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 13
(아리) 왜 다들 벌써 오세요? 생일 파티 안 해요?
[승원의 한숨]
(승원) 다정 씨가 좀만 참아 주시지
[한숨] 뭐라고요?
영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거 아니잖아요
(은하) 아프다고 뭐래요?
왜 도망을 치냐고요
왜 다정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만드냐고요
아, 영도는 다정 씨가 앞으로 힘들어질까 봐 걱정이 돼서…
별 상관이 없는 나도
심장 이식 얘기 듣고 다 찾아봤어요
(은하) 평생 약 먹어야 되고
또 수술받을 수도 있고 또 아플 수도 있고
나도 아는 걸 다정이가 몰랐겠어요?
알면 한 번 더 잡아 줄 수 있잖아요
(은하) 한 사람이 잡으면 뭐 해요 다른 쪽이 회피형 인간인데
아, 영도가 원래 그래요, 원래
남이 힘든 거 못 보고 자기가 힘든 쪽으로…
(은하) 자기 영혼 갉아서
남을 위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주영도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불편한 건 없으셨습니까?'
그게 강다정이에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한테 자기 침대 내주고
갑자기 떠난다면
문까지 열어 주면서 배웅해 주는 애라고요
- (철도) 그만해 - 뭘 그만해!
[어이없는 숨소리] (은하) 그러게
넌 왜 주영도 쌤을 3층으로 들여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
그렇게 치면
넌 최정민인지 뭔지하고 만나라고 등 떠밀었잖아
(철도) 다정이 너덜해진 거 영도 형이 챙기다가 저렇게 된 거고
이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 (철도) 그만하자 - 뭘 그만하냐고!
(철도) 너 지금
100% 영도 형 때문에 화난 거 아니잖아
아버지 오신다고 예민해졌던 거 여기다 푸는 거잖아!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아리) 조용, 영도 쌤 와요
(승원) 야, 영도, 영도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 (승원) 어, 왔어? - (하늘) 어
(영도) 다 여기 있었구나?
(하늘) 어, 우리 여기 다 같이 커피 마시려고
아이, 아까 다 마셨어
저녁은 내일 먹자 내가 일이 좀 있어서
- (하늘) 어 - (승원) 그래, 그럼
내일 먹자, 오늘만 날이냐 세월이 좀먹는 것도 아니고
그래
- (하늘) 가 - (승원) 가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문이 탁 닫힌다]
[하늘과 승원의 한숨]
[풀벌레 울음]
(다정) 엄마
(미란) 응
(다정) 사랑을 꼭 해야 될까?
[슬픈 음악]
그럼
인간이라면 해야지
왜?
인간은 먹고 자고 싸고
그런 걸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니까
엄마는 사랑 안 믿는 거 아니었어?
[미란의 한숨]
어떻게 사랑을 안 믿어
네가 증거인데
나는
누구 함부로 좋아하고 그러면
인생 꼬인다는 증거 아니었어?
인어 공주처럼
누가 그래?
'아무리 거지 같은 사랑도'
'이렇게 이쁜 거 하나는 남겨 준다'
넌 그걸 보여 주는 유일한 증거인데
내가 유일하면 태정이는 뭔데
걘 뭐
'이래서 낮술은 조심해야 한다'
그런 교훈 같은 거랄까?
[피식 웃는다]
태정이한테 다 일러 줘야지
(미란) 자
(다정) 응
[새가 지저귄다]
중문을 설치했네?
(철희) 오, 튼튼하네
[익살스러운 음악]
오, 문미란이!
우리 사돈이 여기 어쩐 일이야?
사돈 같은 소리
너 때문이라도 내가 다정이 못 준다고 했지?
(미란) 너야말로 왜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어?
여기 내 건물인데?
여기 내 딸 집이야
[헛웃음]
(철희) 여전하네?
하나도 안 늙었어
(미란) 어디서 보자마자 평가질이야 자기는 더 못생겨 가지고
다정이는 아직 자나?
깨워 봐, 얼굴 좀 보게
쓰읍! 조용히 안 해?
겨우 잠들었구먼
아니, 오랜만에 왔는데 얼굴 좀…
(미란) 아, 야!
애 깨우는 순간 네 대가리도 깨질 줄 알아
[헛웃음]
내려와, 커피나 한잔하게
하, 어디서 명령질이야
오라 가라 하지 마
[어이없는 웃음]
옛날 같으면 건물주한테 세입자가 막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거는 상상도…
(미란) 옛날 같으면 그렇게 돈 많다고 재수 없게 깝치다가
벌써 어디서 칼 맞고 사체로 발견됐겠지
옛날에는 CCTV도 없으니까 범인도 못 잡아서
넌 억울하게 구천 떠도는
눈 밑 시커먼 귀신 되는 거지
어디서 건물주라고 유세를, 쯧
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애 얼굴 좀 보자는데
네 애들이나 챙겨
은하 졸업식에는 오지도 않아 놓고선
아직도 그 소리냐?
그럼 내가 몸뚱이가 하나인데 내가 어떡하냐
몸을 쪼갰어야지!
(미란) 상반신은 철도한테 하반신은 은하한테 갔어야지!
쯧, 까불고 있어, 그냥
대가리 조심!
하, 참 나 [흥미로운 음악]
(철희) 어, 우리 주 선생 어디 갔나?
