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여왕 1
로비 (D)
출근 시간이다.
비슷비슷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척척척.. 들어온다.
삑.. 하고 사원증을 대면. 그들의 머리 위로
이름과 나이, 부서와 직함, 결혼 유무, 연봉 등의 프로필이
빠르게 띵! 떴다 사라진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를 잡아 죽일 듯한 킬힐.. 또각또각 로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태희다. 똑 떨어지는 정장에 차갑고 도시적인 분위기.
어떻게 보면 스튜어디스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사감 같기도 하다.
태희가 사원증을 삑.. 갖다 댄다.
태희 머리 위로. 띡 뜨는 태희의 프로필.
황태희. 33세. 제품개발부. 브랜드 개발 팀장. 미혼. 연봉 7000만원이라고 뜬다. 당당하게 들어오는 태희 모습에서.
엘리베이터 (D)
엘리베이터 올라타는 태희. 안에 있던 남녀 직원들 몇몇, 어색하게..
안녕하십니까.. 인사한다. 태희, 고개 까딱하며 받아주는.
문 닫히려는데 저만치서 ‘잠깐만요!’ 하며 달려오는 백여진.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스타일의 여진. 긴 머리 휘날리며 뛴다.
남자 직원들 모두 따사로운 호감으로 여진에게 인사하고.
‘아우 여진씨 이제 출근해요’ ‘여진씨. 좋은 아침이에요!’ 등등..
바쁜 와중에도 남자들에게 하나하나 눈웃음으로 인사해주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예쁘게 뛰어오는 여진.
하지만 여진을 본 태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닫힘 버튼 꾹.. 누른다.
여진 황망한 표정과 태희의 싸늘한 미소 교차. 문 닫힌다.
사무실 (D)
여직원의 비율이 훨씬 높은 사무실 내부.
기쁨, 커피잔 들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헉..해서 되돌아오며. ‘떴어요!’
그러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메신저 끄고. 작업창 열고.
신발 벗은 채 양반다리 하고 있던 거 얼른 내려 구두 신고.
후다닥 책상 위에 프리젠테이션용 화장품 샘플들을 늘어놓는 등등..
잠시 후 잘 정돈된 분위기의 고요한 사무실로 태희가 들어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테이크아웃 커피 대령하는 유경.
유경 안녕하세요 팀장님.
태희 (커피 받고 뭐 트집 잡을 거 없나.. 직원들 한번 쓰윽 훑어본다)
일동 (그 눈길 한번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왠지 잔소름이 끼치는데)
태희 좋은 아침.
일동 (어색하게 웃으며)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이때 계단으로 뛰어올라온 듯 헉헉대며 들어오는 여진.
여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태희 백여진씨? 어제 일찍 퇴근했드라? 하란 거 오대리한테 시켜놓구?
여진 (어두워지며) 아... 엄마가 낙상하셨다구 연락이 와서..
태희 (좀 놀라며) 그랬구나~ 그래서 내 전화도 못받았구나.
여진 엄마 팔뼈가 부러지셔가지구.. 같이 응급실 가느라구요.
태희 소유경씨?
유경 네 팀장님.
태희 오늘 백여진 대리 일찍 조퇴하게 나머지 일은 유경씨가 해줄 수 있지?
여진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까진...
태희 (친절,따뜻) 아냐. 가 봐. 엠비씨에서 신인탤런트 모집하는데, 오늘까지래. 빨리 뛰어가서 접수해.
여진 네?
태희 멀쩡한 어머니 뼈도 부러뜨릴만큼 연기가 똑부러지는데.. 그 달란트 썩히는 거 아깝잖아? 못하는 일 굳이 할라 그러지 말구, 잘하는 연기를 해.
여진 (억울) 제가 무슨...
태희 7793. 파란색 외제차. 파노라마 선루프 있는 거 그거...
어제 회사 앞에서 자기 기다리던 차 맞지?
여진 (헉!!!)
태희 차도 좋고. 남자가 막 뛰어나와서 문도 열어주는 게 매너도 좋은데. 남자 키가 크다 말았드라.
여진 (떨며)
태희 자기가 사뿐사뿐 그 차에 탈라 그러길래 내가 얼른 전화를 했거든. 그랬더니 전원을 띡 끄대? 그러면서 뭐랬드라... 아..황미실 짜.증.나?
동료들 (동정 어린 시선으로 유경을 본다)
태희 요샌 내 별명이 미실인가봐? 내가 무슨.. 고현정이니?
여진 그건... 팀장님 피부가 고현정 못지 않게 고와서..
태희 (OL) 예전엔 도끼녀였잖아. 찍히면 죽는다고.
그전엔 작살녀였지? 걸리면 작살난다구.
여진 잘못했어요 팀장님.
태희 (미소 싹 걷히며 싸늘) 미실이 그랬다며?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나도 그 여자 말에 절대동감이야!
여진 (표정)
사무실 복사기 앞 (D)
여진 분해서 손부채질해가며 복사하려고 하는데, 복사기 잘 안되고.
이거저거 만져보다가 신경질나는지 하이힐로 걷어찬다.
오대리 뭐가 잘 안되세요?
여진, 사악.. 돌아보는데. 벌써 눈빛이 촉촉하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청순가련의 분위기.
여진 아깐.. 언짢으셨죠. 본의 아니게 거짓말 한 게 됐네요.
오대리 (좀 삐진) 아닙니다. 뭐 사정이 있으셨겠죠.
여진 (촉촉) 맞아요. 저 어제 남자 만나러 가느라 일찍 간 거에요.
오대리 ...(상처)
여진 그 남자,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만나주면 그만 괴롭히겠다고 해서. (자조적인 한숨) 이런 변명.. 구차스럽네요. (눈물 반짝)
오대리 (눈물 보고 울컥해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더니 복사기 앞으로) 비키세요. 손에 잉크 묻습니다. 복사 몇장 하면 돼요?
여진 됐어요. 이백 오십장을.. 언제 다하신다구...
오대리 (쎈척) 아후 그까이꺼.. 금방합니다. (안쓰런) 아침부터 황팀장한테 까이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가서 좀 쉬세요.
여진 (금방 눈물 똑 떨어뜨릴 듯) 그래도.. 될까요?
여자 화장실 (D)
여진 아무렇지 않게 화장 고치고 있고, 기쁨 현주 옆에 서 있다.
현주 대리님은 하필 들켜도 그런 장면을 들키구.. 황태희가 벌레보다 싫어하는 게 뭔데요. 연애하는 것들이잖아요.
여진 (표정 있다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 뭐했지?
기쁨 (분한 듯) 야근이요.
여진 발렌타인데이엔?
기쁨 당근.. 야근했죠! 내가 그 생각하면 아직도 분해.
현주 전 솔직히 대리님이 존경스러워요.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양다리 세다리 유지하신다는 게...
여진 지가 남자 없다구, 팀원들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거.. 너무 웃기지 않아?
단체로 일만 하다가 노처녀로 늙어죽자는 거야 뭐야?
현주 그거 뿐이에요? 하이힐도 지보다 높은 거 신으면 눈치 주지..
빽두 지꺼보다 비싼 거 매면 은근 싫어하지..
기쁨 (휴~) 그래두 어쩌겠어요. 황팀장이 한상무 직속인데. 까라면 까야죠.
여진 (흥!) 한상무가 실세지.. 황태희 그게 실센 아니지!
기쁨 (조심스레) 대리님. 저 이런 정보가 도움이 될 지 모르겠는데요.
여진 ?
기쁨 황팀장이 예뻐하는 애들한텐 공통점이 있어요. (사이) 오빠가 있다는 거..
여진 (표정)
기쁨 저도 그 얘기 듣고 유학갔다 곧 돌아오는 오빠 있다 그랬거든요. 이병헌
닮은... 그랬더니 갑자기 확 잘해주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여진 (혹하는 표정위로)
태희OFF 오빠?
팀장실 (D)
태희 앉아 있고. 여진은 서 있는.
여진 네 팀장님. 외교통상부 사무관이구요. 해외파견 나가 있는데 곧 돌아오거든요. (좀 부족하다 싶은지) 조인성 닮았어요.
태희 (피식 웃고) 자기 깜찍하다.
여진 (미소) 네?
태희 나 구워삶고 싶은 마음에, 없는 오빠까지 만들었어?
여진 ....
태희 백여진씨 무남독녀 외동딸이잖아.
여진 (헉!!!)
태희 어장관리만 수준급인 게 아니라... 뻥도 전문가 수준이네?
여진 (표정) 팀장님..
태희 암튼 다행이다. 자기한테 진짜 그런 오빠 있었으면 고민될 뻔 했잖아.
조인성 닮은 남편감 좋긴한데, 시누이감이 자기처럼 뻥 잘치고 표리부동한 스타일인건... 딱 싫거든?
여진 (모욕감)
태희 (일어나며) 더 솔직히 말해? 난 백여진씨 시누이 말고 부하직원으로도 별루다? 자긴.. 일은 하기 싫은데 인정은 받고 싶지?
여진 (표정)
태희 (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래서 눈웃음치고 입에 발린 소리 해가면서, 여기저기 민폐 끼치잖아. 남자들 머슴 부리듯 부려가면서. 아까 보니까, 오대리 복사하고 있더라?
여진 (표정)
태희 (문 확 열어젖히며) 자기 일은 자기 손으로! 안 배웠어? (나가며) 난 그거.. 유치원 때 배웠는데.
태희가 갑자기 문 여는 바람에, 밖에 있던 직원들 그 모습 보게 되고.
태희는 아무렇지 않게 또각또각 가 버리는.
여진, 모욕감에.. 증오심에 태희 뒷모습 죽어라 노려본다.
한상무 집 (N)
격조 넘치는 음악 흐르고-
포스 넘치는 한상무, 와인 가지고 와서 앉는다.
태희 서 있다가 한상무 앉으면 따라 앉는다.
테이블엔 치즈 등 간단한 안주 거리 정도.
한상무 그런 걸 왜 냅둬? 안 보이는 데로 치워버리지? 내가 해 줘?
태희 (와인 뚜껑 따며) 상무님. 저 안 그래도 왕따상사에요.
얼마 전엔 같이 밥 먹으면 체할 것 같은 상사 1위로 뽑혔다더라구요.
