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3회
풍문으로 들었소 3.
인상 아파트 거실/주방.
-소파의 인상, 잔뜩 긴장한 채 국면 돌파의 틈을 살핀다. 나는 봄과 격리되어 갇힌 게 분명한데 저 아저씨들은 너무나 노련해.
-박집사가 유리로된 밀폐용기(요리 수준의 음식이 일인분씩 담긴)를 냉장고에 칸칸이 집어넣고, 태우와 경태가 곁에 서서 얘기 중.
-박집사가 가져온 인상의 짐, 두 개의 큼직한 트렁크가 침실 문간에 놓여있다.
박집사 상주 도우미가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경태 거추장스럽죠.
태우 그렇긴 해도,
경태 집중에 방해 된다고. 초반 석달은 기본 세 과목, 하나씩 통독하면서 훈련을 해야 한다 말이지. 점심 식사 포함 산책 겸 운동을 두 시간 잡아놨는데 그동안 청소 빨래, 나머지 두 끼, 간식, 야식, 다 뎁히기만 해서 먹을 수 있게 챙겨 주는 걸로.
박집사 (태우에게)그 정도면 사람 따로 쓸 필요 없어요. 집사람이랑 번갈아 하지 뭐. 사모님두 좋다구 하실 거예요.
태우 어유 그럼 나두 엄청 편하지.
경태 그럼 짐 넣으시죠.
-박집사, 냉장고 문 닫고 트렁크 밀며 침실로. 인상을 힐끗.
-인상, 엉거주춤 일어선다. 어쩐지 틈이 보이는 것 같다.
박집사 챙겨 온 거 보시고, 빠진 거 있으면 말해요.
인상 네. (박집사 따라간다)
태우 (인상을 보다가)소리 좀 낮추어)혹시 감시원 같은 거,
경태 필요 없어. 내가 절권도 신림파 초고수 아니냐.
동 침실.
-인상, 조심스레 문을 닫고 소리 낮춰 묻는다. 박집사, 트렁크에서 옷가지 꺼내 옷장 안에.
인상 봄이, 저 여기 있는 거 모르죠.
박집사 모르지.
인상 밥, 잘 먹어요? 몇 번 먹었어요? 자주 먹어줘야 된다면서요.
박집사 어.
인상 애기는요? 엄마, 애기 안아보셨어요? 봄이랑 얘기 좀 하셨어요?
아기방.
-오르골이 돌아가고, 혜옥이 아기를 침대에 누인다.
정호집 계단.
-연희, 인상방 계단 내려와 이지 방으로. 표정없이.
-정순이 비껴섰다가 올라간다.
정호 집 인상 방.
-침대 위의 봄,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기대 앉아 수첩을 들여다 본다. 출산 뒤 준수 사항 빼곡 적혀 있다.
-1. 초유 먹이기. 아기가 힘차게 빨지 않더라도 자꾸 물릴 것. 유축기 도움을 받을 것. 2.산후 운동. 산후통이 있더라도 살살 움직일 것. 걷기, 요가, 맛사지 등.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더디다. 3. 육아보조인이 있다면 심장 소리를 자주 들려줄 것. 4. 맵고 짠 것 피한다. 4. 과일을 그대로 먹으려면 실온에 한 시간 이상 둘 것. 5. 햇빛 쪼이기, 자주 웃기, 명상 등으로 산후 우울증 예방....
-정순은 선반형 왜건(유축기, 소독된 젖병, 보온병 등 산모 용품이 잘 정리되어 있는)을 협탁 옆에 밀어 넣고, 산모용 패드 등이 담긴 바구니를 옷장 안에 넣는 등,
정순 애기 외할머니 문자 하셨길래 잔다고 답했는데...잠깐 통화 할래요?
봄 (조금 웃음)아니요. 엄마랑 얘기하다보면 좀 울 거 같아서.
-플래시 백. 봄에게 막말하는 연희. 귀부인의 분기탱천 망발.
-봄, 얼핏 진저리.
정순 사모님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신 거지. 그 댁 부모님두 첨엔 엄청 놀라셨을 거 아냐.
봄 네...인상이 어머님이랑 똑같지는 않았지만요.
연희 소리 넌 수치심두 없니? 이런 뻔뻔하구 천박한,
봄 (아오. 새삼 무서움)
-핸드폰 진동음.
-봄, 혹시 인상인가?
-정순, 앞치마 주머니에서 전화기 꺼내 본다. 문자 발신인 ‘영감’(박집사). 봄에게 보여준다.
-봄, 인상이구나!, 들여다본다.
인상 소리 나 지금 너무 병신 같아. 너랑 애기 옆에 있어야 하는데, 꼼짝을 못해.
-봄, 급히 답전.
봄 소리 지금 어딨어?
인상 아파트 침실.
봄 소리 혹시 너 애아빠 된 거, 학교에서 알아? 친구들한테 얘기 했어?
인상 (급히 문자)
-‘그럴까봐 부모님이 나를,’까지 찍었을 때, 문이 벌컥 열리고 태우와 경태가 들여다 본다. 인상, 얼른 전화기 감추고 일어선다. 박집사도 제발 저려 일어서고,
태우 난 이만 회사 들어가 봐야 하는데.
박집사 그래요, 어서 가보셔.
태우 잘하고 있어.
인상 (과장되게 끄덕여보인다)네.
경태 어른들 깊은 뜻을 다 알겠지 뭐. 바보도 아니고.
박집사 그럼요.
-둘, 가고, 인상, 인사처럼 잠깐 내다보다가,
인상 아저씨 나 좀 빼돌려 줘요. 잠깐이면 돼요. 할 얘기만 딱 하구 다시 올게요, 제발,
박집사 문자 주고받은 걸로 만족하셔. 부모님 어떤 분들인지 몰라서 그래?
인상 저는 좀 아는데요, 봄이는 모르잖아요. 그걸 알려 줘야 돼요.
거실.
-침실 쪽 복도. 아기방에서 새나오는 오르골 소리. 정순이 소거실에서 급히 나와 복도 중간의 샛문을 닫는다. 오르골 소리 작아진다.
-연희와 홍선생, 선숙, 현관으로 가면서.
홍 제가 영식님 또래들 모임을 두엇 만들어 둘게요. 승마나 골프 쪽으로.
연희 좋죠...공부 땜에 자주 나갈 수는 없겠지만.
홍 자주보다도 정기적으로, 꾸준히가 중요하죠. 친목을 다지면서 연분을 찾는다는 게.
연희 맞는 말씀이예요.
-대문 벨소리.
-연희, 부지 중에 흠칫 놀라고 선숙이 민첩하게 비디오폰을 살핀다.