- 반말? - (철희) 나 여기 건물주인데
또 반말
- 여기 간호사? - (미경) 어, 나 여기 간호사
[개들이 왈왈 짖는다] [철희의 탄식]
(하늘) 아, 제 환자들이 화가 많이 났나 봐요
원래 동물 병원 들어오실 때는 조용히 하셔야 되거든요
[못마땅한 탄성]
[어이없는 숨소리]
[쓱쓱 비질 소리가 난다]
[철희의 짜증 섞인 신음] (아리) 어서 오세요
[철희의 성난 한숨]
(철희) 여기! 시원한 물 좀
[어이없는 웃음]
(아리) 알바생은 소중한 가족입니다
반말 모드는 꺼 주세요
여기 사장 어디 있냐?
(아리)
[다가오는 발걸음] (아리) 나가 주세요
(철도) 어, 아버지
여기로 바로 오셨어요?
너희들 잘 왔다
여긴 왜 다들 화가 나 있냐?
(철도) 예? 누, 누가요?
(은하) 지금 오셔서 다들 화나게 만드신 거겠죠
그거 특기시잖아요
[헛기침]
1, 2, 3, 4층 싹 다 한번 모아 봐
거, 계약서에 써 놨지?
(승원) 여기 있네, '추가 조항'
(하늘) '임차인은 매년 1회 임대인의 소환에 응한다'
(승원) '소환'
뭐야, '도깨비'야?
'불참 시 벌금 100만 원'?
(하늘) 이런 게 있었다고?
(승원) 그러게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어야지
계약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까딱하면 너 촛불만 불어도 소환당해
아, 영도나 다정 씨 계약서에도 이게 다 있는 거예요?
예
[승원의 웃음]
야,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가도 돼?
아니
가도 되죠?
[어색한 웃음]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커피 머신 작동음]
[컵을 탁 내려놓으며] 점심은?
(영도) 예, 먹었습니다
(미란) 확실해?
(영도) 예
아프다며
지금은 괜찮습니다
나와 줘서 고마워, 다른 게 아니라
그때 강릉에서
내가 아프지만 말라고 했던 거 말인데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미란) 죄송하지 마
그거 하지 마
내가 너무 무식한 소릴 했어
살다 보면 누구든 아플 수 있는 건데
그게 꼭 잘못인 것처럼 말했잖아
미안해
제 상황에 대해서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살다 보면 타이밍 놓치는 일이 한두 개인가?
(미란) 속여 먹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그럴 때마다 잘잘못 따지면
세상에 상종할 사람이 어디 있어
다정 씨는…
(미란) 멀쩡해
애처럼 울더라
그렇게 우는 건 또 처음 봤네
이럴 때 웃으면 미친 건데 우니까 정상인 거지
너도 울었을 거 아니야
강릉에 맞바람 치는 스폿이 있어
눈 뜨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줄줄 나는 데라서
아무나 와서 울고 가기 좋아
한번 오든가
네
(미란) 버스 시간 다 됐네
지갑 갖고 왔지?
(영도) 예
(미란) 돈 달라는 거 아니야
[부스럭거리며] 음, 이거
지갑에 넣어 두라고 [영도가 부스럭거린다]
(무당) 이 사람이 지금 살아 있어?
(미란) 아, 뭔 말이야
(무당) 이 오빠는 태생이 촛불이라
들숨 날숨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미 심지가 다 탔어
근데 살아 있잖아
그냥 이 오빠야 만나면 밥이나 한 끼 먹여 줘
마음은 주지 말고
벌써 줬으면?
[한숨]
(무당) 언니야 가신단다 배웅해 드려라! 아유
(미란) 아, 앉아, 아유, 진짜
앉으라고, 좀!
[무당의 당황한 신음]
아, 진짜
아, 이런 말을 듣고 내가 지금 어떻게 가? 어?
자기 같으면 딸내미 눈에 피눈물이 난다는 말을 듣고
집에 가서 누룽지 긁어 먹고 잘 수 있겠어?
[책상을 툭툭 친다] 방법을 찾으라고
잘 챙겨 먹어
들어가세요
[차분한 음악]
(무당) 만약에 이 오빠야가
태어난 시간이 딱 요 시간 요 때면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촛불 앞을 막고 서 있을 때거든
그러면 아무리 누가 입바람을 세게 불어도
그 촛불이 안 꺼지겠지?
(미란) 그러다 고양이한테 불이라도 붙으면?
[무당의 헛웃음]
(무당) 이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야
(미란) 앞으로 누가 태어난 시 물어보면 꼭 이렇게 대답해
너 이제 목숨 아홉 개야 내가 돈 주고 샀어
성당에다 촛불도 켜 놓고 절에다 등불도 달아 놨으니까
아홉 개보다 더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미
두세 개는 썼어도 괜찮아
그간 격조했습니다
(철희) 이렇게 귀한 시간 내 줘서 고맙고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에서
자, 박수 한번 치고 시작합시다
[승원의 환호]
(승원) 구구빌딩! 구구빌…
근데 그쪽은 누구신가?
아, 영도 친구입니다 하늘이 친구이기도 하고요
주 선생 친구구먼
(철희) 근데 여긴 왜?
