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S#1 세주의 저택 / 집필실 (3부 엔딩에서 연결)
진오 어두운 공간에 촛불 하나만을 켜놓은 채 열심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완전 몰입된 표정이다.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주, 조용히 집필실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몰입감이 깊어질수록
리턴 레버를 당기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빨라지는 진오.
그 소리를 긴장음 삼아 진오에게 접근해가는 세주.
마침내 타이핑을 마친 진오의 오른손이 마치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의 손처럼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는 순간,
세주, 진오의 어깨를 확 잡아 돌린다!
놀란 진오의 눈과 서늘한 세주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세주 (서늘한 표정과 위압적인 말투로) 누구야 너.
진오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보기만)
세주 (잡아먹을 듯이 살벌하게) 너 누구냐고 새끼야!!!
진오 ......(여전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보시다시피....
한세주 작가님의 이름 뒤에 숨어 대필을 해주고 있는 유령작가,
(세주 너머 벽에 걸린 뭔가에 시선 잠깐 뒀다가) 유진오입니다.
인사를 마친 진오 여유롭게 씩 웃는다.
그런 진오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세주(3부 엔딩점).
세주 (진오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며 살벌) 왜 웃어.
진오 (웃음기1) 남은 채로) 아...이렇게 들킬지 몰랐는데 좀 당황스러워서요.
세주 들킬지를 몰라? 내 집필실에 들어와, 내 책상 앞에 앉아서,
기관총 쏘듯이 내 타자기를 두들겨댔으면서 안 들키길 바래?
진오 그니까요.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
세주 왜 자꾸 웃어. 침 뱉지 말라고 웃어? 못 뱉을 거 같아 내가?!
진오 !! (얼른 웃음 지우며) 그러지 마십시오. 몹시 치욕적일 것 같습니다.
세주 (살벌) 나보다 더?
진오 (??) 치욕적이십니까? (세주 손 가리키며) 잡았고,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잡혔는데?
세주 (목 더 콱 조르며) 이 새끼가! (진오는 목 졸려 컥!)
너 누가 보냈어. (톤 올라가며) 누가 보냈어!!!
지석 (E, 노래) 왜 불러2)~ 왜 불러~왜 아픈 나를 불러~
1) 자신이 세주의 눈에 보이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 자꾸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연을 모르는 세주의 눈에는 기분 나쁘게 보이지만.
2) 디바 버전의 <왜 불러>입니다만, 현장에서 적절히 선곡해주세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 -
S#2 고급 가라오케 룸 (밤)
출판사 직원들과 회식중인 지석, 열창을 하고 있고,
직원들 열렬히 호응해주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지석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부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한 두엽, 지석을
부르려다, 노래에 심취한 지석을 보고는 지가 받는다.
액정화면엔 ‘마이 골드에그’ 떠있고.
두엽 (골드에그? 고개 갸웃하고는 받으며) 여보, (하다말고, 헉! 해서
벌떡 일어나더니, 리모컨으로 얼른 노래 꺼버리는) 사장님, 전화...
지석 (짜증) 아~씨! 누구야! 이제 겨우 흥 올라 작두 탈 뻔했는데.
두엽 (핸드폰 내밀며) 골드에그님...
지석 !! (순간 얼른 자본주의 미소로 받으며) 여어~ 한작가, 무슨 일,
세주 (F, 살벌한) 갈지석, 지금 당장 집으로 튀어와.
지석 한작가, (직원들 의식하며 여유 있는 웃음으로 허세)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황금곰 출판사의 소중한 식구들과 회식 중이라
갈 수가 없어.
직원들 (오올~멋있다~스웩~환호하는 위로)
세주 (F) 이십분 줄게. 안 오면 재계약은 없어!
직원들 (환호하다가 멈칫 정지되는)
보면, 지석 이미 사라지고 마이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무대.
헐...바라보는 직원들.
두엽 나 방금 우사인 볼트 봤어요.
정봉 저 정도면 순간이동이지?
미영 도깨빈줄.
정봉 먹고 살기 힘들다.
S#3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씩씩대며 의자에 앉혀놓은 진오를 밧줄로 꽁꽁 묶고 있는 세주.
그런 세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시종일관 웃음 머금고 보는 진오.
진오 설마 지금 절 묶고 계신 겁니까?
세주 그럼 이게 운동화 끈 묶는 걸로 보여?
진오 불법감금 아닙니까, 이거?
세주 무단 침입자 입에서 나올 소린 아니지.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 -
진오 제가 누군지, 누가 보냈는지, 솔직히 다 말했는데도요?
세주 난 머리 검은 짐승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체적으로 안 믿어.
진오 묶인 다음엔 어떻게 됩니까? 화형당합니까?
세주 좋은 아이디어긴 한데, 삼자대면 후에 생각해볼게.
진오 삼자가 되려면 한 명 더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는데)
지석 (E) 세주야~~! 한세주~~~!
세주 (협박조로) 꼼짝 말고 있어.
진오 (웃으며) 이보다 어떻게 더요. 거의 염수준인데.
세주 입도 꼬매버릴까 갈등하게 만들지 마. (살벌하게 노려보고는 나가면)
진오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짜식...귀엽네...
S#4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지석, 현관문을 탕탕탕! 두드리며 ‘세주야~’ 부르고 있고.
살벌한 표정으로 2층에서 내려와 현관문을 팍 열어주는 세주.
지석 (들어오며) 비밀번호 언제 바꿨냐? 바꿨으면 알려줘야지. 하마터면
경비업체 뜰 뻔 했잖아.
세주 (가증스럽다는 듯) 허! 수고스럽게 웬 쇼야. 유령작가한테 비밀번호
알려줬다며. 그럼 이미 새 번호 입수했단 소리 아냐?
지석 (울고 싶은) 너 대체 왜 그르냐. 유령작간 진즉에 철회했다니까?
세주 철로 회쳐먹는 소리하고 있네. 따라와! 와서 삼자대면하자고!
(지석을 거칠게 잡아끌고 가고)
지석 (끌려가며) 세주야. 나도 다리 있어. 직립보행 가능하다고!
S#5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방문 퍽 열리고, 끌고 온 지석을 방 안으로 거칠게 던져 넣는,
세주 눈이 있으면 똑바로 봐! 이래도 아니야?
지석 (튕겨져 들어와 비틀했다가, 황당해서) 뭘 봐?
세주 ? (들어와 보면)
바닥에 풀려있는 밧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진오.
세주 !!! (열려있는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확인해보는)
지석 (영문 몰라) 뭐야. 마술쇼야? 언제쯤 박수쳐야 돼? 다시 등장하나?
세주 (지석을 확 돌아보며) 형이 빼돌렸어?
지석 (미치겠는) 아 누구르을! 누군지는 알아야 빼돌릴 거 아냐!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4 -
세주 분명 여기 있었어! 나폴레옹 쌈 싸먹을 기세로 위풍당당하게
내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고!
지석 너 또 약 처먹었지? 양박사는 만나봤어?
세주 내가 미쳤다는 거야 지금?
지석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 다시 등장하냐고! 박수 쳐주겠다고, 내가!
세주 그 놈 입으로 분명 형이 보낸 유령작가라고 했어! 황금곰 출판사
갈지석이 보냈다고 했다고!
지석 아 돌아버리겠네 진짜! 좋아, 오늘 끝장을 보자.
내가 유작가한테 직접 전화할게. 그럼 되지?
씩씩대며 핸드폰을 꺼내 호기롭게 전화를 거는 지석.
지석 (착신되면) 어, 유작가, 나 갈지,
유창명 (OL, 칸초네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녹음 멘트) 부온 죠르노!
삐아체레! 저는 지금 피자와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 와
있습니다. 부디 당분간 저를 찾지 말아주세요.
지석 (헉!!! 세주를 보고)
세주 (멱살을 와락 움켜쥐며) 쇼하지 말랬지 내가.
지석 (절규하듯 핸드폰에 대고) 유작가~! 로밍 안 해갔어?
전화 좀 받아봐. 유작가! 유창명 작가아아아--!
세주 (멈칫) 방금 뭐라고 했어?
지석 (거의 울며) 뭐가.
세주 유창명 작가?
지석 그래 유창명. 너도 이름은 들어봤지? 삼년 전 여성지 공모전으로
데뷔했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요즘은 주로 자서전 대필을,
세주 (OL) 유진오가 아니고?
지석 유진오는 또 누군데?
세주 ! (순간 퍼뜩 떠오르는)
# 인서트
/진오 유령작가, (세주 너머 벽에 걸린 뭔가에 시선 잠깐 뒀다가)
유진오입니다.
세주 유진오...(천천히 진오의 시선이 향하던 곳을 따라가 보면,
벽에 걸려있는 유진오닐의 초상화) 닐...!
지석 (이상해서) 왜 그래? 유진오닐이 왜. 뭐.
세주 (멍...한 채로) 이런 개새....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5 -
지석 ! (지한테 하는 말인지 알고 움찔) 세, 세주야, 개새라니 그 무슨
유전자 변이스러운 소리야. 난 개새가 아니고 너의 파트너,
세주 (열 받아 책상 위를 확 쓸어버리며) 이런 개새애애애애!!!!!
S#6 세주의 저택 / 정원 (밤)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도망치듯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오는 지석.
