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14
은수네 오피스텔 로비 (밤)
들어서는 은수. 멈칫한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태주가 서 있는 것.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태주, 은수에게 다가선다.
태주 어떡하면 되겠니. 내가 어떡하면 되겠어!
은수 .....무슨 소리예요?
태주 그 자식이랑 결혼하지 마... 하지 마!
은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태주도 탄다.
은수 내리지 못해요?
태주, 닫힘 버튼을 누른다.
동, 옥상
태주, 은수 손을 잡고 옥상으로 나온다.
은수 진짜 그만 하지 못해요? 왜 이러는 거야, 자꾸!
태주 너 좋냐? 그렇게 재밌어? 그 자식 옆에서 내 얼굴 보는 게 그렇게 즐겁냐구!
은수 !
태주 왜 하필 신준혁이야. 왜 하필 내 눈 앞에 얼쩡거려.
은수 .....
태주 도대체 너랑 나, 서로 왜 이런 짓 하고 있냐구!
은수 .....그렇게 괴로워요? 다행이네요. 괴로운 것도 알아서.
태주 !
은수 그런데 어떡해요. 난 당신이 괴롭든 말든, 당신 입장 생각할 여력이 없는 걸. 내가 왜 그거까지 생각해야 되는데? 내 인생 생각하기도 벅차요, 나.
태주 솔직해져. 너도 괜찮지 않잖아.
은수 괜찮아요.
태주 다른 남자 품에 안겨서 내 얼굴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
은수 볼 수 있어요.
태주 !
은수 언제라도 당신 얼굴 똑바로 볼 수 있어요. .....보고 싶으니까!
태주 !
은수 꼭 보고 싶어. 당신 앞이 보이는 인생,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지 내 눈으로 꼭 볼 거야.
태주 !
은수 얼마나 행복하게, 얼마나 폼 나게 사는지 꼭 확인할 거야.
태주 한은수... 이러다 너만 망가져.
은수 두렵지 않아요.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으니까.
태주 !
은수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요. 당신 계속 이래봤자 소용없어. (돌아서려는데)
태주 (은수의 팔을 잡는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은수 내가 택한 길 가겠다는 거예요. 당신이 뭐라고 하든, 괴로워 죽든 말든.
태주 (피식 웃는다. 이내 얼굴이 굳어져) 그래, 한번 가보자.
은수 .....
태주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 끝에 뭐가 있는지 꼭 가서 확인해 보자구. 됐지?
은수 .....
태주 더 이상 나도 이러지 않을 거야.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거든. 네가 어떻게, 어떤 모습 으로 네가 택한 인생 사는지 나도 똑똑히 두고 보겠어!
태주, 간다. 그런 태주를 바라보다가 맥이 풀린 듯 자리에 앉는 은수.
혜린네 집 주방 (다른 날, 아침)
식사 중인 차회장, 윤여사, 혜린, 태주.
혜린 가족 상견례를 한다구요?
윤여사 집안끼리 서로 인사는 해야할 거 아니니. 어쨌든 자식처럼 키운 입장인데. (차회장을 힐끗 보며) 너희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단다.
혜린 결국 아빠도 준혁오빠 고집 못 당하시는구나.
차회장 내 새끼도 아닌데 제 짝 찾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우습지. 널 비롯해서 자식들 결혼 문제는 이젠 나도 손 들었다.
혜린 잘 생각하셨어요, 아빠.
윤여사 난 준혁이 걔가 여자 하난 자기 뒤를 팍팍 밀어줄 만한 애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정 말 의외야. 걔가 워낙 계산적이고 야망이 있는 애잖니. 그런데 이건 뭐야, 그 여자애 는 완전 평범 이하잖아. 도대체 준혁인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여자랑 결혼한다는 걸까?
혜린 준혁오빠가 계산적이고 야망 있는 사람이라는 엄마 생각이 틀린 거 같진 않아?
윤여사 걔 지 아버지 그렇게 되고 우리집에 들어온 첫날 뭐한지 아니? 다음 날이 시험이라고 밤새 시험공부 했던 애야. 그거 보는데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더라. 난 그 때 걔 알아봤 어, 얘.
혜린 할 일이 없었대. 남의 집에 처음 와서 잠은 안 오지. 도무지 할 일이 없어서 그냥 공 부했다더라. 난 그 말 듣고 눈물이 나던데, 우리 엄만 왜 저렇게 인정머리가 없으시 냐.
윤여사 그거 하나만 갖고 그러는 게 아니야. 걔 성격이...
태주 (일어나며)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혜린 벌써 출근하려구?
태주 아침 회의 때문에 준비할 게 있어. (어른들에게 인사하며) 다녀오겠습니다. (나간다.)
윤여사 강서방은 맨날 뭐가 저렇게 바쁘다니?
혜린 일이 많은가 봐. 계속 야근하는 거 같더라구.
윤여사 생긴 거랑 다르게 일은 성실한 거 같으니 다행이네.
혜린 생긴 것처럼 능력도 있는 거야. 엄만 말 진짜 이상하게 해.
윤여사 내가 뭐랬다고 발끈하니?
차회장 영리하긴 한데 투지는 부족한 놈이야.
혜린 무슨 말씀이세요?
차회장 상대방과 싸워 이겨서 그걸 짓밟고 올라서겠다, 그런 게 없어, 태주 저 놈은.
혜린 번거로운 거 귀찮아하는 성격이거든요. 아예 포기를 하고 말지.
차회장 경영자한테 꼭 필요한 자질이다.
혜린 아빠가 키워주시면 되잖아요.
차회장 근성이 없는 놈은 한계가 있어.
혜린 그래서요?
차회장 네 역할이 중요하단 얘기야.
혜린 열과 성을 다해 그 사람 뒷받침해라, 그거죠? 걱정 마세요. 저 자신 있어요.
차회장 (피식 웃는) 말이라도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식사한다.)
백화점 사무실
업무를 보고 있는 태주. 서류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
MD사업부1팀에서 올린 <새로운 브랜드 전략: 멀티샵 구성>을 관심 있게 이리저리 체크하면서 본다.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누르는 태주.
태주 영업기획팀 강태줍니다. 그 쪽 팀에서 올린 새 브랜드 전략 기안 말입니다. 예.....맞아 요. 담당자 좀 올라오라고 해주세요. 네. (끊는다.)
동, 사무실B
전화를 끊는 팀장. 팀원들을 향해
팀장 기획팀에 새 브랜드 전략 기안 올린 사람이 누구였더라?
은수 전데요.
팀장 (의외라는 듯 웃는) 신입이 제법이네. 거기 강차장한테 가봐요. 그쪽에서 관심 있는 모양이야.
은수 !
동,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은수.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태주의 자리로 다가간다.
무심코 고개 들다가 은수를 본 태주.
태주 ? 무슨 일입니까?
은수 연락 받고 왔는데요. 기안서 때문에.
태주 ! (기안서 서류 잠깐 보며) 이거 한은수씨가 한 거예요? 신입이 올린 줄은 몰랐네. (서 류 챙겨 일어나며) 회의실로 갑시다.
태주, 앞서 회의실로 향한다. 은수, 따라간다.
동, 회의실
마주 앉은 태주와 은수. 태주, 은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사무적인 태도로 말한다.
태주 입사한지 얼마 안됐는데 기안서 내용이 꽤 짜임새 있네요.
은수 인턴 때 제출했던 기획안 내용을 발전시킨 겁니다.
태주 ‘스트리트 룩’에 대해선 알고 있죠?
은수 캐쥬얼 매장에 새로 신설할 공간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태주 거기에 입점할 매장 중에 동대문, 홍대, 압구정동의 거리 브랜드를 한데 모아 월드 백 화점 브랜드로 통일시키려는 계획이 있어요. 한은수씨가 제출한 기안서 내용이랑 비 슷한 데가 있죠.
은수 네.
