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6회
47. 자막 - 제 6 회 키스의 열량, 사랑의 열량
48. 커피숍 외경(밤)
49. 커피숍(동 밤)
-종업원이 차를 놓고 간다.
-마주앉은 삼순과 희진. 참 어색하다.
삼순 ...
희진 ... 공교롭게도 이름이 똑같네요.
삼순 그건... (설명하려다 그만 둔다) 네, 그렇게 됐네요.
희진 지난번 케잌은 정말 잘 먹었어요.
삼순 네...
희진 이렇게 보자고 한 거, 죄송해요.
삼순 (각오했다)괜찮아요.
희진 ... (어렵게 입을 연다)언제... 만나셨어요?
삼순 (망설이다가)얼마 안돼요. 며칠 전에 100 일 치뤘으니까. (마음이 언짢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 뿐인데 꼭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희진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부터예요?
삼순 ... 네.
희진 ... 진헌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삼순 잘, 몰라요. 집에 가니까 어머님 계시고 조카애 하나 있구, 성격이 좀
까다롭다는 것 말고는... 아, 몇 년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많이
다쳤나봐요. 겁나서 운전도 못하고.
희진 (집에 갔다는 사실에 놀란)집에 갔었어요?
삼순 네, 인사 갔었어요. (이상하다. 자꾸 꼬인다)
희진 !... 교제를 허락하시던가요?
삼순 네, 일단 사겨보라구. (어? 왜 이렇게 돌아가지? 물을 벌컥 마신다)
희진 (역시 목이 타 물을 마시고는)... 미주는 잘 있던가요?
삼순 네.
희진 (생각에 잠긴다)
삼순 (힐긋 보고는)이젠 제가 물어봐도 돼요?
희진 ... 네.
삼순 얼마..만에 만난 거예요?
희진 3 년이요.
삼순 (아)... 먼데 있었나봐요?
희진 네, 캘리포니아에 가있었어요.
삼순 거긴 왜...
희진 (알 바 아니죠. 씁쓸하게 웃어준다)
삼순 아 미안해요. 근데... 다시 시작할 건가요?
희진 (단호한)우리, 끝난 적 없어요.
삼순 ?...
희진 우린 헤어진 게 아녜요. 저한테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3 년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 뿐이에요. 진헌인 오핼 하구 있는 거구요. 진헌이가 제 얘기
안하던가요?
삼순 여자가 있었을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직접 들은 적은 없어요.
희진 (씁쓸하다)... 김희진씨.
삼순 네.
희진 진헌이, 사랑하세요?
삼순 !...
희진 (네?)...
삼순 (이 일을 어쩌나 좌불안석이다)... 저기 사실은... 사실은 말예요.
희진 ...
삼순 사실은...
50. 화장실(5 회 #45)
삼순 연애한다고 유세 떠니? 사랑싸움한다고 자랑하고 싶어? 웃기지도 않어 정말.
누군 왕년에 연애 안해봤나? 연애가 거기서 거기지 왜 그렇게 유난 떠는데?
야야 눈꼴 셔서 못봐주겠다 야. 이따위로 할 거면 차라리 계약을 파기하든가.
진헌 (주저없이)좋아, 파기해.
삼순 그래, 파기해!!
진헌 그럼 지금 이 시간부터 계약은 없었던 일이야. 대신, 오천만원 당장 상환해.
(나간다)
삼순 (헉, 오천만원!)
51. 동 커피숍
-아... 고민스런 삼순.
희진 (E)김희진씨?
삼순 (놀라 고개 번쩍 들며)네?
희진 말씀 계속하세요.
삼순 어 그러니까 사실은...
희진 ...
삼순 사실은... 네, 사랑..합니다. 제가 사장님, 아니, 진헌씰 무척 사랑하거든요?
그러니까 끼어들지 마세요. (아니 이럴 수가!)
희진 !...
삼순 (거짓말에 탄력받기 시작한다)그쪽 사정도 딱한 건 알겠는데요,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희진 지나간 일 아녜요.
삼순 3 년 전이면 지나간 일이죠.
희진 끝난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삼순 그건 그쪽 주장이구 진헌씬 싫다잖아요.
희진 화난 것 뿐이에요.
삼순 유희진씨!
희진 네, 김희진씨!
삼순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 년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불쑥 나타나서
내놓으라니, 이게 무슨 경우에요?
희진 원랜 내 남자였어요!
삼순 이젠 내 남자예요!
희진 우린 헤어진 적이 없다구요!
삼순 어쨌든 나랑 사귀고 있잖아요!
희진 겨우 100 일 됐다면서요. 우린 8 년째예요!
삼순 아직 어려서 뭘 모르나본데,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 힘도 없다 구요!
희진 !...
삼순 나, 희진씨한테 유감 없어요. 그러니까 이쯤에서 깨끗하게 물러나세요.
희진 싫어요. 그쪽에서 물러나세요.
삼순 그렇게 안봤는데 쇠심줄이네? 그럼 어떡할까요, 반으로 나눠 가져요?
희진 유치하게 왜 이러세요?
삼순 하나 더 가르쳐줘요? 사랑은 원래 유치한 거예요!
희진 (벌떡 일어난다)
삼순 (올려다본다)
희진 당사자랑 얘기해야 되는 건데 제가 괜한 짓을 했네요. 미안해요, 시간
뺏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주문서를 집어드는데)
삼순 (얼른 손을 뻗는다)내가 낼께요.
희진 아뇨, 제가 뵙자고 했으니까 제가 낼께요. (당긴다)
삼순 (당긴다)아뇨, 한 살이라도 더 많은 내가 내야죠.
희진 (당기며)제가 낸다구요.
삼순 (당기며)내가 낸다구요.
희진 그럼 각자 내요.
삼순 좋아요. 난 희진씨 꺼 낼 테니까 희진씬 내 꺼 내요.
희진 ? 왜요?
삼순 특이하니까! (보란 듯이 주문서 확 뺏어들고 카운터로 간다)
희진 (황당하게 보는)
52. 커피숍 앞
-나오는 두 여자.
희진 (리모콘으로 차 문 열면서)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삼순 됐어요, 택시 타고 갈 거예요.
희진 그러세요 그럼. 오늘 실례 많았습니다. (목례하고 차에 오른다)
삼순 (목례하고 길가로 나간다)
-희진, 시동 걸고 출발한다. 조금 가다가 멎는다.
-삼순이 택시를 잡느라 입구를 막고 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삼순이
돌아본다. 눈이 부시다.
-차 안과 밖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두 여자.
-삼순, 뭔가 섬뜩함을 느낀다.
-(상상)삼순을 덮치려 급발진하는 희진의 살벌한 표정!
-삼순, 흡 놀란다.
-희진도 놀란다. 삼순의 표정이 희진에게는 인상 쓰는 것처럼 보여서.
-(상상)운전석 문을 열고 ‘너 내려’ 하며 머리채를 확 잡아채는 삼순!
-겁먹은 희진, 얼른 도어락을 잠근다.
-겁먹은 삼순, 주춤주춤 옆으로 피한다.
-희진, 조심조심 삼순을 지나쳐 간다.
-삼순, 지나치는 차를 경계한다.
-희진의 차가 멀어져간다.
-삼순, 멍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이 든다.
삼순 !...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53. 삼순이 방(동 밤)
-황토팩을 하고 나란히 드러누운 삼순과 이영.
