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16
준혁의 오피스텔, 주방 (낮)
태주와 혜린, 준혁과 은수가 식탁에 앉아 있다.
혜린 은수씨 솜씨가 대단하네요. 이걸 다 혼자 만들었어요?
은수 상무님이 도와주셨어요. 저보다 잘해요.
혜린 오빠, 요리도 할 줄 알았어?
준혁 혼자 사는 동안 몇 가지 익힌 거 뿐이야.
혜린 저 지칠 줄 모르는 학습능력, 대단해. (태주에게) 당신도 요리 할 줄 아는 거 있어?
태주 라면은 좀 끓여.
혜린 당신은 실용적인 면으로는 써먹을 데가 전혀 없는 거 같아.
태주 난 누구한테 써먹히고 싶지 않거든. 너는 뭐 할 줄 아는 요리 있냐?
혜린 그렇긴 하네.
태주 다른 건 몰라도 은수씨한테 이 해물탕 끓이는 거 하난 꼭 배워 둬. (은수 보며) 아주 맛있어요.
은수 네... (웃는다.)
준혁 너네들은 집 알아본다면서 어떻게 됐어?
혜린 아직. 맘에 차는 데가 없더라. 위치가 맘에 들면 아파트가 낡았고, 아파트가 새 거면 위치와 주변환경이 싫고.
준혁 자네는 주택이 좋다더니 아파트로 바꾼 거야?
태주 혜린이 의사 따라야죠. (은수를 본다.)
은수 (먹는 게 영 시원치 않다.)
혜린 사람 온기라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
준혁 ?
혜린 전에 여기 왔을 땐 아주 썰렁했거든. 뭔가... 사는 냄새 전혀 없는 느낌 있잖아. 그런 데 은수씨 한 사람 늘었다구 공기가 전혀 달라졌어. 훈훈하니 신혼집 분위기 제대로 난다, 정말.
준혁 응. 은수씨 공이 아주 커.
혜린 그런데 은수씬 왜 잘 안 먹어요? 아까부터 계속 밥이 그대로네?
준혁 요즘 우리 집사람 식욕이 왔다갔다 해.
은수 !
혜린 ? 왜?
준혁 은수씨가 몸이 좀 불편하거든.
태주 !
은수 ! (준혁을 본다.)
혜린 어디 아파요?
준혁 그건 아니고...
은수 (제지하듯) 상무님...
준혁 왜요, 말하면 안돼요?
은수 .....(불안한 시선으로 준혁을 본다.)
준혁 난 막 자랑하고 싶은데. 좋은 일인데 말하면 어때서 그래요?
은수 그래도 아직은...
준혁 괜찮아요. 이럴 때 얘기하지 언제 얘기해요.
은수 .....
태주 (긴장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며 물컵을 입에 가져간다.)
혜린 뭐야, 두 사람.
준혁 우리집 공기가 앞으로는 더 훈훈해질 거 같아..... 은수씨가 내 아이를 가졌거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쨍그랑 소리가 난다. 태주가 물컵을 떨어뜨린 것.
모두의 시선이 태주에게 집중된다. 태주, 몹시 당황한 모습이다.
태주의 당황한 시선이 은수와 마주친다. 태주, 시선을 피하며 당황한 채 무턱대고 유리 조각을 만지다가 순간 손을 깊이 베이고 만다.
태주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자 은수,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행주를 가져다 그의 손을 감싼다. 손을 감싼 채 서로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주와 은수.
준혁,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혜린, 재빨리 은수가 잡고 있던 태주의 손을 채가듯 잡으며 태주의 상처를 살펴보고 꼭꼭 눌러준다.
혜린 당신 물 마시다가 뭔 일 한번 낼 줄 알았다. (은수에게) 구급약통 있죠?
은수 (당황한) 네...
은수, 일어나 나간다.
동, 준혁의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혜린과 태주. 태주의 손에는 밴드(가아제)가 붙여져 있다.
혜린, 앞질러 몇 걸음 가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뒤돌아 태주를 가방으로 후려친다.
태주 왜 이래!
혜린 (노려본다.) 그 여자 임신했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야?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거 같니?
태주 !
혜린 아주 가관이더라, 둘이서 손 붙잡고. 아예 영화를 찍지? 눈물은 왜 안 흘렸는지 몰라.
태주 넌 지겹지도 않냐, 이런 거?
혜린 지겹게 구는 게 누군데 이래?
태주 (확 노려보고 가는데)
혜린 한은수랑 완전히 정리한 거 맞아?
태주 ! (걸음 멈추고 돌아본다.) 너, 말이라고 나오는 대로 막 해도 되는 줄 알아? 그게 지 금 할 소리야!
혜린 넌 그다지 도덕적인 인간도, 이성적인 인간도 아니야. 그런 널 내가 어떻게 믿으라구.
태주 믿지 마, 그럼! 나 못 믿는 건 좋은데 괜히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여자까지 끌어들여 서 네 화풀이 상대로 할 생각은 하지 마.
혜린 너 말 잘했다?
태주 ?
혜린 너야 말로 시집가서 남편 사랑 받으며 애까지 갖고 잘 살고 있는 여자....., (노려보며 낮고 강하게) 행여라도 다시 넘볼 생각 하지 마!
태주 !
혜린, 앞장서서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준혁의 오피스텔, 주방 (밤)
어두운 주방. 은수, 잠이 오지 않는 듯 식탁에 앉아 있다.
잠시 후, 잠옷 차림의 준혁이 나온다. 냉장고의 물을 따라 마시고 은수를 본다.
준혁 안자고 뭐 해, 여기서.
은수 조금 이따가요.
준혁 .....아이 얘기해서 화난 거예요?
은수 .....
준혁 은수씨.
은수 화난 거 아니예요.
준혁 근데 왜 이러고 있어요?
은수 (준혁을 본다.) 나중에 알리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러는 게 어딨어요?
준혁 좋은 소식은 널리 알리라고 했어요. 난 은수씨가 왜 숨기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안가 는데요.
은수 숨기려는 게 아니라 아직 임신초기라 불안한 상황이니까...
준혁 강태주 앞에서 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하기 싫었던 건 아니고?
은수 !.....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준혁 난 그 자식이 그 정도로 당황할 줄은 몰랐어.
은수 !
준혁 부부사이에 아이 갖는 게 그렇게 요란 떨면서 놀랄 일이냐구요.
은수 그 사람은 그냥 실수한 거뿐이에요.
준혁 당신은 그 별 것 아닌 실수가 미치도록 가여웠던 거구.
은수 !
준혁 그 자식 손 붙들고 눈물 글썽이는 건 내 앞에서 할 짓이 아니죠, 은수씨.
은수 !
준혁 오늘 화가 날 사람은 은수씨가 아니라 나예요. 그 자식이 그렇게 당황하는 걸 보니, 혹시나 그렇게 당황할만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은수 !
