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여왕 3
사무실 (D) 3부 수정 9.11
태희 (목에 걸린 사원증 빼서 손에 든다, 여진 보란 듯이 보여주고 여유롭게) 이제 계급장 뗐으니까, 오래 봐 온 언니로서 한마디만 할까?
여진 (표정)
태희 너 지금 잔머리 써서 나 이겨먹으니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 그런데 너,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잔머리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섣불리, 개념없이, 재수없게 들이대다간, 뒤통수 제대로 맞는 날, 반드시 와. 조심해 너.
여진 (하!)
태희 (핸드백 달랑 들고 또각또각 가다가 홱 돌아보며) 내 짐은.. 택배로 부쳐줄래? 선불로.
뒤에 선 여진, 쪽팔리고 열받고. 태희 확 째려보는데.
태희, 통쾌하게 미소 지으며 밖을 향해 나가는.
유경 팀장...(...했다가 얼른 눈치보고. 못 쫓아가는)
여진, 팀원들 앞에서 왠지 창피하기도 하고..
복도 (D)
태희, 걸어나오는데. 맞은편에서 한상무가 비서들과 온다.
태희 상무님.
한상무 따로 할 얘기는 백팀장 통하라고 했을텐데? (하고 쓱 가려고 하면)
태희 마지막으로 인사 드리는 건데... 다른 사람 통하긴 좀 그래서요.
한상무 (멈칫하고 돌아본다)
태희 인사.. 드리러 왔어요. 저 사표 냈습니다 상무님.
한상무 (설마..했는데 역시.. 실망스럽다) 생각했던 것보단 빠르네.
태희 네?
한상무 믿는 구석 있으니 조만간 그만두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빠르다구.
태희 전, 믿는 구석 없는데요. 그냥 저한텐 제 자신이 믿는 구석이에요. 딴 구석은.. 없습니다.
한상무 (싸늘한 표정 있다가 의미심장) 그래. 그럼 어디든.. 한번 가 봐.
태희 (인사하고)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상무님.
한상무 진심...? (피식 씁쓸하게 웃고) 그거 그렇게 함부로 쓰는 말 아닐텐데.
태희 (눈물 참으며) 처음 입사해서부터 너무 잘해주신 거.. 많이 가르쳐 주신 거.. 과분하게 보호해주신 거.. 아무 것도 아닌 저를, 사람들 앞에서 높이 세워주신 거. 잊지 못할 겁니다.
한상무 (다른 의미로) 그래. 그건... 나도 잊지 못할 거야.
태희 (꾸벅 인사하면)
한상무 (그대로 꼿꼿하게 서서 보다가 돌아선다)
태희 (표정 있다가 돌아서 간다)
한상무 (가다가 홱 돌아보는데, 매섭다)
사무실 (D)
준수, 설문지 뭉치 들고 들어오는데.
유경이 눈치 봐가며 준수를 구석으로 끌고 간다.
유경 방금 난리 났었어요.
준수 네? 왜...
회사 로비 (D)
태희, 로비 경비 앞에 서고. 손에 들고 있던 사원증 보고.
태희 이거 인사과에 반납 좀 해주세요. (사원증 한번 쓰다듬어 보고 건네는) 수고하세요.
미련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걸어나간다.
복도 (D)
준수, 사무실에서 뛰어나오고.
회사 정문 앞 (D)
태희 나오는데.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다.
이때 뒤에서 뛰어오는 준수.
준수 황태희!
태희, 돌아보면. 준수가 있고. 왠지 안심되고 위로가 되는 기분.
태희 준수씨. 나.. 사고쳤다.
준수 (다가오고) 잘했어.
태희 (의외다) 잘했어?
준수 그럼. 잘~했어. 역시 내 마누라가 한칼이 있어. 얘기 듣는데, 내 속이 다 후련하드라.
태희 (눈물 그렁) 진짜?
준수 그래.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이 뭐 여기 아니면 갈 데 없겠냐?
태희 그래두... 너무 막한 거 아닌가 걱정도 살짝 돼.
괜히 당신한테 불똥 튀면 어떡해.
준수 별 걱정을 다 한다. 손!
준수, 손 내밀면. 태희 착하게 척 손 얹고. 준수, 태희 손잡고 걷는.
조금 뒤에서 그 모습 보고 있는 여진.
시원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진 느낌이다.
닭살스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걸어가는 태희 준수.
주방 (N)
태희,준수, 마주보고 앉아서 저녁 먹는다.
김치찌개며 여러 가지 맛깔나는 반찬들 놓인.
준수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확 관둘까?
태희 아냐아냐. 당신은 일단 붙어 있어. 내가 딴 데 가서 자리 잡으면, 그때 부를게.
준수 (해맑다) 그러까? 그럼 그러지 뭐! (밥 먹다가) 아 맞다. 나 내일부터 예비군 훈련인데. 군복 찾아놔야겠네.
태희 예비군? 아니.. 군대 갔다 왔음 됐지.. 무슨 훈련을 또 해? 우리 자기 힘들게.
준수 2박 3일인데 뭐.
태희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뭐? 2박... 3일? 진짜야? 그럼 이틀밤을.. 나 혼자 자야 된다구?
준수 그러게 말이야. 빨리 통일이 돼야지. 아 진짜... 남북분단의 현실이 슬플 뿐이다. (진짜 슬픈 듯 국 후루룩 마시고)
태희 (힘없이 숟가락 놓으며) 어떡해. 2박3일.. 너무 길다... (막막하기만 한)
대문 앞 (D)
칼날처럼 날씬하게 다려진 예비군복 입은 준수. 반짝반짝 빛난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배웅 나온 태희.
준수 자기 군복에.. 풀 먹여 다린거야?
태희 응.
준수 어깨 아팠겠다.
태희 (여기저기 털어주며) 이 정도야 뭐.. 자기 고생할 거 생각하면. (안쓰런) 가서 얻어맞고 그러는 거 아니지?
준수 그런 거 아니야.
태희 전화 자주 해야 돼.
준수 거기.. 휴대전화 반입금지야.
태희 뭐? 목소리도 못들어 그럼? (땅이 꺼져라 한숨)
준수 (맘아픈 듯) 문단속 잘하고. 아 요새 너무 위험해서.. 내가 맘이 안놓여.
장모님 오시라 그래. 아니다. 자기가 장모님댁 가서 자.
태희 자기나 몸조심 해. (하는데 울컥 눈물날 것 같고, 하늘 보며 눈물 참는) 아.. 나 왜 이러지?
준수 (놀란) 우는거야 자기?
태희 (꾹 참는) 아니야. 안 울어. 얼른 가아.. (하는데 목메고)
준수 에이 정말... (영화처럼 태희 확 안아준다)
이때 옆집에서 나오다가 화들짝 놀라는 대머리 아저씨.
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면.
준수 안되겠다. 다시 들어가자.
태희 응? 안늦었어?
준수 시간 좀 있어. 이리와 봐. (하고 태희 팔 확 끌고 안으로 들어가고)
태희 어머..자기야. 몰라.. (끌려 들어가는)
대문 닫힌다.
그리고 잠시 뒤. 문 열리는데. (*5년 후 상황*)
넥타이도 제대로 못차고 나오는 준수, 스타일 확 바뀐 태희, 그리고 대여섯살 짜리 아이 소라 나온다.
준수, 태희는 걸어나가며 툭탁툭탁 싸우는 중.
준수 (지 옷 여기저기 털며) 양복 드라이 좀 맡겨놓으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태희 아직 깨끗하잖아. 그거 한번 하는 데 얼만지 알기나 해?
준수 모른다! 내가 월급 벌어다 주면 됐지, 왜 그거까지 알아야 돼?
태희 (기막히고) 누가 들으면 월급을 한 오백만원쯤 갖다주는 줄 알겠다?
준수 애 듣는데. (이 악물고) 그만하자.
태희 그러게 사람을 건드리긴 왜 건드려.
준수 (절로 한숨나고) 내가 미쳤지. 이런 여자랑..
태희 (감탄) 어머, 우리 이렇게 한 마음 된 거 오랜만이다. 지금 그게, 딱 내 마음이거든. (톤꺾어 톡 쏘는) 내가 미쳤지. 이런 남자랑!
준수 남편이 오백만원 못 벌어다 줘서 그렇게 불만이면, 당신도 벌면 되잖아. 요즘은 맞벌이가 대세고 필수고 트렌드야.
태희 (점점 오르는) 맞벌이..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해?
준수 나는 당신이 하두 큰소리 뻥뻥 치고 회사 멋지게 때려치길래, 금방 근사한 데 덜컥 재취업해서. ‘여보! 당신 월급은 용돈해. 살림과 저축은 내가 번 걸로도 충분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어떻게 5년 동안 어디 한 군데서도 오라는 데가 없냐?
태희 (바짝 약오르고) 오라는 데가 없는 게 아니라! 한송이 상무가 내가 가려는 데마다 탁탁 막고 다니니까...
준수 핑계 없는 무덤 없지.
태희 (째려보다가) 예전에 당신.. 그랬잖아? 얼른얼른 승진해서, 과장되고 부장되고 이사되고. 더 나아가선 전문경영인 자리까지 노려보겠다고.
