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왕
1. 연병장 / 낮
새로 돋아난 잎들이 햇빛을 받아 하얘졌다 진해졌다 한다.
그 사이로 간간이 태양도 보인다.
연병장 가운데서 족구를 하고 있는 군인들 전경. 다들 웃통을 까고 있다.
몹시 즐거워 보이는 군인들. 그중 모자를 삐딱하게 쓴 만섭은 족구를 정말 잘한다.
화려한 기술로 득점을 성공하는 만섭.
점수판이 한 장 넘어가면, 광화문 시네마 로고.
웃통을 깐 군인들이 한명씩 화면 가까이 와 등판을 드러내고 앉는다.
그들 등판에는 각종 크레딧들이 적혀 있다.
그때 이등병 한명이 양 손에 군화를 한짝씩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이등병
홍병자임!
오다가 철퍼덕 엎어지는 이등병. 재빨리 일어나 다시 뛰어온다.
이등병
홍만섭 병장님 빨리 전역신고 하시랍니다!
그 말을 못 듣고 족구만 하고 있는 만섭.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등병
이등병
홍병장님 지금 신고 안하시면 전역 안 시켜 주신답니다.
이등병을 한번 쳐다보는 만섭.
이등병은 번쩍이는 광이 나는 새 전투화를 들어 올린다.
서브를 넣으려던 만섭이 공을 받아 하늘로 힘껏 찬다.
공은 하늘 끝까지 날아가 사라진다.
그사이 만섭은 여유롭게 벗어 놓았던 옷을 챙겨 입고, 모자를 바로 하고 운동장을 가로
질러 걸어간다.
족구를 하던 군인들은 어느새 정열하여 서 있다.
병사
홍만섭 병장님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필!승!
모두들 만섭을 향해 경례를 한다.
잠시 후 공이 운석처럼 떨어져 땅에 박힌다. 쿠궁..
땅에 박힌 축구공. 군인 한명이 공을 들자 그 밑에는 ‘족구왕’이 새겨져 있다.
- 3 -
2. 기차 / 낮
흥겨운 음악이 시작된다.
봄의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쉭식 스쳐 지나간다.
창 쪽에 앉은 만섭이 창쪽을 쳐다보고 있다. 아직도 머리가 짧은 만섭.
옆자리에는 커다란 더블백이 놓여져 있다.
창 밖으로 다시 봄의 풍경들이 휙휙휙 지나간다.
3. 교문 / 낮
굉음과 함께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철컥 열리면,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구두와 운동화들이 내린다.
마지막으로 주황색 신발 끈을 맨 운동화가 척하고 발을 내딛는다.
활짝 웃는 만섭의 얼굴.
00대학교 교문에 만섭이 서 있다.
커다란 배낭 양 옆에 물통과 우산을 꼽고 검은색 아웃도어점퍼를 입은 만섭.
커다란 더블 백을 옆에 내려놓는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는 만섭.
이어폰을 귀에 꼽은 학생들이 숨을 참고 있는 만섭을 스쳐 지나간다.
학생들이 다 지나고 나서야 숨을 내쉬는 만섭. 교문으로 들어 선다.
경비가 만섭이 지나는 앞길을 퀄링하듯 쓸어준다.
4. 교내 테니스장 / 낮.
테니스장 주변의 철조망에 붙어 있는 만섭.
깨끗하게 정돈된 테니스장. 바닥에는 테니스공들이 흩뿌려져 있다.
한쪽에는 ‘00대학교 테니스장 신입부원 모집’ 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슬픈 눈으로 철조망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만섭.
그때 뒤쪽으로 주차되는 차 한 대. 한 남학생이 내린다.
남학생에게 다가가는 만섭.
만섭
원래 여기 족구장 아니였습니까?
만섭을 한번 보더니 씹고 돌아서는 남학생.
섭섭한 표정으로 족구장을 바라보고 있는 만섭.
5. 기숙사 / 밤.
4인 1실의 허름한 기숙사 방 안.
위층은 침대 아래층은 책상.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만섭.
- 4 -
세 명 모두 스탠드 불을 켜고 공부하고 있다.
만섭
안녕하십니까.
아무런 대꾸 없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셋.
만섭은 조용히 더블 백에서 짐을 꺼낸다.
더블 백에서 떨어지는 포크 숟가락. 요란한 소리를 낸다.
만섭을 째려보는 형국. 교수라고 해도 믿을 얼굴의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포스.
이를 보고 쪼는 만섭.
만섭
죄송합니다.
책을 탁 하고 덮는 형국.
형국
제대한지 얼마나 됐어?
만섭
5일 됐습니다.
형국
학교 오니까 좋냐?
만섭
좋습니다.
형국
뭐가?
만섭
…….
형국
뭐가!
만섭
잘하겠습니다.
형국
- 5 -
한국말 잘 못해?
만섭
아닙니다.
형국
야!
만섭
병장! 홍만...섭...
형국
꿈이 뭐야?
만섭
....아직...생각 중입니다.
형국
군대있을 때 그 생각안하고 뭐했어?
만섭
…….
형국
뭐 했냐고!
만섭
죄송합니다.
형국
무슨 과야?
만섭
민족의혈생활경영대 식품영양...
형국
공무원시험 준비해.
만섭
…….
- 6 -
형국
제대했다고 들떠서 여자 친구 만날 생각하지 말고, 군바리
티내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만 다
니면서 공무원시험 준비해. 알았어?
만섭
네…. 근데 전 연애하고 싶습니다.
형국
정신 빠진 새끼.
너 토익 몇 점이야?
만섭
아직…
형국
학점은?
만섭
아.. 이 쩜....
형국
공무원시험 준비해.
만섭
...네...근데 공무원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형국
그럼 뭐 할 건데?
만섭
....학교 다니면서 차차...찾아볼 생각입니다.
형국이 한심스러운 얼굴로 만섭을 쳐다본다.
다시 책을 펴서 보는 형국.
형국
병신새끼…
만섭이 형국의 눈치를 보더니, 땅에 떨어진 포크숟가락을 집는다.
나머지 두 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 7 -
6. 캠퍼스 / 낮
수많은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캠퍼스. 그 사이로 등산복에 커다란 배낭을 메
고 걸어가는 만섭.
7. 과방 / 낮
과방 문을 열면 즐겁게 떠들며 웃는 신입생들.
만섭은 쉽사리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슬그머니 문을 닫는 만섭.
8. 은행 / 낮.
교내 은행 창구에 앉아 있는 만섭의 뒷모습.
은행직원
홍 만섭 고객님, 가족 관계 증명서 안 가져 오셨어요?
만섭
잘 못 들었습니다.
은행직원
가족 관계 증명서 안 가져 오셨냐고요.
만섭
아 네…….
은행 직원이 팸플릿 하나를 꺼내 빠른 손놀림으로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친다.
팸플릿 모델은 너무나 예쁘다. 그 모습만 쳐다보고 있는 만섭.
은행직원의 손이 모델의 얼굴과 가슴에 동그라미를 친다.
가슴쪽에 계속해서 동그라미를 친다.
은행직원
이거, 이거, 이거, 이거 가져오셔야 되구요,
그리고 홍 만섭 고객님 지난 대출 이자가 연체중이세요.
연체 이자 납부 후에 새로운 대출이 가능하시니까 연체 이
자 먼저 납부 하시고 서류 잘 챙겨서 다시 방문해 주세요.
만섭
죄송합니다.
은행직원이 버튼을 누르자 다음 대기자가 다가온다.
- 8 -
9. 정수기 복도 / 낮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만섭.
10. 전공 강의실 / 낮
여학생들로 가득한 전공 강의실.
맨 뒷자리의 만섭 옆에는 아무도 없다.
교수가 들어오고 여학생들이 노트를 꺼낸다.
만섭도 커다란 가방을 연다.
뭔가에 걸리는 듯 잘 빠지지 않는 노트. 그러다 만섭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족구공.
족구공에는 매직으로 쓴 ‘홍만섭’.
만섭은 족구공을 책상위에 꺼내 놓고 노트를 꺼낸 후 다시 족구공을 가방에 집어넣는
다.
11. 운동장 / 낮
운동장 스탠드에 홀로 앉아 있는 만섭.
12. 과 방 / 낮
과방 앞에 다시 온 만섭. 문을 열어보면,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안으로 들어가는 만섭.
과방 안을 둘러보는 만섭. 이것저것 뒤적거려 본다.
그때 문이 열리고 신입생이 들어온다.
멈칫, 돌아보는 만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하려는데,
신입생은 그냥 가버린다.
실망하여 자리에 앉는 만섭.
잠시 후 또 다시 문이 열린다.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만섭.
창호(S.O)
저.. 죄송한데 족구 하세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돌아보는 만섭.
요상한 옷을 입고 있는 창호다.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만섭.
13. 복도 / 낮
하늘로 오르는 우유팩.
떨어졌다 다시 오르는 우유팩.
- 9 -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창호
넌 하나도 안 변했네?
주황색 운동화 끈 운동화가 우유팩을 찬다.
만섭
너는 많이 변했다.
검은 뾰족구두가 우유팩을 찬다.
창호
그래?
주황색 운동화 끈 운동화가 우유팩을 찬다.
창호
20kg 뺐어. 다시마만 먹어.
만섭
다시마만 먹어?
창호
어, 다시마만 먹어.
만섭
딴 건 안 먹고?
창호
어, 다시마만 먹어.
만섭
어떻게?
창호
괜찮아 여자 친구 만들어야지.
만섭
나도 여자 친구 만들어야하는데.
- 10 -
창호
금방 생길거야.
만섭
그래?
계속 팩 차기를 한다.
만섭
근데 너 족구장 없어진 거 알아?
창호
알아...
팩을 공중으로 한번 띄우더니 떨어지는 팩을 강하게 후려찬다.
고운
아!
놀라는 만섭과 창호.
고운의 머리에 우유가 묻어 있다. 휙 돌아보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긴장한 만섭과 창호.
걸어오는 고운.
고운
고고장소에서 뭐하는 짓이에요?
어그 부츠를 신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긴 코트를 입은 단발머리의 고운.
입에는 교정기를 끼고 있어 발음이 부정확하다.
창호
죄송합니다.
만섭
죄송합니다.
고운
아흐로 복도에서 팩차기 하시면, 대자보에 이름 올라가실 줄
아세요.
고운이 어그 부츠로 팩을 발로 짓밟아 버린다. 팩 밖으로 커피우유가 새어나오고.
- 11 -
쌩하니 가버리는 고운.
고운
찌지하게…….
고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섭과 창호.
창호
진짜 이쁘지 않냐?
만섭이 팩을 줍는다.
팩 위에 선명한 고운의 발자국.
14. 학생과 / 낮
뭔가를 뒤적거리는 조교. 그 앞에 서 있는 만섭.
창호는 뒤에서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있다.
조교
음...벌써 교내 알바는 다 찼고,
외부 알바는 하나 있는데 할래?
만섭
네!
조교
학교 시설 관리하는건데, 있다가 관리과로 가봐.
만섭
저 혹시... 다른 알바는 없습니까?
조교
시급이 좀 작긴 하지...?
만섭
아 그게 아니라 몇 개 더 해도 될거 같아서...
조교
그럼 가끔씩 들려봐. 단기 알바는 자주 있으니까.
만섭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족구장말입니다…….
- 12 -
조교
족구장?
창호도 만섭의 곁으로 다가온다.
만섭
다시 만들어달라고 건의하려고 하는데 어디에다가 말해야
합니까?
조교
족구장을 만들어달라고?
조교가 비웃듯 만섭에게 다시 묻고, 옆에 있던 여자조교도 웃는다.
조교
족구장은 왜?
창호
족구하고 싶어서요.
조교
족구 하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큭큭 대는 조교. 지나가던 여자조교가 흘리는 말로.
여자조교
총장과의 대화 있으니까 그때 말해 봐요. 총장한테.
여자조교가 벽에 붙은 ‘총장과의 대화’ 포스터를 가리킨다.
포스터 안에는 총장이 양팔을 벌리고 미소 짓고 있다.
포스터를 쳐다보고 있는 만섭과 창호.
뒤에서는 조교들이 수군거린다.
조교
총장님한테 무슨 족구장을 만들어달라고 그래요.
여자조교
학생처장이 학생들 참석 안한다고 난리잖아요.
15. 영어강의실 / 낮
- 13 -
룸메2
Thank you very much.
룸메2가 앞에서 발표를 마치고 룸메1 옆에 앉는다.
영어 선생이 앞으로 나간다.
영어선생
(영어)모두 수고 하셨고요. 이번학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선정해서 파트너와 함께 한
대목을 연극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다음주까지 파트너를 정
하고, 파트너와 함께 상의해서 영화를 선정해 주세요.
모두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룸메1
그냥 토플이나 토익 듣기시험에 맞추어 수업진행하면 안될
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
갑자기 위압적인 표정을 짓는 영어선생.
영어선생
No. This is my class.
(영어) 수업이 맘에 안들면 학생이 나가세요.
그때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머리에 낀 늘씬한 여학생(안나)이 들어온다.
은행 팸플릿에서 본 그 학생 모델. 너무나 아름답다.
안나
I am sorry~
모델처럼 걸어가는 안나. 창가 쪽 빈자리에 앉는다.
인상을 찌푸리는 영어 선생.
영어선생
What’s your name?
안나?
Me? 서안나.
- 14 -
안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만섭.
16. 강의실 앞 / 낮.
모델포스의 남학생(강민)이 창가에 기대 있다.
강의실에서 나오는 여학생들이 강민을 흘깃 보고 지나간다.