준혁 그래서, 기분 아주 더럽고, 불쾌해!
은수 !
준혁, 안방으로 간다.
백화점 사무실 (다른 날, 낮)
업무를 보고 있는 태주. 유선 전화벨이 울린다.
태주 네, 영업기획부 강태줍니다.....(확 놀라는) 뭐라구요?.....그 쪽에서 매입한 게 확실합 니까? 이미 다 완료가 된 거냐구요...., (힘빠진) 알았습니다. (전화 끊는다.)
태주, 몹시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어나 상무실로 향한다.
동, 준혁의 사무실
준혁, 태주를 본다.
준혁 땅이 이미 매입됐다구?
태주 네, 새롬측에서 그 부지에 대형마트를 세운다고 합니다.
준혁, 착잡한 듯 보던 서류를 밀어 놓고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냉정을 잃지 않는 얼굴이다.
태주, 긴장된 시선으로 준혁을 본다.
동, 차회장 회장실
차회장, 몹시 노여운 얼굴이고 태주와 준혁, 굳은 얼굴로 그 앞에 서 있다.
차회장 다른 건 몰라도 토지매입부터 서둘러 했어야할 거 아냐! 어떻게 그 땅을 다른 데도 아 니고 새롬한테 뺏겨! (태주에게) 도대체 미적거린 이유가 뭐냐?
태주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지개발 문제는 앞으로 변동요소가 있기 때문에 좀더 심사숙고해서...
차회장 (앞의 집기를 확 집어던진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태주 .....
차회장 (준혁에게) 저 놈은 아직 뭘 몰라서 저랬다고 치자. 너라도 제대로 판단했어야 할 거 아니야!
준혁 토지매입문제는 강차장 소관입니다. 제 부하직원도 아니고 공동책임으로 있는 마당에 강차장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차회장 ! (준혁을 노려본다.)
태주 ! (준혁을 본다.)
준혁 (전혀 미동도 않는 표정이다.)
태주 제 책임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차회장 일 다 망쳐놓은 마당에 네가 책임져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미 팔려간 땅 되돌려 올 수나 있어!
태주 .....죄송합니다.
준혁 이미 그 쪽 상권을 새롬에게 뺏긴 상황이 됐으니 새로운 상권을 확보하기까지 일단 분점 추진 계획은 보류 시켜야 할 거 같습니다. 어쨌든 제 불찰도 있습니다. 죄송합니 다.
차회장 .....(머리가 아픈 듯 머리를 만진다.) 나가봐라. 꼴도 보기 싫으니 썩 나가!
동, 사무실 복도 엘리베이터 안
준혁과 태주.
태주 처음부터 분점 개발에는 관심도 없었던 거죠? 그래서 토지매입추진, 일부러 말렸던 겁니까? 이렇게 될 거 다 예상하고?
준혁 .....
태주 나 물 먹이는 것도 좋지만...
준혁 넌 참 꿈도 야무진 놈이야.
태주 !?
준혁 너 하나 물 먹이자고 회사의 최대 프로젝트를 날리겠냐? 네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거 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태주 .....
준혁 그런 식으로 네 책임 남한테 떠넘기려 하지 마.
태주 .....
준혁 잘못된 조언을 받아들인 건 너고, 최종 결정도 네가 한 거야. 누가 내 말 들으래?
태주 !
준혁 워낙 큰 사안이라 만만히 넘어가게 되진 않을 거야. 각오해.
태주 .....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준혁, 다른 층 버튼을 누르며
준혁 먼저 들어가. 난 매장 둘러봐야 되니까.
태주, 내린다.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병원, 심장센터 카운터
간호원, 서류를 보며 전화버튼을 누른다.
간호원 여보세요. 여기 병원인데요, 한지수씨 보호자 되시죠?
동, 사무실B
은수, 통화 중이다.
은수 (놀라고 기쁜) 기증자요?
간호(e) 네, 기증자가 나타났어요. 환자분이랑 내원하셔서 수술대기절차 밟으시기 바랍니다.
은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 끊는 은수,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너무 기쁜 마음에 눈물까지 찔끔 난다.
동, 사무실
점심시간인 듯 한 두 명의 직원들 외엔 텅 비어 있다.
태주, 창가에 서서 심난한 듯 생각에 잠겨 있다.
태주, 돌아서 자리로 돌아오려는데 때마침 사무실에 들어서던 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 순간 멈칫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은수, 먼저 긴장을 풀고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한다.
다가오는 태주.
은수 상무님이랑 점심 먹기로 해서...
태주 아까 매장 둘러본다고 나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
은수 식사, 안하세요?
태주 아침 늦게 먹어서요.
은수의 시선이 태주의 밴드를 붙인 손으로 향한다. 태주, 은수의 시선을 느끼고 슬그머니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는다.
태주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자리로 가려는데)
은수 저...
태주 ?
은수 우리 지수요, 기증자가 생겼어요.
태주 ! (순간 얼굴이 환해진다.) 정말이요?
은수 (웃으며 끄덕인다.)
태주 (웃는다.) 그렇게 기쁜 일이 있었구나. 아주 잘됐어요.
은수 네, 너무 좋아요.
태주 은수씨한테 계속 좋은 일만 생기니까 나도 정말...좋네요.
은수 .....
태주와 은수가 이야기하는 도중 준혁이가 사무실에 들어오다가 그들 두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준혁, 두 사람 말하는 걸 잠시 보는데 은수가 무심코 준혁 쪽을 돌아본다.
화들짝 놀라는 은수의 얼굴. 은수의 표정을 보고 준혁을 돌아보는 태주.
준혁, 은수에게 다가와
준혁 (담담한) 내가 좀 늦었네. 가요.
준혁, 은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간다. 태주, 은수의 표정이 맘에 걸린다.
근처 식당
식사하는 준혁과 은수. 은수, 기쁨에 들뜬 얼굴이다. 준혁도 기쁜 듯 은수를 본다.
준혁 수술은 언젠데요?
은수 오늘 입원해서 기증자랑 잘 맞는지 몇 가지 검사만 끝나면 바로 들어간대요. 지금쯤 엄마랑 지수 병원으로 갔을 거예요.
준혁 이제 큰 걱정거리 하나 없어졌네.
은수 네. 정말 운이 좋았어요.
준혁 그러게요.
은수 그래서 좀 바빠질 거 같아요. 병원에랑 왔다갔다 하려면...
준혁 그러지 마요.
은수 ? 네?
준혁 병원은 간병인 붙이고 은수씬 잠깐 병문안 정도만 다녀요.
은수 괜히 남한테 맡길 거 뭐 있어요?
준혁 은수씨 홀몸 아닌 거 잊었어요?
은수 그 정도는 몸에 무리가지 않아요.
준혁 (단호한) 안돼요. 의사도 조심하라고 했다면서요.
은수 하지만...
준혁 내 말대로 해요.
은수 ! 상무님.
