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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사관 구해령 1


 

 

 [종이 댕댕 울린다]

 

 [밝은 음악]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여리꾼)  염정 소설 읽어 드립니다!

 

 매화의 '월야밀회'

 

 염정 소설 읽어 드려요!

 

 [여인1이 작게 말한다]  매화의 '월야밀회'

 

 (전기수)  '갑작스레 찾아온 김 도령의 손에'

 

 '한 떨기 목련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여인들의 탄성]

 

 '자경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나'  [여인들의 놀란 숨소리]

 

 [밝은 음악]

 

 (나인1)  '도련님'

 

 '목련이 피려면  아직 달포는 남지 않았습니까?'

 

 '자경이 묻자'

 

 '김 도령이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인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비자)  '제주에서 가져왔다'

 

 '너에게 제일 먼저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나인들의 황홀한 숨소리]

 

 '김 도령은  자경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나인2의 기대하는 신음]

 

 '자경은 눈을 감았습니다'  [여인들의 탄성]

 

 '가슴이가슴이'  [여인들이 호응한다]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여인들이 환호한다]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려는'  [여인들의 탄성]

 

 '그 순간'!  [여인들의 탄성]

 

 [여인2의 애타는 숨소리]

 

 [종소리 효과음]

 

 [여인들이 야유한다]

 

 [엽전이 댕그랑거린다]

 

 (여인3)  아유빨리빨리 해

 

 [여인들이 구시렁거린다]  어여어여!

 

 [전기수의 만족스러운 숨소리]

 

 (전기수)  '떨리는'

 

 '자경의'  [여인들의 긴장한 신음]

 

 (해령)  '사지가'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탄환이 유특의 오른쪽 눈을 뚫고'

 

 '머리를 관통한 것입니다'

 

 '뇌수가'

 

 [총소리 효과음]  '파바박'!

 

 [울먹이며]  '터져 나와 있었습니다'

 

 '팔의 정맥을 자르자 피가 푸슉'  [익살스러운 효과음]

 

 '솟아 나왔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직 숨은'  [심장 박동 효과음]

 

 '붙어 있었습니다'

 

 '의자 등받이의  핏자국으로 보아 유특은'

 

 '책상 앞에 앉아'

 

 '방아쇠를'

 

 [흐느끼며]  '당긴 것 같았습니다'

 

 (여인4)  잠깐잠깐!

 

 유특이 그리 죽어?

 

 첫날밤도 못 치르고?

 

 (마님)  반가 규수의 성미가

 

 그리 급해서야 되겠는가?  [여인들의 헛기침]

 

 이게 다 천생배필을  만나기 위한 역경인 것을

 

 [여인들의 호응하는 웃음]

 

 이쯤에서 건너뛰고

 

 첫날밤 부분부터 읽게

 

 (해령)  ...

 

 이게 결말입니다

 

 유특의 죽음요

 

 [익살스러운 음악]

 

 여기다 총을 쐈는데  살아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깨진 머리에 대고  바느질을 할 수도 없고요

 

 (여인4)  뭐야?

 

 아니여태 둘이 이뤄지지도 않는 걸  읽고 있었단 말이야?

 

 (여인5)  아이서양에서 온 책이라며?

 

 그럼 좀 화끈한...

 

 아니뭔가는 좀 다른

 

 조선에서 못 보던  그런 게 있어야지

 

 아휴다르고 말고요

 

 이 젊고 미련한 유특이  한낱 연정에 빠져서

 

 인생을 황천길로 내모는 파국을 보면서

 

 '아휴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하는

 

 이런 귀한 교훈을 또 어디서 얻습니까?

 

 (여인5)  기가 막혀  무슨 염정 소설이 그따위야?

 

 (해령)  제가 언제 염정 소설이라고 했습니까?

 

 여인에게 몸과 마음을  몽땅 다 바친 사내의 이야기라고...  [여인5의 답답한 숨소리]

 

 (여인5)  마음은 그렇다 치고  몸을 언제 바쳤냐고언제!

 

 방금 바쳤잖습니까?

 

 죽음으로요

 

 [익살스러운 음악]  [여인들의 기가 찬 웃음]

 

 (마님)  그러니까

 

 '몸과 마음', 그 뜻이...

 

 사내가 홀로 상사병에 헤매다

 

 자결을 한다는...

 

 맞습니다그게 바로 이 소설의 백미죠

 

 (해령)  다른 염정 소설들과는  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여인들의 기가 찬 웃음]

 

 돌쇠야!

 

 (해령)  이거 좀 놔 주십시오  [풀벌레 울음]

 

 진짜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라고요...

 

 진짜...

 

 [한숨 쉬며]  마님

 

 쫓아낼 때는 쫓아내더라도  돈은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책비 일 값요

 

 (여인5)  이딴 서책이나 가져와 놓고  돈은 무슨...

 

 안 꺼져?

 

 [기가 찬 웃음]

 

 저 보름 내내 목이 다 쉬도록  서책을 읽지 않았습니까?

 

 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마님)  천한 것이  양반을 우롱하고도 말이 많구나

 

 멍석말이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까?

 

 [어이없는 한숨]  [문이 덜그럭 열린다]

 

 [옅은 한숨]  [문이 탁 닫힌다]

 

 [허탈한 한숨]

 

 [입바람을 후 분다]

 

 (대감)  나라의 정책이 달라지고

 

 집안의 습속이 달라져 풍이 달라지니

 

 아가 달라져 지어졌다

 

 나라의 득과 실의 자취에 사관이 밝아

 

 인륜의 무너짐을 아파하고

 

 형벌과 정책의 가혹함을 슬퍼하며

 

 본성의 정을 탄식하고 노래하여

 

 그로써 그 위를 바람으로

 

 일의 변화에 통달하여

 

 (해령)  마님  [익살스러운 음악]

 

 일전의 책비입니다  [대감의 헛기침]

 

 그때는 제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마님께서 부탁하신 책으로  다시 가져왔으니

 

 부디 이년을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도 세책방을 샅샅이 뒤져서

 

 마님의 취향에 맞게  음탕하고 추잡한 것들로

 

 많이 많이 구해다 놓겠습니다

 

 그럼 물러납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대감)  이게 무슨...

 

 [다급한 숨소리]

 

 부인

 

 부인!

 

 부인!

 

 [새어 나오는 웃음]

 

 부인!

 

 [밤새 울음이 들린다]

 

 (나인3)  몰라

 

 (내관)  일로 와 봐  [나인3의 옅은 웃음]

 

 [나인3의 옅은 신음]

 

 (삼보)  네 이 연놈들!

 

 (내관)  상호 어르신...

 

 (삼보)  어찌 내관과 궁녀가

 

 주상 전하가 지척에 계신 이곳에서

 

 통정을 해?

 

 네 연놈들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내관)  김 나인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억지로 끌고 왔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나인3)  아닙니다

 

 조 상원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제가 불렀습니다

 

 저 혼자 마음을 품고  저 혼자 벌인 일입니다

 

 저를 벌주십시오

 

 이것들이 아주...

 

 그리 좋은 것이냐?

 

 [익살스러운 음악]

 

 서로가 그리 좋냐는 말이다

 

 제 목숨을 내놓고도  지키고 싶을 정도로?

 

 (내관)  누구신데 그런 걸...