한상무 그거 작년까진 나였는데. (훗!) 역시.. 자긴 리틀 한송이야.
태희 리틀..한송이요. 저야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영광이에요 상무님.
한상무 (태희에게 와인 따라준다) 샤토라투르 82년산 빈티지야. 회장님이 직접 선물해 주신 거지.
태희 (놀란다) 몇백만원은 할텐데... 이 귀한 걸 왜...
한상무 자긴 나한테 더 귀한 사람이니까. (미소) 나처럼 될 사람이구.
태희 (감동) 감사합니다 상무님.
한상무 (와인잔 들어 가볍게 돌리며) 여자 몸으로 이 자리까지 오르느라 나 고생 많이 했어. 그치만 나.. 내가 걸어온 길.. 후회하지 않아.
태희 사실.. 저두 상무님이 롤모델이라 이 회사 들어온걸요.
한상무 그래? (흐뭇하게 잔 들고)
태희 (잔 부딪치고)
한상무 (한 모금 음미한 후) 내 친구들.. 나이 오십 다 돼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팍삭 늙었드라. 애들 공부 잘하고.. 반듯하게 잘 컸으면 뭘해? 그게 지들 인생이야? 애들 인생이지? (목소리 미세하게 떨리는) 난 그런 거.. 전혀안 부러워.
태희 (표정) 네에..
한상무 남편하고 오붓하게 온천여행? (훗!) 나 작년에 혼자서 유럽 10개국 돌고 온 거 알지? 얼마나 좋았는데. 자유롭구.. 외롭지도 않구.. (많이 외로웠는지 설핏 눈물도 비치고)
태희 .... (점점 씁쓸)
한상무 자긴 아무 걱정마. (강조) 꼭.. 지금의 나처럼 만들어 줄게.
이때 고급스럽게 생긴 고양이 걸어 나오면.
한상무 (아기 부르듯) 그뤠이스~ 마미 보고 싶어서 나왔구나? 이리 와 우리 애기! (품에 폭 안고 쓰다듬는)
태희 (표정) 그레이스 많이 컸네요?
한상무 난 얘가 딱 두마디만 했으면 좋겠어. 좋다... 싫다...
말 안통하는 것만 빼면 나한테 얘만한 친구 없거든.
태희 (그 사무치는 외로움 알 것 같다) 네에..
한상무 자기두 건강한 독신 생활 오래오래 유지하려면, 강아지든 고양이든 뭐 하나 키워야 된다?
태희 ... (와인 마시며 씁쓸한 표정)
태희 아파트 (D)
태희 번호키 누르고 들어오면.
태희모와 연희가 와 있다. 태희모, 냉장고에 반찬 채워넣고 있고.
연희는 오렌지 쥬스 같은 거 쪽쪽 빨아먹고 있다.
태희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뭘 자꾸 가져와!
태희모 연희 둘째 임신했단다.
태희 (질투심 끓어오르지만) 또? 민결이 난 지 얼마나 됐다구. 작작 해라.
태희모 니 동생 능력있는 남자 만나.. 애를 둘씩이나 가질 동안 넌 왜 그러고 사는거야?
태희 (OL) 능력있는 남자 만나 애를 셋씩이나 낳았던 엄만, 왜 지금 이러고
사는데?
태희모 (아픈 데 찔렸고) 싸가지 없는 년. 나중에 꼭 너같은 딸 낳으라고 내가 백일기도를 할거야.
태희 나도 그런 딸 낳고 싶은데 남자가 있어야 낳지!
태희모 그러지 말고.. (손 잡으며) 엄마랑 새벽기도 한번 나가볼래?
태희 아우 좀..
연희 소개팅을 해주면 좀 잘해보든가..
태희 야! 넌 내가 인물 본다고 몇 번을 말해! 어따 그런 남자를..
연희 그쪽도 언니 너 싫대. 자긴 태어나서 여자가 무서운 거 처음이라더라.
언제까지 엄마랑 커플요금제 하면서 그러구 살래?
태희 (표정)
태희모 (끌끌..)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해놓고.. 왜 남자 하날 못 데려와.
태희 그래. 나도 결혼이 시험이었으면 좋겠네. 어디 학원이라도 끊게. 문제집이라도 풀어보게!! (확 일어나 방에 들어가려는데)
태희모 참. 내 친구 아들이 니네 회사 신입으로 들어간 모양이더라.
태희 그래서.. 잘 봐주라구?
태희모 잘 봐주기는 무슨! 니 승질대루 막 밟아줘라.
태희 뭐야.. 친구래매..
태희모 친구는 친군데... 친구도 아니야 그건.
태희 왜?
태희모 나 니 아버지랑 사단 난 거 빤히 알면서도 지 남편 자랑 실컷 하더니. (흉내) 넌 좋겠다. 말년엔 무서방이 상팔자래 얘.. 호호호. (톤 꺾어) 이러는 년이야 그게!
태희 없는 말 한 것도 아니네. 괜히 엄만.. 부러우니까. (하다가 등짝 한 대 얻어맞고 아씨.. 표정 있다가) 이름이 뭐래는데?
준수off 봉준수입니다!
사무실 (D)
훤칠하게 생긴 준수. 죽이는 수트발. 단정하면서도 젠틀한 분위기.
그 옆에 있는 강동원. 키로 보나 얼굴로 보나 준수에게 확 떨어지는.
두 사람, 군기 빡 들어 서 있다.
여직원들 준수에게만 관심 쏠려 있다.
기쁨 이름이 준수라 그런가.. 진짜 준수하시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준수 서른... 둘입니다.
기쁨 어머~ 나보다 한참 오빠시네.
현주 (OL) 오기쁨씨. OEM 업체랑 통화했어?
기쁨 (뾰루퉁해서 가며) 지금 할라구요. (하고 가면)
현주 (바로 다가서며) 입사가 늦으셨다. 그동안 뭐하셨어요?
준수 고시 준비... 했습니다.
유경 (슬쩍 끼어들며) 무슨 고시?
준수 그냥.. 사법고시..
현주 유경 어머나.. 사법고시?
준수 (아직 안끝났다)... 행정고시.. 외무고시..공무원 시험..
유경 그걸 다 쳤다가.. 다 떨어진 거에요?
준수 예..
이때, 여진 들어오다가 멈칫.. !!!! 표정. 준수도 여진 보는데.
당황하는 여진과 시니컬한 미소 짓는 준수. 찰나의 긴장감 흐르고.
태희 비켜줄래?
여진, 뒤 보면 얼음장같은 태희가 서 있다.
여진, 흠칫 놀라 고개 숙여 인사하고 얼른 비킨다.
태희, 여진 인사는 무시하고 준수를 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깔끔하고 멋진 준수. 상쾌한 미소로 태희 보고.
태희, 그런 준수가 한눈에 마음에 들지만 애써 도도하게 티는 안낸다.
태희 (무심하게 말하지만, 그래서 더 관심이 느껴지는) 누구?
유경 봉준수씨라구요. 오늘 새로 발령받은 신입요.
준수 안녕하십니까. 봉준수입니다.
동원 (큼.. 저도 있다는 듯 어필)
유경 이쪽은... (까먹었다) 성함이?
동원 강동원입니다.
태희 (관심 없고) 인사부장님께 신입 배정 얘긴 들었어요. (서류 들춰보며) 그런데 봉준수씨는 채용신체검사확인서가 빠졌더라구요?
준수 아. 발급이 늦어져서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꺼내려는데)
태희, 보면. 호감의 눈빛으로 준수에게 레이저 쏘고 있는 여직원들.
태희 (그 시선들 잘라내듯) 준수씬 내 방에서 얘기하죠.
태희 들어가면. 준수도 따라 들어가고.
여직원들, ‘뭐야.. 왜 방으로 따로 불러..’ 웅성웅성 툴툴댄다.
팀장실 (D)
준수와 마주앉은 태희. 이성적이고 세련되고 사무적인 태도 유지.
태희 (준수 서류 챙겨 넣으며) 우리 퀸즈생활건강의 핵이 뷰티사업본부라는 건 알고 있죠?
준수 네. 누나가 셋인데 예전부터 퀸즈 제품만 써서 저에게도 친숙한 느낌입니다.
태희 (끄떡하고) 봉준수씨 어머니가 우리 엄마랑 친구라고 하시던데...
준수 어머니가 괜한 말씀을... 부담 갖지 마십시오.
태희 (너무 들이대는 건 아니고 담백한 말투) 너무 어려워 말구.. 모르는 거 있으면 누구 거치지 말고 다이렉트루 나한테 직접 물어봐요.
준수 감사합니다.
태희 그럼.. 나가 보구. (도도한 미소)
준수, 인사하고 나가면. 태희, 사무적인 태도 유지하고 있다가 슬쩍 꺾이며 거울 끌어당겨 본다. 얼굴이 영 맘에 안드는.
태희 오늘 왜 이렇게 화장이 떡졌냐. (티슈 빼서 눈밑 닦아보고)
로비 (D)
태희, 여왕처럼 열댓명이 넘는 직원들을 쫙 이끌고 걸어 나온다.
태희 오늘 신입사원도 오고 했으니까 팀회식 할까?
일동 (좋다며 호응)
태희 뭐 먹으러 가지?
유경 팀장님. 간만에 회에 소주 어때요?
현주 파스타에 와인요!
기쁨 콜!
오대리 중국요린 어때요? 저 앞에 새로 하나 생겼던데.
태희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준수 보며) 준수씬?
준수 전... 그냥... 고기...?
태희 (바로) 다들 의견이 그러니까... 고기 먹으러 갈까?
일동 (뭐냐...)
고깃집 (D)
준수 양옆으로 유경과 현주가 앉아 있고. 맞은편으로 태희가 앉았다.
기쁨도 어떻게든 준수와 가까이 앉아 보려고 하지만 서열상 밀린다.
여진 준수 의식하지만 전혀 티 안내고 오대리 등이 따라주는 술 마신다.
현주 (호들갑) 흑석동 사는구나~ 나두 초등학교 3학년때까진 거기 살았는데.
유경 나는 바로 그 옆에 사당동 사는데. 아침에 뭐 타고 와요?
준수 지하철요.
유경 그래요? 그럼 우리 카풀할까?
