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3회
1. 자막 - 제 3 부 우리, 연애나 한 번 해볼까요?
2. 거리(밤, 2 회 엔딩)- 바람에 꽃잎 흩날린다
- 진헌은 황당하게 보고,
- 삼순은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삼순 남자다... 남자다...
진헌 (고개를 절레절레) 너무 오래 굶었어...
- 삼순, 문득 진헌과 눈 마주친다. 게슴츠레~
- 진헌, 불길해 진다. 저 아줌마가 왜 저런 눈으로 보지?
- 삼순, 갑자기 진헌을 향해 달려온다
- 진헌, 겁 먹고 눈 동그래진다
- 마구 달려온 삼순, 팔짝 뛰어올라 진헌의 허리에, 목에 매달린다
진헌 (공포의 도가니다!) 왜, 왜 이래요!
삼순 (멱살을 움켜쥐고 가자미 눈으로) 꼼짝마! 넌 이제 죽었어!
진헌 (헉! 얼 빠진다) !!!
3. 오피스텔(아침)
- 옆으로 돌아누우며 중얼거리는 삼순
삼순 아저씨, 헌법재판소 따불! 개헌해야쥐~ 일처다부제로... 야, 니들 다 따라와, 다 죽었어....
- 그러다 눈 뜨면 삼순, 졸리운 눈에 무언가가 흐릿하게 보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돼지가 코
앞에 있다. 뭐야뭐야뭐야뭐야뭐야! 괴성을 지르며 펄쩍 일어나 앉는 삼순. 미간 모은 채 노려보면,
- 꿀꿀이다. 간만에 삼순이한테 휘둘려 새까맣다
삼순 (기억을 못한다) 으 드러~ (발로 툭 차 침대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이불 뒤집어쓰며
드러눕는다) 아 돼지새끼 땜에 본방도 다 못봤잖아... 속편도 칼라여야 될텐데...
- 그러나 곧 확 일어나는 삼순, 뭔가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본다. 내 방이 아니다! 어디선가
물소리까지 들린다. 욕실에 누가 있다! 삼순,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이게 머지? 여기가 어디지?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가 귀를 대 보니 마악 물소리가 그친다.
누구지? 누굴까? 눈알을 굴리다가 확 문을 열어젖힌다
- 마악 바스타월로 허리아래를 감싸던 진헌이 돌아본다
삼순 (또 눈이 훌떡 뒤집어진다) 히???
진헌 (태연자약)
삼순 (벙- 해서) 댁이 왜 여기 있어요?
진헌 ?... 내 집이니까.
삼순 (더 벙-)
진헌 가운을 입고 그녀를 지나쳐 나가며) 냄새 나니까 일단 좀 씻죠. 옷은 좀 있다 세탁소에서
가져올 거에요.
삼순 (옷? 그제야 자기 몸을 본다. 속옷 차림이다. 뒤늦은 비명이 터져나온다) 꺄악~~~~~~
- 진헌, 깜짝 놀라 돌아본다
- 삼순, 콩 튀듯 파닥파닥 뛰며 아악- 아악- 비명 질러대다가 황당하게 바라보는 진헌과 눈
마주치자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삼순 이 개쉬----끼! (달려든다) 이 나쁜 쉬끼! (맨 몸을 철썩 철썩 때리고 발로 차고 베개로
내려치고 알아서 난리법석) 개자식! 똥돼지 같은 놈! 해삼 멍게 말미잘 고등어 갈치 며루치! 감히
니가 나를 능멸해?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진헌 (황당한 표정으로 가볍게 뿌리친다)
삼순 (가볍게 뿌리쳤을 뿐인데 저만큼 날라간다) 이 쉬끼가 이젠 사람을 치네? (발딱 일어나
머리 들이민다) 죽여라 아주. 죽여, 죽여!
진헌 (더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쿡 쳐낸다) 일단 좀 씻지? 냄새 안나나?
삼순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절대서 해서는 안될 일 중의 하나가 뭔 줄 알어? 바로 술 취한 여자
건드리는 거야. 몰랐다고 시치미 뗄 거지? 오늘 내가 확실히 버릇을 가르쳐주겠어. (열 손가락을
확 치켜세우고 달려든다)
진헌 (두 팔을 잡는다)
삼순 (버둥거린다) 놔! 안놔? 놔, 이 며루치 같은 놈아!
진헌 (냉소) 남의 등에 업혀서 오줌 싸는 여잘 누가 건드리나?
삼순 (엥? 오줌?)
진헌 당신, 당신 식대로 말하면, 제대로 더티해. (팔을 확 놓고 옷장으로)
삼순 (내가 오줌을? 말도 안돼!) ... 흥, 웃기고 자빠지셔? 뻥까지 마! 난 술버릇 없어!
- 진헌, 옷을 꺼내다 말고 돌아본다. 너무너무너무너무! 기막힌 표정이다
- 삼순, 그 표정에서 모든 걸 읽는다. 졸아든다.
삼순 ... 졸긴.. 해 얌전히...
진헌 얌전히?
삼순 (점점 더 자신 없어진다) 잠꼬대는 좀 한다.. 더라.
진헌 잠꼬대만?
삼순 오바이트..는 일년에 한번쯤? 니가, 아니 사장님이 운이 없었던 거지..요.
진헌 주먹 깨나 쓴다는 말, 술친구들이 안하시나?
삼순 그건...
- 진헌, 가증스럽다. 예의 그 비웃음.
- 저 표정! 삼순, 비위 상하면서 제 정신이 돌아온다
삼순 그런 표정 하지 좀 말아요! 그게 얼마나 기분 드럽게 하는 지 알아요?!
진헌 (뭐? 날이 선 얼굴로 다가온다) 밤새도록 당신이 날 얼마나 기분 드럽게 했는지 알어?
삼순 (어? 겁난다. 뒤로 밀리면서도 고개 빳빳이 들고) 그, 그러니까 뭐하러 일루 데려와!
진헌 집은 모르고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고, 핸드폰을 배터리 다 되고,
삼순 (벽에 쿵 닿으며) 그럼! 그럼 그냥 재우지, 옷은 왜 벗겨, 왜!
진헌 (손을 확 든다)
삼순 (옴마야~ 눈을 질끈 감는다)
진헌 (삼순 머리맡의 인터폰을 들고 버튼 누른다)
삼순 ???
진헌 (보란 듯이, 위압적으로 삼순을 내려다보며) 관리실이죠? 여기 000 혼데요, 오늘 도우미
아주머니 부탁합니다. 침대 시트랑 이불 모두 갈아주세요. 환기 철저히 해주시구요. 아, 그리고
소독도 부탁합니다. 좀 깔끔하지 않은 손님이 다녀갔거든요.
삼순 (뭐시라!)
진헌 (수화기 내려놓으며) 당신 위액이 섞인 김밥, 우동, 꼼장어, 닭발, 꽁치... 화학전이 따로
없더군. 옷을 벗긴 건 생존본능이었어.
삼순 이 아저씨 정말 웃기네? 도마뱀이야? 왜 자꾸 말꼬릴 잘라먹어? 왜 반말 해, 왜!
- 그때 버튼 누르는 소리가 난다
- 진헌, 갸웃하더니 현관이 보이는 곳으로 나아간다
- 삐리리~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돌아간다. 벌컥 들어서는 나사장 (그 뒤로 그림자 같은 윤비서)
나사장 진헌이 이 자식 어딨어. 어딨냐 이 놈.
- 진헌의 얼굴에 아- 귀찮게 됐네 하는 표정이 스친다
- 보이지 않으므로 목소리만 듣고 어리둥절한 삼순
나사장 (봤다) 오냐, 이 자식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신발 벗고 올라서서 냉큼 달려든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도곡동 김여사를 그렇게 팔팔 뛰게 만들어? (꼬집으며)
뭐야. 무슨 일이야.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무슨 짓을! 못살아 정말 못살아! (하다가 삼순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기까지 한다) 어머나 세상에! 하느님아버지 부처님 예수님!
삼순 (어리둥절) ???
진헌 (아 귀찮게 됐네, 머리를 슥슥 부비고)
나사장 (떠나갈 듯이) 이 벌거숭인 누구야!!!
삼순 (벌거숭이? 속옷차림인 자기 몸을 보고는 놀라서 얼른 이불 같은 걸로 가린다)
진헌 그러니까 뭐하러 전화도 없이 오세요 예의없게.
나사장 뭐어? 예의? 너 지금 예의라 그랬냐? 오냐, 나씨 집안의 예의가 어떤건지 진정 맛을 보고
싶다 이거지? 너 이리 들어와! (진헌의 멱살을 잡고 욕실로 끌고 들어간다)
진헌 (다급해진다. 늘 그렇듯이 엄마 앞에서는 폼 안난다) 나사장 잠깐만! 잠깐 내 얘기 좀
들어봐. 나사장! 나사장님! 엄마, 어머니! (끌려들어가 문 닫힌다)
- 퍽! 퍽! 맞는 소리. 쿵! 어딘가 부딪히는 소리! 챙그렁! 비누곽 등이 날아다니는 소리. 악! 억!
엄마! 단말마의 비명들...
- 삼순, 벙- 해 있다가 절정인 양 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자, 쿡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다.
