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16
(웅) '그러한 감정을 나열한 그의 그림은'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어린아이의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내 인생이 한 줄로 평가되는 말이
불쌍하더라, 네 인생이
(누아) 뭐든 버리기 쉬운 만큼 네 인생은
별거 아닌 거 같으니까
그렇게 살면
뭐가 남냐, 네 인생엔?
[감성적인 음악]
(웅) 이보다
정확한 게 있을까요?
[새가 지저귄다]
(웅) 음…
아무것도 안 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연수) 선생님
(연수) 너 전교 몇 등이야?
(웅) 267등
우리 전교생…
267명
그림은 그냥 취미로 할래
알잖아
낮에는 햇빛 아래 누워 있고
밤엔 등불 아래 누워 있는 게 내 꿈인 거
인생 피곤하게 사는 거 딱 싫다
다시 그리지, 뭐
(교수) 최웅 자네는 욕심이 없나 봐?
(웅) 저보다 더 간절한 학생한테 주세요, 그 기회는
(지웅) 그림에 담긴 너의 생각이라든가
뭐, 작가로서 최웅의 삶이라든가
다음 계획이라든가, 목표라든가 그런 거?
[웅이 숨을 들이켠다]
그런 거 없는데
(웅) 제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손님1) 어유, 얘
어유, 넌 좋겠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라서
(손님2)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손님3) 돈 걱정은 없으니까 뭔들 못 하겠어?
[손님2의 웃음] 어유, 부럽다, 얘
(호) 그렇지 숟가락을 이렇게 딱 잡고
밥을 이렇게 한술 딱 퍼 가지고
건강하게 밥만 잘 먹으면 돼
이렇게
으음 [연옥의 웃음]
- (호) 그렇지, 그렇지 - (연옥) 그래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아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건 그거 한 개뿐이야, 어?
(호) 자, 아들
[호와 연옥의 놀란 숨소리] - (연옥) 어유, 잘 먹어 - (호) 그렇지
[호의 웃음] (웅)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일 때가 있으니까요
[연옥이 흐느낀다]
원래 내 것이 아닌
빌린 인생을 살아갈 때에는
(연옥) 웅아
엄마 얼굴도 그려 줄래?
(호) 웅아
아빠 먼저 그려 줄래?
(연옥) 웅아
(호) 으응, 웅아 아빠 먼저 그려 볼까?
[연옥의 웃음]
- (연옥) 웅아, 엄마 좀 그려 줘 - (호) 웅아, 아빠 먼저 그려 줘
(웅) 더는 욕심내지 않고 [연옥과 호가 말한다]
그렇게 사는 게 나아요
(연옥) 웅아
엄만 언제 그려 줄 거야?
(호) 웅아 아빤 언제 그려 줄 거야?
(연옥) 어유, 이 양반 주책이야
엄마 그려 줘라, 응?
(호) 여보, 내가 그려 줄게
(연옥) 아, 당신이 뭘 그릴 줄 알아?
(호) 됐어, 됐어 얘가 누굴 보고 배웠겠어, 어?
- (연옥) 나 - (호) 우아
(호) 너무 좋다, 너무 이뻐
좋아, 좋아, 가만있어, 가만있어
어, 지금 너무 좋다
- (호) 좋아, 좋아 - (연옥) 응
(웅) 저도 이 완벽한 가족에
어울리는 아들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호가 말한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들이 아니라
(호) [흥얼거리며] 밖에 단체가 와서 정신이 없어요
[연옥이 중얼거린다] 정신이 없어요
(웅)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호가 흥얼거린다]
들키지 않을 수 있어요
[가게가 떠들썩하다] (라디오 속 진행자) 일련의 연구를 통해
최근에는 환경보다는 유전적인 성향이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에 맞춰 미국의 유전자 지도 연구에서도
현재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는데요
[라디오 전원음]
(호) 솔직히 나도 잘 몰라 [연옥이 말한다]
[잔잔한 음악]
(웅) 사실은
내가 형편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그러니까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에 갇혀 버린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예요
[탁 소리가 울린다]
"파리 국립 건축 학교 입학 안내서"
너랑 같이 가고 싶어
가볍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전부터 생각 많이 해 왔어
물론
너한텐 갑작스럽겠지만
나 한 번만 믿고 따라와 주면 안 돼?
역시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그동안 내 인생이 한심해 보였을 거 알아
그래서 이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려고
그런데
네가 꼭 있어야 해
나 혼자는 못 할 거 같아
[망설이는 숨소리]
근데
이렇게 멀리 가는 건…
난 너 없으면 안 돼
알잖아
나랑 같이 가서 내 곁에 있어 주면 안 될까?
