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4회
풍문으로 들었소 4.
정호 집 식당(3부 연결)
-굳세게 손잡은 봄과 인상이 목 메이고 있을 때,
-정호와 연희, 엄박사를 본다. 실낱같은 희망.
-혜옥, 눈치 빠르게 돌아서고,
엄박사 (끄덕. 인정하시라는)
연희 (눈물이 후두둑)
정호 (체념과 동시에 결의)잠깐 저 쪽으로 모시죠.
-태우가 엄박사에게 가시자, 손짓.
정호 기다려라.
인상 네.
-정호와 연희, 나간다.
-인상과 봄, 불안하게 본다.
이지 박사님은 왜 오셨,
선숙 (입에 손가락)
정순 애기엄마 편하게 좀 앉아야지,
인상 네,
선숙 그래요, 안채에 가 있어.
-인상, 봄의 어깨 안고 나간다.
인상 미안해.
봄 (괜찮아)
-다들 둘 본다.
정순 당신이 잘못했다구 나섰어야지.
박집사 그럴 틈이 있었어?
이지 친자확인 검사 같은 거 했어?
선숙 (슷)
정순 차 내 가야할까?
선숙 곧 끝나지 않겠어요?
박집사 저 방이 아니라 애기 엄마한테 하실 말씀이 중요한 거 같은데.
소거실.
-봄, 아픈 허리에 손을 얹고 엉거주춤 소파에 앉는다. 인상, 봄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준다.
봄 야, 우리 들키길 잘한 거야?
이지 소리 일단은.
-봄과 인상 돌아본다. 이지가 뒤쪽 창에서 빼꼼.
이지 나한테두 말 좀 해주지. 도와줄 수 있었는데.
인상 너 안가?!
응접실.
정호 (검사결과 표를 본다. 굳은 표정)
엄박사 예상 하셨겠지만, 정확히 일치 합니다. 인상씨 태어났을 때 보관한 제대혈 과, 차박사가 채취한 신생아 체액,
연희 (멍한 채)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어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여기에 희망이라도 걸어보자는 거였지.
정호 (표를 엎어놓고 선다)수고하셨습니다.
엄박사 (선다)제가 뭐 또 도울 일이 있을까요?
정호 (나직)이거(결과표), 파기해주세요. 저희는 이 검사 자체를 의뢰한 적이 없습니다.
엄박사 알겠습니다.
정호 (연희에게)어른답게 처신합시다.
연희 (선다. 새삼 하늘이 무너져)알았어요.
현관.
-태우가 엄박사 배웅하고,
거실.
-정호, 연희, 안채 어귀에서 망연히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계단 올라간다.
정호 플랜 B.
연희 (마음을 다잡는다)
-선숙과 이지가 식당에서 내다본다.
소거실.
-정호, 연희와 인상, 봄.
-정호와 연희는 부창부수 너그럽게 훈육하는 어른다운 태도를 보이고, 인상과 봄은 불안하게 듣는다.
정호 당연히 모자 건강상태 여쭤 봐야지, 엄박사님이 우리 집안 주치의신데.
연희 요즘은 혈액 검사만으로 많은 걸 알 수 있거든. 뭐든 문제가 있으면 일찍 알아내서 해결해야 하잖니. 다행히 모자 다 좋다신다. 고마운 일이지.
인상, 봄 (네...)
정호 우리가 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직 너희 둘의 건강, 그리구 장차 다가올 미래다.
연희 그러엄.
정호 내가 좀 엄하다 싶게 처분을 내린 것도 그래서야. 보고 싶은 그 마음이야 왜 모르겠어. 우리두 다 겪은 일인데...다만 장래를 위해서 절제하길 바랐던 거야.
연희 앞길이 구만리잖니. 투자한다, 저금한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인상 저, 저희두 장래,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봄이는 지금 몸두 마음두, 인생에서 젤 힘들 때라서요, 제가 봄이한테 꼭 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남자로서, 애 아빠로서,
정호,연희 (참고 웃어준다)
인상 엄마는 잘 아시지 않나요?
연희 왜 모르겠어. (봄에게)이렇게 앉아 있는 것두 버거울 거야. 그치?
봄 (그런 얼굴 무서운데)
정호 산후 회복 잘 해야 한다. 우린 무조건 배려하고 존중하고 지원할 거야. 너희 어른들께도 이런 뜻을 전해야겠지. 최대한 빨리 만나뵙고,
봄 (네?!)
인상 정말요?
봄 저희 부모님을,
정호 (끄덕)
연희 댁으로 가뵙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인상 (벌떡 일어서서 굽신)고맙습니다!
봄 (선다)너, 너, 빨리 공부하러 가!
인상 어, 애기 잠깐 보구, (봄의 손 잡아 끈다)같이,
봄 어,
-둘, 급히 나가면서 정호와 연희 돌아보며
인상 인제부턴 진짜 말씀 잘 들을게요,
봄 저두요! 저 애기 젖 먹여두 되죠?!
연희 (얼결에 선다)어,
-둘, 나가고 정호도 일어선다.
연희 (작게 탄식)애들은 애들이야.
정호 그래서 우리가 더 냉정해야 한다는 거 아냐.
연희 (끄덕)
애기방.
봄 (침대의 아기를 안아든다)허락 하셨어요.
혜옥 (노련하게 거든다)잘됐네요,
인상 조심,
봄 괜찮아, 나 잘 해.
혜옥 애기 아빠시구나,
인상 네,
혜옥 이쪽으로, (앉을자리 챙겨주는)
봄 고맙습니다,(앉아서 가슴 헤치며, 마음 급하다)엄마한테 전화 좀 해줘, 청소 좀 하시게. 우리집 엄청 지저분해.
혜옥 (봄의 가슴에 거즈 수건을 대준다)
인상 어, (나가려다 혜옥에게)저기, 전화기 좀,
혜옥 (눈으로 가리킨다)저 쪽에,
형식 주방/거실.
진애 (통화)어,어,어디, 집으로?!!!
-거실에서 자던, 형식이 눈 뜨며 고개 든다. (간밤에 늦도록 마시다가 거실에서 잠들었다)
형식 (잔뜩 찌푸린)누구, 봄이야?
진애 (조용히 해, 손짓하면서)며, 며, 몇 시에, 아니 그건 상관 없구, 봄이는! 애기는!
아기 방.
-봄이 반쯤 돌아앉아 젖을 먹이고, 인상, 들뜬 마음 억누르며 통화 중.
인상 다 좋아요...네...네...지금 애기 밥, 아니, (봄을 얼핏 보고는)네, 봄이가 직접,
-이지가 들어온다.
혜옥 문은 살살. 아기방인데.