근데, 그런 거 다 해보려면~ 일단 대리 승진부터 해야하는 거 아냐?
준수 (울컥) 당신이 회사에서 그 쌩난리를 치고 나갔는데. 내가 무슨 수로 승진을 해! 팀장이니 상무니, 아주 나를 웬수 보듯 보는데!
태희 핑계 없는 무덤 없다며!
준수 오늘날까지 내가 안짤리고 버티는 건, 그나마 내가 실력이 있고.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이야!
태희 그러니까... 그노무 믿음과 신뢰 때문에 집까지 홀라당 날려먹...
준수 (OL/말 막으려 버럭) 소라야. 아빠가 안아줄까?
소라 (태연) 괜찮아. 하던 얘기 계속해.
준수 아냐아냐! 안아줄께! (됐다는 애를 번쩍 안더니 나간다)
아파트 앞 (D)
태희 준수 소라, 나온다.
태희와 준수, 소라 몰래 팔꿈치로 치며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며 오는데.
이때 다가오는 민준과 민준엄마.
민준엄마는 아줌마 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스타일.
민준엄마 저.. 소라 엄마시죠?
태희 네. 그런데요.
민준엄마 민준이 엄마에요.
태희 어머. 그러시구나. 우리 소라가 민준이 얘기 많이 했는데. 민준이 안녕?
민준 (멋지게 미소만)
소라 (수줍..)
민준엄마 (어색해하며) 저.. 이거... (시계 내민다)
태희 (웃으며) 이게 뭐에요? (하다가 보면, 아는 물건이고) 어머! 우리 애아빠 시곈데?
준수 (!)
소라 (흠칫..)
민준엄마 소라가 어제 어린이집에서 민준이한테 이걸 선물로 줬나봐요. 자기랑 놀자고 하면서.
태희 (망신살..) 아..네...
민준엄마 비싼 거 같아서...
준수 (정중하게) 결혼..예물입니다.
민준엄마 어머나..
태희 (표정)
동네 거리 (D)
태희, 열받아서 걸어온다. 조금 뒤로 준수와 소라.
태희 아니 넌 애가 누굴 닮아서 그러냐?
준수 누굴 닮았겠어?
태희 나 닮았단 거야?
준수 소라야. 예전에 니 엄마두 아빠 꼬실 때, 통장이며 아파트로...
태희 (OL) 어우 좀!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준수 우리 소라두 지 출생의 비밀은 알아야지.
태희 출생의 비밀은 무슨! (소라에게 타이르듯) 소라야. 여자는 지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면 안돼. 자기를 좋아해주는 남자랑 결혼해야지.
소라 싫어. 난 민준이랑 결혼할거야.
태희 (속상) 민준이는 예은이 좋아한다며!
소라 응.
태희 유치원에 너 좋아하는 남자애 있을 거 아냐!
소라 (눈 굴리며 좀 생각해보다가) 없는데? 남자애들이 날 무서워해.
태희 .....
준수 장모님 소원이 이뤄졌네.
태희 뭐?
준수 입버릇처럼 그러셨다며. 당신이랑 똑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보라구.
태희 (하!)
준수 소라야. 미안하다. 니가 이 아빨 닮았으면 세상살기가 좀 편했을텐데.
태희 아빠 닮아 뭐하게? 맨날 승진 미끄러지면서 살게?
준수 (에씨!) 애 앞에서 진짜! 이번엔 붙을거거든?!
태희 그래. 어디 두고보자!
준수 (자신 있다는 듯 큰소리) 그래! 두고 봐라! 두고 봐! (에씨.. 하며 걸어가고)
로비 (D)
로비 한켠. 준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인사 공고를 보고 있다.
준수 옆으론 오과장. 그 옆엔 동원.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웅성웅성.
오과장 (준수 보고 뭐라 해 줄 말이 없는 듯) 야... 참... 이거... 뭐.... 어쩌다가... 하... (그러더니 동원 쪽 보고 밝게) 축하한다. 강과장대우. (악수하고)
동원 (입 찢어지면서도 애써 겸손하게) 감사합니다. 그치만, 동기 녀석은 대리에서도 미끄러진 마당에 저 혼자 좋아하기도 좀 그렇네요.
오과장 그러니까... (하고 다시 준수 보며 뭐라 해야 할지 난감) 에이...참....거...
준수 (표정)
복도 (D)
오과장과 준수 걸어간다.
오과장 너두 참..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안되냐..
준수 올해 저 삼잰가봐요.
오과장 내가 본 너는, 언제나 삼재였어.
이때 엘리베이터 문 열리더니, 한상무 나온다.
한상무 뒤로 백여진, 그리고 다른 팀장급들 줄줄이 나오는데.
5년 사이에 더 강해진 한상무, 백여진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저절로 주눅 들며 얼른 벽 쪽으로 딱 붙어 서게 되는 준수, 오과장.
다른 직원들도 양쪽으로 갈라지며 인사하고.
한상무, 여진과 뭔가 얘기하며 가다가. 준수와 눈 마주치고.
준수, 헉! 놀라서 얼른 고개 숙여 인사한다.
한상무, 인사 안받고 말없이 1초쯤 응시하다가 다시 가면.
여진은 준수 외면한 채 한상무 뒤로 따라 가고.
그 무리 사라지고 나면.
오과장 야.. 난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네. 상무님이 널 보는 눈빛이 무슨.. 애인 뺏어간 놈 보는 그런 눈빛이야!
준수 애인은 무슨요.
오과장 애인은 애인이지. 너 입사전에, 한상무랑 니 와이프 장난 아니었어. 일할 때 손발 척척 잘 맞는 건 기본이고. 둘이 뭐.. 출퇴근도 같이 하고. 주말도 같이 보내고, 휴가 때는 여행도 같이 가고. 친자매보다 더 친했어.
준수 (표정)
오과장 그런 제수씨 혼을 쏙 빼서 홀라당 뺏어갔으니... 니가 이쁘겠냐?
준수 그럼 도루 뺏어가라 그러세요. 데리구 살아봐야 내 심정을 알지.
오과장 중요한 건, 상무님은 은혜든 웬수든, 절대 잊지 않는 분이란 사실이지.
한마디로 뒤끝이 길고. 더럽다는 거...
준수 (하... 한숨 쉬고)
상무실 (D)
한상무, 여진과 커피 마신다.
한상무 난 뒤끝 긴 거, 아주 딱 질색인 사람이야.
여진 네 상무님.
한상무 그런데 자긴, 왜 그렇게 질질 끌어?
여진 뭘 말씀이세요?
한상무 아까 봤던 사람 말야. 황태희 남편.
여진 (!!)
한상무 안 보이는 데로 발령을 내든.. 알아서 처리하라고 몇번 얘기한 것 같은데? 다른 건 재깍재깍 잘하는 사람이, 그건 왜 자꾸 잊어버리는거야?
아니면 일부러 붙여두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거야?
여진 (얼른 대답 못하고)
한상무 황태희 때문이야?
여진 네?
한상무 아직도 황태희를 그렇게 의식해?
여진 아뇨 상무님. 그런 건 아니지만...
한상무 그게 아니라면, 황태희 남편 옆에 끼고 황태희 대신 괴롭히면서 복수하는 그런 유치한 짓은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어? 이제 자긴 황태희 부하직원 백여진이 아니잖아.
여진 (표정)
한상무 그동안은 자기 입장도 조금은 이해가 되고. 다른 사람들 눈도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더 이상은 아닌 것 같아.
여진 ...
한상무 (커피 한모금 마시고) 아직은 대외비지만. 좀 있으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될거야.
여진 (!!!) 구조조정요?
한상무 확실히 말할게. 난 황태희 남편.. 가끔이지만 얼굴 볼때마다 거슬려.
이번 기회에 좀 치워줬으면 해. 같은 말 다시는 안하게 해줘.
여진 (표정 있다가) 알겠습니다 상무님.
사무실 (D)
여진 좀 복잡한 표정으로 들어오는데.
준수, 나름대론 잔뜩 벼르고 있었던 표정으로 일어난다.
준수 (작정한 듯) 팀장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일동 (시선 집중)
오과장 (옷깃 잡아당기며.. 너 왜 그래..)
여진 (힐끗 보고 따라오라는 듯 들어가면)
준수 (당당히 따라 들어간다)
팀장실 (D)
문 닫고 들어오는 준수. 자리로 가서 앉는 여진.
준수 (당당하게) 제가 왜.. 승진에서 떨어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진 정말 몰라서 물어요?
준수 네. 모르겠는데요.
여진 회사에 아무런 보탬도 안된 사람인데. 뭘 구실로 인사고과를 줘야 하죠?
준수 저도 제 밥값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진 뭘로?
준수 그건.. (하다가) 그동안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예를 들면 지난번 개선돼서 힛트친 클린징 용기도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표정에서)
술집 (N) -회상
준수, 동원, 바에서 술 마신다.
준수 (신나서 얘기하고 있는) 우리 마누라가 그러는데. 돌려서 쓰는 게 많이 불편하다 그러더라구. 그냥 눌러쓰는 펌프식이면 훨씬 간편할 것 같애.
동원 (바로 맞받아치는) 안그래도 나도 그 생각 막 하던 참인데!
