 비아그라 알약.

뒤통수를 치며 속으로만 아이구야?!

봉희 (신경질 내며) 아니 그런 거 간수 잘해야지. 뭐하는 거야?

도경 소린 왜 질러? 가뜩이나 없어져서 화딱지 나구만.

봉희, 뭐라고 얘기하려고 하는데 벌써 신호가 온다.

뭔가 나오려는 거 간신히 막으며 엉덩이 붙잡고 뛰어나간다.

도경 (약 찾으며 고개 갸우뚱) 분명히 여기 뒀는데... 약에 발이 달렸나?

(시간경과)

침대에 누운 채 도경과 분위기 잡다가 또다시 뛰쳐나가려는 봉희.

도경, 일어서 나가려는 봉희 다리를 붙잡고.

도경 대체 왜 그래? 이게 몇 번째야?

봉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일곱 번째...

도경 알긴 아네. (바지가랑이 잡고 늘어지며) 안 돼. 못가. 참아봐.

봉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도경 뭐? 불타는 침대? 침대는 커녕 내 속이 다 탄다.

봉희 (괴로운 표정으로) 여보, 제발... 난 지금 똥줄이 타고 있어. (못 참고 도

경을 팍 뿌리치고 나간다)

도경 (발랑 나동그라지자 거칠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으이구, 내 팔자야!

(E) 발레용 무대 연주곡

발레단 오디션장 (다음날)

선남, 빠샤세 동작 하고 있다.

수직 점프해 공중에서 합해지는 두 다리...

그 순간 다시 높게 솟아오르는 선남.

스카프 맨 공심, 심사위원석 중앙에 앉아서 선남을 유심히 본다.

발레단 오디션장 밖

도경과 학부모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학부모1 합격하면 프랑스 국립 발레단 연수 보내 준대.

학부모2 오성그룹에서 팍팍 밀어준다더니 진짠가 보네.

도경 붙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학부모2 참, 자기 마샤장 봤어? 진짜 우아하더라.

도경 그래?

학부모3 (다른 쪽 보며) 어머, 오디션 끝났나봐.

스카프 두른 공심이 심사위원들과 얘기 나누며 걸어 나온다.

도경과 학부모들 일제히 공심 쪽을 보는데,

도경 저기 스카프가 마샤 장이야?

학부모1 응. 스타일 죽이지?

공심 점점 도경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데...

환하게 미소 지으며 보던 도경,

일순 공심이 마샤 장이라는 걸 알아채고 얼른 몸을 돌린다.

학부모1 선남엄마, 왜 그래?

도경 나,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 있다 봐.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하는 도경.

공심, 선 채로 도경의 뒷모습을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데.

도경(E) 차라리 모르는 사이가 낫지!!!

마트

도경, 음료 시식코너에서 알바 중인 봉선 앞에 서서 시식용 음료를 벌컥벌컥

마신다.

도경 (음료 든 통을 탁 내려놓고) 하필이면 공심이가 그곳 단장이라니... 꼬여

도 어떻게 이렇게 꼬인다니?

봉선 아니야. 잘된 일일지도 몰라. 공심이 지가 누구 덕에 대학에 들어갔는

데 우리 선남일 모른 척 하면 인간도 아니지.

도경 (떨떠름한 표정)

봉선 그러지 말고 도경아. 우리가 공심이 만나서 부탁해보자.

도경 미쳤냐? 걔한테 머릴 숙이게...

봉선 야, 선남이 장래가 걸린 마당에 자존심이 대수냐?

도경 됐어. 내 힘으로 돈 벌어서 우리 선남이 더 좋은 학원 보낼 거야.

봉선 (누가 말리겠냐는 듯) 그러시든지.

도경 근데 여기 알바 자리 아직도 안 나왔어?

봉선 응. (하다가) 아참, 우리 옆집 아줌마 주말에 출장 뷔페 도우미일 나간 다던데 거기 자리 한번 알아봐줘?

도경 뷔페 도우미?

공심 집 정원 (다른 날)

(E) 현악 삼중주가 연주하는 경쾌한 왈츠 흐르고.

으리으리한 고급주택,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파티가 한창이다.

정원에 간이테이블 여러 개 마련되어있고 한쪽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든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 위에 삼단 케이크 놓여있고

손님들 와인 잔 등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분주히 음식을 나르는 도우미들 보이고

맹여사, 영심과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맹여사 생일잔치에 주인공은 안보이고... 왜 이렇게 늦어?

영심 (웃으며) 꽃단장 하느라 그렇죠. (입구 쪽 보고) 저기 오네요.

우아한 정장 차림의 공심, 한복을 곱게 입은 말순(60대)과 함께 들어선다.

손님들에게 미소로 환대하며 들어서는 공심, 일일이 인사 나누는데

공심과 엇갈려 집안에서 음식물 가지고 나오는 도우미 차림의 도경,

다른 도우미들과 함께 테이블에 음식들 챙기며 음식그릇을 들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공심과 손님들 사이에 인사와 축배의 건배 오가는데...

도우미 (갈비 담긴 그릇 들고 가다 공심을 넋 놓고 보며) 어쩜 저리 우아할까?

도경 (건성으로 공심의 뒷모습 보며) 저기 원피스 입은 여자가 이 집 사모님

이야?

도우미 사모님이 아니라 골드미스래.

도경 올드미스?

도우미 올드미스가 아니라 골드미스. 가진 게 넘쳐서 안 간 여자.

도경 그게 그거지 뭐.

도우미 (부럽게 보며) 삐까 번쩍 궁전 같은 집에 발목 잡는 애가 있나 지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 텐데.. 우리랑은 삶의 격차가 너무 나서 내놓고 부 러워도 못할 지경이네.

도경 (입 삐죽) 치, 사람 사는 게 차이나 봤자 오십 보 백 보지. 난 하나도

안 부럽네. (무심코 공심을 보는데)

손님들과 담소 나누는 공심과 말순을 번갈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도경.

순간 공심, 몸을 돌려 도경 쪽으로 시선 보내자 황급히 뒤돌아서는 도경에서 엔딩.

.공주가 돌아왔다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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