이영 무슨 짓이긴, 쌩쑈를 한 거지. 그냥 대충 둘러대고 나올 것이지 소설은
왜 쓰니?
삼순 (멍해서)처음엔 나두 그럴라 그랬지... 근데 얼마나 꼬치꼬치 캐묻던지,
어떡하냐, 협조 안하면 당장 오천만원 물어줘야 되는데.
이영 그건 협조가 아니라 날조지.
삼순 반성하고 있으니까 아파트나 빨리 파셔.
이영 (힐긋 보더니)너 그거 거짓말 아니지.
삼순 뭐가.
이영 삼식일 진짜로 좋아하는 거 아니냐구.
삼순 (어이없다는 듯 돌아본다)
이영 (보며)왜.
삼순 그건 내가 판교에 분양받을 확률이랑 같애.
이영 혹시 알어? 전산오류로 당첨될지?
삼순 내가 엘케이 다니냐?
이영 정말 손톱만큼도 관심 없어?
삼순 !... (좀 찔리지만 단호하게)없어.
이영 왜 대답이 한템포 늦어?
삼순 팩이 굳었잖아.
이영 아니면 말구. 근데 걔네들은 왜 그런데니? 괜히 나까지 궁금해지네...
명숙이한테 물어볼까?
삼순 명숙이 언니가 알까?
이영 상류층끼리는 통하니까. 삼식이 어머니가 어디 사장이라구?
삼순 몰라. 지난번에 얼핏 들으니까 뭐 여관장사 한다는 것 같던데.
이영 뭐어? 여관? 안어울린다.
삼순 몰라아, 묻지마 관심 없어.
이영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 혹시 모르잖아. 삼식이랑 진짜 연애할지.
삼순 아니라니까 정말.
이영 근데 걘 몇 살이니?
삼순 유희진?
이영 유희진?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 아니 걔 말구, 그 넙치 말야.
삼순 이부장님? 몰라. 사장님보단 많구 오지배인님보단 적을 걸?
이영 그 자식이 그렇게 요릴 잘 해?
삼순 나중에 엄마랑 같이 와. 와서 화해하고 한번 제대로 먹어봐. 끝내줘.
이영 화해는 무슨, 두 번 볼 사이도 아닌데. 근데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삼순 이부장님?
이영 아니 김영애 아줌마 말야.
삼순 그러게? 그 아줌마한테 그런 재주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벌컥 문 열리며 봉숙이 고개 디민다. 역시 황토팩을 했다.
봉숙 이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54. 희진 거실(동 밤)
-들어오는 희진. 불을 켠다. 썰렁한 실내를 둘러보고 소파에 털썩 앉는다.
피곤하고 심란하다. 그때 핸드폰 울리자 받는다.
희진 여보세요.
헨리 (F)힘없는 목소린데?
희진 (곧추 앉는다. 쓴웃음 지으며 이하 영어로)아냐 잤어...
헨리 (F)어 미안. 그럼 본론만 얘기할게. 굳뉴스와 배드뉴스가 있는데 어느것부터
들려줄까.
희진 굳뉴스만.
헨리 (후후 웃는 소리에 이어 F)나 휴가 받았어. 6 개월 동안.
희진 6 개월씩이나?
헨리 (F)일종의 안식년 같은 거야.
희진 축하해. 그렇게 쉬고 싶어하더니 잘 됐네.
헨리 (F)배드뉴스는, 나 다음주에 한국 들어가.
희진 ?!...
55. 삼순네 뜰(동 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일렁인다. 손이 뻗어오르더니 나뭇가지를 꺾는다.
-삼순, 가지를 들고 그네에 앉아 이파리를 하나씩 떼어내며 중얼거린다.
삼순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 아니다... (여러번 반복하다가 하나만
남자)아니다!
-삼순, 좋아서 히죽 웃고는 사뿐한 마음으로 그네를 구른다.
삼순 (Na.)그래, 그 여잘 질투한 게 아니었어. 미지왕한테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구.
그냥 그 사람들이 했던 사랑을 질투하는 거야. 나도 사랑이란 걸 했는데
그 사람을 추억하면서 들을 음악도 없고, 이름만 들어도 화낼 열정도 남아있지
않고... 신경질 나잖아 둘이 유난 떠는 게...
-삼순, 기분 좋게 손을 탈탈 털며 일어나다가 으아악~ 괴성을 지른다.
-호미를 든 봉숙이 달빛을 받으며 귀신처럼 서 있다.
봉숙 (약간의 귀신 톤)시집 못가 환장했니? 달밤에 무슨 짓이야?
삼순 (꽥)놀랬잖아! 귀신처럼 뭐야 그게!
봉숙 이년아! 니가 귀신 같애. 처녀귀신. (텃밭으로 가 일을 한다)
삼순 ? 엄마야말로 달밤에 뭐하는 거야?
봉숙 잠이 안와서.
삼순 !... (마음이 짠하다)
봉숙 (묵묵히 일하고)
삼순 (다가가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호미를 빼앗는다)이리 내, 내가 할께.
봉숙 니가 뭘 할 줄이나 알어?
삼순 (퉁퉁댄다)그러게 명줄 긴 남자랑 결혼하지...
봉숙 너나 잘해. 난 한번이라도 했지 넌 그러다가 한번도 못하고 늙어죽어
이것아. (하다가 확 밀치며 버럭)야! 고추 밟았잖아!
삼순 (엉덩방아 찧고는)아 씨... 무슨 고추가 이렇게 많어. 여기도 고추밭,
저기도 고추밭, 고추장사 할거야?
봉숙 이걸 왜 팔어? 내가 다 먹을거야.
삼순 (가자미눈으로)으~ 응큼해.
봉숙 (쥐어박으며)니가 더 응큼하다 이년아. 한여름에 풋고추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화면 어두워진다.
-F.O
56. 보나뻬띠 전경(낮. F.I)
-나사장의 차가 들어온다. 윤비서와 미주가 내린다.
57. 베이커리실
-삼순, 미주에게 앞치마를 둘러주고 캡도 씌어준다. 미주, 헤 웃으며 좋아한다.
-윤비서가 문가에서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
삼순 자, 손톱검사. 손!
미주 (손을 내민다)
삼순 (검사하고)좋아쓰! 오늘 만들 건 올랑데(Hollandais)라는 체크무늬 쿠키하고
토끼, 나비, 장닭이야. (술상자 같은 받침대에 미주를 올려주면서)너 장닭이
뭔지 알어?
미주 (절레절레)
삼순 남자 닭. 여자 닭은? 씨암탉! 그럼 시트부터 만들자.
-삼순, 미리 반죽해놓은 파트 샤블레(쿠키용 반죽)와 파트 샤블레 쇼콜라
(코코아를 넣은 반죽)를 둘로 나누어 각각 미주 앞에 놓아준다.
삼순 둘 다 1 센치가 될 때까지 이쁘게 미는 거야. 1 센치 알지?
미주 (절레절레)
삼순 (미주의 손을 가져간다)요 새끼손가락 한마디. 이만큼 될 때까지만 밀어.
더 두꺼워도 안좋고 얇아도 안좋아. 알았어?
미주 (끄떡끄떡하고는 밀기 시작한다)
삼순 (자기 반죽을 민다)
-윤비서, 잠깐 보다가 나간다.
58. 테라스
-윤비서가 나오며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엑스맨과 통화한다.
윤비서 나예요. 그 날 왔다던 여자, 누군지 알아냈어요?
