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의 전설 20
[애잔한 음악]
한 가지만 약속해
가면서 내 기억 지우지 않겠다고
왜?
너도 그랬잖아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사랑하는 게 낫다고
너랑 추억할 게 있으니까
보내 줄 수 있는 거야, 나
그럼 네가 너무 가여워지잖아
난 평생 못 돌아올 수도 있어
그럼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계속 기다려야만 하잖아
만약에 네가 평생 돌아오지 못하면
내가 다시 태어날게
너도 그렇게 해
내가 말했잖아
내 사랑은
내 시간보다 더 길 거라고
네가 편해졌으면 좋겠어
서로를 기억하고 있으면
돌아오는 길은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그래서
결국 다시 만날 거야
좋아
그럼 네가 선택해
지우든
남기든
네가 선택하라고
선택했어
(남두) 어디 가, 이 시간에?
아, 뭐야, 잠깐 나가 있으라더니 뭐, 둘이 싸운 거야?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잠깐 어디?
[잔잔한 음악]
그동안 고마웠어요, 모두들
언니, 그거 밍크죠?
어머, 아가씨, 알아보네, 신상이야
언니는 참 애견인이라는 사람이...
뭐라고요?
그런 코트 하나 만드는 데에
작고 귀여운 밍크들이 몇 마리나 죽어야 하는지 아세요?
(시아) 그것도 산채로, 고통스럽게
그러는 아가씨의 그 두툼하고 패셔너블하지 못한 파카는
오리털 아니에요?
아니, 밍크만 불쌍하고 그 파카 속의 오리들은 안 불쌍해요?
걔네들도 털 깎는 거 아니래요
하나씩, 하나씩 다
(진주) 하나씩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뽑는대요 [동식의 따끔한 신음]
응, 응? 얼마나 아프겠어, 그렇지? [동식의 따끔한 신음]
이렇게, 이렇게, 아프지, 아프지? [동식의 따끔한 신음]
아가씨, 차라리 연애를 해요, 빨리
- (동식) 참아 - (시아) 아, 진짜, 언니
(시아) 아, 말이 안 통해, 진짜
(동식) 미안해, 내가 미안해, 어?
(시아) 어머, 너 여기 웬일이야?
(진주) 저, 그 아가씨 아니야? 허준재 씨 여친?
맞네
(시아) 허준재 여친인데
다른 남자한테 짝사랑까지 받으신 분이죠
너 좋겠다, 얘 태오 핸드폰에 네 사진이 가득이야
그거 좀 네가 지워 줘
놔뒀겠니, 지웠지
잘했어
(시아) 내가 너한테 칭찬 들으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여기 웬일이야?
내가 어디를 좀 가
그래서 모두에게 인사 좀 하고 싶어서
어디를?
어디를 가요?
[잔잔한 음악]
[심청의 놀란 신음]
여기서 먹었던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 거야
안녕
안녕
꼭 다시 와
벌써 가게, 언니?
너 아직 나 알아?
그럼, 왜 몰라?
어? 알면 안 되는데
그러는 거 아닌데
뭐가?
아무래도 넌 이상해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 내 목소리를 듣는 것도 그렇고
왜?
나 꿈에서 언니 봤는데
- (심청) 나를? - (유나) 응
[애잔한 음악]
[아이들이 소란스럽다]
(세화) 도와줘
도와줘
그리고 그 꿈속에서 언니는 인어였어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다고?
응
꿈속에서 우리 아빠는 어부였고 우리 엄마는 인어였어
신기하지?
(유나) 난 바닷속에 있는 인어들이랑
[유나가 사람들을 부른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어
오늘은 배 타고 나가시면 안 돼요
큰 폭풍우가 올 것 같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전 그냥 알아요
(어부1) 얘 말 듣자고 지난번에도 귀신처럼 맞혔어
덕분에 구사일생했다니까
(어부2) 그래 맞아 지난번에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생각하는 신음]
꿈에선 그냥 다 좋고 행복했나 봐
그 꿈 꾸고 일어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거든
다행이다
(유나) 뭐가?