준혁 (순간 날카로운) 도대체 우리 애 생각은 하는 거예요? 동생 돌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 애도 생각해야죠.
은수 !
준혁 그리고...
은수 ?
준혁 아무래도 회사는 그만 두는 게 좋겠어요.
은수 그 얘긴 전에도 했지만...
준혁 그만 둬요.
은수 제 상황 알면서 왜 이래요?
준혁 은수씨 가족은 내가 책임질께요.
은수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예요. 전 일하고 싶어요.
준혁 아이 낳고 조금 안정된 다음에 다시 일해도 늦지 않아요.
은수 아직 아이 안 낳았잖아요. 지금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데...
준혁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살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왜 꼭 나와 결혼한 다음 에 그 일에 매달리겠다고 고집 피우는 거죠?
은수 !
준혁 .....(고개 숙여 음식 먹으며 담담하게) 강태주 때문인가요?
은수 !
준혁 강태주랑 만나고 싶어서 일하겠다는 거 아니면 그만 둬요, 깨끗하게.
은수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까는... 난 그냥 지수 수술 소식을 말해준 거뿐이에 요.
준혁 우리 집안 얘기를 왜 시시콜콜 그 자식한테 하는 거죠?
은수 !
준혁 (은수를 본다.) 치졸하게 보여도 어쩔 수 없어요. 은수씨가 그 자식이랑 얘기하는 것 도 싫고, 얼굴 보는 것도 싫어요. 그리고, 그런 일에 감정 낭비하는 내 자신도 싫어요.
은수 .....
준혁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살 방법 있는데 굳이 서로 피곤하게 굴 거 없잖아요.
은수 .....
준혁 혜린이한텐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당장 사표 제출해요.
은수 .....
준혁의 오피스텔 거실 (밤)
은수, 통화 중이다.
은수 입원수속은 잘 마쳤어? ...기분은 어때? 안 무서워?
병원, 지수의 병실
지수, 통화 중이다.
지수 무섭긴. 내가 어린앤가.
은수(e) 괜히 또 아닌 척 하기는.
지수 어떤 사람인가 생각했어. 좀 미안하긴 한데...행복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 심장이 나한테 오면 나도 영향 받을지도 모르잖아.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분명히 좋은 사람일 거구 너두 수술 잘돼서 더 좋아질 거야. 지수야...나, 너무 기뻐. 세상 모두에게 굉장히 고마워...
이때, 문소리가 난다.
은수 (현관쪽을 보며) 그래, 그럼 잘 쉬고 내일 검사 잘 받아. 응.
은수, 전화 끊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준혁을 맞는다.
은수 왔어요?
준혁 누구랑 통화했어요?
은수 지수요, 입원수속 잘 했대요.
준혁, 안방으로 가려는데
은수 저...
준혁 (돌아본다.)
은수 아까 낮에 한 얘기 말인데요.
준혁 회사 그만 두는 거요?
은수 상무님 신경 쓰이는 건 알겠는데 그거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건 좀 그렇잖아요.
준혁 .....
은수 조심할께요. 그러니까...
준혁 그게 조심한다고 되는 문제예요?
은수 !
준혁 내가 말 했죠? 난 은수씨가 그 자식이랑 마주치는 것도 싫다구.
은수 어떻게 얼굴도 안보고 살아요? 가족처럼 연결된 사람인데.
준혁 그러니까 최대한 마주치지 않을 방법을 찾으라는 거 아냐.
은수 !
준혁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은수씨 이렇게 고집 부릴수록 나는 더 이상한 생각 하게 되는 거 알아요?
은수 !..... 왜 이래요? 다 감당한다고.., 괜찮다고 한 사람이 상무님 아니예요?
준혁 (차가운 눈길로 은수를 본다.) 그거는 은수씨 자신한테 물어봐요. 내가 왜 이러는지.
은수 !
준혁 내일 당장 그만둬요.
준혁, 안방으로 들어간다.
동, 침실
어두운 침실.
준혁이 잠들어 있다. 잠시 후, 침실로 들어오는 은수.
잠든 준혁을 낯설고 불안한 느낌으로 바라본다.
조심스레 침대에 눕는 은수. 준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등을 돌리고 눕는다.
은수, 잠이 오지 않는다. 자꾸만 불안해진다.
백화점 사무실 복도 (다른 날, 낮)
복도를 걸어오는 혜린. 몹시 흥분한 얼굴이다.
동, 사무실
태주,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혜린이가 다가온다.
혜린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긴급이사회가 왜 소집돼?
태주 .....
혜린 혹시 당신 그 일 때문이야?
태주 (담담한) 그거 밖에 더 있겠어?
태주, 앞장 서 걸어간다. 혜린, 불안한 얼굴로 태주를 쫓아간다.
동, 대회의실
이사진들이 앉아 있다. 그들 중 준혁과 박대완이사, 혜린과 태주, 차회장의 모습 보인다.
단상에 있는 최이사.
최이사 이렇게 갑자기 이사회를 소집하자고 한 것은 현재 월드 백화점 경영체계에 대한 우리 이사진들의 의견을 회장님께 피력하고자 한 것입니다.
차회장 (긴장한 얼굴이다.)
최이사 여러분들 모두 우리 월드 백화점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백화점 분점 계획이 어이없 게 무산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 이사진들은 이 사태의 원인으로, 아직 능력 이 입증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경영자의 직권으로 과분한 책임을 지워준 것이 일정 부 분 차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주 .....
혜린 (긴장된 시선으로 태주의 눈치를 살핀다.)
최이사 따라서 개인적인 친분을 앞세워 회사 공익을 위태롭게 한 경영자 차형민 회장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본인이 자진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 다.
충격 받는 차회장과 태주, 혜린. 준혁은 담담한 얼굴이다.
차회장 본인의 불찰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 일로 나의 사퇴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 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구요, 분점계획은 무산된 것이 아 니라 연기된 것입니다. 앞으로 충분히...
박대완 이 일은 단지 도화선일 뿐입니다. 이사진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간 회 장님 경영에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았더군요.
차회장 ! (박대완의 태도에 충격이다.) 바..박이사님.
박대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불가능한 일을 여기 이 사람들이 이렇 게 모여서 요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차회장 !
최이사 우리 이사진들 의견은 이미 수렴됐습니다. 회장님 본인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남은 건 그 결정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차회장 !
동, 사무실B
은수, 자리를 정리 중이다. 가방을 챙기고 소지품 박스를 챙기고 있다.
동, 사무실
자리에 앉는 태주. 피곤하고 심란하다.
이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태주 어, 왜?
동, 사무실B, 혜린의 사무실
혜린, 통화 중이다.
혜린 내 방으로 잠깐 내려와. 우리 얘기 좀 하자. (전화 끊는다.)
동, 사무실B
짐을 모두 정리한 은수. 옆의 직원들에게 인사한다.
은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직원1 잘가요, 은수씨. 이런, 이별 회식도 못하고 보내네.