저택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나서야 멈춰 서서는,
집필실 쪽을 올려다보며,
지석 아....저 자식이 요새 왜 저래 진짜? (핸드폰 꺼내 어딘가로 전화)
아, 양박사님. (정문 쪽으로 걸어가며 통화) 저 황금곰 갈지석입니다.
한작가 말인데요, 심리치료 언제 받았습니까? (한 동안 안 받았다)
아 그래요...어쩐지...애가 좀 이상해서요...
어쩌고 하며 지석의 모습 사라지고 나면,
잠시 후 정원 일각에서 나타나는 진오!
진오 (집필실 쪽을 바라보며) 예정에도 없이 들켜버렸으니 앞으로
이 일을 어쩐다? 조금만 더....(고개 갸웃하듯이 하며, 의뭉스럽게)
데리고 놀아볼까? (씩 웃고)
S#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머리를 쥐어뜯을 듯 양손으로 움켜쥐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세주.
세주 (분하고, 혼란스러워 돌겠는, E) 누구야. 누구야 너....
추리를 하듯 눈알만 굴려 유진오닐 초상화를 봤다가, 타자기를
봤다가, 타자기에 꽂혀있는 원고를 봤다가, 원고 맨 위에 적힌
글자를 보는, (INS) 시카고 타자기 3주차 –11회-
순간 꼭지가 팍 도는 세주. 타자기에서 원고를 거칠게 확 뽑아들며
일어나 갈기갈기 찢어 공중에 확 뿌리며,
세주 니 정체가 뭐냐고 대체에에에---!!! (소리 지르는데서)
타이틀 <시카고 타자기>
S#8 황금곰 출판사 외경 (낮)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6 -
지석(E) 아니 백작가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S#9 황금곰 출판사 / 지석의 사무실 (낮)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퀭한 얼굴의 지석, 홍삼스틱 빨고
있다가 멈춘 얼굴이고, 그 앞에 태민이 앉아있다.
지석 엊그저껜가 탈고했다며.
태민 전부 엎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지석 !!!, 아니, (그 와중에도 먹던 홍삼 야무지게 쪽 빨아먹고는
휴지통에 홱 버리며) 오늘 넘기기로 해놓고 이런 청천벽력을
때리면 어떡해. 대체 왜? 뭐가 문젠데?
태민 (피식 웃으며) 혼이 덜 실린 거 같아서요.
지석 무당 얘기야? 그거 아니었잖아.
태민 (일어나며) 그럼 이해해주신 걸로 알고, 오늘부터 일주일간
취재여행갑니다. 당분간 연락 안 될지도 몰라요.
지석 (후다닥 나와 잡으며) 백작가, 그러지 말고, 일단 가져와봐.
일단 원고 넘긴 다음에 함께 수정방향을 논의해보자고. 응?
태민 죄송합니다. 오 년만의 신작인데 아무렇게나 낼 수가 없어서요.
지석 아, 돌겠네 진짜. 며칠 전엔 한작가가 난리더니, 오늘은 백작가까지
왜 이래. 둘이 담합했어?
태민 (민감하게) 한작가가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지석 ! (흠칫해서) 어? 아니야. 아니야. (얼른 딴청) 그래서 무슨
얘기라고? 무당얘기라고?
태민 (뭔가 이상하고)
S#10 황금곰 출판사 복도 (낮)
태민,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다. 그 위로,
# 인서트 (3부 49씬)
/태민 그래서 그런가? 처음엔 한세주 소설 같지 않아 좀 낯설더라구.
/세주 (멈추고, 탁 보며, 예민하게) 무슨 뜻이야 그게.
/세주 (버럭) 왜 머리 나쁜 척 해. 저의가 뭐냐고 묻는 거잖아!
떠올리며, 아무래도 뭔가 미심쩍은 태민인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송기자, 태민을 발견하고는 반색하며 다가온다.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7 -
송기자 이야~ 백태민 작가님 아니십니까?
태민 (퍼뜩 생각에서 깨어나, 보면)
송기자 (반말 존댓말 섞어가며 격의 없는 말투) 황금곰이랑 계약했다며.
한세주 작가와 한솥밥 먹게 된 기분이 어때요?
태민 (격의 없는 태도 기분 나쁘지만, 애써 미소로) 아직 안 먹어봐서요.
송기자 (따라붙어 나란히 걸으며, 어깨로 어깨 툭 치며) 에이~ 왜 이래.
예전에도 한 솥밥 먹었었잖아. 한 집에서.
태민 (어깨 건드려지는 순간 짧게 서늘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표정3),
걸음 딱 멈추고, 미소로 보며) 우리가 친한 사입니까?
송기자 (어? 와 네? 사이의 어중간한) 에?
태민 (서늘함 감춘 미소로) 반말에 스킨십에. 너무 격의가 없으셔서
제가 혹시 우리 사일 깜빡했나 해서요.
송기자 아이고, 우리 백작가님이 날 별로 안 좋아하시나보다.
이번에 인연 재출간 하시죠? 내가 기사 잘 써줄게.
태민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제 기사는 늘 좋게 써줍니까?
송기자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가족을 잘 둔 덕분이라고 생각하세요.
태민 (어쩐지 불쾌해지는) 무슨 의밉니까?
송기자 아, 황금곰 입성 기념으로 내가 백작가한테 좋은 선물 하나 드릴게.
조만간 재밌는 게 하나 터질 거거든. 워딩만 살짝 알려드릴까?
태민 됐습니다. (가려는데)
송기자 (OL) 뷰티, (끊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앤드, 고스트.
태민 (멈칫, 보는데서)
S#11 동물병원 앞 거리 (낮)
설 동물병원을 향해 뛰듯이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
걷다가 어떤 느낌에 멈춰서는 설. 뒤를 확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고개 갸웃하며 이상한데....울리는 핸드폰.
설 (받으며, 친근) 아, 30초만 참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왔는데.
(웃으며) 알았어요, 알았어. 금방 가요. 네. (끊고는 달려가고)
설의 모습 사라지면, 잠시 후 건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
진오다! 달려가는 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오의 표정에 뭔가
미스터리한 아련함이 묻어난다.
3) 태민은 백도하의 냉대와 홍소희의 병적 성정 속에서 성장했기에 타인에게 무시당하면 못 견디는 성
격. 애써 본성을 누르고 있는 중이지만 순간순간 서늘함이 찰나적으로 스칠 때가 있습니다.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8 -
S#12 동물병원 (낮)
설 (들어오며) 선배 나 왔어요.
수의사 (옷 꿰입고 있던 중) 어, 딱 맞춰왔다. 일 분만 늦었어도 신랑한테
죽었어, 나.
설 얼른 가요. 결혼기념일 잘 보내시구요.
수의사 부탁한다? (허둥지둥 나가려다가) 야 너 그러지 말고 이참에
그 모든지혠지 뭔지 접구 나랑 같이 일하자.
설 또 시작이다 또.
수의사 내가 부원장 자리 줄게.
설 아 됐어어어.
수의사 (사연 안다) 왜. 아직도 소들이 울어? 울음을 안 멈춰?
설 (답 피하는) 안 늦었어요? 늦으면 죽는다며.
수의사 (뭐라 한 마디 더 하려 입 뻐끔했다가, 관두고) 가운 입어.
신뢰감 떨어져. (하고는 나가고)
설 (웃고는, 손목에 차고 있던 머리끈으로 머리 묶으며 탈의실 쪽으로)
S#13 동물병원 앞 (낮)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수의사와 스쳐 동물 병원 앞으로 가는 진오.
통유리 창 앞에 서서 병원 안을 바라보는 진오의 아련한 표정.
S#14 동물병원 (낮)
스크럽복(간편한 수술복) 위에 가운을 걸친 설,
한손에 차트 들고 병원 스태프 한 명과 입원장 앞으로 온다.
입원장의 투명 창에 사인펜으로 체크해놓은 내용과 차트 내용
확인해가며 입원 동물들 살피는.
설 몽이는 호흡이 많이 좋아졌네요. 산소마스크에서 산소 케이지로
변경해주시구요, 수액 처치는 유지해 주세요. 체리는 IVDD4)네요?
스태프 네. 오늘 입원했어요.
설 (차트 넘기며) 음...보자...10분 후에 MPSS5) 준비해주시구요,
(입원케이지 열고는 체리 만지며) 아이 예쁘다~잘 잤어? 선생님이
체리 눈 좀 볼게? (체리 달래가며 눈 확인해보고는) 오플로사신6)도
필요하겠네요. (스태프 적당 대답하고) 다음은...보자, 보자...
4) Inter vetebral Disk Disease: 허리디스크. 추간판 돌출증.
5) Methylprednisolone Sodium Succinate: 수레드 주사. 스테로이드 약제.
6) Ofloxacin Eye Drop: 점안액. 주로 결막염 치료에 이용.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9 -
차트 확인하며 다음 입원장으로 옮겨가다가 멈칫 정지되는 설.
또다시 뒤를 확 돌아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스태프 왜 그러세요?
설 이상하다....분명 누가 계속 쳐다보는 느낌이었는데....
(찜찜해서 안 되겠는) 잠깐만요? (차트 넘겨주고 밖으로 나가보는)
S#15 동물병원 앞 (낮)
병원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살펴보는 설.
