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시카고 타자기 2회

 S#1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스토커를 향해 총을 겨누며 서있는 설!

설이 겨눈 총구 앞에 겁에 질려 양손바닥을 보이며 서있는 스토커.

 (스토커를 향해) 웃기지 마. 소설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멍청인 없어.

당신의 인생을 망친 건 바로 당신이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설의 매서운 눈빛.

사로잡힌 듯 멍...하니 설을 바라보고 있는 세주. 그 위로,

(F.C-1부 47씬) 모자가 벗겨지는 순간, 쏟아지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웃는 소년의 얼굴, 바로 설이고!

그 얼굴에 겹쳐지는 현재의 설.

그런 설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는 세주(1부 엔딩점).

이때 총을 쥔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하는 설.

불안하게 지켜보는 세주. 설의 동요를 눈치 챈 스토커가 슬슬 몸을

낮춰 거실 한쪽에 세워져 있던 퍼터를 손에 쥐려 하는 순간,

탕!! 총을 발사하는 설! 정확히 퍼터에 맞는 총알!

놀라 주저앉는 스토커! 놀라 설을 바라보는 세주!

순간 총을 쥔 설의 얼굴 위로 섬광처럼 팟! 떠오르는,

S#2 1930년대 낡은 창고 (낮)

쾅! 거의 부술 듯 문을 박차고 들어와 누군가를 향해 총을 겨누는

1930년대의 설.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차마 쏘지 못하고 눈이 붉게

충혈되는 1930년대의 설에서,

S#3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혼란스러움에 동공이 흔들리는 현재 설의 얼굴 위로

(E) 탕!!! 울리는 그날의 총성!

순간 총을 쥔 손이 심하게 떨려오기 시작하는 설.

그 틈을 노려 퍼터를 잽싸게 움켜쥐고 설을 공격하는 스토커!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려 스토커를 제압하는 설! 스토커의 팔을 꺾고,

무릎으로 등짝을 찍어 바닥에 납작 눕히고는 세주를 보면,

이 모든 과정을 충격과 혼란스러움으로 지켜보고 있는 세주.

 (카리스마) 뭐 하세요 작가님! 정신 차리고 경찰에 신고하세요!

S#4 세주의 저택 앞 (밤)

정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있고. 경광등을 밝히며 서있는

패트롤카. 경찰 두 명이 스토커를 연행해와 차에 태우면

구경나와 있던 동네 사람들 모여들며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형사1 (E)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5 세주의 저택 현관 앞 (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형사1과 뒤따라 나오는 세주와 설.

형사1 확인할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인사하고 가면)

세주 (설을 돌아보며) 이제 나랑 얘기 좀 할까?

 (안색이 창백한) 근데 지금 제가 좀 어지러워서 그러는데 안에

들어가서 하면,

세주 (OL) 사태파악이 안 돼? 난 지금 그쪽을 스토커와 공범인지 아닌지

확인한 후에, 경찰에 넘길지 말지를 결정하려는 거야. 그런 사람을

집에 들일 것 같아 내가?

 (억울한) 공범 아니에요. 저는 그냥 작가님을 도와주려고,

세주 (OL) 그러니까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아까 어떻게 들어왔어.

 (현기증 때문에 힘든) 대문이랑 현관문이 모두 열려있었어요.

아마 스토커가 침입할 때 열린 게 아닌가,

세주 (OL) 그건 경찰에 확인해보면 될 일이니까 넘어가고, 어떻게

알고 다시 왔어. 내가 위험한 줄 어떻게 알고 다시 돌아왔냐고.

 (이마에 식은 땀 흐르며) 아 그건, 개가 갑자기 짖어서 쫓아와봤더니,

세주 (미심쩍은) 개가 짖어서?

 네. 근데 제가 진짜 현기증이 나서, (하다가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세주 !! (놀라) 이봐! 정신 차려! 이봐!!

 (세주의 품안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흔들리고)

S#6 공사 터 (밤)

아무도 없는 빈 공사 터로 걸어 들어와 후미진 어딘가에 몸을

눕히는 견우. 어디선가 달빛처럼 신비로운 빛이 견우의 몸 위를

흘렀다가 사라지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듯 윤기가 흐르던

견우의 몸이 꼬질꼬질한 유기견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S#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어딘가에서 달빛처럼 신비로운 빛이 흘러들어와 타자기 위를

흘렀다가 사라지면, 띠링신비롭게 빛나는 타자기. 그 위로,

(E) 탕!!! 들려오는 총성!

S#8 세주의 저택 / 2층 손님방 (밤)

순간 헉...하는 느낌으로 눈을 뜨는 설.

잠시 거친 호흡을 내쉬다가 눈만 굴려 주변을 살펴보면 낯선 곳이고.

팔에는 링거줄이 꽂혀있는. 벌떡 일어나 앉아 제대로 둘러보는데

벽에 걸린 세주의 프로필 사진과 눈이 딱 마주치는 설.

 (충격으로 멍...해지며) 오....마이....갓.....

순간 환희와 격정에 사로잡히는 설의 얼굴 위로,

하루만 니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동방신기의 허그

마치 경건한 상투스처럼 울려 퍼지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방정맞게 울리는 핸드폰벨소리.

순간 LP판 위에 바늘이 미끄러지듯 지지지직---찌그러드는 음악.

S#9 설과 방진의 방 + 세주의 저택 손님방 (밤)

책상 앞에 노트북 켜놓고 앉아 핸드폰 통화 중인 방진.

방진 야, 너 어딘데 아직도 안 겨들어와. 오늘 나 타이핑해주기로 했잖아.

알바비가 적다 이거야?

 (작게) 미안한데 지금 길게 말할 상황이 아냐.

방진 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은밀해. (대체) 너 어디야 지금?

 (별 뜻 없이 작게) 한세주 작가님 댁 침실.

방진 (벌떡 일어나며 경악의) 뭬야? 거..거...거긴 왜!

 몰라. 정신을 잃었었거든. 암튼 끊어. (끊고)

S#10 설과 방진의 방 (밤)

방진 (끊긴 핸드폰 멍...하니 내리며, 충격과 경탄) 헐...하나를 죽도록

파니까 뭔가 되긴 되는구나. (비장한 각오) 나도 이번엔 반드시

극본 공모에 당선되고 만다.(노트북을 끌어당겨 앉고는 타이핑을

시작하는데, 자꾸 오타 나는지 호들갑스럽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이내 홱 치워버리며) 옘병! 손이 생각을 못 따라오네!

S#11 세주의 저택 / 2층 거실 (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오는 설.

아무도 없나...? 주변을 둘러보다가 계단 쪽으로 향하는데,

뒤쪽에서 끼이익---관짝문이 열리는 소리에 움찔 멈춰 서는 설.

뒤를 돌아보면, 반쯤 열려있는 세주의 집필실 문.

마치 들어오라는 듯 끼이익조금 더 열리는 문...!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집필실 쪽으로 향해가는 설.

S#12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열린 문을 통해 천천히 집필실 안으로 들어오는 설.

동경의 눈으로 집필실 안을 훑어보며 경이롭고 황홀한 표정인데.

문득 진열대 위에 놓인 타자기를 발견하고는 시선이 머무는 설.

달빛을 받아 고고히 빛나고 있는 타자기. 뭔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타자기를 향해 다가가는 설. 그 위로 또다시 섬광처럼 팟! 떠오르는,

# 플래시컷

1930년대 낡은 창고. 타자기가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어느 남자의 뒷모습.

/어떤 기시감을 느끼며 타자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설.

# 플래시컷

쾅! 거의 부술 듯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1930년대의 설! 순간 멈칫 동작이 정지되는 남자의 뒷모습.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타자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설.

# 플래시컷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차마 쏘지 못하는 설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기 시작하고. 각오한 듯 설을 향해 천천히 돌아앉기

시작하는 남자. 총을 쥔 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천천히...타자기로 손을 뻗는 설.

# 플래시컷

돌아앉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려는 찰나,

세주 (E)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설 ! (타자기에 닿으려던 손을 화들짝 떼고, 놀라서 보면)

세주 (화난 표정으로 들어와 설의 손을 잡아끌고 나가며) 나와.

(*1부에서 스토커를 제압할 때 삐끗한 왼쪽 손목에는 붕대 감겨있고)

S#13 세주의 저택 / 2층 거실 (밤)

설을 잡아끌고 나와 거실 중간에 확 부려놓는 세주.

세주 남의 집필실엔 허락도 없이 왜 자꾸 들어가.

 죄송합니다. 문이 저절로, (하다가, 안 믿을 거 같아) 아닙니다.

세주 정체가 뭐야, 대체? 뭐 엘리베이터걸이야? 왜 그쪽만 나타나면

문이 저절로 열려?

 (환해져서) 그건 믿어주시는 거예요, 이제?

세주 믿어주면, 이제 작전 짜는 노력도 없이 그냥 막 들어가도 된다는

거야? 왜, 그때 그 멍멍이랑은 갈라섰어? 설계비가 너무 적어서

함께 못 뛰어주겠대 이제?

 (다시 우울) 개는 아직 안 믿으시는구나...

세주 타자기엔 무슨 관심이야. 몰래카메라 잘 붙어있나 확인하려고?

 (팔짝 뛰듯) 무슨! 제가 언제, 무슨 수로,

세주 그쪽이 갖고 온 물건이니까 불가능하진 않지.

 (억울한) 저걸 제가 언제, (하다가, 퍼뜩) 그럼 그때 그 택배가,

세주 (OL) 됐고. 천 년 만 년 안 깨날 것처럼 죽은 척하더니 왜 내려왔어.

하는데, 설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모냥 빠지는 설. 성가신 한숨 내쉬는 세주에서.

S#14 세주의 저택 / 주방 (밤)

식탁 앞에 앉아 컵라면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고 있는 설.

수줍은 표정으로 슬쩍 맞은편을 보면, 초고가 적힌 노트를

펼쳐놓고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세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 짓는데)

세주 (자판치는 채로) 라면에만 집중해.

