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세라세라 13
新태주 오피스텔 로비 (밤)
은수, 로비 한 켠에 서 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태주가 나온다. 태주, 긴장한 얼굴로 은수에게 다가간다.
은수 이 시간에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태주 아냐.
은수 어제... 무작정 화만 냈던 거 미안해요.
태주 생각이 바뀐 거야? ...그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일단은 지수만...
은수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우리는.
태주 !
은수 사람 인연 중에 그런 인연이 있다고 하잖아요.
태주 ...무슨 말 하려는 거야?
은수 아예 만나지도 않았던 걸로 해요, 우리.
태주 !
은수 그러니까 내 사정에 대해서도 모르고, 날 걱정할 이유도 없고, 나에 대해 죄책함을 느 낄 것도 없어요.
태주 은수야.
은수 나 결혼해요.
태주 !
은수 결혼할 거예요, 상무님이랑.
태주 그..그게 무슨 말이야?
은수 지금까지 내 인생 다 지워 버리고 새로 시작할 거예요.
태주 !
은수 그러니까 강차장님도... 이제 나, 끊어요!
태주 !
은수 그거 알려주려고 왔어요.
태주 !.....(잠시 멍해 있다가 피식 웃는다.) 농담이지?
은수 (기가 막힌) 지금이 농담하는 분위기라고 생각돼요?
태주 (웃음 거두고 고개 젓는) 아니.
은수 정말이에요.
태주 .....
은수 상무님이랑 나랑 사귀는 거 모르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놀래요?
태주 믿어지지가 않아. ... 네가 어떻게...(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은수 난 결혼 못할 줄 알았어요?
태주 !
은수 나도 내 인생 살아야죠. 안 그래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말아요!
태주 !
은수, 일어나 나간다.
태주, 충격에 휩싸여 멍해 있다.
호텔, 약혼식장 (다음 날, 낮)
10여명의 하객이 자리한 테이블.
상석에 약혼식 예복을 입은 태주와 혜린이 하객을 향해 인사한다.
예물을 교환하고, 케잌을 자르는 두 사람.
두 사람에게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환한 혜린의 얼굴과는 달리 태주는 어두운 얼굴이다.
흐뭇하게 그들을 보는 차회장과 윤여사. 태주와 준혁의 불편한 시선이 마주친다.
혜린네 집 거실
들어서는 차회장과 윤여사, 태주, 혜린, 준혁.
윤여사 아유 이제 나도 늙었는지 그까짓것도 일이라고 여기저기 쑤시고 피곤해 죽겠네. (소 파에 앉으며) 아무리 조촐하게 한다고 해도 오늘 좀 너무한 거 아니니.
혜린 식구들도 얼마 없는데 그 정도면 됐지 뭐. 지난 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자, 엄마?
태주 전 먼저 좀 올라가겠습니다.
차회장 그래, 들어가 쉬어라.
태주 (2층으로 향한다.)
윤여사 강서방 어디 몸 안 좋은 거 아니야? 하루 종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더라?
혜린, 못마땅한 듯 가는 태주를 보다가 뒤따라간다.
동, 태주의 방
방에 들어오는 태주. 피곤한 듯 옷을 벗는데 잠시 후 혜린이가 들어온다.
혜린 자기 요즘 무슨 일 있어?
태주 왜?
혜린 우리 집에 들어온 뒤로 계속 뚱해 있잖아.
태주 그런 거 아냐.
혜린 그런 거 아니면 당신 특기 살려서 엄마 아빠한테 살갑게 굴고 그래, 좀. 집안 적적한 거 싫어서 일부러 당신 들이신 분들이야.
태주 .....
혜린 이렇게 방안에만 있지 말구...
태주 혜린아.
혜린 ?
태주 나 좀 피곤해. 혼자 있고 싶어.
혜린 .....
태주 혼자 있게 좀 해줘.
혜린, 불쾌하지만 꾹 참고 나간다.
태주, 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고 셔츠 단추를 풀고는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동, 거실
준혁과 차회장, 윤여사.
차회장 그 때 그 아가씨 말이냐?
준혁 네.
윤여사 혜린이 오늘 일 치렀는데 왜 또 너까지 갑자기 결혼 얘기니?
차회장 그 아인 결혼상대로 좀 그렇다.
준혁 !
차회장 전에 말한 대로야. (일어나려는데)
혜린, 거실로 나오다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준혁 허락 받으려고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다.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차회장 ! ...내 뜻에 반하겠다는 거냐?
준혁 .....저, 아버님 아들도 아니잖습니까.
차회장 ! .....(매우 노여운)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모두들 놀란다.
준혁 죄송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주세요.
차회장 이..이런, 배은망덕한!
차회장, 화가 난 듯 노려보더니 자리를 떠난다.
윤여사 !...아..아니 준혁이 너, 요즘 왜 자꾸 삐딱선 타고 그러니? 안 그러던 애가 정말 이상 해졌어.
윤여사, 차회장을 따라 간다.
준혁, 주방 쪽으로 간다. 혜린, 준혁을 따라간다.
동, 주방
술을 따라 마시는 준혁. 혜린이가 들어선다.
혜린 나도 한잔 줘.
준혁 (한잔 따라서 혜린에게 준다.)
혜린 (술을 받으며) 아빠한테 너무 세게 나간 거 아니야?
준혁 .....
혜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준혁 !
혜린 이런 식으로 급진행 시키는 거 오빠 하던 방식이 아니야. 적응 안되고 불안해.
준혁 전에 이미 프로포즈 했었던 사람이야.
혜린 그건 전에 일이고,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다시 사귄지 얼마나 됐다구...
준혁 사람이 하던 대로만 하고 살 수 있어?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준혁, 나간다. 혜린, 뭔가 불안하다.
은수네 오피스텔
경진과 지수, 놀란 얼굴로 은수를 보고 있다.
경진 이게 무슨 소리래, 이게 무슨 소리래.
지수 상대는 누군데?
은수 전에 아르바이트 했었잖아요. 그 분이에요. 우리 회사 상무님.
경진과 지수,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은수 나한텐 과분하다 싶게 좋은 분이에요. 분명히 엄마도 맘에 드실 거야.
경진 내 맘에 들고 안 들고가 문제가 아니라... 네 맘이 문제지. 네 마음도 다 추스르기 전 에 덜컥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건...
지수, 은수 팔에 끼워진 팔찌를 발견한다. 거칠게 은수 팔을 잡아채며 팔찌를 본다. 그 바람에 경진도 은수의 팔찌를 본다.
경진 이게 뭐야? 허! 엄청 비싸겠는데?
지수 (약간 화난 듯) 언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은수 (팔을 뿌리치고) 조만간에 인사드릴 거예요.
은수, 일어나 싸놓았던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간다.
경진 쟤 머리, 아니 가슴 속엔 도대체 뭐가 든 거야?
지수, 은수를 쫓아 나간다.
동, 복도
걸어가는 은수, 지수 은수를 쫓아간다.
지수 야, 너 뭐야?
은수 .....
지수 한은수! (은수를 잡는다.)
은수 왜?