이지 네...(조심스레 봄에게 다가가고)
인상 네, 잠깐만요,(봄에게 전화기 대준다)
봄 응, 엄마...좀 먹는데, 아퍼...어...집으루 가신대서 놀랐지?...
이지 신기하다,(만지려)
인상 (전화기 봄에게 대준 채 한손으로 이지 손 걷어내는)아, 진짜,
-혜옥, 바구니에 빨랫감 담으며 힐끗.
형식 거실/주방. 아침.
-형식과 진애, 지저분한 물건들 이 구석 저구석 집어넣느라 법석.
형식 아니 왜 집으루 온다는 거야. 밖에서 만나던가, 자기네 집으로 오라던가 그럴 일이지.
진애 오겠다구 한 것만두 감지덕지네.
형식 또,또...감지덕지라니, 그 놈에 을 마인드 좀 버리라는데!
진애 아유 이건 그냥 다 방에다 집어넣어야겠네.
-누리, 블라우스 단추 채우며 내다본다.
누리 몇 시에 온대?
진애 다시 전화 한대.
형식 (냉장고 틈새에서 박스 접힌 것들 꺼낸다)이런 건 제때제때 좀 버려.
진애 보일러실에 갖다 놔.
-철식이 올라온다.
철식 어으 배고파.
형식 너 화장실 청소 좀 해라.
철식 (둘러본다)왜 이래요, 아침부터?
-누리가 외투와 핸드백 들고 나온다.
누리 작은 아빠 안녕.
철식 어, 가냐?
누리 어. (내려간다)갖다 올게.
진애 잘 해.
철식 이쁘다 야, 그만하면 뽑히겠는데,
-현관, 누리 구두 신는다.
누리 내가 있어야 하는건데...상견례 잘 하세요.
진애 끝나구 바루 와.
누리 어.(나간다)
철식 상견례요?
진애 그런 건 아니구, 인상이네서,
철식 이리로요?
형식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가봐.
철식 매너 없네. 지들이 사는 걸 먼저 보여 줄 것이지.
진애 말들 참!
한송 비서실.
-주영과 양비서가 바쁘게 서류들 챙긴다.
-정호와 태우가 출입구 들어와 정호방으로 가는 것 보인다.
주영 제가 먼저 보고 할게요.
양비서 어, 난 유변한테 자문 좀 구한 다음에.
한송. 정호방.
-정호, 보고서 보면서 중얼. (자세히 보일 필요 없지만 ‘XX 케미칼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등의 노동 쟁의 및 ‘조세 정의를 위한 시민 연대’ 등의 시민단체 이름이 적혀 있음직)
정호 무척 바쁜 사람들이네. 생업은 대체 언제 챙기나. (넘긴다. 미간 좁힌다. 이건 또 뭐야)
주영 네, 모두 네 건의 집단 소송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요.
정호 참...(딱한 사람들이군. 또 넘긴다)
유신영 방.
-서류철 든 양비서가 유신영 앞에 테이크 아웃 명차를 놓고 뚜껑 열어준다.
양비서 이거 드시면서,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희 조카가 사고를 냈어요.
유신영 저런,
양비서 (서류철 열고 서류 넘긴다)소송전 합의로 정리하셨던 영진 그룹 자제분 케이스를 찾아 보니까 여자 쪽 부모와 열 세 차례 면담을 하셨던데, 지금 시간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 과정을 단축해야 합니다.
유신영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의미와 비용을 부여하세요. 대표님한테 배운 기술이죠. 심금을 울리면서 겁주기.
양비서 (웃음)
유신영 근데, 조카한테 잘 생각하라구 하세요. 제 케이스 원고는 얼마 전에, 애 다시 찾구 싶다면서 합의 무효소송 상담하구 갔어요.
양비서 아아,
정호 방.
양비서 혹시 훗날 아이를 되찾거나 생모와 결혼을 하겠다, 이런 변수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까요?
정호 그럴 일은 결코 없죠. (각서 초안 보면서)산출 근거를 세분한 건 아주 잘 한 거 같네요.
양비서 유신영 변호사가 맡았던 영진 그룹 케이스를 참고 했습니다.
정호 (볼펜 집어 위자료에 ‘0’을 써넣으며)빨리 끝냅시다.
정호 집 거실. 낮.
-연희와 선숙이 현관 향하고 박집사와 정순이 배웅하려는데,
봄 어, 어머님.
연희 (흠칫 돌아본다)
-정순 들도 내심 놀라고,
-계단 내려선 봄, 연희에게 다가간다.
연희 (어머님이라니, 당황)
정순 (연희 눈치보다가 얼른 끼어든다)왜, 무슨 드릴 말씀이라도,
봄 네, 저희 집 가시기 전에 몇 가지 말씀드릴려구요.
연희 (억지 미소)무슨,
봄 저희 화장실이, 평소에는 괜찮은데 가끔 뭐 터지는 소리가 나거든요. 혹시 사용하시다가 놀라실까봐요.
연희 (어이없지만 참고, 온화한 미소)그렇구나.
봄 그리구, 계단 천장이 좀 낮아요. 아버님은 키가 크시니까 부딪치실지도 몰라요.
연희 그, 그렇구나, 조심할게.
정순 (조마조마, 봄에게)염려 말고 이만 올라가 쉬어요.
봄 네, 애기 좀 보구요. 그럼, 다녀 오세요.
연희 그래요,
-봄, 새삼 목례하고 돌아서서 안채로....
-연희, 미워 죽겠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열을 식히려 이마를 짚는 등 어쩔 줄을 모른다.
-연희, 가쁜 숨 고른다. 선숙, 서둘러 연희 구두 가지런히 놓아주고,
-연희, 신으려다가 결국 정순 부부에게 나직히 화풀이.
연희 (박집사와 정순에게)애들 환심 사려구 들지 말아요. 어젯밤 일만 해도 그래. 어떻게 감히 그럴 생각을 해요?! 우릴 속이구?! 분수를 지키세요. 그 나이에 일자리 옮기구 싶지 않으면.
박, 정순 (무참)
연희 이비서는 뭐하는 사람이야. 일하는 사람들 제대로 관리해야지.
선숙 네...
정호 집 인상 방.
-봄, 인상이 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새 문서. 빈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봄.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좀 떨린다.
-이윽고 가볍게 움직이는 손가락.
-빠르게 찍히는 글자들.
봄 소리 인상아, 갑자기 밝은 빛이 막 쏟아지는 거 같애.
아기 방.
-혜옥이 아기를 돌보고,
봄 소리 젖을 직접 먹이고나니까 다 좋게만 느껴져. 유능한 보모님 덕분에 맘놓구 쉴 수 있어서 좋고. 너희 부모님을 의심했던 게 막 죄송해.
