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10
1. 호텔 정문 앞(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태주와 은수, 정문으로 막 뛰어 나오다가 세찬 빗줄기를 보고발걸음을 멈춘다.
두 사람, 거친 숨을 고르며 망연히 빗줄기를 본다. 은수는 정신이 없는 듯 멍한 얼굴로 빗줄기만 보고 있다.
태주 : 사랑해...
은수 : !
태주 : (은수를 본다.) 사랑해, 은수야.
은수 : !
은수, 여전히 빗줄기에 시선 둔 채로 부들부들 떨며 태주에게 잡힌 손을 뺀다.
태주, 은수의 손을 다시 잡으려는데 은수,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비켜선다.
태주, 감히 은수에게 다가서지 못하는데 은수, 넋이 나간 듯 빗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도망이라도 치듯 종종 걸음으로 가는 은수.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은수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태주, 겉옷을 벗어 은수를 쫓아간다.
빗줄기를 가리려 은수의 뒤에서 은수의 머리와 자기 머리를 옷으로 가리고 은수를 쫓아 걷는다.
은수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빗물과 눈물이 엉킨다.
태주가 뒤에 따라오든 말든 은수의 울음은 점점 격양된다.
태주 : 야, 괜찮아? 어디 가는 거야, 야..,
태주, 은수의 몸을 돌리려는데 그 순간 은수가 먼저 몸을 돌려 태주에게 달려들 듯이 입을 맞춘다.
태주, 은수를 꼭 끌어안는다.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으로 포옹하며 오래도록 입을 맞추는 두 사람 모습에서
2. 준혁의 방
준혁, 괴롭게 술을 마시고 있다.
8회29씬 회상
은수 : ... 상무님도 기대고 싶을 때 기대세요.
속상한거 다 얘기하세요. 제가 다 들어줄께요, 네?
어두운 실내, 여행 가방 등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져 있고 실내도 예전 같지 않게 약간 어수선하다.
술을 따라마시던 준혁이 문득 창가를 본다.
창가에서 지난 날 은수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은수를 떠올리자 더욱 분노와 배신감이 차오른다.
준혁, 창가를 향해 술잔을 던진다.
3. 서해안 팬션 침실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태주.
막 잠이 깨려는 듯 조금씩 뒤척이며 잠결에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는다.
아무도 짚어지지 않자 태주의 손, 초조하게 멀리 뻗으며 더듬는다.
태주, 부스스 눈을 뜨려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은수가 태주의 손을 잡는다.
태주, 은수의 손이 잡히자 안심한 듯 그대로 눈 감은 채 씩 웃는다.
바로 다음 순간 손을 확 끌어다가 은수를 침대에 눕히는 태주.
태주, 여전히 눈 감은 채 은수의 품에 폭 안긴다.
은수 : 안 일어나요?
태주 : (더욱 은수의 품에 파고들며) 싫어, 그냥 이대로 있을래.
은수, 다정하게 태주의 머리를 안아준다.
태주 : 언제일어났어?
은수 : 조금 아까..... 아저씨 계속 자니까 심심해요.
태주, 눈을 뜨고 고개 들어 은수를 본다.
태주 : 이제 됐어?
은수 : (다정하게 웃으며 태주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아준다.) 눈꼽도 끼고...자고 막 일어난 모습 보니까 웃기다.
태주 : (씩 웃으며) 그래도 여전히 잘생겼지?
은수, 기가 막히다는 듯 가볍게 흘겨보는데 태주, 덮치듯이 은수를 확 안아버린다.
두 사람, 침대를 뒹굴며 장난친다.
4. 어시장
태주와 은수, 다정한 모습으로 어시장을 돌고있다.
이상한 어류들 모습에 재미있어 하고 좌판에 앉아 금방 썰은 회를 먹기도 한다.
5. 바닷가
바닷가를 거니는 은수와 태주.
은수 : 아저씨.., 사무친다는게 어떤 건지 알아요?
태주 : ?
은수 : 김치를 담으려면 배추를 소금에 절여야 되잖아요.
사무친다는건 소금에 절여진 배추랑 같아요.
한번 소금에 절여진 배추는 썩어 문드러질 때 까지 소금기가 빠지지 않거든요.
태주 : ...(씩 웃는) 그럼 자반고등어도 그렇겠네?
은수 : (끄덕끄덕) 난 아저씨가 꼭 그렇게 좋아요.
죽어서 썩어 문드러져도 아저씨 좋아하는 감정이 절대로 빠져나갈 거 같지 않거든요.
태주 : ....(말없이 은수를 바라본다.)
은수 : 왜요?
태주, 은수를 부드럽게 꼭 끌어안는다.
6. 新 태주 오피스텔 (다른 날, 아침)
혜린이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온 신경이 바짝바짝 타는 기분이다.
실내를 서성인다. 시간 경과하고 혜린이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이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태주가 들어서려다가 혜린을 보고 멈칫한다.
혜린, 말없이 태주를 본다.
태주,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다가온다.
혜린 : 휴가기간은 칼처럼 다 채우고 왔네?
태주 : .....
혜린 : 지금까지 한은수랑 있었어?
태주 : .....
혜린 : 암 말도 안할 거야?
태주 : .....전에 살던 집 비워지는 대로 여기 정리할께.
사표는 출근하는대로 제출할거야.
혜린, 사정없이 태주의 뺨을 때린다.
태주 : (혜린을 본다.)...미안해. 어쩔 수가 없어.
혜린 : 뭐가, 왜?
태주 : 나, 은수 사랑해.
혜린 : 사랑 좋아하고 있네. 니가 언제부터 그딴 걸 했다구.
태주 : 진심이야.
혜린 : 허, 웃기지도 않아요.(돌아서려는데)
태주 : (혜린의 팔을 잡으며) 사람 말 좀 들어.
혜린 : (확 뿌리치며)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뭘 네가 결정하고 뭘 네가 정리해? 너한텐 그럴 권리 없어!
태주 : .....최대한...빨리 정리하자.
혜린 : 뭘?
태주 : !
혜린 : 너 계속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그런 말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끝내도 내가 끝내고 잘라도 내가 자르고, 차도 내가 차!
태주 : 그래서 넌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혜린 : ...생각 중이야.
태주 : 억지 부리지 마. 이미 다 결정 난 거 생각할 거 뭐 있어?
혜린 : 누가 결정 났대! 내가 안 났다는데!
태주 : .....
혜린 : 온 세상 떠들썩하게 사귀던 남자가 올케 될 뻔한 여자랑 눈이 맞았는데 지금 내 정신이 내 정신이겠니?
태주 : !
혜린 :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질 줄 알어. 네가 지금 날 얼마나 쪽팔리는 상황에 쳐넣었는지 알아!
태주 : !
혜린 : 기다려. 양심이란게 남아있으면 내가 결정할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
태주 : !
7. 도로 / 혜린의 차 안
도로를 달리는 혜린의 차.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운전하는 혜린. 눈물을 애써 삼키고 있다.
도저히 안되겠다. 결심한 듯 거칠게 핸들을 돌린다.
8. 은수네 오피스텔 앞 복도
문을 여는 은수, 문을 열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된다.
혜린이 서 있는 것.
혜린 : 이렇게 세워둘 건가요?
9. 은수네 오피스텔
혜린, 은수를 따라 들어온다.
은수, 막 빨래를 널고 있었던 듯 어질러진 빨랫감들을 허겁지겁 치운다.
혜린, 은수네 살림을 둘러본다. 빨랫감들이 여기저기 널린 폼이 궁상스럽다.
은수 : 뭐...좀 마실래요?
혜린 : (은수를 본다.) 내가 뭐 마실 기분이겠어요?
은수 : .....
혜린 : 좋았어요?
은수 : ?