강의실에서 나오는 안나.
안나가 강민이 곁에 서자 둘은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만섭
저기...
발걸음을 멈추는 둘. 뒤돌아 본다.
만섭이 서 있다.
만섭
혹시 두 분이서 사귀는 겁니까?
어이없다는 듯 서로를 마주보고,
강민
아니요. 왜요?
강민의 말에 순간 기분이 나쁘지만, 이내 아닌 척 표정을 찾는 안나.
만섭
아...아니였구나...저기 안나씨.
안나
...네?
만섭
저랑 파트너 하실래요?
안나
네?
만섭
이번 수업에 연극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 15 -
안나가 강민을 바라본다. 강민도 당황한 듯하지만, 곧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나
좋아요.
만섭
아싸!
그 모습에 웃는 안나.
강민은 뭐 저런 새끼가 있나 하는 표정.
만섭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만섭
제 명함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 명합입니다.
뭔가 싶어 명함을 받는 안나.
명함을 보고는 소리 내서 웃기 시작하는 안나.
안나
아하하하하하하하!
명함 속에는 갖은 포샵을 한 만섭의 웃고 있는 모습이 프린트 되어있다.
안나의 웃음소리는 복도에 울리고. 만섭도 안나가 웃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강민도 지기 싫어 웃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캠퍼스 창문 안 복도에 세명이 웃고 있다.
17. 연병장 / 낮
새들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고, 군인들은 연병장을 뛰고 있다.
만섭 혼자만 공중에서 공을 차기 직전의 포즈로 멈추어 있다.
그러다 펑!!!!
만섭의 발끝에서 떠난 공이 상대방 네트로 날아간다.
굉음을 내며 빈 코트로 날아가는 공.
벚꽃이 날린다.
갑자기 그곳에 안나가 나타난다.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를 주워 들고 있던 책 사이에 넣고 있는 안나.
만섭
안 돼!
공에 맞은 안나가 공중에 붕 뜬다.
안나 에게 달려가는 만섭. 안나를 품에 안는다.
- 16 -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안나. 죽은 것 같다.
안나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만섭.
만섭
으아아악!!! 안 돼!!
안나의 입에선 점점 더 많은 피가 흘러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인다.
18. 기숙사 / 아침
만섭이 침대에 누워 허우적댄다.
만섭
...안 돼...안 돼...안...
잠에서 깨는 만섭.
한심한 눈초리로 만섭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
형국
병신새끼…….
형국이 방을 나선다.
19. 자판기 앞 / 낮
자판기에 프리마를 넣고 있는 만섭.
이상한 옷을 입은 창호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벽에 붙은 학교광고 포스터.
그곳에 안나 와 강 민의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창호
정말 같이 하기로 한거야?
만섭
어. 명함이 먹혔어.
창호
남자 친구 있는 것 같던데.
만섭
누구?
창호
- 17 -
그 옆에 있는 남자. 강민.
안나 옆에 서 있는 꽃미남 강 민. 누가 봐도 환상의 조합이다.
프리마를 마저 넣고 자판기 문을 탁 닫는 만섭.
창호
축구국가대표 선수였는데, 부상당해서 프로로 못가고 우리
학교 들어왔데. 지금은 선수로 뛰고 있지는 않나봐.
시험 삼아 커피를 하나 뽑는다.
창호에게 건내지만 창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가방에서 꺼낸 녹색의 정체불명인 액체를 마시는 창호.
만섭
강 민씨는 공식적으로 둘 사이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아. 안나씨도 그런 강 민씨
가 괘씸해서 나랑 파트너 하기로 한 것 같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만섭.
만섭을 멍하니 바라보는 창호.
창호
뭔가....출발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만섭
괜찮아.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다시 한 번 만섭을 멍하니 바라보는 창호.
창호
그건 내가 배울점인 것 같다.
그때 고운이 자판기 앞으로 걸어온다.
양옆으로 비켜서는 만섭과 창호.
커피를 하나 뽑은 고운.
고운
프히마 없음.
고운은 싸늘한 미소(네가 어딜 날 넘봐?) 하는 표정으로 쌩하니 지나간다.
만섭이 창호를 바라본다.
- 18 -
창호는 넋 나간 표정으로 고운을 바라보고,
어그 부츠를 신은 고운이 뒤뚱뒤뚱 걸어간다.
창호
장난 아니다.
20. 강당 / 낮
학생들로 가득 찬 강당.
강당에 ‘제 3회 총장과의 대화’라는 플렌 카드가 걸려있다.
맨 앞자리에 앉은 창호와 만섭의 모습도 보인다.
앞에서는 조교들이 커다란 의자와 테이블을 힘겹게 옮기고 있다.
학생처장이 손에는 커피 한잔을 들고 조교들에게 여기 놔라 저기 놔라 하고 있다.
그러더니 강단 앞에 선다.
학생처장
총장님 들어오십니다.
총장이 걸어 들어온다.
학자스타일의 조용한 분위기의 총장의 모습.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고, 소심해 보이기도 한다.
학생처장
먼저 식순에 맞추어…….
총장
됐습니다. 학생들 시간도 없을 텐데 생략하시죠.
무안한 사회.
총장
반갑습니다. 총장 강 헌 입니다. 전에는 한 열 명 정도 왔었
는데, 가산점 준다니까 많이들 오셨네요. 이렇게 자리를 마
련 한 것은 여러분들과 대화 좀 해보고 싶어서 마련했습니
다. 이렇게 학생들과 마주보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학교생활
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 학교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 협조를 해서 나아갈지에 대해 이야기 해 봅시다.
학생들은 총장의 말에 관심이 없다. 딴 짓만 하는 학생들.
그때 누군가 손을 든다.
총장이 지목하자 일어나는 학생.
- 19 -
학생1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영학과 12학번 권 오광 이라고 합니
다. 먼저, 학생들과 진솔하게 대화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신 김 헌 총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학생처장
강 헌 입니다.
사회자를 째려보는 학생1.
학생1
아...네...저는 강 헌총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요즘 우리 사회 뿐 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불라불라불라...
물을 마시는 총장.
학생2
등록금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학생들 학교에서 나가자
마자 빚쟁이 됩니다. 등록금 인상률 어떻습니까? 총장님 대
학 다닐 당시 등록금 얼마였습니까? 불라불라불라
물을 마시려하는데 물이 없다.
학생3
청년실업에 대한 대한으로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불라불라불라
총장이 더욱 지쳐간다.
학생4
와따시와 미나미 데쓰..
고개를 푹 숙인 총장.
학생5
이상입니다.
총장
네...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로서 또한 여러분
의 대학 총장으로서 여러분이 말한 문제에 대해 죄송스러운
- 20 -
마음과 동시에 통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뭐 대통령입니까?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하겠
다. 그런 약속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청
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과의 제휴? 저도 하고 싶지요.
저희랑 제휴 맺으려고 하는 기업 많습니다. 근데 제가 왜 제
가 총장직을 걸고 반대한 줄 하세요? 기업이 대학교에 들어
오면 학교 식당, 기숙사, 매점 다 가지고 갑니다. 그렇다고
취업에 대한 보장을 계약서에 넣을 수 있는 줄 아세요? 대학
교는 취업을 위한 학원이 아니에요. 등록금 할인? 내가 못해
요. 재단에서 결정합니다. 등록금 투쟁하지요? 그 학생회장
들 저랑 합의 봅니다. 그 회장들 지금 어디 있는 줄 아세요?
다 교직원 됩니다. 이 얼마나 더럽습니까? 그거 누구 탓 인
줄 알아요? 책상머리에 앉아 남 탓만 하는 니네들 탓이야!
라고 상상한 총장이 멍 때리고 자리에 앉아있다.
학생처장
총장님…….
정신을 차린 총장.
총장
네...여러분들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잘 반영해 학교를 운영하는데 참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
그때 손을 드는 누군가.
만섭이다.
인상을 찌푸리는 총장.
지목하자 만섭이가 일어선다.
만섭
안녕하십니까. 민족의혈생활경영대..식품영양학과...08학번
홍 만섭입니다!
총장
...네...말씀하세요.
만섭
저는 2월 24일 육군만기 전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바
로 대학교에 복학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친구들과 같이 뒹
굴고 즐겁게 놀던 족구장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
- 21 -
었습니다.
뭔 소리야? 인상을 찌푸리는 학생들.
만섭
그곳은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저와 제 친구는 더 이상 족구
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섭을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는 총장.
만섭
지금은 그저 팩 차기를 할 뿐인데, 그마저도 할 공간이 없습
니다. 취업도 중요하고 등록금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총장님께 다시 족구장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라이 새끼 하며 킥킥대고 웃는 학생.
고운(S.O)
이의 있습니다!
일어나는 학생. 고운이다.
고운이가 입에서 보정기를 뺀다.
고운
제가 알기로는 그 족구장은 몇몇 되지 않는 복학생들이 시
도 때도 없이 족구를 하는 통에 공부를 할 수 없었던 학생들
의 항의로 없어진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다시 족구장을 만
드는 것은 또 다시 학생들의 항의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
총장
그럼 다른데다가 만들면 되지 않나?
고운
학교의 재정을 학생 몇몇을 위해 족구장을 만드는데 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총장
족구장 만드는데 큰돈은 들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만...
- 22 -
여기서 족구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만섭과 창호가 손을 든다.
서로 눈치를 보는 복학생들.
총장
두 분밖에 없나요?
회심의 미소를 짓는 고운.
총장
우리 때는 족구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나보네요.
더 없나요?
들고 싶지만, 손을 들면 왠지 찌질 해 보일 듯한 분위기.
누군가 들려고 하자, 여자 친구가 말린다.
그때 어느 한쪽에서 누군가 손을 든다.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든 여학생(미래)에게 시선이 가고,
손을 든 학생은 뚱뚱한 외모에 족구 뿐 아니라 운동과는 전혀 멀어 보인다.
총장
세 명...
넓은 강의실에 세 명만 손을 들고 있다.
총장
아쉽지만, 세 명을 위해서 족구장을 만들 수는 없겠네요.
21. 체육관 앞 / 낮
만섭과 창호가 ‘족구대회 신설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창호.
창호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고 만섭은 그 앞에서 공으로 묘기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창호의 앞에 선다.
창호
저 족구장 신설 서명운동……
펜을 집어 들어 서명지에 아주 커다란 X자를 쳐 버리는 고운.
그대로 사라지려다 묘기를 부리는 만섭 앞에 잠시 멈춰선다.
- 23 -
고운
됵구하고 앉아있네..
휙 사라져 버리는 고운.
멍하니 서있는 창호.
시선은 고운을 향하지만 공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만섭.
그때 누군가 다가와 서명을 한다.
미래다.
만섭, 창호
고마워요.
미래가 대답 없이 창호의 옆에 앉는다.
계속해서 공을 튀기고 있는 만섭.
학생들이 무관심하게 그들 앞을 지나간다.
22. 고기 집 / 밤
고기집 밖에서 목장갑을 끼고 화로에 열심히 불을 붙이고 있는 만섭.
고기집 안에는 창호와 미래가 말없이 고기를 굽고 있다.
주인아줌마가 반찬을 들고 주방에서 나온다.
주인아줌마
만섭이 친구들이야?
창호
네
주인아줌마
우리 만섭이 뺏겨먹지 말고, 더치패이 해 알았어?
미래
만섭이가 사준다고 그랬는데...
창호
전 다시마만 먹는데요...
눈을 흘기며 사라지는 주인아줌마.
창호
족구 좋아하시나 봐요.
- 24 -
미래
아니요.
창호
....그럼 왜...
미래
의사샘이 살 빼라고 해서요.
창호
아...
만섭이가 들어와 창호의 옆에 앉는다.
만섭
족구 좋아하시나 봐요.
창호
의사선생님이 살 빼라고 하셔서 하는 거래.
만섭
아, 좋다. 누나 많이 드세요.
미래는 말없이 고기를 먹는다.
그때 다시 나온 주인 아줌마가 밖으로 나가다 만섭을 쳐다본다.
아까와는 다른 화려한 화장과 의상을 입고 있다.
주인아줌마
얘 만섭아! 불판 좀 닦아!
만섭
네! 사장님! 먹고 있어. 파이팅!
창호
파이팅!
다시 밖으로 나가는 만섭.
미래는 고기를 열심히 구워 창호의 앞에 가져다 놓는다.
하지만 창호는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다시마를 먹는다.
한쪽엔 다시마가, 다른쪽엔 초장이 담긴 락앤락 도시락.
미래는 뻘쭘한지 다시 고기를 굽는다.
- 25 -
23. 고기집 앞 / 밤
쌓여있는 수십 개의 불판을 닦는 만섭.
입을 벌리고 집중하고 있는 만섭.
만섭은 불판을 닦다가 문득.
사각형 망사 불판이 눈에 들어오고,
이를 바라보는 만섭. 불판을 집어 든다.
바둑판같은 망사 불판. 그 중 한 구멍에 공을 차는 누군가의 발이 떠오른다.
공이 발을 떠나면 불판 구멍 여기저기에 공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만섭은 멋진 포즈로 공을 차고,
또 다른 칸에는 바닥에 꽂히는 공이 뜬다.
또 다른 칸에는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 다른 칸에는 파이팅을 외치는 안나의 모습,
또 다른 칸에는 기뻐하는 만섭의 모습,
또 다른 칸에는 사람들이 만섭을 헹가래 해주는 모습.
이 황홀한 광경을 지켜보는 만섭의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점점 극
을 치닫는다.
24. 캠퍼스 언덕 / 밤.
