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10
정호 집 계단 중간.
-이지와 정순 소곤소곤.
이지 둘이 법적 부부 아냐? 언니 이름 안새겼다며?
정순 나중에 넣어주신대요.
이지 시험 붙으면 넣어줘? 아님 이혼시키구?
정순 슷, 만화를 너무 많이 봤어.
재원 스위트.
-미니바에 마주 선 영라와 재원. 마실 것 한잔씩.
재원 그만하기 다행이지 야, 그러면서 어른되는 거구.
영라 내 평생에 연희 아들이 이렇게 아쉬울 줄 누가 알았겠니.
재원 연애를 해야 치료가 되는데.
영라 아무나는 안되구, 이왕이면 연희네가 경배할 수준으로.
재원 너는 딸이 짝사랑의 고통으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데 겨우 스펙 경쟁이냐?
영라 연수원 이번 수석이 너네 아빠 기사 아들이라며.
재원 어느 새 그거까지 알았어?
영라 한번 보자? 자연스럽게?
정호 침실. 밤.
-정호, 연희, 각각 파우더룸에서 까운 차림으로 나온다. 소파에 앉거나 서거나.
정호 뭐라구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설명을...어느 학교 다니냐. 누구 집 딸이냐, 한마디면 딱 되는 그 무엇이 없다는 게 이렇게 불편해!
인상 방. 밤.
-봄, 행사 차림 그대로 통화 중. 인상은 정장 벗고 집에 옷으로 갈아 입는다.
봄 이거저거 다 했어, 가풍대루...사진두 많이 찍구...서운하지?...그래서 우리가 갈려구...뭘 어떻게 가. 차 타구 가지...인상이가 말씀 드렸어...
인상 (손가락 브이)
봄 허락을 구하는 척 하면서, 통보 수준으로 강력하게.
형식 거실. 밤.
진애 (통화. 좋아서)어이구 제법이네...남편 노릇 사위 노릇 아주 이쁘게 한다...
-형식이 욕실에서 머리 닦으며 나온다.
진애 애들 온대.
형식 어?!
진애 (끄덕이고 다시 통화)그럼, 아침먹구 바루 와?...
형식 내내내가 데릴러 간다 그래.
진애 아유 참, 할머니 차로 온대.(다시 통화)인상이두?
정호 집 인상 방.
-옷 갈아입은 인상, 내려간다고,
봄 (인상 향해 끄덕하고는)어...인상이는 학교 끝나구 그리 올거구 갈때는 나랑 애기랑 보모 아주머니, 그렇게.
식당.
-연희가 정호 앞에 차를 놓아준다.
정호 애가 영특하구 생각이 깊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찬찬히 짚어보면 또 시험에 최적화된 인간은 아니라 말이지.
연희 불안하죠.
정호 본인한테 분명히 말을 해 줘야 돼. 오늘 진영이 이름을 새겨서 새로 부착한 명판에 지 이름이 왜 없는지.
연희 알아들을까?
거실. 계단 옆.
-인상, 숨죽이고 들으며 갈등. 봄이가 내려올 것만 같다.
정호 소리 서류 상으로야 분명히 부부지만,
식당.
정호 우리가 인정할 만한 뭔가를 갖추기 전에는,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걸,
인상 (작게)저기요,
정호, 연희 (엉?)
인상 (연신 계단 쪽 보면서 잔뜩 조심)봄이가 들으면 어쩌시려구요,
연희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걔 안자?!
정호 험,(무안해서 얼른 찻잔 드는)
인상 아실만한 분들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세요. 저는 봄이가 이 현장을 절대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
연희 뭐?!
정호 (한모금 삼키다가 캑)
연희 어머, 사래,
정호 캑,캑,캑,
연희 여보,
인상 (우왕좌왕)
정호 (독한 사래기침 연발,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내려앉는다)
연희 (정호 팔 잡으며)너 뭐해!
인상 (얼른 달려가 웅크린 정호 부축)
-순간, 정호, 등을 세우며 인상의 뒤통수 팍! 인상, 아!
-연희도 등짝 팍! 인상, 아!
-이어지는 부모님의 연타.
-측면 출입구의 이지, 급히 돌아서고,
-주방에서 정순 나오려하자 박집사가 뒤에서 정순을 잡아당긴다.
계단.
이지 (뛰어올라가며)언니, 오빠 매맞어!
주방 일각.
박집사 (정순에게)맞게 둬!
식당.
-인상을 깔고 앉은 정호가 양손 스매싱.
-연희, 주먹을 불끈 쥐며 맞아야 돼!
계단.
-이지, 봄, 뛰어내려오며 숨가쁘게 속삭. 봄, 샤워하다 말고 뛰어 나왔다. 젖은 머리에 까운 차림.
이지 오빠가 대들었어.
봄 그럼 나 조건부 며느리야?
식당.
-인상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서있다. 정순이 화장지로 코피 닦아 박집사가 들고 있는 휴지통에 넣고,
-정호와 연희가 앞에 서서 준엄하게 꾸짖는다.
정호 단단히 뉘우쳐라!
연희 뼛속 깊이 반성해!
-측면 출입구, 봄이 급히 들어서다 멈칫. 그 뒤 이지.
이지 코피다!
봄 (헉)가정폭력!
정호 아니지! 이건 징벌이다!
인상 둘 다 아냐, 맞아 드린 거야.(나름 이성을 되찾은)
정호 뭐야?!
-정순, 인상의 콧구멍 한쪽을 솜으로 막아주고, 박집사와 함께 눈치보며 주방 문으로.
연희 (봄에게)넌 꼴이 그게 뭐니! 어른 계시는데!
봄 죄송합니다. 제가 맘이 급해서요. 이 말씀 먼저 드린 담에 얼른 갈아 입구 올게요. 법률혼의 기본은 혼인신고라, 조건부 인정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인상 당사자간 합의 말고는 누구도 조건부를 주장할 수가 없구요, 따라서 두 분께서는,
연희 너네 지금 법 얘기 하니?! 공자 앞에서 문자 써?!