영도가 좀 늦는대서 제가 미리 와 있으려고요
(하늘) 죄송합니다
- 뭐 하는 친구인가? - (승원) 방송국 다닙니다
지금 짝짓기 프로그램 준비하고 있고요
어, 좋은 일 하는구먼
(철희) 쓰읍, 여기도 짝 없는 사람 하나 있는데 어떻게 안 되나?
아, 그만 좀 하세요
내가 뭘 했다고 그만을 해 보라는 선도 제대로 안 보면서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저만 결혼 안 했어요?
(철도) [작은 소리로] 아, 또 시작이네
[다가오는 발걸음]
(승원) 어, 영도 왔네요 이리 와, 이리 와
(철희) 아유, 주 선생!
이게 얼마 만인가?
거기 앉아, 앉아
(영도) 안녕하셨어요?
(철희) PD 양반? 이쪽으로
(승원) 예
(철희) 다정이랑은 얼굴은 알지? 아래위 사니까
둘이 인사는 제대로 나눴나?
썩 나눠
- (철희) 짝짓기 프로그램? - (승원) 맞습니다
(철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거는 뭐
이야, 사실상 어마어마한 인연이라고 봐야지, 응?
[철희의 웃음] (하늘) 그럼요, 아버님
(승원) 암요, 암요
(철희) 근데 그 짝짓기에 왜 은하를 안 데려갔나? [무거운 음악]
저 개 선생은 데려갔다면서
(은하) 하, 그만 좀 하세요
(철희) 넌 나한테 그만하라는 말만 하냐?
(은하) 저한테 결혼하라는 말만 하시잖아요
(철희) 아휴, 먹어라
(다정) 하룻밤 사이
(철희) 먹어
(다정) 세상이 지뢰밭이 됐다
(다정) 죄송해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철희) 어쩐지 네 엄마가 너 못 깨우게 하더라
몸이 안 좋으면 얼른 들어가서 푹 쉬어
(다정) 옆에 있기가 힘들다
집에 가면
옆에 없어서 힘들겠지
[스위치가 달칵 켜진다]
(다정) 살살 트세요 그거 수압 엄청 높여 놔서
[함께 당황한다]
[다정의 비명]
[흥겨운 음악이 크게 흘러나온다]
[물소리가 들린다]
[의미심장한 음악] [통화 연결음]
(진복) 오늘도 여긴 안 보여
그럼 일단 최정민 레지던스는 철수하고
이안 체이스 쪽으로 더 붙자고
어, 그래
[휴대전화 조작음]
(호) [비닐을 부스럭거리며] 아이고
[호의 힘주는 신음]
영장 나왔대요
빨리도 나온다
야, 뭐 하러 타, 내려, 바로 들어가자
[성준이 스위치를 달칵 누른다]
(성준) 하…
엉망진창이네요, 씨
(호) 여기서 뭔 일 있었는데요?
이거 피인데?
[카메라 셔터음]
[변기 수조 뚜껑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점검구를 탁 연다]
[어두운 음악]
(재식) 붉은 피 붉은 주걱
2003년 3월 15일
열여덟 살 소년은
여자가 있는 곳으로 남자를 이끌었다 [초인종이 울린다]
(명자) 누구세요? [대문이 덜컹 열린다]
[명자의 비명]
[떨리는 숨소리] (재식) 마치 신을 모시는 시동처럼
겁에 질린 채였다
[명자가 칼에 푹푹 찔린다]
여자의 배를 거듭 찌르는 남자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남자의 힘주는 신음]
[명자의 겁먹은 신음] '해충을 죽일 때 예의는 필요치 않지'
[칼로 푹푹 찌른다] [거친 숨소리]
'대신 심판이 필요할 뿐이야'
남자는 여자의 입에
붉은 주걱을 쑤셔 넣었다
(재식) 3층의 사냥개 [어두운 효과음]
남자는 사냥개를 3층으로 유인했다
그때 그 열여덟의 소년이
지금의 나를 죽이려 보낸 사냥개라니
그건 완벽한 제물이었다
[천둥이 콰르릉 친다] [푹 찌르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힘주는 신음] [광훈의 괴로운 신음]
[남자의 힘주는 신음]
[거친 숨소리]
(재식) 누가 보냈냐?
이 새끼냐?
(재식) 어설픈 용기의 대가
2018년 6월 3일
인터넷에 쓸데없이 떠들어 댄 탓이었다
어설픈 형사 하나가 그걸 주워 읽고는
끈질기게 남자의 영역을 침범해 왔다 [여자1이 말한다]
남자는 [어두운 효과음]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재식) 저기요, 선생님
[무거운 음악]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 네
[전철 소리가 들린다]
[라이터를 딸각거린다] [전철 경적]
[정범이 칼에 푹 찔린다] [정범의 신음]
[재식의 힘주는 신음] [정범의 신음]
(재식) 경찰이라 일이 좀 복잡하게 됐는데
이거 같이 처리해야 되지 않겠어?
[어두운 효과음]
[종이를 사락거린다]
(성준) 이게 다 뭐예요?
(재식) 나는 순전히 내 자유 의지로 이것을 쓰고 있다
2003년 3월 13일 21시 [영상 속 라커 문이 탁 닫힌다]
나는 김명자를 죽였다
2018년 6월 3일 14시 [어두운 효과음]
나는 이정범을 찔렀다
[어두운 효과음]
나는 조광훈을 죽였다
[성준이 종이를 사락거린다]
(호) 이거 설마
자기가 살인했던 걸 쓴 거예요?