인상 아파트 공부방.
-인강 준비 하면서 봄의 메일 읽는 인상.
봄 소리 청소년 미혼모로 배불뚝이가 되면서 자격지심이 생겼었나봐. 인제 꼬인 마음이 풀어지겠지?
인상 (히죽 웃음)
경태 (책을 펴서 놓아주다가)장밋빛 미래가 막 떠올라? 너의 미래는 여기, 김원홍 민법총론에 있다. 집중해.
인상 역시 인간이 사랑을 해야 성숙하는 것 같아요.
경태 나 그냥 웃을게.
한송 건물 앞.
-차고에서 나오는 의전차량 한 대.
양비서 소리 인상씨 아버님 비서되는 사람입니다. 지금 출발합니다. 출발지는 광화문이고요...
형식 거실.
-진애, 방석의 주름 지우듯 싹싹 쓰다듬고, 형식과 철식, 갸웃.
형식 이거 참, 갑자기 주눅 드네. 비서라니,
철식 어디 무슨, 기업하는 사람인가?
형식 비서까지 대동하고 온다는 건데,
진애 얼른 내려가 봐. 광화문이면 10분도 안걸려.
형식 (시각 확인)어, (나간다)과일이랑 다 준비해놨지?
진애 어,
철식 나는 들어가 있을게요.
형식 가게 앞.
-형식이 철대문에서 나오고,
-한송 차가 다가와 서고,
-형식, 멈칫. 이 차란 말야?
-기사가 급히 내리고 형식, 기사에게 엉거주춤 목례하고, 기사가 차 문을 열면,
-양비서 내린다. 핸드백과 서류 봉투를 든.
형식 아, 저, 인상이,
양비서 네, 인상씨 부모님께서 보내셔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정중히 인사)
형식 네? 그럼 그 양반들은 안,
양비서 실례지만 들어가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형식 네, 그건 그런데,
양비서 동네가 무척 정겹구 좋습니다.
형식 아,저 이쪽으로 오시죠,
-형식, 황황히 철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젖혀준다. 양비서, 목례하고 들어선다.
-대문 안 통로, 형식, 앞장 서서 현관 향하며 뭔지모를 불안.
형식 집 거실.
-양비서, 진애에게 정중히 인사.
-탁자 위에 차와 과일이 차려져 있다.
양비서 양비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진애 (벙한 채)네...(형식을 본다. 어떻게 된 거야?)
형식 (쩝)앉으시죠.
양비서 감사합니다. (앉는다)
-진애와 형식도 앉는다.
안방.
-철식, 문간에 앉아 갸웃.
거실.
진애 (애써 웃음)저희는 당연히 인상이 부모님 뵙는 걸로 알았는데,
양비서 그러셨을 겁니다.
진애 저희 애가 그댁에서 출산을 한 건 아시죠?
양비서 그럼요. 따님을 아주 잘 키우셨다고, 인상씨 아버님께서 칭찬이 대단하십니다.
형식 애가 뭐 줏대가 있긴 하지만 칭찬까지야,
양비서 그 용기가 놀랍다고 말이죠.
진애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인상일 다시 만나게 돼서 천만다행이지만,
양비서 (정색)실은, 이런 말씀 직접 드리기가 심히 외람되다 하시면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형식 무슨 말씀이길래,
진애 (불안하게 본다)
양비서 두 분이 현명하신 결정을 내려 주십사 부탁 말씀 먼저 올리고, 따님의 장래를 깊이 고민하신 끝에 내리신 결론을, 이렇게 전해드립니다.(봉투에서 서류를 꺼낸다)
형식, 진애 (그게 뭐야?)
양비서 (각서와 별첨 자료를 각각 두 사람 앞에 반듯하게 놓는다)찬찬히 읽어주십시오.
-형식과 진애, 황황히 두 개의 서류를 번갈아 본다.
-각서, 갑, 한정호, 을, 서형식...
진애 가, 각서라뇨.
양비서 별도 첨부 사항을 확인해 주십시오.
형식 (눈 커진다)
-별첨. ‘갑’은 합의를 위해 ‘을’에게 다음과 같은 금액을 지급한다...
-가. 위자료. 일금 일십억원(1.000,000,000)
-나. 양육비. 일금 오억원.(500,000,000)
-형식과 진애, 머릿속에 일대 혼란이 벌어지는데,
양비서 (찻잔 손에 받쳐든) 당사자간 결혼은 난망이고, 따라서 이 제안이
최선의 배려라는 뜻입니다. 이 댁 형편 충분히 감안했습니다.
안방.
철식 (엉?!)...
거실.
형식 (턱이 달달)무,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진애 이거, 애들, 아,아니 두 당사자가 알고 있어요? 저희 애도 알아요?
양비서 아직 미성년 아닙니까. 어른들이 알아듣게 전하셔야죠.
진애 뭐,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인상이 아버님이라는 분은?
양비서 그것까지는 아실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애 (글썽)이런 일을 종종 하시나봐요.
양비서 그렇습니다.
진애 (형식을 본다)여보, 나,나는 너무 이상해,
형식 (거의 신음)가, 가만 있어봐,
양비서 (차 한모금)
진애 (세상에,이게 무슨)
영라 거실.
영라 (통화 중)말두 꺼내지 마라 얘, 그 여자 통하면 모를 일이 없겠지만, 완전 심복, 대를 이은 충신이잖아. 한정호가 부모한테 물려받은 유산 중에 젤 고마운 게 양재화라 그러잖아.
-현수(외출복 차림)가 핸드폰 보면서 들어온다.
영라 어 잠깐만, (전화기 막고)나가니?
현수 엄마, 인상이네 누구 애 낳은 사람있어?
영라 (응?!...얼른 통화)어, 소정아, 좀 이따 다시 할게. 현수 나가기 전에 잠깐 할 얘기 있어서...응. (끊고 다시 현수 전화기 들여다본다)
현수 (사진들 넘겨 보이면서)이지가 이런 걸 계속 올리구 있어...
영라 (뭐지?...)
현수 첨엔 걔네 화실 정쌤네 앤 줄 알았는데 아니라거든?
영라 (!!!)아닌 거 맞네...배경이 걔네 집인 걸?
현수 엄마두 들은 얘기가 전혀 없나봐?
영라 어, 더 넘겨봐...
재원 스위트.
-재원은 탁자 위에 세워놓은 태블릿 두 개를 들여다보며 인터넷 해외옥션(피규어)에 여념이 없고, 소정은 영라가 보낸 아기 사진들 본다. 영라가 얘기하면서 미니 바 안쪽에서 마실 것 들고 나와 소파로.
