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1
서해대교 / 미연의 차 안 (이른 새벽)
인적이 없는 도로. 새벽의 안개를 가르며 고급 스포츠카 한 대가 질주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 미연의 차 안
거의 텅 빈 휴게소 주차장에 미연의 차가 들어선다.
뿌연 차 유리 너머로 엉켜 있는 미연과 태주. 열렬하게 키스 중이다.
미연, 적극적으로 태주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태주의 몸이 운전석 쪽으로 밀리고 미연은 계속 태주를 애무하며 운전석 쪽으로 넘어가려는데, 이때 사이드에 허벅지가 부딪혀 걸리는 미연.
미연 아야!
태주 왜?
미연 (짜증스런) 사이드 채우지 말라니까.
미연, 책망하듯 태주의 가슴을 가볍게 치고 조수석에 돌아가 앉는다.
태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는데 미연, 갑자기 차에서 내린다.
미연을 돌아보는 태주.
동, 고속도로 휴게소 / 미연의 차 안
태주, 자동차에 기대어 무료한 듯 서 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미연, 태주에게 다가온다.
태주 택시 불렀어.
미연 ?
태주 (차키를 내밀며) 택시 오면 갈께. 나 출근해야 되잖아.
미연, 태주를 무시하고 조수석에 올라탄다.
어쩔 수 없이 운전석에 타는 태주, 다시 차키를 내미는데 미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미연 택시는 내가 타고 갈께. 이거 타고 가, 태주씬.
태주 ?
미연 이별 선물이야. 맘에 들어 했잖아.
태주 ! .....
미연 어차피 결혼하면 이 나라 떠나는데, 차까지 싸갖고 갈 수도 없고. 자기가 가져.
태주 (차 키를 만지작거리다가) 고맙긴 한데...., 내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아?
미연 ?
태주 선물 하려면 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가면서 하는 거야. (미연의 손에 키를 쥐어준다.) 그 월급 몽땅 쏟아 부으면서 이 차 하나만 모시고 살라구?
미연 내가 줄께. 차 유지비.
태주 우리 오늘 헤어지는 걸로 아는데?
미연 (열쇠를 태주 손에 쥐어준다.) 좀 미루지 뭐. 가끔 휴가 내서 비행기 타고 와. 국경 넘나들면서 연애하는 것도 좋잖아. 중간에 딴 여자 만난다고 해도 그냥 봐 줄께.
태주와 미연, 잠시 서로를 마주 보다가 뜨겁게 키스한다.
잠시 후 입술을 떼는 태주, 아직 키스에 미련을 둔 미연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고는 그녀의 손에 차키를 쥐어준다.
태주 나 준법정신 강한 거 알지?
미연 .....
태주 오늘, 여기까지만..., 유부녀는 안 땡겨.
태주, 차에서 내린다. 뒤따라 차에서 내리는 미연.
미연 태주씨!
이때 먼 발치로 택시가 들어서서 주차장 한 곳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하는 것을 보는 두 사람.
태주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잘 살아! 쓸데없이 딴 생각하지 말고.
미연 .....(어느 새 눈물 흘리고)
태주 (쓸쓸한 미소로 미연을 돌아보며) 미연아! 결혼, 축하한다!
도로 / 모범택시 안 (아침)
도로의 달리는 차들.
차창을 열고 바람을 맞고 있는 태주.
창문을 닫고 품 안에서 상자를 꺼낸다. 시계를 꺼내보는 태주, 손가락으로 시계를 톡톡 두드린다.
태주 (창 밖을 보고 운전사에게) 저 앞이요, 저 건물 앞에 세워주세요.
태주의 오피스텔 건물 앞
건물 앞에 서는 택시.
택시에서 내리는 태주, 경쾌한 걸음으로 낡은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간다.
동,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태주가 내린다.
복도를 걸어가다가 멈칫하는 태주.
태주의 오피스텔 문 앞에 한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
여자 옆에는 커다란 여행 가방이 놓여 있고, 어깨엔 낡은 학생 배낭을 메고 있다.
태주가 가까이 다가가도 여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발로 바닥을 쿵 찍어본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할 수 없이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여자의 어깨를 흔든다. ‘여보세요....여보세...’
흔들림 때문에 뒤로 젖혀지는 여자(은수)의 얼굴.
남의 집 앞에서 과년한 여자가 입까지 헤벌리고 잠들어 있는 상황에 태주는 기가 막힌다.
게다가 여자의 머리가 젖혀지는 순간 태주의 손등에 묻은 이것은..., 여자의 입가에 번들거리고 있는 저것, 분명 바로 침이다. 에이, 더러워!
태주, 침 묻은 손등으로 (침도 닦을 겸) 여자 어깨를 흔든다.
그래도 침이 잘 안 닦이자 에라 모르겠다, 대놓고 여자 팔에 손등을 쓱쓱 문지르는데, 바로 그 순간 번쩍 눈을 뜨는 여자(은수).
은수와 태주, 동시에 놀란다.
은수, 헉! 하며 벌떡 일어나고, 태주도 반사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두 사람, 잠시 그 자세 그대로 서로를 탐색하듯 노려본다.
은수 (잔뜩 경계어린) 누.....누구세요?
태주 ....그 쪽이야말로 누굽니까?
은수 저...저요? (그제서야 느낀 듯 입가의 침을 헐레벌떡 닦는다.)
태주 (비위 상한다.)
은수 저는 한은수라고 하는데요..., 집 나간 동생 찾으러 어젯밤 군산에서 올라와..,
태주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 비켜요.
은수 예?
태주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거야!
태주, 은수를 살짝 밀치려는데 은수, 거칠게 저항한다.
은수 아저씨 집이라뇨? (경악하는) 그럼 같이 산단 말이에요!
태주 ?
은수 지..지수 어딨어요? 분명히 여기 있다고 했는데.., 우리 지수 어딨냐구요!
태주 나 그런 사람 모르거든요, 비켜요, 좀.
은수 서울 오피스텔에 있다고 할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어떻게 어른이 할 짓이 없어서 어린 여고생을 꾀어내요?
태주 뭐요?
은수 (잔뜩 경계의 눈으로 노려보며) 아저씨.., 인신매매범이죠?
태주 !
은수 (태수의 가슴을 있는 힘껏 밀치며) 우리 지수 어딨어요! 어따가 빼돌린 거예요!
태주 이 여자가 진짜!
태주, 화가 치민 나머지 은수를 밀치면서 금방이라도 칠 기세로 손을 들었다가 멈칫한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는 태주. 은수는 태주의 태도에 순간 겁에 질렸다.
태주 아가씨, 나 지금 바쁘거든. 빨리 들어가서 출근 준비해야 된다구!
은수 그럼 우리 지수는요! 분명히 여기 있다고 했단 말예요!
태주 (버럭) 도대체 있긴 누가 있다는 거야! .....(겨우 억누르고) 뭔가 잘못 알고 찾아온 거 같은데 못 믿겠으면 경비아저씨한테 가서 확인해봐. 됐지?
은수 그...그치만.....
태주 확인해보라니까! 비켜..., 안 비켜!
강한 의지를 보이며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은수.
태주, 그런 은수를 손가락 끝으로 슬쩍 밀친다. 당연히 은수는 꼼짝도 않는다.
두 사람의 눈싸움, 만만치 않다.
버티려는 은수를 손끝에 힘을 줘 결국 밀쳐내고는 열쇠를 꽂는 태주.
끝까지 태주에게 달라붙는 은수를 거칠게 밀치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쾅 닫히는 문.
은수 (문 두드리며) 이봐요! 이봐요!
은수, 난감한 얼굴로 문 앞에 붙은 룸번호를 본다.
은수 ***호, 분명히 맞는데! ....., (순간 놀란) 설마 다른 오피스텔?
은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옆에 놓인 여행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갑자기 배에 몰아닥치는 통증.
은수, 아픈 배를 꾹 누르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이른다.
버튼을 누르지만 도무지 움직일지 모르는 숫자판. 점점 참을 수가 없다.
‘안돼, 안돼’ 참으려 애쓰지만 이마에 진땀이 흐르고, 그나마 움직이던 엘리베이터의 숫자판은 또다시 멈춘다.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하던 은수, 복도를 홱 돌아본다.
그 복도 끝에 태주의 오피스텔이 있다.
태주의 오피스텔, 욕실
막 옷을 벗은 태주.
샤워기 물을 틀고 샴푸를 풀어 씻기 시작하는데, 이때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샤워기를 잠그는 태주. 무시하고 머리를 문지르는데 또다시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주 급박한 느낌이다.
태주의 오피스텔
머리에 거품기가 남은 채 수건을 걸치고 나오는 태주.
'누구세요, 누구...‘ 현관에 나가 문을 열다가 멈칫한다.
사색이 된 은수가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
은수 화...화장실!
태주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사정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은수.
태주 야, 야, 너 뭐야!
은수, 태주의 말에 아랑곳없이 전속력으로 욕실을 찾아 질주한다.
태주가 뒤늦게 쫓아갔을 때는 이미 은수는 욕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군 후다.
