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백서 1
[편안한 음악]
(노인) 오케이, 고마워
[노인의 웃음]
따뜻하지?
많이 먹어
오랜만에 산책하니까 좋다
(준형) 그러게
자기 춥구나?
(나은) 어?
아니야, 나 괜찮아
안 돼, 자기 감기 걸리면 오래가잖아
나 괜찮은데, 오빠 춥잖아
- (준형) 이 정도 가지고 - (나은) 어? 아니야, 아니야
(나은) 그 정도 아니야, 괜찮아
[준형의 웃음] (준형) 우리가 밖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차분한 음악]
이제 그만 갑시다
나은아
(나은) 어, 가자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은) 고생했어, 오빠, 나 갈게
(준형) 잠깐만
우리 이 노래까지만 듣고 가자
알았어
나 들어갈게, 얼른 가, 오빠 추워
[준형이 아쉬워한다] [나은의 웃음]
(준형) 가기 싫다
나 진짜 가야 돼, 얼른 가
응,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아니야, 오빠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나은) 아, 맞다
이거 하고 가야지
[편안한 음악]
잘 가
[한숨]
[살짝 웃는다]
[편안한 숨소리]
(준형) 갈게
간다
(여자) 아, 너무 춥다, 그렇지?
(남자) 아, 추워, 빨리 가자
아유, 추워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나은) 어떤 기분일까?
결혼하면
(희선) 나은아
(나은) 언니, 왜 이렇게 늦었어?
(희선) 미안, 수연이는?
(나은) 잠깐 화장실
- (나은) 빨리 - (수연) 안녕하세요
[수연의 가쁜 숨소리] (나은) 벌써 시작했어
(사회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두 사람의 혼인 서약이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이어서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교환하겠습니다
반지는 신랑이 먼저
사랑하는 신부의 손에 끼워 주도록 하겠습니다
엄청 좋겠지?
(나은) 떨리면서도 설레고
그럴 리가
[하객들의 박수 소리] 그럼 결혼하면 막 책임감 느껴지고
묵직한가?
그럴 수가
[사회자가 말한다]
(나은) 그럼?
(희선) 한 번 다녀온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결혼은 이런 기분이야
'내가 도대체 이걸 왜 했을까?'
[나은과 수연의 한숨]
이제 막 결혼 생각 든 사람한테 찬물을 끼얹어도, 진짜
(수연) 결혼 생각?
선배님, 결혼하시게요?
우아, 축하드려요
[하객들이 환호한다] (희선) 하긴 이제 때가 되긴 했지
연애한 지 2년이나 됐고
네가 서른두 살 준형 씨가 서른여섯?
아유, 선배님 여기서 나이 얘기가 왜 나와요?
(수연) 아유 나이에 떠밀려서 결혼하는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 극혐
(나은) [숨을 씁 들이켜며] 나도 나이 때문에 결혼하는 건 싫다
결혼은…
(수연) 계산기 두들겨서
이렇게 답 나오면 그때 하는 거죠
[익살스러운 음악] (나은) 뭐?
[주례가 말한다] (수연) 어…
선배님 남자 친구분 얼굴은 천상계고
또 직업은 신들의 직장인 공기업이니까 오케이
아, 그럼 이게 가장 중요하겠다
그, 시부모님 되실 분들 노후 준비는 되셨어요?
[놀란 숨소리]
(나은) 야, 넌 이 신성한 결혼식장에서
그런 세속적인 소리가 나오니?
뭐, 결혼식장이 신성하지만은 않죠
(수연) 이 문 앞에서 입장료도 내야
결혼식장에 들어올 수 있는 건데
입장료라니?
(나은) 축의금 말하는 거야?
[희선이 혀를 쯧쯧 찬다] (희선) 아유, 요즘 것들이란
수연아, 축의금은 입장료가 아니라
아는 사이여서 하나 들어 놓는 변액 보험 같은 거야
그 변액 보험이 수수료 빼면 한 80%는 돌려받거든?