어두컴컴한 교정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의 실루엣.
커다란 가방을 맨 만섭, 등치 큰 미래, 길쭉한 창호의 뒷모습.
지나가던 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들을 밝혀준다.
미래
좀 많이 나온거 같던데...
창호
너 일주일치 알바비 다 쓴 거 아니야?
만섭
...괜찮아. 사장님이 서비스 많이 주셨어. 친구들 왔다고.
미래
넌 어디 살어?
만섭
전 기숙사요.
미래
- 26 -
창호는?
창호
전 후문 뒤에서 자취해요.
미래
우리 언제 또 하지?
만섭
내일 또 해야죠.
차가 지나고 나면, 경광봉을 든 해병 순찰대가 후레쉬로 길을 밝히며 지나간다.
군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해병순찰대.
25. 기숙사 / 밤
기숙사 문이 열리고 만섭이 들어온다.
만섭
다녀왔습니다.
형국
고기 먹었냐?
만섭
....학교 앞 고기 집에서 알바 하는데, 시간 되시면 오십시
요. 서비스 드리겠습니다.
형국
너 족구장 만들어 달라고 했다며?
공부를 하다 슬쩍 만섭을 보는 룸메 둘.
만섭
...네...그렇습니다.
형국
너네 집 잘 살아?
만섭
아닙니다.
- 27 -
형국
그런데 넌 뭘 믿고 그렇게 낭만에 젖어있냐?
만섭
…….
형국
청춘이 영원 할 것 같지? 학교에서 발을 내 빼는 순간. 청춘
이 네 뒤통수를 칠거다.
만섭
…….
그때, 만섭의 핸드폰이 울린다.
인상을 찌푸리는 셋.
어쩔 줄 몰라 핸드폰을 더듬는 만섭.
덥석 전화를 받는 만섭.
만섭
네 안나 씨!!!
안나 라는 말에 만섭을 보는 셋.
만섭
아니요. 알바 중이라 꺼놨어요.
만섭이 슬쩍 셋을 보면, 셋 다 만섭을 보고 있고,
만섭은 목례를 한 뒤, 방을 나선다.
방문 뒤로 들리는 만섭의 목소리.
만섭
그럼 안나 씨 시간 괜찮을 때...내일 만날까요?
이를 듣고 있는 셋.
룸메이트1
저 안나가....그 안나는 아니겠죠?
만섭의 자리에 붙은 안나의 포스터를 가리키는 룸메이트.
강민쪽을 잘라낸, 안나만 있는 포스터가 만섭의 벽에 붙어 있다.
헛웃음을 짓는 형국.
- 28 -
형국
우리학교 퀸카가 저런 애를 만나 주겠냐? 공무원 시험 합격
하면, 안나 같은 애들은 말 안 해도 따라 오는 거니까. 신경
끄고 공부나 해.
룸메이트1,2
네 형님.
다시 공부하는 셋.
그런데 방문 밖으로 들리는 만섭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만섭
네 그럼 같이 점심 먹어요!
26. 잔디밭 / 낮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펼쳐져있다.
안나는 선글라스를 머리위로 올린 체 핸드폰으로 만섭이 싸온 음식을 찍는다.
안나
집이 뷔페하세요?
만섭
아니...그냥 제가 준비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잔디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는 안나와 만섭.
지나가는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안나는 선글라스를 쓴다.
안나
영화는 정했어요?
만섭이 포크숟가락을 안나에게 건넨다.
만섭
네! 백 투 더 퓨처!
안나
네?
만섭
옛날 영환데, 요즘 영화보다 훨씬 재밌고 감동적이에요.
- 29 -
안나
아...네... 어울리시네요.
가방에서 한 다발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는 만섭.
‘백 투 더 퓨처 1,2,3’
만섭
안나 씨는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제일 하고
싶어요?
안나
음...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고 싶어요.
만섭
아...네...저랑 좀 다르네요.
안나
오빤요?
만섭
전 사실 미래에서 왔습니다.
한심한 듯 만섭을 바라보는 안나.
안나
대단하다 정말...
파일로 없어요?
만섭
파일...없는데...근데 비디오 데크 있습니다. 강의실에...
그때 저 멀리서 들리는 아우디의 엔진소리.
안나가 아우디를 발견한다.
안나
같이 봐야지 않아요?
만섭
그렇죠.
- 30 -
안나
지금 보러가요.
안나가 만섭을 일으킨다.
만섭
다 안 먹었는데…….
안나와 함께 일어나는 만섭과 안나.
27. 차안 / 낮
만섭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안나를 보는 강 민.
28. 영어강의실 / 밤
스크린에 ‘백 투더 퓨처’의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비디오 데크 위에는 이미 본 ‘백투더 퓨처 1,2’가 있다.
그것을 끝까지 보고 있는 만섭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안나.
안나
이게 재밌어요?
만섭
네 정말 흥미 진진하지 않습니까? 전 원 투 쓰리 중에 투가
제일 재미...
안나
그거 알아요? 총장과의 대화 때 누가 족구대회 만들어달라
고 했데요.
안나를 쳐다보는 만섭.
웃기죠?
만섭
…….
안나
왜 그랬어요?
만섭
네?
- 31 -
안나가 빤히 만섭을 바라본다.
만섭
족구 할 데가 없어서요.
안나
여자 친구 있어요?
만섭
없습니다. 아직…….
안나
여자만나고 싶죠?
만섭
네.
안나
그럼 족구하지 마세요.
만섭
왜요?
안나
여자들 족구 하는 복학생 제일 싫어해요.
만섭
족구 해봤어요?
안나
아니요.
만섭
근데 왜 족구를 그렇게 싫어해요?
안나
음…….축구는 멋있잖아요. 선수들도 열라 잘생기고 몸도 좋
고. 돈도 많이 벌고. 근데 족구는…….
생각에 잠긴 안나.
- 32 -
안나
더럽잖아요. 복학생들이 막 나시 입고 겨털 다 보이는데...
그러고 막 수업 그냥 온다니까요 땀내 쩔어가지고...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뭐가 행님 행님 이러면서 지내끼리 신나서
졸라 찌질하게. 이름도 그래 족구. 아니 뭐 이건 족발도 아
니고 좆구멍 약자인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혼자 까르르륵 웃고 난리가 난 안나.
이를 바라보고 있는 만섭.
안나
미안해요. 하지 마요. 족구. 그러다 평생 혼자 살겠네.
만섭
족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세요?
안나
족구가 재미있건 말건 여자들은 싫어해요.
만섭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거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일어나 불을 키러 가는 만섭.
안나가 만섭을 다시 한 번 본다.
불을 켜진다..
안나
족구 정말 좋아하나 보네?
만섭
저만 좋아하는 게 아닐걸요? 제가 하는 족구 보시면, 족구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언젠가 꼭 보여 드릴게요.
안나가 씩 웃어 보인다.
갑자기 가방을 뒤지는 만섭. 뭔가 꺼낸다.
만섭
아 그전에 여기 서명 좀…….
- 33 -
29. 강의동 앞 / 밤
불 켜진 영어 강의실.
창가에서 두명의 실루엣이 왔다 갔다 하더니 키스하는 것처럼 겹쳐진다.
이를 차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강 민.
차 창밖으로 담배꽁초가 한 가득이다.
사이드 미러로 무리지어 내려오는 예비역 해병대 순찰단이 보인다.
강민의 손이 담배 불똥을 탁 하고 튕겨내자 그 불똥이 산산히 흩어져 선두에 선 해병의
얼굴을 덮는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오도 방정떠는 해병.
험악하게 생긴 해병이 강 민에게 다가온다.
해병
외제차 탄 새끼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 싸가지가 없을까?
해병을 보고 순간 좆 됐다. 생각하는 강 민.
해병
야 강민. ...선배 보고 인사도 안하냐?
고개를 돌리는 강 민.
해병
어이 국대! 잠깐 내리지?
해병순찰 무리 중 한명이 다가온다. 큰 키의 해병대.
태철
뭔데?
해병
강 민인데 말입니다. 아 왜 그 축구로 특례 입학한 새끼 있
지 않습니까. 아 글쎄 담배를 제 얼굴에 탁 털고, 미안하다
는 인사 없이 차에 앉아 버티는데 말입니다.
태철이 아우디에 다가가 강 민임을 확인한다.
태철과 눈이 마주치는 강 민.
해병
야, 이 씨바라 빨리 안내려!
태철이 강민을 주시하고,
- 34 -
차에서 내리는 강 민.
태철
어이. 어이.
강 민의 뺨을 때리는 태철.
강 민은 묵묵히 있고.
태철
축구선수는 선배 후배 없나? 어?
다시 강민의 뺨을 때리는 태철.
태철
축구 관두고 학교기어 들어왔으면, 인마 선배를 보고 인사를
해야지. 아이가?
태철이 강 민의 머리를 잡고, 아래위로 흔든다.
태철
인사를 시키주야 하나?
강 민
아이 시팔!
태철의 손을 쳐내버리는 강 민.
해병
이런 개새끼가!!!
해병이 강 민에게 달려들자, 살짝 피하더니 다리를 탁 거는 강 민.
달려오던 해병은 다리가 엉켜 넘어진다.
해병
이새끼!
순간 강 민이 프리킥을 차는 선수마냥 해병의 사타구니를 향해 발을 뻗는다.
눈을 질끈 감는 태철과 순찰단 무리.
민의 발을 해병의 사타구니 바로 앞에 멈춰있고.
강 민
- 35 -
죄송한데요. 저 인생 종친 놈이니까. 건들지 마세요. 앞으로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사시려면.
강 민이 자신의 차에 탄다.
굉음과 함께 사라지는 강 민의 차.
이를 멀뚱히 바라보는 해병순찰단들.
30. 체육관 앞 / 낮
건물 벽에는 안나 쪽이 찢겨나간, 강 민만 쓸쓸히 서 있는 포스터가 붙어져 있다.
그 앞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만섭 무리들.
만섭은 공을 튀기고 있다.
그때 강 민이 만섭 쪽으로 걸어온다.
만섭
안녕하세요.
강 민
어제 안나랑 몇 시에 헤어졌어?
시계를 보는 만섭. 공을 떨어트린다.
만섭
잘 모르겠습니다. 한 열시…반쯤…….
강 민
걔랑 잤냐?
놀라는 창호와 미래.
강 민
씨발년.
표정이 바뀌는 만섭.
만섭
근데 여자한테 그런 말 쓰는 거 아니죠.
그리고 그 여자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요.
허를 찔린 듯한 강 민의 표정.
- 36 -
강 민
이 새끼가...
강민이 만섭의 멱살을 잡는다.
그때 창호가 강민의 팔을 잡고.
창호
제 배픈데 확실히 자지는 않았습니다.
강 민
이 새끼는 뭐야!
강민이 창호의 팔을 뿌리친다.
안나
야! 뭐하는 거야!
봉지에 뭔가 잔뜩 사들고 서있는 안나.
일시 멈춘 강민.
강 민
넌 여기서 뭐하냐?
안나
족구장 만드는 거 도와주고 있는데 왜?
어이없다는 듯 웃는 강민.
강 민
왜 만들면 거기서도 한 판 하게?
안나가 강민을 째려본다.
안나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만섭.
만섭
저랑 족구 한판 하실래요?
31. 공터 / 낮
태양이 내리쬐는 정오.
학교 외곽의 공터.
어설프게 만든 간이 족구장 안의 만섭, 창호, 미래, 민, 안나.
- 37 -
미래는 태평스럽게 몽쉘통통을 먹고 있다.
만국기로 만든 네트가 바람에 펄럭인다.
만섭
10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창호
3점에 끝내.
만섭
제가 지면 원하시는 데로 안나 씨랑 헤어져 드리겠습니다.
안나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강 민도 피식 웃고.
강 민
그건 니 맘대로 해.
안나
니가 지면 뭐 할건데?
강 민
내차가져.
바지를 걷기 시작하는 만섭.
유난히 빛나는 형광 운동화 끈.
바람에 나부끼는 다리털.
그 언제보다 진지해 보이는 만섭의 얼굴.
손에 침을 뱉는 만섭.
운동화 안쪽에 침을 바르는 만섭.
그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는 만섭.
인상을 찌푸리는 안나, 미래, 창호.
족구공이 땅에 튀긴다.
만섭의 발에 맞은 공이 전광석화처럼 네트를 지나더니,
순식간에 민의 코트 코너에 꽂힌다.
민이 발을 쓸 틈 없이 굴러가는 공.
놀라는 안나, 미래, 민.
창호
일대 빵!
- 38 -
주먹을 쥐고 있던 창호의 양 손. 만섭 쪽 엄지손가락이 펴진다.
만섭
서브하시면 됩니다.
강민에게 굴러가는 공.
강민이 심호흡을 하고 공을 튀겨본다.
강민의 서브.
그러나 만섭이 너무도 쉽게 그 공을 받아 찬다.
강민의 머리 옆을 스치고 멀리 날아가는 공.
창호
이대 빵!
만섭 쪽 손가락이 또 하나 펴진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강민.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낮춘다
만섭이 서브를 넣으려 한다.
그때 지나가는 커다랑 배낭을 맨 평상복 차림의 태철 멈춰 선다.
이미 몇 명의 학생들이 서서 구경하고 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학생들.
서브를 넣는 만섭.
강민이 공을 받아낸다. 멋지게 트래핑 하여 공을 띄우고는 전력을 다하여 공을 찬다.
만섭이 이것을 받아내고 다시 공을 찬다.
어렵사리 이것을 받아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넘기는 강민.