 (얼른 고개 숙이고 후루룩 라면 먹는)

세주 볼륨 줄이고.

 (입에 넣었던 면발을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키는)

세주 되새김질 능력 없으면 씹어 넘겨. 주치의 두 번은 못 불러줘.

 (걱정해준다! 환해져서) 네. (웃고는, 좋아서) 근데 저 혼자 먹으면

외로울까봐 같이 있어 주시는 거예요?

세주 꿈을 버려. 어디로 튀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 감시하는 거야.

 (실망) 네에....(했다가, 기대로) 그럼 제가 스토커가 아니라는 건,

세주 (OL) 기대를 버려. 아직 의혹이 다 가시진 않았어.

 (실망)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냉정하시다.

세주 말은 바로 하자고.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쪽 스스로 사지로

뛰어든 거지. 말했지만 나는 무술 유단자야. 혼자서도 제압 가능했어.

 ......(서운했다가, 다시 기대로) 그래도 저를 병원 대신 여기에 둔 건

일말의 걱정과 약간의 고마움이 작용,

세주 (OL) 밖에 기자들이 널린 상황이었어. 내일 사회면과 문화면이 내

기사로 넘쳐날 텐데 굳이 가십 면까지 탐낼 필요 있나?

 (서운) 군사분계선보다 살벌하네요. 비무장지대가 없어...

세주 (작업만)

 ......(먹는데, 의욕 상실한 젓가락질)

세주 (자판 치는 채로, 툭 던지듯) 혹시 사격 배운 적 있어?

 (먹다가, 멈칫 굳는)

세주 한두 번 잡아본 솜씨가 아니던데.

 ......

세주 (대답 없자, 보며) 배운 적 없어?

 .....(좀 웃으며) 아주 아주 오래 전에요.

이번엔 세주의 표정이 멈칫 정지되는. 그 위로,

(F.C-1부 13씬) 타자기 옆에 M1928A1 장총을 턱 내려놓으며

도전적으로 세주를 바라보던 1930년대의 설.

세주 ...(미친 생각인줄 알지만, 약간의 긴장으로) 아주아주 오래

전이라면 언제....

 고딩 때요. 국가대표 사격 선수였거든요. 고2 때 관뒀어요.

세주 고딩...때...(뭘 기대한 거지 싶어 혼자 피식 웃는)

 (기대감으로) 근데 지금 저한테 관심이 쬐끔 생긴,

세주 (OL, 다시 냉정하게 자판 치며) 희망을 버려. 남한테 별 관심 없어.

 (혼잣말로) 아니 뭘 자꾸만 버리래. 수도승 되라는 것도 아니고....

세주 왜 관뒀는데.

 네?

세주 사격 왜 관뒀냐고. 손 떨림 때문에?

 (짐짓 밝게) 탑시크릿입니다. 나름 상처라면 상처랄까요?

세주 뭐 알콜 중독이야?

 아뇨. 제 비밀을 알면 모두 떠나거든요.

세주 ......! (멈칫, 시선 들어 보면)

 (웃으며) 나중에 친해지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세주 (다시 타자 작업으로) 저런 안타까워라. 난 평생 모른 채로 죽겠네.

(확인해볼 건 다 확인해봤다) 다 먹었으면 가 이제. 부디 행복하고.

(붕대감은 손으로 타자 치다가 자꾸 오타가 나자, 쯧, 짜증내는데)

 (수작이 아닌 호의로) 제가 대신 타이핑 해드릴까요?

세주 (경계) 왜. 라면 먹고 원기 충전되니까 새로운 설계가 떠올라 막?

 그거 급한 원고 같은데 타이핑하기 힘드시잖아요, 지금.

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있거든요. 타자속도 겁나 빨라요.

평균 700타, 최고 900타. (웃으며) 라면 값 대신. 콜?

세주 ......(성가시지만, 어쩔까 갈등하는데)

S#15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세주 책상 맞은편에 작은 테이블 하나 마주보게 붙여놓았고.

그 테이블 앞에 앉아 세주의 초고 노트를 보며 신나서 타이핑 중인

설. 세주는 자기 책상에 앉아 참고 서적을 읽고 있다.

 (신들린 타자 실력으로 타이핑하며 신난) 작가님의 연재소설

초고를 제가 먼저 읽게 되다니 너무너무 흥분돼요.

세주 그런 대사 좀 하지 마. 미저리 떠올라 무서워.

 아, 맞다! 미저리에 그런 대사 나오잖아요, 왜. 내 원고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내 편집자, 대리인, 그리고 내 생명을 구한 사람뿐이다

캬하웬일. 그러고 보니 저도 작가님의 목숨을,

세주 (OL) 구한 건 나지. 타이거우즈한테 선물 받은 내 소중한 퍼터를

야무지게 부셔먹고 무책임하게 기절해버린 그쪽을 비싼 내 주치의

불러다가 내 집에서 살려냈지.

 (서운) 그건 그렇지만 저도 작가님 목숨을,

세주 혹시 입을 다물면 호흡곤란으로 죽나? 일종의 아가미야?

 하하하. 아가미 닥치라는 말로 들리는데 제가 오해한 거겠죠?

세주 이해한 거겠지.

 (얼른) 네...

입 다물고 고개 팍 숙인 채 열심히 타이핑에만 몰두하는 설.

이제 좀 조용해졌군...한숨 내쉬고는 책에 집중하는 세주.

S#16 세주의 저택 외경 (밤)

달빛...구름에 가려져 있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세주의 저택을

환하게 밝혀주는 달빛...

S#1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각자의 일에 몰입하고 있는 세주와 설.

조용한 공간 위로 설의 타이핑 소리만 들려오는데.

문득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 들었다가 설을 보게 되는 세주.

타이핑하며 혼자 키득 웃었다가, 헉...놀랐다가, 미소 지었다가,

울먹였다가...이야기에 완전 푹 빠져 있는 설.

그런 설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는 세주.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어 세주를 보는 설.

너 본 적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책으로 시선 내리는 세주.

고개 한 번 갸웃하고는 다시 타이핑 작업에 몰두하는 설.

이내 다시 이야기에 푹 빠진 표정이 되고.

그런 설을 다시 한 번 보는 세주. 피식 웃고는 이내 책에 몰입하는. 어느 순간 몰입된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배경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작업실이었던 공간이 1930년대의 낡은 창고로,

설이가 치고 있는 노트북이 타자기로 변해가면서...!

S#18 세주의 무의식 속 (1930년대 낡은 창고/ 낮)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는 1930년대의 세주와 설(소년복장).

설은 세주의 초고를 옆에 두고 타이핑을 해주고 있고,

그 앞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설을 쪼고 있는 세주.

손에는 상처를 입었는지 붕대가 감긴.

세주 (조급해 미치는) 빨리 좀 해 빨리! 속도 좀 내라고! 뭐든 금방 배우고

빠르게 익힌다며! 그렇게 쳐서 어느 세월에 완고를 내!

 (소년 말투로 퉁명) 아, 그럼 글씨를 좀 잘 쓰시든가! 원고를 이렇게

개발새발로 써놓으면 개손새손 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세주 (애타는 심정으로 양복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마감

30분 전이야. 윤전기 돌아가면 내 글은 신문에 못 실린다고!

 (치고 있던 자판을 손바닥으로 탁 치며, 성질) 아, 그러니까

누가 술 먹고 맥주병 깨다 손 다쳐오랬어요? 누가 마감 전엔

주색잡기에 힘써라 등 떠밀었냐고요! (소리치는데서)

S#19 세주의 무의식 속 (1930년대 경성 시내 거리/ 낮)

미친 듯이 자전거를 몰며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세주.

원고가 든 서류가방은 가슴에 크로스로 맸고.

도로를 향해 달려가다가 지나가던 인력거와 부딪칠 뻔하는 세주!

헉! 해서 핸들을 꺾다가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며 바닥으로 뒹구는.

골목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던 설, 그 모습 보고는 킥, 웃는데,

그 앞으로 휙서류가방이 날아온다.

 (엇! 반사적으로 가방을 받고는 세주를 보면)

세주 (넘어진 채로, 간절) 달려. 십분 후에 윤전기 돌아가. 달리라구!

 (심드렁) 제가 왜요?

세주 숙취에 시달리는 나보단 빠를 거 아니야!

 (귀 후비며 심드렁)

세주 (절규처럼) 젠장! 원고료 반 줄게!

순간 빛의 속도로 서류가방을 크로스로 매더니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달리기 시작하는 설! 그제야 안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세주인데, 그 앞으로 휙--날아오는 서류가방!

세주 (엇! 반사적으로 가방을 받고는 설을 보면)

 (저만치, 자전거 위에 탄 채로 멈춰 서서 보며) 말했잖아. 위대한 글

좀 쓰라고. 그런 삼류저질 소설이 신문에 실리는 건 지면낭비야!

세주 (폭발하는) 야!!! 류수현!!!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설.

씩씩대며 설을 바라보다가 서서히...표정이 가라앉는 세주.

세주를 돌아보며 웃는 설의 해맑은 얼굴... 눈부신 햇살...

청량한 바람...어쩐지 심장이 뛰는 세주. 그런 세주 마음 모른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설에서.

S#20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움찔하는 느낌으로 시선을 드는 세주.

역시 움찔하는 느낌으로 시선을 들다가 세주와 눈이 마주치는 설.

잠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전생을 기억한 것일까?

세주 혹시 그쪽도 방금...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그럼 작가님도?

세주 (설마...하는 혼란스러움으로) 혹시 시공간이 무너진 듯한 느낌?

 (얼른 고개 끄덕이고는) 이거...지진 맞죠?

세주 (예상한 답이 아니라, 인상 팍 쓰며) 뭐? (하는데)

집필실 등이 그네처럼 흔들리더니, 책상 위에 놓인 찻잔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벽에 걸린 액자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물건들이

동시에 요동을 친다.

설,세주 (헉!) 지진이다!

외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책상 밑으로 튀어 들어가

숨는 두 사람. 치열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책상 의자에 놓여

있던 무릎담요를 서로 머리 위에 쓰겠다고 난리난리.