무심히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인데,
이때 백설이를 안고 동물병원을 향해 걸어오던 태민,
태민 (설을 발견하고는) 어?
설 (소리에 돌아보고는) 어?
태민 (웃으며, 밝게) 안녕하세요?
설 (웃으며) 네, 안녕하세요? 근데 백설이 어디 또 아파요?
태민 아니요. 제가 취재여행 때문에 잠시 집을 비우게 돼서 병원에
좀 맡기려구요. 근데 (설의 복장 보며) 수의사였어요?
설 하하. 뭐지? 그 못 믿겠다는 표정은?
‘선배 대신 잠깐 일하는 거예요. 여행 며칠이나 다녀오세요?’
어쩌고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설과 태민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는 일각의 진오. 태민을 바라보는 표정이 서늘7)해지고...
S#16 동물병원 (낮)
백설이를 품에 안고 있는 태민.
설, 한 손에 장난감 들고 백설이 달래가며 입을 벌리게 해서
구강점막 상태 확인하고, 등 피부를 당겨 보며 다시 되돌아가는
피부 탄력도 점검하며 태민과 상담 중이고.
설 아직도 가끔 구토를 한다구요?
태민 네. 식욕도 없는 거 같고, 계속 잠만 자고, 그루밍도 잘 안하고,
개냥이었던 놈이 애교도 줄고...
설 흐음...우울증일 수도 있겠네요.
태민 네?
7) 태민이 환생했음을 알고 서늘해지는 표정입니다만, 현재까지는 설의 옆에 있는 남자를 질투하는 모습
으로 보여야 합니다.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0 -
설 (백설이 차트 넘겨보며) 보니까 특별한 질병이 없어도 여기에
자주 맡기시는 거 같은데...탁묘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고양이가
불안해해요. 버림받은 줄 알고.
태민 아...죄송합니다.
설 하루에 몇 분이나 같이 놀아주세요?
태민 제가 바쁘기도 하고, 잠이 많은 놈이라 깨우면 싫어해서....
설 백설이가 잠이 많은 게 아니라, 안 놀아주니까 잠이 많아진 거죠.
빗질도 잘 안 해주죠?
태민 네? 그게 제가 남자다 보니...
설 아니 머리를 땋아 달래, 올림머리를 해 달래? 거기에 남자 여자가
왜 나와요? 그러니까 미모를 포기하고 그루밍을 놔버린 거라고 얘가.
태민 왜 자꾸 교무실에 끌려온 듯한 느낌이 들까요.
설 (차트 탁 덮고는) 아무래도 우리 백집사님이 노는 법을 좀
배우셔야겠네.
태민 네? (보는데서)
S#17 몽타주 (동물병원/낮)
설에게 백설이와 놀아주는 법을 배우고 있는 태민.
-먼저 낚싯대로 놀아주기 시범 보이는 설.
멋쩍게 따라해 보는 태민. 잔소리 늘어놓으며 다시 액티브하게
시범 보이는 설. 좋아 미쳐 날 뛰는 백설이.
-레이저포인터 시범 보이는 설. 따라해 보는 태민.
역시 지청구 늘어놓으며 거의 총격전을 벌이듯 백설이를 향해
레이저를 쏘는 설. 매의 눈빛으로 포인트를 잡으려고 움직이는
백설이. 하하 웃는 태민. 옆에서 함께 레이저를 쏘며 같이 놀기
시작하고. 태민 본인이 더 즐기기 시작하는.
-틱톡 박스에 손가락 넣고 두더지게임8)하는 방법 가르쳐주는 설.
어째 백설이보다 태민이 더 신난 것 같고. 처음 보는 태민의
아이 같은 웃음. 그런 태민을 보며 웃는 설.
S#18 동물병원 (낮)
두둥! 스크래처, 폼폼막대, 낚시대, 캣타워, 틱톡박스,
고양이볼 등등을 들고, 메고, 놓고 서있는 태민이고.
설 (태민의 카드 들고 단말기 앞에 서서 심란한) 정말...긁어요?
8) http://stv.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116500080&wlog_tag3=naver
사진과 영상입니다. 참고해주세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1 -
태민 현금이 없어서요.
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태민의 의외의 천진한 모습에
웃어버리고는) 그럼 시원하게 긁겠습니다? (카드 단말기에)
태민 (보다가) 오늘 근무 몇 시에 끝나요?
설 (승인처리 기다리며, 무심히) 7시요. (카드 건네며) 왜요?
태민 저랑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설 뭐지? 뭔가 작업의 냄새가 나는데?
태민 (웃으며) 작업 아니구요, 저번에 무보수로 도와주신 것도 고맙고,
오늘 백설이 일도 고맙고...개인적으로 부탁드릴 일도 있고 해서요.
설 부탁이요? 저한테요? 무슨 부탁이요? (에서)
S#19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컴퓨터 화면의 빈 문서 위로 커서가 깜빡이고 있고.
책상 앞에는 아무도 없는...보면,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세주.
여전히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는.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다가
유진 오닐 초상화를 보는. 마치 진오를 노려보듯이 살벌하게
노려보다가, 벌떡 일어나 작업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S#20 세주의 저택 / 침실 (밤)
손바닥 위에 수면 유도제를 털어놓고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
들어 꿀꺽 삼키는 세주. 이불을 들추고 들어가 스탠드를 탁 끄더니
수면 안대를 쓰고 잠을 청하려 애쓰는 세주인데...
어디선가 째깍째깍째깍...들리는 시계초침소리. 뒤척이는 세주.
점점 더 커지는 초침소리(세주의 귀에만). 뒤척임 잦아지는 세주.
마침내 천둥소리처럼 커지는 초침소리.
세주 아으 씨 진짜!!
결국은 이불 확 젖히고 일어나 예민하게 스탠드 탁 켜고는
소리의 행방을 찾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세주.
세주 뭐야. 어디야. 뭐가 어디 있는 거냐고 대체!
신경질 내며 옷장을 벌컥 여는 세주. 순간 선명해지는 초침소리.
외투 주머니(3부 64씬 설산 갈 때 입었던)에서 들려오고 있고.
꺼내서 보면, 안에서 나오는 예의 그 낡은 회중시계!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2 -
세주 ......(손 위에 올려놓고 보며, 예민했던 표정 가라앉는 위로)
세주 (E) 근데 심장은 왜 뛰어.
# 인서트(3부 25씬)
/설 (보며) 누가?
/세주 (보며) 니가. 몰랐어? 니 심장 지금 엄청 뛰어.
/설 !! (얼굴 빨개져서 세주 홱 밀치고는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떠올리고는 그때처럼 저도 모르게 피식 웃는 세주.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퍼뜩 당황하는 세주.
자신이 지금 웃을 때인가...싶어 한 손으로 얼굴 쓸어내리고는
외투 주머니에 회중시계 다시 집어넣고 옷장문을 탁 닫는데,
다시 벌컥 옷장문 열리더니 코트를 집어 들고 나가는 세주.
설 (놀란, E) 어시스턴트요?
S#21 호프집 (밤)
함께 맥주 마시고 있는 설과 태민.
태민 네. 제가 이번에 새 작품을 쓰게 됐거든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요.
설 근데 왜 하필 저를...전 작가도 아닌데요.
태민 제가 필요한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수의사라서요.
설 글 쓰는데 수의사가 왜 필요해요? 아아...백설이 집사하라고?
태민 (웃으며) 아니구요. 수의학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설이를 정중하게 두 손바닥 겹쳐 가리키며) 자문 겸, 감수 겸,
어시스트. 어때요. 페이는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설 (허공에 손 휙 내저으며) 에이, 안 돼요. 수의사 그만둔 지가 언젠데.
대신 좋은 선생님 추천해드릴게요.
태민 싫은데. 선생님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설 아닌데. 나 아닌데.
태민 (웃으며) 왜 그만두셨어요, 수의사?
설 (마시려다가 멈칫, 보는)
태민 뭐 엄청난 사연이 있어요?
설 나중에 친해지면 가르쳐드릴게요.
태민 친해져요 그럼. 지금부터.
설 (또 멈칫 보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3 -
태민 친해지고 싶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설 (당황으로 보다가,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여기요! 맥주 좀 더 주세요.
CUT TO/
텅! 빈 맥주잔이 테이블 위에 놓이고. 살짝 취한 설, 입을 슥 닦고는,
태민 쪽으로 몸 내밀고 너만 들으라는 듯, 은밀하고 작게,
설 양들의 침묵.
태민 (역시 설 쪽으로 몸 내밀고 은밀하게 듣고 있는) 양들의 침묵?
설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난 소들의 침묵.
태민 (취했다 생각하고, 진지하게 맞장구 쳐주는) 아아...소들의 침묵.
설 (자세 바로하며) 몇 년 전 구제역이 아주 심각했을 때 기억나요?
태민 (피식) 한 두 번이라야죠.
설 암튼 그때 인력이 부족해서 수의사는 물론 수의대생까지 현장에
총동원된 적이 있었어요.
태민 (설이를 가리키며) 선생님도?
설 (끄덕) 안락사와 검사용 혈액채취 임무.
태민 저런.
설 축주들은 마지막 가는 소들을 위해 고급사료를 먹이면서 울어요.
