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퀸 2
<메이퀸> (가제) 2회
도현 집 거실 (낮)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며 와장창! 깨지는 청자.
해주와 인화, 휘둥그레져 서로 바라보는데...
금희 (E) 무슨 소리니?
두 사람, 화들짝 놀라 보면 안방에서 금희가 나온다.
금희 (걸어오다가 깨진 청자 발견하고 놀라) 인화야?
인화 (본능적으로 고개 젓고) 엄마... 나 아냐.
금희, 고개 돌려 해주 바라본다. 당황해 고개 숙여 조각 줍는 해주.
고무줄로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목덜미 아래의 흉터가 드러난다.
고개 드는 해주. 보고 눈 커지는 금희.
금희 너...?
마주 보는 금희와 해주.
금희, 해주의 흉터 못 본 채 해주의 옷 바라본다. 그 얼굴에,
(플래시 백)- 1부 48씬. 교무실.
벌서고 있는 해주모습. 초라한 옷차림에 퉁퉁 부은 얼굴.
(현재)
금희 너 ... 지난번에 인화 때린 애구나? (굳은 얼굴로) 니가 이걸 깼니?
해주 아, 아녀라. 지가 깬 게 아니여라.
금희 (다시 인화 보면)
인화 (죄책감에 고개 숙였다가) 엄마... 나 아파. 피 나.
금희 뭐? (놀라 보면)
인화의 발에 파편이 튀었는지 피가 약간 나온다.
금희 이리 나와! (파편 쪽에서 끌고 나오며) 아줌마! 아줌마, 어디 있어요!
양남댁 (이층에서 내려오며) 왜 그러세요, 사모님?
금희 인화 다쳤어요! 빨리 약 가져 오세요!
양남댁 (놀라 일각으로 가, 약통 들고 와 열면)
금희 내가 할 테니까, 아줌마는 저거나 치우세요!
양남댁 (그제야 파편 보고) 이게 뭐야? 이게 왜 부서졌어? (하며 치우는데)
해주, 멀뚱히 인화 바라본다.
금희, 인화의 발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다하고 해주 보는 금희.
금희 너 뭐하는 애니? 애가 다쳤는데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해?
해주 죄송하구만이라... 근디 지가 뿌순 게 아니어라.
금희 그럼 지금 인화가 거짓말 했다는 거니? 너 정말 못 쓰겠구나.
너 집 어디야? 부모님 좀 뵈야겠다.
해주 (놀라) 참말로 지가 한 게 아니여라! 으째 사람 말을 못 믿는다요?
금희 아니, 무슨 이런 애가! (하는데)
양남댁 어머나, 사모님! 쟤 다리 좀 보세요!
금희, 멈칫 보면 해주의 다리에 큰 상처가 나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금희, 놀라 보는데...
해주 (보고) 오메, 이게 뭐다냐? 어쩌까이. (하고 다리 만지는데)
인화 (해주의 상처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해주 (보고) 야, 울지 마야. 피만 많이 나제, 벨 거 아니여.
인화 (울며) 엄마... 내가 한 거 맞아. 내가 저거 깼어.
금희 (놀라 인화와 해주 바라보는데서)
동, 정원 (낮)
초조한 얼굴로 거니는 기출. 불안한 얼굴로 도현 집 쪽 보는데,
도현 (E) 자네 뭐 하나!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기출. 도현이 걸어오고 있다.
기출 (황급히 앞으로 가) 오셨습니까..
도현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배 밭주인들 안 만나고?
기출 예... 마, 만나고 있습니다.
도현 다 끝나면 보고 해.
기출 ... 알겠습니다.
도현, 들어가면 더 불안한 얼굴로 보는 기출.
동, 거실 (낮)
도현 앞에 서 있는 해주와 인화, 금희. 해주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해주 (도현에게 인사하며) 첨 뵙겠구만이라... 인화 친구 천해주라고 하는디요.
도현 (해주 일별하고는 인화에게) 우리 공주님이 오랜만에 친구 데려왔네.
해주 (이상한 듯 보고) 거시기... 이 집 주인이 맞으시오?
도현 (보면)
인화 참, 아빠! 얘네 아빠가 아빠 군대 선배라고 하던데, 사실이야?
도현 군대 선배?
해주 아녀야. 이분 말고 다른 분이었는디... 성함이... 박... 머시기였는디.
금희 박집사 얘긴가 보구나.
해주 (보며) 박.... 집사요?
인화 (그 말에 깔깔 웃으며) 그럼 그렇지! 어떻게 우리 아빠가 니 아빠 후배 가 되겠니? 박집사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하고 웃는데)
해주 그냐? 나가 정신을 잃어부러서 몰랐구마이.
인화 무슨 소리야?
해주 아녀야. (도현과 금희 보며) 글믄, 지는 고만 가 보겠어라.(보께요) (금희에게)
치료해 주신 거 고맙구만이라. (하며 쩔뚝이며 돌아서는데)
인화 야!
해주 (보면)
인화 저녁 먹고 가.
해주 아니랑께. 가야제.
인화 먹고 가라면 먹고 가!
해주 (멈칫 보는데)
금희 (어색하게 웃으며) 그래, 먹고 가렴. 내가 좀 미안하구나.
해주 (보고 망설이는 얼굴에서)
동, 주방 (저녁)
진수성찬인 식탁이다. 식사하고 있는 도현과 금희, 인화. 일문. 해주.
해주는 뭐부터 먹을지, 그저 보기만 하는데.
도현 (먹다가 금희 보며) 상감청자를 깼다고?
금희 (힐끗 인화 보고는) 예. 제가 실수로 떨어뜨렸어요.
도현 당신이? 별 일이네. 그거 제법 값나가는 건데.
금희 그럼 저더러 물어 달라 하실 거예요? 집 나갈까요?
도현 야아!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아아뇨! 잘 깨셨습니다. 사모님...
그렇지 않아도 그거, 맘에 안 들었다니까요.
그 말에 금희, 눈 흘기며 웃는데, 해주 눈 동그래져 도현 본다.
인화 야! 너 왜 안 먹니?
해주 (멈칫 보고) 긍께,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뭣부텀 먹어야 할지 모르겄네잉.
인화 (탕수육 쟁반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거 먹어 봐. 소고기 탕수육이야.
해주 소고기로도 탕수육을 만들어야? (하나를 먹고) 오메~ 뭔 맛이 요렇다냐?
일동 (보면)
해주 달착지근하고 보들보들 한 것이, 입에서 살살 녹아버리네요이. 아따~
겁나게 맛있구마잉. (하고 정신없이 먹는데)
일문 (인화에게) 야, 너 애 어디서 데려왔냐?
하는데, 갑자기 먹는 것 멈추는 해주. 그 얼굴에.
(플래시 백)- 1부 씬 61. 해주 집 평상.
두부 놓고 정신없이 밥 먹던 해주 가족의 모습.
(현재)
탕수육 먹던 해주. 목이 막히는데,
금희 (보고) 왜? 뭐가 씹혔니?
해주 (멈칫 보고) 아녀라. 너무 맛낭께, 눈물까지 날라 그러네요.
진짜 맛있네요.
일동 (신기한 동물 보듯이 해주 얼굴 보는데서)
동, 정원 일각 (밤)
빈병 박스들 옆에 캐리어를 놓는 인화. 보는 해주.
해주 요것이 뭐다냐?
인화 캐리어 몰라? 무거운 짐 싣는 거잖아?
해주 시상에, 요런 것도 있데? 글믄 두 짝 싣고 가도 되겠네잉.
해주, 병든 박스를 낑낑거리며 두 박스 올려놓고 줄로 고정시킨다.
해주 (캐리어 끌어보고는) 요 구루마가 진짜 희안하구마이.
이래 무거운 걸 실어도 하나도 힘 안 들어야.
오늘 쓰고 낼 갖다 줘도 되지야?
인화 근데, 너 나한테 고맙단 소리 안 하니?
해주 당연히 고맙제. 겁나게 고맙다이.!
인화 미안하단 소리는?
해주 (멈칫 보면)
인화 너 나 때렸잖아? 정식으로 사과 해.
해주 글씨, 사과를 받고 싶다믄 하는 건 어렵지 않은디, 너도 잘못했는디?
인화 뭐?
해주 밥 주서 주는디, 다짜고짜 때리는 애기가 으딨데?
글고 밥은 참말로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여.
인화 (굳어지며) 이게? 야! 내가 너 따위하고 같은 사람인 줄 알아?
기가 막혀. 기껏 데려왔더니, 이게 진짜 눈치코치 없네?
해주 으째 또 화를 낸데?... 알았어야. 나가 미안했응께, 마음 풀어라이.
인화 됐거든! (하고 홱! 돌아서 가면)
해주 (갸우뚱하며) 뭔 승질이 저러케 지랄맞디야? 요상하네이.