[어두운 효과음]
(성준) 저, 정범이…
[성준의 당황한 숨소리]
(호)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진복이 종이를 사락거린다]
(진복) 박호
네가 이거 사건 보고서하고 사실 비교하고
영도 오라 그래서 같은 사람이 쓴 건지 확…
아, 아니다
거긴 놔두고
너 이거 이안 체이스 몸에서 나온 거랑 같은 건지 확인부터 해 봐
(성준) 예
[멀어지는 발걸음]
(철도) 같이 내 줘, 병훈이 축의금
[아파하는 숨소리]
너 못 가는 거야?
(철도) [살짝 웃으며] 가게 때문에
아, 나도 너한테 부탁할까 했는데
형은 꼭 가야지, 형이 걔 멘토인데
(철도) 나는 형 부르면서 어쩔 수 없이 초대한 거고
[봉투를 부스럭거린다]
거기 호텔 내부도 아니고 야외잖아
다정이 안 마주칠 거야
[한숨]
아…
[비닐을 부스럭거린다]
(철도) 먹을래?
[피식 웃는다]
너 다 먹어
[살짝 웃는다]
갈게
넌 참 인연을 질기게 끌고 가는 경향이 있어
과외 했던 애 결혼식까지 가냐?
그래 봤자 두 명이고
한 명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싶고
[한숨]
내가 과외 했던 앤 감옥 갔는데
뭘 가르쳤길래?
가르쳐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지 거기는
투 부정사 가르칠 때부터 애가 좀 부정적이긴 했어
[봉투를 부스럭거린다]
[봉투를 툭 내려놓는다]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문이 탁 닫힌다]
(다정) 나 왔네
(은하) 피곤해 보이네?
- (다정) 도와줄 거 없어? - (은하) 없어
- (다정) 올라갈게 - (은하) 어
(아리) 언니!
이거 드세요
아, 제가 돈 내는 거예요 그냥 퍼 주는 거 아니고
너 힘들게 알바한 돈인데 이걸…
(다정) 잘 마실게
진짜 고마워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아리) 아, 언니, 혹시
[문이 탁 닫힌다] 소개팅하실래요?
저 주말에 알바하는 PC방 사장님 아직 싱글이거든요
- (철도) 누가 소개팅해? - (아리) 다정 언니요
제가 시켜 주려고요
다정이가 지금 무슨 소개팅을 해
다정이가 왜 소개팅을 못 해?
너무 할 수 있지
넌 너무 그러지 좀 마
[은하의 어이없는 숨소리] 내가 뭐
다정이가 소개팅을 못 할 이유가 뭔데
어, 저기, 난 이제 올라갈까 하는데
(아리)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 영도 쌤처럼 잘생긴 건 아닌데 착해요
되게 착하고
착해요
언니, 근데
산짐승같이 생긴 스타일은 좀 별로예요?
잘 마실게
[살짝 웃는다]
(은하) 가
(사회자) 신랑 신부, 입장!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객들의 환호]
(하객1) 브라보!
축하한다!
(유경) 쿠션이요? 위치가 어딘데요?
하, 네, 알겠습니다
[휴대전화 조작음] [영어] 아, 비상사태
[한국어] 903호 이벤트?
(유경) 아, 퀵 안 된다고 선물 찾아와 달래요
나 이거 빨리 부탁할 사람 찾아야 돼
근데 매니저님 왜 퇴근 안 하고 여기 계세요?
무거운 거야?
아, 쿠션이래요
위치가 어딘데?
(유경) 걸어서 5분? 10분?
- 내가 갔다 올게 - (유경) 진짜요?
아, 약간 피곤해 보이는데
피곤해야 잠을 잘 수 있지
(다정) 위치 보내 줘
[다정의 한숨]
(아이1) 너 닥터 할로우랑 내 블랙필즈랑 바꿀래?
- (아이2) 아니 - (아이1) 왜?
(아이2) 닥터 할로우가 훨씬 안 나와
(아이1) 그럼
[차분한 음악] 베드 초이스 두 개랑 바꿀래?
- (아이2) 아니 - (아이1) 왜?
(아이2) 닥터 할로우가 훨씬 안 나와
(다정) 안녕하세요?
허유경 씨가 예약한 쿠션 가지러 왔는데요
(사장1) 아, 저거 두 개예요
차에 실어 드릴까요?
(다정) 아, 아니요, 걸어왔는데
헐
[발랄한 음악]
(아이3) 엄마! 치킨, 치킨!
(여자2) [놀라며] 어머 진짜 치킨이 있네? 우아 [신호등 알림음]
(학생1) 저런 거 왜 사는 거야? [학생들의 웃음]
(학생2) 네가 물어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오토바이 경적]
개업했어요?
멋지다!
(사회자) 네, 오늘 이 결혼식의 축가는
신랑이 직접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신부가 신랑 노래에 춤을 춘다고 합니다
[하객들의 박수와 환호] [사회자의 웃음]
네, 두 사람의 실력을 잘 아는 저로서는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여러분 역시나 기대가 되시죠?
(하객들) 네!