지수 태주 아저씨는 나쁜놈이니까 딴여자한테 가서 결혼한다고 쳐. 그런데 너까지 왜 이러 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갑자기 결혼은 왜 하냐구?
은수 누가 그래, 좋아하지 않는다구.
지수 사람 마음이 금방 바뀔 수 있냐?
은수 예전부터 좋은 감정 있었던 사람이야.
지수 그래서 사랑해?
은수 !... 많이 좋아해.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래, 사랑이겠지.
지수 야.
은수 (단호한) 그만해, 더 이상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아. (돌아서 가는데)
지수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어? 아주 딴 사람 같아! 차라리...엉엉 울고불고 그러는 게 낫지! 야! 한은수!
은수, 무시하고 간다. 지수, 은수가 걱정스럽다.
(빠진 부분 수정)
8-1. 준혁의 오피스텔 (밤)
어두운 실내
준혁, 술을 따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은수다.
8-2. 은수네 오피스텔 / 준혁의 오피스텔
은수, 모두 잠든 듯 어두운 실내에서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통화 중이다.
은수 엄마랑 동생한테 얘기 했어요.......날...아주 이상한 애 취급해요. 돌 맞는 기분이에요..... 상무님한테...나쁜 짓 하는 건가...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상무님... 정말 괜찮으세요?
준혁 내가 원한 거잖아요. 은수씨는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준 거 뿐이에요.
은수 .....
준혁 나 지금 행복해요. 은수씨가 나,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나쁜 짓이에요?
은수 .....
준혁 다 잊어버려요. 지난 일은 다 잊고 그냥 우리만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벅차요, 지금.
도로 / 태주의 차 안 (다른 날, 아침)
나란히 앉아 출근하는 태주와 혜린.
혜린, 컴팩트 거울을 보며 머리와 화장 등을 다듬는다. 컴팩트를 넣고.
혜린 이렇게 같이 출근하니까 기분 묘하네.
태주 .....
혜린 준혁 오빠 결혼 얘기, 알고 있었지?
태주 !
혜린 그래서 그동안 저기압이었던 거야?
태주 무슨 말 하려고 그래?
혜린 뭐라 하려는 거 아니야. 당신 이해해. 나도 불편한데 당신은 오죽하겠니.
태주 .....
혜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할 수 있어?
태주 .....
혜린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가자구.
태주 .....
혜린 그거밖에 방법이 없잖아.
태주 .....
백화점 사무실B
아직 출근한 직원이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의 사무실.
은수, 막 출근한 듯 가방을 챙겨 놓고 책상을 닦고 정리하는데 혜린이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혜린, 은수를 보고
혜린 은수씨, 일찍 출근했네요?
은수 오셨어요?
혜린 나랑 커피 한잔 할래요?
동, 혜린의 사무실
혜린과 은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은수 약혼식은 잘 하셨어요?
혜린 네.
은수 축하드려요, 늦었지만. (언뜻 혜린의 약혼반지에 시선이 간다.)
혜린 고마워요. .....준혁오빠한테 얘기, 들었어요.
은수 네.
혜린 준혁오빠... 많이 외로운 사람이에요.
은수 !
혜린 은수씨가... 잘 감싸줬으면 해요. 또다시 상처 주는 일 같은 거 없이.
은수 !
혜린 오해하지 말아요. 동생으로서 하는 말이니까.
은수 네...(끄덕) 알아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백화점 근처 은행
은수, 은행창구 쪽으로 간다.
창구의 은수, 업무 처리하는 직원을 바라본다.
직원 서류처리를 하고 은수에게 명세서를 내민다.
직원 처리 끝났구요. 신청하신 대출금은 오늘 중으로 급여통장으로 입금될 거예요.
은수 (명세서 보고) 네. 수고하세요.
백화점 사무실 복도 엘리베이터 앞
서성이는 태주.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은수가 내린다.
태주를 보고 멈칫하는 은수.
태주 얘기 좀 하자.
은수 무슨...
태주, 은수가 말할 사이도 없이 팔을 잡아 창고로 들어간다.
동, 창고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을 가로막고 서는 태주.
은수 강차장님, 저 지금 업무 보러 가야 돼요.
태주 잠깐이면 됩니다. 한은수씨.
두 사람,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태주 결혼하지 마.
은수 !...뭐요?
태주 하지 말라구.
은수 (기가 막혀 웃음이 난다. 확 나가려는데)
태주 (문을 막아선다.)
은수 내 일에 상관하지 말아요.
태주 어떻게 상관을 안 해. 계속해서 나랑 얼굴 맞보고 살텐데!
은수 강차장님 곤란하게 안할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태주 뻔히 알면서 일부러 불구덩이에 뛰어들 건 없잖아! 위험한 결혼이야.
은수 .....나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이라고 했죠?
태주 !
은수 그래서 나도 앞이 보이는 인생 좀 살아보려구 그래요, 왜요? 그게 불구덩이던 뭐가 됐든 가볼 거예요. 앞이 안 보이는 것보단 나으니까.
태주 !
은수, 태주를 밀치고 나간다.
동,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오는 태주. 자리에 막 앉는데 준혁의 사무실에서 준혁이가 나온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준혁, 생각났다는 듯 태주에게 다가온다.
준혁 강차장, 백화점 분점 후보지역에 대한 보고서 작성 됐나?
태주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준혁 (시계 보고) 미팅 나갔다가 오후에나 들어올 거야. 오자마자 볼 수 있게 내 자리에 갖 다 놔.
태주 네.
준혁, 나간다. 태주, 작업을 시작한다.
혜린네 집 거실 (밤)
차회장과 태주, 바둑을 두고 있다.
차회장 살펴보고는 있는 거야?
태주 네?
차회장 (태주를 힐끗 보고는) 준혁이 말이다.
태주 !
차회장 널 아무 이유 없이 준혁이 밑으로 찔러 넣은 줄 아냐? 넋 놓고 있지 말고 네 자리에서 네 할 도리 제대로 해.
태주 왜 형님을 경계하십니까?
차회장 !
태주 친아들처럼 애지중지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차회장 자리 차지하는 건 쉬워도 유지하는 건 만만치가 않아. 온 사방팔방에서 물어뜯느라 아우성이지. 세상에 믿을 놈이란 없다는 얘기야. 네 놈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힘 이라는 게 그냥 생기는 게 아니거든.
태주, 불편한 시선으로 바둑을 두고 있는 차회장을 본다.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낮)
준혁과 태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 준혁, 서류를 살펴보며
준혁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 부근 토지개발계획에 대한 분석이 미흡해. 백화점은 무엇보다 주변 환경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좀 더 정보를 수집해서 보완해 봐.
태주 네. (서류를 챙기고 준혁을 본다.)
준혁 뭐 할 말 있나?
태주 은수랑 결혼한다고 들었습니다.
준혁 그런데?
태주 난 형님이 이해가 안가요.
준혁 뭐가?
태주 한은수가 누굽니까. 걔랑 나...
준혁 지난 일 들춰내지 마.
태주 들춰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일 아닙니다.
준혁 내가 사랑하는 여자야.
태주 !
준혁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한가?
태주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니구요?
