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15
은수네 오피스텔 옥상
태주,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농구를 하고 있다.
능숙하게 공을 놀리며 뛰는 태주의 모습과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신랑신부 준혁과 은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참 농구를 하다가 힘에 부친 듯 공을 안고 땅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는 태주.
태주,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혜린(e) 농구하러 출장 오는 사람도 있니?
태주, 돌아보면 언제 왔는지 혜린이가 서 있다.
태주 왔어?
혜린 (계단에 앉는다.)
태주 어머님 아버님은 뭐라셔?
혜린 대충 잘 둘러댔어. 주말에 출장 가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어떡하겠어? 출장갔다는데 믿어야지.
태주 (웃는다.)
혜린 결혼식은 잘 끝났어.
두 사람, 잠시 침묵한다. 태주, 공을 튕기다가
태주 기분이 어때?
혜린 뭐가?
태주 옛 애인 장가가는 거 구경한 기분.
혜린 별로 안 좋아. 좀 아까운 생각 들더라.
태주 .....
혜린 그래도 은수씨 생각하면 나아. (태주를 본다.) 당신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으니까.
태주 .....(씩 웃는다.) 넌 나 왜 좋아하냐?
혜린 갑자기 그런 민망한 질문은 왜 하니?
태주 궁금해서.
혜린 .....
태주 난 예전엔 여자들이 나 좋아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거든.
혜린 왜 당연하게 여겼는데?
태주 잘 생겨서 좋아하나 보다 했어.
혜린 (웃는다.) 당신 정말 웃겨.
태주 .....
혜린 당신은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단순한 왕자병이 매력이긴 해.
태주, 말없이 농구공을 통통거리다가
태주 농구할 줄 아냐? 같이 할래?
혜린 하이힐 신은 여자한테 농구하자고 하는 그 무신경도 재수는 없는데 가끔 귀여워.
태주, 옆에 놓인 가방에서 운동화를 꺼낸다. 의아한 듯 보는 혜린.
태주 나, 나름 완벽주의자인 거 알지?
태주, 혜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혜린의 구두를 벗기고 운동화를 신겨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혜린.
혜린 처음엔 당신 척 하는 게 재밌었어. 쿨한 척, 잘난 척, 멋있는 척, 척이란 척은 혼자 다 하더라.
태주 척 하는 걸로 치면 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혜린 맞아. 아마 나랑 비슷해 보여서 흥미가 갔나 보다.
태주 .....
혜린 드러내놓고 속물 티 팍팍 내는 것도, 드러내놓고 이기적인 것도 신선했어.
태주 네 취향은 역시 위험해.
혜린 그러다가 그냥 좋아졌어.
태주 .....
혜린 한창 준혁 오빠 때문에 마음 아플 때였는데 언젠가부터 당신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 게 됐거든.
태주 .....그래서 신준혁은 완전히 잊은 거야?
혜린 그렇다기 보단... 덮어씌워졌다는 말이 맞을 거야.
태주 ?
혜린 당신으로 덮어씌워지니까 참을만 하더라. 조금씩 잊어먹게 되고...희미해지고...그러다 당신만 남았어.....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해.
태주 .....
혜린 경험에서 말하는 건데, 정말 괜찮아 진다니까.
태주 (웃는다.)
혜린 너... 나한테 못할 짓 많이 한 거 알지?
태주 그래서 이렇게 선물도 주잖아. 나 아무한테나 이런 거 안해줘.
혜린, 태주를 포옹한다.
혜린 이제 진짜로 새로 시작하자.
태주 .....
혜린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없어. 앞만 보는 수 밖에.
태주 .....
혜린 정신 차리고, 정말로, 새로 시작하는 거야.
먹먹한 감정을 억누르고 애써 미소를 짓는 태주의 얼굴.
서울 근교 팬션 강가 (다른 날, 아침)
은수, 강가에 홀로 앉아 있다.
손으로 흙장난을 끄적끄적하다가 강을 바라본다.
동, 팬션
잠들어 있는 준혁. 잠시 후 잠이 깬다.
은수가 없는 것을 알고 거실로 나간다. ‘은수씨’ 부르며 은수를 찾는 준혁.
거실에도 주방에도 다른 방에도 은수가 보이지 않는다.
동, 강가
팬션에서 나오는 준혁. 강가 쪽으로 나오다가 먼발치로 은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은수에게 다가가는 준혁.
준혁 일찍 일어났나 봐요?
은수 (돌아본다.) 네. (웃으며) 잘 잤어요?
준혁 (옆에 앉는다. 은수 얼굴 보며) 은수씨는 별로 못 잔 얼굴인데?
은수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봐요.
준혁 화난 건 아니구요?
은수 왜 화가 나요?
준혁 은수씨 원하는 신혼여행지로 못 갔잖아요. 기간도 너무 짧고. 미안해요.
은수 상무님 일 때문에 그런 걸 뭐가요. 여기도 좋아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예쁜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준혁 .....꿈만 같네.
은수 (준혁을 본다.)
준혁 (은수를 한 팔로 다정하게 안으며) 은수씨랑 이렇게 있는 게 꿈만 같아요.
은수 .....
준혁 (다정하게 내려다보는데)
은수 (웃으며) 꿈이 너무 고요하다.
준혁 ?
은수 평화로와서 좋다구요.
준혁, 다정하게 웃으며 은수를 더 꼭 끌어안는다.
혜린네 집, 서재 (밤)
차회장과 태주. 바둑을 두고 있다.
차회장 혹시 준혁이한테 해외 쇼핑몰 사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
태주 그런 건 금시초문인데요.
차회장 .....
태주 뭣 땜에 그러십니까.
차회장 너희들 싱가폴에 갔을 때 말이다.
태주 !
차회장 준혁이가 그 당시 해외 쇼핑몰 문제로 중국측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말이 있던데 전혀 눈치 못챘니?
태주 업체 미팅 때문에 혼자 외출했던 적은 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선 전혀 말씀이 없으셨 습니다.
차회장 (잠시 침묵하다가 태주를 본다.) 너 전에 여자 있다고 했었지?
태주 !
차회장 그건 어떻게 됐냐?
태주 !...이미 정리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차회장 .....(바둑을 둔다.)
태주 (불안한 듯 바둑을 두는 차회장을 본다.)
차회장 (바둑에 시선 둔 채로) 한은수라는 애 말이다. 준혁이 처.
태주 !
차회장 전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던가?
태주 네...
차회장 걔는 어떤 애냐?
태주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차회장 준혁이 그 놈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덜컥 결혼할 놈이 아니어서 말이야. 전부터 한 번 물어보려고 했었다.
태주 형님이 많이 사랑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차회장 (날카로운 시선으로 태주를 본다.)
태주 .....평범한 아가씹니다. 제가 알기로는 별 특이사항 같은 건 없습니다.
차회장 그래... (다시 바둑에 시선을 둔다.)
태주, 찜찜한 기분이다.