(하고 캐리어 보고는) 어쨌거나 횡재해 부렀네. (하고는)
캐리어 끌고 가는 해주. 일각에서 기출이 나타나 그 모습 바라본다.
해주 동네 골목길 (밤)
해주, 다리를 절며, 빈병 실린 캐리어 끌고 노래 부르며 오고 있다.
해주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 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 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하는데)
홍철 (E) 천해주!
해주, 멈칫 보면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홍철.
해주 (절룩이며 다가가) 아부지~ 머던다고 여까지 나와 계시오?
홍철 너! 다리가 어째 그려?
해주 (멈칫 다리보고) 잉. 별 거 아니여라.
홍철 이게 어째 별 거 아녀! 다리꺼정 절구마이!
너 이놈의 병 줍다 다친 거다냐?
해주 암것도 아니여...
홍철 아니긴 뭐가 아녀? 너, 아부지 맘 요로코롬 아프게 할 거다냐!
해주 (말없이 고개 숙이면)
홍철 (마음 아파) 해주야. 인자 아부지 취직도 했어야.
해주 (놀라 반색하며) 진짜요? 으딘디요?
홍철 배 고치는 공업사 취직했어야. 긍께, 인자부터 이런 짓 하지 마라이.
니가 안 이래도 아부지가 밥 안 굶긴당께. 알겄냐?
해주 (밝게) 워메! 참말로 잘 됐소잉! 거시기 배 고치믄 배도 탈 수 있당가요?
홍철 (짠하게 보며)... 밥은 묵었냐?
해주 야아, 배터지게 묵었어라... 아부지는 자셨소?
홍철 (캐리어 끌고 가고)그람! 가자!
해주 (다리 절며 따라가는데)
홍철 (그 모습 보고) 아야, 안 되겄다. (주저앉으며) 업혀라.
해주 아니여라. 암시랑토 않항께...
홍철 너 을마나 컸는지 근수 달아 볼라고 그란다. 긍께 싸게 업혀봐야!.
해주, 보고는 등에 업히면, 업은 체 캐리어 끌고 가는 홍철,
해주 아부지. 무겁지라?
홍철 그라네. 우리 딸 겁나게 많이 컸네잉.
해주 글믄 언능 내려주쑈. 구루마까지 끌고 힘들것소.
홍철 가는 데꺼정 가 보드라고. 아따, 평생 이라고 업고 살았으면 좋겄다.
두 사람 모습 멀어져 가면, 뒤에 나타나 그 모습을 보는 기출.
해주 집 마당 (밤)
캐리어 끌고 들어오는 홍철과 해주. 홍철, 일각에 캐리어 놓는데,
달순 (밥상 들고 방에서 나오며) 야! 이 썩을 년아!
어디서 쳐 자빠졌다가 이제 와!
홍철 (보고 찌푸리며) 아, 으째 보자마자 욕찌거리여?
달순 내가 지금 욕 안 나오게 생겼어? 새끼들은 배고프다고 삐약되는데,
내가 이 몸으로 밥하고 반찬하다, 달도 덜 찬 애 나오면,
당신하고 저년이 책임질 거야!
홍철 눈으로 보면 몰른다냐. 반찬값이래도 벌라고, 이라고 병 줍느라 늦었구
만.
달순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해? 배부른 마누라 허리 숙여 빈 쌀독 박박 긁게 만들고, 딸래미는 빈 병 줍게 만든 게 유세냐? (하고는)
밥상 놔버리는 달순. 밥상과, 밥그릇, 숟가락이 와르르 나뒹군다.
홍철 이 사람이! 뭐하는 짓이당가! 시방!! (하는데)
해주 (말리며) 아부지! 그만 하쑈! (달순 보며) 엄니, 죄송하요.
지가 잘못했응께 아부지한테 화내지 마쑈.
달순, 문 꽝 닫고 들어가 버리고, 해주 밥그릇과 숟가락 줍는데,
홍철 화난 듯 고개 돌리다가 멈칫 한다. 대문가에 서 있는 기출.
동네 일각 (밤)
홍철, 한숨 쉬고 노려보는 기출을 바라본다.
기출 내 말! 귓등으로 들었어요? 울산 바닥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홍철 너야말로 내말을 뻘로 듣는다냐? 트럭기사 놈이 짐을 몽땅 패대기치고 가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당께!
기출 천병장 사정은 내 알바 아니고, 당장 여길 떠나서 어디든 가라구요!
홍철 박상병... 내 사정 좀 봐주라. 나가 약속 못 지킨 건 미안하네.
글치만 너도 보다시피. 우리 마누라 낼 모레 하는디다, 갈 데도 없어야.
너한티 신세 안 질탱께, 나 좀 내비러둬라. 나도 죽겄다, 시방...
기출 (노려보다가) 좋아요. 그럼 여깄는 대신에, 확실히 약속해요.
절대로, 절대로!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말아요!
홍철 아, 당연하지야. 나가 거그 갈 일이 뭐가 있간디.
기출 천병장이 문제가 아니라, 애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홍철 뭔 말이여? (하다) 혹시 우리 해주가?
기출 예! 오면 안 된다구요! 절대 안 돼요!
홍철 (이상하게 쳐다보며) 애긴디... 머슬 그렇게 화를 낸디야?
기출 (너무 나갔다 싶어 얼른 변명) 아니, 내가 입장이 곤란해서 그래요.
아시잖아요, 나도 그 집에서 얹혀사는 거.
특히 우리 회장님, 애들 오는 거 엄청 싫어하세요. 좀 봐줘요, 천병장님.
홍철 알았어. 별 희한한 양반도 다 있네이.
기출 약속한 겁니다? 절대로 오게 하면 안 돼요. 아셨죠?
홍철 알았당께. 약속하네.
기출 (그래도 불안한 듯 보는데서)
해주 집 마당 (밤)
해주, 영주 업은 채 설거지하고 있다.
영주 (등에 업혀서 냄새 맡다가) 언니.. 뭐 먹고 왔어?
해주 (멈칫) 으째 그래?
영주 맛있는 냄새 나.
해주 어... 거시기 소고기 탕수육 얻어 묵고 왔어야. 미안하다, 영주야...
너 생각했으믄 쪼까 싸오는 건디, 염치가 없어서야... (하는데)
홍철 (들어오며) 해주야, 너 배 밭 너머 저그 박상병네 집에 갔었냐?
해주 (멈칫 보고) 야... 친구가 그 집 살아서라.
홍철 친구야? 글믄... 혹시 그 집 회장님이라는 양반도 만났다냐?
해주 야... 친구 아부지라서, 같이 저녁 먹었어라.
홍철 그 양반이 너 싫어하드냐?
해주 아니요! 겁나게 잘해주셨는디.
홍철 (고개 돌리며 혼잣말) 근디, 이 자슥은 으째 그짓말을 했제?
못 듣고 설거지하는 해주. 그 모습 짠하게 보는 홍철 얼굴에서.
산등성이 일각 (낮)
해주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양복 입은 도현이 서 있다.
나무에서 잎을 떼어 만져 보는 도현. 손에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온다.
그 옆에 다가서는 발. 도현 멈칫 보면, 해풍 조선 잠바 입은 대평이다.
대평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가는 그 날에,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이에 도래할 것이다. 어데 나와 있는 글씬지 알겠나?
도현 울산 공업탑 비문 아닙니까?
대평 장 회장, 마이 컸구마.
35년 전에 박정희 의장께서 하신 말을 몸으로 쌔리 밀고 있으이까.
도현 이젠 검은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지요.
대평 그래가, 여는 물론이고 배 밭까지 검은 연기로 다 오염시키나?
그래놓고 헐값에 땅 사들일라꼬?
도현 다, 회장님께 배운 겁니다.
대평 (쳐다보며) 장회장. 사람은 분수껏 살아야 되는 기다.
자네는 저 시꺼먼 석유연기 묵고 사는 기 분수야.
하늘이 무너져도 이 땅에 조선소는 안 된다.
배는 아무나 만드는 기 아이란 말이다. 알겠나?
도현 (보며) 죄송하지만, 저는 배하고 석유, 둘 다 관심 있습니다.
대평 그라모, 내하고 한 번 싸워 보자 말이가?
피 철철 흘리고 후회하기 전에, 고마 이 땅은 내한테 넘기거라.
도현 먹이 다 잡았는데, 그냥 상납하면 제 꼴이 말이 아니죠.
대평 값은 섭섭지 않게 쳐 줄 끼다.
도현 회장님... 태화강 앞 물도 뒷물한테는 밀려 납니다. 싸움하는 것도,
이제 지치실 연세 아닙니까? 손주 보시며 좀 쉬시지요.
두 사람의 팽팽한 시선에서.
해풍 조선 입구 (낮)
뚜껑 열린 지프차 운전해 오는 대평. 수위가 보고 황급히 경례 붙인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는 대평의 지프.