 

 어서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나인3)  그리 좋습니다!

 

 너무 좋아서 목숨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내관)  홍연...

 

 [이림의 감탄하는 숨소리]

 

 처음부터 얘기해 보거라

 

 - (내관?  - (나인3) ?

 

 (이림)  그러니까

 

 처음 만난 날

 

 처음 이렇게 서로 마음을 확인한 날

 

 처음 이렇게 손을 잡은 날

 

 그렇게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나날들

 

 전부  [내관의 멋쩍은 숨소리]

 

 (내관)  그러니까  제가 홍연이를 처음 본 것이...

 

 [삼보의 만족스러운 웃음]

 

 (삼보)  감축드리옵니다대군마마

 

 오늘 아주아주 귀한 자료 얻으셨습니다

 

 ...

 

 아이한마디 칭찬이  거 뭐이렇게 어렵습니까?

 

 소신이 오늘 이 현장 급습을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나인들 처소 드나들다가

 

 그 성깔 더러운 최 상궁한테  걸려 가지고 맞을 뻔했고  [이림의 고민스러운 한숨]

 

 김 내관 친구라는 놈 입 열게 하느라고

 

 갖다가 바친 약과가

 

 무려 50개입니다, 50!

 

 [이림의 한숨]

 

 저 둘 궐에서 내보내거라

 

 ?

 

 (이림)  여긴 마음이 죄가 되는 곳이다

 

 평생 그런 짐을 지고 살기엔

 

 너무 가엾지 않으냐?

 

 안 그래도 적당한 핑계 찾아서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삼보)  둘이서 아주 그냥 마음껏  지지고 볶고 그러고 살라고

 

 [삼보의 흐뭇한 웃음]  (이림)  한데삼보야

 

 - (삼보?  - (이림쓰읍...

 

 너도...

 

 [헛기침하며]  ...

 

 저리 깊은 연정을  품어 본 적이 있느냐?

 

 [익살스러운 음악]

 

 아이지금 그 말씀은 뭐

 

 내시는 사내도 아니다이겁니까?

 

 또 그놈의 화병!

 

 그저 묻는 것이다궁금해서

 

 저야

 

 젊은 날에는 그저  여인네랑 눈만 마주쳤다 하면은

 

 (삼보)  천리장성만리장성을 그냥

 

 마음으로만 쌓았지요

 

 [삼보의 웃음]

 

 잠깐만요

 

 어떻게 이번 소설은

 

 제 얘기로 한번 써 보시겠습니까?

 

 제목

 

 '허 내관과 삼천 명의 여인'

 

 주인공사내 중의 사내

 

 허삼보!

 

 [이림이 입소리를 쩝 낸다]

 

 [삼보의 웃음]

 

 [밝은 음악]

 

 [평화로운 음악]

 

 [다가오는 발걸음]

 

 (설금)  늦었습니다해령 아씨

 

 [문이 달칵 열린다]  [새가 짹짹 지저귄다]

 

 아씨아휴아씨

 

 [설금의 다급한 숨소리]

 

 아이고정말 참...

 

 아씨늦었다니까요?

 

 얼른 일어나셔요얼른!

 

 얼른얼른얼른얼른!

 

 [설금의 재촉하는 신음]  (해령)  왜 새벽부터 호들갑이야?

 

 잠 좀 자자...

 

 (설금)  새벽이라니요?

 

 지금 진시가 훌쩍 넘었어요

 

 진시?

 

 근데 얘가 왜 안 울렸지?

 

 (설금)  쇳덩이가 그게 뭐  어디 한두 번 말썽입니까?

 

 차라리 꼬꼬댁댁댁댁  옆집 수탉을 믿죠

 

 그러게?

 

 왜 밤마다 쓸데없이 책비를 나가셔서는

 

 매번 늦잠을 자십니까?

 

 쓸데없다니?

 

 재밌는 책 읽고 뜻깊은 대화 나누면서  돈까지 받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

 

 [어이없는 웃음]

 

 그렇죠?

 

 막 너무너무 좋은 일이라서

 

 맨날 마나님들 심기 거슬러서 쫓겨나고

 

 욕을욕을 막 잡숫고?  [해령의 민망한 한숨]

 

 돈도 못 받고 막 그러죠?

 

 [해령의 하품]

 

 [새가 짹짹 지저귄다]

 

 김 도령의 눈에  [잔잔한 음악]

 

 흐릿한

 

 흐리게

 

 ...

 

 [이림의 고민스러운 숨소리]

 

 흐릿한

 

 흐릿한 광망이 비추었다

 

 [반짝이는 효과음]

 

 김 도령의 눈에

 

 흐릿한

 

 광망이 비추었다

 

 그대가

 

 너무 좋아

 

 목숨도

 

 아깝지 않소

 

 그대가 너무 좋아

 

 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여식들)  남편을 모시고 식사를 할 때에는

 

 밥을 많이 떠먹지 말고

 

 국을 흘리지 말 것이며

 

 조금씩 먹되 빨리 삼키고

 

 [흥미진진한 음악]

 

 [여식들이 중얼거린다]

 

 (여식1)  진짜 못 해 먹겠네

 

 이런 건 그냥 아랫것들한테  시키면 안 됩니까?

 

 [장씨 부인이 회초리로 탁 친다]

 

 해령 낭자한테 한번 시켜 보세요

 

 우리 중에 제일 인생 경험이  많으신 분 아닙니까?

 

 [해령의 헛웃음]  (여식2)  맞아요

 

 그 긴 세월 독수공방하면서

 

 셈을 좀 깨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여식들의 웃음]

 

 [장씨 부인이 탁자를 탁탁 친다]

 

 (장씨 부인)  해령이 한번 말해 보거라

 

 언제 씨를 내려야  사내아이를 가질 수 있겠느냐?

 

 답은...

 

 9 23일입니다

 

 (장씨 부인)  표를 참고했는가?

 

 아닙니다그냥 계산했습니다

 

 하면 어찌 그리 생각하였느냐?

 

 (해령)  일전에 아들을 잉태하려면

 

 [아름다운 음악]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가 속곳에 넣은  무명 조각이 금빛일 때

 

 나흘 안의 홀숫날이어야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사계절마다  다른 일진이었지요

 

 봄엔 갑여름엔 병

 

 가을엔 경겨울엔 임

 

 - 해서?  - (해령정묘년 경술월의 무오일이면

 

 (해령)  07년의 9 20

 

 가을이니 경이나 신이 들어가는 날로  나흘 안의 일진을 따져 보면

 

 경신일과 신유일이 있는데

 

 홀숫날은 아들이  짝숫날은 딸이 잉태되는 법이니

 

 22일인 경신일은 제해야 합니다

 

 그러니 남은 게 23일이지요

 

 정묘년 경술월의 신유일

 

 그걸 다 한 번에  생각해 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여식2)  분명히 속임수를 썼을 겁니다  확인해 보세요

 

 (해령)  아이...

 

 내가 긴 세월 동안 독수공방했더니  셈을 좀 깨쳐서

 

 (장씨 부인)  틀렸네

 

 틀렸어다시 해 보게

 

 그럴 리가요  제 계산은 틀림없이 맞을 겁니다

 

 (장씨 부인)  계산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그 방자한 태도가 틀렸다는 것이네

 

 아녀자는 재주가 있어도 숨기고

 

 아는 것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덕이거늘

 

 어찌 그리 나서서  총명함을 자랑하려 드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여인은 나쁜 일도 훌륭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 하였어

 

 알겠는가?