(사회자) 그럼 큰 박수로 신랑의 축가를 청해 듣겠습니다
[불안한 음정으로] ♪ 아직 하나도 ♪
(신랑) ♪ 달라진 게 없는데 ♪
[하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계속된다] ♪ 우린 아직 모르는 사이일 뿐인데 ♪
♪ 난 어느새 마음속에 내려앉은 ♪
[감성적인 음악]
(사회자) 신랑 신부 행복한 미래로 행진!
[하객들의 환호]
(하객2) 잘 살아라!
[폭죽이 펑펑 터진다]
(영도) 자
[피식 웃는다]
[다정의 당황한 신음] [쿠션이 툭 떨어진다]
(다정) 그냥 두세요
이건 아니에요
난 그냥 이것만…
(다정) 몰랐어요?
헤어지는 게 이런 거잖아요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주는 거고
걱정돼도 걱정하면 안 되는 거고
[애달픈 음악]
어떤 걸 봤을 때
그걸 한 번에 알아듣고
같이 웃어 줄 사람이 딱 한 명밖에 없는데
그 사람한테 말도 못 하는 거고
이런 거 편하게 고마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요
그럴 거면
강릉에 같이 가면 안 됐고
눈 오던 날 미친 짓도 하면 안 됐고
친구 하자고 했을 때
내가 돌아가면 안 됐고
옥상에서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됐고
여기까지 지우는 데도 너무 오래 걸릴 건데
다른 기억까지 보태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하필이면 이런 꼴을 보여서 지금 좀 기절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제발
못 본 척하고 가 주세요
[콧노래를 부른다]
(감독) 거울 닦고 있다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변기에서 보글보글 거품 나온다
쿠르릉 물소리 들렸다 [물소리가 쿠르릉 들린다]
메이드 돌아본다!
큐!
[긴장되는 음악] [콜록거린다]
[놀란 숨소리]
[힘겨운 숨을 내뱉는다]
귀, 귀, 귀… 귀신이다!
[달려가는 발걸음]
[감동적인 음악]
[감격한 숨소리]
드디어 내가 이곳에 돌아왔구나
반갑구나, 객사여
[웃음]
(감독) 컷!
(남희) [한숨 쉬며] 아이고, 야, 야 고생이 많다, 야
그러니까 공주가 왜 변기에서 나오고 그래, 어?
(가영) 내 말이
만날 예쁜 역할만 하는 거 지겨워서 좀 웃겨 보고 싶다 그랬더니 [문이 탁 열린다]
이런 걸 써 주네 [문이 탁 닫힌다]
[흥미진진한 음악] [작은 소리로] 야 나 그거 기사 난 거 봤어
(가영) 그래?
- '좋아요' 눌렀어? - (남희) 아, '좋아요'를 어떻게 눌러
야, 아이돌들은 막 그런 거 걸리면 핸드폰 다 뺏기고 그러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남희) 기다려 봐, 걔 번호 뭐야?
- 010 - (남희) 어
(매니저) 예? 누구시라고요?
(남희) 아, 그…
김남희요, 그, 유명 배우 김남…
작년에 TVC에서요 연기 대상 받았잖아요
예, 그게 바로 접니다
패트릭 씨 좀 바꿔 주시겠어요?
(매니저) 김남희 배우라는데?
[물건을 탁 내려놓는다] 아, 김남희…
어? 저, 전화를…
(패트릭) 아, 예, 형님
(가영) 나야
아, 예, 형님
어떻게 전화를 주셨죠?
[가영의 웃음]
이거 남희 오빠 폰이야
뭐 하고 있었어?
형님 생각 하고 있었죠
너무 보고 싶어요
형님, 어제 제 꿈에 나온 거 아세요?
나 꿈에서 뭐 했어?
(패트릭) 아, 그게, 그…
형님이랑 저랑 같이 사우나 가는 그런 건데
그, 그러니까 그게, 음…
[피식 웃는다]
- 뭐야 - (남희) [작은 소리로] 왜, 왜 [웃음]
- 왜, 왜, 뭐래, 뭐래? - (가영) 어
- 뭐래? 뭐래? - (가영) 나 지금 촬영 중
(가영) [애교스럽게] 나 또 변기에서 나왔어
응
알았어
녹음 잘하고
안녕
[휴대전화 조작음] 어때, 응? 좋아?
- 고마워, 오빠 - (남희) 에이그
(남희) 조심해, 항상
생큐
[문이 탁 여닫힌다] [벅찬 숨소리]
[통화 연결음]
헬로, 갤럭시?
강다정이 전화를 안 받네?
설마 내가 생일 파티 안 가서 삐친 건 아니겠지?
나 일이 좀 생겨서 여기저기 수습 좀 하느라고
(은하) 기사 봤어요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어떡해
파티는 잘 끝났어요?
(은하) 하, 여기도 안 괜찮아요
왜요? 무슨 일 있…
주영도가 뭐라고 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
너 여기 와도 돼?
(가영) 안 되지
열애설 터졌는데 전남편 찾아오는 게 말이 되겠니?
많이 힘들어?
[한숨]
내가 지금 내 문제 때문에 여기 온 거 같아?
내가 결혼해 달라고 결혼해 줄 때부터 너 바보인 건 알았는데
너 이 정도로 모질이였니?
친구 하자고 한 것도 모자라서 강다정한테 뭐라고 했다고?