동, 사옥 앞 (낮)
양복 입은 임원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도열한다.
도착하는 지프. 임원 하나가 문 열려는데, 벌컥! 문 열고 내리는 대평.
그대로 임원의 무릎을 걷어찬다. 임원 인상 쓰며 참는데,
대평 문디 자슥아! 내가 건달이가? 와 이래 나와 줄을 서노!
이럴 시간 있으모, 일이나 단디 해라!
임원 죄송합니다.
대평 퍼뜩 안 꺼지나!
임원, 눈짓하면 다른 임원들 다시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고,
못마땅한 듯 혀를 차는 대평. 들어가려는데,
정우 (E) 회장님!
대평, 돌아보면 정우가 일각에서 다가온다.
대평 누고?
정우 기억 못하시겠어요? 저, 윤정웁니다.
대평 윤... (하다가 눈 커지며) 니, 학수 동생 아이가?
정우 예, 맞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대평 (보다가 미소 떠오르는 얼굴에서)
동, 집무실 (낮)
책상에 ‘회장 강대평’ 의 명패 보이고,
찻잔 놓고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대평과 정우.
대평 그라머, 그 동네 다시 왔다 말이가?
정우 예.
대평 거서, 뭐 하는데?
정우 고시 공부합니다.
대평 (혀 차며) 쯧쯧쯧... 부자나 거지나 삼대 몬 간다더니, 꼬라지 하고는.
정우 (말없이 차 마시는데)
대평 오늘 니, 내 만난 기 천운인 줄 알아라. 고신지 뭔지 때리 치우고,
내 일이나 쪼매 도와라.
정우 (멈칫 보고) 회장님, 저 오늘 그냥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대평 인사 온 김에 취직하란 말이다.
정우 그럴 생각 없습니다.
대평 (멈칫 보면)
정우 회장님, 어떤 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옛 인연으로 한번 뵈러 왔을 뿐입니다. 그럼... (하고 일어나려는데)
대평 니, 너그 형이 농사꾼들한테 나눠 준 배 밭 알제?
그거를 장도현이가 그저 묵을라 칸다!
정우 (멈칫 보고) 저하곤 상관없는 일입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돌아서는데)
대평 일마야! 정우야! 정우야!
그냥 나가 버리는 정우. 허탈하게 보는 대평.
울산 교육청 강당 (며칠 후- 낮)
‘전국수학 경시대회 시상식’ 플래카드 보이고, 박수소리 요란한 가운데,
상장과 상패를 받는 창희. 담담한 얼굴이다.
강가 일각 (낮)
해주, 비닐봉지 들고 나물을 뜯고 있다.
동, 뚝 길 위 + 뚝 길 아래 (낮)
낡은 자전거 타고 오는 창희.
등 뒤에 멘 가방 위쪽에 삐쭉 상패케이스가 삐져나와 보인다.
케이스가 안 잠겨 있어 상패의 윗부분이 보인다.
창희, 속도 높이는데, 갑자기 뚝 길 아래서 해주가 불쑥 튀어나온다.
놀라 핸들 트는 창희. 그 바람에 뚝 길 아래로 자전거와 함께 떨어진다.
창희 으메! 어쩐댜? (황급히 뚝 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면)
굴러 떨어진 창희가 뚝 길 바닥의 강가에 쓰러져 있고,
그 옆에 자 전거가 바퀴만 돌고 있다. 아픈 듯 찡그리는 창희.
해주 아니, 눈 뒀다 뭐 한! (다요... 하려다가 창희 얼굴 보고) 안녕하셨소?
창희 (아픔 참으며 보고)
해주 지 모르겄소? 그 때 땅벌에 쏘였을 때...
창희, 아픈 듯 일어나 뒤돌아보면, 쓰러진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창희 그렇게 갑자기 튀어 나오면 어떡해?
해주 죄송하구마이라..
창희 (대꾸 않고 걸어가 자전거 보는데, 체인이 빠져 있다)
해주 (보고) 음마? 체인이 빠져부렀구만. 지가 고쳐도 될랑가 모르겄네.
봉지 놓고, 자전거 세우는 해주. 능숙하게 체인을 끼운다. 손에 검정 칠.
창희, 조금 놀란 듯 보는데, 울상으로 쳐다보는 해주.
해주 거시기 체인은 됐는디, 뒷바꾸 살이 두 개나 나가부렀네.
창희 (멈칫 보면, 살 두 개가 부러져 있고)
해주 (웃으며) 근디 너무 걱정마쑈. 지가 붙여 줄탱께요.
하는데, 갑자기 얼굴 굳어지는 창희.
황급히 등 뒤에 멘 가방에서 상패 케이스를 꺼내본다.
열어 보면 황동상패의 목 부분이 뚝 떨어진다.
아래 부분 트로피에는 '전국 수학 경시대회 대상 박창희"라는 글씨.
창희, 떨어진 목 부분을 들어 보는데.
해주 (일어나 보고) 오메 으짜까! 고것도 내가 뽀사부렀으까라?
창희 (굳은 얼굴로 해주 보는데서)
바다 공업사 앞 (낮)
바다를 낀 작은 공업사. 그 앞으로 자전거 끌고 오는 창희.
옆에 해주가 상패 케이스 들고 있다.
해주 (멈추며) 여기여라. 그 자전거 일루 주쑈잉.
창희 정말 여기서 그 상패 고칠 수 있는 거야?
해주 그렇당께요. 울 아부지가 여기서 일하신께, 식은 죽 먹기지라.
(자전거 건네받으며) 여기서 쪼끔만 기다리쑈잉. 언능 고쳐올텡께.
자전거 끌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숨 쉬고 보는 창희 얼굴에서.
동, 작업실 (낮)
용접모 쓰고 있는 사내. 용접봉 든 체 잠시 망설이다가 부서진 철판에
갖다 댄다. 파바박! 불꽃이 튀자, 기겁하며 용접봉 놓아버리는데,
해주 (E) 아부지!
사내, 멈칫 돌아보면 상패 케이스 든 체, 자전거 끌고 들어오는 해주.
해주 음마... 안 계시네. (사내보며) 우리 아부지 못 봤다요?
사내, 용접모 벗으면 드러나는 얼굴. 강산이다.
해주 음마? 누구시다요?
강산 넌 누구냐?
해주 나가 먼저 물어봤구만. 여긴 울 아부지 공업산디 그짝은 누구다요?
강산 니네 아버지? 니네 아버지가 최사장이냐?
해주 아닌디... 우리 아부진 천자, 홍자 철자 쓰시는디요.
강산 으~응! 천씨? 새로 왔다는 그 어벙한 기사 아저씨? 몰라. 지금 없네?
해주 (약간 기분 나빠 강산의 용접모와 장갑을 확 뺏는다)
강산 뭐야, 너?
해주 으째 남의 걸 쓴당가요! (하고는 용접모와 장갑 낀다)
강산 야! 너 뭐 하려는데?
대꾸 않고 용접봉 드는 해주. 자전거 앞으로 가 부러진 살을 용접한다.
불꽃이 튀자, 움찔 물러나는 강산. 아무렇지도 않게 용접하는 해주.
강산, 눈 휘둥그레져 보는데, 자전거 용접 끝내고 상패 케이스를 여는 해주. 안에서 부러진 상패 꺼내 일각에 고정시키고, 다시 용접하려는데,
강산 야! 그거 안 돼!
해주 (보면)
강산 야! 이 바보야! 그거 황동이잖아?
해주 (그 말에 마스크 벗고) 지 바보 아닌디요?
강산 바보 아닌데, 구리를 아크용접기로 붙이냐?
그건 산소용접에 붕사까지 뿌려야 붙어!
해주 붕... 고것이 뭐다요? (하는데)
창희 (E) 아직 멀었니?
돌아보면, 창희가 들어온다. 강산과 시선 마주치고 놀라는 두 사람.
강산 어!! 니가 여기 웬일이냐?
창희 (보고 말 못하는데)
강산 (뭔가 생각하고 해주가 든 상패 빼앗아 확인하고는) 야아~ 박창희!
해냈구나! 역시 천재야. 근데 이게 어쩌다 깨졌냐?
해주 (창희 보며) 둘이... 아는 사이다요(여)?
창희 (대꾸 않는데)
강산 (상패 글 읽는) 전국 수학경시대회 대상... 짜식들, 뭔 대상을 이딴 걸로 만드냐. 내가 새 걸로 하나 만들어 줄까? 순금으로 팍! 된 거!
창희 줘. (강산에게서 상패 빼앗아 자전거 앞으로 가는데)
강산 얌마! 붙여야 할 거 아냐? 니네 아버지 기다릴 텐데.
창희 (그 말에 걸음 멈추는데서)
해풍 조선소 안 (낮)
손에 봉지 든 체, 입 딱 벌어져 오는 해주. 고개 꺾고 위를 올려다본다.
