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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의 남자  2부


1. 산 길 / 노을녁

1부 엔딩 연결로.... 바쁘게 걸어가는 선우. 좀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는 장일.

장일;너 괜히 미안해서 그래?

선우;(멈춰서 돌아보는)진짜 약속 있다니까.

선우 뛰어가고.

장일;니 까짓게 무슨 약속.

선우;(뛰면서 장일 쪽으로 뒤돌아보는)거짓말 아니라니....(까).

선우, 앞에 있는 어떤 물체에 걸려 벌러덩 넘어진다.

선우;(아픈 듯)흐..... 뭐야 씨....

선우, 인상을 구긴 채 일어나 앉는데 앞에 허공에서 구둣발이 흔들리고 있다.

선우;!! (놀라 경직)


선우와 부딪힌 충격으로 계속 흔들거리고 있는 발. 시선을 따라 올라가면 목을 맨 남자의 시신 보인다. 선우, 놀라움과 두려움에 주춤하며 물러선다. 그러다 문득 얼굴을 보는

선우;........아버지?......(다가가 가까이 본다. 이내 충격으로)아버지!

뒤에선 장일, 뛰어오다 깜짝 놀라 멈춰 선다. 선우, 경필의 다리를 잡고 위로 올려든다.

선우;숨 쉬어. 아버지 숨 쉬어. 정신 차려, 아버지.

장일;너희 아버지 맞아?

선우;아버지! 정신 차려.

장일;벌써 돌아가신 것 같아.

선우;(장일에게 버럭)안 돌아가셨어. 살아있어 우리 아버지.

아버지 숨 쉬어 봐!

장일;신고부터 하자.

장일, 뛰어 내려간다. 선우, 계속 경필의 다리를 잡고 위로 올려들며

선우;아버지! 눈 떠봐. 김경필, 눈뜨라구 눈 떠!

선우,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요동치다 나뭇가지가 푹 꺾어진다. 툭 떨어져 내리는 경필. 선우, 경필을 안고 소리친다.

선우;아버지! 정신차려 봐. 아버지!

선우, 경필을 잡고 흔들다 업으려 한다.

선우;병원 가자 아버지. 나한테 업혀.

선우, 경필을 들춰 업으려 한다. 간신히 등에 끌어다 업고 일어서 몇 걸음 걷다가 뿌리 넝쿨에 걸려 엎어지며 경필과 함께 나뒹군다. 선우, 울음이 터지는데

선우;아버지..........아.... 아버지..........

선우의 통곡 위로....

2. 진승원 서재 / 낮 1부 엔딩 연결로...

경필;난 그 애가 문태주의 아이기를 바래요. 하지만 태주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죠. 형님 약혼녀도 그래서 문태주를 사랑했을 겁니다 당신하곤

다른 사람이라서.

노식;(순간적인 화, 경필의 뺨을 갈긴다)

3. 진승원 마당 / 낮

묘목 2~3개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오는 용배. 소매를 걷어 붙인 용배, 힘줄이 솟고 노동으로 굵어진 팔에 흉터가 도드라져 보인다.

용배;(건물을 향해 부르는)회장님, 나머지 묘목도 도착했습니다.

마저 심을까요?.....

답이 없자 용배, 묘목을 내려놓고 한 삽 뜬다.

4. 진승원 서재 / 낮

노식과 경필의 몸싸움. 경필에게 올라타 목을 조르는 노식. 경필, 핏발이 오른

얼굴로 노식을 밀치다 힘이 풀린다. 손이 스르륵 떨어진다.

노식;(땀이 가득.... 숨이 찬)헉. . .헉. . .흐. . . 흐.......

노식, 땀을 닦고 일어서는데 유리창으로 뭔가 비친다. 뒤 돌아보면 놀라 서있는

용배.

노식;.........

용배, 놀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다. 노식도 순간 굳어 거친 숨 몰아쉬며 가만히 서있다. 용배, 경필에게 후다닥 다가가 흔들어 깨우는

용배;이봐요! 이봐. (노식에게)이 사람 뭔데 회장님을 화나게 한 거예요.

이봐, 정신 좀 차리고 나한테 업혀요.

경필을 끌어당겨 등에 붙이려는데 힘없이 툭 떨어진다. 용배, 불길한 느낌. 조심스레 경필의 목에 맥을 잡아본다. 좀 더 걱정스런 표정으로 입가에 귀를 가져가 본다.

용배;!!

노식;..........

용배;맥이 안 잡혀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 전화를 드는)구급차를

불러야겠어요. (11... 버튼을 누르는데)

노식, 전화를 뺏어 팽개친다. 박살이 나는 전화기.

노식;지금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고 알리잔거요.

용배;......

노식;......지금 용배씨 말고 또 누가 있지.

용배;..... 저 말곤 없습니다.

노식;.......

노식과 용배, 불편한 침묵 속에 한참을 서 있다. 노식, 무서운 본능으로 맘을 진정시키고 여유를 찾았다.

노식;......아들 이름이 장일이라고 했었나요?

용배;예? 예.....

노식;요즘도 그렇게 공부를 잘해요?

용배;...... 예.....

노식;용배씨.

용배;예?

노식;우리 둘만 아는 일로 합시다......장일이 뒤는 내가 봐줄테니까.

용배;무슨 말씀이신지....

노식;(경필쪽으로 시선)묻읍시다.

용배;(놀라)예에? 안됩니다 회장님. 그건 안됩니다.

노식;.........(이때 담배를 피워 물고 여유있게 한 입 내뿜으면 정말 좋겠는 데! 용배를 지그시 쳐다본다. 니가 날 거부할 수 있을까 싶은 눈빛)

용배;(두려움에)그... 그건 안됩니다 회장님....

노식;우리 장일이가 고시를 하건 유학을 가건, 원하는 만큼 물심양면 지원 하리다. 남들이 모두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큰 인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내가.

용배;(울다 시피)회장님 제발.....

노식;장일이를 생각해요. 시골의 수재로 두긴 아깝잖소.

용배;(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며 우는)회장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 오 회장님.

노식;겁내지 마요 용배씨. 당신보다 내가 더 잃을 게 많은 사람이야.

용배;(운다)회장님......

창가로 봄날의 햇살이 비춰 들어오는 방. 용배는 계속 조아린 채 울고 노식은

가만히 서 있다. 경필, 미동 없이 누워있고.

5. 진승원 창고 / 밤

용배, 비닐장갑을 끼고 타자기 앞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익숙치 않은 듯 하나하나 천천히 꼭 꼭 누른다.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싶읍니다. 가엾고 병이 들고 돈도 잃고 살아갈 낛이 없어졌읍니다.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책상 옆에는 경필의 주머니에서 꺼낸 듯한 수첩이며 지갑, 각종 영수증, 지로용지, 은단, 타이프로 찍은 배달 및 주문 확인서 등이 놓여있다. (이 중 산 속 창고의 주소가 적힌 영수증이 있었다는 설정)

6. 숲 속 / 밤

으슥한 곳에 서 있는 승합차. 장갑 낀 용배, 자루를 등에 업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7. 숲속 일각 / 밤

누워있는 경필. 용배, 자루 안에서 빨랫줄을 꺼낸다. 줄을 잡는 용배, 빨래줄을

경필 목에 가져가다 다시 내려놓는다.

용배;...............

용배, 다시 줄을 잡는다. 결심한 듯 줄을 두 손으로 한번 감아쥐고 경필 목에 줄을 감고 한 번 더 돌리는데 경필 흐...’ 하고 약한 숨을 토해낸다.