샤워하다가 난데없이 쫓겨난 꼴이 된 태주. 기도 안 막힌다.
태주 (욕실문 두드리며) 야! 너 뭐하는 거야! 당장 못 나와! 야, 야, 문 열어. 야!
동, 욕실
여전히 어깨에는 배낭을 멘 채로 변기에 앉아 있는 은수. 속이 비워지는 기분이 시원하다.
하지만 점점 고조되는 태주의 고함소리..., 쿵쾅거리는 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다.
뱃 속이 시원해질수록 점점 강하게 옥죄어 오는 불안초조감.
은수 (눈 꼭 감고) 죄송해요! 그..금방 나가요! 이제 다 됐거든요! 정말 죄송해요!
(문 소리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아악! 나간다니까요!
잠시 후, 눈을 뜨는 은수. 어느덧 밖은 조용해져 있다.
은수, 밖의 기척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을 내린다.
옷을 챙겨 입고 문을 살짝 여는 은수.
동, 오피스텔
주변을 살피며 나오는 은수. 예상과 달리 태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의아한 듯 둘러보는데 이때 은수의 눈앞을 가로막는 남자의 벗은 가슴팍.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데, 그런 은수를 태주가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고 있다.
은수, 태주가 무섭기도 하고 그의 반라차림이 민망하기도 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
태주 너....!
은수 (완전히 쫄았다.)
태주 너 뭐야!
은수 .....
태주 내 집에서 무슨 짓 한 거냐구!
은수 죄.....죄송해요.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구요.....(차마 말을 못하겠지만 할 수 없다.) .....너무 급했거든요!
태주 뭐?
은수 밤새 참았는데... (배를 움켜쥐며) 갑자기 요동을 치는 거예요.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잖아요. 태산 같은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중요한 순간...
태주 (기가 막힌) 중요한 순간?
은수 (애원하듯)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태주 나가!
은수 예?
태주 귀 먹었어! 당장 꺼지지 못해!
은수, 태주의 기세에 화들짝 놀라 뒤로 엎어진다.
화가 치민 태주가 넘어진 은수를 툭툭 발로 차면서 나가라고 윽박지른다.
태주 이제 아예 드러눕냐? 나가! 나가! 안 나가!
은수 나..나가요. 나간다니까요. 나간다구요!
겁에 질려 벌떡 일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은수. 너무 급히 나가는 바람에 현관에 둔 여행가방도 잊고 오피스텔을 뛰쳐나간다.
동, 복도
헐레벌떡 나오는 은수. 혹시나 태주가 따라올까 문을 닫고 급한 걸음으로 뛰어간다.
뒤따라 나온 태주는 계속 소리 지르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다가 그것도 안 되겠는지 비상계단으로 뛰어가는 은수.
동, 계단
계단을 마구 뛰어 내려오는 은수. 헉헉거리며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걸음을 늦추는 은수.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고, 자신이 한심하다.
은수 아씨! 쪽팔려 진짜! (한숨) ......(스스로 위로하듯) 그래도... 싸는 것보단 낫잖아?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간다.
오피스텔 건물 앞 / 근처 모처
건물에서 나오는 은수.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건물 앞 현판에 적힌 오피스텔 이름을 확인한다. ***오피스텔, 분명 같은 이름이다.
은수 ***오피스텔 ***호.... 분명히 맞는데....., 그 인간 진짜 인신매매범 아니야! ...(이내 고 개 저으며) 인상이 안 좋긴 해도 범죄형은 아니야... 지수 그 기집애가 팔려갈 애도 아 니고...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 듯 오피스텔 건물 앞 길 한 켠에 주저앉는다.
은수 아, 진짜 미치겠네!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고교 교실
수업 중인 교실. 맨 뒷좌석에 한 여학생(지수 친구)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이때 여학생 주머니에서 ‘드르륵’진동하는 핸드폰.
화들짝 잠이 깬 여학생이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꺼낸다. 액정의 ‘은수언니’를 확인하고 소리죽여 전화 받는 여학생.
여학생 여보세요....
오피스텔 근처 모처
은수, 전화하고 있다.
은수 글쎄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니까. 너 주소 잘못 가르쳐준 거 아니야?
고교 교실
여학생, 주변 눈치를 살피며 책상서랍에서 수첩을 꺼낸다.
지수의 주소가 적혀 있다.
여학생 (소리 죽여) 다시 부를 테니까 확인해보세요. ...서울시, **구, **동,
오피스텔 앞 모처
주소가 적힌 쪽지를 펴들고 확인하고 있는 은수.
은수 어,어...
여학생의 말과 쪽지에 써 있는 주소가 일치하고 있다.
고교 교실
여학생 ...오피스텔, 천사백.... 아! 아야! (허걱 놀란다.)
여학생의 귀를 잡아끌어 올리는 손. 교사가 험상궂은 얼굴로 여학생을 노려보고 있다.
그 바람에 여학생의 손에서 떨어지는 핸드폰.
오피스텔 앞 모처
은수 천사백..... 그다음 뭐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이민경!
다시 전화해보지만 전원이 나갔다는 멘트 뿐이다. 난감하다.
은수 (쪽지 보며 중얼중얼) 맞는 거야, 뭐야.....여기까진 정확한데....., 진짜로 그 남자가....
이때 은수, 자신의 눈 앞에 다가온 운동화 발을 의식한다.
뭔가 싶어 올려다보면 황당한 표정으로 은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지수다.
지수 여기서 뭐하냐?
은수, 잠시 멍하니 보다가 겨우 상황이 접수되자 반가움이 솟는다.
은수 지수.... 지수야! (벌떡 일어나 지수를 꼭 껴안으며) 여기 사는 거 맞구나! 맞았어! 다행이다, 다행! 난 너 팔려간 줄 알았잖아!
지수, 몸을 배배 꼬더니 거칠게 은수를 밀쳐낸다.
지수 뭐야, 징그럽게! 미쳤어!
이에 질세라 지수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때리는 은수.
지수 아야!
은수 이게 어디서 큰 소리야? 너 땜에 나, 길바닥에서 날 밤샌 거 알어? 쬐끄만 게 밤새 어디갔다 지금 기어들어오는 거야?
지수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나 가출한 거 몰라?
은수 아니, 이게 진짜...
지수 나, 절대, 다시는, 무슨 일 있어도 군산엔 안 가. 그러니까 헛수고 하지 말고 그냥 가라. (돌아서 가려는데)
은수 너 왕따 당한 게 내 잘못이니? 니네 엄마 잘못이야!
지수 .....!
은수 니가 하도 칙칙하고 이상하게 구니까 친구들한테 따 당한 거 아니야! 이게 어따대고 화풀이야, 진짜!
지수 (아픈 곳을 찔린 듯 야속한 눈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순간 심했다 싶다.) 아, 어쨌든 너 데리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지수 ?
은수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말래. 그깟 학교 뭐 대단한 벼슬이냐고!
지수 거짓말!
은수 정말! 니네 엄마가 분명히 그랬어. 그래서 이렇게 내가.....
은수, 말을 멈춘다. 때마침 오피스텔에서 태주가 급하게 나오고 있는 것.
깜짝 놀란 은수는 혹여 눈에 띌까 얼굴을 가리며 건물 한 켠 벽에 몸을 붙인다.
태주는 그런 은수를 보지 못한 채 급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태주의 뒷모습을 힐끗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은수.
지수가 그 모습을 보고 은수에게 다가간다.
지수 야! 뭐하는 거야?
은수 악, 깜짝이야! (지수임을 확인하고)..... 저..저 사람... 모르니?
지수 (의아한 듯 태주의 뒷모습을 본다.)
은수 .......
지수의 오피스텔
구석에 낡은 슬리핑백과 책 몇 권이 굴러다닐 뿐, 아무런 집기도 없이 휑하니 비어 있어 을씨년스런 분위기마저 풍기는 실내다.
영 실망한 얼굴로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은수.
은수 ......서울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산다길래 난 또 무슨 신데렐라라도 된 줄 알았지. 이건 뭐......, 거의 노숙자 수준이네. 지붕만 있다 뿐이지 길바닥에 나앉은 거나....
지수 (겉옷을 벗으며) 넌 그런 정신상태가 틀려먹었어. 신데렐라 참 좋아해요..., 유치하긴!
은수 (말 멈추고 못마땅한 눈으로 지수를 째려본다.) 저 쬐끄만 게 말끝마다 너래.. 어쨌든...., 설명해 봐, 이 집 어떻게 된 거야?
지수 (슬리핑백을 꺼낸다.) 내 열혈팬이 집 나갈 때까지 있으랬어. 어차피 비어있다구.
은수 뻥치지 말구.
지수 이래뵈도 나, 매니아층 꽤 두꺼운 통신작가거든? 못 믿겠으면 말던지.
은수 집이 언제 나가는데?
지수 부동산 사정이야 모르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은수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지수 진짜 노숙자. (슬리핑 백에 들어간다.)