직원2 가끔 놀러 와요. 언제 날 잡아서 밥이나 한번 먹자구.
은수 예, 그럼 안녕히들 계세요.
은수, 짐을 들고 자리를 떠난다.
동, 사무실B 복도
복도를 걸어가던 은수. 이때 맞은편에서 오던 태주와 마주친다.
태주, 은수가 들고 있는 짐에 시선이 간다. 의아한 듯 보는 태주.
태주 어디 가요?
은수 .....
태주 무슨 일이에요?
은수 저..휴직하기로 했어요.
태주 !
은수 .....아이 때문에 힘들 거 같아서.
태주 아.
은수 (목례하고 가려는데)
태주 이제... 얼굴 보기 힘들겠네...
은수 (태주를 돌아본다.)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 목례하고 간다. 가는 은수를 보는 태주.
동, 혜린의 사무실
태주, 탁자에 앉아 있고, 혜린 다가와 앉는다.
혜린 참 나,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뭐 이런 일이 다 있니.
태주 .....아버님은?
혜린 집으로 들어가셨어. 준혁오빠랑.
태주 .....
혜린 (태주를 본다.) 너무 걱정 하지 마.
태주 ?
혜린 아빠가 지금 준혁오빠랑 잘 협의하고 있을 거야. 이사진들이랑 오빠 사이가 워낙 좋으니까 최악의 사태로 갈 염려는 절대 없어.
태주 .....
혜린 그러니까 당신은 불안해할 거 없다구.
태주 (혜린을 본다.) 내가 뭘 불안해하는데?
혜린 !..... 내 말은 그러니까... 아빠 경영권에도 문제없을 거고 우리가 결혼한 다음에 당신 한테...
태주 넌 지금 내가 백화점 갖지 못할까봐 안달하고 있는 걸로 보이냐?
혜린 그럼 아니야?
태주 (기가 막힌 듯 웃는다.) 그래서 그게 걱정돼?
혜린 .....(태주의 시선 피한다.)
태주 네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나 본데...
혜린 ?
태주 오늘 일어난 일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은 신준혁이야.
혜린 !
태주 네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네 오빠라구.
혜린 그게 무슨 소리야?
태주 내가 말 했잖아. 너네 오빠 이상하다구.
혜린 당신, 우리 엄마 얘기 듣고 이러는 거 같은데 준혁오빠, 자기 욕심에 급급한 그런 사 람 아니야. 자기를 키워준 아빠를 배신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구.
태주 돈과 권력 앞에선 친동기간이고 뭐고도 없다고 한 사람이 너 아니야?
혜린 !
태주 그런데 친부모도 아닌 사람이 무슨 상관이겠어.
혜린 준혁 오빤 달라. 그건 내가 알아.
태주 그래, 어련히 잘 알시겠냐.
혜린 빈정거리지 마.
태주 말싸움 그만 하자. 조금 있으면 뻔히 알게 될 거. (일어난다.)
혜린 .....(착잡하다.)
태주 (일어나 나가려다가) 그런데 넌 어떻게 이 마당에...(혜린을 돌아본다.) 나한테 백화점 을 못 넘겨줄까, 그 걱정을 할 수 있냐?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혜린 !.....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태주 (착잡한 눈길로 본다.)
혜린 당신 나한테 비난할 입장 못돼.
태주 (나가려는데)
혜린 한은수씨 오늘로 직장 그만 뒀어.
태주 !
혜린 알고 있었니?
태주 아까 들어오다 만나서 들었어.
혜린 .....준혁오빠가 애에 대해 아주 끔찍한가 보더라?
태주 .....
태주, 나간다. 혜린, 불안하다.
동, 사무실B
혜린의 사무실에서 나와 걸어가던 태주. 은수의 자리에 시선이 간다.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그 빈 책상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걸음을 옮기는 태주.
혜린네 집 거실
차회장과 준혁, 들어서고 윤여사가 그들을 맞는다.
윤여사 이사회는 어떻게 됐어요? 무슨 큰 일 있는 건 아니죠?
차회장 .....
윤여사 (준혁에게) 이 시간에 너까지 웬일이니?
차회장 당신은 좀 들어가 있어. 준혁이랑 얘기 좀 해야 하니까.
윤여사 네...
차회장, 준혁과 서재 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 분위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의아스러운 듯 보는 윤여사.
동, 서재
준혁과 차회장, 마주 보고 있다.
준혁 그간 아버님 경영방침에 대한 불만이 분점 무산 건으로 불거져 나온 거 같습니다.
차회장 이사진들이 저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 근거가 뭐냐?
준혁 최이사가 그간 임원들의 주식을 끌어 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작하셨겠지 만, 최대주주인 박대완 이사까지 합세한 모양입니다.
차회장 그래서 날 몰아내겠다는 말이 나온 거구나.
준혁 .....
차회장 그 과정에 대해서 네가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고 하진 못하겠지. 그래서 지금껏 최이 사와 죽이 맞아서 다녔던 거고.
준혁 .....(담담한 시선으로 차회장을 본다.)
차회장 그렇게 백화점 경영권이 탐이 났던 거냐? 그게 네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봐 이런 식으 로 내 뒤통수를 치는 거야!
준혁 최이사가 자기편으로 오면 저에게 백화점 경영권을 주겠다고 약속하더군요. 그런데.., 회장님에게는 잘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전 최이사 편이 될 생각은 첨부터 없었습니 다. 왜냐, 백화점 따위, 전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차회장 ! 그렇다면...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준혁 아버님의 경영권을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분점 개발에 쏟기로 했던 예산을 제 가 계획하고 있는 중국 현지 쇼핑몰로 돌려주십쇼.
차회장 !
준혁 물론, 그것은 완전히 제 명의가 되어야 합니다.
차회장 !.....준혁이 너...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준혁 제가 이러는 이유는 하납니다. (차회장을 강한 시선으로 본다.) 전... 절대로, 제 아버 지처럼 되기는 싫거든요!
차회장 !
준혁 17년 전, 제 아버지가 지금의 제 상황과 똑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차회장 !
준혁 최이사가 제 아버지를 내세워 회장님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도록 했죠. 지금 최이사가 절 내세워 이런 사태를 만든 것처럼요.
차회장 !
준혁 그 때 당시 회장님은 제 아버지 뒤에 최이사가 있었다는 걸 모르셨을 겁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만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하셨겠죠.
차회장 !
준혁 상황은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저는 제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이용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겁니다.
차회장 !
준혁 게다가 제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어이 없이 희생될 만큼 못나지도 않았 구요.
차회장 .....
준혁 최이사에게 이용당하지도 않을 거고, 제 잇속도 챙길 겁니다. 이러면 설명이 되겠습 니까.
차회장 도대체...넌...나에 대해서...어떤 생각을 갖고 있길래...
준혁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본 것을 믿고 있는 거지.
차회장 !