59. 사장실
-진헌이 오지배인에게 파일을 건넨다.
진헌 장채리씨 약혼식에 올 하객수하고 좌석 배치도예요. 좌석배치 틀리지 않게
신경 좀 써주세요. 서로 껄끄러운 사람들이 꽤 있나봐요.
오지배인 알았어. (망설이며)근데... 며칠 전 그 아가씨 말야, 옛날 그 아가씨 맞지?
진헌 ? 오지배인님이 어떻게 아세요?
오지배인 모르나? 나한테 몇 번 찾아왔었는데.
진헌 ?...
오지배인 처음 며칠은 무릎 꿇고 빌더라구, 용서해달라구.
진헌 !...
오지배인 그 다음 며칠은 내가 아무것도 못먹고 누워있으니까 죽도 쑤고 청소도 하고
암말도 없이 옆에 앉아 울다가고...
진헌 !...
오지배인 아유 주책이야. 신경 쓰지마. 일 봐. (얼른 나간다)
진헌 ...
60. 베이커리실
-삼순, 각각 밀은 시트들을 오븐팬에 얹고 랩을 씌운다.
삼순 이렇게 랩을 씌어서 냉장고에 넣고 10 분동안 기다려야 돼. 그걸 ‘휴지’라고
하는데 화장실에서 쓰는 휴지가 아니구 밀가루반죽이 잠깐 숨 쉬게 놔두는
거야. 그래야 과자가 바삭바삭 더 맛있어지거든.
-삼순, 랩 씌운 오븐팬을 냉장고에 넣는다.
삼순 자, 십분동안 뭐할까.
진헌 (E)미주야.
-미주, 돌아보더니 포로로 달려와 안긴다. 진헌, 미주를 번쩍 안아올린다.
진헌 과자 만드는 거 재밌어?
미주 (끄떡끄떡)
진헌 궁금하네? 미주가 만든 과자가 어떨지?
삼순 정 궁금하면 같이 만들어요.
진헌 네?
삼순 미주야, 삼촌이랑 같이 만들까?
미주 (좋아서 마구 손뼉을 친다)
-시간경과.
-주방용 하얀 유니폼을 입고 캡까지 쓴 진헌이 구워지기 직전의 올랑데를
오븐팬에 가지런히 정렬한다. 주방에서 이러고 있는게 영 불만스런 표정이다.
-삼순과 미주는 시트에다 쿠키커터로 모양을 찍어내고 있다. 토끼, 나비, 닭
모양을 찍어내 눈을 달고 장식을 해서 또 다른 오븐 팬에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삼순 (진헌이 일하는 걸 흘깃 보더니)똑바로 좀 놔요. 가지런히! 질서정연하게!
-진헌, 입이 쑥 나온다. 질서를 바로잡는다
삼순 다 했으면 이거 찍어요. (시트와 쿠키커터를 준다)
-진헌, 입 나온채로 시트에다 쿠키커터를 찍어댄다.
삼순 아 잘 찍어요, 모양 흐트러지잖아요. 벌써 수전증 왔어요?
진헌 (휙 흘긴다)
삼순 사부한테 그게 뭐하는 짓이에요?
진헌 (시선 거둔다)
삼순 어떻게 일곱 살짜리보다 못하냐?
진헌 (쾅쾅 찍어댄다)
삼순 못생긴 건 다 사장님이 드세요.
진헌 (후- 숨을 몰아쉬더니 얌전히 꼼꼼히 찍는다)
-삼순, 미주의 캡이 흘러내리자 바로 씌어준다.
삼순 근데 너 머리가 꼬불꼬불한 게 꼭 모모 닮았다. 너 모모가 누군지 모르지.
미주 (끄떡끄떡)
삼순 키도 아마 너만할 걸? 모모는 집도 없고 엄마아빠도 없고(하다가 문득
생각 나) 근데 너희 엄마아빠 어디 계시니?
진헌 (휙 쳐다본다. 낮지만 단호하게)김삼순씨.
삼순 (보면)
진헌 (눈길이 매섭다)
삼순 (주눅 든다)... 알았어요... (작업하며 옛날 이야기 해주듯이)다시 할게.
모모는 집도 없고 할머니도 없고 (강조)삼촌도 없는 좀 불쌍한 아이야.
그치만 마을사람들은 다 모모를 사랑해. 왜냐하면, 모모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거든. (미주가 하는 거 얼른 말리며)어 이건 그렇게 하면 안돼.
이렇게 해야지. (그리고는 하던 말 계속한다)모모는 아무말도 안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듣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마을사람들한테 고민거리가 있으면
그냥 들어주는 거야, 귀 기울여서.
진헌 (안듣는 척하면서 솔깃해한다)
삼순 그게 중요해, 귀 기울이는 거. 그럼 마을사람들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다 풀린 것처럼 기분 좋게 돌아가. 아줌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 말만 하는 어른이 되버렸어. (씩 웃으며)지금처럼.
진헌 가끔은 모모 같아요.
삼순 ? 정말요?
진헌 모모는 분명 악동이었을 거예요.
삼순 뭐예욧? (오선지를 긋듯이 밀가루를 진헌의 얼굴에 묻힌다)
진헌 (확 인상 쓴다)이 아줌마가 정말!
삼순 사부한테 아줌마라뇨!
-그때 미주가 진헌의 얼굴에 밀가루를 묻히고는 까르르 웃는다.
-그러자 화도 못내고 멀뚱해하는 진헌.
-그 표정에 킥 웃는 삼순. 그 얼굴에 미주가 밀가루칠을 한다. 웃다가 당하고
황당해하는 삼순의 표정.
-그 표정에 진헌도 쿡 웃고만다.
61. 홀
-여직원들이 디너타임을 위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다가 웃음소리에 돌아본다.
여직원 1 ?... 이거 사장님 웃음소리 아냐?
여직원 2 이부장님 같은데?
영자 야, 넌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랑 후라이팬에 버터 녹는 소리도 구분
못하니?
여직원 3 사장님이 웃는 거 처음 들어요 난.
여직원 4 나두.
영자 가끔 조카랑 있을 땐 저러기도 해.
-그때 삼순의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여직원들 (일제히)으~ 불여시!
62. 베이커리실
-난장판이다. 서로서로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을 던지고 어린애들처럼 장난치며
웃어댄다. 삼순, 문득 멈추고는.
삼순 웃을 줄 아네요?
진헌 (웃는 얼굴인 채로 ? 해서 본다)
삼순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봐서요.
진헌 (순식간에 웃음기 거두며 딴청한다)
삼순 웃으면 뭐 국세청에서 세무감사라도 나온대요?
진헌 성실한 납세자예요 난. (캡과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나간다)
삼순 (얼른 미주 보며 속닥인다)너 솔직하게 말해봐. 삼촌이 느이 아빠지, 그치.
63. 나사장 집무실(동 낮)
-상자가 열리고 미주가 구워온 쿠키들이 드러난다.
나사장 이걸 다 미주가 만들었어?
미주 (자랑스럽게 끄떡끄떡)
나사장 세상에- 우리 미주는 과자도 잘 만드네? 못하는게 뭐야?
미주 (고개 흔든다)
나사장 호호호 못하는 게 없어?
미주 (헤 웃는다)
나사장 우리 미주, 장난 언제까지 칠건데?
미주 (빤히 본다)
나사장 (애잔해서)말 안하는 장난, 그만 치면 안되나?