-차박사 얼굴과 음성.
홍 아이고 손님이 오시나보네.
선숙 차박사님, 세 시 약속.
홍 (차박사님라면?) 어디 편찮으세요?
연희 (황망)아뇨, 편찮긴요,
선숙 원래 가끔 들러주십니다.
홍 아아,
연희 그럼 전 여기서,
홍 그럼요 그럼요,
침실 복도.
-연희, 거실 쪽 샛문 들어서서 문 닫고 침실 향한다. 불안해서 숨이 막힌다. 홍선생이 눈치를 챘을지도 몰라.
-정순이 아기방 쪽에서 나온다. 보온병 들고 있다.
연희 이비서가 차박사 모시구 올라갈 거예요. 아주머니두 들어가 보세요. 무슨 특별한 지시 사항 없는지.
정순 애기를 왜 따로 떼 놨냐구 물어보면 뭐라구 해요?
연희 사실대로 말하세요. 산모를 배려해서라구...내가 잠깐 실수로 언성을 높이긴 했지만 우린 최선을 다하구 있는 거예요. (들어가려)
정순 혼자 저렇게 놔둬두 될까 모르겠네요. 애기 아빠두 없이.
연희 애 아빠 누구, 인상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직 확인두 안됐는데?! (들어가고)
정순 (문 닫아 준다. 쯧쯧)
한송 정호방.
-정호(셔츠 차림)가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형식 동네 본다(스트릿 뷰). 곁에 서류철 펴든 주영.
-‘삼광기업’ 및 이층 형식집 외경 및 부근 풍경들.
정호 뭐 하는 데예요?
주영 (서류 보면서)현 사업자 서형식씨 부친이 도장업으로 등록을 했었구요, 지난 5월 타계 이후에 물려받아 동생과 함께 운영 중입니다. 명패, 현수막, 간판 제작 등이 주 종목이고, 재정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대출이자 연체로 경매 직전에 매각해서 현재는 점포와 살림집 다 월세 형태로 살고 있습니다. 제2금융권 가계자금 대출이 있고, 사업자용 마이너스 통장은 6개월 전에 한도가 대폭 축소 됐습니다. 신용카드는 정지 중,
정호 (갑갑)그만 하지.
형식 가게. 오후.
-형식은 책상 앞에 앉아 전화기 귀에 대고 있다.
-출력기 작동 중. 철식이 작업 중(‘솥뚜껑 오겹살 1인분 만원’ 인쇄된 현수막을 뽑아내거나)이고, 진애는 같은 상호의 전단지며 스티커 뭉치를 상자에 담는다.
진애 수시로 나한테 문자 보내 주잖아...방금 잠들었다, 애두 별 탈 없다, 의사가 봐주고 갔다, 다 양호하다고 한다...
형식 (전화 끊는다. 못마땅.)
철식 엄청 궁금한가봐?
형식 이쯤 됐으면 부모끼리 얘길 해야지. 전화 한통 직접 해주는 게 뭐 어렵다구.
진애 아직 정신이 없을 거야. 갑자기 얼마나 놀랐을까.
형식 (핸드폰 멀찍이 보면서 문자)집주소 찍으래서 그냥 찾아가야겠어.
진애 뭘 또, 조만간에 오라구 한다잖아...나두 참구 기다리누만.
철식 인제 돋보기 써요. 서랍에 아버지 쓰던 거 있던데.
형식 (서랍 열어 뒤적)이럴 때 우리가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열이면 열 다, 남자 쪽 부모가 갑질 한다고. 딸자식을 어떻게 키웠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냐, 무식한 소리 하면서 말이지. (돋보기 꺼내 쓴다)
진애 아니 왜 싸울 생각부터 해? 혼자 미리 상상하면서?
형식 그런 태도가 문제야. 당신은 왜 지레 ‘을’을 자처하나. 통념을 깨지 못하구.
진애 설마 봄이랑 인상이가 지금 갑타령 을타령 하구 있겠어?
형식 지들끼리 아무리 절절하면 뭐해. 쌀 한 톨, 우유 한통 벌지를 못하는데. 결국에는 어른들이 대 줘야잖아.
진애 서로가 형편껏 의논하다보면 대책이 나오겠지.
형식 글쎄 그 형편을 모르잖아. 솔직히 우리가 걔네 집에 대해서 아는 게 뭐 있냐. 먹고 살만은 한지, 자영업이라면 뭘 자영하는지,
진애 그게 그렇게 급해?
철식 지금 상황에 할말은 아닌데, 형 그러구 있으니까 아버지랑 진짜 똑같아.
형식 시끄러. (뒷문으로)
진애 (어으 인간, 심란해)
철식 형 마음두 이해는 가네요. 애 하나 키우는데 돈이 워낙 많이 드니까. 봄이 장래두 있구.
진애 그걸 누가 모르나요. 단지 지금은 순산에 감사하구, 인상이 그 친구가 봄이 많이 사랑하는 거, 그 고마운 걸로 족하자는 거죠. 안그래도 사는 게 걱정과 계산 투성인데, 잠깐 미루면 안되냐 말이지.
형식 거실/주방.
-누리, 식탁 앞에 앉아 뉴스 원고 읽는다(헐렁한 수면바지 차림. 틀어올린 머리. 뾰루지 반창고). 원고에는 빨간 표시 가득.
누리 용산 개발 계획이 재가동 된다는 소식에, 그동안 잠잠했던 개발 예정 지구 및 인근의 부동산 가격이 꿈틀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물소리와 함께 형식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형식 (혼잣말)꿈틀 좋아한다.
누리 애기 사진 또 안왔어?
형식 저기, 걔들 갈 때 콜택시 불러 준 거 말야,
누리 어, 왜?
형식 전화해서 도착지 주소 좀 물어봐.
누리 찾아가시게?
형식 어.
누리 (전화기 집어든다)보통 자기 집 갈 때는 주소 대신 그냥 동네만 말하지 않나?
형식 언저리까지는 알 거 아냐.
누리 (통화 기록 검색)
인상 아파트 거실.
-박집사와 경태, 주방 어귀에서 이야기. 인상이 침실에서 빼꼼 내다본다.
박집사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만, (인상 쪽 의식)혹시라두 불편한 게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김비서 통하지 않으셔두 됩니다. 음식이나 뭐나,
경태 그러죠. 긴밀하게 지냅시다.
박집사 어유, 그럼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제가 우리 도련님 독선생들 한두 번 겪어본 것두 아니구, (경태 옷의 티끌 떼주는 척. 인상에게 신호 주는 것)
-인상이 튀어나간다.
경태 어어어어, 야!