전설이 아니었나 봐
정말 있었던 이야기인가 봐
(심청) 기억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나만 기억하는 우리의 이야기
슬퍼지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지킬게
간직할게
그리고 돌아갈게
[몽환적인 음악]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놀란 숨소리]
[힘주는 신음]
[반짝이는 효과음]
[밝은 음악]
(유란) 밥들 먹어
[남두의 탄성]
(남두) 냄새 끝내 준다, 와
내가 어머니 때문에 집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준재) 떠나라고, 제발
추위 끝나면 나간다 더위 끝나면 나간다
벌써 3년 지났거든
나가긴 어딜 나가
(유란) 괜히 나가서 집세 내버리지 말고 다들 장가갈 때까지 여기 있어
(준재) 엄마
감사합니다, 어머님
야, 좀 냅둬라
내가 평생 '어머니' 불러 볼 일이 없었는데
요새 겨우 불러 보고 사는구먼
나도
태오, 너도?
[준재가 혀를 쯧 찬다]
(남두) 야, 근데 우리 왜 항상 이 자리는 비워 두고 밥을 먹냐?
습관이지, 뭐
(남두) 뭐, 그렇긴 한데
아, 근데 꼭 유독 이 자리만 비워 놓고 밥을 먹으니까
꼭 여기 뭐, 누구 자리 주인 따로 있는 것 같고
이상하지 않냐?
[남두의 웃음] (준재) 이상할 것도 많다
[남두의 웃음]
[흥미진진한 음악] [경찰차 사이렌이 들린다]
[카드 키 인식음]
(검사) 누구?
(보좌관) 아, 거 오늘부터 로스쿨 학생들 검찰 실무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 방 배정받으셨나 보다, 맞죠?
네, 허준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주) 이 언니 아들이 글쎄
자기 집을 이 언니한테 다 양도하고
휴학했던 학교도 다시 졸업하고
그리고 또 로스쿨까지 간 거 아니야 검사 된다고
(회원1) 어머, 어머, 어머, 세상에
(진주) 아, 근데 이 언니는 또 그 자기 지분의 반을 쪼개서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 만들었지
대안 학교도 만들었지, 아
너무 대단하세요
그렇지?
(회원2) 대단하세요
(유란) 뭘요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때 가출해서는
고생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그 정도 지분이면, 언니
언니가 CEO 먹고도 남는 건데
내가 뭘 알아서
그런 거야 잘 아는 사람들이 해야지
(진주) 아, 이 언니가 이렇게 겸손하다
내가 이 언니를 보고 정말 깨우친 게 있잖아
사람 인생은 모른다
지금만 보지 마라
사람은 안 변해도 상황이 변하더라
(회원3) 맞아, 맞아
(진주) 아무튼 진짜 이 언니 덕분에
우리는 진짜 좋은 데 투자도 할 수 있었고
어유, 정말 이런 인연이 어디 있어
언니랑 나랑은 전생에 무슨
[익살스러운 음악] 어, 친자매?
어? 그런 거였을 듯?
[회원들의 웃음]
(진주) 어? 언니, 커피 없어요? 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아니야, 내가 할게
(진주) 아휴, 언니는 진짜 왜 그래요, 자꾸
내가 갖다드려야지, 앉아 계세요
어, 맞다
애플 망고 잘 드시던데 애플 망고 더 드릴까요?
그럴래, 그럼?
알았어요, 기다려 봐
[함께 웃는다]
(검사) 자, 밥을 누가 먼저 먹으러 갈까?
(보좌관) 먼저 드시고 오시죠
[검사의 헛기침]
실습생, 그럼 우리 먼저 먹고 올까?
(준재) 왜 식사를 같이 안 하시고 따로...
실습생, 너 검사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뭘 거 같아?
아무래도 정의감?
(검사) 그것도 중요하지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게 있어
절대 사무실을 비우지 않는다
네? 왜요?
아, 예전에 우리...
사기꾼들한테 사무실 털린 적이 있잖아
[흥미진진한 음악]
네?
아니, 어쩌다가...
(검사)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서 그렇게 된 거라니까
씁, 그게 한 3년쯤 됐나?
씁, 그렇죠
(검사) 이 자식들이 내 자리에 앉아서
검사인 척하면서 막 사람들 만나고 CCTV 자료 다 지우고
[문이 철컹 닫힌다]
오케이
와, 진짜요?
어휴, 저 여기 소름 돋는 것 좀 보세요
- (검사) 그렇지? - (준재) 아니, 어떻게
그런 발상들을 할 수가 있죠?
이 세상에 싸이코들이 많네요
(검사) 내가 5분만 일찍 왔어도 이 자식들 잡을 수 있었는데
[프로그램 작동음]
[자동차 경적이 울린다]
신호등이 고장 나는 바람에
(준재) 아이고, 아, 신호등
[혀를 쯧쯧 찬다]
저 정수기 AS 한다고 들어와 가지고
엘리베이터 수리 아니에요?