준혁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회장님이 진실을 말씀하지 않는다면, 전 제가 믿는 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차회장 !
준혁 그 날 일을 기억합니다. 제 아버지가 떨어지던 건물 위에 회장님이 있었다는 것을.
차회장 ! (강한 충격에 휩싸인다.)
준혁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주십쇼. 회장님의 천적인 최이사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느냐, 마 느냐의 문젭니다.
준혁, 일어나 목례하고 나간다. 차회장,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얼굴이다.
차회장, 갑자기 머리 뒷골이 아파온다. 머리를 움켜쥐며 쓰러지는 차회장.
동, 거실
잔뜩 굳은 얼굴로 내려오는 준혁.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해 가지고 나오던 윤여사가 준혁을 본다.
윤여사 벌써 가니? 그새 얘기가 끝난 거야?
준혁, 윤여사를 돌아보지도 않고 현관으로 나간다.
윤여사 아니 쟤 좀 봐. 쟤 왜 저래?
윤여사, 서재로 향한다.
윤여사(e) (비명에 가까운) 어머! 여보! 혜린아빠, 왜 이래요!
도로 / 준혁의 차 안
굳은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준혁.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안간힘이다.
백화점 어린이 매장
어린이 용품 매장에 들어서는 준혁.
아기 용품 쪽으로 향한다. 아이 장난감과 옷, 침대, 모빌 등을 보며 조금씩 평화로워지는 준혁의 얼굴. 준혁의 핸드폰이 진동한다. 보면 태주다. 준혁, 무시하고 계속 쇼핑한다.
도로 / 태주의 차 안
태주, 초조한 얼굴로 통화 중이다.
태주 지금 상태는 어떠신데요?
윤여사(f)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기셨어. 준혁이를 찾으시는데 걔 지금 어딨니?
태주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준혁의 오피스텔 (밤)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 은수.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은수 ‘누구세요’하며 나간다.
문을 열면 배달원이 은수의 집 안에 각종 아기용품들을 들여놓는다.
보행기, 모빌, 장난감, 자동차 등.
은수 이게 다 뭐예요?
배달 A동 1207호 맞죠?
은수 네.
배달 제대로 왔네요, 뭘.
배달, 은수 집 안에 한가득 짐을 들여놓고 나간다.
은수, 황당한 듯 있는데 유선전화벨이 울린다.
은수 네, 여보세요?.....상무님.
바
술을 마시고 있는 준혁, 통화 중이다.
준혁 벌써 배달 됐어요? (쓸쓸하게 웃는다.) 은수씨 놀랬겠네.....그냥 갑자기 우리 애 물건 들을 사고 싶어서요...이르긴 해도 어차피 다 필요한 거잖아.....금방 들어갈 거예요. 그래요.
전화 끊는 준혁. 술을 마신다. 이때 준혁이 핸드폰이 울린다. 보면 태주다.
준혁, 벨이 끈덕지게 울리지만 무시하고 계속 술을 마신다.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짐을 안쪽으로 들여놓고 풀어보고 있다.
은수, 물건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가 감돈다.
준혁의 오피스텔 건물 앞
태주의 차가 선다. 태주, 차에서 내려 급한 걸음으로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간다.
준혁의 오피스텔
여전히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은수.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린다.
준혁의 오피스텔 앞 복도
태주, 초조한 얼굴로 서 있다.
잠시 후, 은수가 ‘누구세요’하며 문을 열다가 흠칫 놀란다.
태주 형님 있어요?
은수 아직 안들어왔는데...
태주 (낙담한 얼굴이다.)
은수 무슨 일 있으세요?
태주 언제쯤 들어오죠?
은수 금방 온다고 전화 왔어요.
태주 잠깐 좀 기다려도 될까요?
은수 ! 네? .....(불편한 듯 망설인다.)
태주 (은수의 불편한 기색 눈치 채고 아차 싶은) 이따가 다시 올께요.
은수 기다리세요.
태주 !
은수 금방 올 거니까.
은수네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서는 태주와 은수.
태주, 들어오자마자 아기용품들에 시선이 간다. 은수, 태주의 시선을 느끼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한데 모은다.
은수 앉으세요.
태주, 소파에 앉고 은수, 주방으로 간다. 태주, 아기용품에 다시 시선이 간다.
잠시 후, 차를 가지고 오는 은수. 태주에게 차를 내밀며
은수 급한 일인가 봐요.
태주 형님이랑 얘기할 게 좀 있어서요.
은수 .....얘기 들었어요, 백화점 분점 문제 때문에 강차장님이 곤란에 처했다고.
태주 !
은수 혹시...상무님이...
태주 별로 곤란에 처하지 않았어요.
은수 ?
태주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은수 그럼 무슨 일인데요? 심각한 거 같은데.
태주 그냥 형님이랑 상의할 게 있어서 온 거 뿐이에요. (화제 돌리고 싶다. 아기용품쪽을 본다. 웃으며) 성질이 참 급해요. 벌써 저런 걸 준비한 거 보면.
은수 (역시 웃으며) 상무님이 좀 그래요. 보기랑 다르죠?
태주 .....지수는 어떻게 됐어요?
은수 기증자랑 잘 맞는데요. 내일 수술하기로 했어요.
태주 조금 있으면 그 녀석도 뛰어다닐 수 있겠네.
은수 네.
태주 몸은 괜찮아요?
은수 네.
태주 (차를 마시며 시선 떨군 채) .....형님 참 좋겠어요.
은수 .....(태주를 본다.)
이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은수 벌떡 일어나서 현관쪽으로 간다.
들어서는 준혁.
은수 손님 오셨어요.
준혁, 거실 쪽을 본다. 미끄럼틀을 조립하다가 일어서는 태주.
준혁 자네가 여기 웬일이지?
태주 계속 전화했는데도 안받더라구요. 집으로 와야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준혁 무슨 일인데?
태주 나가서 얘기하죠.
준혁 여기서 얘기해.
태주 나가서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준혁 (소파에 앉으며) 방금 들어온 사람한테 나가자구? (은수에게) 자리 좀 비켜줘요, 은수 씨.
은수,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안방으로 간다.
준혁 (태주에게) 앉지 뭐해?
태주 (소파에 앉는다.)
준혁 여기까지 찾아온 용건이 뭐야?
태주 아버님이 쓰러지셨어요.
준혁 !
태주 형님 가시고 곧 쓰러지셨답니다.
준혁 (동요되는 마음을 억누른다.) 그래서.., 상태는 어떠신데?
태주 다행히 심각하시진 않아요. 일찍 병원에 옮겨져서.
준혁 .....나한테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태주 아버님이 찾으신답니다.
준혁 .....(외면한다.)
태주 아버님과 무슨 일이 있는진 모르지만, 여기서 그만 두세요.
준혁 !
태주 전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난 형님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
준혁 .....
태주 형님 타고 오를 생각 전혀 없고, 형님 옆에서 보필하는 걸로 만족합니다.
