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 55
S#1 중궁전 앞 마당 난정, 계단위에서 경빈을 야릇한 미소로 보고 섰다. 경빈, 난정을 어금니를 깨물며 치켜뜨고 노려본다. 난정, 묘한 웃음을 흘리며 휙-돌아서서 중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희빈과 창빈, 난정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경빈을 본다. 경빈(E) (난정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무는 얼굴위로) 네 이년 어디 두고보자! 내 지금 당하고 있는 수모를 천배 만배로 되갚아 줄 것이야! S#2 중궁전 방 안 난정,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윤비앞에 조아리고 앉는다. 난정 마마, 존체는 평안하시옵니까? 윤비 (자애로운 미소) 네가 일구월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덕분에 내 심신이 평안하구나. 난정 황감하옵니다, 복중의 대군아기씨께오서도 대안하시온지요? 윤비 대군아기씨?.. 난정아 이러다 내 행여 공주를 생산하면 어쩌누? 난정 중전마마께오서 조광조가 밀려나고 후궁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와중에 회임을 하신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 였사오니 중전마마께오서 이번에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실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사옵니까? 윤비 (싫지 않은) 호호, 난정아, 네가 내 입맛에 맞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구나. 난정 (야릇한 미소짓다가) 하온데 마마, 소첩 중궁전에 들다가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경빈과 후궁들을 보았사옵니다. 윤비 (인상이 굳는) 그랬더냐?.. 난정 예, 경빈마마를 비롯하여 쟁쟁한 후궁들이 고개를 숙인채 죄를 청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니 중전마마의 높으신 위엄과 권위에 소첩의 머리가 저절로 수그려지옵니다. 윤비 저들 스스로가 지은 죄가 있으니 제발로 걸어와 석고대죄를 청한 것이니라! 난정 마마, 저들을 어찌 처결하실 작정이시옵니까? 윤비 (결연한) 내 저들이 두 번 다시는 감히 중궁전을 폄훼(貶毁)하거나 넘보지 못하도록 이번참에 경빈과 후궁들의 날개깃을 꺽어버릴 것이야! 난정 마마, 그리 하시면 아니되시옵니다. 윤비 (보며) 아니된다? 난정 이번 일은 마마께오서 크게 아량을 베푸어시 저들을 용서해 주심이 옳을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윤비 용서라니 당치도 않다! 이참에 저들을 꺽어버리지 않으면 두고두고 나와 복중의 용종에게 위해가 될 것이야. 난정 하오나 마마, 저들은 지금 중궁전에 죄를 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중전마마의 반듯하오신 성품에 흠집을 내어 전하와 중전마마의 사이에 이간질을 획책하고자 스스로 몸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옵니다. 윤비 뭐라, 나와 전하 사이에 이간질을 획책한다? 난정 예, 중전마마께오서 저들의 죄를 물어 손에 회초리를 드시오면 왕실과 조정에서는 마마의 너그럽지 못한 처사에 대해 잡소리가 일어날 것이옵니다. 윤비 ..잡소리?! 난정 중전마마께오서 이번에 회임하시온 것을 내세워 이제껏 중궁전을 핍박했던 후궁들에게 사사로운 보복을 가하는 것으로 비출수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윤비 허,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까?! 난정 하오나 왕실과 조정에서 잡소리가 일게되어 전하께오서 후궁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라도 드시게된다면 중궁전에 대한 전하의 총애가 주춤해 지실 것이옵니다. 윤비 ...유약하오신 전하께오서 그러실수도 있으시겠지... 난정 그렇사옵니다 마마, 저들의 석고대죄 속에 숨어있는 간교한 속내를 간과하시오면 다시금 화가 미칠수도 있음이옵니다. 깊이 헤아리셔야 하옵니다. 윤비 난정아, 경빈의 기세를 꺽어버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이대로 흘려 버리란 말이냐? 난정 예, 마마, 경빈의 기세는 모두 조정의 뒷배에서 나오는 것이옵니다. 의정부에는 좌의정이 버티고 있고, 병권을 쥔 판의금부사 화천군과 삼사의 요직에 자기들 사람을 심어놓고 조정의 언로를 장악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경빈을 섣불리 찍어내려 하시오면 오히려 마마께오서 위태로워 지실수도 있사옵니다. 윤비 허면 어찌하란 말이냐? 난정 마마, 승후관 형제분께오서 조정에 출사를 하시어 중전마마를 든든하게 받쳐줄 날이 올때까지는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그동안은 경빈의 쓸모가 많을 것이옵니다. 윤비 쓸모가 많다? 난정 예, 특히 장차 원자마마를 왕세자로 책봉시키려는 조정의 공론이 불거질 때 경빈이 가진 조정의 세가 중전마마와 대군아기씨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옵니다. 윤비 (생각하는)..음! 난정 중전마마, 장차의 일을 생각하시옵소서. 마마께오서 생산하시는 대군아기씨께오서 대통을 잇게 되시는 날이 오면 그깟 한줌도 안되는 경빈의 무리들을 내치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겠사옵니까? 윤비 난정아 내 어찌 원자를 젖히고 아직 생산치도 않은 복중의 대군을 보위에 밀어 올릴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 네가 너무 앞질러서 생각하는 듯 싶구나. 난정 마마, 차근차근 앞날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윤비 (생각하는)...음. S#3 중궁전 앞 마당 경빈과 후궁들, 기력을 상실한 듯 눈이 가물거린다. 희빈, 눈이 까무룩하며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고개를 바닥에 박는다. 경빈 희빈, 일어나세요. 희빈 (고개를 들며)..이 사람은 더는 못 버티겠습니다. 창빈 희빈, 어쩌시려고요? 희빈 (일어나며) 난 처소로 가렵니다. 경빈 희빈, 죽더라도 이 자리에서 죽을 마음을 잡수셔야 합니다! 그래야 중전마마께서 휘두르시는 철퇴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희빈 (이를 악물고 다시 주저 앉는다)... 경빈 (교태전을 노려보는)...! S#4 동 중궁전 방 안 윤비와 난정 앞에 각기 다과상이 놓여있다. 윤비 난정아, 네 신접살림 재미는 어떠하냐? 오라버니께서 널 무척이나 괴이시던데? 난정 (고개 숙이며) 부끄럽사옵니다, 마마. 윤비 난정아, 내 너에게 당부할 것이 있느니라. 난정 하명하시옵소서. 윤비 여인으로 태어나 어찌 투기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느냐만은! 난정 ... 