그러나 무표정한 윤비서와 눈이 마주친다. 참으로 해독 불가능한 윤비서의 표정... 삼순의
웃음기가 스르르 가신다. 머쓱해서 욕실을 가리킨다. '저 사람들 어떡해요?' 하는 눈빛으로.
윤비서, '그냥 놔둬' 하는 눈빛으로 어깨를 으쓱 한다. 아주 조그맣게
4. 삼순네 뜰
-' 삼순이 꽃밭' 이라고 쓰인 아주 몸시 오래 된 (20 여 년쯤) 나무팻말이 꽃밭에 박혀 있다. 그
꽃밭엔흔한 들꽃들이 소박하게 피어있다. 촌 아낙처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엄마 봉숙이 꽃밭 옆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류 (상치, 고추, 깨, 가지, 오이, 토마토 등등) 를 돌보고 있다.
봉숙 호호호 이게 왠일이야, 삼순이가 외박을 다 하구? 크리스마스 때도 방구들 떠매고 앉아서
속을 뒤집어 놓더니 왠일이래? 세상에, 고등학교 때 이름 바꿔달라고 가출한 거 빼곤
첫외박이잖아? 근데 어떤 놈이야? 어제 맞선 본 놈은 일찍 들어왔대구.. 이 년이 어디다 남자
숨겨놓구 시침 떼고 있었던 거 아냐? (크흐흐 절로 웃음이 난다) 이 놈이든 저 놈이든 올 가을엔
치우겠네. 가만, 식 올리기 전에 배부터 부르면 안되는데? 에이, 무슨 걱정이야, 혼수로 같이
보내지 뭐.
5. 오피스텔
- 털썩 바닥에 무릎 꿇고 앉는 진헌. 맞은 흔적들..
- 나사장과 윤비서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고, 진헌의 티셔츠를 입은 삼순은 1 인용 스툴 쯤에 따로
앉아있다.
나사장 (이 뚱녀가 영 마음에 안든다) 아가씬 옷 없어? 왜 그걸 입고 있어?
삼순 옷이.. 세탁소에서 아직 안와서...
나사장 !... 남의 집에 와서 옷을 세탁소에 맡길 만큼 우리 아들이랑 깊은 사인가?
진헌 나사장. (퍽 날라오는 티슈박스에 맞고는 끙...)
나사장 (잠시 흘기고는 다시 삼순 보며) 아가씨가 대답해. 우리 아들이랑 깊은 사이야?
삼순 ...네...
진헌 (스윽 쳐다본다. 이 여자 뭐야?)
나사장 ! ... 어, 어떻게 깊은 사인데?
삼순 사장님은 절 고용하고 저는 사장님한테 고용 당하고, 몹시 깊은 사이죠.
진헌 (피식!)
나사장 (진헌을 확 흘긴다! 수준 낮은 아들놈한테 이가 갈린다) 하필이면 레스토랑 아가씨랑..
(자기도 모르게) 이 사람은 왜 새사람 들인 걸 보고 안한거야.
- 윤비서, 얼른 옆구리 찌른다
- 나사장, 아차 싶다
- 진헌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확실히 스파이가 있구나!
나사장 (다짜고짜) 삼순이가 누구냐
삼순 (어? 내 이름을 왜?)
진헌 (참 꼬이는 군. 수습하려 얼른) 나사장, 이따 얘기하면 안될까?
나사장 대답부터 해. 어제 맞선 보러 나가서 니가 끌어안은 삼순이란 기집애가 누구냐구!
삼순 전데요.
6. 오피스텔 복도
- 세탁소 아저씨가 진헌의 양복과 삼순의 투피스를 들고 초인종을 누른다
7. 오피스텔 욕실
- 삼순, 뚱하게 부은 채 옷을 입고 있다
삼순 근데 정말 엄마 맞어? 하나도 안닮았잖아.. 수염만 안났지 메기같이 생겨가지군... 정말
기분 나쁜 모자야... (밖을 보며) 근데 누나야, 이모야? (도리도리) 정말 엽기적인 구성이야. (어?)
- 삼순, 옷걸이가 붙은 스티커를 떼어낸다. 세탁소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다
8. 오피스텔
- 진헌, 스툴에 앉아 지루한 듯 하품을 한다. 하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김없이 퍽 뒤통수를 갈기는
손
진헌 아!
나사장 (마시던 얼음물을 탕 내려놓으며) 아프냐? 나도 아픔다. 하필이면 저렇게 막 굴러먹은
여자랑... 야 이 덜떨어진 놈아, 사업하는 놈이 천지분간을 못해서 자기가 부리는 사람이랑 바람이
나? 너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진헌 분륜도 아니고 미혼남녀한테 바람이 뭡니까?
나사장 놀고 있네.
진헌 놀다뇨. 어휘구사력이 정말 그것 밖에 (하다 멈칫)
나사장 (분을 참으며 노려본다)
진헌 (진짜 화났구나. 자중한다) ...
나사장 이번 주 안으로 정식으로 데려와서 인사시켜
진헌 ???
윤비서 ?...
나사장 (흥분과 분노가 가시고 의연한) 선 보러 나가서 집안망신 시키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니가 그렇게 좋다면 밥 한끼 정돈 같이 먹어주마.
진헌 (이게 아닌데, 어리둥절) ...
나사장 마음에 들어서 이러는 건 아냐. 몇 년씩이나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놈이, 그것도 깔끔
떠느라 제 침대에 누구 앉는 것만 봐도 파르르 떠는 놈이 제 침대에서 재우는 거 보니까 저
아가씨가 보통 좋은 게 아닌가보다. 이번 주 안으로 한번 데리고 와봐.
진헌 !...
나사장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진 마라. 제대로 봤는데도 아까처럼 농담과 말대꾸도 구분 못하는
푼수떼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갈라놀테니까. 알았어?
진헌 (이런 기회가, 광명이 비추는 것 같다!)
나사장 알았냐구!
진헌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네 어머니.
9. 희진 아파트 단지의 한가로운 풍경 ( 동 오전)
10. 희진 아파트, 거실
- 도배사들이 도배를 한다
11. 희진 아파트, 작은 방
- 하얀 천이 확 벗겨진다. 먼지가 흩어지며 침대가 드러난다. 차례대로 천을 벗긴다. 침대, 책상과
그 위에 쌓아놓은 박스들, 화장대, 소가구들, 인체 마네킹, 박스들이 드러난다.
- 희진, 실내를 둘러본다. 방 하나에 짐을 몰아넣고 미국에 가 있는 3 년 동안 세를 주었다. 도배만
끝나면 짐을 옮길 것이다. 희진, 책상 서랍을 열어 액자 하나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 사진, 나란히 서 있는 진헌과 희진.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드레시한
차림의 희진의 목에는 쌩뚱맞게 청진기가 걸려있고, 그 청진기를 자기 가슴에 댄 채 시침 떼고 있는
진헌. 의도적으로 연출한, 무슨 퍼포먼스 포스터 같기도 하고 예술사진 같기도 하다. 진헌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 희진이 미소 짓는다. 그가 귀엽다.
- 사진 속 진헌의 표정
12. 종로, 해장국집 (동 오전)
- 그런 표정으로 지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기분 나쁘게 찡그린 진헌의 얼굴
- 삼순이 해장국에 깍두기 국물을 붓고 공깃밥을 풍덩 빠뜨리더니 퍽퍽 말아 먹음직스럽게 한술
뜬다.
진헌 (보기만 해도 비위 상한다) 이건 그쪽이 내요. 어제 술값은 내가 냈으니까.
삼순 그러죠 뭐, 퇴직금에서 헐면 되겠네.
진헌 배짱 참 좋네요, 이런 불경기에.
삼순 인생 뭐 별 거 있나? 배짱 대로 사는 거지.
진헌 인생 뭐 별 건 없지만, 배짱이 매달 월급을 주진 않죠.
삼순 ... (먹으면서 곰곰 생각한다. 마음의 소리) 하긴, 이만한 직장도 없지, 월급도 쎄구. 맞어,
적금도 한참 더 부어야 하는데. 적금을 타야 종잣돈 삼아서 가게를 내든가 뭘 하든가 하지?
관뒀다고 하면 엄마한테 주걱으로 매타작 당할 거고... 눈 딱 한번만 감고 그냥 모른 척 해? (힐긋
진헌을 본다)
진헌 (먹으며 골똘히 생각중이다. 엄마의 제안을)
삼순 (마음의 소리) .... 그래 김삼순! 폼생폼사도 좋지만 자존심 한 칸만 접고 실리를 챙기는
거야. 안그래도 요즘 실용주의가 유행이잖아? (하다가 눈빛이 은근해진다) 근데 짜식 잘 생기긴
했네... 메기여사한테서 어떻게 저런 놈이 나왔지? 혹시 업둥이 아냐? 왜, 드라마에 잘 나오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왕자님 말야.
진헌 (느끼고 쳐다본다)
삼순 (얼른 태도 바꿔 기세 좋게) 좋아요!
진헌 ?...
삼순 파티쉐가 자꾸 바껴서 음식 맛이 바뀌면 레스토랑 운영에도 차질이 있을 거구, 무책임하게
관두느니 제가 한 번 참죠. 그럼 정직원으로 승격되는 건 이번 달 부터겠죠?