축의금도 한 80% 정도는 회수가 가능해
아, 결혼에 대한 예의들이 없어
(수연) 선배님은 결혼식 어디서 하셨어요?
엄청 비싼 데서 했죠?
아, 진짜 그때는 엄청 이뻤겠다
[수연의 설레는 숨소리] [희선의 못마땅한 소리]
[편안한 음악]
(희선) 뭐 해?
여기 예식장도 예쁘다
분위기도 좋고, 그렇지?
(희선) 너 진짜 결혼하게?
준형 씨가 결혼하재?
[수연의 놀란 숨소리]
(나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얼마 전에 공원에 갔거든
[반짝거리는 효과음]
(나은) 거기서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책을 하는데
너무 평화롭고 좋아 보이는 거야
'오빠랑 내가 결혼해서 나이 들면 그런 모습이겠지?' 싶고
우리 미래가 막 기대가 되고
언니, 이런 마음일 때 결혼하는 거 맞지?
맞아, 그런 마음일 때 결혼해서
(희선) '이 새끼를 죽이고 내가 그냥 감방에 갈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이혼하면 돼
(나은) 아, 왜 또 형사로 가? [수연의 한숨]
그래서? 선배님은 곧 가시는 거예요?
일단 오빠랑 얘기해 보고
(희선) 안 돼
하지 마
네가 먼저 결혼 얘기 꺼내면 절대 안 돼
[발랄한 음악] 왜?
여자 입에서 먼저 결혼 얘기가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왜?
결혼은
남자의 의지가 있어야 진행되니까
아이, 선배님, 아, 무슨 5G 시대에
무슨 봉화 올리는 소리 하시는 거예요?
이 언니도 가끔 혼자 '응답하라 1997' 찍는 거 같아
[수연이 호응한다]
너 이따 준형 씨 만나러 가지?
(희선) 그럼 가는 길에 부케 같은 꽃 하나 사서
오늘 그거 받았다고 운을 띄워 봐
그럼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될 거 아니야?
그럼 그때 준형 씨 입에서 먼저 결혼 얘기가 나오도록
이렇게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거지
[지겨워한다]
선배님, 가요, 가요 [수연의 못마땅한 숨소리]
같이 가, 쯧
(희선) 야
[태블릿 피시 조작음]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은의 한숨]
(준형) 왜? 음질이 별로야?
[나은의 어색한 웃음]
(나은) 아니, 아까 희선 언니가 한 말이 떠올라서
무슨 말?
[나은의 헛웃음]
결혼은 남자의 의지가 있어야지 진행이 되는 거래
결혼?
(나은) 어, 오빠도 어이없지?
그 언니 가끔 헛소리를 엄청 정성 들여서 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 같아
아, 결혼이 무슨 남자의 의지로 진행돼?
두 사람 마음이 맞을 때 진행되는 거지, 그렇지?
어? 어
(나은) 아, 여자가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낸다고 해서
결혼이 깨지기라도 하나? 아니잖아?
커플 중 누구라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서로 얘기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결혼하면 되는 거지
아, 만약에 내가 오빠한테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낸다고 해서
- 우리가 결혼을 안 하… - (준형) 근데
(준형) 그, 우리 이제 빨리 고르고 가야 될 거 같은데?
어?
(준형) 자기는 [태블릿 피시 조작음]
이게 좋아? 아니면 이게 좋아?
[쓴웃음] 잘 모르겠는데
오빠 더 마음에 드는 걸로 사
씁, 내 맘에 드는 거?
내 맘에 드는 건 바로 너지
[어색한 웃음]
[준형의 설레는 웃음] (준형) 그러면
[태블릿 피시 조작음] 난 이걸로 해야겠다
(희선) 결혼은
남자의 의지가 있어야 진행되니까
[한숨]
"더 리버"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은) 아, 결혼이 무슨 남자의 의지로 진행돼?
두 사람 마음이 맞을 때 진행되는 거지, 그렇지?