은수 건 뭐야? ....... (신기한) 침낭이구나, 이거. 야, 나 실제론 첨봐..., 이것도 얻은 거야?
지수 ......(질문 무시하고 지퍼 올리느라 끙끙댄다.)
은수 뭐 할려 그래?
지수 (지퍼 올리느라 끙끙대며) 피곤해서 잘라 그런다.
은수 너 또 밤새 PC방에서 그 인터넷 소설인지 뭔지 쓰다 온 거지?
지수 (끄덕인다.)
은수 (지퍼 올리는 걸 도와준다.) 진짜로 뭘 쓰긴 쓰나 보네. 이런 집 구해주는 팬도 있구... 야, 그래두 밤 꼴딱꼴딱 새는 짓은 하지 말라 그랬지. 너 그러다가 또... (지수와 시선 마주치자 말 멈춘다. 지수를 보는 시선이 짠하다.) .....넌 이렇게 사는 게 좋니?
지수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잖아.
은수 어쨌든 이제 밤새는 짓은 하지 마?
은수, 안된 시선으로 지수를 보는데 이때, 걸려 있던 지퍼가 갑자기 팍 올라가는 바람에 지수의 턱이 찝히고 만다.
지수 악! 야! 뭐야!
은수 어, 미안 미안.... !!헉!
은수,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멍해진다.
은수 어..어떡해!
지수 ?
은수 가방....., 내 가방!
빌딩가
택시에서 내리는 태주. 회사 건물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태주 회사 (아이비 프로 Ivy pro.) 건물 로비
급하게 들어서는 태주.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지만, 아슬아슬하게 닫혀버리고 만다.
태주, 비상계단으로 뛰어간다.
아이비 프로 복도
비상계단 쪽에서 막 뛰어 나오는 태주. 바삐 걸으면서도 능숙한 손길로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헤어스타일이며 옷차림 모두 완벽한 차림새다.
동, 회의실
5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 진행 중이다.
호영 브랜드 런칭쇼를 호텔에서 진행하는 거에 대해서 클라이언트도 일단 만족스런 반응입니다. 새 브랜드의 고급스런 이미지랑 잘 부합된다는 거죠.
이야기 도중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태주가 조심스레 들어선다.
머리가 유난히 훤한 이부장, 못마땅한 눈으로 태주를 한번 노려본다.
일동에게 미안하다는 듯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는 태주.
호영, 태주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낸다.
호영 초대할 vip 선정은 그쪽 기존 고객 중에 선별하기로 했구요, 문제는 행사를 치를 호텔인데, 그건 오늘 미팅해볼 겁니다.
부장 좋아. 나중에 미팅결과 보고하고, 오늘은 이만 끝내지.
직원들 분주하게 서류 등을 챙기는데
부장 (날카로운) 야, 프리랜서!
모두들 의아한 듯 부장을 본다.
부장 (태주를 보며) 네 출근시간은 어째 허구헌 날 고무줄이냐? 이 참에 진짜 프리하게 살아보고 싶어!
태주 죄송합니다.
부장 젊은 놈이 아침부터 눈알이 벌개가지고 말이야.., (태주를 탐색하듯 보며) 너 밤새 뭐하다 왔냐?
태주 .....(부아가 치밀지만 애써 웃으며) 밤새 잘 자다왔습니다. 부장님.
부장 (못마땅한 듯 태주를 위아래로 훑으며 기분 나쁘게 툭툭 친다.) 지각은 했어도 스타일은 아주 훌륭해..? 스타일은 절대 지각할 수 없다 이거냐, 응?
태주 .....(참는다.)
부장 사내새끼가 겉만 뻔지르르해가지고선.... 제대로 일해서 밥 벌어 먹고 살 생각이 있는 건지, 어디서 여자나 후릴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그 머릿 속에 뭐가 들었는 지 모르겠단 말야.....너 솔직히 말해봐. 또 밤새 기집애랑 뒹굴다 온 거지? 그렇지?
이번엔 또 어떤 기집애냐, 엉?
태주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부장님.
부장 뭐?
태주 아무리 상사지만 부하직원 사생활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실례 아닌가요?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재빨리 회의실을 나가는 직원도 있고, 힐끗힐끗 눈치 보는 직원도 있다. 호영, 태주를 친다.
호영 (소리 낮춰) 야야, 너 이 자식 왜 이래...
부장 실례? 야 이 새끼 봐라, 네 놈의 그 사생활 땜에 회사가 피해 받고 있는데 실례? 나나 되니까 너 같은 놈...
태주 로즈가든 마담이 (새끼손가락 들어 올리며) 부장님 이거라면서요?
부장 !! 뭐?
태주 서비스 엉망에 터무니없이 술값만 비싼 거 다 아는데, 거래처 접대 때마다 꼭 그 집에 가는 거, 그건 부장님 사생활이 회사에 피해주는 거 아닙니까!
부장 뭐라구? 이..., 이 놈의 자식이! (태주의 멱살을 잡는다.)
호영 (겨우 부장을 떼어 놓으며) 야, 너 미쳤어! 부장님..., 이 놈이 아직 잠이 덜 깼나봅니다. 아직 꿈꾸고 있나봐요.
태주 (옷 매무새 다듬으며) 그에 비하면 20분 지각은 양호한 편이죠. 그리고 스타일이야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쩝니까. (부장의 양복 깃을 한번 만져보며) 부장님 거 절반 값도 안되는데, 제가 입으면 그대로 명품이거든요. (한심하다는 듯 부장의 아래위를 한번 훑으며) 정 부러우면 운동 좀 하시든가. (유유히 회의실을 나간다.)
부장 저..저..저 자식......, 야, 너 당장 나가 이놈아! 저 새끼, 콱 잘라버려!
호영, 부장을 만류하느라 정신없다.
동,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 있는 태주. 잠시 후 호영이 들어와 태주 옆에 나란히 선다.
호영 너 약 먹었냐? 왜 긁어 부스럼이야? 부장 저러는 거 하루이틀이냐?
태주 .....진작에 이부장 탈모 클리닉에 보내라고 했지.
호영 뭐?
태주 가발이라도 하나 장만해주든지 해야지 원, 머리털 빠지더니 부쩍 눈에 불을 켜고 날 잡는다. .....잘 생긴 게 그렇게 죄냐.
호영 !? (황당한 눈길로 태주를 본다.) 중증이다...
태주, 호영의 눈길에 아랑곳없이 세면기 쪽으로 간다. 거울 속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머리를 다듬는 태주.
태주 (혼잣말) 아침부터 똘아이 기집애 땜에 기분 싹 잡치더니.., 아무래도 일진 불길해!
호영 (세면기에 다가와) 똘아이? 건 뭐야? (순간 번쩍) 새 여자?
태주 ....(못마땅한 듯 호영을 쏘아보고는 손을 씻는다.)
호영 (손 씻으려다 태주의 손목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태주의 손목을 잡는다.) 야! 자식 이거! (시계를 살피며) 어디 거야, 어디...., 야.., 값 좀 나가겠는데? (부러워죽겠다는 듯) 그 똘아이 기집애구나, 그치?
태주 (호영의 손을 뿌리치고 손을 마저 씻는다.)
호영 야, 강태주.... 현대는 정보 공유의 시대야. 좋은 정보일수록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많이~ 나눠 갖자! 그거 알지, 그지?
태주 몰라.
호영 어떻게 하면 골라골라 돈 많고 나사 빠진 여자만 만나는 거냐, 제발 그 비법 좀 공개해라. 나도 인생 좀 쿨하게 즐기며 살아보자구!
태주 (티슈로 손의 물기 닦으며 거울 속의 얼굴을 점검한다.) 나 나사 빠진 애 만난 적 없는데?
태주, 나가려다가 호영의 어깨를 잡으며 나지막히 말한다.
태주 나사는 직접 빼는 거야. 원래부터 빠져 있는 애들은 영~(고개 흔든다.). 그건 불량품이잖아.
호영 아아!
태주 그리고 형은...., 그냥 착실히 사는 게 좋을 거 같아.
호영 (천진한) 왜에?
태주 .....
태주, 호영의 어깨를 끌어다 얼굴을 맞대고 거울을 본다.
두 사람의 외모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호영,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한데
태주 하드웨어가 너무 소박해.
호영 !
태주 (호영을 툭 치며) 생긴 대로 살아, 욕심 내지 말고!
화장실을 나가는 태주.
호영 저 자식이 진짜! (거울 찬찬히 보며) 하드웨어가 뭐 어쨌다는 거야...., (고개 숙여 머리숱을 확인한다.) 머리털도 많은데... (거울을 향해 씩 웃어본다.)
도로 / 호영의 차 안
시내 도로.
낡은 소형차를 몰고 있는 호영. 조수석에는 태주가 앉아 있다.
호영 뭐? 자동차를 마다하고 시계를 받아? 너 정신 나갔냐?
태주 한 삼개월 몰았더니 금방 싫증나더라구. 더 이상 흥미도 없고, 유지비만 많이 들 고....(슬쩍 시계 보며)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이건 받았지, 뭐.