어, 그래, 엘리베이터 수리
너 어떻게 알았어?
그런 일들이 강남, 서초 쪽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어, 그래?
아이, 뭐, 아무튼 내가 원래부터 누굴 잘 믿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때 이후로는 더 못 믿게 됐잖아
(검사) 세상에는 말이다
참 별의별 사람이 많다
가자
에이, 나쁜 놈들 [책상을 쿵 친다]
제가 그런 놈들을 싹 다 잡겠습니다!
(사기꾼) 이게 뭐, 한 사람당 오백 정도의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검사님
이건 사기가 아니라
사업하다 보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경찰에서도 혐의 없음으로 송치해 주신 거고
근데 여기 나와 있는 사업장 주소 보니까 가정집이네요
예?
[리드미컬한 음악]
아, 그게...
계열사로 되어 있는 곳들도 마찬가지고
부가가치세 납부 연기 신청하신 거로 봐선
재정 상태도 부실하다는 건데
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사업하다 보면 뭐, 어려울 때도 있고 그게 사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기꾼) 그리고 저희는 그 사람들한테
원금 보장해 준다고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준재의 화난 한숨]
'보상 플랜, 연금화 물품대를 수당에 포함해 지급'
이게 다 원금 보장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물품 거래 없는 자금 수신임을 입증하는 거고
정상 거래라면 물품 대금을 수당에 포함할 이유가 없죠
물품 대금이랑 수당은 다 판매자가 받아야 되는 돈인데
이 둘 관계가 포함 관계라면
(준재) 스스로 주고 스스로 받으라는 거 아닙니까?
여기 이분, 최 사장님
요즘도 마카오에서 자금 세탁 하시죠?
도박도 하시고
내가 이분 최근에 얼마 잃었는지를 좀 아는데
이건 피해액 오백에 10명짜리 사건이 아니고
그 10명의 10명
또 그 10명의 10명
(준재) 최소 3천 명 이상 연루돼 있는 100억대 이상의 사건인 거 같은데요
[사기꾼의 헛기침]
(검사) 너, 진짜 그쪽에 아는 사람 있는 거야?
아니에요
그냥 이, 오다가다 주워들은 건데
(검사) 씁, 아니던데, 너 그게 아니던데
[생각하는 신음]
내일 뵙겠습니다
(준재)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뭐지, 쟤?
어떻게 알고 왔대
바쁘다고 연락도 없더니
야, 너는 했냐, 너는
공부가 힘드냐, 얼굴 좀 빠졌다
공부가 힘들지, 그럼 막 쉽고 재밌어서 하는 줄 알아?
[피식 웃는다]
그래도 네가 마음잡아서 다행이지
한참 정신 나가서 이상한 소리 하고
뻑하면 사라지고 잠적하고
그때 나 솔직히 겁나더라
그 사실 네가 당한 일이
보통 멘탈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이 자식이 이거 이상해진 거 아닌가 싶고
뭐, 이제 기억도 잘 안 나요
쩝, 그때 일은 기억하려고 해도
잘 안 나, 기억이
[콧방귀를 뀐다]
요새 조남두는 뭐 하냐?
(남두) [흥얼거리며] 탈법인 듯 합법인 듯 탈법 아닌 너
[익살스러운 음악] 강의를 맡게 된 스타 강사 조남두입니다, 안녕하세요
아, 탈법과 합법 사이 그 애매하고 오묘한 경계를 잘 타는
인생의 참 지혜를 알려 드리는 시간
그 첫 번째 주제는요
세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어, 사실 이 부분은 좀 예민한 부분이라
제가 평소 잘 다루지 않는 부분이긴 한데
오늘은 특별히 백화점 문센의 VIP 회원분들만 모신 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제대로 파헤쳐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두) 대신 녹음 안 됩니다, 촬영 안 되고요
듣고 새기세요 어디에? 여러분들의 가슴에
[사람들의 웃음]
(남두) 아,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엔 절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두 번째는 세금이다'
(남두) 지금의 조남두는 벤저민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어, 그래, 죽음은 피할 수 없지'
'어, 근데 난 세금 피할 수 있다'
알려 드릴까요?
[남두의 힘겨운 숨소리]
아,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나도 없이?
이모, 나도 순댓국 하나 주세요
너 저기 강의한답시고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아, 미쳤어요, 내가?
