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우리에게 16
[흥미로운 음악]
(숙희) 자, 방금 나눠 준 종이에
각자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를 적어 주렴
(학생들) 네
(대성) 브라더
어려우면 다른 거부터 풀까?
그래, 사실 내가 수리가 엄청 약하거든
우리 영어 할까?
아니, 언어 영역 하자
(대성) 최소한 무슨 말인지 읽을 수 있잖아
어, 일리 있네
(솔이) 근데 대성아
너 장래 희망은 써서 냈어?
아니, 아직
그러는 브라더는 장래 희망이 뭔데?
사실 나도 아직 못 적었어
음
뭐 좋아하는 거 없어?
음, 그림이랑
(솔이) [웃으며] 그리고…
[흥미로운 음악]
[헛기침]
우리 빨리 문제 풀자
(대성) 응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우주와 인간 세계에 관한'
'비결정론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에피쿠로스 자연학…'
[한숨]
브라더, 이게 무슨 말이야?
[익살스러운 음악] 한국말인데 이해가 안 되네
씁
내가 한번 볼게
(솔이) 자, 음…
둘 다 꽤 용감하네
가르치겠다는 애나
듣겠다는 애나
[대성의 헛기침]
[웃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하영이 가방을 부스럭거린다]
(진환) 아, 아, 하영이, 어
오, 오랜만이네?
나 다시 입원한 거 어떻게 알았대?
나 그때 퇴원했다가 오…
어, 어제 다시 입원했거든
[멋쩍은 웃음]
[한숨]
(하영) 담임이 희망 대학이랑 학과까지 써서 내래
장래 희망도 같이
[진환의 옅은 신음]
난 됐어
(하영) 이건 수리 프린트
수능 전까지 이걸로 진도도 하나 더 뺐어
내가 풀이 과정이랑 유의 사항까지 정리해 놨으니까 봐
필요 없다니까
나 과외 선생님이랑 하는 것도 충분히 많아
너 정말 필요 없어?
응
[잔잔한 음악] 필요 없어
(진환) 아이고
아휴, 저 성질머리
나니까 받아 주지
(헌 모) 지금 뭐라고 했니?
케이스트 안 간다고요
(헌) 어머니가 하도 원하시니까 지원했던 거예요
합격해도 갈 생각 없어요
대체 그럼 넌 뭐가 하고 싶은 건데?
(헌 모) 네가 좋아하는 수학과 나와서 교수 하면 좋잖아
의대 가고 싶어요
[헌 모의 성난 숨소리]
(헌 모) 헌아
네 아빠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제 인생이잖아요
이제 제가 알아서 결정할게요
[헌 모의 기가 찬 신음]
(헌 모) 차헌
[문이 달칵 열린다]
[헌 모의 한숨] [문이 달칵 닫힌다]
[흥미로운 음악]
어휴, 힘들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안도하는 한숨]
[웃음]
(진환) 왜 왔냐?
넌 뭐 하는데?
(진환) 하영이가 아주 빡빡 찢고 갔다
내가 열받게 했거든
이대로 끝낼 거야?
뭘 끝내?
(헌) 강하영이랑
[잔잔한 음악]
이런 몸으로 누굴 좋아하겠어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 아무튼 난 안 돼 - (헌) 그건…
(진환) 너야말로 어떡할 거야?
야, 신솔이가 여기 와서 얼마나 징징대고 간 줄 아냐?
누가 들으면 뭐, 케이스트가
대전이 아니라 어디 뭐 미국에 있는 줄 알겠다니까
수시 면접 어땠는데?
붙겠지
어유, 재수 없어
[살짝 웃는다]
안 가
뭐? 안 간다고?
(진환) 진짜? 왜?
의대 갈 거야
[탄성]
역시 넌 난놈이다
그리고
솔이 옆에도 있고 싶고
뭐?
(진환) 너 차헌 아니지?
너 누구야, 차헌 데려와, 씨
[진환의 웃음]
그러니까 너도 강하영 피하지 마
[살짝 웃는다]
[헌이 살짝 웃는다]
[솔이의 한숨]
[헌의 한숨]
삼각 함수는 결국 공식의 변형이야
(헌) 어렵게 보여도 제2 코사인 법칙을 떠올리면 쉬워져
(솔이) 응
(헌) 혼자 한번 풀어 봐
(솔이) 응
[헌의 옅은 한숨]
[솔이가 사각사각 글씨를 쓴다]
[잔잔한 음악]
다 풀면 말해
응
뭐 해?
[솔이의 당황한 신음]
(솔이) 아, 그게…
내가 너 땀 닦아 주려고 했다면
믿을래?
[부드러운 음악]
[헌의 옅은 한숨]
(헌) 너 연필 깨무는 버릇 고치면 믿을게
[한숨] [애잔한 음악]
(솔이) 어? 어, 대성아
어, 브라더, 안녕
훈련하고 이제 오는 거야?
응 [휴대전화 진동음]
잠깐만
네, 여보세요
할머니가 사라져요?
(대성) 자, 잠시만요, 제가 금방 갈게요
[솔이의 의아한 신음]
- (대성) 할머니! - (솔이) 할머니!