그렇게 빠른 속도로 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을 보는 학생들의 고개도 왔다 갔다 한다.
어느새 많아진 구경꾼들.
한바퀴 빙그르 돌아 공을 차는 강민.
하지만, 만섭은 이를 쉽게 받아내고, 공을 띄운 다음.
손을 땅에 짚고 강력한 킥을 날린다.
퍽!
강민이 발을 갖다 대 보지만, 강민의 발을 맞고 건물 벽에 박혀 버리는 공.
건물이 흔들린다.
건물 안에서 수업을 듣던 복학생들 갑자기 일어난 지진에 당황하여 창 밖을 본다.
룸메 1,2
가위찍기....
- 39 -
고개를 떨구고 있는 강민.
세 번째 손가락을 펴는 창호.
창호
3대 빵 만섭승!
미래와 창호가 환호를 지르고 만섭에게 다가온다.
‘강민이 졌어?’ ‘왠일이야’
이를 바라보고 있는 태철.
또 저 멀리서 석양을 등지고 있는 누군가.
배낭을 멘 형국이다.
형국이 돌아서 가려는데,
고운과 마주치고.
형국이 멈칫 놀란다.
고운과 눈을 피하는 형국.
고운
자지내?
형국
.....
고운
아지도 미련 모허리고 서서이는 거야?
뒤돌아 도망가는 형국. 전력으로 뛴다.
고운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얼싸 안고 좋아하는 만섭과 창호를 쳐다본다.
32. 몽타쥬 시퀀스
- 38씬의 마지막 장면이 핸드폰 동영상 화면으로 바뀌며, 이를 보고 있는 화장실안 복
학생. 어디론가 파일을 전송한다.
- 어두컴컴한 도서관 구석. 등산복을 입은 복학생이 경기를 유심히 본다.
- 강의실. 아무도 없는 강의실 칠판을 닦으며, 경기를 보는 복학생.
- 불 꺼진 기숙사. 이불속에서 영상을 보고 있는 복학생.
- 체육관 앞. 만섭이가 ‘족구장 신설 서명운동’ 부스에서 공을 튕기고 있고, 공이 튀어
서 다른 곳으로 굴러간다.
-도서관 안의 계단을 탁탁 튀어 내려오는 공. 학생들의 시선이 쏠린다. 공은 책장 사이
를 굴러가고,
-기숙사 복도를 굴러가고,
-강의실 복도를 굴러가고,
- 40 -
-화장실을 굴러가고,
각 장소마다 복학생들이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지만, 그 공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지
나가 버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공이 굴러가다 어딘가 부딪혀 멈춘다.
틸트 업 하면, ‘제 00회 00대학교 체육대회 족구 시합 신청’
수많은 복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
33. 기숙사 / 아침
형국이 발을 들어 각을 세우고 꺽어진 자신의 발끝을 본다.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형국의 발끝.
엄지발톱이 시커멓다.
형국
....그땐 바깥 축으로 찼어야 했어...
형국의 책상에 붙어 있는 D-20.
끼익 소리에 고개만 돌리는 형국.
만섭이가 새집 머리를 하고 사다리를 내려오다 형국과 눈이 마주친다.
만섭
안녕히 주무셨어요?
얼른 발을 내리는 형국.
만섭(S.O)
네 맞아요. 그때는 바깥축으로 찼어야 했어요.
형국
그래 인마! 강민은 감아차기가 특기란 말이야! 강민 발 안쪽
에라도 걸렸으면..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온 만섭.
형국은 머쓱한지 다시 책에 고개를 묻는다.
만섭
보셨네요.
형국
지나가다가…….
다시 책을 보는 형국.
만섭도 자신의 책상에 D-20을 붙인다.
- 41 -
만섭
이번 체육 대회때 같이 안 나가실래요?
형국
미쳤냐?
만섭
이번에 족구대회 신청 되게 많이 했다고 하던데...
형국
정신빠진 놈들... 아우디는 받았어?
만섭
아뇨.
형국
병신새끼...
만섭
근데 제가 졌어도 안나씨 포기 안했을 거예요.
방을 나서는 만섭.
형국은 한참동안 만섭이 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34. 아지트 / 낮
정성스레 팩차기 공을 접고 있는 손.
만섭
팩 차기의 공은 이렇게 꼭 서울우유에서 나오는 커피우유로
만들어야 돼요.
미래
맛있겠다.
만섭, 창호
…….
미래
…….
- 42 -
만섭
팩 차기는 족구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데 아주 좋아요. 공에
대한 집중력과 공이 발에 닿았을 때 감각들을 느끼게 만들
어주거든요. 그리고 팩 차기를 할 때와 족구를 할 때 쓰는
근육들이 같아서, 팩 차기를 계속적으로 하면, 그 근육들을
발달시켜 줘서 족구 할 때 부상을 줄여주고, 훨씬 공에 힘을
실어줘요. 그리고 무엇 보다 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데
도움을 줘요.
만섭이가 팩을 창호에게 찬다.
창호가 이를 받아 미래에게 찬다.
휙 헛발질 하는 미래.
그리고는 팩을 밟아버린다.
납작해진 우유팩.
미래
미안해.
만섭
아니에요. 제가 사올게요.
창호도 뒤를 따르고,
창호
괜한 얘길 꺼냈나?
만섭
이제 시작했는데 뭘.
창호
아...그래도....
35. 매점 / 낮
만섭
커피우유 하나...아니 다섯 개 주세요.
매점아줌마
다 팔렸어.
만섭
- 43 -
네?
매점아줌마가 창문 밖을 가리킨다.
창문 밖을 보면, 수십 명의 남학생들이 팩 차기를 하고 있다.
학교 여기저기 구석구석 족구를 하고 있는 남학생들.
엄청난 실력의 남학생들.
입이 벌어지는 만섭과 창호.
36. 고시원 앞 / 저녁
강 민의 차가 고시원 앞 허름한 골목과 어울리지 않게 주차되어 있다.
37. 고시원 안 / 저녁
햇볕도 들지 않는 고시원 방안.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다.
연체된 카드 명세서가 바닥에 널브러져있다.
팬티만 입은 채 책상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는 강민.
뇌리에 족구장면이 스쳐지나간다.
활짝 웃는 만섭의 얼굴.
문자를 쓰는 강 민.
‘내일 다시 족구 붙자.’
다시 지우고
‘내일 족구 한판 할래? ㅎㅎㅎ’
다시 지우고 다시 뭐라 쓰다가,
강 민
아이 씨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민.
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핸드폰에는 안나의 이름이 뜬다.
핸드폰을 꺼버리는 강민.
그러자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 민
내일 드릴게요.
다시 똑똑.
강 민
얼마 한다고 내일 준다니까!
- 44 -
그때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안나
나야.
놀라는 민.
강 민
아...진짜...
안나
문열어봐.
강 민
…….
안나
문 열어! 학교는 왜 안 나오는데?
강 민
…….
문을 뻥차는 안나.
안나
야! 차는 왜 안 내놔!
강 민
…….
안나
축구도 그렇고, 고시원도 그렇고, 아우디도 그렇고. 우리 사
이도 그래. 좀 쪽팔리면 어때. 만섭이 봐. 존나 병신 같아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잖아.
강 민
그럼 그 새끼랑 사귀면 되겠네!
안나
아우 씨발새끼 쪽팔린다 진짜.
- 45 -
문을 뻥 차고 돌아서는 안나.
강민이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는다.
38. 캠퍼스 / 낮
눈이 부신 캠퍼스의 풍경.
스피커에서 싱그러운 시그널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성 시경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가 시를 낭송한다.
아나운서
젊은이는 그 웃음 하나로도 세상을 초록빛으로 바꾼다.
학교 곳곳에서 팩 차기 하고 있는 복학생들의 모습.
아나운서
헐렁한 바지 속에 알토란 두 개로 버티고 선 모습
그들은 목욕탕에서 장군처럼 당당하게 옷을 벗는다
총장실에서 창밖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총장.
아나운서
달은 눈물 흘리는 밤의 여신
작약순은 뽀조롬히 땅을 뚫고 나오는데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달리아는 온몸으로 함빡 웃는다.
해병대 컨테이너 앞에서 전투적으로 팩 차기를 하는 해병대순찰대.
한명이 헛발질을 한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아나운서
보라! 히말라야 정상도 발아래
젊음은 그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통째로 흥정을 할 수가 있지.
민들레 동산에서 구름모자를 쓰고 열심히 제초기를 돌리고 있는 만섭.
주변 아줌마들이 만섭에게 물을 건낸다.
풀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물을 마시는 만섭.
아나운서
플라타너스 넓은 이파리 아래서도
- 46 -
그들의 꿈은 하늘을 덮고
쪼그려 앉아 있는 안나. 그 앞에 서 있는 미래.
안나가 팩을 던져주면, 미래가 팩을 밟는다.
안나가 팩을 던져주면, 미래가 팩을 밟는다.
안나가 팩을 던져주면, 미래가 팩을 밟는다.
무수히 밟혀 있는 팩.
안나는 미래를 흘겨보고는 새 커피우유를 따서 마신다.
아나운서
젊음아! 너의 몸뚱인 황금과 바꿀 수 없는
그 꿈 하나로도 세상을 이기고
슬픔은 축구공처럼 저만큼 날리고
오늘밤 단돈 만원으로도
그녀의 입술을 훔칠 수 있다.
랄랄랄 휘파람을 씽씽 불 수 있다.
도서관 상석에서 열심히 책을 보고 있던 형국.
집중이 잘 되지 않는지 문득 고개를 들면 도서관에는 자신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는 형국.
창밖을 보면 모두 팩 차기를 하고 있다.
아나운서
문병란 시인의 ‘젊음’ 이었습니다.
혼자 쓸쓸히 캠퍼스를 거닐던 고운이 팩 차기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나운서
2013년 5월 12일 홍익의 아침, 안녕 하세요. 홍익대학교 방
송국 HBN 아나운서 이장원입니다. 학우 여러분. ‘족구’ 해
보셨나요? 군대를 다녀온 남 학우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족구를 하셨을 텐데요. 와~ 다음 주면 시작되는 교내 체육
대회, 특히 족구 시합 열풍이 정말 뜨겁습니다.
아우디 안에 앉아있는 강 민.
자동차 백미러에 걸려있는 민의 사진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그라운드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멋있는 민의 모습.
강 민이 티셔츠를 들어 자신의 배를 확인한다.
접힌 살.
주유 등에 불이 들어 와 있다.
공이 날아와 강민의 차를 맞춘다.
- 47 -
멀리서 복학생 한명이 뛰어오고 있다.
강민이 차에서 내려 공을 힘껏 찬다.
39. 아지트 / 낮
시끄러운 기합소리들이 들린다. ‘간다!, 히합! 얍쌰리!, 따잇!’
벽돌로 된 벽에 족구공이 날아온다. 벽을 맞히고 사라지면,
또 날아오는 족구 공. 또 벽을 맞힌다.
벽을 맞히고 날아오는 족구 공을 공중으로 뻥 차는 미래.
선글라스를 쓰고 그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안나가 폭소를 터트린다.
안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안나를 째려보는 미래.
창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창호
아… 진짜……. 다음주가 예선인데...
미래
…….
만섭
미래누나. 세게만 차려고 하지 말고 발 안쪽을 공 아래에 갖
다 댄다는 느낌으로 해봐요. 족구에서는 그것만 해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누난 제 공을 받아서 창호한테 넘
겨주기만 하면 돼요. 어려울 거 없어요.
만섭이 공을 받는 포즈를 취한다.
따라해보는 미래.
벽을 보고 일렬로 서는 만섭, 창호, 미래.
만섭이 벽에 공을 던지고 튀어나온 공을 발로 찬다. 재빨리 비키는 만섭.
그 공이 다시 벽을 맞고 튀어 나오면 창호가 찬다. 재빨리 비키는 창호.
그 공이 다시 벽을 맞고 튀어 나오면 미래가 찬다. 하늘로 뻥 차버리는 미래.
안나
아 언니!!!
하이힐을 신고 공을 주으러 가는 안나.
창호
- 48 -
누나 관심 끌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창호를 흘겨보는 미래.
미래
나 먼저 가 볼게. 과제 해야되서...
미래가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공을 주워 오던 안나를 무시하고 가버리는 미래.
창호
우리 잘 하고 있는 걸까?
만섭
기운이 좋아. 걱정마.
그때 전화가 울린다.
(S.O)전화
홍만섭 고객님, 00은행 홍익대 지점 김보희입니다.
학자금 대출 이자 연체 되신 거 빠른 시일 내에 납부 바랍니
다. 납부 안하시면,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어 금융이나, 취업
시 불리하실 수 있고요. 무엇보다 이번학기 학자금 대출 안
되시니 빨리 납부하시는 게 좋습니다.
만섭
근데 사실 제가 군대있는 동안 이자를 납부하지 못해서 그
러는데요.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지금 열심히 돈
모으고 있는...
(S.O)전화
고객님 사정은 알겠는데요.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네요. 이
번 주까지 입학등록기간이니까 빨리 납부하셔야지 학적등록
된다는 것 아셨으면 좋겠네요.
만섭
....네 알겠습니다...
40. 고기 집 / 낮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고기집.
만섭이 치약으로 구석구석 미싱을 하고 있다.
- 49 -
옷을 갈아입은 주인아줌마가 밖에서 들어온다.
저번보다 더욱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아줌마.
주인아줌마
아이구 눈부시라.
칫솔을 든 손으로 땀을 닦는 만섭.
만섭
깨끗하죠?