도로 / 준혁의 차 안 (다른 날, 아침)
출근길 도로 전경.
출근 차림의 준혁과 은수. 은수, 예전보다 성숙한 느낌의 차림이다.
은수, 서류와 의류 사진들을 펼쳐 보며 열심이다. 운전하던 준혁, 그런 은수를 슬쩍 보고
준혁 난 도무지 장가간 기분이 안나.
은수 ?
준혁 장가간 게 아니라 은수씨를 일에다 시집 보낸 기분이에요.
은수 (웃으며) 중간평가회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래요. 그리고 오늘은 보고서도 올려야 하 구.
준혁 그래도 그렇게 밤낮으로 끼고 있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신혼인데. 신랑 얼굴도 좀 봐 줄래요?
은수 난 상무님처럼 머리가 좋지 않아서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야 한단 말예요. 상무님이 나 좀 봐줄래요?
준혁 그 놈의 상무님 소린 언제 없어지나 몰라. 나중에 우리 자식까지 날 상무님이라 부르 겠어요.
은수 하루 이틀 버릇도 아닌데 어떻게 금방 고쳐요? 가만 보면 되게 성질 급해.
준혁 그래요, 나 성질 급해요. 은수씨도 좀 따라줘요. 나랑 같이 살려면.
은수 (웃는다.) 노력은 하겠는데, 장담은 못해요.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업무를 보고 있는 준혁.
이때, 준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준혁, 액정을 확인하고
준혁 네, 아버님..... 아니 괜찮습니다. 네... 네, 저녁 때 찾아뵙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동, 사무실B
은수의 자리 한 켠에 은수 핸드폰이 놓여 있다.
핸드폰이 진동하지만 은수의 자리는 비어 있다.
동, 사무실 회의실
태주와 은수. 그들 앞에 사진 자료와 서류들이 펼쳐져 있다.
은수 여러 가지로 조합해 봤는데 여기 바니와 팀, 꽃사랑, 이들 조합이 제일 괜찮은 거 같 아요.
태주 (사진의 옷들을 찬찬히 보다가) 이건 너무 튀는 거 아닌가. 바니 옷은 안되겠는데요.
은수 바니가 있어야 이 조합이 살지 않을까요?
태주 한은수씨 취향으로 하지 말고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을 해요.
은수 요즘에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거 안타보셨죠?
태주 (본다.)
은수 이런 옷 입고 다니는 애들 많아요.
태주 설마... 이런 옷 같지도 않은 걸 입는다구요?
은수 패션 잡지 같은 거 보세요?
태주 ! (고개 젓는다.)
은수 전 웬만한 거 다 보거든요. 아마 길거리도 강차장님보다 많이 다닐 거예요.
태주 나보다 보고 듣는 게 많다?
은수 그럼요.
태주 주장 진짜 강하네.
은수 무난한 디자인의 옷은 기존에 입점 된 브랜드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새롭게 만드는 거라면 확실하게 차별되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태주 확실한 차별화는 대환영인데 바니는 빼요. 이건 너무 위험해.
은수 너무 나이 먹은 티 내는 거 아니예요?
태주 ! (본다.) 그런 말 들을 만큼 먹진 않았는데요.
은수 젊은애들 감성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잖아요.
태주 나 젊은이예요.
은수 감성은 아저씨예요.
태주 !...(픽 웃는다.) 참 오랜만에 듣네, 그 아저씨.
은수 !
태주 본인보다 나이 많다고 아저씨로 모는 거나, 본인이랑 취향이 다르다고 젊은 감성을 이해 못하는 구닥다리로 모는 거 하지 말아요. 기분 나빠요.
은수 내가 언제 구닥다리라고 했다구요?
태주 감성은 아저씨라면서요.
은수 구닥다리라는 뜻은 아닌데요... 아저씨 소리가 싫으세요?
태주 그거 좋아하는 사람 어딨습니까? 나니까 계속 참고 들어줬지. 나 지금도 나가면 여고 생들도 다 오빠라고 해요.
은수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참고 들어줬는데요?
태주 부르는 면전에서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해요? 난 못해요. 내가 맘이 약하거든요.
은수 그런데 뒤에 와서 이러는 건 뭐예요?
태주 부르는 면전 아니니까요. 이제 은수씨 나 그렇게 안 부르잖아요. 맘 약할 이유가 없 죠.
은수 뒤끝이 좀 있으시네요.
태주 기억력이 좋은 거 뿐이에요.
은수 아저씨라고 해서 미안해요.
태주 (본다.)
은수 정말 싫어하는지 몰랐어요.
태주 됐어요. 다 지난 거.
은수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다르게 불렀을 거예요.
태주 (호기심 생긴) 뭐라구요?
은수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태주 (웃는다.) 한은수씬 봐줄께요.
은수 네?
태주 나쁘지 않았어요.
은수 왜 이랬다 저랬다 하세요?
태주 처음엔 싫었는데 나중엔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예요.
은수 ! 그러니까 결론이 뭐예요?
태주 좋아했으니까 미안할 거 없다구요.
은수 !
태주 (시선 다시 서류로 향하며 사진들 뒤적이는) 아무리 아저씨 취향이라고 비난해도 바 니는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내가 못 받아들이면 백화점 임원들은 더 어림없구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아저씨거든.
은수 .....(태주가 고개 숙여 말하는 동안 태주를 빤히 본다.)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씨가 그렇게 확신이 선다면 날 설득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가져와 요. 사진자료가 됐든 매출표가 됐든. 바니는 그 때 가서 보고 결정하죠. 됐죠?
은수 (끄덕인다.)
태주 서로가 서로를 설득해 보자구요. 우리가 의견일치가 돼야 다른 사람을 설득하죠.
은수 (끄덕이며) 네.
태주 (웃으며) 이제야 말이 통하네. 고집 굉장히 세요.
은수 제가 좀... 뭐 하나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단점이 있어요.
두 사람, 마주 보고 피식 웃는데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린다.
태주 네.
준혁이 들어선다. 태주를 보고 웃고 있는 은수를 보고 순간 멈칫한다.
준혁을 돌아보는 은수와 태주.
준혁 방해한 건가?
태주 아뇨. 방금 끝나던 중이었어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준혁 자네 말고 내 와이프.
태주, 씩 웃으며 서류 챙겨 일어나다가 생각난 듯 준혁에게 옷 사진을 보인다.
태주 어때요?
준혁 !.....무슨 옷이 이래?
태주 (웃으며 은수를 본다.) 거봐요. (준혁을 가볍게 치며) 여긴 다 아저씨라니까. (나간다.)
은수 (나가는 태주를 보며 웃는다.)
준혁 뭐예요?
은수 (준혁 보지 않은 채 사진과 서류 챙기기 시작하며) 의견대립이 좀 있었어요.
은수, 여전히 웃음기 도는 얼굴로 서류 등을 챙기는 은수 얼굴을 보는 준혁.
은수, 준혁을 보지도 않고 사진들 챙겨 일어나려다 문득 준혁을 본다.