-박집사, 능숙하게 막고,
-인상, 신발도 신지 않고 현관문 열고,
-경태, 어라, 막았어? 반격. 박집사, 경태 양 손목을 잡아 벽에 붙여버린다.
박집사 나도 한 때 이 동네 밥 좀 먹었거든. 머리가 안따라줘서 집사로 틀었지만.
경태 비서구 집사구 다 신림동 출신이네?
박집사 그 설움을 이용하는 거지. 선생도 마찬가지구.
경태 이거 놓구 얘기해요. 젤 무서운 게 자식 아뇨.
박집사 물론 그 관계로는 선생이 분명히 갑이지만, 솔직히 저 친구가 협조 안하면 계약금이니 성공보수니 다 꽝이잖아. 안할 말로 저 혈기에 투신이라도 하면 어쩔건데?
경태 협조합시다.긴밀하게.
엘리베이터 앞.
-박집사가 인상 발 아래 신발을 놓아주고 인상, 허겁지겁 신발 신는다. 박집사 엘리베이터 버튼 누른다.
인상 비밀 지켜 준대요?
박집사 지킬 수밖에 없어.
인상 근데 나 집에 어떻게 들어가요?
박집사 가면서 생각해보자고.
-엘리베이터 문 열린다.
정호 동네. 오후.
-형식 차 안.
-형식, 운전하면서 두리번...
-저택들...
-초소를 지난다.
네비게이션 목적지 부근입니다...
정호 집 식당.
-연희, 식탁 앞에 이마 짚은 채 앉아 있다. 선숙이 연희 앞에 차를 놓아준다.
-정순이 식탁 한켠 쟁반 두 개에 차와 롤케익 접시 얹는다.(봄과 혜옥의 간식)
연희 아저씨가 늦으시네요?
정순 인상씨 선생님이랑 얘기가 길어지나봐요.
-선숙과 정순, 쟁반 하나씩 들고 나간다.
아기방.
-선숙이 쟁반 들고 들어온다.
선숙 간식입니다.
혜옥 (아기를 침대에 누이면서)고마워요.
봄의 방.
봄 (계단 난간 잡으며)제가 내려갈게요, 운동 삼아,
정순 그럴래요?
식당.
-연희, 티스푼으로 찻잔 젓고 내려놓는데, 대문 벨소리.
-연희, 잠깐 둘러본다. 나 뿐이군. 나간다.
현관.
-화면 속, 형식 얼굴.
연희 (사무적)누구시죠?
형식(화면속) 저, 여기 혹시 한인상 학생이라고,
연희 (얼결)누구,(하다가 입을 막고 숨죽인다)
대문 앞.
형식 여보세요?
정호 거실.
형식(화면속) 한인상이 집, 아니예요?
연희 (하얗게 질려)아닌데요, (끊는다)
대문 앞.
-인터폰 끊어지는 소리,
형식 (통화)누리야, 어째 그 택시 기사가 잘못 알려준 거 같다?...아니래요. 그런 사람 없대. 다른 승객이랑 헷갈렸나봐...(담벼락 올려다보는)일단 집이 너무 좋아...동네 자체가 부촌이야. 이럴 리가 없잖아...421번지가 아니라 321, 그쪽으로 한번 가봐야겠어...
소거실.
-연희, 소파 등받이 짚고 심호흡, 후, 하, 후, 하,
인상 방.
-봄, 창가에 기대서서 롤케익 꾸역꾸역 먹고,
정호 소거실.
연희 (통화)저 애 아빠 같았어요...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한송 복도.
-정호, 회의실 향하며 통화. 나직히.
정호 조치해 놓을게...응.(끊고 돌아선다. 비서실로)
-비서실 향하는 정호. 마주 오는 사람과 천연덕스레.
-유신영과 주영, 서서 얘기 중인 것 보인다.
정호 어, 준비 잘 되구 있죠?
변호사 대법원 판례 참고하는 중입니다.
정호 기망에 의한 명도 이전이라는 걸 증명하기가 쉽지는 않겠죠. 이따가 위에서 보자구. (웃어주고 양비서에게)양비서님, 잠깐만,
양비서 (일어선다)네,
-정호와 양비서, 가고,
-주영 책상 옆의 신영과 주영.
주영 (3명 정도의 명단을 보면서)여권 자체가 위조된 걸 수도 있어요.
신영 불법 고용 되시겠네.
주영 그때 그분은,
신영 어느 댁에 뽑혀갔는지, 전혀 설득의 여지가 없어요.
정호 방.
-정호와 양비서 들어온다. 양비서는 메모판과 펜 들고 있다.
정호 민원 하나 넣어 줘요. 최대한 가볍게.
양비서 말씀하세요.
정호 동네.
-형식, 배회하듯 좌우 살피며 지나가는 형식.
-순찰차 다가와 서고 경관 내린다.
-형식,??? 저요?
경관 실례합니다. 민원이 접수됐는데요. 아까부터 인근을 배회하신다고,
형식 아, 네, 배회가 아니라 아는 사람 집을 좀 찾구 있는데...
경관 신분증 확인, 부탁 드립니다.
형식 왜요?
경관 규정상 가장 먼저 신분 확인부터 하게 돼 있어요.
형식 아니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경관 경범죄 처벌법 3조 19항, 불안감 조성 혐의,
형식 그건 조폭들이 온 몸에 용을 새긴 채로 옷을 벗고 다니거나 뭐 그랬을 때 적용되는 거지 이 정도가 무슨,
경관 서까지 동행 부탁 드립니다.
형식 (주눅. 웃음)주소를 잘못 알고 그런 거 뿐인데...그냥 갈게요. 차도 바로 조기 세워놨고,
형식 거실. 저녁/주방.
-저녁 식사와 함께 반주. 진애와 형식.
-거실 탁자 위엔 진애의 뜨개질 바구니.
형식 동네 무섭더라고. 동행하자구 하는데 겁이 덜컥 나는 거야.
진애 그 동네만 그런 거 아니다 뭐. 여기두 신고하면 바로 와줘요.
형식 철식이랑 같이 갈 걸 그랬나봐.
진애 그럼 뭐가 달랐을 건데.
형식 그래두.
진애 누리 저녁 한 숟갈 먹지?
-누리가 클립 말면서 내다본다.
누리 얼굴 부어요...
형식 난 솔직히, 이왕 일 벌어진 거 인상이가 그런 집 자식이면 좋겠어.
진애 망상은 해수욕장이지. 우리 요만할 때 개그다.
형식 걔네두 우리처럼 못사는 집이면 어떡하지?
진애 대충 해 둬요.
-누리가 머리에 클립을 말면서 나온다.
누리 기사 아저씨는 그 집 맞다는데?