기쁨 (멀리서도 얼른 껴들며) 안되죠. 그쪽 얼마나 밀리는데. 지하철이 낫지.
유경 별로 안 밀려요. 괜찮죠 준수씨. (하는데)
태희 (가만 있다가) 이모! 여기 가위 좀 주세요! 고기 자르게!
유경 (그제야 눈치 채고) 어머 팀장님 제가 자를께요.
태희 (가위 받아 자르며, 어느 때보다 다정한) 괜찮아. 언젠 내가 안했어?
일동 (왜 저래?)
태희 (고기 뒤집으며 여기저기 접시에 살뜰히 놔준다) 고기 탄다. 얼른들 먹어.
일동 (기막힌)
여자 화장실 (D)
여진, 기쁨,현주 있는데.
현주 (흥분) 난 진짜 그 순간 팀장이 미친 줄 알았다니까? 너 황태희가 고기 먹을 때 집게 든 모습 본 적 있니?
기쁨 입사 이래 처음이죠.
현주 이거 봐. 분명히 우리 준수씨한테 딴 맘 먹었다니까?
기쁨 완전 속보여.
여진 (콤팩트 따닥.. 덮는다)
현주기쁨 (? 해서 보면)
여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스커트 살짝 추켜올려 짧게 만들고,
질끈 묶었던 머리끈까지 확 풀어 찰랑이는 생머리 만들고...
뭔가 믿는 구석 있는 듯 자신감 넘치는 회심의 미소로 또각또각 나간다.
가라오케 (N)
화려한 안무와 프로급의 노래실력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있는 여진.
남자직원들은 물론 여자들까지도 모두 얼빠져서
여진을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준수는 태희를 보고 있다.
태희가 뭔가 다이어리 같은 걸 쫙 펼쳐놓고 준수에게 설명하고 있는 중인데. 보면.. 촘촘히 그려진 회사 조직도다.
태희 (짚어주며) 이 분이 목영철 부장님. 오늘 회식도 참석 안하셨는데... 굉장한 짠돌이라서 돈 쓸 자리엔 아예 안 나타나는 캐릭터셔. 반대로 작은 거라도 뭐 얻어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 같이 점심 먹을 때 오천원짜리 이상 시키면 더치 하자고 하시는 분이니까.. 참고하고!
준수 (진지하게 고개 끄덕이다가 무대 쪽 잠깐 눈 돌릴라 치면)
태희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한데... 우리 회사에서 인사권을 갖고 있는 최고의 실세는... 한상무님이셔. (은근 강조) 내가 그 라인이긴 한데...
준수 (눈 반짝이며 다시 보고)
여진, 두 사람 모습에 신경질나서 고음 부분 최선을 다해 크게 부르면. 준수, 태희 옆에 더 바짝 붙어 앉기도 하고.
태희가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해 주기도 하고.
그 바람에 오히려 두 사람 분위기만 더 좋아진다.
거리 (N)
택시 잡고 있는 일동.
여진은 좀 취한 듯 비틀대고. 현주가 부축하고 있다.
현주 괜찮아요?
여진 (그 말 기다렸다는 듯이 풀썩 주저앉는다)
현주 누가 데려다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러자 앞으로 나서더니 택시 잡는 준수. 뒷문 연다.
여진, 그럼 그렇지... 해서 슬쩍 고개 드는데.
준수 팀장님. 타세요.
태희 (나? 해서 손가락으로 자기 가리키고)
준수 밤길 위험해요. 모셔다 드릴께요.
여진 (표정)
일동 (뭐냐...)
태희 (쏟아지는 시선 좀 부담스럽지만) 괜찮은데.. 그럼 그럴까? (탄다)
준수도 함께 타고. 택시 출발하고.
현주 뭐야.. 벌써부터 라인 타는거야?
기쁨 나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신입들은 순수한 맛이 없어.
오대리 (그 사이 택시 잡고) 백여진씨. 타세요. 내가 모셔다.. (하고 보면)
여진 없다. 일동, ???
택시 안 (N)
심야택시 안. 태희와 준수가 함께 앉아 있다.
태희 (좋지만 티 안내고) 백여진씨 많이 취한 것 같던데 그쪽이나 데려다 주라니까.
준수 아닙니다 팀장님. 아까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는데..
태희 내가 목사님이야? 좋은 말씀은 무슨. (하다가) 아저씨 우회전해서 단지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기사 네에. (하더니) 이 동네 집값 많이 올랐죠?
태희 네 뭐... 곧 재건축 승인 난다고 해서. (준수 은근 의식하지만 티 안내며)
몇 억.. 올랐나봐요.
준수 (표정)
기사 아이구 좋으시겠네.
태희 몇 년전에 별생각 없이 사뒀던 게 많이 올라 좋긴 한데요. 어차피 부동산이야 묶여있는 재산인데다가, (강조) 종부세가 어디 한두푼이어야죠.
기사 난 종부세 내봤으면 좋겠네. 아 그거 낼 정도면 부자 아닙니까?
준수 (신경 안쓰는 척 하면서도 표정)
태희 아파트 단지 안 (N)
5층짜리 정도로 이뤄진 옛날 아파트 단지.
태희, 택시에서 내린다. 따라 내리는 준수.
태희 (앞자리로 가서 기사에게 돈 주며) 아저씨 이 친구 집까지 부탁합니다.
준수 (가로 막으며) 안 그러셔도 됩니다.
태희 아냐. 나 원래 후배들한텐 이렇게 하는 스타일이야.
준수 (좀 단호) 그래두 전.. 여자한텐 신세 안집니다.
태희 이게 무슨 신세라구.. (그래도 준수가 단호하자 미소) 알았어.
준수 (태희 본다)
태희 (두근..) 왜?
준수 여기..뭐가.. (볼에 뭔가 떼주며) 됐어요 이제.
태희 (좀 수줍고) 얼른... 가.
준수 먼저 들어가세요. 밤길인데.. 가시는 건 보구 갈께요.
태희 (표정 있다가) 그럴래? 그래..그럼.
태희 아무렇지 않게 가면,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태희 가는 길
비추고 있고. 택시 안 타고 계속 그 뒷모습 봐주고 있는 준수.
걸어가는 태희의 표정에 처음으로 웃음이 배시시 번진다.
좋아죽겠지만 표정 관리를 해야 해서 참아온 모양이다.
남자가 날 보호해준다는 이 느낌..
참으로 오랜만이고. 따뜻하다.
준수 집 앞 (N)
준수 택시에서 내려 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여진. 또각.. 다가온다.
여진 (달콤) 오빠!
준수 (표정 있다가) 누구세요? (가면)
여진 (따라붙으며) 황태희 데려다 주고 오는거야?
준수 무슨 상관이세요?
여진 진짜 이럴거야? 오늘 나한테 눈길 한번 안주더라?
준수 모르는 사람한테 무슨 눈길을 주나? (가려면)
여진 (가로 막고) 자기.. 나 때매 우리 회사 들어온거잖아!
준수 오해했나보네. 난 그 회사.. 너 때문이 아니라 연봉 때매 들어간거야.
복지도 잘돼 있고. 인센티브 빵빵하고. 여자도 많고. (다시 가면)
여진 (애교 안먹히자, 싸늘하게) 나한테 유감 많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황태희한테 그러는 건 아니라고 봐.
준수 (그제야 멈추고 빤히 본다)
여진 그 여자 성격 몰라? 내가 얘기 많이 했잖아!
준수 그러게~ 니가 나한테 황태희 흉볼 땐 천하에 다시없는 재수떼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오늘 보니까 아니던데? 꽤.. 괜찮던데?
여진 괜찮아? 그 여자가? (하!) 자기 눈 많이 낮아졌구나?
준수 (빙글 미소) 너 만나기 전에 내 이상형은.. 너였어.
여진 (그럼 그렇지..)
준수 그런데 너랑 헤어지고 나서, 바뀌었어. 말해 줘?
여진 (표정)
준수 서울 사대문 안에 스물 네평 이상 아파트 정도는 지 명의로 갖고 있는 여자. 거기에.. 종부세 정도는 납부할 능력이 돼서 지 빽은 지가 사서 매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자. 그런 여자야. 예를 들면 황태희 같은.
여진 자꾸 이럴래?
준수 나 만날 땐 돈까스만 질리게 먹던 니가, 딴남자 만나면서 스테이크에 랍스타에.. 와인도 년도 따져가며 먹어재끼는 거 보면서.. 아... 인생은 저렇게 사는 거구나! 저게 현명한 거구나! 확실히 배웠거든?
그게 고마워서, 니 가방 값 할부 남은 것도.. 쿨하게 내는 거야.
여진 (파르르) 지금... 청춘의 덫 찍니?
준수 (한발짝 다가서서) 응! 너 부셔버릴라구! (달콤하게 웃어주고 간다)
여진 (부글부글)
태희 아파트 방 (N)
태희, 쿠션 끌어안고 태희모와 통화중.
태희 엄마.. 엄마 친구 아들 말야. 미스터 봉.. 봉준수. (사이) 어떻대?
아니.. 아들 얘기 했을 거 아냐.. 어떤 사람인가 해서...
(표정 있다가) 모르면 모르는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사이)
그 친구가 왜 싫어? 자기 남편 자랑할 수도 있는 거지! 엄마 꼭 이혼한 친구들이나 남편이랑 사이 안좋은 친구들하고만 친할라 그러는데...
그거 자격지심처럼 보여. (사이) 아 왜 혈육한테 욕을 해. (사이) 여보세요? (끊겼다)
전화 끊으며 아까 준수 손길이 닿았던 입가를 만져보는데. 왠지 설렌다.
태희 (혼잣말) 얼마만의 스킨쉽이냐... (하는데)
다시 전화 온다. 태희, 전화 받고.
태희 엄마? (했다가 놀라는) 상무님!
한상무 거실 (N)
한상무, 거실 전화기 옆에 배를 부여잡고 거의 쓰러져 있고.
그 옆엔 고양이만 덩그러니.
비밀 번호 누르고 다급하게 들어오는 태희.
태희 (놀라서 들어오며) 상무님! 괜찮으세요?
한상무 어.. 나 병원에 좀...
응급실 (N)
한상무 창백한 얼굴로 링거 맞으며 누워 있고. 그 옆엔 태희.
태희 무슨 술을 쓰러질 때까지 마시세요.
