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6
[부드러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옥황) 참 정직한 생명체야
원인에 따라 이렇게
결과가 만들어지니까
햇빛을 보면 꽃을 피우고
그렇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고
그렇지 않니, 련?
꽃 보라고 불러낸 거 같진 않은데
이번 자살 예정자 말이야
(련) 아
'이영천, 나이 91세'
혼자 사는 독거노인
왜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인도 팀과 함께할 거 같구나
(옥황) 그 사람 수명이 내일까지야
- 네? - (옥황) 보통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옥황)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게 되길 바라지
한데 왜 생애 마지막 결심이
자살이 되었을까?
긴 세월에도
(련)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나
후회가 있나 보죠
그래
(옥황) 네 말대로 그 상처가 뭔진 모르겠지만
온전히 제 수명대로 살게 해야 되지 않겠니?
하루 만에
(련) 수십 년 동안 극복하지 못한 상처를
치유해라?
'그래도 당신의 삶이 의미 있었다'
(옥황) 그 정도는 채워 줘야 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음악]
[준웅이 파일을 툭 놓는다]
(준웅) 씁, 그, 팀장님 늦으시네
이참에 회장님한테
우리 팀 충원해 달라고 하면 좋을 텐데
(준웅과 륭구) - [영어] 왜요? - [한국어] 아무도 안 옵니다
(륭구) [영어] 여기
(준웅) [한국어] 음
하긴 여긴 너무 빡세고
뭐랄까, 뭔가 주마등의 왕따 같은 느낌이 들긴 하죠
이왕이면 다들 각 잡힌 그, 슈트 입고 다니는
인도 팀 다니고 싶어 할 거야 그렇죠? 응
아, 근데 대리님은 언제부터 주마등에 계셨던 거예요?
조선 시대요
[웃으며] 조선 시대요?
(준웅) 아, 팀장님은 대리님보다 조금 더 오래 계셨으니까
이순신 장군님, 세종 대왕님 막 그때부터 계셨던 거예요? [다가오는 발걸음]
(련)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여?
[준웅의 당황한 숨소리]
그럼 언제부터…
병자호란
병자호란?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할 얘기가 있어
[준웅이 침을 꿀꺽 삼킨다]
(준웅) 내일 당장 돌아가신다면
삶의 의미를 되찾아 드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륭구) 의미는 둘째 치고 시간이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단순히 하루 동안 자살을 막는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련) 임 대리 말이 맞아
옷들 갈아입어
시간 없다
[까마귀 울음]
(준웅) [힘겨운 목소리로] 아이 아, 아니
아직 이 동네에
사람이 산다고요?
재개발을 앞두고 다 나간 모양이네
아직 멀었어?
(륭구) 저 집입니다
[준웅의 힘겨운 숨소리]
[한숨]
(준웅) 아, 끌어 주세요, 두 분이
끌어 주세요
뭘 바라냐
[준웅의 한숨]
(준웅) [우편함을 달그락거리며] 사람 안 사는 거 같은데요?
여기
[초인종을 탁탁 누르며] 벨도 안 되고
계세요?
[흥미로운 음악]
[준웅의 벅찬 숨소리]
나, 나도…
[준웅의 힘주는 소리]
(륭구) 우와
좋겠다, 부럽다
둔한 게 초능력급이네
손끝이 찌릿찌릿했었는데
(준웅) 했는데?
아
(련) 일단 청소 좀 하자
그러고 찾자
(준웅) 청소요?
깨끗한 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집니다
(륭구) 특히 생활 공간일수록 더더욱 그렇고요
청소를 하려면 청소 도구부터 좀 사야 할 거 같은데
이 동네엔 파는 데가 없을 것 같고
(륭구) 아마 옆 동네까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음악]
다 같이 움직이는 거보단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게
좀 더 효율적일 거 같은데
(륭구) 그렇다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과연 어떻게 뽑아야 할까요?
고민이네
(륭구) 고민입니다
갈게요
(륭구) 고마워요
(준웅) 에이!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준웅) 하, 아이, 뭐 그냥 시키면 되지
뭘 또 안 어울리게 눈치를 주냐, 눈치를
[바퀴 굴러가는 소리]
- (아이) 엄마 - (여자1) 응?
(아이) 왜 저 할아버지는 쓰레기를 가져가?
(여자1)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래
저 할아버지처럼 안 되려면 너도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겠어?
아, 무슨 말을 저렇게 해
(준웅)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영천) 아니요, 괜찮습니다
(준웅) 아, 잠시만요
(영천) 예?
이영천 씨?
(영천) 응?
(영천) 구청 일도 바쁠 텐데
(준웅) 아유, 아니에요, 안 바빠요
그리고 제가 힘쓸 데가 없어서 그래요
[함께 웃는다]
(영천) 아니,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이
아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준웅) 이래 봬도 제가 보통 근육이 아니거든요
(영천) [웃으며] 그래? [준웅의 웃음]
[준웅이 콜록거린다]
(준웅) 아, 근데 동네가 참 쓸쓸하네요
(영천) 어, 전엔
사람이 참 많았었는데
다들 나가서 그렇지
할아버지는 왜 안 나가셨는데요?