은수 (생각난 듯) 여긴 어떻게 왔어요?
준혁 (핸드폰을 준다.) 핸드폰은 왜 두고 다녀요? 한참 은수씨 찾았잖아요. 여깄는 줄도 모 르고.
은수 (핸드폰 받으며) 깜빡했다. 뭐 할 말 있어요?
준혁 오늘은 은수씨 혼자 퇴근하라구요. 난 갈 데가 있어서.
은수 알았어요. (일어서는데)
준혁 어디 가는 거냐고 묻지도 않네.
은수 ?
준혁 궁금하지 않아요?
은수 어디 가는 데요?
준혁 아버님 댁이요.
은수 난 또 특별난 데라구.
준혁 지금 외근 나가는 길이라 은수씨한테 말 해놓고 가려고 한 거예요. 나중에 퇴근도 못 하고 나 기다리고 있을까봐.
두 사람, 나란히 나간다.
동, 사무실
회의실에서 나오는 은수와 준혁, 출구 쪽으로 걸어가며
은수 저녁은 먹고 올 거예요?
준혁 아마 그렇겠죠.
자리에 앉아 있는 태주, 사무실을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문득 쓸쓸한 시선으로 보다가 시선을 돌리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태주 네.
부동산 소개소
소장, 통화 중이다.
소장 내놓은 집 말입니다. 계약자가 나섰는데 거기 짐은 언제 빼줄 수 있나 그걸 묻네 요..... 그렇죠, 그게 서로 맞아야 되는 거니까요.
백화점 사무실
태주 (망설인다.) 그게... (마음 먹는) 계약이 이미 성립된 건 아니죠?.....그럼 좀 보류해 주시겠어요? .....아뇨. 계속 있을려구요. 제가 계약을 연장하겠습니다.
혜린네 집, 서재 (밤)
차회장과 준혁.
차회장 장가 가니까 어떠냐.
준혁 (웃는다.) 집에 가면 반겨주는 사람도 있고 좋습니다.
차회장 (웃는다.) 태주랑은 어때? 같이 일하는 건 호흡이 잘 맞냐?
준혁 아직까지는 별 문제 없습니다.
차회장 내가 계속 맘에 좀 걸려. 혹시 네가 태주 때문에 나한테 섭섭한 마음 갖고 있나 해서.
준혁 !
차회장 솔직히 말해도 된다.
준혁 혜린이 누군가와 결혼할 거고, 그 누군가에게 아버님이 많이 의지하실 거라는 건 전 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차회장 .....
준혁 그런데 새삼 섭섭한 마음이 들 건 없겠죠.
차회장 네가 어떻게 생각하건 난 정말 널 내 아들처럼 생각하고 키웠다.
준혁 .....
차회장 그런데 요즘 자꾸만 네가 낯설어져.
준혁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회장 너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냐?
준혁 !
차회장 너에 대해서 자꾸 이상한 말이 들려와. 네가 요즘 이사진들을 자주 만난다는 얘기도 들리고, 또 해외 쇼핑몰 건은 또 뭐냐?
준혁 (씁쓸하게 웃는) 혹시 절 감시하셨습니까?
차회장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이리저리 정보통을 통해 듣는 거 뿐이야.
준혁 백화점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이사진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건 기본이라고 생 각합니다. 해외 쇼핑몰 건은 어떻게 들으셨는진 모르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개 인적으로 관심 있는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회사 사정만 따라준다면 꼭 한번 추진하고 싶은 일이라 혼자서 자료 수집 정도 하고 있는 정도구요.
차회장 .....네 처는 어떻게 된 거냐?
준혁 !
차회장 네가 싱가폴에서 중국측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연히 알게 된 게 있 다.
준혁 !
차회장 입국할 때 너와 혜린이가 같이 입국했더구나. 태주와 네 처는 그보다 3일 앞서 들어 왔고.
준혁 !
차회장 (강한 시선으로 준혁을 본다.) 다른 여자 버리고 내 딸 택한 태주는 그럴 수 있다 치 자. 넌 뭐냐, 왜 굳이...
준혁 제가 설마 강태주를 압박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여자랑 결혼한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차회장 !
준혁 저를 아들처럼 키우셨다면서 저에 대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실 수 있죠? 아버님한테 서운한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겁니다. 한 번도 절 믿지 않으셨어요, 아버님 은.
차회장 나는...
준혁 저는 그 이유가 아버님이 저에게 숨기는 게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차회장 !
준혁 틀렸나요?
차회장 !...무슨 말이냐?
준혁 제 마음을 알고 싶으시다면 아버님께서 먼저 아버님 마음을 알려주십쇼. 아버님께서 끝까지 함구하신다면... 전, 지금 제가 믿는 대로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차회장 !
준혁 그리고... 제 처에 대해서 불순한 생각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거, 불쾌합니다.
준혁, 일어나 인사하고 나간다. 차회장, 충격에 휩싸인 얼굴이다.
혜린네 집 주방 (밤)
윤여사와 혜린, 태주가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다. 혜린, 집인테리어 관련 잡지를 넘겨 보고 있다.
윤여사 너희들 집은 보러 다니는 거니? 구한다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
태주 제 생각엔 그냥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윤여사 그게 무슨 소리야?
태주 이 집은 이래서 싫고, 저 집은 저래서 싫고, 혜린이 마음에 드는 집은 지구상에 여기 밖에 없는 거 같거든요.
혜린 이 집도 별로 맘에 안 들어. 휑하니 너무 커. 난 아기자기한 게 좋은데. 왜 이런 잡지 속의 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거야.
태주 (기가 막힌 듯 혜린 한번 보고 윤여사에게) 얘 키우기 힘드셨죠?
윤여사 키우기만 힘들어? 쟨 뱃 속에 있을 때부터 내 속을 밀가루 반죽으로 채워서 속앓이 시킨 애야.
태주 왜 밀가루 반죽으로 채워요?
윤여사 내가 쟤 갖고 처음 입덧 할 때부터 아홉달 내내 칼국수만 먹었잖아. 다른 음식은 도대 체가 먹을 수가 없더라구.
태주 야, 그거 고문이었겠다.
윤여사 나 지금도 칼국수 칼자만 들어도 경기 인다니까.
태주 (혜린 보며) 얘가 칼국수 먹고 태어나서 성격이 이렇게 날이 섰구나.
혜린 날 갖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두 사람 아주 신이 나셨어.
윤여사 그래도 자네한텐 솜사탕처럼 구는 건 줄 알아. 쟤 어렸을 때부터 별명이 칼바람이었 잖아.
이때, 준혁이 주방에 들어서다가 멈칫하고 선다.
태주 아무래도 여기서 그냥 어머님이랑 살까봐요. 얘랑 단 둘이 무서워 살겠습니까?
혜린 (책으로 가볍게 태주 치며) 그만 좀 해라?
윤여사 강서방 잘 생각했네. 나가 살면 고생이야. 쟤는 살림도 하나도 할 줄 몰라.