주인 아줌마가 만섭에게 다가온다.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세장을 꺼내 만섭에게 건내는 아줌마.
주인아줌마
뽀나스.
만섭
사장님 괜찮습니다.
주인아줌마
받아. 일 잘해서 주는거야
만섭.
아.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주인아줌마
만섭이 애인 있어?
만섭
아 좋아하는 여자는 있습니다.
만섭의 궁뎅이를 꽉 잡는 아줌마.
흠칫 놀라는 만섭.
주인아줌마
있을 건 다 있네.
만섭
아 아닙니다...
- 50 -
주인아줌마
다음에 애인 데려오면 아줌마가 소고기 구워줄게.
만섭
감사합니다.
주인아줌마
그럼 나는 오픈 때 맞춰 올게!
만섭
네! 즐기다 오십시오!
엉덩이를 흔들며 가게를 나가는 주인아줌마.
41. 고기집 앞 / 밤
셔터를 내리고 있는 만섭.
그런데 그 앞에 서있는 누군가.
강 민
내일 족구 다시 해.
강 민을 쳐다보는 만섭.
만섭
내가 좀 바빠서 미안해.
강 민
다시 해.
만섭
이번 주에 체육대회에 나갈 거니까 그때 하자.
강경한 표정에서 조금 비굴한 표정으로 바뀌며,
강 민
…그냥 내일 다시하자.
만섭
안나 씨도 네가 체육대회에 나가서 공차는 모습 보고 싶어
할 거야. 체육대회 때 보자.
- 51 -
만섭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강 민
야!
대답 없고.
42. 민들레 동산 / 밤
가로등 아래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안나와 만섭.
안나는 만섭이 만들어 준 듯한 노트를 들고 있다.
표지에는 포스터에서 오려낸 안나의 웃는 얼굴이 붙여져 있다.
안나
(영어대사)
만섭
(영어대사)
유창한 영어 실력의 안나. 떠듬 떠듬 읽는 만섭.
그런 만섭의 모습을 보는 안나.
안나
오빠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만섭
… 아니요……. 그냥…….
다시 대본을 읽으려는 안나.
만섭
아까 민이가 찾아왔어요.
안나가 놀라 만섭을 바라본다.
안나
왜요?
만섭
족구하자고.
안나
- 52 -
그래서 한다고 했어요?
만섭
아니요. 체육대회에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붙자고 했어요.
안나
잘했어요.
만섭
안나 씨는 저랑 민이랑 하면 누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안나가 당황해 한다.
안나의 답을 기다리는 만섭.
안나
당연히 오빠죠! 전 오빠가 민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그 새끼
아주 발기도 안 되게 해줘요.
활짝 웃는 만섭.
안나
맥주 한잔 할래요? 오늘은 내가 살게요.
칙-! 맥주 캔이 따진다.
맥주를 마시는 안나. 안나의 입 주변으로 맥주가 흘러내린다.
안나
미래에서 나는 뭐하고 살고 있어요? 직업은?
좋은데 시집은 갔나?
만섭
저랑 결혼해서 행복…….
안나
fuck!!!
너무나 싫은 표정의 안나.
머쓱한 만섭.
안나
미안해요.
- 53 -
만섭
아니에요.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맥주를 마시는 둘.
안나
fuck …….
머쓱한 만섭의 표정.
안나
가위바위보 한번 해봐요.
만섭
왜요?
안나
글쎄 해 봐요.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만섭과 안나.
안나가 이긴다.
만섭이 뭐라 할 틈도 없이 안나가 사정없이 만섭의 뺨을 때린다.
당황하는 만섭.
깔깔대고 웃는 안나.
안나
자, 가위바위보!
안나가 이긴다.
이번에도 만섭의 뺨을 사정없이 때린다.
더 깔깔대고 웃는 안나.
안나
크크 가……위 크크 바위 크크 보!
이번에는 안나가 진다.
만섭이 뺨을 때리려는 포즈를 취하자,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불쌍한 표정을 짓는 안나.
만섭은 차마 때리지 못하고 스치듯 안나의 뺨을 만진다.
떨리는 만섭의 손.
- 54 -
안나
가위바위보!
안나가 이긴다.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나 풀 스윙으로 만섭의 뺨을 때리는 안나.
만섭이 휘청 넘어진다.
이번에는 웃지 않는 안나.
당황한 표정의 만섭.
안나가 눈을 껌벅인다.
안나
저 존나 나쁜 여자니까 좋아하지 말아요.
만섭이 뺨을 어루만진다.
가로등 위로 날벌레가 윙윙거리고.
43.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 낮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앞.
그 앞에선 해병전우회 학생들이 열심히 족구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중 구멍인 멤버. 이번에도 헛발질 한다.
태철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태철
대가리 박아라.
구멍멤버가 자갈밭에 머리를 박는다.
구멍멤버의 시야에 강 민이 거꾸로 보인다.
갑자기 중단되는 족구.
모두들 강 민을 바라보고 있고.
긴장감이 도는 족구장.
민이 걸어온다.
주춤하는 해병 순찰단.
태철 앞에 서는 강민.
강민
저도 끼워주십시오.
태철은 고개를 돌리고.
강민
- 55 -
……선배님.
머리를 박고 있던 구멍멤버가 철퍼덕 엎어진다.
다시 재빨리 머리를 박지만 또다시 엎어진다.
다시 민 쪽으로 고개 돌리는 태철.
태철
그래 입고 할라고?
44. 학생과 / 낮
조교 책상 앞에 서 있는 구름모자를 쓴 만섭.
목에는 수건을 걸고 얼굴에는 땀과 풀로 가득하다.
조교
안될거 같은데...
만섭
어떻게 방법이 없는건가요?
조교
등록금 미납으로 인한 등록취소는... 방법이 없어.
만섭
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만섭.
조교
만섭 학생.
뒤를 돌아보는 만섭.
조교
일 하던건 내가 다른 학생 찾아볼게.
만섭
아닙니다. 맡은 건 제가 마무리 해야죠.
학생과를 나가는 만섭.
벽에 붙은 총장과의 대화 포스터 속 총장의 모습이 바뀌어 있다.
- 56 -
45. 총장실 / 낮
총창이 창문너머에 족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그때 총장실로 들어오는 학생처장.
학생처장
그냥 보고만 계실 겁니까?
총장
저지 할 학칙이 없잖습니까?
학생처장
지금 면학분위기를 망친다고, 학생회에서도 들고 일어나고
있고…….
총장
거 좀 족구 좀 하면 안돼요?
학생처장
네?!!
머쓱해진 총장.
총장
……아니. 거. 체육대회 끝나면 다 제자리로 돌아갈 거 그냥
하는 동안만은…….
학생처장
학생들 취업 안 되면 총장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이사장님
이 아시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총장
……이사장님이…하……. 이사장님이 족구 하는 것 까지 신
경 쓰겠습니까.
학생처장
그러니까 이사장님이 신경 안 쓰시게끔 해야 할 것 아닙니
까! 총장님이! 이사장님을!
총장
말끝마다 이사장님이. 이사장님이... 씨발 집에서도 너네 형
보고 이사장님. 이사장님 그러냐! 족구가 뭐라고 고등학교도
- 57 -
아니고 씨발 족구 좀 하게 둬! 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학생처장.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학생처장
네 형님 접니다. 지금 학교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총장을 흘깃 보는 학생처장.
이사장
왜? 반값등록금 시위해?
학생처장
아니요. 지금 학생들이 족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장
…족구?
학생처장
네…….
이사장
족구하면 안 돼?
학생처장
…족구는…….
이사장
이 새끼가…… 넌 골프 치지 마 새끼야.
뚝 끊기는 전화.
멍하니 서 있는 학생처장.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총장.
총장
나 총장인데. 족구대회 전폭적으로다가 지원해!
46. 자판기 앞 / 낮
만섭이 자판기를 걸레로 깨끗하게 닦고 있다.
구석 구석 정성들여 닦는 만섭.
- 58 -
어디선가 나타난 창호가 도와준다.
47. 민들레 동산 / 낮
미래가 나뭇가지에 공을 매달아 놓고 연습하고 있다.
등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다.
48. 운동장 / 낮
함성소리.
‘족구대회 예선전’ 라 적혀 있는 플랜카드가 걸린다.
운동장에 우글거리는 시커먼 복학생들. 바퀴벌레들 같다.
모두 다 흥분한 듯 몸을 풀고, 필승의 결의를 다진다.
운동장 구석에 작은 탁자를 놓고 중계를 하고 있는 복학생 해설 두명.
해설1
네 족구대회 예선전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의 열기는 정말
뜨겁습니다. 극적으로 전 축구스타 강 민 학우가 선수등록을
마쳤다고 합니다. 국대 출신이 아마추어들과 족구를 한다는
게 좀 놀랍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해설2
네. 그렇죠.
해설1
그라운드에서 다시 강 민 선수의 공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는데요. 아마 이곳 족구장을 찾은 많은
여 학우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 민이 건장한 선수들과 등장하자, 환호를 보내는 여학생들.
만섭의 팀앞을 지나는 강민.
안나와 민의 눈이 마주치고, 민이 안나의 눈을 피한다.
해설1
반면 남 학우들은 어떻게 해서든 강 민 학우를 이겨 좀 튀어
보려 애쓸 텐데요. 좀처럼 이 열기는 사그라질 줄 모릅니다.
말하는 순간 강 민 선수의 서브입니다.
<토목과와 법학과의 예선>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브를 넣는 강민.
안경을 쓴 비실비실한 복학생들.
아마추어같은 실력으로 우왕좌왕 공을 겨우 넘긴다.
넘어오는 공을 곧바로 발리킥으로 차버리는 강민.
- 59 -
태철과 강민이 파이팅을 한다.
그로부터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방을 무너트리는 강민과 태철.
해설1
와!!! 네 역시 강 민 선수네요.
세트 스코어 3:0으로 가볍게 법대를 물리칩니다.
안나는 좋아하는 표정을 억누르고,
이 모습을 보고 있는 만섭과 창호, 미래.
미래
우리 질 것 같은데…….
안나
무슨 소리야 초장부터! 할 수 있어. 만섭이가 민이도 이겼는
데 저 새끼들 못 이기겠어?
만섭이 안나를 보고 웃는다.
족구장에 들어서는 만섭 팀.
반대편 독어 과 팀도 들어선다.
네트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선 두팀.
창호는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고글을 끼고 있다.
만섭
그건 뭐야?
창호
얼굴 다치면 안되잖아.
<만섭과 기계공학과의 예선>
만섭이 서브를 넣는다.
모두가 똑같은 행동을 하며 공을 받는 기계공학과.
똑같은 행동으로 공격을 하고, 공이 미래를 향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만섭이 겨우 공을 받는다.
창호가 공을 토스해 넘겨주고, 만섭이 달려가 공격을 성공시킨다.
기뻐하는 안나.
그로부터 둘의 막상 막하의 대결이 펼쳐진다.
자꾸만 공을 놓치는 미래.
만섭이 미래의 자리까지 달려와 공을 차준다.
- 60 -
기계공학과의 엄청난 공격들.
만섭과 창호가 번갈아 받아낸다.
그 가운데 어쩔 줄 몰라하는 미래.
창호가 헤딩으로 넘겨준 공을 만섭이 시원하게 성공시킨다.
해설1
네! 식품영양학과 우여곡절 끝에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합니
다. 홍만섭 학우의 실력 정말 어디서도 감탄 밖에 나오지 않
는데요,
해설2
네.
해설1
유일한 여학우가 뛰고 있는 식품영양학과. 아무래도 이미래
학우가 분발 해 줘야겠죠?
해설2
네.
해설1
아무튼 두가지 포지션을 홀로 소화하고 있는 홍만섭 학우.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안나가 만섭이의 볼을 잡고 흔든다.
이 모습을 보는 민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토목과와 심리학과, 경영학과의 예선>
서브를 넣는 강민.
서브를 넣는 태철.
서브를 못받는 심리학과 학생들.
공격을 성공시키는 강민.
공격을 성공시키는 태철.
공격을 받지 못하는 경영학과 학생들.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하는 토목과.
태철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강 민.
대진표에 토목공학과 팀은 이미 4강에 올라 가 있다.
- 61 -
<만섭과 수학과와의 예선>
만섭팀이 이미 코트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자기 코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수학과 학생들.
각종 그래프와 숫자로 가득한 수식을 바닥에 그리더니 미래가 구멍임을 알아낸다.
눈을 반찍이며 미래를 쳐다보는 수학과 학생.
미래는 불안해 한다.
서브를 넣는 수학과 학생. 미래에게 공이 향한다.
공을 받지 못하는 미래.
미래를 격려해주는 만섭과 창호,
다시 미래에게 서브를 넣는 수학과 학생.
창호가 미래 앞에 나타나 공을 받는다.
공은 붕 떠서 수학과로 넘어가고,
뜬 공을 보며 계산을 하는 수학과 학생.
그러더니 톡 공을 건드려 빈 곳에 찔러 넣는다.
만섭이 달려와 받아보지만 받지 못한다.
환호하는 수학과 학생들.
안나
홍~맨~섭 파이팅!!
식품영양 화이팅!!
옷을 하나 벗은 안나가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딱붙는 옷을 입은 안나의 가슴이 출렁거린다.
침을 꿀꺽 삼키는 주변의 학생들.
안나의 응원을 보고 눈빛이 반짝이는 만섭.
강하게 서브를 찬다.
그로부터 만섭의 팀이 점수를 내기 시작한다.
공을 차는 만섭,
공을 차는 창호,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미래,
공을 받지 못하는 수학과 학생들,
삑! 만섭팀이 승리한다.