영라 연희가 이성을 잃었다, 거기부터 시작이야. 그런 담에 뭔가 집안에 묘한 소음이 있었구, 수치심을 모르는 젊은 여자애를 꾸짖었구, 어제 모임에 안나타났구, 연락 안받구, 애기 사진에...한 두 가지만 더 있으면 완벽한데. 너네 오빠 행보두 수상하지 않니?
소정 어, 올케 말이 새벽같이 가더래.
재원 (두 손으로 자판 치면서)한정호가 또 그런 타잎은 아니잖아. 와인 마시면서 담소하는 걸 즐긴다며, 자칭.
영라 (재원에게)그만 하구 퍼즐 조각 좀 맞춰봐.
재원 (화면 터치, 결제창 뜬다)기다려. 이거 진짜 레어템이야...근데 연희 걔두 남편이랑 담소만 하나?
영라 어우 느끼해.
소정 너두 한 때 한정호 담소 상대자였잖아.
영라 나랑 놀 때는 제법 귀여웠어. 20대 때는 좀 서툴러두 용서가 되지.
재원 오케이, 끝. (비로소 둘을 본다)연희가 한정호 혼외자를 받았다고?
소정 아직은 추정.
영라 넌 늘 주어가 연희더라?
재원 당연하지 야, 한정호가 연희 남편이 아니면 내가 무슨 관심이 있겠냐.
소정 넌 연희 땜에 우리 앞에서 입 다물어준 것두 꽤 많지?
재원 떠벌이면 뭐하겠어. 그런다구 연희가 이혼을 할 것도 아니고. 괜히 나만 실없어 보이지.
영라 이번에는 좀 어렵겠다. 담소 차원이 아니라서.
소정 한정호 가장 최근 상대가 누구야?
재원 몰라...
영라 후보자는?
-현관 벨 소리.
영라 누구 와?
재원 문 좀 열어줄래? 나 관절이 도져서,
소정 (선다)누군데?
재원 거 참, 밥 시켰다.
-소정, 나가고,
영라 나한테만, 응?
재원 (소파 뒤에 세워진 기타를 집어든다)아 몰라, 화류계 소문 지겨워.
영라 어우 야아....나만 알구 있으께, 응?
재원 (둥당거리다가)연희가 지 입으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안됐잖아. 대한민국 최고의 귀부인이 말야, 이혼도 못하고,
-중간문이 열리면서 연희와 소정이 들어온다.
영라 어머, 얘,
재원 (기타 멈춘다)야,
연희 (활달하고 상냥하게 유머를 구사하려는)뭐야...소정이 얘가 나 막 위로할려그래...나 뭐 불쌍한 거 있니? 불우이웃이야?
소정 그런 뜻이 아니라 안색이 안좋길래,
영라 그래 너 어디 아팠다며.
재원 앉어. 한 곡 뜯어 주께.
연희 (앉는다. 심상찮다)
소정 (연희의 소파 등받이 짚고 뒤에서 다정히 묻는다)뭐 마실래?
연희 어, 아무거나.
영라 연희야, 우리 좀 서운하다. 소문이든 사실이든 그런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젤 먼저 털어놔야지.
연희 뭘...
-소정은 미니바의 냉장고에서 주스병 꺼내며 힐끗, 재원은 기타줄 조이는 척.
영라 우리가 아무리 30대로 보인다는 소리 들어봤자, 낼 모레면 오십 줄이야. 솔직히 그거 서글퍼서 굳이 더 이렇게 애들처럼 몰려다니며 서로 위로 하는 건데, 너 혼자 끙끙 앓구 있어봐.
-소정, 연희 앞에 잔 놓아주고 앉는다.
영라 서운한 건 둘째구 가슴이 아프지.
연희 (정말 모르겠다는 듯 웃음)왜 이래...
식당 밀실.
-정호와 백대헌.
정호 그런 건 무대응이 상책이죠.
백 그렇지가 않아. 다들 한 대표가 어려워서 말을 못할 뿐이지.
정호 (웃음)제가 뭐 그리 어려운 사람이라구요.
백 그 중심에 자네가 있다고....그 탐사특집 말이야, 타이틀은 한송을 해부한다 쯤으로 나가겠지. 아마, 후임 총리 인준 절차 앞두구 터뜨릴걸?
정호 지켜보고 있습니다.
백 (술을 따라주는)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나.
정호 (받는)어유, 그럴리가요...
형식 집 거실.
-형식, 진애, 철식의 스마트폰과 각서를 번갈아 보면서 겁에 질린 듯.
-검색어 ‘한정호’
형식 맞아, 68년생,
철식 이 사람이 이 사람이란 말야?
철식 믿을 수가 없네, 한송이라니,
형식 집두 그 집 맞는 거 같은데,
진애 응?
철식 그럼 그때 이미 따돌렸다는 거요?
진애 설마,
형식 상상이 안돼. 야 우리가 어떻게,
-사진은 없고 상체 형태만 나와 있다. 한송 법률사무소 대표.
-1968년생.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졸업. 1988년 사법시험 합격. 1991년 사법연수원 수료. 1994년 하버드 로스쿨 수료. 하버드 대학 JD...
정호집 소거실. 밤.
선숙 장회장댁 사모님께서요.
-탁자 위, 꽃으로 장식된 아기용품 바구니.
-연희, 카드를 읽고 있다. 부들거리는 손.
-‘축, 득남! 친구 영라가’
-카드 팽개치며 일어서는 연희.
연희 돌려보내요. 잘못 보냈다고, (침실로)
선숙 알겠습니다.(전화기 든다)
침실.
-연희, 들어온다. 지영라, 저 사악한 기집애를 내가!
영라 방.
영라 (통화. 이 기분 너무 좋아)이비서, 이럴 때 옆에서 진심으로 충언을 해야죠...세상에 비밀이 어딨겠어요.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두 새 생명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잖아요...늦둥이 얻었다 생각하구 잘 키우면 그 덕이 다 저한테 돌아갈텐데...
소거실.
-정호가 들어온다. 선숙, 통화 하면서 목례. 정호, 침실로 가려다 바구니 본다. 리본에 ‘지영라’
선숙 네, 말씀하신 그대로 전하긴 하겠습니다만,
정호 서재.
-정호가 들어와 자켓 벗고 연희가 왈왈.
연희 (바깥 쪽 가리키는)저거 봤어? 점점 사실이 되구 있어요.
정호 소문 따위 뭘 신경 쓰나.
연희 어떻게 안써? 당신 고상한 취향 덕분에 친구들이 날 얼마나 불쌍하게 보는데. 시치미 떼구 웃느라 입이 다 아퍼.