정호 미성년 혼인의 선행 조건은 부모 동의다! 따라서, 혼인 당사자가 그에 따르는 의무를 행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부모는 언제든 동의를 취소할 수 있는 것이다. 알겠냐!
인상 저희는 법이 정하는 부부간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연희 벌써 같이 잔단 말야?! 또 생기면 어떡, (이지를 본다)올라가!
이지 (칫, 돌아서고)
정호 자세가 틀려먹었다!
연희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이 추잡한,
주방 일각.
정순 세상에 저런 말씀을,
박집사 심했네.
정호 소리 얘들 쫓아내요!
식당.
연희 둘 다!
-정순, 박집사, 나오며,
정순 (나오며)고정하세요.
박집사 아까 말려드릴 걸,
정호 진영이는 우리가 키운다! 아침에 나 눈뜨기 전에 사라져! (나간다)
연희 (따라나가며)너희는 부모두 아냐!
-봄과 인상, 따라붙는다.
인상 그럼 진영이를 입양 하시겠다는 거예요?! 두 분이?
거실.
-정호 부부, 인상과 봄, 식당에서 안채 향하며.
-정순과 박집사, 전전긍긍 뒤따르고.
연희 뭘 신경 쓰니! 부부간의 정신적 육체적 의무나 실컷 행하구 살지.
봄 민법 877조에 존속 입양 금지라구 돼 있어요.
정호 908조는 모르냐?! 판례 찾아봐!
인상 그거 알아요. 기각됐잖아요!
봄 908조의 2항 8항은 아동의 복리실현에 부합할 경우에만 적용 돼요.
연희 너희는 복리 실현 못해!
정호 어쩌다 그거 하나 알아가지구 잘난 체야?!
인상 공부 좀 해뒀어요! 이런 일 생길까봐,
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형식 집 봄이 방. 밤.
-진애, 침대에 걸터 앉아 시트를 쓰다듬는다. 형식은 책상 앞에서 괜히 책 한권 빼보다가 다시 꽂는 등. 감회 착잡.
진애 그렇게 가서 진영이 낳구, 딱 백 하루 만에 노는 거네.
형식 (그러게...)시집 간 딸 친정 부모 보러 오는 거, 그거 뭐 부르는 말 있지 않나?
진애 근친이라 그러지...나 때만 해두 그런 말 간간이 썼는데 요즘은 아무두 안쓰는 거 거 같더라.
형식 (새삼 둘러보는)한 10년 지난 거 같어...
진애 어...
형식 내년, 적어두 후년에는 딱 금의환향,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최연소 합격, 응?
진애 그 얘긴 하지 맙시다. 애 부담 돼.
형식 거 참, 생각을 바꾸라니까?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몰라?
진애 (선다)
거실. 늦은 밤.
-형식, 진애, 나오면서,
형식 나는 요즘 아무리 힘들어두 그런 날 오기 바라는 맘으루 버틴다.
진애 부모의 희망이 자식의 어깨를 누른다. 그런 말은 혹시 못들어보셨나?
-누리 올라온다. 퇴근길.
누리 내일 봄이 온다며?
진애 통화 했어?
누리 어...
형식 간만에 딸 둘 온전히 같이 보겠네. 어우 좋아. (주방으로)
누리 진영이 백일기념으로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금 냈단 얘기 들었어?
진애 아니?...
형식 (소주병 들고 식탁 앞에 앉으며)그런 것두 했대?
누리 (방으로 가며)거액이더라구요.
형식 거액 얼마?!
누리 방.
진애 소리 얼마면,
-누리, 옷 갈아입는다.
거실.
형식 누가 뭐래?
진애 (찬통에서 마른 반찬 꺼내 담는다)진영이가 어른들 덕에 애깃적부터 좋은 일 한다, 그렇게 생각하구 말일이지,
형식 (술을 따른다)나두 모르게 귀가 쫑긋 서버렸어...
진애 (앞에 놓아준다)이거랑 먹어.
형식 알았어...조심하께.
영라집 현수방.
-현수, 소파에 길게 앉아 핸드폰 들여다보고, 영라 서서,
영라 너 좀 창피하지 않어?
현수 뭐가...그날 술이 안받아서 그런 거 뿐이야.
영라 간단히 얘기할게. 긴 얘긴 너두 나두 재미 없으니까.
현수 얼른 하구 내려가.
영라 남들 하는대로 정상적인 연애를 해.
현수 간섭은 사양할래.
영라 싫으면 어른답게 굴던가. 니 손으로 벌어서 먹구 입구 쓴다는데야 내가 뭐라겠어?
현수 그렇게 따지면 엄마두 어른 아니지. 모범을 한 번 보여 봐. 엄마 손으로 벌어서 먹구 입구 쓰는데야 내가 뭐라겠어?
영라 (돌아서며 소리없이 가슴을 친다)
영라 거실.
영라 (들어오며)아우 약올라.
현수 방.
-현수, 핸드폰 보다가 멈칫.
이지 소리 솔직히 이해 안되구, 내가 막 언니한테 미안해. 너무하지 않어? 조건부 며느리라니.
현수 (중얼)대박이다.
접견실.
-인상과 봄, 컴퓨터로 판례 찾고, 책과 노트 마구 뒤져가며, 긴박한.
인상 반박 자료가 필요해.
봄 야, 어떡해, 조부모 입양 판례 있어...
인상 어디! (모니터 들여다 본다)
봄 청구인이 친조부모야.
인상 헐, 사건 본인을 청구인들의 친양자로 한다...
봄 생모가 18세 때 출산. 가출과 방탕을 일삼았대.
인상 우린 안 그러잖아.
봄 (삐질)이게 다 나 때문이야. 내 조건이 충족이 안돼서 그래.
인상 그게 아니지 바보야!
봄 인증이 없다는 거 아냐.
인상 부모님이 스펙 중독이라니까?! 니가 이해를 해야지!
봄 (눈물 닦고)맞어. 울구 있을 때가 아냐. 판례보다 법리가 우선이지.
인상 관련 조항 다시 한 번 보자.
봄 나 내일 꼭 집에 가구 싶어. 맘 편하게.
인상 그럴 수 있어.
-문 밖, 슬몃 보다가 사라지는 정호.