세주 뭐야, 대한민국 서울에서 웬 강도 높은 지진이야.

 기상청은 예보도 안 하고 뭐하는 거야 대체?

세주 아, 붙지 말고 저쪽으로 가 쫌!

 제가 먼저 자리 잡았잖아요! 사람이 왜 이렇게 이기적이에요?

세주 설마 지금 나한테 성질낸 거야? 죽음 앞에 두려울 게 없다 이거야?

(하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인데)

S#21 세주의 저택 외경 (밤)

저택의 대문과 정원의 나무, 조형물들은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서있는데, 오직 저택의 본채만 울렁울렁 좌우로 흔들리고 있고!

S#22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여전히 책상 밑에서 투탁거리다가 멈칫 정지되는 두 사람.

가만히 느껴보면 지진이 멎은 듯 하고.

세주 ......(눈 위로 치켜뜨고 느껴보고 있다가) 멎었지?

 ......(역시 눈 위로 치켜뜨고 느껴보다가) 네. 그런 거 같아요.

순간 서로 살겠다고 밀착되어 앉아있던 두 사람, 쯧! 하며

책상 밑을 빠져나오려는데, 벽에 붙어 있던 초상화 속 유진오닐이

마치 촛불을 끄듯 입김을 훅불면, 팟! 전기가 나가며 정전이 되고.

헉! 해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담요를 뒤집어쓰는 두 사람.

세주 (밀착된 게 신경 쓰여 슬쩍 설을 보면)

 (사심 가득한 미소로 흐뭇하게 세주를 보고 있는)

세주 (흠칫) 그렇게 좀 웃지 말라고 제발. 미저리 생각나서 섬뜩하다고!

 (풀 죽어 시선 내리며) 네....

세주 (쯧, 고개 돌리고)

 (풀 죽은 채로)......

세주 ......(좀 미안해져서 다시 보면)

 (펜 라이트를 턱밑에 대고 보며 귀신놀이)

세주 (진심 화들짝 놀라서) 엄맛! 깜짝이야. (버럭) 아 제발 쫌!!!

 (풀 죽어) 네....

세주 (쯧....고개 돌리는)

어둠 속에서 밀착된 채 달리 할 말이 없는 두 사람.

한동안 어색한 침묵 흐르는데....

 달빛이다.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는 세주.

창밖에서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달빛....

어느 순간 집필실 안을 등불처럼 환하게 밝혀주고...

나란히 고개를 들고 앉아 달 바라기를 하는 두 사람.

세주 ......(문득 시선을 돌려 설을 바라보면)

 (환한 달빛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세주 ......(바라보며 표정)

 (문득 시선을 느끼고 세주를 보면)

세주 (시선 피하지 않고 보는)

 (눈빛에, 달빛에, 사로잡힌 듯 바라보는데)

세주 ......(보다가) 예전에 우리...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지?

 ......!

세주 그게...언제야?

 ......! (심장이 뛰는)

세주 혹시...아주 오래 전이야?

 (심장 뛰는 채로) 그게...그러니까...그게 언제냐면,(입을 떼려는 순간)

지석 (E, 거의 울 듯한) 세주야!!

세주 !! (헉해서 문 쪽을 보면)

S#23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지석 (울음기 가득한 얼굴로 거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세주야,

우리 세주야! 어딨니? 무사하니? (하다 뭔가에 부딪쳐 바닥에

사정없이 뒹구는) 아니 왜 불은 다 꺼놓고 있어어--

(일어나 거실 등 스위치를 켜면)

S#24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언제 정전이었냐는 듯 탁,탁,탁, 들어오는 전등.

세주 (다급함에 벌떡 일어나려다가 책상에 머리를 찧는)

 (헉!) 괜찮으세요?

세주 (찧은 머리 감싸 쥐고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들어.

저 인간한테 들키면 그 날로 일이 복잡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들키지 말고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 알았어?

 (황당) 예? 제가 왜요?

세주 암튼! 니 살 길은 니가 찾으라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넌 여기

없어야 돼. 알았어? (하고는 급하게 나가고)

 (황당해서) 아니, 저기, (목소리 낮춰) 작가님, 작가니임--

(불러보다가, 어이없고, 억울해서) 아니 멜로하다 말고 뭐 이런

허접스런 미션을 줘어어---

S#25 세주의 저택 / 2층 거실 (밤)

세주 문을 열고 나오면, 막 집필실 문을 열려던 지석과 딱 마주친다.

지석 (죽은 사람이 돌아온 듯) 세주야! 괜찮아? 다친 덴 없어?

세주 웬 호들갑이야? 보시다시피 멀쩡해.

지석 (와락 안으며) 일찍 못 와봐서 미안하다. 일본출장 갔다가 바로

턴해서 오는 길이야. (안았던 몸 떼 내고 세주 여기 저기 살피듯

보며) 괜찮은 거지? 무사한 거지?

세주 (성가셔서 지석 떼내며) 아 됐어어. 오려면 날이나 밝으면 오지

뭘 지진 속을 뚫고 와. 위험하게.

지석 지진이라니? 무슨 지진? (!!!) 얘가, 얘가, 안 괜찮네 응? 안 괜찮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뭐 그런 거 아냐? 양박사님 부를까?

S#26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집필실 안을 왔다갔다하며 빠져나갈 탈출로와 도구를 찾고 있는 설.

문득 구석에 놓여있는 등산배낭을 발견하고는 반짝해서 달려가

가방 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 위로,

세주 (E) 그 여자가 인터뷰를 왜 해야 되는데 대체!

S#27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화난 표정의 세주, 지석과 말싸움 중이다.

지석 다 봤다며! 다 들었다며! 세치 혀보다 무서운 게 있는 줄 알아?

무용담이랍시고 쓸데없는 소리 나불대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세주 그래서, 불안한 입은 돈으로 막고, 기자들이 냄새 맡기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인터뷰 내보내자고? 써준 원고대로 읽으라고 하면서?

지석 그렇게라도 해야지! 니 소설이 살인의 원인과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항간에 퍼져봐. 판매고는 물론이고, 니 이미지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야.

세주 (예민해져서) 그게 왜 내 소설 때문이야! 자존감 낮고, 열등감

많은 인간이 스스로 삽질해서 제 무덤 판 거지!

지석 알지. 아닌 거 세상 사람들도 다 알지. 근데도 사람들은 널 욕해.

왜냐? 넌 질투와 시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작가거든.

물고 뜯고 씹기 좋은 개껌이거든.

세주 (째려보며) 무슨 껌?

지석 아, 니 팬이라며? 만나서 살살 달래봐. 니가 나서기 싫으면

내가 한번 만나볼 테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만,

 (E, 멀리서 들리는 아악— 짧은 비명소리)

지석 뭔 소리야, 이게? 방금 무슨 소리 안 났어?

세주 (흠칫했지만, 짐짓 큰 소리로 꽥) 아, 소리는 무슨 소리가 나!!!

지석 (놀랐다가, 버럭) 아니 왜 소리는 지르구 난리야 난리가아아아!!!!

S#28 세주의 저택 / 정원 (밤)

창문 밖으로 등산용 로프가 길게 늘어진 채 대롱거리고 있고.

잠시 후 정원수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설의 얼굴.

 (헝클어진 머리에 나뭇잎 몇 개 붙은 몰골로, 멍....한)

덕후가 3D직종이라는 걸 온 몸으로 깨달은 하루였다...

일어나 절뚝절뚝...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설의 모습에서...F.O.

S#29 백도하의 집 외경 (다른 날 아침)

앵커 (E) 며칠 전 베스트셀러 작가 한모씨의 자택을 습격한 조씨가,

S#30 백도하의 집 / 거실 (아침)

TV 앞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며 뉴스를 보고 있는 홍소희.

아직까지는 표정 없이 덤덤한 얼굴.

앵커 (E) 폐공장 사제총기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S#31 뉴스화면 인서트

수갑과 포승줄로 포박 당한 스토커가 형사 두 명과 함께

경찰서 현관으로 나오면, 기자들, 우- 몰려들어 질문을 던지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범인을 호송차량에 탑승시키는 형사.

뿌옇게 블러 처리된 세주의 자료사진 등이 펼쳐지는 위로,

앵커 (E) 경찰에 따르면, 한씨의 소설에 심취한 조씨가 소설 속

범죄수법을 모방해 평소 자신을 괴롭힌 직장동료들에게 보복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추가범죄는 없는지 수사 중입니다.

S#32 백도하의 집 / 거실 (아침)

앵커 (E) 한편, 조씨가 한씨를 공격한 경위에 대해서는,

아직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홍소희 ......(표정 없던 얼굴에 설핏 미소가 번지는데)

태민 (현관으로 들어서는)

홍소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뭐 두구 갔니?

태민 아, 강의 자료를 두고 가서요. (하다가, 멈칫 뉴스화면에 시선)

홍소희 (리모컨으로 TV 끄며) 저 아인 분란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는

모양이야. 멀쩡한 사람을 (우아하게 커피 잔 들며) 아, 나 말이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이상자 소리 듣게 만들더니 결국 모방살인범까지

만들어내잖니. 이쯤 되면 타고 났지 싶다. (마시는)

태민 (웃으며 좋게) 살인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범죄지, 세주나 세주가 쓴

소설은 죄가 없어요.

홍소희 (흥, 코웃음) 국화빵처럼 똑같은 삼류소설만 찍어대는 게 무슨 작가.

태민 ......(어머니의 병적인 성정이 싫은, 보다가, 조용히 2층으로)

도우미 (주방에서 차 쟁반 들고 나와 서재 쪽으로 가려는데)

홍소희 서재에 들일 거죠? 이리 줘요. (하며, 일어나 쟁반 받아들고)

S#33 백도하의 집 / 서재 (아침)

컴퓨터 앞에서 세주 관련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있는 백도하.

노크소리 들리자, 인터넷 창을 닫고 책을 펼치는데,

차 쟁반 들고 들어오던 홍소희, 그런 백도하 이미 봤고.