나중에 이 자식 손에 잡히느니 내가 손을 털고 말지
손 대신 입 터느라 내가 힘들어 죽겠구먼
[술을 쪼르르 따른다] 아니, 난 진짜
공무원이 갑자기 되겠다길래 난 농담하는 줄 알았어요
아니, 근데 진짜 검사되겠다고 로스쿨 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동표의 헛기침]
쯧, 이게 다 유유상종이라고
이게 내 덕분 아니겠냐
쩝, 허준재가 날 딱 만나고 보니까
아, 이 사람 참 괜찮거든
내가 저렇게 살아야겠다 내가 정말 내가, 응?
조남두처럼 살면 인생 망치겠구나
(동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겠지
그러다가 그런 결심을 딱 하게 된 거라고 본다, 난
잘못 보셨거든요
아니, 근데 진짜 뭐냐, 도대체?
(남두) 갑자기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을 한 게?
어, 그것도 검사 같은 고급 공무원 되겠다고
극단적인 결심을 한 게?
[잔잔한 음악]
[준재의 깊은 한숨]
(준재) 글쎄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게 기억이 잘 안 나네
아유, 잘 마실게요, 형사님
응
- (남두) 수육 하나 시켜 주세요 - (동표) 응
(동표) 여기 수육 하나 주세요, 수육 [잔이 쨍 부딪친다]
[동표가 술을 호로록 마신다] (남두) 많이 먹는다, 오늘?
(동표) 그리고 어, 너, 인마, 너
태오, 너, 인마
너도 이제 손 턴 거지?
아휴, 몇 번 말해요
태오 얘 이제 화이트 해커야
버그 바운티? 뭐, 그런 거 해요
뭐, 뭐가 먼, 그게 뭐야?
(남두) 기업들이 해킹당할 수 있나 없나 모의 공격 해 주고
그 보안도 강화해 주고 뭐, 그런 거 있어요
뭐, 뭐, 설명해 주면 아나?
(준재) 모르지
뭐 잘은 모르겠지만 너 이상한 거 하지 마라, 너 인마 [태오의 헛웃음]
뭐래
씁, 아, 근데 내 전화기 어디 갔냐
[술잔을 탁 내려놓는다]
[익살스러운 음악]
아이, 얘 또 시작했네
그거를 컨트롤을 컨트롤, 컨트롤 못 하냐?
[혀를 쯧 찬다]
[휴대 전화 조작음] 그 뭐, 없어진 거 없나 보세요, 다들
(준재) 아이고
어, 야
[태오가 수갑을 짤랑거린다]
(동표) 와, 이 자식, 이거
얘 취하면 원래 이러냐?
어, 수정아
(남두) 오빠야, 자?
아, 일해? 언제 끝나?
어, 야근이야?
[남두의 통화가 계속된다] (동표) 아휴, 아이고, 가야 되겠다
[동표의 힘겨운 신음]
어디 가?
왜 이래?
가지 마
(준재) 오늘
아무도
집에 못 가
인마, 뭘 못 가
야, 지금 가야 내일 출근해
- (준재) 안 돼! - (동표) 아, 왜 이래
못 가! [안주를 바닥에 탁 내던진다]
해 뜨는 거 보고 가!
(동표) 얘 왜 이래?
(남두) 왜 벌써 자?
아, 남편이랑?
아, 결혼했구나, 아, 미안하다, 야
(남두) 어, 얼른 끊어, 어, 행복하고 [준재의 괴로운 한숨]
[준재의 괴로운 한숨]
아, 얘 왜 이러냐?
[준재의 괴로운 한숨]
(남두) 아, 저게 또 왜, 왜 그러는데, 또?
하, 보고 싶어
누가?
[흐느낀다]
보고 싶어
[쓸쓸한 음악] (남두) 아, 쟤 또 술 확 깨게 만드네
형사님, 쟤 또 이상한 버릇 생겼어요
아니, 전에는 그냥 술 취하면 아무도 못 가게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뭐 이 정도였는데
울어!
다음 날 물어봐도 기억도 못 하고
[동표가 등을 토닥인다] 보고 싶다고
(남두) 아, 그러니까, 누가? 나도 좀 알자, 이 자식아
도대체 술만 먹으면 누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건데!