준혁 (황당한 듯 피식 웃는) 진심을 모르는 놈 눈엔 그렇게 밖에 안보이겠지.
태주 날 밀어내고 싶은 거라면... 날 견제하기 위해서... 그래서 은수를 이용하려는 거라면 그만 두십쇼.
준혁 !
태주 은수 걔, 그냥 놔두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 많이 겪은 애예요.
준혁 네가 한은수 걱정하는 거, 우습다는 거 알아?
태주 !
준혁 넌 이미 선택했고, 은수씨도 선택했어. 왜 은수씨 선택을 무시하지?
태주 !
준혁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한은수, 약하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사랑스럽고.
태주 !
준혁 더 이상 한은수한테 신경 꺼! (일어나 자리로 돌아간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가 봐.
태주, 못마땅한 듯 준혁을 보다가 나간다.
(빠진 부분 수정)
17-2. 동, 준혁의 사무실
준혁과 은수.
준혁 집으로 방문하는 것보단 밖에서 식사나 함께 하는 게 더 편할 거 같아서요. 은수씬 어 때요?
은수 엄마도 그게 덜 부담스러우실 거예요.
준혁 동생은 나오기 괜찮아요?
은수 가볍게 동네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준혁 떨리네. 은수씨네 가족 만난다는 생각 하니까.
은수 저희 식구도 마찬가지예요. 상무님 같은 분이 왜 절 좋아하는지 도저히 안믿긴대요.
준혁 아마 보시면 믿으실 거예요. 내가 눈 앞에서 티 팍팍 낼테니까.
준혁과 은수, 다정하게 웃는다.
부동산 소개소
경진, 안절부절하는 얼굴로 업자와 마주 앉아 있다.
업자 이 아줌마가 진짜 황당하네... 당장 내일 모레가 잔금 치를 날인데 이제 와서 계약을 파기하면서 계약금을 내놓으라구요?
경진 그게 사정이 그렇게 된 걸 어떡해요. 난들 이러고 싶어서 이러나요.
업자 계약금이 무슨 뜻인지 몰라요? 이럴 때 날리라고 있는 게 계약금이에요.
경진 아무리 그래도 한두푼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몽땅 날려요? 그 돈 내 돈도 아니란 말 예요. 그거 다 그 사람한테 돌려줘야 되는 건데...
업자 그러니까 계약금 아까우면 내일 모레까지 잔금 치루고 계획대로 집을 사시던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경진 .....
업자 어떡할 겁니까?
경진 .....
업자 아줌마!
경진 아, 생각 좀 해볼께요. 소리 좀 지르지 마요.
경진, 미치겠다.
중국음식점 룸 (밤)
은수와 지수, 경진이 앉아 있다.
경진, 시름에 잠긴 불안불안한 얼굴이고 지수는 뾰로통해 있다. 통화 중인 은수.
은수 네,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아니예요. 우리가 일찍 온 거예요... 괜찮으니까 천천히 오 세요. (전화 끊는다.) 조금 늦는대요. 차가 좀 막히나 봐.
경진 .....
지수 난 이 자리에서 빠지면 안될까? 진짜 마음 안 내키거든.
은수 내 동생 하기 싫으면 그렇게 하던가.
지수 (못마땅한 듯 은수를 째려본다.)
은수 버릇없이 또 이상한 말 하고 그래 봐. 죽을 줄 알아.
경진 .....
지수 (경진의 기색을 보고) 근데 엄마 무슨 일 있어?
경진 어? ...아니...
은수 다들 왜 이래요? 사람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준혁이 들어온다.
은수 왔어요?
준혁 (경진에게 고개 숙여)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 초면인데 좀 늦었습니다.
경진 아니..아니예요. 우리가 일찍 온 거지, 뭐... 앉으세요.
준혁 (앉는다. 은수에게) 주문은 했어요?
은수 네.
<시간 경과>
식사하는 네 사람. 서먹서먹한 분위기다. 경진과 지수, 별로 밥맛이 없어 보인다.
준혁, 그들을 보다가
준혁 맛이 별론가 보네요. 수소문해서 찾은 곳인데.
경진 아니예요... 우리가 원래가 양이 좀 작아놔서...
준혁 .....동생은... 건강해 보이네요.
지수 얼굴 시퍼런 환자를 기대하셨나 보죠?
은수 ! (지수에게 눈짓한다.)
지수 저 괜찮거든요.
준혁 (웃는다.) 역시 동생이라 은수씨랑 비슷한 데가 있네요. 얼굴은 별로 닮지 않은 거 같 은데.
지수 인물 차이가 좀 많이 나긴 하죠.
준혁 맞아요. 언니가 좀 더 이뻐요.
지수 (토라진 듯 준혁을 본다.)
준혁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지수 우리 언니는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준혁 그건 왜 물어요?
지수 궁금해서요.
준혁 좀 됐어요. 언니 마음 잡느라 그동안 혼자 속앓이 좀 했죠.
지수 ...세상엔 별 일이 다 많다니까.
경진 참 높으신 양반이, 아주 잘나신 분 같은데... 취향이 참...
준혁 (본다.)
경진 보는 눈이 탁월하시다구요.
준혁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진 ...저... 당장 결혼을 서둘겠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사실 딸 가진 입장에선 결혼이라는 건 굉장히 큰 일이거든요. 게다가 우리 상황이...
준혁 은수씨 형편이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머님께서 신경 쓰시지 않아 도 괜찮습니다. 전. ...결혼을 서둔다고 해서 감정까지 서두르는 건 아니니 그 점은 걱 정하지 마시구요.
경진 ...아니 내 말은...
준혁 은수씨 가족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어머님.
은수네 오피스텔 (밤)
들어오는 경진, 은수, 지수.
경진 사람은 좋아 보인다만... 인물 좋고 성격도 그만한 거 같고...
지수 무엇보다 엄마 좋아하는 돈도 좀 있는 거 같고.
경진 (지수를 째려보면)
지수 엄마 하고 싶은 궁극적인 말이 그거잖아. 모를 줄 알아?
경진 저 기집앤 도대체 지 에미를 뭘로 보는 거야?
은수, 가방에서 월세 계약서를 꺼내 경진에게 준다.
경진 이건 뭐니?
은수 집주인아줌마 만나서 보증금 조금 넣고 매달 월세 넣는 걸로 정식으로 계약 했어요.
경진 아니 보증금이 갑자기 어디서 났는데?
은수 회사에서 대출 받았어요.
지수 그럼 이제 이 집에서 두 다리 짝 펴고 살아도 되는 거야?
은수 응. 앞으로 2년 동안은.
경진 너, 그 대출금은 우리 지수...
은수 그 사람이... 지수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지수 혹시 나 땜에 시집 가는 거야?
은수 내가 미쳤니? 너 땜에 내 인생을 걸게?
지수 그럼 다행이구.
경진 (착잡한 듯 계약서를 내려놓는다. 전전긍긍하는 얼굴이다.)
은수 좋진 않지만 이 정도면 엄마랑 지수 두 사람 살기엔 나쁘지 않잖아요.
경진 누가 이 집이 싫다니?
은수 그럼 왜 그래요?
경진 그게(이미 계약한 집이 걸리는)..... 아니다.