한상무 그럼 어떡하니. 대상화학 김혁이사 알잖아. 일단 마시면 끝까지 가는 거. 그 인간한테 한번 지면, 두고두고 무시 당해.
태희 (그런 한상무가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끝까지 가셨어요?
한상무 (힘없이 피식 웃으며) 내가 이겼어. 김이사는 아까 술집에서 실려갔어.
태희 상무님두 참..
한상무 그래두.. 자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깐 좀 막막하드라. 내 손으로 구급차 보내달라고 전화하긴 그렇더라구?
태희 좀 주무세요.
한상무 응. (눈 감으면)
태희, 한상무 자는 모습 보는데. 그 위로 겹치는 한상무의 목소리.
한상무OFF 자긴 아무 걱정마. (강조) 꼭.. 지금의 나처럼 만들어 줄게. (에코 반복) 꼭 지금의 나처럼 만들어줄게.. 지금의 나처럼.. 지금의 나처럼..
태희, 헉..... 그건 싫다.
마트 (D)
태희, 태희모와 함께 장 보는 중.
태희모 그래. 결혼해라. 언제 누가 너 결혼 못하게 말린 사람 있었니?
태희 그렇지? 엄만 내가 누구랑 결혼한다 그래도 찬성이지?
태희모 얘! 아무리 딸래미가 똥차래두 어떻게 아무놈이나 찬성을 하냐? 누군데?
태희 (표정 있다가) 엄마 친구 아들. 봉준수.
태희모 (화들짝) 뭐? 너 그럼 그래서... 그 밤중에 전화해가지구 그놈이 어떤놈이냐는둥 그랬던거야?
태희 놈이라니. 왜 남의 집 귀한 아들한테 놈이래.
태희모 남이 아니라 미순이 아들이지! 미쳤니 너? 남자가 없어서 미순이 아들을 찍냐?
태희 남자 없어 엄마. 이 나이에 맘에드는 남자 만나는 거.. 로또 맞는 거 보다 더 어려워.
태희모 로또든 나발이든 안돼.
태희 왜애!
태희모 너 걔네 집이 어떤지나 알어? IMF때 미순이 남편 짤리구 그 뒤로 사업한다구 줄줄이 다 말아먹다가 귀농했는데. 소 키우면 구제역 와.. 돼지 키우면 콜레라 와.. 닭 키우면 조류독감 와.. 진짜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는 집은 없을 거라 그랬다니까?
태희 엄마. 지금 내 모성본능 자극해?
나 지금 그 남자 평생 거둬멕이고 싶어지거든?
태희모 미순이 아들.. 얘기 들어보니까 뭘 한번에 한적이 없더구만?
대학도 삼수.. 취업도 삼수..
태희 결국은 해냈잖아. 강단이 있단 얘기지.
태희모 가만 있어도 여자가 붙는 스타일이란다!
태희 붙은 건 떼주면 돼. 여자애들 정리가 또 내 전공이잖아.
태희모 얘가 혼자 늙더니.. 뵈는 게 없네. 안돼! 엄만 절대반대야!
태희 엄마. 나 아직 그 남자 꼬시지도 못했거든? 꼬시고 나면 반대해 줄래?
태희모 (자존심 상하고) 그럼, 미순이 아들을 너 혼자 좋아한단 말야?
태희 아직은.. 그런데 걱정 마 엄마. 나한테두 비장의 카드가 있어.
태희모 (대파다발로 후려치며) 비장의 카드 같은 소리 한다!
팀장실 (D) - 빠른 템포의 몽따쥬 느낌
태희, 준수 결재해 주다가 일부러 팔꿈치로 옆에 있는 핸드백 툭 건드려 떨어뜨리고. 핸드백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통장들.
태희 어머! 내 통장들! (하고 주우려면)
준수 (얼른 주워주고) 무슨 통장이 이렇게 많으세요?
태희 돈 벌어 뭐해. 별루 쓸 일두 없구. 차곡차곡 쌓아두는 거지. 집에 여나믄개 더 있어.
준수 (표정)
구내식당 (D) - 빠른 템포의 몽따쥬 느낌
태희, 여직원들과 한 테이블에서 먹고.
준수는 남직원 몇몇과 뒷 테이블에서 밥 먹는데.
태희 난 그렇게 생각해. 데이트비용.. 여자가 내면 안돼? 신혼집... 여자가 구하면 안되냐구! 모든 걸 다 남자한테 기대려는 의존적인 여자!! 같은 여자가 봐도 밥맛이야.
여직원들 (니가 더 밥맛이라는 듯 본다)
준수 (안 듣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고)
휴게실 (D) - 빠른 템포의 몽따쥬 느낌
남자직원들 커피 마시는데. 거기도 껴서 얘기하는 태희.
옆테이블엔 역시 준수가 있고.
태희 내 대학 남자동기 중에 열 살 어린 여자랑 결혼한다고 좋아했던 애 있거든. 지금 무지 후회하잖아. 어려서 좋은 거? 잠깐이래.
맨날 명품백 사달라구 징징대.. 시어머니랑 지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할 거냐구 볶아대.. 요리도 못해.. 재테크도 못해.. 아주 죽겠대. 차라리 (몹시 강조) 노련미와 원숙미를 갖춘 연상이랑 결혼할 걸 그랬다며.. 아주 땅을 치더라구.
남자직원들 (그래서 어쩌라구? 시큰둥한 반응들)
준수 (역시 안 듣는척 딴 짓하며 듣고 있고)
노래방 (N) - 빠른 템포의 몽따쥬 느낌
노래! 노래! 하면 안 부르겠다며 죽어라 빼다가 못이기는 척 나가는
태희. 막상 무대 나가면 ‘오빠 한번 믿어봐’를 ‘누나 한번 믿어봐’로
개사해서 열정적으로 부른다.
평생토록 안아줄게.. 언제나 기댈 넓은 가슴 줄게.. 어쩌고...
다들 왜 저래? 하며 보고 있고.
유경만 옆에 붙어 리드미컬하게 탬버린 쳐준다.
태희, 슬쩍슬쩍 준수에게 눈길 주고. 노래 듣는 준수 표정.
속 너무 보이는 태희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런 준수와 태희를 번갈아가며 보며 어이없고 기분 나쁜 여진.
회사 복도 (D)
태희, 유경과 함께 걸어온다.
유경 아.. 배터질 것 같아요. 팀장님 그집 순대국 대박이죠.
태희 나두 과식했다.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유경 팀장님 남자 생기셨어요? 갑자기 웬 다이어트?
회사 사무실 (D)
태희와 유경 수다 떨며 들어오는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준수가 혼자 일하고 있다.
유경 어? 준수씨. 밥 먹으러 안 갔어?
준수 일이 좀 남아서요.
태희 (표정 있다가) 유경씨? 우리 커피 마실래?
유경 네. 에스프레소 맞으시죠? (하고 나간다)
준수 (서류들 정리하며) 팀장님. 점심 뭐 드셨어요?
태희 (표정 있다가 천연덕스럽게) 점심? 아직.. 안 먹었는데?
식당 (D)
태희와 준수 순대국 먹는다. 태희, 언제 밥 먹었냐는 듯 맛있게 먹고.
준수 시장하셨나봐요.
태희 끼니 때가 지났잖아. 맛있네~
사무실 (D)
태희 널부러져 있고. 유경이 덜덜 떨면서 태희 손가락 잡고 바늘로 찌를까 말까 고민 중이다. 옆에서 현주,기쁨 등은 아슬아슬하게 보고 있고.
태희 아우 좀 빨리 해.
유경 네에.. (찌를까 말까 찌를까 말까 하다가) ... 못하겠어요.
태희 (가슴 치며) 빨리 해 봐. 소화제 먹어도 안 내려가구 미치겠단 말야.
유경 네. 알겠어요. (결심한 듯 바늘로 찌를까 말까 찌를까 말까)
저쪽에서 그런 태희 얄밉게 보고 있던 여진, 쓱 다가온다.
여진 줘봐. 내가 할게.
태희 (눈감고 고개 돌린 채 있다가, 응? 해서 돌아보는 찰나에)
여진 (바로 푹! 찌른다)
태희 (악! 소리 나고)
여진 어머. 피가 안나네? 잘못 찔렀나봐요. 다시 해드릴께요. (태희 뭐라고 하기도 전에, 또다시 사정없이 푹! 찌르고)
태희 (악!!!!)
이때 들어온 준수, 아파죽겠다며 난리 치는 태희 보고, 왜 저러지?
회사 일각 (N)
준수 가는데. 앞을 막아서는 여진.
여진 낮에 팀장이랑 밥 먹었다며?
준수 (표정)
여진 (입 비틀며 웃는) 황태희 그거 생각보다 여우더라?
준수 무슨 소리야.
여진 점심 먹어놓구.. 자기랑 먹으려고 밥 두 번 먹은거래.
준수 (표정)
여진 이제 그만 데리고 노는 거 어때? 노처녀 불쌍하지도 않아? 자긴 장난이겠지만, 그 여자는 장난 아니거든. 그러다가, 진짜 발목 잡힌다?
준수 (표정 있다가) 미안한데.. 나도 장난 아니야. (하고 가려면)
여진 (피식) 장난 아니면? 뭐.. 진심이야?
준수 (생각하는 표정 있다가) 거기까진 생각 못해봤는데.. 니가 물어보니까,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내 마음이, 진심인지. 뭔지.
여진 (표정 굳는다)
회사 앞 (N)
준수, 나오는데. 비가 오고 있다.
우산이 없는 준수. 잠깐 하늘 보며 서 있는데.
또각.. 다가오는 태희. 우산 펼친다. 손가락엔 밴드 감겼고.
준수 (보고) 팀장님.
태희 (도도) 오늘 나 차 안 가져와서.. 버스정거장까지 좀 걸을건데. 같이 쓸래?
준수 (빙긋) 아침에 출근하실 때... 차 운전하고 오시는 거 봤는데...
태희 (헉!!! 쪽팔린다. 딴 데 보는)
준수 웃으며 우산 속으로 들어간다. 태희, 쪽팔려서 얼굴 못 본 채
말없이 걷는다.
준수 좀.. 괜찮으세요? 속이 안좋아서 손가락 따셨다고 그러던데...