혜린 : 태주씨랑 좋았냐구요?
은수 : .....(말없이 당찬 시선으로 혜린을 본다.)
혜린 : (냉정하게 쏘아본다.) 남자들 격정에 휘말리면 그 순간 눈에 보이는거 하나도 없죠.
그런데 그건 그 때 뿐이에요. 격정이 사라지면 현실을 보게 돼요.
현실을 보게되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거구요.
은수 :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
혜린 : 어차피 결론 뻔할 거, 질질 시간 끄는 거 서로에게 좋을거 없단 얘기에요.
강태주 그 사람, 얼마 못가요. 그러니까 한은수씨가 먼저 현명하게 판단해서 정리하라구요.
은수 : (기가 막힌) 허.
혜린 : 이렇게 가단 결국 은수씨만 크게 상처받아요. 은수씨 더 상하기 전에...
은수 : 참, 고양이 쥐 생각하네요.
혜린 : ?
은수 : 그런 소리 할 거면 당장 나가줘요.
혜린 : (은수를 본다.) 당신 뭐가 그렇게 당당하지?
은수 : 당신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혜린 : 정말 자신이 무슨 일 저질렀는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은수 : 그 사람이랑 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잇어요. 3일 내내 같이 있었어요. 그 사람, 내 남자라구요.
혜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은수의 뺨을 때린다. 은수, 지지않고 혜린의 뺨을 때린다.
혜린, 당혹스럽다. 당돌한 시선으로 혜린을 보는 은수.
은수 : 당신 나한테 이런 행동 할 권리 없어.
혜린 : !
은수 : 나는 쭉 그 사람 사랑했고...결국 그 사람이 나한테 온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혜린 : !
은수 : 따질 거 있으면 당신한테 마음 떠난 강태주씨한테 가서 따져요.
나한테 쫓아와서 이러는거, 당신만 초라해 보여.
혜린 : !
은수 : (현관의 문을 열며) 그만 가줘요.
혜린 : 강태주가 정말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은수 : 생각하지 않아요. (혜린을 똑바로 보며) 그건 그냥 느낄 수 있어요.
혜린 : !... 강태주 그 사람, 허파에 바람 들어서 허영기만 가득한 남자야.
그런 사람이 당신 책임질 것 같아? 어림없어.
눈앞에 꽃방석 두고 구질구질한 인생 택할 사람 아니야, 절대!
은수 : 그 사람은 이미 선택 했어요.
혜린 : 정말 딱한 사람이네. 도대체 강태주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하고 이러는 거예요?
은수 : 알만큼 알아요.
혜린 : 이봐...
은수 : 차혜린씨가 그 사람 잡지 못해 이렇게 안달할 정도는 되는 사람인 거 알아요.
혜린 : !
은수 : 아니예요?
혜린 :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고 노려보다가) 정말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네.
좋아요, 한번 두고 보죠, 우리. (나간다.)
문을 닫는 은수, 온 몸의 긴장이 빠진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듯 흐트러진 머리를 쓱쓱 정돈하고 널덜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탁탁 털어 야무지게 빨래들을 넌다.
10. 백화점 사무실, 마케팅부
태주, 팀장에게 사표를 제출한다. 황당한 얼굴로 태주를 보는 팀장
팀장 : 무슨 일이야, 갑자기?
태주 : 그렇게 됐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모바일서비스 프로젝트를 종결짓는 대로 퇴사하겠습니다.
태주, 목례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때마침 사무실에 들어서던 준혁과 먼 발치로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의 불편한 시선도 잠시, 준혁과 시선을 돌리며 상무실 쪽으로 향한다.
태주, 자리에 앉는다. 착잡한 마음을 누르고 서류들을 챙기며 업무를 시작한다.
11. 동, 준혁의 방
준혁, 업무를 보고 있지만 마음이 산란하다. 핸드폰을 꺼내 은수의 번호를 누를까 고민하닥 결국 버튼을 누른다.
12. 은수네 오피스텔
은수,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차마 받지 못한다.
고교 검정고시 책을 보며 공부를 하던 지수, 은수를 본다.
지수 : 뭐야, 안받어?
전화가 끊긴다. 은수, 여전히 멍하니 쪼그리고 앉아 있다.
지수 : 너 무슨 일 있어?
은수 : .....
지수 : 회산 왜 안나가? 휴가가 언제까진데?
은수, 안되겠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겉옷을 입는다.
지수 : 야, 어디 가?
은수 : (말없이 나간다.)
13. 백화점 사무실, 인사팀
은수, 인사과 직원1 앞에 앉아 있다.
직원1: 인턴수료가 코 앞인데 왜 지금와서 사표야? 무슨 일 있어?
은수 : 개인사정이 생겨서요.
직원1: 뭐냐, 성적우수자로 해외 쇼케이스 관람 특전까지 받구서. 정직원 채용은 따놓은 당상이잖아.
은수 : .....
직원1: 더 좋은 일자리 생겼구나.
은수 : 네?
직원1: 어떻하겠어. 더 좋은 데 있으면 글로 가야지. 그래도 좀 서운하다, 은수씨.
직원1, 서류를 체크한다. 은수, 착잡한 표정으로 직원1을 보다가 상무실 쪽을 바라본다.
14. 동, 준혁의 사무실
15. 준혁의 사무실(낮) <대사 일부 수정>
준혁에게 결재서류를 넘겨주는 마케팅 팀장. 목례하고 나간다.
무심히 서류철을 열어보던 준혁, 태주의 사표를 발견한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서류철을 덮고 '네' 대답하는 준혁.
문이 열리고 은수가 들어선다. 준혁, 은수를 본다.
<시간 경과>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은수와 준혁.
준혁 : 용건 있어서 온 거 아니예요? 왜 아무 말도 안해요?
은수 : .....(잠시 머뭇거리다) 그 사람이...저 사랑한대요.
그 말 듣는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준혁 : !
은수 : 그래서 상무님 청혼,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 말씀 드리러 온 거예요.
준혁 : .....
은수 : 미안해요.
준혁 : .....
은수 : (심호흡을 하고) 상무님 집에서 일하는 거, 그만둘께요.
남은 돈은...제가 취직하는 대로 조금씩 갚겠습니다.
준혁 : 은수씨와 나 사이에 정리할 거라는 게 결국 이런거군요.
은수 : !
준혁 : 사람 진심을 이 정도로만 취급하다니 불쾌하네요.
은수 : 그렇지 않아요.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준혁 : 몰라요. 도대체 우리 사이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한순간에 이렇게 신뢰를 져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사이라는 거 밖엔.
은수 : !
준혁 : 회사는 왜 결근한거죠?
은수 : .....지금...인사팀에 사표 내고 오는 길이에요.
준혁 : 정말 무책임한 사람이네요, 한은수씨.
은수 : !
준혁 : 아르바이트는 나하고 관계가 불편해서 그만 두겠다고 하는거 이해해요.
하지만 회사까지 그만두겠다는 이유는 뭐죠?
은수 : 제가 어떻게 상무님 얼굴 보면서...
준혁 : 회사 다니는게 장난인가요?
은수 : !
준혁 : 은수씨 감정에 따라 언제든지 집어칠 수 있는 애들 장난이냐구요.
은수 : 상무님...
준혁 : 회사는 은수씨 능력을 보고 싱가폴 쇼케이스 특전까지 제공했어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은수 : .....
준혁 : 회사가 나랑 은수씨, 두 사람만 다니는 곳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어린애같이 굴어요?
은수 : 전 상무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준혁 : 내 얼굴 보는게 그렇게 괴롭나요?
은수 : (울컥한다.)
준혁 : 그럼 더 열심히 봐야겠네요. 더 괴로워지게.
은수 : !