거대한 철판을 절단하고... 이어 붙이고... 용접하는 모습들...
생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광경에 해주, 넋이 나갔다.
해주 여기 조선소 아녀라? (둘러보며) 워메... 뭣이 저렇게 크당가?
이 철판은 다 뭐다요?
강산 배지, 뭐겠냐?
해주 이 쇳덩어리가 배라고라?
강산 블록! 이걸 붙이면 배 선체가 되는 거지.
해주 (정신없이 보다가) 그래서 배가 그라고 컸구마이. (하고는)
오메? 저것이 거시기 골리앗 크레인이지라? (하고 가려는데)
강산 야! 너 용접 안 하냐?
해주 (멈칫) 음마... 내 정신! (창희 보며) 오빠, 죄송하구만이라... 깜빡했소.
창희 (말없이 보는데서)
동, 작업실 안 (낮)
들어오는 강산. 따라 들어오는 해주와 창희.
각종 용접기와 작업대, 기구들이 있는 곳이다.
강산, 창희에게 손 내밀면, 가방에서 상패 꺼내 건네주는 창희.
강산, 작업대에 상패 고정시키고, 산소용접기와 장갑을 가져온다.
강산 (힐끗 해주 보고) 내가 해도 되는데, 니가 해 볼래?
해주 (장갑 끼고는) 용접모는 없소?
강산 이건 불꽃이 많이 안 튀니까, 필요 없을 걸?
해주, 산소용접기 작동하면 카바이트 불빛같이 불꽃이 새나온다.
해주 오메~ 겁나게 쎄네.
(하고 부러진 부분 용접한다. 열기에 땀 뻘뻘 흘리는데)
강산 잠깐만!
해주 (멈추면)
강산 (붕사 가루를 들고 와 상패에 뿌리며) 플럭스. 붕사가루야. 구리엔 불순
물이 많아 이걸 뿌려야 용해가 잘 되거든. 이게 녹으면 다시 용접해.
(점프)
땀에 흠뻑 젖어 용접하는 해주. 그 모습 신기하게 보는 강산.
창희도 진지하게 해주를 본다. 용접된 상패를 사포로 문지르는 해주.
마침내 말끔하게 붙은 상패를 창희에게 내민다.
해주 어짜요? 감쪽같지라?
창희 (상패 보고 쳐다보며) 넌 어떻게 여자애가 이런 걸?
해주 (헤헤 웃고) 울 아부지한테 배웠지라. (강산 보며) 근디, 이 오빠보다는
한참 모자라는 거 같은디..
강산 그야 당연하지. 너 용접이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아냐?
탄소아크, 금속아크, 테르밋, 원자수소, 고주파, 초음파, 전자 빔...
셀 수도 없지.
해주 워메! 고걸 다 해봤소?
강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너도 쪼끔 소질은 있네.
이마에 땀 닦으며 웃는 해주. 강산, 그 모습 보는데..
해주 오빠, 쪼까 줘볼라.
창희에게 도로 상패 뺏는 해주. 두리번거리다가 마땅한 게 보이지 않자,
입으로 호호 상패 불고 웃옷으로 닦는다.
해주 (도로 주며) 광택제가 있으면 좋았을텐디... 미안해서라.
창희 (받으며 해주 얼굴 다시 보는데서)
동 조선소 앞 (낮)
가방 메고 자전거 끌고 나오는 창희.
해주가 따라 나오다가 아쉬운 듯 돌아본다.
해주 들어간 김에, 큰 배 한 번 봤으믄 원이 없겄는디..
창희 보지 그랬어?
해주 (한숨) 아녀라. 집에 가서 밥해야되요.
창희 (멈칫) 니가 밥을 한다고?
해주 ... 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부렀네.
창희 집이 어딘데? 데려다 주께.
해주 (밝아지며) 진짜요?
뚝 길 (저녁)
달려가는 창희의 자전거. 해주, 봉지 든 채 창희의 자전거 뒤에 타고 있
다. 자전거, 덜컹거리자 창희의 옷자락을 살짝 잡는 해주.
이내 손 놓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페달 밟는 창희.
해주 집 앞 (저녁)
다가와 멎는 창희의 자전거. 비닐봉지 들고 내리는 해주.
창희 (집 보고는) 여기니?
해주 야... 고맙소. 덕분에 겁나게 빨리 와부렀네.
창희 ... 갈게.
해주 야. 조심해서 가쑈잉. (꾸벅 인사하면)
창희 (자전거 타고 가고)
해주 (뒷모습 보며) 얼굴도 겁나 잘 생긴 사람이 공부까정 잘 하는 구마 이.
근디 어째 저라고 무뚝뚝하다냐? (하고 미소 짓다가) 으미! 저녁!
(하고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데서)
도현 집, 창희 방 (밤)
감격한 얼굴로 상장과 상패 보는 기출. 창희가 무덤덤하게 서 있다.
기출 이놈의 자식! 해냈구나.
창희 ....
기출 그래, 니가 탈 줄 알았다. 니가 누군데... (얼굴 어루만지며) 아버진 한번 도 의심해 본 적 없다. 너는 최고니까. 아무도 널 못 이기니까.
하고는 책장에 상패 놓는 기출. 그 옆에도 다른 상패들이 즐비하다.
기출 밥 안 먹었지? 아버지가 고기 사 놨다. 조금만 있어.
하고 나가면,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창희. 상패를 들어본다. 그 얼굴에.
(플래시백)- 씬20. 조선소 작업실 안
땀 뻘뻘 흘리며 용접하는 해주의 모습.
(현재)
저도 모르게 미소 머금는 창희 얼굴에서.
동, 도현 집 정원 (밤)
불이 환히 켜진 가운데, 골프 연습대 놓여 있고, 도현이 공을 치고 있다.
포물선을 그리며 어둠 속의 논으로 날아가는 공.
그 앞에 불안한 얼굴로 서 있는 기출.
기출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도현 (공치며) 배 밭 문제, 잘 진행되고 있나?
기출 예. 땅 주인들한테 얘기 중입니다. 큰 문제없을 겁니다.
도현 문제가 없는 게 아니야. 벌써 생겼어.
기출 예?
도현 (다시 공치고) 해풍조선, 강대평이가 그 땅을 노리고 있단 말야.
기출 (놀라) 아니, 그 양반이 왜?
도현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영감 아니야?
남이 차린 밥상 날로 먹으려는 거지.
지 영역 침범 당하는 것도 못 참는 거고.
기출 (말 못하고 보는데)
도현 이대로는 안 돼. 그 영감이 덤비기 전에, 더 빨리 해치워야 돼.
자네, 밤 일 좀 해야겠어.
기출 (멈칫 보는데서)
배 밭 일각 (밤)
일단의 사내들. 플라스틱 통을 들고 배 밭 사이를 누비며,
배나무 아래 구멍을 뚫고 깔때기를 꽂아 액체를 쏟아 넣는다.
그 모습 불안하게 보는 기출 모습에서 F.O.
중학교 전경 (낮- F.I)
동, 교실 안 (낮)
선생에게 성적표를 받는 학생들.
선생 (학생들 앉으면) 이번 기말고사도 박창희가 전교 1등이다.
모두 박수 한 번 쳐주그라.
학생들 일제히 박수친다. 창희 옆의 상태, 가장 열심히 치는데,
힐끗 일문을 의식하는 창희. 일문 얼굴이 굳어 있다.
선생 마, 니들도 알다시피 창희는 개교 이래 최고 점수를 받은 기라.
1학년 때부터 여태까지, 한 문제도 안 틀리고 올 백이다.
뭐 느끼는 기, 없나? (하는데)
볼펜을 힘주어 책상에 누르는 일문. 볼펜이 구겨진다.
선생 (멈칫 일문 의식하고) 아... 일문이도 물론 억수로 잘 봤다.
창희만 아이면, 일문이도 개교 이래 최고 점순데...
자, 일문이를 위해서도, 박수 한번 쳐 주자!
학생들, 다시 박수치는데 더 일그러지는 일문.
선생 그라고, 강산이는 역시 개교 이래 최고로... 점수를 몬 받았다!
빵집 하는 것도 아닌 아가, 우째 전부 빵점이고?
학생들, 와르르 웃는데, 강산 하품한다.
학교 앞 (낮)
강산, 가방 메고 걸어오다가 멈칫 본다. 그 시선에 앞에 걸어가는 해주.
강산 (빙그레 웃으며) 어이! 땜쟁이!
해주 (멈칫 돌아보고) 뭔 이름을 그르케 부른다요?
강산 땜 잘 해서 땜쟁이라 그러는데, 왜? (하고는) 집에 가냐?
해주 글믄, 이 시간에 학교 가겄소?
강산 야, 왜 이렇게 톡톡 쏴? (하고는)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하는데)
인화 (E) 산이 오빠!