태희 응? (밴드 감긴 손가락 감추며) 아.. 괜찮아. 약 먹구 내려갔어.
준수 그럼... 뭐 따뜻한 거라도 드실래요?
태희 (좋은) ... 그럴까 그럼?
포장마차 (N)
태희와 준수 마주앉아서 뜨거운 어묵국물 등 안주에 소주 마시며 얘기중. 둘 다 많이 취한 건 아니지만 조금 풀어진 상태.
태희 내 첫사랑이 속초바닷가 가서 그랬었거든. 나랑 결혼 못하면 죽어버릴거라고.
준수 (피식) 그래서.. 죽었어요?
태희 너무 잘살지. 아들 낳고 딸 낳고.
준수 (웃는다)
태희 얼마전에 연락와서 만났더니... 나한테 딱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고 싶대. 변액보험인데 뭐.. 복리에 십년 지나면 비과세 된대나... 그래서 내가 그랬지. 비과세 되면 뭐하냐. 나눠먹을 남편도 없고 상속해줄 자식도 없는데...
준수 그랬더니 뭐래요?
태희 그래두... 늙어서 혼자 살려면 돈 나올 구멍은 있어야지.... 이러드라?
준수 (웃는다)
태희 (신세타령 조가 아닌 담백한 어투) 난 참 궁금해.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래서.. 열심히 했구.
취직 잘해야 된다 그래서 기쓰구 취직했구. 회사 들어와선 일 열심히 해야 한대서..독하다고 욕 얻어먹어가면서 일했거든? 그랬더니 난 우리 팀의 왕따구.. 친구들 보기에 인생 뒤쳐지는 애구.. 우리 엄마의 창피한 딸이구.. 왜 그런거지? (피식 웃고 술 마시고)
준수 (표정)
포장마차 앞 (N)
태희와 준수 나온다. 더 거세게 내리고 있는 빗줄기.
태희 우산 펴고. 함께 쓰고 다시 걷는데.
준수 여자랑 이렇게 한 우산 쓰고 걸어 보는 거, 오랜만이네요.
태희 (솔깃) 준수씬.. 여자친구 많을 줄 알았는데. 여자한테.. 워낙 잘하는 스타일이잖아.
준수 많았던 건 아니고 진짜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는 딱 하나 있었어요.
태희 (실망) 아..
준수 그런데 헤어졌어요.
태희 (저도 모르게 좋아서) 어머나! (했다가, 톤 조절해서 안됐다는 듯) 어머나.. 어쩌다가?
준수 그 여자도 그랬거든요. 저 아니면 결혼 안할거라구.
태희 (표정)
준수 그런데 백수로 한 3년 지내고 나니까, 딴 남자한테 가더라구요.
태희 (발끈) 세상에! 그래서?
준수 진짜 독한 맘 먹고 공부했어요. 그 여자한테 보여주려구요.
태희 (몰입) 그래서.. 취직했구나?! 그 여자도 그거 알아?
준수 알죠. 그런데.. 이제 상관 없어요.
태희 ...왜?
준수 (멈추고) 그 여자 보여주려고 회사 들어왔는데. 지금은 제가 다른 여자를 보고 있거든요.
태희 (두근..) 응?
준수 (빙긋) 어떤 다른 여자가.. 재건축 아파트로.. 통장 열세개로.. 그리고 본인이 자랑하는 노련미와 원숙미로... 자꾸만 낚시질을 하는데...
태희 (헉!!)
준수 .... 제대로 낚인 것 같아요.
태희 (!!!)
이때 세게 달리는 자동차. 길가에 고인 물 튀는데.
빠르게 태희를 안쪽으로 돌려세우는 준수.
두 사람 눈 마주치고.
태희, 올 게 왔구나!!! 섣불리 눈부터 감는다.
그런데 준수, 태희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태희, 김빠지고 민망한지 눈 뜨고. 어색한 미소.
다시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
태희가 든 우산, 준수 쪽으로 확 기울어져 있다.
한쪽 어깨 다 젖으면서도 마냥 행복한 태희.
그런 태희 보는 준수.
젖은 어깨를 다른 손으로 감싸주고.
우산 똑바로 들어서 태희 쪽 안 젖게 해준다.
두 사람이 쓴 우산, 점점 멀어지고.
여직원 휴게실 (D)
현주,기쁨,여진, 유경 있다.
현주 유경씨. 말 좀 해 봐. 팀장.. 연애하지?
유경 (좀 잘난척) 내가 팀장님 핫라인이긴 하지만... 뭐 사생활까진 모르지.
기쁨 에이~ 팀장이랑 준수씨 사귀잖아요!
유경 (놀라며) 다 알고 있었어?
여진 (표정)
유경 알고 있었다니까 하는 말인데.. 요새 둘이 장난 아니잖아. (속닥) 주말에 둘이 어디 놀러 가기로 한 것 같던데?
여진 (!!!)
현주 진짜? 1박 2일루?
유경 원래 계획은 그게 아닌데.. 팀장님은 어떻게든 1박 하고 오려고 애쓰는
것 같드라구. 마지막 배 시간 알아보구 하는 게 아무래두...
현주 (질투심) 뭐니? 여자가. 완전 숭하다 숭해.
기쁨 (분개) 이건 권력을 이용해서 힘없고 순진한 신입사원을 제압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어요!
유경 얼마나 급하면 그러겠어. 난 이해되는데.
여진 (시니컬)
술집 (N)
준수, 동원과 함께 술 마시는데.
동원, 두손으로 준수의 잔에 정성스럽게 술을 따라준다.
동원 사랑하는 동기야! 너 나 잊으면 안된다.
준수 왜 이래.
동원 너 팀장이랑 사귄다며.
준수 (표정 있다가) 어디서 들었어?
동원 (안주까지 집어서 놔주며) 하여튼.. 야망에 불타는 자식! 출세를 위해서 노처녀를 이용하다니..
준수 그런 거 아니야.
동원 아니긴! (볼 꼬집으며) 요번 토요일에.. 거사 치른다며?
준수 뭐?
동원 배 타고 어디 섬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1박 2일로~ 다 들었어 짜샤.
준수 (표정)
동원 짜식.. 부럽다! 천하의 황태희가 애인인데, 앞으로 회사에서 누가 널 건들겠냐. (머리 마구 헝클며) 이런.. 처세의 달인 같으니!
준수 (참다가 버럭)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동원 (헉 놀랐다가) 이 시끼! 목소리에 힘 들어간 거 봐라. 팀장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까 무서울 게 없다 이거냐?
준수 (또 버럭 하려다가 참는)
상무실 (D)
한상무와 마주앉은 태희. 서류에 사인해서 넘겨주는 한상무.
한상무 (태희에게) 토요일에 우리 그레이스 데리고 새로 생긴 애묘까페 가볼까 하는데. 자기두 같이 갈거지?
태희 (좀 곤란한, 표정 있다가 거짓말) 그날.. 엄마 생신이라... 어디 좀 갈 것 같아요.
한상무 아 그래?
태희 죄송해요 상무님.
한상무 죄송하긴. (하더니 서랍에서 상품권 봉투 정도 꺼내서 준다) 이거 받어.
태희 네?
한상무 백화점 상품권이야. 어머니 옷이라도 한 벌 사드려.
태희 아니에요 상무님. 이러시면... (완강히 거절하려는데)
한상무 안 받으면 나 화낸다. 얼른 받어.
태희 (찔리는 표정).... 감사합니다.
백화점 (D)
준수, 고급스런 캐쥬얼 입고 나온다.
태희, 앉아서 잡지 보고 있다가 표정.
준수 어때요?
태희 너무 잘 어울린다. 이거 사자.
준수 그런데 저 이 옷 받기가 좀 그래요.
태희 왜?
준수 말씀 드렸잖아요. 제 신조가.. 여자한텐 신세 지지 않는다..라고.
태희 이건 신세 아니야. (상품권 꺼내며) 나두 공짜로 생긴거라니까?
준수 (약하게) 그래두...
태희 언니! 이걸로 할께요! (해놓고 준수에게) 토요일에 놀러갈 때, 이거 입구 와~ (계산하러 가면)
준수 아.. 곤란한데... (하면서도 쓱 거울 보면 옷은 맘에 든다)
한상무 아파트 앞 공원 정도 (D)
고양이 안고 산책나온 한상무.
주위엔 연인, 부부, 가족 단위의 사람들 뿐.
한상무 의연하고 도도하게 걷다가.. 문득 전화기 꺼내 단축번호 1번 누른다. 황태희 이름 뜬다. 그런데 전화기 꺼져있다는 안내음.
한상무 전화기 집어넣는데.
저만치에서 보고 있다가, 얼른 다가오는 여진.
여진, 한상무 것과 같은 종류의 고양이를 안고 있다.
여진 (놀란 척) 어머..한상무님. 안녕하세요. 저.. 기획팀 백여진 대리라고 합니다.
한상무 (보고) 어.. (좀 냉랭) 알아.
여진 (영광이라는 듯) 정말요? 절.. 아세요 상무님?
한상무 오다가다 몇 번 봤지. 가끔 우리 황팀장한테 얘기도 들었고.
여진 아.. 그러셨구나. 황팀장님 요즘 바쁘시더라구요. 너무 부러운 거 있죠.
한상무 응?
여진 (표정) 상무님. 모르세요? 전 두분.. 너무 친하셔서 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
한상무 뭘?
여진 황팀장님.. 연애하잖아요. 오늘두 남자친구랑 어디 섬에 놀러갔다던데?
한상무 (표정)
어느 섬 선착장 (석양 무렵)
태희가 사준 옷 입고 있는 준수 뛰어오면. 배 떠나 버렸다.
그 뒤로 태희가 천천히 뛰는 흉내만 내며 오고.
태희 (안타까운 척) 어떡해~ 저거 마지막 밴데... 가 버렸네.
준수 (표정)
태희 (두리번) ...민박집이 있을래나?
준수 잠깐만요! (하더니 어디론가 뛰어간다)
태희, 표정 싹 바뀌며 회심의 미소로 기다리는.
핸드백에서 콤팩트 꺼내 화장도 다듬고. 괜히 구강청정제도 뿌리고.
만반의 준비하는데. 잠시 뒤 준수 다시 뛰어오면.
태희 (걱정스레) 좀 알아봤어?