준혁 : 은수씨 혼자만 조금이라도 맘 편할 방법 찾는 거 비겁하잖아요.
은수 : !
준혁 : 나도 은수씨 꼴도 보기 싫어요. 하지만 내 개인사가 일에 영향 미치는 건 더 싫어요.
은수 : !
준혁 : 은수씬 회사에서 특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도리가 아니죠.
회사에도 같은 인턴 동기들한테도 예의가 아니예요, 이건.
은수 : .....
준혁 : 은수씨 개인사정이야 어떻든 인턴과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쳐요.
쇼케이스 관람에 대한 보고서 올려야 하는 건 알고있죠?
은수 : .....
준혁 : 나가서 근무해요.(자리로 돌아간다.)
은수, 나가려는데
준혁 : (은수 쳐다보지도 않은 채)...은수씨가 불행해졌으면 좋겠어요.
은수 : !
준혁 : 저 밑바닥까지 떨어져서...가슴 치며 후회하게 되길 바래요.
은수, 가슴 아픈 듯 준혁을 보다가 나간다.
준혁,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16. 혜린의 의상실(밤)
부분 조명등만 켜져 있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버린 텅 빈 의상실.
혜린, 초조한 듯한 얼굴로 앉아 있다. 망설이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전화를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일어서는 혜린. 전등을 끄고 나간다.
17. 지수네 오피스텔
경진과 지수, 놀란 얼굴로 앞에 나란히 앉은 태주와 은수를 보고 있다.
경진 : 그러니까...우리 은수랑...둘이...사귄다구요?
태주 : 네.
경진 : 아니 둘이 언제 또 이렇게 된거야.
지수 :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니까...아저씨, 그 디자이너 애인한테 채였죠?
그래서 우리 은수한테 온거죠?
은수 : (지수 노려보며) 야, 한지수!
지수 : 도무지 이치에 안 맞잖아. 재벌2세를 내던지고 선택한게 왜 하필 너 한은수냐구!
은수 : 너 가만 안 있을래?
경진 : 아, 내 말이! 말이 바른 말이지, 그 백화점 사위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태주 : .....은수 사랑합니다...따님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지수 : 와, 아저씨 왕느끼! 초특급 닭살멘트다!
은수 : (지수를 확 째려본다.)
지수 : (찔끔한다.)
경진 : 그 놈의 사랑은 왜 그렇게 왔다갔다 하나. 정신이 하나도 없네.
지수 : (은수에게)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주 아저씨 싫다고 하지 않았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었잖아.
(전에 은수가 사귀는 사람 있다는 말이 생각난) 아, 참 그리고...(은수를 보고 말을 멈춘다.)
은수 : (무시무시한 눈으로 지수를 노려보고 있다.)
태주 : 형편 닿는 대로 은수랑 결혼할 생각입니다.
경진/지수 : !
경진 : 은수 쟤기 나이가 몇인데 벌써 결혼 얘기까지 나오나?
지수 : (은수에게) 너 저 아저씨 확실히 낚았구나. 진짜 대단하다, 한은수
태주 : 어머니 잘 모시겠습니다. 지수도 친동생처럼 잘 돌볼거구요. 허락해주십쇼.
경진 : 아니...뭐...가진 것도 하나 없다면서...
은수 : (태주의 팔을 꼭 잡으며) 같이 있고 싶단 말예요.
엄마 허락 안하면 나 가출할 지도 몰라요.
경진 : 저 기집애가 그냥! 쪼그만 게 발라당 까져가지구선.
지수 : 사랑한다잖아. 그냥 좀 받아주지?
경진 : 넌 어른들 얘기에 그만 좀 끼어들지 못해!
지수 : 은수 동생으로서 나 이 정도 발언권은 있거든.
엄마 반대해도 소용 없어. 저거 봐. 좋아 죽잖아. 저걸 어떻게 말려?
경진 : 아니, 둘이 언제 그렇게 깊은 사이가 된 거야?
이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태주, 핸드폰을 꺼내 보면 혜린의 전화다.
불편한 듯 머뭇거리는 태주.
경진 : 받아요. 안받아?
태주 : 아..아닙니다.
태주, 배터리를 빼버린다. 지수, 박수치기 시작한다. 지수를 보는 일동.
지수 : 축하해 주자구. 한은수 짝사랑의 위대한 승리!(박수치다가 멈춘다.) 왜 이렇게 썰렁해?
18. 新 태주의 오피스텔
어두운 실내. 혜린, 들고 있던 핸드폰을 닫는다.
안되겠는지 다시 전화해보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가 들릴 뿐이다.
혜린, 잔뜩 열 받은 얼굴로 한 쪽에 놓여진 상자를 돌아본다.
태주의 소지품 몇 가지를 챙기다 만 상자다.
19. 백화점 사무실 복도(다른날, 낮)
은수, 인턴사원 두세명과 함께 담소하며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혜린이가 온다.
은수, 혜린과 눈이 마주치자 멈칫하며 시선을 피한다.
혜린 역시 외면하며 사무실 쪽으로 간다. 은수, 신경쓰이는 듯 혜린을 돌아본다.
20. 동, 사무실
업무를 복 있는 직원들 풍경. 태주도 자리에 앉아 업무중이다.
혜린이 사무실에 들어선다. 다짜고짜 태주에게 다가가 태주가 보고 있던 서류를 채간다.
태주, 올려다 보면
혜린 : 나랑 얘기 좀 해.
21. 동, 백화점 옥상
태주와 혜린.
혜린 :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그런데 벌써부터 짐까지 싸고 있어?
태주 : 기다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정리는 빠를수록 좋아.
혜린 : !
태주 : 집은 이번 주 안으로 비울 거야. 회사는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만 끝나면 그만 두기로 부장님이랑 애기 끝냈고.
혜린 : 어떻게 일은 네가 다 벌려놓고 수습까지 너 좋을대로만 하니?
태주 : 너랑 나...처음부터 잘못된 거잖아.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제자리로 가잔 얘기야.
혜린 : 내 입장은 생각해 봤어? 전혀 별 볼일 없는 남자를 온 세상 떠들썩하게 사겼는데, 바로 그 남자를 다른 여자한테 뺏긴 꼴 됐어, 나!
사람 이렇게 우스운 꼴 만들어 놓고 당신 혼자 제자리로 가겠다구?
태주 : 넌 아직도 사람들 눈 타령이냐? 세상 사람 눈이 그렇게 무서우면 네가 찬 걸로 해.
나 야 첨부터 여자 하나 잘 잡아서 팔자나 펴보려던 놈 아니야.
그 별 볼 일 없는 놈, 네가 싫증나서 자른 걸로 하라구. 리얼리티도 있고 좋네.
사람들이 믿기도 쉽겠다.
혜린 : 넌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니?
태주 : !
혜린 : 난 진심이고 뭐고도 없는 애로 보여?
태주 : !.....
두 사람, 팽팽한 시선으로 서로를 본다.
혜린 : 넌 걔 앞에서 내 뺨까지 때리고 도망간 자식이야.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나오는거 보면 모르겠어?
태주 : (혜린을 잠시 보다가).....어차피 난 네 수준에 맞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놈이잖아.
혜린 : !
태주 : (강하게 보며) 네 감정이 어떻든 네 머릿속으로는 항상 그 생각 하고 있다는 거 알아. 아니야?
혜린 : !
태주 :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고 이제 네 수준에 맞는 남자, 사람들 눈에 쪽팔리지 않는 상대 만나라구.
그게 너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겠냐.
혜린 : !
태주, 돌아서 간다. 혜린, 뭔가 한대 맞은 기분이다.
22. 대형 마트 몽타쥬(밤)
여러 생활용품, 장식품들을 쇼핑하는 태주와 은수, 두 사람의 고르는 취향이 영 다르다.