침실.
-정호, 서성인다. 연희는 모로 누워 새침.
정호 서당개 석 달에 풍월이 제법이던데...
연희 어...시너지 효과두 있는 거 같애. 어쨌거나 인상이가 입이 터졌잖아요.
정호 (한숨)현재 상태 스펙만 좋다면 바랄 게 없겠지?...
연희 그러게.
정호 (멈춘다.맞아)
연희 (본다)
정호 (손가락 딱 소리내는)그런 게 있었어.
연희 응?
형식 가게. 밤.
-형식, 철식, 소맥과 치킨을 뜯고 마시며.
-그간 마음의 요동을 반성하는 듯, 자못 착잡한.
형식 인제 뭐 마음 비우구, 나나 잘해야지...처신에 신경 쓰고...
철식 그 사람들 참 쉽게 산다 싶어요...어떻게 그 큰 돈을 고민도 없이 턱 내놓나...
형식 그런 생각 자체를 지워.
철식 지웠죠...내 조카가 잘 사는 게 우선이지. 나잇살 깨나 처먹어가지구,
형식 업종을 바꿔볼까?...
철식 사돈댁 체면 생각해서?
형식 너무 누추하니까 그 쪽 보기 좀 그렇잖아.
철식 이걸 뭘로 바꿔요.
형식 야 솔직히 이거 아버지 한창 때나 좀 됐지, 몇 년 동안 거의 개점휴업 상태 아니냐. 말년에는 그냥 평생 하시던 거니까 그냥 소일거리였잖아.
철식 하긴 뭐, 형이나 나나 직장 관둔지 몇 년이지만 설마 이걸 하게 될 거라군 상상두 안했죠.
형식 엘피 바 어떨까. 그거 엘피 레코드 틀어줄 필요 없대. 인테리어 업자한테 천만원만 주면 엘피 만장 딱 맞춰서 꽂아주는데, 그건 그냥 장식이지. 음악은 음원 사이트 받아서 틀어준다는 거야.
철식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무슨. 그러자면 수억 들어요. 적어도 3,4억은 그냥 쉽게,
형식 야야야, 관두자. 다 망상이야. 우리 인제 진짜 조용히 살아야 돼. 적어두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아야지. 마시자.
정호 서재. 아침.
-출근 차림 정호, 공손히 마주 선 인상과 봄.
정호 잘 다녀 와라.
인상, 봄 (꾸벅)고맙습니다.
-둘, 돌아서고, 정호, 힐끗.
-책상 위, 보고서. 인상과 봄이 밤새 작성한 것(20페이지쯤 되는). 제목 ‘동일 조항 상반된 판례에 관한 소고’ 아래쪽에 작성자, ‘서 봄’, ‘한인상’
거실.
-인상과 봄, 연희.
연희 (새침)잘 됐네. 아침 먹구 출발해.
인상, 봄 (흐뭇)네...
-정순이 식당에서 내다보며 끄덕.
한송. 복도 아침.
-정호, 태우와 함께 출근.
-안내 직원 인사.
정호 어, 좋은 아침.
-비서실의 주영과 양비서, 서서, 멀찍이 정호 향해 목례.
-정호, 손을 들어보이고 방으로.
비서실.
-태우가 들어오면,
주영 기분이 좋으시네요. 댁에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태우 글쎄 감이 안잡히네? 아침에 좀 늦어가지구, 밤새 안부를 확인 못하기두 했지만. (책상 앞에 앉는다)
양비서 (서류철 들며)들어가보면 알겠지.
-양비서 가고, 주영, 철식을 힐끗 살피고 모니터 본다. 뭔가 급히 확인할 게 있는 듯.
정호 방.
정호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냐. 늦도록 정말 즐거웠어요. 득천하영재 이 교육지 삼락야요, 그런 기쁨이 있더라 말이지.
양비서 아이구 저도 즐겁습니다.
정호 아주 간단히 예를 하나 들어줄게요. 알다시피 법학서는 거의 다 한자어 아닙니까. 요즘은 많이들 풀어쓰지만, 그래도 황당한 어휘가 얼마나 많아요, 근데 그 뜻을 다 알아요.
양비서 과연...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정호 그애 할아버지가 도장업을 했다는 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준 거 같아요.
영비서 하아...
정호 그래서 말인데, 그애 집안을 뭔가 기품있게 격상을 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청렴하고 건강한 서민, 거기에 더해서, 유서 깊은 유학자 집안으로 말이지.
양비서 그렇겠네요. 도장 기술자라면, 전각 예술가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호 바로 그거예요. 성균관에 가면 족보 다 있죠?
양비서 그럼요, 다 찾아 줍니다.
정호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죠!
양비서 알겠습니다.
형식 거실.
-봄의 짐(큰 가방 두 개)을 나누어 든 형식과 진애가 들어오고 그 뒤, 봄과 아기 안은 혜옥.
진애 죄송합니다. 많이 누추해요.
혜옥 별 말씀을요.
봄 차 기다리는데 진영이 저 주구 그냥 가세요.
혜옥 아니예요. 그래두 애기 도련님 짐 풀어서 챙겨 놓구 가야죠..
봄 그러실래요?
혜옥 어떻게, (애기를)작은 사모님 방에 누일까요?
봄 아,네, 이쪽이예요.(봄의 방으로)
혜옥 (뒤따르고)
진애 (형식에게 작게)작은 사모님?
형식 (쩝)그렇다누만.
정호집 인상 방.
-정순이 청소 중.
-연희가 들여다본다.
정순 허전하시죠?
연희 허전하긴, 홀가분하죠. 환기 잘 시키세요.(돌아선다)
정호 집. 아기방.
-연희, 비어있는 침대 쓸어보고, 헝겊 인형 집어 뺨에 대본다.
-선숙이 삘쭘 들여다 보고 간다.
-연희, 모빌 툭 치는.
재원 스위트.
-영라가 들어오며 불평.
영라 얘, 문 앞에 왜건 좀 빨리빨리 치우라 그래. 다 먹은 음식 그릇처럼 보기 흉한 게 없어.