태주 (기안서 뒤적이며) 여기서 예로 들고 있는 브랜드들은 구체적인 시장조사를 한 건 아 니죠?
은수 네.
태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시켜 봐요.
은수 ?
태주 각 시장 브랜드들의 디자인 특징, 소비자 반응, 매출규모 등을 확실하게 파악해서 대 여섯개 정도의 브랜드들을 선별해 보라구요. (서류 덮으며) 정리 되는대로 수시로 보 고 올리구요.
은수 네... 그럼 제가 선별한 브랜드가 스트리트 룩에 입점되는 건가요?
태주 그건 한은수씨가 해오는 걸 봐야 알죠. 잘해 봐요. 본인 능력에 달려 있으니까.
은수 .....
태주 다른 질문은요?
은수 없는데요.
태주 가봐요, 그럼.
태주, 일어나 나간다. 은수, 태주의 담담한 태도에 씁쓸하다.
서류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은수.
동, 사무실
회의실에서 나오는 은수. 자리로 돌아가 앉는 태주를 바라본다.
은수, 씁쓸한 기분으로 시선을 돌리며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때마침 들어오던 준혁과 마주친다.
준혁 여긴 웬일이에요?
은수 기안 때문에 지시 받을 게 있어서요.
준혁 잘 됐어요. 할 얘기 있었는데. 내 방으로 좀 와요.
준혁, 상무실로 향한다. 은수도 뒤따라간다.
동, 준혁의 사무실
은수와 준혁.
준혁 너무 부담 느낄 건 없어요. 사실 꼭 있어야하는 절차고.
은수 네.
준혁 어쨌든 아버님께서 은수씨를 받아들인다는 거니까 좋게 생각해요.
은수 가족과 같은 분들인데 서로 인사하는 자리 당연히 있어야죠. 부담 느끼지 않아요. 그 런데...
준혁 ?
은수 아니예요.
준혁 가족들 때문에 그래요?
은수 .....
준혁 불편은 하겠지만... 한번은 넘고 가야죠. 어머니한테 잘 말씀 드려요.
은수 네...
은수네 오피스텔 (다른 날, 낮)
경진, 옷장에서 옷을 꺼내 이리저리 맞춰보고 있다.
어떻게 해도 맘에 차지 않는 기색이다.
경진 아유, 입을 게 하나도 없네, 그냥.
지수 그게 다 입을 거 아니면 뭔데?
경진 유행도 지나고, 다 싸구려에, 색깔이며 디자인 봐라. 딸자식 앞세워 사돈 자리 되는 사람들한테 인사하는 자린데... 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나가냐구.
지수 아무도 엄마 옷에 관심 갖는 사람 없거든.
경진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보는 눈은 오죽이나 높겠어? 그 수준을 다 맞추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어느 정도껏, 창피스럽지 않을 정도는 돼야 되지 않겠냐는 거지.
지수 지경진 여사님, 당신이 시집갑니까.
경진 시집가는 사람만 멋 내란 법 있냐!
지수 엄마 정말 그런 자리 좋아서 이러는 거야? 거기 강태주 그 아저씨도 있을 거 아냐!
경진 아, 누가 좋대? .....나도 그것만 생각하면 이 속에 돌덩어리를 단 거 같아.
지수 .....(속상하다.) 한은수 정말...진짜 맘에 안들어.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경진 전화를 받는다.
경진 (교양 있게) 네, 여보세요. .....어머머머, 예.....나야 오늘 미용실 쉬는 날이라서. 그런 데 어쩐 일로? 우리 은수는 출근하고 없는데.....?
백화점 옥상
경진, 들뜬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잠시 후 준혁이 들어서서 둘러본다.
경진,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흔든다.
준혁 오셨습니까.
경진 아, 예.
준혁 제가 진작 신경써드렸어야 했는데요...
경진 아유, 아유 아니예요. 내가 전화 받고 얼마나 놀랐다구. 어떻게 말도 안했는데 그런 생각까지 다 하고... 남자가 말이야...참 속도 깊으시지.
준혁 동생은 안왔나요?
경진 우리 지수는 막 돌아다니고 그럴 정돈 아니라서요.
준혁 생각을 못했네요. 제가 같이 모시진 못할 거 같은데... 은수씨도 지금 근무 중이라 나 오게 할 순 없구요.
경진 아, 됐어요. 나 원래 쇼핑 혼자 하는 거 좋아해요. 옆에 누가 있으면 신경 쓰여서 집중 을 못하거든.
준혁 매장에 미리 얘기해놨으니까 제 이름 말하면 될 겁니다.
경진 아이구, 고마워요. 내가 별 경험을 다 해보네.
백화점 내, 식당
식사하는 태주와 혜린
태주 청첩장을 벌써 만든다구?
혜린 준혁오빠네 한 거 보니까 괜찮더라구. 그래서 그 집에 우리 꺼 디자인 견본을 부탁했 거든. 잠 깐만 (가방을 뒤지다가)..., 아, 매장에 두고 왔다.
태주 .....
혜린 잠깐 들러서 한 번 봐. 난 맘에 들었어.
태주 네 맘에 들면 됐어.
혜린 같이 보자니까.
태주 (피식 웃는다.)
혜린 왜?
태주 넌 정말 부지런한 거 같아. 체력 하난 끝내줘.
혜린 응, 학교 다닐 때 운동도 잘했어. 학교 대표 핸드볼 선수였거든.
태주 어쩐지.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더라... 엄청 아프더라구.
혜린 (곱게 흘기는) 누가 맞을 짓 하래?
태주 (웃는다.)
백화점 매장 / 샤샤매장
옷을 둘러보는 경진.
한껏 거들먹거리며 신이 나서 쇼핑하고 있다.
다른 매장에서 나오는 경진. 옷들을 둘러보다 샤샤 매장 앞에 선다. 마네킹이 입은 옷을 관심있게 바라보는 경진. 직원, 경진에게 다가간다.
직원 이 디자인 아주 잘 나왔어요. 미스들을 위해서 나온 거긴 하지만 사모님은 워낙 날씬 하셔서 사이즈가 맞을 거 같은데요, 한번 입어보시겠어요?
경진 이쁘긴 한데 좀 너무 튀는 거 아닌가 싶고...
마침 매장을 가로질러 샤샤쪽으로 향하는 태주와 혜린.
혜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아예 샤샤만 전담하는 팀을 구성해서 우리 부서 안에 배치 시킬까봐.
태주 괜히 사람을 입에 오르내릴 일 좀 만들지 마라.
혜린 꼭 그렇게 핀잔이다? 그럼 자기 생각은 어떤데?
태주 내가 알아? 김실장을 데리고 와서 담당자로 넣던가. 그리고 너 매장 자주 나오는 것 도 그만 해.
혜린 다음 주까지는 나 아직 샤샤 오너야. 잔소리 좀 그만 해라.
태주와 혜린, 샤샤매장에 들어서는데 바로 이때 옷을 보던 경진과 마주친다. 깜짝 놀라는 경진과 태주.
경진 아니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태주 쇼핑하러 오셨나 보죠?
경진 어, 난 여기 좀 둘러보다가...(옆의 혜린을 보고 놀라서 말을 멈춘다.)
혜린 (태주에게) 아는 분이야?
태주 어. 한은수씨 어머님.
경진 !
혜린 !...아아.., 안녕하세요?
경진 예...
혜린 전 이 사람 약혼자예요.
경진 예...
혜린 준혁오빠 동생이구요. 앞으로 인사드릴 자리 있을텐데 이렇게 미리 만나뵙게 됐네요.
경진 예.
혜린 옷 보러 오셨나봐요. 제가 봐드릴께요.
경진 아..아니예요. 난 그냥 지나가다... 금방 가려고 했었어요.
경진, 도망치듯이 나간다. 혜린, 태주를 본다.
혜린 한은수씨 어머님이랑 잘 알고 지냈나 봐.