진헌 (빤히 쳐다본다. 생각이 깊다) ...
삼순 (왜 저래? 슬슬 눈치 보인다) ... 좀 무리면 다음 달부터도 괜찮은데...
진헌 (빤히 본다. 골똘하다) ...
삼순 (이상하네? 꼬리 더 내려간다) 아니면.. 월급 인상이라도... 15 프로...
진헌 ...
삼순 10.. 프로?
진헌 (생각 끝났다) 선 보는 거 지겹지 않아요?
삼순 ?...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죠?
진헌 지금 만나는 남자 있어요?
삼순 !... 놀려요 지금? 남자가 있으면 황금같은 유일에 선 보러 왜 나가요? 하여튼 사람 약
올리는 데 뭐 있다니까? (해장국을 퍽퍽 떠먹는데)
진헌 김삼순씨
삼순 ....!!
진헌 김희진씨?
삼순 ....!!
진헌 우리, 연애나 한번 해볼까요?
- 삼순, 놀라서 푸! 터트린다. 밥알이 튀어나가 진헌의 얼굴과 옷자락에 묻는다.
- 진헌의 입술이 뒤틀린다. '아 드러워 정말' 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13. 해장국 골목 앞 거리
- 택시가 달려와 멈춘다. 진헌이 뒷문을 연다
진헌 타요. (하며 돌아보면 없다. 어리둥절해 두리번거리면)
- 저만치 삼순이 가고 있다
진헌 죄송합니다. (택시 문 닫고, 뛰지 않고 잰걸음으로 다가간다) 어디 가는 거에요
삼순 보면 몰라요? 출근 중이에요
진헌 난 버스 못타요. 택시 탑시다
삼순 못타는 게 어딨어요? 사장님 발은 황금발이에요?
진헌 (잡는다) 택시 타자구요
삼순 (확 뿌리치며) 싫다니까요.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데 한푼이라도 아껴야죠
진헌 내가 내요
삼순 아니곱고 치사하고 더러워서 싫어요. 그깟 택시비 내고 연애니 뭐니 또 헛소리 할려구요?
어, 버스왔다. (마악 멈춰선 버스로 뛰어간다)
진헌 (짜증난다)
14. 거리 - 달리는 버스
삼순 (E)글세 싫다는데 입 아프게 왜 자꾸 그래요?
15. 달리는 버스 안
- 삼순이 앉아잇고 진헌은 그 앞에 서 있다. 출근시간이 지난 헐렁한 버스지만 빈자리가 없다.
진헌 글쎄 왜 싫냐구요.
삼순 어머니 앞에서 사귀는 척 해달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난 그런 사기행각에 동참
못해요.
진헌 김삼순을 김희진으로 부르는 건 사기행각 아닌가?
삼순 (휙 쳐다본다) ... 사장님이 삼식이로 30 년을 살아보세요! 이건 한 사람의 인격권과 삶의
질이 달린 문제라구요! 자짜연애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진헌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 삶의 질이 달려있어요
삼순 그럼 메기여사, 아니, 어머님을 설득하는게 상식 아녜요? 난 가짜연애를 심각하게 고려할
만큼 맞선 보기 싫다! 당분간은 결혼 생각 없다!
진헌 아까 보고도 그래요?
삼순 (그러고보니 그렇다. 그래도) 자기 어머니도 설득 못하면서 무슨 사업을 한다구...
진헌 ... 일어나봐요
삼순 아직 멀었어요.
진헌 자리 좀 양보하라구요
삼순 ?... 뭘 하라구요?
- 진헌, 갑자기! 완력으로! 와락! 삼순을 일으켜 세우더니 그 자리에 앉는다.
- 순식간에 당하고 황당해하는 삼순
진헌 앞으로 우리 연애하는 동안은 버스나 지하철은 사절입니다
삼순 뭐 이런 개싸가(지가 다 있냐?)
진헌 (창 밖 보며 얄밉게) 정직원입니다. 이번 달부터.
삼순 (얼른 입 닫는다)
16. 보나뻬띠 근처 골목
- 성큼성큼 달려오는 삼순. 힐긋 돌아보면 진헌이 뒤따라온다. 삼순, 몇발짝 걷다가 멈춰 돌아선다.
삼순 그럼, 한 번 물어나 봅시다? 왜 하필이면 난데요?
진헌 (멈춘다)
삼순 왜 하필이면 나랑 이 사기행각을 벌이자는 거냐구요.
진헌 서로 좋아할 일이 없을 테니까
삼순 에?
진헌 우린 서로가 서로를 무척 재수없어 하잖아요?
삼순 제가 사장님을 재수없어 하는 건 사실이에요
진헌 술주정뱅이 싸움꾼에 오줌싸개도 내 타입은 아니거든요
삼순 거 사실확인도 안된 거 같고 자꾸 놀려먹기에요?
진헌 어쨋든 어제 보니까 주제파악을 잘 하더라구요. 자기 처지가 어떤지, 어떤 남자가 어울리는
지... 혹시 나중에라도 나한테 흑심 품을 일 없으니까 당신 같은 여자가 적역이지.
삼순 !... 그 말은, 나중에 내가 당신을 좋아할 거란 얘긴가요?
진헌 (뻔뻔하게 끄떡)
삼순 와- 정말 미지왕이네. 제대로 미지왕이야
진헌 (짜증) 도대체 그 미지왕이 뭡니까?!
삼순 궁금하면 지식검색창에 물어보세욧! (돌아서는데)
진헌 (확 잡고는) 사례할게요
삼순 ???
진헌 얼마면 돼요?
삼순 허! (팔을 확 뿌리친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사장님. 왜 남의 대사를 표절해?
진헌 ???
삼순 그리구 뭐든 돈으로 해결하는 모양인데요, 레스토랑을 통째로 넘겨준다면 생각해보죠.
(간다)
진헌 ... 대체 왜 싫다는 겁니까! 싫다싫다 그 말만 하지 말고 이유를 대요!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삼순 (멈춰 돌아선다)
진헌 ...
삼순 어제 말했죠. 난 사장님처럼 초년운이 좋질 못해서 유람선 타고 태평양을 건널 처지가
못된다고.
진헌 ...
삼순 그나마 땟목이 아닌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난. 어쨋든 조각배를 타고 그 넓은 태평양을
건너야 되는데 혼자 가긴 무섭고 쓸쓸하고, 동반자를 구해야 되는데 이 놈의 코딱지만한
땅덩어리는 차별도 많고 가리는 것도 많아서 여자 나이 서른이 넘으면 은근히 무시를 하죠. 그래도
삼십대 초반까진 괜찮아요, 그 이후가 문제지.
진헌 ...
삼순 그러니까 난 서른 하나, 둘, 셋 까진 내 짝을 만나 태평양을 건너고 싶어요. 그럴려면
조각배가 뭔지도 모르는 철없는 사장님이랑 사기행각을 벌일 시간이 없다구요. 알아들었어요?
진헌 역시 주제파악은 잘 해
삼순 (열 받는 것도 지친다) ... 제가 국어성적은 좀 좋았거든요. 그럼 저 출근합니다? 사장님은
한 5 분쁨 돌다 들어오세요. 괜히 오해받기 싫으니까 (간다)
진헌 ....
17. 홀
- 쪼르르 소리가 명쾌하게, 글라스에 와인이 따라진다
- 홀직원은 물론 주방직원까지 모두 홀에 나와 앉아 오지배인의 와인강의를 듣는 중으로, 두 사람씩
앉은 테이블에는 각각 와인병과 글라스가 있다.
- 현무가 잔을 들고 있고 오지배인이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고 있다
오지배인 자세나 따르는 방법은 지금처럼 하면 됩니다. 특별한 예절이나 까다로운 규칙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은 버리세요. 물론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과는 다른 디테일들이 있지만
그건 본질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느끼고 즐기는 겁니다. 자 그럼 차차 하나씩 깨우쳐 나가기로
하고 오늘은 첫 날이니까 와인에 대한 생각들을 나눠봅시다.
- 그때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모두들 돌아본다
- 멋 모르고 들어오는 삼순, 모두의 눈초리를 받으며 아차 싶다
오지배인 희진양, 지각이죠?
삼순 네...
현무 (확 인상 쓴다) 와인강의 첫날이라고 늦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삼순 죄송합니다.
현무 제일 연장자가 이게 무슨 챙피야?
- 그때 진헌이 삼순의 앞을 지나쳐 사무실로 향하며
진헌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저랑 같이 밤새는 바람에 좀 늦었습니다.
- 삼순, 이런 세상에!!!
- 전 직원이 쇼킹한 얼굴로 삼순을 쳐다본다. 특히 영자와 인혜의 그 표정이라니..
-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삼순, 울상이다
18. 사장실
-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는 진헌, 왼발을 들어 책상에 올리고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는다. 잠시
그러고 있다... 고통이 가시는 지.. 후- 숨을 내쉬며 눈을 뜬다. 이제 살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19. 홀
오지배인 자 그럼 각자 자기 파트너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시음을 해보는 시간을 갖죠
- 직원들이 각자 자기 파트너들에게 와인 따라 준다
- 인혜가 삼순의 잔에 와인을 따른다
- 삼순, 힐끗 인혜의 눈치를 살핀다
- 인혜, 아주 어두운 표정이다
- 삼순, 마음이 참 불편하다
- 오지배인, 핸드폰 울리자 여보세요 하면서 자리를 피한다
-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삼순을 휙 째려보는 여직원들!