호영 미친놈 아냐. 싫증난다고 그 차를 마다해? 너 외계인이야? 일단 받아놓고 타기 싫으면 팔면 될 거 아니야? 그게 돈이 얼만데!
태주 생각하는 거 하곤..... 그러니까 형은 안된다는 거야. 내가 양아치냐! 그런 쌈마이 짓 하게!
이때, 요란하게 클랙션을 울리며 호영의 차를 앞지르는 고급 외제차(혜린의 차).
아차하는 위험한 순간이다.
호영 뭐야, 저거 미친 거 아냐! 봤지, 봤지? 우이씨, 너..., 너 잘 만났다!
속도를 올리는 호영. 외제차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이다. 때 아닌 추격전이 펼쳐진다.
외제차는 호영이 요란하게 쫓아오는 것도 모르는지 유유하게 앞서가고 있다.
태주 (요동하는 차의 손잡이를 꼭 붙들고 소리소리 지른다.) 야! 미쳤어! 나 오늘 일진 더럽다고 했지! 사고 난다! 그만 좀 해!
신호에 걸리는 외제차. 호영, 재빨리 그 차 옆에 멈춘다.
짙은 썬팅 때문에 외제차의 실내가 보이지 않는다.
호영, 창문을 내리고 클랙션 울리며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운전 못해! 너 같은 놈 땜에..’욕을 퍼붓는 순간 바뀌는 신호등.
외제차가 유유히 출발한다. 잔뜩 열 받아 거칠게 차를 출발시키는 호영.
태주 똥차 자존심에 목숨 걸 일 있어?
호영 큰 차 몬다고 작은 차 무시하는 것들! 세상에서 젤 재수 없는 게 그 놈들이야. 절대 용서 못해!
태주 (절레절레) 세상에서 젤 무서운 건 그 자격지심이다.
호영 (호텔로 진입하는 혜린의 차를 보고) 오호~ 저 놈도 호텔로 가는데! 잡히기만 해봐, 죽었어, 기냥!
호텔로 진입하는 호영의 차
A 호텔 로비 앞 / 호영의 차 안
외제차가 막 주차를 할 즈음 호영의 차가 들어선다.
호텔 앞에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는 호영.
보무도 당당하게 외제차를 향해 걸어가던 호영이 뭔가를 본 듯 멈칫한다.
그 자세 그대로 뒤돌아 다시 바쁘게 걸어오는 호영.
태주, 차에 올라탄 호영을 보고 의아한 듯 묻는다.
태주 뭐야? 벌써 끝났어?
호영, 여전히 멍한 얼굴로 태주에게 눈짓을 한다. 앞을 보면 외제차에서 내린 혜린이 걸어오고 있다. 한눈에 시선을 끄는 세련되고 늘씬한 미녀다.
그러나 별 감흥 없는 태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호영을 보면
호영 이쁘잖아....., 지나치리 만큼!
태주 ! (황당하다.)
A 호텔 로비
로비에 들어서는 혜린. 통화중이다.
혜린 도착했어요. 지금 올라가요.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혜린. 뒤이어 도착한 태주와 호영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동, 엘리베이터 안
초조한 듯 혜린을 힐끔거리는 호영.
태주는 그런 호영을 한심하고 기가 막힌 듯 보고 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혜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태주 (호영의 머리를 치며) 닦어, 떨어지겠다!
무안한 듯 입가를 문지르는 호영.
호영 (처량한 표정) 저런 애들 보면 말야...
태주 ?
호영 세상은 진짜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 호텔 복도
복도를 걸어가는 혜린. 긴장한 얼굴이다.
별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본다.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동, 혜린의 상견례장
혜린,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고개 숙인다.
혜린 좀 늦었습니다. 어르신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박여사 아냐, 아냐. 우리가 서둘러 온 거지. 조금이라도 빨리 혜린양 보고 싶어서. 호호.., 어서 앉아요.
테이블에는 윤여사와 차회장, 이회장과 박여사, 혜린의 맞선남이 앉아 있다.
혜린의 맞선남은 한 눈에도 모범생 티가 나는 깨끗한 인상이다.
윤여사 옆에 앉는 혜린.
윤여사 (소리 죽여) 옷차림이 그게 뭐니, 이런 자리에. 신경 좀 쓰라니까.
혜린, 대꾸 없이 맞은편의 맞선남을 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다정하게 웃는 맞선남.
혜린도 미소를 짓는다.
이회장 본인들 다 왔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 보지요.
차회장 애들 나이도 찰만큼 찼고...., 이왕 말 나온 김에 질질 끌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회장 댁은 어떠십니까.
박여사 애들 좋다는데야 미적거릴 이유가 있나요. 약혼식이라도 당장 먼저 했으면 좋겠어요.
혜린 저....
일동이 시선이 혜린에게 향한다. 불안한 시선으로 혜린을 보는 윤여사
혜린 약혼식 날을 잡기 전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윤여사 (내심 불안하지만 억지웃음을 지으며) 얘가.., 무슨 말 하려고 그래?
혜린 이렇게 훌륭하고 인자하신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서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지 몰라요. (맞선남을 보며) 그리고 이성준씨, 비록 세 번밖에 뵙지 못했지만, 정말 좋은 분이라는 거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윤여사와 차회장. 이회장 가족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혜린을 대견한 듯 본다.
혜린 잘 살겠습니다. 어려운 일 있어도 열심히 참고 노력할 거예요. 그게 가족이니까요.
박여사 아이구, 어쩜 말도 저리 이쁘게 하누.
혜린 가족끼리는 서로 숨기는 것도 없어야 되겠죠. 그래서 제 얘기를 좀 드리려구요.
일동, 약간 긴장한다.
혜린 제가 이태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었다는 건 잘 아실 거예요. 벌써 5년 전인데...., 그 땐 정말 너무 어리고 철이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 후 힘들게 내뱉듯) 거기서 사귄 남자와 1년간 동거했습니다.
잠시 싸늘한 침묵이 일동을 감싼다.
윤여사 너...너 무슨 소리야! 얘, 미쳤어? 아..아니예요..., 아닙니다....
혜린 저희 부모님들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끝까지 비밀로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회장 가족들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본다.) 평생 인연을 맺을 분들인데 제 양심을 속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어리석은 잘못을 떳떳이 용서받고....
혜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 틈엔가 혜린에게 다가온 차회장이 혜린의 뺨을 세게 친다.
윤여사 어머! 어머머머!
혜린, 고개 들어 보면 차회장이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다.
혜린 처음부터 전 싫다고 말씀 드렸어요, 아빠.
차회장 (분노를 참지 못하는) 이...이런....
차회장, 다시 손을 드는데 윤여사가 과장된 포즈로 기절을 하고 만다.
이회장 가족들, 노여운 얼굴로 차례로 일어서서 나간다.
서빙하던 호텔 직원들이 윤여사를 소파 쪽으로 옮긴다.
차회장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돼서 속이 시원하냐?
혜린 (시선 피하며 괴로운 듯) 죄송해요, 아빠.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차회장을 본다.) 아빠가 조금만 저를 존중해 주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 요.
차회장, 잠시 혜린을 노려보다가 홀을 나간다. 혜린,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이다.
호텔 여직원이 구석에 놓인 소파에 윤여사를 눕히고 블라우스 버튼을 풀어 부채질 등을 해주고 있다.
혜린 그만 나가셔도 돼요.
여직원 예?
혜린 괜찮다구요. 나가세요.
여직원, 목례하고 나간다.
침울한 얼굴로 잠시 창밖을 보다가 윤여사를 돌아보는 혜린.
혜린 모두 나갔어. 일어나요,
윤여사 .....
혜린 아무도 없다니까.
윤여사, 조심스레 눈을 뜬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본다.
혜린의 말대로 실내엔 두 사람 뿐이다. 윤여사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윤여사 오늘 이 엄만....., 자식이 웬수라는 말을 똑똑히 실감했다.
혜린 .....
윤여사 (격앙된) 너 미쳤니? 돌았어?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그렇지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껄이고 그래!
혜린 (침착한) 무슨 근거로 있지도 않은 얘기라고 하는 거야?
윤여사 ! 뭐?
혜린 내가 유학 중에 뭘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엄마가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있어?
윤여사 (사색이 된) 너...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럼 그게 사실이란 말이야!
혜린 .....
윤여사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허허, 하느님 맙소사. 기가 막혀. 내 딸이...허허.... (갑자기 혜린의 등을 때리며) 이것아! 요즘 세상에 연애 안 해 본 사람 있어! 이 헛똑똑, 이 미련한 계집애야! 그게 뭐 석고대죄할 일이라고 네 인생을 스스로 망쳐! 어차피 5년이나 지난 일 아냐!
혜린 엄마! (윤여사의 예상치 않은 반응에 당황한 듯 본다.)
윤여사 그 자식 누구야!
혜린 ?
윤여사 네 몸 망친 그 놈 누구냐고!
혜린 (피식 웃음이 터진다.)
윤여사 ! 너.....? (혜린의 거짓말을 알아챈다.)