준수 그치? 괜찮지?
동원 응. (잔 내밀며) 마시자. 내가 오늘 쏠게.
준수 (환해지며) 진짜? 니가 웬일이냐? (건배하며 원샷하는데)
동원 (입만 대고 바로 내린다)
준수 (다 마시고 잔을 머리 위로 털며 해맑게 기분 좋고)
회의실 (D) - 회상
준수, 숙취 덜 풀린 채 한쪽 머리 웃기게 눌려서 회의실 들어오는데.
이미 사람들 다 모여있고. 한심하게 준수 보는.
동원은 레이저 빔 이용해 프리젠테이션 중이다.
준수, 여진 눈치 보며 자리에 앉으면. 동원 유창하게 설명한다.
동원 이 용기를 보시면, 펌프식입니다. 이렇게 간단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준수 (!!!)
동원 와이프가 그러는데. 돌려 쓰는 게 불편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일동 (끄덕끄덕하며 동원이 나눠준 종이 들춰보고)
준수 (저 자식이... 기막히고)
여진 좋네요. 샘플 의뢰해 보세요.
동원 네. 알겠습니다. (레이저 빔 끄고 자리로)
여진 (준수 보고) 봉준수씨? 아이디어 가지고 왔어요?
준수 (동원 째려보다가 놀라) 네? (수첩에 조잡하게 그림 그려져 있고. 용기 개선.. 펌프식이 어쩌고.. 쓰여 있는 것만 보인다)
여진 뭐해요?
준수 ......저도.. 저거랑 같은 생각인데...
여진 (한심하게 보고) 다른 아이디어는 없다는 얘긴가요?
준수 (억울) 정말 저거랑 똑같은 생각이라...
팀장실 (D)
여진, 준수 말이 거짓말 같진 않다. 하지만 다리 꼬고 시니컬하게 보는.
여진 그럼 왜 여태 얘기 안했어요?
준수 아니.. 남자가 돼 가지구 그런 걸 또.. 시시콜콜 일러바치기도 참 그렇고.
여진 지금, 시시콜콜 일러바치고 있잖아요?
준수 (울컥 열받고) 팀장님이 저한테 왜 이러시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진 (표정 있다가 싸늘) 내가 공과 사 제대로 구분했으면, 봉준수씨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해요.
준수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여진 됐어요. 나가 보세요. (외면하며 서류 들춰보면)
준수 (억울해 죽겠는 표정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와) 되긴 뭐가 됩니까? 난 하나도 안됐거든요?
여진 (보면)
준수 팀장님 정말.. (했다가 열받아서) 백여진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얼마나 나를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냐?
여진 괴롭혀? 내가?
준수 너 솔직히 안 그랬어? 내 생일, 와이프 생일, 결혼기념일 귀신같이 알아가지구 야근시켰지!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당직 시켰지! 여름휴가 제때 보내준 적 없지! 뭐 망할 것 같은 프로젝트만 다 나 시켜가지구 맨날 피보게 만들었지!
여진 그래서?
준수 사람을 그렇게 괴롭혔으면. 인간적으로... 난 큰 것도 안 바래. 대리 승진은 시켜줘야지! 내가 정말 쪽팔려서 회살 다닐 수가 없어!
여진 그럼... 그만 둘래?
준수 (!!!!)
여진 그래. 맞아. 예전엔 준수씨 괴롭히는 거.. 솔직히 재미도 있었지만.
지금은 좀.. 귀찮고 지루해졌거든?
준수 뭐?
여진 그러니까 그만 둬도 돼. 승진도 안 시켜주고 공도 인정 안해주는 회사. 뭐하러 붙어 있어? 본인이 결단 내리기 힘들면, 마지막으로 내가 그건 도와줄께!
준수 너무 극단적이시네요. 제 얘긴 그런 건 아니구요.
여진 왜. 회사 관두긴 싫은가봐?
준수 그럼요. 먹여살려야 될 처자식이 딸린 몸인데요.
여진 (그 말에 싸늘) 나가보세요!
준수 (돌아서 나가며 표정)
여진 (좀 복잡한 표정)
태희 집 거실 (D)
태희, 아줌마들 쫙 눕혀놓고 맛사지 팩 붙여주고 있다.
태희 이거 한 장에 얼마씩 하는지 다들 아시죠? 맛사지에 팩까지 오천원이면 완전 공짜에요.
병규맘 아유 그래 알지. 근데 소라엄마가 진짜 이 화장품 회사에서 팀장까지 했었어?
태희 (표정 있다가) 네에. 저두 그땐 좀.. 잘 나갔었죠.
병규맘 그래. 저번에 반상회 때 보니까, 소라엄마가 추진력도 있고 리더쉽도 있더라. 음식물수거통에 대한 아이디어는 정말 획기적이었잖아.
일동 (맞아맞아)
태희 (겸손해하며 손사래) 아유 뭘요.
은미맘 (좀 뚱뚱하다) 하긴.. 나두 한땐 잘 나갔었지. 나 스튜어디스였잖아.
우리 남편은 스튜어디스랑 결혼했더니, 웬 스모선수가 침대에 누워 있냐...! 그러지만.
일동 (와아.. 웃고)
태희 웃으시면 안돼요. 주름 져요.
순간 아줌마들 웃음 뚝! 다들, 주름질까봐 눈가며 입가를 잡고.
태희 그리고, 제가 회원관리 차원에서 피부상태 체크하고 있으니까요. 가시기 전에 사진 좀 찍구요. 몇가지 설문에만 응답 좀 해주구 가세요~
집 앞 (N)
집앞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준수. 어떻게 집에 들어가나.. 답답하다. 들어가려다 돌아서서 몇걸음 걷다가. 다시 들어가려다.. 왔다갔다하는 준수.
거실 (N)
아줌마들 다 갔고. 태희는 청소 중. 소라는 인형놀이 하고 놀고 있고.
이때 비밀번호 띡띡 누르고 들어오는 준수.
태희 왜 이제 와. 전화두 안되구. (급하게 속삭) 어떻게 됐어?
준수 (표정)
태희 소라야 잠깐만. (하더니 준수 끌고 안방으로 간다)
태희 집 안방 (N)
두 사람 들어온다.
태희 (재촉) 승진 어떻게 됐냐구~
준수 (시선피하며. 표정 있고)
태희 (표정 살피다) 떨어졌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침에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 가더니. 두고 보자던 게 이거였어? 또 떨어지는 거?
준수 (OL/욱해서) 떨어지긴 뭘 떨어져!
태희 그럼!!
준수 (에라 모르겠다!) 붙..붙었다!
태희 (!!) 정말? 당신 그럼.. 승진한거야? 대리 됐어?
준수 (큰소리) 그래!
태희 (반색) 아니... 그럼 전화를 좀 해주지!
준수 그거 뭐 대단한 일이라구...
태희 잘됐다. 축하해 여보~
준수 (찔리고 시선 피하며 겉옷 벗는다)
태희 (급다정해져서 옷 받아주며) 오늘 엄마 생신이라, 저녁 같이 먹자고 연락 왔더라구. 연희 기지배 마주치기 싫어서 주말에 간다 그랬는데. 오늘 그냥 가서 먹자! 응? (자랑하고 싶어서 죽겠는)
준수 (난감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태희 친정집 주방 (N)
태희모, 연희,태희, 상 차리고 있다.
태희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질이다) 사실... 기대도 안했거든. 그런데 떡하니 승진이 돼 가지구 온거야.
태희모 놀고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일은 했나보네.
태희 (더 업돼서) 그 사람이 노력형이라기 보단. 굳이 말하자면, 천재형이거든. 아이디어가 워낙 좋아. 이런 사람이 한번 맘먹고 하면 무서운 거 알지?
연희 (삐쭉) 누가 들으면 이사 승진 쯤 한 줄 알겠다. 꼴랑 대리갖구...
태희 (찌릿) 꼴랑 대리? 니가 대기업을 알아? 고서방이 병원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니가 잘 모르나 본데. 원래 크고 좋은 회사에선 대리도 쉽지 않아.
연희 아 그래? 그런데 언니 넌.. 왜 그 대리도 쉽지 않은 크고 좋은 회사에서
팀장 자리를 때려치고 집에 들어앉았냐?
태희모 그러게 말이다! 금방 다시 취직할 거라구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어디 취직한거니? 집구석에 취직한거니?
태희 집구석에 취직했음 어때? 남편이 버는데?
태희모 아유.. 그거 얼마나 번다구. 그 쥐꼬리만한 거에서 니 시댁에 퍼다주는 돈은 또 얼마니? 미순이 그게 아들한테 생활비 타 쓴다고 자랑할 때마다 내 속이 터져! 게다가 봉서방이 그 집 날려먹은 것만 생각하면 내가...
태희 (OL) 아 왜 다 지난 얘길 자꾸 꺼내!
태희모 암튼, 요새 외벌이는 연희 신랑처럼 한달에 천 이상은 버는 사람이 하는거야.
태희 (오기 나서) 우리 그이 제부만큼은 못 벌어도, 때 되면 고아원에 과자도 사들고 가구. 월 삼만원씩이래두 못사는 나라 후원도 하고 그래.