윤비 네 투기심 때문에 오라버니께서 조강지처를 소박하거나 내치시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아니될 것이다! 난정 (굳는)...! 윤비 난정아, 나하고 약조를 할 수 있겠느냐? 난정 ... 윤비 (다짐받듯) 난정아! 난정 (미소로 조아리며) 예, 마마. 소첩 초당아씨를 평생 상전처럼 받들 것이오니 심려거두시옵소서. 윤비 (재다짐 받듯) 난정아, 내 앞에서 맹세를 할 수 있겠느냐? 난정 소첩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겠나이다. 윤비 (그제서야 인상 풀리며) 오냐, 내 너를 믿으마. (찻잔을 드는데) 난정 마마. 소첩 오늘 중전마마께 인사를 여쭈러 들었사옵니다. 윤비 (놀라 보며) 인사? 인사라니?! 네 어디를 가려 함이더냐? 난정 예, 소첩 중전마마의 대군아기씨 생산을 위한 백일불공을 드리기 위해 당분간 산사에 머물것이옵니다. 윤비 난정아, 내 복중의 태아가 아들임을 확신한다면서 네 어찌 불공을 드리려 하는게냐? 난정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하늘이 정해주신 대군아기씨이오니 더 더욱 정성을 다해 받들어야 하옵지요. 윤비 (끄덕이며) ..네 마음이 참으로 고맙구나.. 허나 당분간 너를 볼 수 없다니 섭섭하구나. 난정 소첩, 마마의 존안을 뵙지 못할지라도 소첩, 일구월심으로 부처님 앞에 마마와 대군아기씨의 무탈하오심을 빌 것이옵니다. (일어서서 큰 절을 올리며) 중전마마, 부디 존체 강녕하시옵소서. 윤비 오냐, 난정아, 너 역시 무탈하게 속히 내 곁으로 돌아와야 하느니라! 난정 예, 마마. S#5 동 중궁전 앞 마당 난정, 중궁전 계단을 내려온다. 난정, 경빈과 후궁들이 석고대죄를 드리고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난정 (안스러운 듯 보고는 꿇어앉으며) 쯧쯧..전하께오서 총애하오시는 후궁마마들께오서 이리 고초를 겪고 계시온 모습을 뵈오니 소첩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옵니다. 그러게 마마들께오서 어쩌자고 중전마마의 심기를 노엽게 하시었사옵니까? 경빈 (휙-노려보며) 네년이 감히 일품명부들을 우롱하다니?! 그 요망한 주둥이를 찢어 놓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난정 (미소) 경빈마마께오서 아직 소첩을 호통칠 기력이 남아 계시오니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경빈 (울그락 불그락) 뭬,뭬야?! 난정 소첩의 생각엔 중전마마께오서 곧 석고대죄를 풀라는 명을 내리실 것이라 생각되오니 잠시만 참으시옵소서. 경빈 (굳는)...!! 희빈 ('누군데 이런 말을?')...? 창빈 ...? 난정 (조롱하듯) 경빈마마께오서 석고대죄를 드리시는 속내를 중전마마께오서 꿰뚫어 보셨으니 이 일을 어쩌지요? 경빈 네, 네년이 정녕..?! 난정 (경빈을 무시하듯 희빈과 창빈을 보며) 소첩 두분 마마께 인사 여쭈겠사옵니다. (일어나서 희빈과 창빈에게 큰 절을 올린다) 창빈 (의아하게 보며) ..그대는 어느댁 외명부이신가? 난정 (공손하게) 예, 소첩은 중전마마의 오라비 되시는 윤승후관의 안사람 되옵지요. 희빈 (놀라)..허,허면 중전마마의 올케가 되신단 말이오? 난정 (미소) 소첩, 나중에 희빈마마와 창빈마마께 문후를 여쭈러 들겠사옵니다. 두분마마께오서 소첩을 물리치시지는 마시옵소서! 희빈 물리치다니요? 그래주시면 고맙지요. 안그렇소, 창빈? 창빈 당연한 말씀이시지요. 꼭 찾아주세요. 난정 (희빈과 창빈에게 공손 조아리며) 하오면 소첩, 두분 마마를 나중에 찾아 뵙겠사옵니다. (일어나 경빈에게 야릇한 비웃음을 보이고는 합문쪽으로 총총히 간다) 경빈 (난정쪽을 휙-돌아보며) 저, 저런 죽일년! 창빈 경빈, 그 무슨 망발이시오.. 중전마마의 올케가 되시는 분한테? 경빈 (휙-노려보며) 흥, 첩년 주제에 올케는 무슨요?! 창빈 (놀라) 처,첩년이요?! 희빈 아니, 허면 승후관의 첩실이 중궁전에 드나들이를 한단 말이오? 경빈 ... S#6 백치수 사랑채 방 안 능금, 금침위에서 널부러져 자고 있다. 능금, 뒤척이다가 졸린 눈을 뜨고는 다시 눈을 감다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는다. 능금, 주변을 둘러보면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방 안. 능금, 불현듯 자신이 속저고리 차림임을 발견하고 앞섶을 여맨다. 능금 (어젯밤 일을 생각해려는 듯 양미간을 모으며) ..대체 어떻게 된거지? S#7 동 백치수 사랑채 마당 능금, 저고리 고름을 묶으며 방밖으로 나오는데 장씨, 연못쪽에서 부드러운 몸동작 (*태극권 류의)으로 몸을 풀고 있다. 능금 (장씨쪽으로 쭈빗쭈빗 다가와 서며)..장대인 어른.. 장씨 (마무리 동작을 하며 숨을 고른다)..일어났느냐? 능금 (고개 숙인채)..저.. 장씨 (보며)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능금 ..저..말이오..어젯밤에.. 어젯밤에 말이오..? 장씨 어젯밤에 내가 너를 품에 안았는지가 궁금한게냐? 능금 (결심한 듯 고개들고 보며) 예.. 장씨 (피식 웃으며사랑채 쪽으로 걸어가는데) 능금 (장씨를 쫓으며) 어른! 말씀해 주시오. 곽서방 (장씨쪽으로 다가오며)어르신. 장씨 (곽서방 보며) 무슨 일인가? 곽서방 (글이 쓰여진 종이를 내밀며) 어느 대감께오서 뵙자고 통자 (*通刺-명함을 들여 보내는 것)를 하십니다요. 장씨 ('判義禁府事'라고 쓰여진 종이를 받아 보며)..판의금부사? 판의금부사라? 곽서방 어르신, 어찌할깝쇼? 장씨 내 의관을 정제할 동안 잠시 기다리시라 하게. 곽서방 예.(대문쪽으로 나간다) 장씨 (사랑채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능금 어른! 참말 어른하고 이년이 한베개를 벤게 맞소?!. 장씨 (돌아보며) 그거야,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냐?!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능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 박으며)...어휴, 그 놈의 술이 웬수라니까?! S#8 남소문 객주 마당 능금, 쿵쿵대며 대문안으로 들어와 툇마루에 걸터 앉는다. 물목을 정리하던 송서방과 달래가 그런 능금을 의아하게 본다. 송서방 능금아, 왜 그러는겨? 달래 (능금쪽으로 다가오며) 언니, 어제밤엔 어디서 잤소? 능금 (버럭) 몰라! 내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야!! (벌떡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아버린다) 송서방,달래 (그 모습 보며)...?! S#9 난정모 집 대문 앞 (난정을 태운) 가마가 와서 대문 앞에서 멈춘다. 난정, 가마에서 내려 가마꾼에게 옆전 몇푼을 건네주고 대문안으로 몸을 돌리는데... 윤원형 (E) (뒷편에서) 난정아! 난정 (돌아보면)...? 윤원형 (임서방과 사인교를 거느리고 급하게 오며) 난정아.. 아니지! 부인, 지금 중전마마를 알현하고 오시는 길이신가? 난정 예, 서방님. 윤원형 마침 잘 됐네. 들어가세. 내 자네와 장모에게 할 말이 있네. 난정 드시지요. 윤원형과 난정, 대문안으로 들어간다. S#10 동 난정모 방 안 윤원형, 염낭을 방바닥위에 내려놓는다. 