(영천) 나?
뭐, 얼마 되지 않는 보상금을 들이밀면서
무조건 나가라고 그러는데
그 돈으로 뭐, 어디 갈 곳도 마땅치 않고
그리고 평생을 쭉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아, 뭐, 그리고 곧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고
[어두운 음악]
[영천의 옅은 헛기침]
[준웅이 의아해한다]
(조폭1) 저기 있네
할배
한참 찾았잖아, 어?
아무튼 사람 고생시키게 하는 데는 기가 막힌 재주가 있다니까?
이야, 죽을 둥 살 둥 해 갖고 여기까지 걸어온 거야?
그 힘으로 딴 데 가서 살라니까 [리어카를 툭 내려놓는다]
아, 왜 이렇게 말 안 듣는 거야!
(준웅) 저기요 말씀이 좀 심하신 거 같…
(영천) 이러지 말게
(조폭1) 이건 또 뭐야
오늘은 손자도 데리고 나왔네?
야, 딴 데 좀 모시고 가라, 어?
네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영천) 저…
날 도와주러 나온 청년일세
알겠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게
(조폭1) 응? 할배 [준웅의 성난 소리]
(영천) 어, 아, 아니야, 아니야
(조폭1) 할배, 할배가 가야 우리가 돌아갈 거 아니야
어?
이건 또 뭐야 [웃음]
이야
[조폭1의 웃음]
(준웅) 씨 [영천이 만류한다]
이, 전쟁터에서 나라를 구하셨던 분이
왜 나라 발전시키겠다는데 이렇게 방해를 하는 거야
[무거운 음악] (조폭1) 이 더러운 동네 깨끗하게 치워야
집값도 오르고 깔끔해지고 좋잖아
[영천을 탁탁 치며] 그러니까
좀 제발 좀 이사를 가시라고요, 좀!
어유, 씨! 이런 거 주워 갖고 뭐 하자고!
어?
이씨
아니, 젊었을 때는 훌륭하셨던 분이, 어? [준웅의 성난 숨소리]
[폐지를 던지며] 왜 늙어 갖고는 이렇게 진상을 부리실까, 어?
죄송합니다
(영천) 아, 아니야, 안 돼, 안 돼
[조폭1의 신음]
(조폭2) 형님! 괜찮으세요? [영천의 놀란 숨소리]
이 자식이, 씨!
[준웅의 웃음]
[준웅과 영천이 대화한다]
(련) 너 싸웠니?
(륭구) 맞기만 했습니까?
(영천) 아니, 저…
날 도와주다가 그만
아니, 한두 명도 아니고 어떻게 이겨요, 조폭들을
그럼 덤비질 말았어야지
(준웅) 그 자식들이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했는데요
그거 보고 가만히 참으라고요?
이게 어디 맞고 와서 큰소리야
(영천) 아니, 근데
아니, 뉘신지요?
같은 구청 직원분들이신가?
(준웅) 아…
이영천 씨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륭구) 우린 저승사자입니다
[무거운 음악]
[준웅이 당황한다]
아, 저, 저, 저는 아닙니다
(준웅) 저는 아직 아닙니다 반반입니다, 반반, 네
이영천 씨
당신은 내일 죽습니다
[영천의 놀란 숨소리]
[영천의 놀란 숨소리]
[영천의 힘주는 신음]
아, 아니, 우리 이렇게 막 나가기로 한 거예요?
(준웅) 아니, 그 저승사자 오픈할 거냐고요
이영천 씨 수명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아이, 그렇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해 보이시던데
[한숨]
정해진 수명이 그렇습니다
혹시 할아버지 어떻게 돌아가시는지 알아요?
인도 팀에선 급성 질환으로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6.25 전쟁 참전 용사셨더라고요
어떻게 알았어요?
국가 유공자 모자를 쓰고 계셔 가지고
(준웅) 근데 왜 이런 곳에서 혼자…
레드라이트 앱에도 가족 관계가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저승사자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저승사자
[놀란 숨소리]
아, 내가 죽음이 가까운 때라 그런가
(영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게
저승사자님들이
맞는 것 같네요
(련) 우리는
당신을 살리려고 온 겁니다
예, 예?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더군요
[당황한 숨소리] [차분한 음악]
(련) 하지만
당신의 남은 수명은
단 하루입니다
[놀란 숨소리]
원하는 거나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지 해 줄 수 있어요
(영천) 몇 주 전에 이웃 하나가
고독사한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체는 썩다 못해
백골이 됐다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언제 죽을지 모를 날만 기다리는 건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세상을 뜰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차피
전 하던 일을 끝내고 죽으려고 했으니까
(영천) 그냥 원래 살던 대로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모자를 툭 집는다]
(련) 어딜 가시려고요?
다시 폐지를 주워
해 지기 전에 고물상에 팔러 갑니다
혼자는 쓸쓸할 테니
당신의 마지막 내일을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옅은 웃음]
(준웅) 할아버지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시든가 아니면 좋은 데 가시지
(영천) 괜찮네
마지막 날인데
다 눈 안에 넣어 놔야지
[한숨]
오늘 영 날이 아니네
이미 다 주워 간 모양이야
경쟁이 치열한가 보네요
그래도 저기
(영천) 골목을 돌아서면 좀 있을 거야
오케이!