태주 (아무렇지 않게) 응. 옆집 아줌마니까.
혜린, 찜찜한 기색을 숨기고 책상 서랍에서 청첩장을 꺼내와 태주에게 보여준다.
혜린 어때?
태주 좋네.
혜린 또 건성건성.
태주 깨끗하고 우아하고 심플해. 됐지? 간다.
나가는 태주. 혜린, 기분이 좋지 않다.
동, 매장
매장 한 켠에서 두리번거리는 경진. 태주가 나오는 것을 보자 재빨리 태주를 쫓아간다.
태주가 후미진 쪽으로 가자 태주를 잡는 경진.
경진 저기...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동, 백화점 내 커피숍
경진과 태주.
경진, 속이 타는 듯 쥬스를 벌컥벌컥 마신다. 태주,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다.
경진 일단은... 그 때 계약금 문제 말인데... 은수한테 얘기 들었네.
태주 네.
경진 미안하게 됐어. 그런데 은수가 다 갚는다니까...
태주 그건 이미 한은수씨랑 얘기가 다 끝났습니다.
경진 그렇지 그렇지. 그건 그렇고, 내가 말야, 눈 딱 감고 지나가려고 해도 순간순간 가슴 이 벌렁벌렁해서 미치겠어.
태주 .....
경진 우리 은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데 사람 사는 게 그게 아니잖아. 좀 전에 그 아가씨 얼굴 봤을 때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게...
태주 무슨 말씀 하시려는 겁니까?
경진 어?
태주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냐구요.
경진 그러니까... 세상에 비밀은 없는데 우리 은수, 그 철딱서니 없는 게 시집이라고 덜컥 가서... 그것도 자네 있는 곳에 말이야... 그게 여자가 과거 있는 것도 그런데...
태주 다 지난 일입니다.
경진 !
태주 한은수씨도 저도 다 정리한 일이라구요.
경진 그게 정리한다고 정리가 되는 일인가?
태주 한은수씨가 괜찮다지 않습니까.
경진 !
태주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제 약혼자나 한은수씨가 결혼할 사람이나 모두 넘어간 문젭니다.
경진 아...아니... 다 알고 있단 말이야? 그 상무님이란 사람도?
태주 .....이만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경진 아니 이 사람아...
태주 너무 신경쓰시지 마세요. 어머님. 저희들끼리는 다 정리됐으니까요.
태주, 일어나 경진에게 목례하고 간다.
경진 저 인간은 뭘 잘했다고 찬바람 쌩쌩... 이게 어쩐 일이야? (골치 아픈 듯 머리 흔드는) 요즘 애들.., 왜 저렇게 무서워?
레스토랑 만찬룸 (밤)
차회장, 윤여사, 혜린과 태주, 은수, 준혁, 경진과 지수가 앉아 있다.
모두들 어색하고 긴장한 분위기다. 지수, 힐끗 태주를 쳐다본다. 태주는 따분한 얼굴이다.
윤여사 어머님이 참 젊으시네요.
경진 예? 아...제가 좀 동안이긴 하죠. 우리 은수랑 다니면 다들 언니 아니면 이몬지 알아 요. 같이 일하는 미용실 사람도 시집갈 딸 있다고 하니까 도저히 못 믿겠다고 호적등 본을 떼오라네요. 호호호. 사실 아가씨 소리도 가끔 듣거든요. 호호호.(분위기를 감지 하고 말을 멈춘다.)
윤여사 참 좋으시겠다. 아가씨 소리도 들으시고.
경진 (화제 바꾸고 싶은) 아유 어떻게 아드님을 저렇게 훌륭하게 키우셨어요? 우리 은수에 비하면 너무 넘치는 상대라 가끔 이게 꿈인가 싶다니까요.
차회장 따님도 참하게 잘 키우셨는데요. 인상도 선하고 얌전하니 우리 준혁이 안사람 노릇 톡톡히 잘 할 거 같습니다.
경진 우리 은수가 정말 착하죠. 애가 정도 깊고 생활력도 또 얼마나 강하구요. 딴 건 몰라 도 살림하난 진짜 잘 할 거예요.
윤여사 동생은 아직 학생인가 봐요?
지수 아닌데요.
차회장 벌써 졸업을 했나?
은수 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그만 뒀습니다. 지금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윤여사 아니 대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를 왜 그만둬?
지수 왕따였거든요.
윤여사 왕따? 왜?
지수 세상에 왕따의 이유는 하나죠. 남과 다르다는 거.
태주 (피식 웃는다.)
윤여사 아니 뭐가 그렇게 다른데?
태주 키 크고 얼굴 예쁘고... 또 뭐라 그랬지?
지수 !
태주 날씬하다고 했던가? 지수 쟤가 아주 드러내놓고 공주병이에요. 원래.
차회장과 윤여사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돈다.
윤여사 자네가 저 학생을 어떻게 아나?
은수 강차장님이 전에 저희 옆집 살았거든요.
윤여사 그럼 다 아는 사이란 말이야?
태주 한은수씨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날부터 계속 알고 지냈어요.
윤여사 참 세상 좁네.
태주 아직도 거기 엘리베이터는 자주 멈추나요?
은수 !
지수 전에 한번 수리하는 거 같았는데 아직도 가끔은 그래요. 예전보단 덜하지만.
태주 (지수를 본다.) 그거 위험한데, 자꾸 그러면.
지수 (도전적인 눈빛이다.) 이제 적응이 돼서 괜찮거든요.
경진 그러니까... 어제의 이웃사촌이 오늘의 사돈이 된 거죠. 참... 사람 인연이 정말 희한하 죠?
혜린과 준혁, 불쾌하다. 은수, 준혁의 눈치를 본다. 혜린, 화제를 바꾸려는 듯
혜린 오빠네 살림은 오빠 살던 집에서 그대로 한대요.
윤여사 응, 그래. 얘기 들었어.
혜린 은수씨랑 오빠는 서로 의견일치도 잘 되나봐. 난 태주씨랑 신혼집 문제로 계속 대립 중이거든요. 이 사람, 보기랑 다르게 꼭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잖아요. 변두리에 있는 주택가로 가재. 관리하기 귀찮고 출근하기도 힘들어서 싫은데.
태주 관리는 내가 한다니까. 너 안 시킬테니까 걱정 마.
차회장 애들 키우고 그럴려면 마당 있는 집이 낫긴 하지.
혜린 오빠는 2세 계획이 어떻게 돼?
준혁 글쎄. 아직 그런 얘기는 안해봤는데?
혜린 우리 태주씨는 되도록이면 많이 낳고 싶대. 혼자 자라서 쓸쓸했대나? (태주를 보며) 자기가 낳는 거 아니니까 말은 쉽지.
태주 장담하는데 애 키우는 건 너보다 내가 더 나을 거다. 넌 성질 나면 애한테 그 화풀이 다 할 걸?
혜린 꼭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면박 준다니까. 이러는 거 재밌니?
태주, 피식 웃다가 은수와 시선이 마주친다. 은수, 불편한 듯 시선을 피한다. 그런 은수를 준혁이 본다. 지수, 화난 듯 뾰루퉁한 얼굴이고 경진도 불편한 기색이 완연하다.
도로 / 준혁의 차 안
준혁과 조수석에 은수가 앉아 있고, 뒷좌석에 경진과 지수가 앉아 있다.
모두들 무거운 분위기다. 경진, 눈치 보다가 분위기를 애써 깨며
경진 부모님들 어찌나 인자하시고 분위기도 있으시고 교양도 높으신지... 은수 네가 복도 참 많다. 시집 하난 진짜 기가 막히게 가는 거야.
경진의 말에도 누구 하나 대꾸하는 사람이 없다.
경진 무조건 예, 예, 다소곳하게 어른들 잘 모시고...
지수 엄마 그만 하지. 지금 그런 말 먹힐 분위기는 아닌 거 같은데.