준혁 그래서, 너한테 돌아갈 경영권을 나한테 넘겨줄테니 이사진을 진정시켜달라 그 말 하 고 싶은 거야?
태주 가족끼리 분란 일으킬 일 뭐 있습니까. 어쨌거나 형님은 아버님 어머님 슬하에서 자 란 사람이잖아요.
준혁 난 배은망덕한 놈이야, 이미.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아.
태주 아버님도 형님에 대해 그동안 조사해 놓은 게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당하고 계시진 않을 거예요. 일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준혁 해보라 그래, 그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지 뭐.
태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준혁 아버님과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다고 했지?
태주 ?
준혁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잠자코 있어.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태주 .....
준혁 돌아가 봐.
준혁,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태주, 난감한 듯 있다가 벗어놓은 옷을 들고 나간다.
동, 안방
안방에 들어오는 준혁. 불안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던 은수가 일어난다.
은수, 준혁이 옷 벗는 걸 도와준다.
은수 무슨 일이에요?
준혁 신경 쓸 거 없어요.
은수 얘기 들었어요.
준혁 (본다.)
은수 상무님 왜 이러는 거예요.
준혁 왜요, 내가 강태주한테 해라도 끼칠까봐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은수 !...지금 그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요.
준혁, 대꾸 없이 나간다. 은수, 문득 아랫배에 약한 통증을 느낀다.
불편한 듯 의자에 앉는 은수.
혜린네 거실
현관에서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는 태주. 몹시 피곤한 기색이다.
잠시 후, 혜린이가 현관으로 들어온다.
2층으로 향하려다가 태주를 보는 혜린.
혜린 벌써 갔다 왔어?
태주 아버님은 어떠셔?
혜린 (소파에 앉으며) 많이 좋아지셨어... 준혁 오빤 만났어?
태주 .....
혜린 뭐라고 해?
태주 (심난한 듯 시선 피한다.)
혜린 (허탈한) 정말 기가 막혀서... 당신 말이 맞았네.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본 거야?
태주 .....
혜린 (생각난 듯 태주를 본다.) 아빠가 준혁오빠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고 했지?
태주 ! 그건 왜?
혜린, 벌떡 일어나 서재로 향한다.
동, 서재
혜린, 차회장의 서랍을 뒤지며 서류뭉치들을 꺼낸다. 뭔가를 찾는 듯 열심히 서류를 뒤적이고 잠긴 서랍을 열쇠를 찾아 열고 난리다.
잠시 후, 서재에 들어서는 태주.
태주 뭐하는 거야?
혜린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 없잖아. 우리도 조치를 취해야지.
태주 .....
혜린 당신도 이리 와서 좀 봐. 찾아보면 분명히 뭔가 나올 거야.
태주, 서류 찾는데 열심인 혜린을 황당한 듯 본다.
혜린 와서 좀 보라니까.
태주, 귀찮은 듯 확 나가 버린다.
동, 태주의 방
방에 들어오는 태주.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어 던지고 자리에 앉는 태주. 이 모든 상황이 싫어진다.
백화점 사무실 (다른 날, 낮)
급한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는 혜린. 상무실로 노크도 없이 들어간다.
동, 준혁의 사무실
준혁, 들어온 혜린을 본다.
혜린, 준혁을 노려본다.
혜린 오빠, 인간이야? 아빠 쓰러졌다는 말 듣고도 어떻게 병원에 코빼기 하나 안비치니? 아빠가 누구 때문에 저렇게 되셨는데.
준혁 그 얘기 하러 온 거야?
혜린 왜 이러는 거야? 하루아침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돌변할 수 있어?
준혁 넌 지금의 사태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혜린 !.....(진정하고) 나한테 얘기해 봐. 아빠랑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준혁 .....
혜린 나한텐 얘기할 수 있잖아!
준혁 아버님과 내 문제야. 너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아.
혜린 ...아빠는 오빠를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키웠어. 오빠도 그건 잘 알 거야. 그것마저 외 면할 만큼...그렇게 대단한 문제가 있는 거니?
준혁 그건 네 생각이지.
혜린 !
준혁 난 한번도 너네 아버지 아들인 적 없었어.
혜린 !...어떻게..오빠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제 엄마가 이해가 간다. 왜 이유도 없이 오빠를 싫어했는지.
준혁 그래, 어머님이 보는 눈이 있으셨던 거지.
혜린 오빠!
준혁 네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야. 그러니까 넌 그냥 가만히 있어.
혜린 우리 아빠를 저렇게 만들어 놨는데 가만 있으라구? 내가 그럴 거 같아?
준혁 !
혜린 아무리 오빠가 치밀하다고 해도 이렇게 큰 일 저지르면서 허점 하나 없겠니?
준혁 !
혜린 오빠, 우리 너무 얕봤어.
준혁 그럼 허점 잘 찾아 봐. 그게 뭔지 나도 궁금하네.
혜린 자신만만하구나?
준혁 자신만만한 게 아니라, 무서울 게 없는 거야. 난 잃을 게 없거든.
혜린 !.....그럼, 난 잃을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오빠랑 싸워야겠네?
준혁 .....
혜린 나도 사정 안 봐줄 거야. 각오해!
혜린, 나간다.
바 (밤)
태주와 호영.
호영 넌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 사는 게 아주 싫은 얼굴이다.
태주 .....요즘 같아선 왜 이렇게 사나 싶어. 에이 참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구. (술 마신다.)
호영 (피식 웃는다.) 그러게. 무슨 영화를 보겠다구... 오늘 지수 수술했잖아.
태주 (호영을 본다.) 갔었어?
호영 그것 땜에 나 보자고 한 거 아니냐.
태주 .....
호영 수술은 잘 됐어.
태주 (엷게 웃는다.) 다행이다.
호영 오늘이 수술 날인데 은수씬 와보지도 않았다더라.
태주 !
호영 어머니 말씀이 지수 입원하고도 낮에만 잠깐씩 들르는 정도래. 은수씨가 동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 그건 좀 너무하지.
태주 임신 중이라 그럴 거야. 조심하느라.
호영 그래도 어머니 말씀 들어보니까 남편이 좀 너무한 거 같던데? 직장도 그만 두게 하고 병원 출입도 막고... 아예 은수씨를 가둬놓다시피 한 거 같더라구.
태주 !
호영 (살피듯 태주를 본다.)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지?
태주 뭐가?
호영 그 남편이 너랑 은수씨 썸씽 있었던 거 다 알고 결혼한 거라며. 게다가 같은 직장에서 계속 같이 얼굴 보고 있었잖아.
태주 (약간 화난) 무슨 말 하는 거야?
호영 아니... 어머니가 걱정하시길래... 은수씨 눈치가 좀 힘든가 보더라구.
태주 .....
말없이 술을 마시는 태주. 은수가 걱정된다.