- 삼순, 온 몸에 독화살을 맞는 듯한 기분이다
20. 탈의실(동)
- 삼순, 툴툴거리며 들어와 캐비닛 옷장을 연다
삼순 하여간 이 인간은 왜 쓸데없는 소릴 해가지구 날 공공의 적을 만드느냔 말이야. 분명 내
인생의 정지선인 게 틀림없어
- 옷을 갈아입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며 소지품을 꺼낸다. 그 손에 세탁소 스티커가
딸려나오자 오매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핸드폰 찍는다.
삼순 (신호음 떨어지자) 경희궁 세탁소죠? 저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아침에 경희궁 오피스텔
000 호에 세탁물 배달하셨죠. 남자 양복이랑 여자 투피스랑.. 예 예, 맞아요. 근데요 그 투피스에
뭐가 묻었었는지 혹시 기억 나시나 해서요.. 아니 토한 거 말고 (아무도 없는 주위를 괜히 살피고는
속닥인다) 말하긴 좀 거시기하지만 소변.. 이라든가...
21. 종합병원 내과 복도 (동 오후)
- 희진,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온다. 문득 반가움이 확 끼친다.
희진 야 김병태, 문정임!
- 스테이션에 서서 얘기 나누던 두 명의 레지던트가 돌아보고 놀란다.
병태 야 유희진!
정임 희진아!
- 희진, 꺄악 소리 지르며 달려와 두 친구와 얼싸안는다. 복도가 시끄럽도록 얼싸안고 쥐어박고
때리고 저희들 식대로 반가워하는 세 사람.
22. 병원 구내식당
- 희진과 친구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희진 민정인? 걘 피부과 가서 자기 얼굴 싹 갈아엎는다더니 정말 피부과 갔니?
정임 말 마. 정말 피부과 가서 한달에 한번씩 박피하더니 피부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알콜
한방울만 튀어도 장난 아니야. 아따 올라올 거야.
병태 복학신청은 했어?
희진 응. 아까 하고 오는 길이야. 어쨋든 부럽다, 난 아직도 학생인데. 나 실습하러오면 잘
봐줘야 돼?
정임 근데 도대체 미국 가서 뭘 한 거야? 유학은 아니라며.
희진 그냥, 관광이라고 해두자.
정임 무슨 관광을 3 년씩이나 해? 그것두 졸업 1 년 남겨놓고.
병태 돈 있으면 뭘 못하냐. 부모님 병원 잘 된다며?
희진 그래, 부자아빠 둬서 좀 놀다왔다
정임 하여튼 너 나뻐. 3 년 동안 소식 한장 없구. 3 주만 늦게 들어왔으면 영영 절교할려 그랬어,
알어?
희진 왜 하필이면 3 주야?
병태 정임이 얘, 3 주 뒤에 결혼하잖아.
희진 어머 정말? 누구랑?
병태 나랑
희진 (번갈아본다)!... (입에 머금고 있던 음료가 푸! 터진다)
23. 삼순 집 버스정거장 (동 밤)
- 버스가 달려와 멈춘다. 내려서 툴툴거리며 오는 삼순
삼순 이 인간 뻥인거 같긴 한데 사실확인이 안되니 막 몰아붙일 수도 없구.. 근데 내가 정말
그러고 다닌 거 아냐?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리도리) 말도 안돼. 그런 삼순이짓을 했다고 내가?
이영 (E) 혼잣말하는 버릇 여전하네.
삼순 (깜짝 놀라 본다)
- 파격적인 차림의 이영이 여행용 트렁크 위에 앉아있다.
이영 오랜만이다 삼순아?
삼순 작은 언니!!!
24. 돌담길
- 걸어오는 삼순과 이영. 여행용 트렁크는 삼순이 끈다.
삼순 빨리 이실직고해. 그냥 들르러 온 거 아니지? 형부랑 싸운 거 아냐?
이영 근데 삼순이 넌 왜 더 뿔었냐? 너 또 실연당했다고 겨우내 소주랑 닭발이랑 끼고 있었던 거
아냐?
삼순 간신히 아물어가는데 쑤시지 말았음 하는 소망이 있네.
이영 야 너 그러면 안돼. 너 여잔 일단 늘씬하고 이뻐야 돼. 나 봐, 결혼해도 남자가 끊이지 않는
비결이 바로 그거잖아.
삼순 (놀라서) 언니 바람 펴?
이영 2005 년판 국어대사전을 펴봐. 바람이라는 건 한 때 느이 형부라고 불리웠던 수컷이 피우는
걸 바람이라고 하는 거야.
삼순 (놀라서 달려든다) 형부 바람 폈어?
이영 행간을 못읽네 얘가. I am divorced!
삼순 (두어 번 눈 깜빡이며 생각하다가 휘둥그래진다) 이혼했어???
이영 난 내 동생 쌈순이가 돌아온 싱글을 두 팔 벌려 환영해줄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삼순 내가 왜 돌싱을 환영해? 경쟁자가 하나 더 늘었는데!
이영 얘가 살 쪘다고 간까지 부었네? 야, 아무리 그래도 넌 내 상대가 못돼지.
삼순 못살아 정말. 언니같은 이혼녀들까지 덤비니까 나같은 노처녀가 느는 거야, 알어? (트렁크
끌고 쿵쿵쿵 가다가 휙 돌아보며) 언니, 우리 집안에 혹시 술 취하면 오줌 싸는 내력 있어?
25. 삼순 집 앞(동 밤)
- 대문 틈 사이로 집의 불빛이 보인다.
- 오래된 단층 단독주택 대문 앞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는 삼순.
이영 좀 더 있다 올까? 우리 찜질방 갈래?
삼순 엄마 잘 때 슬그머니 들어가면 더 이상하지 않겠어?
이영 그렇지? ... 아 피곤해 죽겠는데 지금 들어가면 몇시간씩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을 거구.
삼순 어제 들어왔다며. 잠 못잤어?
이영 찜질방에서 잠이 오니?
삼순 하여튼, 엄마 이길 배짱도 없으면서 이혼은 왜 하냐?
봉숙 (E) 뭐어? 이혼?
- 삼순과 이영, 흠칫 놀라 돌아본다
- 뭔가를 사러 나온 듯 비닐 봉지 들고 봉숙이 눈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다
이영 (죽었다! 얼굴 마구 이지러지며 사시나무 떨 듯 한다!) 엄마야..
봉숙 이혼이라니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 이혼하고 들어온 거야?
이영 (삼순의 등 뒤로 냉큼 숨는다) 엄마 그게 아니구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가 해준 김치찌게도
먹고 싶고 찜질방도 가고 싶고.
삼순 (낼름) 형부가 바람 펴서 마포 아파트 위자료로 받고 도장 찍었대
봉숙 뭐어? (여자 헐크처럼 변한다) 이런 우라질 년!!!
26. 뜰 (동 밤)
- 삼순이 줄넘기를 한다. 아담소박한 집 위로 달빛이 비추고 삼순은 줄넘기를 하고 매우 평화롭게
보이지만 안에서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엄마ㅓ의 고함소리, 이영의
비명소리, 매타작하는 소리, 냄비 날라다니는 소리... 그러거나 말거나 으쌰으쌰 아령도 하고
팔굽혀펴기도 하면서 달밤에 체조를 즐기는 삼순...
-F.O
27. 보나뻬띠 전경 (낮. F.I)
28. 보나뻬띠 홀(낮)
-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들어선다. 채리다.
- 영자가 친절하게 맞는다
영자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
채리 약혼식 예약하러 왔어요. 사장님 말씀하셨죠?
영자 아... 성함이 장채리씨?
채리 네, 맞아요
영자 예, 아까 지시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 룸 쪽으로 안내하는데
- 안에서 진열장에 진열할 케익을 들고 나오는 삼순. 채리와 딱 부딪힌다.
삼순 ?... 너 채리 아니니?
채리 ?... (거만 떤다) 삼순이 언니?
- 삼순, 허걱 놀란다. 삼순이 언니라니! 케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삼순이 언니 여기서 일해?"
라고 말하는 채리의 입을 얼른 틀어막고 끌고 나간다.
영자 ?... 삼순이 언니? ... (킁킁).... 냄새가 나...
29. 뜰
- 채리를 끌고 나오는 삼순
채리 (입 막은 손을 쳐내며) 왜 이래에?
삼순 야- 너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나 파리 가기 전에 보고 처음이지? 이야- 한
육년만에네? 근데 너 키 컸나? 전엔 요만했던 거 같은데? 기집애, 넌 뭘 먹길래 아직도 크니?
채리 (이름표를 봤다. 한심스럽다는 듯 웃는다) 언니 아직도 그 짓 해?
삼순 (눈치 채고 쿡 찌른다) 아직 개명을 못했잖니. (속닥이는) 나 여기선 김희진이다?
채리 치- 중고등학교 내내 그러고 다니더니...