그 사람.. 마음만은 부자거든?
연희 좋겠다. 형분 마음이 부자라서. 근데 난, 몸이 부잔 게 더 좋드라. (얄밉게 뭐 하나 집어먹으며 쓱 가고)
태희 (저 기지배가! 확 열받고)
태희 친정집 거실 (N)
준수, 연희남편과 앉아 있다.
연희남편 형님. 이번 어머님 생신 선물은 저희가 하려구요. 집사람이 어머님 여행 보내드리고 싶다고 해서..
준수 (기죽긴 싫어서) 응? 같이 해 같이.
연희남편 아닙니다. 저희가 그냥 하겠습니다.
준수 (조금 빈정 상하고) 같이 나눠서 내자구. 거.. 여행... 얼만데?
연희남편 호텔팩으로 유럽일주하는 건데요. 칠백만원..
준수 (!!!)
연희남편 그냥 저희가 낼께요 형님.
준수 (표정 있다가, 주섬주섬 봉투 꺼낸다)
연희남편 (?해서 보면)
준수 같이 내 같이.. (봉투 쓱 밀어주더니 얼른 일어나며)
소라야? 소라야? (하며 괜히 방으로 가버리고)
연희남편 (봉투 열어보면 만원짜리들 서른장쯤.. 황당)
태희 친정 식탁 (N)
케익 불 끄는 태희모. 일동 박수 쳐준다.
태희모 다들 고마워. 바쁜데 시간 내서 와주구..
준수 어머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꽃다발 주는)
태희모 (덤덤) 응 그래. 고맙네.
연희남편 그리구 이거... (티켓봉투 내민다)
태희모 어머나, 이게 뭔가?
연희 엄마 유럽일주 하고 싶어했잖아. 오성급 호텔들로만 럭셔리하게 다녀오시라구 여행권 끊었어.
태희모 아우... 뭐하러 그렇게 무리를 해! 저번에 니들이 호주도 보내줬잖아.
연희남편 이번엔 형님이랑 같이 했습니다.
태희모 (놀라서) 뭐? 진짜? (태희 보면)
태희 (역시 놀라고. 어떻게 된 거냐고 준수 보면)
준수 하하.. 즐겁게 다녀오세요 어머님.
연희 우리가 그냥 다 하려고 했는데. 형부가 굳이 같이 내겠다 그랬대.
태희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미소로 엄마 보고)
연희 그래서 뭐... 삼십만원.. 보탰다 그러더라구?
준수 (표정)
태희 (표정)
태희모 (그럼 그렇지..)
준수 (민망해서 케익 자른다) 얘들아. 우리 케익 먹을까? 여보.. 접시 좀..
태희 (창피하고 민망하고 열받고)
안방 (N)
불 꺼져 있고. 협탁 조명등 정도만 들어와 있다.
태희 돌아누워 있고. 준수는 돌아누운 태희 눈치 슬쩍 본다.
준수 (괜히) 아니.. 여행은 고생하는 맛 아냐? 오성급 호텔로만 돌아다니면 여행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겠냐고. 안그래?
태희 ....
준수 고서방 말이야. 난 맘에 안 들어. 사람이 진정성이 없어. 자식이 맨날
돈질이나 할라 그러고 말이야. (진짜 궁금한) 성형외과가 그렇게 많이 버나?
태희 ....
준수 내가 삼십만원 내서 쪽팔렸냐? 그래도 사람이 뭔 말을 하면 대꾸를 좀...
태희 (속상해서 확 일어나며/OL) 삼십만원씩이나 왜 내니 왜! 그 돈은 어디서 난거야?
준수 내가 돈이 어딨냐? 현금 서비스지.
태희 그게 이자가 얼만데! (열받고) 어차피 우리는 연희네 하는 거 따라할 수가 없단 말이야! 생색도 못낼거 뭐하러 삼십만원씩이나 내냐구. 내고 망신 당하느니, 안내고 망신 당하는 게 남는 장산데!
준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안내냐. 우린 뭐 자식 아냐?
태희 (그 말에 미안하고) 난 오늘 당신 승진한걸루 연희 그 기지배, 코를 납작하게 해줄라 그랬는데. 당신도 속상했지.
준수 (찔리고 미안하고) 처제 코가 어떤 콘데.. 납작하게 해줘?
태희 맞어. 그 기지배 코는 수술한 코라 납작하게 만들기가 힘들지.
두 사람, 그제야 좀 웃는다.
태희 있잖아. 되고 나면 얘기할라 그랬는데. 나 제품기획안 하나 만들었거든.
준수 기획안?
태희 집에서 아줌마들 피부관리해주면서 생각난 아이디어들 좀 모아서..
작은 회사긴 한데, 한번 내보려구.
준수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며. 한상무 때문에.
태희 워낙 작은 데니까. 시간도 좀 지났고.
준수 (끄떡)
태희 당신 승진하고 나니까 앞으로 일도 잘 풀릴 것 같구. 뭔가 예감도 좋구. 그러네? (좋아하며) 당신도 그렇지?
준수 (그 모습 보고 찔리고 미안하고) 어.. 뭐 그렇지. (표정)
태희 주말에 새 양복이라두 한 벌 사러 갈까?
준수 양복?
태희 어차피 월급도 오를텐데! 기분이지 뭐!
준수 (슬그머니 돌아누우며 미치겠고)
구내식당 (D)
준수, 오과장과 함께 식판 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오과장 그래서! 승진했다구 뻥쳤단 말야?
준수 사람을 막 몰아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오과장 (반찬 담으며) 일 더 커지기 전에 조용히 실토해라. 몇 대 맞으면 되지.
준수 과장님! 그 사람 성격 모르세요?
오과장 (잠깐 떠올려보더니) 몇 대 갖곤 안되겠구나. 그러게.. 왜 그랬어...
준수 (암담하기만 한)
오과장 근데 너..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 얘기 들었냐? 곧 피바람이 불 것 같다.
준수 예? 무슨...
오과장 (주변 휘 둘러보고 속닥) 구.조.조.정.
준수 (헉!) 예?
오과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고위층하고 접촉을 해봐야지.
휴게실 (D)
목부장과 오과장 앉아 있고. 준수가 커피 뽑아다 준다.
옷도 다림질이 안돼 구깃하고. 머리도 부스스하고.
고위층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꼬질꼬질하고 없어뵈는 목부장.
목부장 어 고마워. (맛보고) 이거.. 고급커핀가?
준수 (깍듯) 예. 부장님께서 드실건데 일반커피는 좀 그래서..
목부장 어쩐지.. 맛이 다르드라. (맛있게 먹고)
오과장 구조조정 본부가 진짜 차려진다고 합니까 부장님?
목부장 어. 내 동기 알지? 인사담당 곽이사. 그놈이 한 말이니까 맞겠지.
그 자식이 날 어려워해서, 허튼 소린 안하거든.
준수 (존경스럽고) 회장님 막내 아드님이 본부장으로 올 거라면서요?
목부장 응. 곽이사가 자리 한번 만들어준다구.. 회장 아들이랑 밥 한번 먹자구 자꾸 그래서... (머리 긁으며) 내가 스케쥴 좀 보자 그랬어.
오과장 부장님! 먹자골목에 목포낙지라고 새로 생긴 식당 있는데요. 연포탕 한번 시원하게 모시고 싶습니다!
준수 저..저두요 부장님!
목부장 (허허..) 연포탕.. 좋지. (커피 마시고)
오과장 그럼... 저희는 오늘부터 부장님 라인인 겁니다.
목부장 (흐뭇) 허허.. 라인은 무슨. 일단 나부터 회장 막내랑 안면 트고 나면 자네들한테도 소개를 해 줄게. (왠지 앉은 자세 거만하고)
준수,오과장 (좋아서 꾸벅) 감사합니다 부장님!!!
고급 레스토랑 (D)
구회장, 장여사, 용준 앉아서 밥 먹는 중이고. 용식 들어온다.
장여사 (살갑다) 막내 이제 오니? 어서 와 앉아.
용식 (앉으면)
구회장 (못마땅) 지금이 몇시야! 시간 하나 못 맞춰?
장여사 우리 제임스두 시차 적응해야죠. 한국 온 지 얼마나 됐다구.
구회장 제임스는 얼어죽을. 용식이란 좋은 이름 놔두구.
용식 다들 그래요. 양촌리 김회장님 아들도 아니고. 퀸즈 구회장님 아들 이름이 용식이가 뭐냐고.
구회장 (한심하게 보며) 이거 먹고 나랑 회사 가.
용준 (불만) 용식이.. 미국 다시 들어갈 거 아니었어요?
구회장 들어가긴 뭘 또 들어가! 언제까지 그렇게 떠돌고 살거야!
용식 저 아직 배울 거 많아요. 잠깐 다니러 온건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장여사 그래요. 애가 아직 부담스러워 하는데. 뭐든 지가 하고 싶어할 때 시켜야지 당신두 참.
구회장 (버럭) 시끄러워! 당신도 저 녀석 감싸기만 하는 거 그만둬!
장여사 막내라 그런지.. 아직도 내 눈엔 애같기만 하네요.