-미니바의 재원과 제훈, 마실 것과 피규어 몇 개 놓여 있다.
재원 어서 와라.
영라 어머, 미안.
제훈 (들고 있던 피규어 내려놓고 일어선다)처음 뵙겠습니다.
재원 윤제훈.
영라 세상에, 나 돌았나봐. 초면에 웬 실례겠니. 당연히 아직 안왔을 줄 알았지.
제훈 괜찮습니다.
영라 영광이예요. 나 연수원 수석, 이런 사람 첨 보거든.
제훈 (쑥스럽다는)
재원 그냥 여기 앉을래?
영라 좀 그렇다. (제훈에게)저 자리가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훈 네, 좋습니다.
-조금 후, 소파에 앉은 셋. 탁자 위 마실 것 세 잔과 조그만 피규어들.
영라 근데 이름이, 재원, 제훈, 아무 상관 없는 거지?
제훈 송이사님은 아이, 저는 어이,
영라 신기하네요. 수재들은 아무래두 전형적인 데가 있잖아.
재원 얘두 뿔테 안경 씌워 놓으면 딱 그래보여.
제훈 (웃음)그래서 안쓰잖아요.
영라 보자는 사람이 많겠어요.
재원 너무 많지. 일단 첫 번째 부류가 마담 뚜,
영라 왜 아니겠어. 다들 벌떼같이 달려들어 표 받구 줄 서있겠지.
제훈 (손 저으며 웃음)아니예요, 저는 별로 없어요.
영라 정말? 겸손의 말씀 아니구?
재원 지가 필터링 하는 거지 뭐. 얘 부모님두 그렇구. 워낙 조용히 사시는 분들이라.
영라 훌륭하시네요...
제훈 저희 아버님 하시는 일 자체가, 일단 조용해야 하거든요. 하위직이지만 공무원 신분이라 엉뚱하게 정치 바람 같은 거 탈 수두 있구요. 그렇다보니까,
영라 말 진짜 이쁘게 하신다...
제훈 감사합니다.
재원 우리같은 날라리들 하구는 인생의 경지가 다르지.
영라 나 괜히 찔려. (제훈에게)아닌게 아니라 우린 좀 시끄럽거든요. 지금두 좀 정신없죠?
제훈 아니요, 재밌습니다.
영라 (새삼 웃어주고 재원에게)용건 얘기 했어?
재원 대충만.
영라 우리 친정 회사에서 법무 팀을 따로 두려구 하거든요. 대산그룹이랑 별도로.
제훈 아아...
한송. 정호 방. 낮.
-정호와 주영이 들어온다. 정호는 소파에 앉고 주영은 서서,
정호 그 친구가 송이사랑 왜 친하지? 아버지가 총리공관 근무자라는 건 접점이 못되는데? 송재원이 공관에 자주 가지두 않잖아. 송총리 취임한지도 얼마 안됐고.
주영 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송이사가 에스에프 동아리 원년 멤버구요, 오비 회장에 큰 후원자다 보니까.
정호 별거 다 하네.
주영 지금 통화 하시겠어요?
정호 그러죠.
-주영, 책상 위 핸드폰 집어 건네고,
재원 스위트.
재원 (통화)어, 형, 어쩐 일예요...아니요, 손님들하구 얘기 중이야.
영라 (응?. 입모양으로 묻는다. 한정호?)
재원 (끄덕여보이고, 통화 계속)응?...(웃음)어떻게 친하냐니, 형은 무슨, 인간관계가 꼭 한정호 방식대로 발생하는 건 아니지...
제훈 (혼자 조금 웃으며 피규어 만지작)
재원 나는 세대를 초월한 친구가 좀 많아...형은 그런 거 모르겠지만.
한송 정호 방.
-주영은 없고, 정호, 통화 중.
정호 사람이 어떻게 다 알구 살겠니...거두절미, 용건을 말하께. 윤제훈 그친구한테 침 바르지 마라. 우리가 작업 중이야. 오케이?
재원 스위트.
재원 (끊으며)침 바르지 말라는데?
영라 말을 해두. (제훈에게)한대표 그런 말 쓰는 거 상상이 안되죠?
제훈 (웃음)
재원 귀엽게 볼수도 있는데,
영라 두 번만 귀여웠다간,
재원 암튼, 난 인제 모르겠고,(제훈에게)니 선택을 돕기 위해서 순전히 내 기준으로 한마디 한다면, 이거 하나야. 일이 많아서 피규어 신상 번개 모임에 못나가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영라 그럼요. 우리두 법무팀에 무슨 막중, 과중한 업무를 맡길 생각은 없어요. 그냥 자문 정도? 어차피 송사는 대리인 선임해야 하잖아?
재원 그냥 다 얘기 해, 돌리지 말구.
영라 그러자. (제훈에게)실은 내가 딸이 하나 있답니다.
제훈 네? (재원을 보면)
재원 난 인제부터 노코멘트.
영라 걔두 재밌어요, 인물두 좋구. 나만큼은 아니지만.
재원 얼씨구?
제훈 (진심 재밌어서 웃음)
한송. 신영 방. 오후.
-신영, 주영.
주영 아침에 의논 할려구 했는데, 지시 사항이 맍아서 좀 늦었어요.
신영 (긍정적인 미소)그러잖아두 궁금했어요...뭐죠?...왜 나랑 따루 구좌 틀려구 해?
주영 개인적인 일이예요.
신영 연애 상담?
주영 그럴 수도 있구요(usb와 쪽지 내민다)읽어봐 주세요.
신영 오오, 영광이네.
주영 그럼,
-주영이 나가면, 신영, 쪽지 편다.
주영 소리 usb에 내용을 적었습니다. 반드시 변호사님 개인 태블릿으로 읽어 주십시오.
-신영, usb 만지작. 뭘까. 알기 전에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정호 방.
정호 내일 오전 스케줄이 없던데, 집사람이랑 양평에서 하루 자고 와도 되겠죠?
양비서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간의 갈등과 불화를 깨끗이 해소하십시오. 며느님 친정 승격 껀은, 특별히 따로 신청해 놨습니다. 시일은 좀 걸린다고 합니다.