두 사람, 보면 인화가 달려온다. 다가와 냉큼 강산의 팔짱을 끼는 인화.
해주 힐끗, 째려보는데...
강산 야, 너 뭐 하냐?
인화 어휴!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요새 통 집에도 놀러 안 오고!
강산 내가 너한테 놀러가서 뭐 하겠냐?
인화 그러지 말고 잠깐 와 봐. 모레 뭐 해? 일요일이잖아?
강산을 끌고 가는 인화. 끌려가며 주춤 해주를 보는 강산.
심드렁한 얼굴로 보다가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해주.
도현 집 거실 (낮)
소파에 앉아 성적표 보고 있는 도현. 그 앞에 일문이 앉아 있다.
도현 이번에도 2등이구나... 1등은 또 창희냐?
일문, 고개 숙인 채 대답 않는데, 금희가 차 들고 와 놓아준다.
금희 2등도 정말 잘한 거잖아요. 늘 몇 문제 틀리지도 않는데...
(일문 보며) 일문아, 괜찮아. 학원 갈 시간 안 됐니?
일문 (일어나며 도현에게) 죄송합니다.
도현 나한테 죄송할 게 아니고, 니 스스로에게 물어 봐.
왜 창희한테 항상 뒤지는지.
일문 (말없이 가방 들고 돌아서면)
금희 너무 부담주지 말아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또 몰라요.
도현 당신, 사자하고 승냥이 차이가 뭔지 알아?
금희 (보면)
도현 배부른 사자는 승냥이를 이기지 못 해.
일문 (현관문 나서려다가 우뚝 멈추는데서)
동, 정원 (낮)
일문, 걸어오다가 멈칫 본다. 그 시선에 파라솔 벤치 아래 있는,
창희와 기출이 보인다. 성적표 보는 기출. 일문, 그 쪽으로 다가가는데.
기출 (못 보고) 일문이는 또 2등이냐?
창희 ... 예.
기출 (일순 와락 끌어안으며) 창희야. 고맙다. 아버지가 너 때문에 산다.
하는데, 일문 발견하는 창희. 굳어지며 기출 밀어낸다.
기출도 일문 발견하고 황급히 성적표, 셔츠 윗주머니에 넣는데,
벤치로 가 앉는 일문.
일문 아저씨! 물 한잔만 가져 와요.
기출 (멈칫 보고) 어? 어! 알았어! (가려는데)
창희 아버지, 제가 갈게요.
일문 야! 나 지금 아저씨한테 시켰잖아?
창희 (보는데)
기출 그래. 일문아, 내가 금방 갖다 줄게. (하고 가면)
창희 (불안한 얼굴로 보는데서)
(점프)
일문에게 물잔 내미는 기출. 받는 일문. 그대로 빤히 창희 얼굴 보며,
물 잔의 물을 바닥에 부어 버린다. 창희와 기출, 안색 변하는데...
일문 미안한데, 한 잔만 더 갖다 줄래요?
창희 (굳어지며 나서려는데)
기출 (막으며)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물잔 들고 다시 가고)
일문 (여전히 창희 얼굴 바라보는데서)
(점프)
기출이 내민 물 잔을 다시 쏟아 버리는 일문.
기출 왜... 왜 그러는 거야, 일문아...
일문 (창희 보며) 날이 이렇게 더운데, 안 차잖아요?
냉장고 물 좀 가져오라구요.
기출 냉장고가... 없는데?
일문 (여전히 창희 보며) 우리 집에 있잖아요?
기출 그, 그래....(하고 가려는데)
일문 엄마한테 얼음 좀 타달라고 하세요.
그 말에 우뚝 멈추는 기출. 울상이 되는데, 창희, 기출의 물 잔을 빼앗아
도현 집 쪽으로 간다. 못 본 척 그대로 있는 일문. 불안해 보는 기출.
도현 집 주방 (낮)
냉장고 문 앞에서 컵에 얼음 넣고 있는 창희.
컵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리며, 물이 넘친다.
동, 정원 (낮)
앉아서 기출 보는 일문.
일문 그렇게 좋아요?
기출 어? 뭐, 뭐가...?
일문 (피식 웃고) 그거 줘 봐요. (어쩔 줄 모르는 기출 보고) 성적표요.
기출 (보고 셔츠에서 꺼내 내밀면)
일문 (받아 보며) 개교 이래 최고... 최고...
하는데, 창희가 얼음담긴 물 잔을 들고 와 탁자에 놓는다.
그 물잔 들어 그대로 성적표에 붓는 일문. 창희, 일그러지는데,
일문 그거 알아요, 아저씨? 그래봤자, 아저씨는 우리 집 종이야.
순간, 그대로 일문에게 돌진하는 창희. 턱을 후려갈긴다.
의자와 함께 넘어지는 일문. 그 위에 올라타 마구 때리는 창희.
기출 (놀라) 창희야! 왜 이래? 미쳤어!
기출, 창희를 떼어내려 하지만, 계속 일문을 때리는 창희.
기출 이놈의 자식이! 그만 해! 그만 하라고!
하고 창희를 마구 때린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자, 간신히 떼 놓고
창희의 뺨을 후려갈긴다. 창희, 붉어진 눈으로 기출 보는데,
일어나는 일문. 입가에 피가 흐른다. 태연한 얼굴이다.
일문 이제 다 때렸냐? 개교 이래 최고 주먹이네?
기출 일문아. 미안하다, 미안해...
일문 (턱 어루만지고는) 아~ 오늘 학원 못 가겠네. (하고 집 쪽으로 가면)
기출 (붙잡으며) 일문아! 안 돼! 가지 마! 일문아!
일문 아, 왜 이러세요?
기출 제발 가지 마. (창희 보며) 창희야, 이놈아! 뭐 해?
어서 잘못했다고 빌어!
창희 (버럭) 아버지! (하는데)
기출 (일문 앞에 털썩 무릎 꿇고) 내가 대신 빌게. 일문아, 잘못 했다.
내 잘못이야. 내가 창희를 잘 못 가르쳤다.
창희 아버지, 왜 이러세요! 일어나요!
기출 (무릎 꿇은 채) 내가 잘못했다. 일문아... 용서해라.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가지 마.
창희 (울며) 아버지! 아버지! (하고 우는데)
일문 아~아! 정말 눈물 나 못 보겠네. 영화 찍냐?
하고는 기출 뿌리치고, 대문 쪽으로 걸어가는 일문.
그 모습 보다가 허물어지며 흐느끼는 기출. 울며 이 악무는 창희.
산 정상 일각 (낮)
1부 씬 51의 산이다. 달려오는 창희. 숨이 턱에 걸려 멈춘다.
그 아래에 조선소의 전경이 보인다. 아악! 소리지르는 창희.
계속 탈진할 때까지 소리지른다.
결국 주저앉으며 눈물 글썽한 얼굴로, 아래 내려다보는 창희.
배 밭 일각 (낮)
걸어오는 정우. 문득 걸음 멈추고 어느 큰 나무를 바라본다.
그 나무 아래, 아기를 안은 학수와 젊은 금희가 선다.
현재의 정우를 보는 과거의 학수. (과거와 현재 공존)
학수 (정우 쪽을 보며) 뭐해? 빨리 안 오고.
현재의 정우, 학수가 가리킨 옆을 보면...
삼각대위의 사진기 타이머 작동시키는 과거의 정우. (군대 가기 전)
정우(과) 다 됐습니다~ (타이머 누르고 학수 곁으로 뛰어가 앉으며)
자, 김치요. 형님, 형수님 활짝 웃으셔야 돼요. 하나, 둘, 셋! (하면)
찰칵! 찍히는 소리와 함께 환하게 웃는 학수, 금희, 정우.
그대로 정지 되며 사진이 된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현재의 정우, 큰 나무를 보면 아무도 없다.
정우, 쓸쓸한 얼굴 되는데, 배 밭에서 나오다가 보는 농사꾼 노인.
노인 거서, 뭐 하노?
정우 (멈칫 보고, 꾸벅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어르신... 작업하시나 보죠?
노인 오이야. 배가 자꾸 죽어가, 큰일이다.
정우 배가 죽어요? 왜요?
노인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저 밑에 석유화학단지 공해 때문에 죽는다 카고..
어떤 사람은 땅이 다 됐다 카고... 내보다 자네는 어떻노?
집에 묵을 거는 있나?
정우 예. 어르신이 주신 거 아직 남았습니다.
노인 거, 사람 참말로... 뭐 할라꼬 그 빈집에 드가서 사노?
우리 집에 남는 방도 있는데...
정우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노인 뭐 필요한 거 있으모, 언제든지 오거라. 자네 형님 생각하모,
우리 마을 사람들 다 맘이 아푸이끼네.