준수 이거 마지막 배 아니래요. 9시 넘어서 하나 더 있대요.
태희 (이런 젠장..) 확실해?
준수 한 달 전부터 새로 생겼대요. 선착장 아저씨한테 물어봤어요.
태희 (목소리 떨리는) 그래? 너무 다행이다~
준수 어차피 시간 남았으니까 저녁이나 먹고 오죠 뭐. (하고 쿨하게 가면)
태희 아씨.. 분명히 마지막 배라고 그랬는데... 망할놈의 인터넷...
준수 (조금 가다가 돌아보며) 안 오세요?
태희 (미소로) 응. 갈께! (하고 혼잣말로) 아.. 나 잠옷 왜 가져온거니? (짜증내며 간다)
바닷가 (N)
준수와 태희 걷는다.
준수 여기.. 일출이 예술이래요.
태희 그래? 보고싶네...
준수 (사이 있다가) 자고 갈까요?
태희 (!)
준수 팀장님이 팀장님이라서 이런 말 하기가 어려웠어요.
태희 (표정)
준수 또 팀장님이 나를 먼저 좋아해서.. 더 조심스러웠구요.
태희 (표정 있다가) 나 오늘 클린징 크림도 가져왔고, 잠옷도 가져오긴 했는데. 그래두 마지막 배 타고 서울 가자.
준수 (표정)
태희 진짜 정신 못차리게 좋아하면 그런 거 아냐? 내가 누구든.. 누가 먼저 좋아했든.. 아무 상관 없어지는 거? 부담감이든 뒷일이든 생각 안하게 되는 거? 왜냐면, 좋아서 정신 못차리고 있으니까.
준수 제 말은 그런 게 아니구요.
태희 알아. 근데 노처녀한테두 마지막 자존심은 있거든? 이럴 때, 그냥 가자.. 이렇게 말하는 게 나한텐 자존심이야. 그러니까 그 정돈 지켜줘.
(쿨하게 미소)
준수 (미안하고, 따뜻하게 어깨 감싼다)
까페 (D)
태희모와 준수모 만났다. 서로 껄끄러운 분위기. 앞엔 커피잔.
준수모 딴애들 있는 데선 말 못할 이야기가 뭐니? 뜸들이지 말구.. 해.
태희모 (손수건으로 땀 찍고) 너 혹시 얘기 들었니? 니 아들이랑 내 딸?
준수모 무슨 얘기?
태희모 아직 얘기도 안하디?
준수모 아 글쎄.. 우리 준수가 니딸이랑 뭐.
태희모 둘이 사귄댄다.
준수모 (화들짝) 뭐어? 어머나 세상에 기막혀. 어머나 어머나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 얘!
태희모 (그 태도에 기분 나쁘고) 나두 기막혔어 얘.
준수모 니 딸 나이 엄청 많잖아!
태희모 뭘 엄청 많아. 니 아들보다 딱 한 살 많다 얘.
준수모 한 살이든 한달이든 여자가 더 많은 거잖아! 어머나 세상에.. 니 딸 혼자 우리 아들 따라댕기는 거 아니니?
태희모 얘! 우리딸이 미쳤니? 우리딸 연봉에.. 그 인물에.. 의사며 변호사며 결혼하자는 사람 줄 섰어!
준수모 그럼 줄 선 애들 중에 골라서 보내. 왜 하필 내 아들이야.
난 며느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사람이야!
태희모 (얄밉고) 난 없니 난? 난 사위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 이거 왜 이래!
준수모 아니.. 내가 니 딸한테 내 아들 잘 부탁한댔지. 낼름 사귀랬니?
태희모 우리딸이 니 아들 보쌈해다가 사귀니? 둘이 좋아 사귄다는데 누구한테 덤탱이를 씌우니?
준수모 니 딸 나이면 오늘 저녁에 임신해 내년에 애 낳아두 노산이잖아.
태희모 (파르르 참다가) 니 아들은 아직 수습이라며? 월급이 88만원이라더라? 니네 집 다 망해서 뒷바라지도 힘들텐데.. 언제 돈 모아 전세라도 만들어 장가간대니?
준수모 (파르르 참고, 물 마시고) 그나저나 넌..니 남편이랑 깔끔하게 수속 마쳤니?
태희모 (!!!)
준수모 우리랑은 그렇게 될 일 없겠지만, 너 나중에 사돈한테 그거 큰 흠이야. 엄마를 보면 딸을 안다구.. 여자가 오죽 이상했으면 남편이 말년에 바람이 나서 그러고 다닐까..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구.
태희모 야. 양미순! (뭐라 하려는데)
준수모 잠깐만? (여유롭게 백에서 전화기 꺼내 받는다) 네 여보. 아.. 다 끝났어요. 뭐 길게 할 말도 없는 자리에요. 네. 조심해서 내려갈께요. 아유.. 내가 애에요? 업어가긴 누가 업어가요? (까르르)
태희모 (폭발할 지경. 얼음물 벌컥벌컥)
상무실 (D)
한상무 앞에 비서 서 있고.
한상무, 태희의 직원 신상 카드 보고 있다.
가족관계에 태희 모친 생년월일 1952년 5월 28일로 돼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한상무 표정.
비서 그리고 말씀하신 상품권.. 역추적 해봤는데요.
한상무 음. 어디서 쓴 걸로 나왔어?
비서 L 백화점 남성용 캐쥬얼 매장입니다.
한상무 (분노에 가까운 배신감)
이때 똑똑.. 노크 소리 들리고. 태희 들어온다.
태희 (발랄) 상무님. 부르셨어요?
한상무, 고개 들어 태희 보고. 표정 있다가, 예의 다정한 미소 짓는다.
한상무 왔어? (비서에게) 나가 봐.
비서 (나가면)
한상무 (일어서서 소파 의자로 오며) 어머니 생신은 잘 지내드렸어?
태희 (찔리고) 네. 상무님 덕분에요.
한상무 (뚫어져라 보며) 선물은 사드렸구?
태희 (찔리지만) 네. 상무님께서 주신 상품권으로 엄마 옷 사드렸는데.. 정말 좋아하시더라구요. 감사합니다.
한상무 그래? 다행이네. (묘한 미소로 태희를 한참 보는)
태희 (왜 저러시지? 어색한데)
한상무 이거 좀 볼래? (하며 신문 특 내던진다)
태희 (? 해서 보면)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라영미 부장> 이라는 커다란 헤드라인 아래 <생활건강업계의 차세대 주역!> <워킹맘의 새 바람! 일하는 유부녀들의 희망 되고파!> 등의 서브라인들이 있다.
태희, 한상무를 본다.
한상무 (혼잣말처럼)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는단거야?
누군 지보다 못나서 한 마리씩만 잡고 사는거야 그럼? 건방져.
태희, 표정 있는데. 노크소리 들리고 라영미 부장이 들어온다.
라부장 상무님. 찾으셨습니까. (미소 띠고 다가와 막 앉으려는데)
한상무 우리 회사 차세대 주역이 오셨네?
라부장 (차마 앉지도 못하고) 차..세대주역은요. 기자가 좀 오바를 했더라구요.
한상무 (웃으며) 아무렴.. 안한 말을 썼겠어?
라부장 그게 아니라..
한상무 (OL) 워킹맘의 새 바람은 언제부터 일으킬거야? 어서 빨리.. 일하는 유부녀들의 희망이 되어줘야지.
라부장 (여전히 선 채 민망한)
태희 (불편하다)
한상무 뭐라고 지껄였어도 상관은 없는데.. (싹 굳으며) 인터뷰 건 보고는 누구한테 했어? 나한텐 안했잖아.
라부장 (!) 네? 그게... 아는 기자가 너무 급하다고 좀 해달라고 해서...
한상무 (싸늘) 그래서 설마... 안한거야?
회사 일각 (D)
인사 관련 공고 붙어 있다. 라영미 부장 인도네시아 지사로 전출.
공고 보고 수근대고 있는 직원들.
기쁨 라부장님 회사 관둔대요.
현주 하긴 애두 있는데 그 먼델 어떻게 가겠어. 관두란 소리지.
기쁨 한상무한테 뭐 밉보인거 있었나? 안 그럼 갑자기 저런 인사가 날 리 없잖아요.
현주 예전엔 안그랬는데.. 라부장 결혼한 다음부터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
조금 떨어진 곳에 태희, 좀 심란하게 보다가 간다.
팀장실 (D)
태희, 왜 그러셨지? 복잡하고 심란한 표정 있는데.
노크 소리 들리고 준수 들어온다. 준수 얼굴 보자, 싹 까먹는 태희.
태희 어. 들어와. (강조) 문 닫고.
준수 (들어와 서고 결재 서류 내민다)
태희 (열어보면, 장미꽃 한송이 들어있고, 감동!) 뭐야 이게?
준수 오늘이 저 회사 들어온 지 백일 째에요. 팀장님이랑 저 만난 지도 백일째구요.
태희 벌써... 그렇게 됐구나. 너무 예쁘다. (꽃 향기 맡으며 너무 행복한데)
준수 저녁.. 좋은 데 가서 먹어요.
태희 좋은 데.. 가 봐야 비싸기만 하지 뭐. 저기.. 그냥.. 우리집 가서 먹을래?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준수 집..에요?
태희 (괜히 찔려서) 대신, 절대.. 딴 맘 품으면 안돼?! 밥만 먹자는 거야. 순수하게.. 스킨쉽.. 절대 안된다?!!
태희 아파트 거실(N)
태희, 준수에게 꼭 붙어 어깨에 머리 기댄 채 다큐멘터리 보고 있다.
다큐는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내용. (또는 친정엄마류의 영화)
태희, 가슴 아픈 듯 눈물 흘리고.
준수, 그런 태희 보고 얼른 티슈 뽑아서 준다.
준수 안 그래 보이는데, 은근히 마음이 약해..
태희 내가.. 딴 건 몰라두 엄마 얘기만 나오면 이래.
준수 효년가봐요.
태희 뭘... 남들은 나보구 불광동 현숙이라는 둥.. 그러면서.. 세상에 나 같은 딸 없다고 칭찬들 하는데... 불효 많이 해. 솔직히... 지금까지 결혼도 안하고 이러구 있는 게... 가장 큰 불효 아닐까?