난정과 난정모가 염낭 (*김씨가 전해준)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난정 서방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윤원형 이걸로 아담한 와가나 한 채 장만하게. 난정 와가요?.. 윤원형 그래, 자네는 나와 정식으로 혼례까지 치룬 명색이 파산부원군댁 안사람인데 언제까지나 초가살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허니 이걸로 자네와 장모가 거처할 와가라도 한 채 마련하라 이 말일세. 난정 서방님, 중전마마께오서 회임을 하신 연후에 댁 곳간에 팔도에서 올라온 하례물이 산처럼 쌓인다던데 그 재물을 덜어내어 가져오신 것이옵니까? 윤원형 그,그런 것이 아니라.. 난정 서방님께오서 저희 모녀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은 백골난망이오나 괜히 첩실한테까지 와가를 마련해 주셨다는 구설에 오르실까 걱정이옵니다. 허니 다시 넣어두시지요. 윤원형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시게. 실은 이 재물은.. 마누라가 내어준걸세. 난정 (굳는)...! 난정모 (놀라) 아씨께오서요?! 허면 본댁 아씨께오서도 나으리와 우리 난정이가 혼례를 올린 일을 알고 계시단 말씀이옵니까? 윤원형 그렇소, 장모. 허니 오늘이라도 당장 새 집을 알아보도록 하시오. 난정 허면 더 더욱 받을수가 없사옵니다! 윤원형 허어, 굳이 마다할게 뭰가? 난정 서방님! 아우님께 반드시 전해주세요. 아우님께서 소첩에게 와가를 마련해 주시려는 속내를 똑똑히 알고 있으나, 그리는 할 수 없다고요! 윤원형 속내라니? 허면 내 마누라가 자네에게 살림집을 마련해주려는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말씀인가? 난정 그리 전해주시면 아우님께서 알아들으실 것이옵니다. 윤원형 허어, 참! 뭐가 이리 복잡하누?! 아무튼 내 이 돈을 두고 갈테니 받든 되돌려 주던 자네 마음대로 하시게나! 허면 난 가보겠네. (일어선다) 난정 (일어서며) 서방님! 윤원형 어험! (헛기침을 하며 방밖으로 나가버린다) 난정 (염낭을 들고 쫓아나간다) 서방님! 난정모 (따라 일어서서 뒤따라 나간다) S#11 난정모집 대문 앞 길 윤원형, 대문 밖으로 서둘러 나온다. 윤원형 (임서방에게) 가세나. 윤원형, 도망치듯 임서방과 사인교를 거느리고 간다. 난정과 난정모, 뒤따라 대문밖으로 나와 사인교를 거느리고 걸어가는 윤원형의 뒷모습을 보고섰다. 난정 (염낭을 굳은 표정으로 보는)...! 난정모 본댁 아씨께오서 부처님 마음을 지니신 분 같으니 이 에미는 한시름이 놓이는구나. 난정 (휙-보며) 어머니! 안방마님에게 그렇게 당하시고도 아직도 모르세요?! 난정모 (보며)..뭐라? 난정 저는 어머니처럼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거에요! (휙-돌아서서 대문안으로 들어간다) 난정모 (충격)..!! S#12 백치수 사랑채 마당 심정, 곽서방의 인도를 따라 사랑채쪽으로 온다. 심정 (E) (불편한 얼굴위로) 허어, 감히 장사치 따위가 당상관인 나를 한식경씩 기다리게 하다니?! 이런 무엄한 놈 같으니라고! 곽서방 (방문쪽에다) 어르신, 판의금부사대감을 뫼셔왔습니다요. 장씨(E) 어서 뫼시게! 곽서방 예. (심정에게) 드시지요. 심정 (못마땅한 신음) 으음! (방안으로 들어간다) S#13 동 백치수 사랑채 방 안 심정, 방안으로 들어오는데 장씨, 명나라 사대부 복색을 하고 맞이한다. 심정, 장씨의 복장에 흠짓 놀라며 한풀 꺽이는 표정이다. 장씨 이사람이 귀하신 대감을 한식경씩이나 기다리게 해서 송구하옵니다. 예의를 갖추려고 하였던 것이니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지요. 심정 아,아니외다. 그럴수도 있지요. 장씨 (자리 권하며) 내려 앉으시지요. 심정 그럽시다. (보료위에 앉으며) 내 장대인을 가까이서 대면하고 보니 옥골선풍이란 넉자가 장대인을 두고 이르는 말이 틀림이 없구려. 장씨 (앉으며) 허허, 과찬이시옵니다. 하온데 대감께오서 이사람같이 하찮은 장사꾼을 어인 연유로 찾아오셨는지요? 심정 하찮다니 당치도 않소! 장대인이 대국의 조정에 깊숙하게 줄을 대고 있다는 것은 이사람 이미 들어 알고 있소이다. 장씨 (미소)..그러셨던가요? 심정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우리 좌의정대감께서 대국 조정에 계신 분들과 교유를 맺었으면 하는데 장대인이 그 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하오. 장씨 다리역할이라 하셨습니까? 심정 (끄덕이며) 그리만 해준다면 장대인도 수중에 섭섭지 않을 만큼 재물을 쥘 수 있을 것이외다. 어떻소? 장씨 장사치의 손에 재물을 쥐어 주신다는데 이사람이 마다할 까닭이 없지요. 심정 허면 좌의정대감을 만나보십시다. 장씨 그전에 조선의 왕실에 계신분께 인사부터 드리는게 예의일 듯 싶습니다. 심정 왕실에 계신분이라니? 장씨 이 사람이 대국에 있을 때 듣기로는 조선의 실권은 반정으로 지금의 주상전하를 옹립하신 박원종대감의 수양딸 후궁마마께서 틀어쥐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그분을 알현한 연후에 좌의정대감을 찾아뵙는게 순서일 듯 싶습니다. 심정 음! S#14 작열하는 태양(INSERT) S#15 중궁전 앞 마당 경빈과 후궁들의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후궁 처소의 상궁나인들이 멀찍이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섰다. 향이, 화채대접을 들고 중궁전쪽의 눈치를 보며 잽싸게 희빈쪽으로 온다. 향이 희빈마마, 화채이옵니다. 드시고 기운을 차리시옵소서. 희빈 (반가운) 오, 그래? 이리 내거라! (화채 대접을 받아드는데) 경빈, 휙-보며 희빈이 손에 든 화채 대접을 탁 쳐서 바닥에 내팽겨친다. 희빈 (어이없게 보며) 아,아니..경빈?! 대체 이 무슨 짓거리요? 경빈 (독기서린) 희빈! 중전마마께 무슨 꼬투리를 잡히고 싶어 이러는게요?! 희빈 꼬투리라니요? 경빈 희빈 하나 때문에 여기있는 모두가 화를 당해도 좋단말이오? 희빈 내 지금 남의 사정 생각할 처지가 못되오! 나중에 화를 당할지언정 지금 당장 화채 한 대접이 더 중하오. 향아, 어서 다시 가져오너라. 창빈 희빈, 조금만 더 참으세요. 설마 중전마마께오서 우릴 이대로 내버려 두시진 않으실 겝니다. 금이 (물대접을 들고 쪼르르 다가오며) 경빈마마, 중전마마께오서 대비전에 발걸음을 하셨다하옵니다. 이 참에 소금물로 해갈을 좀 하시옵소서. 경빈 중전께서 대비전에? (어딘가를 휙- 돌아본다) S#16 대비전 외경 자순대비(E) 중전, 이만 석고대죄를 거두라 명하세요. S#17 동 대비전 방 안 윤비, 자순대비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자순대비 이만했으면 후궁들도 자신들의 죄를 크게 뉘우쳤을것이요. 더 끌면 오히려 모양새가 좋지 못합니다. 윤비 마마, 일전에 신첩과 약조를 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자순대비 약조라니요? 무슨..? 윤비 신첩이 재진맥을 받은 연후에 거짓회임의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특한 무리들을 발본색원하여 철퇴를 가할 때 눈을 감아주시기로 한 약조말이옵니다. 자순대비 중전..지나간 불미스러운 일들은 모두 덮어두십시다. 중전께서 모질게 후궁들의 치죄하신다면 혹여라도 복중 태아의 태교에도 좋지 못할 것입니다. 윤비 마마, 하오나.. 