경진 넌 좀 조용히 못해? 집에 가면 아주 죽었어.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버르장머리 없기 가 하늘을 찔러. 그 자리에서 왕따 얘기는 왜 해? 그게 자랑이야?
지수 어른 물어보시는데 솔직하게 대답한 게 잘못이야? 태주 아저씨가 이상한 거지. 지가 나랑 얼마나 안다고 친한 척 하고 난리야. 진짜 밥맛이야.
경진 (지수를 꼬집으며 소리 죽여) 그만하지 못해?
지수 왜에? 내가 못할 말 했어?
준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은수, 준혁의 눈치를 본다.
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 준혁의 차 안
준혁의 차 선다.
경진 그럼 잘 들어가요.
지수 안녕히 가세요.
준혁 네, 들어가십쇼.
경진과 지수, 내린다. 준혁과 은수, 잠시 무거운 침묵으로 있다가
준혁 안 내려요?
은수 기분 많이 상했죠?
준혁 .....
은수 미안해요.
준혁 뭐가요?
은수 .....
준혁 들어가 쉬어요.
은수 가세요.
은수, 차에서 내린다. 은수가 내리자마자 차를 출발시키는 준혁.
은수, 불안한 시선으로 가는 준혁의 차를 바라본다.
은수네 오피스텔
은수,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던 경진, 은수에게 다가와
경진 괜찮니? 그 사람 화 많이 났지?
은수 아니야.
경진 그 사람 강태주랑 너 사이 다 알고 있다며. 그런데 정말로 괜찮을 수가 있어?
은수 누가 그런 말을 해요?
경진 누구긴 누구야, 강태주 그 사람이...
은수 ?
경진 백화점 쇼핑 갔다가 만났거든. 그냥 잠깐 얘기 좀 했어.
은수 엄마. 지수야.
지수/경진 ?
은수 나 걱정하는 건 충분히 알겠는데 너무 이러지들 말았으면 좋겠어. 세상에 연애 한번 안 해보고 결혼하는 사람 있어요? 그 정도는 상무님이나 나나 서로 다 이해하고 있 어. 그러니까, 자꾸 피곤하게 하지 말아줘.
지수/경진 !
은수, 구석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혜린네 집, 태주의 방
태주, 책꽂이나 서랍 등, 혜린이가 정리한 것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다시 재정리하고 있다.
잠시 후, 혜린이 들어온다.
혜린 뭐 하는 거야?
태주 네가 하도 엉망으로 해놔서 두고 볼 수 없어서 이런다. 하지 말란 건 왜 해서 사람 또 고생시키냐? 그리고 넌, 노크 좀 하고 들어와. 기본 예의도 없냐?
혜린 당신은 얼마나 기본 예의가 있어서?
태주 또 왜 이래?
헤린 당신이야 말로 왜 그런 거야?
태주 ?
혜린 그 자리에서 꼭 그래야 했니? 그렇잖아도 바늘방석에 있는 사람들 앉혀 놓고 꼭 그렇 게...
태주 아는 사람 안다고 한 게 뭐가 잘못인데? 뻔히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 아?
혜린 아예 두 사람 사이 다 까발리지 그랬어? 맘 같아선 아예 그러고 싶었지?
태주 지수 얼굴 뻔히 알고, 어머니도 잘 아는데 어쩌라구. 난 아는 사람 두고 생까는 짓 못 해.
혜린 도대체 무슨 심보니?
태주 ...그만 하고 나가.
혜린 당신, 한은수씨 입장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거야?
태주 !
혜린 한은수씨, 곧 준혁오빠 아내 될 사람이야. 당신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힘들어지는 사 람은 은수씨라고.
태주 (혜린을 본다.)
혜린 준혁오빠도 사람이야. 기분 안나쁘겠어? 신경 안쓰이겠어? 그 스트레스 다 어디로 가 겠니? 은수씨한테 가게 돼있어.
태주 .....
혜린 설마 은수씨 불행하게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태주 .....
혜린 어린애처럼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생각 좀 해. 특히 준혁 오빠 앞에 서 조심 좀 하라구!
혜린, 나간다. 태주, 정리하던 것을 신경질적으로 확 밀어버린다.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낮)
영업기획팀 직원들의 팀 회의, 보고 시간이다.
직원 현재 창고 규모로는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을 모두 소화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외부 에 세를 얻어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 있긴 한데 동선이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구요.
준혁 내부를 재정리해서 공간을 확보하는 건 한계가 있을 거예요. 아예 이번 기회에 창고 증축방안을 검토해 봐요. (서류 보며) 하반기 캐쥬얼 매장 새단장에 관한 건... 스트 리트 룩이라고 했죠, 담당 이 누구죠?
태주 일단 공간 컨셉은 시내 거리를 매장에 들여놓은 듯한 구조와 인테리어로 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서류 주며) 가안으로 나온 설계돕니다.
준혁 이 공간에 들어오는 브랜드는요?
태주 기존의 중저가 캐쥬얼 브랜드들을 한데 모으는 건 기본이구요, 실제 거리 패션 중 몇 가지를 한데 모아 월드 백화점 브랜드로 통합해서 매장을 오픈하는 것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 부분은 MD 사업부1팀에서 비슷한 기안이 나와 있어서 그 기안 작 성자인 한은수씨한테 일단 맡겨 놓은 상탭니다.
준혁 ! (태주를 본다.)
태주 (담담하게 서류를 뒤적이며 은수의 기안을 찾아 준혁에게 내민다.)
준혁 (받은 서류 보며) 추진 상황은요?
태주 지시 내린지 한 이삼일 됐으니까 곧 보고가 있을 겁니다.
준혁 이만 마치죠.
직원들과 태주, 일어나 나간다.
준혁, 서류를 챙겨 책상에 툭 던져 놓는다. 자리에 앉지 않고 창가를 서성이다가 책상 위의 서류를 다시 본다.
MD 사업부1팀에서 올린 기안과 설계도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혜린의 사무실
팀장이 혜린의 결제를 받고 있다. 서류를 넘기던 손 멈추고 팀장을 보는 혜린.
혜린 한은수씨가 제출한 기획안이 지금 진행 중이라구요?
팀장 네. 영업기획팀에서 추진 중인 스트리트 룩 컨셉이랑 딱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서요, 시기적으로 아주 운이 좋았죠.
혜린 기획팀 담당자는 누군데요?
팀장 강태주 차장입니다.
혜린 !.....알았어요. 여기 보고서는 좀 더 검토해 보고 말씀드릴께요.
팀장 예. (나간다.)
혜린, 초조해진다. 벌떡 일어나 나가려다가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전화기를 든다.
혜린 나야. 잠깐 차 한잔 할래?
근처 커피숍
혜린과 준혁.
준혁 갑자기 왜 사람을 불러내? 할 말 있으면 사무실로 오지.
혜린 사무실 아닌 데서 오빠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나한테 시간 내는 게 아깝니?
준혁 .....무슨 일이야?
혜린 태주씨랑 은수씨 같이 일하나 보더라?
준혁 응.
혜린 알고 있었네.
준혁 당연하지.
혜린 괜찮아?
준혁 그거 때문에 달려온 거야?
혜린 일 하는 건데 어떡할 거야. 그래도 솔직히 개운하진 않아.
준혁 그런 마음 갖고 있으면 여기서 같이 일 못해.
혜린 그렇게 자신 있어?
준혁 !
혜린 설마 싱가폴에서 일, 잊은 건 아니지?
준혁 .....무슨 말 하려는 거야?
혜린 난 절대 잊지 않아.
준혁 너 참 피곤하게 산다.
혜린 응. 피곤한 길 택했으니 피곤하게 살아야지.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 아니야?
준혁 .....
혜린 아닌 척 하지 마. 그런다고 오빠 자존심 서는 거 아니니까.