홍소희 (찻잔 책상에 내려놓으며, 짐짓)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요.

백도하 (평상심으로) 안 좋아야 할 일이 있나?

홍소희 당신 아들이 뉴스거리가 됐으니 하는 말이에요.

백도하 (또 시작이다 싶은) 무슨 아들. 태민이 말고 아들 또 있어?

홍소희 (담담히) 세주 말하는 거잖아요.

백도하 (지겹고 싫증나는) 유전자 검사까지 했어. 뭘 더 해야 끝이 나.

홍소희 검사결과쯤이야 얼마든지 바꿔치기할 수 있는 일이죠.

백도하 당신, (격앙됐다가, 애써 누르며) 그만 좀 해 이제.

세주, 이 집 나가 연 끊고 산 지 10년이야.

홍소희 그니까요. 그래놓고 보란 듯이 한 동네에 저택 짓고 사는 저의가

뭐겠어요. 아버지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는 속내 아니겠어요?

백도하 (질리는) 소설 당신이 써?

홍소희 나 모르게 둘이 만나 부자의 정을 나누는지 알 게 뭐야.

백도하 (책 탁, 소리 나게 덮고는) 세주한테 집착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당신이 이런 식이니까, 태민이나 세라가 다들 그 모양인

거 아냐!

홍소희 (순간 서늘해지며) 무슨 말이야. 우리 애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이야? 그게 내 탓이라는 논리야?

백도하 (일어나며, 차갑게) 약 먹어.

홍소희 당신 탓은 일원 어치도 없다는 뻔뻔함이야?

백도하 (나가며) 나 말고 정신과의사 만나 얘기해. (문으로 향하고)

홍소희 (히스테리컬하게) 병원에 가두지 왜!!! (하며, 찻잔을 집어던지면,

닫힌 방문에 부딪쳐 쨍그랑 산산조각 나고)

S#34 백도하의 집 / 거실 (아침)

백도하 굳은 얼굴로 나오는데, 막 나가려던 태민과 마주치고.

백도하 (멈칫, 들었나?)

태민 (평상심으로 웃으며) 나오셨어요? 전 막 강의 나가려던 참인데.

백도하 ......(보다가, 담담히) 다녀오세요, 그럼. (주방으로 향하려는데)

태민 (OL) 아 저 세주랑 한솥밥 먹게 됐어요.

백도하 (멈칫, 예민하게 돌아보며) 무슨 소립니까 그게?

태민 황금거위 출판사에서 <인연>을 재출간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백도하 (순간 표정 굳는)

태민 그러자고 했어요. 준비 중인 소설도 그쪽에서 맡아주겠대요.

것두 하자고 했어요. 언제 홍보차 아버지랑 공동 인터뷰 하자

그러던데, 괜찮은 시간 말씀해주세요.

백도하 (말리려는 의도로, 좋게) 백작가님.

태민 (웃으며)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가고)

백도하 ......(굳은 채로 서서)

S#35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노트북 앞에 앉아 작업 중인 세주(손에 붕대는 풀었고).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는데, 멈칫 떠오르는,

(F.C-22씬) 환한 달빛 속에서 미소 짓던 설.

(F.C-19씬)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뒤돌아 세주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1930년대 설.

헉! 내가 뭔 생각을...떨쳐내듯 머리 한 번 흔들고는 다시 몇 자

적어 넣는데 맘에 안 드는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지워버리는 세주.

잘 안 풀리는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와삭와삭와삭....소리.

그 소리 과장되게 커지면(세주의 귀에만),

예민하게 정원 쪽을 탁 노려보는 세주.

S#36 세주의 저택 / 정원 (낮)

두 마리의 사슴이 나뭇잎을 와삭와삭 씹어 먹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

일각에서 그 모습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고용인들인데,

갑자기 2층 집필실 창문이 벌컥 열리며 나타나는 세주.

세주 (신경질) 저 사슴 당장 갖다버려요!

정원사 (당황) 예? 저기...사슴을 아무데나 유기하면 신고 들어올 텐데요.

세주 산에 풀어주든가, 팔아치우든가, 그건 알아서 하고. 아무튼 당장

치워요! 시끄러워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정원사 (난감함에 쩔쩔) 아니...작가님이 정원에 사슴이 뛰놀면 좋겠다고

하셔서 어렵게 구해온 놈들이고, 저기 전담 사육사까지 고용했는데...

(하고 보면)

사육사 (사슴 먹이통 들고 오다가 충격 받은 표정)

세주 사육사도 짤라요. 대체 사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싸가지 없이 창문 탕 닫고 사라지고)

정원사 (당황+난감) 아니... 쟤가 떠들면 얼마나 떠든다고...

(하며 뒤에 서있는 사육사를 보면)

사육사 (충격으로 눈물 주르륵)

S#3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겨우 다시 집필에 몰두하는 세주. 아니 애써 몰입하려는 세주.

겨우겨우 몇 문장 써넣고 있는데, 똑똑똑 다급한 노크소리.

세주 (이런 젠장, 집중력 팍 깨지는, 잔뜩 예민해진 얼굴로, 버럭)

누굽니까!! (소리치는데)

강비서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하게 들어와) 죄송합니다, 작가님.

급히 알려드려야 할 일이 있어서.

세주 (신경질적으로 안경 벗으며) 말씀하세요. 짧게.

강비서 송기자가 방금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세주 (별 관심 없는) 송기자? 먹이를 찾아 더러운 곳만 어슬렁거린다는

그 삼류잡지 기자 말입니까?

강비서 네.

세주 그래서 내용은요. 뭐 들으나 마나 한심한 소설이겠지만.

강비서 그게...작가님을 공격한 범인의 범행동기에 관한 건데...

세주 (보며) 범인이 입을 열었다는 겁니까?

강비서 아니요. 범인은 여전히 함구중인데, 익명의 제보자가 송기자한테

편지를 보내왔답니다.

세주 익명의 제보자? (골치 아픈 듯 이마 문지르며) 내용은요.

강비서 작가님이 자신의 인생을 훔쳤다고....

세주 (탁 보며) 뭘 훔쳐요?

강비서 범인의 인생을...

세주 (예민) 알아듣기 쉽게 좀 얘기해보세요!

강비서 ......(난감하게 보다가, 태블릿 PC를 들고 아예 기사를 읽는)

제보에 따르면, 범인 조씨는 지난 3년간 매일 한씨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그 내용을 한씨가 무단 도용해 소설화 했다는 말이다.

세주 ! (표정 서늘하게 식어 내리는 위로)

강비서 (E) 제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씨는 사회적, 문화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주 (이런 젠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고)

S#38 세주의 저택 / 주차장 (낮)

불같이 화난 표정으로 차 리모컨 삑 누르며 빠르게 걸어와

차에 오르는 세주. 끼이이익거칠게 차를 몰아가는 위로,

지석 (E, 버럭) 한작가는 편지하고 메일을 받은 적이 없다고, 글쎄!

S#39 황금거위 출판사 사무실 (낮)

지석과 직원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기자들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지석 메일하구 편지는 우리 쪽에서 먼저 걸러. 한세주 전담팀이 따로

있다니까? (답답한) 아,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야. 그 주소가

바로 우리 전담팀 주소라고! 한작가 메일주소, 집 주소는 극비라고!

(버럭) 윤기자! 신원불명인 제보자 말 하나에 너무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소리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세주.

순간 동작 그만 상태로 세주를 바라보는 사람들.

S#40 황금거위 출판사 / 지석 사무실 (낮)

지석과 세주 소파에 마주 앉아있다.

지석 (목이 탔는지 음료수를 단숨에 비우고는 탁 내려놓으며)

아 송기자 그 개새, 먹잇감 하나만 걸려라 걸려라 눈에 쌍라이트

켜고 다니더니만 감천했네, 감천했어.

세주 그러니까 편지가 오긴 왔던 거야?

지석 아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너한테 오는 편지가 한두 통이야?

대충 훑어봐서 미친놈 헛소리다 싶으면 바로 파쇄기 행이지?

세주 빌어먹을. 뭐 한 번 제대루 밟았군.

지석 암튼 일이 복잡하게 됐어. 모방살인이야 문학적 소양의 부재로 몰고

가면 간단한데, 범인과 너 사이에 서간이 오갔다 쪽으로 여론이

기울면, 이게 표절시비, 범죄방조 문제로 비화되기 십상이거든.

송기자가 그쪽으로 불길을 몰아가려고 열심히 부채질 할 테고.

세주 (이 모든 상황이 짜증스러운, 음료수 꿀꺽꿀꺽 마시는데)

지석 근데 그 제보자가 누구야 대체. 편지 얘기는 언론에서 한 번도

언급 안 됐던 얘기 아냐. 범인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는데,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세주 (순간 멈칫 정지되고)

지석 너랑 범인 사이에 오간 얘기를 조목조목, (하다가 멈칫) 설마....

세주 ....(일어나며) 갈게. 마감 있어. (문 쪽으로 향하는데)

지석 (뒤통수에 대고 버럭)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막자고 했잖아!

머니든, 마우스 투 마우스든, 그 여자 입부터 막아야 된다고 했잖아!

S#41 황금거위 출판사 일각 (낮)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는 세주인데.

여직원1 (E) 나는 한세주가 분명 그 편지 읽었다고 봐.

세주 (멈칫 서고, 보면)

한쪽에 테이크아웃커피 들고 서서 수다 중인 출판사 여직원들.

여직원1 갈지석이 어떤 사람이냐?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잖아.

소재거리가 된다 싶음 열심히 물어다 날랐겠지. 안 그러면 어떻게

그런 어마무시한 다작이 가능하겠어?

여직원2 한세주 다작은 유령작가 덕이라던데?

여직원3 유령작가?

여직원2 작가 뒤에 몰래 숨어 대신 써주는 작가 말야.

여직원1 어, 나도 그 얘기 들었어. 한세주 뒤에 네댓 명의 유령작가들이

숨어서 열심히 공장 돌린다고.