정호 잘하셨네요. 그럼, (선다)
-양비서, 옷걸이의 윗도리 받쳐들고, 정호, 팔 꿴다.
신영 방.
-신영, 소파 탁자에 발 올리고 앉아 태블릿 본다. 흠, 웃기도 하면서,
주영 소리 당시 내부고발자 민주환이 제시한 증거물은 폐기처분 됐고, 노조 측에 전달한 활동비가 민주환 개인 명의로 입금이 되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유변호사님은 그동안 한송의 경리부장이나 다름이 없었죠. 최근 접근 차단 조치된 일련의 자료들 중에는,
비서실. 퇴근 무렵.
-양비서, 주영, 가방 챙긴다.
-신영이 복도 지나 나가는 모습 보이고,
양비서 유변이랑 무슨 용무가 있었나?
주영 컴퓨터 고장 수리 팔로업 하느라구요.
양비서 오늘 한 대표 집에서 파티가 있어.
주영 네?
양비서 을들의 향연이지. 원래 일년에 두 번, 여름 겨울에 휴가 떠나면 오래된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한판 걸지게 놀거든.
주영 오, 재밌겠네요...
양비서 근데 이번 겨울에는 손자 보는 바람에 걸렀잖아. 다들 목 빼고 기다린다. 같이 가자.
주영 어떡해, 선약이 있어요.
-태우, 손수건으로 손 닦으며 들어온다.
태우 무슨 약속인데?
주영 취미 생활. 요즘 솔로들, 취미 동아리가 대세잖아요.
태우, 양비서 (힐끗)
정호 침실.
-파우더룸. 연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화장 매만지고, 선숙이 1박 2일 가방을 챙긴다.
연희 이지 오면 한남동 데려다 주구 퇴근하세요.
선숙 네.
연희 내일 오전에 데려오시면 돼요. 애들끼리 오랜만이라 밤새 놀겠지.
선숙 잠옷은 이걸 넣을까요? (화려한 레이스 들어보이는)
연희 (잠깐 생각)알아서 해요(다시 거울).
선숙 제가 입을 게 아니라서,
연희 그걸루 하던가.
정호 동네 전경. 밤.
-왁자지껄 웃음 소리.
정순 소리 왕언니 납신다!
정호 집. 거실.
-현관. 양비서와 태우가 들어서고 정순이 달려간다. 앞치마 대신 헐렁바지에 티셔츠.
양비서 잘들 계셨나...
-양비서와 정순, 두 손 맞잡아 크게 흔들고,
-선숙이 거실 어귀에서 양비서 향해 환영의 트위스트. 선숙도 정순처럼 편한 차림.
양비서 (깔깔깔)여전하구나.
선숙 (요염자태까지 보여드린다)
-거실. 박집사가 양비서에게 경태 소개. 정순은 양비서 가방 들고 계단 옆으로.
-탁자 위엔 이미 술과 안주 질펀.
경태 (양비서에게 깎듯이 인사)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경태라고 합니다.
양비서 (어깨를 친다)수고 많으시지요.
경태 지도 편달 부탁 드립니다.
-어느새 태우는 앉아서 선숙이 따라주는 술 받는다.
정순방.
-거실의 박장대소 들려오고,
-티셔츠 갈아입은 양비서가 바지를 끌어올린다. 정순은 양비서의 옷가지를 옷걸이에 걸고,
정순 아유 왕언니께선 고대로시네.
양비서 고대로는 야, 배가 점점 나와가지고 하루 종일 답답해 죽는다.
정순 (양비서의 보정 속옷 들어보이며)세상에 이건 그냥 갑옷이네. 나는 앞치마로 가리면 되는데.
양비서 (티셔츠 소매 걷으며 은밀)야, 며칠 전에 사향노루 거시기 샀다고 하던데, 효험 좀 보셨다니?
정순 뭘 물어요. 꽝이지.
양비서 (혀를 찬다)돈이 썩어 난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이런 기회에 충성도를 떠보려는)
정순 그래두 애쓰는 게 어디야, 밖에서 딴짓 안하구.
-둘, 나가며,
양비서 그거는 그렇지.
형식 집 거실. 밤.
-인상이 고개를 반쯤 돌려 술을 목구멍에 들이 붓듯이 비우고 철식에게 잔을 올리려 하자, 철식이 술병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잔을 채운다.
-진애, 인상의 앞접시에 전 따위 덜어놓고,
철식 아니지, 이런 날은 그냥 주는대루 먹구 확 자버리는 거야.
인상 네!
진애 아버님이랑 술 가끔 해?
인상 아니요, 이런 자리 처음이예요.
철식 마셔.
인상 네, 그럼, (고개 돌려 꿀꺽꿀꺽)
철식 어이구, 제법이네.
진애 너무 많이 주진 말아요. 잠자리두 낯선데 화장실 드나들다 넘어질까 걱정돼.
-진애, 봄의 방으로 가고, 이번에는 형식이 잔을 채워준다.
형식 술이나 줘야지 뭐. 내가 참, 면목두 없구 할말두 없어.
인상 아닙니다. 봄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형식 그래, 그 맘만 잊지 마.
봄이 방.
-누리가 진애에게 아기 건네준다.
진애 젖 먹였지?
봄 어, 새벽까지 잘 거야.
진애 외할머니랑 자자? (나가려다)어른들께 전화 드렸어?
봄 어.
안방.
진애 (아기 누이며)우리 도련님 기저귀 좀 볼까?...
정호집 거실.
-풍악 소리 거나하다.
-박집사가 양비서에게 스텝을 가르치고, 양비서 잘 보고 따라하지만 번번이 꼬여. 정순, 대구포 따위 물고 손뼉을 쳐가며 깔깔깔.
-경태와 선숙, 농밀한 춤 추면서,
선숙 사랑의 묘약은 시험해 보셨는지요.
경태 고이 간직하고 있어요. 언젠가 둘만의 그날을 위해.
선숙 우린 그런 게 필요없지 않나요.
경태 동의합니다...
-일각. 얼근히 취한 태우, 구겨지듯 주저앉아 문자.
태우 소리 어딨어요....왜 씹으시나...있을 때 잘해...야, 민주영!