용배; !!! (기절할 듯 깜짝 놀라 벌렁 뒤로 주저앉는)

경필;(약한 숨소리)....

용배;(긴장)

경필;...(희미하게)도...와...줘요..

용배;......

경필;(가물하니 눈 제대로 못뜨며)사...살려....(줘)....

경필, 손가락 덜덜 떨리며 힘없이 움직여 용배 쪽으로 뻗는다. 용배, 겁에 질려있다.

노식(E);고시를 하건 유학을 가건 원하는만큼 내가 물심양면 지원하리다. 남들이 다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큰 인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용배. 줄을 경필 목으로 가져간다. 우르릉 쾅! 하는 천둥소리.

8. 진승원 창고 밤 / 밤

비에 홀딱 젖은 용배. 급하게 뛰어오다 멈춘다. 우비를 입은 장일, 우산을 들고 와서 서 있다. 이리저리 부르는.

장일;아버지.... 안 계세요?

장일, 창고 안 책상 앞으로 간다. 의자에 걸려있는 용배의 점퍼를 본다. 용배는 숨어서 지켜보고.

장일;길이 엇갈렸나.... (하다가 의자 밑에 떨어진 봉투를

본다. 무심코 집어 들려는 순간)

용배;장일아!

장일, 홀딱 젖어 들어오는 용배 보고 놀라서

장일;비 맞으면서 지금까지 일한 거예요? 지금 새벽3시야.

용배;(역정내는)이 시간에 여기까지 왜 와. 어서 가.

장일;비는 쏟아지는 데 여태 안오시니....(까)....

용배;(버럭)내가 어련히 알아서 갈까!

장일;......

장일도 기분이 상해 우산을 두고 말없이 나간다. 용배, 마른 수건을 잡아 얼굴과 손을 닦는다. 서랍을 열어 비닐장갑을 끼고 의자 밑에 떨어진 유서를 집어 든다. 수퍼 비닐봉지에 유서를 싸 다시 뛰어나간다.

9. 숲 속 / 밤

비가 그친 숲 속. 용배, 그루터기에 올라서 유서를 바지 자켓 안주머니에 깊숙이

꽂는다. 용배, 주변을 살피고 얼른 뛰어간다. 숲 속에 매달린 경필의 시신. 시신이 걸린 나뭇가지에서 머금고 있던 빗물 몇 방울 툭툭 떨어진다. 고요한 숲 속.

선우(E);(통곡하는)아버지..... 아버지.... 눈 떠 봐. 아버지......

경찰, 앰블런스 사이렌 소리.

10. 산 입구 / 밤

앰블런스, 경찰차 서 있고 구경나온 동네주민들 몰려있다. 경찰들, 주민들을 막고 통제하며 서있다. 몸살중인 듯 안색이 창백하고 이마가 땀에 젖어있는 광춘도 사람들 틈에 끼어 구경하는 중. 광춘, 경찰과 모인 사람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살피고 있다. 숲 쪽에선 구급대원들 들 것에 시신 싣고 걸어온다. 광춘,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천이 덮인 들 것을 보고 있다. 구급대 차에 싣고 문 닫는다.

한 쪽에 서있는 선우와 장일에게 형사 다가간다.

형사1;니가 제일 처음 발견했다구?

선우;..........(멍한)....아버진 자살을 할 리가 없어요.

11. 경찰서 / 밤

형사 앞에 앉아있는 선우와 장일. 선우, 울컥울컥하는 마음을 눌렀다 힘들었다하며 이야기 중.

선우;오늘이 제 생일이라서 아버지랑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형사1;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선우;수요일이요. 서울로 배달일 가신다고... 그런데 그때 입고 가신 옷이

아니예요. 집에 들렀다 나가신 것 같아요.

형사1;아버지 아프신 건 알고 있었지? 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던데.

장일;(금시 초문이라는 듯 선우보며)??

형사1;신병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경우도 꽤.......

선우;우리 아버진 아니예요. 그깟 병에 걸렸다고 죽을 사람, 절대 아닙 니다.

형사1, 타이프로 친 유서를 내민다.

형사1;아버지 유서다. 자켓 안주머니에 있었어.

선우;........(읽어본다)

장일;........

선우;믿을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이러실 리 없어요.

형사2, 다가와

형사2;집에서도 외부의 침입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의심스런 족적도 없구 요.

장일;좀 더 조사를 해주셨음 합니다. 아들 생일날 꼭 만나자고 해놓고

그 전날 자살을 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형사1;알았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보거라.

선우;.......아버진 자살을 할 리가 없어요.

선우, 멍하니 계속 앉아있다. 장일이 선우의 팔을 잡아 일으킨다. 가자...

12. 경찰서 앞 / 밤

걸어 나오는 선우와 장일.

장일;괜찮겠어?

선우;..... 장일아.

장일;그래.

선우;우리 아버지.... 저런 짓 할 사람 아니야.

장일;......

선우;만약 누가 우리 아버질 저렇게 만든 거라면.... 절대 용서 안 해.

장일;그래, 일단 집에 가서 좀 쉬자.

장일, 선우의 팔을 잡아 걸음을 옮긴다. 선우, 악몽을 꾸는 듯 멍한 표정.

13. 장일 집 / 밤

용배, 국을 떠 밥상에 올려놓는다. 밥상엔 제육복음과 상추, 멸치, 콩자반, 김치등등 정성스레 차려진 듯 올라와 있다. 장일, 세수를 한 듯 젖은 얼굴로 수건 걸고 들어오며

장일;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용배;많긴. 다른 애들은 보약 먹어가며 공부할텐데... 어여 먹어라.

장일;네.. (수저 들고 국을 뜬다)

용배;갑자기 미역국이 먹고 싶었니?

장일;........그게 아니구.... 오늘이 친구 생일인데 데려와서 밥 좀

먹일까 했어요. 그런데.... 걔네 아버지가 자살을 하셔서...

용배;(흠칫) !

장일;집에 오는 길에 하필이면 걔가 발견 했어요.

용배;........안됐구나... 어떤 친군데?

장일;........그날 곰탕집에서 본 친구요.

용배;.......그런 놈이랑은 어울리지 말랬잖아.

장일;(대꾸하기 싫은. 눈 내리깔고 밥만 먹는다)

용배;............장일아.

장일;(아버지와 눈 안마주치고)네.

용배;너 서울로 대학갈 수 있게 됐다.

장일;(의아)?

용배;회장님이 장학금 제도를 만드셨어. 직원 자녀들 중에 우수학생을

선발해서 혜택을 주자는 건데, 니가 뽑혔다. 전액 장학금에 생활보조 비까지 받는거야.

장일;......(안 믿기는)설마요....

용배;대학 졸업 후에는 유학을 가건, 고시를 하건 원하는 만큼 끝까지

지원을 해주시기로 했다.

장일;.....말도 안돼... 어떻게 갑자기......

용배;사채 쓴 거 갚을 돈도 무이자로 빌려주셨다. 오늘 갚아버렸어.

이젠 그 놈들한테 수모당할 일 없다.

장일;아버지......

용배;주말에 회장님이랑 만나게 될꺼다. 그렇게 알고 있어.

장일;.......(얼떨떨)정말이예요?

용배;정말이라니까.

장일;(황당하다는 웃음)어떻게 그런 일이 갑자기...

용배;그러니까 걱정말고 공부해. (미소)

용배, 주전자의 보리차를 따르는 척 고개 돌린다. 어두운 용배의 얼굴.

14. 선우 방 / 밤

형광들 불빛 아래 쓸쓸히 앉아있는 선우. 빈 방.