세주 (E) 그거 참 재밌는 얘기네요.

여직원들 ? (해서 봤다가, 세주를 발견하고는 하얗게 질리는)

세주 (여유 있는 미소로 다가오며) 유령작가라...좋은 소재 감사합니다.

(하고 가려다가 다시 돌아보며) 아, 저작권 클레임 걸려면 지금

거세요. 나중에 더티하게 굴지 마시고.

여직원들 (찔려서 시선 피하며, 커피 마시는 척) .....

세주 그럼 아무 문제없는 걸로 알고. (웃으며 돌아서는 순간 표정 서늘)

S#42 달리는 세주의 차 안 (낮)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세주.

지석 (E-27씬) 세치 혀보다 무서운 게 있는 줄 알아?

 (E-4씬) 공범 아니에요. 저는 그냥 작가님을 도와주려고,

세주 ......(배신감이 들고)

S#43 동물병원 (낮)

설, 비어있는 견우의 입원 캐리어 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있다. 한 손에는 견우를 찾는 전단지 뭉치.

 (심란) 오늘도 안 왔네..굶고 다니는 건 아니었음 좋겠는데...

수의사 (역시 심란한 표정으로 약품 정리하고 있는) 누구든 데려가서 잘

키워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제 주인 찾아간 거라면 더없이 좋고.

하는데, 출입문에 달린 방울소리가 들리고,

태민 (E) 설아~~!

 (반사적으로 돌아보며) 네! (하다가, 태민과 눈이 마주치는)

태민 ?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보는)

 ? (역시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수의사 하하하, 그러고 보니 설이가 두 마리네. 백설이 때문에 오셨죠?

잠깐 기다리세요. (하며, 입원 캐리어 쪽으로 가고)

태민 (설에게 설명하듯) 제 고양이 이름이 백설이거든요.

 아, 제 이름이 전설이거든요, 하하.

태민 하하. (재밌어서 웃는데)

수의사 (백설이 안고 오며) 보세요, 많이 좋아졌죠? (하고 안겨주면)

태민 어디보자. (받고, 번쩍 안아 들어서 눈 마주치고 보며) 자식,

잘 지냈어? 어째 너 좀 찐 거 같다? 병원밥이 입에 맞아 그러냐,

아님 털빨이냐? (웃고는) 자 이제 집에 가자. (캐리어에 넣는데)

수의사 (약봉지 건네며) 혹시 또 토하거나 하면 오세요.

태민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그럼. (설에게도 눈인사 하고, 나가고)

 (보고 있다가, 반짝해서) 방금, 백태민 작가 맞죠?

수의사 (차트 정리하며) 어. 말 안했나 내가? 우리 병원 단골이라고.

 백태민 작가도 이 동네 사는구나...(신기한 듯 유리문 밖을 살피는데)

태민 (뭔가 곤란한 상황인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차 앞에 서 있는)

 ? (보고)

S#44 동물병원 앞 (낮)

태민, 주차해놓은 차를 반쯤 가로막고 있는 불법주차 차량을

밀어보는데 안 움직이고. 난감한 표정이 되는.

 (E) 도와드릴까요?

태민 ? (돌아보고는, 웃으며) 전화번호도 없고, 핸드브레이크도 걸려있고..

도울 방법이 없겠는데요?

 (명함 내밀며) 모든 지혜를 모아 뭐든지 해내는 심부름 대행서비스

모든지혭니다. 한 번 이용해보실래요? (밝게 웃고)

태민 ? (명함 한 번 보고, 설이 한 번 보는데서)

CUT TO

스쿠터로 동물병원 근처 거리를 달리며 확성기(그래피티 아트가

그려진)를 들고 안내 멘트를 날리고 있는 설.

 동물병원 앞에 불법 정차한 흰색 승용차 차주 분을 찾습니다~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들의 신속한 치료를 위해 차를 이동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의 스쿠터가 태민의 앞을 지나가면, 재밌어서 하하하 웃는 태민.

CUT TO

운전자를 찾았는지 태민의 차를 가로막고 있던 차가 빠져나가고.

태민 (웃으며)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아, 비용은 얼마나...

 (수첩과 펜 내밀며 웃는) 백태민 작가님 사인 한 장이면 됩니다.

태민 어, 나 알아요?

 그럼요, 한세주 작가와 더불어 문단의 투톱 아이돌이신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태민 (웃으며) 이 나이에 아이돌이라니 민망하네.

(사인하며) 성함이...(하다가) 아, 전설씨였죠?

 네. 작가님의 데뷔작 <인연>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태민 ......! (사인하던 손이 멈칫한다)

 제가 좋아하는 국내도서 베스트 5에 들어가는 작품이거든요.

태민 (사인하는 채로, 평상심으로) <인연> 다음 작품들은 별로였나 보죠?

 그게....(선뜻 대답 못하고, 애매한 미소만 짓는데)

태민 (사인 건네며, 산뜻한 미소로) 거짓말 잘 못하는 성격이죠?

(하는데, 울리는 설의 핸드폰)

 아 죄송합니다. (받으며) 네, 심부름대행서비스 모든지, (하다가,

두 눈이 함지박만해지며) 한세주 작가님?

태민 (세주 이름에 멈칫, 민감하게 보는데서)

S#45 거리 (낮)

예쁘게 차려입은 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고 있다.

세주 (F, 평상심으로) 오늘 잠깐 봤으면 하는데. 어디서 볼까.

 (달리는 채로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은데서)

S#46 리까르도 주방+홀 (낮)

폭발한 것처럼 화악 치솟아 오르는 지옥불 앞에서 요리 중인 대한!

설레는(세주에게 먹일 생각에)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설을 의식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설을 먹일 생각에) 요리하고 있다.

괜히 불 안 붙여도 되는데 팬에 화이트 와인을 촥~뿌리며,

대한 퐈이야~!

 (맞장구) 판타스틱~!

대한 (좋아하자 또 부으며 허세) 퐈이야~!

 (맞장구) 스웩~!!

주방식구들 오늘 와인 너무 낭비하신다, 플랑베만 몇 번 째야 벌써’ 요리야 불꽃놀이야’ ‘저러다 다 타겠어.심란한 표정으로 보고 있고.

대한 (막 완성한 요리를 플레이팅하고 향을 맡으며) 음...스멜~

(하고는, 댄서처럼 옆으로 양손 짝짝 박수치며) 파파!

부르면, 구석에서 만화책 읽고 있다가 슥 몸을 일으키는 만해!

마치 무림고수처럼 포스 있는 모습으로 요리를 향해 다가오면,

수셰프, 절도 있는 자세로 린넨 천에 싼 핀셋 도구 세트 펼쳐 보이고,

그 중 하나를 신중히 골라드는 만해. 심혈을 기울이며 핀셋으로

파슬리 하나를 집어 요리 위에 화룡점정처럼 톡, 올리는 순간,

숨 막히게 지켜보고 있던 대한과 주방식구들,

비바! 벨리씨모! 외치며 한일월드컵보다 더 환호하는데,

만해 (이마에 맺힌 땀방울 훔치며, 뿌듯한) 어떠냐, 설아?

 (투썸즈업! 이어서 양손 손가락 하트!) 멋져요, 아저씨.

대한 (애정 넘치는) 근데 우리 씨뇨리나 오늘 어떤 손님을 모셨길래

이렇게 스페셜한 오더를 내리셨을까?

하는데, 설의 핸드폰이 울린다. 언제 저장했는지 액정화면엔

한세주 작가님’ 뜨고. 수줍은 표정으로 뒤돌아 전화 받는 설.

 (좋아서) 벌써 도착하셨어요? 어디쯤...(하며 가게 밖을 살피는데)

세주 (F, 미안함 전혀 없는 말투) 약속 장소를 변경해야겠어.

 (대한 쪽을 미안한 얼굴로 보며) 네? (황당한) 어디로 오라구요?

S#47 권투장 링 위 (혹은 옥타곤 안) (낮)

두둥! 링 위에 대치하듯 서 있는 세주와 설.

 (억지웃음으로) 데이트 취미가 좀...살벌하시네요.

세주 (서늘한) 누가 그래 데이트라고.

 그럼 설마...저랑 한판 붙자는 말씀은....

세주 창의력이란 걸 발휘해보라고 충고하지 않았나 저번에?

 없지는 않은 편인데 제가, 이건 도통...당최...뭔 뜻인지 잘...

세주 사방이 트였으니 누군가 몰래 숨어들 염려도 없고, 장소를 갑자기

바꿨으니 몰카도, 도청장치도 설치할 시간이 없었을 테고...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 표정 굳으며) 그럼 갑자기 장소를 바꾼 이유가,

세주 (OL) 니가 제보했어?

 제보라니...무슨 제보요?

세주 그날 밤, 범인과 나 사이에 오갔던 말들, 언론에 제보한 게 너냐고.

 (서운한) 아직도 절 의심하시는 거예요?

세주 대답부터 해.

 (분해서) 안 했어요!

세주 ......(보다가, 시니컬한 미소로) 그래? 넌 안 그랬단 말이지. 알았어.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적어도 개 핑계는 대지 않는군.

 (OL, 분해서 버럭) 안 믿잖아, 지금!

세주 (멈추고, 표정 없이 보며) 말 깠어, 지금?

 넌 까는데 난 왜 못 까! (화난) 왜 내가 그랬다고 생각하는데.

근거나 들어보자고, 어디!

세주 근거라는 적확한 용어를 쓰니 특별히 대답해주지. 그날 현장에서

오간 대화내용을 아는 사람은 범인과 나, 그리고 너밖에 없어.

현재 범인은 그날 일을 함구하고 있는 상태고. 그럼 그 말이

어떤 경로로 새어나갔을까? 설마 내가 내 입으로 미친놈처럼

나불거리고 다녔을까?

 (기막힌) 그래서 또 나야?

세주 합리적 의심의 근거지.

 대체 어떻게 하면 믿어줄 건데?

세주 내가 말 안 했나? (정시하며) 난 사람을 믿지 않아.