혜린 엄만 또 뭐야?
태주 싫으면 너 혼자 그냥 나가 살던가. 나 무서운 거 싫거든.
혜린, 태주를 째려보고 윤여사 재밌다는 듯 웃는다.
태주, 웃으며 고개 돌리다가 준혁과 눈이 마주친다.
태주 아버님이랑 얘기 끝났어요?
준혁 (차갑게 무시하고 윤여사에게) 가보겠습니다. 어머니.
태주 !
윤여사 저녁은 안 먹고 가니?
준혁 아닙니다. 그만 가겠습니다.
준혁, 인사하고 나간다.
혜린 (가는 준혁에 대고) 잘 가 오빠.
윤여사 쟨 또 왜 저래? 장가가고 한동안 얼굴 펴고 다니는 거 같더니.
태주, 준혁의 눈치가 마음에 걸린다.
혜린네 집, 혜린의 방
혜린, 잠옷을 입은 채 간단히 얼굴에 화장수를 바르고 머리를 정리한다.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태주.
태주 들어가도 돼?
혜린 벌써 들어왔잖아.
태주 (들어와 앉는다.)
혜린 할 말 있어?
태주 형님이랑 아버님 말이야, 뭐 이상한 거 못 느껴?
혜린 (본다.) 무슨 말이야?
태주 전에 아버님이 나보고 형님 잘 살펴보라고 하시더라.
혜린 ! 그래서?
태주 형님도 아버님 믿는 눈친 아니야. 별로 감이 안 좋아.
혜린 .....준혁 오빠 딴 생각 할 사람 아니야.
태주 네가 어떻게 알아?
혜린 같이 자란 사람이야, 그 정도도 몰라?
태주 아들처럼 키운 사람도 못 믿고 있잖아.
혜린 !
태주 도대체 신준혁 어떤 사람이냐? 난 그렇게 봤는데도 그 인간은 정말 모르겠어.
혜린 도에 어긋나는 행동할 사람 아니야. 워낙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거든. 결벽증 있을 만큼. 오빠가 뭘 할 때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
태주 넌 네 아버지보다 오빠를 더 믿나 보지?
혜린 (본다.) 당신 때문에 오빠 입지가 약해진 느낌은 있겠지만, 준혁오빠 그거 몰랐던 사 람 아니거든. 예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어. 이런 상황.
태주 .....
혜린 그래서 난 아빠가 그러는 거 좀 오바라고 봐.
태주 아버님이 오바가 아니라면 신준혁한테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거네?
혜린 ! 무슨 소리야?
태주 네 오빠가 한은수 정말로 사랑한다고 생각해?
혜린 ! (확 날카로워지는) 그게 왜 궁금하니?
태주 !
혜린 준혁오빠와 한은수에 대해서는 신경 꺼.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들이 서로 사 랑하든가 말든가.
태주 왜 이렇게 날카롭게 굴어?
혜린 당신이랑 한은수,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건 다행스러운데 오히려 너무 그러는 게 이 상해 보이는 거 알고 있어?
태주 !...또 무슨 소리냐?
혜린 나도 싫은데 오빠라고 안 싫겠냐구.
태주 나보고 뭘 어쩌라구, 아예 생 까라구?
혜린 이런 식으로 도를 넘는 관심 갖지 말란 얘기야. 나 아주 불쾌하거든. 사랑하든 말든 그들은 부부야. 지지고 볶고 어떻게든 살겠지. 당신한텐 그들 관계 신경 쓸 자격 없 어!
태주 .....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사진 자료들을 내놓고 컴퓨터 작업 중이다.
잠시 후, 준혁이가 들어선다. 쫓아가 준혁을 맞는 은수.
은수 왔어요?
준혁 응.
은수, 준혁이 벗어주는 겉옷을 장에 넣는다. 준혁, 은수를 포옹한다.
은수 갑자기 왜 이래요?
준혁 피곤해.
은수 저녁은?
준혁 됐어.
은수 (품에서 나오며) 씻어요, 그럼.
준혁 내가 은수씨를 왜 좋아하나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날 사심 없이 봐준 사람은 은수 씨밖에 없었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수 다른 사람은 사심 가지고 상무님을 봐요?
준혁 그런 거 같아.
은수 왜요?
준혁 글쎄... 그래서 나도 자꾸 사람들을 못 믿게 되나 봐.
은수 (웃으며 가볍게) 그러지 말아요, 상무님까지.
준혁 .....
은수 (가볍게 밀치며) 씻어요.
은수, 책상으로 가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다. 준혁, 책상 쪽으로 가서 벽에 기댄 채 일하는 은수를 바라본다.
준혁 일이 재밌나 봐요.
은수 (시선 서류와 컴퓨터에 둔 채) 네. 재밌어요. 강차장님이 방향을 잘 잡아줘서 원래는 거칠었던 기획안이 아주 그럴듯하게 됐어요. 고급화 전략 같은 건 난 생각도 못 했거든요. 강차장님 지시를 따르다 보니까 시야도 넓어지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더 다양하게...
준혁 계속 강태주 얘기네요.
은수 ! (준혁을 본다. 당황하는) 네?
준혁 (차갑게 내뱉는) 그 소리 듣는 거...아주 신경질 나는 일인 거 알아요?
은수 !
준혁, 돌아서 욕실로 향한다. 은수, 당혹스럽다.
백화점 사무실 복도 (다른 날, 낮)
걸어가는 태주와 은수.
태주 떨려요?
은수 큰 회의에서 발표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태주 꼼꼼하게 정리됐으니까 무난히 넘어갈 거예요.
은수 네.
동, 대회의실
회의실에 준혁과 혜린을 포함한 몇 명의 임원직원들이 앉아 있다.
잠시 후 태주와 은수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을 보는 혜린과 준혁.
은수, 준혁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짓는다. 준혁도 미소 지어 준다.
<시간 경과>
태주, 단상에서 발표 중이다.
태주 획일화된 백화점 매장 형태가 적어도 이 스트리트 룩에서 만큼은 파격적이고 개성있 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겁니다. 특히 거리의 시장브랜드의 장점들을 모아 저희 월드 백화점 통합브랜드로 신장시키려는 계획도 있습니다. 담당자 MD사업부1팀의 한은수 사원이 이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은수 MD사업부1팀의 한은숩니다. (인사한다.)
<시간 경과>
은수 통합브랜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롭고 다양한 디자인 개발과 그에 따른 10대 20대 젊은 고객층 확보에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품질 부분은 백화점 납 품용 제품을 따로 주문하는 방식을 채택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준혁 그렇게 되면 제품 단가는 시장 물건과 현저하게 달라지겠네요.
은수 네. 하지만, 저희 백화점 브랜드가 되는 순간 이 물건들은 시장 물건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요.
준혁 제조공정은 그렇다 치고 백화점 입점 수수료가 붙으면 단가는 또 높아지는 거구요.