경필(E);선우 자냐. 아버지 왔다 이놈아 하하하.

선우, 멍하니 빈 방 바라보는.

경필(E);선우야, 니가 정말 그랬어? 내 아들이 그럴 놈이 아닌데.... 니가

그런 거 맞어?

플래쉬 백- 1부 학교 운동장.

경필;아버지가 못나서 미안하다. (눈물 훔치는)

빈 방의 선우, 눈물이 글썽.

선우;아버지.... 왜 그랬어... 난 믿을 수가 없어요.....(눈물이 주르르)

55. 교실 / 낮

비어있는 선우의 책상. 장일, 책보다 고개 돌려 선우의 빈 책상을 본다.

학생2; 반장, 오늘 공짜 밥 먹으러 가자. 근사한 뷔페야.

장일;(단칼)아니.

학생1;아버지가 오늘 부경 가족의 밤 하는데 친구들 같이 와도 된대.

학생2;이 새끼 부경 사장 딸 구경할려고 이래.

장일;..........

학생1(E);저녁만 먹고 다시 들어오면 되잖아.

학생2(E);야간자율학습 안 빼먹는다니까.

56. 소강당 / 어스름

젊은 남자 사원들 셋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소방차 노래.

남자셋;(노래)난 알아 그게 사랑인 것을 그대 멀리 떠나려고 할 적에

잡지 못한 내가 바보야. 우우. 그녀에게 전해 주오 내가 내가 여기

있다고.

사원과 가족들 섞여 앉아있다. 모두 박수치고 웃고 흥겨운 분위기. 장일, 별 관심없이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 환호성, 박수와 함께 소방차 노래 끝난다.

사회자;네, 영업1팀 소독차의 무대였습니다. 이젠 분위기를 바꿔서 아주

근사하고 우아한 무대를 보실텐데요. 우리 부경의 대장, 한재호 사장님의 큰 따님께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장일; (궁금.... 호기심).........

사회장;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시죠.

사람들 박수치면 무대와 객석의 불 모두 꺼진다. 어둠속에서 기타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무대 위에 핀 조명 떨어지고 조명 아래 한 소녀. 한지원,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유복하게 자란 도시의 여자 특유의 자신감.

장일이 보기에 근사하다.

장일;........(자신과 다른 세계의 사람, 자신이 속하고 싶은 세계에 사는

사람. 매력적인 외모. 한 순간에 끌린다)......

지원 기타 연주에 심취해 있다. 난이도 있는 연주곡 같은. 장일, 지원을 본다. 줄을 튕기는 손가락. 비스듬히 기타로 기울인 얼굴선. 조명 빛에 머리칼이 반짝인다.

지원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일. 그 도도한 자신감과 외모에 끌린다. 지원, 고고한

모습으로 기타연주 계속. 장일, 그녀를 갖고 싶다.... 연주 끝나자 벌떡 일어서 90도 인사. 사람들 박수친다. 장일도 미소로 박수. 지원, 스탠드에 꽂혀있는 마이크를 뽑아든다.

지원;(마이크 잡고)아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지원이라고 합니다.

사장 딸이 나오면 못해도 박수 많이 쳐야 하고, 재수없게 생각한다고

주변에서 말렸는데도 나왔습니다. 진짜 박수 많이 쳐주시네요.

사람들 웃고 박수친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장일, 미소.

지원;아버지는 부경이 전부입니다. 저희 삼남매보다 늘 회사가 먼저였어 요. 부경을 일구고 만들어 주신 아버님 어머님 삼촌 이모님 여러분!

아빠를 거둬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빌려드릴테니 우리 부경, 그

어떤 소문에도 흔들리지 말고 더욱 더 성장하는 회사로 만들어 주시 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한 손을 번쩍)파이팅입니다.

사람들 환호하며 기립박수. 장일도 따라 일어난다. 박수. 오랫동안 박수치며 미소.

15. 진승원 접견실 / 낮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화사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접견실. 커다란 화병에 꽃이 가득 꽂혀있다. 밝고 따스한 분위기. 진주목걸이를 걸고 우아한 차림의 마희정, 진노식 옆에서 자상해 보이는 미소 짓고 있다. 테이블엔 화려한 찻잔세트 (찻잔에 접시, 슈가, 크림 용기까지 제대로 갖춘)와 커다란 과일 접시 놓여있다. 진회장 부부 앞엔 장일과 용배 반듯하게 앉아있다.

희정;넌 정말 신선하구나. 전교1등 하는 애들은 다 안경 끼고 못생긴

줄만 알았는데.... 이름이 이장일이랬지?

장일;예.

희정;넌 이제 서울로 대학가면 난리났다. 데이트하자고 여학생들이 줄을

설 꺼야.

용배;(좋으면서도)어딜요.... 촌티나 안 나면 다행이지요.

희정;대학가면 내가 클래식 선집세트 선물 할게.

장일;감사합니다.

노식;그래 장일군은 장래희망이 뭔가.

장일;법대에 진학해서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노식;왜.

장일;세상엔 힘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당하는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습 니다. 그걸 바로잡는 데 보탬에 되고 싶습니다.

노식;네 인상처럼 포부도 당차구나.

희정;예비 검사님인데 당신 지금부터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예요?

노식;당연히 잘 보여야지.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장일 앞에 놓는다.

노식;이건 장학금과는 별도로 주는 특별용돈이야. 든든한 친척아저씨가

뒤에 있다 생각하고 맘 편하게 공부하면 된다. 자, 받아.

장일;.....(아버지 눈치한번 보고).....장학금만으로도 과분합니다.

희정;어머 이뻐라... 저 얌전한 것 좀 봐. (봉투를 들어 장일의 손에 덥썩

쥐어주며)어른이 주시는 건데 받아야지.

장일;.... 감사합니다. (좋은)

노식, 웃으며 장일과 용배를 본다. 용배, 노식과 눈 마주치자 시선을 떨군다.

16. 진승원 일각 / 낮

고운 비단 보자기에 싼 선물상자를 손에 든 한사장 부인과 지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차실장;사모님이 지금 다른 약속이 있으셔서요.

부인;이것만 잠깐 전해드리고 가겠습니다.

차실장;이런 거 받으시지 않습니다.

지원;예전엔 받으셨는데요.

차실장;(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원을 보는)

지원;(배시시 웃어 보인다)

부인;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잠깐만 뵙게 해주시면....

장일과 용배, 어느 방에서 걸어 나온다. 장일, 지원이 서있는 걸 보고 놀라 심장이

쿵!

차실장;(내키지 않는)잠깐 기다려보세요 그럼.

차 실장, 두 사람이 나온 방으로 걸음 옮기는. 장일, 지원을 본다. 지원은 엄마만 보고 서 있다. 장일, 용배보다 발걸음을 느리게 해 천천히 걸어간다.

장일, 밍적거리며 서 있자

용배;가자, 뭐하고 있냐.

지원, 돌아본다. 지원 장일을 힐끗 보지만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장일;.......(아쉽고 뭔가 말을 걸고 싶은).......

용배;난 여기 창고 청소 좀 하고 가마. 먼저 집에 가 있어.

장일;(지원이 들을까 부끄럽다. 얼른 자리를 뜨려 걸음 옮기는데)

용배;(따라가며)참, 회장님이 주신 돈 3만원만 다오. 이따 소고기 사갈게.

17. 진승원 마당 / 낮

장일, 언짢고 화난 표정으로 나온다. 자켓 안에서 봉투를 꺼낸다. 봉투 채 용배에게 주며

장일;아버지 다 가지세요.