준혁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혜린 난 한은수한테 잘 할 거야. 그 여자가 미안한 마음 가질 만큼. 물론 태주씨한테도 잘 할 거고.
준혁 .....
혜린 오빠도 한은수 단속 잘하라구. 오빠 여자라고 맘 놓고 있지 말란 얘기야.
준혁 !
혜린 잘난 오빠가 어련히 잘 하겠냐마는 노파심에서 하는 소리야. 우리, 두 번 배신당할 순 없잖니.
준혁 !
혜린 나, 그건 절대 용납 못해.
준혁 !
동, 사무실 회의실
태주, 은수에게 설계도를 내민다.
태주 일단 가설계도지만 대충 이 구조 내에서 크게 변동될 건 없을 거예요.
은수 .....
태주 기존의 브랜드 입점 위치들을 대략적으로 표시해놨으니까 전체 분위기 파악하는데 도움 될 거예요. 거기에 가장 어울릴만한 아이템으로 구성해 봐요.
은수 네... (망설이는)
태주 왜요?
은수 저...
태주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은수 네.
태주 (잠시 생각하더니) 오늘 매장 쉬는 날이니까 이따 업무 끝나고 잠깐 매장으로 나와요.
은수 ! (태주를 본다.)
태주 보면서 설명 들으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은수 .....
태주 (시계 본다.) 7시 쯤 어때요?
은수 네.
태주 그 때 봐요, 그럼.
태주, 먼저 나간다. 은수도 서류를 챙겨 일어난다.
백화점 매장 (밤)
영업하지 않는 어두운 매장.
잠시 후, 매장의 한 부분에 조명등이 차례로 켜진다. 그곳에 은수가 서 있다.
스위치를 켜고 은수에게 다가오는 태주. 은수, 태주를 돌아본다.
태주 이쪽 부분 전체를 구조변경할 거예요. 저쪽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와서 매장을 쭉 둘러 본 다음에 이 코너에 오면 백화점 매장 안에 길거리 샾이 펼쳐지는 거죠. (은수에게 설계도를 보여주며) 이쪽에 이렇게 길을 두 갈래로 내고 쇼핑동선은 이쪽부터 해서 코너로 이렇게 도는 거. 기존의 캐쥬얼샾들은 여기서부터 배치되는 거예요. 바스켓, 지누, 피그... (은수에게 설계도 내민다.) 직접 돌아보면서 확인해 봐요.
은수, 태주에게서 설계도를 받아들고 걸음을 옮긴다.
설계도를 보고 샾 위치를 확인해 보는 은수.
태주, 무료한 듯 주변을 서성인다. 은수를 돌아보고 싶지만 애써 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은수를 돌아본다. 은수, 한껏 상상해 가면서 설계도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은수의 모습을 안 보려 하지만 어느 덧 태주, 은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잠시 후, 은수가 갑자기 태주를 돌아보는 바람에 태주의 젖은 시선과 마주치고 만다.
태주, 재빨리 시선을 피한다.
은수, 태주에게 다가온다.
은수 이제 좀 알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강차장님.
태주 .....
은수 이만 가볼께요.
태주 시장조사는 어느 정도나 진행됐죠?
은수 후보 브랜드들을 뽑아놓은 상태예요. 곧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이때, 은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은수.
은수 상무님.
태주 (본다.)
은수 네, 다 끝났어요. 금방 내려갈 거예요. 네. (끊는다. 태주에게) 가보겠습니다.
은수, 태주에게 목례하고 비상구 쪽으로 향한다.
스위치 있는 쪽으로 가는 태주. 비상구 쪽으로 사라지는 은수의 모습을 본다.
스위치를 내린다.
사방이 어둠이 잠긴 매장에 태주, 오래도록 서 있다.
준혁의 오피스텔
준혁과 은수, 오피스텔을 둘러보고 있다.
준혁 수납공간은 충분하니까 새로 장을 들인다거나 할 건 없어요. 독립한지 얼마 안돼서 가전제품들도 다 새 거고... 침대 시트 정도만 바꾸면 되겠죠? 어때요?
은수 그야말로 난 몸만 오는 거네요.
준혁 그게 제일 중요한 거죠.
은수, 소파에 앉는다. 준혁, 술을 가지고 은수에게 다가와 앉는다.
은수 상무님한테 몽땅 받기만 하는 거 같아서 좀 부담스러워요.
준혁 같이 살면서 나한테 몽땅 주면 되잖아요. 나, 계산 속 밝은 사람이에요. 주는만큼 받 아낼 거예요, 꼭.
은수 (웃는다.)
준혁 은수씨.
은수 네?
준혁 계속 생각했던 건데 나도 결단이 안서서 망설인 게 있어요.
은수 ?
준혁 회사 그만 두는 거 어때요?
은수 ! 네?
준혁 회사 사람들, 지금은 아직 잘들 몰라서 괜찮지만 곧 결혼 발표 하고 나면 사내 분위기 가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은수 .....
준혁 내 아내 자리, 같은 동료 직원한테 보통 불편한 거 아니거든요.
은수 상무님 말씀은 이해는 가는데... 아시잖아요. 저 직장 다녀야 하는 거. 저희 엄마나 지 수...
준혁 그건 내가 책임질께요.
은수 아니요. 싫어요.
준혁 .....
은수 저, 일 하고 싶고 제 힘으로 돈도 벌고 싶어요. 다른 사람 불편하게 안할께요. 전 어차 피 신입인데...누가 절...
준혁 내 아내 되는 사람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게 쉽겠어요?
은수 차혜린씨도 있고 강태주씨도 있잖아요.
준혁 !
은수 그 사람들도 멀쩡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는 왜 안된다는 거예요?
준혁 .....
은수 경력 쌓을 때까지만 있을께요. 그 다음에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잖아요.
준혁 .....
은수 상무님한테 제 가족 짐 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히 마음 불편할 거예요. 우리 지 수랑 엄마... 맘 편하게 돌보고 싶어요, 저.
준혁 .....
은수 괜히 제 고집만 부리는 거 같은데.., 경력 쌓고, 제 분야에서 힘을 가질 수 있을 때까 지만요.., 그 때까지만 일할께요. 네?
준혁 (난감하다.)
혜린네 집, 거실
혜린, 소파에 앉아 패션 잡지를 보고 있다.
잠시 후 윤여사가 다가와 앉는다.
윤여사 강서방은 아직도 안 들어왔니?
혜린 응.
윤여사 전화나 하고 늦는 거야?
혜린 요즘 일이 바쁘다니까.
윤여사 도대체 이 집안에 같이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이건 뭐 코빼기를 볼 수가 있어야지. 어른들 식사하고 있는데 먼저 횅하니 일어서서 나가질 않나, 아무리 부모 없이 제 맘 대로 살았다고 해도 어른들 모시는 집에서 그게 할 짓이야?
혜린 .....
윤여사 이제 한 집안 식구가 됐으면 적어도 기본 경우는 지켜야할 거 아니야, 강서방 이 집에 들어온 뒤로 언제 저녁 식사 시간 한번 지킨 적 있었니? 네가 푼수처럼 좋다고 난리 치니까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난 가끔 자존심까지 상할려 그래. 꼭 우리 무시하는 거 같아서.
혜린 엄마, 그 사람도 힘들어. 이러지 마.
윤여사 힘들긴 뭐가 힘들어? 먹여줘, 재워줘, 다 지맘대로 하고 사는데.
태주, 현관에서 들어온다. 거실쪽으로 오다가 혜린과 윤여사의 말을 듣는 태주.
혜린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니까. 엄마 말마따나 아무 구속없이 혼자 맘대로 살다가 우리집에 들어온 사람이야. 그런 사람 마음이 편하겠어? 제 맘대로 하긴 뭘 제맘대로 해.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잘 맞추려고 애쓰고 있단 말이야. 아빠가 우리 집에 들어오라고 할 때 군소리 하나 없었던 거 보면 몰라?