나는 그 옆에서 주사기 개수를 세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가
자기를 죽이러 온 내 손등을 막 핥아줘요. 주사를 놓으니까...
3초 만에 죽더라고요. 너무 어려서.
태민 ......
설 그 뒤로 소들의 울음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태민 ......
설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주려고 수의사가 됐는데...어째 살린 동물보다
죽인 동물이 더 많은 거 같더라구요...그래서 도망쳤어요.
소들의 울음이 멈추질 않아서...(짐짓 웃으며) 뭐 그런 사연?
태민 (따뜻한 미소로 보며) ......
S#22 설이네 동네 거리 (밤)
술기운에 살짝 붉어진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설.
설 (마음의 소리, 혼잣말처럼 피식, E) 생각해보니까 나는...
살생을 연상시키는 일을 목표로 하면 꼭 좌절을 하네...
전생에 백정이었나? 아니면...누구를 죽였나?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4 -
언제부터인가 거리를 두고 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진오.
마치 그림자처럼...호위무사처럼....
S#23 성수청 앞 거리 (밤)
양 손 주머니에 넣고 터덜터덜 성수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세주.
설 (E) 죽여서는 안 되는 소중한 누군가를 죽여서..벌을 받고 있는 건가?
문득 시선을 들다가 멈칫 굳는 세주.
보면, 저만치 성수청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설의 모습.
바라보다가, 다가가려는데, 또다시 멈칫 굳는.
거리를 두고 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진오의 모습!
세주 !!! (충격과 혼란)
S#24 성수청 앞 (밤)
설, 성수청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면,
잠시 후 대문 앞으로 와 서는 진오.
대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며 서있는데.
거칠게 진오의 뒷덜미를 낚아채서는 확 돌려세우는 세주.
놀란 진오의 눈과 살벌한 세주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세주 니가 왜 여기 있어.
진오 어? 작가님은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아, 점 보러 오셨습니까?
세주 내가 먼저 물었잖아! (진오 양복 옷깃 양 손으로 와락 움켜쥐며)
너 뭐야. 뭔데 자꾸 내 주변을 얼씬거려!
진오 ......(몹시 진지) 첫눈에 반했습니다.
세주 ! (소름 쫙 돋아 멱살 잡으며) 죽고 싶어?
진오 작가님 말고. (성수청을 보며, 아련 돋게) 전설씨요.
세주 !!!
S#25 성수청 뜰 (밤)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고 있는 설.
왕방울 (나오며) 왔으면 들어오지 뭐해?
설 밤 되도록 빨래를 놔두고 있음 어떡해. 이슬 맞잖아.
왕방울 (옆으로 오며) 안 그래도 걷으려고 나온 거야. 내가 할 테니까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5 -
넌 들, (하다 말고 찌릿, 대문 쪽을 보는)
설 왜 그래?
왕방울 (찌릿한 시선 대문 밖에 둔 채) 방진아! 마방진!
방진 (글 쓰다 나왔는지 링고 머리) 아 왜에~~!! 간만에 글발신 내려
신나게 쓰고 있었구만!
왕방울 부엌 가서 팥 한 사발 가지고 나와.
설 팥은 갑자기 왜.
왕방울 불길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어. (혼잣말처럼) 분명 둘인데....
어느 쪽이지? (촉을 세우듯 두 눈 점점 가느스름해지고)
설 (얼결에 같이 눈 가느스름해지며, 긴장되게 지켜보는데)
왕방울 (쌍꺼풀 크게 만들며) 아우, 눈깔이야. (방진에게 버럭)
아, 뭐해 얼른 팥 가져오지 않고!
방진 에이 씨, 진짜! (발 쿵쿵 구르며 부엌 쪽으로 가고)
설 (하하 웃고는 다시 빨래 걷는)
세주 (E) 니가 저 여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됐는데.
S#26 성수청 앞 (밤)
진오 (여전히 성수청을 향한 아련 돋는 표정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던 날, 공항에서, 첫눈에.
세주 (기막힌) 허! 미쿡(미국)? 이 자식이 입만 열면 구라네.
요즘 뉴요커들은 (진오의 레트로 스타일의 양복 툭 건드리며)
요따구로 촌빨 날리게 입는 게 트랜든가부지?
진오 (세주 말에 상관없이, 멈칫 성수청 쪽에 촉각 세우며, !!)
뭔가 붉은 기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하고는 홱 돌아 도망치고)
세주 저 자식이! 야, 너 거기 안 서!
쫓아가려는 순간, 성수청 대문이 벌컥 열리며 안에서
팥알을 확 뿌리며 등장하는 왕방울!
세주 (팥알 세례를 온 몸으로 맞고) 앗 따거! 따거! 따거!
소리에, 왕방울 뒤로 나와 보는 방진과 설.
세주를 발견하고는 기함하는.
설 작가님!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6 -
방진 미쳤어. 미쳤어. (엄마의 등짝을 때리며 데리고 들어가고)
설 작가님이 여긴 왜...(환해지며) 설마 저 만나러 오신 거예요?
세주 마, 만나러 오긴 누가, (모냥 빠졌다, 쪽팔려서) 에잇! (휙 가고)
설 (앗!) 작가님! 작가님! (쫓아가고)
S#27 성수청 앞마당 (밤)
왕방울의 등을 떠밀며 데리고 들어오는 방진.
방진 내가 엄마 때문에 못 살아, 못살아. 불길한 기운은 개뿔!
왕방울 (멈칫, 매서운 눈빛이 다시 성수청 밖을 향하는)
방진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눈빛에) 왜 그래? 진짜 뭐가 보여?
왕방울 (끄덕이며) 얼굴 구석구석에 짙게 깔려있어.
방진 (덜컹해서) 뭐가?
왕방울 (몹시 진지) 잘생김이.
방진 (헐...) 이 아줌마를 어쩔.
왕방울 팥이나 주워와 년아. 그거 국산이야.
S#28 성수청 앞 (밤)
바가지 들고 나와 바닥에 흩어진 팥알을 바라보는 방진.
방진 (짜증) 누가 밟고 넘어지면 어쩌려고 진짜. (털썩 주저앉아
팥알 줍기 시작) 신빨은 죽었어도 손목 스냅은 살아있네.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제대로 뿌리셨어, 응?
툴툴대며 오리걸음으로 팥알 주우며 전진하는데,
맞은편에서 팥알을 주우며 오리걸음으로 전진해오는 한 남자, 진오다!
그렇게 오리걸음으로 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두 사람.
방진 (기척 느끼고) 아, 감사합(인사하며 고개 드는 순간, 진오의
잘 생긴 얼굴을 마주하고는, 눈과 입이 벌어지며) ....니다.
진오 (말없이 웃는9))
방진 ! (멍...한 채로, 마음의 소리, E) 웃는다....
순간 샤랄라라~꽃가루가 날리는 듯한 환상을 보며 멍...해지는 방진.
손수건에 차곡차곡 모아온 팥알을 바가지에 부어 주는 진오.
9) 어? 이 사람도 내가 보이네? 재밌어서 웃는 느낌.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7 -
방진 (멍...한 채로, E) 젠틀하다...
진오 여기...(하며 오른 손 손가락하트) 아, 그리고 여기도....
(하며 왼손도 손가락하트)
방진 (현실 목소리 튀어나오는) 하트...!
진오 아니고 팥알....
제대로 보면, 손가락 하트가 아니라 팥알 집은 손이고.
아....뻘쭘해지는 방진.
진오 (손으로 집은 팥 두 알 바가지에 넣어주고는) 그럼...(가려는데)
방진 (벌떡 일어나며) 저기, (진오, 발걸음 멈추면) 성함이...
진오 (돌아보며, 미소로) 이름을 함부로 밝힐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그냥 ‘유’라고 불러주세요. (하고는 멋지게 돌아서는 모습 위로)
(M) 온리 유~~~흘러나오고(feat. The platters).
사로잡힌 듯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는 방진에서.
S#29 설이네 동네 거리 (밤)
씩씩대며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세주고.
설 (그 뒤를 쫓아 달려오며) 작가님~ 잠깐만요, 작가님!
거의 다 따라잡는 순간 걸음 딱 멈추고 홱 돌아보는 세주.
충돌직전에 멈춰 서서 헉 놀라는 설.
세주 너 유진오란 사람 알아? 어떻게 알아? 너한테 뭐래? 내 얘기해?
설 (벙—해서) 뭐부터 대답해요?
세주 처음부터. 하나씩. 성실히.
설 유진오란 사람 모르구요, 따라서 뒤에 대답은 할 필요 없구요.
세주 (뭐라 더 물으려다가, 관두고) 됐어. 그럼. (휙 나간다)
설 (황당한) 그거 물어보려고 왔어요?
세주 (순간 다시 멈춰서더니, 척척척 걸어와, 설의 손에 뭔가 턱 쥐어주는)
설 이게 뭐....(하다가, 회중시계를 보고는 환해지며) 어? 이걸 어떻게?
세주 오다가 줏었다(주웠다). 됐냐? (휙-가는)
설 (환해져서, 쫓아가며) 어머 웬일, 웬일. 지금 나한테 츤데레한 거야?
그런 대사는 또 어디서 배웠대? 인터넷 소설도 읽나봐.
세주 (가는 채로) 왜 쫓아와 자꾸.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8 -
설 (계속 따라오며) 그럼 이거 찾으러 산장에 다시 갔다 온 거예요?