삼순 어머닌 잘 계시지?
채리 그럭저럭, 가끔 언니네 방앗간 떡을 그리워하지만. 근데 언닌 언제부터 여기서 일한 거야?
나 여기 사장오빠랑 잘 아는데 언닌 한번도 못봤다?
삼순 ? 사장오빠?
채리 어릴 때부터 모임이 있어서 오빠동생하면서 자랐어
삼순 (못마땅) 그으래?
채리 (문득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가만, 그럼 내 약혼식 케익은 언니가 만들게 되는 건가?
삼순 ? 약혼식 케익? 너 여기서 약혼 하니? (찜찜해하는 채리에게) 야아- 축하한다. 장채리!
드디어 경쟁자가 하나 없어지네? 생각 자알 했다 야.
채리 (경쟁자? 허! 같잖은 웃음)
삼순 기대해도 좋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케익을 만들어주마! 근데 신랑은 뭐하는 사람?
연애? 중매?
채리 그건 언니가 알아서 뭐하게? 어, 아저씨! (손 들어보인다)
- 삼순, 돌아본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표정 변한다
- 주차장 쪽에서 현우가 걸어오고 있다
- 삼순 하얗게 질린다
- 현우, 걸어오며 이쪽을 본다. 삼순인 줄 모른다. 다시 보고, 알아본다. 동요...
- 삼순, 얼른 외면한다
- 현우도 평정심을 찾으며 다가온다. 그가 오자 채리가 앙증맞게 팔짱을 낀다
채리 (삼순을 깔보듯 하며) 어닌, 우리 아저씨
삼순 ... (끄떡 인사)
채리 ... (끄떡 인사)
현우 (채리에게) 누구...
삼순 (고개 외로 꼰 채, 뭐? 누구?)
채리 알 거 없어. 그냥 우리 할머니랑 엄마가 단골하던 방앗간집 언니야. 들어가자. (데리고
들어간다)
삼순 (기가 막힌다)
30. 홀룸 (트인 룸)
- 진헌과 현우가 악수를 한다. (옆에는 각각 오지배인과 채리가 앉아있다)
진헌 처음 뵙겠습니다. 현진헌이라고 합니다.
현우 민현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서로 시선 교환하는 두 남자.
31. 베이커리 실
- 삼순, 케익을 짜주머니로 장식을 하고 있다
- 자기 일 하다 문득 쳐다보던 인혜가 기함을 한다
인혜 언니!
삼순 응?
인혜 뭐하는 거에요 지금!
삼순 (장식하던 케익을 본다. 헉!)
- 흉악한 핏빛 글귀 '개자식'
32. 사장실
- 들어오는 진헌과 채리.
채리 어때, 우리 아저씨?
진헌 (책장에서 서류철을 찾으며) 내 허락 받으려고 데려온건 아니잖아
채리 샘 안나?
진헌 나
채리 정말?
진헌 난다고 해야 빨리 돌아갈 거 아냐
채리 치-
진헌 근데 왠지 낯이 익다?
채리 그래? 모임에서 봤나? 우리 아저씨, 마루건설 둘째아들이잖아.
진헌 처음 듣는 회산데?
채리 막 떠오르고 있지. 신생 4 대천왕이랄까? 참, 오빠네 집안에서 제주도에 호텔 하나 더
낸다며. 그거 설계했는데 몰라?
진헌 (찾아낸 서류철을 채리에게 건넨다) 김회장님댁 소희씨 약혼식 사진이야. 참고하고
주문할 거 있으면 해. (돌아서서 책상으로)
채리 (와락 달려들어 뒤에서 껴안는다)
진헌 (귀찮다. 가끔 하던 짓이다)
채리 오빠.. 오빠가 내 첫사랑인 거 알지?
진헌 밖에 니 약혼자 있다.
채리 나 좀 있으면 남의 여자 되는데, 한번만 안아주면 안돼? 마지막으로 응?
진헌 (채리의 손을 떼어낸다)
채리 (안기려 한다)
진헌 (제지하느라 어깨를 잡고)
채리 (애원하듯이) 오빠아...
진헌 (눈을 뚫어지게 본다)... 채리야.
채리 (기대감에 고양이처럼) 응?
진헌 오늘 렌즈색깔은 영 아니다. 다른 걸로 바꿔라.
33. 베이커리실
- 삼순, 설탕시럽 만드는 인혜에게로 와 불을 살짝 줄여준다.
삼순 시럽 만들 땐 불꽃이 냄비의 지름을 넘어가면 안돼. 넘어가면 벽에 묻은 설탕이 다 타버려.
그리구 (물에 적신 브러쉬로 냄비에 붙은 설탕을 털어내며) 벽에 설탕이 묻으면 이렇게 털어주고
인혜 아... (슬쩍 눈치 보더니) 근데 언니..
삼순 응?
인혜 그 날.. 정말 사장님이랑 같이 있었어요?
삼순 ... 나 사장님한테 관심 없어.
인혜 ?... 정말요?
삼순 누구 표현을 빌자면 난 주제파악을 잘 하거든
-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삼순, 흠칫 놀랬다가 액정 본다
- 발신자. <그 놈>
- 삼순, 올 것이 왔다는 표정... 한숨 쉬고 받는다. 저쪽에서 다급하다
현우 (F) 언제 끝나니.
34. 현우의 차 (밤)
- 한적한 곳에 차가 서 있다
현우 고맙다. 아까 모른 척 해줘서.
삼순 고맙긴. 현우씨가 워낙 연길 잘 해서 장난 맞춰준 것 뿐인데
현우 말에 가시 있다?
삼순 가시 밖에 없어?
현우 아직도 날 원망하니?
삼순 아니. 작년 크리스마스 때 그 여자라면 아마 원망했을 거야. 근데 제 3 의 여자? 흥, 진작
깨진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
현우 집에서 원하는 여자다
삼순 그렇겠지, 부잔데.
현우 쟤가 날 좋아한다
삼순 어련하시겠어, 영곈데.
현우 (기분 상하고) ....
삼순 채리가 결혼하겠다는 거 보니까 현우씨가 잘난 집 아들인 건 맞나보네. 미안해, 그렇게
대단한 집안인지 몰라봐서. 아무튼 약혼식 따데서 해.
현우 여기 아니면 안됀대
삼순 (휙 본다)
현우 잘 안다며. 고집 세잖아.
삼순 (허!)... 그럼 나더러 자기 약혼식 케익을 만들란 말이야?
현우 미안하다, 알았으면 어떡해서든 안왔을 거다.
삼순 알고도 오면 그게 사람이냐? 개자식이지?
현우 입 거친 건 여전하구나
삼순 의외로 입 거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구. 이대로 유지할 생각이야.
현우 (별 뜻없이) 남자 생겼니?
삼순 !... (에라 모르겠다) 어.
현우 (휙 본다) ... 벌써?
삼순 ?... 벌써라니?
현우 너 나랑 헤어진 게 언젠데, 울고불고 한 게 언젠데 벌써 남자가 생겨?
삼순 (이런 세상에)!...
현우 환지통이란 게 있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가도 그 잘려나간 팔과 다리가 아파. 뇌
속의 감각중추가 그렇게 느껴. 팔다리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 마음은 어떻겠니? 나를 잘라냈는데
안아펐어? 안아프고 그새 다른 남자를 만나?
삼순 (기막혀)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야 지금?현우 넌 뭘 잘했냐구? 그래, 나 잘한 거 없다.
하지만 난 널 잊지 않아. 사랑이 멈춘 것 뿐이지 잊은 적은 없어. (가슴을 치며) 여기 평생 있을
거라구
삼순 !...
35. 달리는 버스 안
- 라디오에서 백설희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가 흘러나온다
-(E)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삼순, 손잡이에 의지한 채 뜻없이 창 밖을 보고 있다
-(E)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어느새 삼순이 울고 있다
삼순 ... 나쁜 자식... 맹세는 왜 해가지구..
- 삼순, 눈물을 슥슥 닦는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E) 새파란 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삼순 (마음의 소리) 그땐 몰랐다. 그가 나에게 했던 많은 약속들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그
맹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좀 덜 힘들 수 있을까? ... 허튼 말인 줄 알면서도 속고 싶어지는 내가
싫다. 의미없는 눈짓에 아직도 설레이는 내가 싫다. 이렇게 자책하는 것도 싫다. 사랑을 잃는다는
건 어쩌면, 자신감을 잃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눈물 멈추고 벚꽃이 활짝 핀 거리를 본다.
마음의 소리) ... 빨리 봄이 갔으면 좋겠다.
-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춘다
- 중심 잃고 손잡이도 놓친 삼순이 다다다다다 앞으로 뛰어간다. 기사석까지 가서야 멈추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꽥 지른다
삼순 아저씨! 운전 좀 똑바로 해요! 나 아직 시집도 못갔단 말에요!
36. 삼순네 뜰 (동 밤)
- 이영이 문을 열어준다. 삼순이 들어서는데 전화통화 중인 엄마 봉숙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봉숙 (E) 이런 법이 어딨어, 이런 법이!
삼순 ?...
봉숙 (E) 아우 난 몰라 몰라. 서방님 찾아내 빨리! 찾아서 옥살이를 시키든가 난 이 집 못 내놔!