아, 저…
그 얘기 하러 온 거면 나중에 병원 끝나고
(가영) 너
이 정도면 너도 상담받아야 돼
네가 연애 포기하면 인류를 구할 수 있대?
나 살리고 오 간호사님 살리고 여기저기 다 구하면 뭐 해?
좋아하는 사람 마음은 죽창으로 푹푹 쑤셔 놓고
뭐가 그렇게 무서워?
네가 강다정 못 구해 주는 거?
강다정 우는 거?
그래서
강다정 지금 깨춤 추고 웃고 있대?
[미경의 한숨]
사격 중지
아군이었네
[함께 한숨을 쉰다]
(영도) 가영아
나 사고 낼 뻔했어
(가영) 그래서?
옆에 누가 타고 있었으면
(가영) 난 어제 장롱에 새끼발가락 찧었어
그럼 난 이제 우리 집 장롱 다 불태워야겠네?
너무 다른 얘기잖아
내 기준 똑같거든?
너 강다정 씨 좋아하잖아
친구라며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 봐
생각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영도) 그래, 내가 잘못한 거 맞아 근데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는
아, 조용히 해 봐!
나 생각하잖아
[거친 숨소리] [잔잔한 음악]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나 네 편이야
그런 거 아니었으면 벌써 강다정한테 가서 너 버리라고 했어
근데 내가 너한테 목숨을 빚졌잖아?
나 더 이상 강다정한테 나쁜 친구 만들지 말고
너도 좀 행복하면 안 되니?
(가영)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내가 너 걱정하는 게 말이 돼?
이거 내 캐릭터 붕괴라고!
[가영의 한숨]
내가 내 전남편이 이렇게 멍청하게 늙어 가는 걸
봐야겠니?
[한숨]
(정아) 뭐가 보고 싶어요? [어두운 음악]
(정아) 동생분이 죽기 전날?
죽던 날?
[USB를 툭 내려놓는다]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할 말이 많아질 테니까
(영상 속 재식) 네가 나 죽이라고 보낸 거 다 아는데
(재식) 얘는 너무 쉽게 끝났어
[탁 소리가 울린다] [어두운 효과음]
딱 지금 네 눈처럼 흔들리면서
김명자
내가 죽인 것 같지?
이정범
내가 죽인 것 같지?
아니야
다, 다, 다 네가 죽인 거야
그때 네가 날 찾아와서
[째깍거리는 효과음]
[다가오는 발걸음]
직접 쓴 거 맞아?
[툭 울리는 효과음]
증명해 봐
[어두운 효과음]
[무거운 음악]
[어두운 효과음]
(재식) 넌 언제든 죽을 수 있어 [떨리는 숨소리]
술 한 잔
콜라 한 모금에도
[울먹인다]
네가 알아서 안 죽으면
다음 시체는 구구빌딩 4층에서 나올 거야
[쿵 소리가 들린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이렌이 울린다] [자동차 경보음]
[고양이 울음]
[노트북을 탁 닫는다]
[떨리는 숨소리]
[한숨]
[한숨]
[어두운 음악]
[째깍거리는 효과음]
만약에 얼굴 보고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면
이름 없던 쌍둥이라고 하면 알 거야
(소년 체이스) 네가 문을 열게만 하면
그다음엔 그 사람이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넌 무서워할 거 없어
[소년 체이스의 한숨]
야
내가 한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알지?
어?
이 일만 끝나면
이제 우릴 괴롭혔던 사람들은 세상에 없어
넌 아직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왜냐하면 난 의사가 될 거고
너 혼자 안 둘 거야
[한숨]
(소년 체이스) 이 일만 끝나면
우리 괴롭혔던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체이스) 황재식만 없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니까
그것만 끝내면 미국으로 와
그럼 돼
(영도) 딱 한 번만 검은 세상에 발을 담그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목마르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장2) 안녕하세요
[다가오는 발걸음]
아!
아, 그때 오신 분 맞죠?
[사장2의 웃음]
아기가 너무 이뻐서 딱 생각이 나네
[사장2의 웃음]
아, 혹시 집 가까워요?
녹기 전에 아기 갖다줘요
- 이걸 왜… - (사장2) 오늘부로 장사 접어요
마지막 손님한텐 돈 받기 그래서
(사장2) 나는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들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차분한 음악]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사장2) 이거 별거 아니지만
너무 가난해도 못 먹고
너무 슬퍼도 못 먹잖아요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있는 거면
딱 적당한 만큼 행복한 거니까
[비닐을 부스럭거린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네
(정아) 지금쯤 영상을 다 봤겠죠?
이번 일 한 번만 잘해 주면 [어두운 음악]
원하는 대로 말끔하게 마무리가 될 거예요
다른 걱정 말고
딱 한 번만 선 넘고 돌아와요
그럼
수술 잘 부탁해요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한숨]
[부스럭거린다]
[뚜껑을 탁 연다]
[밝은 음악] 친구분 1층에 그만 좀 버리시면 안 될까요?
보다시피 카페 미관상 너무 안 좋아서요
[출입문 종이 딸랑 울린다] [승원이 풋 웃는다]
(승원) 내 얘기야, 내 얘기
- [승원을 딱 때리며] 자랑이다 - (승원) 아!