나 때문에? 날 위해서? 내가 속상해 할까봐?
세주 (멈추고, 돌아보며, 기막히다는 듯이) 이봐, 이봐, 그게 무슨 근본
없는 착각이야. 볼 일 있어 나갔다가, 안개가 짙게, 차 세웠는데,
뭔가 반짝, (설명 안 되는) 관두자. (또 휙--)
설 (신나서 따라가며) 볼일 있어 나갔는데, 내 생각이 나서,
다시 산장을 가봤는데, 안개가 껴서 차를 세웠고, 반짝이는 게
있어서 가봤더니 이 회중시계였다?
세주 그 너저분한 만연체에서 ‘니 생각이 나서’만 빼면 얼추 맞아.
설 이왕이면 집어넣지? 문맥상 튀지도 않는데.
세주 튀지. 많이 튀지. 사실이 아니니까.
설 (세주 앞으로 짠 달려와서) 가요. 내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
(손에 쥔 회중시계 흔들며 웃는) 내 심장 찾아준 보답으로.
세주 .....! (설의 해맑은 웃음에 심장이 쿵하는 느낌)
S#30 샌드위치 가게 (밤)
샌드위치와 음료 놓고 마주 앉아있는 세주와 설.
설 (세주의 기색 살피며) 정말...이걸로 괜찮겠어요?
세주 (먹으며, 짐짓 별 감정 없이) 왜? 나 여기 좋아해.
설 아닐 텐데....
세주 (감정 없이) 왜 내가 십년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악몽이었다, 어쩌고 헛소리해서?
설 (!!!) 기억났어요?
세주 났어. 몰래 핫초코 셔틀해주던 알바생. 몰카 찍던 얼빠.
설 (발끈해서) 얼빠 아니거든요?
세주 거죽 말고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서.
설 왜? 알 수 있지 당연히.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인데.
세주 (여보세요) 그때 난 무명이었거든요?
설 실은...(눈치 보며) 봤거든요. 그때 쓴 원고.
세주 뭐?
S#31 회상 / 샌드위치 가게 (2008년 겨울/밤)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매장 안. 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세주의 고정석 근처다. 세주는 자리에 없고. 테이블 위에는 노트와
포스트잇과 싸구려 만년필과 샌드위치 껍질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바닥에는 구겨진 파지가 여러 개 떨어져 있다. 조용히 주변을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19 -
살펴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파지를 펴서 보는 설.
한 장...두 장...읽어보는 설의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세주 (E) 마감입니까?
설 ! (소리에, 얼른 파지를 전부 쓰레받기에 집어넣고는 일어난다)
아...아직 30분 남았어요. 천천히 정리하셔도 돼요.
세주 감사합니다. (테이블 위 정리하기 시작하고)
설, 슬쩍 카운터 구석 자리로 가서, 쓰레받기에 숨겨온
파지를 펴서 순서대로 정리한다. 나중에 다시 읽으려고.
S#32 현재 / 샌드위치 가게 (밤)
세주 (기막힌) 미저리 맞네. 미저리 맞아.
설 미저리가 아니라 작가님의 일호 팬,
세주 (OL) 그래서. 그걸로 날 알게 됐다고? 겨우 버려진 종이쪽지로 나를?
설 대화도 나눠 봤고.
세주 내가? 너랑? 대화를? (전혀 기억 안 나는데)
S#33 회상 /샌드위치 가게(2008년 겨울/밤)
테이블 위의 물건을 배낭에 챙겨 넣고 있는 세주인데,
그 앞에 놓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핫초코.
세주 ? (보면)
설 드세요. (웃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세주 (그저 보기만)
설 (잔 놔주고,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작가세요?
세주 망생이에 가깝죠. 아직은.
설 글 쓰는 거 재밌어요?
세주 (픽) 재밌어 보여요?
설 미친 거 같아 보이긴 해요.
세주 ?? 욕입니까, 칭찬입니까?
설 왜 그렇게 사생결단 낼 것처럼 미친 듯이 써요?
세주 글을 써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나는 미친다. 바이런.
설 (세주와 동시에) 바이런.
세주 (피식) 제법 독서간가 봐요.
설 팍팍한 세상, 매달릴게 책 밖에 없어서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0 -
세주 나도 개 같은 인생, 매달릴 게 이것 밖에 없어서요.
설 인생이...그랬어요?
세주 그래요 지금도.
설 그래서 잡은 지푸라기가 소설이에요?
세주 지푸라기치곤 폼 나잖아요. 언제 배신할지 모를 남의 손잡는 거 보단
안전하고, 매달려도 비굴해 보이지 않고, 약물 없이도 현실도피
가능하고. 운 좋으면 돈도 되고.
설 잡고 있을 만해요?
세주 뭐 제법요. 글이 밥이 되면 더 행복할 거 같지만.
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세주 (좀 생각해보다가) 독창적인 작가?
설 아아, 아무도 모방하지 않는 작가?
세주 아니오.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작가.
세주, 설 (동시에) 샤토브리앙. (하고는 피식 웃는)
S#34 현재 / 샌드위치 가게 (밤)
세주 각색 쩐다.
설 (발끈) 아니거든요. 다큐거든요.
세주 웃었다고 내가? 십년 전 그때? 십년 전 내가 웃었을 리가.
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세주 사연 팔이 같은 거 안 해 나는.
설 으응. 그러니까 뭔가 있긴 있었구나, 사연이?
세주 다 먹었으면 일어나. (일어나려는데)
설 (OL) 기막히게 좋았어요.
세주 (멈칫 보면)
설 그때 파지에 적혀있던 소설. 지금까지 작가님이 쓴 그 어떤 소설보다
좋았어요. 그때 이미 난 알았다니까. 이 사람 굉장한 작가가
되겠구나.
세주 ......!
설 그때부터 쭉 응원했어요. 지금 잡은 지푸라기가 동아줄이 되라.
글이 밥이 되고 밥은 또 글이 되라.
세주 ......(어쩐지 가슴 한쪽이 쏴아—해지고)
설 그리고 빌어줬어요. 고단한 인생이 이 사람 발목을 붙잡지 않기를.
그건 그저 신이 위대한 작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준비한, 잠깐의
시련이기를. 지금 겪는 고통의 시간이 시련기가 아닌 수련기이기를...
세주 ......(괜히 울컥해져서 음료 잔 들고 고개 트는데)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1 -
설 (미소로) 십년 만에 안부 물을게요. 글이 밥이 됐나요, 이제?
세주 (피식) 암만. 밥만 됐나? 저택도 되고 사슴도 되고 자동차도 됐지.
설 (웃으며)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작가는요.
세주 (음료 마시려다가 멈칫, 정지되는 위로)
# 인서트
/진오 한세주 작가님의 이름 뒤에 숨어 대필을 해주고 있는 유령작가,
유진오입니다.
세주 (무거워지는)......
설 (기색 살피고는, 피식) 그건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세주 ......(일어나며) 그만 가자. (나가고)
설 ? (보다가, 일단 따라 나가고)
S#35 디지털 센터 앞 거리 (밤)
무거워진 심정으로 걷고 있는 세주고, 그 뒤를 따라붙는 설.
설 화났어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난 건데?
세주 (무거운 심정으로 대꾸 없이 걷기만)......
설 소설 이렇게 쓰면 독자들한테 욕먹는다? 감정선 날뛴다고?
세주 (걷기만)......
설 아, 정말 상대하기 힘든 냥반이네...
한숨 내쉬다가 문득 시선 돌려보면, 전자제품 상가 전시장에 비치된
수십 대의 TV화면에 세주와 태민의 공익광고가 반복 플레이되고
있다. 마침 태민의 장면이고.
설 어? 백태민 작가다.
세주 ! (소리에 우뚝 서고)
설 (전시장 유리에 얼굴 가까이 대고 보며) 어? 작가님도 나와요.
하하하. 이런 광고는 또 언제 찍었대?
세주 ......(그대로 가려는데)
설 백태민 작가는 실물이 훨씬 낫네.
세주 ! (허! 예민하게 탁 보며) 니가 백태민을 본 적이나 있어?
설 (시선 화면에 둔 채) 봤으니까 하는 말이죠. 오늘 맥주도 같이
마셨는데? (무심히) 사람 차암~좋대.
세주 ! (척척척 걸어와) 니가 백태민을 왜 만나.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2 -
설 ? (보며) 선배가 하는 동물병원 손님이거든요.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세주 (OL) 일호 팬은 개뿔. 이제 보니 얘가 완전 잡덕이었네.
설 (기막힌) 잡...덕....?
세주 너 팬질 이딴 식으로 난잡하게 하는 거 아니다.
설 아, 언제는 탈덕하라며!
세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시 받아들여줬잖아, 내가!
설 아, 됐어요, 됐어! 드러워서 안 하고 말아! 관둬! (가려는데)
세주 (버럭) 나는!
설 (뒤돌며 버럭) 뭐가!
세주 나는 실물이랑 화면이랑 어느 쪽이 더 낫냐고!
설 실물이나 화면이나 임팩트 쩔지! 그걸 어떻게 비교해!
하다가, 앗! 놀라는 두 사람. 민망해서 서로 시선 둘 곳을 찾아
눈이 이리저리 헤매고.