 

 

 

 [잔잔한 음악]

 

 [재경의 헛기침이 들린다]

 

 (재경)  해령아

 

 좀 걷자꾸나밤바람도 쐬고

 

 (해령)  됐습니다혼자 쐬십시오

 

 [재경의 헛기침]

 

 [문이 달칵 열린다]

 

 (재경)  이것도 싫으냐?

 

 [술이 찰랑거린다]

 

 [부드러운 음악]

 

 [재경이 술을 쪼르륵 따른다]  [풀벌레 울음]

 

 [밤새 울음]

 

 [해령이 숨을 하 내뱉는다]

 

 [해령의 개운한 한숨]

 

 오라버니는 순 날라리입니다

 

 [재경의 옅은 웃음]

 

 이 과년한 누이와 순배를 하다니요  [재경이 술을 쪼르륵 따른다]

 

 이러니까 제가 버릇이 나빠져서

 

 여기서도 저기서도  맨날 구박만 받는 거 아닙니까?

 

 (재경)  누가 널 구박하더냐?

 

 이 오라비가 혼내 주고 오마

 

 [해령의 한숨]

 

 저 신부 수업 받기 싫습니다

 

 [재경의 헛기침]

 

 (해령)  ...

 

 혼인도 하기 싫습니다

 

 그냥 다 물러 주십시오

 

 아니진짜 더는 못 해 먹겠습니다

 

 저 그냥 사직동 노처녀 구해령으로  늙어 죽으렵니다

 

 [재경의 옅은 한숨]

 

 (재경)  해령아  [해령의 한숨]

 

 오라버니저 진심입니다

 

 그냥 우리 이대로 살면 안 됩니까?

 

 (해령)  그냥 하루 종일 막 서책도 읽고

 

 그리고 이렇게  신기한 물건 있으면 가져와서  [재경의 헛기침]

 

 막 이렇게 저렇게 하루 종일 뜯어보고

 

 그리고 오라버니랑 가끔 이렇게

 

 술 동무도 하면서

 

 이렇게 재밌게 살면 안 됩니까?

 

 [재경의 옅은 웃음]

 

 혼인이 너 혼자만의 일이라  생각하느냐?

 

 (재경)  고을에 원녀가 있으면  수령이 벌을 받는 것이

 

 이 나라 조선의 법도다  [해령의 한숨]

 

 지금까지는 이 오라비 힘으로  어찌 버텨 왔으나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면

 

 네 이름이 담긴 상소가  조정에 닿을 것이고

 

 결국엔 네가  구제 목록에 오르게 될 것이야

 

 아휴그렇게 되면 저는 어디

 

 저기 먼 지방의  어느 몰락한 서생 집이나

 

 어느 홀아비 재취 자리로  막 허겁지겁 시집을 가야겠죠?

 

 (재경)  해서

 

 기회가 있을 때 네게 맞는 지아비를  찾아 주려 하는 것 아니냐

 

 [해령의 한숨]  널 아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자애로운 사람으로

 

 (해령)  그 다정한 말이  제게는 어찌 들리는지 아세요?

 

 개똥밭에 구를래소똥 밭에 구를래?

 

 [재경이 풉 웃는다]

 

 [함께 웃는다]

 

 (재경)  내가 널 잘못 가르치긴 했나 보다

 

 버릇이 나빠!

 

 (해령)  저는 불량품입니다

 

 그러니까 어디 보낼 생각 하지 마시고

 

 그냥 오라버니 옆에 끼고 사십시오

 

 (해령)  아휴  [재경의 옅은 웃음]

 

 [해령의 후련한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각쇠)  나리

 

 [밤새 울음]

 

 [긴장되는 음악]  (익평)  근래에 서북 지방에서 많이 읽힌다는

 

 언문 소설이오

 

 들어들은 보셨소?

 

 '호담선생전'

 

 [대신들이 웅성거린다]

 

 (이조 정랑)  아니대감

 

 무슨 내용의 서책인지  말씀을 좀 해 주시면...

 

 구 교리도 모르겠는가?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면

 

 아직 도성 안까지는  퍼지지 않았나 보군

 

 (익평)  이게 내 오늘 그대들을 부른 연유요

 

 이 책을 모두 없애 주셔야겠습니다

 

 이 조선 땅에 단 한 권도  남아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해령이 혼인을 서둘러야겠다

 

 (재경)  지난번 그 집에 서신을 넣고 오거라

 

 (각쇠)  나리

 

 [새가 짹짹 지저귄다]

 

 [시계가 똑딱거린다]  (해령)  ?

 

 (의원)  됐다간다간다

 

 (해령)  우와

 

 역시 우리 의원님  손재주는 알아주십니다

 

 [의원의 뿌듯한 웃음]  [해령의 탄성]

 

 (의원)  내가 사람은 못 고쳐도

 

 이런 거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고치잖아

 

 (해령)  맞아요  [함께 웃는다]

 

 (의원)  아이고

 

 조심?

 

 (해령)  감사합니다...  [의원의 옅은 웃음]

 

 - (의원잘 가어  - (해령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해령의 힘겨운 신음]

 

 (사내)  짐이오

 

 비켜요비켜

 

 [해령의 기분 좋은 신음]

 

 짐이오

 

 짐이오!

 

 [사내의 헛기침]

 

 짐이오비켜비켜!

 

 [사내의 헛기침]

 

 짐이오!

 

 [박진감 넘치는 음악]

 

 !

 

 (해령)  ...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너 거기 안 서냐...

 

 [해령의 힘겨운 신음]

 

 [소년의 다급한 숨소리]

 

 [해령의 가쁜 숨소리]

 

 [힘겨운 한숨]

 

 [한숨]

 

 [옅은 한숨]

 

 [소년의 가쁜 숨소리]

 

 [안도하는 한숨]

 

 [상자를 달칵 내려놓는다]

 

 [소년의 다급한 숨소리]

 

 [소년의 아파하는 신음]

 

 밥 먹고 달리기 좀 했나 봐?

 

 - 쬐깐한 게...  - (소년이거 놔...

 

 (해령)  너 그러게 잡히기 싫었으면  제대로 했어야지

 

 넌 소매치기로서 기본이 안 돼 있어

 

 이렇게 무겁고 커다란 거  훔친 것도 그렇고

 

 [소년의 못마땅한 신음]

 

 ?

 

 어허

 

 (해령)  봐 봐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도망치는 것도 그렇고

 

 [소년의 힘겨운 숨소리]

 

 너 집이 어디야?

 

 너희 아버지 어디 계시냐고?

 

 앞장서

 

 !

 

 너 말 안 하면 포도청에 데려간다?

 

 (소년)  나 그딴 거 없어!

 

 [잔잔한 음악]

 

 [소년의 한숨]

 

 (왈짜1)  뭐야?  [대문이 끽 열린다]

 

 돈은?

 

 에이

 

 돈을 구해 오라면  구해 와야 할 거 아니야

 

 이 새끼...

 

 [위태로운 음악]

 

 [대문이 끽 닫힌다]

 

 [해령의 다급한 숨소리]

 

 [대문을 쾅쾅 두드린다]

 

 (왈짜2)  뭐야?