미주 ...
나사장 (한숨처럼)그래. 이제 됐다 싶으면 알아서 열겠지. 그럼 제일 먼저
할머니- 하고 불러야 돼? 알았지? (윤비서 보며)알아봤어?
윤비서 희진이에요.
나사장 (놀라서)희진이? 그럼 희진이가 돌아왔단 말야?
윤비서 네.
나사장 정말 희진이 맞어? 확실해?
윤비서 네.
나사장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대.
윤비서 모르죠. 둘이 같이 나가고 난 뒤로는 알 수가 없으니까.
나사장 (걱정이 태산이다)아니 그렇게 사라졌으면 그냥 조용히 살 일이지 뭐하러
다시 나타나? 또 무슨 평지풍파를 만들려구?
미주 (할머니를 멀뚱멀뚱 본다)
나사장 현숙아, 희진이 연락처 좀 알아봐라.
윤비서 만나시게요?
나사장 만나야지. 만나서 단속을 해야지.
미주 (과자 하나를 집어 나사장에게 디미는데 애꾸눈 토끼다)
64. 인천공항 야경
65. 공항내(동 밤)
-뚜벅뚜벅 걸어오는 구둣발. 꽤 큰 여행용가방이 뒤따라온다.
-마주오던 서너명의 스튜어디스들이 그를 보며 놀란다. 스쳐가면서 일제히
쳐다본다. 지나치고도 돌아본다.
-구둣발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카메라 서서히 올라가면, 팔등신 헨리다.
-헨리가 이동통신회사 박스 앞에 멈춘다.
헨리 실례합니다. 핸드폰을 임대하고 싶은데요.
66. 공항 일각
-헨리,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이 나온다. 헨리,
갸웃하며 다시 버튼을 누른다. 역시 같은 안내음. 헨리, 참 낭패스럽다.
공항에서 받은 서울지도를 펼쳐들고 희진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와 비교한다.
67. 오피스텔 앞, 희진의 차 안
-희진, 오피스텔 현관을 바라보고 있다.
-모범택시가 달려와 멈춘다.
-희진, 혹시 그일까 싶어 곧추 앉는다.
-다른 사람이 내린다.
-희진, 등받이에 털석 기댄다.
68. 달리는 택시 안
-창 너머로 한강변의 야경이 스쳐간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헨리.
69. 오피스텔 앞
-택시가 달려와 멈춘다. 진헌이 내려서 들어간다.
70. 오피스텔 복도
-진헌이 온다. 문 앞에 이르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71. 오피스텔
-들어서던 진헌이 멈칫한다.
-불이 환하다.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서던 진헌이 몹시 놀란다.
-소파에 앉아있는 희진.
진헌 !...
희진 미안해, 밖에서 기다리기엔 너무 피곤해서...
진헌 !... 어떻게 들어왔어.
희진 우리, 핸드폰 비밀번호 같이 썼잖아. 혹시나 해서 그 번호로 눌러봤어.
진헌 (자존심 상한다... 냉장고로 가 캔맥주를 꺼내 한모금 마신다)
희진 (일어나 다가온다)비밀번호 왜 안바꿨어?
진헌 ... (맥주를 놓고 희진을 향해 돌아선다. 참 거만한 표정)귀찮아서.
희진 단지 그것뿐이야?
진헌 뭐가 또 있어야 돼?
희진 ... 며칠전에 김희진씨 만났어.
진헌 !...
희진 어머니도 허락하셨다며?
진헌 ...
희진 사랑하니?
진헌 (약간의 동요)...
희진 결혼, 할 거니?
진헌 (흔들린다)...
희진 응?
진헌 니가 알 거 없잖아.
희진 (물끄러미 보며 손을 들어 뺨에 대본다)
진헌 (흠칫하며 쳐낸다)뭐하는 짓이야!
희진 (얼굴에서 눈 떼지 않는)그 날... 얼굴을 제대로 못봤어.
진헌 (거만하게 쳐다본다)... 그 날 할 말이 뭐였어.
희진 ...
진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니가 왜 그랬는지.
희진 (말할까 말까 갈등하는)...
진헌 (거침없이)다른 남자 생겼었니?
희진 !!!...
진헌 그래?
희진 (너무 실망스럽다. 배신감까지 든다)너도 어쩔 수 없구나?
진헌 (모멸감!)
-진헌, 모멸감에 불끈하는 걸 참느라 서성이다가... 맥주 한모금 마시고...
마침내 폭발해 캔을 던져버린다.
진헌 그래! 나도 어쩔 수 없는 놈이야! 사고난지 일주일 만에 아무런 말도 없이 계 획에도
없던 공부를 하겠다고 떠났는데 그런 생각 안할 놈이 어디 있어! 미국에 대학이란 대학은 다
뒤져봤어! 어디에도 니 이름은 없었어! 하루에도 수백번 생 각했어. 다리 부서진 꼴 보기
싫어서 그랬는지, 딴 새끼가 생긴건지! 생각하기 싫어서 수면제 먹고 일주일 내내 잠만 잔
적도 있어! 꿈 속에서 너를 증오하다 가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말해! 이유가
뭐야!
희진 (그 고통이 눈에 선하다. 눈물이 난다)알어. 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구.
진헌 연극하지마! 가증스러워!
희진 !!!...
진헌 (심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희진 !...
진헌 (수습할 수가 없다)
희진 (가방을 집어들고 뛰쳐나간다)
진헌 !...
-문 닫히는 소리!
-진헌, 초조함이 물밀 듯 밀려온다. 후회도 된다. 괜한 오기를 부린 것 같다.
결국, 뛰쳐나간다.
72.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 열리자 희진이 들어간다. 문이 닫히는데... 진헌이 탁 문을 가로
막는다.
희진 !...
진헌 내려.
희진 !...
진헌 내려 빨리.
희진 내리면, 그 여자랑 헤어질 거야?
진헌 내려.
희진 헤어질거냐구!
진헌 내려!
희진 먼저 말해!
진헌 먼저 내려!
-그때 한 남자가 헛기침을 한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진헌이
반사적으로 물러선다.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진헌 (눈으로 말한다. 내리라고)...
희진 (눈으로 말한다. 먼저 말하라고)...
-분위기에 눌린 채 남자가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진헌 (간절해지지만 못잡고)...
희진 (역시 간절해지지만)...
-문이 닫힌다. 닫힌 문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진헌. 주먹을 부르르 쥔다.
잡고싶은 마음과 오기 사이에서 극심히 갈등 중이다... 이윽고, 비상구로
뛰어간다.
73. 오피스텔 로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자와 희진이 내린다. 남자는 희진을 힐긋 돌아보고
가고 희진은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본다.
-올라간다는 표시도 없고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다.
74. 비상계단
-뛰어내려오는 진헌.
75. 오피스텔 앞
-차에 오르는 희진. 시동 걸고 현관을 돌아본다.
-진헌은 보이지 않는다.
-희진, 출발한다.
-뒤늦게 현관에서 뛰어나오는 진헌.
-희진의 차가 떠나고 있다.
-쫓아오는 진헌.
-희진은 보지 못하고 악셀을 밟는다.
-희진의 차가 멀어져간다.
-급하게 택시를 잡고 올라타는 진헌.
76. 택시 안
-진헌,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꺼져 있다는 안내음에 신경질적으로 탁 덮는다.