형식 야, 너 이번에 카메라 테스트 잘 나오면, 아나운서 되는 거냐?
누리 (물을 따른다)온 우주, 삼라만상이 도와주면.
형식 부모가 자식한테 그, 온 우주처럼 해줄 수 있으면 진짜 뿌듯할 거야, 응?
진애 내가 그렇게 받질 못했는데 뭘 어떻게 해 줘.
누리 (물 마시다가)이상하지 않어?
진애 아, 됐어, 그만해. (소주 따른다)당신은 이거 마시구,
정호 소거실. 밤.
연희 (부적 주머니 받아들며)세상에, (이런 낭패가)
선숙 장회장 댁 사모님이 보내셨어요.
연희 내가 이걸 떨구구 다녔단 말야?
선숙 네, 송이사님 방에.
연희 미쳤나봐.
선숙 잘 받았다는 말씀, 제가 대신 전할까요?
연희 (아우, 몰라...)
영라 거실. 밤.
-미니 바. 영라가 안쪽에서 칵테일 만들고, 방금 도착한 재원이 마주 앉는다. 먼저 온 소정 옆자리.
(간만의 재미난 말거리에 생기가 돈다. 포즈 없이 빠르게 주고받는 ‘어른애’들의 수다)
영라 피하는 게 분명해. 부적 돌려보냈더니 고맙단 말을 비서 시켜서 하는 거 있지.
재원 야, 그거 뭔가 효험이 있나보다. 연희가 아픈 거였어. 부정맥으로 119까지 왔었대요.
소정 부정 탔네. 그 비싼 걸 왜 흘리구 다니겠니.
영라 근데 웃긴다? 밤에 나랑 통화 할 땐 멀쩡했는데?
소정 (급히 문자)119라면 또 확인할 데가 있지.
영라 그 얘긴 어디서 들었어?
재원 일일보고서라는 거 있잖아.
영라 어, 알아. 우리 영감 몇 년 전에 망신살 뻗쳤던 게 그거 땜에였어. 골프 간 거, 밥 먹은 거, 쇼핑한 거까지는 좋았는데 쪼끔 더 갔다가 낭패 봤지.
소정 그 중에 낭설두 있지 않어?
재원 구조대 출동 기록은 낭설이 아니지. 한정호네가 있더래요. 처리 결과는, 부정맥 증상 자가처리 확인 후 철수.
영라 부정맥에 왜 산과 전문의가 드나들어? 홍선생 말이 차박사가 왔더라잖아.
재원 소정이 너네 오빠한테 좀 물어봐.
소정 (문자 스크롤 하며 보는 채로)환자 사생활 절대 말 안해.
영라 주치의는 입이 무거워야지.
소정 근데 얘들아, 이런 게 있다...신고 내용이랑 처리 결과에 적힌 병명이 다르대요. 신고할 땐 임산부 진통이었어.
영라 뭐래?...
재원 그건 또 소스가 어딘데,
소정 민재 아빠 제자 하나가 저널에 뭐 쓴다구 현장조사 중이거든.
재원 한 사람이 두 가지 증상일리는 없고, 연희가 늦둥이? 아닌데?
영라 너 가끔 바보 같애.
재원 그럼, 다른 사람인가? 임산부 따로 부정맥 따로,
소정 안타깝다. 홍선생이 더 확실하게 들었어야 했는데.
재원 이럴 땐 당사자를 찔러야지. 단도직입, 정호형한테 물어보자고. (영라 앞으로 전화기 밀어준다)
영라 (재원 앞으로 민다)니가 해. 남자끼리.
재원 싫지, 야. 한정호가 나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데. 법대, 사시, 미국박사, 오직 기준이 그거 밖에 없는 사람이야.(전화기 소정 앞으로)
소정 난 오빠 땜에 좀 어렵지.(영라 앞으로)
영라 (다시 재원 앞으로)나는 연희가 질투해서 안돼.
재원 (집어든다)너네랑 노는 게 젤 편하고 좋은데 이런 건 좀 귀찮다.
영라 얼른 해.
정호 거실. 밤.
-정호, 현관에서 복도 향하며 통화. 태우, 가방 들고 그 뒤. 박집사는 현관문을 닫고.
정호 어, 재원아, 오랜만이다. 호텔이 아주 잘 된다며...아버님이 인제 좀 대견해 하시더라.
-연희가 소거실에서 나온다. 태우가 연희에게 목례하고 서재 문 연다.
정호 니가 대표 맡고 나서 매출이 급신장세라고...다행이지 뭐냐, 늘 니 걱정 하셨는데...(연희에게 좀 이따 보자 눈짓 하고 서재로)그러엄...
연희 (다시 들어간다)
영라 거실.
-재원, 통화 중이고, 영라와 소정, 더듬이 세운.
재원 그래봤자 얼굴 마담이지 뭐...법률 자문, 형네로 바꾸고 싶어도 힘도 못쓰고...우리 말고도 고객이 너무 많아 고민이겠지만...뭐 그렇다고...
영라 (작게 종알)서론이 너무 길어.
소정 (입모양. 빨리 찔러봐)
재원 근데, 연희가 어디 안좋아요?...
-현수와 민재가 들여다본다. 같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
-영라와 소정, 올라가라 손짓. ‘놀고 있어...’
재원 혹시 형이 신경 쓰게 하는 거 아냐?
정호 서재.
-정호, 통화 하면서 윗도리 벗고 태우가 거든다.
정호 어디 감히 그런 짓을 해...머리카락 갯수까지 다 털리는 시대 아니냐...아버님한테 들었으면 뭐, 별 일 아닌 것두 알겠구만...원래 가끔 그런 증상이 잠깐씩 지나가군 해...금방 진정 됐고...어...그렇지...암튼 고맙다 야, 이렇게 안부 물어주구...언제 한번 보자. 아버님 취임 하시기 전에 공 한 번 쳐...어...그래...어.(끊는다)혹시 나 뭐 말 잘못한 거 없나?
태우 (가방에서 꺼낸 태블릿을 책상 위에 올려놓다가)제가 잘못한 게 있습니다.
정호 뭘,
태우 그게, 제가, 신고할 때 임산부 진통이라고 했거든요,
정호 엉?!
태우 바로 삭제해달라 부탁 했는데,
-아기 울음 소리.
-정호, 제풀에 철렁.
소거실.
-연희, 아기방 쪽을 휙 돌아보고, 선숙이 급히 나간다..
정호 집 일각.
-멀지만, 아기 울음소리.
-어두컴컴. 인상, 벽에 납작 붙어 서 있다. 심장이 오그라든다.
(주방과 식당 사이가 아니라 주방 뒤쪽 어딘가의 틈새인 것으로)
주방.