정호 빈정대나?! 나는 어떻겠어! 손자를 손자라 말하지 못하고, 엉?!
연희 벌 좀 받아요.
정호 (저잇)
정호집 인상 방.
-정순이 국과 밥을 들고 들어온다.뒤따라 이지. 포크가 꽂힌 야식 그릇을 들고.
정순 밤참이예요...
이지 나 들어가두 돼?
봄 (미소)어...(정순에게)어른들 들어오셨어요?
정순 (눈 마주치지 못하고 탁자에 쟁반 놓는다)
이지 (먹으며)어, 왜?
봄 우리 집 잘 다녀오셨는지, 내가 내려가서 여쭤봐두 될까?
정순 (밥뚜껑 열어놓으며 힐끗)
봄 아주머니 저희 편 아니세요?
정순 월급 주는 사람 편이지.
이지 내가 말해주께. 아침이랑 분위기가 완전 달라.
봄 응?
침실.
-까운 차림 정호와 연희. 다소 가라앉은.
연희 저 애는 우리가 허락해준 걸로 알아요. 우리더러 아버님 어머님이래. 보는 앞에서 안채로 당당히 들어가.
정호 곧 싸인하고 데려 갈거야. 저쪽은 거부할 수가 없어. 재정 파탄에 소송까지,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상황이야. 참 고맙지. 없는 문제도 만들 판인데.
형식 거실/주방. 밤.
-진애, 설거지 하면서 형식, 철식과 설왕설래.
형식 뭘 바라니. 그런 집이 퍽두 사돈 맺자 그러겠다.
진애 그렇다구 어떻게 애들 의사는 묻지두 않을 수가 있어?
철식 미성년이라잖아요.
형식 그 세계는 우리네랑 달라. 둘이 아무리 좋다 그래도 결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안시켜요. 소위 그 혼맥이라는 걸로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액수를 봐. 이만큼 주구두 떼내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거 아냐.
진애 그렇담 더 괘씸하지! 어쩜 그렇게 영혼두 뭐두 없이, 싹싹 웃어가면서 말야,
철식 어찌어찌 한다 쳐도, 잘 산다는 보장이 없죠. 오만가지가 다 안맞구 냉대에 구박에, 결국 울구 나오는 신데렐라들 많잖아요.
-현관. 누리가 들어온다.무표정.
누리 다녀왔습니다.
진애 어, (작게) 그거 좀 치워.
철식 (탁자 위 서류를 봉투에 넣어 쿠션 밑에 넣는다)카메라 테스튼지, 잘 했냐?
형식 (쩝)
-누리, 올라온다. 형식은 잔뜩 굳은 채 말이 없고,
진애 이쁘게 나오든?
누리 상견례 잘했어요?
진애 어어, 뭐. 얘기 좀 해 봐.
누리 그냥 그럭저럭,(방으로)
진애 뭐 좀 먹을래?
누리 아니.
철식 어디 아프냐?
진애 (손을 마른 행주에 닦고 안으로)
누리 방.
누리 (침대에 걸터 앉아 멍하니 눈 앞을 보며 눈물 뚝)
진애 (응?!)
누리 학원 원장이, 내가 없어두 너무 없어보인대...
진애 뭐?!
누리 그래서 안될 거래...사랑 많이 받구, 부모가 잘 관리해준 티가 나야 한다며.
진애 너까지 왜,(억장 무너져 말 잇지 못한다)
누리 (손등으로 눈물 닦다 본다)왜...그 집 사람들 와서 이상한 소리 하구 갔어?
진애 (눈물 닦는)너한텐 말 안할려구 했는데,
형식 거실/주방. 밤.
-형제가 자못 울적한 듯 속내를 드러내는 중.
-옷 갈아입은 누리와 서러운 진애, 주방 식탁에 앉아 묵묵히 듣는다.
형식 우리가 부자나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이 있어...
철식 그건 그래요. 그 사람들 얼마나 부지런한지 몰라. 듣자니까 한정호 그 사람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5대 일간지, 4대 영자지, 3대 경제지, 다 섭렵하구 출근한대요. 분단위 스케줄로 살면서도 좌천된 향판들 다 찾아가 위로하구...솔직히 나 그동안 활동가로 살면서 회의가 많았거든. 우리가 공부를 너무 안하는 거야.
형식 이걸 기분나빠할 게 아니라, 뭔가 전향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철식 이거면 우리 일가족 다 평생 돈 걱정은 안하겠죠...
누리 (울먹)아빠, 그거 받구, 봄이랑 애기 데려오자...
형식, 철식 (막상 들으니 착잡)
누리 봄이한테 잘 말해서, 그냥 우리끼리, 돈 걱정 없이 한번 살아보자...
진애 (눈물 닦고 또 닦는다)
주방. 깊은 밤.
-낮은 불빛.
-애써 수습한 진애, 정순에게 문자. ‘서 봄 엄마입니다’
정호 집 정순 방. 밤.
-정순이 진애의 문자 본다(빨래를 개던 중이었다). 박집사는 책상 앞에 앉아 영수증 따위 챙기고,
정순 아유 이걸 어떡하나.
박 (힐끗)왜.
진애 애기 외할머니가, 따님이랑 통화 좀 했으면 한다는데,
박 적당히 얼버무려.
정순 양비서가 각서 들구 찾아갔었다잖아...지금 속이 제 속이 아닐텐데. 아무리 액수가 커두 그렇지, 부모가 돼가지구 그걸 덥석 좋달 수는 없을 거 아냐...
박 그 사람들 생각해줄 때야? 나 아까 좀 써늘했어. 이 집에 들어온 이래 그런 적이 없었다고.
정순 그건 그런데...뭐라구 핑계를 대나? (전화기 만지작)
형식 주방.
-진애, 답전 기다리는데,
-누리가 핸드폰 들고 급히 나온다.
누리 엄마 봄이 메일 왔어...
진애 응?
-둘, 들여다본다.
봄 소리 너무 늦은 밤이라, 인상이네 부모님께 우리 집 잘 다녀오셨냐구 여쭤볼 수가 없어. 잘 대해 주시지만 아무래두 어렵잖아. 엄마랑 아빠랑, 네 분이서 무슨 말씀 하셨는지 궁금해...
진애 어머, 얘, 뭐래니?
누리 봄이한텐 거짓말 했네...치사하게...
진애 (새삼 울고싶어)아, 진짜 사람들이 뭐 이래.
누리 봄이두 알아야 하지 않어? 꿈 깨라. 현실은 이거다.
진애 그래, 그놈의 현실, 나두 확인 좀 해야겠다.
정호 집 인상 방. 밤.
-봄, 불안하게 앉아있고,
인상 아파트. 밤.