[거친 숨소리]
(솔이) 우린 이쪽으로 갈게
- 고마워 - (솔이) 어
(대성) 할머니!
할머니!
(헌) 할머니!
(솔이) 할머니!
(헌) 저, 혹시
할머니 한 분 못 보셨어요?
(솔이) 키는 저 정도 되시고요 머리는 단발머리예요
(남자) 못 봤는데요
- (헌) 감사합니다 - (솔이) 감사합니다
[솔이의 한숨]
(대성) 할머니!
할머…
[가쁜 숨소리] [무거운 음악]
[헌의 거친 숨소리]
(헌) 어? [솔이의 거친 숨소리]
저분 맞아?
(솔이) 어?
어
[거친 숨소리]
[웃음]
[달려오는 발걸음]
[대성의 거친 숨소리]
[애잔한 음악]
(대성) 할머니, 이거 신어요
[대성 조모의 웃음]
(대성 조모) 아이고, 고마워라
그런데 총각
우리 대성이는 언제 온다고 했지?
[대성의 떨리는 숨소리]
곧 올 거예요
(대성 조모) 대성이 배고플 텐데
저도 배고픈데
할머니, 저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
[웃음] 우리 대성이도 김치찌개 좋아하는데
(대성 조모) 내가 맨날 끓여 주고 싶어도
수영 연습하느라고 바빠서 얼굴을 못 본다니까
[대성 조모의 웃음]
걔가 세계 챔피언이 될 애거든
[대성 조모의 웃음] [대성이 흐느낀다]
왜 그래, 총각?
배가 많이 고파?
내가 밥해 줄게
[대성이 연신 흐느낀다]
[풀벌레 울음]
(대성) 고맙다
(헌) 괜찮아?
(대성) 응
야, 차헌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수영, 수영
수영 말이야, 인마
[헌이 코를 훌쩍인다]
아 [헌의 헛기침]
[대성이 살짝 웃는다]
아무튼 우리 할머니 소원 들어줘야지
[잔잔한 음악]
그래
힘내
(대성) 넌 어떻게 할 거야?
(헌) 난 케이스트 안 가기로 했어
솔직히 난 네가 가길 바랐는데
[헌의 헛웃음]
뭐?
어쨌든 안 간다니 잘됐네
우리 브라더 잘 부탁한다
[픽 웃는다]
너 방심하지 마
조금이라도 솔이 힘들게 하면 내가 바로 달려갈 거니까
그럼 얼굴 볼 일 없겠네
내가 그럴 일 없으니까
[헌이 픽 웃는다]
아, 재수 없는 놈
[함께 웃는다]
[대성의 개운한 한숨]
[메시지 수신음] (대성)
(대성) 신솔이
어
[풀벌레 울음]
(대성) 여기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인데 [잔잔한 음악]
혹시 기억나?
어?
어, 그러네?
[박수 소리가 들린다]
(대성) 이 학교가 그렇게 무서운 곳이야?
다리 하나 부러지는 건 각오해야 되나?
그래, 여기 완전 무서운 곳이야
그리고 나도 무서운 사람이고
(대성) 신솔이
나 너 좋아해
정말 많이
- 대성아… - (대성) 그리고
이거
(대성) B, A, L
A, N, C, E
(대성) 어때?
내 덕분에 살았지?
(대성) 처음 널 봤을 때
그냥 귀엽다고만 생각했어
근데 나도 모르게 널 좋아하게 된 거야
네가 내 경기를 보러 와 줬을 때부터
(솔이) 우대성, 잘했다
완전 최고야!
(대성) 난 네가 웃는 게 너무 좋았어
그래서 네 옆에서 같이 인형 탈 쓰고 달리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 눈도 뿌리고
솔아
나 좀 봐 봐
(솔이) 대성아
나 이제
너 그만 좋아할 거야
미안
미안해하지 마
난 매일매일 행복했어, 진심으로
고마웠어, 정말
[한숨]
안녕
신솔이
[한숨]
(대성)
(숙희) 수험표랑 신분증, 필기도구
특히 컴퓨터 사인펜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학생들) 네
모두들 후회 없이 시험 잘 치르자
(학생들) 네
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의 결혼
(학생들) 우리의 대학
[학생들이 환호한다]
[밝은 음악]
[초침이 재깍재깍 울린다]
[영어 지문이 흘러나온다]
[시험 안내 음성] 5번입니다
대화를 듣고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고르세요
"다음에 계속"
[솔이 부의 힘주는 신음]
[부드러운 음악]
[솔이 부의 가쁜 숨소리]
(솔이 부) 여든여덟
우리 둘 다 잘할 거야, 파이팅!
(대성) 응, 파이팅!
(헌) 솔이가 전화를 안 받아서요
[울며] 나 이제 어떻게 해
[솔이가 흐느낀다] (헌) 어떡하긴, 내가 도와줄게
(솔이) 근데 헌아, 너 그거 언제 써 줄 거야?
(헌) 그런 건 헤어지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야
(함께) 짠!
[잔이 쟁그랑 부딪는다]
(진환) 너희 오늘 꼭 따로따로 집에 가라
제발
(헌) 신솔이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 기억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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