-양비서가 태우의 뒤통수 빡!
양비서 뭐하니!
태우 아, 누님!
양비서 너 민주영이한테 맘 있지?!
태우 (비칠 일어서다 주저앉는다)글쎄, 이 요망한 것이 계속 씹잖아.
사격장. 밤.
-두 개의 과녁에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실탄이 꽂힌다. 명중률 현격히 차이 남.
-주영과 철식, 각각 사로에 서서, 방아쇠 당기는.
-주영, 귀마개 벗고, 조끼도 벗고, 철식은 점수표 두 개 비교하며 웃음.
철식 너무 차이나네...자주 하시나 봐요.
주영 네, 주말엔 거의.
철식 단골은 싸게 해줘요?
주영 생각 있으면 말씀하세요, 주인이랑 잘 알아요.
철식 (새삼 점수표 보며)생각을 해봐야겠네요. 이게 뭐냐고.
주영 나가시죠.
철식 아,네.
정호 집 거실 일각.
-거실 쪽은 시끄럽고,
태우 (안경 들고 눈 가를 닦는다)내가 매력이 없는 거지 뭐...(안경 바로 쓰다가 양비서 본다)누님 나 어떡하지?
양비서 (쥐어박는다)인간아...
태우 (피하며 흑)
부근 공원. 밤.
-주영,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걷는다. 철식, 헉헉 숨소리 티내지 않으려.
철식 감이 영 안오더라고요. 팔이 덜덜 떨리고. 예비군 동원 때 소총이나 쏴봤지 그런 건 오늘이 첨이라.
주영 근력, 악력, 다 연습해야죠.
철식 설마 저걸 쓸 일은 없겠죠?
주영 순간 집중, 순간 판단, 그런 게 좋아서 하는 거 뿐이예요.
철식 좀 천천히 걸으면 안될까요.
주영 습관이 돼서요. 저기 앉을까요?
철식 아이고,감사합니다.
-둘, 벤치에 앉아 마실 것 한잔씩 들고.
철식 주환이한테는, 미안해서 연락을 못하겠어요.
주영 오빠 얘기 안하셔두 돼요. 할만큼 하신 거 알아요.
철식 뭐 꼭 그렇지는 않죠...괜히 나한테 처음 들켜가지고...
주영 그때 공개 안하시구, 시간을 준 게 고맙대요. 자기 입으로 밝히게 해준 게.
철식 그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워낙 살벌했으니까요. 다 지난 일이지만.
주영 계속 그렇게 사실 거예요?
철식 (응?!)
주영 지난 일로 치고 사실 거냐구요.
철식 (본다. 혹시?)
주영 딱히 대상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뭔가 바로 잡고 싶은 게 없나요?
철식 (고개 설레설레)없죠, 당연히.
주영 그래요?
철식 그것도 다 한 때 생각이예요. 머리도 나쁘고 간도 작은 놈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주영 (선다)잘 알겠습니다.
철식 (선다)뭘,
주영 저는, 머리 나쁘고 간 작은 분이랑은 할 얘기가 없어요.
철식 (!!!)
주영 이만, (간다)
철식 (잡지 않고 본다. 신호다!)
-주영, 가면서 핸드폰 본다. 부재중 전화 및 문자 한가득. ‘김태우 김태우 김태우...’ 열 개쯤. 그 중간에 ‘유신영’
-주영, 유신영 문자 연다.
신영 소리 2천8년도 사태 때 집행부 쪽 증인이 필요해요.
주영 (가면서 등 뒤 의식. 서철식, 당신인데)
-철식, 그 자리에 선 채 외친다.
철식 연락 할게요!
주영 (오케이. 돌아보진 않고 브이자)
-철식, 멀어져가는 주영을 담담히 바라본다. 체한 건 토해내야지.
정호 집. 밤.
-텔레비전 화면에 신바람 이박사 동영상. 다들 흉내 내거나 감탄하며 우스워 죽는데,
-박집사, 식당에서 나와 안채 계단 뛰어올라간다.
박집사 (손나팔)경계경보요!
-양비서가 급히 리모콘으로 소리 죽이자, 다들 돌아본다.
-화면 속 이박사, 소리없는 열창.
-벙하니 바라보는 양민들.
박집사 금 23시 19분 현재, 주인님 내외분께서 부부 싸움으로 인해 급거 귀가 중, 이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양민 여러분께서는, 비상시 대처 요령을 다시 한번 숙지하시고,
정순 방.
-선숙이 허겁지겁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경태가 문간에서 바깥 쪽 살펴가며 망을 봐준다.
-양비서가 벗어놓은 바지와 티셔츠 한켠에.
경태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선숙 빈도는 낮습니다만 강도는 쎄죠,
-태우가 경태를 밀치고 들어와 침대 위에 뻗는다.
경태 우린 언제 같이 나갈 수 있죠?
선숙 (나가며 머리 매만진다)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거실.
-현관, 박집사가 실내화 놓아주고 정호와 연희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들어선다. 선숙과 양비서가 가까이 나가 맞이한다.
-거실. 탁자 위의 것들 왜건에 실려 있고, 정순(어느새 근무복 차림)리모콘으로 밀고 가려다가 황황히 리모콘 집어 이박사 비디오 끄고,
-현관.
양비서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모님.
연희 오, 그래요, 간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나봐요?
양비서 네, 외람되게도.
정호 집엔 별일 없겠죠?
선숙, 양비서, 박집사 네...
-다들 거실 향하고, 선숙, 기사에게서 연희의 여행가방 건네 받는다.
-거실, 정호와 양비서는 서재로, 선숙과 연희는 침실로.
-박집사, 바라보다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정순이 식당에서 마실 것 한잔씩 얹힌 작은 쟁반 두 개를 들고 나오자 얼른 하나 받아든다.
서재.
-정호, 마실 것 벌컥이고, 양비서가 단정히 서서 지켜본다.
-정호가 잔을 내려놓으면,
양비서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정호 (쓸쓸히 한숨)
양비서 혹시 장회장 댁 사모 때문에 언쟁을 하신 건지,
정호 (고개 젓는다)
양비서 아니라면, 모처럼 화락하신 중에 왜,
정호 아무래도 갱년기 증상 같아요.