윤여사 넌 왜 강서방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서슬이 퍼래지니?
혜린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이잖아. 적응하려면 시간 필요한 거 당연하지. 엄마 가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윤여사 내가 못할 소리 했어? 그 정도도 말을...
윤여사, 이미 들어서 있는 태주를 보고 말을 멈춘다. 돌아보는 혜린.
혜린 왔어?
태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윤여사, 못마땅한 듯 태주를 보더니 그냥 안방으로 들어간다.
혜린 저녁은 먹었어?
태주 어.
태주, 2층으로 향한다. 혜린, 태주를 쫓아간다.
동, 태주의 방
태주에 뒤이어 혜린이 들어온다.
혜린 엄마 말, 신경 쓰지 마. 가끔 저렇게 잔소리 하실 때가 있으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태주 .....
혜린 저녁 안 먹었으면 아줌마한테...
태주 먹었다니까.
혜린 .....
태주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아.
혜린 ?
태주 어머니가 내 욕 하면 그냥 듣고 있어. 아니면 같이 맞장구를 치던가.
혜린 .....
태주 너 그렇게 박박 대들면 나만 더 미움 받는 거 몰라?
혜린 (웃는다.) 미움 받는 건 싫은가 보지?
태주 하루아침에 딸 뺏겨버린 어머니 심정 좀 헤아리라는 얘기야. (겉옷을 벗는다.)
혜린 그렇게 엄마 마음 잘 헤아리는 사람이 욕 좀 안 먹게 해줄 수 없어?
태주 ! (본다.)
혜린 .....은수씨한테 일 맡겼다며?
태주 응... 너네 부서에서 올라온 기안이 눈에 들어서 봤는데 그게 은수씨 꺼더라구.
혜린 나한테 미리 얘기해 주지 그랬어.
태주 (본다.)
혜린 일적인 거 서로 일일이 보고할 의무는 없다는 거 아는데, 사실 다른 사람 통해 알게 되니까 기분은 안 좋더라.
태주 .....
혜린 씻고 자, 그럼. (돌아서는데)
태주 이번 주말에 시간 낼 수 있어?
혜린 ?
태주, 가방에서 모델하우스 카달로그들을 꺼내서 혜린에게 내민다.
태주 입주 가능한 곳들 중에 모델하우스 나와 있는 데 알아봤어. 같이 구경해 보자.
혜린 뭐야? 갑자기?
태주 아파트가 좋다며?
혜린 !
태주 아무래도 집 문제는 여자 의견을 따르는 게 낫다 싶어서.
혜린 (기분 좋은) 언제 이런 걸 다 알아봤어?
태주 결혼하려면 살 집부터 빨리 정해놔야지. 내가 원래 한 완벽하잖냐.
혜린 (웃는다.) 훌륭하세요.
태주 (웃으며) 앞으로 어머니한테 욕 안 먹도록 조심할께.
혜린 당신 오늘 너무 맘에 든다. (태주의 뺨에 입을 맞추며) 잘 자.
혜린, 나간다. 태주, 옷을 갈아입는다.
동, 혜린네 집 거실 (다른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2층에서 내려오는 혜린과 태주.
주방 쪽에서 나온 윤여사가 그들을 본다.
윤여사 출근 하니?
혜린 네.
태주 다녀오겠습니다.
윤여사 강서방은 서재로 가 봐.
태주 ?
윤여사 아버지가 좀 보자시네.
혜린 아침부터 왜?
윤여사 아침 아니면 언제 볼 시간이나 있니? (주방으로 들어간다.)
혜린 먼저 갈께.
태주 응.
혜린, 현관으로 향하고 태주 서재로 향한다.
동, 서재
차회장과 태주.
차회장 일이 그렇게 많냐?
태주 새로 발령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 하느라 그렇습니다.
차회장 요즘 혹시 최이사 본 적 있냐?
태주 형님 사무실에서 한 번 뵌 적 있습니다.
차회장 (착잡한 듯) 준혁이 그 놈이 참...
태주 .....
차회장 너 오늘 어디 인사 좀 갔다 와야겠다. (옆에 있던 꾸러미를 내민다.)
태주 (의아한 듯 본다.)
차회장 박대완 이사라고 우리 회사 대주준데 오늘이 그 사모님 생신이야.
태주 예.
차회장 오래 전부터 나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계시지만 내가 형님처럼 모시고 있는 분이다. 사위를 들이게 돼서 한번 인사는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 늘이 좋은 기횐 거 같아.
태주 .....
차회장 워낙 차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라 마음에 차실진 모르겠다만, 내 정성이라고 전해 드려라.
태주 예.
도로/ 태주의 차 안
태주, 길을 찾듯 이정표를 본다.
샛길로 접어드는 태주.
고급 주택가 / 태주의 차 안
태주, 천천히 차를 몰며 메모 용지를 힐끗거린다.
집을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운전해 가는데, 갑자기 멈칫하고 놀란다.
한 고급 주택(뱍대완 이사의 집)에서 최이사와 준혁이가 나오고 있는 것.
태주, 차를 멈춘다.
최이사와 준혁, 앞에 주차되어 있던 준혁 차에 올라 출발한다.
태주, 멀어져가는 준혁의 차를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바 (밤)
술을 마시고 있는 태주. 잠시 후, 준혁이 들어선다.
태주 옆에 앉는 준혁.
준혁 네가 웬일이야, 날 다 불러내고.
태주 생각해 보니까 형님이랑 제대로 술 한잔 안 해 본 거 같아서요.
준혁 우리가 왜 같이 술을 마셔야 되지?
태주 남자들끼리 알게 되면 한잔 하는 건 기본이지 않습니까.
준혁 그거야 좋은 사이일 때나 그렇지.
태주 하긴...(씩 웃는) 우리가 좀 나쁜 사이긴 하죠?
준혁 .....
태주 아마 다른 상황에서 만났으면 형님을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깝네요.
준혁 안타까워할 필요 없어. 나는 너, 영락없이 싫으니까.
태주 원래 그렇게 속이 좁습니까? 아니면 나한테만 그런 겁니까.
준혁 너한테만 그런 거야.
태주 나도 형님 안 좋아합니다.
준혁 (픽 웃는) 그래, 다행이다.
태주 형님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
준혁 !
태주 진심입니다.
준혁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지?
태주 아버님과는 왜 그런 겁니까?
준혁 무슨 말이야?
태주 혜린이한테 듣기로는 둘도 없이 사이좋은 부자라던데 내 느낌은 그런 거 같지가 않아 서요.
준혁 아버님이 나 살펴보라고 하던가?
태주 네.
준혁 그래서?
태주 내 성격엔 안 맞지만 그래도 최대한 살펴보는 중입니다.
준혁 성과는?
태주 최이사를 자주 만나더군요. 아버님이랑도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분이라던데.
준혁 나랑은 안 껄끄러워.
태주 업무상 연결된 것도 아닌데 자주 만나는 건 좀 이상하죠. 최이사라는 분, 몇 년 전부 터 회사 주식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던데요?
준혁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태주 난 이상한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요.
준혁 !
태주 그건 정말 내 취향이 아니거든요.
준혁 네 취향은 뭔데?
태주 난 평화주의자예요.
준혁 (기가 막힌 듯 웃는다.)
태주 난...형님을 타고 넘을 생각 따위 없습니다.
준혁 !
태주 혹시나...나를 경계해서 그러는 거라면 그만 두시라구요.
준혁 네 말을 누가 믿겠어? 넌 월드백화점 후계자라는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사랑한다던 여 자 내팽겨치고 여기로 뛰쳐 들어온 놈이야.
태주 다 지난 얘긴 그만 하시죠. 서로 떠올려봤자 좋을 것도 없잖습니까?
준혁 .....
태주 아버님 심부름으로 박대완 이사 댁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형님과 최이사님을 봤습니 다.