준수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태희 아냐아냐. 나 준수씨 부담가지라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엄마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다구. 엄마가 나만 보면 우리 태희 언제 시집가냐구 속상해하시니까... (다시 눈물 또르르)
준수 (눈물 닦아주고 애틋하게 본다)
이때 옆에서 부르르... 진동 울린다.
태희, 준수 모르게 슬쩍 보면 액정에 ‘엄마’다.
빠떼리 빼버리는 태희.
다시금 준수 바라 보며 슬프게 눈물 글썽인다.
그런 태희를 바라보던 준수, 표정 있다가.. 뭔가 결심한 듯 티비 끈다.
태희 왜..?
준수 우리.. 올해 가기 전에 큰 효도 할까요?
태희 ...응? (하다가 !!!!) 효..효도? (그 의미 깨달으며 감동스러운데서)
태희 아파트 거실(N)
준수가 태희모에게 절하고 있다. 새초롬한 표정의 태희모.
그 옆에는 연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태희모 아니.. 오지 말래니까 뭘 기어코 와?
태희 (이 악물고 웃으며) 엄마아.
태희모 자네 어머니한테 얘기 못 들었어? 자네 엄만.. 우리 태희 늙어서 싫대.
태희 (표정)
준수 어머니는 제가 설득할 수 있습니다.
태희모 아니야. 설득하지 마. 나두 자네 싫어.
태희 엄마~
태희모 자넨 뭐 그렇게 잘났냐구. 꼴랑 수습사원에.. 살 집이 있어.. 모아놓은 돈이 있어.. 뒷받침해줄 본가가 있어? 이건 덕을 보긴 커녕.. 오히려 갖다 퍼줘야 할 판이니!
태희 돈은 내가 있고. 집도 내가 있잖아! 양가 도움도 필요없구!
내가 좋다는데 엄마 왜 이래!
태희모 좋은 거? 그건 아무것도 아닌거야. 3년만 살아봐라. 내 말이 맞나 틀리나.
태희 (수긍) 알았어. 일단 3년 살아보고 나서, 얘기해줄게. 그럼 허락하는거다?
태희모 (철썩 때리며) 이 기지배가!
연희 (껴드는) 저기요, 알고 계시는 지 모르겠는데... 우리집.. 콩가루에요.
태희 야. 넌 빠져.
연희 (아랑곳 않고) 우리 아빠 지금 젊은 아줌마랑 바람 나셔가지구요. 가출하셨구요. 엄마는 곱게는 이혼 못해준다고 버티고 계시고..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태희모 (그건 쪽팔리고) 기지배야. 그 얘긴 뭐하러 해!
연희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야 빨리 떨어지지.
태희 (버럭) 떨어지긴 뭘 떨어져! 너 니네 집 가!
연희 언니 너나 정신차리고 선이나 봐. 시댁에 생활비 대다가 인생 쫑내구 싶어?
태희 니가 평생 나 데리고 살거야?
연희 (질색) 내가 왜 널 데리고 살아!
태희 그럴 거 아니면 신경 끄라고 글쎄! 내 인생이야!
태희모 니 인생? 널 낳은 게 누군데! 싸가지 없이 부모도 필요없고.. 니 인생이야?
태희 나중에 싸우자구. 준수씨가 우리집 진짜 콩가룬 줄 알겠어!
세 여자 자기들끼리 죽어라 싸우고. 진짜 콩가루가 따로 없다.
준수 표정.
준수네 시골집 (D)
해금,미금,순금, 그리고 준수모 회의 중이다.
해금 딴 작전 필요없어. 우리 셋이 단체로 진상 떨면 게임끝이야. 언니들 알았지?
미금 하긴... 요새 기쎈 시누이 셋 있는 집이라 그러면, 여자들 다 도망가지!
준수모 세상에... 우리 준수가 뭐가 모자라서 영자 딸이랑!
해금 아 암튼! 엄마두 최대한 막장 시어머니의 느낌을 팍팍 살리란 말야. 말 끝마다.. 우린 돈 없다.. 빚이 산더미다... 막 이러구. 그래도 안되겠으면, 우리 같이 살자! 이러구.
준수모 그거는 걱정 마. 내가 막장 드라마를 많이 봐서, 못된 시어머니 그런 거 잘해.
이때 들어오는 준수, 태희.
태희는 손에 바리바리 백화점 쇼핑백 잔뜩 들었다.
준수 저희 왔어요.
해금 ...왔니? (태희를 흘낏 본다)
준수모 (일부러 보지도 않는데)
태희 (들어오며) 준수씨. 누님 셋이라 그러지 않았어요? 네분이세요?
준수모 (! 표정)
준수 이쪽은 우리 엄마세요.
태희 어머..세상에... 몰라뵈서 죄송해요 어머니.
준수모 (싫지는 않지만.. 새초롬) 뭘 벌써 어머니에요. 언제 봤다구.
태희 저희 엄마랑 동갑이시라고 들었는데.. 열 살은 어려 보이셔서. 관리 너무 잘하셨나봐요.
준수모 (그말이 싫진 않지만 싸늘하게) 원래 영자랑 내가 친구로는 안 보이지. 영자가 나이보단 들어뵈는 스타일이니까. (힐끗) 엄마 닮았나봐? 얘기 들은 거 보다 더 들어뵈네?
태희 (표정)
준수네 시골집 방안 (D)
해금,순금,미금 입 떡 벌어져 있고.
그 앞엔 각종 명품백이며 지갑이며 화장품들.
그리고 준수모,준수부, 나란히 앉아 있다.
그 앞에 준수와 태희.
태희 약소해요. 처음 인사드리는 거라.. 그냥 정성만 표시했어요.
미금 순금 (바로 호감 어린 표정으로) 아유 뭘 이런 걸 다..
준수부 (넥타이 매보며 마음에 드는데)
준수모 (넥타이 확 뺏고. 다른 것들도 쇼핑백에 착착.. 다 집어넣고) 미안한데.. 도루 가져가.
해금 그래두 엄마.. 성의가 있는데.. (하고 도로 빼려고 하면)
준수모 (손 찰싹 때리고) 우리집 며느리 될 사람도 아닌데.. 우리가 이런 걸 왜 받니? (쇼핑백 도로 태희 앞으로 민다)
태희 (표정)
준수모 엄마가 아직 얘기 안하셨나본데.. 우리 이 결혼 무조건 반대야. 당신도 그렇죠?
준수부 글쎄... 나야 당신 의견에 따르기로 했으니까.
준수모 나이도 걸리고.. 솔직히 부부사이 좋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딸이 아니라는 것도 걸리고... 또 우리 준수는 결혼이 급한 것도 아니고.
순금 (얄밉게) 엄마. 말 살살해. 우리 준수네 팀장이라는데. 잘 못 보여 우리 준수만 콱 찍히면 어떡해?
태희 결혼을 하든..못하든.. 준수씨 제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저랑 잘 안된다고 찍히고 말고. 그런 거 없어요. 걱정 마세요. (하는데 눈물 뚝 떨어지고)
준수 (표정)
태희 반가워하지 않으시는데.. 정말 실례 많았습니다. (서둘러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데)
준수 (손목 잡고)
태희 (보면)
준수 어머니. 저 여자 만나봤다면 많이 만나봤는데요.
나 때매 밥 두 번 먹고 배탈 나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태희 (! 해서 본다)
준수가족 (표정들)
준수 다 책임진다구 큰소리 뻥뻥 치면서 노래 부르는 여자도 처음이구요.
뭐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데... 나 자체를 그냥 무조건 이렇게 좋아해주는 여자. 진짜 태어나서 처음 봐요.
태희 (!!)
준수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구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이 여자랑 결혼할래요. (단호) 어머니 반대하셔도 소용 없으니까 괜한 힘 빼지 마세요. (멋지다)
준수네 시골집 앞 (D)
쫓겨나듯 나오는 준수,태희.
준수모OFF 쟤 오면 문도 열어주지 마! 저런 미친 놈!
준수와 태희, 서로 얼굴 보는데. 웃음 나고.
태희 (눈물 달고) 뭐야.. 우리 로미오와 줄리엣이야?
준수 줄리엣 치곤 좀 늙은 거 아니에요?
태희 죽을래? (퍽 때리는데)
준수 (태희를 꼭 안아준다)
태희 (완전 행복)
사무실 (D)
화사해진 태희. 한껏 부드럽고 여성스럽게 꾸민 채
직원들 줄 세워놓고 청첩장 돌리고 있다.
태희 특별히 뷔페 맛있는 데로 골랐어. 와서 밥이나 먹구 가라구.
유경 (소중히 청첩장 받고) 정말 부러워요 팀장님. 전 언제 가요?
태희 뭘.. 자기두 곧 좋은 날 오겠지. (미소로 현주에게 청첩장 주고) 현주씨?
현주 (얄밉지만 티 안내고) 너무 축하드려요 팀장님.
태희 고마워. (속삭) 참.. 그리구 그냥 우연히 안 건데.. 어제 소개팅했대매?
나한텐 병원 간다고 뻥치구.
현주 (사색) 티..팀장님.
태희 괜찮어. 한참 좋을 나이에 연애해야지. 소개팅 남자 맘에 들었어?
현주 아뇨..
태희 (있는 자의 여유) 어뜩하니. 내가 나중에 가지 칠게.
현주 (적응 안되는) 감사합니다.
여진 (표정 있는데)
태희 (여진에게 다가와 청첩장 내미는) 자! 백여진씨.
여진 (받으며 표정)
태희 남자친구랑은 잘돼 가? 언제 결혼해?
여진 헤어졌어요.
태희 어머.. 그랬구나. 난 몰랐네?
여진 옛날 남자친구랑 다시 잘해보려고 그랬는데 그 남자가 결혼한다네요.
태희 (고소하다) 그래?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여진 (의미심장) 다시 확 뺏어올까요?
태희 (관심없다) 응? 뭐.. 그러든가. (딴 데 보며) 차대리. 다다음주 토요일에 뭐해? (하며 가고)
여진 (시니컬한 미소)
회사 옥상 (D)
여진과 준수 마주보고 서 있다.
여진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준수 뭘 이렇게까지 해?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는거야.
여진 그 여자가 왜 하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잔데? 나한테 복수하느라 오빠 인생이 망가지면 안되지.