(영천) [웃으며] 아, 저런, 저…
진짜 힘이 넘치네
의욕이 너무 넘쳐서 문제죠
[웃으며] 그런가?
(영천) 어이구, 참
(준웅) 어?
어어, 아저씨, 아, 아저씨!
[준웅이 당황한다] [쿵]
[차 문이 탁 닫힌다] 아저씨, 아저씨! 아이, 잠깐만
아이, 그, 저, 아이, 저…
아이, 어, 아이, 저…
아이, 아유, 아이, 아저씨!
아니, 아이!
아니, 무슨 젊으신 분이
아니, 차도 있으시면서 왜…
아이씨
(영천) 요즘은 집에 있는 게 갑갑하다고
운동 대신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준웅) 아, 운동을 대신해서요?
(영천) 나 같은 노인들한테는
이게 생존 문제인데
늙은 게 죄지
[잔잔한 음악] [영천의 힘주는 신음]
(영천) [웃으며] 아이고, 아유
여기 많이 있었네요
[영천이 리어카를 탁 내려놓는다]
다른 사람들이 여길 놓치고 갔나 봅니다
(준웅) 아이, 근데 냄새가 조금…
- 쓰레기 아닙니까? - (영천) 쓰레기라니요?
제겐 아주 소중한 것들입니다
(영천) [웃으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운이 아주 좋네요
(련) 두세요, 저희가 할게요
(영천) 아니 [병이 달그락거린다]
아, 아니, 아니
저, 사자님들 손에 더러운 걸 묻게 할 수는 없거든요
(련) 이게 뭐가 더러워요
이거보다 더러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 (영천) 하지만… - (준웅) 아, 맞습니다
뭐 주우면 되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다 치울게요
아니, 아, 괜찮아요, 저
아유… [준웅의 힘주는 신음]
사자님들, 고맙습니다
(준웅) 어유, 일로 주세요 제, 제가 들게요
- (사장) 아유, 어르신 - (영천) 어
[사장과 영천의 웃음]
- 오늘은 많이 가져오셨네요 - (영천) 응
- (사장) 오늘 운이 좋으셨나 보다 - (영천) 아이고
(영천) 어, 아이고 [사장과 영천의 웃음]
(사장) 근데 저분들은 누구세요?
(영천) 아, 나 도와주러 오신 분들일세
(사장) 아
그래서 이렇게나 가져오셨구나
고마운 일이지
[사장과 영천의 웃음]
(영천) 아참
자네 이 고물상 곧 접는다고?
(사장) 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려고 했는데
그 깡패들이 좀 무섭게 해야죠
(영천) 하긴
나도 곧 떠나네
(사장) 어, 어디 이사라도 가세요?
요즘 집값이 비싸서 마땅한 곳이 없을 텐데
걱정하지 말게
좋은 곳으로 가
[웃음]
그럼 다행이고요
(사장) 아유
많이 챙겨 드리지 못해서 늘 죄송해요
잠시만요, 이게 다예요?
(륭구) 이렇게 많이 모았는데요?
다시 계산해 봐 정확하게 한 거 맞아?
[영천이 만류한다] (사장) 죄송합니다
[영천의 웃음] [련의 한숨]
(영천) 자넨 뭐가 그렇게 늘 죄송한가
서로 사정을 다 아는데, 응?
저, 오늘 폐짓값은 그냥 넣어 두게
아, 그리고
이거, 저, 내가 조금씩 모은 건데
얼마 되지 않지만
이거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 맛있는 거 사다 줘 [잔잔한 음악]
[사양하는 소리]
(사장) 아유, 아유 어르신,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르신 돈을 어떻게 받아요
어떻게 버신 돈인지 뻔히 아는데
받아
(영천) 어른이 이런 걸 줄 때는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자
내가 안 그래도 몇 번 주려고 했었는데
빡빡해서 챙겨 주질 못했어
[코를 훌쩍인다]
다음에 제가
(사장) 맛있는 저녁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사장의 웃음]
그동안
고마웠네
저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르신
(사장) 어르신, 건강하세요
자네도
(준웅) [힘주며] 제가 하겠습니다, 네
[영천의 헛기침] 수고하세요
[새가 지저귄다]
(영천) 내 인생의
마지막 노을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감회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한 많은 지난 세월
다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미련이 남나요?
(영천) 마지막이라 그런가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군요
그날의 선택이 자꾸만
후회가 되는군요
내 삶이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륭구) 전쟁엔 자원하신 겁니까?
예, 그랬습니다
[한숨]
[한숨]
[무거운 음악]
[새가 지저귄다]
[교과서를 툭 내려놓는다]
(젊은 영천) 어머니 저 금방 다녀올 거예요
이렇게 안 싸 주셔도 돼요
[훌쩍인다]
줄 게 이거밖에 없어, 미안해
(영천 모) 배곯지 말고, 응?