어? 어
[포크가 탁탁 부딪는다]
파스타가 별로야?
(준형) 다른 거 시켜 줄까?
(나은) 아니야
낮에 뷔페 먹은 게 소화가 좀 덜 됐나 봐
그럼 소화제라도 사다 줘?
그 정도까진 아니고
(나은) 근데
내가 좀 신경 쓰여서 그러는데
뭐가?
아까 내가 한 얘기 중에 결혼…
(준형) 어?
여기 이벤트 하나 보다
[흥미로운 음악] 자기야, 이거 봐 봐
1등 경품이 무려 요트 탑승권?
대박
와우!
(나은) 진짜야?
진짜로 결혼 얘기를 피하는 거였어?
우리도 빨리 달라고 해서 긁어 보자
(나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오빠가 왜?
아, 직원들 정신없으니까 재촉하지 말고 기다릴까?
결혼
어?
결혼, 결혼, 결혼! [나은의 말소리가 울린다]
[콜록거린다] [익살스러운 음악]
(준형) [거친 목소리로] 생큐
[콜록거린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결혼은 왜?
그냥, 해 보고 싶어서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나은아
[숨을 하 내뱉는다]
진짜로 결혼 얘기를 피하는 거였어?
아, 말도 안 돼
[속상한 숨소리]
(희선) 아유 [희선이 혀를 쯧쯧 찬다]
[마우스 스크롤 조작음]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니, 본인이 글을 쓰면서 느낌이 올 거 아니야
이런 남자랑 결혼하면 안 된다는 걸
아유, 진짜로
[키보드 조작음] '제발'
(희선) '인터넷에 글 올리게 하는 남자랑은'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결혼하지 말라고요, 응?'
[휴대전화 진동음]
- 왜? - (나은) 언니, 대박
뭐?
준형 오빠가 결혼 얘기를 피한다?
[익살스러운 음악] 기어이 결혼 얘기를 먼저 꺼냈어?
아니, 내가 꺼내긴 했는데
(나은) 그게 결혼하자는 말 같은 건 아니었어 [한숨]
그냥 낮에 결혼식 갔다 왔으니까
자연스럽게 결혼 관련된 얘기가 나온 건데
오빠가 아주 대놓고 피하네 매너 없게
상대방이 결혼 생각 없는데
'결혼, 결혼' 하는 것도 부담스럽지, 매너 없고
언니, 지금 누구 편이야?
뭐야, 편 나눠서 싸우는 거야?
그럼 난 이기는 편
(나은) 제발 좀
지금 농담이 나와?
[쩝쩝거리며] 농담 아닌데
갑자기 왜 결혼 얘기를 피하지? 원래 안 그랬거든
오빠 마음이 변했나?
(나은) 아닌데 [나은의 한숨]
그럼 나랑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거야, 왜?
워, 워, 김나은, 워
(희선) 이래서
내가 너 먼저 결혼 얘기 꺼내면 안 된다고 했던 거야
너처럼 생각이 많은 애들은 괜히 결혼 얘기 꺼냈다가
상대 반응 신통치 않으면 혼자 오만 가지 소설을 다 쓰잖아?
너 지금 발밑에 봐 봐
그, 삽질하다가 네 묫자리까지 다 팠지?
[착잡한 한숨]
언니, 나 이제 어떡해?
(희선)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뭐, 결혼 얘기가 나왔고
[부스럭거리며] 응, 준형 씨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고 그게 다인데
근데 단순히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뭔가 묘하게 덜컹거리는 거 같아
(희선) 응, 그거 그냥 네 느낌적인 느낌
괜히 오버, 육버 하면서 마음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 그냥
야, 끊어, 나 바빠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차분한 음악]
(나은) 나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에만 집중하고 있는 오빠를 보는 순간
알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내 기분이 왜 이런 건지
(준형) 저기, 혹시 풀 있으세요?
(나은) 풀요?
네, 있으시면 말 좀 붙여 보려고요
아, 저 돌은 있는데
네?