미래의 어깨를 마사지 해주고 있는 안나.
<만섭과 중국어과의 대결>
고글을 쓴 창호가 서브를 넣는다.
공을 받는 중국어과팀, 쿵푸같은 무술로 공을 넘긴다.
받지 못하는 만섭.
공을 차는 만섭,
- 62 -
공을 차는 창호,
중국어과의 화려한 공격들.
전력으로 뛰어가 공을 받는 창호.
공을 차는 만섭. 얼굴을 찡그린다.
깽깽이 발을 딛는 만섭.
받지 못하는 미래.
바닥에 나뒹구는 만섭.
중국어과의 화려한 공격들.
공을 차는 만섭.
공을 받는 창호.
만섭이 공을 넘겨 받아 토스,
공이 날아와 창호의 얼굴을 맞히고 득점된다.
만섭과 미래가 놀라지만 고글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드는 창호.
이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형국.
돌아서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뒤에 보이는 고운.
삑!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
해설1
네! 중국어과를 꺾고 식품영양학과 팀이 역대 최초로 결승에
진출 합니다.
해설2가 기록 집을 집어준다.
잠시 멈칫하는 해설1
아나운서1
아...아닌가요? 아, 3년 전에 족구대회 결승에 간 적이 있네
요……. 우승을 눈앞에 두고 기권패 하였지만 기록이 잘 못
되지 않았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9. 화장실 / 낮
창 밖에서는 학생들의 응원소리와 족구 공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에서 족구화를 벗는 만섭.
발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다.
만섭이 발을 세면대 위에 올려 찬물을 묻힌다.
신음소리를 내는 만섭.
창호
만섭아 괜찮겠어?
- 63 -
만섭
응 괜찮아.
창호
처음인 것 같아 이렇게 사람들 많은데서 족구하는 거.
만섭
....
창호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웃음 짓는 만섭.
만섭
나도 그래.
창호
아마 우리가 우승은 못 할 거야 그지?
만섭
...
창호
그래도 난 지금 너무 재밌다 만섭아.
만섭을 바라보는 창호.
화장실 창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고운.
고운
찌지하긴...
50. 기숙사 / 낮
책상에 앉아 있는 형국.
책상 앞에는 D-1이라 적혀 있다.
책상위에 펼쳐진 노트 하나.
잘게 쪼개진 종이들이 있다.
손가락으로 조각들을 맞추어 가자 점점 나타나는 고운의 얼굴.
51. 운동장 (형국의 과거) / 낮
결승전에서 족구 하는 형국.
- 64 -
땀에 젖은 형국이 환하게 웃으며 공을 차고 있다.
응원석에서 형국을 응원하는 고운.
예쁘게 꾸미고 있는 고운. 풋풋하다.
어그 부츠도 신지 않고 있다.
갑자기 문자가 온다.
‘전고운 님 죄송합니다. 불합격 하셨습니다’
고운은 갑자기 교정기를 끼고 어그부츠를 신는다.
고운
임형국!
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기중인 형국. 공을 멋지게 차려는데,
고운
이제 정신 좀 차려. 족구가 대체 뭔데?
족구공이 쾅! 하고 네트를 맞힌다.
사람들의 응원 속에 멍하니 서 있는 형국.
땀에 흠뻑 젖은 채 어딘가를 바라본다.
뒤뚱뒤뚱 멀어지는 고운의 뒷모습.
52. 기숙사 / 낮
생각에 잠겨 있는 형국.
그때 절뚝이며 족구 유니폼을 입은 채 방으로 들어오는 땀에 젖은 만섭.
형국
족구가 너에게 뭐냐?
공부를 하던 룸메 두 명이 만섭을 바라본다.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던 만섭.
만섭
놀이입니다.
형국
....
53. 고기 집 / 밤
‘금일 휴업’ 팻말이 붙어있는 불 켜진 고기 집.
창안으로 보이는 만섭과 친구들의 모습.
- 65 -
소고기가 불판에 구워진다.
불판주위로 둘러앉은 만섭, 창호, 미래, 안나.
창호는 다시마만 먹고 있다.
미래는 고기가 구워지자마자 얼른 입으로 고기를 가져가고.
안나
언니 고만 좀 먹어요. 사람들 좀 먹게.
미래
소고기를 바싹 익히면 맛없단 말이야.
안나
코트에서 하는 것도 없이 가만히 서 있으면서...먹기는 오죽
이 먹어요.
젓가락을 탁! 내려놓는 미래. 움찔하는 안나.
주인아줌마가 상추를 씻어 가지고 오고 있다.
주인아줌마
고기 앞에 두고 왜 싸우고 지랄들이야.
자 받아!
술을 따라 주는 주인아줌마.
주인아줌마
만섭이랑 사귄지는 얼마나 됐어?
안나
네? 아줌마 절 뭘 로 보시는 거에요? 저 학생 모델이에요.
만섭
사장님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만 좋아해요.
실망한 주인아줌마.
주인아줌마
그래? ....
안나
....아니 저도 좋아는 하는데 사귀는 사이는...
- 66 -
주인아줌마
너 얼굴 너무 믿고 깝치지마. 너 훅 간다. 순식간이야. 지금
은 남자들이 좋다고 달려들지? 얼굴보고 달려드는 놈은 얼
굴가면 다 빠이빠이 야. 나중에 봐라 네가(미래를 가리키며)
더 잘 살 거다.
안나
…….
미래
감사합니다.
주인아줌마
그래. 살은 좀 빼야겠다. 너 한번 일어나봐.
미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주인아줌마
너 네 발보이니?
미래가 고개를 숙여 발을 본다.
이를 지켜보는 셋.
미래가 고개를 좌우로 비껴가며, 발을 내려다보려는데, 보이지 않는 발.
주인아줌마
안 보이지?
미래가 주인아줌마를 바라본다.
주인아줌마
만섭아, 지발도 보이지 않는 애한테 공을 차라고 하면 그게
차지겠니?
모두들 미처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주인아줌마
앉아봐.
미래가 자리에 앉고.
주인아줌마가 미래의 이마를 까 보인다.
- 67 -
미래의 이마 가운데 까만 점이 있다.
부끄러운지 이마를 빼는 미래.
이마를 탁탁 치며.
주인아줌마
이마가 좋네. 공이 딴 데 날아가다가도 여기에 맞겠다.
미래의 이마를 바라보는 셋. 이마의 점이 반짝인다.
만섭
그래, 헤딩하면 되겠다. 누나는.
창호
어머니 저는요?
주인아줌마
너는 다시마 고만 먹고, 고기 좀 먹어.
주인아줌마가 쌈을 싸서 창호의 입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창호도 잠깐 주춤하다 한입 가득한 고기를 씹는다.
주인아줌마
맛있지?
창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만섭과 미래, 안나가 웃는다.
주인아줌마
너네 때는 즐기면 장땡이야. 실컷들 놀아. 벌벌 떨지 말고.
일도 놀려고 하는 거지 뭐. 죽자 사자 일만하다가 죽어봐,
천국가면 하나님이 옆에서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섹
스라도 마음대로 하겠어?
만섭
사장님…….
섹스얘기에 얼굴을 붉히는 넷.
주인아줌마
어머, 촌스럽게…….성인이. 다들 하고 있으면서……. 참네.
안나야.
- 68 -
안나
네?!
주인아줌마
아줌마랑 뭐 좀 가지고 오자.
안나
싫은데요.
안나의 목덜미를 잡아 채 부엌으로 끌고 가는 주인아줌마.
창호
근데 내일 민이랑 우리랑 붙으면, 안나는 누구 응원할까?
창호가 슬쩍 만섭을 바라본다.
미래
누구 응원하던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이기면 되지.
창호
이기고 싶다.
창호가 미래를 바라본다.
미래
나도.
만섭
나도.
미래가 창호를 바라본다. 미래가 고기쌈을 싸서 창호의 입에 넣는다.
미래가 창호의 먹는 모습을 흐믓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 모습을 만섭이 지켜보고.
미래
우리 이기면 나랑 데이트 할래?
창호
네?
- 69 -
54. 부엌 / 밤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뒤적이는 주인아줌마.
주인아줌마
거기 두 번째 칸. 어. 그래.
안나가 냉장고에서 길다란 애호박을 꺼내 주인아줌마에게 건넨다.
주인아줌마
내가 만섭이를 쭉 지켜봐왔잖니. 어?
안나
...네.
주인아줌마가 도마에 애호박을 놓고 칼을 잡는다.
주인아줌마
보기에는 그렇게 보여도. 애가 아주 실해.
안나
네?
주인아줌마
응?
주인아줌마가 애호박을 들어 보인다.
안나가 까르르 웃고.
주인아줌마도 웃는다.
주인아줌마
얘, 중요하다 그거.
주인아줌마가 칼로 호박 껍질을 벗겨낸다.
주인아줌마
만섭이가 묘한 매력이 있어. 참 착하고 좋은 앤데 그치? 근
데 갖기는 좀 그렇고? 또 남 주자니 그런 사람 못 만날 것
같고.
안나가 주인아줌마를 바라본다.
- 70 -
안나
...그렇죠
아줌마가 애호박을 칼로 확 자른다.
흠칫 놀라는 안나.
55. 캠퍼스 언덕 / 밤
어두컴컴한 교정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의 실루엣.
만섭, 안나의 뒷모습, 평소보다 더 큰 덩치의 미래.
지나가던 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들을 밝혀준다.
미래가 창호를 엎고 길을 걷고, 만섭과 안나가 나란히 걸어간다.
아무런 말이 없는 넷.
그때 미래의 전화가 울리고,
페이스타임을 하는 미래. 화면에 미래의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미래
엄마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미래가 슬쩍 어깨에 기대고 있는 창호의 얼굴을 보여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미래 아빠와 개를 안고 있는 미래 엄마.
엄마는 눈물을 닦는다.
미래
저기....만섭아.
만섭
네?
미래
혹시 창호네 집 키 가지고 있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미래에게 건내는 만섭.
미래
우리 먼저 가볼게.
만섭
...네 누나.
창호를 엎은 미래가 샛길로 빠진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만섭과 안나.
- 71 -
안나
둘이 그런 사이였어?
만섭
....봄이잖아.
둘은 밤길을 걷기 시작한다.
안나
저기...오빠...
안나를 바라보는 만섭.
안나
가위바위보 할래요?
만섭
아니 괜찮아.
만섭을 바라보는 안나.
안나
오빠 참 멋있는 사람 같아.
만섭
...고마워.
안나
아니…….진짜 오빠 정말 멋있어. 아마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제일 멋있을 거야.
만섭
…….고마워.
안나
…근데……. 내일 응원 못할 것 같아.
만섭
…알아.
- 72 -
찌그러진 커피우유팩이 발에 차인다.
만섭
…….그래도 영어발표는 같이 할 거지?
안나
그럼.
만섭
내일 봐.
안나
…그래…….
팩을 줍는 만섭.
기숙사로 걸어간다.
만섭의 뒷모습을 보는 안나.
56. 기숙사 방안 / 밤
만섭의 침대관물에 위에 붙어있는 안나포스터를 바라보는 만섭.
얼굴 부분만 오려져 있다.
고개를 돌려 형국의 자리를 보면,
형국은 없고. 책상위에 걸려있는 종이 한 장.
'D-0'
만섭도 자신의 책상에서 뭔가 끄적거리더니 책상에 붙인다.
'D-0'
57. 아지트 / 밤
만섭이 공을 차던 아지트에서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족구장으로 걸어가는 만섭.
형국이 벽을 향해 공을 차는 모습이 보인다.
형국이 뒤를 돌아본다.
형국의 땀에 흠뻑 젖은 채 가만히 서있고,
만섭도 형국을 향해 서있다.
족구공이 만섭을 향해 굴러간다.
만섭이 족구공을 향해 뛰어간다.
만섭이 족구공을 찬다.
전광석화처럼 날아가는 족구공.
- 73 -
형국이 족구공을 향해 발을 뻗는다.
족구공이 다시 만섭이를 향해 날아가고
그 엄청난 공을 받아내지 못한 만섭.
공이 저 멀리 사라진다.
공을 바라보는 만섭. 고개를 돌리면,
형국은 멀리 사라지고 있다. 그러다 멈춰서는 형국.
형국
강민은 오른발만 쓴다. 알고 있나?
만섭
네?
형국
병신새끼...
멍하니 그 말을 생각하던 만섭은 형국이 있던 자리를 본다.
형국이 공을 차던 벽에 각종 전략들이 그려져 있다.
뒤를 돌아보는 만섭.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형국.
만섭
형, 고마워요. 내일 시험 잘 보세요. 저도 좋은 소식가지고,
올게요. 기숙사에서 뵙겠습니다.
형국이 사라진 어둠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만섭.
58. 운동장 / 낮
뜨거운 태양.
아지랑이가 피는 운동장의 흙.
서까래로 코트를 고르고 있는 룸메1,2.
족구 네트가 다시 설치된다.
새하얀 석회로 라인이 그어진다.
텅빈 운동장에 아나운서 둘만 앉아 있다.
아나운서1
족구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날씨입니다.
아나운서
좀 덥네요.
- 74 -
아나운서2
한 시간 후면 있을 족구 결승전의 열기가 학생들의 발걸음
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 열기가 저 태양을 달구고 있는 듯
한 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강 민 과 이름 모를 한 복
학생의 족구경기로 촉발 된 이 빅 매치. 강 민 선수로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가 없는 경기죠. 만약 강 민 선수가
지기라도 한다면 과연 그라운드에서 다시…….