은수 (당황하는) 네... 그렇게 되겠죠.
준혁 결과적으로 거리에서 맘 편하게 싸게 살 수 있는 물건을 우리 백화점까지 찾아오면서 비싸게 사야하는 소비자가 생기겠군요.
은수 !
태주 디자인이며 품질면에서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치고, 월드백화점 상품이라는 라벨까지 붙이게 되는데 왜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준혁 힘 있는 브랜드도 자기 디자인 도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있는데 태생부터가 시 장 브랜드는 내가 보기엔 거의 방어불가능이라고 봐요.
태주 디자인 도용 문제는 유명 브랜드들도 다 겪는 겁니다. 시장 가면 똑같이 생긴 가짜 유 명 브랜드 가방이며 옷을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왜 또 백화점까지 와서 사겠습니까.
준혁 그런 경우 디자이너가 다르고 제조 공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진짜와 가 짜를 확실하게 구별하죠. 하지만, 시장 물건은 달라요. 작은 바느질 차이 외에는 전 혀 구별이 안갈 겁니다.
태주 신상무님, 이 기획 자체를 부정하시는 거 같은데 이것은 몇 달 전에 이미 협의를 통해 통과된 기획안입니다.
준혁 설사 시행 직전에 있는 계획이라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 즉시 휴지조각이 되는 겁니 다.
은수/태주 !
준혁 물론, 이 기획에 장점은 있어요. 하지만 위험성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백화 점으로서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성공해도 대단한 매출을 기대할 만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은수/태주 !
준혁 지적한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없는 한, 이 기획은 처음부 터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태주,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은수 얼굴을 본다. 준혁을 돌아보는 태주.
준혁, 냉정한 얼굴로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혜린, 이 모든 상황이 무척 흥미롭다는 얼굴이다.
은수, 몹시 맘이 상한 듯 재빨리 서류를 가지고 먼저 회의실을 나간다. 임원들도 빠져나가고, 태주도 잠시 후 나간다.
준혁, 서류를 챙기는데 혜린이가 다가간다.
혜린 나 좀 놀랬어.
준혁 .....
혜린 역시 오빠도 사람이네.
준혁 냉정하게 판단해서 말한 거뿐이야.
혜린 나한테는 좀 솔직해져도 돼.
준혁 !
혜린 두 사람 같이 일하는 거 보기 싫은 거잖아.
준혁 (본다.)
혜린 오빠 방식에 찬성이야. 계속 이렇게 나가줘. 감정을 좀 드러내고 살라고. 태주씨 표현 대로 하자면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거든.
준혁 .....
도로 / 준혁의 차 안 (밤)
은수와 준혁
준혁 화 났어요?
은수 아뇨.
준혁 화 났으면 났다고 해요.
은수 화 낼 일 아니잖아요. 부족한 거 있었어요. 인정해요.
준혁 .....
은수 그래두... 솔직히 섭섭은 했어요. 미리 얘기라도 해주지.
준혁 미리 생각한 거 아니예요. 보고 받으면서 판단한 거지.
은수 (기분 나쁜) 네.
준혁 은수씨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내 위치가...
은수 알아요. 사적인 감정 없이 냉철하게 일하는 분이라는 거.
준혁 !
은수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아내가 일하고 있을 땐 한 마디도 없다가 보고 받는 자리에서 처음 듣는 얘기인양 조목조목 반박했겠죠.
준혁 내가 일부러 그랬단 말예요?
은수 나, 상무님 아내예요.
준혁 !
은수 옆에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다 지켜보구서 어떻게 한 순간에 그걸 다 무너뜨 릴 수 있어요?
준혁 은수씨와 나, 개인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일 순 없어요.
은수 네, 또 깜빡했네요. 공과 사 철저한 분이라는 거.
준혁 우리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려면 더욱 그렇게 해야 돼요. 미리 경고했잖아요. 내 아내 자리에서 일하는 거 힘들 거라고.
은수 .....
준혁 자꾸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아요.
은수 .....
준혁 집에 내려줄 테니까 먼저 들어가요. 난 어디 좀 들렀다 들어갈께요.
은수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준혁 ?
은수 우리집이요, 친정. 지수 본지 오래 됐잖아요.
준혁 .....
은수 그렇게 할께요.
준혁 .....
백화점 사무실
거의 텅 빈 사무실. 태주,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 받는다.
태주 응. 아니, 먼저 퇴근해. 난 일하는 중이야.....
혜린, 전화기를 든 채 사무실에 들어선다.
혜린 일 한다는 사람이 창가에 서서 뭐하니?
태주, 돌아보고는 전화를 끊는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 태주.
혜린 아까 낮에 일 때문에 그래?
태주 .....
혜린 난 솔직히 기분 좋아.
태주 !
혜린 두 사람 같이 일하는 거 싫었거든. 준혁 오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태주 (화가 치미는) 그렇다고 일을 날리냐?
혜린 은수씨한테도 차라리 나아.
태주 !
혜린 불안한 시선으로 계속 보다 보면 안해도 될 생각까지 하게 돼. 준혁오빠가 그렇게 되 면 은수씨만 더 힘들어지는 거구.
태주 .....
혜린 그러니 이렇게 싹부터 자르는 게 낫지.
태주 .....
혜린 당신도 화만 내지 말고, 냉정하고 현명하게 생각하라구. 준혁오빠 이해해야 돼.
태주 .....
혜린 너무 늦지는 마. 엄마 또 화나시기 전에.
혜린, 간다. 태주, 착잡하다.
지수네 오피스텔
지수와 은수.
지수 (반가운) 오늘 자고 간다구? 진짜?
은수 (웃는) 응. 바쁜 일도 끝났고 해서.
지수 오랜만에 우리 은수랑 자보네?
은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시장 봐다가 언니가 다 해 줄께.
지수 닭다리 삼계탕.
은수 그게 삼계탕이냐?
지수 다른 부위는 싫어. 닭다리만.
은수 알았어.
지수 (가방 싼다.)
은수 어디가?
지수 PC방. 뭐 좀 정리할 게 있거든. 저녁 준비되면 콜해.
은수 다음 달에 내가 컴퓨터 사줄께.
지수 진짜?
은수 응, 보너스 달이거든. 갖고 싶은 거 골라 놔.
지수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은 한은수를 언니로 둔 게 아닐까 싶다. 고마워.
지수, 일어나 나간다. 은수, 흐뭇하게 웃는다.
지수네 오피스텔 근처 수퍼
수퍼에서 캔맥주와 물과 오징어 안주를 사는 태주.
계산하고 나온다.
지수네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 태주.
태주가 지난 간 후 오피스텔을 나오는 은수.
태주의 오피스텔
소파에 앉아 사가지고 온 맥주캔을 꺼내 마시며 TV를 본다.
고급 한식당
준혁과 박대완 이사(60대)가 마주 하고 있다.
준혁 생각해 보셨습니까.
박이사 내가 널 뭘 보고 믿을 수 있겠냐.