자순대비 중전, 주상께서도 중전이 회임을 하신 연후에 지난날의 허물을 모두 묻어두시지 않으셨습니까? 허니 중전께서도 이 늙은이 말에 따라주세요. 윤비 대비마마, 저들에게 아량을 베풀었다가 차후 다시 유언비어등이 퍼져 신첩의 복중 용종에게 위해가 되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어찌 하시렵니까? 자순대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이 늙은이가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오. 허니 중전께서 용단을 내려주시구려. 윤비 ..! 자순대비 중전! 윤비 (보며) 대비마마, 하오면 차후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을시엔 신첩에게 저들의 생사여탈권을 주시겠사옵니까? 자순대비 생사여탈권이요? 윤비 예, 대비마마께오서 약조를 해주시온다면 신첩, 당장이라도 후궁들의 석고대죄를 그치라 이를것이옵니다. 자순대비 ... 윤비 마마, 신첩에게 약조해 주시겠사옵니까? 자순대비 ...음! S#18 중궁전 앞 마당 윤비, 엄상궁과 오상궁을 거느리고 옆문을 통해 교태전쪽으로 걸어온다. 윤비, 멈춰서서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후궁들의 면면을 둘러본다. 윤비 (그 중 경빈에게 시선이 머무는)...! 경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고 윤비를 보는)..! 윤비 (가증스럽다는 듯 보는)... 경빈 (윤비의 시선을 맞쏘아 보는)... 윤비, 미소를 흘리며 돌아서서 중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엄상궁, 오상궁 및 상궁나인들이 그 뒤를 쫓는다. 경빈 ...! S#19 동 중궁전 방안 윤비, 방안으로 들어와 보료위에 앉는다. 윤비 엄상궁. 엄상궁 예, 마마. 윤비 그만 석고대죄를 거두라 이르게. 엄상궁 예에? 마마, 유언비언의 진원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사온데 석고대죄를 거두게 하시옵니까? 윤비 (끄덕끄덕) 그래, 내 그리 할 것이야. 엄상궁 ... S#20 동 중궁전 앞 마당 경빈과 후궁들이 간신히 버티고 앉아있는데... 오상궁, 중궁전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온다. 오상궁 중전마마께오서 석고대죄를 그치라 명하셨사옵니다. 경빈 ...! 희빈 (희색이 돌며) 그 말이 참말 이렷다? 오상궁 어서 처소로 돌아들 가시지요. 창빈 (뭉클하여 글썽이며) 중전마마, 어리석은 신첩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오니 황감 또 황감하옵니다. (교태전을 향해 깊숙하게 조아린다) 후궁들 (기진맥진한 가운데 어떤 성취감의 기쁨의 표정들)... 멀찍이서 지켜보던 후궁처소 상궁나인들이 각자의 상전쪽으로 급히 온다. 희빈 (향이 보며) 향아, 무얼하느냐?! 어서 부액하거라. 내 처소로 돌아가 목욕부터 할 것이야. (향이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거리며 간다) 창빈 (처소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서 간다) 나인들이 상전의 자리를 걷어 따라간다. 경빈, 후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가운데 혼자 몸을 꼿꼿하게 세운채 앉아있다. 경빈 (패배감에 쓰라린)...! 금이 (경빈 옆으로 다가서며 조심스럽게) 마마,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경빈 (E) 중전과 난정이가 내 속내를 꿰뚫어보고 있었음이야.. (허벅지를 바짝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내 속내를.. 금이 ..마마.. 경빈 오냐, 가자.. (일어서다가 다리가 마비된 듯 비틀 거린다) 금이 (재빨리 경빈을 부축하는)..마마, 이년에게 기대시옵소서. 경빈, 금이에게 기대 절뚝거리며 걸어가는데 엄상궁, 중궁전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온다. 엄상궁 경빈마마. 경빈 (휙-쏘아보는) 무슨 일이냐? 엄상궁 중전마마께오서 중궁전으로 들라 명하셨사옵니다. 경빈 ...! S#21 중궁전 복도 경빈, 혼자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엄상궁의 뒤를 따라 방문앞에 선다. 엄상궁, 경빈을 힐끔보면 경빈, 흐뜨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곧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경빈 어서 여쭈게! 엄상궁 (방문쪽에다) 중전마마, 경빈 들었사옵니다. 윤비(E) 들이거라. 엄상궁 예. (경빈을 보며) 드시지요. 경빈 (고통을 참으며 방안으로 들어간다) S#22 동 중궁전 방 안 윤비, 찻상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경빈, 다리를 끌며 들어와 윤비 앞에 선다. 경빈 중전마마, 찾아계시옵니까? 윤비 (부드럽다)..앉으시게. 경빈 (찌푸리며 자리에 앉는다)..신첩, 예를 갖추지도 못하고 중궁전에 들어 황공하옵니다. 윤비 경빈, 나는 경빈이 옷이나 머리치장같은 겉치레보다는 마음속으로 중궁전을 존경하는 예를 갖췄으면 하네. 미우나 고우나 내가 자네의 웃전이란 것은 변함이 없을것이니 말일세. 경빈 ...! 윤비 (손수 차를 따라주며) 드시게. 뙤약볕에 이틀이나 꼿꼿하게 앉아 있었으니 한강물을 단숨에 들이킬 듯이 갈증이 심했을 것이야. 경빈 신첩을 이리도 생각해 주시는 중전마마의 하해와 같으신 은덕에 신첩 눈물이 솟구칠 듯 감격스럽사옵니다. 윤비 (미소로 보다가) 경빈, 내 우리 두사람만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묻고자 하네. 경빈 하문하시옵소서. 윤비 경빈은 내가 거짓회임을 꾸몄다고 확신하여 내게다 불경한 혓바닥을 놀리고 폐서인이 될것이라는 위협을 가한 일을 정녕 기억하시지 못하는가? 경빈 신첩, 궐안에 들어온 십수년이옵니다. 그간의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기억하옵니다. 하오나 신첩, 중전마마께서 거짓회임을 하셨다고 불경한 짓거리를 한 적은 결코 없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윤비 됐네, 그 얘긴 그만 접어 두기로 하세. 경빈 (보며) 하온데 마마, 어인 연유로 신첩들의 석고대죄를 풀어주신 것이옵니까? 윤비 (미소)..궁금하신가? 경빈 예. 마마. 윤비 난정이 말로는 자네가 쓸모가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구먼. 경빈 예에? 쓸모라니요? 윤비 길가에 구르는 개똥도 약에 쓰임새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난정이가 자넬 그렇게 말하더구만! 경빈 (모욕감에)...! 윤비 내 경빈을 따로이 불러 들인 까닭은 자네에게 충성맹세을 받고자 함일세. 경빈 (E) 충성맹세?! 윤비 경빈, 중궁전에 대해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는가? 경빈 중전마마, 내명부된 자가 웃전이신 중전마마께 충성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옵니다. 