- (승원) 야, 하늘아, 너도 한마디 해 - (하늘) 아, 치워
- 생일을 - (민재) 축하합니다
(민재) 예스
(승원) 자, 앞에 보고 한 말씀 해 주세요
아, 네, 뭐 갑자기 부탁받고 말씀드리는 건데
누구신지는 잘 몰라도
- (여자3) 아… - (승원) 주영도요, 주영도
(영상 속 여자3) 아, 네, 뭐
- (영상 속 여자3) 주영도… - 딴 남자 이름 부르지 마
(영상 속 여자3) [애교스럽게] 어, 아유, 알았어, 안 부를게, 어?
내가 주영도인지 뭔지 꺼지라고 할게
(하늘) 아이고, 저게 축하냐? 꺼지라는 게? [영상 소리가 흘러나온다]
(승원) 신선하잖아 언제 영도가 저런 소리 들어 봤겠냐?
[리모컨 조작음] [하늘의 헛웃음]
(영도) 그래, 고맙고 또 고마운데
[승원을 툭 치며] 너무 고맙다, 됐지?
근데 내년부터는 제발 이거 좀 하지 마 너무 민폐야
이거 다 모아서 칠순 잔치 때 쭉 이어 틀면 완전 울컥한다니까?
(승원) [손가락을 딱 튀기며] 아, 맞다
칠순 잔치 때 쓸 리액션 컷도 따야겠다
(영도) 아, 그것 좀 하지 마 [카메라 조작음]
(하늘) 놔둬 쟤 저거, 저거 직업병이다
(승원) 술
(영도) 아, 왜 저 카메라는 고장도 안 나냐
[냉장고 문이 탁 여닫힌다] (하늘) 아, 쟤가, 쟤가 비위가 좋더라고
승원이 얼굴 찍고도 아직 살아 있는 거 봐 [다가오는 발걸음]
[하늘의 웃음]
(승원) 야
술이 없는데?
잘됐네, 그만 마셔
지금 그만 마시는 건 법에 걸릴걸?
(승원) 판사님, 저는 결코 그만 마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야, 네가 나가서 좀 사 오면 되겠다
(하늘) 가는 김에 아이스크림도 좀 사 오고
(영도와 하늘) - 뭘 또 사 와, 야, 그만 가, 어? - 아, 먹자
영도는 뭐 필요한 거 없어?
침묵, 정적
혼자만의 시간
[손가락을 딱 튀기며] 오케이 편의점에 다 있는 거네
(승원) 내가 다 사 올게
너희들, 나 없을 때 둘이 너무 재밌게 놀지 마
내 욕 하는 건 괜찮은데 둘이 비밀 이야기 하기 없기
갔다 와서 확인해야지
(하늘) 아휴, 저거 언제 철드니, 저거
[문이 탁 열린다]
난 좀 들어가서 쉴까 봐 [문이 탁 닫힌다]
- 너도 피곤하면… - (하늘) 영도야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철컥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너 괜찮은 거지?
[영도가 피식 웃는다]
내가 뭐 해 줄까?
[한숨]
[새가 지저귄다]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뭐야, 또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영상 속 영도가 피식 웃는다]
[휴대전화 진동음]
[영상 속 영도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승원) 네, 봤어요?
이걸 왜 나한테 보낸 거예요?
아, 그냥 뭐, 영도 마음이 그렇다고요
[한숨]
한 대 안 때리고 있는 것도 힘든데
걱정까지 해 줘야 돼요?
다정이가 이거 보는 일 없을 거예요
(은하) 나도 바로 삭제할 거고
아, 정말 잔인하시네
(은하) 정말 잔인한 게 누군데
다정이한테 이거 보내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예요
가만 안 둬요 [통화 종료음]
[짜증 섞인 숨소리]
[은하의 헛기침]
안가영 씨는 그쪽으로 바로 온대
(은하) [웃으며] 어
[자동차 시동음]
[가영의 힘겨운 신음]
[가영의 한숨]
(가영) 아, 자고 갈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되나?
그냥 아무 의자나 갖다 놓고 그늘에서 있다 갈까 봐요, 응?
우리가 그러니까 꼭 치자면서요
그러니까 내 말 듣지 말라 그랬잖아요 내가 뭘 알아?
(다정) 이거 이렇게 두면 안 되고 땅에 박아서 고정시켜야 돼
(은하) 어?
그냥 둬도 될 거 같은데
(다정) 그러다 바람 불면 부산까지 날아갈 수도 있어
[부드러운 음악]
[그릇을 탁 내려놓는다]
부산에는 영도 다리가 있고
(가영) 뭐라고?
아니에요 [은하의 한숨]
아, 이거 언제 다 바닥에 고정시켜?
(다정) 어, 다 풀어
[은하의 한숨]
[풀벌레 울음] [새가 지저귄다]
(가영) 나…
주영도 이야기 좀 해도 되나?