은수 병원비는 적금 깨서 지불했어요.
경진 .....
은수 그러니까 엄마가 알아봤다는 집도 당장 취소하고 그 사람한테 돈 돌려줘요.
경진 .....(걱정 되는)
은수 엄마.
경진 알아... 알아. 알았어. (안되겠다는 듯) 내가...아무래도 이거 하난 짚고 가야 할 거 같 다.
은수 ?
경진 너한테 해준 게 없어서, 내가 에미로서 면목이 없어서, 도대체 뭐라 할 낯이 안 서니 꾹 참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야.
은수 무슨 얘긴데 그래요?
경진 아까 그 사람 그래, 사람 좋아. 그만한 사람 없지... 우리 형편까지 돌보겠다는데.. 감 지덕지할 신랑감인 거 안다. 그런데... 너네 회사 상무라며. 그러면 강태주 그 사람 처 남 되는 사람이잖아, 맞지?
은수 !
경진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니? 너 시집 가서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은수 그게 무슨 상관인데?
경진 왜 상관이 없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거야. 나중에 그 집 어른이라도 이 사실 알아 봐.
은수 그 집 친아들도 아니예요. 사실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야.
경진 한 가족처럼 지낸다며? 허구헌 날 얼굴 마주 볼 텐데 네 마음 편할 거 같아? 내가 아 무리 돈 좋아하지만, 돈 많으면 뭐하니? 마음이 지옥이면 길바닥 낙엽만도 못한 게 돈이야.
지수 엄마랑 나랑 의견일치할 때도 있네. 한은수, 그만큼 네가 아주 이상한 노선으로 가고 있는 거 확실하거든?
은수 아무리 지옥이라도 지금 보단 나아.
경진/지수 !
은수 그리고 지옥일 리도 없구. 왜 다들 날 못 믿는데? 나 자신 있어요. 잘 살 거야. 제발 이상한 시선으로 좀 보지 마.
은수,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백화점 로비, 직원 엘리베이터 앞 (다른 날, 낮)
로비에 들어서는 태주. 엘리베이터에 탄다.
닫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다시 열린다. 보면 웃으며 이야기하던 은수와 준혁이 서 있다. 마주치는 세사람.
은수와 준혁이 엘리베이터에 탄다.
동, 엘리베이터
태주, 준혁, 은수
태주 점심 식사하고 오는 건가 보죠?
준혁 응. 자네는?
태주 아직이요. 거래처 다녀오느라구요.
준혁 (은수에게) 지수라고 했죠? 동생이 내가 한 말 땜에 혹시 뭐라 안해요? 어제 얼굴 보 니까 꽤 화난 거 같던데.
태주 !
은수 (웃는다.)
준혁 괜한 말 해서 처제될 아가씨한테 점수만 잃은 거 아닌지 몰라.
은수 마음은 전혀 안 그러면서 괜히 툴툴거리는 애예요. 상무님도 조금 지나면 걔한테 적 응되실 거예요.
태주,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게 불편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은수 (준혁에게) 들어가세요, 그럼. (태주에게) 강차장님도요.
은수, 내린다. 태주와 준혁.
태주 집에 인사 다녀왔나 봐요.
준혁 응.
태주 나 들으라고 일부러 얘기 꺼낸 겁니까?
준혁 ...(피식 웃는다.) 아마도.
태주 왜요?
준혁 너 정신차리라구.
태주 (씩 웃는) 좋으시겠어요.
준혁 ?
태주 그 집 사위 돼서 좋겠다구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태주, 먼저 내린다. 준혁 뒤따라 내린다.
동, 사무실
자리에 앉는 태주. 태주 자리를 지나쳐 상무실로 들어가는 준혁을 본다.
이때, 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혜린이다.
태주 (전화 받는) 어... 방금 들어왔어. ...아니 아직...별 생각 없어.
동, 백화점 내 분식점 (스낵점)
태주와 혜린, 마주 앉아 있다.
간단한 샌드위치 또는 김밥을 먹고 있는 태주. 먹는 게 영 시원찮다.
혜린 (걱정스런 시선으로 보는) 제대로 먹고나 다니는 거야? 얼굴이 그게 뭐니? ...(끄적이 는 태주 보고) 팍팍 좀 먹어라.
태주 생각 없다는데 왜 사람 불러내서 잔소리냐.
혜린, 음료수를 마시는 태주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다가
혜린 우리... 잠깐 여행이나 갔다 올까?
태주 ?
혜린 사실 연애다운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잖아. 게다가 당신 우리집까지 들어오니까 데이 트 같은 것도 더욱 안하게 되고. 너무 삭막하지 않아?
태주 무슨 여행까지 가, 버겁게.
혜린 모레가 토요일이니까 내일 하루 월차 내면 한 2,3일 다녀올 수 있어. 동해안도 좋고, 제주도도 좋고.
태주 .....
혜린 어때?
태주 맘대로 해.
혜린 그럼 가는 걸로 한다?
은수네 오피스텔 (밤)
경진, 뭔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지수, 검정고시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경진. 지수, 의아하다는 눈길로 경진을 본다.
경진, 전화는 받지 않고 계속 불안한 기색이다.
지수 전화 왜 안 받아?
경진 .....
지수 (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네... 어디신데요? (전화기 가리고 경진 보고) 부동산이라는 데?
경진 그..금방 간다 그래... 나, 나갔다 그래. 아까아까 나갔다구.
지수 지금 안계시는데요. 금방 간다고...예..예. (끊고 경진을 본다.) 엄마 또 무슨 사고 쳤 어?
경진 사고는 무슨 사고?
지수 엄마 지금 표정이 사고 친 얼굴, 딱 그거거든.....또 무슨 일이야?
경진, 안되겠다는 듯 가방을 들고 벌떡 일어나 나간다.
지수 불안해. 불안해. (가슴 문지르며) 심장이 제대로 붙어 있을 수가 없다니까.
백화점 사무실
퇴근 시간인 듯 일하는 직원들과 퇴근하는 직원들이 섞여있다.
태주에게 인사하고 퇴근하는 몇몇 직원들. 태주, 가볍게 인사한다.
태주, 옷을 챙겨 입으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은수네 오피스텔
은수, 들어오고 있고 지수는 통화 중이다.
은수 다녀왔습니다.
지수 아까 나가신 거 진짜 맞거든요. 네, 분명히 금방 간다고 했어요. 핸드폰은 제가 걸어 도 안 받으세요.
은수 무슨 일이야?
지수 (전화 막고) 부동산이라는데 아까부터 계속 엄마를 찾아. 엄마는 아까 나가더니 핸 드폰도 꺼놓고 깜깜 무소식이고.
은수 (뭔가 직감이 온 듯 전화기를 뺏어서 든다.) 여보세요. 거기 어딘데요?
부동산 소개소
경진, 초조한 얼굴로 태주와 업자와 마주앉아있다
태주 어머니
경진 아..그래...그래요. 난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어. 은수 말대로 자네한테 받은 거 몽땅 다 깔끔하게 돌려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 놈의 계약금이...