혜린 무슨 말을 못한다, 여전히 잘 속아 우리 엄마. 근데, 엄마 생각보다 꽤 개방적인데?
윤여사 괘씸한 기집애! 내 속으로 낳았지만 이럴 땐 아주 정나미가 떨어져! 부모 개망신 준것도 모자라 늙은 에미를 놀려? 그래, 재밌니? 놀리니까 재밌어?
혜린 내 의사 상관없이 맘대로 결혼 결정에 상견례 자리까지 마련한 것부터 잘못 아니야?
윤여사 그렇다고 이게 부모한테 할 짓이니? 니 아빠랑 나 이제 얼굴 어떻게 들고 다녀? 하나밖에 없는 딸년 제대로 간수도 못하고..., 아우! 창피해서 어떻게 사냐구!
혜린 싫은 걸 어떡해? 죽을 만큼 싫은데! 엄마도 곤란한 일 생기면 거짓말로 기절한 척 하잖아. 그래서 나도 거짓말 좀 했어. 잠깐 창피하고 체면 구겨지는 게 죽는 것보단 나 으니까!
윤여사 아, 몰라몰라몰라! 그 고집 아주 징그러 주겠어. 이제부터 네 아빠랑 얘기해. (가방 챙겨 일어서며) 난 이제 아웃이야. 아웃! 고집불통 부녀끼리 피터지게 한번 싸워봐. 이 엄만 눈, 코, 입, 꼭 틀어막고 있을 테니까!
윤여사를 따라 나서는 혜린. 윤여사, 그런 혜린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윤여사 어딜 쫓아오니? 꼴 보기 싫어, 얘!
혜린 !
윤여사 당분간 너, 내 딸 아니다, 알았어? 명심해!
윤여사, 방을 나간다. 혜린, 맥이 풀린다.
동, 복도
화난 얼굴로 룸에서 나오는 윤여사.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태주와 호영, 호텔직원의 안내로 함께 내린다.
호영 이 호텔은 홀 규모가 다양하게 있나 봐요.
직원 예, 타 호텔에 비하면 그런 편입니다. 이 층에도 총 **개의 홀이 있는데..
복도를 마주 지나가던 윤여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두르다 태주와 살짝 부딪힌다.
그 바람에 떨어진 스카프를 줍는 태주, 윤여사를 부르려 하지만 윤여사가 급히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이미 문이 닫히고 만다.
태주, 이걸 어쩌나 하는데 약간 열린 문틈으로 혜린의 모습을 발견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혜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는 태주.
이때, 저만치 앞서가던 호영이 태주를 부른다.
호영 야, 뭐해? 빨리 안와?
태주 어!
태주, 돌아서는데 마침 룸에서 나오던 혜린과 마주친다.
태주에게 전혀 시선을 두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혜린.
태주 잠깐만요...
혜린,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태주, 혜린을 따라가 팔을 잡는다.
태주 (스카프 내밀며) 이거.., 동행하셨던 분 물건 같은데...
혜린, 무표정한 얼굴로 태주가 내민 스카프를 받고 돌아서 간다.
태주, 혜린의 태도에 슬그머니 화가 치민다.
태주 거, 웬만하면 인사정돈 하시죠.
태주의 말에 돌아보는 혜린. 태주와 혜린의 눈이 마주친다.
혜린,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혜린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 가는 혜린. 태주, 인사 받고도 괜시리 기분 나쁘다.
지수의 오피스텔
은수가 양 손에 커다란 쇼핑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들어온다.
이불과 그릇 등 각종 생활용품들을 사가지고 온 것. 바닥에 물건들을 내려놓는 은수,
이때, 욕실에서 얼굴을 닦으며 나온 지수.
지수 뭐야? 살림 차려?
은수 (물건들 챙기며) 벌써 일어났어? 밤 샜다며 좀 더 자지.
지수 오늘이라도 방 빠지면 당장 아웃이란 말 못 들었어? 왜 쓸데없이 짐 만들고 난리야?
은수 니네 엄마가 금방 방하나 얻어준다고 했어. 그때 다 필요한 물건이잖아. 그리구 설마 오늘 내일 집이 나가겠니? 요즘 부동산 경기 되따 안 좋아!
지수 (한심하다는 듯 본다.) 어찌 그리 낙천적이신지....참, 신간 편해요.
은수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보이며) 짠짜잔!
검정고시 학원 수강증이다. 지수, 은수를 의아한 시선으로 본다.
은수 학교 때려치운 거, 말없이 가출한 거, 다 봐주고 용서하는 대신 이거 하난 꼭 하라신다. 왜냐?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적어도 고교학력은 필요하니까.., 자! (지수의 손에 수 강증을 쥐어준다.)
지수 ....., (착잡한)...., 그러니까 언니 나 검정고시 뒷바라지 하러 온 거야? 힘들게 들어간 직장까지 관두고?
은수 직장은 여기서 또 얻으면 돼지.
지수 .....(화가 치민) 엄만 도대체 왜 그러냐? 언니도 언니 인생이 있는데, 언제까지 내 뒤치다꺼리만 하게 할 거냐구!
은수 내가 의붓딸이잖니. 원래 콩쥐는 팥쥐 뒤치다꺼리 하는 거야.
지수 아무리 의붓딸이래도 그렇지! 이건 해도 너무하잖아!
은수 (지수의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아유아유, 좀 받아줬더니 입만 살아가지고. 야, 문제의 발단은 너야, 너! 왜 엄마 핑계를 대냐?
지수, 대꾸 없이 겉옷 챙겨 입고 나가려 한다. 깜짝 놀라 지수를 막는 은수.
은수 야, 어디가?
지수 놔.
은수 이제 곧 밤중인데 어디 가냐구!
지수 알바 간다, 왜?
골목길 (저녁)
실랑이하며 걸어가는 은수와 지수.
지수 정말 왜 이래? 내가 한다니까!
은수 아, 조용히 못해?
지수 (은수 막아서며) 내가 구한 일자리야, 그걸 왜 네가 하겠다고 나서?
은수 일주일치 선불 받았다며! 돈 내주기 아까와서 몸으로 떼우려 그런다.
지수 그러니까 내가 한다구!
은수 이 기집애가 진짜...., 경찰서 콩밥 한번 먹어 볼래? 엉?
지수 (경찰서라는 말에 한풀 꺾인다.)
은수 건들지 마. 거기 주인까지 싸그리 잡아넣을 수도 있으니까. 뭐해, 앞장 안서고.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며 걸어가는 지수. 은수, 피식 웃으며 지수를 쫓아간다.
**모텔 앞
허름한 모텔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은수와 지수.
은수 골라도 참.., (지수 보며) 어린 것이 남사스럽기는!
지수 보수가 제일 세거든. 가출해 봐. 돈이 최고지.
은수 (노려보며) 이왕 할 거 뽀대라도 나게 호텔에서 하든가?
지수 거긴 신분확인이 철저하단 말야. 내 신분이 좀 그렇잖아.
은수 (지수 머리통을 치며) 신분이 좀 그런 거는 아냐? 알어!
지수 아야! 자꾸 왜 때려, 진짜!
은수 가! 꼴 보기 싫어!
지수 (내키지 않는 듯 미적거린다.) 정말 할 수 있겠어?
은수 (지수 밀어내며) 빨리 가! 안가! 근처도 얼씬거리지 마!
은수, 미적거리는 지수를 억지로 쫓아낸다.
은수, 툴툴거리며 걸어가는 지수의 뒷모습을 보다가 착잡한 얼굴로 모텔을 돌아본다.
**모텔 복도
수상한 사이로 보이는 중년의 두 남녀가 룸에서 나온다.
서로 치대며 히히덕거리는 두 남녀.
청소복 차림으로 청소도구함을 밀면서 오던 은수, 그들을 보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
두 남녀도 은수와 마주치자 어색한 듯 시선을 피한다.
모텔 룸
룸에 들어오는 은수. 술병이며 흐트러진 시트며 꽤 엉망이 되어 있다.
꽤 야무진 솜씨로 청소를 시작하는데, 잠시 후 똑똑 문을 두드리며 주인아줌마가 들어선다.
주인 (상냥한) 어때요? 할만해요?
은수 아무렴.. 동생보단 낫겠죠.
주인 (변명하듯) 우린 정말 몰랐어요. 요즘 학생들 덩치가 좀 커요? 스물 둘이라니까 그냥 믿었지 뭐, 설마 미성년잔지 상상이나 했을까.
은수 .....
주인 아까 다 얘긴 했지만.... 혹시나 또 오해할까 봐서...
은수 제 동생이 거짓말한 건데요, 뭐.
주인 그러게..... 이해해주니 고맙네. 그럼, 수고해요. (나간다.)
은수 (있는 힘껏 침대 시트를 벗겨내며) 에고, 내 팔자야!
고급 클럽 (밤)
춤을 추는 사람들, 모두들 상당한 세련미를 갖추었다. 파티 분위기다.