말 붙이시면 던질 돌은 있다고요
[나은이 물건을 부스럭 챙긴다]
[나은이 지퍼를 직 닫는다]
(준형) 제가 풀 가져왔어요
말 좀 붙여 보려고
그럼 전 던질 돌을 주워 와야겠네요
튼튼한 짱돌로
(준형) 아, 진짜 너무하네
(나은) 네?
내가 여기까지 얼마나 용기 내서 온 줄 알아요?
(준형) 지금 하는 개그가 죽은 개그인 줄 알면서도
말 걸고 싶어서 계속 이어 가는 이 심정을 아시냐고요?
(나은) 아, 그러니까 왜 말을 거는 건데요?
아, 그냥 관심 있으니까
(나은) 그동안 나는 내가 좋아서
[휴대전화 진동음]
나라면 어쩔 줄 몰라 하던
연애 초기의 오빠만 생각하면 [나은의 웃음]
[웃음]
이 연애의 주도권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다
(나은) 나 갈게
[준형의 머뭇거리는 숨소리]
왜? 할 말 있어?
(준형) 어, 잘 가라고
(나은) 그게 끝이야?
(준형) 어?
응
(나은) 난 다른 용건 있는데
(준형) 뭐?
[나은이 쪽 뽀뽀한다]
[반짝이는 효과음]
(나은) 그래서 오빠와 연애도 결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나은) 하지만
[휴대전화 조작음]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는 걸
[휴대전화를 탁 닫는다]
(준형) 어, 좀 괜찮아?
[나은의 한숨]
(나은) 미안한데 우리 그만 가자
(준형) 어?
미안, 내가 속이 좀 그래서 그래
내가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 가지고 배가 너무 고픈데
우리 마저 먹고 일어날까?
- 오빠 - (준형) 잠깐이면 돼
금방 먹을게
[준형이 달그락거린다]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준형이 후루룩 먹는다]
(종업원1) 식사 중에 실례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레스토랑에서
5주년 기념으로 고객님들 대상으로
스크래치 복권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장 골라 주시면 되겠습니다
괜찮아요, 저희는 갈 거라서
제가 뽑을게요
[익살스러운 효과음]
[흥미로운 음악] (나은) 이 상황에서 지금?
자기 알지? 나 금손인 거
나 이런 거 당첨 진짜 잘 된단 말이야
[결연한 숨소리]
[준형이 복권을 탁 내려놓는다]
자기가 긁어 볼래?
[익살스러운 효과음]
아니, 오빠가 해
오케이
그럼 이 금손의 기운으로 한번 긁어 보겠습니다
[못마땅한 숨소리]
(준형) 오, 예, 오, 예, 오, 예!
대박
당첨, 나 진짜 금손인가 봐
(종업원1) [박수 치며]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경쾌한 음악]
(종업원2)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종업원들의 환호]
앗싸
(준형) 아, 여기다
(선장) 아, 예, 조심하세요
(나은) 안녕하세요
[선장이 제지한다]
[발랄한 음악] (선장) 여긴 안 돼요, 안 돼
예, 여긴 안 되고
어, 갑판으로 올라가세요
(나은) 네?
(선장) 아니, 그러니까 여기가
지금 청소가 안 돼 있고
원래는 여기가 한 달 전에 예약을 하셨어야 되는데
안 치워 놨어, 지저분해 안 돼, 안 돼
청소 안 돼 있어도 돼요
저 추워서 그러니까 잠깐 안에만 있다가 올라갈게요
아유, 야, 인마
[익살스러운 효과음] (선장) 아유, 미안합니다
아무튼 여기는 안 돼요 여기는 안 되니까
어, 저 위로 올라가세요
위로 올라가시라고 제가 몇 번을 말씀을 드립니까?
아까부터, 쯧
그러니까 위로 올라가세요
[선장이 혀를 쯧 찬다] 그냥 올라가자, 자기야
[나은이 코를 훌쩍인다]
[요트 엔진음]
(준형) 와, 여기 분위기 진짜 좋다
[밝은 음악]
분위기보단 너무 추운데?