신 첩은 이제껏 다른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사옵니다. 윤비 허면 이 자리에서 내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나? 경빈 신첩, 목숨을 다바쳐 중전마마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윤비 (싸늘한 미소로 보며) 목숨을 다 바치겠다? 경빈 예, 마마! 윤비 그래?.. (연상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낸다) 윤비, 종이를 펼치면 하얀 가루약이다. 경빈, 의아하게 가루약을 보다가 경악하는 얼굴위로 (INTER CUT) (53회 S#45에서 경빈이 가루약을 펼쳐 보던 장면) 경빈 (하얗게 질리는)...!! 윤비 경빈,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는가? 경빈 (표정 수습이 잘 안되는) ...시,신첩은 모,모,모르옵니다. 윤비 이번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할텐가?! 경빈 마,마마... 시,신첩은 정녕 기억이 나지 않사옵니다. 윤비 (경빈을 노려보다가 경빈의 찻잔에다 가루약을 주르르 쏟는다) 경빈 ...?! 윤비 마시게! 경빈 (당황하여) 마,마마..시,신첩은.. 윤비 마시라 했느니! 경빈 (겁에 질려)..마마, 어찌..?! 윤비 어허, 네 목숨을 다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가 고작 이따위 밖에는 아니된단 말이냐?! 경빈 ..마,마마..! 윤비 내 상궁들을 불러 네 입을 벌리고 차를 쏟아부어야 말을 듣겠느냐?! 경빈 ...! 윤비 (노려보며) 어서 마시래두! 경빈 (윤비의 기세에 숨을 헐떡이며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집는다)... 윤비 (싸늘하게 쏘아보며 채근하는) 어서! 경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입술에 대는).. 윤비 (엄하게 보는)... 경빈 (기울였던 찻잔을 찻상위에 내려놓으며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마마, 차라리 신첩을 죽여주시옵소서! 흐흑.. (울음을 터뜨린다) 윤비 (보다가) ..당장 처소로 물러가거라. 경빈 흐흑.. 윤비 물러가라 했다!! 경빈 (눈물, 콧물 가득한 얼굴로 일어나 절뚝거리며 방밖으로 나간다) 윤비 (약종이를 구겨버리며)...! S#23 중궁전 마당 경빈, 처참한 몰골로 급하게 중궁전 밖으로 나온다. 금이 (다가서며) 마마, 무슨일이시옵니까? 경빈 (다급하게) 금아, 중궁전 상궁들이 내 처소의 방뒤짐을 한적이 있느냐? 금이 예에? 그런일은 없었는뎁쇼? 경빈 (중궁전을 돌아보며 생각하다가) ..어서 가자! 경빈, 몸을 돌려 다급하게 어디론가 가면 금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뒤를 쫓는다. S#24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황급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와 연상서랍을 뒤진다. 경빈, 뒤지다가 서랍에서 약봉지를 꺼내 종이를 펼친다. 조금전 중궁전에서 본 하얀가루약이 나타난다. 경빈 (낭패한)..!! 금이 (뒤따라 들어와) 마마, 대체 무슨 일이시옵니까?! 경빈 속았어!! 중전에게 속았음이야! 중전에게! 속았어!! 경빈, 신경질적으로 가루약봉지를 구겨 확 내팽겨져 버린다. 금이 ...?! S#25 중궁전 방 안 윤비, 앞에 엄상궁이 찻상을 정리하고 있다. 엄상궁 하오시면 중전마마께오서 당약가루로 경빈의 속내를 떠보신 것이옵니까? 윤비 (끄덕이며)..앞으로 두 번다시는 경빈이 약 따위로 내 복중태아에게 위해를 끼치는 짓거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야! S#26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이를 가는)...중전..중전..중전!! 내 기필코 네년을 만신창이로 만들것이야! S#27 갖바치 마당 갖바치, 고행하듯 땡볕아래서 갖신에 바늘땀을 넣고 있다. 윗통을 벗은 방백인, 부엌에서 물대접을 받쳐들고 나온다. 방백인 (물대접을 건네주며) 형님, 드슈! 미숫가루 좀 탓수. 갖바치 (물대접 받아들고 하늘을 슬쩍 보며)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려나? 햇무리가 서렸구먼! 방백인 뭐요? 갖바치 저 하늘 좀 보게. 방백인 (하늘을 올려다 보면 파란 하늘에 햇무리는 없다) 어디요? 어디? (햇무리를 찾아 빙글빙글 돌며) 어허, 내눈엔 안보이네? 당골네 (대문안으로 들어오다가 방백인을 보고는) 지금 뭐하는게요? 방백인 하늘에 햇무리를 찾네. 당골네 햇무리? (하늘을 보다가 방백인과 함께 햇무리를 찾아 돈다) 어디요? 길상 (대문안으로 들어오며 조아리는) 어르신. 갖바치 오, 자네 왔는가? 윤승후관 나으리는 어쩌고? 길상 나으리께오서 당분간 두문불출 하신다길래 잠시 짬을 냈사옵니다. 갖바치 그래? 그랬구먼... 허면 술이나 한잔 하려는가? 길상 술로 이 답답한 가슴이 풀린다면 세상천지의 술이 바닥나도록 마셔버렸을겝니다! 갖바치 음! 방백인 (돌아보며) 자네 관상엔 외로울 고(孤)가 (손가락내밀며) 세 개가 꼈어. 초운엔 부모가 없고 지금은 마누라운이 없으니 말년엔 자식도 없이 외로울 팔자야. 길상 ...! 갖바치 어허, 그 입 다물게! 방백인 자네 차라리 당추형님 암자에 들어가 머리를 깍게. 그렇지 않으면 평생 고로울 인생이야. 갖바치 (버럭)어허, 그 입 다물래두! 방백인 내가 보기엔 그러니까.. 갖바치 그 주둥이 이 돗바늘로 꿰매버리기 전에 입조심하게! 방백인 아니, 형님, 왜 그러슈? 갖바치 어허, 그래도?! 자네는 말을 아껴야 천수를 다할게야! 방백인 ... 당골네 (돌아보는).. 길상 (평상위에 놓인 물대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S#28 당추 암자 마당 열린 불당문 안으로 신비와 언년이가 부처님앞에서 절을 하는것이 보인다. 댕기머리 처녀(모린), 누마루 밑에서 올라와 객사쪽으로 온다. 당추, 모린쪽으로 걸어온다. 당추 모린아! 모린 (돌아보는)... 당추 며칠내로 손님이 올것이니 작은방에 장작을 지피거라. 모린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방쪽으로 간다) 당추 (멀리 하늘을 보며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음! S#29 윤원형집 곳간 마당 임서방, 곳간 밖으로 쌀섬과 상목등을 쌓아두는 하인들을 지휘하고 있다. 윤원로와 윤지임,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윤원로 아버님, 이렇듯 곳간이 차서 마당에까지 흘러넘치는 재물을 보니 소자, 먹지 않아도 배가 든든하옵니다. 윤지임 곳간에 쌀이 썩어난다는 말뜻을 이제야 알 듯 싶구나. 헌데 원로야, 이렇게 치부를 해도 되는 것인지 이 애빈 자꾸 걱정이 앞서는구나. 윤원로 아버님, 아무 걱정 마시옵소서. 자고로 작은 도둑늠은 포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지만 큰 도둑놈은 떵떵거리고 잘 산다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윤지임 뭬,뭬야? 허면 우리가 큰 도둑놈이란 말이냐? 윤원로 그런 게 아니오라 대장부 배포가 클수록 출세길이 빨리 열린다는 뜻이옵니다. 