세주 (시선 피한 채로) 뭘 또 그렇게 적나라하게 칭찬을...
가만 보면 애가 중간이 없어 중간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좋아서 입 꼬리가 자꾸 올라가는데.
이때 어디선가 들리는 찰칵! 소리에 시선을 확 돌려보는 세주.
저만치 정차시켜 놓은 차 안에서 카메라로 두 사람의 사진을
찍고 있는 송기자!
세주 이런 씨....(설에게) 백 미터 몇 초야?
설 왜요?
세주 뛰어야 되니까! (설의 손 낚아채며) 얼굴 팔리기 싫으면 뛰어!
세주 설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하고. 설 얼떨결에 함께 달리며 뒤를
돌아보면, 차를 움직여 따라붙고 있는 송기자! 대충 상황파악이 되는
설. 이때 설의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앗! 해서, 되돌아가 회중시계를 주워 드는 설.
그런 설을 보는 순간 기시감이 느껴지는 세주!
# 인서트 (3부 59씬)
세주가 떨어뜨린 회중시계를 뛰어가서 주워들던 1930년대의 설.
세주 ......! (또다시 혼란스러워지는데)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3 -
설 (회중시계를 주워 들고 와서는) 뭐해요, 작가님. 뛰어요!
이번엔 설이 세주의 손을 잡아채서는 뛰기 시작하고.
달리며, 멍해지는 세주.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두 사람.
(*이하 3부 60씬과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는)
S#36 건물들 사이 골목 / 3부 60씬과 교차편집 (밤)
(현재) 세주의 손을 잡고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숨어드는 설.
(F.C) 설의 손에 이끌려 1930년대 경성의 골목을 뛰어가는 세주.
(현재) 가픈 숨을 내쉬며 골목 밖을 살펴보는 설.
(F.C) 긴장된 숨을 내쉬며 더 달아날 곳이 없나 살피는 1930년대 설.
(현재) 좁은 골목에 밀착된 채 마주보며 서게 되는 설과 세주.
(F.C) 마주보며 서있는 1930년대의 설과 세주.
(현재) 설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세주.
영문을 몰라 말간 눈으로 세주를 바라보는 설. 그 위로,
(F.C) 모자를 벗고 세주에게 입을 맞추던 1930년대의 설.
(현재) 순간, 설의 양 어깨를 잡고 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세주.
설 (눈빛에 심장이 쿵!)
세주 너....뭐야.
설 네?
세주 뭔데 자꾸 내 앞에 나타나.
설 (황당) 아니 오늘은 제가 아니라 작가님이,
세주 (OL) 니가 뭔데 자꾸 내 꿈에, 머릿속에, 소설 속에 기어들어
오냐고 대체!!
설 ......!! (심장 쿵)
세주 (혼란스러움에 눈빛 흔들리다가, 잡았던 설의 양어깨를 확 놓고
떨치듯 뒤돌아 가버리고)
설 (멍한 채로 심장만 쿵쿵) 대박...은근 인터넷 소설 많이 읽나봐....
S#37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세주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그대로 주방으로 향한다.
S#38 세주의 저택 / 주방 (밤)
냉장고 문을 열고 수분음료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는 세주.
잠시 혼란스러움을 다스리다가...생각난듯 2층 집필실 쪽을
노려보듯 탁 쳐다보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4 -
S#39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급습이라도 하듯 문을 확 열어보는 세주. 아무도 없는. 달빛만...
눈으로 집필실 안을 한 번 휘- 둘러보는 세주. 마지막으로
유진오닐 초상화를 한껏 째려봐주고는 문을 닫고 나가고 나면,
잠시 후...책상 밑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진오!
진오 (닫힌 문을 향해 혼잣말처럼) 죄송합니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여기 말곤 갈 곳이 없어서요. (재미있다는 듯이 피식 웃고)
S#40 성수청 / 설과 방진의 방 (밤)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있는 설과 방진.
설 ......(엎드린 채로 회중시계를 바라보는 위로)
# 인서트(36씬)
/세주 니가 뭔데 자꾸 내 꿈에, 머릿속에, 소설 속에 기어들어
오냐고 대체!!
설 (떠올리며 발그레....수줍...)
방진 ......(천장을 바라보며 눈 깜빡깜빡 하는 모습 위로)
# 인서트(28씬)
/진오 이름을 함부로 밝힐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그냥 ‘유’라고 불러주세요.
방진 (떠올리며 심장이 쿵쿵...)
설, 다시 찾은 회중시계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딸깍 뚜껑을
열어보면,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는 시계바늘....!
설 (!!!) 어? 돈다, 돌아.
방진 (돌아누우며, 괴로운) 나도 돌겠다, 지금....
설 어떻게 된 거지? 수리점 아저씨가 절대 못 고친다고,
순간 섬광처럼 팟! 떴다가 사라지는,
(F.C-2부 73씬) 기분 좋게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5 -
부르며 걸어오고 있는 설, 진오, 세주. (*노이즈 있는 화면으로
얼굴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설 !!! (왠지 모를 기시감, E) 뭐지? 뭐야 이게.....? (멍해지는데)
S#41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달빛 아래...팔자 좋게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진오.
세운 무릎 위에 다리 하나 걸치듯 올려놓고는 조용히 휘파람으로
스윙재즈를 부는. 월광욕을 즐기듯 그렇게...F.O
S#42 성수청 외경 (아침)
S#43 성수청 / 왕방울의 방 (아침)
설, 방진, 왕방울 함께 아침을 먹고 있다.
어젯밤 감정선 이어 각자 생각에 빠져 있는 설과 방진,
밥알만 깨작거리고만 있다.
왕방울 ......(못 마땅해서 째리고 있다가) 이것들이 근데...
(버럭) 밥상머리 앞에서 뭐하는 짓들이야, 복 달아나게!
방진 (화들짝) 엄맛, 깜짝이야.
설 ......(그럼에도 여전히 혼자 생각에 빠져있고)
왕방울 (숟가락으로 벽시계 가리키며) 몇 신지 봐 지금. 밥알 세며
꾸무럭거릴 새가 있나. 서점 알바 안 나갈 거야?
방진 짤렸어.
왕방울 허! (기막힌) 자랑이다 년아. 되도 않는 글 쓴다고 지각을
밥먹듯이 해대더니만, 잘했다. 아주 잘했어.
방진 아, 오늘부터 다른데 출근하기로 했어. 그만 좀 볶아!
설 (혼자 생각에 잠긴 채) 아줌마.
왕방울 (노여움 남아있어 얼결에 버럭) 왜!
설 (혼자 곰곰 생각에 잠긴 채) 옛날에...나 어렸을 때 말이야...
(보며) 그때 내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한다고 우리 엄마가 아줌마
찾아왔었지. 얘 혹시 무당 되는 거 아니냐면서.
왕방울 아침부터 그 얘긴 또 왜 꺼내.
설 그때 내가 뭐라고...어떤 이상한 말을 했대?
왕방울 .....(말해줄까? 보다가) 아, 몰라 옛날 일이라 기억 안나.
(밥 먹으려다가, 퍼뜩) 왜 또 뭐가 보여?
설 어? (말해볼까? 보다가) 아니야....(하는데, 핸드폰 울리고, 보면,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6 -
‘원대한’ 떠있는, 받으며) 여보세,
대한 (F, 울먹이는) 씨뇨리나~
설 (덜컹해서) 대한이 너 왜 울어?
방진 울어? (얼른 전화기 옆에 달라붙어 같이 듣는)
S#44 리까르도 주방 + 왕방울의 방 (아침)
도마 위에 세주 사인(1부 30씬에서 받은)을 올려놓고 칼로 회를
치며 통화중인 대한.
대한 (울먹) 정말 한세주랑 고립된 산장에 같이 있었어?
설 (놀라)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았어?
대한 (충격) 사실이야 그럼? 탈덕했다며. 일반인으로 돌아간다며.
연인이 웬 말이야. (세주 사인 위에 살벌하게 칼을 탁 꽂으며)
왜 하필 한세주냐고!
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는데)
방진 (그새 한세주 검색해보고 있다가, 눈 벌어지며) 대박....
(설이 앞에 핸드폰에 뜬 기사 내밀며) 이거 너 아니야?
보면, 35씬에서 찍힌 세주와 설의 사진과 함께 실린 송기자의
기사! (*별첨 자료 보내드릴게요). 방진의 핸드폰 뺏어다가
보는 설. 충격으로 두 눈이 점점 커지는 위로,
정봉 (E, 기사 읽는 소리) 얼마 전 사제 총기 연쇄살인범의 자살 사건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32세)가, 묘령의 한
여인과 한밤의 랑데부를 즐기다 본지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S#45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찻잔 놓고 앉아 태블릿 PC로 기사 읽고 있는 중인 세주.
정봉 (E) 한세주 작가의 그녀로 밝혀진 이는 모 대학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수의사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심부름 대행업에 몸담고 있는 J모씨.
세주 (사진과 기사를 보며 표정 살벌해지고)
S#46 황금곰 출판사 (낮)
정봉의 책상 주위에 모여 함께 컴퓨터에 뜬 송기자의 기사를
보고 있는 지석과 직원들.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7 -
정봉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읊는 중)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번 한세주
작가의 한남동 자택에 스토커가 침입했을 당시 함께 자택에 머물고
있었던 걸로 전해진 여성과 한작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 옆에
있었던 여성이 모두 J모씨라는 점이다.