용배;아니다. 난 고기 사갈 돈만 가져가면 돼.

용배, 봉투에서 만 원짜리 꺼내고 있다. 장일, 뭔가 초라한 심정인데 지원과 부인, 선물 들고 나온다. 차 앞에서 기다리던 기사,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 표정 어두운 부인이 타고 지원, 화난 듯 조수석에 타고 문을 탁 닫는다.

장일;(조수석에 탄 지원을 본다)

지원은 장일에게 눈길 안 주고 앞만 보고 있다. 차 떠난다.

장일;.............

18. 수산물 창고 일각 / 낮

세워진 트럭 여러 대. 수척해진 얼굴의 선우, 자판기 근처에 서있는 트럭 운전수들 여러 명에게 뭔가 묻고 이야기하는 중. (몽타주)

선우;차 갖다놓고 나간 시간이 몇 시 쯤 인데요?......목요일 점심 까진

같이 계신 거 확실하죠? 어디 간다는 말씀 없으셨어요?

19. 바닷가 거리 / 낮

달리는 차. 지원 입 다문 채 화난 듯 앞만 보고 있다.

지원;이젠 천박한 졸부한테 구걸하는 거 그만해. 다신 내려오지 말아요.

해산물을 실은 리어카들이 차도를 가로 질러 가느라 차가 멈춰선다. 지원, 어디론가 시선.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는 선우.

지원;..........

플래쉬 백 -- 1부 한식당 앞. 지원의 손에서 돌을 뺏어 차 유리창을 깨는 선우.

지원;(선우에게 시선 고정)

선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모습. 지원, 선우를 계속 바라보고 지원이 탄 차 멀어진다.

20. 약국 / 낮

약사 앞에 서 있는 수미. 귀찮은 심부름을 온 듯 말한다.

수미;토하고 열나고 식은땀도 나고.... 머리도 깨질듯이 아프대요.

주책맞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약사, 조제실에서 혀를 차가며 약을 조제한다.

약사;사나흘 전에도 술 깨는 약을 지어갔는데. 그렇게 술 마시다간 큰일 날라.

수미;(들은 둥 마는 둥)

약사;얼마 전에 애 엄마가 가보더니 엄청 잘 맞춘다고 놀라더라고. 선무당 이 아니었어.

약국 문 열리고 장일이 들어온다. 수미가 서 있다. 장일, 멈칫하지만 수미에게

시선 안주고 들어와 서고.

수미;...........

약사;몸이 건강해야 무당 짓도 팔팔하게 할 꺼 아냐.

수미;(듣기 싫다)약이나 빨리 주세요.

약사;(조제실에서 장일 보며)뭐 주까.

장일;몸살약이요.

약사;뭔 일로 이렇게 몸살이 많대.... 기다려.

약사가 조제실에 있는 동안 수미와 장일은 말없이 어색하게 서 있다.

장일;그 날 약속 못 지켜 미안했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수미;..........해미리?

장일;네, 죄송했어요.

수미;그럼 이번 일요일날 가요. 시간도 그대로 바다공원 1시.

장일;........

약사, 수미에게 약을 먼저 건넨다. 수미, 나간다. 약사는 다시 조제실로.

장일;..........(난감)

21. 약국 앞 거리 / 낮

장일, 약봉지 들고 나온다. 두리번거리면 과일 노점 앞에서 과일 한 봉지를 받고 가는 수미가 보인다. 장일, 수미를 따라가

장일;저기요.

수미;(돌아보지 않고 가는)

장일;(따라가)저기요. 토요일날 못 나갈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수미;(미소 지으며)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안거야?

장일;......(치부를 정면에서 퍽 찔린 것처럼)

수미;일요일은 못가요가 아니라 같이 해미리에 갈 일은 절대 없어요,

그 얘기잖아.

장일;.......

수미;괜찮아. 익숙하니까.

장일;......

수미;해미리에 같이 가잔 말은 왜 했니? 처음엔 나한테 왜 친절했던 거지.

장일;.............(말없이 걸어간다)

장일, 걸어간다. 수미, 장일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수미;(혼잣말)처음엔 나한테 왜 친절했던거야.

22. 수미 방 / 밤

석고상 놓여있고 미술대회 수상메달과 상장이 가득 붙어있고 걸려있는 방. 화집과 화가들에 대한 책으로 책장과 책상 가득하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스케치들과 물감들. 그림에 대한 열망이 넘쳐흐르는 방. 귀에 이어폰 꼽고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 그리는 수미.

플래쉬 백 -- 1부. 비오는 거리.

장일;어짜피 가는 길인데 씌워 드릴게요.

1부. 미술실.

장일;해미리는 다녀오셨어요?

장일;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수미 방. 수미의 손끝에서 장일의 얼굴이 살아나고 있다.

23. 경찰서 / 낮

형사 앞에 앉아있는 선우. 수척하고 퀭해진 모습.

선우;아버지 옷에 얼룩이 많이 묻어 있었어요. 세탁소에서 하루 전날 크리 닝 해가셨다는 데 이상해요.

형사1;그럼 너부터 용의선상에 오를래? 나뭇가지도 부러뜨려놓고,

아버지를 흔들고 만지고.... 현장을 다 망쳐놨잖아. 얼굴에 상처도

땅에 떨어질 때 생긴거구. 그렇게 따지면 니가 제일 수상해.

중년의 형사과장, 바쁘게 걸어오며

형사과장;국제 경제인 총회 지원팀은 꾸렸나.

형사1;예, 각 팀에서 세 명씩 가기로 했습니다. 명단 곧 드리겠습니다.

형사과장;벌써 넘어왔어야지. 지금 뭐하는거야?

형사1;왜 일주일 전에 산에서 목맨....

형사과장;그거 다 끝난 걸 가지고 왜 여태....(못마땅하다는 듯 나가고)

선우, 형사에게 매달리듯

선우;독살 가능성도 전혀 없대요?

형사1;너 아버지가 20년 전에 사기전과가 있는 건 아니?

선우;.........아버지가요?

형사1;최근에 양식장 사업에 목돈을 투자했다 날리신 일은 알아?

선우;.........

형사;아무리 가까운 부모형제도 서로 모르는 속사정이 있는 법이야. 니 마 음 이해는 한다만 너무 니 생각만 맞다고 판단하지는 말거라.

선우;..............

24. 경찰서 로비 / 낮

형사과장과 경찰서장, 나이 지긋한 간부급 진노식 회장과 악수하며 웃고 있다.

노식;이번 총회만 잘 끝나면 지역경제 활성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애써 주십시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겠습니다.

힘없이 걸어 나오는 선우, 그 무리를 힐끗 본다. 관심없다는 듯 스쳐지나간다.

25. 선우 방 / 밤

약봉지 방바닥에 놓여있다. 장일, 책 보고 앉아있다. 선우, 들어와 방바닥에 푹 엎어진다.

장일;언제까지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거야. 너 이러구 있는 거 보면 아버 지도 속상해 하실 걸.

선우;.....(듣기 싫은 듯 옆으로 눕고)

장일;(일어서며)내일 다시 올게. 밥 꼭 챙겨 먹어.

선우;....(건성으로)그래.

장일;(나가려다)참, 나 장학금 받게 됐어. 서울로 대학갈 수 있게 됐다.

선우;(장일보며)정말이야? 잘됐다. (미소)축하해.

밖에서 부르는 소리.

광춘(E);선우 있냐. 선우야.

선우;누구세요?

광춘(E);누구긴 자식아.

문 벌컥 열리며 광춘 들어온다. 장일, 광춘을 보며 불쾌한.