삼순 (의아하여 이영을 본다) 엄마 왜 저래?
- 이영, 삼순을 끌고 뜰 구석으로 간다
이영 너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 뻠망?서준 거 알고 있었어?
삼순 빚보증? 죽은 아버지가 어떻게!
이영 돌아가시지 전에 서줬대. 엄만 까맣게 모르고
삼순 근데
이영 공장 부도 나고, 작은 아버진 도망중이고, 우리 집은 넘어가게 생겼고
삼순 뭐?!
37. 안방(동 밤)
- 봉숙이 드러누워 있다.
봉숙 찢어죽일 인간. 유산은 못남길 망정 빚을 남겨? 허이구 기가 막혀. 어떻게 감쪽같이 나를
속여? 이 박봉숙이를?
- 이영과 삼순이 미음 쟁반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이영 엄마, 일어나서 일단 미음 좀 드시지?
봉숙 시끄럿! 저리 꺼져! 김씨 성 가진 것들 아주 꼴도 보기 싫어!
삼순, 이영 ....
봉숙 지들이 감히 내 집을 건드려? 이게 어떤 집인데. 스무 살에 시집 와서 떡 찧느라 물러터진
내 손은 어떡하구! 시아버지 구박 받아가면서 쓸고 닦고 이 집을 내가 어떻게 건사했는데?
호랑말코 같은 놈들. 내 집에 손만 댔단 봐. 그 날이 내 관 짜는 날인 줄 알어.
이영 ... 집 건질려면 얼마가 있어야 되는 건데
봉숙 니가 알면
이영 ... 마포 아파트 있잖아 나한테
삼순 ? ...
봉숙 ! ... (그러나 일어나지 않고) 냅둬. 너두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그 돈은 쟁여놔야지. 이 집
안넘어가. 내가 어떡해서든 느이 작은아버지 붙들어와서 해결볼거야. 옥살이하라 그럴거야!
이영 이성적으로 생각해 엄마. 작은 아버지가 옥살이를 하든 안하든 이 집은 이미 담보로 들어가
있고, 그건 기한 내에 빚을 안갚으면 넘겨줘야 된다는 뜻이야.
삼순 !...
봉숙 !...
38. 삼순네 집 전경(아침)
39. 뜰 (동 아침)
-'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출근 차림으로 나오는 삼순. 대문으로 가는데 망치 소리가 들린다. 멈춰
돌아보면,
- 푸근한 인상의 아버지가 꽃밭에 '삼순이 꽃밭' 이라는 팻말을 박고 있다
아버지 이건 니 꽃밭이니까 하루에 한번씩 물 주고 이쁘다고 말해주고, 잘 돌봐야 돼? (하며
돌아보면)
- 바가지 머리를 한 초등학생 삼순이 훌쩍훌쩍 울고 있다. 농구 유니폼을 입고 있고.
- 등판의 '김삼순' 이란 이름 선명하다
어린 삼순 싫어어- 바꿔줘어-
아버지 이놈아,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어떻게 바꿔? 그리고 삼순이가 얼마나 좋냐. 부르기
쉽고, 다정해서 좋고. 난 삼순이가 제일 좋다
어린 삼순 싫어어- 김희진으로 바꿔줘어-
- 아버지, 이번엔 나무에다 '삼순이 나무' 라는 팻말을 건다.
아버지 이거는 삼순이 나무. (그 나무에다 그네를 달기 시작한다)
- 어린 삼순, 울음을 삼키며 바라본다. 그네라니? 세상에 그네라니?
- 아버지, 그네를 다 달자 '삼순이 그네' 라는 팻말을 건다
아버지 이건 삼순이 그네.
- 어린 삼순, 언제 울었냐는 듯 쪼르르 달려가 그네를 탄다. 금새 까르르 웃는다.
- 그네 타는 어린 삼순이 어른 삼순으로 디졸브된다.
삼순 그때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 삼순, 삐그덕삐그덕 발을 구르며 집과 뜰을 둘러본다
- 소박하고 정감 가는 단층주택... 아기자기한 뜰... 나무... 텃밭... 빛 바랜 삼순이표 팻말들... 거기
쏟아지는 햇살...
삼순 아부지... 이 집 넘어가면 내 꽃밭은 어떡하냐? 내 나무랑 그네는..
40. 사장실 앞
- 소리 안나게 조심조심 걸어오는 삼순.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의 동정을 살핀다.
- 레스토랑 경영에 관한 외국잡지를 보고 있는 진헌
- 삼순, 그 서늘한 얼굴을 보니 엄두가 안난다. 볼이 부어서 돌아선다
41. 마루(동 오후)
- 삼순이 퇴근해 들어온다. '나 왔어' 하려다가 분위기 감지하고 입 닫고 마루에 올라선다
- 이영이 통화중이고 봉숙은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이영 네.. 네.. 아무래도 무리죠, 이번 주 토요일까진... 아녜요,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굴었네요,
워낙 급해서.. 어쨋든 매물로는 올려주시구 무슨 일 있으면 전화주세요.. 네, 부탁드립니다.
(끊는다)
봉숙 뭐래? 안된대?
이영 며칠 만에 아파트 한 채가 거래 될 일 있겠냐구...
봉숙 (어깨가 꺼진다)
삼순 (속 상한) ...
이영 (삼순에게) 너 돈 가진 거 없어?
봉숙 얘가 무슨 돈이 있니. 그동안 모은 건 다 파리 가서 공부하느라 들이붓고 여기 와서 번 건,
(휙 보며) 그 돈은 다 어쨋니?
삼순 (이미 준비했다. 가방에서 통장 꺼내 내민다) 아직 반밖에 안너서 얼마 안돼.
이영 (속 상해서)... 너 이거 타서 가게 낸다며
삼순 천천히 내지 뭐. 집 잃고 가게 내면 뭐해.
이영 (받으며) 아파트 팔리면 채워줄게. (열어본다) ... 이거랑 내꺼 합치고, 엄만 당장 받아낼 수
있느 돈이 얼마야?
봉숙 오백?
이영 (머리로 셈한다) 그러면... 그래도 오천만원이 모자라.
삼순 큰언니한테 전화 해볼까?
봉숙 하지 마! 지들도 살기 바쁜데 쯧...
이영 ...
삼순 ...
42. 사장실 앞 (다음 날)
- 또 와서 기웃거리는 삼순
- 컴퓨터 앞에 앉아 진지하게 작업하고 있는 진헌
- 도무지 말을 붙일 얼굴이 아니다. 후- 한숨 내쉬고 돌아서는 삼순. 그러나 몇발짝 가다가 도무지
안되겠는지 멈추어 돌아본다
43. 사장실
- 심각한 얼굴로 작업중인 진헌
- 검색창에 '미지왕' 이라고 적힌다. 엔터 키를 누른다.
- 영화 '미지왕' 의 포스터가 뜬다. 못생긴 주인공 '왕창한' 의 얼굴과 그 밑의 카피. <미친 놈 지가
무슨 왕자인 줄 알어>
- 쿡! 웃는 진헌. 미지왕이 이런 뜻이었군... 우습다. 밑의 몇가지 정보를 읽는다.
진헌 ...유료관객 6 천 7 백 3 십 8 명?
- 진헌, 웃음 터진다. 쿡쿡쿡... 그때 똑똑 노크소리 들리자 얼른 표정관리하며 모니터 끈다. 두 번째
노크소리에 목소리 낮게 깐다.
진헌 네.
- 문이 열리고 삼순이 들어온다
- 진헌, 의아하다
- 삼순, 여느 때와 달리 다소곳한 낯선 모습이다
- 진헌, 뭔가 궁하군! 입가에 살짝 승리의 미소가 번진다
삼순 (똑바로 보지 못하고) ... 흠...
진헌 무슨 일이죠?
삼순 ...
진헌 (하던 일 하며) 나 바뻐요.
삼순 그때 그 제안..
진헌 (모니터에 시선 둔 채) 네.
삼순 그거... 아직도 유효한가요?
진헌 네
삼순 그럼.. 제가.. 받아들이면..
진헌 (고개 들며) 얼마면 돼요?
삼순 (너무 쉽게 튀어나온 그 말에 놀라)!...
진헌 돈 필요한 얼굴이잖아요. 얼마 필요해요?
삼순 (맹해서) ... 오천.. 이요..
진헌 계좌번호 불러봐요.
삼순 네?
진헌 계좌번호요. 지금 인터넷뱅킹으로 넣어줄게요. (마우스를 클릭한다)
- 삼순, 맹- 해서 메모지에 계좌번호를 적어 건넨다
- 진헌, 계좌번호 보며 좌판 두드린다.
- 삼순, 뭔가 이상하다. 뭔가 기분 나쁘다.
진헌 다 됐어요. 이리 와서 확인할래요?
삼순 아뇨. 됐어요...
진헌 그럼 오늘부터 우린 연애하는 척 하는 겁니다.
삼순 (맹) ... 네...
진헌 (하던 일 한다)
삼순 (맹하게 서 있다)
진헌 (고개 든다. 안나가고 뭐하냐는 표정이다)
삼순 가, 가능한 한 빨리 갚도록 하겠습니다. (왠지 변명조가 된다. 게다가 횡설수설까지) 언니
아파트만 팔리면... 며칠만에 안팔려서... 적금도 깼는데...