 

 이봐요!

 

 (해령)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왈짜2)  이게 돌았나?  너 뭔데 남의 일에...

 

 아이한테 도둑질을 시킨 것도 모자라서  손찌검까지 하다니

 

 그러고도 당신들이 사내장부입니까?

 

 (왈짜1)  ?

 

 사내장부인지 아닌지

 

 이 자리에서 확인이라도 시켜 줄까?

 

 (해령)  여인과 아이 앞에서 힘자랑하는 거

 

 추잡한 줄 아십시오

 

 (왈짜1)  ?

 

 (해령)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왈짜1)  [헛웃음 치며]  이게 어디서...

 

 (해령)  감히 어디다가 더러운 손을 올리느냐?

 

 (왈짜1)  이년이 진짜 미쳤나?

 

 (해령)  참수형이다

 

 천것이 양반을 때리면

 

 네놈의 목이 날아간다고  [문이 달칵 열린다]

 

 알아?

 

 [왈짜1의 못마땅한 신음]

 

 (두목)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  [왈짜1의 한숨]

 

 - (왈짜1) 형님글쎄 이년이  - (두목아이고

 

 (왈짜1)  제멋대로 쳐들어와서는...

 

 (두목)  어휴어유이놈아!

 

 그 상놈의 그말투 좀 고치라니까

 

 아무한테나 '이년이년'거리고

 

 상놈 새끼

 

 저기

 

 아씨는 누구신데

 

 남의 집 마당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십니까?

 

 이 아이

 

 당신네들과  무슨 연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데려가겠소

 

 데려가서?

 

 부모가 있다면 데려다주고

 

 그게 아니라면  관아에 맡겨 수양처라도 찾게...

 

 [두목의 코웃음]

 

 [두목의 기가 찬 신음]

 

 (두목)  찾긴 뭘 찾아?

 

 요놈은

 

 내 노비요

 

 요놈 아비가 그노름빚으로 팔아넘긴

 

 (두목)  그러니까

 

 내가 요놈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때려잡아서 짐승 먹이로 주든

 

 그거는 뭐주인인 내 마음 아니오?

 

 아무리 노비라고는 하나

 

 사람을 이리 대할 수는 없는 거요

 

 그런 거는 그  나라님 앞에서 말씀하시고

 

 (두목)  빨리 정중하게 뫼셔 드려

 

 슬슬 짜증 나려 그러잖아

 

 (왈짜1)  형님

 

 [잔잔한 음악]

 

 [소년이 훌쩍인다]

 

 [왈짜2가 소년을 탁 붙잡는다]

 

 [새들이 짹짹 지저귄다]

 

 어떻느냐?

 

 어떻냐고

 

 [삼보가 흐느낀다]

 

 [나인들이 흐느낀다]

 

 [익살스러운 음악]  [삼보가 흐느낀다]

 

 마마

 

 이것은 천하의 무뢰배도 울게 만들

 

 희대의 명작이옵니다

 

 소신의 가슴이 미어집니다

 

 (나인들)  미어집니다

 

 가슴이 미어진다?

 

 (삼보)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릅답고

 

 김 도령

 

 불쌍한 김 도령...  [함께 흐느낀다]

 

 [계속 흐느낀다]

 

 거짓말

 

 (이림)  지난번에도 분명

 

 '가슴이 미어진다'

 

 '희대의 명작이다'

 

 똑같은 말 하면서 엉엉 울지 않았느냐?

 

 대체 왜 맨날 반응이 똑같은 건데?

 

 [삼보의 당황한 헛기침]

 

 아니

 

 눈물이 나서 눈물을 흘렸을 뿐인데

 

 왜 눈물을 흘리냐고 하시면은

 

 제가 눈물 대신에 뭐콧물이라도  흘려야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한숨 쉬며]  난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대체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삼보)  몇 번을 말씀을 드립니까?

 

 필사쟁이들이 마마의 소설을 베끼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죄다 이 눈탱이가  그냥 팅팅 부었다고요

 

 어디 그뿐입니까?

 

 매화의 소설 나오자마자 읽겠다고

 

 어젯밤부터 세책방 앞에  대기 줄이 그냥 쫙 섰습니다

 

 천막까지 쳐 놓고!

 

 그래서

 

 그래서 더 싫다

 

 (이림)  나는 늘 너한테 전해 듣기만 하고

 

 내가 볼 수가 없잖아

 

 [익살스러운 효과음]

 

 [이림의 깊은 한숨]

 

 [잔잔한 음악]

 

 궁금하다

 

 사람들이 정말 내 글을 좋아해 주는지

 

 정말 내 글을 보면서  그렇게 울고 또 웃는지

 

 이 궐을 나가서

 

 내가 직접 보고 싶어

 

 단 한 번이라도

 

 삼보야

 

 (삼보)  마마대군마마!

 

 아이아이

 

 마마아휴아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하께서 분명

 

 '도원 대군은  이 녹서당을 벗어나지 말라'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한데궐 밖을?

 

 그것도 오늘처럼

 

 매화 신간 나왔다고 사람들 바글바글한

 

 운종가 한복판을 갖다  구경하시겠다니요?

 

 그러다가 이 귀한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은

 

 누구 목이 날아갑니까?

 

 (이림)  누가 그래내 몸 귀하다고?

 

 날 여기 처박아 둔 아바마마가?

 

 (삼보)  굳이 따지자면은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지는 않았...  [익살스러운 효과음]

 

 않았으나

 

 좌우당간마마께서  외출하는 걸 들키는 날에는...

 

 2년 만이다

 

 내가 궐을 나서는 게

 

 난 그 정도면  많이 참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삼보의 한숨]

 

 걱정 마라

 

 (이림)  이 조선에서 내 얼굴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삼보의 난처한 한숨]

 

 마마

 

 [경쾌한 음악]

 

 [삼보의 난처한 숨소리]

 

 마마!

 

 - (삼보마마저기저기저기  - (이림또 뭐가?

 

 (삼보)  저기!

 

 [긴장되는 음악]

 

 형님?  [삼보의 겁먹은 숨소리]

 

 [삼보가 숨을 헐떡인다]

 

 (삼보)  아냐아냐아냐

 

 일단...

 

 그게 더 수상합니다

 

 빨리 숙이십시오

 

 술시까지는 들어오게

 

 자네들

 

 [경쾌한 음악]

 

 형님께서 외출 허락해 주신 거

 

 - 맞지?  - (삼보

 

 아이세자 저하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림)  가자

 

 오늘 하루는 네가 내 호위다

 

 (삼보)  호위요?

 

 아이마마

 

 아이남들이 있는 것도 없는 놈한테  무슨 호위라니요

 

 저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이림)  가자!  [삼보의 웃음]

 

 (김 서방)  여기입니다여기!

 

 매화의 '월야밀회'

 

 대망의 마지막 삼 권

 

 사시부터 세책해 드립니다!

 

 한양 제일가는 소설가매화

 

 매화의 '월야밀회삼 권이  발매되었습니다

 

 퍼뜩 오십시오!

 

 늦으면

 

 얄짤없습니다

 

 [김 서방이 말한다]  (해령)  김 서방김 서방

 

 (여인6)  아이뭐야?