장일;내일 보자. (나간다)

광춘, 군시렁대며 앉는

광춘;내가 저 놈이랑 놀지 말랬지.

선우;웬일이세요.

광춘;너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내가 몸살로 죽어가면서도 왔다.

선우;뭔데요.

광춘;선우야..... 난 이럴 때 소명의식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아픈 것도 다 이것 때문이야...

선우;.......

광춘;난 너희 아버지 넋을 달래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싼 값에 해줄 게 굿 한번 하자. 진혼 굿.

선우;미친 거 아냐.

광춘;아버지 저승길은 편히 가셔야지 않겠니.

선우;아저씨 엉터리잖아.

광춘;누가 그래.

선우;젊을 때 연극판에서 박수무당 연기를 잘했다면서요. 그때부터 눈치 로 때려 맞추면서 먹고 산다고 수미한테 다 들었어.

광춘;수미 말 듣지 마. 그년은 안티야. 내가 엉터리라 쳐도, 너희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주면 나쁠 게 뭐가 있어.

선우;됐어요.

광춘;나도 모르는 어떤 힘이 나한테 무슨 얘길 해줄지도 몰라 무아지경에 선.

선우;아저씨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는데, 나 돈 없어요.

광춘;싸게 해준다니까! 할부도 된다. 넌 아버지가 자살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며.

선우;.......네.

광춘;자살이 아니면 타살이다 그거냐. 그럼 범인은 누구야.

선우;내가 어떻게 알아요.

광춘;내가 한번 찾아보겠다니까. 너희 아버지가 나한테 들어와서 알려주 면 고마운거구 그게 아니래도 저승길 편하시오 기도나 해주고 싶다 니까. 왜? 넌 우리 수미한테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무당 딸이라고

왕따 당하는 내 딸한테 유일하게 말 걸어준 놈이 너니까. 내가 고마 워서!

선우;.........

광춘;그리고 혹시 범인이 있다면 꽹가리 소리에 마음이 편하겠니. 그놈

귀때기를 찢어놓게 징이라도 쳐보자구....그래도 정 싫으면 할 수 없 지.

광춘, 일어나 나가는데

선우;할게요.

광춘;(돌아본다)

선우;..........하자구요.

(E);꽹과리 소리 울리면서

26. 동네 공터 / 낮

햇살 쨍한 하늘. 굿상이 차려져 있고 북, 장구, 꽹가리, 징을 치는 사람들 가마니 깔고 앉아있다. 광춘, 두 손에 방울과 부채를 잡고 펄쩍펄쩍 뛰고 있다. 일당 채우려는 사람처럼 건성으로 뛰고 있다. 먼발치의 수미, 수척하고 어두운 표정의 선우. 선우 옆엔 장일, 구경꾼들 틈에 껴있다. 광춘, 뛰는 것 멈추고

광춘;불쌍허구 불쌍허다. 미련많아 발걸음을 어찌 떼놓을꼬....

넋이라도 왔다가오 혼이라도 왔다가오.... 만신의 힘을 빌어 여기

한번 다녀가오. 어허이....

인부들과 용배도 구경꾼 무리로 다가온다. 용배, 찜찜하고 불안한 표정. 맨 뒷자리에 서서 사람들 틈 사이로 굿을 바라본다.

27. 동네 공터 / 낮

한복을 입은 네 남자, 기다란 흰 광목천을 들고 선다.

광춘;원통하고 가엾어라.... 온 날 온 곳은 알아도, 갈 날 갈 곳은 모른다 오. 길 잃고 헤매지 말고, 내 손 잡고 따라오오...

방울을 내려놓고 대나무 가지를 들고 천 앞에 서는 광천.

광춘;세상 일 이제 놓고, 배고프고 추운 것도 놓고....

광춘, 광목천 중간에 서서 천을 찢으며 앞으로 나간다. 바다가 갈라지듯 찢어지는 광목 천. 아줌마와 할머니들, 눈물 찔끔거리며 찍어내기도 하고.

광춘;아픈 것도 놓고, 이쁜 것도 놓고, 미운 것도 놓고.....

넋은 넋은 넋반에, 혼의 혼은 혼반에 담아 연화봉으로 가소서.

광춘, 천을 끝까지 다 찢으며 나간다. 천이 완전히 두 갈래가 되어 찢어지는데 이때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며 먹구름이 몰려온다. 사람들 모두 이상하다는 듯 하늘을 보고 어수선해진다. 수미도 날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바라본다. 이때 갑자기 대나무 가지를 든 광춘, 미친 듯 몸을 떤다.

광춘;으..... 으.......

사람들 모두 저건 뭐지 싶어 광춘을 주시하는데, 광춘 혼이 실린 듯 몸을 떨며 눈동자를 굴린다.

광춘;으. . . .으. . . .

선우와 장일도 이상하다는 듯 주시하고. 수미도 까칠한 눈으로 광춘을 바라본다.

광춘;어... 억울해.... 나 못가. 어..억울해서 나 못가.

광춘을 바라보는 선우, 장일, 수미의 표정들.

광춘;(목을 잡고 버둥거리며)윽..... 윽...... 으....그만! 그...만해!

(쓰러져 발버둥 치며)누가 내 목을 졸라. 수...숨막혀.... 헉....헉.....

용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공포감)

선우, 까칠한 눈에 핏발이 선다. 사람들 모두 굳은 채로 광춘을 지켜본다.

광춘;(소리치는)아. . .아악!. . . 날 매달았어. 컥컥.... 숨막혀... 도와줘 요....(눈동자가 뻘개지며 눈물이 맺힌다)헉...헉....

선우;(버럭)지금 뭐하는거야! (광춘에게 가려는데)

장일;(선우의 팔을 강하게 잡는다)

광춘;그 놈이 왔다. 그 놈이 여기 있어....

광춘, 나뭇가지를 잡고 부들부들 떨며 사람들을 향해 원을 그리듯 돈다. 사람들 원을 넓히며 뒷걸음질 치고 용배도 무리에 실려 주춤주춤 물러나며 몸을 떤다. 광춘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사람을 찾듯 눈을 희번덕거리며 돌아다닌다.

광춘;그 놈이.... 내 목을 졸랐어... 그 놈이.....

선우,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나가 광춘의 멱살을 잡는다.

선우;그 놈이 누구야! 말해.

광춘;......(나뭇가지만 떨고 말없이 숨 찬 듯)헉... 헉.... 헉.....

용배, 구경꾼 무리를 빠져나와 걸어간다. 악몽을 꾼 듯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멀어진다. 장일,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용배가 얼빠진 얼굴로 걸어가는 걸 본다. 의아하다. 다시 광춘과 선우에게로 시선 돌리고.

선우;말 해! 말하라니까! 그 놈이 누구야.

장일;...........

광춘;아... 아..... 숨막혀..... 살려 줘 살려줘!

광춘, 발작을 하듯 떨며 선우를 본다.

선우;말 해. 누구야.

광춘;약속에 못 가서 미안하다. 그 놈이 날 죽였어.

광춘, 혼절하듯 선우를 덮치며 쓰러진다. 광춘과 함께 바닥으로 구르는 선우.

주변의 모든 소리가 꺼지고 시간이 멈춘다.

28. 숲 속 / 밤

수풀이 움직인다.

여자(E);(깔린 채)어머 어딜 만져. 어머 왜 이래.

광춘(E);가만있어 봐. 옆구리에 살이 좀 두둑해야 복이 굴러들어오는데 어 디 어디....

광춘 여자를 덮쳐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여자가 무릎으로 급소를 걷어차고 광춘 품에서 벗어난다.