77. 희진 아파트 광장(동 밤)
-희진의 차가 거칠게 달려와 논스톱으로 주차한다.
-희진이 내려서 성큼성큼 걸어온다.
-현관 앞에서 헨리가 트렁크 위에 앉아있다. 제 생각에 빠진 희진은 미처 그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다. 헨리, 어이없는 듯 피식 웃는다. 몇발짝 지나친
희진이 그제야 멈춰 돌아본다. 헨리가 일어나며 싱긋 웃는다.
헨리 섭섭하네. 마중 나오지 말란다고 진짜 안나오고. 핸드폰은 왜 꺼놨어?
희진 (울음 터지기 직전의 일그러짐)
헨리 ?...
-희진, 헨리에게 와락 안겨 울음을 터트린다. 헨리, 의아해한다. 희진, 섦게
섦게 운다. 눈치 챈 헨리가 등을 토닥여준다. 소리내어 우는 희진...
-택시가 달려와 멈추고 진헌이 내린다. 현관으로 향하다가 우뚝 멈춘다.
-헨리에게 안겨 우는 희진의 모습...
-진헌, 하얗게 얼어붙는다.
-헨리가 희진을 떼어내 눈물도 닦아주고 이마에 입도 맞추고 위로를 해준다.
-진헌, 넋나간 듯이 바라본다.
-헨리가 희진의 어깨를 감싸안고 들어간다.
-진헌, 돌아선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돌아서서 희진이 사는 층을 올려다본다.
-그 층에 불이 켜진다.
-한참을 바라보는 진헌... 이윽고 돌아서서 걸어온다.
78. 집 버스정거장(동 밤)
-버스가 달려와 멈추고 삼순이 내린다. 뭔가를 보고 멈칫.
-벤취에 앉아 기다리던 현우가 일어선다.
-삼순, 무시하고 간다. 현우가 옆으로 따라붙는다.
현우 이뻐졌다?
삼순 (퉁명)내일이 약혼식인데 이러고 다녀도 돼?
현우 전환 왜 안받니?
삼순 채리가 알면 나까지 죽일려고 들텐데?
현우 미안하다, 약혼식 케잌 만들게 해서.
삼순 미안할 거 없어. 케잌에다 침 뱉어놀 거니까.
현우 난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들만 알게 하지 마.
삼순 (허! 저 능청! 흘긴다)
현우 너희 사장, 소문이 이상하더라?
삼순 이젠 뒷조사까지 하고 다녀?
현우 여잘 쓰레기 보듯 한다던데? 성질도 흉폭하고.
삼순 바람둥이보단 훌륭해.
현우 남자구실 못한다는 소리도 있더라?
삼순 걱정마, 멀쩡하니까.
현우 !... 잤니?
삼순 (속으로 흠칫)... 그래! (그래놓고 인상 쓴다. 아우 몰라!)
현우 ... 쎔쎔이네. 차라리 잘 됐다.
삼순 (멈추어 본다)잘 됐다니? 뭐가?
현우 너희 사장이랑 헤어져.
삼순 뭐?
현우 넌 내 여자야. 헤어져.
삼순 !!!
79. 자하문 (동 밤)
-둥그런 문 아래에서, 푸른 조명을 배경으로, 패는 삼순과 맞는 현우의
실루엣이 보인다. 삼순은 백골단처럼 곤봉 같은 걸로 마구 패고 현우는
엉거주춤하게 두 팔로 막으며 맞는다. 모래시계에 흔히 나오던 장면 패러디.
삼순 (E)아직도 정신 못차렸지? 뭐? 니 여자? 내가 장난감이냐? 싫증나니까
팽개쳤다가 이젠 도로 갖고 싶니?
현우 (E)아! 삼순아! 진짜 아퍼! 아!
삼순 (E)당연히 아파야지. 너한테 두들겨맞은 내 가슴은 피멍이 들었어 이 나쁜
자식아.
-현우의 실루엣이 삼순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곤봉을 빼앗아 휙 던진다.
-2 단접이 우산이 저만치 날아간다.
현우 넌 비도 안오는데 우산은 왜 들고 다니니?
삼순 이럴 줄 알고 가져왔다 왜! 놔. 안놔?
현우 (눈에 힘주어 응시하며 60 년대 배우처럼)내 눈을 봐. 너 나에 대한 미련
조금도 없어?
삼순 영화 찍니?
현우 똑바로 봐. 너, 아직도 나 사랑해. 그렇지?
삼순 놀고 있네, 니가 신성일이냐?
현우 (아.. 김 샌다)
삼순 (팔을 뿌리치고 야무지게)사랑은 아냐.
현우 (본다)
삼순 미련도 아냐. 그냥... 그래, 내 청춘을 3 년동안 같이 한 사람인데 한순간에
없었던 일이 될 순 없잖아. 그 시간이 안타깝고, 씁쓸하고, 안쓰럽고...
그립진 않아.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현우 그거면 돼. 그걸로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삼순 (어이가 없다)채리는 어떡하구. 내일 약혼식이잖아.
현우 할거야 약혼식.
삼순 뭐?
현우 채리, 귀엽고 사랑스러워. 넌 편안하고.
삼순 !... 그래서. 채리랑은 결혼하고 나랑은 바람피겠다?
현우 바람이 아니라 연애지. 안들킬 자신 있어.
삼순 !... 미.친.놈.
현우 그래, 나 미쳤어. 그 날 그 자식이랑 있는 거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는 줄
알아? 피가 거꾸로 솟더라. 그 자식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어. 그때 깨달았어.
내가 아직도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삼순 아무데나 갖다붙이지 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만심이야.
현우 뭐든 내 생각은 한가지야.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거.
삼순 한번만 더 까불어? 채리한테 확 불어버릴 테니까. (확 돌아서서 간다)
현우 (보다가 여유롭게 소리친다)나 너 포기 안해! 다시 내 여자 만들거야! 꼭!
-삼순, 멈춘다. 기가 막힌다.
삼순 (안돌아보고 혼잣말)고이 보내줄려 그랬더니 기어이 염장을 지르는군.
그래, 내일 보자.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간다)
현우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80. 주차장
-약혼식을 알리는 팻말이 현관 앞에 서 있다. 테라스는 꽃과 화환으로 장식되어
있다.
-연이어 고급 차들이 들어오고 잘 차려입은 하객들이 내린다.
-어느 차에서는 채리 부모가 내린다. 진헌이 공손히 인사하고 채리 부모가
진헌을 무척 반가워한다.
81. 베이커리실
-삼순, 작업에 몰두해 있다. ‘슈 데커레이션 케잌-Croquembouche’의
밑작업 중이다.
-슈 데커레이션 케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빠르게 보여진다.
-인혜, 캐러멜 만들기 같은 간단한 일을 하다가 힐긋 삼순을 본다. 말
붙이기가 어려울 만큼 굳은 얼굴이다.
82. 주차장
-기사 딸린 고급차 한 대가 들어온다. 차가 멈추자 예복을 멋있게 차려입은
현우가 내리고 뒤이어 내리는 채리를 에스코트한다. 약혼식 드레스를 입은
채리, 눈부시게 아름답다.
83. 베이커리실
-80 퍼센트 쯤 완성된 된 케잌에 작업하고 있는 삼순.
채리 (E)언니.
삼순 (돌아본다)
채리 (빙그르르 돌더니)어때? 나 이뻐?
삼순 (남의 속도 모르고 참 가지가지 한다)... 이뻐.