두 사람, 토닥거리며 물건들을 고른다.
24. 동 이불코너
은수, 꽃무늬가 화려한 침대커버와 이불을 보고 있다.
태주, 마땅찮다.
태주 : 넌 이런게 좋냐?
은수 : 왜요, 싫어요?
태주 : (다른 거 가리키며) 이게 더 낫지 않아?
은수 : 칙칙해요.
태주 : 이건 좀 촌스럽잖아. 꽃무늬 이런 거 영 내 취향 아닌데.
은수 : 남자 혼자 사는 집일수록 화사한게 좋아요. 꼭 홀애비 티내려 그래.
태주 : .....알았어. 네 맘대로 해라.
은수 : (주인에게) 이걸로 주세요!
25. 은수네 오피스텔 앞 길 / 혜린의 차 안
은수와 태주, 한아름 쇼핑가방을 들고 나란히 걸어간다.
은수 : 이 짐 다 갖다 놓으면 친구분이 화내지 않을까요?
태주 : 내 집에 내 짐 갖다 놓는데, 뭐가? 첨부터 잠깐 들어와 있기로 했던 거야.
내가 그 형 편의 봐줬던 거라구.
은수 : 그래도 좀 미안하다.....아저씨 이사는 언제 올 거예요?
태주 : 아마 주말 쯤? 그 때쯤에 형이 나간다고 했으니까.
은수 : .....
태주 : 왜?
은수 : 아까 낮에...차혜린씨 찾아왔었죠?
태주 : !..응..
은수 : 무슨 얘기 했어요?
태주 : 서로 정리할 게 좀 있어서...왜, 기분 나빴어?
은수 : 아뇨. 그냥...아저씨는 변하는 게 참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태주 :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건데 뭐.
은수 : 그래두...차이 많이 날텐데...정말 괜찮아요?
태주 : 나 성격 깔끔한거 알지? 난 일단 아니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거든?
은수 : 성격 깔끔한 건 좋은데...나한텐 그러지 말아요.
태주 : 무슨 말이야?
은수 : 나한텐 깔끔해지지 말라구요. 그거 왠지 쓸쓸하게 느껴져서 싫어요.
태주 : 알았어. 너한텐 지저분하게 굴께. 됐냐?
은수 : (피식 웃는다.)
태주 : 회사 근무하는 건...괜찮아?
은수 : 인턴과정 며칠 안 남았는데요, 뭐.
태주 : 정직원 심사원서 안냈다면서?
은수 : ?...그러기로 했던 거잖아요.
태주 : 아깝지 않아? 하고 싶었던 일이잖아.
은수 : 하나도 안 아까워요. 사람이 너무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태주 : 네가 뭘 욕심을 냈다구?
은수 :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면 진자로 젤 좋은 건 잃어버릴 거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에요.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 그래서 난 그냥 하나로 만족할 거예요.
태주, 말없이 몇 걸음 걷다가 은수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은수, 수줍은 듯 피식 웃는다.
다정하게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은수와 태주.
두 사람의 모습을 차 안의 혜린이가 보고 있다.
26. 호영의 오피스텔
호영, 문을 열면 태주와 은수가 짐을 들고 들어선다.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호영.
태주 : (들어서며)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은수 : (호영에게) 놀라셨죠? 갑자기 죄송해요.
호영 : 아뇨, 뭐 저야...원래부터 객인데요, 뭐.
태주 : (은수에게) 들어가 쉬어. 난 형이랑 얘기 좀 하다가 갈 거니까.
은수 : (끄덕이고 호영에게 어색하게 목례한다.) 그럼...(태주에게 눈인사 하고 나간다.)
호영, 은수가 나가자 물을 먹고 있던 태주를 툭 친다.
호영 : 야, 너 정말 제정신이야, 너 강태주 맞아?
태주 : 아, 뭐야. (흘린 물을 닦는다.)
호영 : 난 진자 눈으로 보기 전엔 안 믿었다. 도대체 은수씨랑은 언제 그렇게 된 거야?
태주 : ...
호영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놈이 백화점 딸을 마다하고 은수씨를 선택한다는게 말이 돼?
그동안 쌓아놓은 네 이상과 네 인생관은 어디로 간건데?
태주 : 원래 인생에는 예외라는 게 있는거 야. 그거 없으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냐?
호영 : 아무리 그래도 선택이 너무 극과 극이잖아. 바로 얼마전까지 재벌가 사위 된다던 놈이...
태주 : 그걸 믿었냐?
호영 : ! 뻥이었어? 너 그 디자이너 사귄 거 맞잖아.
태주 : 그 집에서 미쳤다고 날 사위로 맞아? 그렇게 교육 시켰는데도 아직도 꿈 속에서 헤메냐.
사람이 좀 현실적으로 놀아라.(냉장고 쪽으로 간다.)
호영 : 아니 그렇게 소문 자자하게...
태주 : 아, 거 잔소리 되게 많네.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 병을 꺼낸다.)
호영 : (입 다문다.)...어쨌든 난, 그래도 네가 놀던 물이 있는데 은수씨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거지.
태주 :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사랑이 뭔지 알아? 그거 원래 정신병이야. 미치는거라구.
호영 : ! 너, 미친 거냐?
태주 : 아마도. 제정신에 이러기 힘들겠지?
호영 : (끄덕) 그렇지.
태주 : 어쨌든 (호영에게 맥주캔 던져주며) 형은 빨리 방이나 빼. 티끌 하나 없이 깨끗이!
호영 : (태주를 노려보며 맥주를 마신다.)
27. 동, 준혁의 사무실
자리에 앉아 결재 서류철을 체크하고 있는 준혁.
다음 서류철을 열어본다. 인턴사원들의 정직원 지원 서류들이다.
서류들을 한장한장 넘겨본다. 은수의 서류가 없다.
착잡한 듯 잠시 망설이는 준혁.
준혁 : (전화기를 누르고) 한은수씨 자리에 있나요?...내 방으로 좀 오라고 해요.
준혁, 서류철을 들고 일어나 소파 쪽으로 간다. 이때 들어오는 은수.
준혁 : 앉아요.
은수 : (다가와 앉는다.)
준혁 : 정직원 심사 포기했다구요?
은수 : 네.
준혁 : 고집 부리지 말고 서류 제출해요.
은수 : 이미 안하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준혁 : (본다.)
은수 : 내일까지 인턴과정 마치고 그만 둘 겁니다.
준혁 : MD쪽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은수씨 경력에, 은수씨 학력에 여기 아니면 그쪽 일 제대로 해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은수 : 힘들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안돼면...전 그 일 안해도 돼요.
준혁 : 정말 한심한 사람이네...
그럴려면 뭣하러 지금껏 열심히 일했어요? 은수씬 자기 앞 날 생각도 안해요? 그렇게 인생 내키는 대로 살 거예요?
은수 : .....
준혁 : 사랑도 좋고 연애도 좋지만 먼저 자기 자신부터 챙겨요. 누가 은수씨 인생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니까.
은수 : 저 인생 내키는 대로 사는 거 아닌데요.
준혁 : !
은수 :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그러는게 꼭 좋은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가 누구 한테 인생 왜 그렇게 사냐고 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상무님 기준 강요하려고 하지 마세요.
준혁 : ...그래서요?
은수 : 저한테 주어진 일이 뭐가 됐든 열심히 하면서 살 거예요. 난 그걸로 만족해요.
꿈도 없고 한심한 애라고 욕해도 할 말 없어요. 이게 난 걸 어떻해요?
준혁 : !...(피식 웃는다.) 생각 한번 확고하네요.
그 야무진 정신으로 딴 데 말고 여기서 일해요, 그럼.
은수 : 싫어요.