[흐느낀다]
[반짝이는 효과음]
[반짝이는 효과음]
[금고 버튼음]
(남두) 준재 아무튼 그때 그 사건 이후로 진짜 이상해졌잖아요
뻑하면 저 방 들어가서 문 걸어 잠그고 저러고 있지
해 뜨면 해 뜨는 거 본다고 바다 가
해 지면 해 지는 거 본다고 또 가
근데 왜 또 그러냐고 하면 자기도 모른대, 왜 그러는지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갈매기가 끼룩거린다]
[흥미로운 음악]
[파도가 철썩거린다]
여기다 두고 갑니다
저 배송 완료한 겁니다!
[오토바이 시동음]
[핸드 드라이기 작동음]
아, 볼일 보셔도 됩니다 [멋쩍은 웃음]
(심청) 볼일 보세요, 네
[핸드 드라이기 작동음]
[경쾌한 음악] [개운한 숨소리]
[힘주는 기합]
인쇼, 개좋아
어?
관광버스다
[버스 문이 쉭 닫힌다]
[깊은숨을 들이켠다]
아, 매연 냄새
(심청) 멸치 떼들도 여전하고
이제 좀 돌아온 거 같네
하, 어머, 저 건물은 언제 다 올라갔어?
하, 참
세월도 참...
씁, 가만있어 보자
이 가까운 데 금은방이 어디 있더라
(심청) 많이 파세요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너 어디서 왔니?
[인어의 놀란 신음]
[익살스러운 음악]
누구세요?
어느 바다에서 왔냐고
어떻게 아셨어요?
얘, 대답을 해, 질문은 내가 했잖아
제주 쪽에서 왔어요
제주랑 우도랑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요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배고파?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식당 주인) 들어오실 거예요?
(심청) 아휴, 놔, 놔, 놔, 놔, 놔, 놔, 놔, 놔
너 여기서 그렇게 먹었다가는
멍청이 취급당해
나 잘 봐
아, 나도 이거 몇 번 보기는 봤는데
(심청) 근데 너 여기 왜 온 거야?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밝은 음악] 저 가끔 중문 단지 놀러 나가고 그랬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만난 남자가 서울 산다 그래 가지고
보름 쎄빠지게 헤엄쳐서 여기까지 왔네요
그 사람이 오래?
사랑한대?
너보고 결혼하재?
딱히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앗!
쯧, 답답하네
아니, 확답을 받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뭍에 올라오면 뭐 어쩌자는 거야?
아휴, 얘 대책 없는 애네, 진짜
잘 들어
인어가 물을 떠나서 뭍에 올라온 순간부터
심장은 굳기 시작해
진짜요?
그래
물속에선 자동으로 네 심장이 뛰었지만
물 밖에선 아니란 얘기지
네가 숨을 쉬고 심장이 잘 뛰게 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널 사랑해 주는 거, 그것뿐이야
근데, 너 그 남자랑 그거 되겠니?
일단 만나면 어떻게든 되긴 될 것 같은데
내 전화를 안 받아요
만날 수가 없네
그래, 그러니까 회 한 접시 먹고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고 얼른 들어가
그럼 언니는 그런 남자 만나셨어요?
만났지, 나는
나밖에 모르는 아주 잘생긴 바보를 만났어
그래서 심장도 두근두근 잘 뛰었고
근데 바다는 왜 갔어요?
아무리 심장이 잘 뛰어도 총 앞에선 소용이 없더라고
헉, 언니, 언니, 총 맞았어요?
[신비로운 음악] 내가 맞아 보니까 알겠더라고
상어랑 돌고래랑 왜 한 방에 가는지
야, 야, 그 총 안 맞아 봤으면 그 말을 마라
내가 그거 어? 회복하느라고
저 바다 깊은 데 가서 몸에 좋은 거 다 먹느라고 내가 진짜
하, 오랜 세월 재활에 힘썼지
근데요
총은 왜 맞았어요?
그 남자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서 결국은 지켰고 나 후회 안 해
그 남자는 어디 있는데요?
언니 돌아온 거 알아요?
[초인종이 딩동 울린다]
[문이 철컥 열린다]
(남두) 아휴, 추워라
[문이 철컥 열린다]
아휴, 누구세요?
누구시냐고요
아...
아, 저,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아, 저희 종교 있습니다
[초인종이 연신 울린다]
[남두의 짜증 내는 신음]
(남두) 추워 죽겠는데
아, 뭐예요?
종교 아니면 뭐 우유, 정수기, 신문, 뭔데?
아니요, 다 아니고요
혹시 허준재 안에 있어요?