(하며 음식 용식 앞으로 끌어다 주고) 애 먹는데 그만 뭐라고 하세요.
누가 봐도 자애롭기만 한 어머니인 장여사.
용식, 그런 장여사 보는 표정.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시니컬해 보이기도 하고. 묘하다.
뷰티 관리 센터 (D)
장여사 우아하게 들어오면. 프론트 직원들 얼른 나와서 맞이하고.
복도 따라 들어가는 장여사. 전씬과는 완전히 달리 싸늘한 포스.
뷰티 관리실 (D)
장여사와 한상무 나란히 누워서 관리 받는다.
장여사 그럴 줄 알았어. 걔가 사고 한두번 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불러들이시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더라구. 어디 걜 회사에 끌어들여?
한상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장여사 그래. 큰 걱정 안해. 우리 용준이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 애니까.
그래두.. 여기 오래 두기는 싫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한상무 네 사모님. 일단 이사회와 주주쪽에서 여론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장여사 너무 티나지 않게. 제대로 개망신 시키고 내쫓을 방법을 한번 찾아봐.
한상무 네 사모님.
장여사 난 용식이 우리 식구라고 생각 안해. 식구는 오히려 한상무 같은 사람이 식구지.
한상무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장여사 용식이 건 마무리 되면 나도 가만 있진 않을게. 한상무도 이제 더 큰 걸 누리면서 살 때가 됐잖아. 안 그래?
한상무 (보일 듯 말듯한 미소만)
엘리베이터 앞 (D)
구회장 용식 들어오면.
일사분란하게 줄 서서 인사하는 직원들.
자기들끼리 무전기로 뭐라뭐라..하며 바쁜 경호원들.
목부장은 임원들 뒤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는다.
목부장 (곽이사에게) 저기 곽이사.. (뭐라고 말이라도 하려는데)
곽이사 어 나중에... (하더니 얼른 회장님 무리 쫓아가고)
쭈빗쭈빗 고개 들어 눈이라도 맞춰 보고 싶지만 쉽지 않은.
구회장 일가 회장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사라진다.
저만치 끝에서 사람들 헤치고 오는 준수와 오과장.
오과장 부장님. 만나셨어요?
목부장 어.. 사람들 보는 눈도 많고 해서..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 나눠야지. (쓱 가면)
오과장 아씨.. 좀 빨리 올걸.. (기웃기웃)
준수 (아쉬운)
남자 화장실 (D)
준수, 볼일 보고 있다. 아쉬운 표정.
준수 아.. 좀 빨리 도착했으면 눈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었는데....
준수 손 씻기 시작하는데.
들어오는 용식.
처음에는 못 알아보고 있다가 다시 한번 용식 본다.
준수 어?!!!
용식 (? 본다)
준수 용식이? (확신) 맞구나 구용식 이병! (하고 뒤통수 딱 때린다)
용식 (아씨...)
준수 아 자식 빠져 가지구! 나 몰라? 봉준수 병장님?!!!
용식 (!!! 준수 보며 점점 표정 변하는)
내무반 (D)
건들건들한 병장 준수와 군모 쓴 이병 용식 서 있고.
준수 감히.. 피같은 짬밥을 입맛에 안맞는다고 남겨? 대가리 박어.
용식 이병 구용식! 군에서 대가리를 박는 기합은 금지된 거 아닙니까?
준수 (하!) 야! 너.. 사회에 무슨 빽 있냐? 니네 아버지가 이건희야?
용식 아뇨. 이건희 회장님 아드님은 재용이 형이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척 따르던 형이긴 합니다만...
일동 (어이없다는 듯 웃고)
용식 그렇지만 저희 아버지도 재계 20위 안에 드는 회사의 회장님이십니다!
준수 아.. 그러십니까? 우리 아버지는 대통령이신데요.
용식 (놀라) 정..말이십니까?
준수 작은 아버지는 국방부 장관. 고모는 여성부장관.
일동 (킬킬대고 웃는다)
용식 (???)
준수 (뒤통수 때리고) 재벌 아들이 현역으로.. 그것도 최전방으로 오냐?
우리 나라 재벌들이 그렇게 양심적이야?
용식 (아프고 신경질난다)
준수 구청장 아들인 내 친구도 방위다. 그 자식.. 철인삼종경기 챔피언인데.
일동 (킬킬대며 웃고)
용식 (억울) 그게 말입니다. 얼마전에 병역비리도 터졌고.. 요즘 사회 분위기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가는 바람에... 그리구 아버지가 정치에 꿈이 있으셔서...
준수 (웃으며) 두손 주먹 쥐고 눈에 갖다 대봐.
용식 (시키는대로 한다)
준수 뭐가 보이냐.
용식 ...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준수 (손 떼주며) 그게 앞으로 니 군생활이다. (군모 딱 때리는)
일동 (낄낄대고)
용식 (에씨!)
남자화장실 (D)
용식 생각만 해도 원통하고 분한 표정으로 준수 노려보고.
용식 봉..준..수?
준수 떽! 내가 니 친구냐? 감히 어디서 고참님 존함을..
용식 (꾹 참으며 사납게 본다) 여기 다니십니까?
준수 (좀 거만) 그래 임마. 니가 아는 봉병장님이 뭐 짜잔한 회사 다닐 그럴 분은 아니잖냐! 근데 넌.. 우리 회사 뭐하러 왔어?
용식 (표정 있다가 피식) 저도 조만간 여기 들어올 것 같습니다.
준수 조만간 들어오기는 자식아.. 대기업이 만만해? 아무나 다 들어오냐?
용식 (어이없는)
준수 너 백수지?
용식 ... 아직은 그렇습니다.
준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너같은 고문관 스타일은 취직이 어렵지. (명함 주며) 면접 보기 전에 한번 전화나 넣어보든가.
용식 (명함 받으며 표정)
준수 (거만의 극치) 니가 사회생활 해보면 알겠지만, 인맥보다 중요한 게 없거든. 사실은 내가.. (훗!) 회장님 라인이야.
용식 아.. 그러세요?
준수 (허세) 회장님 막내가 요번에 귀국했는데. 조만간 날 아끼시는 부장님이랑 다같이 술 한잔 하기로 했다.
용식 (피식) 네에..
준수 아 내가 어린앨 데리고 뭔 소릴 하고 있냐? 알아듣지도 못할텐데.
암튼 그런 게 있다. 형님은 바빠서 이만 가보실테니까, 힘들고 어려운일 생기면 연락하고!
용식 그러죠.
준수 양복... 아버지꺼냐? 좋아보인다야. (웃고 나가는)
용식 (씩 웃는)
주방 (N)
태희, 뜨거운 불 앞에서 왔다갔다 거하게 음식 만들고 있고.
준수모 음식 접시에 담으며 마냥 흐뭇한.
준수모 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 걘 대기만성형이야.
태희 (기분 좋아 맞춰주는) 네 어머니.
준수모 이제 대리 달았으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갈 일만 남았지 뭐.
아유. 우리 준수는 몇시에나 올라나?
태희 전화해볼까요?
준수모 아냐 얘! 승진해서 회사일 바쁠텐데 괜히 서둘러 올라. (룰루랄라 기분 좋은)
태희 (역시 기분 좋고)
아파트 앞 (N)
준수부. 괜히 뒷짐 진 채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준수가 온다.
준수, 준수부 보고 깜짝 놀라는.
준수 어? 아부지. 언제 오셨어요?
준수부 어.. 아까.. (괜히 딴 데 두리번거리며) 니 어머니가 하두 오재서.
준수 예? 무슨 일.. 있으세요?
준수부 아니.. 뭐... (괜히 돌맹이 툭툭 차며) 너 승진..했다구... 니 어머니가 하두 오재서. (머리 긁적긁적)
준수 (!!!) 그 사람이 저 승진했다구 전화했어요? (난감해 죽겠다)
거실 (N)
한상 제대로 차려져 있고. 태희,준수모,준수부,소라, 그리고 몹시 불편한 표정의 준수가 앉아 있다.
준수모 고모님이랑 작은할아버님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너 축하한다고 꼭 전해 달라시드라. 시간 내서 전화 넣어드려.
준수 (!) 엄마 친척들한테도 전화 돌렸어?
준수모 그럼. 기쁜 소식인데. 한턱 쏘라고들 난리시다.
준수 (답답해 죽겠고. 술 벌컥벌컥 마시고)
준수모 (속도 모르고) 얘가 좋긴 좋은가부네. 과음하네. (호호호)
준수부 (표는 안내지만 기분 좋고)
태희 (미소) 천천히 마셔요. 봉대리님. (안주 놔주고)
준수 (켁..)
준수모 아유 봉대리. 입에 쫙 붙는다. 우리, 봉대리를 위하여!!
준수 (먹다가 체할 것 같다. 기침하며 가슴 치는)
이때 전화 오면 웃으며 핸드폰 가지고 주방으로 가는 태희.
주방 (N)
태희 통화중이다.
태희 응 유경씨. 어 서류는 대강 다 준비됐어. 그래 그 회사 인사담당자한테 얘기 좀 잘 해 주구. 나? 저녁 먹는 중이야. 우리 남편 승진턱 내느라구.
(사이) 우리 준수씨 대리 승진했잖아. 같은 부서 있으면서 그것도 몰라?