밤바람 장난 아니네
하, 그러게, 춥긴 춥네
[나은의 기가 찬 숨소리]
일부러 이렇게 하래도 못 하겠다, 진짜
(준형) 어?
뭐가?
씁, 그
자기야, 여기 너무 좋지 않아?
서울에 이렇게 좋은 데가 있었어?
아, 시선이 달라져서 그렇구나
자기랑 나랑 요트 타고 싶어 했잖아
[설레는 숨소리]
요트 위에서 바람 맞으니까 너무 상쾌한 거 같아
그렇지? 봐 봐
(나은)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해
왜 결혼 얘길 피하냐고 따져?
아니면
서울에 이런 데가 있었나?
(나은) 나랑 결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봐? [감탄한다]
(준형) 봐 봐
(나은) 그러다 진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준형) 너무 좋다
(나은) 그다음은?
와우
안 되겠어
(나은) 나 너무 추우니까 가서 담요 좀 달라고 할게
(준형) 아, 내가 갔다 올게
내가 가서 선장님한테 말씀드리고 담요 가지고 올게
아니야, 내가 갈게
아니, 왜?
내가 지금 전투력 맥스거든
(나은) 선장님이 담요까지 안 주면
내가 선장님 밀어 버리고 조종기 잡을 거야
[익살스러운 효과음] [익살스러운 음악]
나은아, 나, 나은…
[준형의 다급한 숨소리] (준형) 여기는 선장님이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안에 선장님 있나 보고
계시면 담요만 달라고 할게
아니, 지금 네가 너무 흥분한 상태니까
(준형) 조금 진정한 상태…
[선장이 흥얼거린다]
[선장이 쿵 떨어진다]
[반짝거리는 효과음]
"나랑 결혼해 줘"
[헛웃음]
아, 이래서 못 들어오게 하신 거예요?
- 아, 그게 아니고 제가… - (나은) 그냥 말씀하시죠
다른 손님 받느라고 준비 중이었다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나은) 하, 난 또
공짜 손님이라서 괄시하는 줄 알았네
[펄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흥미로운 음악]
[선장의 다급한 숨소리]
(나은) 이, 이게 다…
오늘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거였어?
[놀란 숨소리]
아,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민망한 숨소리]
아, 어떡해
[웃으며] 괜찮아, 괜찮아
[나은의 부끄러운 숨소리]
[준형의 웃음]
[나은의 속상한 한숨]
(나은) 바보 같아, 진짜
(준형) 괜찮아
이것도 다 지나면 추억이야
뭐, 뻔한 거보다 낫지
오빠 이거 준비하려고 엄청 고생했을 텐데
(나은) 내가 괜히 이상한 생각 해서
다 망쳤어
괜찮다니까
(준형) 뭐, 내가 생각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지만
이것도 서프라이즈지
미안해
괜찮으니까 저기 봐 봐
잘생긴 사람 나온다, 이제
[밝은 음악] [리모컨 조작음]
안녕, 나은아
많이 놀랐지?
(영상 속 준형) 2019년 눈부시던 겨울날
내 마음을 받아 줘서 너무 고마워
그날부터 지금까지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좋았던 날들이었어
너무 감사해
(민우) 아, 컷
어휴, 너무 싫다
근데 왜 나은 씨야?
무슨 소리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은이 말고 또 있어?
[한숨]
야, 말귀 좀 단박에 좀 알아들어라
(민우)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 그럼? - (민우) 야, 너
(민우) 옛날에도 연애 몇 번 해 봤잖아?
뭐, 사실 외모나 조건으로 봤을 땐
나은 씨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들도 많았고
아, 뭐 어쩌라고?
(민우) 아니 그때는 전 여자 친구들이
결혼 얘기만 꺼내도 네가 막 부담스러워하고 피했잖아
근데 지금은 나은 씨랑 당연하게 결혼할 생각 하니까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러지
음, 그야
사랑하니까?