태주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경진 (가방에서 계약서와 돈봉투를 꺼내 태주에게 안기다시피 주며) 대신 집 계약서 줄께. 여기 자네한테 받은 돈이랑. 난 이걸로 다 돌려준 거야. 은수한테 그렇게 말해줘야 돼? 잔금 치르고 집을 사든가 계약날리든가 자네 맘대로해!난 분명히 한푼도 안틀리 게 다 준거다.알았지?
경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난다. 태주, 의아한 듯 계약서와 봉투를 펴본다. 집 매매 계약서와 수표들이다. 난감한 얼굴의 태주.
부동산 소개소 앞
부동산 소개소를 찾아 기웃거리는 은수.바쁘게 걸어온다
29-1.부동산 소개소
업자 저쪽 집은 오늘 이사도 못가고 아주 난리가 났어요. 급매물로 싸게 나온 거 신경 써서 소개해 준건데, 내 입장이 뭐가 되냐구요. 이제라도 왔으니 잔금 치르시고...
태주 포기하겠습니다.
업자 예?
태주 계약금 포기하겠다구요.
업자 그러니까 집을 안 사시겠다구? 계약금 그냥 날리고?
태주 (씁쓸한) 들어와서 살 사람이 없는데, 집을 사면 뭐 합니까.
이때 은수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은수 ...
태주가 돌아본다. 두 사람, 서로를 보고 놀란다.
근처 카페
은수와 태주, 마주 앉아 있다.
은수 날린 계약금, 꼭 갚을께요.
태주 첨부터 내가 시작한 거니까 내 책임이야. 됐어.
은수 아뇨. 그걸 받아들인 것도, 덜컥 계약부터 한 사람도 우리 엄마니까 우리가 갚아야죠.
태주 됐다니까.
은수 갚을 거예요.
태주 진짜 말 안 듣네.
은수 갚는다니까요.
태주 괜찮대두.
은수 갚을 거예요.
태주 갚어, 그럼.
은수 (반사적으로 갚는다는 말을 더 하려다가 맥이 풀린다.)
태주 (그 모습을 보고 씩 웃는다.) 이자는?
은수 네?
태주 이자는 안 줄 거야?
은수 ! 몇 부 이자면 되는데요?
태주 부르는 대로 줄래?
은수 !...네.
태주 (웃는다.) 됐어.
은수 줄께요.
태주 됐다니까.
은수 사람 놀려요?
태주 나 재벌가 사윈 거 몰라?
은수 !
태주 그깟 이자 나한테 새 발의 피야. 진짜로 됐어.
은수 .....
두 사람, 잠시 침묵이 흐른다. 태주, 차를 마신다.
태주 지난번에... 너 결혼 문제 가지고 뭐라고 한 거 내가 실수한 거 같아.
은수 .....
태주 주제 넘었어.
은수 .....
태주 네가 결혼하는 게 싫은 게 아냐.
은수 !
태주 누구보다... 네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사람이야, 난.
은수 ! (마음 한 켠 서운하다.)
태주 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나 같은 놈... 길바닥에 붙은 껌딱지 만도 못하게 하찮게 여 겨질 만큼... 그렇게... 네가 진심으로 많이 사랑하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은수 .....
태주 신준혁 괜찮은 사람인 거 알아. 그런데... 너 지금 이러는 건 너무 성급해.
은수 .....
태주 좀 천천히, 더 사귀어 보고, 네 감정이 완전히 정리 되고, 그 사람 정말로 사랑한다는 확신 있을 때 그 때 결혼해도 늦지 않잖아.
은수 .....
태주 너 이렇게 성급하게 구는 거... 너무 위험하고 불안해 보여.
은수 당신은... 그 여자 사랑해요?
태주 !
은수 사랑해서... 그렇게 깊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예요?
태주 너랑 나랑은 달라.
은수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네요.
태주 !
은수 짧은 시간이지만, 나... 당신한테 너무 많은 걸 배웠어요.
태주 !
은수 처음 사랑을 했고, 그게 얼마나 황홀하고 달콤한 건지 알았고...그리고 그게... 좋기만 한 줄 알았던 그게... 단 한 순간에 비수로 돌변해서, 내 심장을 갈갈이 찢어놓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태주 !
은수 그렇게 잔인하고, 비열하고, 치사한 거, 나 이제 절대 안해요.
태주 !
은수 (눈물 쓱쓱 닦으며) 바보 아니거든요, 나.
태주 .....
은수 상무님... 기댈 수 있어서 좋아요. 한결 같아요. 날 불안하게 하지 않아요. 사랑보다, 훨씬 나아요.
태주 !
은수 사랑보다 더 좋은 거 찾았으면 된 거잖아요. 충분히 행복할 자신 있어요.
태주 !
은수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약금은 꼭 갚을께요. 이자는... 새 발의 피라니까 안 갚을래요.
은수, 일어나 나간다.
은수의 말에 충격을 받은 태주,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
혜린네 집, 혜린의 방
혜린, 즐거운 듯 여행 가방을 꾸리고 있다.
문득 시계를 본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다.
혜린, 전화를 한다.
선술집 or 포장마차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앉아 태주, 소주를 마시고 있다. 태주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하지만 꽤 많이 취한 태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잠시 후 호영이 들어와 둘러보다 태주를 발견하고 다가가 앉는다.
호영 웬일이냐, 네가 소주를 다 마시고.
태주 역시 형 밖에 없네. 부를 때마다 척척 와주고.
호영 그래, 나 할 일 없는 놈이다.
태주 (피식 웃는다.)
호영 자식, 폼을 보니 많이 마셨나 보네?
태주 .....형...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호영 ?
태주 도대체 뭘 한 거지?.....(북받치는) 은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구..... 걔가 왜...왜 그렇 게 됐지.... 어떡해...어떡하냐, 은수를...
태주, 균형을 잃고 테이블에 쓰러진다.
호영 야, 야.. 아, 또 짐짝 챙기게 생겼네. (태주 흔들며) 야... 혜린씨 부를까? 응?
태주 ...부르지 마... 집에 갈래...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집에 갈래...
호영 ?!
혜린네 집, 태주의 방
방에 들어와 불을 켜는 혜린.
깔끔하고 휑한 실내가 드러난다. 혜린, 시계를 보면 1시가 넘은 시각이다.
속상한 듯 서성이다가 문득 구석에 놓인 가방과 짐상자에 시선이 간다.
가방을 열어본다. 옷가지며 여러 물건들이 들어 있다.
장문을 열어보면 옷 몇 벌만이 휑하게 걸려 있을 뿐이다. 책상 서랍을 열어봐도 텅 비어 있다.
짐을 거의 정리하지 않은 모습이다.
은수네 오피스텔 건물 복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호영, 인사불성이 된 태주를 부축하며 태주의 오피스텔 쪽으로 걸어간다.
호영 야, 열쇠는? 야..야...
태주, 가방을 더듬듯 하다가 열쇠를 찾아 호영에게 준다.
태주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주와 호영.
호영, 태주를 침대에 눕힌다.
호영 내가 다시는 너 부르면 가나 봐라. 지긋지긋한 놈.
호영, 나간다.
태주, 멍하니 어둠에 잠긴 허공을 응시한다.