준혁 !
태주 아버님껜 말씀드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술을 마신다.)
준혁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긴장이 흐른다.
태주 그리고... 예식장 말인데요.
준혁 ? 이미 정하지 않았나?
태주 선상 결혼식은 어떤가 해서요.
준혁 ? 선상?
태주 한강 유람선이요. 처음부터 그 생각 하긴 했는데 워낙 자리 잡기가 힘들어서 포기했 었거든요. 그런데 친구놈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리가 생겼다고.
준혁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태주 뭐..그냥.....사실 유람선 그거 하나도 재미 없는데, 한강 보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 똑같구요. 그런데 선상 결혼식 하면 낭만적인 느낌은 들겠죠. 특히 여자들한텐.
준혁 !
<인터컷-12부>
은수 예전에 누가 그랬거든요. 유람선 그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한강 보는 거 다 똑같다고.
준혁, 기분이 나빠진다.
태주 은수씨도 좋아할 거예요. 유람선도 한번 타보고 싶을 거고...
준혁 타봤어, 이미.
태주 !
준혁 난 그냥 평범한 게 좋아. 전에 소개해준 그 식장이 좋으니까 거기로 해.
태주 .....
백화점, 대회의실 (다른 날, 낮)
임원들 모여 있다. 준혁과 태주의 모습도 보이고 최이사의 모습도 보인다.
잠시 후 차회장이 들어오자 모두들 일어선다.
차회장이 앉자 모두들 앉는다.
<시간 경과>
어두운 조명, 스크린에 용인지구 지도가 펼쳐져 있고 준혁이 단상에서 발표 중이다.
준혁 월드 백화점 차기 분점으로 선정된 용인지구는 아시다시피 수도권 최고의 상권지역 으로 급부상 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미 기존에 형성된 상권 세력도 막강하지만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 상권지역이 현재 아파트의 지속적인 개발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5년을 내다볼 때 이 지역이 백화점 사업을 하기에는 가장 적 당한 곳으로 결정 내렸습니다.
차회장 지역적 특성에 따른 차별화 전략은 생각하고 있나?
준혁 도시가 아니라 주택지이기 때문에 대규모 할인마트의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 다. 따라서 백화점과 연계한 할인유통 체인도 고려 중에 있습니다. 물론, 이 점은 처 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예산 문제 조율과 좀 더 세밀한 시장조사가 뒷받침 되어 야 할 것입니다.
차회장 좋아. 수고했네. 신상무.
모두들 박수를 치고, 조명이 켜진다. 자리로 돌아가는 준혁.
차회장 분점 문제는 현재 우리 월드 백화점 최고의 중요 사안이라 새로운 관리체계를 적용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준혁 !
차회장 물론 현재 우리 신준혁 상무가 아주 잘하고 있지만, 워낙 볼륨이 큰 사업이라 혼자 힘 으로 벅차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만큼은 신준혁 상무와 영업기획팀 의 강태주 차장이 공동으로 책임을 맡아 진행시키도록 했으면 합니다.
태주, 뜻밖의 사실에 깜짝 놀란다. 반사적으로 준혁을 돌아보는 태주.
준혁, 싸늘한 시선으로 태주의 시선을 외면한다. 임원들도 동요하는 모습이다.
최이사 강태주 차장이야 어차피 신상무랑 같은 팀에 있는 사람으로 이 일을 함께 진행해 온 걸로 아는데 굳이 그런 식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까.
차회장 부하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동등한 책임 하에 일하는 건 다르죠. 직급의 차이는 있지 만, 분점 프로젝트에 관해서 만큼은 신상무와 강차장이 동일한 권한으로 함께 협력해 서 일해보라는 겁니다.
최이사 회장님 말씀처럼 직급과 경력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동일한 권한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네요. 회사에는 관리체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차회장 우리 월드 백화점으로서는 회사 사활을 건 사업이니만큼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난 새 로운 팀을 구성하는 거라고 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최이사 저로서는 차회장님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결정이 아닌가 싶은데요.
차회장 !.....(강한 시선으로 최이사를 본다.) 개인적인 감정이 없진 않습니다. 중요한 일인 만 큼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요. 그래서 내 아들과도 같은 두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겁니다. 신상무의 어깨의 짐도 덜고, 좀 더 효율적인 결과물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태주, 불편하다. 못마땅해 하는 최이사의 시선과 준혁의 차가운 시선이 마주친다.
동, 차회장의 회장실 복도
차회장과 태주, 준혁 나란히 걸어간다.
차회장 혹시 서운하냐?
준혁 아닙니다.
차회장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야.
준혁 .....
차회장 넌 월드 백화점 핵심 아니냐. 그 쪽 일에만 너무 힘쓰지 말고 이곳 백화점 경영에 최 선을 다하라는 거다.
준혁 네.
차회장 태주 넌, 정신 바짝 차리고 잘 해봐.
태주 네.
차회장 그럼, 들어들 가봐라.
차회장, 회장실로 들어간다.
차회장에게 인사하는 준혁과 태주. 문이 닫힌댜.
태주, 준혁을 본다. 준혁 태주는 아랑곳 않고 돌아서 간다.
동,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준혁, 뒤이어 태주가 들어온다.
준혁, 빠른 걸음으로 상무실로 들어가고 태주는 불편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복잡한 마음이다.
은수네 오피스텔 (다른 날, 낮)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 은수.
경진 정말 너 혼자 가도 되겠어? 그런 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지수 그러니까 내가 따라간다니까.
경진 넌 그 몸으로 어딜 간다 그래?
지수 내 몸이 어때서?
은수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제발 촐싹거리지 좀 마. (경진에게) 거기 스튜디오 에 도우미 있다고 했으니까 정말 괜찮아요.
경진 그래... 평생 남을 사진이니까 아주 이쁘게 찍고 와. 활짝활짝 웃고.
은수 알았어요. 다녀올께요.
은수,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도로 / 태주의 차 안
태주와 혜린.
혜린 오늘이 준혁오빠네 웨딩촬영 날인 거 알아?
태주 그래?
혜린 오늘 이거 아니었으면 가볼라고 했는데.
태주 거길 네가 왜 가?
혜린 리허설 겸. 우리도 조금 이따 그런 거 찍을 거 아니야.
태주 (웃는) 넌 리허설 필요 없어. 너 부업이 모델이잖아.
혜린 사람 놀리는 데 아주 도가 텄어.
태주 쓸데없는 데 참견할 생각 말고 우리 살 집이나 구경하자구.
모델하우스 / 웨딩 스튜디오
-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는 혜린과 태주. 안내의 설명을 들으며 집안 곳곳을 보고, 서로 의견 교환도 하는 혜린과 태주. 혜린이 집안 인테리어에 정신 팔려 보는 동안 문득 문득 태주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혜린, 태주의 그런 눈치를 차리지만 애써 모른 체 하며 태주를 이끌고 방 곳곳을 다닌다.
- 웨딩 사진을 찍는 준혁과 은수. 촬영기사의 요구에 따라 여러 포즈를 취하는 준혁과 은수.
때로는 수줍어하기도 하고 어색해하는 은수의 모습. 하지만 순간순간 은수의 얼굴에도 쓸쓸함이 스친다.
혜린네 집 거실 (밤)
들어오는 혜린과 태주. 윤여사가 그들을 맞는다.
윤여사 그래, 구경들은 잘 했니?
혜린 말 그대로 모델 하우스야. 무지 좋아보이긴 한데 사람 사는 냄새가 없으니까 현실감 은 좀 없더라.
태주 잘 구경하고 또 트집이냐?
혜린 느낀대로 말한 건데 뭐. 참, 엄마!
윤여사 ?
혜린 (태주에게) 안 드려?
태주 (어색하게 윤여사에게 과일꾸러미를 내민다.)
윤여사 이건 뭔가?
태주 어머니, 과일 좀 드시라구요.