59. 영어강의실 / 낮
한 팀이 영어발표를 하고 있다.
온갖 소품들을 동원하여 다이하드를 연기하고 있는 두명의 남학생.
만섭의 룸메이트들이다.
영어 선생은 시크한 표정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고,
만섭은 묵묵히 이를 바라보고.
만섭이 뒤를 돌아보자,
안나가 보인다.
안나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만섭도 미소를 짓고.
발표가 끝나자 박수를 치는 학생들.
영어강사
(영어) 자, 다음 조 서 안나....음...
영어강사가 출석부를 뒤적거린다.
영어강사
(영어) 왜 조원 이름이 없지?
영문을 몰라 만섭을 쳐다보는 안나.
안나
(영어) 제 조원 홍만섭인데요.
영어강사
(영어) ....혼맨섭? 음.. 이름이 없는데...
수강취소했어요?
만섭
(영어) ....아니요...저기 등록을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만섭을 바라본다.
- 75 -
안나도 놀라 만섭을 바라보고.
만섭
(영어) 근데 저기...발표는 준비 많이 했는데 한 번만 하면
안될까요?
눈을 감고 고민하는 영어강사.
만섭
Please...
고개를 끄덕이는 영어강사.
프로젝트에서 쏘아진 ‘백 투 더 퓨처’의 영상이 스크린에 쏘아진다.
웬일인지 그 영상은 만섭과 안나가 주인공이다.
만섭과 안나가 스크린 앞에 선다.
영상 속 둘의 모습에 실제 모습이 겹쳐진다.
서로 마주보는 만섭과 안나.
만섭이 안나를 보고 웃는다.
안나도 만섭을 보고 웃는다.
그들의 추억들이 스크린에 쏘아지고 있다.
만섭
(영어) 저는 사실 이렇게 당신을 실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당황하는 안나.
학생들은 그 대사가 영화의 대사인 줄 알고 그렇게 듣고,
강사역시 마찬가지다.
만섭
(영어)당신은 저를 기억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항상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신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인 2063년 미래에서 왔습니다. 저는
직장암으로 죽음에 문턱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천사
가 저에게 다가왔죠. 그리고 그 천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이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지루한 인생을 살
았기에 천국에 가서도 잘 누리지 못 할 거라며, 제 인생을
50년 전인 2013년으로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24살로 말
이죠. 다시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이 걸렸지만,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연애 한 번 못해보고 공무원시험에만 파묻혀 살
- 76 -
았던 제 20대를 다시 돌려준다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 동
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군대
제대 이후에 남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족구를 실컷 하고
싶었습니다. 또 뭘 할까 생각하던 그때 문득 생각이 났습니
다...... 24살의 저는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고백한번 못해보고 멀리서 지켜 보기만 했었습니
다.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꼭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안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어리둥절한 학생들.
구석에서 흐느끼고 있는 영어 강사.
안나
Thank you.
60. 복도 / 낮
비장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창가에는 강렬한 햇살이 비추고.
형광운동화 끈을 묶는 손.
공기에 나부끼는 먼지.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목을 푸는 만섭.
다리를 푸는 만섭.
살이 흔들거린다.
공중으로 점프하여 양 발로 박수를 치는 하는 만섭.
잰걸음으로 복도를 뛰는 만섭.
드디어 걸어가기 시작하는 만섭.
그 옆 창호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옆 육중한 미래가가 나타난다.
복도를 나서면 찬란한 햇빛이 그들을 비춘다,
61. 운동장 / 낮
태양이 내리쬐는 운동장.
식품영양학과와 토목공학과의 깃발이 하늘에 펄럭인다.
스탠드는 각 과별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해설1
네 드디어 체육대회의 빅 매치 족구대회의 결승전이 열리
직전입니다! 토목공학과 대 식품영양학과. 식품영양학과 대
- 77 -
토목공학과. 이곳 대운동장의 열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해설2
네 지금..
해설1
네 지금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환호성이 대
단하네요. 복학생들은 식품영양학과에, 여학생들은 강 민의
등장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걸어 들어오는 만섭, 창호, 미래. 복학생들이 열광하며 응원한다.
반대편 강민을 비롯한 해병전우회의 등장. 여학생들이 환호한다.
네트를 가운데 두고 정렬한 식품영양학과와 토목과.
만섭이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어디에도 안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창호는 고글을 단단히 고쳐 쓴다.
토목과 팀은 금색글씨로 해병대가 새겨진 빨간 티와 빨간 반바지를 입고 있다.
강 민
구멍은 저기예요.
미래를 가리키는 강민. 고개를 끄덕이는 태철.
만섭이 공을 튀겨 서브를 넣는다.
리시버가 공을 받고, 다시 토스, 강민에게 올려주자, 만섭이 창호와 자리를 교체한다.
강민의 강력한 킥이 미래로 향하는데, 그 앞에서 헤딩으로 공을 커트해 내는 만섭.
그 공은 뒤편 리시버의 왼발을 향하고, 주춤하던 리시버가 겨우 공을 받아내자, 공은
강민을 향한다. 그러자 다시 자리를 바꾸는 만섭과 창호.
강민은 어쩔 수 없이 공을 태철에게 토스하고 태철이 공격하는데, 그 위치에는 이미 만
섭이가 서있다.
만섭이가 리시브, 창호가 토스. 만섭이가 다시 상대편 리시버의 왼발을 향해 공격한다.
그 공은 가까스로 리시버의 발에 걸리지만, 코트 뒤로 튕겨져 나간다.
‘삑!’
점수판에 점수가 올라간다.
1:0
복학생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어리둥절한 토목과 팀.
씩 웃어 보이는 창호와 미래, 만섭.
만섭이 다시 공을 튀겨 서브를 넣는다.
공을 겨우 받아 넘기는 강민.
상대의 공격을 커트하는 만섭.
자리를 바꾸는 만섭과 창호.
- 78 -
만섭의 공격.
‘삑!’
2:0
환호하는 복학생들.
실망하는 여학생들.
아나운서1
네 의외로 식품영양학과의 시작이 좋습니다!
62. 시험장 / 낮
책상 한쪽에 ‘임형국 / 1983.11.10. / 수험번호 0000000’ 딱지가 붙어 있다.
그 위로 놓이는 시험지.
삑~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63. 운동장 / 낮
점수판은 4:1
심판
서브권 이동.
공이 토목과 쪽으로 넘어온다.
공을 잡는 강민.
강 민
이번 서브권에서 무조건 5점 따내야 됩니다. 서브는 최대한
길게 저 뚱녀를 향해서 보내요. 그리고 저 놈한테 커트가 되
도 제 왼발을 향해 리시브하세요.
태철
너 오른발잡이 아니였어?
강 민
안 쓴지는 오래 됐지만, 이 방법 밖에 없어요.
강민과 태철이 자리를 바꾼다.
놀라는 만섭과 창호, 미래.
서브가 넘어오자, 만섭이 커트 해낸다.
리시버가 공을 받자 강 민에게 곧바로 토스한다.
강민 앞으로 공이 떨어지고 강민이 오른발을 든다.
코트 왼쪽 깊숙이 움직이는 창호와 만섭.
- 79 -
강민이 오른발로 차려다 순식간에 발을 바꾸어 왼발로 찬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으로 떨어지는 공.
‘삑!’
4:2
아나운서1
네 역시 강 민의 공격은 날카롭습니다. 식품영양학과가 손쓸
새도 없이 공은 코트를 가로지릅니다!
환호하는 여학생들.
그 사이에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쓴 안나의 모습이 보인다.
공이 다시 창호와 만섭 사이를 통과.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점수를 내어주는 만섭팀.
강민은 자유자재로 오른발 왼발을 바꿔가며 공격한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좌왕하는 만섭팀.
만섭과 창호는 점차 지쳐간다.
공에 발을 맞고 억 하고 쓰러지는 만섭.
자리에서 겨우 일어난다.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하는 만섭.
안타까워하는 미래.
안타까워하는 안나.
어디선가 숨어서 보고 있는 고운. 주먹을 불끈 쥔다.
4:10
아나운서1
순식간에 역전에 성공하는 토목과! 토목과의 바뀐 전술에 속
수무책인 식품영양학과입니다.
심판
토목과 1세트 승!
64. 스탠드 / 낮
땀을 흘리고 있는 만섭과 창호,
만섭이 신발을 벗자, 빨갛게 물들어있는 양말.
창호
괜찮겠어?
만섭
- 80 -
족구하다가 발톱 한두 번 빠져봤어?
만섭이 양말에 손을 넣어 발톱을 빼내어 던진다.
저만치 이를 보고 있는 고운.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안나 역시 이를 보고 안타까워하고.
미래
미안해...
만섭
아니예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창호
누나
창호가 자신의 이마를 툭툭친다.
미래
아는데...공이 너무 빨라서...
창호
만섭아. 이제부터는 너는 토스만 해. 공격기회가 있어도 그
냥 넘기고. 그 발로는 3세트까지는 무리야.
만섭
알았어...
토목과 진영.
해병대1
이번에는 저 쪽으로 보내서 완전히 끝내버리죠.
강 민이 만섭 쪽을 바라본다.
태철
그래. 네 킥이면 두, 세 번이면 다리 완전히 나가게 할 수 있
겠다. 빨리 끝내고 고기 먹으러 가자.
태철이 강 민의 어깨를 친다.
강 민
- 81 -
...네...
65. 운동장 / 낮
심판
코트 체인지 2세트 시작!
강민의 강력한 킥. 공은 만섭을 향해 날아가고, 만섭의 발을 맞춘다.
인상을 찡그리는 만섭.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래. 창호.
다시 강민의 강력한 킥. 만섭의 발을 맞춘다.
만섭은 등을 돌려 애써 참으려고 하지만, 아픔을 감출 수 없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만섭을 바라보는 미래.
토목과 팀은 환호를 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공을 받아내는 창호. 만섭이 토스.
하지만, 만섭의 발은 말을 듣지 않고, 공은 힘없이 떨어진다.
흐르는 공을 힘겹게 받아 넘기는 창호.
다시 태철의 강력한 킥.
만섭의 발을 맞춘다.
깽깽이 발로 아픔을 추스르는 만섭.
심판에게 다가가 작전 타임을 부르는 창호.
6:9
해설1
네 토목과가 한점만 더 내면 우승인데요, 식품영양학과가 작
전타임을 신청했습니다. 정말 피말리는 순간인데요, 돌풍을
일으키며 결승까지 올라온 식품영양학과. 아.. 여기까지 일
까요?
해설2
전 믿습니다.
만섭과 강민의 시선이 오고 간다.
시선을 피하는 강민.
창호
만섭아 괜찮겠어?
만섭
으....
- 82 -
미래
어떻게....
만섭
아니야 계속 할 수 있어.
창호
만섭아 이제 그만...
만섭
발은 일주일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갈 것 같아.
만섭을 바라보는 창호. 그리고 미래. 미래가 미간을 찌푸리고 토목과를 바라본다.
창호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만섭아. 나 한번 믿어줘.
창호를 바라보는 만섭과 미래.
태철의 서브. 이번에는 만섭이 커트하지 않고 창호가 받는다.
그 공을 받아 힘겹게 헤딩으로 공을 넘기는 만섭.
공중에 뜬공. 창호의 킥. 토목과 팀의 빈곳을 정확하게 찔러 넣는다.
환호하는 복학생 그리고 고운, 안나.
미래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만섭과 창호.
당황해 하는 토목과 선수들.
7:9
아나운서1
아, 네 그동안 토스만 해왔던 박창호 선수! 공격 능력이 정
말 뛰어나네요! 이제껏 숨겨왔던 걸까요?
긴장한 강민의 강력한 서브. 네트에 걸린다.
다시 환호하는 응원단.
8:9
하이 파이브를 하는 만섭 창호 미래.
만섭
기운이 우리쪽으로 넘어왔어. 지금이 기회야. 이번만 잘 넘
- 83 -
기고 동점되면 아직 승산 있어. 창호야 내가 어떻게든 공을
받아낼게. 나한테 다시 리턴 해줘. 내가 마무리 해볼게.
창호
너 괜찮겠어?
만섭
아직은 참을 만 해.
고개를 끄덕이는 창호.
아나운서1
네 여전히 토목과는 한 점만 더 따내면 우승입니다. 식품영
양학과 역시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을 올라왔지만, 이번 한
점 막지 못하면 우승은 토목공학과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위기! 네 이 한 점 중요합니다. 이것을 막는다면 9:9 동점이
되는데요,
아나운서2
네. 그렇다면 충분히 승부를 던져볼만 하지요. 자 강민선수
서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민이 서브를 넣는다.
창호가 슬쩍 공을 흘려주고, 이를 만섭이 발로 받아낸다.
공중에 붕 뜨는 공.
고통스러워 하는 만섭. 하지만 쩔둑대며 필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간다.
만섭
창호야! 리턴!!
창호
오케이!!
공중에 뜬 공을 보고 뒷걸음질 치는 창호.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안타까워하는 만섭.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고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안나.
넘어진 채 공에 눈을 떼지 못하는 창호.
이미 환호하며 강민에게 달려가고 있는 태철.
공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려는데,
- 84 -
바람이 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흔들리는 나뭇잎.
안나의 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태철의 품에 안겨있는 강민이 눈을 꿈뻑인다.
미래의 앞머리가 날리며 이마의 점이 드러난다.
점이 태양을 받아 반짝인다.
눈을 질끈 감는 미래.
미래가 공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에 헤딩을 한다.
이마의 점에 정확히 맞는 공.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
미래의 헤딩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넘어져 있는 창호의 뒤통수를 내리 찍는다.