진헌 맡은 일만 잘 하면 그 돈 안갚아도 됩니다.
삼순 !...
진헌 우리 나사장만 완벽하게 속여넘기면 말입니다.
삼순 아뇨, 그렇게 큰 돈을 날로 먹으면, 아니, 떼어먹으면 안되죠. 되도록 빨리 갚겠습니다.
이자까지 쳐서.
진헌 얼마요.
삼순 네?
진헌 이자 얼마 줄 거냐구요
삼순 (먼저 말했지만 참 치사하다) ... 많이는 못 드리구... 은행이자 정도?
진헌 그래요 그럼. 은행이자로 합시다.
삼순 ... 네..
진헌 (가서 일 하라는 눈짓)
- 삼순, 찌뿌드드한 채 돌아선다. 개운치가 않고 뒷골이 당긴다. 문가로 가다가 멈춰 돌아선다.
삼순 근데요 사장님?
진헌 (모니터 보며) 네
삼순 그렇게 큰 돈을 빌려주면서, 왜 갑자기 마음이 바꼈는 지, 그 돈을 어디다 쓸 건지, 그건 왜
안물어보세요?
진헌 (삼순을 본다)?...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삼순 ?... 아뇨.
진헌 (다시 모니터에 시선) ...
- 삼순, 꼭 뭐에 홀린 것 같은 얼굴로 문을 여는데
진헌 아 참 김삼순씨
삼순 (휙 보며 낮게) 김희진이요.
진헌 아, 김희진씨
- 진헌, 성큼성큼 나오더니 삼순의 손목을 확 잡는다.
- 삼순, 허걱 놀란다
- 끌고 나가는 진헌
44. 복도
- 삼순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진헌
삼순 왜 이래요... 어디 가는 건데요? 아 누가 보면 어쩔려구.. 놔요 조옴!
45. 홀
- 벌컥 문 열린다
- 디너타임 전의 식사를 하던 직원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 진헌이 삼순의 손목을 잡고 들어선다
- 직원들 의하하다!
- 삼순, '왜 이래요 정말!' 하면서 손을 빼내려 하지만 진헌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진헌 우리, 연애중입니다. 두 달 됐습니다.
삼순 (휙 쳐다보며 비명처럼) 미쳤어요?!!!
- 모두들 일제히 동작 굳는다. 특히 여직원들의 표정이 제각각 가관이다
- 오지배인과 현무가 놀란 눈빛을 교환한다.
- 인혜의 눈에는 벌써 배신의 눈물이 감돈다
- 마악 입으로 들어가려던 영자의 숟가락이 손에서 떨어진다. 그 무시무시한 정적 속에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 뎅그렁~
46. 보나베띠 앞
- 진헌, 파닥파닥 뛰는 삼순을 끌고 나온다
삼순 미쳤어요? 어떡할 거에요 이제!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이럴거면
팬까페를 폐쇄하든가!
진헌 (개의치 않고 끌고 가며)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스파이가 있어요.
삼순 ?...
47. 의상실(동)
- 옷을 고르는 진헌. 퉁퉁 부은 채 보고만 있는 삼순
진헌 나사장을 속일려면 스파이도 속여야 되요. 문제는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전직원 보는 앞에서 연애하는 척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삼순 허, 엑스맨까지?
진헌 엑스맨은 또 뭡니까?
삼순 그래서, 엑스맨을 속여넘길려고 내 혼삿길 막히는 건 생각 안했다 이거죠?
진헌 ?...
삼순 연애하는 척이 끝나면 헤어졌다고 발표할 거 아녜요. 그럼 난 작대기 하나 더 느는 거고,
나이 서른에 연애경력 하나 더 쌓여봤자 혼삿길 막히는 것 밖에 더 돼요?
진헌 아까 말했죠, 맡은 임무에 충실하면 그 돈 안갚아도 된다고. 흠이 되는 연애경력 하나와 돈
오천만원..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거 같은데...
삼순 ...!
진헌 (투피스를 꺼내며) 이걸로 합시다. 숙자매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48. 자택 거실 (며칠 후, 낮)
- 숙자매처럼 나란히 앉은 나사장과 윤비서.
- 그 앞에 나란히 앉은 삼순과 진헌. 삼순은 진헌이 고른 그 옷을 입고 있다
나사장 그래, 나이가 어떻게 되나?
삼순 올해 서른입니다.
나사장 (마음의 소리) 액면가만 많은 줄 알았는데 실거래가도 많잖아?
진헌 요즘 세 살 연상은 아무것도 아녜요.
나사장 (부드럽게) 아드님, 입 닥치고 가만 계시지? (다시 삼순 보며) 그래, 우리 진헌이 하고는
만난 지 얼마나 됐지?
삼순 (연습했다. 자신있게) 두 달 됐습니다
나사장 (마음의 소리) 두 달 만에 동침을 해? 이거 이거 해픈 애 아냐?
나사장 그래, 양친은 생존해 계시구? 아버님은 뭘 하시나?
삼순 아버진... 3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나사장 (마음의 소리) 거기다 편모슬하까지?
나사장 생존해 계실 땐 무슨 일을 하셨나?
삼순 식품업에 종사하셨습니다.
나사장 (마음의 소리) 식품업? 이제 좀 구색이 맞네
나사장 (반가움에) 식품업이라면 나도 잘 아는데, 무슨 회살 운영하셨을꼬?
삼순 삼순이네 방앗간이요
나사장 ???
진헌 (삼순을 본다)
나사장 (일그러져서는) 방앗간?
삼순 네. 할아버지 때부터 죽 방앗간을 해왔는데 (진헌이 쿡! 웃자 잠깐 돌아봤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잘 아는 분이 인수하셨어요. 어머니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장 분들 상대로 조그만
금융업을 하시구요.
나사장 시장에서 조그만 금융업이라면... 새마을금고?
삼순 아뇨, 일수를 살짝 놓고 계십니다
진헌 (쿡! 아까보다 소리가 더 크다)
윤비서 (역시 피식 웃는다)
나사장 (욹으락 붉으락. 마음의 소리) 이 기집애 이거, 고단수야 바보야? 진헌이 이 자식 날
속일려면 좀 그럴듯한 애를 데려올 것이지 어디서 이런 유통기한 지난 호빵을...
삼순 (다리가 저린지 얼른 침을 찍어 코에 바른다)
나사장 우리 진헌이 사랑하나?
삼순 (놀라 쳐다본다)!...
진헌 (불안해져 삼순을 본다. 잘 해야 될텐데) ...
나사장 그렇잖아. 아무리 초스피드 시대라지만 두 달 만에 사랑이 얼마나 깊어졌겠어? 우리
아들, 얼마나 사랑하는지 난 궁금하네?
삼순 !...
진헌 (불안하다)
나사장 (살짝 경멸의 눈초리. 마음의 소리. E) 내가 모를 줄 알고? 너 지금 봉 잡았다 이거지?
방앗간이 감히 호텔을 넘봐?
삼순 (옛생각을 떠올린다. 내가 현우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
나사장 대답하기 싫은 모양이야 삼순양?
진헌 (걱정스럽고)
삼순 ... 한 여류 소설가가 있습니다.
나사장 ?...
진헌 ?...
삼순 이 소설가는 밤새 글을 써서 새벽에 남편의 책상에 올려놓고 잡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내의
글을 읽는 첫 독자가 되는 거죠. 전 제가 만든 케익을 제일 먼저 진헌씨한테 먹일 겁니다.
나사장 !...
진헌 !...
삼순 제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케익을 제일 먼저 먹여주고 싶습니다. 그만큼... 진헌씨를
사랑합니다.
진헌 (기분이 이상하다)
삼순 (역시 이상하다)
나사장 (마음의 소리) 흥, 입은 잘 맞췄네.
49. 저택 화장실
- 들어오는 삼순. 문을 닫고 훅까지 누르고 변기에 털썩 앉는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을 하고 난
뒤라 다리도 가슴도 후들거린다. 두근대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다.
50. 저택 거실
- 나사장이 진헌을 노려보고 있다
나사장 방앗간집 셋째딸? 잘났다 아주?
진헌 난 여관집 둘째아들이잖아요.
나사장 야 이 소갈머니 없는 놈아, 니 처는 그냥 처가 아니야. 미주 엄마고 호텔 경영주의
안사람이야. 근데 뭐 방앗간집 셋째딸? 그것도 고졸에 쭈그렁탱이 연상? 어디서 저런 호빵같이
생긴 걸 여자라고. 호빵도 유통기한 한참 지나서 짓물러 터졌겠네. 목소린 또 몸살 걸린 고양이
마냥 엥엥엥엥엥엥...
진헌 어머니가 들이댄 아가씨들보단 훨씬 훌륭한 여자에요
나사장 뭐?
진헌 자기 손으로 성실하게 일해서 그 돈으로 꿈을 키우는 여자에요. 부모님이 사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그 바보들하곤 질적으로 다르다구요
나사장 그럼 내가 바보들을 들이댔단 말야?
진헌 그리고 주제파악을 잘 해요.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건강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아주 명쾌한 여자에요.