(사이) 뭔소리야 그게? (놀랍고 어이없고 쪽팔리고 분하고)
거실 (N)
태희, 차가운 표정으로 나와 준수 등 꾹 찌르고.
태희 (거의 복화술 하듯이 이 악물고) 나 좀 잠깐 봐.
준수 (웅? 태희 살벌한 표정에 불안해서 본다)
안방 (N)
준수 쭈볏대며 들어오면. 태희 문부터 딸깍.. 잠근다.
준수 뭔가 불안하고.
준수 왜.. 왜..문은 잠그구..그래?
태희 솔직히 말해.
준수 뭘.
태희 승진! 한거야? 만거야?
준수 (쿠쿵.. 놀라고) 어?
태희 나 방금 소유경씨랑 통화했어. 유경씨 말론, 당신 이번에도 승진.. 미끄러졌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
준수 (사색) 여보. 일단 내 말을 들어봐.
태희 (차갑게) 해!
준수 (막상 하라고 하니까 당황스럽다) 내가 그럴라고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자꾸 당신이 다그치니까 순간적으로 그냥...
태희 (얘기 들으며 점점 더 차가워지는 표정) 거짓말한거야?
준수 결론적으론... 그렇지.
태희 (폭발할 것 같은) 그러니까, 대리 승진했다는 게 뻥이었다구? 당신 제정신이야?
준수 일단.. 미안하게 됐다.
태희 일단 미안? 이게 지금 일단 미안으로 될 일이야?
준수 (밀리지 않고) 당신이 날 너무 코너로만 모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거 아냐.
태희 (기막힌) 그럼... 내 잘못이란 거야?
준수 누가 그렇대? 잘못은 내가 하긴 했는데... 나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거지.
태희 남들은 회사 개근만 해도 달아준다는 대리야! 그걸 못 달아서 거짓말까지 하고. 이 난리가 나게 만들어? 밖에 어머님 아버님 좋아하시는 거 봤지! 어쩔거야! 우리 엄마며 연희 기지배한테도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해 놨는데, 이제 어쩔거냐구!
준수 (달래는) 1년만 버티다가.. 내년에 진짜 대리 승진하면 되잖아! 내가 그땐 기필코....
태희 (베개나 쿠션 같은 거 확 집어던지며) 기필코 같은 소리 한다!
준수 (얼굴에 정통으로 뻑! 맞는다)
거실 (N)
안에서, 준수 ‘아!!!’ 하는 소리 들린다.
준수모 이게 무슨소리야?
소라 (아무렇지 않게) 엄마가 아빠 꼬집나봐요.
준수모 엄마가 아빠.. 막 꼬집구 그러니?
소라 네. 자주 그래요.
준수모 (확 열받으면)
준수부 (말린다고) 당신두 나 꼬집구 그러잖아.
준수모 난 애교로 그러는 거구. 이게 그거랑 같아요? (열받아서 문 열려고 하는데 잠겼다, 두드리는) 얘! 니들 뭐하니 문 잠궈놓고! 문 열어 빨리!
문 열리고. 조금 흐트러진 모습의 준수와 화 꾹꾹 눌러참으며 나오는 태희 모습.
준수모 너.. 에미한테 맞았니?
준수 아니에요. 맞기는요. (급하게 머리 정돈)
준수모 (태희 한번 밉게 째려보고) 너두 소라가 어디 가서 얻어맞고 오면 기분 나쁘지. 나도 그래. 나.. 며느리한테 꼬집히고 살라구 우리 아들 키우지 않았다.
태희 (욱해서 뭔가 말하려고 하면)
준수 (살려달라는 듯 눈빛으로 비는)
준수부 무슨 일... 있냐?
태희 (후우... 꾹 참으며) 아무 것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준수 (아슬아슬하고)
안방 (N)
태희 들어오면. 불 꺼져 있고. 준수 이미 잠들어 있는 듯 하다.
태희, 불 탁 켜고. 준수 이불 확 젖히고.
태희 일어나 봐! 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 (엉덩이 사정없이 철썩철썩 때리고) 일어나 보라구!
준수 (깊이 잠든 듯 꿈쩍도 안한다)
태희 (팔 사정없이 꼬집으며) 안자는 거 다 알아? 일어나!
준수 (살짝 움찔하지만 그래도 눈 안뜬다)
태희 (에씨! 열받아 양발로 있는 힘껏 확 밀어버린다)
준수 (데구루루 쿵! 떨어지는데. 몹시 아프지만 방바닥에서도 음냐음냐.. 깊이 잠든 척 안 일어난다)
태희 (기막히고) 그래. 애쓴다. 애써. (하고 침대에 눕는다)
준수 (그제야 살짝 눈 뜨는데. 아파 죽겠나보다)
태희 (벌떡 일어나면)
준수 (다시 눈 꼭 감고)
태희 (분통,서글픈) 아니 내가 왜 이러구 살고 있어야 되는거니? 나 그냥.. 황상무님이 이뻐하는 팀장으로 살았으면. 회사에서 훨씬 더 잘나갔을 거고. 돈도 훨씬 더 모았을 거고. 여기저기 해외 출장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대접받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지금보다 백배 더 멋진 여자로 살 수 있었을 거란 말이야! 근데 내가 왜 지금.... (말하는데 울컥해서 눈물 날 것 같다) 내꼴이 지금 이게 뭐니? 황태희 어디 갔냐구. (속상해서 확 이불 뒤집어 쓰는)
준수 (바닥에서 표정. 마음 안좋다)
주방 식탁 (D)
유경, 태희 서류 보고 있고. 태희, 유경 앞에 커피 놔준다.
유경 역시 팀장님.. 안죽으셨는데요? 기획안 너무 좋아요. 그쪽 회사에서도 좋아할 것 같아요.
태희 그래? (웃으며 오고)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다.
유경 괜찮아요. (자기도 모르게) 팀장님.. 예전엔 에스프레소만 드셨었는데...
태희 (표정 있다가) 에스프레소? 그게 뭐니? 난 생각도 안난다. (커피 마시고) 어떻게 지내?
유경 저 연애해요.
태희 그래? 뭐하는 남자랑?
유경 빵 만들어요. 아직은 진짜 제빵사는 아니구. 인턴인데... 팔봉빵집이라고 유명한 집 있거든요. 그 사람.. 제빵왕 되는 게, 꿈이래요.
태희 (마뜩찮은) 집이 좀 살아?
유경 부모님이 안계셔서 형편이 좋진 않죠. 그렇지만.. 저흰 진짜 사랑해요.
태희 (답답하다) 그 남자랑 사랑.. 해 봤으면 됐지, 뭘 결혼까지 할라 그래. 결혼은 딴 남자랑 해. 안정된 정규직에 집안 빵빵한 남자랑.
유경 팀장님. 실망이에요. 팀장님은 그렇게 죽고 못살아 결혼하셔놓구선.
태희 그래. 죽고 못살아 결혼했다가, 죽지 못해 산다. (웃고 마는) 요즘 회사에 별 일 없지? (하는데서)
로비 (D)
척척척.. 들어오는 구조본 직원들.
외국인도 섞여 있고.
모두들 빨간줄의 신분증을 목에 달고 있다.
신분증엔 큼지막하게 ‘구조조정본부’라고 씌어 있다.
준수,오대리,동원 등 직원들 출근하다가 그들을 보면 왠지 주눅 들고.
왠지 심란하다.
11층 엘리베이터 앞 (D)
11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앞.
문 열리면 구조본 직원들이 훈련 잘받은 군인들처럼 내린다.
구조본 사무실 (D)
일사분란하게 사무실 꾸며지고 있다. 각종 집기들이 착착.. 놔지고.
책상마다 붉은색 파일들도 탁탁탁.. 쌓인다.
빨간 목줄 직원들,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절도 있고 재빠르게 자기 할 일들 하는 모습들.
나란히 놓인 수십대의 프린터들이 각자 징.. 소리 내며
사원들의 상세 이력과 성과에 대한 보고서를 쉴새 없이 뽑아내고 있다.
본부장 자리에 <구조조정본부장 구용식> 명패가 놓인다.
임원회의실 (D)
한상무의 안내를 받아 용식이 들어온다.
임원진 일동, 기립하는.
한상무 구용식 구조조정본부 본부장님이십니다. (용식 보고) 먼저 임원진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릴..
용식 (OL) 소개는..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서로 갈길이나 정해지고 나면요. 이 자리.. 제 자린가요?
한상무 (기막히지만 사무적인 미소로) 네. 앉으시..(벌써 용식 앉았다. 표정)
한상무를 비롯한 임원진들의 표정. 뭐야 저거?
하나 둘 어수선하게 앉는다.
(컷 튀면)
와글와글하며 격하게 토론 중인.
변이사 이번에 정리해야할 사람이 삼백명이 넘습니다. 먼저 숫자가 많은 계약직부터 쳐내고..
용식 (낙서나 하고)
(컷 튀면)
곽이사 승진에서 두 번 이상 누락된 직원은 회사로부터 능력 인정을 못받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회사가 무슨 월급줘가면서 교육시켜주는데도 아니고.