그들 사이에 30대 초반의 나경 모습도 보인다. 서너살 아래로 보이는 남자와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혜린. 주변의 소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얼굴이다. 잠시 후 나경이 혜린에게 다가와 앉는다.
나경 좀 나오라니까. 머리 복잡할 땐 몸으로 푸는 게 최고야. 술만 꼴짝여봤자 몸만 상하지 좋을 거 있니?
나경, 이야기 도중 무대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인다.
혜린, 남자를 돌아보고는
혜린 언니 요즘 살맛 나나봐?
나경 응! (수줍은 듯 웃으며) 오랜만에 연애하니까 되게 재밌는 거 있지?
생활이 풍성해져. 희.노.애.락!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들이 왔다갔다하거든. 그거 아주 죽인다?
혜린 축하해.
나경 너도 화끈한 연애 한번 해봐야 되는데. 그럼 오늘 같은 소란도 없었을 거 아냐?
혜린 무슨 소리야?
나경 연애도 한번 못해봤는데 적당히 상대 맞춰 결혼하는 거, 그게 약 오른 거잖아, 너.
혜린 넘겨 집지 마.
나경 연애하고 나면 정략결혼도 수월해져. 손해 본다는 기분이 사라지거든. 쓸데없는 환상은 물론이구. 뜨거운 연애와 냉철한 결혼, 합리적이잖아.
혜린 그리고선 언니처럼 결혼 2년 만에 파경 맞으라구?
나경 (혜린을 가볍게 흘긴다.) 너 참 말 밉게 한다.
혜린 먼저 시작한 건 언니야.
이때, 복잡한 사람들 사이로 홀에 들어서는 태주의 모습이 보인다.
나경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태주. 나경과 눈이 마주친다.
나경 왔다... (태주에게 손짓한다.)
혜린 (의아한 듯 나경이 보는 쪽을 본다.)
나경 (시선은 다가오는 태주를 향한 채 웃으며) 이 바닥 넘버원이야. 외모도 외모지만 머리도 꽤 괜찮아. 대화도 가능하단 얘기지. 입 무겁고, 뒤끝 없고... 그러니까 괜히 몸 사 릴 필요도 없어.
혜린 .....무슨 말 하는 거야?
나경 명색이 쌍쌍파틴데 너 혼자 분위기 망칠거니?
혜린 언니...!
나경 그냥 가볍게 즐겨.
혜린 내가 그럴 기분이겠어?
나경 네 기분 아니까 이러는 거야. 기분 전환 될 걸?
혜린 .....(화난 듯 가방을 챙기는데)
나경 (혜린의 손을 잡으며) 너 이러면 내가 뭐가 되니? 사람까지 불러놨는데.
혜린 .....
나경 나랑 절교할 거 아니면 내 얼굴 봐서 성질 좀 죽여줘. 오늘 딱 하루만, 응?
혜린, 황당하다는 듯 나경을 보는데, 이때 태주가 테이블에 다가온다.
태주 (나경에게) 오랜만이에요!
나경 안본 사이 더 멋져졌어요? 그동안 바빴다면서? (눈을 찡긋하며) 마무리는 잘 됐어요?
태주 그렇죠, 뭐.
태주, 혜린 쪽을 힐끗 본다. 보는 순간 낮에 호텔에서 만난 여자임을 기억한다.
나경 아, 이 쪽은 내 후배..., 차혜린이라고 해요.
태주 (혜린에게) 강태줍니다.
혜린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린다.)
나경 오늘 얘 무지 우울한 날이거든요. 이런 데서 얼굴 구기고 있는 거 보면 알겠죠?
태주 (씩 미소만)
나경 (무대 쪽 보며) 우리 낭군 더 이상 혼자 두면 안될 거 같다, 얘. (혜린에게) 나 그만 빠진다!
나경, 태주에게 살짝 윙크를 하고는 무대의 파트너에게 간다.
혜린, 말없이 술만 홀짝인다.
혜린, 비운 술잔을 채우려는데, 태주가 혜린의 손길을 가볍게 제지한다.
혜린의 잔에 얼음과 음료를 채운 후 혜린에게 밀어주는 태주. 자연스럽고 담백한 태도다.
태주 속도가 빠른 거 같아서요, 그러다 속 버립니다.
혜린 ....
태주 하루 사이에 자주 만나네요?
혜린 ? (의아한 듯 태주를 본다.)
태주 낮에 A 호텔에서..., 기억 안나요? .....스카프.
혜린 (잠시 생각하더니) 아....
태주 (기분 상한) 아직 나이도 얼마 안 먹은 거 같은데 심각하네...
혜린 오다가다 스친 사람 일일이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하죠.
태주 (내심 자존심 상한) ! 아..! 그런가요.
태주, 소란한 주변을 돌아본다.
태주 이런 데 있을 기분이 아니신 거 같은데, 나갈까요?
혜린 (의아한 듯 태주를 본다.) 내가 왜 그 쪽이랑 나가죠?
태주 ! ..... 정말 기분 안 좋은가 봐요.
혜린 좋다고 해도 그 쪽이랑 나갈 일 없어요. 혼자 가시죠.
태주 .....참 삐딱하시긴..... 개구리 왕자랑 정략결혼이라도 합니까?
혜린 ! (태주를 본다.)
태주 (혜린의 표정 보고 재밌다는 듯) 정말인가 보네...!
혜린 (불쾌한 듯 시선 돌린다.)
태주 (빈정거리는) 손익계산 따져보니 버리기는 아깝고, 받아들이자니 힘없이 시들어갈 청춘이 울고..... 다 그렇고 그런 인생인데 그 쪽 사람들 참 괜한 걸로 고민해요.
혜린 (기분 상한다.)
태주 미안해요. 당사자한텐 심각한 문젤텐데. 정해진 인생 사는 거, 사실 따분하고 답답하죠.
혜린 .....
태주 즐겁게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인데....., 일단 그쪽 부분은 신경 꺼버리죠.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하며)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신나고 즐겁게.
혜린 (태주의 잔을 무시하고 술을 마신다.) 그게 맘대로 되나요?
태주 도움 받을 순 있겠죠.
혜린 (태주 보며) 누구한테? 그 쪽한테서?
태주 (혜린과 눈을 마주친 채 긍정의 미소) 글쎄요...
혜린 (비웃듯이 피식 웃는다.) 성공률은요?
태주 !?
혜린 지금까지 스코어가 어떻게 되냐구요? 다들 만족 하던가요?
태주 (약간 경직되지만 애써 웃으며) 무슨 뜻이죠?
혜린 상품의 능력과 가치를 알아보려는 거예요. 그래야 제대로 흥정이 될테니까.
태주 ......그러니까....., 내가 상품이라는 건가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태주를 보는 혜린. 태주, 잠시 혜린의 시선을 쏘아보다가 술을 스트레이트로 들이킨다.
태주 (웃으며) 날 뭘로 보는 겁니까?
혜린 뭘로 보는 거 같아요?
태주 저 멀쩡한 직장인이거든요.
혜린 아아.....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혜린 시계 참 멋져요.
태주 ?
혜린 양복이랑 안 맞네요. 수천만원짜리 시계에 싸구려 기성복이라...
태주 .....!
혜린 따분한 인생 도와줄 수 있다고 했죠?
태주 .....
혜린 그 대가로 근사한 양복 하나 뽑아주면 되겠어요?
태주 .....(얼굴이 일그러진다.)
혜린 (태주의 표정 보고 피식 웃으며) 돈 많은 여자한테 빌 붙어 비위 맞출 땐 언제고, 까놓고 말하니까 기분 상했나요? 다 그렇고 그런 인생인데 그 쪽 사람들 참 괜한 걸로 자존심 세우네...
순간, 혜린의 얼굴에 부어지는 술. 혜린, 깜짝 놀라 태주를 본다.
태주, 태연한 얼굴로 혜린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다.
태주 역시 하고 싶은 건 그냥 저질러 버리는 게 최고야. (한숨 내쉬며) 휴우! 속이 다 시원하다!
혜린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화가 치민 혜린, 태주의 뺨을 치려는데, 재빨리 태주가 혜린의 팔목을 잡아 밀친다.
의자에 쓰러지는 혜린. 주변 사람들의 시선 집중되고, 놀란 나경이 테이블 쪽으로 다가온다.
태주 야, 괜히 착각에 빠져 분위기 잡지 마. 눈 뜨고 보기 좀 그렇거든? 내가 보기엔 너보다 개구리 왕자가 더 안됐어. 너 같이 재수 없는 계집앨 마누라로 맞는 놈 기분은 또 오죽하겠냐? 개구리든 올챙이든 데려 간다 그럴 때 얼씨구나 하고 따라가. 그러다 평생 독수공방 신세 되기 십상이니까. 알았냐?
태주, 뒤돌아 홀을 나간다.
나경 (혜린에게) 괜찮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혜린, 분노와 모멸감에 떨며 태주의 뒷모습을 노려볼 뿐이다.
도로변 길 / 건널목
늦은 밤. 한적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태주.
맥주캔이 발에 걸리자 신경질적으로 차버린다.