두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는 식품영양학과 여학생들.
여학생1
끼아아악!
여학생2
끼아아아아악!
창호
꾸에에엑!!!
미래는 그대로 땅에 엎어지고, 창호도 쓰러진다.
미래가 헤딩한 공은 토목과 네트를 넘어 토목과 한 가운데로 떨어진다.
이미 강민에게 모여들어 기뻐하고 있던 토목과 학생들은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공을 받
지 못한다.
만섭이가 미래와 창호를 향해 뛰어온다.
안나도 모자를 벗고 창호를 향해 뛰어오고.
바닥에 누워있는 미래와 창호.
미래의 이마에는 피가 묻어 있다.
창호가 바닥에 앉은 채 피로 물든 고글을 벗는다.
안나
괜찮아?
미래
창호야...
- 85 -
만섭이 아무런 말없이 창호를 바라본다.
뛰어온 심판이 창호의 뒤통수를 들여다 본다.
심판
할 수 있어요?
갑자기 구토를 하는 창호.
창호
뇌진탕 인가봐...
안나
보면 몰라요?
심판
그럼 빨리 교체선수 내 보내요.
만섭
저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만섭을 바라보는 안나. 미래, 창호.
창호도 고개를 떨구고.
심판
그러면 기권패인데 괜찮겠습니까?
아쉬운 표정의 만섭, 미래, 창호.
심판이 뒤를 돌아 점수 판 쪽으로 걸어간다.
해설1
네...심각한 부상이 아니길 바라지만...네...교체선수가 없는
것으로 봐서 기권을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래도 식품영
양학과 학생들 너무 열심히 뛰어 주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웅성대는 학생들.
이를 바라보는 강민. 좋아하는 태철과 팀원.
심판이 점수판 쪽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하더니
심판
식품영양학과의 기권으로 토목...
- 86 -
소리(형국)
잠깐!
학생들 틈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형국.
숨을 몰아쉰다. 땀이 범벅이 된 형국.
손에는 자신의 학생증을 들고 있다.
형국
허...헉...교...체...선수...입장..
형국을 바라보는 만섭. 형국을 바라보는 고운.
만섭
형국이형...
형국이 바지를 훌렁 벗으니, 식품영양학과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해설1
교체선수가 있었군요. 저 선수는 누군가요?
해설2
아....네! 전에 잠깐 소개 한바가 있죠. 삼 년 전 식품영양과
를 이끌고 결승까지 갔었던 임형국선수네요. 그때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해설1
네 그렇군요. 기대가 됩니다. 뜻밖의 부상을 입은 박창호선
수 자리를 충분히 메워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해설2
아 그리고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요, 이미래 선수의 헤
딩. 정말 굉장했습니다. 어떻게 헤딩으로 저런 공격이 가능
하지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공격입니다. 돌아온 에이
스 임형국 선수, 그리고 각성한 이미래 선수라면.. 이 경기
계속 지켜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코트에 서서 점수판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 그윽한 눈빛.
심판이 점수를 넘기면 9:9가 된다.
- 87 -
그 뒤로 보이는 만섭과 미래.
창호의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안나.
형국
생각보다 잘 싸워줬다. 누가 서브지?
만섭
강민입니다.
형국
2세트는 우리가 가져간다. 파이팅!
만섭, 미래
파이팅!!
‘삑!’
강민의 강력한 서브!
형국이 공 받아내고 앞으로 맹렬히 달려간다. 미래의 헤딩 토스.
공을 향해 기를 모으는 형국.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곤 내뱉으며,
형국
뻥!!!!
긴장하는 토목팀.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커다란 제스처와는 달리, 공은 형국의 발에 힘없이 맞고, 상대편 네트 앞으로
톡 떨어진다. 벙 찐 토목팀.
심판
...2세트 식품영양학과 승!
학생들의 환호.
활짝 웃는 안나와 머리에 붕대를 한 창호.
고개를 젓는 강민과 토목과.
아나운서1
네! 이렇게 해서 경기는 3세트로 넘어갑니다. 역시 노련미가
돋보이는 플레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66. 스탠드 / 낮
스탠드에 앉아 있는 만섭팀.
- 88 -
만섭
형 고마워요. 시험은...
형국이 고개를 돌려 미래를 바라본다.
형국
미래.
미래
네.
형국
공은 다시 너에게 집중 될 거다. 우리의 승리는 너의 이마에
달려있다. 네가 지금까지 살찌운 이유에 대해 증명해봐.
미래가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창호가 미래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이마를 미래의 이마에 댄다.
창호
누나. 저 그날 밤 취하지 않았어요 사실.
창호가 미래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창호
사랑해요.
그리고 창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와 미래의 입에 키스를 한다.
경악하는 학생들. 고개를 돌리는 심판.
입을 쩍 벌리는 고운.
미소 짓는 미래.
미소 짓는 창호.
형국
만섭이. 다리는 괜찮아?
만섭
아....네... 괜찮아요.
형국이 만섭의 오른쪽 신발을 벗긴다.
양말은 피로 물들고 복사뼈는 시퍼렇게 멍들었다.
- 89 -
인상을 찌푸리는 형국.
형국이 가방에서 전투화를 꺼내 만섭에게 던져주고.
만섭이 이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형국 역시 미소를 짓고.
형국
한번 해 보자.
67. 운동장 / 낮
호루라기를 삑! 부는 심판.
심판
3세트 시작!
빛나는 전투화. 공을 튀기는 만섭.
강력한 서브. 이를 받아 넘기는 강민.
공은 미래를 향하고 이를 이마로 받는 미래.
형국의 토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빛나는 전투화.
땀을 흘리며 공을 받아내는 강민의 얼굴. 태철, 팀원.
시뻘겋게 부어올랐지만, 열심히 이마로 공을 받아내는 미래.
공에 집중하고 있는 형국의 표정.
공이 선을 벗어나자 안타까워하는 관중들.
창호의 모습. 안나의 모습.
이런 표정을 보고 즐거운 미소를 짓는 만섭.
얍실하게 공격을 성공시키고 웃통을 까는 형국.
등에는 고운(하트)가 쓰여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
셋이서 같이 걸어갔던 기숙사길
만섭과 안나가 함께 앉아 있던 벤치
‘족구장건립서명운동’의 푯말이 달려있는 부스.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는 학생식당.
‘D-1' 라 적혀있는 형국의 책상.
그 옆 만섭의 책상 안나의 포스터.
강민의 얼굴위에 만섭의 사진을 오려붙여져 있다.
양쪽의 점수판이 쉴새 없이 올라간다.
더불어 창호의 손가락도 쉴새 없이 펴진다.
- 90 -
숨을 몰아쉬고 있는 만섭. 만섭은 이미 땀이 범벅이다.
만섭
포기 안 해요.
형국이 미래를 바라본다. 미래의 이마는 피가 터질 듯 부어있고.
미래
저두요...
형국역시 숨을 헐떡대며,
형국
담배...씨발...끊어...야지...
형국이 점수판을 바라본다.
9:9
강 민
한 점입니다. 2세트처럼 넋 놓고 있다가 당해요. 정신 똑 바
로 차리고 공에 집중하세요.
강민을 바라보는 태철. 팀원.
태철
근데 이거 우승해서 뭐하냐?
팀원
소개팅 좀 들어오겠죠.
태철
....그래...
강민이 먼저 손을 내민다. 태철도 손을 포개고 팀원도 손을 포갠다.
강민 태철 팀원
파이팅!
환호하는 관중. 이를 바라보는 안나도 환호하고, 이를 바라보는 창호.
- 91 -
창호
파이팅!!!
강민의 강력한 서브. 네트를 넘어오는 공.
아나운서1
강력한 서브입니다. 받아낼 수 있을지!
코트에 공이 맞고 튀어 오르자, 몸을 날리는 미래.
코트에 쓰러지면서 이를 받아내는 미래.
공이 코트 밖으로 벗어나 날아간다.
헉헉거리며 공을 향해 뛰어가는 형국. 넘어지면서 공을 걷어낸다.
코트로 하늘 높이 날아오는 공.
코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만섭. 공을 보지 않고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만섭.
안나를 쳐다보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
만섭이 땅을 짚고 발리킥을 날린다.
공은 태철을 향하고, 태철 역시 몸을 날려 공을 받아낸다.
토목과의 토스. 강민 역시 사력을 다해 킥을 날린다.
다시 공이 바닥에 튀고, 미래를 향해 날아간다.
미래
사랑해!
퍽! 공이 미래의 머리에 맞고, 미래가 다시 코트에 쓰러진다.
고꾸라지는 미래.
공은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고,
형국이 공을 향해 뛰어간다.
형국이 공을 쫓아 가다가 미래에 걸려 넘어진다.
안타까워하는 창호, 안나, 관중들.
그 때 관중들 얼굴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
놀라는 관중들의 표정.
공중에 만섭이가 떠 있다.
태양을 가리는 만섭. 개기일식이 일어 난다.
퍽!
멋진 만섭의 킥.
공은 네트를 향해 날아가고
미래를 지난다.
형국을 지난다.
- 92 -
창호를 지난다.
고운을 지난다.
안나를 지난다.
총장을 지난다.
모두들의 얼굴 앞을 지난다.
푸른 하늘을 가른다.
공이 네트를 맞고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강민의 코트로, 만섭의 코트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정적.
공은 성용의 코트로 떨어진다.
10:9
‘삑!’
심판
10:9 식품영양학과 승!
아나운서1
아!!!!!!식품영양학과 우승!
모두가 할 것 없이 환호를 보낸다.
코트로 뛰어 가는 창호. 그 뒤를 열심히 뒤뚱뒤뚱 따라가는 고운.
허무한 표정의 강민의 팀.
모두가 주저앉는다.
환호하는 창호. 미래에 포개져 있다 일어나 환호하는 형국. 소리를 지르는 만섭.
창호는 누워있는 미래를 뒤집어 다시 키스를 한다.
형국이 고운 앞에 서자, 고운은 식 웃으며, 교정기를 빼고.
형국과 고운이 키스를 나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만섭.
만섭이 고개를 돌리면,
주저 앉아있는 강민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안나가 보이고,
강민은 안나의 손을 잡고 일어나 강력한 키스를 퍼붓는다.
만섭이 코트 가운데 족구공위에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본다.
너무나 파란 하늘.
공을 하늘 높이 뻥 찬다.
화면이 페이드 아웃되고
시커먼 화면에 크레딧이 올라간다.
- 93 -
68. 영어강의실 /낮
영어 강의실의 스크린에 나오고 있는 백투더퓨처의 크레딧.
그것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영어 강사.
비디오 데크에서 백투더퓨처 테잎을 꺼낸다.
69. 캠퍼스 / 낮
어느새 여름이 된 교정의 풍경.
아나운서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사랑을 하리
머리엔 장미를 꽂고
가슴엔 방울을 달아
잘랑잘랑 울리는 소리
너른 들로 가리라
잡초 파아란 들녘을
날개 저어 달리면
바람에 떨리는 방울 소리
방울 소리 커져서
마을을 울리고
산을 울리고
하늘을 울리고
빠알간 얼굴로 돌아누워도
잘랑잘랑잘랑
잘랑잘랑잘랑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머리엔 장미를 꽂고
가슴엔 방울을 달고
사랑을 하리
사랑을 하리.
윤경준 시인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 이었습니다.
눈부시게 싱그러운 여학생들.
이를 보고 활짝 웃는 남학생들.
뛰어가는 여학생.
- 94 -
쫓아가는 남학생.
자전거를 타고 오는 여학생에 부딪히는 남학생.
여학생의 책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를 줍다 손을 맞잡은 남학생과 여학생.
이글거리는 눈빛.
이를 흘겨보는 여학생.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 뛰어가는 여학생.
이를 보다 키스하는 남학생. 여학생.
아나운서
2013년 6월 15일 홍익의 아침, 안녕 하세요. 홍익대학교 방
송국 HBN 아나운서 이장원입니다. 학우 여러분, 기말고사
는 잘 보셨나요? 어느새 봄이 끝나고 한학기가 끝나가고 뜨
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70. 교내 보건소 / 낮
혈압을 재고 있는 미래.
이마의 점이 지워져 있다.
표정이 편안하다.
의사
체중이 딱히 빠진거 같진... 않은데, 근데 몸이 가볍다구?
미래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면,
옆에는 창호가 몽쉘통통을 한가득 입안에 물고 있다. 씩 웃는 창호.
71. 자판기 앞 / 낮
아직도 깨끗한 자판기.
고운이 다가와 우유를 누른다.
한잔을 뽑고, 또 한잔을 뽑는 고운.
두 잔을 손에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72. 총장실 / 낮
‘족구장건립서명운동명단’ 이 옆에 놓여있고, 펼치면, 수많은 학생들의 사인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족구장건립허가서’라는 서류가 있다.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는 총장.
총장 책상 앞에는 안나와 강민이 서 있다.
둘을 보고는 씩 웃는 총장.
서류에 시원하게 사인을 한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73. 해변도로 / 낮
아우디 엠블럼이 번쩍인다. 강민의 자동차.
- 95 -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만섭의 모습.
만섭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만섭이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옆을 보면,
그 옆 좌석에는 ‘홍만섭’ 이라 쓰인 족구공이 덜렁 놓여있다.
음악이 점점 고조 되면,
파란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도로에 만섭의 아우디가 신나게 달린다.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더욱 밟는 만섭.
아우디가 산 능선 너머로 없어지자, 눈부신 빛이 번쩍 화면을 덮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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