광춘;(아파서 쩔쩔)흡! 너 미쳤어. 아흐 나 죽네....

여자;오늘 운 좋은 줄 알아.

광춘;여기까지 따라올 땐 너도 생각이 있어 온 거 아냐.

여자;퉤! (간다)

광춘;에이 나쁜년! (뒤에 댁고 욕하는)마흔에 액운이 나간다는 거 다 뻥이 다. 환갑 너머까지 시집도 못갈 줄 알아.

광춘,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곤 벌렁 드러눕는다.

29. 숲 속 일각 / 밤

초승달. 몰려오는 먹구름에 반쯤 가려진다. 누워서 자고 있는 광춘. 추운 듯 웅크리며 돌아눕다 잠에서 깬다.

광춘;에취! 으흐.... 나쁜 년 때문에 골병 들겄네. 에취!

광춘, 술이 덜 깬듯 얼큰한 얼굴로 나무에 대고 서서 바지춤을 내리다 어디론가 시선. 놀라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숲속 한편. 얼굴에 땀이 가득한 채 자루를 오는 용배. 광춘이 숨은 나무 근처로 와 내려놓는다. 숨죽인 채 고개를 빼고 보는 광춘. 용배, 이마에 땀을 닦는다. 눕혀진 자루를 풀고 벗겨내는 용배. 눈감고 있는 경필의 얼굴. 광춘, 어두워서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광춘;(작게 혼잣말)저게 지금 뭐여...보쌈이라도 한 건가...

광춘, 안 보인다는듯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빼고 바라본다. 용배, 경필 목에 줄을 감다가 놀라 주저앉는다.

광춘;.......(놀라 입을 막고 지켜보는)

용배, 나머지 긴 줄을 나뭇가지 위로 던져 걸리게 한다. 경필,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게슴츠레 뜬 경필의 눈, 나무 뒤에 숨어있던 광춘과 마주친다.

광춘;!! (숨어서 덜덜 떨고 있는)

경필;(광춘에게)도... 와.... 줘.....

나무 옆의 그루터기에 올라서는 용배. 줄을 잡아 나무 본체 쪽으로 끌어당겨 방향을 맞추고 있다. 도르레처럼 당겨 올리려는.

경필;(있는 힘을 다해 광춘을 향해 말하는)선...우. . . .약속....가야....해.

힘껏 줄을 당기는 용배. 눈물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고 줄을 당긴다. 나무 위에 숨어있던 광춘, 붕 떠오르는 경필의 구둣발을 보곤 입을 막고 놀라 점점 커지는 눈동자.

용배;(눈물을 흘리며 얼굴이 눈물과 땀에 젖어 흐느끼며 두 손에 힘을

주는)

광춘, 주춤 물러서다 부스럭 소리를 낸다. 용배, 놀라 뒤돌아본다. 새 한 마리 푸르륵 날아간다. 아무도 없는 숲 속. 우르를 쾅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 번갯불에 광춘, 줄을 잡고 있는 용배의 굵은 팔뚝에 난 특이한 흉터를 정확히 본다.

광춘;!!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30. 공 터 / 낮

사람들 돌아가고 썰렁한 공터. 굿상을 치우고 있는 사람들.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광춘. 옆엔 선우, 앉아있다.

선우;아버지랑 약속 있었단 말은 내가 안했어.

광춘;내가 무슨 말을 씨부렸나 기억 안나.

선우;그 놈이 날 죽였다고 했어요. 그 놈이 누구야.

광춘;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도 무당 돼보면 내 심정을 알꺼다.

선우;아저씨 뭔가 알고 있지?

광춘;알긴 내가 뭘 알어!

선우;........

광춘;왜 그렇게 봐. 정말 모른다니까.

선우;..... 무서워.

광춘;.... 뭐가.

선우;이제부터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요. 뜨거운 불속으로 내가 들어 가는 것 같아...

31. 바닷가 / 낮

상자에서 재를 꺼내 뿌리는 선우.

선우;아버지.......

경필(E);선우야.

저 멀리 안개 속에 배 한 척. 경필, 서 있다. 배 멀어져 간다.

선우;아버지! 아버지.....

경필, 슬픈 미소로 바라보고 있고.

선우;아버지.... 날 좀 도와줘.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경필을 태운 배, 멀리 안개 속에 사라진다.

32. 선우 방 / 밤

비닐에 싸인 유서와 경필의 옷, 한 쪽에 대충 놓여있다. 선우, 벽에 기대 멍하니 앉아 아버지 유품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유서를 꺼내보는 선우. 그러다 퍼뜩 번개 맞은 듯 벌떡 일어나 책장으로 간다. 책장 맨 아래 칸 봉투 속을 보면 타이프로 친 종이 여러 장 나온다. 개인끼리 주고받은 차용증 같은 문서. ’ 부분이 이가 빠져있다. 선우, 다른 문서도 본다. 배달 계약 및 확인서. 싶습니다’ 유서에는 싶읍니

33. 산 속 창고 / 밤

타자기를 쳐보고 있는 선우. ㅇ ㅇ ㅇ’ 계속 쳐본다. 깨져 나온다.

34. 장일네 집 / 밤

용배, 도마에서 양파를 썰고 장일, 마루 밥상에 수저를 놓고 있다. 문이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

선우(E);장일아! 나야. 잠깐만.

장일;웬일이지?

용배;누구냐.

장일;그 친구요. 아버지 돌아가신.

용배;...........

장일, 문 열어주면 선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얘기하는. 숨 차 헉헉대면서. 용배는 등 돌린 채 칼질 멈추고 듣는.

선우;유서가 이상해. 아버지 타이프로 친 게 아니야.

장일;그게 무슨 소리야.

선우;아버지 타이프는 이응 부분에 이가 빠져있는데 유서는 말짱해.

장일;다른 타이프로 쳤을 수도 있지.

선우;그리고 맞춤법. 아버지가 쓰는 거랑 달라. 봐!

선우, 유서와 경필의 문서를 내보인다.

용배;무슨 얘길 하는거냐.

선우;어? 죄송합니다. 계신지 몰랐어요.

장일;아버지가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모든 게 다 의심스럽게 보이 는 거 아냐?

선우;경찰서 가서 재조사 해달라고 할까봐.

장일;그래야 속이 시원하겠다면 진정서 제출해 보던지.

용배;.............

선우;그래야겠어. 나 간다.

장일;(잡는)야, 온 김에 저녁 먹고 가. 아버지, 선우 먹을 밥도 있죠?

용배;그럼.

선우;아냐. 나 괜찮아.

장일;먹고 가.

밥상 앞의 세 사람. 용배, 지옥을 만난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선우, 먹는 둥 마는 둥 국물만 몇 숟갈 입에 대고 있다.

용배;경찰서엔 언제 갈꺼니.

선우;내일이라도 당장 가야죠.

용배;.......

35. 진승원 회장 서재 / 낮

살인이 일어난 곳. 근사한 책상과 책장이 들어 차 있다. 용배, 노식 앞에 서 있다.

노식;무슨 일 입니까.

용배;.......그 사람 아들 녀석이.... 자꾸 의심을 갖고..... 경찰에 재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노식;(눈 깜짝 안하는)당연히 그래야지. 자식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용배;...... 회장님....

노식;아들을 압니까?

용배;저희 장일이하고 같은 학교라서.... 둘이 친한 건 절대 아니구요.

노식;재수사를 한다고 해도 뭐가 나오겠습니까.

용배;......

노식;나가 봐요. 이런 일로 드나들지 말고.