(젊은 영천) 죄송합니다, 어머니 [영천 모가 흐느낀다]
(영천 모) 밖에서 친구들하고 말싸움도 안 하던 네가
어떻게 총을 들고 싸우려고 그래
야, 가지 마라, 영천아, 응?
(젊은 영천) 저보다 어린 애들도 입대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제가 보고만 있겠어요
안 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영천 모) 아유
아유, 어떡해
어머니, 큰절받으세요
(영천 모) 아이고, 영천아
아유, 내 새끼
아유
몸조심해야 된다
[영천 모가 흐느낀다]
[젊은 영천이 훌쩍인다]
[긴장되는 음악]
[총성] [전장이 소란스럽다]
(영천) 전쟁터는 생각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총알이 탁 박힌다]
어딜 가도 죽음의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까요
[쾅] [총성이 연신 울린다]
[연신 소란스럽다]
[심호흡]
[펑] [군인들의 비명]
[삐 소리가 울린다]
[어두운 음악]
(상사) 이영천, 이영천! [젊은 영천이 놀란다]
이영천! 정신 차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죄송합니다 [가쁜 숨소리]
살아남아, 맛있는 저녁 먹자
(젊은 영천) 네
[펑] [상사의 신음]
(영천) 그렇게 죽어 나가니
누구에게도 정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총성이 연신 울린다]
[젊은 영천이 소리친다]
[펑] [군인1의 비명]
[군인들의 비명]
(영천)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전우가
동칠이 녀석이었는데
(젊은 영천) 동칠아
맛있냐?
네, 엄청 맛있습니다
하사님은 안 드십니까?
[살짝 웃는다]
너 많이 먹어라
[차분한 음악]
(젊은 영천) 난 집에 가서
우리 어머니가 해 준 따순밥 먹을 거니까
엄마 보고 싶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젊은 영천) 당연하지
끝까지 살아남아서 만나게 될 테니까
반드시
밥도 많이 먹고 키 커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젊은 영천) [동칠을 탁 잡으며] 야, 이씨!
대가리 날아가고 싶어?
죄송합니다 [젊은 영천의 한숨]
철모 제대로 쓰고
(동칠) 네
(젊은 영천) 이거, 이거
다 제대로 붙어서 만나야지, 그렇지?
네
[동칠을 토닥이며] 먹어
[젊은 영천이 입바람을 하 분다]
[프로펠러 소리가 들린다]
[긴장되는 음악]
[비행기 엔진음이 요란하다]
[펑] [소란스럽다]
[총성]
(젊은 영천) 모두 피해!
[총성이 연신 울린다]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다]
[힘겨운 신음]
동칠아, 동칠아
[동칠의 비명]
동칠아, 동칠아!
동칠아
정신 차려, 정신 차려, 김동칠!
의무병, 의무병!
동칠아, 정신 차려
동칠아, 동칠아
의무병! [어두운 음악]
[군인들의 아파하는 신음]
[소란스럽다]
(젊은 영천) 동칠아, 동칠아!
동칠아, 괜찮니?
나다
이영천 하사
너 때문이야
[놀란 숨소리]
아, 왜 살렸어, 나를, 왜?
(동칠) [울먹이며] 그냥 좀 죽게 놔두지
(젊은 영천) 동칠아, 정신 차려
[손을 탁 뿌리치며] 너 때문에
(동칠) 너 때문에
나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아, 꺼져!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무거운 음악]
(영천) 동칠이는
자신을 살린 제 선택을
원망했습니다
어머니
[젊은 영천이 흐느낀다]
(영천) 그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자
난 서둘러 고향 마을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안 계시더군요
내가 왜
전쟁터에 나갔었을까요
[한숨]
아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내가 좀 말이 많았죠?
아이, 죄송합니다
아유, 아닙니다
(련)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다 하세요
(영천) 하, 이렇게
누구에겐가 그냥 다 털어놓은 게
정말 오랜만이라 좋군요
저, 마지막으로
한잔하고 싶습니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 (영천) 내가… - (준웅) 감사합니다 [영천과 준웅의 웃음]
(준웅) 아이, 근데 요 막걸리에는 파전인데 [영천이 주전자를 툭 놓는다]
파전이 없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깐만, 잠깐만
[륭구가 준웅을 탁 잡는다] 최준웅
[흥미로운 음악]
잊으셨습니까?
(륭구) 치킨
(재수) 씨, 더럽게 맛없어
아, 진짜 눈물 나게 맛없어
(준웅) 아
치킨
[준웅의 멋쩍은 숨소리]
아, 예 [준웅의 헛기침]
[잔이 달그락 부딪는다]
[준웅이 숨을 씁 들이켠다]
[준웅의 헛기침]
[영천이 젓가락을 달그락 놓는다]
잘 만들었네
(영천) 맛이 있어
많이 드십시오
사자님들도 같이 드시죠
- (련) 네 - (륭구) 아, 네
잘 먹겠습니다
(영천) 이렇게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한잔하시죠 - (영천) 아, 예
요기, 예
이렇게
(영천) 주름 하나 없는 자네 얼굴을 보니까
젊음이 좋긴 좋은가 싶네
할아버지는 지금도 잘생기셨어요
그래?