-선숙이 들어오고, 정순이 젖병(모유가 담긴) 들고 주방에서 급히 나와 선숙 지나쳐 간다.
선숙 왜 또 울어요?
정순 그게 정상이야.
아기 방.
-혜옥이 아기에게 모유 먹이고 정순이 들여다본다.
정순 어이구, 잘 먹네...벌써 모유 맛을 아는 걸까요?
혜옥 좀 더 두구 봐야죠...밤에 먹일 거 있어요?
정순 준비 될 거예요. 인제 쪼끔씩 젖이 돈다고 하니까.
정호 서재.
-탁자 위 한약과 물, 편강 따위.
-정호와 연희, 애 울음 소리에 이 엄청난 상황의 구체성을 절감하고 더 두려워졌다.
정호 배가 고팠던 거야? 밤에 왜 안 자? 인상이랑 이지두 저랬어?
연희 우리가 데리구 잔 적이 없었잖아.
정호 그렇구나. 나 진짜 땀이 막 나더라고.
연희 애 우는 건 당신두 나두 어떻게 못해.
정호 젤 강적이네.
연희 엄박사, 결과 언제 말해준대?
정호 내일 아침에. (약그릇 집어들고)안정제라도 먹어 둬.
연희 당신두.(기운없이 돌아선다. 인상이 애가 아니기만을 바라지만)
정호 집 소거실. 밤.
-연희, 착잡하게 앉아서 선숙의 보고 듣는다.
선숙 내일 스케줄입니다. 열시 반 뷰티샵. 열 두시 영재 후원회 오찬, 세 시, 동문회 발전기금 약정식, 오후 다섯시엔 신교수님 전시회 오프닝.
연희 다 취소하면 이상할래나?
선숙 미소 가면을 쓰구 나간다 생각하세요.
연희 (한숨)
선숙 정말 감당이 안되시나봐요. 아까 애기 엄마한테 화내시는 거 보구 좀 놀랐습니다.
연희 그러게. 아직은 손님인데.
선숙 다 잘하셔도 그런 거 한번으로 금이 갑니다. 대표님께서도 특별히 강조하셨고, 돌아가신 큰사모님께서는 아랫 사람들한테도 실수 뒤엔 꼭 사과하셨어요.
연희 그랬죠...
인상 방.
-침대 위의 봄, 앞섶을 여미다 말고 놀라 돌아본다. 정순이 유축기에서 젖병 분리하면서(방금 봄이가 유축기로 짜낸 것. 색깔이 진하다)
정순 (작게)와 있다고...
봄 어떻게요?...어딨는데요?!
정순 기다려 봐. 어른들 다 잠드시면 움직일 거야. (협탁에 놓인 핸드폰 눈으로 가리키는)인상씨는 아저씨 꺼 갖구 있어요. 그걸로 연락하면서 타이밍을 맞춰요.
봄 (감격)정말 고맙습니다. (핸드폰 집어들고)
정순 맘 편히 먹고 애기 양식거리나 부지런히 내놔.(젖병 들고 나간다)
봄 (핸드폰 품에 안는다)그거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정순 알아.
침실 앞 복도.
-연희, 아기 방 쪽을 잠시 보다가 돌아선다. 선숙 뒤 따라가는.
인상 방.
-소파에 기대 앉은 봄, 인상과 격하게 문자 주고 받는 중.
인상 소리 빨리 보고 싶어.
봄 소리 나는 백 배 더.
인상 소리 애기 우는 소리 들었어?
봄 소리 여긴 잘 안 들려. 근데 느낌이 와. 이상하지?
-노크 소리.
-봄, 흠칫. 급히 문자.
봄 소리 누가 왔어.
인상 방 앞.
-연희가 옷섶 매만지고 선숙이 또 노크. 선숙은 차 한잔 얹힌 쟁반 들고 있다.
인상 방.
인상 소리 조심해.
-봄, 황급히 핸드폰 묵음 설정하여 세워진 쿠션 뒤에 감추고 대답.
봄 네...
-연희와 선숙 들어온다.
-봄, 당황하여 일어선다.
연희 (온화)오, 누워 있을 줄 알았어요.
봄 네...쪼끔씩 움직이는 게 좋다구 해서요,
-선숙은 소파 앞 탁자에 찻잔 내려놓고 나간다.
연희 앉을까요?
거실.
-선숙이 이층에서 내려오고, 이지가 현관에서. 학교와 화실 레슨 마치고 오는 길. 기사가 이지의 책가방과 큼직한 쇼핑백(아기용 명품 브랜드)을 들고. 뒤따라 들어와 이층으로.
선숙 왜 이렇게 늦어요? 화실에 너무 오래 있지 말라시는데?
이지 중간에 쇼핑 좀 하느라구...오빠 이층에 있어요?
선숙 아니, 다른 사람.
이지 응?
인상 방.
-소파의 연희와 봄. 연희, 차분한 미소. 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봄 (머뭇)말씀 놓으세요.
연희 습관이니까 그냥 편하게 들어요.
봄 네...
연희 어쨌거나 우리 집에 있는 동안에는 귀한 손님인데, 내가 배려가 모자랐어요. 어른답지 못했네요. 너무나 뜻밖의 일을 당해서 그랬겠거니, 이해해줘요.
봄 (무슨 뜻인지. ‘손님’? ‘일을 당해서’?)
연희 서운했다면, 사과할게요.
봄 (서운했다면?..사과는 이런 게 아닌데?)
-이지가 들여다본다.
이지 (일부러)다녀왔습니다! 언니 안녕!
봄 안녕.
연희 (당황)얘,
이지 엄마 여기 계시다 그래서.
연희 (선다)어, 얘기 끝났어. 나가려던 참이야.
-봄이 따라서자, 기대 세워둔 쿠션이 넘어지고, 연희, 급히 문간으로 간다. 봄, 얼른 쿠션을 가리고 선다.
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사과는 안받을게요)
연희 고맙긴요,
이지 무슨 얘기 했어?
연희 (이지 밀고나가며 웃어보인다)잘 자요.
봄 안녕히 주무세요...
-문이 닫히자, 봄, 미간을 한껏 좁힌다. 뭔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 이런 표정 짓는다.
연희 소리 ‘손님인데’, ‘일을 당해서’, ‘서운했다면’,
봄 (중얼)나 뒤끝 쩌는데.
이지 방.
연희 (애써 타이르는 말투)이지야, 될 수 있음 저 방에 들어가지 마, 응?
이지 종탑에 가둔 거야? 오빠는 귀양 보내구?
연희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 줘야지.
이지 애기방에두 가지 마?
연희 자제해.
이지 헐.