채리 정말?
삼순 원래 이뻤는데 드레스 입으니까 더 이쁘다.
채리 어머, 나 이쁜 거 알고 있었네?
삼순 (참 골고루 한다)
채리 (어깨 너머로 케잌을 힐긋 보고는)저거야?
삼순 응.
채리 (다가와 케잌을 훑으며)괜찮은데? 난 당연히 3 단 케잌일 줄 알았는데
특이한 걸?
삼순 프랑스에서 결혼식이나 축하석상에 자주 등장하는 거야.
채리 오오- 외국물 먹고 온 보람이 있네? 근데 난 약혼하는데 언닌 어떡하냐?
삼순 뭐가.
채리 희진언니라구 진헌이 오빠 첫사랑이 돌아왔거든. 알지? 남자들한텐 첫사랑이
특별하다는 거. 거기다 둘은 좀 유별났지, 고 3 때부터. 덕분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희진언니가 돌아왔으니 삼순이 언니는
바람 앞에 등불이랄까? 뭐 그렇다는 거지. (시큰둥한 삼순의 표정에)안놀래?
삼순 희진씨 알어.
채리 ?! 알고 있었어?
삼순 만나서 얘기까지 했는걸? 참 이쁘고 상냥하더라.
채리 (어? 이상하다. 갸웃)근데두 진헌오빠가 계속 만나재? 안채였어?
채리 넌 약혼하는 애가 외간남자한테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니.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봐.
채리 흥, 그래두 희진언니한텐 안될걸? 조족비혈이라고 알까몰라? 희진언니한테
대면 언닌 새발의 피야.
삼순 조족비혈이 아니라 조족지혈.
채리 뭐든! (쌩 나간다)
삼순 (기분 더럽다. 행주를 던지며)쌍으로 염장을 지르네 이것들이? ... 그래,
삼순이 매운맛좀 봐라. (결의에 차서, 밑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든다)
84. 홀
-하객들이 모두 착석해 있다.
사회자 그럼 지금부터 민정태씨의 차남 민현우군과 장영철씨의 차녀 장채리양의
약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비신랑신부가 입장할 때는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예비신랑신부 입장!
-현우(우측)와 채리(좌측)가 팔짱을 끼고 하얀 주단 위를 걸어온다. 하객들이
박수를 쳐준다. 행복한 예비신랑신부의 모습이다.
85. 베이커리실
-마지막 작업만 빼고 완성된 멋들어진 케잌. 받침대까지 해서 삼순의 키를
훌쩍 넘어간다. 그 옆에 서서 홀을 내다보는 삼순.
-현우와 채리가 약혼반지를 교환한다.
삼순 ...
-반지를 끼워준 현우가 채리의 볼에 가볍게 키스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삼순, 옛생각이 난다.
86. 파리시내 비스트로(밤. 회상)
-파리 뒷골목의 전형적인 비스트로. 인종이 다양한 손님들로 꽉 차있다.
담배연기와 음악과 사람들의 잡담소리, 시끄러운 생기가 넘친다.
-어느 작은 테이블에 마주앉은 삼순과 현우.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온갖
호르몬이 넘쳐날 때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아무 말도 않고 턱 괸채
서로의 눈만 쳐다본다. 사랑이 충만한 눈빛들...
-현우가 ‘잠깐만’ 하고는 일어나 빠로 간다. 주인인 듯한 프랑스 아저씨에게
뭐라고 몇마디 한다. 주인이 껄껄 웃으며 삼순을 한번 보더니 현우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음악을 끈다. 한층 조용해진다. 주인이 종 같은 걸
울려 손님들의 시선을 끈다.
주인 (불어)이 청년이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현우에게 꽂힌다.
-삼순, 의아하다.
현우 (삼순을 가리키며, 불어)저 아름다운 여인이 제 여자친구입니다.
-손님들이 모두 삼순을 본다.
-삼순(여기까지는 대충 알아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귀엽게 브이자를
그려보인다.
현우 (불어)오늘 밤 제 여자친구한테 첫키스를 할 겁니다!
-손님들이 와-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주고 테이블을 두드리고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이건 못알아들은 삼순이 어리둥절해한다.
-현우가 삼순에게 이리 나오라고 손짓한다.
-삼순, 뻘쭘해하며 나간다.
삼순 (속닥인다)뭐라 그런 거야? 나 아직 그 정도 불어실력이 (안돼)
-재빨리 허리를 안고 키스하는 현우.
-흡! 놀라는 삼순.
-손님들이 환호한다.
-삼순도 현우를 끌어안고 키스에 응한다.
87. 베이커리실
-삼순의 눈가에 이슬같은 눈물이 맺혀있다.
삼순 (Na.)커피 한 잔의 열량은 5 키로칼로리, 키스 5 분의 열량과 같다. 우리가
3 년동안 나눈 키스의 열량은 얼마나 될까? 사랑의 열량은... 그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어디로...
-진헌이 문가로 다가와 안을 들여다본다. 삼순의 등만 보인다.
진헌 괜찮아요?
삼순 (놀라서 얼른 눈물을 슥슥 닦는다)
진헌 ?... 김삼순씨.
-삼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서지만 이미 운 흔적이 남아있다.
삼순 네.
진헌 괜찮냐구요.
삼순 뭐가요.
진헌 (운 걸 눈치 채고는)... 케잌 훌륭하네요. (간다)
삼순 ...
-삼순, 눈물을 마저 깨끗이 닦고 짜주머니를 집어들고 글귀를 쓴다.
-'축 약혼 민현우 장채리’
-마지막으로 케잌 상단에 신랑신부 인형을 앉힌다. 케잌이 완성되었다.
88. 홀
사회자 그럼 케잌커팅이 있겠습니다.
-웨이터들이 케잌을 밀며 들어온다.
-하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수근댄다.
-채리는 뿌듯해하고 현우는 놀란다. 삼순이가 이렇게 멋진 케잌을 만들어
주다니...
-케잌 상단의 신랑신부 인형이 웃고 있다.
사회자 두 사람의 다산과 번영을 기원하는 뜻으로 축하케잌을 자르겠습니다. 예비신랑
신부 일어나 앞으로 나와주세요.
-현우와 채리가 일어나 케잌 앞으로 온다. 불이 꺼진다. 어두운 홀에 촛불만
빛을 발한다. 현우와 채리, 서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더니 후- 불어 초를
• 끈다. 박수 속에 불이 켜지고 웨이터가 샴페인을 터트린다. 현우와 채리,
환하게 웃으며 케잌을 자른다.
89. 재래시장
-<삼순이네 방앗간>이라는 간판이 붙은 방앗간이 보인다.
-엄마 봉숙이 돈 몇만원을 받고 일수 수첩에 도장을 찍는다.
아줌마 얼마나 남았어?
봉숙 이제 시작인데 뭘 물어. 그리구 저 간판 안띨거야? 왜 남의 집 딸 이름을
달고 있어?
아줌마 20 년 넘게 달고 있던 간판인데 어떻게 뗘.
봉숙 그럼 이름값을 내든가.
아줌마 방앗간 팔면서 간판값도 따로 받어? 웃겨 정말.
봉숙 꼭 저 간판 땜에 시집 못가는 거 같잖아.
아줌마 핑계는... 청양고추 어때. 제대로 맵지?
봉숙 ? 청양고추?