특히 그쪽처럼 천진한 얼굴 쓰면서 음흉한 짓 하는 인간들은.

 (서늘해지고)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묻는 건데 그럼!

세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적어도 면죄부에는 기록해두지.

언제 면죄될지는 내가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질려버리고)

세주 걱정 마. 이번 일로 법적인 책임을 묻진 않을 테니까. 애초에 제대로

입막음을 안 한 건 내 실수고, 틈을 보인 것도 내 실수였으니까.

그런데, (서늘한 눈빛으로) 두 번은 용서 못해. 알아들어? 분명히

경고했어. (차갑게 돌아서는데)

 (모멸감에 온 몸이 떨리다가, 버럭) 야! 한세주!

세주 (표정 확 굳어서 돌아보며) 야...한세주...?

 (울컥해서)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 대체! 팬이라는데 스토커로 몰고,

목숨을 살려줘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호의를 베풀어도 무조건

의심하고 경계하고!

세주 말했잖아. 목숨을 구한 게 아니라 그저 너의 오지랖이,

 (OL) 너라고 언제까지 잘 나갈 줄 알아? 너도 언젠간 벽에 부딪칠

날이 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올 거라고! 그때 니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을 걸?

세주 미안하지만 난, 벽에 부딪칠 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일도

만들지 않아. (하고 돌아서려는데)

그대로 세주를 엎어치기해서 링 바닥에 메다꽂는 설!

쾅! 바닥에 메쳐지는 세주!

세주 (메쳐진 채로) 뭐 하는 짓이야!

 그때 살려주는 게 아니었어. 만일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땐

그냥 죽게 내버려둘 거야. 절대 안 도와줘. (홱 돌아서 가고)

세주 저게 진짜, (일어나려다가, 허리 잡고 아야, 도로 눕고)

S#48 거리 (밤)

설,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운 기분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

귀찮은 먼지 털어내듯 팔뚝으로 눈물 대충 슥 닦아가며.

 변했어... 십년 전엔 안 그랬는데 사람이 완전 변했어...

이젠 끝이야. 잘 가라, 아름다웠던 나의 덕후시절이여.

좋은 덕질이었다....(팔뚝으로 또 눈물 슥--)

방진 (E) 설이는 덕후의 세계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해.

S#49 리까르도 홀 (밤)

간단한 요리와 맥주가 놓인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아있는 방진과 대한.

방진 설이가 니 마음을 받아주더라도, 설이의 1순위는 늘 한세주야.

설이와의 설레는 데이트 날. 설이는 너와의 약속을 펑크내고,

한세주 팬사인회에 달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할 거야.

대한 (심각하게 듣고 있고)

방진 그게 바로 빠순이 남친의 숙명이야.

대한 난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씨뇨리나의 마음에 빈방 하나 정도는

허락할 수 있어.

방진 호구냐? 그리고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그나마 그동안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 이젠....(대한 안쓰럽게 보며) 한세주의 침실까지

다녀가는 사이가 됐다구.

대한 침실.....?!!! (충격과 절망감에 어질어질해지는데)

 (E) 손님방, 침실이라고 했잖아. 자꾸 허위사실 유포할래?

두 사람 돌아보면, 설이 커다란 등산용 배낭을 매고 들어선다.

대한 (눈 휘둥그레져서) 씨뇨리나! 그 배낭은 뭐야? 어디 가?

 머리 좀 식히러 가려고. (자리에 털썩 앉으며) 나 지금 막 실연했다.

대한,방진 뭐?!! 실연?!!!

 나의 우상이 그야말로 우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10년간의 기나긴 팬심을 오늘부로 접기로 했다.

이제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맥주 벌컥벌컥 들이키고)

대한 비바!!! (환호성을 지르더니 어디론가 달려가고)

방진 야, 난 니가 한세주 작가랑 친해지면, 내 습작 대본이나 좀 봐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도대체 왜에!!! (기회 놓친 게 아까운데)

대한 (우쿨렐레를 들고 나오더니) 설 너를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준비했어! 들어봐! (우쿨렐레를 치며, 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방진 하여튼 단순해갖고...

 (짐짓 더 깔깔깔 웃는데서)

S#50 세주의 저택 / 거실 (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허리에 손 올린 채 절뚝이며 거실로 들어서던

세주, 멈칫 선다. 보면, 강비서와 형사2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주 (경계의) 누구십니까?

형사2 (경찰수첩 보여주며) 강력3반 차철수 형삽니다.

세주 (뭔가 불안한) 강력계 형사님이 저한테 무슨 용건입니까?

형사2 조상철이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세주 (눈살 찌푸리며) 조상철이라면...그 스토커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비서 (끼어들며) 거절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돌아가주세요.

형사2 (세주에게만) 조상철이 추가 범행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작가님을 만나게 해주면 사체를 은닉한 장소를 말하겠답니다.

강비서 안됩니다, 작가님. 여론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사건입니다.

굳이 호사가들 입에 먹잇감을 던져줄 필요 없습니다.

형사2 수사에 협조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강비서 (세주에게만) 자칫하면 범인과 모종의 거래나 협상을 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세주 (민감하게 탁 보며) 무슨 뜻입니까 그게. 제가 범인과 거래나

협상을 할 일이 있단 뜻입니까?

강비서 작가님. (그런 뜻이 아니잖아)

세주 모종의 거래나 협상은 뭔가 꿀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반발심) 전 못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S#51 경찰서 복도 (낮)

세주 형사2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형사2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면담 상황은 저희가 실시간으로

감시할 테니까 안전에 관해선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세주 ......

S#52 조사실 (낮)

어두침침한 백열등 전구 아래, 고개를 푹 숙인 스토커가

수갑과 포승줄로 포박된 채 조사실 탁자 앞에 앉아 있다.

조사실 문이 열리고, 형사2의 뒤를 따라 들어서는 세주.

형사2, 세주를 자리로 안내하고는 고개 끄덕여주고는 나간다.

세주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스토커의 맞은 편 의자에 앉으면)

스토커 ......(천천히 고개 들고, 미소로) 와주셨군요, 작가님.

세주 (섬뜩하지만, 애써 담담히 보는)

스토커 많이 놀라셨죠? 여동생이 기자한테 제보를 한 모양이에요.

세주 (멈칫, 보고) 여동생....?

스토커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제 딴엔 억울한 맘이 들었나봐요.

세주 ! (제보자가 설이 아니었다, 눈 질끈 감았다 뜨는데)

스토커 (미소로) 우리 관계를 알고 세상이 발칵 뒤집혔겠네요. 그렇죠?

세주 (예민하게) 우리 관계라니. 무슨 관계 말입니까?

스토커 (웃으며) 왜 그러세요. 작가님은 저한테 살인의 영감을 주셨고,

저는 작가님한테 소설의 영감을 드렸잖아요.

세주 이봐요, 난 당신한테 영감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스토커 (OL) 그런 걸, 유식한 말로 뮤즈라고 한다면서요. 작가님 소설에서

읽었어요. 작가는 누구나 작품에 영감을 주는 뮤즈를 원한다고요.

그러니까 작가님은 저의 뮤즈고, 저는 작가님의 뮤즈인 거죠.

세주 (질리는) 분명히 말해두는데, 난 당신 편지 따위 읽은 적 없고,

내 소설은 당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토커 걱정 마세요. 그 이야긴 작가님 드릴게요. 그걸 원하시잖아요.

세주 (격앙되며) 이봐요!

스토커 (상체를 내밀어 세주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작고 은밀하게)

전 첫눈에 알아봤거든요. 우리가 닮은꼴이라는 걸.

세주 (소름이 돋는) 대체 무슨 소리야, 당신!

스토커 제가 작가님에 대해 조사를 해봤거든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세주 .....!!!

S#53 조사실 옆 관찰실 (낮)

형사들, CC-TV 모니터와 함께 유리 너머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스토커 (E) 어릴 때 친척들한테 버림받으셨죠? 그게 열 살 때였나요...?

S#54 조사실 (낮)

스토커 첫 후견인이었던 친척은 부모님의 사망보험금만 챙겨들고

작가님 몰래 이민을 가 버렸고...그 후로 얼마나 많은 친척들

집을 전전하셨더라...?

세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스토커 아, 근데 백도하 작가 집에선 왜 나오셨어요?

열여섯 살 때부터 무려 5년을 계셨잖아요. 설마....

(가엾다는 듯) 또 버림받으신 거예요?

세주 (끈적끈적한 뱀이 달라붙는 느낌이다, 노려보며) 닥쳐....

스토커 (미소로) 나랑 똑같아요. 똑같이 버림받았고, 언제 또다시

버림받을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그래서 작가님만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세주 (OL) 아니, 당신은 그냥 미친 살인범에 스토커일 뿐이야.

스토커 내가 누구 때문에 살인을 했는데요? 바로 작가님 때문이에요.

세주 아니, 넌 그저 관심이 받고 싶어서 살인을 했을 뿐이야. 비루한

니 인생에 절망했고, 분풀이로 살인을 했겠지. 뮤즈? 영감?

웃기지 마. 난, (강하게) 너 따위랑은 달라.

스토커 (순식간에 서늘해지며) 나랑 다르다고....?

세주 그래, 달라. 그러니까 내가 널 이해할 거라는 망상을 버려.

스토커 (눈빛 흔들리며) 나를 배신하겠다는 거야...? 나를 이해하는

척해놓고 나랑 교감하는 척해놓고, 이제 와서 나를 부정해?

세주 (차갑게) 할 말 끝났으면, 가보겠습니다. (일어나 가려 하면)

스토커 (온몸으로 달려들 듯)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끝났어!!

니 소설 때문에, 니 글 때문에 나는 이미 죽었다고!!!

형사들 조상철!!! (급히 달려 들어와 스토커를 끌어내고)

스토커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며, 저주를 퍼붓듯) 너도 한번 당해 봐!

(끌려가며 서늘하게) 너도 어디 한 번....내 글 때문에 죽어봐.