정우 예. 고맙습니다. (하고 미소 짓는데서)
해주 동네 일각 (저녁)
정우, 굳은 얼굴로 걸어오는데...
해주 (E) 아저씨!
정우, 멈칫 보면 해주가 나물바구니 들고 걸어온다.
해주 (다가와) 어떤 아저씨 뒷모습이 저라고 멋있나 하고 봉께,
역시 우리 아저씨구만이라.
정우 (미소 띠고 머리 쓰다듬으며) 고맙다. 나 알아주는 건 너 뿐이네?
(바구니 보고) 나물 뜯어 오니?
해주 야. 아저씨는 으디 갔다오시요?
정우 바람 좀 쐬러. 근데, 넌 학교 마치면 맨날 나물 뜯어?
해주 엄니가 배불러서 일하시기 힘등께. 긍께 지가 저녁 꺼리는 지가 해야지
라.
정우 오늘은 저녁 꺼리 있을 거야. 가자.
해주, 의아해 보는데, 해주의 어깨에 손 올리고 가는 정우.
해주 집 마당 (저녁)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웃으며 들어서는 해주와 정우.
달순, 부침개를 지지고 있고, 홍철이 평상에서 먹고 있다.
정우 야~ 이거 냄새가 죽이는데요?
달순 (모처럼 웃는 얼굴) 아니, 어디 갔다 와요? 찾았는데... 앉으세요.
정우 예! (하고 평상에 앉으면)
해주 (달순에게 얼른 가며) 엄니, 힘드신디 머던다고 부침개까지 부친다요.
이리 주쑈. 지가 부칠라.
달순 오냐, 우리 복띵이도 이제 좀 먹어보자. (평상에 올라가고)
해주 (달순과 교대해 부치며) 근디, 갑자기 믄 부침개다요?
홍철 여그 윤선상님이 밀가루 한 포대하고 감자 한 박스를 갖다 줬구마이.
해주 아저씨가요? (정우 보면)
정우 (웃으며) 나도 마을 사람들한테 얻은 거야.
난 부침개 부치는데 소질 없어서, 우리 해주 음식 솜씨 덕 좀 볼려고.
해주 아따... 참말로 고맙소... 근디, 오빠하고 영주는..?
달순 (먹으며) 벌써 한 판 먹고 잔다.
아이고, 이걸로 어떻게 월급날까지 먹고 살는지 모르겠네.
홍철 머 으뜨케 안되겄능가? 금방 죽을거 같애도 요라고 집도 생겨블고.
묵을 것도 생기고. 하이고, 역다가 막걸리 한잔만 딱 묵었으면 좋겄다.
해주 (보고) 아부지, 막걸리 한 되 받아 드리까라?
홍철 글믄 좋겄다만, 돈이... (하며 빈 주머니 뒤지는데)
정우 제가 사겠습니다. (하는데)
해주 아녀라. 지한테 돈 있구만이라. 아부지, 갔다오께라 (하며 나간다)
홍철 아니, 쟈가 뭔 돈이 있어서...
(하다가 멈칫 보면 마당가에 캐리어와 빈 박스만 놓여 있다)
정우 (해주 간 쪽 보며) 가족들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특히 해주가 예쁘네요, 조카 삼고 싶을 정도로요.
달순 걔가 예뻐요? 눈도 차~ 암 나쁘시네.
근데, 고시 공부도 좋지만, 왜 이런데서 혼자 살아요?
정우 (멈칫 보고, 씁쓸하게) 가족이 없습니다.
달순 세상에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고아도 아이고?
홍철 (달순 툭 치며) 뭔 사연이 있겄제. (하고 눈치 보면)
정우 (씁쓸한 얼굴로 고개 돌리는데서)
뒷집, 정우 방 (밤)
한쪽에 행정고시 관련 책들이 보이고, 상 위에 법전 펼쳐져 있다.
공부하다가 문득 고개 드는 정우. 그 얼굴에..
대평 (E) 니, 너그 형이 농사꾼들한테 나눠 준 배 밭 알제?
그거를 장도현이가 그저 묵을라 칸다!
고민스러운 얼굴 되다가, 머리 흔들고 다시 앉아 공부하는 정우.
도현 집 서재 (밤)
창 밖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도현. 일순 몸 돌려 일각의 금고를 연다.
안에서 뭔가를 꺼낸다. 학수에게 뺏은 필름과 판독한 자료이다.
자료제목 보이면- 극비, JDZ 한일공동 개발구역 석유매장량과 위치-
표기되어 있고, 그 아래에 – 한반도 대륙붕 석유매장량과 위치-
부제가 보인다. 그 밑으로 빽빽하게 일본어가 쓰여 있다.
도현 (고개 들며) 학수야, 두고 봐라. 내가 어떻게 우리 꿈을 이루는지...
(결연한 그 얼굴에서 F.O.)
해주 집 마당 (새벽- F.I)
수돗가에서 바가지에 쌀 씻고 있는 해주.
일순 문을 꽝! 차고 험상궂은 사내 셋이 들어온다.
해주 (놀라 일어나며) 누구시다요?
두목 (힐끗 해주 보고) 여기 맞아?
사내1 틀림없습니다.
해주 (다가가) 누군디 식전 아침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다요! (하는데)
해주의 바가지를 쳐 내버리는 두목. 바가지가 날아가 쌀이 흩어진다.
해주 (놀라) 워메! 이것이 뭔 짓이당가요! (하고 황급히 흩어진 쌀 줍는데)
두목 (사내1,2에게) 끌어내!
동, 안방 (새벽)
문 박차고 들어오는 사내1. 자던 홍철과 달순, 영주가 놀라 일어난다.
불 켜고는 다짜고짜 물건들을 끌어내는 사내1.
달순 어머나! 이게 뭐야? 왜 이래!
동, 마당 (새벽)
쌀 줍던 해주, 놀라 보는데, 방안에서 가재도구들이 마구 던져져 나온다.
영주의 울음소리가 터지고, 뒤이어 홍철과 달순이 튕겨져 나온다.
뒤따라 나오는 사내1. 홍철을 걷어차면, 두목 앞에 나뒹구는 홍철.
해주 (달려들며) 아부지!
홍철 (두목 보고 사색이 되는데)
두목 아이고! 천선장! 오랜만이네!
홍철 (황급히 해주 가리며) 어, 거... 거시기...성님...(하는데)
상태 방에서 사내2가 상태를 끌고 나와 내동댕이친다.
달순 상태야! (하고 사내들 보며) 여길 어떻게 알고...?
두목 배부른 아줌마 성깔 지랄 맞다고, 착한 트럭아저씨가 말씀해 주시두만.
달순 (흠칫하고) 그 벼락 맞을 놈이...
홍철 (무릎 꿇으며) 성님들... 설마 지가 돈 띠 묵을라고 여기 왔겄소?
워쩌케든 돈을 갚을라고 일을 찾다봉께, 여기까지 굴러온 것이지라.
두목 아이고, 동생! 그래서 밤에 몰래 마실가는 것처럼 애들 주렁주렁 달고
토끼셨어? (하는데)
사내1 (나오며) 형님, 이것들 어디다 숨겼는지 돈 될 거는 하나도 없는데요?
순간, 꿇어앉은 홍철을 걷어차는 두목. 쓰러지는 홍철.
해주 (두묵에게 달려들며) 우리 아부지 건들지 마쑈! 거기가 뭔디!
두목 (해주를 밀치고)
해주 (바닥에 나가떨어지고)
홍철 (화나 두목에게 달려들어) 애한티 뭔 짓이당가!
사내1 (달려드는 홍철의 때려눕히고 마구 밟는다)
달순 (사내1에게 달려들어) 아이고, 왜 이래? 말로 해! 말로!
사내1 (달순 팔 뿌리치며 홍철 다시 밟다가 비명 지른다)
해주가 사내1의 다리를 물고 있다. 사내2, 해주를 떼어내 내동댕이친다. 그 모습 본 상태 달려들다가, 사내2에게 얻어맞고,
홍철 덤벼들다가 두목에게 걷어차이며 나가떨어진다.
방에서 나오다가 그 모습 보고 엉엉 우는 영주.
달순 그만 해! 그만 하라고! (두목 붙잡다가 갑자기 주저앉는다) 아이고!
아이고! 배야! 애 떨어지네! (엄살) 아이고! 이놈들 땜에 애 떨어지네!
그 말에 멈추는 사내1, 2... 두목, 보다가 해주의 뒷덜미를 잡아챈다.
두목 그래, 애 떨어지면 곤란하지. 대신에 이 기집애라도 팔아야겠다.
얘들아, 가자! (해주 끌고 가면)
홍철 해주야!
해주 (끌려가며) 아부지!
동, 집 밖 (새벽)
해주 끌고 나오는 두목. 사내1,2 따라 나오는데, 뒤따라 달려오는 홍철.
홍철 해주야!
해주 아부지!