아버님, 이 재물들이 소자와 원형이가 벼슬을 얻어 출사를 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옵니다 윤지임 그래 모쪼록 너희 형제가 중전마마의 뒤를 받쳐드려야 할 것이다. 헌데 원형이는 어찌 방안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게냐? 윤원로 (작은 사랑채 쪽을 돌아본다)...? S#30 동 윤원형 작은 사랑채 방 안 윤원형,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앉아있다. 윤원로 (E)(방밖에서)원형아, 안에 있느냐? 윤원형 (생각에서 깨어나며)..! 윤원로 (방안으로 들어오며) 원형아, 복더위에 방안에서 뭘하는게냐? 윤원형 형님, 내 이제껏 어찌 살아왔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오. 윤원로 (앉으며) 한심하다니? 윤원형 내 때를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파락호 노릇만 하다보니 어느덧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고 이제는 진짜 파락호가 되버린 듯 싶소. 윤원로 얘, 원형아 자격지심(自激之心)가질 것 없다.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만 생산하시오면 우리 형제의 앞 길에 탄탄대로가 열릴텐데 무에 걱정이냐? 윤원형 아니오, 지금 정신차리지 못하면 내 평생 치맛자락에 휘둘려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을 듯 싶소. 윤원로 ..치맛자락에 휘둘리다니? 윤원형 내 이제부터라도 턱밑에 송곳을 곧추세우고 글공부를 할 참이오. 형님도 같이 하십시다. 윤원로 아서라, 쉬운 길을 놔두고 먼길을 돌아갈 것 뭐있느냐? 윤원형 형님, 나중에 이 아우 말을 안들었다고 땅을 치고 후회 하지나 마시오. 윤원로 (히죽) 허, 원형아, 네가 첩실을 얻더니 철이 든 모양이구나. 난 내 생긴대로 살테니 너나 글공부 많이 하거라. (일어나서 방밖으로 나간다) 윤원형 ... S#31 칠성각에서 이어진 길 김씨와 윤임처가 걸어오고 있다. 그 뒤로 배천댁과 탄실이, 그리고 윤임처의 몸종(*)이 따른다. 윤임처 이번일은 조카님께서 참으로 너무하셨구먼.. 조강지처와 합궁도 하기전에 첩실을 들이다니?.. 김씨 (얕은 한숨을 내쉬며)...서방님 앞날에 광영이 비춘다면 하나가 아니라 열 소실인들 못들이겠습니까? 윤임처 내 평생 입신양명을 위해 소실을 들인다는 말은 금시초문일세. 김씨 (씁쓸한 미소)... 윤임처 헌데 질부께서도 대단하이. 미운 소실에게 와가를 마련할 돈까지 챙겨주다니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대체 질부님 속뜻이 뭔가? 김씨 ... S#32 난정모 방 안 난정, 싸늘한 얼굴로 윤원형이 두고간 염낭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난정 (E) 아우님께오서 이사람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보시었단 말이지?! 허나 만사가 아우님 뜻대로만은 되지 않을 것이야! 난정모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난정아, 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냐? 난정 (표정 수습하며)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 난정모 백일동안 암자에 머물려면 단단히 채비를 차려야 할터인데.. 그래 언제 떠날 참이냐? 난정 몇가지 일만 마무리 하는데로 곧이요. 난정모 마무리 할 일이라니? 난정 서방님께오서 마련해주신 남소문 집도 처분해야 하고.. 어머니 일도 있고요. 난정모 이 에미 일이라니? 난정 (미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잠시 다녀올게요. (일어서서 방밖으로 나간다) 난정모 ..? S#33 정윤겸 집 외경 황서방과 박서방이 사인교 두 대 앞에 수군거리며 서있다. S#34 동 정윤겸 사랑채 방 안 정윤겸 앞에 윤임과 김안로가 찻잔을 놓고 앉아있다. 윤임 대감, 참으로 사직을 청하고 낙향을 하시려 하시오이까? 정윤겸 이사람, 관직에 아무런 미련이 없소이다. 김안로 대감께오서 전하의 성총을 입으시어 무죄방면 되시었사오니 전하의 신망에 보은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윤임 희락당대감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대감! 전하와 원자아기씨께는 대감처럼 충절이 곧은 분이 절실하옵니다. 정윤겸 내 정치는 잘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아서는 안 될 무관의 신분이지만 이 나라 조정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속에서 신물이 넘어오니 어쩌겠소? 이 사람 대신 두분 대감께서 전하와 원자아기씨를 잘 보위해 주시오. 윤임 대감! 김안로 ... S#35 동 정윤겸 사랑채 방 밖 옥련, 사랑채 안을 엿듣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마당으로 내려와 안채쪽으로 걸어간다. 정렴 (다가오며) 옥련아, 사랑에 판부사대감과 희락당대감께오서 드셨다지? 옥련 (끄덕이며)예.. 두분 대감께오서 아버님께 사직을 철회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계시오. 정렴 (희색) 그래? 허면 잘된 일 아니냐? 헌데 네 얼굴이 어찌 그러느냐? 옥련 (한숨) 아버님께오서 두분 대감 말씀을 듣지를 않으시요! 정렴 ...! 윤임 (E) (사랑채 안에서) 허면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S#36 정윤겸 대문 앞 윤임과 김안로, 굳은 얼굴로 대문 밖으로 나와서 각기 사인교에 올라탄다. 배서방이 배웅하듯 따라 나온다. 윤임 가세, 박서방! 박서방 예. 윤임과 김안로를 태운 사인교가 떠나면 배서방이 허리를 숙인다. S#37 정윤겸 집 근처 길 김안로와 윤임을 태운 사인교가 나란히 오고 있다. 윤임 정대감께서 원자아기씨의 곁을 보위해 준다면 한결 든든할 것인데.. 허어 참, 저리도 완강하시니! 김안로 무관들중 다른 인물을 물색해 봐야지요. 윤임 (끄덕끄덕) 아무래도 그래야겠소이다. 반대편에서 오던 박희량, 급하게 다가와 사인교를 막아선다. 박희량 희락당대감과 판부사대감 아니시옵니까? 윤임,김안로 ...? 윤임 젊은이는 뉘시요? 박희량 시생, 박희량이라 하옵니다. (땅바닥에 넙죽 큰 절을 올리며) 시생 평소에 흠모하던 희락당대감을 만나뵈오니 감격이 북받치옵니다. 김안로 젊은 선비께서 이 사람을 아시오? 박희량 조선의 선비된 자가 지난 을해년에 양시론을 주창하시어 조정의 혼란을 무마시키신 희락당대감의 존명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김안로 (버럭)어허! 자네가 내 평생 수치로 여기는 양시론을 들먹여 이사람을 욕보이려 하시는겐가?! 박희량 (보며) 예에? 김안로 내 자네의 얼굴을 기억하느니! 조정암의 구명에 앞장섰다가 손바닥을 뒤집어 조정암의 사사를 주청드리던 자가 아니시던가?! 박희량 (당황하여) 대,대감! 김안로 가세, 황서방! 황서방 예. 김안로와 윤임의 사인교가 땅바닥에 무릎꿇은 박희량을 피해 총총히 간다. 박희량 (황망하게 일어서서 옷을 터는데) 난정(E) (비웃음) 호호호! 