양비서 무슨 그런 말씀을요.
침실.
-파우더 룸.
-선숙이 가방에서 옷가지 꺼내 걸고, 연희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
-선숙, 레이스 까운을 다시 접어 서랍에 넣고, 연희, 힐끗 보고 외면.
선숙 저한테 다 털어놓으세요. 홧병 됩니다.
연희 혹시 그때 그거,
선숙 사향주머니 말씀이신가요.
연희 갖구 있어?
선숙 ...버렸는데요.
연희 그래...이비서같은 독신녀는 필요가 없겠지.
선숙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아차), 아무튼 저는 그런 게 필요 없습니다.
연희 나 정말 늙었나봐. 뜨겁지가 않은 거야.
선숙 나이는 무관합니다. 케미가 중요하지요.
연희 그런 건 인제 포기해야지 뭐.
선숙 그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선다)모쪽록 안녕히 주무시기를,
연희 (글썽)어,
정순 방.
-박집사와 경태가 태우를 찰싹여 깨우고,
박집사 어이,
경태 김태우,
박집사 집에 가서 자야지.
경태 야,
-한켠에서 선숙과 양비서가 가방과 핸드폰 따위 챙긴다.
양비서 (선숙에게)저렇게 두고 가도 될까.
선숙 본인들이 해결하셔야죠.
양비서 참, 만사를 좌지우지하는 양반이.
-정순이 들어온다. 종이봉다리 양비서에게,
정순 이렇게 가셔서 어떡해.
양비서 뭐니?
정순 주먹 찰밥이야. 냉동실에 넣어놓구 하나씩 뎁혀 드셔.
-박집사와 경태, 태우를 굴리다시피 하다가 정순에게,
경태 재워주셔야겠는데요,
박집사 통나무야.
정순 그건 안되지...우리 사생활은 딱 자는 시간뿐인데.
박집사 자네가 데리구 가.
선숙 선생님 사생활도 있지 않나요?
정순 하루쯤 재워줄 수두 있지!
경태 물론입니다만(선숙 눈치),
양비서 맞다. 업고라도 나가.
거실.
-경태와 박집사가 태우 양팔 걸고 나간다. 선숙, 양비서, 정순, 다 조심조심 현관으로.
양비서 기분 잘 살펴 드려.
정순 알았어요...
침실.
-잠옷차림 정호, 빗을 들고 파우더룸 기웃.
-파우더룸, 잠옷차림 연희, 아이크림 바르고 일어선다.
-연희가 나오면, 정호, 얼른 앉아서 혼자 정수리 친다. 나 혼자서도 잘 하거든?!
-연희, 거들떠도 안보고 침대에 눕는다.
-정호, 거칠게 두드린다. 헛손질도 해가면서.
-연희, 흥!
아기 방. 늦은 밤.
-정호, 문간에서 들여다보다가 들어와 오르골 감는다.
-시간 경과. 연희가 들여다보고, 정호가 등뒤에 쓱.
정호 꼭 자구 와야 하나?
연희 당신이 그러라 그랬잖아.
정호 내가 언제?!
연희 허, 참 기가 막혀.
봄이 방.
-봄은 침대에 팔 베고 누워서, 누리는 책상 앞에 앉아서 도란도란.
누리 몸조리는 잘 된 거야?
봄 이만하면 잘 된 편이래. 배두 쏙 들어갔구...직장은 재밌어?
누리 수습이라 정신없지 뭐. 그런대로 할만 해.
봄 언니 힘으루 돼서 다행이야.
누리 글쎄.
봄 왜?
누리 난 당연히 내 실력으루 됐다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눈치 줘. 너희 아버님 빽이라구.
봄 디따 불편하겠다.
누리 당연하지.
봄 인제부터 뭔가 보여주면 되겠네 뭐.
누리 낙하산 꼬리표 떼기가 쉬운 줄 알어?
봄 (웃음)미안.
누리 너네 시댁 덕 좀 볼려구 잔머리 썼다가 벌 받는 거야.
-문이 벌컥 열리고, 인상.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
인상 서 봄, 나 어떡, (하다가 누리에게)죄송합니다.
봄 (일어나 앉는다)왜, 화장실?
인상 아니, 그게 아니라,
누리 (웃음)노래 시켰구나?
인상 네,
봄 그냥 하면 되지 뭘 또,
누리 도전 천 곡, 우리 집 가풍이야. 혼 좀 나봐.
인상 네, (봄에게)빨리 나와, 떨려 죽겠어,
형식 거실.
-인상과 봄, 동요 가요 망라하여 두 소절씩 끝없이 노래하고, 철식, 누리가 손뼉치며 박자 맞추고, 애 깬다고 잔소리하는 진애.
-그 와중에 형식이 반쯤 돌아앉아 고함치듯 통화 중.
형식 아, 글쎄 지금 애들이 전화를 받을 수 없,(하다가)누구요?...아이고, 이거, 참, 이 밤에 어쩐 일로...네?!
정호 서재.
-까운 차림 정호가 통화 중이고, 연희가 독려하듯 지켜본다.
정호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이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애들이 그동안 나름껏 생활 리듬을 잘 지켜 왔는데, 그게 깨지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지금 즉시 차를 보낼테니까, 세 식구,
형식 거실.
형식 (버럭)이봐요!
-도전천곡 뚝 그치고 다들 형식을 본다.
형식 이게 무슨 경웁니까? 나 안그래두 유감 많았는데, 이렇게 더 보태십니까?! 애들 잘 놀구, 진영이두 잘 자구 있구만, 지금 보내라니요!!!
-진애가 아기 안고 나온다.
진애 어머머 별일이야, 이 밤중에?
인상 아버지세요?
철식 그런 거 같네.
누리 너무 하신다.
형식 (통화)우리는 고작 이 정도 자격두 없다는 거야?!!
봄 아빠, 그래두 반말은 자제,
형식 저쪽에서 먼저 했어! (다시 통화)애들이 당신 꺼야?!!!
-진애, 안방으로.