용배;......(찜찜하지만)예.... (돌아서는데)

노식;정 맘에 걸리면 용배씨가 처리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하든가.

용배;..... 뭘 어떻게....

노식;장일이를 통해서 그 녀석을 움직일 방법도 있지 않겠어요.

용배;(단호한)장일이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 다. (인사하고 나간다)

36. 진승원 마당 / 낮

심란한 표정으로 원예용 리어커를 끌고 가는 용배. 팔뚝의 흉터 더 도드라져 보인다. 용배, 리어커를 쳐 박아 두고 급하게 나간다.

37. 선우 방 / 낮

통닭이 든 봉투 놓여있다. 책상 서랍을 뒤지는 용배. 책장과 책갈피 사이도 뒤진다. 마음이 급하다.

38. 선우 집 앞 / 낮

선우, 걸어온다.

39. 선우 방 / 낮

용배, 옷장 서랍에서 흰 봉투 찾아낸다. 봉투를 열어보면 타자기로 친 유서가 나온다. 용배, 안도의 짧은 한숨. 품에 넣고 방을 나서려는데 방문 벌컥 열리고 선우가 들어온다.

용배;(깜짝)!

선우도 놀라 이상하다는 듯 용배를 바라보는데

40. 장일네 마루 / 낮

통화중인 장일.

장일;(의아)아버지가?

선우(F);니가 걱정 한다면서....

장일;아버지가 너 어디 사냐고 물으신 게 그것 때문이구나... 맛있게 먹어 라. 니가 걱정되셨나부다.

전화 끊는 장일. 갸우뚱. 아버지가 웬일로.... 싶은.

41. 진승원 마당 일각 / 낮

유서를 태우는 용배. 안도감.

42. 진승원 서재 / 낮

차실장, 노식 앞에 서 있다.

노식;이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봐. (메모를 건네준다)

차실장, 쪽지 열어보면 이경필. 부산시 기장군 우정리 30-1.

상업은행 255-302-317862. 

노식;그리고 이 지로번호가 어디다 돈을 보내고 있었던 건지.

차실장;알겠습니다.

43. 태국 광산개발지역 / 낮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짚 차. 구리빛 피부에 선글래스를 쓴 태주, 짚차를 타고 달려온다. 시추 기계가 돌아가는 곳, 현지인들 바쁘게 움직인다. 태주, 와서 선다.

태국 현지인, 태주에게 진행표를 갖다 보인다. (현재 몇 미터 팠고 지질의 상태,

찾는 광물이 나올 확률 75% 등등이 적힌 ) 태주, 진행표를 보고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는다. 미스터 쿤, 두툼한 느낌의 항공봉투를 들고 온다.

태주;(보면)

쿤;(편지를 내민다)

태주, 편지를 손에 든다. 발신에 김경필 Korea라 적혀있다. 태주, 눈빛이 흔들린다.

44. 태국 광산 일각 / 낮

여러 장의 편지를 손에 들고 있는 태주. 먼 산을 바라본다. 눈물이 맺혀있다.

45. 선우 방 / 밤

선우, 미친 듯 서랍과 책장을 뒤지고 있다. 서랍장 안에 있던 옷들을 다 꺼내 방바닥으로 던진다.

선우;없어졌어.......

꺼질 듯한 선우의 표정에서 F.O

46. 동네 어귀 / 낮

이장일 서울대 법대 합격’ 플래카드 걸려있다. 바람에 펄럭거린다. 코트 주머니에 손 넣고 서서 플래카드 바라보는 수미. 빤히 바라보고 서 있다.

수미;(쓸쓸하게 픽 웃는다)

47. 장일 방 / 낮

부경화학 사보를 보는 장일. 사우 경조사. 결혼과 부고 소식과 함께 자녀 합격소식도 실려 있다. 한재호 사장 장녀 한지원 서울대 영문과 합격

플래쉬 백 -- 1부 부경화학 소강당. 기타 연주하는 지원의 모습.

장일;(미소)

48. 호텔 프랑스 식당 / 밤

테이블 옆에서 샐러드를 섞어 주는 주방장. 근사한 접시에 서빙해 준다.

한사장;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와인도 한잔 하자.

지원;건배!

부녀, 잔을 쨍 부딪히고 마신다.

지원;맛있는데요. 이거 좋은거다. 맞지? 아빠 몰래 집에서 와인 몇 번

마셔봤어요.

한사장;지원아.

지원;네.

한사장;어쩌면 이렇게 근사한 레스토랑에 오는 건 오늘이 마지막 일지도 모르겠다.

지원;.......

한사장;니가 장녀니까, 동생들 잘 챙기고 흔들려선 안 돼. 당분간은 우리 가 지금껏 누리던 걸 포기해야 될꺼야. 그래도 잘 참고.....

지원;싫은데요.

한사장;.......

지원;초라하기 살기 싫어요.

한사장;미안하다....

지원;제가 다시 돌려놓을게요.

한사장;(보면)

지원;부탁이 있어요, 아버지. 스스로 무너지지 마세요. 아버진 잘못한 거 없어요. 운이 나빴을 뿐이야. 비열한 파트너를 만난거구.

한사장;나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테니 너무 걱정 마라.

지원;이사를 가야 하나요?

한사장;아마도.

지원;다음 학기 등록금부턴 제가 벌게요.

한사장;학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지원;초라해 진다는 생각에 좀 괴로울 껀 같은데.... 뭐 할 수 없죠. (와인

잔 들며)이 와인의 맛을 기억해 둘 거예요. 지금껏 누리고 살았던

거, 내가 다시 찾을 거야.

지원, 와인을 마신다.

49. 선우 방 / 밤

선우, 외출 준비. 옷장을 열고 옷걸이에 걸린 점퍼를 내리다가 윗칸에 있는 상자를 쳐 떨어뜨린다. 상자 안에 있는 자잘한 영수증과 도장 인주 열쇠가 쏟아진다. 선우,

방바닥에 주저앉아 상자에 쏟아진 것들을 담는데 상자 밑바닥에 깔린 종이가 떠있다. 보면 사진이 한 장 나온다. 경필과 노식, 태주가 함께 찍은 옛날 사진.

선우;.................(고개 갸우뚱)....어디서 봤더라....

50. 바닷가 횟집 / 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식당. 축 이장일 서울 법대 합격’ 붙어있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 용배 동료들 모여 합격 잔치중. 물회, 매운탕과 막걸리 먹고 질탕한 분위기. 장일은 학생들 앉아있는 테이블에 같이. 용배, 기분 좋아 돌아다니며 많이 드세요’ 한 잔 올리겠습니다’ 술 따라주고.

모자를 써서 멋을 낸 광춘과 동네 약사, 몇몇 아저씨들 들어온다.

약사;서울대 합격 잔치 맞죠? 우리도 축하해 주러 왔는데....

식당 아줌마;어여 앉으세요.

광춘;술이랑 매운탕 후딱 주쇼.

용배;(기분 좋다)얼른 앉으세요. 매운탕이 갑니다.

용배, 매운탕 냄비를 들고 광춘과 약사가 앉은 테이블로 온다. 용배는 무당 광춘을

의식 못한다. 상 위에 놓으며

용배;끓여 나온 거예요. 바로 드셔도 됩니다.

광춘, 냄비를 놓는 용배의 팔뚝에 시선. 흉터를 본다.

광춘;!!!

(E);천둥소리

-플래쉬 백 -- 1부. 숲 속. 번쩍하는 번개와 함께 드러나던 용배 팔의 흉터.

광춘, 용배의 팔을 겁에 질린 눈으로 보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딴 짓하며 고개를 돌린다.