[영천과 준웅의 웃음]
(영천) 고맙네
(준웅) 근데 할아버지
전쟁 이후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뭐, 늙은이의 얘기
뭐가 재미있겠나
그래도 전쟁 끝나고는 제 나이 또래셨으니까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해서요
[영천이 잔을 툭 내려놓는다]
[무거운 음악]
(영천) 멈췄던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었지
[떨리는 숨소리]
[젊은 영천의 힘겨운 신음]
[연필을 달그락 든다]
[책상에 팔을 쿵쿵 박는다]
[젊은 영천의 가쁜 숨소리] [군인들의 비명이 들린다]
[펑 소리가 들린다]
[총성] [군인2의 비명]
[총성이 울린다] [힘겨운 숨소리]
[펑] [군인3의 비명]
[거친 숨소리]
[프로펠러 소리가 울린다]
[펑] [군인들의 비명]
[심장 박동 효과음] (젊은 영천)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괴로운 숨소리] [펑 소리가 울린다]
[어두운 음악]
(영천)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일상 속으로 돌아오는 건
쉽지 않았네
[탕]
[탕 소리가 울린다]
[쓱싹쓱싹]
[탕 소리가 울린다]
[힘겨운 숨소리]
[탕 소리가 울린다] [젊은 영천의 힘겨운 숨소리]
[총성이 울린다] [탕탕 소리가 울린다]
[동칠의 비명] [삐 소리가 울린다]
[군인들의 비명] [무거운 음악]
[괴로운 신음]
(인부1) 왜 그래? 어? 이 씨, 왜, 왜, 왜, 왜 그래?
이 씨, 아, 정, 정신 차려 봐 [인부들이 걱정한다]
이 씨, 왜 그래, 어? 왜 그래?
- (인부1) 이 씨! - (인부2) 이 씨, 왜 그래?
(영천) 자연스럽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네
[새가 지저귄다]
닥치는 대로 안 해 본 일이 없었지
[힘주는 숨소리]
(여자2) 아니, 이게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여자2) 뭐 하는 거예요, 이게!
- (젊은 영천) 죄송합니다 - 아휴
(여자2) 이거 깨진 건 다 들고 가요
나 돈 못 줘!
[못마땅한 숨소리]
(여자2) 아유, 어디서 저런 반푼이한테 일을 맡겨 놔선
아휴
[연인이 도란거린다]
(영천) 몸도 정신도 불안정한 상태니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신호등 알림음]
나이가 들어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게 돼서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게 되었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지만
[울먹인다]
[영천이 잔을 툭 내려놓는다]
[영천의 한숨]
[영천의 헛기침]
(륭구) 어디 가십니까? [영천의 힘주는 신음]
(영천) 아니
앉아들 계세요
잠시만
[문이 드르륵 닫힌다]
[문소리가 탁 난다]
(준웅) 괜한 걸 여쭤봤나
[륭구가 잔을 툭 내려놓는다]
(륭구) 전쟁이 일어나면 사자들도 힘이 듭니다
수천, 수만 명을 인도하면 트라우마가 생기거든요
대리님은 인도 팀 아니셨잖아요
전쟁과 같은 참사로 사람이 많이 죽게 되면
타 부서 사자들도 인도 팀으로 파견됩니다
다들 힘드셨겠네요
[준웅의 한숨]
[휴대전화 알림음]
[준웅이 휴대전화를 탁 연다]
(준웅) 어?
어?
[한숨]
왜 여기에 계세요?
[옅은 웃음]
[련의 한숨]
(련)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그 젊은 친구를 보니까
질투가 났습니다
(영천) 그 친구처럼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랬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부드러운 음악]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었죠
이루어 놓은 거 하나 없이 늙어 버린 내 현실은
결국
후회밖에 없네요
보잘것없는
초라한 삶이었습니다
그 보잘것없는 삶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효과음]
[놀란 숨소리]
여긴…
(련) 여기선
서울이 한눈에 다 보입니다
이렇게 보니
(영천) 달라 보이네요
언제 이렇게
세상이 바뀐 건지
아름답네요
(련) 당신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죠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은
없었을 겁니다
당신 삶은
절대 초라하거나
보잘것없지 않습니다
눈에 잘 담아 두세요
당신이
지켜 낸 나라니까요
[떨리는 숨소리]
[영천의 벅찬 숨소리]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도
(영천) 내 삶을 잃었다는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 지 오래인데
이렇게 얘기를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니까요
(준웅)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할아버지
아, 할아버지 여기 계시는구나
할아버지 저 동칠 할아버지 찾았어요!
(영천) 어?
[동칠의 비명] [전장이 소란스럽다]
동칠아, 동칠아!
(준웅) 보이시죠?
혹시 몰라서 SNS에 할아버지 사연 올렸거든요
[영천이 놀란다]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 가지고 많이많이 퍼졌나 봐요
아까 동칠 할아버지 손주한테 연락이 왔는데
지금 부산에 사시고 건강하시대요 [영천이 놀란다]
여기 보세요
[준웅과 영천의 웃음]
(영천) 어떻게…
아니, 이런 일이 어떻게, 응?