아줌마 어젯밤에 삼순이가 청양고추 사갔잖아 두 근이나.
봉숙 ? 삼순이가 왜?
아줌마 김치 안담갔어? 젤-루 매운걸로 달라 그러던데?
90. 홀
-이미 아수라장이다. 각자 개인접시에 나누어진 케잌을 먹던 하객들이
마치 불닭이라도 먹은 것처럼 매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하아하아
입에다 부채질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아이들은 울어제끼고 난리가 났다. 채리도 얼굴이
벌개져 켁켁 기침을 해대더니 현우 발치에 엎드려 구토를 한다. 현우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입이 매워 죽을지경이다.
현우 (문득 깨닫는다)!... 삼순이 너! (주방쪽을 확 쳐다본다)
91. 베이커리실
-흥! 득의양양한 삼순.
삼순 어떠냐, 삼순이 매운 맛이. 그러게 왜 쌍으로 염장을 질러. 꼴 조옿다!
인혜 (E)언니. 언니!
삼순 (정신 차리고 돌아본다)어?
인혜 신부어머니가 잠깐 보자는데요?
삼순 나를? (얼른 홀을 내다보면)
-삼순의 상상이었을 뿐, 하객들은 케잌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다.
92. 홀 일각
-채리와 채리엄마가 삼순을 칭찬한다.
채리모 너희 아버지가 생전에 그렇게 떡을 맛깔나게 만드시더니 니가 아버질 닮았나
부다.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케잌은 처음이다. (돈봉투를 손에 쥐어주며)
수고했으니까 용돈 해.
삼순 (펄쩍)어머 아녜요 아주머니.
채리모 그냥 받어, 어릴 때도 가끔 받았잖아.
채리 그래 받어.
삼순 (기분 참 그렇다)
채림 그나저나 삼순이 너도 빨리 시집을 가야될텐데. (손을 다독여주고 간다)
채리 고마워 언니. 케잌 괜찮았어.
삼순 (부어서)...
채리 우리 결혼식 케잌도 미리 예약해놀게. 괜찮지?
삼순 (어이없지만)그래...
채리 나중에 밥이나 한끼 살게. (간다)
삼순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현우 (E)삼순아.
삼순 (이건 또 뭐야. 소리나는 쪽을 본다)
현우 (반대쪽에서 다가와)그 실력으로 여기 있긴 아깝지 않니?
삼순 (정말 지랄같은 하루다)신경 꺼.
현우 샵 하나 차려줄까?
삼순 (기가 막힌다)!... 벌써 돈 많은 유부남행세야?
현우 너무 진부했나? 뭐 원하는 거 없어?
삼순 (쏘아보는데 눈물이 핑 돈다)
현우 ?...
삼순 (목이 메여)너... 자동차 뒤꽁무니에도 표정이 있는 거 알어?
현우 ?...
삼순 초보들이 살짝 끼어들 땐 깜빡이가 얼마나 수줍어하는지, 그 운전자가 지금
얼마나 땀 빼고 있는지 다 보여. 난폭한 운전자는 깜빡이도 난폭해. 뒤꽁무
니에 ‘나 건들지 마’ 다 써있다구. 쇠붙이로 만든 차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 추억까지 더럽히지 말고 멋있게, 폼나게 떠나. 뒷모습
아름답게. (돌아서다가 멈칫)
-진헌이 보고 있었다.
-삼순, 너무 창피하고 낭패스럽다. 눈물 훔치며 뛰어간다.
-진헌, 현우를 본다.
현우 (여유롭게)오늘 약혼식 훌륭했습니다.
진헌 (말은 점잖지만 가시가 박혔다)방금 약혼하신 분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현우 (피식)두 분이 너무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 충고 한마디 했습니다.
진헌 걱정이 지나치시군요.
현우 삼순이 일이니까요.
진헌 그런 걱정은 채리한테나 하시죠.
현우 그러다 한대 치시겠습니다.
진헌 (확 멱살을 틀어쥔다)
현우 !...
진헌 저 여자 또 건들면, 그때 치죠.
현우 오호- 샌님인줄 알았는데 꽤 터프하시네요.
진헌 (거칠게 놓는다)
현우 맞기전에 빨리 도망가야겠네. (찡긋해보이고 간다)
진헌 (참 맘에 안든다)
93. 화장실
-고춧가루가 변기에 쏟아진다.
-삼순, 눈물 그렁한 채 고춧가루를 탈탈 털어넣는다. 매워서 기침도 한다.
물을 내린다. 그리고 눈물도 닦고 코도 풀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94. 주차장
-현우와 채리가 탄 차가 하객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난다.
-O.L
-밤. 네온의 불이 꺼진다.
-(E)피아노 소리.
95. 홀(동 밤)
-피아노 앞에 앉아 띵띵띵 건반을 두드리는 삼순.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중인데
잘 안된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와인을 홀짝거리면서 못치는 피아노를 계속
두드린다. 띵띵띵 띵띵띵... 어느 순간, 똥똥똥 건반 튕기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면 진헌이 건반 하나를 튕기고 있다.
삼순 뭐해요, 듣기 싫게.
진헌 듣기 싫은 건 그쪽이 더한데?
삼순 (삐죽거리고는 다시 띵띵띵)
진헌 어릴 때 피아노 안배웠어요?
삼순 셋째딸의 숙명이에요. 언니들한테 치여서.
진헌 비켜봐요.
-진헌이 옆에 앉는다. 삼순이 얼결에 자리를 내준다.
진헌 내 손 보고 그대로 따라해요. (건반을 친다)
삼순 (시큰둥하게 보기만)
진헌 안쳐요? 케잌이 훌륭해서 특별레슨해주는 건데?
-삼순, 건반을 치기 시작한다. 눈이 진헌의 손과 자기 건반을 정신없이
왔다갔다한다.
-잘 안맞는다. 불협화음이다. 진헌이 멈추자 삼순도 멈춘다.
진헌 발로 쳐요?
삼순 이렇게 긴 발가락 봤어요?
진헌 (손을 흘깃 보더니)손도 못생겼네.
삼순 (흘기며)10 년 가까이 밀가루 반죽하고 오븐 만져봐요. 손이 남아나나.
진헌 (그럴 수도 있겠군. 거만하게 수긍하더니)이번엔 잘 해요? (다시 친다)
삼순 (따라서 친다)
-이제 얼추 맞는다. 점점 잘 맞는다.
삼순 어 된다 된다! 와 이렇게 하는거구나!
진헌 (피식 웃는다)
-신나게 젓가락 행진곡을 치는 두 사람...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진헌이
대뜸 입을 연다.
진헌 아까 왜 울었어요?
삼순 !...
진헌 민현우씨, 아직도 좋아해요?
삼순 ... 아뇨.
진헌 근데 왜 울어요.
삼순 꼭 대답해야 돼요?
진헌 뭐 그건 아니지만...
삼순 ... 기가 막혀서 울었어요.
진헌 ...
삼순 사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어쩌면 내가 생각하던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가
막혀서요...
진헌 그걸 이제 알았어요?
삼순 (흘기며)잘난 척은... (와인을 마신다)
진헌 그거 월급에서 깔 거예요.
삼순 (읍! 넘기지도 못하고)
진헌 좀 나눠주면 안깔수도 있는데.
삼순 (꼴깍 삼키고는)참 나, 술 달란 소릴 희한하게 하네. 기다려요.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좋은 술은 없어요. 다 재료로 쓰다 남은 거니까.