봄 소리 인상아, 아무래두 진짜 허락이 아닌 것만 같애...
-책상 앞의 인상, 턱을 쥐어뜯는 등, 불길한 상상에 빠져...경태가 인상 눈 앞에 손을 흔들자 흠칫 놀라 다시 책.
형식 집. 아침.
-형식과 진애, 외투 걸치며 나온다. 결기 가득.
-울어서 눈 퉁퉁 부은 누리가 나온다.
누리 따로 가시는 거야?
진애 아빠는 한송으로 나는 그 집으로,
누리 작은 아빠랑 같이 가세요. 아빠 흥분하실까봐 걱정돼.
형식 흥분할 때는 해야지. (내려간다) 애들을 속이다니 말이 돼?
진애 넌 웬만하면 쉬어라. 얼굴이 퉁퉁 부어가지구는.
누리 얼음 찜질 좀 하구 알바 가야지 뭐.
진애 (쯧)암튼 갖다 오께.
누리 조심 하세요.
한송 건물 앞.
-형식과 철식, 경비원.
경비원 약속이 돼 있으십니까.
형식 아니요,
경비원 그러시면 먼저 약속을 잡으시구,
철식 (형식에게)어제 그 사람한테 전화해요.
형식 어,
-형식, 전화기 꺼내 멀찍이 통화 기록 검색. 철식이 함께 들여다 본다.
경비원 죄송합니다만 저쪽으로, 출입문 바로 앞이라서요.
형식 아, 네,
경비원 죄송합니다.
-형식, 전화기 보면서 한켠으로 간다. 철식, 출입문 안쪽 살피면서 따라간다.
위압감. 저 조용하고 깔끔하고 정중한 세계.
한송 정호방 앞.
-정호가 신영과 얘기 중이고 저만치 비서실의 양비서가 네, 네 하다가 전화를 끊고 정호 쪽 살피며 다시 통화 하는 것이 보인다.
정호 좋은 소식 하나 말해주지. 백총리 퇴임식 스케줄 잡혔어요.
신영 세상에, 그럼 신임 총리 인사청문회는 그냥 퍼포먼스예요?
정호 (끄덕)답변 자료 맞추느라 고생했어요.
신영 지겨웠죠.
정호 베이비 샤워 선물, 뭐든 말해요.
신영 베테랑 유모.(간다)
정호 (웃어주고 방으로 가려는데)
양비서 대표님,
-통화 마친 양비서가 급히 다가온다.
한송 정호 방.
-양비서와 정호, cctv 보면서,
양비서 외출 중이시라고 했는데도 가질 않습니다.
-화면 속, 형식이 멀뚱히 서 있고 철식이 종이 커피 두 잔 들고 다가오는.
양 경비팀에, 최대한 정중히 대하라고 말은 해놨습니다만,
정호 뭐가 불만인 거죠?
양비서 마음을 다쳤답니다. 대표님께 따질 게 있다고.
정호 괴롭겠죠, 어린 딸의 불장난 댓가를 선뜻 받기가...원망하구 규탄할 상대가 필요한 거 뿐이예요. 돈을 받기 전에 자신한테 면죄부를 주려는.
양비서 김비서 내려보낼까요?
정호 놔두세요. 곧 싸인하겠네.
한송 앞.
-형식, 철식, 커피 마시며 건물 올려다본다.
형식 이 건물 7개 층을 다 쓴대며.
철식 변호사 숫자는 대한민국 1,2,3 등 다 엇비슷한데, 파워가 뭐, 압도적이지.
형식 회장님들이 괜히 설설 기겠냐. 너네 회사 파업 때 여기가 사측 대리인 아니었어?
철식 너네 회사는 무슨, 짤린 게 언젠데.
형식 아, 나 왜 자꾸 쫄리지?
철식 그러게 뭐하러 오재? 전향적으루 생각하자며?
형식 니 형수가 그렇게 분연히 나서는데 가만 있냐 그럼?!
정호 거실. 같은 시각.
-현관과 거실 경계, 마주 선 진애와 외출복 차림의 연희.
-진애 곁에는 정순이 당혹스레 서 있고, 연희 곁에는 선숙.
-진애는 서류 봉투 들고서 배에 힘을 주고 늠름하게 서 있다.
정순 제,제가 이거, 뭔가, 크게 실수를 한 거 같네요.
연희 실수라뇨, 누구시길래,
진애 저는 서 봄 엄만데요, 인상이 어머니세요?
연희 (헉)
-짧은 순간 긴박하게 오가는 시선들.
연희 (정순을 본다. 미쳤어요?!)
정순 (그러게요)
연희 (선숙을 본다. 어떡해?!)
선숙 (모르겠는데요)
진애 인상이 어머니 맞으시죠?
연희 (황황히 웃음)아, 아니요, 저는 인상이 엄마 친구되는, (선숙에게)이만 가요 이비서, (나가려)
진애 (이마 짚는다)아우 어지러.
연희 (멈칫)
정순 (진애 부축하려)아유 어쩌나,
선숙 (역시 얼결에 같이 잡으려다 손 내리고)
진애 괜찮아요, 집이 너무 커서 그래요. 정신 차려볼게요,
연희 (덜덜 떨며 미소)그, 그럼, 주인 기다렸다가 말씀 나누구 가세요, 저는 이만,
진애 왜 피하세요?! (성큼 다가서며 서류 봉투 들어보인다)
연희 (흠칫)
진애 (밀고 들어가듯)나두 돈 좋은 줄 알고, 0이 몇갠지 세면서 이거면 고생 끝이겠다, 빚두 갚구 집두 사구 애들 유학두 보내주구 평생 꽃등심두 사먹구 다 하겠다, 계산을 안한 건 아니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봉투를 연희 얼굴에 던진다)
연희 (피하고)
진애 봄이랑 인상이가 헤어지기 싫다면 어쩔 건데요? 죽어도 못헤어진다 그러면?
연희 (멈칫멈칫 밀리기만 하다가 반격 시도. 애처럽다)그, 그 맘이 언제 변할지 어떻게 알아요,
진애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지!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요?! 왜 돈 가지구 사람 빤쓰벗게 만드냐고!!!
연희 (핸드백 떨구며)무서워,(돌아선다)
-겁에 질려 안채로 내빼는 연희, 선숙이 뒤따라간다. 따라가려는 진애, 정순이 뒤에서 끌어안는다.
-복도 안쪽, 아기 방에서 내다보는 혜옥.
진애 왜 시험에 들게 하냐 말야!!!
정순 애기 깨요, 따님 다 들어요!
진애 들으라 그래, 다 듣구, 울구, 해야지,
-애기 울음 소리.