[영천과 준웅의 웃음]
잘 살아 줘서 고맙다, 동칠아 [잔잔한 음악]
[함께 웃는다]
(준웅) 할아버지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고 사셨대요
(영천) 아이고, 이런
[군인들의 아파하는 신음]
너 때문이야
[병원이 소란스럽다] (동칠) 너 때문에
아, 왜 살렸어, 나를, 왜?
[울먹이며] 그냥 좀 죽게 놔두지
[숨을 깊게 내뱉는다]
집에 가고 싶다며 키 커서 엄마 보고 싶다며!
우리가 뭘 위해 싸웠냐
너희 어머니가 보고 싶은 게 뭘까?
네 시체야? 아니면!
살아 돌아온 너야?
[떨리는 숨소리]
[흐느낀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준웅이 살짝 웃는다]
(준웅) 여기 하트 옆의 숫자 보이시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신 거예요
근데 어, 어떻게 이 사람들이…
존경의 의미죠
목숨 걸고 싸우신 용기에 대한
[영천의 멋쩍은 소리]
(영천) 내가 뭐 그렇게
큰 보상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저 사람들이 좀
알아봐 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유, 유치하게
이, 이런 걸 쓰고 다녔는데
[영천의 멋쩍은 웃음] [준웅의 웃음]
왜요?
네가 쓸모가 있다는 게 놀라워서
아유, 그러면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칭찬이라도 한번 해 주시지
춥다, 어서 모시고 들어가
(준웅) 팀장님은요?
나 갈 데가 있어
(련) 들어가세요
(영천) 아, 예
- 가시죠 - (영천) 응
(준웅) 조심하세요
[준웅의 웃음]
[한숨]
(련) 이영천 씨 누가 인도하죠?
(중길) 그걸 내가 왜 구 팀장한테 얘기해야 되지?
팀장님께서
직접 인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인도 팀 관리까지 하고 싶은가?
(중길) 할 수 있는 일만 하지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련) 부탁드립니다
이영천 씨 최대한 예우를 갖춰
인도해 주셨으면 해요
[한숨]
(련) 이영천 씨 [무거운 음악]
마지막을 편하게 해 주세요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걸
손 놓고 지켜볼 수가 없어서요
너희들 짰냐?
- (련) 네? - 방금 박 팀장이 왔다 갔거든
세상 만물 뭐 하나 똑같지 않은데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느끼는 거
(옥황) 참 신기한 일이야
[한숨] 하지만
죽음 앞에선 누구도 특별해선 안 돼
특별할 수도 없고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쓸쓸하지 않도록요
참 많은 걸 바라는구나
최소한의 예우를 바라는 겁니다
생을 판단하는 건
너희 사자들의 몫이 아니야
- 회장님 - (옥황) 그만
참는 건 여기까지다
(옥황) 이영천 씨의 삶은
공정하게 심판될 거다
그러니까 그만 가 봐
[한숨]
공정하게요?
(련) 저한테는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안 한다'로 들릴까요?
[한숨]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우당탕 소리가 난다] (조폭1) 집을 비워야 할 판에
사람을 더 들이면 어쩌겠다는 거야?
(조폭1) 이거 완전 한번 해보자는 거지?
(준웅) 아, 이제 그만 좀 가, 가세요
넌 또 처맞고 싶냐?
[준웅의 성난 숨소리]
(륭구) 들어가 계십시오
[영천의 난처한 숨소리]
소란 피우지 말고 말로 합시다
이건 또 뭐야
(조폭1) 말로 안 하면 어쩔 건데, 어?
- (조폭1) 아, 어쩔 거냐고? - (영천) 아니, 그러지 말게
(영천) 이, 이분들한테 이러면 안 되네
(조폭1) 아유, 씨 [영천의 신음]
(준웅) 괜찮으세요, 할아버지?
(영천) 응, 괜찮아
(조폭1) 아이, 뭐야
아이, 노인네 눈 부라려 갖고 나 회춘하는 줄 알았네?
[조폭들의 웃음] 아, 나 무서울 뻔했어
(준웅) 아이, 진짜, 씨
(련) 너희들이구나 [강렬한 음악]
우리 막내 때린 게
(조폭1) 이 조합 뭐지?
아주 가지가지 하네
(련) 먼저 들어가 있어 금방 갈게
(준웅) 들어가 계시죠
뭐, 장손이야?
(조폭1) 아주 자손들이 아주 기백이 있어 [문이 탁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우리 아가씨
몇 살이야?
420살
뭐? 20살?
귀먹었니?
420살이라고
[강렬한 효과음]
[영천의 힘겨운 신음]
(준웅)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영천) [힘겨워하며] 응, 괘, 괜찮아
아, 그, 그나저나
그분만 두고 와서
어, 어쩌나
(륭구)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너무 괜찮습니다
[강렬한 음악] [조폭들이 놀란다]
(조폭3) 형님!