연희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말구.(나간다)
이지 헐헐,
현수 방.
-현수와 민재, 헤드폰 쓰고 나란히 앉아 롤 게임(팀 플레이. 현수는 데스크 탑, 민재는 랩탑. 분탕질 종자가 나타난 상황)
민재 야야야 도망가, 얘 또 왔어,
현수 아, 진짜,(저런 관종 새끼)
민재 인상이 좀 들어오라 그래.
현수 걔 연락 안돼. 전원 자체가 꺼져 있어.
민재 이지한테 물어봐.
현수 됐어. 우리끼리 물리쳐.
-도우미가 현수 어깨 조심스레 두드린다.
도우미 손님들 가신대요.
현수 (화면 보는 채로 끄덕)
-도우미, 기다리다가 한 번 더 치면,
-도우미, 한번 더 어깨 치면, 현수와 민재, 헤드폰 벗으며 일어선다. 도우미 나가고, 민재, 목도리 걸치고 윗도리 입는다. 현수, 핸드폰 집어들고 나가며 들여다본다.
-이지가 SNS에 올린 아기 사진, 아기옷 사진 아래 ‘사랑의 결실’
현수 (선다. 나직히 탄성)우와,
민재 (들여다 본다)뭐야, 애기잖아.
현수 누구네 애지?
민재 어우 이상해.
현수 이쁘기만 하다, 뭐.
-영라가 들여다본다.
영라 뭐하니? 어른들 가신다는데?
민재 아줌마 현수두 애낳구 싶은가봐요.
영라 에?
현수 (문자하며)라기보단 연애가 하구 싶지.진짜 연애.
영라 그렇담 게임부터 끊으시고, 얼른 내려와. 많이 늦었다.
민재 인상이네 무슨 일 있어요?
영라 글쎄다.
-영라, 민재 나가고, 현수 문자하면서 뒤따르는.
이지 방.
-탁자 위엔 오늘 사온 아기옷, 신발, 모자 등 펼쳐져 있고, 이지, 현수 문자에 답.
현수 소리 화실 정쌤네 애기야? 허니문 베이비?
이지 (혀를 낼름. 답 찍는다. ‘ㅋㅋㅋ’)
현수 소리 인상이는 뭐해? 벌써 신림동 들어갔어?
이지 (답. ‘신경 꺼. 오빠 딴 여자 관심 없음’)
정호 집 일각.
봄 소리 어머님이 이 방에 들르셨어. 동생두. 아주머니 핸드폰 들킬까봐 숨막혔어. 니가 와 있단 말두 물론 안했어. 거짓말 대행진.
인상 (문자 찍는)
인상 소리 잘했어. 쫌만 기다려. 만나서 얘기 해.
인상 방.
-침대의 봄, 시계 본다. 열한시 쯤.
이지 방.
-문간에서 라면 쟁반 주고 받는 정순과 이지.
정순 반개만 끓였어. 먹구 얼른 자.
이지 땡큐.
정순 밤에 뭐 먹는 거 엄마 아시면 나 혼나.
이지 알지...
침실.
-정호와 연희, 나직히 티격태격. 잠옷에 까운이나 카디건 차림.
정호 저 애 직접 대면하지 말라구 했잖아.
연희 그럼 어떡해, 사과는 하구 봐야지. 나중에 문제 삼을 수도 있는데.
정호 닫힌 공간에서 1:1로 주고받은 언사는 다소간 모욕성이 있다 해도 성립이 안돼. 이비서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면 될 걸, 뭐하러 굳이,응?
연희 도덕적으로도 하자가 없어야 한다며!
정호 적정선이라는 게 있잖아. 인상이처럼 심약한 애들이 바로 그걸 모른다는 거야. 늘 과하게 베풀다가 일을 그르쳐요. 지 주관이 있는 것두 아니면서 말이지.
연희 날 닮아서 저런 사고를 냈다?
정호 싸우지 말자고. 이 와중에 인상이가 부모 말에 순종해서 저렇게 따로 나가 준 거, 그거 하난 다행이잖아?
연희 거기서 조용히 맘 잡게 해야돼요.
정호 할 수 있어!
일각.
-인상, 핸드폰 만지작. 초조하다.
침실 앞.
정순 (쟁반-알약병과 물)이비서가 퇴근하면서 이거 꼭 챙겨드리라구 하던데요. 푹 주무셔야 한다구,
연희 아, 네, (받아든다)혹시 애가 밤에 깊이 안자면 어떡해요?
정순 저랑 교대하면서 봐야죠. 너무 걱정 말구 주무세요. 저는 애 보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연희 (그게 어떻게 좋아?)다행이네요(돌아선다).
아기방.
-아기는 침대에. 정순이 빈 우윳병 거두어 담고 혜옥이 잠옷 위에 스웨터 걸친다.
정순 언제든 인터폰 하세요. 협실에 이부자리 해놓을테니까 잠깐씩 주무시구.
혜옥 잘됐네요. 사실 보조 육아자가 있어야 해요. 아무도 거들지 않으면 애나 저나 다 힘들죠.
정순 그럼요.
거실.
-정순, 안채에서 나와 거실 탁자 위 빈 주스잔(김비서가 퇴근 전에 마신 것) 집어들고 식당으로 가면서 시계를 힐끗.
-열한 시 반 쯤.
정호 집 거실. 한밤중.
-현관. 박집사가 들어온다. 손전등 들고 있다. 정원 둘러보고 들어오는 길.
-박집사, 계단 옆 배전함 열고 스위치 내리자, 벽등만 남기고 꺼진다.
인상 방.
-봄, 리모컨 눌러 천정등 끈다. 머릿등만 남는다.
거실.
-또 다른 스위치 내리면 안쪽 복도의 등도 몇 개만 남는다. 어둑해지면서 더욱 깊어보이는 복도.
인상 방.
-봄, 핸드폰 쥔 채 낮은 불빛 아래 모로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는다.
식당.
-박집사, 주방에서 나와 둘러보고 안쪽을 향해 손짓.
-엉거주춤 나오는 인상.
-박, 자세 낮추라는.
-인상, 거의 앉은걸음.
-인상, 박집사에게 핸드폰 건넨다.
거실.
-계단 옆. 박집사와 인상이 식당에서 나온다.
-인상이 계단 쪽으로 가고, 박집사가 안채 쪽을 살펴준다.
-계단 중간. (인상의 방과 이지 방이 갈라지는 곳). 인상이 막 굽이를 돌아 올라가고, 이지가 반대편 굽이에서 나온다.
-계단 아래 박집사, 조마조마.
-내려온 이지, 식당으로.