진애 우린 듣지 말자, 진영아. 어른들이 배려가 없어. 그치?
정호 집 서재.
정호 보내라고!!!! 귓가에 쟁쟁거리구 눈 앞에 어른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
형식 집 거실.
형식 싫어!!!!
정호 집.
정호 나두 싫어!!!!!
형식 집 앞 밤.
-정호 차 도착하고, 정순이 내리면서 통화.
정순 네, 진영 할머님, 저 지금 왔는데...
-누리가 나온다.
정순 아, 네, (전화 끊고는)진영이 이모시구나.
누리 네, 안녕하세요.
정순 제가 들어가서 도울까요?
누리 아니요, 좀 기다려 주세요. 지금 의논 중이거든요. 아빠가 못가게 하셔서요. 좀 취하시긴 했지만 저희두 서운하구요.
정순 아유 알죠...
형식 집.
형식 가지 마! 그건 순종이 아니야. 지는 거야.
인상 맞아요.(술 마신다)
진애 (안방에서 나온다)장인 사위가 다 취했네.
형식 나 안취했(철식 어깨에 툭)
철식 아유 고맙네. (형식을 눕힌다)이럴 땐 한명이라두 조용히 해주셔야,
인상 (철식에게)제 잔,
철식 어, (받아주며)봄이 니가 결정해야겠다.
인상 (철식 잔에 술 따르며)제가 전화 드릴게요. 못갑니다. 그럴게요.
진애 그건 아니지...
-누리가 들어온다.
누리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웬만하면 가는 게 좋겠단다. 집안 분위기가 좀 그렇다구.
봄 뭐지?
인상 제가 정할게요. 공평하게, 봄이 너는 진영이랑 가고, 나는 여기서 (쓰러진다)자겠습...
누리 세상에.
철식 결론 났네.
봄 (진애를 본다. 괜찮어?)
진애 괜찮어.
누리 진영아빠 두구 왔다구 혼나는 거 아냐?
진애 (선다)그럼 자는 걸 깨우니?!
봄 (선다)혼나지 뭐.
-잠시 후, 누리가 큰 가방, 봄이 작은 가방, 진애가 아기 안고, 철식이 앞장 서서 내려간다.
누리 이게 뭐야...
진애 뭐는 뭐야, 시집살이지.
봄 인상이 인질로 두구 갈게. 막 구박해.
철식 (주영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착잡)
정호 집 거실. 밤.
-정순이 진영을 안고, 봄과 가방을 든 박집사가 들어선다.
봄 다녀왔습니다...
-정호와 연희, 어색하게 서서 위엄 부리는.
-박집사는 안채로. 아기방에 가방 놔두러.
연희 인상이는 서씨 집 아들 하겠대니?
정호 (험)그래두 공평하게 잘 했다.
봄 (웃음)네, 신의 한수,
연희 잠자리 바꿨다가 혹시 탈이라두 날까봐 오라구 했어.
정호 너희 어른들 서운하신줄은 알지만, 진영이를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가장 약하구 여린 존재 아니냐.
봄 (웃음 감추고)그러니까요.
연희 들어가 눕히세요.
정순 네, (봄에게)오늘은 제가 볼게요. 보모님이 휴가라,
봄 저기, 제가 데리구 자구 싶어요.
정순 그러실래요?
정호, 연희 (한번 급히 마주 보고는 봄과 정순을 향해)우리가!
봄, 정순 네?!
아기방.
-정호와 연희가 아기를 향해 엎어지다시피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어르고,
복도.
-어르는 소리 들으며 봄과 정순, 소곤소곤.
봄 우리가 번갈아 보초를 서야 할 거 같아요.
정순 그래야지...한 시간두 못버티실걸.
봄 (흐흐흐)
정순 (마주 웃음)
형식 집 거실. 다음날 아침.
-말끔히 치워진 탁자에 쪽지 붙어 있다. ‘가게에 있으니까 깨면 전화해’ 형식 혼자 자고,
욕실.
-인상, 엉거주춤 서서 나름 계산. 저게 물이고, 이건 대야니까, 저기서 물을 퍼서.....바가지 집어든다. 대야에 물을 퍼담고, 쭈그려 앉아 본다. 어떻게 앉아도 이상하다. 간신히 세수.
주방.
-인상, 서서 물을 마시며 둘러본다. 가스렌지 벽에 붙어있는 반짝이도 쓱 만져보고, 싱크대 틈새도 기웃.
봄의 방.
-문간에 서서 한참 바라보는 인상. 서 봄이 방에서 살았구나. 아기자기한 물건들. 봄의 손때 묻은 책들.
정호 집 식당 일각.
-봄, 인상과 통화.
봄 여태 거깄어?...너 학교 갔다 그랬는데...
형식 집 봄의 방.
-침대에 걸터 앉아 소리 낮춰 통화 하는 인상.
인상 나 지금 니 방에 있어...어...다이어리같은 거 찾는데, 없더라?...그런 걸 봐야지...구남친 사진 같은 거...
형식 소리 (잠 덜깬)여보, 인상이 갔어?
인상 아버님 깨셨다. (밖을 향해)아니요, (하고는 통화)이따 봐. (끊으며 일어선다)
-형식, 들여다본다. 푸스스한 얼굴로 멋쩍은 웃음.
인상 안녕히 주무셨어요.
형식 뭐 하냐...
인상 그냥.
형식 잠은 좀 잤구?
인상 네.
형식 목욕 갈래?
인상 어,어.. 네,
가게 앞.
-인상과 형식, 나온다. 파우치 하나씩 들고.
-가게 안에서 목 빼고 내다보는 진애. 괜히 시큰. 같이 목욕 가는 게, 그까짓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형식은 왠지 뿌듯.
형식 (인상을 힐끗)낯설지 않냐?
인상 (조금 웃음)네, 좀,
형식 견문을 넒힌다 생각해. 너네 집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거든.
인상 그렇죠.
형식 목욕하구 나와서 동네 한바퀴 돌아주께. 사람들이 다들 뭐 해서 먹구 사는지 보라고.
인상 네...
정호 집 접견실. 같은 시각.
-봄, 열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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