태주 아이씨! 오늘 하루 왜 이 모양이냐!
이때 도로를 가로지르는 버스, 차창문을 통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은수의 모습이 보인다.
도로 / 버스 안
무척 피곤한 듯 곤하게 잠들어 있는 은수.
고개를 흔들다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잠이 깬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고는 창 밖에 시선을 둔다. 피로가 가득한 모습이다.
오피스텔 복도
‘딩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힘없이 벽에 기대서 있던 은수가 내린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멍하니 걸어가다가
은수 맞다, 가방!
은수, 방향을 돌려 태주의 오피스텔로 다가가 벨을 누르려다가 아차 싶다.
시계를 보면 이미 12시를 넘은 시각이다.
은수 너무 늦었는데......... 그러다 아침에 또 놓치면 어떡해... 에라!
벨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들었다가 차마 누르지 못하고 내린다.
은수 자는 거 깨웠다고 난리 치는 거 아냐? 에이씨.... 쪽팔리게 가방은 왜 두고 나와가지고..... 정말 자나? (문에 귀를 댄다.)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오던 태주, 가뜩이나 불쾌한 얼굴이 집 앞의 은수를 보자 더욱 일그러진다.
은수, 열심히 문에 귀를 대고 안의 기척을 살피는데
태주(e) 야! 너 변태야?
놀라 돌아보는 은수, 태주의 얼굴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태주, 은수를 보는 표정에 짜증이 가득하다.
은수 아뇨!.....저....그..그게 아니라요...
태주,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은수 의아한 듯 보는데
태주 경찰서죠? 지금 우리 집 앞에 웬 미친 여자가 얼쩡거리고 있는데요, 이 여자 아침에도 와서 사람 출근도 못하게....
은수, 재빨리 태주의 손을 잡아챈다. 그 바람에 떨어지는 핸드폰.
깜짝 놀라는 은수. 핸드폰을 줍는 태주, 열이 받쳐 미치겠다.
태주 너, 나한테 원한 있냐?
은수 아뇨.
태주 그럼 스토커야?
은수 아..아닌데요!
태주 그런데 왜 아침저녁으로 나타나서 사람 속을 뒤집어?
은수 그게..., 아침에는 방호수를 잘못 알아가지구..., 저 지금은 가방 찾으러 왔거든요.
태주 뭐?
은수 아저씨가 막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혼이 홀딱 나가서 깜빡했단 말예요. 그래서 그거 찾으러 왔는데....
태주 (치미는) 야!
은수 예?
태주 너, 목적이 뭐야?
은수 모...목적? .....가방이요.
태주 이게 어디서 사기치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은수 사...사기라뇨? 아니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이래요?
태주 뭘로 봐? 아침부터 남의 집에 들이닥쳐 똥 싸고 나간 미친년으로 본다, 왜!
은수 !!! (충격이다.)
태주 너라면 그런 사람 말 믿겠냐? 너 땜에 하루 종일 얼마나 재수 옴 붙었는지 알아?
은수 .....(충격에 뒤이어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아..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왜 욕까지 하세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마렵지도 않은 거 일부러 싼 것도 아니고...., 갑자기 배가 미치도록 아픈 걸 어떡해요.... 아저씬 그런 적 없어요?
태주 (은수의 눈물에 다소 당황스럽다.)
은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예요, 흑흑. 진짜로 마려웠단 말예요..., 바지에다 쌀 순 없잖아요!
은수, 꽤 서러운 듯 엉엉 울어댄다. 태주, 기가 막히고 짜증나 미치겠다.
태주 (혼잣말) 어후 상댈 못하겠네... (귀찮다는 듯) 야, 비켜 비켜 비켜. (열쇠로 문을 열려 는데)
은수 (태주에게 다가서며) 가방은요....
태주 (무서운 인상으로 노려본다.)
은수 (기가 죽는다.)
태주 너! 한번만 더 눈에 띄어봐. 경찰이든 정신병원이든 그 즉시 신고 들어간다, 알았어?
태주, 은수를 거칠게 밀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은수 (눈물 닦으며) ..., 정신병원? 에이씨!
은수, 문을 차려고 발을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는다.
은수 정말 없는 거야.....? (갸우뚱) 딴 데다 버렸나?
태주의 오피스텔
넥타이를 풀며 들어오는 태주. 현관 구석에 놓인 은수의 가방은 전혀 보지 못한다.
침대 옆의 스탠드 불만 켠 채 자켓과 셔츠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눕는다. 피곤한 눈으로 천정을 보는 태주. 길게 한숨 몰아쉬고 스탠드 불을 끈다.
동, 태주의 오피스텔 (다음 날 아침)
전날 밤 그대로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태주.
알람이 울리자 더듬더듬 시계를 찾으며 잠이 깬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신다.
정신이 드는 듯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멈칫한다.
몇 걸음 뒷걸음치는 태주, 현관 쪽을 본다.
현관 구석 삐죽이 나와 있는 것은 분명 여행가방 같다.
은수(e) 아저씨가 막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혼이 홀딱 나가서 깜빡했단 말예요. 그래서 그거 찾으러 왔는데....
난감한 얼굴로 가방을 보는 태주.
<점프>
침대 위에 가방을 놓고 심각하게 보고 있는 태주.
-인터컷
은수 .....(충격에 뒤이어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아..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왜 욕까지 하세요?
태주, 울먹이는 은수 얼굴을 떠올리자 미안한 감이 든다. 가방 앞 지퍼들을 열어본다.
간이수첩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은수의 연락처를 알만한 단서는 없다.
태주 얜 연락처도 안 적어 놓고 다니나....
할 수 없이 가방을 열어 뒤지려는데, 가방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엎어지고 만다.
당황한 태주, 가방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을 대충 담는데, 이때 은수의 속옷을 발견하고 실소를 참지 못한다.
중학생이나 입을까한 유치한 캐릭터 그림의 브래지어가 귀엽다 못해 우스워 보인다.
혜린의 집 거실 / 식당
실내복 차림으로 거실로 나오는 혜린. 식당으로 향한다.
식탁은 이미 식사 준비가 되어 있다.
혜린 엄마랑 아빠는요?
가정부 (국을 떠다주며) 회장님 아침 일찍 출근하셨어. 사모님은 좀 피곤하신가 봐. 깨우지 말라시더라구.
혜린 .....
혜린, 착잡하다.
국을 몇 번 떠먹다가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는지 숟가락을 놓는다.
혜린의 부띠끄(샤샤 châchâ) 앞
아담하고 이국적인 주택형 건물에 ‘châchâ’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혜린의 차가 건물 앞에 선다.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는 혜린.
혜린의 부띠끄
혜린을 맞는 직원들. 혜린, 가볍게 목례하는데 김실장이 꽤 심각한 얼굴로
김실장 선생님, 손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혜린 ?!
동, 사장실
사장실에 들어서는 혜린. 기다리고 있던 중년의 남자(황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혜린, 황변호의 얼굴을 보고 경직된다.
혜린 황변호사님이 어떻게......, (뭔가 짐작한 듯) 아빤가요?
황변호 예. 그렇습니다.
혜린 !!
팔레스 백화점, 회장 비서실
급한 걸음으로 들어서는 혜린. 당황한 비서가 정중하게 맞는다.
비서 오셨어요?
혜린 안에 계시죠?
비서 예.., 그런데.....
혜린, 비서가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회장실 문을 노크하고 연다.
동, 회장실
혜린과 차회장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차회장 무슨 일이냐?
혜린 아시잖아요.
차회장 내 뜻은 다 전한 걸로 아는데.
혜린 아빠 화내시는 거 너무나 당연해요. 저, 무슨 벌을 받아도 할 말 없다는 거 알아요.
차회장 .....
혜린 하지만..., 이건 아니죠. 개인적인 문제는 그 선에서 마무리 져야지 회사 일에까지 연결시키는 건....
차회장 공과 사는 확실히 하자, 그 말이냐?
혜린 (긍정의 침묵)
차회장 그 논리라면 네 회사는 시작부터 잘못됐어. 그럴 생각이면 애초부터 내 돈은 받지 말았어야지!
혜린 그...그건...
차회장 나도 네 일에 개인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1주일 안에 채무관계 깨끗이 정리해.
혜린 신원그룹과 사돈 맺지 못한 게 그렇게 억울하세요?
차회장 !
혜린 그 일만 성사되면 전국유통체인은 따놓은 당상이었을텐데요.
차회장 .....
혜린 피라미 같은 제 회사 하나 무너뜨리는 걸로 그 화가 풀리시겠어요? 아빠의 그 망나니 딸 아예 완전히 눈 앞에서 사라져 드리는 건 어때요?
혜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혜린에게 재떨이가 날아간다.
차회장 (날카로운 눈으로 혜린을 쏘아보며) 괜히 엄한 데 탓하지 마! 네 회사가 어떻게 되느냐는 네 능력에 달렸어. 감당 못할 거 같으면 일찌감치 그 소꿉장난 관두고 백화점으 로 들어오던지!