 

 아이뭐 하는 거요?  [여인들의 못마땅한 신음]

 

 (여인7)  뒤로 줄을 서시오뒤로 줄을...

 

 (김 서방)  매화의 '월야밀회'  [여인들이 소란스럽다]

 

 사시부터 세책...

 

 (해령)  김 서방내 긴히 할 말이 좀 있는데  [김 서방의 한숨]

 

 (김 서방)  [헛기침하며]  누구세요?

 

 누구신지는 모르오나

 

 세책을 하려면

 

 저쪽 가서 줄부터 서시지요?

 

 !

 

 (해령)  김 서방

 

 에이...  [여인들의 못마땅한 신음]

 

 [김 서방의 헛기침]  (해령)  김 서방

 

 갑자기 왜 이러시나이 사람...

 

 거기 먼지 좀 팍팍 터시게!

 

 (해령)  그러지 말고 좀 일거리가 있으면  [김 서방의 헛기침]

 

 (김 서방)  아이서책이  삐뚤게 놓였잖아삐뚤게!

 

 나한테

 

 일거리 좀 주시게

 

 (김 서방)  일거리요일거리?

 

 [김 서방의 헛기침]

 

 아씨

 

 지난번 호조 좌랑댁 마님한테  아씨 소개시켜 준 것 때문에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아십니까?

 

 어디서 그딴 책비를 데려왔냐고

 

 그냥 어찌나 현란하게

 

 쌍욕을 퍼부으시는지

 

 제가 바지춤을 다 적실 뻔했습니다요

 

 이 나이에!

 

 아이고그런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내 몰랐네

 

 (김 서방)  아무튼아씨한테  한 번 더 책비를 맡겼다가는

 

 제가 제명에 못 살겠습니다

 

 요렇게 제대로 된 소설  읽으실 거 아니면

 

 아씨와 저의 동업은

 

 끝입니다!

 

 [해령의 당황한 신음]

 

 조심히 좀 다루라니까?

 

 (해령)  ...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아름다운 음악]

 

 (삼보)  여기...

 

 (이림)  저게저게 다  내 서책을 보러 온 사람들이냐?

 

 (삼보)  매화가 달리 매화입니까?

 

 아마 앞으로 보름간은

 

 이 세책방 문지방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삼보의 웃음]

 

 소인은 가서 정산받고 올 터이니까

 

 여기 꼼짝 말고 계시옵소서?

 

 (이림)  ?

 

 (여인4)  이번 소설 대박

 

 세책방 대여 순위 1위 찍겠네

 

 역시 매화는 매화다

 

 (여인8)  매화개처럼 일해서  빨리 다음 책 내 줘요

 

 나 막 열 권씩 사재기하려고  품앗이하고 있어요

 

 (여인5)  솔직히 우리 매화가 필력으로는  소동파보다 낫지

 

 평생 사랑할게

 

 꽃길만 걷자매화야

 

 [숨을 하 내뱉는다]

 

 [감미로운 음악]

 

 [해령의 하품]  [익살스러운 효과음]

 

 [해령이 하품한다]

 

 [해령이 하품한다]

 

 [해령의 하품]

 

 [해령의 멋쩍은 웃음]

 

 (해령)  책이 너무 지루해서 말입니다  [해령이 피식 웃는다]

 

 서서 잠들 뻔했네

 

 [해령의 헛기침]

 

 (이림)  그대는 어째서

 

 어째서 매화 책을 좋아하지 않는 거지?

 

 (해령)  

 

 좋아해야 합니까?

 

 (이림)  궁금하다

 

 이 문장은 하나하나 아름답고

 

 줄거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인물들은 또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리 공들여 쓴 소설을

 

 어째서?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해령)  부족한 것은 선비님의 말씨입니다만?

 

 남녀가 유별하다고는 하나

 

 초면에 반가의 여인에게  말을 놓아도 된다고

 

 어느 학자가 가르친답니까?

 

 그것이

 

 내가 누구한테 존대하는 게

 

 익숙지가 않아서

 

 - 요  - (해령옳지

 

 (해령)  그럼 저 같은 여인을 대할 때는  어찌 부르셔야 하겠습니까?

 

 낭자?

 

 그렇지!

 

 그럼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보시지요

 

 예를 갖춰서

 

 [이림의 헛기침]

 

 낭자는

 

 어찌

 

 매화 책을 좋아하지 않으시...

 

 ?

 

 [흥미진진한 음악]

 

 잘하셨습니다

 

 (해령)  제가 매화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라

 

 너무 많아서  하나만 꼽지를 못하겠습니다

 

 이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으니까요

 

 (이림)  제대로 된 게 없어?

 

 !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딱 세 번 정도

 

 이 가슴으로 울기는 했습니다

 

 [이림의 만족스러운 숨소리]  (해령)  한 번은

 

 이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이 값비싼 종이들이 아까워서고

 

 한 번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이용당한  언문의 신세가 가여워서고

 

 또 한 번은

 

 이 매화라는 작자의 헛된 망상이

 

 도성에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아휴돈 몇 푼 벌자고  이런 글을 세상에 내놓다니

 

 정말 염치도 없는 인간 아닙니까?

 

 아유진짜 양심이 있으면  절필을 해야지

 

 [해령이 혀를 쯧쯧 찬다]

 

 아무튼

 

 제 의견은 이 정도입니다

 

 그럼...

 

 (이림)  거기거기!

 

 [김 서방의 헛기침]  [삼보의 옅은 웃음]

 

 (김 서방)  한데

 

 매화 선생은 오늘도  안 나오셨나 봅니다?

 

 절대 뵐 수 없는 분이라고  몇 번을 말하나?

 

 그거나 얼른 주시게일로!

 

 [김 서방이 숨을 씁 들이마신다]

 

 (김 서방)  매화 선생을 꼭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는데

 

 아주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삼보)  어허사람 참...

 

 됐다니까 그러네  [김 서방의 헛기침]

 

 [문이 달칵 열린다]

 

 [김 서방의 과장된 헛기침]

 

 [비밀스러운 음악]

 

 [삼보의 다급한 숨소리]

 

 (삼보)  아니...

 

 [삼보의 당황한 신음]

 

 뭐야웬 놈웬 놈들이냐?

 

 (왈짜1)  매화 어디 있어?

 

 그걸 내가 어찌...

 

 난 매화가 누군지도 몰라!

 

 (왈짜1)  허튼수작 부리지 마

 

 그쪽 심부름꾼인 거 다 알고 왔으니까

 

 (왈짜2)  나리

 

 [왈짜2가 칼을 챙 꺼낸다]  [삼보의 놀란 숨소리]

 

 바쁜 사람들끼리  시간 끌지 맙시다?

 

 (삼보)  내가 이따위 겁박에 넘어갈 성싶으냐?

 

 이 무엄한 것들...  [겁먹은 신음]

 

 [이림의 한숨]

 

 [해령의 귀찮은 신음]

 

 (해령)  예의만 없는 줄 알았는데

 

 줏대까지 없으십니다

 

 [이림의 한숨]  남녀가 유별한지 안 유별한지  하나만 선택하시지요

 

 (이림)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이라고 했다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이는 법

 

 그대가 매화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대가 아름다움을 모르기 때문이야

 

 해서 '천의무봉'이라는 말이 있죠

 

 (해령)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 자국이 없는 법  [이림의 한숨]

 

 모름지기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지

 

 이 기교를 부려서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림의 기가 찬 웃음]

 

 (이림)  어휴

 

 기교를 부려 억지로 만들어 내?