준혁 (준비한 서류 봉투를 내민다.) 중국 현지 쇼핑몰 건립에 대한 사업계획섭니다. 지난 2 년간 준비한 겁니다. 살펴보시면 분명 믿음이 가실 겁니다.
박이사 (봉투를 받는다.) 네가 한 거니 오죽 철저하겠냐마는 내 말은 어떻게 차회장에게서...준혁 그러니까 박이사님의 도움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최이사 편에 서는 걸로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님은 제 요구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박이사 .....
준혁 제가 보기엔 박이사님은 잃을 게 하나도 없으신데요. 월드 백화점 지분을 그대로 유 지하면서 거기에 덤으로 중국 쇼핑몰의 주인까지 되시는 겁니다. 지분 20퍼센트면 주 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가 않죠.
박이사 나중에 최이사는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 거냐.
준혁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있지요. 최이사님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박이사 .....
두 사람의 긴장된 시선이 교차한다.
준혁의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오는 준혁.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는다. 마음이 심란하다.
지수네 오피스텔 건물 근처 상가
시장가방을 든 은수, 몸이 으슬으슬 추운지 잔뜩 움츠리고 힘없이 걸어가고 있다.
이때 은수의 핸드폰이 진동한다. 은수, 핸드폰을 본다. 준혁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배터리를 빼버리는 은수.
국밥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국밥집을 들여다본다.
태주의 오피스텔
태주, 깜빡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는데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한참 울리자 잠이 깨서 핸드폰을 집어 든다. 혜린이다.
태주 어. ..... 친구 만나고 있어.....누구라고 하면 네가 알아?.....좀 더 이따가...알았어. (끊 는다.)
태주, 잠시 그대로 있다가 일어나 출출한 듯 싱크대를 열어 뒤적인다. 구겨진 컵라면만 있을 뿐이다.
태주, 현관으로 향한다. 문을 열려다가
<인터컷 - 3부>
태주, 문을 닫으려는데 은수, 필사적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태주 얘가 진짜...! 놔, 안놔!
은수 (태주의 기세에 잡았던 팔을 놓는다.)
태주 내가 네 머슴이냐? 한밤 중에 자는 사람 깨워 일 시키게? 뻔뻔도 좀 정도껏 해라!
문을 쾅 닫는 태주.
태주,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문을 열고 나간다.
국밥집 앞
길을 걸어가는 태주.
국밥집으로 다가간다. 들어서려다가 멈칫하는 태주.
테이블에 은수가 앉아 있다.
국밥집
은수 앞에 내밀어지는 국밥. 그와 동시에
태주(e) 여긴 웬일이에요?
은수 (놀라 본다.) 배고파서요.
태주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시간 경과>
마주 앉아 국밥을 먹고 있는 두 사람. 은수, 먹는 게 영 시원치 않다.
은수 여긴 왜 온 거예요?
태주 집에 왔다가...
은수 .....
태주 혜린이한텐 비밀인데, 집 내놓은 거 취소했거든요.
은수 왜요?
태주 난 여자들이 왜 친정집 친정집 하는 지 이제 이해되더라. 처갓집으로 들어가니까 나 도 친정집 하나 있었으면 하더라구요.
은수 (쓸쓸하게 웃는다.)
태주 혜린이 이 사실 알면 잔소리 엄청 해댈테니까 비밀 지켜줘요.
은수 네.
태주 왜 그렇게 못 먹어요?
은수 갑자기 배가 고팠었는데... 냄새 맡으니까 식욕이 사라졌어요.
태주 속 많이 상했죠?
은수 !... 네.
태주 직장 생활 하다보면 다반사로 겪는 일이에요.
은수 알아요.
태주 그래도 서운하죠?
은수 (끄덕인다.) 상무님이 화 났냐고 해서 안 났다고 했는데... 사실, 엄청 화나요.
태주 (웃는다.)
은수 뭐.. 상무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하잖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그거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태주 아직도 남편을 상무님이라고 불러요?
은수 !... 고쳐야 되는데 버릇이 되서 잘 안고쳐져요.
태주 나 부르는 건 금방 고치던데.
은수 !
태주 나도 은수씨 부르는 거 고쳤잖아요. 맘 단단히 먹으면 얼마든지 고쳐져요.
두 사람, 잠시 침묵한다.
태주 형님은 아마... 은수씨랑 나랑 일하는 게 싫었을 거예요. 남편 이해해줘요. 나라도 그 랬을테니까.
은수 .....
태주 같이 있는 거 신경 쓰이는 거 당연하죠.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은수 .....
태주 (시선 떨구며) 힘들 거라고 했잖아요, 내가.
은수 !
태주 짐작 안한 거 아니니까, 감당해야죠
은수 .....
태주 (은수를 본다.)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아요.
은수 .....(시선 떨군다. 물컵에 손을 뻗는데 손이 떨린다. 물컵을 잡으려던 걸 포기한다.)
태주 어디 아파요?
은수 저...
태주 ?
은수 못 참겠어요. 이 냄새..
은수, 벌떡 일어나 나간다.
근처 길
은수, 국밥집에서 나와 몇 걸음 걸어가 심호흡한다.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다.
은수를 뒤쫓아 나오는 태주.
태주 괜찮아요?
은수 .....
태주 은수씨.
은수 그만 가세요.
태주 얼굴이 안 좋은데.
은수 들어가서 쉬면 돼요. 가세요. (간다.)
태주 (따라간다.) 데려다 줄께요. (은수의 시장가방을 뺏어 든다.)
은수 괜찮은데.
태주 같이 가요.
태주, 앞장서 걸어간다.
지수네 오피스텔
빈 공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준혁의 오피스텔
준혁, 전화기를 내린다. 아무래도 은수가 맘에 걸린다.
다른 버튼을 누르는 준혁.
준혁 처제? 나예요.
지수네 오피스텔
오피스텔에 들어오는 은수와 태주.
태주, 시장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은수, 몸이 으슬으슬 춥고 속이 안 좋은 듯 힘겨워 보인다.
태주 많이 아픈가 본데.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은수, 갑자기 속에 메스꺼운 듯 벌떡 일어나 싱크대 쪽으로 가서 헛구역질을 몇 번 하더니 물을 틀어 입을 닦는다.
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건물로 들어서는 준혁.
지수네 오피스텔
자리를 펴고 있는 태주. 은수를 눕힌다.
태주 정말 병원에 안 가봐도 괜찮겠어요?
은수 이 시간에 무슨 병원을 가요. 아까 순대국 먹은 게 조금 잘못됐나 봐요.
태주 (은수 이마를 만진다.) 열도 있는 거 같은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다. 태주, 아차 싶은 듯 손을 뗀다.
이때 벨이 울린다. 깜짝 놀라는 두 사람.
은수 지수 왔나보다.
태주,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연다. 깜짝 놀라는 태주, 준혁이 서 있는 것.
준혁도 태주를 보고 놀란다.
준혁 네가 여기 왜 있어?
태주 저...