준혁 : 그만 고집 부려요. 다음 달 입사까지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은수 : 상무님 때문에 싫어요.
준혁 : !
은수 : 회사에 상무님이랑 저만 다니는 거냐고 하셨죠? 네, 저한텐 그래요.
전 상무님처럼 공과 사 제대로 구분 못하는 어리석고 유치한 애거든요.
준혁 : .....
은수 : 상무님 보면 너무...(울컥하는 거 꾹 삼키고) 마음이 아파요.
그러다가도 강태주씨 보면 헤벌레 웃고있어요. 이런 나, 나도 견디기 힘들어요.
준혁 : !
은수 : 정말로 제일 싫은 게 뭔지 아세요? 상무님이 계속 제 걱정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지 말아요. 그거 저한테 고문이예요!
은수, 벌떡 일어나 나간다.
준혁, 마음이 아프다.
28. 동, 화장실
세수하는 은수. 그래도 눈물이 흐른다. 쓱쓱 눈을 문지르고 타올로 얼굴을 닦는다.
꼭꼭 눈물을 눌러 닦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29. 新 태주의 오피스텔 (밤)
태주, 짐을 정리중이다. 잠시 후, 혜린이가 들어온다.
태주, 힐끗 보고 하던 일을 계속 한다. 혜린, 태주 하는 것을 못마땅한 듯 본다.
혜린 : 당신이 한 말에 대해 생각해 봤어.
태주 : .....
혜린 : 맞아. 당신이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던 거 사실이야. 불쾌했다면 미안해.
태주 : 겨우 그 얘기 하려고 여기까지 왔냐?
혜린 : 우리 결혼하자.
태주 : !...뭐?
혜린 : 결혼하자구.
태주 : 장난해?
혜린 : 결혼을 장난으로 하는 살마도 있니?
태주 :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이래?
혜린 : 알아. 당신 한은수랑 연애하고 싶어 하는거. 그런데 그거하지 말고 그냥 나랑 결혼하자구.
태주 : (기가 막힌 듯 웃는다.)
혜린 : 시시하게 한 일년 재벌생활 즐겨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당신이 진짜 재벌이 되는 거라구. 괜찮지 않아?
태주 : 넌 날 뭘로 보는 거냐?
혜린 : 뭘로 보긴 강태주로 보지.
태주 : 야...
혜린 : 우리 집에서 나 빨리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인거 알지?
태주 : ?
혜린 : 아빤 준혁오빠한테 경영권 물려줄 생각 전혀 없으시거든. 내 남편한테 주실 생각이지.
태주 : .....
혜린 : 건강도 안좋으시겠다 하루 빨리 사위가 급하신 거야.
다행이도 당신이 아빠한테 밉보이진 않았고.
태주 : .....
혜린 : 결혼만 하면 월드 백화점이 당신 게 된단 얘기야.
태주 : 너나 몽땅 가지셔. 난 됐으니까.
혜린 : 사람 말 진짜 못 알아듣네.
태주 : .....내가 은수한테 가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거야?
혜린 : 자신을 한번 돌아봐. 고단하고 생활냄새 풀풀 나는 현실이 싫어 잘나가는 여자 미끼 삼아 화려한 인생 경험해 보고싶었던 거 아냐?
태주 : !
혜린 : 그런 당신이 한은수한테 가겠다구?
문제아 동생에 생활능력 없는 계모까지 줄줄이 달린 여자한테? 당신 그거 얼마못가.
태주 : 까불지 마.
혜린 : 까부는 것도 아니고 농담 하는 것도 아니고, 순간적인 변덕으로 이러는 것도 아니야.
태주 : .....
혜린 : 당신 진심으로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
태주 : !
혜린 : 다 가진 여자가 좋다며. 당신 입으로 그랬잖아. 다 줄께. 나 그럴 능력 돼.
태주 : .....
혜린 : (강하게 보며) 사람 사는 거 다 그게 그거거든. 저급할 것도 없고 고고할 것도 없어.
당신만 여우같이 굴면 갖고 싶은 거 다 손에 쥘 수도 있다구!
태주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혜린 : 곰곰이 잘 생각해 봐. 현명한 판단 기다릴께.
혜린, 나간다. 태주, 마음이 복잡하다.
술을 꺼내 마신다. 창가에 다가가 생각에 잠기는 태주.
30. 혜린이네 집 주방식당
차회장과 윤여사, 준혁이 식사중이다.
차회장 : 최이사가 요즘에 이사회 사람들을 접촉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들은 얘기는 없냐?
준혁 : 제 생각엔 현재 추진 중인 백화점 분점 개발에 대해서 촉각을 세우고 있는 거 같습니다.
(e) 초인종 소리
차회장 :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구만.
보통 욕심 많은 인물이 아니다, 그 인물이. 긴장 늦추지 말고 잘 살펴봐.
준혁 : .....
혜린이가 들어선다.
혜린 : 다녀왔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오빠도 왔네.
뒤따라 들어온 가정부가 혜린이의 식사를 챙겨준다.
혜린 : (준혁에게) 무슨 일로 온 거야?
준혁 : 아버님께 회사 일 보고 드릴 게 있어서.
혜린 : 나도 아빠한테 보고 드릴 거 있는데.
차회장 : (본다.)
혜린 : 아니...사실은 부탁 좀 드리려구요.
윤여사 : 또 무슨 부탁? 네 의상실 일이면 관둬. 지난번처럼 또 나중에 사단내지 말고.
혜린 : 아빠가 태주씨 좀 만나주셨으면 해요.
준혁 : !
윤여사 : 갑자기 뭔 소리니?
혜린 : 태주씨랑 빨리 결혼하고 싶거든.
준혁 : !
윤여사 : 잰 뱃 속에 폭탄을 싣고 다니나, 잊을만하면 펑펑 터뜨려서 사람 놀래키네.
아, 또 무슨 결혼!
차회장 : 한 일년 사귀어 보고 결정한다더니 갑자기 왜?
혜린 : 어차피 마음 정한 거 미적거릴 필요 뭐있나 싶어서요.
사실 내 나이도 이제 적은 것도 아니구.
준혁 : .....
혜린 : 엄마 아빠도 나 빨리 치워버리고 싶으시잖아요.
준혁 : 강태주가 너랑 결혼하겠대?
혜린 : (본다.) 사실 좀 튕기고 있긴 해. (차회장 본다.) 그래서 아빠한테 지원사격 좀 요청하려구요.
윤여사 : 걔 참 이상한 애네. 지가 뭔데 튕긴다니?
혜린 : 그게 그 사람 매력인 걸 어떻해.
윤여사 : 저건 무슨 여자애가 자존심이 없어.
혜린 : 결혼하게 되면 저도 백화점에 들어갈 생각이예요.
준혁 : 그만하지 못해!
윤여사와 차회장, 준혁의 반응에 놀라 쳐다본다.
혜린 : 오빤 가만있어.
준혁 : 너 제정신이야?
혜린 : 내가 원하는 거 제대로 알고 있으면 제정신 맞는 거지?
준혁 : 제발 좀 그만 해. 네가 이런다고 이미 마음 떠난 남자 마음잡을 수 있을 거 같아!
혜린 : 잡을 때까지 할 거야.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아. 내가 오빠 같은줄 알아!
차회장 : 어른들 밥상머리에서 뭐하는 짓들이야!
순간, 차회장 혈압이 오르는 듯 머리를 감싸쥔다. 화들짝 놀란 윤여사.
윤여사 : 어머, 여보, 여보. 아줌마! 빨리 약 좀! (준혁과 혜린에게) 너희들 미쳤니? 밥먹다가 이게 웬 난리야!
가정부가 가져온 혈압약(알약)을 차회장에게 챙겨 먹이는 윤여사.
31. 동,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차회장과 윤여사, 맞은편에 준혁이 있다.