[고민하는 신음]
잊으세요
네?
잊으시라고요
아가씨가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준재한테 속으신 겁니다
뭘...
이 자식이 뭐 또 1월 1일에 해 뜨는 거 보러
동해 바다 가자 그랬죠?
그렇게 꼬셨죠?
가 가지고 또 그냥 뭐 바다만 보고 왔죠?
그리고 연락 뚝 끊고
그러니까 그게 괜히 멋있어 보이죠?
그게 걔 수법이에요
뭐 정초부터 똥 밟았다 생각하시고 그냥 잊으세요
내가 보니까 낯이 익고 동생 같아서 충고하는 거예요
예
(유란) 누구세요?
(남두) 아, 어머니
[애틋한 음악]
(남두) 그, 이 아가씨가 준재 찾아왔는데
내가 돌아가시라고 설득하고 있는 참이었어요
준재 찾아온 손님을 왜 가라고 해? 너도 참
들어가서 기다려요
[감격한 숨소리]
[심청이 훌쩍인다]
저 화장실 좀 쓸게요
아, 화장실은...
씁, 뭔가 이 집 구조를 잘 아는 것 같죠, 어머니?
마치 제집처럼
그러네
(남두) 허준재, 이 자식 우리 아무도 없을 때 데려왔었나 봐요
아, 이 엉큼한 자식
[휴대 전화 진동음]
[이어폰 조작음]
누구?
아, 몰라, 여자인데 뭐, 머리 길고 예뻐
네 스타일이긴 하다
(남두) 아, 아직 통성명은 못 했고
야, 너 뭐 사고 치고 그런 거 아니지?
[다가오는 발걸음] 어
(남두) 어, 그래, 와라, 얼른
[휴대 전화 조작음]
이름이 뭐예요?
청이에요, 심청
아, 장난치지 말고
진짜인데, 내 이름 심청인데
아, 부모님이 전래동화 좋아하셨나 보다
집은 어디인데요?
[피식 웃는다]
멀어요
나도 멀어요, 우리 집
남양주잖아요
그러니까
[경쾌한 음악] 어떻게 알았지?
[놀란 신음]
이거 뭐예요?
(남두) 이거 진짜? 진짜 비취옥?
[피식 웃는다]
왜 웃어요?
사람은 잘 안 변하는 것 같아서요
그게 좋아서
[놀란 탄성]
[남두가 껄껄 웃는다]
[문이 철컥 열린다]
[문이 철컥 닫힌다] (남두) 차시아!
어머니, 저 왔어요
누구?
아, 아이, 뭐, 잠깐 뭐 방문하신 분이야
아, 그렇구나
- (시아) 그 사람 아직 안 왔지? - (남두) 어
야, 근데 너 이거 꼭 네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야 되겠어?
(시아) 뭐 어때? 요즘은 여자가 더 많이 한대
[밝은 음악] (남두) 아니
야, 그래도 남자가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시아) 저 손님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왜요,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결혼해요?
아, 네
누구랑요?
이 집에 사는 남자랑요
이 집에 남자가 셋 살잖아요 그중 누구랑요?
이 집에 남자 셋 사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준재가 그래요?
누구랑 결혼해, 차시아?
[놀란 신음]
(시아) 어머, 내 이름 차시아인 건 어떻게...
나, 내 소개 안 한 거 같은데
혹시 허준재랑 결혼해?
[의미심장한 음악]
하면 뭐요?
[시아가 피식 웃는다]
이 여자, 준재 빠야?
어, 아무래도 그런 듯
쯧, 포기하세요, 걔는 못 넘어뜨려
(시아) 절대 이길 수 없는 여자가 추억 속의 여자인 건 알죠?
허준재는 추억 속에 어마어마한 여자가 있나 봐
절대 못 이겨요
씁, 참고로 내가 결혼하는 남자는...
허준재 아니면 됐어
[리드미컬한 음악]
[시아의 헛웃음]
아니, 나 왜 이렇게 지금 기분이 나쁘지?
아휴
(남두) 아니, 그래서...
야, 어떻게든 남자가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
그, 분명히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의미심장한 음악]
[문이 철컥 열린다]
[문이 철컥 닫힌다]
(유란) 준재야, 손님 오셨어
[애절한 음악]
누구시죠?
(심청) 더 멋있어졌네, 허준재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누구시냐고 묻고 있는데요
네, 저는...