가능성 없는 직원부터 자르는 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어쩌고)
용식 (하품이나 하고)
(컷 튀면)
한상무 연봉이 일정액 이상 되는 부장급 중에서도 대상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구 실적이 좋지 않은 유부녀 직원들도 최우선 대상자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용식 (지루하게 볼펜이나 돌리고 있다가 문득 손들고) 저기.. 잠깐만요.
일동 (??? 해서 용식 본다)
용식 질문.. 있습니다.
한상무 (미소) 하시죠.
용식 제가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일동 (무시하는 표정으로 용식 보고)
용식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야할만큼 경영악화가 된 책임은 직원들보단, 임원진에게 더 큰 거 아닌가요? 거기에 대한 지적을 하신 분은 아무도 안계시네요? 그게 좀.. 이상해서...
임원진 (!!! 표정들)
용식 (빙긋) 제가 뭘.. 잘 몰라서요.
임원회의실 앞 (D)
임원들 나오면서 다들 기가 막혀하는.
뭐 저런 게 다 있어.. 한마디씩 하는데.
한상무, 만만치 않은 놈이네.. 싶고.
사무실 (D)
직원들, 삼삼오오 모여서 근심스럽게 수군거리고 있다.
기쁨 구조조정 대상자 1차 명단.. 담당팀장이 뽑아서 올린대요.
준수 (!)
기쁨 우리 백팀장님 머리 아프실 것 같애. 열손가락 깨물어서 제일 안아픈 손가락 짤라내셔야 하잖아요?
준수 (아무래도 불리하고. 표정 위로)
여진 OFF) 승진도 안 시켜주고 공도 인정 안해주는 회사. 뭐하러 붙어 있어? 본인이 결단 내리기 힘들면, 내가 도와주구.
준수 (불안불안한데)
오과장 (슬쩍 와서) 너, 더 늦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냐? 누가봐도 니가 제일 안아픈 손가락이야.
준수 (표정)
오과장 이건 진짜 나만 알고 있을라 그런건데. 우리 팀장.. 이번 주말에 이사한대. 니네 동네라던데.
준수 (표정 있다가 돌아보면)
어느새 직원들 다 와서 듣고 있다.
여진네 집 거실 (D)
온 직원들 다 모여서 여진 이사를 돕고 있다. 남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짐 배치하고. 여자들은 자질구레한 짐 정리와 청소.
여진 (방에서 예쁜 꽃병 같은 거 하나 들고 나오며) 쉬는 날 다들 미안해서 어떡해요. 어떻게들 알고 오셨는지 정말..
동원 (얼른 나서서) 엠티라고 생각하고 팀워크 다지는 거죠 뭐. 이런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휘 둘러보며) 그런데 우리 봉준수씨만 안 왔네요 유일하게?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준수.
등엔 커다란 책장이나 화장대 따위의.. 한명이 들기엔 무리인 큰 물건이 얹혀져 있고. 일동 놀라고.
준수 (곧 쓰러질 듯 끙끙대며) 이게 다치면 안되는 거라고 그래서. 직접 업고 왔습니다. 어디다..놓을까요.
일동,여진 (표정들)
몽따쥬
- 못도 박고. 박다가 망치질 잘못해서 손도 다치고.
- 걸레질도 하고.
- 바지 둥둥 걷고 화장실 청소도 하는 준수.
- 여진 그런 준수 모습 슬쩍씩 보고.
여진 집 방 안 (D)
상자 가지고 와서 놓는 준수. 나가려는데 쌓여있는 짐 속에 앨범이 보인다. 그리고 살짝 삐져나와 있는 사진도 보이고. 준수, 다가가서 사진 빼보면. 여진 20대 시절의 사진들. 싱그럽고 발랄한 모습들이다.
준수, 저도 모르게 아련해지는 표정 있고.
다시 사진 넘겨보다 멈칫하는.
여진이 준수와 찍은 사진인데, 준수 얼굴만 동그랗게 파놓았다.
준수 (기막힌) 뭐야... 싫으면 버리든가 하지.. 사람 얼굴을 쥐파먹은 것처럼 파놨냐? 하.. 얘 성격 진짜 이상하네.
열받아서 넘겨보는데. 마지막 사진 한 장은 멀쩡하다.
시청광장에서 준수와 여진 함께 찍은 사진. 붉은악마티 입고 있고.
2002년 6월 22일로 날짜 찍혀있고. 두 사람 마냥 행복하고 다정한 모습.
준수, 사진 보는 표정에서.
시청광장 (D) - 회상
붉은티 입은 사람들 속 준수와 여진. 사진 찰칵 찍고.
찍어준 사람에게 카메라 받고. 인사하고.
여진 (디카 들여다보며) 잘 나왔다.
준수 밖에 나와서 응원하니까 기분 확 풀리지?
여진 응! 여기 나오느라 얼마나 눈치 봤는지 알아?
준수 누구? 또 그.. 황태흰가 뭔가 그 팀장 때매?
여진 (어리광) 응. 지가 애인 없으니까 세상에 월드컵을 사무실에서 단체로 보자는거야.
준수 미쳤구나?
여진 내 말이~ 아마 지금쯤 다 도망가고 저 혼자 어디서 TV 보고 있을거다.
준수 그런 여자.. 누가 데려갈지 참... 불쌍하다 그놈도!
여진 방안 (D)
준수, 사진 보는데. 자기도 모르게 한숨 나고.
준수 그.. 불쌍한 놈이 내가 될 줄이야...
이때 문 확 열리면. 얼른 뒤로 사진 감추는 준수.
오과장 (자장면 그릇 든 채) 준수씨. 뭐해. 짜장면 먹자고 몇 번을 불렀는데!
준수 아 네. 나갑니다. (엉거주춤 일어나고. 사진은 주머니 속으로)
여진 집 거실 (D)
신문지 대충 깔고 앉아서 자장면 먹고 있는 일동.
여진이 탕수육 접시 랩 뜯고 있다.
여진 나 상사랍시고 부하직원들 이렇게 부려먹는 거 딱 질색인데.
현주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저희가 자발적으로 도와드리는 건데~
여진 알긴 알지만. 남들이 보면 딱 오해사기 좋겠어서 그렇지.
오과장 (아부한답시고) 누가 오해를 해요. 백팀장님은 이런 거 도와줄 남편이 없으시니까 저희라두...
분위기 싸해지고. 여진 표정.
기쁨이 오과장 슬쩍 꼬집는다.
오과장 (수습한답시고) 하지만! 애인은 있으시잖아요. 오늘 같은 날 오셔야 되는 거 아닌가?
여진 (표정)
기쁨 (더 세게 꼬집고 하지 말라고...)
오과장 (난감한 표정)
여진 그럼, 드시고들 계세요. 음료수 좀 사올께요. (하고 나간다)
현주 왜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오과장 왜... 애인 있는 거 아니었어? 부잣집 아들?
기쁨 깨졌단 말이에요. 그 집에서 팀장님 편모슬하에서 자랐다구.. 헤어지라구 난리쳐서.
현주 (OL) 그만 해.
기쁨 (! 해서 입 다물고)
오과장 진짜야? 아.. 난 그것도 모르고 괜히 결혼했네. 좀 더 기다릴걸...
준수 (그랬구나.. 싶고. 표정)
동네마트 (D)
태희, 생선 코너에서 생선 고르고 있다.
태희 굴비는 얼마나 해요?
상인 한 두릅에 이십만원이에요. 영광 굴비라 아주 맛있습니다.
태희 (얼른 놓고, 표정 있다가) 고등어 한손 주세요.
상인 네. (하며 다듬기 시작하는)
태희, 뭐 이렇게 비싸.. 궁시렁대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멈칫!
맞은편으로 여진이 오고 있다.
몹시 세련된 차림에 당당한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오는 여진.
태희, 헉! 깜짝 놀라고.
재빨리 자기 차림부터 점검한다.
슬리퍼에 너무 편안한 차림. 부스스한 머리.
게다가 티셔츠에 김치국물 튄 거 작게 묻어 있고.
그것을 발견한 태희 표정. 홱 돌아선다. 하지만.
여진 (태희 돌아선 거 보더니 여유롭게 오며) 황선배?
태희 (돌아선 채, 이런 젠장!!!!)
여진 (확인사살) 황태희 선배 맞죠? (하며 또각또각 다가온다)
태희 (어쩔 수 없이 돌아선다, 장바구니 같은 걸로 자연스레 김치국물 가리며 도도하게) 누구? (이제야 봤다는 듯) 어머... 백여진씨네?
여진 네. (태희 위아래로 한번 훑고) 몰라 볼 뻔 했어요.
태희 (여전히 도도하게) 잠깐 집앞 마트 나오느라 차림이 좀 그렇네. 여진씨는 여기 웬일이야?
여진 이사왔거든요.
태희 응? 어딜?
여진 어디긴요. 이 동네죠.
태희 (표정) 이 동네?
여진 네. 여기 바로 길건너에 우리 그룹에서 새로 지은 주상복합 있잖아요.
특별분양 받아서 들어왔어요.
태희 아.. 그래?
여진 준수씨가 얘기 안해요? 지금 준수씨 우리집 이사 도와주고 있는데?
태희 (!!!) 이사를 도와주고 있다구?