아, 씨발, 그럼 뭐 전 여자 친구들은 안 사랑했냐?
(민우) 어? 뭐, 사랑 없이 기계적으로 만났어?
네가 뭐, AI야?
[로봇을 흉내 내며] '안녕하세요 기가 서준형이에요'
[로봇 작동 효과음] '당신은 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아유, 씨
야, 이젠 결혼할 때가 됐는데
마침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은 씨여서 결혼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나은 씨 정도면
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서 괜찮겠다 싶어서 그러는 거야?
뭐야?
그건
[차분한 음악]
(준형) 왜 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냐고?
[피식 웃는다]
'이 여자 정도면 괜찮은 여자다' 싶어서?
아니면
결혼해야 할 것 같은 나이에 만난 여자가 이 여자라서?
아니 [살짝 웃는다]
김나은이니까
이 여자가 내가 제일 사랑하는 김나은이라서
결혼하고 싶은 거야
평생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주고 싶어서
사랑해, 나은아
우리 결혼하자
[감격한 웃음] [훌쩍인다]
[놀란 숨소리]
[감격한 웃음]
김나은
나랑 결혼하자
[감격한 숨소리]
[기쁜 웃음]
[준형이 반지를 탁 꺼낸다]
[나은이 훌쩍인다]
[신비로운 효과음]
[울먹이며] 고마워
[나은이 훌쩍인다]
내가 더 고마워
[훌쩍인다]
[나은이 안전벨트를 탁 푼다]
[준형의 웃음]
[나은의 행복한 숨소리]
(준형) 좋아, 나은아?
[살짝 웃는다]
아, 나는 오늘 진짜 쉽지 않은 하루였다
나는 몇 번을 삽질했는지 몰라
(준형) 그러니까
평소엔 결혼 얘기 꺼내지도 않아서
씁,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건가?'
'아니면 지금 결혼하기 싫은 건가?'
별의별 생각 다 하게 만들어 놓고선
결혼, 결혼, 결혼!
[콜록거린다] [밝은 음악]
(준형) 막상 프러포즈 준비 다 해 놓으니까
계속해서 결혼 얘길 꺼내질 않나
(나은) 미안한데 우리 그만 가자
내가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 가지고 배가 너무 고픈데
우리 마저 먹고 일어날까?
- 오빠 - (준형) 잠깐이면 돼
[어색한 웃음]
(준형) 미리 다 짜 놨는데 스크래치 복권도 안 긁고
속 안 좋다고 집에 가겠다고 하질 않나
[휴대전화 조작음]
[메시지 전송음]
(선장) 안 된다니까, 여긴 안 돼요
위로 올라가시라고 제가 몇 번을 말씀을 드립니까?
아까부터
그냥 올라가자, 자기야
(준형) 출항하기 20분 뒤에 선실에 들어가기로 약속해 놨는데
[익살스러운 효과음]
계속해서 들어가겠다고 하질 않나 [익살스러운 효과음]
어허, 참
(나은) 분위기보단
쯧, 너무 추운데? 밤바람 장난 아니네
아유, 그러게, 춥긴 춥네
[긴장한 숨소리] (준형) 코트 안주머니에 프러포즈 반지 넣어 놨는데
춥다고 계속해서 옷 벗어 달라고 신호를 보내질 않나 [따뜻한 음악]
[쿵 떨어진다]
(준형) 진짜 마지막에 선실에 들어갈 때는 진짜…
(나은) 아, 이래서 못 들어오게 하신 거예요?
와…
[웃음]
나는 오늘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살짝 웃는다]
나도 오늘은 진짜 평생 못 잊을 거야
고마워, 오빠
사랑해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반짝거리는 효과음]
(수연) [박수 치며] 어머 축하드려요, 선배님
(희선) 내가 떠난 빈자리를 네가 채우는구나
'돌아이 질량 보존 법칙'에 이어서
'유부녀 질량 보존 법칙'도 있는 거야?