윤여사, 막 차회장의 팔에서 혈압기구를 빼는 중이다.
차회장 : 무슨 일이냐, 도대체?
준혁 : .....
차회장 : 말 안할 거야!
준혁 :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혜린이랑 강태주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윤여사 : 잘 모른다면서 핏대는 왜 그렇게 새웠니? 그게 어디 어른들 면전에서 할 짓이야? 예의도 없이.
준혁 : 죄송합니다.
차회장 : 딸년 허물부터 탓해. 지금 남 탓할 상황이야?
윤여사 : (찔끔한다.) 아이 걘..사지멀쩡한 애가 뭐가 모잘라서 허구헌 날 짝사랑이래?
차회장 : (못마땅한 듯 본다.)
윤여사 : 아, 그렇잖아요. 그림 딱 나오네.
차회장 : (준혁에게) 넌 이만 가 쉬어라. (일어나며 윤여사에게) 혜린이 내 서재로 좀 오라 그래.
윤여사 : (차회장 쫓아가 부축하며) 오늘은 그만 넘어가죠. 혜린이 걔 얼굴 봐봤자 또 열만 받을 텐데...당신 몸도 생각해야죠.
준혁, 착잡한 얼굴로 윤여사와 차회장을 돌아본다.
32. 동, 서재
차회장과 혜린, 마주 앉아 있다.
차회장 :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봐.
혜린 : 말씀드린 대로예요. 태주씨랑 결혼하고 싶어요.
차회장 : 그런데 나보고 그 놈을 만나보라는 이유가 뭐야?
혜린 : 그 사람이 결혼에 대해 미적지근하다는 거 아빠도 아시잖아요.
차회장 : 너한테 미적지근한 건 아니구?
혜린 : ...네, 맞아요. 제가 그 사람 더 많이 좋아해요.
차회장 : 못난 것! 남자 맘 하나 못 잡아 지 애비한테 어리광 부리는 거야!
혜린 : 네, 저 못났어요. 그런데 어떻해요, 그 사람이 좋아 죽겠는걸.
차회장 : !
혜린 : 아빠. 저, 그 사람 놓치고 싶지 않아요. 놓칠까봐 무서워 죽겠어요.
차회장 : .....그래서, 그 놈 마음을 어떻게 잡으라는 거냐?
혜린 : 아빠가 그 사람한테 확신을 주세요.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확신이요!
차회장 : ! (확 치미는) 이..이런..!
혜린, 재빨리 바닥에 무릎 꿇고 앉는다.
혜린 : (절박한) 뭐든지 아빠 뜻대로 할께요. 의상실 다 집어 치우고 백화점으로 들어갈께요.
아빠 그거 바라셨잖아요. 이제 아빠 뜻 거스르는 짓 절대 안해요.
차회장 : .....
혜린 : 그 사람은 처음부터 아빠가 자길 받아들일 거라는 거 꿈에도 생각 안한 사람이에요.
아빠가 진지하게 그 사람한테 얘기하면 분명히 받아들일 거라구요.
제발 부탁 드려요, 아빠.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차회장 : ! 너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냐?
혜린 : 준혁 오빠 포기했잖아요.
차회장 : !
혜린 : 그 사람까지 포기하라고 하지 마세요. 저..., 그 사람 없으면 죽을 거 같아요!
차회장 : !
무릎 꿇은 채 오열하는 혜린. 차회장, 딸의 무너진 모습에 충격이 크다.
33. 지수네 오피스텔 근처 공터(or 오피스텔 옥상) (다른 날, 밤)
태주와 호영, 농구를 하고 있다.
이때, 태주, 쓰레기봉투를 들고 오는 지수를 본다.
태주 : 언니 아직 안 왔어?
지수 : (쓰레기 버리며) 오늘 릴레이로 면접이 세 군데나 있다던데요.
태주와 호영, 다시 농구에 열중한다. 지수, 그들 모습을 흥미 있다는 듯 지켜본다.
태주, 그런 지수를 본다.
태주 : 너도 해볼래?
지수 : (고개 젓는다.)
태주 : 청소년이 운동도 하고 좀 그래라. 입만 살아있으면 뭐하냐? 체력도 키워야지.
지수 : 됐거든요.
호영 : 같이 하지? 너 이 아저씨 얼굴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지수, 뾰로통한 얼굴로 일어서는데 태주가 살짝 공을 던져 지수 머리통에 맞게 한다.
태주 : (약 올리듯 웃으며) 싫음 말구.
지수, 약 오른 듯 공을 들어 태주에게 던진다.
태주 : 우와, 힘 좋은데? (지수에게 다시 던지며) 계속 해봐, 잘 하네.
지수, 공을 받는다. 태주, 지수를 막는 시늉을 한다.
지수, 태주를 피해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진다. 골인하는 공.
지수, 신이 났다. 태주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본격적으로 호영, 태주, 지수가 농구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수, 점점 숨이 찬다.
뒤로 쳐지는 지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호영과 태주.
지수,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34. 병원 중환자실 앞 복도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은수.
35. 동, 중환자실
지수, 산소호흡기를 단 채 정신을 잃고 누워 있다.
경진, 지수 옆에 눈물을 훔치며 앉아 있고, 태주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다.
은수가 들어선다. 지수의 모습을 보자 숨이 턱 막히는 은수.
태주, 어쩔 줄 몰라하는 은수의 어께를 가볍게 안아준다.
36. 병원 진료실
의사, 심장 초음파 사진을 보이며 은수와 태주, 경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의사 : 보시다시피 심박출량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약물치료는 불가능 합니다.
은수 : 지난 번 검사 때도 괜찮다고 했단 말에요.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나빠질 수가 있어요?
의사 : 돌연사 위험이 높은 병이라는 거, 이미 알고 계셨을거 아닙니까?
최근들어 자주 숨이 찼을텐데 전혀 모르셨습니까?
은수 : !
의사 : 아시겠지만 이 병은 스트레스나 감기 같은 조그만 증상에도 갑자기 약화될 수 있고, 아무런 자각증상 없이 멀쩡하다가 하루아침에 쓰러질 수도 있어요.
경진 : 그럼 우리 애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의사 : 마지막 방법을 쓰는 수 밖에요. 이식자 명단에 올려놓겠습니다.
놀라는 은수와 경진. 태주, 어쩔 줄 모르는 시선으로 울먹이는 두모녀를 본다.
37. 병원 진료실
경진 앉아있고 은수 다가와 앉는다.
은수 : 지수 많이 좋아졌으니깐 엄마 이제 미용실 출근하세요.
경진 : 기증자가 나타나도 문제다. 수술비는 또 어떻게 한다니
은수 : 돈이 얼마가 됐든 그게 뭐가 문제야.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꺼예요.
일단은 기증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봐요.
경진 : 은수야 맞다 니 말이 맞다 니말이 맞어.
은수 : 출근하세요. 여긴 내가 있을께요. 걱정하지 말구요.
38. 백화점 사무실 (다른 날, 낮)
업무 중인 태주. 마음이 산란한 듯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한다.
결국 핸드폰을 전화를 건다.
태주 : 어..그래..? 다행이다. 넌 한숨도 못잤겠네? 띄엄띄엄이라도 좀 자.
은수와 통화중 다른 전화가 들어오자 받는다.
39. 백화점 내 야외 옥상 벤치
경진과 태주, 마주 앉아 있다.
태주 : 지수는 좀 어떻습니까?
경진 : 이제 정신도 차리고, 괜찮아졌어. 의사도 아주 놀라더라구.
태주 : 다행이네요.
경진 : 그렇지...불행 중 다행이지...
태주 : .....
경진 : 참, 우리 은수한테는 나, 여기 온 거 비밀로 좀 해줘, 응?