[조폭들의 힘주는 신음]
[조폭3의 신음]
[조폭들의 신음]
[조폭2의 힘겨운 신음]
(조폭1) 이씨
[조폭1의 신음]
[조폭1의 힘겨운 신음]
[겁먹은 소리]
뭐야
일분일초가 소중한 사람한테
너희 같은 쓰레기가 방해가 되면 안 되겠지?
꺼져
(조폭2) 형님! [조폭들의 힘주는 신음]
[힘겨운 신음]
(준웅) 어, 하, 할아버지
(륭구) 말은 하지 말고 심호흡해 보십시오 [준웅의 걱정하는 숨소리]
(준웅) 하, 할아버지 우리, 우리 병, 병원 가요, 병원
아, 아니다, 119부터 불러야지
(륭구) 준웅 씨 소용없습니다, 그만두세요
아이, 지금 가서 응급 처치 하면 사실 수도 있잖아요
- 준웅 씨 - (준웅) 아니
뭐라도 해 봐야 될 거 아니에요
(륭구) 아니요
[힘겨운 신음]
정해진 수명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준웅의 한숨]
할아버지
괘, 괜찮아
(영천) 괜찮아
우린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잖아
[울먹인다]
[문이 탁 닫힌다] 어디 가?
저는 못 보겠어요
[훌쩍인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시는데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요?
이영천 씨 수명은 다했어
알아요
안다고요
저도 다 알고 있어요, 근데…
근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되는 걸 어떡해요
그래
(련) 그럼 여기 있어
근데 너
이 선택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마음 정리되면 들어와
늦지 않게
[한숨]
[공간 이동 효과음]
[다가오는 발걸음] [훌쩍인다]
인도 팀
(재희) 뭐예요?
(수인) 비켜요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공간 이동 효과음]
(중길) 비켜
[어두운 음악]
부,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네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어
마지막 순간도 직면하지 못하는 주제에
(중길) 뭘 하겠다고
준비하고 대기해
[준웅의 떨리는 숨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탁 닫힌다]
[한숨]
[영천이 콜록거린다]
[문이 드르륵 닫힌다]
뉘, 뉘…
뉘신지
[영천의 힘겨운 숨소리]
그대의 마지막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차분한 음악]
[힘겨운 숨소리]
아주 긴 밤이었지
[총성] [소란스럽다]
[군인들의 비명]
오늘 밤 살아남으면!
(젊은 영천) 우린 집으로 돌아간다
전원!
돌격 앞으로! [군인들이 소리친다]
[총성] [소란스럽다]
[펑]
(중길) 나라를 위한 그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해서 그대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지
감사합니다
[힘겨운 신음]
모르는 사이 많이 변했구나
(중길) 내가 아는 넌
망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걸 힘겨워했었지
그래서 범죄자만 인도하려 했었고
(련) 조금 무뎌졌을 뿐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한숨]
누군들 쉬울까
하나 그것이 사자의 일이다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것
[한숨]
[힘없는 숨소리]
[다가오는 발걸음]
[훌쩍인다]
[차분한 음악]
(준웅) 아, 인도 팀
근데 왜 저렇게 많이 오시는 거예요?
이번 인도는 특별 케이스예요
(륭구) 회장님께서 승인해 주셨나 보네요
(수인) 그래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에요
[놀란 숨소리]
[차분한 음악]
[문이 드르륵 닫힌다]
죄송했습니다
얘기는 나중에, 상태는?
(련)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의식을 잃고
간신히 숨만 쉬고 있습니다
머지않았군
(옥황)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나는 법이지
인상이 곱구나
좋은 삶을 살았어
인간에게는 삶의 매 순간
선택해야 할 일들이 존재하지
그 수많은 선택이 모여
생을 만들고
[영천 모가 흐느낀다] (젊은 영천) 죄송합니다, 어머니
(옥황) 젊은 날 그대의 선택은 고귀했다
[젊은 영천의 떨리는 숨소리]
[책상에 팔을 쿵 박는다]
많은 것을 잃었으나
(젊은 영천) 전원 돌격 앞으로!
[군인들이 소리친다] [총성]
(옥황) 많은 사람을 지켜 냈고
지금의 오늘을 있게 했다
수많은 사람의 삶을 지켜 줘서 고맙다
미안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대가 편안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겠지
[옅은 숨소리]
이영천
그대의 영혼은
그대가 살아온 삶의 값어치 그 이상으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고된 삶을 사느라
수고하였다
[숨을 들이켠다]
[신비로운 효과음]
[훌쩍인다]
[잔잔한 음악]
[영천의 놀란 숨소리]
나 한 명 가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마중을…
자네가 없었으면
주마등도 없었을 테니까
[벅찬 숨소리]
잠시만 시간을…
(영천) 그날의 내 선택을
오랜 시간 후회하면서 살아왔지만
나라를 위해 싸운 건
내 삶에서 가장 고귀한 선택이었고
가치 있는 일이었더군요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군복을 입을 겁니다
저의 마지막 내일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련) 말했잖아요
그게 내 일…
아니
우리의 일이라고
[살짝 웃는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벅찬 숨소리]
[영천의 웃음]
[차분한 음악]
(영천) 자넨 왜 그러고 서 있어? [준웅이 울먹인다]
좋은 데로 가는데
울긴 왜 울어
할아버지
고마웠어
[훌쩍인다]
[준웅이 훌쩍인다]
이영천 하사님
감사했습니다
(옥황) 모든 사자는
나라를 지킨 호국 영령에게
묵념하라
[웅장한 음악]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새가 지저귄다]
[부드러운 음악]
어머니
(영천 모) [놀라며] 어유, 어
아유, 세상에
[함께 흐느낀다] [영천 모가 영천을 토닥인다]
어디 보자
우리 영천이 잘 있었어?