세주 (소름을 가라앉히려는 듯 목구멍으로 마른 침을 삼킨다)

S#55 달리는 세주의 차 안 (낮)

세주 불안한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끈끈하고 서늘한 뱀이 아직도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다.

한 손으로 목을 문지르다가 문득 거치대 위에 놓인 핸드폰을 본다.

세주 ......(잠시 갈등하다가, 단축키를 누른다, 착신되면) 강비서님,

전설씨 주소 좀 알아봐주시겠습니까?

S#56 성수청 앞 (낮)

주택가로 세주의 차가 들어와 선다. 차에서 내리는 세주.

잠시 망설이다가, 모든지혜’ 발신 버튼 누르면, 어디선가 희미하게

울리는 벨소리. 근처에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왕방울 (F) 네, 모든지혭니다.

세주 (낯선 목소리에 멈칫) 전설씨 휴대폰 아닙니까? (하는데)

왕방울 (설의 휴대폰 든 채로, 성수청에서 나오며) 설이 찾아?

세주 (놀라서) 누구....십니까?

왕방울 나? (성수청 간판 가리키며) 왕방울선녀.

세주 (휴대폰 내리며, 기억나는) 아, 신이 내린 신빨. 그런데 왜 그 전화를,

왕방울 설이는 모든지혜 임시휴업하고 떠났어. 고객관리 차원에서 휴대폰만

나한테 맡긴 거지.

세주 떠나다니, 어디로 갔습니까?

왕방울 뭐, 발길 닿는 대로 가겠지. 가끔 마음이 어수선하면 종종 떠나 걔가.

세주 (허탈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왕방울 기가 몹시 불안정하네? 죽음, 광기, 망상, 불안, 공포, 원망, 집착....

주변에 온갖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어. 구설수도 있겠고.

세주 (본다)

왕방울 죽음이 자주 찾아들 팔자네. 그때마다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어. 조만간 특이한 인연 둘을 만날지도

모르겠어. 잘해. 그래야 살아. (고수처럼 사라지고)

세주 ......

S#5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세주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그러나 거침없이 써내려가던 여느 때와

달리 양손을 키보드에 올려놓은 채 정지된 상태다. 초조해지는 세주.

스토커 (E) 나랑 똑같아요. 똑같이 버림받았고, 언제 또다시 버림받을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세주 한 손을 들어 이마를 닦는데 식은땀이 흥건하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세주. 그러나 자판을 치려다가 멈칫하고,

또 치려다가 멈칫하고...그렇게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세주의

양 손가락. 그 모습 위로 마치 긴장음처럼 전화벨이 집요하게

울려댄다. 그 소리 화면을 장악하듯 점점 커지는데서,

S#58 세주의 저택 / 침실 (다음날 낮)

전화벨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사이드 테이블 위에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물 컵이 놓여있고, 침대 위에 수면안대를 하고 잠들어있는

세주. 손만 더듬어 핸드폰 집어서는 귀에 갖다 붙인다.

세주 여보세요...

지석 (F) 한작가, 지금부터 TV나 인터넷 같은 거 절대 보지 마!

세주 (안대를 확 벗고 일어나 앉으며)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지석 (F) 내 전화 말고는 전화도 받지 마! 아니, 아예 전화 꺼놔!

당분간 밖에도 나가지 말고. 알았어?

세주 (덜컹 불안해지며, 버럭) 무슨 일이냐구 대체!! (소리치는데서)

S#59 도심 전광판 (낮)

구치소로 향하던 범인의 영상 자료화면(31씬의)에,

<속보> 사제총기 살인사건 범인 구치소에서 자살

범인이 남긴 유서에 한모 작가 언급.

자막 떠있고. 길 가다 말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들. 그 위로,

앵커 (E) 속봅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사제총기 살인사건의 범인

조모씨가 어젯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S#60 세주의 거실 (낮)

세주 충격으로 멍...한 표정으로 TV뉴스 화면을 보고 있다.

기자 (E) 조씨의 방에서는 조씨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A4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으며, 작가 한씨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세주 (멍..한 채로) 말도 안 돼...이건 말도 안 돼...(직접 알아보러

가려는 듯 외투를 들고 밖으로 튀어나가는)

S#61 세주의 저택 앞 (낮)

급하게 대문을 열고 나오다 말고 그대로 정지되는 세주.

집 앞에 벌떼처럼 모여 있는 방송사 차량들과 기자들!

어, 한세주다!’ 외치는 소리에 세주를 향해 벌떼처럼 모여드는

기자들과 카메라!

기자1 범인의 자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 없습니까?

기자2 도의적 책임감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없으십니까?

기자3 자신의 인생을 훔쳤다는 범인의 말을 인정하십니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질문 속에 그저 멍....하니 서있는 세주.

스토커 (E) 너도 어디 한 번....내 글 때문에 죽어봐.

세상의 모든 소음이 웅웅웅일그러져 들리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소거되고. 여전히 충격으로 멍..한 세주의 얼굴에서 천천히...F.O

S#62 황금거위 출판사 외경 (낮)

(자막) 1개월 후

S#63 황금거위 출판사 복도 (낮)

심란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던 지석,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송기자(남, 30대)를 발견하고는 얼른 발길을 돌려 피하려는데,

송기자 (봤다) 갈사장님!

지석 (에이 씨, 얼른 표정 관리하고 뒤돌아서며 환하게) 어, 송개ㅅ...

(했다가 얼른) 송기자 웬일이야?

송기자 한세주 작가, 슬럼프 때문에 잠적했다는 설이 돌던데,

지석 아니야, 아니야, 잠적 아니고 창조적 은둔. 지금 차기작 준비 때문에

정신없거든. 집중력 흩어 질까봐 우리도 얼굴 몇 번 못 봐.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받으며) 네, 갈지석, (하다가 멈칫, 슬쩍 송기자

눈치보고는, 표정 관리) 아, 예, 예, (손짓으로 잘 가라고, 핸드폰

가리키며 통화 때문에 미안하다고, 인사하고는, 뒤돌아서는 순간

표정 예민해지며) 뭐가 어떻다고?

S#64 세주의 저택 정원 (낮)

굳은 표정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지석.

심란한 표정으로 마중 나와 있던 강비서가 다가온다.

지석 (빠르게 걷는 채로) 상태는.

강비서 아침, 점심 다 거르시고 하루 종일 침실에 계십니다.

지석 담장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고용인들 입단속 철저히 해주세요.

S#65 세주의 저택 / 침실 (낮)

지석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눈 뜬 채로 침대 위에 아무 의욕 없는 얼굴로 누워있는 세주.

지석 .....(심란함 반, 짜증 반으로 보다가) 양 박사는. 만나봤어?

세주 PTSD. 번아웃신드롬이래.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회복하면

극복될 수 있대. 너무 불안해하지 말래.

지석 일어나봐 일단.

세주 (비식 웃으며) 불안한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말라니 알콜 중독자에게

술 먹지 말라는 말과 뭐가 달라. 돌팔이.

지석 (세주를 와락 잡아 채 일으켜 세워서는 끌고 나가는)

세주 (버럭) 뭐 하는 짓이야 이게!

S#66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낮)

세주를 끌고 들어와 컴퓨터 앞에 억지로 앉히는 지석.

지석 써. 파리약 맞은 놈처럼 비실거리고 있지 말고 일단 써보라고.

(세주의 양손을 노트북 위에 올려놓아주며) 글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타자기 앞에 앉아서 피를 토하면 된다, 니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잖아.

세주 (손을 내리며, 무기력) 헤밍웨이 말을 인용했을 뿐이야.

지석 (세주 양손 다시 자판 위에 올리며) 제대로 쓰려 말고, 무조건 써라!

세주 (내리며) 그건 제임스 서버.

지석 (올리며) 쓰기 시작하면 아이디어는 반드시 떠오르게 되어있다!

세주 (성가시고 지겨운) 그만해.

지석 물을 나오게 하려면 수도꼭지를 돌려야 한다!

세주 (터지며) 그만해! 대신 써줄 거 아니면 그 입 닥치라고 새끼야!!

잠시 숨 막히는 정적.

지석 (정색하고 보며) 진짜야?

세주 뭐가?

지석 대신 써줄 사람 필요하냐고.

세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지석 벌써 한 달 째야. 너 제 정신 아냐. 뭔가 대책이 필요해.

세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대체.

지석 한 달 동안 문예지 두 군데를 펑크 냈고, 인터뷰 네 개를 취소했어.

강연 세 군데, 방송 출연 두 군데, 해외 출장 두 군데! (하다가)

좋아 그래, 그럴 수 있어. 너도 사람인데 지칠 만도 하지.

분명 지쳤을 거야. 소진 됐을 거야. 근데! 100억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데미지가 너무 커!

세주 (버럭) 아, 그놈의 100억 프로젝트!!! 그래서 형이 대신 써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지석 니 이름만 빌려줘.

세주 빌려주면?

지석 유령작가를 고용하자.

세주 !! (굳는) 뭐?

지석 ......

세주 농담이지?

지석 ......

세주 (서늘해지며) 아님 미친 거야?

지석 슬럼프를 극복할 때까지 만이야. 아무도 모르게 진행할 거야.

대필을 해줄 유령작가한테는 비밀 서약서를 받으면 돼.

세주 (서늘하게) 나가.

지석 냉정하게 사태파악을 해봤을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제 나올지도 모를 니 작품이 아니라, 상품가치가 있는

니 이름이야.

세주 나가! 당장 못 나가?!! 내가 써!! 내가 쓴다고!! 마감일까지 형 손에

원고 쥐어줄 테니까 당장 나가라고 이 새끼야!!

S#67 호텔 바 (밤)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와 위스키 언더락!’ 오더하고는

바텐더 앞에 털썩 앉는 지석.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화를 삭이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지석 어, 유작가. 잘 지냈어? 나야 그만그만하지 뭐. 하하하.

근데 요즘도 자서전 대필 작업 계속하나?

(의미심장한) 소설가 꿈은 아예 접은 거야?