태주 : !.....네... 그런데 무슨...
경진 : (한숨을 푹 쉰다.) 자네도 우리 사는 형편 잘 알 거 아니야.
태주 : !
경진 : 없는 살림에 우리 지수 병간호 하느라고 은수랑 나, 그 동안 안해본 거 없이 다 해봤다네.
그래도 어떻해. 워낙에 큰 병이니 아무리 발 벗고 벌어봤자 모이는게 있었겠냐구.
태주 : .....
경진 : 그런데 이렇게 크게 일이 터져버렸으니 원...
태주 : .....
경진 : (태주 눈치 살피며) 그래도 자넨 계속해서 번듯한 직장 생활 했으니까 모아놓은 게 좀 있겠지?
태주 : 병원비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경진 : 내가 정말 이런 말 안하고 싶은데 너무너무 막막해서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지.
태주 :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경진 : (태주의 손을 잡으며) 아유, 정말 고마워서 어떡하나. 그래두 이렇게 어려울 때 식구 중에 남자가 떡하니 하나 있는게 얼마나 맘이 놓이는지 몰라. (말을 멈추고 태주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태주 : (시선을 느끼고 경진을 본다.)
경진 : (손을 놓으며 시선 피하는)
태주 :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경진 : 저...이런 거 물어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태주 :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경진 : 자네가 말 하라니 내가 톡 까놓고 할께.....자네 그 집말야...전세금이 얼마나 돼나?
태주 : !...네?
경진 : 아니..뭐...그냥..내가 지수 그 수술비만 생각하면 답답해져서 이러는 거 아니야.
태주 : .....
경진 : 사람 심장 구하는 게 어렵지 그깟 돈이야 나가서 구걸이라도 하면 어떻게 안모아지겠냐만서두.....
아무리 그래두 몇천만원이나 한다잖아, 그 수술비가.....
태주 : .....
경진 : 딴 것도 아니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 내가 아주 애간장이 타요. 불안해 죽겠어.
태주 : .....
경진 : 은수 그 기집앤 아무 능력도 없는 것이 지가 다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큰소리 뻥뻥치는데...
그 큰 돈이 어디 은수 혼자 힘으로 될 일이냐구.
태주 : .....
경진 : 우리 은수, 못난 에미에 아픈 동생 뒤치다꺼리하면서 고생 참 많이 했네.
지 하고싶은거 하나도 못하고 세상에 걔처럼 불쌍하게 큰 애가 없어.
그런 은수를 자네가 사랑한다니까... 그것도 많이 사랑한다니까...
어려울수록 사랑의 힘으로 깊이 감싸줄 수 있지 않나.....내 말이 그 말이거든.
태주, 경진의 뻔뻔하고 구차한 모습에 기도 막히고 마음도 심란하다.
40. 편의점
구석에서 빵을 뜯고 있는 은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우걱우걱 빵을 씹다가 한쪽에 붙어있는 편의점 알바 공고문을 본다.
한숨이 나온다. 가방에 구겨넣어뒀던 취업잡지를 꺼낸다.
펜으로 줄을 그며 공고를 보는 은수. 도무지 내키지 않는 곳들 뿐이다.
41. 지수의 병실 (밤)
어두운 병실. 잠든 지수의 소변주머니를 갈아주고 지수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주는 은수.
아프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수를 바라본다.
이불을 잘 덮어주고 옆 간이침대에 쪼그리고 눕는 은수.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 눈물이 난다.
42. 카페<추가씬>
은수와 준혁, 마주 앉아 있다.
준혁 : 갑자기 은수씨가 왜 날 보자고 한 거죠?
은수 : .....
준혁 : 은수씨...
은수 : 정말 낯이 없는데...부탁 좀 드리려구요.
준혁 : ?
은수 : (준혁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지만 이내 결심하고) 입사하고 싶어요, 상무님.
준혁 : !
은수 : 입사 해야겠어요. 그런데 이미 정직원 심사서류 접수가 마감이 되서...
지금이라도 서류 접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으면 해요.
준혁 : 무슨 일 있어요?
은수 : .....
준혁 : 사정을 들어봐야 은수씨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 결정을 할 거 아니예요.
은수 : ...동생이 아파요. 아마...곧 큰 수술을 하게 될 거 같아요.
준혁 : !
은수 : 웬만하면 이런 부탁 드리고 싶지 않은데...직원한테 대출해주는 회사 찾는 게 저한텐 불가능하더라구요.
준혁 : .....
은수 : 상무님, 제발 부탁 드릴께요.
준혁 : .....
준혁,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은수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42. 병원 건물 앞 (다른 날, 낮) <대사 첨가>
서성이고 있는 태주.
건물에서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은수, 태주를 보자 얼굴이 확 밝아진다.
은수 : 아저씨! (태주에게 달려간다.)
태주 : (웃어준다.) 어머니는 오셨어?
은수 : (끄덕)
태주 : 일요일인데도 병원에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더라?
은수 : 사람 아프고 병 드는데 토요일, 일요일 가리나?
태주 : (은수 얼굴 들여다보며) 푸석푸석하네. 잠 잘 못잤구나.
은수 : (고개 젓는다.) 나 아무데서나 잘 자는 거 알잖아요.
태주 : (웃으며 은수 손 잡는다.) 가자.
즐거운 듯 담소하며 장난치며 걸어가는 두 사람.
44. 동, 태주의 오피스텔
은수 : 어때요?
태주 : 꽤 하네? 먹을만하다, 야.
은수 : 내가 이래뵈도 솥뚜껑 운전 경력이 (속으로 세어보는) 10년도 넘었걸랑요. 웬만한 음식은 못하는게 없어요.
태주 : 살림을 초등학생 때부터 했다구?
은수 : 엄마는 일 나가고, 우리 지수 챙겨 먹일라면 할 수 없었거든요.
지수 그 쪼그만 게 어찌나 입이 짧은지 걔 입맛 맞추다가 완전 요리사 다 됐어요.
나 음식점 하나 차리면 진짜 대박 날 거 같은데.
태주 : (씁쓸하다.)
은수 : 참, 나 할 말 있어요.
태주 : ?
은수 : 결과적으로 금방 말 바꾸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요...
태주 : 뭐가?
은수 : 나 그냥 백화점에 입사하려구요.
태주 : !
은수 : 상무님 얼굴 보는 거 그렇긴 한데 지금 상황에선 어쩔수가 없어요.
태주 : .....
은수 : 내 처지에 직원한테 대출해줄 수 있는 회사 들어가는거, 쉽지 않잖아요.
지수 수술하게 되면 목돈 들어갈 텐데. 그래서... 그냥 얼굴 깔기로 했어요.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어떡하겠어.
태주 : .....
은수 : 왜 아무 말도 안해요? 싫어요?
태주 : ...너 힘들지 않아?
은수 : ?
태주 : 이렇게 사는 거 힘들지 않냐구?
은수 : ...아뇨...별로...우리 지수만 괜찮으면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태주 : .....
은수 : (문득 불안한) 왜요?
태주 : ?
은수 : 왜 갑자기 그런 말 해요?
태주 : 아냐, 그냥. (밥 먹는다.)
은수 : ...(태주를 본다.)
이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는 태주.
태주 : 여보세요. !.....(긴장한다.) 예, 안녕하십니까.
은수 : (의아한 듯 본다.)
태주 : (은수 시선 피하며).....네...네...알겠습니다.
전화 끊는 태주. 난감한 시선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 저녁 때까진 올 거죠?
태주 : 응. (나간다.)
은수 : .....
45. 호텔 로비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태주.
직원 안내를 받으며 밀실룸으로 향한다.
46. 동, 밀실룸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태주.
앉아 있던 차회장이 태주를 본다. 태주, 정중하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시간 경과>
마주 앉아있는 차회장과 태주.