-이지가 식탁에 쟁반 놓고 나와서 계단 향하면,
-계단 옆의 박집사, 식당 측면 출입구로 들어간다.
인상 방 앞.
-인상, 숨죽이고 손잡이 만진다.
인상 방.
-조용히 문이 열리고 인상이 들어온다.
-봄, 침대층 계단 꼭대기에 서 있다. 한쪽 손 벽을 짚은.
-인상, 봄을 보자 맥이 풀리면서 눈물이 돈다.
-둘, 선 자리에서 마주 보며 무언의 대화.
봄 (한인상, 보고 싶었어)
인상 (나 밉지 않니?)
봄 (벽에 머리 기대자 눈물 터진다. 얼른 올라와. 나 좀 안아줘)
인상 (그러고 싶어서 왔어)
-인상이 다가가고, 봄은 기다리고,
-부둥켜안는 둘. 울면서 마구 입맞춘다.
-잠시 후, 인상, 문 밖을 내다보며 동정을 살핀다. 인상 뒤에 서 있는 봄. 긴장.
-인상, 봄을 부축하여 나간다.
아기방 뒤 쪽 복도.
-창을 사이에 두고, 정순이 봄과 인상에게 아기를 보여준다.
-인상과 봄, 아기 머리, 뺨, 보에 싸인 발 등을 애틋하게 만지며 눈물. 아기는 한없이 예쁜데, 우리가 이렇게 가슴 아파야 할만큼 큰 죄를 지었나?
-정순, 입모양으로 ‘이만 가’...
인상 방.
-인상과 봄, 침대에 나란히 기대 앉아 나직나직. 인상이 종이에 집안 지도를 그려보이는 중.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
-1층, 2층 평면도 비슷하게.
인상 애기방이 여기고, 이 방은 여기,
봄 너무 멀어...
인상 어. 혼자서는 위험해. 아저씨 아줌마가 도와주셔야지. 여기가 부모님 방이거든...침실, 아빠 서재, 이쪽으로 지나가면 직방 걸리지.
봄 어쩌다 이렇게 큰 집에 살게 됐어?
인상 몰라, 태어나니까 이런 집이었어...할머니가 옛날집을 사가지구, 원래 집 옆에다 옮겨 붙이셨대.
봄 집을 들어서 옮겼다구?
인상 분해해서 실어 나른 다음에 다시 맞추는 거지.
봄 너네는 왜 부자야?
인상 몰라, 원래 그랬어. 그리구, 여기는 응접실인데, 너 좋아하는 책이 좀 있을거야. 아 여기, 여기가 이 집에서 젤 편한 데야.
봄 뭔데?
인상 아줌마 방. 클 때 여기서 젤 많이 놀았어. 엄마 몰래.
봄 (그래서 우리편이구나)
인상 식구들 다 잘 때 놀러가. 이거(평면도), 잘 외워두구. (협탁 위 봄의 수첩 집어 펼친다)여기 적어 놓은 거 중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 봤거든? (수첩 눈으로 훑다가 손끝으로 짚는다)어, 이거랑 이거, 이거,
-‘요가, 맛사지, 자주 웃기’
봄 이거랑 이거(요가, 맛사지)는 연습을 해야 돼, 같이 할려면.
인상 그럼 지금은 그냥 웃어보까?
-둘, 서로 웃어보이다가 목이 메어 외면.
봄 애기 이름 적어놨어. 맨 뒷장에.
인상 (넘겨본다)
-진영.
봄 평범하구 순하게. 바우 돌쇠 그런 수준.
인상 좋은 거 같애...착해보여...(새삼 슬퍼져)
봄 너, 그런 공부 왜 해야 돼?...
인상 할아버지 아버지가 하셨으니까.
봄 ...대단하다.
인상 그런가봐.
봄 내가 너희 부모님한테 안먹힐만 해...여기서 나가구 싶어. 애기랑,
인상 나는!
봄 너는,
인상 내가 젤 불쌍한데. 나, 너, 애기, 셋 중에 내가 젤 등신인데.
봄 그러니까 성공해. 대단하게.
인상 (봄을 확 안으며 입맞춘다)
봄 (얼핏 피하지만)
인상 (격렬해서)
봄 (응한다)
-모로 포개 누워 있는 둘.
인상 어디 가지 마. 결혼한다 그랬잖아. 니 집에 갔을 때.
봄 그때 실은 안믿었어. 결혼하겠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대사 너무 많이 나와서.
인상 지금은...지금은 믿어?
봄 ...
인상 만 19세면 부모님 허락 없이 할 수 있어.
봄 19세 넘어두 부모님이 반대해서 헤어지는 사람들 많아.
인상 그건 사랑이 식은 거지. 아니면 첨부터 아니었거나.
봄 넌 어떤데?
인상 나는 진짜지! 너랑 같이 그 힘든 것두 해냈는데!
봄 (일어나 앉는다)맞아.
인상 (따라 앉는)
봄 노력해볼래. 그 힘든 것두 해냈는데!
인상 (봄의 손 부여 잡는다)같이 잘,
봄 (끄덕)
침실.
-등 돌리고 자는 정호와 연희. 마음이 편치 않아 둘다 선잠.
식당.
-정순이 거실 쪽에서 들어온다. 식탁 위 이지가 갖다 둔 쟁반 들고 주방으로.
정순 방.
-정순이 조심스레 들어온다.
-박집사, 웅크려 졸다가 벌떡 일어난다.
박 어, 애기 자?
정순 방금 교대했어...인제 보내야 하잖아?
박 (시계보고는)아이고,
정순 문자 해. 가야한다구.
박 전화기 두 개가 다 그 방에 있네.
정순 받아놨어야지. 데리구 내려와, 사달 나기 전에.
인상 방.
-어깨에 담요 두른 봄, 소파에 앉아 있고,
-인상이 큼직한 상자 열어보인다
인상 이런 거 알아?
봄 엉? 너...(순정 덕후였어?!)
-순정만화의 역사가 한 가득. 주로 고전. 제목의 ‘올훼우스’, ‘베르사이유’, ‘아르메니안’, 등등의 글자들 보인다.
인상 (멋쩍게 웃음)어....
봄 (반가운)왜 말 안했어...
인상 니가 싫어할까봐.
봄 이걸 어떻게 싫어해, 인간의 탈을 쓰구(한권 집어든다)
인상 그러게.
봄 (넘기는)엄마 땜에 알게 됐어. 엄청 봤지...근데 나 아직 글자 많이 보면 안되는데(덮는다)
인상 방 앞.
-박집사, 손잡이 돌려본다. 잠겨 있다. 노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전긍긍.
-잠시 후, 박집사, 다가온다. 조심스레 열쇠 넣어 돌리는.