-진애, 멈칫,
-복도의 혜옥, 얼른 들어가고,
-봄이 다가온다.
-아기 울음 소리 잦아든다.
봄 엄마.
진애 봄아!
정순 얼른 애기 보여 드려,
봄 (진애 손 잡고 아기방으로)
진애 너, 들었어? 다 봤어?
봄 어.
진애 미안하다, 내가 잠깐 돌았어.
봄 잘했어.
침실.
-선숙이 축 늘어져 앉아 있는 연희의 이마를 차가운 물수건으로 눌러준다.
연희 (덜덜)태어나서 저런 여자 처음 봐. 저런 엄마의 딸이라니, 더 싫어.
아기 방.
-오르골 모빌 평화롭게 돌아간다.
-아기 안은 진애. 글썽이며 들여다본다. 머리칼 쓰다듬고, 코끝도 만져보고.
-봄, 말끄러미 본다.
봄 반반 닮은 거 같애.
진애 어...
봄 바란대루 생겨줘서 다행이야.
진애 (훌쩍)챙피해 미치겠다. 외할머니가 돼가지구...
봄 잘했다니까?...나 인상이랑 못헤어져...
진애 (본다)아는데,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래?
봄 (웃어보인다)작전을 다시 짜볼게.
진애 (어이구 이것아...)
봄 근데 저 돈, 얼마야?
진애 알아서 뭐해. 못헤어진다며.
봄 아깝지 않어?
진애 아까워. 반쯤은 진심이야.(쯧)
봄 (알아...)
식당.
-선숙, 정순, 혜옥과 박집사, 각서를 들여다보며 수군수군.
박집사 신회장네 손자 때보다 많네.
혜옥 이거 받구 정리하는 게 낫지...이집 저집 다녀봤지만, 살아두 길게 못 가요.
정순 (서류를 봉투에 집어넣는)본인들 맘에 달려있죠.
선숙 부모가 포기할까요? 이렇게 큰돈을?
한송 부근. 저녁 무렵.
-형식과 철식, 터덜터덜 간다.
철식 존재감 1그람도 없네...저 휴지쪽만두 못해...
형식 (쩝. 그러하구나)
철식 누구든 나와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고정하세요’ 뭐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형식 한잔 하자.
-형제는 그렇게 가고,
-그들 뒤 한송 건물.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서있다.
한송 클럽. 밤.
-테이블 및 좌석에 변호사들 서너 팀. 가벼운 술과 음료 마시며 환담 혹은 숙의.
-정호가 그 중 한 테이블 곁에 서서 잠깐 얘기 나누는 분위기. 5인회의 멤버 중 한 명도 동석 중이다.
멤버1 체크 해요. 요즘 저널들이 얼마나 선정적이야? 기사 나가기 전에 막아야지.
정호 편집장 만나기로 했어요 이리 오라고 했습니다.
다들 오오..
멤버1 괜찮겠어? 동석해줄까?
정호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나요.
-정호, 그럼 전 이만, 하고 밀실로.
-태우가 편집장을 안내하여 들어온다. 입구 통로, 리셉션 데스크, 홀을 지나며, 편집장, 둘레둘레 구경하듯.
편집장 과연 사실이네...한송에 전용 클럽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는데...업무 관련 술자리도 여길 이용하나요? (디소 비아냥)
태우 주로 구성원들 미팅이고, 외부 인사는 이렇게 동반 입장으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편집장 치밀하네요...어우, 감시카메라가 그냥...접대니 향응이니 그런 말 들을 일은 절대 없겠네...
-밀실. 태우가 편집장을 들여보내고, 정호가 반가이 일어선다.
-잠시 후.
정호 서면으로 저희 쪽 입장은 충분히 밝혔습니다만,
편집장 잘 받아봤습니다. 한데 늘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탈법? 전혀 없다, 쌍방 대리? 그것도 오해다, 우린 법인이 아니라 각자가 독립된 개인사업자들이다. 인사의 회전축? 우리가 잘난 걸 어떡하냐, 인재들이 모여 있다보니 추천에 응할 수밖에 없다, 다 거의 변명 수준이라 말이죠.
정호 다 사실이라 딱히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존경심을 갖고 있어서 이렇게 모셨죠. 자녀분들과 함께 펴내신 책도 참 감명깊게 읽었구요.
편집장 뭐 그냥 평소에 주고 받는 얘기들이죠.
정호 참 대단하십니다. 다들 자식 때문에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그러잖아도 우연찮게 알게 돼서 무척 놀랐던 게, 외국인 학교 불법 입학, 거기 뜻밖의 인사들이 꽤 여럿 포함돼 있는 거예요. 아주 강직한 분들까지 말이죠.
편집장 (멈칫)
정호 조만간 정식 수사에 들어갈 거라고 하던데, 참. 자식이 뭔지, 그쵸?
편집장 네...(술잔 드는 손 떨린다. 나도 걸린 거다.)
정호 (안주 접시 밀어준다)이거(치즈) 좀 맛 보시죠. 여기 주방장이 귀한 거라고 감춰 놓길래 제가 좀 뺏어왔어요.
편집장 (어떻게 대응하지?)
정호 (인제 좀 겁날 걸?...)
편집장 (투항하자...쓴웃음)이런 방식으로 하시는군요.
정호 방식이라기보다...(본다)무결점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편집장 (잔 비운다)
정호 저 역시 자식 키우는 사람이고, 걔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 참, 어떻게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려구 최선을 다하구 있습니다만, 인간의 본질이 어떻다, 하는 얘긴 감히 할 수가 없어요...그저 틈나는대로 군주론이나 같이 읽으면서, 리더로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길 바랄 뿐이죠.
편집장 (쩝)
인상 아파트 거실.
-정순, 반찬이며 과일 통 냉장고에 넣으며 힐끗.
-인상, 서서 각서를 본다. 허옇게 질려,
-화장실에서 나온 경태가 들여다본다.
-인상, 반 찢어 식탁 위에 놓고 나간다.
-경태, 어깨를 잡자, 인상, 걷어 내고 꾸벅하고는 나간다.
-현관, 인상, 운동화끈 매면서 눈물 글썽.
-경태, 벙하니 보다가 허허허,
형식 거실/주방.
-진애, 통화 하면서 아침 쌀 담가 덮어놓고, 식탁 위 치운다.
진애 (통화)대충 마시구 들어와요...술 마시면 존재감이 커져? 정신 바짝 차리고 전투력을 키워야지!
-끊고, 잠시 망연한데,
-쿵쿵쿵 다급한 노크 소리.
진애 ??? (계단 아래 향해)누구세요!
인상 소리 인상인데요!