박희량, 움찔놀라 돌아보면 난정이가 비웃음 흘리며 서있다. 박희량 나, 난정 낭자?! 난정 (웃음거두고 싸늘하게 보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재주가 뛰어나시니 박도령께서 장차 조정에서 크게 한자리 하시겠구려! 호호호- (정윤겸 집쪽으로 간다) 박희량 (모욕감)...! S#38 정윤겸 사랑채 마당 일각 난정, 배서방의 인도를 받으며 사랑채쪽으로 걸어오는데 옥련, 급하게 다가와 난정을 막아선다. 옥련 난정아, 네 두 번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어찌 또 찾아온게냐?! 난정 옥련아, 네 아버님을 무죄방면 시켜준 은인에게 고맙다고 절은 못할망정 네 어찌 배은망덕한 말을 내뱉는단 말이냐? 옥련 뭐, 뭐라, 은인?! 어찌 네년따위가 희량 도련님의 공을 가로채려하는게냐?! 난정 호호! 땅바닥에서 절하는 재주밖에 없는 박도령 따위가 대감마님을 구해?! 옥련 뭐,뭐야? 난정 난 네 아버님께 빚을 받으러 온것이야! (쏘아보며) 허니 물러서! (사랑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옥련 (난정의 서슬에 비켜섰다가 그 뒷모습 보며 분한) 저,저년이! S#39 동 정윤겸 사랑채 방 안 난정, 정윤겸 앞에 다소곳하게 앉는다. 정윤겸 네 아직도 내게 할 말이 남았더냐? 난정 대감마님, 낙향을 하시오면 이년의 어미는 어찌 하실 의향이시옵니까? 정윤겸 뭣이라? 네 어미를 어찌하다니? 난정 만일 대감마님께오서 이년의 어미를 거둬주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이년이 어미를 거둘것이옵니다. 정윤겸 내 마음속에서 너희 모녀를 끊어낸지 오래니 썩 물러가거라! 난정 (싸늘한 미소) 이년의 어미가 대감마님의 말씀을 못들은 것이 참으로 한이로군요! 이러실 줄은 알았지만 이년이 대감마님을 금부옥사에서 방면시켜 드린 일이 괜한 짓거리를 한 듯 싶사옵니다! 정윤겸 뭐,뭐라?! 네 이년! 난정 이년 더 이상 이댁 종년이 아니옵니다. 승후관나으리의 안사람이 되었사오니 이년을 욕하시는 것은 곧 중전마마의 오라버니이신 승후관나으리를 욕하는 것이옵니다. 정윤겸 뭣이라!! 네 지금 뭐라 했느냐?! 난정 (독기서린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발딱 일어서서 나간다) 정윤겸 ...! S#40 정윤겸 대문 앞 길 난정, 대문을 걸어나와 걷다가 대문쪽을 휙-돌아본다. 난정 (노려보며)...! (돌아서 가버린다) S#41 중궁전 앞 마당 중종, 환한 얼굴로 대전내관과 김상궁, 상궁나인등을 거느리고 중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엄상궁 (E) 중전마마, 주상전하 납시셨사옵니다! S#42 동 중궁전 방 안 중종, 보료에 앉으면 그 앞에 윤비가 따라 앉는다. 중종 중전, 중전께서 후궁들의 석고대죄를 거두게 하신일은 참으로 현명하신 처사였습니다. 과인이 이번일에 대해 내심 우려를 했었는데 중전께서 과인의 염려를 씻어주신겝니다. 윤비 신첩, 미력을 다해 전하의 심기를 편케 해드릴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중종 (윤비의 손을 쥐며) 참으로 고맙구려.. 중전이 마음 쓰심이 이리도 가상하시니 과인이 어찌 중전을 아끼지 않을수 있겠소? 윤비 (미소)..황감하옵니다. S#43 희빈 처소 방 안 희빈, 약사발을 들어 마시고 있다. 희빈 옆에서 향이가 수발을 들고있다. 홍경주, 그런 희빈을 안쓰럽게 본다. 홍경주 석고대죄가 이정도로 끝난 것이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희빈 (약사발을 내려놓으며) 아버님, 이사람은 지난번 지밀후원 잎사귀마다 주초위왕을 새겨놓은 일이 발각될까봐 가슴이 얼마나 떨리었던지요? 홍경주 (향이를 보며 헛기침) 험,험! 향이 (조아리고 일어서서 약사발을 받쳐들고 나간다) 홍경주 마마, 말씀을 아끼시옵소서. 희빈 아버님, 중전마마의 회임으로 중궁전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한데 만에 하나 중전마마께오서 대군아기씨라도 생산하시어 왕세자에 책봉되신다면 우리 후궁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듯 싶사옵니다. 홍경주 마마, 중전께오서 대군아기씨를 생산하신다 한들 절대 왕세자에 책봉되지 못할 것이오니 그런 걱정은 마시옵소서. 희빈 아버님, 어찌 그리 확신을 하시옵니까? 홍경주 조정신료들간에 밀약이 되어 있사옵니다. 중전께오서 대군을 생산하시오면 조정에서는 지금의 원자아기씨를 왕세자로 밀것이옵니다. 희빈 만약 중전이 공주를 생산하시오면요? 홍경주 당연지사, 금원군께오서 왕세자로 책봉되실것이옵니다! 희빈 (희망의 눈빛)정말 그리 될까요? 홍경주 예, 마마. 허니 마음을 편안히 하세요. 희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S#44 빈청 안 김전과 김승지가 찻잔을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전 그래요? 원자아기씨께오서 그렇게 영명하시단 말씀이외까? 김승지 예, 소학은 이미 독과 훈을 달통하셨사옵고 효경도 막힘이 없으시옵니다. 김전 (흐뭇하게 끄덕이며) 그래요, 장차 이나라에 세종대왕 같으신 성군이 또 한분 나시겠구먼요. 허허. 김승지 예, 이 사람 생각도 그렇사옵니다. 남곤 (빈청안으로 들어오다가 못마땅하게 보며) 두분께서 무슨 재미난 말씀들을 나누고 계십니까? 김전 보양관과 원자아기씨의 출중하오신 총기에 대해 말을 나누고 있었소이다. 남곤 (김승지 보며) 영감께선 원자아기씨의 강학청 보양관이 되신 후론 판부사대감이나 희락당대감하고만 어울리신다면서요? 김승지 (당황하여)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남곤 (못마땅) 음! 하루아침에 마음을 그리 바꾸시는게 아닙니다. 으,음! (휙-밖으로 나가버린다) 김전 좌의정대감께오서 오늘따라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이니 마음쓰지 마시오. 김승지 (낭패한)... S#45 대궐 일각 남곤, 걸어오는데 맞은편에서 심정이 급히 온다. 남곤 (보고) 오, 화천군대감, 대국에서 온 자는 만나보시었소이까? 심정 예, 하온데 그자가 경빈마마를 알현케 해달라고 합디다. 남곤 (생각하다가) 허면 대감께서 경빈마마께 다리를 놓아 드리시구려. 심정 예, 그리하지요. S#46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눈빛을 번뜩이며 뭔가를 생각중이다. 경빈 (E) 중전과 맞서자니 원자가 왕세자로 책봉될 것이고, 원자를 견제하자니 중전이 대군아기씨를 생산한다면 낭패를 볼것이니.. 어허, 이일을 어쩐다,어쩐다..? 경빈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밖에 금이 있느냐? 금이 (E) 예. 금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마마, 찾아계시옵니까? 경빈 근자에 복성군께오서 문후를 들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금이 그게 저.. 복성군마마께오선 근자에 후원에 나가 소일을 하시옵니다. 경빈 뭬야? 복성군께서 후원에서 무엇을 하신단 말이냐? 금이 ..이년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경빈 금아, 당장 복성군을 뫼셔 오너라! 금이 예, 마마.(방밖으로 나간다) 경빈 (저으며) 아니돼! 