준혁, 들어선다. 은수, 누가 왔나 몸을 일으키다가 준혁을 보고 깜짝 놀란다.
준혁, 다시 태주를 돌아본다.
태주 우연히 근처에 왔다가...
준혁 (외면하고 은수에게) 일어나요.
은수 .....
준혁 일어나.
준혁, 은수의 팔을 끌어 일으킨다.
태주 (순간 화가 나는) 사람 아픈 거 안보입니까?
준혁 (태주 노려보며) 넌 닥치고 있어!
준혁, 은수를 끌고 나간다. 태주, 몹시 당황스럽다.
도로 / 준혁의 차 안
은수와 준혁.
준혁 핸드폰은 왜 꺼놨어요?
은수 .....
준혁 내 얼굴도 보기 싫었어요?
은수 .....
준혁 말대꾸도 하기 싫은 건가?
은수 기분이 안 좋아서... 혼자 있고 싶었어요.
준혁 혼자 있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랑 있기가 싫었겠지.
은수 .....
준혁 그렇다고 강태주를 만나요?
은수 !.....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준혁 한 집 안에 있는 걸 우연히 마주친다고 하진 않아.
은수 !
은수, 놀란 얼굴로 준혁을 바라본다. 준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준혁의 오피스텔
어두운 실내. 은수,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불안한 얼굴이다.
태주의 오피스텔 (밤)
맥주를 마시며 방 안을 서성이는 태주.
초조한 모습이다. 맥주를 들이키는데 비어 있다.
탁자에 놓인 새 맥주를 뜯으려다가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 있다. 맥주를 놓는다.
자켓을 들고,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나가며 불을 끈다.
어둠 속에 잠기는 실내. 태주, 나간다.
준혁의 오피스텔 (다른 날, 아침)
은수, 소파에 잠들어 있다.
몹시 몸이 안 좋은 듯 얼굴에 식은땀이 배어 있다.
은수를 흔드는 준혁.
준혁 은수씨...은수씨...
은수, 겨우 눈을 뜬다.
준혁 왜 이래요.
은수의 이마에 손을 대보는 준혁.
도로 / 준혁의 차 안
준혁과 은수.
준혁 같이 병원에 안가도 정말 괜찮겠어요?
은수 감기 몸살 가지고 병원까지 가는 것도 그래요.
준혁 어제는... 미안했어요.
은수 .....
준혁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났어요.
은수 .....
준혁 앞 뒤 사정 들어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 거 미안해요.
은수 .....
준혁 용서 안 해 줄 거예요?
은수 이해해요, 상무님 화난 거. 내가 미안하죠. 그런 상황 만들어서.
준혁, 은수를 본다. 은수, 쓸쓸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있다.
종합병원 내과 진료실
의사 앞에 앉아 있는 은수.
의사 좀 더 검진을 받아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은수 그냥 몸살 아닌가요?
의사 임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수 ! 네?
의사 산부인과로 가셔서 정확한 검진 받아 보세요. 그 전엔 약을 처방해 드릴 수가 없습니 다.
은수 !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기쁜지도 모르겠는 멍한 기분이다.
잠시 후, 핸드폰이 진동한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핸드폰을 집어 드는 은수.
강태주라는 이름이 떠 있다.
백화점 사무실 복도 일각
초조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태주.
상대방이 전화를 안받는지 한참을 서성인다. 결국 포기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태주 은수씨.....(안도하는) 왜 그렇게 전화를 안받아요? .....결근했다고 해서.., 걱정돼서 전 화했어요.
준혁의 오피스텔
전화를 받고 있는 은수.
은수 (담담한) 지금 약 먹고 쉬고 있어요. 오늘 하루면 나을 거 같아요.
백화점 사무실 복도 일각
통화 중인 태주.
태주 어제 그렇게 돼서 맘에 걸렸어요. 괜히 나 땜에 곤란하게 된 거 아닌가 해서.
은수(f) 아뇨. 괜찮아요.
태주 정말요?
준혁의 오피스텔
통화 중인 은수.
은수 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걱정 마세요..... 끊을께요.
은수, 전화를 끊는다.
백화점 사무실 복도 일각
쓸쓸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는 태주.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업무를 보고 있는 준혁. 준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준혁 어...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 (놀라는) ...뭐라구요?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통화 중이다.
은수 임신이요.., (희미하게 웃는다.) 나 임신했대요.....여보세요?... 상무님.
준혁의 사무실
준혁, 몹시 당황한 얼굴이다.
준혁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네.....믿어지지가 않아요. 우리 애가 생기는 거예요?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네... 맞아요.
준혁의 사무실
준혁 (웃는다.) 오늘 일찍 들어갈께요. 이거...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몸은 괜찮아요?
은수(f) 네.
준혁 나 뭐해야 되는 거죠?
은수(f) 그냥 오세요.
준혁 알았어요. 그래요. 이따 봐요.
이때 노크소리가 난다. 전화 끊는데 태주가 들어선다.
<시간 경과>
태주와 준혁, 테이블에서 업무 협의를 하고 있다.
지도가 그려진 서류를 보며 이야기하는 두 사람.
태주 주변 상권과 개발 계획 등을 고려해서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곳이 A,D,F 이렇게 세 군덴데 땅값 시세부터 교통환경까지 거의 동일한...
준혁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 A지역으로 하지. 앞으로 상권을 얼마나 확대시킬 수 있는가, 가능성을 보면 여기밖에 없는 거 같은데? (태주를 본다.) 왜, 동의하지 않나?
태주 방금 그 얘기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준혁 내가 말을 채간 거네.
태주 그렇죠.
준혁 어쨌든 잘 됐어. 우리 둘이 의견이 일치하니.
태주 그럼 그 쪽으로 추진하죠.
준혁 서두르진 마.
태주 ?
준혁 다른 것도 준비할 거 많잖아.
태주 토지매입부터 시급한 거 아닙니까.
준혁 아직 가변요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좀 더 두고 보잔 얘기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 고 천천히 해도 돼.
태주 .....
준혁 내가 명령 내리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쁜가?
태주 저보단 경험이 많으실테니 제가 따라야죠. 기분 안 나쁩니다.
준혁, 서류 챙겨서 일어나려는데
태주 어제 일 말인데요.
준혁 (본다.)
태주 제가 전에 그 쪽에 살았다는 건 아시죠? 어제는 집문제로 근처에 갔다가...
준혁 우연히 만난 거라며.
태주 ! 네.
준혁 장황하게 설명하면 변명 되는 거 알지?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간다.)
태주 혹시나 오해할까봐서 하는 말입니다.
준혁 오해 안 해. 됐어. (자리에 앉으며) 나가 봐.
태주, 할 수 없이 서류 챙긴다. 준혁,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태주, 나가려는데
준혁 이번 주말에 시간 있나?
태주 ?
준혁 혜린이랑 같이 시간 좀 내지.
태주 무슨 일인데요?