<시간 경과>
아침이다. 태주,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다.
부스스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다. 머리가 아프다. 시계를 본다.
동, 오피스텔 건물 앞 (다음 날, 아침)
나오는 태주. 거리를 향해 걸어간다.
근처 버스정류장 길
도로에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 태주.
문득 고개 돌려 버스정류장 쪽을 본다.
<인터컷 - 4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은수. 은수를 보던 태주, 은수에게 다가간다.
의아한 듯 보는 은수.
태주 저녁에 시간 있어?
은수 !!
태주 시간 있냐고?
은수 그건 왜요?
태주 전에 저녁 사주기로 하고 국수로 때웠잖아. 신세 진 사람한테 그 정돈 인사가 아니지. 내가 원래 성격이 깔끔하거든.
은수 .....
태주 바쁜가 보지? 그럼 할 수 없고.
은수 안 바빠요.
태주 (본다.)
은수 저 시간 많아요.
태주 (피식 웃더니) 전화할께.
태주, 말을 마치자마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다.
택시 클랙션 소리에 정신을 차리는 태주.
태주, 택시 탈 생각은 않고 멍하니 서 있다. 택시, 그냥 출발한다.
태주, 그렇게 계속 서 있다.
혜린네 집, 태주의 방
방에 들어오는 태주, 혜린이 뒤따라 들어온다.
혜린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없이.
태주 오랜만에 선배 형 만나서 술 좀 마셨어.
혜린 잠은 어디서 잤어?
태주 전에 살던 집. 그 형이 거기 데려다 놨더라구.
혜린 (화가 치민다.) 그 집 내놨다고 하지 않았어?
태주 (아무렇지 않은) 아직 안나갔어. 여행 가자고 했지. 가자, 어디로 갈 거야?
혜린 됐어.
태주 월차까지 냈잖아. 늦은 것도 아닌데 왜 이래?
혜린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
태주 술 먹고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화를 내냐?
혜린 여기가 당신 혼자 사는 집이야?
태주 .....
혜린 그리고... 당신 짐 하나도 안 풀어놨더라, 당장이라도 나갈 사람처럼. 그게 뭐니?
태주 아침부터 왜 사람을 잡냐? 날 잡아서 정리하려고 했어. 계속 회사 나갔는데 정리할 시간 있었냐?
혜린 .....(화가 풀리지 않는다.)
태주 (할 수 없다는 듯) 지금이라도 정리할까?
혜린 내가 밤새 다 해놨어. 난 출근 할 거니까, 당신은 집에서 잠을 자던 또 술을 퍼마시던 맘대로 해!
혜린, 나간다. 태주, 피곤하다.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업무 중인 준혁. 노크 소리가 난다. 준혁, 대답하면 혜린 들어온다.
준혁 아침부터 웬일이야?
혜린 이리 좀 앉아. 할 얘기 있어. (테이블 자리에 앉는다.)
준혁 (다가와 앉는다.)
혜린 결혼 준비는 어떻게 돼가?
준혁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혜린 엄마 아빠한테 인사드리러 안 올 거니?
준혁 .....
혜린 아빠랑 그 날 그랬다고 그냥 어물쩡 넘어갈 거냐구.
준혁 인사드리러 가봤자 은수씨만 불편한 자리 될 거야. 전에 한번 얼굴 봤으니까...
혜린 그냥 얼굴 본 거랑 결혼한다고 인사드리는 거랑 같니? 사람이 융통성 좀 있어라.
준혁 ?
혜린 정식으로 인사도 드리지 않고 오빠 혼자 결혼 진행하면... 결국 그 뒷감당 다 은수씨 한테 가는 거 몰라? 아빠랑 안보고 살 거 아니잖아. 평생 은수씨 힘들게 할래?
준혁 .....
혜린 오빠 말마따나 오빠 아빠 아들 아니야. 반대를 해봤자 얼마나 하겠으며 사람 면전에 두고 무안할 만큼 모질게 할 분도 아니야. 내 전례를 보면 몰라?
준혁 나보고 성급하다고 뭐라고 하더니 오늘은 왜 네가 급했냐?
혜린 이미 오빠 결정한 거잖아. 그거 어떻게 말려? 그런데 상황 이렇게 답답하게 돌아가니 내 성격에 참을 수 있어? 오빠처럼 고지식한 사람 위해 나라도 나서서 교통정리 해야 지.
준혁 (피식 웃는다.)
혜린 웃지 마. 나,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거야. 오늘 당장 은수씨 데리고 와. 아빠 도 일찍 들어오시니까. 내가 사전에 아빠 풀어드려 놓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준혁 .....
도로 / 준혁의 차 안 (밤)
준혁과 은수.
준혁 오늘은 전보다 더 불편할 지도 몰라요.
은수 .....
준혁 내가 얼마 전에 아버님 심기를 좀 불편하게 해드렸거든요. 괜찮겠어요?
은수 네. 상무님도 우리 엄마랑 지수 만났을 때 만만찮게 불편하셨는데요, 뭘. 그 정도 못 견딜까봐요? 저도 내심 인사 한번 드려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준혁 마음 상하는 소리 들을 수도 있어요. 만약 그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은수 .....
혜린네 집 거실
현관에 들어서는 준혁과 은수. 혜린이가 그들을 맞는다.
혜린 은수씨 어서 와요.
소파에는 차회장과 윤여사가 앉아 있다. 준혁과 은수, 다가가 인사 한다.
윤여사 거기 앉아요.
준혁과 은수, 마주 앉는다. 혜린, 옆 쪽에 앉는다.
준혁 (차회장에게) 지난번엔 죄송했습니다.
차회장 .....
준혁 인사는 꼭 드려야할 거 같아서 같이 왔습니다. 아버님.
차회장 .....(헛기침만)
윤여사 아가씬 가족이 어떻게 돼요?
은수 엄마랑 여동생이 한명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구요.
윤여사 어어... 단촐하네.
은수 .....
윤여사 그럼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셨겠네. 어머니, 일 하세요?
은수 네. 지금 미용실에 다니고 계세요.
윤여사 응. 재주가 좋으신가 보다.
차회장 그렇게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뭐냐?
준혁 제 나이도 있고, 혼자 나와 살다보니 빨리 가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커졌습니 다.
이때, 실내복 차림에 실컷 잠 자고 일어난 듯한 태주가 2층에서 내려오다가 은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은수도 태주를 본다. 은수, 태주의 완전히 그 집 식구가 되어버린 듯한 편안한 모습에 씁쓸한 느낌이다. 혜린, 고개 돌려 태주를 본다.
혜린 자기 이제 일어났어?
윤여사 (돌아보며) 어이구, 무슨 잠을 그렇게 자나? 하루 종일 아주 꿈쩍도 안하고.
혜린 (웃으며) 저 사람이 원래 잠이 많아. 은수씨랑 준혁 오빠 인사드리러 왔어.
태주 .....
태주, 주방으로 간다.
동, 주방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는 태주. 물을 병째로 들이킨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물병을 든 채 거실로 나간다.
동, 거실
혜린과 준혁, 은수, 차회장, 윤여사.