(은하) 난 좀 듣기 싫은데
[가영의 어이없는 웃음]
아, 갤럭시 박한테 양해를 구한 건 아니었지만
- 왜요? - (은하) 갔잖아요
간 사람 얘기 뭐 하러 해요
가고 싶어서 꼭 간 건 아니지 않나?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은하) 결국은 없어도 되니까 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없으면 죽을 거면
다정이가 가라고 떠밀어도 거기 있었겠지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는 말하지 마
주영도 씨 나 많이 좋아해
내가 딴 데 보고 돌아보면 나만 보고 있어
[차분한 음악]
나 만나러 올 땐 막 뛰어오고
내가 바빠서 밥 못 먹었다고 하면 너무 속상해하고
내가 한 개도 안 웃긴 말을 해도
바보같이 계속 웃어
근데 버리고 갔잖아
그런 사람이 나 버려 놓고 갈 때 마음이 어땠을까
(은하) 어쨌든 버리고 갔잖아
그러라고 내가 먼저 화냈으니까
자기가 말 못 하니까
네 입에서 그런 소리 나오게 만든 거잖아
난 해 줄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나 때문에
딴것도 아니고 심장이 아프다는데
(영도)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손 하나가 쑥 들어와서
심장을 꽉 쥐었다 놓은 것처럼
이사 오고 겪은 일들
주영도 씨가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무너졌을지 상상도 안 돼
내가 그거 다 견디고
목구멍의 칼도 꺼내게 도와줬는데
나는 반창고 하나 못 붙여 준 게 너무 화나
해 줄 수 있는 게
그냥 꺼지는 거밖에 없다는 게
(가영) 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같이 있어 주면 되지
정말 걸음 더럽게 느린 거북이 같은 인간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고
그냥 기다려 주면 되지, 어?
아…
꼭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고
(은하) 너랑 20년째 친구인데
나 헛살았나 봐
네가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지냈으면 했는데
그래야 내가 너한테 마음대로 기댈 수 있으니까 그랬던 거 같아
네 마음이
거기까지라고는 생각 못 했어
미안
[한숨]
나 여기서 내릴까 봐
[방향 지시 등 작동음]
(은하) 왜?
저기 잠깐 앉아 있고 싶어서
왜?
(다정) 미친 짓이
그리워서?
[은하가 피식 웃는다]
(은하) 같이 가? [다정이 피식 웃는다]
아니
(은하) 기다려?
아니
[휴대전화 진동음]
술자리에서 한 말을 그걸 왜 네 마음대로…
[한숨]
내가 그거 안 들키려고 정말 미치겠네, 진짜!
(승원) 아니, 은하 씨가 자꾸 너한테 너무 나쁜 놈이라고 하니까
나쁜 놈 맞잖아
(영도) 그럼 아니야?
그냥 나만 나쁜 새끼 되면 되는데 그걸 왜…
아, 왜 그런 거야, 진짜!
영도야, 은하 씨가 아직 다정 씨한테 안 보여 줬을 수도 있잖아
[한숨] (하늘) 그러니까…
(승원) [작은 소리로] 보내 줬대, 아까
[문이 달칵 여닫힌다]
[문이 철컥 열린다] [도어 록 작동음]
[문이 쾅 닫힌다] [도어 록 작동음]
[하늘의 한숨]
영도
말은 저렇게 해도 나한테 화낸 거 아닌 거 알아
너한테 화낸 거 맞아
그래?
나한테라도 화내면 좋지, 뭐
다 참고 사는 것보다는
[하늘의 한숨]
(승원) 씨…
[차분한 음악]
(영상 속 하늘) 아까 승원이가 한 말 신경 쓰지 마
네 편 든다고 한 말이니까
(영상 속 영도) 다 맞는 말인데, 뭐
쟤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안 하잖아
(하늘) 아, 근데 나도 사실 좀
놀랐거든
너 강다정 씨한테
왜 그렇게까지 말을 심하게…
그래야 다시 가고 싶어도 못 가지
'친구 하자'
뭐, 그런 말로는 내가 안 참아지는 걸 알았으니까
가고 싶긴 하구나?
너 얼마나 취했어?
(하늘) 아, 나 많이 취했지
내일 되면
이거 절대 기억 안 나지
[영도가 피식 웃는다]
[한숨]
너무 가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10년이든 20년이든 시간 돌려서
또 아프고 또 수술받고 그거 다 다시 해도 좋으니까
다시 같이 있고 싶어
[문소리가 달칵 흘러나온다] (영상 속 승원) 맥주 왔다!
(영상 속 하늘) 아이스크림은?
(영상 속 승원) 까먹었다
(영상 속 하늘) 다시 갔다 와
[영상 속 영도의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엘리베이터 도착음]
(다정) 나도 다시 할 수 있어요
코뿔소에 또 받히고 떨어지고
그거 다 할 수 있어요
(다정) 그러니까
이게 진짜면
진심이면
[감성적인 음악]
(다정) 여기로 와 줄래요?
(영도) 내가 망설이고 도망치는 사람이라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미안해요
그런데
다정 씨 옆에 있고 싶어요
[달려오는 발걸음]
(다정) 내가
옆에 있어도 괜찮겠어요?
[타이어 마찰음]
[안전띠가 달칵 풀린다]
(영도) 네
[차 문이 탁 열린다]
(다정) 내가 [차 문이 탁 닫힌다]
주영도 씨 도와줘도 돼요?
[달려가는 발걸음]
[거친 숨소리]
방법은 아직 잘 몰라요
(영도) 그래 줄 수 있어요?
(다정) 네
[신호등 알림음]
[발걸음이 울린다]
[아련한 음악]
[탁 소리가 울린다]
(다정)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어?'
'어쩌다가 그렇게 좋아진 거야?'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도 될까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발아래에 떨고 있던 들꽃 하나가
울타리를 만나고
작고 동그란 위로를 만났을 때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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