 

 그래

 

 참새가 기러기의 뜻을  모르는 건 당연하니

 

 - 내 이쯤에서...  - (해령그러는 기러기야말로

 

 이 봉황의 뜻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해령)  저야말로 이쯤에서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익살스러운 음악]  용서누가?

 

 (이림)  그대가 나를?

 

 (해령)  지금 여기서 제 시간을  뺏고 계시지 않습니까무례하게도

 

 (이림)  나도 그대의 막말을 들어 주느라

 

 내 귀한 시간을 다 써 버렸다

 

 (해령)  대낮에 학문은 뒤로하고

 

 세책방이나 들락날락거리는  선비님이십니다

 

 시간요아주 많아 보이시는데요?

 

 (이림)  그리 시간을 쓸 만큼

 

 매화의 소설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

 

 (해령)  아유그리 쓸 시간이 있으면

 

 사서라도 한 권 더 읽고  식견을 좀 넓히십시오

 

 이 한낱 염정 소설 따위에  이리도 열을 내시니

 

 저는 정말

 

 이 나라 유생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될 참입니다

 

 - 이게...  - (해령그리고

 

 (해령)  선비님이 이런 식으로 수상하게 굴수록

 

 저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심?

 

 선비님이 혹 매화는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요

 

 [부드러운 음악]

 

 (해령)  비켜 주시지요

 

 [이림의 옅은 한숨]

 

 [익살스러운 음악]

 

 (이림)  난 매화가 아니라

 

 !

 

 [이림의 못마땅한 신음]  (삼보)  도망치십시오!

 

 뭐 해요도망쳐

 

 빨리뭐 해요  빨리 도망쳐얼른  [이림의 못마땅한 신음]

 

 도망치십시오얼른!

 

 - (삼보비켜요!  - (이림삼보야근데...

 

 [왈짜패들이 소리친다]

 

 (삼보)  같이 가!

 

 - (이림?  - (삼보같이 가자고!

 

 [삼보의 비명]

 

 [후련한 신음]

 

 아휴속이 다 시원하네

 

 (설금)  시원하다고요?

 

 이거 미지근한 물인데

 

 내가 오늘

 

 웬 백면서생 하나를 혼내 줬거든

 

 (설금)  아유...

 

 (이림)  ...

 

 (삼보)  아유이게 저...

 

 (이림)  ...

 

 아파아파

 

 [이림의 아파하는 신음]

 

 [삼보가 입바람을 후 분다]

 

 [이림의 못마땅한 한숨]  아이...

 

 괘씸해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

 

 (삼보)  괘씸하다마다요

 

 세책방 김 서방

 

 믿고 거래한 세월이 얼만데

 

 왈패 놈들한테 우리 마마를 팔아먹...

 

 (이림)  그 인간 말고

 

 그 낭자 말이다

 

 참새!

 

 (삼보)  ...

 

 [이림의 기가 찬 웃음]  [경쾌한 음악]

 

 (이림)  어떻게 내 소설을

 

 한낱 염정 소설이라고?

 

 나 보고 식견을 넓히라고?

 

 [기가 찬 웃음]

 

 [못마땅한 한숨]

 

 [삼보의 옅은 웃음]

 

 (삼보)  아이마마

 

 세상에 매화의 애독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여편네 하나를 신경 쓰십니까?

 

 아무래도 뭐를 잘못 주워 먹고

 

 [익살스러운 효과음]  돌아 버린 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괘념치 마시옵고...

 

 (박 나인)  자객을 보내소서

 

 (최 나인)  제가 신상을 털어 오겠습니다

 

 [기겁하는 숨소리]

 

 다들 됐다

 

 그 여인은 내가 직접...

 

 (삼보)  아유

 

 마마!

 

 오늘 외출에서 뭐 배운 거 없으십니까?

 

 왈패 놈들한테 쫓기다가 넘어져서

 

 이 무릎이 깨질 뻔하셨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무사히...

 

 (삼보)  제가 안 무사합니다제가

 

 마마 몸에 생채기 난 거 알려지면은

 

 제 목이 날아간다고

 

 [버럭대며]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몇 번을!

 

 그리 저를 죽이고 싶으시면은 차라리

 

 직접 베십시오

 

 베십시오그냥!

 

 [밝은 음악]

 

 [시행의 웃음]

 

 (시행)  [웃으며]  아이고

 

 아이고

 

 [시행이 연신 웃는다]

 

 - (홍익승정원  - (관리1) 

 

 - (홍익홍문관  - (관리2) 

 

 - (홍익이조가  - (관리2) 갑시다

 

 [시행이 코를 훌쩍인다]

 

 (시행)  뭐야?

 

 경연이 벌써 끝났냐?  아따운도 좋네

 

 어제 내가 들어갔을 때는  두 시진도 넘게 떠들더니...

 

 (길승)  쫓겨났습니다

 

 (시행)  쫓겨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시행이 책을 탁 내려놓는다]

 

 누가 사관을 쫓아 보내?

 

 누구일 거 같습니까?

 

 사관까지 물리고  전하와 독대할 수 있는 대신이?

 

 [긴장되는 음악]

 

 [새가 짹짹 지저귄다]

 

 (상선)  듣지 못했는가?

 

 전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명하셨네돌아가게

 

 사관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고해 주십시오입시하겠습니다

 

 전하께 또 불호령을 들어야  발길을 돌리겠는가?

 

 고해 주십시오

 

 (이태)  금서도감을 설치하겠다?

 

 (익평)  전하

 

 (이태)  그런 일이라면

 

 대리청정 중인 세자에게  고해도 될 것을

 

 어찌하여 과인을 이리 귀찮게 하는가?

 

 [이태의 한숨]

 

 평안도의 한 서포에서  입수한 서책입니다

 

 (이태)  하면

 

 이 서책이 이미 민간에  퍼지고 있다는 뜻인가?

 

 송구합니다전하

 

 (이태)  감히

 

 과인의 나라에서 누가 이런 짓을

 

 (상선)  전하사관이 입시를 청하옵니다

 

 내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이태)  당장 물리거라!

 

 (우원)  전하사관의 입시 없이는

 

 누구도 주상 전하와  독대할 수 없는 것이

 

 '경국대전'에 명시된  조선의 국법이옵니다

 

 소신은 규정과 의무를 따르고자 함이니

 

 마땅히 입시를 허하여 주시옵소서

 

 (이태)  네놈이 감히

 

 임금에게 법을 가르치려 드느냐!

 

 (익평)  전하

 

 [문이 달칵 열린다]

 

 [다가오는 발걸음]  [문이 달칵 닫힌다]

 

 (익평)  민 봉교

 

 [무거운 음악]

 

 좌상 대감이셨습니까?