(심청) 난 네가 너의 모든 시간보다
더 길게 사랑해 주겠다던 사람
(시아) 뭐야, 왜 말을 안 해
아휴, 그러게 준재는 또 기억도 못 하네
(남두) 아이고, 참 어떡해
[안타까운 한숨]
무슨 일로 여기 오신 겁니까?
그게 그냥...
(심청) 나 이제 괜찮다고
건강하다고 알려 주고 싶어서
그리고 보고 싶어서
나를 알아요?
(심청) 어, 세상 누구보다 널 알아
아니요
그냥 막...
잘 아는 건 아니고
(심청) 그냥 예전에 아주 잠깐
아주 잠깐 알았었는데
허준재 씨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래요?
그런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서 오신 겁니까?
(심청) 사랑해
아니요
그냥...
(심청) 사랑해
뭐, 다른 할 말은 없어요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심청) 사랑해, 허준재
그렇군요
근데 어쩌죠?
제가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집에 차 두고 가려고 잠깐 들른 거라 다시 나가 봐야 될 거 같은데
네
(시아) 안 돼, 준재야
나 오늘 태오한테 프러포즈도 하고 결혼 발표도 할 건데
[남두의 호응하는 신음] 어디 가려고?
(준재) 미안, 너희들끼리 해
축하한다, 차시아
준재야 그래도 손님을 이렇게 놔두고...
[문이 철컥 닫힌다]
(심청) 저, 실례했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문이 철컥 닫힌다]
[부드러운 음악] [자동차 경적이 들린다]
아, 뭐야, 방금 나갔는데 어디 간 거야
[종이 짤랑 울린다]
여기 잠깐만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심청) 허준재, 빨리 와
(심청) 넌 지금 이대로 편안하고 좋아 보이는데
난 괜히 돌아온 걸까
(준재) 왜, 또 돌아가게?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였어?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지는 거
그래서 나조차 너를 잊는 거?
이럴 거면서 지우긴 왜 지워
내가 그러지 말랬잖아
정말 날 기억해?
그래
이 세상에서 나만 널 기억해
[애절한 음악]
어떻게?
(준재) 바보야
백 번을 지워 봐라
내가 널 잊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네가 놓친 게 있더라
내가 너랑 어딜 갔고 뭘 했고, 뭘 먹었고
네가 어떤 말을 했고
언제 웃었고, 얼마나 예뻤고
이런 건 지울 수 있었는지 몰라도
나한테 너를 지울 수는 없었다는 거
너는 그냥
내 몸이 기억하고 내 심장에 새겨진 거라서
그건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였어
그래도 노력했어
혹시라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정말 잊어버릴까 봐
그래서
매일매일 잊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준재) 모든 걸 기록해 왔어
네가 떠나기 훨씬 전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면 그래서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린다면
너를 기록 속에서라도 찾을 수 있게
[신비로운 효과음]
[텔레파시가 울려 퍼진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파도가 철썩인다]
[총이 철컥 장전된다]
[경찰차 사이렌이 울린다]
[총성이 탕 울린다]
(준재) 그리고 네가 사라진 후
희미해지는 기억의 퍼즐들을
난 용케 붙드는 데 1년
[갈매기가 끼룩거린다]
네가 있을 만한 바다를 찾는 데 또 1년
(준재) 아, 이 집은 너무 바다랑 멀어서
이게 길이 이렇게 이어져 있으면 좋겠거든요
(공인중개사) 이거는?
씁, 집이 너무 큰데요
아, 이거는 너무 좁은데
이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 여긴 인적이 드물어서
[공인중개사의 헛기침]
[공인중개사가 집을 설명한다]
(준재) 그 바다 곁에 너와 함께 살 집을 준비하는 데
마지막 1년
누구?
(남두) 아, 몰라, 여자인데 뭐, 머리 길고 예뻐
네 스타일이긴 하다
아, 아직 통성명은 못 했고
야, 너 뭐 사고 치고 그런 거 아니지?
어, 그래, 와라, 얼른
[통화 종료음]
드디어...
[안도의 한숨]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하, 드디어...
[코를 훌쩍인다]
(준재)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오늘이 왔어
[문이 철컥 닫힌다]
(유란) 준재야, 손님 오셨어
[애절한 음악]
왜 그랬어?