용배;많이 드십쇼. 모자라는 거 있음 말씀하시구요. (가고)

광춘, 용배가 다른 테이블로 간 후 옆에 있는 약사에게

광춘;저 사람은 여기 오래 살았어요?

약사;한 5년 됐을라나. 정읍에 살다 왔다지 아마.

광춘;가족은요.

약사(E);서울대 붙은 저 아들만 하나. 어찌나 지극정성인지 몰라 아들한 테.

장일, 친구들과 얘기하며 신나게 웃고 있다.

광춘;하는 일은요?

약사;진노식 별장 머슴이라고 보면 돼.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하나봐.

광춘;저 사람이 얼마 전에 자살한 분이랑 알아요?

약사;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 물어봐 줘? (부르는)용배씨!

광춘;(약사를 껴안고 입을 막으며)주둥이가 요망이여.

광춘, 막걸리 마시며 계속 용배를 주시. 용배, 막걸리 갖다 주고 술도 한잔 받고 행복한 표정. 광춘, 일부러 눈을 희미하게 뜨고 용배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본다.

플래쉬 백-- 1부 숲 속. 어둠속에 실루엣으로 보이던 용배의 옆모습. 머리모양과 얼굴선.

광춘;........

용배, 시선을 느끼고 광춘을 본다. 광춘, 얼른 고개 숙이고.

장일(E);선우야!

광춘, 보면 들어온 선우를 장일이 반갑게 포옹한다.

장일;왜 안오나 했다. 배고프지?

광춘;저런 저....저....

장일, 선우의 팔을 끌어 자리에 앉힌다. 광춘, 용배를 보면 주방 쪽으로 고개 돌리고 선우를 외면하고 있다.

광춘;맨 정신으로 있기 힘드네. (사발 가득 막걸리를 따른다)

따로 낸 테이블에 앉은 선우와 장일, 잔을 부딪힌다.

장일;안 오는 줄 알았다.

선우;안 오긴! 서울엔 언제 가?

장일;일단 내일 신체검사하러 가. 야, 너도 서울 와라. 나랑 같이 지내면 서 너 재수해.

선우;내 걱정은 하지 마.

장일;빈 말 아냐. 너 이렇게 주저앉음 안돼.

선우;나 못 가. 아버지 때문에 못 떠나.

광춘, 두 사람 대화에 멀리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장일;니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선우;뭐가 됐든. 오늘은 축하해주러 온 날이니까 이 얘기 그만하자.

(장일 잔에 술 채워주며)

장일;선우야, 내가 약속할게. 재학 중 사시패스가 내 목표야. 내가

검사가 돼서 아버지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 줄게.

용배, 쟁반에 물회를 담아오다 멈춰선다. 광춘, 긴장하고 있는 용배의 표정을 본다.

장일;이버지가 정말 타살이라면....

용배;...........

장일;범인은 내가 반드시 잡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밝혀낼거야.

용배, 얼른 주방으로 피하듯 들어간다. 광춘, 막걸리를 한 병 들고 일어선다.

51. 횟집 앞 / 밤

광춘, 야외 간이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 마신다. 취기가 돈다. 나무 판에 열쇠가 붙은 화장실 키를 들고 선우, 나온다.

광춘;가냐?

선우;(화장실 열쇠 들어 보이며)화장실요.

광춘;내가 저 놈이랑 놀지 말랬지.

선우;왜 그러시는데요.

광춘;바늘로 쑤셔도 피 한 방울 안 나게 생겼잖아. 인상이 아주 꽝이야.

선우;아저씨는 집에서 거울 안 봐요?

광춘;너희 둘이 친하면, 쟤네 아버지랑 너희 아버지도 친했었겠다.

선우;두 분은 만난 적도 없는데요.

광춘;그래? 정말이야?

선우;뭐가 궁금하신데요.

광춘;니들은 친한데 왜 아버지들은 안 친해.

선우;별 게 다 궁금하네. 취했다, 그만 마셔. (무시하고 화장실로 가는데)

광춘;선우야.

선우;(돌아본다)

광춘;.........(뭔가 말할 듯 말 듯 갈등하다)아니다. (바다로 시선 돌리며

막걸리 마시는)

52. 거 리 / 밤

취기가 올라 살짝 흔들리는 걸음을 걷는 장일, 기분 좋다. 선우와 어깨동무하고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선우;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장일;무슨! 우리끼리 한잔 더 할까.

선우;내일 학교 신체검사 간다며.

장일;뭐 어때! 술 센 놈이라고 판정 나오겠지.

선우;너 이렇게 기분 좋은 거 처음 본다.

장일;응! 좋다. 아주 가볍고 시원해.

선우;그동안 무겁고 힘들었구나.

장일;내 인생에 햇빛이 쫙 비춰 들어오는 느낌이야.

김선우, 나 반드시 성공한다! 성공해서 내가 너 도와줄거야.

선우;짜식... 얼른 들어 가. 아버지 걱정하시겠다.

53. 외진 거리 / 밤

선우, 혼자 걷고 있다. 차 한 대 달려오더니 옆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선다. 차에서 금줄과 덩치 좋은 똘마니들 후다닥 내려 선우에게 자루를 덮어씌우고 차에 태운다. 급하게 출발하는 차.

54. 부두주변 폐 창고 / 밤

을씨년스런 창고. 바닥에 선우 앉아있고 금줄, 자루를 벗긴다. 땡보 앞에 서 있다.

땡보;오랜만이다 김선우.

선우;난 니들이랑 할 얘기없어.

땡보;이 놈 기억 나냐?

장일에게 맞은 깡패2, 선우 앞으로 나온다.

땡보;기억하지? 니 친구가 배때기 터트린 놈. 니가 의리있는 척 뒤집어

쓰고 퇴학 맞아 줬잖아.

선우;........

땡보;비장까지 찢어져서 저 새끼 죽을 뻔 했어. 우리가 그 때 왜 바로 안 움직였냐...... 너의 우정이 아름다워서 참았다.

금줄과 똘마니들 큭큭 웃는다.

땡보;그리고, 때를 기다렸지 우리는. 니 친구가 서울대 붙을 때까지 기다 렸다. 죽이지?

선우;......(긴장하는)그 때 합의도 끝났고 치료비도 다 물어줬어.

땡보;그걸 바로 잡아야지 우리가. 3월에 강의실 찾아다니면서 얘기해 줄 라구. 법대 교수님들한테도 말하고. 이참에 우리도 명문대 구경 한번

해보자.

선우;............

땡보;우리가 니 누명 벗겨줄게.

선우;.......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땡보;........

선우;원하는 게 뭐야.

땡보, 눈짓 하면 똘마니 하나 신문지에 싸인 칼을 던진다. 50cm정도 되는 크기.

땡보;장택이 좀 봐주고 와. 우리가 가기엔 얼굴이 다 팔려있어.

선우;...........

땡보;족보 없는 연장이니까 써도 된다.

선우;............

땡보;살짝 한방 놓고 와. 죽지 않을 만큼만. 뭐 실수로 죽어도 할 수 없는 거구. (웃는다)

금줄;.....(긴장한다. 걱정스런 표정)

선우;...........못하겠다면.

땡보;니 누명을 벗겨줘야지. 아버지는 팔뚝을 지졌지만 그 아들놈은 인생 을 지져 버릴테니까.

선우;.............

55. 부두주변 폐 창고 앞 / 밤

선우,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손엔 신문지에 싼 칼이 들려있다. 찬 바람 맞으며 칼을 들고 걸어가는 선우의 모습에서......


.적도의 남자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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