지석 이런 개새...(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갈고)
S#47 백도하의 집 / 서재 (낮)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기사를 읽고 있는 백도하.
정봉 (E) 항간에선 J모씨가 한작가의 연인이 아니라 숨겨둔 유령작가
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추측도 나오고 상황이다.
백도하 .....(누구의 음모인지 알겠는, 심란한 한숨 내쉬는 위로)
홍소희 (E) 사진이 좀 아쉽네.
S#48 백도하의 집 / 부부침실 (낮)
화장대 콘솔 의자에 앉아 태블릿 PC로 송기자의 기사를 보며
통화 중인 홍소희.
홍소희 이건...그저 그런 파파라치 사진이잖아. 스캔들까지는 의심해
보겠지만, 유령작가까진 어림없겠어.
S#49 백도하의 집 / 부부침실 + 설렁탕집 (낮)
송기자 이제 겨우 첫 걸음인데 너무 조급하시다.
방진 (유니폼차림) 설렁탕 나왔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홍소희 (F) 집필실에 함께 있는 사진은 못 만드나?
송기자 그럼 몰카를 설치해야 된다는 말인데, (대사 남아있는)
방진 (가려다가, 몰카? 돌아보면)
송기자 (방진에게, 됐으니 가라는 손짓하며) 저택의 경비가 삼엄해서요.
홍소희 차라리...여자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면 어때.
송기자 (먹으려다가, 멈칫)
홍소희 후속기사가 필요하지 않겠어? 여자 쪽 입장도 들어봐야지.
송기자 (피식) 여자 쪽에서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폭로기사를 써라?
홍소희 어려우면, 정보원이나 취재원 정도로 매수해도 좋고.
송기자 (허, 웃는, 대단한 여자다 싶다) 시도해보죠.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은 없으니까.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8 -
S#50 백도하의 집 / 침실 (낮)
홍소희 작품비는 넉넉히 준비해두지. (전화 끊고는 화장대 거울 보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유롭게 머리 손질하고)
S#51 백도하의 집 / 거실 (낮)
백도하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침실 문 앞에서 들으며 서있는,
참담함과 수치심에 두 눈을 감아버리는)
S#52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아일랜드 위 전기포트에서 요란스레 물이 끓고.
핫초코 봉투 찢어 머그잔에 담으며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인 세주.
세주 내가 이런 일 한 두 번 겪어? 스캔들, 표절시비, 유령작가설,
(딸깍, 포트에 불이 꺼지면, 잔에 물 붓고 저으며) 데뷔 후로
쭉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루머야. 안 괜찮을 이유 없고,
놀아나고 싶지도 않아. (마시며, 표정은 서늘)
지석 (F) 그렇지! 이래야 한세주지!
S#53 황금곰 출판사 복도~사무실 (낮)
복도를 걸으며 세주와 핸드폰 통화중인 지석.
지석 이럴 때일수록 작가는 글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거 알지?
만에 하나 휴재공지가 뜨거나, 원고가 재미없어진다거나 하면,
(사무실 들어와, 정봉에게 내 자리로 오라는 손짓/정봉은 일어나
따르고) 아...한작가가 흔들렸구나...기사가 사실인가 보다....
좋아라 떠들 입이 한 둘이 아니야.
S#54 지석의 사무실 + 세주의 저택 주방 (낮)
지석 들어와 자리에 앉고, 정봉은 그 앞에 서서 대기하는.
지석 이번엔 내가 그 송개새 가만 안 둘 테니까, 넌 아무 염려 말고
원고에만 집중,
세주 원고 마감 지키고 돈 되는 글 쓰라는 말 아니야. 뭘 그렇게 사설이
늘어져. 끊어. 원고 써야 돼. (끊으며, 화면에서 아웃되고)
지석 (핸드폰 내려놓으며 정봉에게) 민변 좀 들어오라고 하고,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29 -
전설인가 고향인가 하는 그 여자 번호랑 주소 좀 알아 봐.(에서)
S#55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컴퓨터 앞에 팔짱을 끼고 앉아 한판 기 싸움을 벌이듯 빈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세주. 초조한 호흡과 함께 드디어 양 손을
자판 위에 올려놓는, ‘수현은 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썼다가 지우고, ‘휘영은 수현을 바라보며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썼다가 거칠게 지워버리고는 머리 감싸 쥐고 미쳐버리겠는데.
(F.C-1씬) 악기를 연주하듯 경쾌하게 타자기를 두드려대던 진오.
세주 ......(떠올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진열대 위에 놓인 타자기를
바라보는, E) 저걸로 작업하면...써질까 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벌떡 일어나, 타자기를 들고 책상
앞으로 오는 세주. 타자기에 종이를 끼워 넣고, 리턴 레버를
당겨놓고,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는데서,
S#56 몽타주 (낮)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는 세주, 마음에 안 드는지 두 눈 질끈
감았다 뜨고는 종이를 확 뽑아 거칠게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리고.
-미치겠는 심정으로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서있는 세주.
-다시 타자기를 두드리는 세주. 몇 글자 쳐 넣다가 또 막히는지,
양 손으로 책상을 탕! 치며 돌아버리겠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로 집필실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세주. 바닥에는 공처럼 구겨진 파지뭉치가 눈처럼 흩어져 있고.
-또다시 종이를 갈아 끼우고 있는 세주. 먹끈의 잉크로 양손은
이미 검댕이 투성이가 됐고. 다시 타자기를 두드려보지만 이내
막혀버리는. 머리를 책상에 쿵쿵 박다가, 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고는 벌떡 일어나 집필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S#57 세주의 저택 / 욕실 (낮)
세면대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얼굴을 집어넣고 있다가,
푸하--! 호흡 터지며 젖은 얼굴을 들어 거울을 바라보는 세주.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는데. 그 위로,
설 (E) 글 쓰는 거 재밌어요?
세주 아니....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0 -
설 (E)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세주 ......
설 (E)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세주 잘 써지는 작가....
S#58 세주의 저택 / 2층 거실 (낮)
제 발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가는 소의 심정이 되어 집필실로 향하던
세주. 집필실 안에서 들려오는 타자기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 멈칫,
표정이 굳고, 그대로 집필실 문을 확 열어젖히면,
S#59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파지 뭉치들로 아수라장이 된 집필실 안, 완전히 몰입된 표정으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진오!
세주 (서늘해지며) 뭐 하는 짓이야.
진오 (그제야 집중상태에서 깨어나 시선 들어보고는 놀라) !!,
또...들킨 겁니까10)?
세주 또 들킨 겁니까? 이 새끼가!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데)
진오 (얼른 피하며) 혹시 또 멱살을 잡으실 겁니까? 이러다 옷 다
찢어지겠습니다. (*이하 두 사람의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세주 대답해!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잖아!
진오 저번에 제가 쓴 원고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아주 잘게 잘게
찢어버리셨길래, 제가 다시 써보려고,
세주 누구 맘대로!
진오 제 맘대로, 아니 그러니까, 작가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제 맘이 시키는 대로,
세주 (지쳐서, 술래잡기 멈추고,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이리 와.
진오 대화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세주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멱살 내놔 그냥.
진오 멱살이 잡히면 치욕스럽고, 무엇보다 호흡이 제대로 되질 않아
원활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세주 좋아 그래. (겨우 가라앉히고, 먼저 앉으며) 앉아.
진오 (살짝 경계, 선뜻 앉지 못하고)
세주 (발 구르듯 위협) 앉으라고.
진오 (그제야 앉는)
세주 질문 하나.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10) 또 보였습니까? 또 보입니까? 여전히 보입니까?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1 -
진오 어젯밤 작가님이 귀가할 때 슬쩍 같이...
세주 어젯밤?
진오 네. 혼자 생각에 깊이 빠지셨는지 잘 모르시더라구요.
세주 (기막힌) 그럼, 어젯밤에 여기서 잤단 말이야?
진오 그게 제가 갈 곳이 없어서...
세주 살의가 느껴지지만 참는 걸로 하고. 첫날은 어떻게 들어왔어.
진오 그게....실은 제가 어둠의 세계11)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어서,
남의 집 문 따는 것쯤은 껌,
세주 (OL) 역시 살의가 느껴지지만 또 참는 걸로 하고. 누가 보냈어.
진오 갈지석 사장님이,
세주 (OL) 안 보냈다는 건 이미 들통 났고. 누가 보냈어.
진오 (망설이다가) 제가...보냈습니다12). 제가 저를 작가님한테.
세주 (서둘러 주변을 살펴 무기될만한 것을 찾아 치켜드는데)
진오 !! 진정하십시오. 그거 맞고 기절하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십니다.
세주 (후우...겨우 가라앉히고, 무기 툭 내려놓고는) 목적이 뭐야.
진오 네?
세주 나한테 이러는 이유와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진오 (고개 갸웃) 목적이....있어야 합니까?
세주 (약 올리는 것 같은) 이 자식이!
진오 필요하시면 지금 당장 생각해보겠습니다. 음....그러니까 목적이...
(떠올랐다!) 아, 친구가 되고 싶다? 아울러 여기서 함께 살고 싶다?