태주는 소파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앉지 않고 물병의 물을 꼴짝꼴짝 마시며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준혁 뭐든 최대한 간소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요.
윤여사 아무리 준비할 거 없다고 해도, 그래도 혜린이네는 이미 약혼까지 했는데 얘네들 결 혼 먼저 치르고 하는 게 낫지 않겠니?
혜린 우리 결혼식 날까지 준혁오빠 못 기다릴 거 같은데? 약혼 먼저 했다고 우리 먼저 하 란 법이 뭐 있어? 사실 나이순으로도 오빠가 먼전데.
윤여사 내 말은 언제든 안 먹힌다니까.
혜린 우리 엄마 또 삐지시긴.
차회장 (일어나며 윤여사에게) 준혁이 좋을 대로 하라 그래. 자네든 내 말이든 들을 놈인가.
은수와 준혁, 일어난다.
차회장 앉아서 얘기하다 가거라.
은수와 준혁, 차회장에게 인사하고 차회장은 안방으로 향한다.
은수와 준혁, 다시 자리에 앉는다.
혜린 (은수에게) 아빠 삐지신 건 금방 풀어져요. 너무 걱정 말아요.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 니까.
은수 (미소 짓는다.)
윤여사 (태주를 본다.) 자네는 왜 자리에 앉지 않고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서성이고 있나.
태주 예? 예...
윤여사 (일어나며) 이리 와, 앉어. 젊은 사람들끼리 얘기나 하고 놀아.
윤여사, 나가고 태주 자리에 와 앉아 물을 마신다.
혜린 무슨 물을 그렇게 계속 마시니?
태주 .....(물병을 탁자에 놓는다.)
혜린 결혼식장은 정했어?
준혁 아직. 꼭 식장을 잡아야 하나 싶기도 해. 맘 같아선 둘이 조용한 시골교회라도 가서 간단하게 치르고 싶거든.
혜린 조금 있으면 물 떠넣고 식 올리겠다는 소리 나오겠다. 최소한 할 건 해야지. (은수에 게) 은수씨 웨딩드레스는 내가 책임져 줄께요.
은수 네?
혜린 아는 샾이 있는데 거기 디자인 아주 좋거든요. (태주에게) 우리 약혼예복 했던 데.
태주 어..
준혁 책임지고 이쁜 거 골라줘. 다른 건 다 최소화 해도 신부는 최대한 예뻐야 하니까.
혜린 (태주에게) 식장은 당신이 알아보면 되겠다.
태주 ?
혜린 이벤트 쪽 일했으니까 잘 알 거 아냐.
태주 그 쪽 일 손 뗀지 꽤 된 거 몰라?
혜린 아는 사람 많잖아. 급하게 식장 잡기 힘드니까 당신이 힘 좀 써보라구. 이럴 때 서로 돕지 언제 돕니?
태주 .....
태주, 은수를 본다. 은수, 애써 담담하게 시선을 피한다.
태주, 준혁을 본다. 준혁과 태주의 긴장된 시선이 마주친다.
백화점 사무실, 준혁의 사무실 (다른 날, 낮)
준혁과 최이사.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다.
준혁 (서류를 내민다.) 보유 주식량 상위 10퍼센트 안에 포함되는 임원들 명단입니다. 이 중에 박대완, 김중식, 이병국 이사는 차회장의 최측근이라 일단 제외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임원들의 주식을 모두 합한다 해도...
최이사 여전히 모자란다...
준혁 아슬아슬하죠. 그들 모두를 설득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가능성은 더 낮아질 거구요.
최이사 그렇게 되면 방법은...
준혁 제외시켰던 차회장의 최측근을 동원해야 된다는 결론입니다.
최이사 그게 가능하다고 보냐?
준혁 일단은 미끼를 던져봐야죠.
최이사 ...자신만만하구나.
준혁 눈 앞의 이익을 두면 부모자식도 없는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전 그 말씀을 믿고 가는 거 뿐입니다.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태주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온다.
준혁 최이사님이 같이 판단해 주셔야죠. 저보다는 그 쪽에 훨씬 밝으실텐데.
준혁, 태주를 돌아 본다. 태주, 최이사에게 목례한다.
최이사 (태주에게) 자네 오랜만이구만.
태주 (목례하며) 예.
최이사 (일어나며) 그럼 이만 난 가보지.
준혁 (일어나며 인사한다.) 예, 들어가십쇼.
태주도 최이사에게 인사한다. 최이사, 태주를 보고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나간다.
태주 (준혁에게) 지난번에 지적한 토지개발계획에 대한 분석자룝니다. 새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다시 보완 작성했습니다.
준혁 (책상 쪽으로 가며) 어, 거기 올려놔.
태주 (책상 위에 서류를 놓는다.)
준혁 (자리에 앉는다.) 새로 수집된 정보들이 많았나 보지? 별로 시간이 많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
태주 생각보다는요. 얻어내는 건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준혁 (웃는) 그게 능력이지. (서류철 덮으며) 내일 중으로 살펴볼께. 수고했어.
태주 (나가려는데)
준혁 참, 오늘 저녁 시간 되나?
태주 네?
준혁 같이들 식사나 하자구.
태주 ?
준혁 오늘 예복 최종 피팅하는 날이거든. 혜린이가 그동안 수고 많이 해 줘서 한턱 좀 내려 구.
태주 전 잔무가 많아서요, 늦게까지 야근할 거 같습니다.
준혁 그럼 할 수 없고. 나가 봐.
태주, 나간다.
동, 사무실
자리에 앉는 태주.
생각에 잠긴 얼굴로 상무실을 한번 쳐다본다. 컴퓨터 파일을 열고 일을 시작한다.
고급 파티복 샾 (밤)
혜린과 준혁, 은수가 있다. 혜린, 뭔가 기분이 나쁜 얼굴이다.
은수와 준혁, 잡지책의 의상 사진들을 보면서 뭐라 얘기하고 있다.
혜린 태주씨한테 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야?
준혁 내가 시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거야. 열심히 하는 거 좋지 뭘 그래.
혜린, 일어나 샾 구석 쪽으로 가서 전화를 한다.
혜린 왜 하필 오늘 야근이야?..... 그냥 나와..... 밥먹을 시간도 없니? .....꼭 오늘 일해야 돼 ? 당신이 조절할 수 있잖아. 그 정도는..... 당신 이러는 거 일부러 피하는 거로 밖에 안보여.
백화점 사무실
몇몇 직원들 빼고는 모두 퇴근한 썰렁한 사무실이다.
태주, 통화 중이다.
태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혜린(f) 불편해서 이러는 거 아냐?
태주 !
파티복 샾
혜린 없었던 걸로 하자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 하자고 한 사람이 누구니? .....오빠가 자 리 하자는데 당신만 빠지는 거, 당연히 이상하지.....아니, 진짜로 이상해. 그래서 나 기분 나빠. 핑계 대지 말고 당장 나와.
전화 끊는다.
백화점 사무실
전화 끊는 태주. 난감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잠시 있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난다.
파티복 샾
예복을 입은 준혁. 혜린이가 옆에 서서 봐준다.
혜린 잘 맞는다. 멋진데?