혜린 이 집 과일 되게 맛있대. 엄마 좋아하는 과일로만 골라서 이 사람이 특별히 사온 거 야.
윤여사 (내심 나쁘지 않은) 뭐... 이런 걸 다... (꾸러미 받으며) 빨리 씻고들 내려와. 저녁 다 준비됐으니까.
윤여사, 꾸러미를 가지고 주방쪽으로 간다. 혜린, 태주를 향해 그것 보라는 듯 웃는다. 태주도 웃어준다.
동, 태주의 방
태주 들어온다. 혜린, 문간에 서서.
혜린 그것 봐. 우리 엄마 먹는 거에 약하다니까.
태주 .....
혜린 옷 갈아입고 나와.
태주 혜린아.
혜린 ?
태주 잠깐 들어와 앉아 봐.
혜린 (앉으며) 무슨 할 얘기 있어?
태주 .....형님 결혼식 말인데...
혜린 ?
태주 아무래도...
혜린 못 간다구?
태주 .....
혜린 .....
태주 그게...
혜린 알았어. 그렇게 해.
태주 !
혜린 엄마 아빠한텐 내가 얘기 잘 할께. 출장 간다고 하지 뭐.
태주 ...고마워.
혜린 마지막이야.
태주 .....
혜린 이번까지만 봐줄 거야. (태주를 본다.) 약속해.
태주 (끄덕인다.)
백화점 사무실, 회의실 (다른 날, 낮)
태주, 서류를 살펴보고 있고 은수 앞에 앉아 있다.
태주 브랜드별 특징이 잘 정리됐네요. 선별 작업은 어떻게 할 거죠?
은수 직접 매장을 둘러보고 거기 관계자들을 만나본 다음에 결정해야죠. 이렇게 자료만 보 는 거랑은 많이 다를 거 같아서요.
태주 시간 정하는 대로 알려줘요.
은수 ?
태주 매장 돌아보는 거요. 사정만 되면 나도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은수 네...
태주 (서류에 시선 둔 채) 이번 주말이네요.
은수 !...네.
태주 난 못 갈 거 같아요. 일이 좀 있어서.
은수 네...
태주 .....
은수 그럼 가볼께요. (일어서는데)
태주 결혼 축하해요.
은수 !
태주 (고개 들어 은수를 본다.) 그 인사를 하지 않은 거 같아서.
은수 ....고맙습니다.
태주 잘 살아요. 행복하게.
은수 !.....
은수, 목례하고 돌아서 간다. 태주, 괜히 서류만 뒤적인다.
동, 복도 엘리베이터 앞
은수, 치미는 감정을 꼭꼭 누르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온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는 은수.
동, 엘리베이터 안
은수,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재빨리 눈물을 닦는다.
눈물을 참으려 애쓰지만 자꾸만 눈물이 난다.
동, 사무실 회의실
고개를 떨군 채 서류에 시선을 두고 있는 태주.
전혀 서류는 보고 있지 않은 듯 그 자세로 꼼짝 없이 앉아 있다.
신부 대기실 (다른 날, 낮)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 앉아 있는 은수.
경진, 은수를 찬찬히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경진 우리 은수도 이렇게 꾸미니까 인물이 확 사네.
지수 은수 원래 이뻤어. 엄마만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지.
은수 .....
지수, 은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가락으로 은수 입꼬리를 올려준다.
지수 신부 입모양이 왜 그 모양이냐?
이때, 혜린이가 들어선다. 경진, 혜린을 보자 불편한 듯 시선을 피하며 물러난다.
혜린 준비 됐어요? 곧 신부 입장이에요.
은수 네.
이때 문이 열리며 준혁이가 들어온다.
혜린 그 새 못 참고 들어오는 것 좀 봐.
준혁 (혜린에게 웃고서 은수에게) 긴장 많이 돼죠?
은수 네...
혜린 오빠 온 김에 우리 사진이나 찍자.
준혁과 은수, 혜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한다.
잠시 후, 준혁과 은수가 포즈를 취하고 경진과 지수와 담소하는 것을 보며 혜린 한 쪽으로 빠진다.
전화를 하는 혜린.
혜린 나야, 지금 어디니?
은수네 오피스텔 옥상
태주,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농구를 하고 있다.
능숙하게 공을 놀리며 뛰는 태주의 모습과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신랑신부 준혁과 은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참 농구를 하다가 힘에 부친 듯 공을 안고 땅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는 태주.
태주,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혜린(e) 농구하러 출장 오는 사람도 있니?
태주, 돌아보면 언제 왔는지 혜린이가 서 있다.
태주 왔어?
혜린 (계단에 앉는다.)
태주 어머님 아버님은 뭐라셔?
혜린 대충 잘 둘러댔어. 주말에 출장 가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어떡하겠어? 출장갔다는데 믿어야지.
태주 (웃는다.)
혜린 결혼식은 잘 끝났어.
두 사람, 잠시 침묵한다. 태주, 공을 튕기다가
태주 기분이 어때?
혜린 뭐가?
태주 옛 애인 장가가는 거 구경한 기분.
혜린 별로 안 좋아. 좀 아까운 생각 들더라.
태주 .....
혜린 그래도 은수씨 생각하면 나아. (태주를 본다.) 당신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으니까.
태주 .....(씩 웃는다.) 넌 나 왜 좋아하냐?
혜린 갑자기 그런 민망한 질문은 왜 하니?
태주 궁금해서.
혜린 .....
태주 난 예전엔 여자들이 나 좋아하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거든.
혜린 왜 당연하게 여겼는데?
태주 잘 생겨서 좋아하나 보다 했어.
혜린 (웃는다.) 당신 정말 웃겨.
태주 .....
혜린 당신은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단순한 왕자병이 매력이긴 해.
태주, 말없이 농구공을 통통거리다가
태주 농구할 줄 아냐? 같이 할래?
혜린 하이힐 신은 여자한테 농구하자고 하는 그 무신경도 재수는 없는데 가끔 귀여워.
태주, 옆에 놓인 가방에서 운동화를 꺼낸다. 의아한 듯 보는 혜린.
태주 나, 나름 완벽주의자인 거 알지?
태주, 혜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혜린의 구두를 벗기고 운동화를 신겨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혜린.
혜린 처음엔 당신 척 하는 게 재밌었어. 쿨한 척, 잘난 척, 멋있는 척, 척이란 척은 혼자 다 하더라.
태주 척 하는 걸로 치면 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혜린 맞아. 아마 나랑 비슷해 보여서 흥미가 갔나 보다.
태주 .....
혜린 드러내놓고 속물 티 팍팍 내는 것도, 드러내놓고 이기적인 것도 신선했어.
태주 네 취향은 역시 위험해.
혜린 그러다가 그냥 좋아졌어.
태주 .....
혜린 한창 준혁 오빠 때문에 마음 아플 때였는데 언젠가부터 당신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 게 됐거든.
태주 .....그래서 신준혁은 완전히 잊은 거야?
혜린 그렇다기 보단... 덮어씌워졌다는 말이 맞을 거야.
태주 ?
혜린 당신으로 덮어씌워지니까 참을만 하더라. 조금씩 잊어먹게 되고...희미해지고...그러다 당신만 남았어.....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해.
태주 .....
혜린 경험에서 말하는 건데, 정말 괜찮아 진다니까.
태주 (웃는다.)
혜린 너... 나한테 못할 짓 많이 한 거 알지?
태주 그래서 이렇게 선물도 주잖아. 나 아무한테나 이런 거 안해줘.
혜린, 태주를 포옹한다.
혜린 이제 진짜로 새로 시작하자.
태주 .....
혜린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없어. 앞만 보는 수밖에.
태주 .....
혜린 정신 차리고, 정말로, 새로 시작하는 거야.
먹먹한 감정을 억누르고 애써 미소를 짓는 태주의 얼굴에서.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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