인상 방.
-소파. 봄은 인상의 허벅지 베고, 인상은 길게 기대어 자고 있다. 여기저기 만화책. 둘이 각자 삼매경에 빠진 끝에 잠들었다.
-박집사, 쯧쯧쯧, 잠시 보다가, 인상을 깨운다.
박집사 어이...어이,
-둘, 벌떡 일어나 앉는다.
박집사 저기, 방해해서 미안한데, 인제 그만(가자고),
인상, 봄 (벙하니 듣다가 마주 본다. 가야된대...)
박집사 문 앞에 있으께.
-박집사가 나가자
-인상, 급히 일어나 움직인다. 서랍장 맨 아랫칸에서 헌 노트북과 연결선, 마우스, 패드 등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는다.
-봄, 꿈 깨어 현실세계를 본다.
봄 뭐해?...
-인상, 선을 연결하고, 전원 확인, 인터넷 확인. 주변 기기 다시 한번 확인하고 봄의 앞에 몸을 낮추어,
인상 핸드폰대신 이걸로 연락해. 구형인데, 쓴 적이 별로 없어. 거의 새 거야.
봄 인제 가는 거네?
인상 도착해서 메일하께. 무슨 말이든 써 보내.
봄 어,
-인상, 봄의 어깨 잠깐 잡아주고 문으로,
-봄, 일어서고, 인상, 문 손잡이 잡고 돌아본다.
봄 들키지 마.
인상 (끄덕)
-인상, 나간다.
봄 (갔구나...)
계단 중간.
-인상이 내려오자, 박집사, 수신호. 내가 저기(거실)서 신호하면 내려와. 인상, 끄덕.
인상 방 앞.
-봄, 내다보고 있다. 멀어지는 인상의 기척을 들으려는.
식당. 이른 아침.
-박집사, 주방 입구에서 손짓. 인상, 측면 출입구 들어선다. 박집사, 주방으로 사라지고, 인상, 주방 향하는데 연희가 다가오는 모습 보인다. 인상, 잠깐 당황, 서지도 가지도 못하다가,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연희,들어온다.
일각.
-박집사, 소리없이 탄식. 간발의 차이.
식당.
-연희, 식탁 한켠에 놓인 차를 따르고,
-식탁 아래. 인상, 웅크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도 연희 눈에 뜨일 것 같다. 인상, 고민 끝에 자세를 바꿔보려 시도.
-정호가 들어온다.
정호 당신두 깼나...
-식탁 아래 인상, 얼어붙는다. 엉거주춤 등과 한쪽 다리를 상판에 붙인 초인적 자세. 꼼짝할 수가 없다.
연희 차 할래요?
정호 어,
-정호가 의자에 앉고, 연희는 새 잔에 차 따른다.
-식탁 아래. 바들바들 지탱하는 인상 코 앞에 정호의 무릎.
일각.
-박집사, 저러면 안되는데,
식당.
-박집사 나온다.
박 어떻게 두 분 다,
연희 그러게요. 잠을 깊이 못 자서,
박 차를 내실로 갖다 드릴까요?
정호 아니, (벽시계보고는)조간 왔겠네.
박 네,
-박, 급히 현관으로. 어쩌나.
-식탁 아래. 인상, 안간힘.
계단 중간.
-난간에 붙어선 봄. 목을 조금 빼고 거실 쪽을 본다.
-박집사가 현관 내려서는 것이 보인다.
거실.
연희 엄박사가,
정호 (눈짓 제지)
연희 ?
정호 인상이가 많이 힘들겠지?
연희 당신 갑자기 왜,
정호 우리가 인상이한테 표현이 좀 인색했어.
-식탁 아래, 뻗듯이 나동그라지는 인상.
연희 (소스라쳐)여보!
정호 (지그시 본다)고생 많다, 한인상.
계단 중간.
-봄, 철렁. 걸렸어!
연희 소리 인상이 너!
식당.
-인상, 허겁지겁 기어나오고,
-연희, 세상에,
-정호, 차 한모금.
정순 방.
-정순, 급히 윗도리 걸치고 나간다.
거실.
-박집사가 신문들 거실 탁자에 놓고 식당으로.
-계단 중간의 봄.
하늘.
-먼동 튼다.
식당.
-인상이 정호 앞에 무릎 끓고 앉아 있다. 연희는 외면. 분하다.
-정순이 전전긍긍. 박집사 들어온다.
정호 간단히 정리 하자. 내년도 1차 시험 전까지는 집에 오지 마.
인상 ...
연희 대답하지?
인상 그건 안되겠어요.
다들 ??
연희 안된다구 했어, 지금?
인상 네...
정호, 연희 (기가 막힐 노릇)
봄 저기,죄송합니다.
다들 (돌아본다)
-봄이 측면 출입구에 서서 목례. .
-연희와 정호, 아연.
-인상, 일어선다.
-봄이가 어기적 다가오고,
-정순과 박집사, 한켠으로 비켜선다
인상 서 봄...
봄 인상이가 집에 못온다면, 대신 제가 공부방으로 가서 만나면 안될까요?
연희 (뭐라고?)
봄 일주일에 한번, 아니 열흘에 한번이라도,
인상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다른 거 다 할 수 있어요.
정호 도대체 넌 인상이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
연희 그래, 어디 한번 솔직히 말해 봐요. 애초에 무슨 생각으루 인상이한테
접근했어?
봄 (무참하다)
정호 여보, 워딩에 신경써요.
연희 솔직해야죠.
봄 접근, 그런 게 아니라요, (인상을 본다)
인상 (용기. 고개 든다)다 좋지만, 저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게 젤 좋아요. 이 험한 세상에.
연희 니가 무슨 험한 세상을 겪었다구,
정호 사랑이라구 했냐?
인상 네.(봄이를 본다. 너도 얘기해)
봄 네. 아무리 생각해두, 제가 인상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제가 여기 갇혀 있을 이유가 없어요.
정호 가, 갇히다니, 누가 너를 가뒀다는 거야.
연희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인상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희는 서로 사랑합니다.
봄 만나게 해주시구, 제가 애기한테 직접 수유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젖이 붓기 시작해서요.
인상 (봄의 손 더듬어 잡는다)
-방금 출근한 선숙, 태우. 태우가 모시고 온 엄박사가 들여다본다. 분위기가 어째 좀,
-혜옥도 아기 안고 기웃.
-측면 출입구의 이지, 중얼.
이지 (진심)좋겠다,
-봄과 인상, 잡은 손에 힘주며 얼핏 마주본다.
-정호, 망연자실. 연희는 눈물이 글썽. 내가 못해본 걸 저것들이 다 하잖아.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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