세주 (더 들을 것 없다는 듯이 일어나며) 나가.
진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갈 곳이 없어서,
세주 안 나가? 경찰 불러 당장?
진오 경찰을 부르면 곤란합니다.
세주 빙고. 곤란하라고 부르는 거야.
진오 곤란한 건 작가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주 뭐?
진오 경찰이 오면 제가 여기서 뭘 했는지를 물을 거고, 저는 솔직하게
작가님 대신 원고를 써드렸다, 진술할 수밖에 없고,
세주 (순간 꼭지가 팍 돌며) 이 새끼가!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진오 협박으로 들리십니까? 저는 그저 사실을,
세주 나가! (진오가 쓰고 있던 원고를 가슴에 팍 안기며) 이것도 필요
없으니까 가지고 나가! (진오를 거칠게 잡아끌며) 내 눈앞에서
당장 꺼지라고 새끼야!
11) 어둠 속에 봉인됐던 유령이니까.
12) ‘나를 한세주 작가에게 보내주세요’타자를 쳐서 이곳에 왔으므로.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2 -
S#60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앞 (낮)
진오를 방문 밖으로 끌고 나오는 세주인데,
띵동 초인종 소리. 순간, 정지되는 두 사람!
진오 열어줄지 말지 빨리 결정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갈사장이나, 강비서님이면 문을 열고 들어올 수도...
세주 ! (진오를 방문 안으로 거칠게 던져 넣으며) 꼼짝 말고 있어.
허튼 수작했다간 내 손에 죽을지 알아. (문을 쾅 닫고)
S#61 세주의 저택 / 거실 + 세주의 저택 앞 (낮)
집필실에서 내려와 인터폰 화면을 보고는 멈칫 굳는 세주.
인터폰 화면 속의 백도하의 모습! 예상치 못한 방문이고.
세주 (표정 굳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백도하 할 말이 있어 왔다.
세주 기다리세요. 금방 나가겠습니다. (현관으로 움직이려는데)
백도하 남들이 들어 좋을 거 없는 얘기다. 안에서 하자.
세주 아니오. 밖에서,
백도하 기자들이 숨어 있는 거 같은데 괜찮겠니?
세주 (멈칫, 서는, 진오가 있는 집필실 쪽을 보며 갈등하는)
S#62 세주의 저택 앞 (낮)
인터폰 앞에 기다리며 서있는 백도하.
백도하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참이냐.
잠시 있다가...지잉—열리는 문.
세주의 망설임이 느껴져 무거운 한숨 내쉬고는 들어가는 백도하.
S#63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현관 입구에 서서 들어서는 백도하를 맞이하고 있는 세주.
세주 (시선 안 마주치고)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백도하 그래.
세주 하실 말씀이...
백도하 이번엔 현관 앞에 세워둘 참이냐.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3 -
세주 ......(어쩔 수 없이) 들어오세요. (소파 쪽으로 움직이고)
백도하 (앉으며, 집 둘러보는)
세주 ......(시선 안 마주치며 맞은편에 앉는)
백도하 이 넓은 집에 고용인 하나 없이 혼자 지내는 거냐?
세주 요즘 예민증이 도져서 당분간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백도하 (안쓰러움 담아) 많이 힘드냐? 규모가 꽤 큰 프로젝트인거 같던데.
세주 하실 말씀이....
백도하 (흐흠 웃으며) 할 말만 하고 어서 사라져라. (그 말이지?)
세주 사모님 눈 피해 어렵게 떼신 발걸음일 테니까요.
백도하 아직...내 아내에 대한 원망이 깊구나.
세주 (좀 웃으며)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는 사모님에 대한
원망 없습니다. 이해하자고 들면 못 할 것도 없으니까요.
백도하 (보는)
세주 갑자기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를 데려다 키우겠다는 데 어떤
여자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그것도 남편의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아들을. 의심하고 미워할 만한 이유,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백도하 그래. 그렇게 이해해준다면 고맙구나.
세주 (OL) 제가 원망하는 사람은, (그제야 정면으로 보며) 선생님이죠.
백도하 (보고)
세주 (피하지 않고 보는)
S#64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책장 앞에 기대서서 책을 읽고 있는 진오, 읽던 책 도로 꽂아
넣으려다 멈칫, 보면, 책이 빠져나간 책장의 빈 칸 벽에 작은
손잡이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진오. 안에서 낡은 A4원고
뭉치가 나온다. 꺼내서 보면, <인연>이라는 제목과 ‘한세주’라는
이름이 타이핑되어 있다. 진오, 뭔가 이상하다. 서둘러 책장에서
손가락으로 제목을 훑으면 뭔가를 찾는다. 마침내 태민의 <인연>을
찾아낸 진오. 세주의 원고 표지와 태민의 책 표지를 나란히 놓고
보며, !!!
S#65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세주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으니까요.
백도하 ......
세주 (뭐라 한 마디라도 해주길 기다리는데)......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4 -
백도하 (화제 피하듯) 차 한 잔도 안 내줄 셈이냐?
세주 ......(원망을 담아 보다가, 외면하듯 주방으로)
백도하 ......(양손 깍지 껴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개 숙이며 착잡한데)
S#66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의자 등받이 뒤로 젖혀놓고 앉아
<인연> 초고를 읽고 있는 진오.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 장을 넘기며
몸을 더 뒤로 젖히는데 순간 균형 흐트러지며 의자와 함께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진오!
S#67 세주의 저택 / 거실 (낮)
집필실 쪽에서 들려오는 쿵! 소리에 고개를 드는 백도하.
혼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잠시 세주가 있는 주방 쪽을 봤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집필실 쪽을 바라보는데서.
S#68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바닥에 넘어져있는 진오, 아아...바닥에 부딪힌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나는데,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 헉! 놀라는 진오!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인연> 초고를 주워들고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는 원고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몸을 숨기고.
이내 방문이 열리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서는 백도하.
집필실 안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바닥에 어지럽게 뒹굴고 있는
파지뭉치들...세주의 상태가 짐작이 가는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백도하, 몸을 숙여 파지뭉치를 하나 집어 들다가 멈칫 책상 쪽을
돌아보면, 책상 밑으로 삐죽 튀어나와있는 원고(인연)의 끝자락.
어떤 느낌에 천천히 책상 쪽으로 다가가는 백도하.
책상 밑에 숨어 긴장하고 있는 진오. 다가오는 기척에 두 눈을
질끈 감는데. 기척이 멎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보는 진오.
책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백도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다!13)
백도하 !!!
진오 (난감한 표정으로 애써 미소 지으며 어색하게 목례하는데)
세주 (E) 뭐하시는 겁니까.
백도하 !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돌아보면)
세주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방문 앞에 서있는) 집필실이 작가한테 어떤
13) 백도하가 인연 원고를 깔고 앉은 진오를 발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백도하 눈에 진오가 안
보이므로, 책상 아래의 <인연> 초고를 보고 놀란 것입니다. 진오가 없는 버전으로 한 컷 추가로 찍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진오가 유령임이 밝혀졌을 때 백도하 시점으로 리플레이될 것입니다.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5 -
장소란 걸 아실만한 분이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경웁니까.
백도하 (천천히 세주 앞으로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집필실에 둬서는 안 될
물건을 두고 있구나.
세주 ! (멈칫, 설마 들킨 건가? 긴장하고)
백도하 문제를 일으킬 만한 화근은 없애는 게 좋지 않겠니?
세주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의연하려 애쓰고 있는데)
백도하 못 본 걸로 하겠다. 치우거라. (하고는 나가려다가, 멈춰 서서)
안 좋은 기사에 맘이 상했을까 염려돼서 와 봤다. 그런데...
내가 괜히 온 듯 싶구나.
나가고, 떨리는 몸을 진정하려 애쓰며 서 있다가, 백도하가 서있던
책상을 향해 걸어오는 세주. 책상 밑을 내려다보면, 숨어있는 진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는 세주.
S#69 세주의 저택 / 정원 (낮)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 나오다가, 다시 한 번 저택 쪽을
바라보는 백도하.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S#70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또다시 진오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는 세주.
세주 너 목적이 뭐야?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냐고.
진오 진정하십시오, 작가님.
세주 내 인생을 망치려고 온 거야? 그래? 그럴 생각이라면 천만에,
어림없어. 나는 쉽게 망가질 놈이 아니거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올라 왔는데, 너 따위 때문에 무너져 내가!!!
(진오를 바닥에 던지듯 멱살을 확 풀고)
진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세주 (뒤돌아 선 채 씩씩거리는 화를 삭이려 애쓰며)......
진오 작가님도 혹시....유령작가였습니까?
세주 (순간 거칠었던 호흡과 동작이 정지되는)
진오 백태민 작가의 인연을 대신 써준...유령작가였습니까?
세주 나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진오의 원고뭉치와, 트레이에 놓인
라이터를 들고 돌아서는) 나는 내 글을 남한테 뺏기면 뺏겼지,
남의 글을 뺏지는 않아.
하며 진오가 쓴 시카고 타자기 3주차 원고에 라이터 불을 붙이는
<시카고 타자기> 4부 대본
- 36 -
세주. 일렁이며 타오르는 불빛 속에 부딪히는 세주와 진오의
눈빛에서.
-<시카고 타자기> 4부 끝-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