나사장 주제파악? 퍽도 잘 한다.
진헌 더 할까요?
나사장 괘씸한 놈... (엄하게) 희진인 다 잊은 거야?
- 진헌, 순식간에 표정 굳는다
- 나사장, 놓치지 않고 본다
나사장 지금까지 선 보러 나가서 뒤집어엎고 온 게 희진이한테 미련이 남아서 그랬던 거
아니냐구
진헌 ... 아녜요
나사장 그런데 왜 표정이 변해
진헌 ... 옛날 얘긴 싫으니까요
나사장 ... 다시 한번 묻자. 희진일 잊고 저 아가씨랑 사귀는 게 확실해?
진헌 ... 네..
나사장 (재차 묻는다) 정말이야? 진심이야? 맹세할 수 있어?
진헌 ...네...
나사장 (아들을 보며 생각이 복잡하다. 에휴 저 애물단지)
진헌 ...
나사장 좋다. 일단 두고 보자. 희진일 잊게 해줬다니 그것만으로도 한 50 점은 줘야겠구나.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가산할 건 가산하고 감점할 건 감점하고, 연말 쯤에 정산 한번 하자. 그리구
혹시나 해서 당부하는 건데, 혹시 희진이가 돌아온대두 절대 받아줄 생각 같은 거 하지도 마라. 난
그 애 보기 싫다. 끔찍하게 보기 싫어.
진헌 ...
윤비서 아이는 잘 낳을 거 같아요
나사장 (황당하게 본다)
진헌 (역시 황당하게 본다)
윤비서 삼순양 말예요.
51. 희진 아파트 현관(동)
- 우편함에 두툼한 우편물이 꽂혀있다.
- 외출에서 돌아온 희진이 그걸 꺼내든다. 희진, 발신자 확인하자 미소가 감돈다
-( 인서트) 켈리포니아 헨리의 주소
52. 희진 거실
- 플레이어에서 비디오 테잎을 넣는 희진. 소파로 돌아와 편한 자세로 앉아 과일쥬스를 마시며
화면에 시선 고정한다.
-( 화면) 닥터 헨리가 의사 가운을 입은 채 동료의사들과 농구를 한다. 아주 잘 한다. 골이 들어가자
카메라를 향해 V 자를 그려보인다. 익살맞다.
- 킥 웃는 희진
-( 화면) 맥주집. 동료들과 맥주파티하는 헨리. 희진더러 마시라고 맥주잔을 들이대는 헨리
- 깔깔 웃는 희진
-( 화면) 헨리의 고백..
- 희진도 진지해진다. 고맙고 흐뭇한 미소를 띈 채 화면을 응시한다.
-( 화면) 헨리의 고백이 이어진다
- 희진, 미안한 마음에 씁쓸해진다
희진 ...
53. 2 층 거실
- 띵띵띵 어설픈 악기소리가 난다. 소리를 따라 두리번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삼순. 집의 규모와
인테리어 등을 신기해하면서도 소리는 놓치지 않는다. 띵띵띵... 삼순, 두리번거리다가 드디어
찾아낸다
- 저쪽 구석에서, 마치 없는 듯이, 아주 조용하게 앉아 유아용 악기를 띵똥거리고 있는 아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비현실적인 느낌.. 그래서 천사같다
- 삼순, 갸웃하며 다가간다.
- 인기척을 느낀 아이가 삼순을 올려다본다. 미주다.
미주 ...
삼순 안녕?
미주 ...
삼순 난 삼순, 아니, 희진 언닌데 넌 누구니?
미주 (말똥말똥)
삼순 (문득)!... 너 혹시! 느이 아버지가 삼식이?
54. 주방
- 커다란 볼에 밀가루를 붓는 삼순. 물을 붓고 반죽을 하기 시작한다.
- 키 작은 미주가 테이블에 고개를 얹고 쳐다본다.
- 보통 엄마들과는 다른 날렵한 솜씨를 자랑하며 반죽하는 삼순.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고
던졌다가 받기도 하고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고 아이가 보기 좋게 약간의 오버를 깃들인다
- 미주, 그저 멀뚱하게 본다
- 삼순, 반응없자 흥이 안난다. 그래도 나름대로 즐겁게 해주려 별 쇼를 다 한다
- 이제 삼순과 미주는 갖가지 모양을 만들고 있다. 눈사람도 강아지도 고깔모자도... 여전히 미주는
별 표정이 없다. 삼순, 밀가루로 반지를 만들어 미주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미주, 초롱한 눈만
빛낸다.
삼순 (마음의 소리) 무슨 애가 이래? 말도 안해, 웃지도 않어.. 삼촌은 얼음왕자, 조카는 얼음공주,
그럼 여긴 이글루야? (뚜- 해서 손 놓는다) 나 안할래
미주 (본다)
삼순 (아이가 떼 쓰듯이) 말을 못하면 웃기라도 하든가, 무슨 반응이 있어야 재미가 있지. 나 안해
진헌 (E) 계속 하세요
삼순 (휙 본다)
진헌 낯을 좀 많이 가려서 누구랑 같이 있질 못해요. 지금 아주 재밌어 하는 거에요
- 미주, 진헌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 진헌, 미주를 들어올리고 뺨에 뽀뽀한다. 평소의 서늘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 삼순, 그 표정이 너무 낯설다
- 미주가 밀가루반지를 자랑스럽게 내민다
진헌 아줌마가 만들어줬구나? 다음엔 목걸이도 만들어주실 거야. (삼순 보며) 그럴거죠?
삼순 그런 것도 맡은 바 임무인가요?
진헌 한달 치 이자 삭감.
삼순 예?
진헌 반지값이에요. (미주를 안고 나간다)
삼순 (밀가루 반죽이라도 던지며) 삼식이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E)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55. 2 층 오디오방 겸 서재
- 방 한쪽 벽면이 온통 LP 판, 또 다른 한 쪽은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쪽엔 초보자가 봐도 성능이
좋을 것 같은 오디오세트가, 또 한쪽에는 피아노 한 대.. 그리고 고급스런 책상과 소파 등이
놓여있다. 진헌과 미주가 나란히 앉아 젓가락행진곡을 치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윤비서가 폭신한
1 인용 소파에 파묻혀 있다
- 그런 풍경들을 낯선 듯이 둘러보던 중인 삼순
- 진헌, 곡을 바꾼다. 곰 세 마리 같은 동요로. 미주가 까르르 웃는다. 기분 내킨 진헌, 재밌고
신나는 동요를 한 소절씩 연거푸 친다. 미주가 몹시 좋아한다
윤비서 진헌아 그 곡 좀 듣자
- 진헌, 장난을 멈추고 손을 비빈다. 심호흡을 하더니 긴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른다. 청명한 소리가
흐른다.
- 삼순, 뜻없이 보고 있다.
- 진헌,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귀에 익은 팝이나 클래식 소품....
- 삼순, 놀란다. 제법인걸?
- 진헌, 흠뻑 빠져 연주한다
- 윤비서도 흠뻑 빠져 듣는다. 미주가 일어나 윤비서 옆에 앉는다.
- 삼순,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나른하다. 피아노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다.
- 쏟아지는 햇살 속에 진헌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 삼순, 마음이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괜히 붉어진 뺨을 어루만진다.
- 미주가 잠이 든다
-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연한 봄햇살이 그의 주위를 맴돈다.
삼순 (마음의 소리) 정말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몸 속 어디에선가 종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주는 종소리가... 나는 아직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아니, 믿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믿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지금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내 몸 어디선가 들려온다면.. 난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 내 운명의 상대를...
- 손가락이 멈춘다. 연주가 끝난다.
윤비서 삼순양은 신청곡 없어?
삼순 (제 생각에 빠져있다가 정신 차리고) 예?...
윤비서 진헌이가 피아노 치는 거 처음 봐?
삼순 예? 예...
윤비서 잘됐네 그럼.. 듣고 싶은 거 있으면 신청하지?
삼순 (진헌을 본다) ... 그래도 돼요?
진헌 (윤비서를 의식해서)... 몇 년만에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당연하죠.
삼순 그럼... 이 곡이 될려나? 오버 더 레인보우!
진헌 !...
윤비서 !...
삼순 ?... 오버 더 레인보우, 몰라요?
진헌 ...
윤비서 큼...
삼순 ?... 빨리 쳐줘요
진헌 ... 그건 안되겠는데?
삼순 ?... 왜요?
진헌 ... 악보가 없잖아요
삼순 ?... 지금까지 악보 없이 쳤잖아요.
진헌 그건 못외웠어요
삼순 ?... 지금 나 놀리는 거죠? 방금 친 것보다 몇십배 더 쉬운 건데 그걸 못 외워요? 빨리
쳐줘요. 난 그거 듣고 싶어요
진헌 못쳐요
삼순 쳐요!
진헌 못친다구요!
삼순 쳐요 빨리! 여자친구한테 그것도 못해줘요?!
진헌 (확 분노가 서린다)
삼순 (아 저 표정, 큰일이다!)
진헌 (싸늘한 얼굴로 피아노 뚜껑을 쾅! 덮는다)
삼순 (흠칫!)
- 굳은 얼굴로 나가버리는 진헌
- 어처구니없어 하는 삼순을 지나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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