차회장 : 혜린이를 어쩌다 저 모양으로 만든 거냐.
태주 : !
차회장 : 왜 저 혼자 결혼에 애 닳아서 지 애비까지 끼어들게 만든거냐구.
태주 : .....
차회장 : 내 자리를 약속해주면 혜린이와 결혼하겠다고 했냐?
태주 : !...그런 적 없습니다.
차회장 : 그런데 그 아이가 왜 그런 소릴 해?
태주 : 저도 모르겠습니다.
차회장 : 혜린이가 없는 소릴 했단 말이냐?
태주 : .....
차회장 : 단 한번도 내 딸과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너.
태주 : !
차회장 : (태주를 잠시 노려보다가) 다른 여자가 있는 거냐?
태주 : !
차회장, 태주의 동요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차회장 : 너 아주 희한한 놈이구나.
태주 : .....
차회장 : 사내새끼가 돼가지고 야망도 없는 거냐? 아니면 순진해 빠진 거냐?
태주 : !
차회장 : 남자가 일단 힘을 가지면 나머지 다른 건 자연히 가질 수 있게 돼.
그것이 쾌락이 됐든, 사랑이 됐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 주무를 수 있다.
태주 : .....
차회장 : 그래서 머리 있는 놈들 같으면 일단은 힘을 택하지. 그게 인생에서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확실한 패거든.
태주 : !
차회장 : 네 그 감정놀음이 얼마나 갈 거라고 생각하냐.
태주 :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차회장 : 네 놈 맘에 안 들어.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놈이니 웬만한 집안에서도 사윗감으로 반길만한 인물은 아니야.
태주 : .....
차회장 : 그런데 내 딸이 아프다.
태주 : !
차회장 : 더 이상 내 자식 망가지는 거 보기 싫어.
태주 : .....
차회장 :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게 여자 마음잡는데 도움이 됐을진 모르지.
이제 그 짓 그만해. 내 딸한테 상처 주는 거 용납 못한다.
태주 : !
차회장 : 딴 생각 말고, 혜린이랑 결혼해!
태주 : !
47. 혜린의 의상실<추가씬>
디자인 스케치를 하고 있는 혜린. 잠시 후 태주가 들어선다.
혜린,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태주 다가온다.
태주 : 혼자 있네?
혜린 : 휴일이라서...직원들 격주로 쉬게 하거든. (일어나 태주 쪽으로 간다.)
태주 : .....
혜린 : (태주 얼굴을 보고) 아빠 만났구나.
태주 : .....
혜린 : 태주씨...
태주 : 잊을 수 있어?
혜린 : ?
태주 : 지금까지 일, 다 잊을 수 있냐구.
혜린 : (한참 태주를 바라보다가) 태주씨가 하라면 할께.
태주 : .....
혜린 : 당신만 돌아온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태주를 포옹한다.) 뭐든지 할 거야.
태주 : .....
48. 新 태주의 오피스텔 주차장
주차장에 들어서는 태주. 주차되어 있는 태주의 차 쪽으로 간다.
뿌옇게 먼지가 쌓여 있다. 손으로 그 먼지를 쓱 쓸어본다.
차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태주. 결심한 듯 차를 향해 키를 누른다.
49. 도로 / 태주의 차 안
도로를 질주하는 태주의 차.
태주, 잔뜩 굳은 얼굴이다.
50. 서해안 해변 (저녁 무렵)
차를 세우는 태주.
혜린(e) 사람 사는 거 다 그게 그거거든. 저급할 것도 없고 고고할 것도 없어.
너만 여우같이 굴면 갖고 싶은 거 다 손에 쥘 수 있다구!
차회장(e) 남자가 일단 힘을 가지면 나머지 다른 건 자연히 가질 수 있게 돼.
그것이 쾌락이 돘든, 사랑이 됐든.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주무를 수 있다.
태주, 가슴이 터질 것 같다.
51. 태주의 오피스텔(밤)
어두운 실내. 태주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태주, 전등스위치를 켜려다가 멈칫한다.
태주를 기다리다 지친 듯 은수가 침대 위에 잠들어 있다. 침대로 다가가는 태주.
은수,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모로 쪼그리고 누운 채로 곤히 잠들어 있다.
태주, 그 고단한 모습이 안쓰럽다.
자는 은수를 한동안 바라보던 태주, 이불을 덮어주려다가 은수 옆에 눕는다.
태주, 은수를 꼭 끌어안고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는 태주,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곧 은수가 부스스 잠이 깬다.
은수 : 아저씨..?
은수, 일어나며 옆의 스탠드를 켠다.
은수 : (시계를 보며) 아, 병원 가야 되는데 깜빡 잠들었네...
황급히 매무새를 다듬는 은수를 바라보는 태주.
태주 : 저녁 먹어야지.
은수 : ?
태주 : 먹고 가. (일어나며) 우리 맛있는 거 먹자.
52. 레스토랑
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태주와 은수, 마주 앉아 있다.
은수 : 왜 갑자기 이런 델 온 거예요? 부담스럽게.
태주 : 밤새 동생 병간호 하려면 영양보충 좀 해야 할 거 아니야.
은수 : 영양보충은 삼겹살이 최곤데.
태주 : 동생은 계속 병원에 있는 거야?
은수 : 좀 지나면 통원치료 해도 될 거래요.
태주 : 그건 좀 위험하지 않아?
은수 : 입원비도 만만치 않고...의사 선생님도 당장은 괜찮을 거라니까.
태주 : .....(은수를 본다.)
은수 : 왜요?
태주 : .....(시선 돌린다.)
은수 : 무슨 일 있어요?
태주 : ...난 네가 고생하면서 사는 거 싫어.
은수 : 내가 무슨 고생을 하는데요?
태주 : 소녀가장에 아픈 동생까지 두고 있는 게 그럼 호강이냐?
은수 : 호강까진 아니래도 고생이랄 것도 없죠.
태주 : 말귀 못 알아듣네. 난 지금 일반적인 시각으로 말하는거잖아.
은수 : (웃는다.) 괜찮아요, 이런 거 익숙해요, 난.
태주 : 그 익숙하다는 게 더 싫어.
은수 : !...그래서요?
태주 : ?
은수 : 싫어서 뭐요? 그럼 아저씨가 호강시켜 줄래요?
태주 : 가능하다면.
은수 : (웃는다.) 마음이라도 고마워요.
태주 : 진심이야.
은수 : 안다니까요.
태주 : 나도 싫어. 이렇게 사는 거.
은수 : !?
태주 : 직장 다니면서 월급 쪼개가며 어떻게 꾸역꾸역 살 수 야 있겠지. 그런데 그거 너무 앞이 안보이잖아.
은수 : 왜 앞이 안보여요?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요.
태주 : 그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그런 거구.
은수 : 아저씬 선택의 여지가 있구요?
태주 : .....
은수 : !(확 감이 오는).....차혜린...그 여자 얘기예요?
태주 : 너를 잠깐 연애하고 끝낼 여자로 생각했으면 나도 이러지 않아.
은수 : 빙빙 말 돌리지 말아요. 제대로 똑바로 말해요!
태주 : 너랑 절대 헤어질 생각 없어, 난.
은수 : 그런데요?
태주 : 그렇다고 지지리 궁상으로 한푼 두푼에 벌벌 떨며 아픈 네 동생 병수발하며 살고 싶지도 않아.
은수 : 누가 아저씨더러 내 동생 병수발 하래요?
태주 : 널 그냥 연애만 하고 끝낼 여자로 생각 안한다고 했잖아.
은수 :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요, 도대체!
태주 : 혜린이랑 결혼할래.
은수 : !
태주 : 혜린이랑...결혼해야겠어.
은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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