여진 네. 액자 걸어주겠다구 못 박아주다가 손가락두 다쳤어요. 미안해 죽겠네.
태희 (표정)
여진 그러지 말구, 저희 집에 잠깐 들르세요. 오랜만에 팀원들도 볼 겸.
태희 (헉!) 아니야! 됐어!
여진 (힐끗 보더니) 옷 때문에 그러세요? 아줌마들이 살림하다 보면 그렇죠 뭐. 정 걸리면 갈아입고 오시든가요.
태희 (!!! 다시 확 가리고)
동네마트 앞 (D)
태희 장바구니 들고 나오는데.
뒤로 여진 쥬스병 하나 달랑 들고 따라오고.
여진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쉽네요. 다음에 또 뵈요.
태희 글쎄.. 뭐..
여진 다 지난 일인데, 서로 안 볼 이유는 없잖아요?
태희 (표정 있다가) 보통, 사람이랑 싸워서 안 보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 재수 없어서 안 보지.
여진 (하!!)
태희 (홱 돌아서 가면)
여진 (여전하구나 싶고)
태희집안방 (N)
태희 화장대 앞에 앉아서 거울 보면 속상해 죽겠다.
태희 아.. 하필 이 꼬라질 때... (표정 있다가) 근데 이 인간은 왜 그 기지배 이사하는 델 가 있어? (준수에게 전화하는데 꺼져 있고)
여진 오피스텔 건물 앞 (N)
준수, 전화기 꺼내 보면 배터리가 다 나갔고. 주머니에 다시 넣는데.
일각에 여진 모습이 보인다. 준수, ? 해서 다가간다.
여진, 남자와 실랑이 중이고.
남자 일단 타. 타고 나서 얘기하자니까?
여진 그 차 타면? 나랑 결혼할거야?
남자 (약간 당황하며 달래듯) 여진아. 그건 좀 천천히...
여진 나랑 결혼해서 병원에 있는 우리 엄마도 모셔주고. 그럴거야? 그럼 탈게.
남자 내가 우리 엄마 설득해 볼게. (하며 여진 손목 끄는데)
여진 (찰싹 뺨 때리고) 너 결혼날짜 잡힌 거 알고 있거든? 니네 엄마가 와서 친절하게 알려주시드라.
남자 (!!)
여진 그러니까 곱게 보내줄 때 가. (돌아서려는데)
남자 (확 잡고) 그래. 나 결혼한다. 결혼하고 우리가 못 만날 이유 있냐?
여진 뭐?
남자 너 돈 좋아하잖아. 명품도 좋아하고. 내가 결혼해도 여태 내가 너한테 해준 것처럼 다 해줄게. 아니 더 해줄께!
여진 (또 때리려고 손 드는데)
남자 (손목 잡아 확 놓고) 너 진짜 나랑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냐? 난 그게 더 놀랍다.
여진 (휘청해서 쓰러질 뻔)
준수 (더는 못보고 있겠다. 나서는) 백여진. 여기서 뭐해?
여진 (!!! 해서 본다)
준수 어머니 뵈러 병원 가기로 해놓고. 여기 있으면 어떡해. 누구셔?
남자 너 그새 남자 생겼냐?
준수 아... 얘가 니가 그렇게 씹던 마마보이야? 딱 그렇게 생겼네.
남자 이 자식이... (하며 달려들 듯 다가오면)
준수 (악수할 듯 손 내밀며) 서울스포츠 봉준수 기잡니다. 재벌2세나 졸부2세들의 사생활 캐는 일을 주로 하고 있구요. 방금 이 상황.. 아주 좋은 기삿감인데. 어떻게 인터뷰 좀 해주시겠습니까? 결혼식 때 확 뿌려드릴게.
남자 (표정 있다가 그대로 차 타고 간다)
여진 누가... 나서랬어!
준수 돈 많다고... 아무나 만나지 말고. 좀 제대로 된 놈을... (했다가 말자 싶고) 아닙니다. 나서서 죄송합니다.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하고 가면)
여진 (속상하고 창피하고)
태희 집 거실 (N)
태희, 냉랭하게 앉아서 텔레비전 보고 있는데. 보는 게 보는 게 아니다. 리모콘 계속 돌리는데. 준수 들어온다. 들어오는 거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데. 준수 손가락에 밴드 감긴 거 보니 열불난다.
태희 못 박아줬다더라? 백여진 이사하는 데 가서?
준수 ... 어떻게 알았어?
태희 아까 마트 갔다가 만났어. 난 당신이 그런 건 아예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그래서 여태 내가 다 하고 살았는데. 다른 집 가선 그런 것도 하는 사람이었나봐?
준수 (선 채로) 나도 뭐... 기분 좋아서 한 건 아니다.
태희 (휙 보면) 기분 나쁜데 왜 해? 백여진 비위 맞추려구?
준수 그래. 비위 맞추려고. 못도 박고. 냉장고도 나르고. 걸레질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했다.
태희 (속상하고)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
준수 니꼴이 지금 이게 뭐냐며! 황태희는 어디 갔냐며!
태희 (!! 표정)
준수 (울컥) 멋있고 화려하고 잘나가던 황태희가. 겨우 대리 승진도 못해서 이렇게 빌빌대는 남자 만나 불행해 죽겠다는데. 내가... 그래도 남편인데... 내 마누라한테 그런 소리 듣고. 어떻게 가만 있냐! 못 박는 게 대수냐? 내가 뭔 짓을 못하겠냐!
태희 (표정)
준수 (확 들어가면)
태희 (눈물 나고. 속상하고)
여진 방 안 (N)
여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모니터에는 인트라넷에 접속한 화면 떠 있고.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 적어내는 화면이다.
여진, 빈 칸에 이름 적기 직전이고. 조금은 갈등되는 표정이다.
키보드에 뭔가 치는 모습에서.
구내 식당 (D)
준수, 오과장, 그리고 목부장이 들어온다.
목부장 (괜히 주머니 뒤적뒤적) 식권 있나?
준수 (얼른 내주며) 제가 내겠습니다.
목부장 고마워. 꼭..깜박 깜박하네?
세 사람, 음식 배식받으며 대화 진행.
오과장 부장님도 데스콜 얘기 들으셨죠?
목부장 어.. 그거?
준수 솔직히 좀 긴장되더라구요. 전화로 통보해서 11층으로 올라오라 그런다면서요.
목부장 얘기는 들었는데.. 괜찮아. 너무 걱정들 하지 말고.
준수 그래도 되는 겁니까?
목부장 명단 올라오는대로 곽이사가 나한테 콜을 주기로 했으니까. 내가 미리 알려줄게. 너무 떨지들 말라구.
준수,오과장 감사합니다 부장님.
얼른 가서 의자 빼주고. 예를 다해 모신다.
영업부 (D)
목부장, 이 쑤시며 들어오는데. 자리에 있는 전화벨 울린다.
목부장 표정 있다가 전화 받는다. 표정 있다가..
목부장 예.. 예... 지금 말씀입니까? ... 예.
전화 끊고. 나가는 목부장.
목부장 책상 위에 압정으로 눌러 붙여진 사진.
아이들 두명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사무실 (D)
오과장, 준수, 유경 모여 앉아 있고.
준수 진짜?
유경 네에. 좀전에 올라가셨는데 삼십분 넘게 안 내려오고 있대요.
오과장 (하... 기막힌 한숨) 어떻게 이런 일이....
준수 곽이사님 라인이라면서요!! 회장님 라인이라면서요!!
오과장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완전 헛다리 짚은 거 같다.
이때 준수 자리의 전화벨 울리고.
헉!! 놀라는 일동. 시선 쏠린다. 긴장되는 순간.
준수,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조심스럽게 전화기 드는데서.
엘리베이터 앞 (D)
준수, 무서워 죽겠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문자 온다.
‘마누라’다. <꽃게 샀어. 싱싱할 때 꽃게찜해줄게, 일찍 들어와>
순간 눈가 빨개지는 준수. 꾹 참는다.
엘리베이터 안 (D)
준수 탄다. 준수, 표정 있다가 11층 누른다.
함께 탄 사람들, 11층이라는 숫자만 보고도 놀란 표정들.
안된 듯 준수 보고. 지들끼리 뭔가 수군수군..
숫자 올라가는 거 보는 준수의 막막한 표정.
1102호 앞 (D)
준수, 서 있다가 심호흡하고 무겁게 문 열고.
1102호 (D)
준수, 들어서는데.
몇몇 사람들 한 가운데, 용식이 앉아 있다.
준수,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 분명히 용식이다.
준수 (자기도 모르게) 구이병... 니가 여기 왜 있냐?
용식 (표정)
구조본 사람들, 무슨 소릴 하는거야? 하는 표정들로 준수 보면.
용식, 피식 웃는다.
준수 아니.. 구이병 니가...
하고, 용식 이름표를 보면.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이라고 돼 있다.
준수, 잠시 멍해진다. 잘못 봤나?해서 다시 봐도, 구조조정본부장이다.
준수 그러니까.. 구이병 니가... 구조조정본부장...(화들짝)님이시라구요?
용식, 씩 웃고. 그대로 얼어버린 준수의 표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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