난 정말 못 올 수 있었어
그러면 어쩌려고
그럼 평생 이 세상에서 나만 널 기억했겠지
나만 널 사랑하고
[애틋한 음악]
전부 다 그대로네
전세 만기도 지났을 텐데
지났지
같이 짐 옮겨 줄 사람이 안 와서
그냥 사 버렸지, 여기를
[심청이 피식 웃는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먼 길 오느라
포기하지 않고 돌아오느라
수고했어
이번에 또 지울 거 아니지?
네가 기억을 백 번을 지운다고 내가 지워질 기억은 아니지만
아,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거든
치, 안 해, 안 해
[준재가 피식 웃는다]
아니야, 취소
내가 입이 방정이다
이번 건 지워 줘도 될 거 같아
[심청의 새침한 신음]
[밝은 음악] 왜, 이리 와 봐
(준재) 와 봐
[함께 웃는다]
하, 깜짝이야
(거지) 뭐 찾아요?
이쪽은 옷이 좋고
저쪽은 신발이 괜찮죠?
(거지) 잘 아시네
아니, 근데 이미 되게 잘 차려입으신 것 같은데
여긴 뭐 찾으러 왔어요?
너 찾으러
나?
응, 보고 싶었거든
[경쾌한 음악] 난 그쪽이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왜냐면 우리가 지금 초면이니까
초면이고 우연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그 우연을 소중히 생각해야 좋은 인연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라고
[놀란 숨소리]
아, 나 사실 되게 낯가리는데
나랑 철학이 맞는 분이네
어,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
그래요, 그럼
내가 여기...
응, 알아, 월, 수, 금에 오잖아
내가 시간 맞춰서 올게
내 스토커예요, 혹시?
내 뒤밟아?
아니야, 나 좋아하는 남자 있어
아, 연애하는구나
씁, 어떤 단계?
아휴, 러브에는...
(심청) 3단계가 있지
로맨틱, 핫, 더티
[놀란 신음]
그걸 어떻게...
나는 지금 로맨틱은 아니고 한 핫 정도 되는 것 같아
조만간 더티를 노려봄 직한 그럴 만한 남자라고 할 수 있지
아니, 우리 무슨 소울메이트야?
우리 느낌 너무 통한다
자주 봐요, 우리
[흐뭇한 웃음]
겨울밤이 짧지가 않다, 자기야
왜 이래? 나 검정고시 봐야 되는 거 알면서 [책을 탁 편다]
아, 그러면 침대에서 해, 침대에서
뭐가 어려워, 내가 다 알려 줄게
너희 인간들이 하는 거 중에 나한테 어렵거나 못할 거 없거든
그럼 더더욱 뭐가 문제야, 어?
[심청의 놀란 비명]
[밝은 음악]
[심청의 놀라는 신음]
허준재 씨는 토론, 기록 검토 등
자체 시험 성적이 아주 매우 우수하군요
뭐, 특별히 어떤 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까?
네, 저는 지방 지청의 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경치 좋은 곳 기왕이면 바다랑 가까우면 더 좋고요
(준재) 예를 들어 제가 몇 년 전에 속초 쪽에 자그마한 집을 사 뒀는데
어, 그쪽에서 초임을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준재) 마침내 우리는 꿈을 이루었다
[신비로운 음악] [갈매기가 끼룩거린다]
별거 없고 별 소식도 없고
별일도 없는 그런 시시한 마을에서
아주 시시하게 살고 있다
(준재) 너무 먹는 거 아니야?
이게 지금 내가 먹는 거로 보여?
(준재) 그럼?
[준재의 멋쩍은 웃음]
미안해, 미안
자기가 너무 날씬해 가지고 아, 내가 자꾸 까먹는다
[심청의 옅은 웃음] (준재) 먹어, 먹어, 다 먹어
이것도 다 먹어야지
(심청) 개좋아
[심청의 흐뭇한 웃음]
아, 공무원 해서 두 사람 어떻게 먹여 살리냐
식비가 어마어마한데
걱정하지 마, 자기야
내가 눈물샘이 마르도록 열과 성을 다해서 서럽게 울어 볼게
그래, 자기야
요새 좀 덜 울더라, 분발해 줘라
걱정하지 마!
(준재) 아주 시시한 것에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우리의 매일이, 매시간이
매분 매초가 흘러가는 것을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고요히 바라보면서
[준재가 깔깔 웃는다]
[준재가 폭소한다]
(준재) 안 웃겨?
(준재) 멀리 돌고 돌아
마침내 내 곁에 와 준 사람을 소중히 하면서
아득하게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우리의 전설을 추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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