홍철, 해주 붙잡는데 사내1이 후려갈긴다. 나가떨어지는 홍철.
그 모습 보고 두목의 손을 깨무는 해주.
두목 비명 지르며 해주를 놓자, 홍철에게 달려가 그 앞을 막는 해주.
두목 이 기집애가 죽고 싶어! (하고 다가가는데)
홍철 (얼른 해주 앞을 막으며) 차라리 나를 죽이쇼잉! 야는 안 된당께!
해주 (다시 나서며) 아녀라! 지를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팔고 싶으면 팔아붓
쑈! 대신에 우리 아부지 때리지 마랑께!
두목 (멈칫 보는데)
해주 한번만 더 울 아부지 건들믄, 나가 혀 깨물고 콱 죽어 버릴 것이여!
죽어서 구신이 돼서라도 당신들 카만 안 둘 것이여!
긍께, 으디 마음대로 해봇쑈!
두목 (약간 질린 듯) 어이! 천홍철!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곱게 말할 때 이자라도 꼬박꼬박 갚아. 어디 또 토끼면,
그때는 니 마누라 배 속 애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알았어?
홍철 (비참한 얼굴로 고개 끄덕이면)
두목 가자, 얘들아.
돌아서 가는 두목과 사내1, 2.
그 모습 보다가 주저앉으며 갑자기 소리 내 엉엉 우는 홍철.
해주 (홍철을 붙잡으며) 아부지... 울지 맛쑈. 인자 갠찮하요.
홍철 (아랑곳 않고 울고)
해주 울지 말랑께요. 어른이 어째 우신당가요? (하며 같이 우는데)
해주를 끌어안고 우는 홍철. 두 사람 모습에서.
도현 집 거실 (낮)
소파에 편하게 기댄 채, 전화 통화하고 있는 인화.
인화 오빠, 왜 거기 있어? ... 어머! 잊었어? 내일 우리 집에 오기로 했잖아!
강대평 집무실 + 도현 집 거실 (낮)
대평의 의자에 앉아 수화기 들고 있는 강산. 도현 집 거실과 교차.
강산 어, 깜박했다야. 내일은 나 안 되는데?
인화 (소파에서 몸 일으키며) 안 돼에! 엄마한테 얘기했단 말야!
음식 엄청 많이 할 거야!
강산 야, 니 집에 사람 많잖아? 창희도 있고, 일문이도 있고...
내 것까지 다 먹어라. 난 내일 갈 데 있어.
인화 어디 갈려 그러는데!
강산 애들은 몰라도 된다.
인화 우씨! 말 안 하면 나 오빠 할아버지네 회사로 찾아갈 거야! 어딘데?
강산 (끊고, 인화 아웃되면) 쪼꼬만 게 잘 생긴 건 알아가지고 작업질이야?
하는데, 문 열고 들어오는 대평. 멈칫 보는 강산.
대평 (보고) 이노무 자석! 어데 앉아 있노?
강산 (태연하게) 장차 저한테 물려주실 자리요.
앉아서 이 회사를 어떻게 말아먹을까, 고민했어요.
대평 또 까분다. 용접은 우예 됐는데? 다 배웠나?
강산 (일어나며) 아이~ 그것 때문에 왔다구요.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가 원하는 용접기술 다 배우면,
저한테 뭐 해 주실 건데요?
대평 이놈아가 또! 할애비 델꼬 거래할라카나?
강산 당근이죠. 생기는 게 없는데, 이 고귀하신 몸이 왜 그런 허접일을 해요?
저도 은근 바쁜 몸이라구요. (하고 헤헤 웃는 얼굴에서)
바다 공업사 마당 (낮)
쪼그리고 앉아 바다 바라보는 홍철. 얼굴이 여기저기 깨져 있다.
홍철,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데, 그 뒤에 보자기 들고 나타나는 해주.
해주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다가가며) 아부지...
홍철 (멈칫 돌아보고 힘없이) 으째 왔다냐..
해주 (옆에 앉으며 짐짓 밝게) 아부지, 아무 것도 안 드셨을 거 같아서라.
윤선상님이 주신 감자 쪼까 쪄왔어라. (보자기 풀면 찐 감자 몇 알)
홍철 ....
해주 (건네며) 한 개 드셔 보실라. 소금간을 해서 짭짤한 것이 겁나게 맛있소.
홍철 생각 없구마이.
해주 아이, 그라지 말고 하나 들어봇쑈. 지가 요거 찐다고 을마나 고생했는디.
홍철 ... 그르냐? (하고, 감자하나 들어 억지로 먹는데)
해주 아부지..
홍철 어?
해주 지가 말이요. 빈병을 주워 팔든, 뭣을 하든 그 사람들 이자 갚는디 보탤 텡께, 기운 차릿쑈..
홍철 (울컥 목 막히며) 임마, 너가 왜 그딴 걸 헌다냐?
아부지 월급 받으믄 이자는 갚을 수 있어야. 긍께, 너나 걱정 말아야.
아부지는 암시랑토 않항께.
해주 그래도 아부지 뒷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서라.
(글썽해지며) 아부지 기운 없으믄, 지도 아프당께요.
홍철 괜찮당께 그러네이. (눈물 감추려 고개 돌리다가) 카만있어봐, 해주야...
쪼까 있으믄 저 배 수리 끝나 시운전 나갈 텐디, 너도 태워주끄나?
해주 (일순 반색하며) 참말이요? 아부지 꼭 태워 줏쑈이!!
지 배 타본지 너무 오래 됐소!
홍철 (보고 글썽해 웃는데서)
바다 + 어선 안 (저녁)
운전하고 있는 홍철. 옆에 해주가 신나서 바다 바라본다.
해주 워메! 이것이 을마만이여? 가슴이 뻥 뚫려 버리네이!
아~따! 좋다!!
홍철 (웃으며) 그라고 좋냐?
해주 말해 머다긋소! 쩌그 갈매기 맹키로 하늘로 붕 나는 기분이구만!
홍철 글믄 참말로 날게 해주끄나?
해주 야?
홍철 너가 운전 한 번 해 봐라.
해주 (놀라) 지가요?
홍철 으째? 자신 없어?
해주 아녀라, 하고는 싶은디, 그래도 될랑가 몰라서요.
홍철 뭔 걱정이다냐? 아부지가 있는디... 일루 와 봐봐.
홍철, 해주를 자신의 앞에 세우고 운전대를 잡게 한다.
뒤에서 해주의 손을 잡고 같이 운전하는 홍철.
홍철 요렇게, 오른쪽으로 가고 자프믄 오른쪽으로 돌리고이.
왼쪽으로 가고 자프믄 왼쪽으로 틀믄 되는 것이여.
해주 하따... 겁나 신기하네요이. 운전이란 것이 요런 것이구마이.
홍철 그냥 배 타는 것보다 훨 좋지야?
해주 그라요... 아부지, 참말로 하늘을 나는 거 같어라.
홍철 글믄, 눈 감아볼래?.
해주 (멈칫하고 눈 감으면)
홍철 파도가 느껴지지야?
해주 야.
홍철 해주야, 시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여.
파도가 아무리 쎄도 말이여. 시방 이 기분을 기억한다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알긋냐?
해주 야.
홍철 눈을 감고 있어서 깜깜해 암껏도 안 보여도 말이제.
시상에 빛이 없는 건 아닌께, 움츠려 들지 말고. 알겄냐?
해주 야.
홍철 인자 눈 떠라.
해주 (눈 뜨고) 워미! 아부지... 참말로 빛이 세상에 가득하구마이라!
홍철 그라제? 워메! 아부지도 신나는구마이.
신난 김에 노래나 한 곡조 땡겨불자!
하고 배에 연결된 마이크 꺼내 켠다.
해주 입에 마이크 대고 같이 노래 부르는 두 사람.
두사람 (같이) ♪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가면 울산이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산시~
붉게 피어나는 동백 꽃잎처럼~ 우리 해주 예쁘고~
노래 바락바락 부르는 두 사람.
황혼의 바다 위에 두 사람의 노랫소리 울려 퍼진다. 그 모습에 F.O.
바다 공업사 앞 (다음 날, 낮- F.I)
다가와 멎는 택시. 강산이 내린다.
동, 공업사 마당 (낮)
들어오는 강산. 기웃거리다가 작업실 쪽으로 간다.
동, 작업실 (낮)
직원1이 엔진 고치고 있다. 들어와 둘러보는 강산. 실망하는데,
직원1 (보고) 누고?
강산 아저씨. 여기 애 하나 안 왔어요?
직원 애?
강산 거, 동글동글하게 생겨가지고, 땜질 잘 하는 앤데...
(하다가) 아! 거 좀 어벙하게 생긴 천기사 딸...(하는데)
해주 (E) 으째 차꼬 어벙하다 그라요!