준혁 결혼하고 집들이도 한번 안했잖아. 집에서 같이 식사나 하자구.
태주 ! 혜린이한테 말해보죠.
태주, 나간다. 준혁, 생각에 잠긴다.
준혁의 오피스텔 (밤)
은수, 현관문을 열면 준혁이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웃으며 은수에게 꽃다발을 내미는 준혁. 은수도 웃으면서 꽃다발을 받는다.
들어서는 두 사람.
준혁 몸은 괜찮아요?
은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아요. 한동안 이렇게 갈팡질팡 할 거래요.
소파에 앉는 두 사람.
준혁 어머니한텐 말씀 드렸어요?
은수 아직 초반이라 말씀드리기 좀 그래요. 의사 선생님도 초기니까 많이 조심해야한다고 그러구. 주변 사람들한텐 좀 안정된 다음에 얘기해요.
준혁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한텐 말씀드려야죠. 좋아하실텐데.
은수 사실...조금 쑥스러운데.
준혁 (웃는다.).....기분이 어땠어요? 처음에 그 얘기 들었을 때.
은수 깜짝 놀랬어요. 생각도 못했던 거라.
준혁 난...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사는 게 너무 당연한 거라 그냥 막연히 그렇겠지, 그랬거 든요? 근데 이건 직접 닥쳐보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해.
은수 .....
준혁 두려웠어요. 아주 생소하고. 딴 세계에 첨버덩 발 하나 내딛는 것처럼.
은수 (끄덕인다.) 나두요... 갑자기 딴 세계에 쿵 하고 내버려진 것처럼.
준혁 우리 애가 자기 부모 제대로 겁쟁이로 만들었네. 아주 무서운 놈인가 보다.
은수 (웃는다.)
준혁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루 종일 생각했어요.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사랑한다고 해야 하나...
은수 .....
준혁 아무리 생각해도 한 마디 밖에 없더라구요.
은수 ?
준혁 고마워요... 내 가족 해줘서.
은수 (웃는다.)
준혁, 부드럽게 은수를 포옹한다.
지수네 오피스텔
전화를 받고 있는 경진. 그 옆에 지수가 있다.
경진 뭐라고? 정말? .....어머머 아이구...정말 잘됐네. 자네도 아주 좋지?
지수 무슨 일인데 그래?
경진 어, 그래 은수야. 몸은 괜찮고? 너 우리집 왔다가 말도 없이 갔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 했었는데... 뭔 일 있나 하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 있을 줄 어떻게 알았니. 정말 기 특하다. 기특해. 그래.., 지금이 제일 조심할 때야. 알고 있지? 그래. (끊는다.)
지수 도대체 무슨 일이냐니까.
경진 너 조카 생기게 됐다.
지수 ! 정말? 은수가 아기 가졌단 말야?
경진 난 둘이 싸운 줄 알고 조마조마 했었는데 이런 소식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사람 사 는 게 다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 건가 보다.
지수 은수 그 조그만 애가 엄마가 된다구? 나는 이모 되는 거구. 기분이 이상하다...
경진 .....
지수 엄마.
경진 ?
지수 뭐니뭐니해도 할머니 되는 기분을 따라갈 순 없을 거 같아.
경진 ! 할머니?
지수 소감이 어때?
경진 !
준혁의 오피스텔 (다른 날, 낮)
들어오는 태주와 혜린을 맞는 준혁과 은수.
혜린 늦은 집들이 구경 왔어요.
은수 오셨어요?
태주 (준혁과 은수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준혁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별로 새로운 건 없으니까.
혜린 (슬쩍 둘러보고) 좀 그렇긴 하다.
동, 주방
태주와 혜린, 준혁과 은수가 식탁에 앉아 있다.
혜린 은수씨 솜씨가 대단하네요. 이걸 다 혼자 만들었어요?
은수 상무님이 도와주셨어요. 저보다 잘해요.
혜린 오빠, 요리도 할 줄 알았어?
준혁 혼자 사는 동안 몇 가지 익힌 거 뿐이야.
혜린 저 지칠 줄 모르는 학습능력, 대단해. (태주에게) 당신도 요리 할 줄 아는 거 있어?
태주 라면은 좀 끓여.
혜린 당신은 실용적인 면으로는 써먹을 데가 전혀 없는 거 같아.
태주 난 누구한테 써먹히고 싶지 않거든. 너는 뭐 할 줄 아는 요리 있냐?
혜린 그렇긴 하네.
태주 다른 건 몰라도 은수씨한테 이 해물탕 끓이는 거 하난 꼭 배워 둬. (은수 보며) 아주 맛있어요.
은수 네... (웃는다.)
준혁 너네들은 집 알아본다면서 어떻게 됐어?
혜린 아직. 맘에 차는 데가 없더라. 위치가 맘에 들면 아파트가 낡았고, 아파트가 새 거면 위치와 주변환경이 싫고.
준혁 자네는 주택이 좋다더니 아파트로 바꾼 거야?
태주 혜린이 의사 따라야죠. (은수를 본다.)
은수 (먹는 게 영 시원치 않다.)
혜린 사람 온기라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
준혁 ?
혜린 전에 여기 왔을 땐 아주 썰렁했거든. 뭔가... 사는 냄새 전혀 없는 느낌 있잖아. 그런 데 은수씨 한 사람 늘었다구 공기가 전혀 달라졌어. 훈훈하니 신혼집 분위기 제대로 난다, 정말.
준혁 응. 은수씨 공이 아주 커.
혜린 그런데 은수씬 왜 잘 안 먹어요? 아까부터 계속 밥이 그대로네?
준혁 요즘 우리 집사람 식욕이 왔다갔다 해.
은수 !
혜린 ? 왜?
준혁 은수씨가 몸이 좀 불편하거든.
태주 !
은수 ! (준혁을 본다.)
혜린 어디 아파요?
준혁 그건 아니고...
은수 (제지하듯) 상무님...
준혁 왜요, 말하면 안돼요?
은수 .....(불안한 시선으로 준혁을 본다.)
준혁 난 막 자랑하고 싶은데. 좋은 일인데 말하면 어때서 그래요?
은수 그래도 아직은...
준혁 괜찮아요. 이럴 때 얘기하지 언제 얘기해요.
은수 .....
태주 (긴장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며 물컵을 입에 가져간다.)
혜린 뭐야, 두 사람.
준혁 우리집 공기가 앞으로는 더 훈훈해질 거 같아..... 은수씨가 내 아이를 가졌거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쨍그랑 소리가 난다. 태주가 물컵을 떨어뜨린 것.
모두의 시선이 태주에게 집중된다. 태주, 몹시 당황한 모습이다.
태주의 당황한 시선이 은수와 마주친다. 태주, 시선을 피하며 당황한 채 무턱대고 유리 조각을 만지다가 순간 손을 깊이 베이고 만다.
태주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자 은수,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행주를 가져다 그의 손을 감싼다. 손을 감싼 채 서로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주와 은수.
- 끝 -
.케세라세라↲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