장차 보위에 오르실 분께오서 이만한 기세가 꺽여서는 아니될 것이야! S#47 후원 연못 복성군, 연못난간에 걸터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연못을 내려다 보고 있다. 금이 (저 멀리서 복성군을 보고) 복성군마마! 복성군마마! 복성군 (연못물만 내려다 보는)... 금이 (뛰어와 서며) 마마, 경빈마마께오서 찾아계시옵니다. 복성군 ... 금이 (목소리 높혀) 마마, 경빈마마께오서.. 복성군 (벌떡 일어서며 금이의 따귀를 갈긴다) 금이 (뺨을 쥐며)...?! 복성군 네 이년! 내 다 알아들었거늘 웬 호들갑이냐?! 금이 (울먹) 마마.. 복성군 (앞장서서 휘적휘적 가버린다) 금이 (울상되어 그 뒤를 따르는) S#48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차를 마시고 있는데 금이 (E) (방밖에서) 경빈마마, 복성군께오서 드셨사옵니다. 경빈 오 어서 뫼시어라! 복성군 (방문이 열리면 들어와 조아리며) 어마마마, 소자를 찾아계시옵니까? 경빈 앉으세요. 복성군 (앉는다) 경빈 (복성군을 얼굴을 살피며) 복성군, 요즘들어 어찌 몸에 풀기도 없으시고, 총기로 빛났던 안광이 근심으로 가득차신겝니까? 복성군 ... 경빈 복성군, 이 어미에게 말씀을 해보세요. 복성군 (휙-원망스럽게 보며) 어마마마, 소자가 왕세자에 책봉되어 장차 보위를 잇는 것이 틀림없사옵니까?! 경빈 (순간 당황하여) 복성군, 그 일은.. 복성군 소자, 어마마마만 믿고 있었사온데 어마마마의 말씀만 믿었사온데.. 어찌 소자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주시는 것이옵니까?! 경빈 (단호하게) 복성군! 아직은 누가 왕세자에 책봉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복성군 (도리질하며) 소자 더 이상 어마마마를 믿지 않을것이옵니다! 경빈 뭬요?! 복성군!! 복성군 소자, 뒷방 왕자로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죽는게 낫사옵니다!') 경빈 (복성군의 따귀를 친다) 복성군 ...! 경빈 복성군 어찌 에미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씀을 하시는게요?! 복성군 (눈물을 글썽이며) 소자, 어마마마가 원망스럽사옵니다! 원망스럽사옵니다! (벌떡 일어나 방밖으로 뛰쳐나간다) 경빈 (나간쪽을 보며) 복성군! 복성군!..(연상을 쾅 내리치며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다) ...!!! S#49 동 경빈처소 일각문 밖 심정, 일각문쪽으로 걸어온다. 복성군, 흐느끼며 일각문 밖으로 뛰어나오다 심정과 부딪친다. 심정 (당황하여) 복성군마마. 복성군 (그대로 어디론가로 뛰어가버린다) 심정 (복성군의 뒷모습을 심각하게 보는)...! S#50 동 경빈처소 방 안 경빈,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심정, 방안으로 들어와 경빈 앞에 다가와 앉는다. 심정 경빈마마, 복성군께오서 어찌.. 경빈 (씹어 뱉듯) 복성군께오선 반드시 왕세자에 책봉되셔야 할 것입니다!! 심정 ...! 경빈 반드시..반드시 왕세자에 책봉되시어 대통을 이으셔야 합니다. 심정 마마, 마마께오서 복성군께오서 왕세자 책봉을 받게 하실 일로 만나보실 사람이 있사옵니다. 경빈 만나다니, 누굴요? 심정 (경빈에게 낮게 소곤거리면) 경빈 (움찔)...! S#51 남소문 객주 마당 송서방, 평상위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고 달래, 툇마루에 걸레질을 한다. 백치수, 대문안으로 들어온다. 송서방 (백치수를 보고) 도주어르신, 송도에서 일은 벌써 끝내셨사옵니까요? 백치수 (끄덕) 내 객주 걱정이 돼서 서둘러 돌아왔네. 송서방 안그래도 좌의정댁 개들이 들이닥쳐 객주를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뻔 했습지요! 백치수 뭐라? 좌의정댁 개들? 송서방 예, 장대인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객주가 잿더미가 될뻔 했습지요. 백치수 음! 능금 (힘이 쭉 빠진채 방안에서 나오며) 도주 아저씨 오셨소? 백치수 (보며) 능금아, 네 어찌 맥이 풀린게냐? 능금 ... 장씨 (곽서방을 거느리고 대문안으로 들어온다) 백도주, 일찍 돌아오셨구려? 백치수 (돌아보며) 허허, 내 듣자니 장대인에게 크게 신세를 졌구먼! 장씨 (피식 웃어주고) 능금아, 어서 옷 갈아입거라! 능금 (시선 피하며)..옷은 뭐하게요? 장씨 판의금부사가 가마를 보내온다니 서둘러 입궐채비를 하라 이 말이다! 능금 (휘둥그레지며) 지,지금 이,입궐이라고 했소?! 장씨 (미소).. S#52 대궐 일각 심정이 앞장서고 그 뒤로 명나라 사대부복장의 장씨와 비단옷을 갖춰입고 손에 비단천으로 감싼 패물함을 든 능금이 걸어온다. 능금, 궐내 풍경이 신기한 듯 힐끔힐끔거리며 주변을 구경한다. S#53 경빈 처소 마당 심정과 장씨, 능금이 일각문 안으로 들어선다. 금이 (조아리며) 경빈마마께오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드시지요. 심정 자, 듭시다.(앞장서서 들어가고) 장씨 (능금을 돌아보며) 넌 예서 잠시 기다리거라. 능금 알았소. (손에 든 패물함을 건네면) 장씨 (패물함을 받아들고 심정을 따라 처소 안으로 들어간다) 능금 (멀뚱 쭈삣 서있는데)... 금이 (능금의 행색을 요리조리 살피는) 능금 (금이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는)... 금이 ('비단옷을 차려입었지만 촌년이군!' 표정으로 마루에 가서 앉는다) 능금 ...! S#54 동 경빈 처소 방 안 경빈, 보료위에 앉아있고 발 건너편으로 심정과 장씨가 들어와 선다. 심정 마마, 이 자가 장대인이옵니다. 경빈 (날카롭게 보는) 그대가 대국조정에 연줄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가? 장씨 (야릇한 미소)... 경빈 ...! S#55 윤원형 집 대문 앞 난정, 대문 앞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S#56 동 윤원형 작은 사랑채 방 안 윤원형, 연상위에 놓인 책과 씨름을 하고 있다. 윤원형 (머리에 안들어오는 듯) 허어, 이거 참, 공부머리는 따로 타고나야 한다더니만 무슨뜻인지 도통 알수가 있나? 임서방 (E) (방밖에서 급한) 서방님! 윤원형 (방밖을 보며) 무슨 일인가? 임서방 (E) (방밖에서) 지금 초당에 난정아씨께서 드셨습니다요! 윤원형 (화들짝 놀라) 뭐,뭐야?! 또오?! S#57 동 윤원형 초당 방 밖 배천댁과 탄실이가 방안에서 나와 방문앞에 귀를 기울이며 엿듣는다. S#58 동 윤원형 초당 방 안 난정, 김씨 앞에 서있다. 김씨 (앉은채 난정을 보며) 자네가 무슨 일로 발걸음을 하셨는가? 난정 (염낭을 꺼내 김씨 앞에 턱-던져버린다) 김씨 (묵직한 소리를 내며 앞에 떨어진 염낭을 보다가 난정을 치켜보며) 네 이 무슨 무엄한 짓거리냐?! 난정 아우님! 이깟 은자 몇냥으로 이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소?! 김씨 뭐라?! 난정, 김씨를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는 얼굴에서 스톱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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