혜린, 만만치 않은 시선으로 차회장을 노려본다.
도로 / 혜린의 차 안
달리는 혜린의 차. 운전을 하는 혜린의 얼굴이 몹시 어둡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린다.
혜린 네, 김실장님......., 잘 안됐어요. 은행은 어떻게 됐어요? .......(맥 빠지는) 할 수 없죠. 네...(끊는다.)
어두운 얼굴로 차를 몰다가 갑자기 길 한 켠에 정차하는 혜린.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지만 몹시 초조하다.
썬바이저를 내려 한 켠에 꽂아둔 사진을 뺀다.
혜린과 조종사 차림의 준혁이 경비행기 앞에서 다정한 포즈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그리운 시선으로 사진을 보다가 결심한 듯 핸드폰을 꺼내 준혁에게 전화한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통화가 연결되자
혜린 오빠 나야 혜린이...
말을 멈추는 혜린. 전화 속에서는 ‘부재중’을 알리는 영어멘트가 흐르고 있다.
맥이 탁 풀린다. 잠시 후 다시 핸드폰을 드는 혜린, 긴장한 듯 손이 떨린다.
망설이다가 버튼을 누른다. 비장한 표정이다.
혜린 안녕하세요, 최이사님. 저 혜린이에요. ........전에 제안하신 주식양도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예...., 지금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혜린. 마음이 착잡하다.
공연장
공연장 무대 준비를 하는 스텝들 모습.
마이크를 꽂은 태주가 그들 사이를 오가며 지시를 내리고 있다.
전화가 왔는지 핸드폰을 꺼내 구석으로 가는 태주.
태주 왜? ......뭐하긴 일하지. 하루 종일 소리 지르느라 목 완전히 갔다, 갔어. .......뭐? .....담당도 아닌데 내가 거길 왜 가냐?
태주의 사무실 (아이비 프로)
통화 중인 호영.
호영 부장님 SOS야. 클라이언트가 여잔데, 엄청 까다롭거든. 자리 마련해서 분위기 좀 데워볼 모양인데, 그 쪽은 또 네 전공이잖냐.
태주(f) 여기 일 언제 끝날지 몰라. 형이나 가.
호영 자식이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이 기회에 재능 살려서 부장님한테 이쁨 좀 받아보란 말야. 이건 절호의 찬스야, 찬스!
태주(f) 지금 일하는 중이라니까.
호영 오늘만 날이냐? 자식이 언제부터 일에 목숨 걸었다구말야.., 아, 몰라 몰라, 부장님한테 너 온다고 할 거니까 잔말 말고 와!
호영,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린다.
공연장
태주 아, 형! ....(전화 끊으며 짜증내는) 아이씨..., 나보고 또 그 짓 하라구?
바 (밤)
꽤 넓은 규모의 바.
적당한 볼륨의 음악이 흐르고, 테이블은 모임 분위기의 사람들이 태반이다.
혜린이 바에 들어와 바텐더석에 앉는다.
술을 주문하는 혜린, 전작이 있었던 듯 이미 꽤 취한 모습이다.
뒤쪽의 테이블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폭탄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폭탄주를 만드는 남자의 손, 태주다.
이부장과 호영, 3,40대 중년간부 여성 두 명이 태주를 주시하고 있다.
태주 (여자들의 눈길을 보며) 혹자는 이게 폭탄주가 아닐까 의심하시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걱정 푹 놓으셔도 됩니다.
여자1 폭탄주 아니면 뭐예요? 칵테일은 아니잖아.
태주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미용주라고 할까나...? 여성분들 피부 미용에 아주 좋거든요. 물론 검증된 바는 없지만요.....자, 시범 보이겠습니다.
태주, 샷글라스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상태에서 스트로우를 꽂아 마신 후, 샷글라스를 빼고 브랜디를 마신다. 태주의 깔끔한 시범에 환호하는 사람들.
뒤이어 태주의 도움을 받아 차례로 같은 방법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
태주네 테이블의 요란한 소리에 돌아보는 혜린. 무심히 시선을 돌리려다가 문득 태주를 발견한다.
여자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는 태주를 잠시 주시하던 혜린,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분위기가 고조된 태주네 테이블.
태주, 새로운 폭탄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 특이한 기술에 재밌어하는 사람들.
태주, 폭탄주를 완성하고 자랑스레 일동을 보는데 그 순간 태주의 얼굴에 뿌려지는 술.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고 태주는 자신의 얼굴에 술을 들이부은 사람을 본다.
혜린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태주를 보고 있다.
혜린 (혀가 꼬인) 너 제비 아니라며..., 근데 여기서 술 따르고 있니?
태주 .....! 야... 절루 가지 못해?
이부장의 얼굴 일그러진다. 호영은 현재 상황도 놀랍지만 혜린의 얼굴을 보고 더 경악이다.
여자 간부들도 당혹스럽다.
혜린 (홀 둘러보며) 여기가 호스트 빠였어?...., (여자들 훑고는 가소롭다는 듯 태주를 보며) 겨우 늙다리나 상대하면서 그렇게 잘난 척 했니? 난 또 뭐나 되는 줄 알았지.
태주 (참다못해 혜린을 끌고 가려 한다.)
혜린 (거칠게 뿌리친다.) 이게 어딜 만져?
태주 (혜린의 기세에 옆의 집기에 부딪히고 만다.) 어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혜린 보자보자 하니까 뭐? (풀린 눈으로 태주를 노려본다.) 개구리 왕자? 올챙이? 야...,넌 걔네들보다 더 후지고 한심해...., (태주의 멱살 잡으며) 시시껄렁한 제비주제에, 건방 떨기는!
혜린, 태주가 화낼 틈도 없이 그대로 태주 품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태주.
부장, 못마땅한 얼굴로 태주를 노려보고 호영은 태주에게 필사적으로 눈짓한다.
호영 (일동에게) 하하하....., 여자친군데....., 얼마 전에 크게 싸웠거든요...., (태주에게) 그 러게 진작에 화해하라고 했잖아, 자식, 내 말을 안 듣구선 말야...., (일동에게) 여기서 만날 줄 또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우연이라는 게 참 오묘해요. 그나저나 요즘 연인들은 왜 저렇게 말이 험할까요? 그게 애정의 척도일까요? 하하하.....
계속해서 태주에게 눈짓 보내는 호영. 태주, 할 수 없이 혜린을 들쳐 안고 바를 나간다.
거리 모퉁이
늦은 밤의 한적한 거리.
태주, 혜린을 내려놓고, 힘든 듯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태주 (혜린을 노려보며) 이걸 진짜 확! 어후...., (스스로를 다지는) 아냐, 침착하자..., 품위 를 잃으면 안돼.......(그래도 생각할수록 미치겠다.) 아 요즘 왜 이러냐! 이틀 연속 줄줄이 정신 나간 애들만 꼬이네....
엉덩이 털면서 일어나는 태주.
태주 (혜린을 내려다보며 한대 치는 시늉) 여자니까 봐준다.
태주, 돌아서서 걸어간다.
위태롭게 기대앉은 자세의 혜린, 잠시 후 땅바닥에 철버덕 쓰러진다.
그 소리에 발걸음 멈추는 태주, 정말 미치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거리 / **모텔 앞
혜린을 업고 걸어가는 태주.
태주 (혼잣말) 강태주, 넌 너무 잘생겨서 탈이야... 강태주,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강태주, 넌 너무 마음 약해서 탈이야... 잘 생긴데다 인간성까지 좋으니.....
**모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태주.
태주 인생 난해하구만!
**모텔 룸
침대에 혜린을 내려놓는 태주.
다 끝났다 싶은 마음에 가뿐하게 일어서려는데 이때 태주의 소맷부리를 잡는 혜린.
태주, 깜짝 놀라 돌아보며 그 손을 떼어놓으려는데,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구토하는 혜린.
혼비백산하는 태주, 하지만 그의 소맷부리와 자켓에 구토물이 이미 묻어버렸다.
더 가관인 건 혜린이 괴로운 듯 침대 위에 계속 구토를 하고 있는 것.
태주,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동, 메이드 룸
은수, 열심히 채용 광고들을 체크하고 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동, 복도
청소도구를 챙기고 룸을 노크하는 은수. 아무 대답이 없자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동, 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은수. 침대에는 혜린이 정신없이 잠들어 있다.
욕실 쪽 문이 열려있고 그곳에서 인기척과 물소리가 난다.
은수 (욕실 향해) 저...., 계신가요?
태주(e) 거기 시트 좀 갈아주고 여자분도 대강 닦아 주세요.
은수 네.....
은수, 시트를 보자 확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곧 야무지게 일을 시작한다.
한창 일을 하느라 태주가 욕실에서 나온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재킷의 오물을 대강 닦고 욕실에서 나오는 태주. 젖은 재킷을 입으며 일을 하는 은수를 본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은수에게 내미는 태주.
태주 수고 좀 해주세요.
은수, 고개 들어 태주를 올려다보는데 순간 동시에 놀라는 두 사람 얼굴에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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