안 아팠고?
- 어머니 - (영천 모) 응
(영천) 죄송해요
너무 늦었어요
(영천 모) 아니다
이제 왔으면 됐어
아유, 사느라 고생했다
(영천) 어머니
(영천 모) 어, 그래
엄마
[영천을 토닥인다]
(영천 모) 밥 먹자, 우리 아들
엄마가 따순밥 해 놨어
어여 들어가자
[영천 모의 웃음]
[영천 모가 영천을 토닥인다]
[영천 모의 웃음]
[준웅이 훌쩍인다] [문이 달칵 열린다]
아직도 기분이 덜 풀렸니? [문이 달칵 닫힌다]
(준웅) 네
이승에서 고생하셨는데
죽어서야 그 대접을 받는 게 너무 허무하면서도 안타까워요
회장님께서 도와주실 순 없었던 거예요?
(옥황) 난 생과 사
그리고 죄와 벌에 관여할 뿐 이승의 일엔…
[준웅의 한숨]
(준웅) 비겁해요, 불공평하잖아요
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
바보 되는 세상
대체 왜 보고만 있는 건데요? 능력 되시잖아요
(옥황) 난
공평하지 않다, 공평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죄지은 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릴 뿐이야
그러니 내가
너희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
괴로운 사람들을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저승사자들이니까
(준웅) 제가 도움이 되긴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그냥 잘 버티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했는데
막상 정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보니까
(은비) 터널 같아
끝도 없는
벗어날 수가 없다고요!
(준웅) 아, 저…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현) 난 내가 쓰레기 같다고
왜 나는 안 되는데!
제발 놔!
[흐느낀다]
(준웅) 제가 너무 이 일을 쉽게 생각했나
어렵고
무거운 것 같아요, 이 일이
(옥황) 그래
벼랑 끝에 몰려 죽음까지 생각한 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서로 모자란 점을 보완하면서 함께하면…
(준웅) [손가락을 딱딱 튀기며] 그럼 저도 이거 주세요
이거 팀장님이랑 대리님한테 있는
그거 주세요, 저도 왜 안 주세요, 저는?
- 안 돼 - (준웅) 왜요?
죽어서 와, 그럼 생각해 볼게
(준웅) 아이…
아, 저 이미 동작 대교에서 이거 아시면서, 참 [문이 달칵 열린다]
이미 저 바, 반은 죽었어요 [문이 달칵 닫힌다]
이거
[손가락을 딱 튀긴다]
씨
[영천과 준웅이 대화한다]
(영천) 아니야 내 영정 사진 볼 사람도 없어
(준웅) 아니에요 제가 갖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여기 겨우 찾아왔는데 한번 찍어 주세요
(영천) 아니, 그래도, 저…
(준웅) 아니에요, '그래도' 없어요 [영천이 당황한다]
여기 들어가시죠, 읏차 [잔잔한 음악]
아이, 예, 안녕하세요!
(사진사) 선생님, 허리 좀 약간만 펴시고요
(준웅) 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살짝…
예, 됐습니다
할아버지 [익살스러운 소리]
네, 됐어요, 됐습니다
[준웅의 웃음]
[작은 소리로] 우리 할아버지 국가 유공자세요
아이고, 훌륭하신 분인데 정말 더 잘 찍어 드리겠습니다!
[준웅이 호응한다] (영천) 감사합니다
(사진사) 자, 선생님 눈 초롱초롱하게 뜨시고
멋진 미소 장착하시고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카메라 셔터음]
[감성적인 음악]
(련) 팀원 둘 데리고 예정자를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긴장되는 음악]
[경고음] (옥황) 너도 봤잖니
주마등 전체가 심각한 상황인 거
위기의 순간이 [레드라이트 알림음]
누군가에겐 기회로 다가온다고 하지 [련의 놀란 숨소리]
(준웅) 위장 취업이 어려우면은
직원 말고 알바는 해 볼 만하지 않아요? [준웅과 륭구의 한숨]
(륭구) 4월생을 찾아보겠습니다
- (륭구) 정보람 - (남자) 어지간히 좀 먹어라
[용준의 아파하는 신음] (륭구) 김용준
죄송합니다
(륭구) 신예나
[예나의 한숨]
(륭구와 남자) - 이동자 - 애 엄마들은 안 된다니까
(륭구) 이렇게 네 사람입니다
(준웅) 고쳐지기 전에 찾을 수 있을까요?
[레드라이트 경고음] (륭구) 찾아야죠
(련)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마 오늘일 거야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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