혜린네 집 정원 (다른 날, 아침)
휠체어에 탄 차회장을 밀며 나오는 혜린과 태주. 두 사람은 출근 차림이다.
차회장 ...준혁이는 어쩌고 있냐.
태주 별다른 사항 없습니다. 아버님 소식 듣고 이사회도 아직 기다리는 중이구요.
차회장 준혁이한테 가서 전해라.
태주 ?
차회장 원하는대로 다 해주겠다고.
혜린 아빠, 무슨 말이에요?
차회장 (태주에게) 그렇게 해.
태주 네...
혜린 준혁오빠한테 그렇게 당하고 오빠 원하는대로 해준다구요? 저, 그동안 아빠가 준혁오 빠에 대해서 수집한 정보들을 다 살펴봤어요.
태주 (맘에 안 든다는 듯 혜린 말하는 것을 본다.)
혜린 싱가폴 유통에 공동투자했던 자금 말예요. 계좌 추적해보니까...
차회장 됐다.
혜린 그 정도면 충분히 준혁오빠 약점 될 수 있어요. 더 조사해보면 분명히...
차회장 됐다니까!
태주, 혜린의 태도도 맘에 안들지만 차회장의 반응도 의외다 싶다.
차회장 (태주에게) 그렇게 전해. 다들 회사 나가 봐라.
도로 / 태주의 차 안
혜린과 태주. 혜린, 분한 듯 씩씩대고 있고 태주는 담담하게 굳은 얼굴이다.
혜린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오빠를 그냥 놔두고 보겠다는 거야.
태주 나는 널 이해할 수 없어. 눈에 불을 켜고 신준혁 두둔할 땐 언제고 이제 네가 앞장서 서 잡아먹지 못해 난리냐.
혜린 상황이 다르잖아. 오빠가 이런 줄 알았니? 그렇게 믿었기 땜에... 누구보다 믿었던 사 람이라 더 배신감이 커. 못 참겠어.
태주 내 눈엔 네가 가진 거 뺏길까봐 안달하는 걸로 밖에 안보여.
혜린 !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태주 내 말이 틀렸냐.
혜린 그래. 나 내가 가진 거 어이 없이 뺏기는 거 싫어. 그러는 넌 어떤데? 넌 욕심 하나 없이 네가 가진 거 다 퍼주고 사니? 어울리지 않게 너만 아닌 척 고고 떨지 마.
태주 .....형님한텐 네가 말해.
혜린 ?
태주 그 열성 가지고 가서 한바탕하라구. (차갑게 내뱉는) 난 이 일에서 빠지고 싶으니까!
혜린 ! (태주를 본다.)
태주, 차갑게 굳은 얼굴이다.
백화점, 준혁의 사무실
테이블 자리에 앉는 준혁. 맞은편에는 혜린이가 앉아 있다.
혜린 아빠 말씀 전하러 왔어.
준혁 .....
혜린 원하는대로 다 해주신대.
준혁 .....
혜린 기분 좋니?
준혁 .....
혜린 오빠 욕심 다 채워서 좋냐구.
준혁 응. 목적달성 했는데 당연하지.
혜린 (쓴웃음) 그 목적이라는 게 혹시 중국에 토지매입까지 완료해 놓은 쇼핑몰이야?
준혁 !
혜린 싱가폴 은행에 있던 투자자금 일부가 중국으로 빠져나갔더라. 아주 복잡하고 교묘한 루트로.
준혁 !
혜린 못 알아낼 줄 알았어?
준혁 그래서?
혜린 아빠는 그냥 눈 감으시겠대. 그거면 오빠를 충분히 옭아매고도 남을 텐데 말야.
준혁 .....
혜린 아빠는 아직도 오빠를 아들로 생각하시나 봐. 내 눈엔 그렇게 보여. 그래서...오빠 이 런 식으로 하는 거, 정말 역겹고 경멸스러워. (일어나는데)
준혁 좋은 사람으로 세상 살기는 힘들어. 그건 불가능이야.
혜린 (경멸에 찬 눈으로 노려보며) 잘나셨어요! (나간다.)
준혁, 참담한 심정이다.
동, 사무실
상무실에서 나오는 혜린. 태주의 자리로 다가간다.
혜린 퇴근 언제 할 거야?
태주 왜?
혜린 같이 하자구.
태주 난 가볼 데가 있어.
혜린 어디?
태주 (본다.) 일일이 말해야 돼냐?
혜린 응.
태주 친구 병문안 가야 돼.
혜린 누구?
태주 있어, 학교 동창.
혜린 당신이랑 할 얘기 있으니까 너무 늦지 마. (간다.)
태주 .....
동, 준혁의 사무실
착잡한 듯 창가를 서성이는 준혁.
핸드폰을 누른다.
준혁 나예요. 어디예요?
준혁의 오피스텔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 은수, 통화 중이다.
은수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하도 안 가봐서 오늘은 가보려구요.
준혁의 사무실
준혁 퇴근하고 나도 그 쪽으로 갈께요. 나도 처제 얼굴 좀 봐야지. 그래요.
전화 끊는다.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병원 복도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던 준혁, 멈칫한다.
앞 쪽에 태주가 걸어가고 있는 것. 태주, 쇼핑백을 들고 있다.
준혁, 얼어붙은 듯 그대로 태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데 태주, 병실로 들어간다.
지수의 병실
지수, 의외라는 눈으로 말똥말똥 태주를 본다.
태주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지수 아저씨가 여기 왜 와요?
태주 너 수술했단 얘기 들었거든. 당연히 와 봐야지.
지수 .....
태주 혼자 있는 거야? 어머니는?
지수 언니 있어요.
태주 !
지수 지금 수퍼에 내려갔어요.
태주 .....
지수 내가 아저씨 병문안을 받아야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태주 내가 무슨 저승사자라도 돼냐?
지수 편안한 관계는 아니죠.
태주 (쇼핑백에서 만화책을 꺼내 준다.) 병실에서는 만화책이 최고야, 그치?
지수 난 이런 순정만화 질색인데.
태주 넌 나이에 비해 순정이 너무 부족해. 순정도 좀 키워.
지수 (노려본다.)
태주 (웃으며) 수술하니까 좋아? 좀 편해졌냐?
지수 수술한지 며칠 됐다구요.
태주 담엔 같이 농구도 할 수 있겠네?
지수 됐거든요.
이때, 과일을 사들고 온 은수가 들어선다. 멈칫하고 놀라는 태주와 은수.
지수, 불편한 듯 태주와 은수를 번갈아 본다.
동, 병원 휴게실
태주와 은수.
태주 은수씨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은수 .....
태주 지수 건강하게 수술 끝난 거 보니까 기분 좋아요.
은수 이렇게 병문안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태주 당연히 와봐야죠. 궁금하기도 했고.
은수 우리 지수 예뻐해 주는 거 알아요.
태주 (본다.)
은수 걱정 많이 하는 것도 알고.
태주 ?