혜린, 고개 돌리는데 이때 드레스를 입은 은수가 나온다.
준혁, 은수에게 다가간다.
혜린 내가 그랬지? 이 집 옷 이쁘다구.
준혁과 은수, 다정하게 서로에게 뭐라 말하며 의상을 살펴보는데 이때 태주가 샾에 들어선다.
들어오자마자 준혁과 은수의 모습을 보는 태주의 얼굴이 경직된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다정한 신랑신부의 모습이다. 태주와 은수의 시선이 마주친다.
레스토랑
식사를 하는 태주, 혜린, 준혁, 은수. 태주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대화에 끼지 않고 열심히 먹고 있다.
혜린 (태주 무시하고) 살림은 그냥 오빠집에서 차린다고 했지?
준혁 응.
혜린 살림살이 같은 건?
준혁 그냥 있는 거 쓸 거야. 새로 할 거 뭐 있어?
혜린 완전 실속파 신랑신부네. 은수씨, 여동생 있다고 했죠? 동생이 섭섭해 하지 않아요? 언니 시집가면 기분 되게 그렇다던데.
은수 그래서 그런가? 요즘 저한테 계속 뾰루퉁해 있더라구요.
혜린 언니랑 사이가 좋은가 보다.
은수 그렇지도 않아요. 둘이 얼마나 싸우는데요.
혜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기로 했어?
준혁 일본. 은수씨가 꼭 한번 료칸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대.
혜린 좋긴 한데 신혼여행으로는 좀 덜 낭만적이지 않나?
은수 난 진짜 낭만적인 거 같은데. 고즈넉하고 운치 있고 왠지 뭔가 은밀한 느낌도 있고... 되게 그럴싸한 분위기 나던데요.
혜린 안가봤다면서요.
은수 책에서 읽었을 때 느낌이 그랬다구요.
혜린 실제로 가보면 꼭 그렇진 않아요. 난 별로더라. 그냥 목욕탕 같고.
준혁 네가 관광지로 유명한 델 가서 그럴 거야. 시골에 있는 건 은수씨가 상상하는 거랑 비 슷할 수도 있어.
혜린 그런 델 찾았단 말야?
준혁 아마도. 물론 가봐야 알겠지만.
혜린 (태주에게) 우린 신혼여행 어디로 갈까?
태주 (쳐다보지도 않고 먹으며) 너 가는 데.
혜린 (준혁에게) 가끔 이렇게 맥을 끊어 놔. (태주에게) 사하라 사막에 간다면 갈래?
태주 거긴 너 혼자 가.
혜린 자기한테 뭘 바라냐.
태주 나도 그런 료칸 매력 있던데.
은수 (본다.)
태주 (은수에게) 산 속 깊이 숨어 있는 곳 말하는 거죠?
은수 네...
혜린 그런 데 가봤어?
태주 나도 책에서 읽었어. 은수씨랑 느낌이 비슷한 거 보니까 같은 책일 수도 있겠다. 제목 은 생각 안나지만.
은수 .....
태주 세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던데. 시간까지 정지된 거 같고.
혜린 연인들한테 딱이네.
준혁 그건 그 소설 느낌이겠지.
태주 아마 그렇겠죠. 어쨌든... 그거 보니까 꼭 한번 가보고 싶긴 하더라. (은수를 본다.) 은수씨 마음 이해해요.
은수 .....
도로 / 혜린의 차 안
혜린과 태주.
태주 난 백화점 앞에 내려줘.
혜린 집에 안가?
태주 사무실 들어가야 돼. 일 많다고 했잖아.
혜린 그거 정말이었어?
태주 그러게 사람 말 좀 곧이 들어라. 네 말만 옳다고 박박 우기지 좀 말고.
(빠진 부분 추가)
52-1. 도로/ 준혁의 차 안 (밤)
은수와 준혁. 두 사람, 약간 무거운 분위기다.
은수, 생각에 잠긴 채 창 밖을 보고 있다.
준혁 .....신혼여행 말이에요.
은수 !
준혁 다른 데로 가는 거 어때요?
은수 ...네. 좋아요.
준혁 (허탈한) 쉽게 바꾸네요.
은수 저도 그 생각 했거든요. 신혼여행은 역시 좀 더 북적거리고 재밌는 곳이 좋을 거 같아 요.
준혁 .....
은수 .....
백화점 사무실
텅 빈 어두운 사무실.
태주, 자리로 가서 스탠드를 켠다.
컴퓨터를 켜다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수와 준혁을 떠올린다.
웃으며 담소하던 은수의 모습. 점점 미치겠다.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간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은수네 오피스텔 건물 앞
준혁의 차가 선다. 은수, 준혁에게 인사하며 차에서 내린다.
곧 출발하는 준혁의 차.
은수네 오피스텔 로비
들어서는 은수. 멈칫한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태주가 서 있는 것.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태주, 은수에게 다가선다.
- 끝 -
<14부>
1. 은수네 오피스텔 로비 (밤)
들어서는 은수. 멈칫한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태주가 서 있는 것.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태주, 은수에게 다가선다.
태주 어떡하면 되겠니. 내가 어떡하면 되겠어!
은수 .....무슨 소리예요?
태주 그 자식이랑 결혼하지 마... 하지 마!
은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태주도 탄다.
은수 내리지 못해요?
태주, 닫힘 버튼을 누른다.
2. 동, 옥상
태주, 은수 손을 잡고 옥상으로 나온다.
은수 진짜 그만 하지 못해요? 왜 이러는 거야, 자꾸!
태주 너 좋냐? 그렇게 재밌어? 그 자식 옆에서 내 얼굴 보는 게 그렇게 즐겁냐구!
은수 !
태주 도대체 너랑 나, 서로 왜 이런 짓 하고 있냐구!
은수 ...
태주 솔직해져. 너도 괜찮지 않잖아.
은수 괜찮아요.
태주 다른 남자 품에 안겨서 내 얼굴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
은수 볼 수 있어요.
태주 !
은수 언제라도 당신 얼굴 똑바로 볼 수 있어요. .....보고 싶으니까!
태주 !
은수 꼭 보고 싶어. 당신 앞이 보이는 인생,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지 내 눈으로 꼭 볼 거야.
태주 !
은수 얼마나 행복하게, 얼마나 폼 나게 사는지 꼭 확인할 거야.
태주 한은수... 이러다 너만 망가져.
은수 두렵지 않아요.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으니까.
태주 !
은수 (돌아서려는데)
태주 (은수의 팔을 잡는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은수 내가 택한 길 가겠다는 거예요. 당신이 뭐라고 하든, 괴로워 죽든 말든.
태주 (피식 웃는다. 이내 얼굴이 굳어져) 그래, 한번 가보자.
은수 .....
태주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 끝에 뭐가 있는지 꼭 가서 확인해 보자구. 됐지?
은수 .....
태주 더 이상 나도 이러지 않을 거야.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거든. 네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네가 택한 인생 사는지 나도 똑똑히 두고 보겠어!
태주, 간다. 그런 태주를 뒤에서 바라보는 은수.
.케세라세라↲
.영화 & 드라마 대본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