진헌 (가벼운 곡을 연주한다)
96. 베이커리실
-재료로 쓰다남은 브랜디병을 꺼내는 삼순. 냉장실에서 남은 케잌도 꺼낸다.
-피아노 소리가 감미롭게 들린다.
97. 주방
-삼순, 너트류를 챙기고 새 잔도 챙긴다. 모두 들고 나가다가 멈춰 홀을
바라본다.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다. 피아노 치는 진헌의 모습도 참 보기 좋다.
98. 홀
-피아노 위에 술병과 술잔들이 올라앉았다.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술 마시는 두 사람. 적당히 취했다.
삼순 농구요? 할아버지 땜에 집에 있기 싫어서 시작했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니까
딱 하기 싫어지더라구요.
진헌 (피식 웃는다)
삼순 그리고 또 뭐가 있었지? 아 이름! 왜 이름을 희진으로 지었냐 하면요,
울언니가 둘인데 둘이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거든요? 난 그냥 따라다니면서
구경만 하구. 사실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하질 못해서 나까지 배울 처지가
아니었거든요.
진헌 ...
삼순 근데 하루는 선생님이 날 부르시더니 젓가락 행진곡 있잖아요, 아까 그거,
글쎄 그걸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언니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게 불쌍했나
부죠 끅. 그 선생님 이름이 희진이었어요, 강희진. 미니스커트에 가죽부츠
신고 참 이뻤는데...
진헌 (피식)그래서 김희진이에요?
삼순 넵.
진헌 난 또...
삼순 무시하지 말아요, 난 그 선생님이 이상형이었으니까.
99. 테라스
-꽃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데크 위로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진다.
100. 홀
-피아노 위에 술병이 하나 더 늘었다.
-그만큼 더 취해 조잘대는 삼순.
-진헌은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삼순의 옆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문득문득
미소 짓는다.
삼순 난 뭐 그렇게까지 거창한 걸 바라진 않아요. 시작은 한 다섯평? 테이블은
뭐 서너개쯤? 한국에서 가장 맛좋은 케잌, 하면 아 거기! 이런 가게를 낼
거예요. 내가 만들고 싶은 과자랑 내가 상상하는 케잌이랑 내 맘대로 만들
거예요. 잘 팔리면? 좋죠. 안팔리면? 내가 먹죠.
진헌 (피식)굶어죽진 않겠네요.
삼순 빙고! 인생 뭐 별거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는 거지.
진헌 30 년이면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인생 별 거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삼순 ... 나 있잖아요... 파리 가는 비행기표랑 학비 마련하느라고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거든요? 왜 그런 줄 알아요?
진헌 ...
삼순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거든요.
진헌 ?...
삼순 인생 별 거 없다는 말, 우리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에요.
아버진 50 평생을 그렇게 사셨어요, 방앗간 김사장으로 불리면서... 근데 난
가끔은, 아주 가끔은 말예요... 주목받는 생이고 싶거든요?
진헌 ...
삼순 살아보니 인생 별거 있더라, 특별하더라... (멋적은 듯 후후 웃더니)혹시
모르잖아요. 내가 만드는 과자랑 케잌이 날 그렇게 만들어줄지.
진헌 적어도 이 레스토랑에선 특별해요.
삼순 ? 칭찬이에요?
진헌 여직원 중에 가장 나이 많고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
삼순 (이런 세상에)!... (꽥)어머님이 꽈배기공장 사장 맞죠!!!
101. 테라스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102. 홀
-피아노 위의 술병이 하나 더 늘었다.
삼순 끅. 이제 사장님이 대답할 차례예요.
진헌 (뭘요? 본다)
삼순 유희진씨요.
진헌 ... (외면하며 건반을 퉁 친다)
삼순 왜 그렇게 화가 났는데요?
진헌 (통통통 건반을 친다)
삼순 난 묻는 말에 다 대답했는데 왜 그쪽은 안해요?
진헌 ... 다 끝났어요.
삼순 ?...
진헌 다 끝났으니까 묻지 말아요.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삼순 ...
-진헌이 치는 곡이 가닥을 잡아간다.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
삼순 어, 이 노래도 알아요?
진헌 알면 안돼요?
삼순 아주 오래된 곡인데.
진헌 좋은 곡이니까.
삼순 이거 가사 누가 썼게~요.
진헌 모르죠.
삼순 헤르만 헤세.
진헌 그래요?
삼순 네. 헤르만 헤세 시에다 서유석 아저씨가 곡 붙인 거예요.
-삼순, 허밍으로 흥얼거리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삼순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며 얼싸안고 기어이 부셔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보- 오오오 오 오 오오오 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진헌, 연주하며 본다. 이 여자가 귀엽다.
-필 받은 삼순, 노래를 제대로 부른다.
삼순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장난하고
내마음 고민에 잠겨있는 돌보지 않는 나의 여인아 나의 사람아...
보- 오오오 오 오 오오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연주도 노래도 끝난다. 삼순, 멀쓱해서 생크림케잌을 먹는다. 입가에 크림이
묻는다.
삼순 미안해요, 반주만큼 못불러서.
진헌 노래만 잘하는데요? (하다가 쿡 웃음 나오는 걸 참는다. 삼순의 입가에 묻은
크림이 우습다)
삼순 이번엔 뭐예요? 욕이에요, 칭찬이에요?
진헌 칭찬이에요.
삼순 정말로?
진헌 정말로. (웃음이 번진다)
삼순 ? 근데 왜 웃어요?
진헌 (웃음 참느라 입 꼭 다물고 절레절레)
삼순 지금 비웃는 거죠!
진헌 (도리도리)아녜요 하하하...
삼순 비오는 날 웃으니까 비웃음이지!
진헌 (푸하하 터진다)
삼순 웃지 말아요!
진헌 (한번 터진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삼순 웃지 말라구!
진헌 (웃음 참아가며 자기 입가 가리키며)크림 묻었어요.
삼순 (? 하더니 반대쪽 입가를 닦는다)
진헌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닦아준다)
-삼순, 놀라서 몸을 뺀다.
-진헌, 아차 싶어 얼른 손을 놓는다.
진헌 ...
삼순 ...
-(E)빗소리...
삼순 (어색한 분위기를 못참겠어서 기계적으로 말한다)서유석 아저씨 말예요.
진헌 (역시 어색한 분위기에 기계적으로 대답한다)네.
삼순 학교 다닐 때 핸드볼 선수였대요.
진헌 네에.
삼순 청소년 국가대표두 하구.
진헌 네에.
삼순 참 특이하죠.
진헌 네.
삼순 ...
진헌 ... 그만 가죠.
삼순 네.
-진헌, 일어난다.
-삼순도 일어난다. 피아노 의자를 돌아나오다가 잘못 걸려서 휘청한다.
-진헌이 재빨리 허리를 잡는다.
삼순 !...
진헌 !...
-삼순, 빠져나오려는데 진헌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진헌이 지그시 바라본다.
-삼순, 가슴이 또 쿵쾅거린다.
-진헌이 다가온다.
-삼순의 눈동자가 마구 굴러다닌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진헌의 입술이 가까워진다.
-삼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진헌 (나즈막하게 속삭인다)오늘은 왜 눈 안감아요.
삼순 !...
-그게 신호이기라도 한 양 삼순이 와락 입을 맞춰버린다.
-진헌의 놀란 눈동자!
-6 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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