S#68 세주의 저택 / 집필실 (밤)

여전히 빈 화면 그대로인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세주.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자 또 다시 엄습하는 공포와 불안.

한 글자를 썼다가 지우고...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던 세주,

성난 짐승처럼 벌떡 일어나 책상 위의 물건들을 모두 쓸어버리고는

노트북마저 바닥에 던져 액정화면을 발로 짓이겨버리는.

S#69 호텔 바 외진 자리 (밤)

자리를 옮긴 지석. 곰곰 생각에 잠겨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데,

이때 갈사장님’ 하며 지석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의 뒷모습.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뒷모습으로만)

지석 (보고는, 환한 미소로) 왔어? 앉아. 앉으라구, 유작가.

(상대가 앉으면, 은밀하고 진중한 말투로) 유작가...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돼.

S#70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새벽)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 난장판이 된 집필실 안.

바닥에 맥주 캔과 술병이 뒹굴고 있고, 소파에 앉아 잠들어있는 세주.

꿈을 꾸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그 위로, 오래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스윙재즈의 선율. 사람들의 웅성거림.

S#71 세주의 무의식 속 (1930년대 스윙재즈 바 / 밤)

1930년대 스윙재즈 바. 술과 음악에 취한 사람들의 흥겨운 소음,

담배연기, 클로슈 모자를 쓴 모던 걸들의 모습, 맥고모자를 쓴

신사들의 모습, 나팔통이 달린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1930년대의

스윙재즈...그 소음과 풍경 속에 세주, 바(bar) 앞에 칵테일을

한 잔 시켜놓고 앉아 열심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타자기 옆에는 1930년대산 담배와 성냥갑이 보인다.

진오 (E) 어이, 서휘영.

세주, 소리에 옆을 돌아보면, 한 쪽 팔은 바(bar) 위에 걸치고,

한 손엔 술잔을 들고, 스윙 댄스를 추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웃고 있는 진오(얼굴은 모자에 가려 안 보이고).

진오 (술잔을 쥔 손에서 손가락 하나를 뻗어 댄스 무리 속의 누군가를

가리키며) 저 녀석, 꽤 잘 추지 않아?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사람들 틈에 섞여 환하게 웃으며

춤추고 있는 소년(설).

세주 .....(바라보다가, 시선 거두며 짐짓 퉁명) 막춤인데?

진오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우리도 추자.

세주 (설에 대한 감정 생긴 상태, 짐짓 일 핑계) 신문사 학예부장한테

내일까지 원고 넘기겠다고 약속했어.

진오 (친근하게 한 팔로 세주 목을 조르듯 감싸며) 마감은 어기라고

있는 거랬잖아, 니가. 카르페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

세주를 잡아끌어 군무를 추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끌고 나가는 진오.

자꾸만 도망가려는 세주를 붙잡아 기어이 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고. 이때 음악이 빠른 스윙재즈로 바뀌자 환호하는 사람들.

결국 진오, 설과 함께 어울려 춤추기 시작하는 세주.

어느 순간 환하게 웃으며 신나게 춤추는 세 사람의 모습에서.

S#72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새벽)

핸드폰 벨소리에 번뜩 눈을 뜨는 세주.

세주 (핸드폰 받으며, 숙취로 얼굴을 찌푸리는) 여보세요?

지석 (F) 원고 나왔냐? (질문이 아니라, 안 나왔지? 확인하는 톤)

세주 (예민함과 까칠함) 마감 시간 아직 남았잖아!

지석 (F) 마감... 지킬 수 있겠어?

세주 (까칠) 지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지석 (한숨 쉬고는 조심스레, F) 그러지 말고 한작가야, 내가 저번에

말했던 유령작가 말이야. 적당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힘들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보내줄 수,

세주 (OL) 거의 다 됐어. 흐름 끊지 말고 끊어!

핸드폰 확 끊어 던져버리고는 시계를 보면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작업실 안을 둘러보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고.

서둘러 바닥에 패대기쳤던 노트북을 집어 들어보면 액정이 완전

박살나 있는. 패닉에 빠진 세주의 눈에 들어오는 예의 그 타자기!

저거라도 쓰자!’ 서둘러 타자기를 집어 들다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 손을 떼는 세주. 순간 섬광처럼 팟! 떠오르는,

S#73 1930년대 경성 시내 (밤)

네온사인과 까페의 불빛이 화려한 경성의 거리.(71씬의 뒷상황)

기분 좋게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는 설, 진오, 세주(차례대로). 청춘들의 환한 웃음과 객기.

S#74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새벽)

왠지 모를 기시감과 섬뜩함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마구 흔드는 세주.

세주 (E, 마음의 소리) 술 때문인가? 의사가 처방해준 신경안정제가

말썽인가? 아닌가? 언젠가 내가 구상했던 소설의 한 장면인가?

혼란스러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서둘러 타자기를

들고 와 책상 앞에 앉는 세주.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는데.....

역시나 한 글자도 쓸 수가 없는. 아편쟁이처럼 떨리는 손으로

계피막대를 더듬더듬 집어 입에 물다 말고 바닥에 패대기치는 세주.

서랍을 미친 듯이 뒤져 기어이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찾는데 없는. 신경질적으로 여기저기를 뒤져대다가 멈칫, 난장판이 된

작업실 바닥에 여봐란 듯 떨어져있는 낡은 성냥갑을 발견하는!

세주 ......! (어떤 느낌에 가만히 다가가 주워서 보면)

1930년대 풍의 캘린더걸 그림이 빛바랜 성냥갑 속에서 활짝 웃고

있고. 성냥갑을 뒤집어 보면 스윙 재즈 바 깔패디엠(carpe diem)

이라는 빛바랜 글자. 족히 7~80년쯤은 되어 보이는 성냥갑.

세주 (또다시 알 수 없는 기시감, E) 나한테 이런 골동품이 있었던가?

무시하듯 고개를 흔들고 성냥을 켜는 순간 또다시 떠오르는,

(F.C) 꿈에서 보았던 재즈 바 풍경. 타자기 옆에 놓여있던 성냥갑!

순간 담배와 성냥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는 세주.

악령이 씐 물건에서 도망치듯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리는 세주.

S#75 국도 + 세주의 차 안 (이른 아침)

눈 내리는 국도 위를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세주의 차.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세주.

목적지 따위는 없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도 모르겠는.

세주 (혼란스러운, E) 뭐야 이게? 미친 건가? 내가 미쳐가는 건가?

아니면 벌써 미친 건가? (순간 떠오르는)

(F.C)“100억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데미지가 너무 커!하던 지석.

세주 (떠올리고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E) 죽자. 작가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면 죽은 목숨과 다름없다.

(F.C) 시카고에서 성황리에 사인회를 하던 자신의 모습.

세주 (순간 분하고 억울한, E) 아니. 내가 왜 죽어야 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여기서 추락할 순 없어.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세주 (알 수 없는 화가 치미는, 한손으로 핸들을 내리치며 버럭)

젠장!!!! 세상에서 줬다가 뺏는 게 제일 나빠!!!!

순간, 불시에 차 앞으로 튀어나오는 고라니 한 마리!

놀라 핸들을 확 꺾는 세주! 저 멀리 있던 벼랑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오고! 하얗게 질리는 세주!

세주 자, 자, 잠깐, 잠깐만! 나 아직 죽을지 말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절박한 세주의 외침과 함께 벼랑 위를 나는 세주의 차!

이내 다이빙 선수처럼 유려한 자세로 눈밭으로 떨어지고!

S#76 설산 눈밭 (이른 아침)

그대로 눈밭에 거꾸로 처박히는 세주의 차!

유리창이 날아가고, 차문이 찌그러지고, 에어쿠션이 펴지고,

길게 이어지는 클랙슨 소리. 운전석에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리며

까무룩 의식을 잃어가는 세주에서.

S#77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아침)

창밖으로 아침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둠을 지워나가듯 난장판이 된 세주의 집필실을 천천히 훑어

지나가는 아침 햇살. 그 빛이 마침내 타자기에 가 멎는다.

이때 타자기를 향해 조용히 다가가는 누군가의 발!

S#78 설산 눈밭 (아침)

뽀드득 뽀드득....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희미하게 눈을 뜨는 세주.

세주의 흐릿한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의 실루엣.

방한용 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싸맨 여자 한 명이 커다란

삽자루를 쥐고 설원 위를 걸어오고 있다.

세주, 살려주세요...여기 사람이 있어요...말해보려 하지만 입만

달싹여질 뿐 소리가 나오지 않고. 어떻게든 제 의지로 탈출해보고자

몸을 움직였다가 밀려드는 극심한 고통에 두 눈을 질끈 감는데.

탕! 무언가 차창에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번뜩 뜨는 세주,

양손으로 턱! 창문을 짚은 채 차 안을 살피고 있던 여자의

대문짝만한 얼굴과 마주친다. 헉! 놀라는 세주.

S#79 세주의 저택 / 집필실 (아침)

타자기 앞에 멈춰서는 누군가의 발.

이어 책상 의자 앞에 앉는 남자의 뒷모습.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파지를 가지런히 정리해 옆에

놓더니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리는. 이어 타자기를 두드리는

남자의 얼굴, 진오다!

S#80 설산 눈밭 (아침)

양손으로 창을 짚은 채 운전석의 세주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얼굴의 반 이상을 감싸고 있던 목도리를 천천히 내리는데. 설이다!

세주 (알아보는) !!!

 (E-47씬) 만일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땐 그냥 죽게 내버려둘 거야.

절대 안 도와줘.

 (의미심장하게 씨익...웃는)

세주 (어쩐지 불안해지는데)

세주를 향해 삽을 치켜드는 설!

태양광을 받아 챙--! 살벌하게 번뜩이는 삽자루!

세주 (순간, 득음이라도 한 듯 터지는 비명) 아아아아아악----!!

끊일 줄 모르고 설산에 울려 퍼지는 세주의 비명!

설의 삽자루가 푹! 눈 위에 꽂히는 순간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세주에서.

-<시카고 타자기> 2부 끝-

.시카고타자기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