 

 전하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하시네

 

 그만 물러가게

 

 사관은 물러나란다고  물러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원칙도 좋지만

 

 진정한 충신이라면

 

 때때로 어심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야

 

 진정한 충신이라면

 

 전하께 올리는 간언을  역사로 남기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겠지요

 

 (익평)  [한숨 쉬며]  하면 그렇게 기록하게

 

 '좌의정 민익평이'

 

 '엄정한 법전을 무시하고  사관의 입시를 막다'

 

 그리 기록하란 말일세

 

 난 지금 신하가 아니라

 

 20년 지기 동무로서 전하를 뵙고 있네

 

 정사와는 무관한 대화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그만 물러나게

 

 (익평)  우원아

 

 [익평의 한숨]

 

 [우당탕 소리가 난다]

 

 [김 서방의 놀란 신음]

 

 [김 서방의 겁먹은 신음]

 

 김가는 어디 계시는가?

 

 (김 서방)  !

 

 [다급하게]  여기 있습니다요나리

 

 (두목)  난 말이야세상에서  약속 안 지키는 놈들이 제일 싫어

 

 대체 왜 그러는 거야서운하게?

 

 (김 서방)  제가 무슨 약속을 했다고...

 

 (두목)  '매화 데리고 독회 한번 열면은'

 

 '사대문 안에  기와집 두어 채는 살 수 있습니다'

 

 누가 그랬어?

 

 '매화 서명이 담긴 서책  하나만 팔아도'

 

 '웬만한 벼슬아치  1년 치 녹봉은 됩니다'

 

 누가 그랬어?

 

 그러니까 그것이

 

 그럴 수도 있다라는 거였지

 

 [김 서방의 겁먹은 신음]

 

 (김 서방)  제가 꼭 데리고 온다고는...

 

 (두목)  내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돈을 퍼부은 줄 알아?

 

 내가 성질 같아서는 자네 손발을

 

 싹둑싹둑 잘라 버리고 싶은 심정이네만

 

 [울먹이며]  기회를 주십시오나리

 

 제가 다시 한번 청해 보겠습니다

 

 (두목)  이렇게 생긴 것들한테 쫓겨 도망갔는데

 

 퍽이나 다시 오겠다

 

 - (두목막내야  - (왈짜1) 

 

 - (두목도끼 가져와라  - (왈짜1) 

 

 (김 서방)  안 됩니다안 됩니다!

 

 [흐느끼며]  살려 주십시오나리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습니다

 

 처자식 손발도  잘라 달라는 말인가?

 

 (김 서방)  [식겁하며]  아니요그게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

 

 [소리치며]  나리

 

 나리

 

 제게 좋은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

 

 (두목)  ?

 

 생각해 보십시오

 

 매화는 절대

 

 절대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 서방)  아씨해령 아씨!

 

 해령 아씨잠깐만요

 

 - 김 서방?  - (김 서방아휴아휴

 

 [김 서방의 힘겨운 숨소리]

 

 [김 서방의 다급한 숨소리]

 

 (해령)  아니대체 이 훤한 대낮에  누가 책비를 부른답니까?

 

 그것도 나를 콕 집어서?

 

 (김 서방)  어허일거리가  필요하다지 않으셨습니까?

 

 짭짤히 챙겨 주신답니다

 

 [김 서방의 헛기침]  [해령의 못마땅한 신음]

 

 [해령의 놀란 신음]

 

 [김 서방의 재촉하는 신음]

 

 (해령)  김 서방

 

 여기는...

 

 (해령)  지금 나더러

 

 매화 행세를 하라는 거요?

 

 (두목)  벌써 김가한테 다 들었습니다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책비시라고

 

 [김 서방의 멋쩍은 숨소리]  [해령의 헛웃음]

 

 별일 아닙니다그냥 하룻밤?

 

 딱 하룻밤만 독회에 나가서

 

 매화인 척 서책을 읽어 주시면...

 

 됐소

 

 다른 사람 알아보시오

 

 (두목)  아이제가 선생님 마음 압니다?

 

 그래도 뭐양반이라고

 

 아휴한두 번은 튕겨 줘야  체면이 산다

 

 그 말씀이시지요?  [해령의 못마땅한 한숨]

 

 선생님 명성에 맞게

 

 준비해 봤습니다

 

 선금이올시다

 

 [해령의 못마땅한 숨소리]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소?

 

 설마 아직도 그날 일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계신 겁니까?

 

 (두목)  제가 사과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땐 귀한 분인 줄 몰라뵙고  실례를 범했다고

 

 [헛웃음 치며]  귀한 분이 아니면  짐승처럼 대해도 되고?

 

 [답답한 신음]

 

 대체 사람의 도리라는 게  뭔지 알기나 하시오?

 

 (김 서방)  아이고

 

 압죠압죠도리도리...

 

 아이고아씨그러지만 마시고

 

 좋은 머리로다가  산수를 한번 해 보십시오

 

 두당 입장료 닷 냥씩만 받아도

 

 [웃음을 참으며]  그게 다 얼마겠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일거리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날카로운 효과음]

 

 내가 일거리 찾아 달랬지

 

 언제 함께 사기 칠 사람  알아봐 달랬나?

 

 - ...  - (해령억만금을 준대도

 

 하지 않을 생각이니

 

 더 이상 귀찮게 마시게

 

 [김 서방의 멋쩍은 신음]  (해령)  나는 그딴 염정 소설이나 읽어 줄 만큼

 

 비위가 좋은 인간도 아니고

 

 이딴 놈들과 상종할 만큼  썩어 빠진 인간은 더더욱 아니라서

 

 [해령이 혀를 쯧 찬다]

 

 (김 서방)  아니아씨...

 

 (두목)  잠깐

 

 내 그 사람의 도리라는 거

 

 한번 보여 드리리다

 

 [두목이 궤를 달칵 연다]

 

 요거

 

 그 쪼끄만 놈 노비 문서요

 

 딱 하룻밤만

 

 눈감고 도와주십시오

 

 그럼 제가 뭐요까짓 거

 

 없애 드릴게

 

 [해령의 고민스러운 숨소리]

 

 [잔잔한 음악]

 

 [김 서방의 안도하는 한숨]

 

 (김 서방)  아씨

 

 아씨가 오늘 몇 사람의 인생을  살려 놨는지 아십니까?

 

 저하고우리 처자식 일곱하고

 

 그리고 이놈...

 

 이놈의 자식인마이리 와!

 

 (해령)  빨리 나와나 마음 바뀌기 전에

 

 [김 서방의 못마땅한 신음]

 

 (해령)  김 서방

 

 이 아이

 

 며칠만 좀 맡아 주시게

 

 거처는 내가 알아보겠네

 

 (김 서방)  아이고뭘 이런 걸...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고기도 사다 먹이고

 

 이 애 옷도 사 입히고 하겠습니다

 

 너는 또 어디 가서 사고 치지 말고

 

 (해령)  이 아저씨 집에  딱 붙어 있어야 돼알았지?

 

 (소년)  고맙습니다

 

 (길승)  갑자기 금서도감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난리입니까?  [시행의 한숨]

 

 (시행)  난들 아냐?  윗분들의 그 복잡미묘한 큰 그림을

 

 근데 홍문관 이 영감탱이들은?

 

 금서도감이 설치됐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할 것이지

 

 관각 당하관들 다 모이라고  물귀신 작전 쓰는 건 또 뭐야이거?

 

 (서권)  그만큼 사안이 급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군)  아무리 급하다 한들

 

 어찌 사관을 이런 잡일에 동원합니까?

 

 (홍익)  맞습니다

 

 어디이게 보통 손입니까?