강산, 멈칫 보면 해주가 화난 얼굴로 보자기 들고 서 있다.
강산 (반가운) 야! 땜쟁이, 왔구나!
해주 내 이름 그르케 부르지 마라고 그랬지라!
강산 글쎄, 어떡하냐. 입에 딱딱 붙는데?
해주 나가 먼 껌이다요? 딱딱 붙게?
강산 (피식 웃고 보자기 보며) 그건 뭐냐? 먹을 거냐?
해주 그짝하고 상관 없어라! (하고 나가면)
동, 마당 (낮)
나오는 해주. 강산 따라 나오며,
강산 뭔데 그래? (하고 보자기 잡는다)
해주 아, 이거 노랑께요. 노란말이요!
강산, 장난치듯 잡아당기면 보자기 끈 툭 풀리며,
안의 양푼에서 찐 감자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강산 뭐야? 감자잖아!
해주 염병! 너 뭐다냐! 뭐 이런 싸가지가 다 있당가! (하고는 감자 줍는다)
강산 야. 감잔데 왜 그래? (하는데)
인화 (E) 산이 오빠!
멈칫 보는 강산. 해주도 감자 줍다 쳐다본다.
인화와 해주는 서로 보고 놀라고, 강산은 인상 찌푸려진다.
해주 인화야, 너가 여기 어쩐 일이여?
인화 넌 산이 오빠하고 여기서 뭐 해?
해주 (힐끗 강산보고) 여기는 우리 아부지 일하시는 덴디... 이 인간은...
인화 (강산 보면)
강산 우와! 너 진짜 무섭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 오냐?
인화 오빠가 어디든 숨어 봐. 내가 찾아내지. 근데 진짜 여기서 뭐 하는데?
강산 나도 여기서 일 좀 해야 되거든.
인화 오빠가 이딴 데서 무슨 일을 해? (다가와 팔짱끼며) 빨랑 가!
강산 야, 안 돼!
인화 엄마 기다린다니까!
강산 아~ 진짜! (끌려가다가) 야, 그럼 쟤도 데려가자.
인화 (멈칫 해주 보며) 해주를?
강산 그래! 내가 쟤 감자 떨어뜨렸거든? (해주 보며) 야! 같이 가자!
해주 싫당께! 나가 어째 거길 따라간당가?
인화 그래, 오빠! 쟤가 무슨 상관이야? 어서 가.
강산 (뿌리치며) 쟤 안 가면 나도 안 가.
인화 뭐? (기 막혀 보면)
강산 내가 쟤한테 용건이 있다고. 그러니까 쟤 안 가면 안 가! 못 가! 알았어?
인화 (울상으로 보다가 해주에게) 야, 너도 가자.
해주 싫다고. (하는데)
인화 (버럭) 야아! 제발 내 말 좀 들어! 니가 뭔데, 왜 내 말 안 듣는 거야!
해주 (놀라 보는 얼굴에서)
도현 집 정원 일각(낮)
정원에 테이블들 놓여 있고, 하얀색 식탁보가 깔려 있다.
그 위에 온갖 음식들 놓여 있고, 금희와 양남댁이 정리를 하고 있다.
일문이 의자에 앉아 시큰둥한 얼굴로 있는데,
인화 (E) 엄마!
일동 보면, 인화와 강산, 해주가 들어온다.
강산 (다가와 금희에게)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금희 그래, 어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니? 너 얼굴 까먹겠다.
강산 에이~ 설마요?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을 어떻게 까먹어요?
금희 (웃으며) 그건 그렇구나. (하고 해주 보면)
해주 (꾸벅 인사하며) 안녕하셨지라?
금희 (약간 떨떠름해) 응. 너도 왔구나.
강산 (일문 보고) 얌마! 장일문! 넌 친구 보고 인사도 안 하냐?
일문 학교에서 맨날 보잖아.
강산 그래도 이런데서 보면 반갑잖아? 어쭈, 안 반갑냐?
일문 그래... 반갑다.
강산 (피식 웃고 음식 보며) 우와! 어머니! 이거 상다리 괜찮아요?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금희 너 온다고 신경 좀 썼어. 어서들 앉아.
일동 앉고, 해주, 휘둥그레져 음식들 바라본다.
강산, 그 옆에 앉으려는데, 인화가 냉큼 끌어 자신의 옆에 앉힌다.
강산 야, 땜쟁이! 오길 잘 했지? 감자보다 훨 낫잖아?
해주 (째려보고는, 금희 보며) 거시기, 사모님...
금희 (보면)
해주 요것이 혹시 남으면, 쪼까 싸 가믄 안 될랑가요?
금희 (어색하게) 그래? 그러렴...
해주 감사합니다! 참말로 감사합니다! (일어나 꾸벅 인사하면)
강산 보고 피식 웃고, 인화는 곱지 않게 본다.
해주 집 마당 (낮)
달순, 헌 아기 옷들 들고 들어온다. 힘든 듯 평상에 앉으며 옷 펼친다.
달순 아이고, 우리 복띵이 새 옷은 못 입혀도 이거라도 얻은 게 어디야?
(고개 들며) 해주야! 해주야! (하다) 아니 이게 아직도 안 왔나?
힘들게 일어나 안방 문 열면, 비어 있다.
달순 어디 영주까지 데리고 갔나. (옆방으로 가며) 상태야! 상태야!
상태 (방문 열고 손에 만화책 든 체 내다보면)
달순 해주 와서 영주 업고 나갔냐?
상태 아닌디요. 해주 안 왔어라.
달순 그럼, 영주는 어디 갔어?
상태 그걸 나가 어째 알어라?
달순 (멈칫 불안한 얼굴로, 주변 두리번거리는데서)
도현 집, 정원 일각 (낮)
어른들 빠지고 아이들만 있다.
해주, 정신없이 음식을 먹으며 한 편으로는 봉지에 음식을 싸기 바쁘다.
인화, 찌푸린 채 그 모습 보는데,
강산 (보고) 야! 박창희!
일동, 쳐다보면 창희가 집에서 나오고, 그 뒤에 기출이 따라 나온다.
강산 집에 있었네? 야! 일루 와!
창희 (일문 보고 그대로 있는데)
일문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이리 와라. 아저씨도 오세요!
기출 (보고 망설이는데)
일문 아, 참! 오라는 말 안 들려요?
그 말에 기출, 창희를 잡고 온다. 오다가 해주 발견하는 기출.
얼굴 굳어지는데, 닭다리 뜯다가 놀라 주춤 일어나는 해주.
강산도 일어난다.
해주 ... 안녕하셨소?
기출 그, 그래...
해주 (창희 보며) 오빠도 이 집서, 살어라?
창희 (대꾸 않는데)
인화 몰랐어? 창희 오빠가 박집사 아저씨 아들이잖아?
해주 (그제야 깨달은 듯) 오메! 고것이 그르케 됐구만이라! 아이고! 돌대가리!
으째 그것을 생각 못했을까나?
강산 (기출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저 창희 친구 강산입니다.
기출 (굽실대며) 아, 예... (하는데)
일문 뭘 인사까지 해?
강산 (보고) 임마, 친구 아버님이시잖아.
일문 (피식) 아버님은 무슨? 그냥 잡일하는 사람이야.
그 말에, 강산과 창희, 동시에 얼굴 굳어지는데,
일문 어이! 아저씨, 먹고 싶은 거 들고, 창희하고 저기 가서 드세요!
기출 아, 아냐. 일 때문에 나가봐야 돼.
일문 아저씨가 뭔 일을 하는데? 잔디 깎는 거나 하면서 뭘... 군소리 말고,
저기서 먹고 있다 이거나 좀 치워요.
기출 미안해. 회장님이 시키신 일이 있어서... 나... 갈게. (하고 가려는데)
일문 어딜 가요! 내가 있으라 그랬잖아!
기출 멈추고 창희 얼굴 굳어지는데...
강산 야! 장일문! (하는데)
해주 가만 봉께, 참말로 너무 하시네요잉!
일문 (멈칫 보고) 뭐냐! 너?
해주 암만, 거시기가 이 집 거시기라도 그라제,
어른한티 엄청 싸가지가 없구만이라!
일문 뭐? 싸가지?
해주 야! 싸가지를 바가지에 밥 비벼 묵었소?
암만 봐도 우리 오빠 나이밖에 안 보이는디, 그러는 거 아니지라!
일문 (인화 보며) 야! 이 거지 기집애, 왜 데려왔어!
하고 해주에게 물 잔의 물을 휙! 뿌리는 일문. 물을 덮어 쓰는 해주.
강산 (벌떡 일어나며) 너! 죽고 싶어? 자식아!
인화 (놀라) 오빠, 왜 이래? (하는데)
해주 (일어나며) 나, 거지 아닌디요!
멈칫 보는 강산. 일문 노려보는 해주. 그런 해주를 보는 창희.
세 사람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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