그럼
티오가 나야 다음 사람이 들어가는 법이지
[웃음]
이 언니 진짜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어
해학의 민족다워
결혼 축하해
그럼 결혼은 가을쯤에?
아마도? [생각난 숨소리]
부케는 네가 받을래?
[기대하는 숨소리] (희선) 야, 무슨 아직 남자 친구도 없는 애한테 부케는 무슨
소개팅시켜 주려고 하시나 보죠 선배님이
(나은) 내가?
- 알았어, 오빠한테 얘기해 볼게 - (수연) 아, 좋다
아, 그러면 선배님 결혼식에서 부케는 제가 받으면 되겠네요?
아, 지금 소개팅해도
그때 부케 받으려면…
(수연) 그런 건 걱정하덜, 덜, 덜 마세요
이, 금사빠로서 뭐, 스피드는 자신 있어요
내가 걱정스러운데 어디 내놓기 부끄러워서
(수연) 선배님도 제 연애에 코치 많이 해 주셔야 돼요 [나은의 웃음]
코치를 하면 뭐 하니?
(희선) 둘 다 새겨듣질 않는데
결혼 얘기 먼저 꺼내지 말라고 했을 때
안 꺼냈으면 얼마나 해피 엔딩이야?
지금도 해피 엔딩이야
솔직히 이렇게 우여곡절 있으니까 더 동화 같지 않아?
갖은 고생 끝에 행복 시작되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누가 그래?
지금이 제일 행복한 거야
(희선) 아, 결혼 준비 들어가 봐라
행복 끝, 고생 시작
[발랄한 음악]
언니
악담이야, 저주야?
분야를 알아야 나도 갚아 주지
(희선) 음, 팩트야
결혼 준비가 얼마나 고생길…
아니, 고행길인데
[입소리를 쩝 낸다] 괜찮아
아무리 힘든 고행길이어도
우리 오빠랑 함께라면 행복할 거야
[수연이 구역질하는 척한다]
[행복한 숨소리]
(수연) 저 한 번만 껴 보면 안 돼요?
[손님들이 취한 소리를 낸다] [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리모컨 조작음]
(민우) 누구인가?
누가 리모컨에 손을 대었냔 말이야?
아, 아직 경기 시작 안 했잖아요
[비장한 음악]
경기 시작한 거예요
야구는 시구부터 시작이니까
아, 사장님이 마구니가 꼈구나
(사장) 아니, 그, 뭐, 그냥 연예인들 나와서 공 던지는 건데
아이, 아니죠 시구는 축제 전야제 같은 거죠
결혼 전에 하는 프러포즈 같은 이벤트고
전쟁 나가기 전에 하는 출정식이고
(민우) 전쟁에서 승전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
(준형) 근데 이걸 못 보면 경기가 얼마나 시시하겠습니까?
(민우) 그럼
아, 예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리모컨 조작음]
[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TV 속 캐스터) 김해리 치어리더가 시구를
박소영 치어리더가 시타를 하겠습니다
시구 끝났네
자, 이제 본 게임 시작인 건가? [잔이 달그락 부딪는다]
친구, 지금부터 긴장해야 할 거야
이 축제는 끝났고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개운한 숨소리] [잔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경쾌한 음악]
(준형) 결혼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
상견례?
(희선) 원래 결혼의 첫 번째 관문이잖아?
(희선) 정상 회담 준비한다고 생각해
(준형) 예단이나 예물 같은 얘기는 하지 말고 많이 웃어 줘
(미숙) 하늘에서 떨어졌어 밖에서 주워 왔어?
(달영) 둘이 맨날 붙어서
이런 거 의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수연) 시한폭탄?
(나은) 오버하는 우리 엄마 농담 좋아하는 우리 아빠
오빠도 만만치 않아
(준형) 어머님도 만만치 않으세요
저 어머니 처음 뵙고 진짜 당황했잖아요
(수찬) 그 정도 눈치면 오늘은 조심 좀 해
(나은) [지친 목소리로] 아 지뢰밭이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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