 

 역사를 쓰는 손입니다역사를

 

 (주서)  자네들!

 

 어서 오지를 않고 무엇들 하나?

 

 (홍익)  지금 갑니다요

 

 - (홍익가야지  - (시행간다!

 

 [시행의 못마땅한 신음]

 

 [우원의 한숨]

 

 [무거운 음악]

 

 내가 경들을 많이 놀라게 했나 봅니다

 

 세자를 보고도  일어설 정신이 없는 걸 보면

 

 (익평)  저하

 

 어찌 이리 누추한 곳까지  걸음 하셨나이까?

 

 [이진의 헛웃음]

 

 누추한 곳이라...

 

 (이진)  그래요

 

 좌상은 이리 누추한 곳에서

 

 일국을 다 주무르고 계셨습니다?

 

 (우의정)  저하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소신들은 그저 견마지로라도  보탬이 될까 하여...

 

 (이진)  입 다무세요우상

 

 그대가 좌상과 한통속임을  내 모를 것 같습니까?

 

 (익평)  옳은 말씀입니다저하

 

 종묘사직을 살피는 과업을 지고

 

 군주를 향해 품은 충심이 같으니

 

 소신들 모두가 가히

 

 한통속 아니겠습니까?

 

 해서 나도 모르게

 

 금서도감 같은 중대한 일을  홀로 결정하셨소?

 

 그것이 좌상이 말하는 충심이오?

 

 [익평의 한숨]

 

 좌상나이가 들어  자꾸 잊으시나 봅니다

 

 난 이 나라의 국본이고 그대의 군주요

 

 좌상이 아무리 만인지상이라 해도

 

 내게는 일인지하라는 뜻입니다

 

 주상 전하께서 윤허하신 일입니다

 

 며칠 전 전하를 찾아뵙고

 

 금서에 관한 일을 윤허받았습니다

 

 소신이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한들

 

 어찌 저의 군주이신  주상 전하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자 저하

 

 대체 좌상은 무엇을 숨기려고

 

 부왕까지 끌어들여  이 사달을 벌인 겁니까?

 

 전하께서

 

 패관체로 쓰인 언문 소설들이

 

 풍속에 위해를 가하고

 

 성학을 쇠퇴시킨다 염려하셨습니다

 

 해서 급한 사안이라 판단해 서둘렀으나

 

 미처 저하의 기분이 상하는 것까진  살피지 못했으니

 

 마땅히 소신의 불찰이옵니다

 

 [분노한 숨소리]

 

 (익평)  살펴 가시옵소서저하

 

 (해령)  아이고아휴...

 

 (두목)  그게 아니죠

 

 좀 더 예술가의 혼을 담아서

 

 무심하지만 한양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 필체로다가 좀

 

 흘려 쓰란 말입니다

 

 (해령)  아유진짜 서책에  서명 한번 해 주는 데

 

 뭘 그리 난리요?

 

 정직하게 '매화'  이렇게 쓰는 게 제일 보기 좋구먼

 

 (두목)  선생님은 다 좋은데

 

 사업을 너무 몰라?  [해령의 한숨]

 

 이 독회 입장료로  그몇 푼이나 건질 거 같습니까?

 

 진짜 중요한 건

 

 이 서명이 담긴 서책을  비싸게 팔아 재끼는 거지

 

 다시 해 봅시다

 

 흩날리는 도포 자락의 느낌

 

 공들였지만 절대 티 나지 않는

 

 그런 자연스러운 필체로다가

 

 [헛웃음]

 

 (해령)  어휴

 

 [못마땅한 한숨]

 

 [잔잔한 음악]

 

 (해령)  '일어나거라'  [풀벌레 울음]

 

 '세자 저하의 명에'

 

 '자경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익숙한 얼굴'

 

 '바로'

 

 '곤룡포를 입은 김 도령이었습니다'

 

 [여인들의 탄성]

 

 반전 아니야진짜?

 

 [여인들의 탄성]

 

 (해령)  '자경의 시선이 요동쳤습니다'

 

 '김 도령이'

 

 '이 나라의 세자였다니'

 

 [여인들의 탄성]

 

 [여인들이 수군거린다]  (여인9)  세자였어

 

 (해령)  '놀라서 굳어 있는 자경에게'

 

 '김 도령이 말했습니다'

 

 '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 여인이여'

 

 [여인들이 수군거린다]

 

 (나장)  비키시오!

 

 [시끌벅적하다]

 

 (해령)  함자가 어찌 되십니까?

 

 (여인5)  진양입니다

 

 [발랄한 음악]

 

 [여인5의 감격스러운 숨소리]

 

 제가 정말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어제 잠을 못 자 가지고

 

 선생님일단  제가 진짜 많이 사랑하고요

 

 [울먹이며]  정말 할 말 많은데 왜 이러지?

 

 [여인5의 울먹이는 신음]

 

 (해령)  아이저기...

 

 여기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 (해령다음  - (여인5) 벌써요?

 

 (여인5)  잠깐만요

 

 가기 전에 손 한 번만  잡아 주시면 안 돼요?

 

 안 됩니다

 

 다음!  [여인5의 속상한 숨소리]

 

 (여인5)  [흐느끼며]  잠깐만...

 

 [여인들이 시끌벅적하다]  [여인5가 계속 흐느낀다]

 

 [해령의 지친 한숨]

 

 [여인들이 술렁인다]

 

 [여인들이 수군거린다]

 

 (해령)  [한숨 쉬며]  함자가 어찌 되십니까?

 

 (이림)  질문이 있습니다

 

 김 도령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연정을 고백하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은 대체

 

 어찌 생각해 내시는 겁니까?

 

 그건...

 

 지난해에

 

 유달산 유람을 갔다가  아주 깊은 감명을 받고

 

 절로 막 써지더이다

 

 [아름다운 음악]  (이림)  유달산이라...

 

 [이림의 코웃음]

 

 아닌데?

 

 이름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드리겠습니다

 

 [흥미진진한 음악]

 

 (이림)  '매화'

 

 [반짝이는 효과음]

 

 제 이름

 

 '매화'라고 적어 주시겠습니까?

 

 [흥미진진한 음악]

 

 [해령의 놀란 신음]

 

 (이림)  낭자?

 

 [흥미진진한 음악]

 

 [감미로운 음악]  그리 매화 편을 들더니  매화 본인이셨습니까?

 

 뭐가 그리 당당해사기꾼 주제에?

 

 (해령)  선비님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림)  내가 너 부숴 버릴 거야!

 

 (이태)  오늘부터 도원 대군은

 

 단 한 권의 서책을 읽어서도  써서도 안 될 것이야!

 

 (이림)  그것조차 할 수 없다면  제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익평)  이 땅에 호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딱 셋입니다

 

 (대비 임씨)  어찌 좌상이 쌓아 둔 궁도 안으로  들어가려고만 하십니까?

 

 (이진)  여사 제도를 허한다  그 시제는 세자인 내가 직접 정한다

 

 (대제학)  별시를 통과할 딱 한 명이면 됩니다

 

 (재경)  네 혼처를 찾았다

 

 언제까지 숨어 살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해령)  '여사 별시'

 

 저는 이 혼인을 할 수 없습니다

 

.신입사관 구해령

.영화 & 드라마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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