진애 인, (전화)끊어요. 누가 왔어. (끊으며 급히 내려간다)
-현관. 진애가 문 열면, 인상이 꾸벅.
진애 어,어쩐 일이야?
인상 봄이랑 애기, (꿀꺽 삼키고는)제가, 어떻게든, (말 잇지 못한다)
진애 (본다.짠해)
-거실, 탁자 옆 끓어 앉은 인상. 진애, 주스를 따른다.
진애 편히 앉어.
인상 아니요, 지금 편합니다...
-진애가 주스잔 놓아주면, 인상, 꾸벅. 하고는 잔 들어 다 마신다.
-진애, 좀 비껴 앉는다.
진애 목이 말랐나보네...
인상 (잔 놓고 손등으로 입 닦는다)네,
진애 (화장지 한 장 뽑아 반 잘라서 하나는 통에 다시 꽂고 하나는 인상 앞에 놓아준다)훌륭하신 부모님에, 그 유명한 대갓댁 도련님이, 우리 봄이 같은 애가 뭐 그리 좋았으까. 봄이가 먼저 끼를 부렸나?
인상 (반장짜리 화장지로 급히 입을 닦고는)아니요, 부리긴 부렸는데, 제가 먼저 들이대서,
진애 그래서, 여전히 좋아?
인상 네.
진애 자네, (하다가)그냥 편히 말하께. 너는 인제 곧 대학생 되구, 봄이는 애 키워야 하잖아. 게다가 또 넌 중요한 공부를 시작했다며. 할아버지께서는 군 출신 법관에, 아버님은 재학 중에 패스하시구, 너 역시 그만큼 하기를 바라실텐데.
인상 봄이가 없으면 다 의미 없구요, 저는, 봄이랑 같이 애 키우면서 학교 다니는 게 꿈이예요. 만약에 봄이가 애기 데리구 집을 나가면 저두 다 버리구 따라 갈 겁니다.
진애 어디서 뭐 먹구 살려구? 이런 집두 비싸. 물가는 또 얼마나 끔찍한데.
인상 제가 과외 가르쳐서,
진애 어이구,(어이없고도 사랑스러워)받아만 본 사람이 남을 어떻게 가르쳐?
인상 그거 다 뻔해요. 아니, 암튼 뭐든 해서, (하다가)저 믿어주세요. 과외빨로 살아온 등신이지만(경태가 말끝마다 하는 소리), 봄이를 사랑하는 건 순전히 제 몸과 마음으루 결정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루, 과외 같은 거 안받구, (넙죽 엎드린다)제발 도와 주세요.
진애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 집에서 어떻게 이런 애가...)
인상 (엎드린 채)어머님, 장모님!
정호 소거실/서재. 이른 아침
-정호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태우가 핸드폰 내밀어 문자 보여준다.
태우 편집장입니다. 어제 깊이 감동 받았다고,
정호 (받아서 읽는다)
편집장 소리 논의 끝에, 이번 호 특집 기사는 삭제했습니다...
정호 잘했네.
-연희가 온다.
정호 어, 일어났나?...
연희 인상이한테 잠깐 들를까 하는데, 같이 가요.
정호 그럽시다. (태우에게)오늘 점심때는 뭐 없지?
태우 네,
연희 열한시 쯤 회사로 갈게요.
정호 오케이. 당신 너무 걱정하지 마. 인상이 문제도 곧 정리될 거야.
연희 그래야만 해.
인상 아파트. 아침.
-인상과 경태 마주 선.
경태 내가 어쩌다 너같은 놈한테 감동을 받았는 모르겠다. 너희 아버님처럼 거대한 사람이 못돼서 그런가?
인상 고맙습니다.
경태 성공해라.
인상 (끄덕인다)
정호 거실.
-현관, 인상이 신발 벗고 올라선다.
-식당에서 정순과 박집사가 쳐다본다.
-안채에서 선숙이 바라본다.
계단.
-성큼성큼 올라가는 인상.
정호 침실 파우더룸.
-연희, 외출 준비. 간편한 바지 차림. 선숙이 스웨터 두어벌 꺼내 보인다.
인상 방.
-소파의 봄, 놀라 일어서는,
봄 인상아...
인상 (봄이 여기 처음 올 때 입었던 잠바 입힌다)나랑 어디 좀 가.
봄 (팔을 꿰며)어디, 왜,
안채 복도.
-연희가 나온다. 그 뒤 선숙.
거실.
-인상이 봄의 어깨 감아 두르고 한 손으로는 팔을 잡아 부축하여 내려온다.
-경악하여 바라보는 연희.
-선숙과 정순, 박집사가 계단 어귀에 막듯이 서 있고,
연희 어, 어딜 가길래,
인상 비켜 주세요. 저희 결혼하러 가요.
-연희, 경악, 입이 딱 벌어지고,
-정순들, 얼결에 비켜준다.
-인상, 현관으로.
연희 안돼!!!
한송 회의실 앞.
정호 (전화기 좀 떼어내고 태우에게)일단 막으라고 해, 양비서 민주영 둘 다 가라고,
태우 네,
-정호는 방으로, 태우는 비서실로.
정호 방.
정호 (들어오며 통화)당신 얼른 정장 입어.
비서실.
-주영과 양비서. 가방 들고 뛰어 나간다.
정호 방.
정호 (통화)일단 내 말대로 해. 이니셔티브를 선점하고, 전선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야!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정호 집 침실.
-연희, 덜덜 떨며 옷갈아 입는다. 선숙이 거든다.
형식 가게 앞.
-형식 승합차 출발. 진애와 형식, 정장 차림.
구청 안.
-인상, 봄을 대기석에 앉히고 번호표 뽑는다.
-봄, 웃으며 눈물 닦는다.
-함께 혼인신고서 쓰는 인상과 봄.
-형식과 진애가 들어온다.
-봄과 인상의 가족관계증명서.
-진애와 인상이 도장 찍으려는데
-양비서와 주영이 뛰어 들어온다.들어와 막는다.
양비서 잠깐만요, 잠깐만,(진애 손을 잡고)
진애 놓으세요.
주영 (인상 손 잡은채)이거 공문서 위조야, 인상씨,
형식 혼인 무효 소송 내라고 해요! 겁날 거 없어.
양비서 양가 부모님 축복 속에 해야죠.
인상들 (엉?!)
구청 앞.
-정호 차 도착,
-정호와 연희 내린다.
구청.
-정호와 연희, 들어온다
-사람들 구경하듯 바라본다.
정호 한인상!
인상 (얼결에)네!
연희 (진애와 형식을 향해 우는지 웃는지 목례)
정호 저희가 좀 늦었습니다. 이 뜻깊은 자리에.
-인상, 형식, 봄, 진애, 어리둥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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