준수 당연히 그러면 안되지.
여진 그런데?
준수 난 그냥 황태희가 편하고 좋아. 이 여자랑 결혼하면 몸 고생.. 마음 고생.. 안하겠다 싶어.
여진 그게 무슨 사랑이야!!
준수 니가 예전에 그랬잖아. 세상에 백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기분 좋을 때 드는 백.. 우울할 때 드는 백.. 청바지에 드는 백.. 정장에 드는 백.. 다 다르다고.
여진 뭔 소리야!
준수 세상엔 여러 종류의 백만 있는 게 아니야. 사랑도 그래.
뜨거운 사랑도 있고.. 편안한 사랑도 있어. 내가 너 좋아했던 거처럼
뜨거운 사랑만 하다간.... 나 애간장 타 죽을걸? 그렇게 죽긴 싫다.
여진 (가려는 준수 손 탁 잡으며) 내가 잘못했어!
준수 (표정)
여진 (예쁘게 눈물 그렁해서) 그 남자랑도 헤어졌구. 반성하고 있단 말이야. 앞으로 다신 안 그럴께! 내가 오빠 차버릴 땐 몰랐는데.. 오빠가 그 기지배 옆에 있는 꼴은 정말 못 보겠어!
준수 (건조하게 보고 있다가) 그 기지배가 뭐냐?
여진 !!
준수 감히.. 내 와이프 될 사람한테. (가볍게 쯧.. 하더니 가버린다)
여진 (하... 분하고)
상무실 (D)
태희의 청첩장 내밀어지는 손. 그거 받아서 보는 한상무. 표정.
줌아웃하면 청첩장 내민 사람은 태희가 아니고, 여진이다.
여진 아직 못 받으셨어요? 아까 박상무님한텐 드리는 것 같던데.
한상무 (표정)
여진 하긴.. 걱정하더라구요. 곧 인사철도 다가오는데 한상무님한테 뭐라고
얘기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괜히 찍히는 거 아니냐면서.
한상무 알았어. 일단.. 나가 봐.
여진 네 상무님. 참 그리구요. 고양이 미용 예술로 잘하는 곳 발견했는데,
상무님 괜찮으시면 제가 그레이스 데리고 한번 다녀올까 해요.
한상무 그래줄래? 고마워.
상무실 앞 (D)
태희 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겁게 걸어오는데.
상무실에서 나오는 여진.
태희, 여진을 보고 표정.
태희 (의아) 백여진씨가 거기서 왜 나와?
여진 (당당) 상무님이 부르셔서요.
태희 상무님이? 왜?
여진 (곤란한 표정으로) 그건... 상무님께서 다른 사람에겐 말씀하지 말라고 하 셔서...
태희 (불쾌하고)
여진 (약올리듯) 상무님께 여쭤볼까요? 팀장님에겐 얘기해도 되는지?
태희 (기막히지만) 됐어. 그럴 거 없어.
여진 (어딘지 도도한) 네 그럼... (또각또각 간다)
태희 왜 저래 저거.. (뭔가 찜찜)
상무실 앞에 선 태희. 후욱.. 심호흡하고 들어간다.
상무실 (D)
태희와 마주앉은 한상무.
한상무, 어딘지 무겁고 무섭다. 폭발직전의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중.
태희 (청첩장 꺼내며) 저.. 상무님. 제가..
한상무 (자르듯 차게) 결혼한다며?
태희 (헉!) ...네.
한상무 같은 팀 말단사원이랑?
태희 네.
한상무 (싸늘) 축하해.
태희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한상무 내가 자기랑 연애하던 남자도 아니고.. 나한테 죄송할 거 없어.
(미소)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과대평가한건데.. 자기가 왜 죄송해?
태희 (!!) 저.. 결혼은 하지만요. 상무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상무 (피식)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구?
태희 ....
한상무 (청첩장 슬쩍 보더니) 결혼식엔 못가겠다. 이 날 중요한 일이 있어서.
태희 상무님이 꼭.. 오셨으면 좋겠는데. 많이.. 중요한 일이세요?
한상무 우리 그레이스 주사 맞추는 날이야. 이게.. 날짜 놓치면 안되는 주사거든.
태희 ...네에..
한상무 결혼식 잘해. 토끼를 잡든 뭘 잡든.. 잘해보구. (싸늘한 미소)
신부대기실 (D)
태희, 메이크업 수정 받고 있다.
태희 언니. 뭣보다 어려보이는 피부 표현에 중점을 둬 주세요. 앞 타임에 스물 네 살짜리 신부였는데... 나 완전 비교될 것 같단 말이야.
메이크업 쉽진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께요.
이때 들어오는 유경,현주 등 여직원들.
유경 팀장님~ 축하드려요~ 완전 여왕 같으셔.
현주 정말 아름다우세요. 최근 본 신부 중 최고에요.
태희 뭘.. 근데 백여진이는 아직인가봐?
현주 글쎄요. 차가 밀리나?
태희 (못마땅하지만) 그래. 그럼 사진들 찍자..
여직원들 서로 태희 바로 옆에 서려고 신경전 벌인다.
결혼식장 로비 (D)
유경과 현주, 신부대기실에서 나오는데. 기쁨이 쪼르르 달려온다.
기쁨 빅뉴스 빅뉴스!
현주 왜~
기쁨 (뭐라고 속닥속닥)
현주 확실해?
유경 (옆에서 얻어듣고 충격!)
기쁨 네에! 방금 인사부 미스리 입에서 나온 최신 뉴스!
현주 (뭔가 머리 굴리는 표정)
유경 (패닉)
현주 (여유롭게 핸드백에서 축의금 봉투 꺼낸다. 그러더니 미련없이 오만원 정도 빼서 지갑에 넣더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가면)
기쁨 (약간 고민하더니 에라..! 돈 확 뺀다) 같이 가요. (현주 따라가면)
유경 아씨.. 어떻게 잡은 줄인데... 재수도 없지. 박복한 년. (미치겠고)
결혼식장 (D)
태희모, 태희부 옆에 앉아 있는데. 계속 전화하는 태희부.
태희부 (나름대로 소곤대는데 다 들리는) 응. 이제 시작해. 금방 끝나지 뭐. 밥만 먹구 금방 갈께요~ 갈 때 뭐 사갈까?
태희모 (표정 있다가 전화기 확 뺏어서 전원 꺼버리고) 결혼식장에서 신부 어머니 난동 피는 꼴 보기 싫으면 그만합시다.
태희부 (큼..)
준수모 (맞은편에서 못마땅한 듯 그꼴 보고 있다가, 태희모와 눈 마주치면 보란 듯이 다정하게 준수부 넥타이 고쳐 매주고 여기저기 털어준다)
태희모 (얄미워 죽겠고)
사회 신랑 신부 입장!
태희와 준수가 동시에 입장한다.
태희모와 준수모, 서로 자기 자식이 아까워죽겠다는 듯 경쟁적으로
눈물 찍어대기 시작하는.
하지만 태희와 준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랑 신부다.
로비 (D)
출근 시간.
새색시 분위기 나는 태희, 준수와 나란히 출근한다.
손엔 이런저런 선물 꾸러미도 들었고..
누가 봐도 행복한 표정.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눈 마주치면, 어색하게 고개만 까딱하고 자기들끼리 뭔가 수근대는 모습.
아예 시선을 피하기도 하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무시해서 같은 느낌.
경비도 누군가와 얘기하느라 태희에게 경례도 안 부친다.
태희, 기분 나쁘지만 준수 때문에 참는다. 준수와 눈 마주치면 웃는.
사원증 삑.. 대고 들어간다.
사무실 (D)
태희, 준수 들어오는데. 각자 자기 할 일 하고 있는 직원들.
메신저 하고 있고. 신발 벗은 채 양반다리 하고 있고. 커피 마시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수군.. 수다 떨고.
심지어 현주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 하고 있고.
뭔가 산만하고 정돈이 안된 분위기다.
태희, 휘 둘러보는데 참으려 해도 성질이 뻗친다.
태희 (날 선) 다들.. 뭐하는 거야?
일동 (뭐니? 하는 표정으로 힐끗 본다. 대충 인사하고. 다시 하던 거 하고)
태희 다들... (뭐라고 지르려는데)
유경 (OL) 팀장.. (말꼬리 흐리고)님... 신혼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태희 (기막히다) 잘 다녀왔으니까, 여기 있겠지? (하고 전화 통화중인 현주를 홱 째려본다)
현주 (시선 느끼고 여유있게) 어. 나중에 전화할게. (끊는)
태희 왜 벌써 끊어? 아주 내일까지 통화 하지?
현주 (태연) 황과장님 자리 안내해 드리려구요.
태희 뭐? 과장님?
현주 (일어나서 가는데, 부러질 듯한 킬힐을 신었다) 이쪽이 과장님 자린데.
태희 현주씨 어디 아프니?
기쁨 (슬쩍 껴드는) 연락 못 받으셨나부다. (유경 보며) 연락 안했어요?
유경 (쩔쩔) 난... 회사에서 할 줄 알았지. (준수 보며) 인사팀에서 연락 안 갔어요?
준수 (표정) 무슨... 연락...
태희 (버럭) 지금 뭔 소리들을 하고 있는거야! (하고 보면)
버려진 짐짝처럼 나와 있는 상자들 보이고
태희 (!!!) 뭐야 이게..? (보면 다 태희 물건이다) 이거 다 내꺼잖아.
내 짐이 왜 여기 나와 있어? (휘 보며 버럭) 왜 대답들이 없어?
그런데도 직원들 별로 겁먹는 기색 없이, 지 할 일들만 한다.
모욕감에 표정 싹 바뀐 태희, 파르르해서 거침없이 문 열고
팀장실로 들어가는.
팀장실 (D)
태희, 들어오는데. 누군가 태희 자리에 앉아 있고. 뒷모습만 보인다.
태희 (!! 기막힌다) 누구야? (표정) 누군데 남의 방에 떡하니 앉아서...
누구냐구 거기!!
그러자 빙글 돌려지는 의자.
의자 위에, 이날 따라 더 화려하고 예뻐보이는 여진이 앉아 있다.
그제야 보이는 명패. 팀장 백여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웃는 여진과 헉... 해서 여진을 바라보는 태희 표정에서.
.역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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