은수 그래서...정말 너무 고마운데...(태주를 아픈 눈으로 보지만 단호한 어투로) 다시는 여 기 오지 마세요.
태주 !
은수 모르는 사람처럼...지냈으면 해요. 지수한테도 저한테도 우리 가족한테 관심 갖지 말 아주세요.
태주 나는 그냥...
은수 어쩔 수 없이 가족들 모임에서 보게 된다면 모를까... 서로...아는 척 하거나...얼굴 보 게 되는 거 안하고 싶어요.
태주 .....
은수 내가...힘들어요. 많이.....
태주 (어쩔 줄을 모르겠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태주의 눈을 보는 게 눈물이 날 듯 마음 아프다. 시선 피하며 고개 숙여) 죄송합니 다.
은수, 자리를 떠난다. 태주, 멍한 느낌으로 한참을 망연히 있는다.
병실 복도
지수의 병실로 다가가는 준혁.
태주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된다. 잠시 망설이다가 병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수의 병실
만화책을 읽고 있던 지수, 준혁을 보고 깜짝 놀란다. 준혁도 아무도 없는 것에 약간 놀란다.
지수 형부...!
준혁 혼자 있어?...언니는?
지수 (약간 당황하는) 잠깐... 화장실 갔어요.
준혁 어.
태주가 갖다 놓은 쇼핑백에 시선이 간다.
준혁 누구 왔었나 보지?
지수 네? ...아뇨... 아, 그건 전에 문병 왔던 사람이 두고 간 거예요.
준혁 .....
지수, 준혁의 시선 피하고 만화책에 집중하는 척 한다. 이때 은수가 들어온다. 준혁을 보고 멈칫하는 은수.
은수 벌써 왔어요?
준혁 응.
은수, 지수를 본다. 지수, 슬쩍 모른 척했다는 눈짓을 보내며 만화책을 본다.
준혁, 은수를 본다.
준혁 울었어요?
은수 ! 네? 아뇨. 왜요?
준혁 눈이 꼭 운 거 같아서.
은수 울긴요.
은수, 지수에게 다가가 침대 주변을 정리한다. 그 모습을 보는 준혁.
태주의 오피스텔
어두운 실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태주.
태주, 불을 켜고 겉옷을 벗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혜린이다.
태주, 잠시 보다가 배터리를 빼버린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준혁의 오피스텔
들어오는 은수와 준혁.
준혁,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는다. 매우 굳은 얼굴이다.
은수, 준혁에게 다가온다.
은수 무슨 일 있어요? 오면서도 한 마디도 안하고.
준혁 .....
은수 옷부터 갈아입고...
준혁 은수씨 한 사람으로 모자라서...처제까지 날 속이네요.
은수 !.....네? 무슨.
준혁 강태주가 그렇게 은수씨 가족들이랑 친한지 몰랐어요.
은수 !
준혁 (은수를 본다.)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지?
은수 !...
준혁 그 자식 만나서 울었던 거예요?
은수 ! 아니예요.
준혁 (냉정한 시선으로 은수를 본다.)
은수 (안타까운 듯 준혁을 본다.) 상무님 이러지 말아요. 우리 이제 이러지 말아요. 이렇게 부탁할께요. 그 사람은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준혁 어떻게 상관없어. 당신이 계속 그 자식을 만나고 있는데.
은수 ! ...그 사람, 지수 병문안 왔었어요. 그런데 굳이 당신한테 얘기해봤자...
준혁 왜 얘기를 못하는데요?
은수 당신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의심하잖아요.
준혁 의심할 짓을 해서 그런 건 아니구요?
은수 (울먹인다.) 제발 그만해요. 나 너무 괴로워요.
준혁 (낮게) 누구 아이죠?
은수 ! 뭐..뭐라고 했어요?
준혁 누구 아이냐구.
은수 (충격으로 얼굴이 확 굳어진다.)
준혁 솔직히 말해봐요.
은수 .....
준혁 난 더 이상 누구한테 속는 거, 안하고 싶거든. 진절머리가 나, 그런 건.
은수 미쳤어.
준혁 뭐?
은수 당신 미쳤다구!
은수, 확 돌아서서 가려는데 준혁 거칠게 은수를 끌어당기고 은수 저항하다가 균형을 잃으며 방바닥에 넘어지고 만다. 준혁, 당황하며 은수에게 다가간다.
준혁 괜찮아? 안 다쳤어?
은수, 준혁의 손을 뿌리친다. 준혁, 어쩔 줄 몰라한다.
은수 진심이에요? ...정말 그런 생각해요?
준혁 .....
은수 (눈물이 난다.) 얼마나 괴로웠어요, 그런 생각 하면서.
준혁 !
은수, 일어난다.
준혁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어.
은수 (돌아서는데)
준혁 (은수를 잡는다.) 은수씨...
은수 나...당신 얼굴...도저히 못 보고 있겠어. 못 보겠어.
준혁 !
은수 잠시...집에 가 있을래요.
준혁 .....
은수 그렇게 할래요.
준혁 .....
은수, 준혁의 손을 뿌리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태주의 오피스텔
태주, 맥주를 마시며 TV로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은수(e)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모르는 사람처럼...지냈으면 해요. 서로...아는 척 하거나... 얼굴 보게 되는 거 안하고 싶어요.
태주, 마음이 아프다.
도로 / 택시 안
택시를 타고 있는 은수.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문득 아랫배가 아픈 듯 배에 손이 간다.
준혁의 오피스텔
준혁, 창가에 서 있다.
<인터컷>
은수 진심이에요? ...정말 그런 생각해요?
준혁 .....
은수 (눈물이 난다.) 얼마나 괴로웠어요, 그런 생각 하면서.
준혁, 은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괴롭다. 안되겠다 싶다.
겉옷을 입고 오피스텔을 나간다.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다가가는 은수.
몇 걸음 걸어가는데 다시 통증을 느끼는 듯 멈칫한다. 참고 집 앞으로 걸어간다.
태주의 오피스텔
태주, 시계를 보고 TV를 끈다. 흐트러진 맥주캔과 안주를 치우고 옷을 입는다.
가방을 챙겨 불을 끄고 나가는 태주.
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준혁, 차에서 내려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간다.
지수네 오피스텔 앞
은수, 능숙하게 열쇠 있는 곳을 찾는다. 우유팩, 창틀, 열쇠가 없다.
갑자기 심하게 통증이 온다. 무릎이 턱 꺾이며 주저앉는다.
은수, 공포감이 밀려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의 핸드폰을 찾는다.
핸드폰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겨우 잡았는가 싶었는데 손에 힘이 없어 놓치고 만다.
은수,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고 손을 내미는데 이때 복도를 돌아 걸어오는 태주가 은수를 본다. 깜짝 놀라 은수에게 다가오는 태주.
은수, 창백한 얼굴로 태주를 바라본다.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걸어오던 준혁, 걸음을 멈춘다.
태주가 은수를 일으키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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