내가 지금
꽤 엉망이거든
[잔잔한 음악]
생각해 볼게
시간 좀 줘
천천히 생각해 볼게
정말?
(연수) 응
처음이잖아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긴 건
내가 너무 나약해 보였으려나?
[피식 웃는다]
아니
그리고 너 한심해 보였던 적 한 번도 없어
넌 나보다 더 이룬 게 많잖아
[옅은 웃음]
[연수의 한숨]
네?
지금 뭐라고…
저와 함께 파리 본사로 가는 게 어떻냐고 물었습니다
(도율) 제가 이번에 파리 본사로 가게 되면서
제 팀을 다시 빌딩해야 되는데
가장 먼저 국연수 씨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진행해 온 프로젝트들 쭉 훑어봤는데
아주 흥미롭더라고요
왜 제가…
(도율) 저한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국연수 씨
저랑 함께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숨]
꽤 괜찮은 조건입니다
[봉투를 툭 놓으며] 물론 국연수 씨가 능력이 있으시니까
저도 아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겁니다
[당황한 웃음]
감사합니다
장도율 팀장님한테 이런 얘기 들으니까
좀 기분이 묘하네요
여전히 소시오패스 같아서요?
[웃음]
(도율) 그럼 저는 이만
반려견 산책시킬 시간이라서요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시죠
[멀어지는 발걸음]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잔잔한 음악]
(이훈) 그거 좋은 기회인 거 같던데
아이, 장도율 팀장이 먼저 나 찾아와서
다 얘기 들었어
(이훈) 하여튼 그 친구도 사람 보는 눈이 기가 막히다니까
어쨌든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해 보자
알았지?
아니요, 저는…
(이훈) 연수야
이거는
진짜 너 아끼는 선배로서 하는 말이야
안 놓쳤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내가 다 봤잖아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이번만큼은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알았지?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봐야지, 안 그래?
[한숨]
(은호) [술 취한 목소리로] 어떻게 이렇게 해고할 수가 있어?
내가 진짜 고용 노동부에 다 신고할 거야
[울먹이며] 내가 그동안 쌓아 뒀던 모든 것들 다
하, 신고하고 고소할 거야
안 그럴 거라는 거 알아
아, 최웅 나쁜 놈, 씨
(은호)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거면서
나 없이 잘 먹고 잘 살아 봐라, 씨
근데 어쩌겠냐?
걔가 가고 싶다는데
(솔이) 그렇게 슬프면 너도 따라가
(은호) 아이, 따라오란 말도 안 했단 말이에요, 그 형이!
나한테 물어봤으면
내가 못 이기는 척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웃기는 형이야, 진짜, 이씨
[은호가 잔을 탁 내려놓는다] (솔이) 근데 너 걔 따라가서 뭐 하려고?
걔 가서 공부 더 할 거라면서?
그럼 뭐, 걔 입장에서는
뭐, 나름 너 생각해 준 거네
(은호) 아니
이제 와서 내 인생 살라고 하면은
내가 뭐, 이때까지
내가 내 인생을, 뭐 안 살았다는 거야, 뭐야, 어?
그리고 내가 자기 없으면, 뭐 아무것도 못 하는 앤 줄 알아? 씨
[은호가 술을 주르르 따른다]
[은호가 술병을 탁 놓는다] (솔이) [웃으며] 너 걔 없으면 뭐 할 건데?
형 없으면, 뭐
형 없으면…
(은호) [흐느끼며] 형 없으면 안 되는데
[엉엉 운다]
[휴대전화 진동음]
아, 뭐야, 진짜
[긴장되는 음악]
[은호의 놀란 울음]
(솔이) 왜, 왜, 왜, 왜? [발을 탁탁 구른다]
[은호가 엉엉 운다] 왜, 무슨 일인데?
아이, 진짜, 씨…
(은호) 누나
(솔이) 어디부터 눈물이고 어디부터 콧물이야? [은호가 웅얼거린다]
너 콧물 너무 많이 나오는데?
- (은호) 퇴직금을… - (솔이) 뭐라고?
퇴직금
퇴직금 왜? 퇴직금 안 준대?
너무 많이 줬잖아
[흥미로운 음악]
[은호가 흐느낀다]
[솔이의 놀란 비명]
(솔이) 아, 이게 뭐야!
[솔이가 놀란다]
[솔이의 떨리는 숨소리]
은호
딱히 할 거 없으면
누나랑 동업하는 거에 대해서
의견이 어떨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누나?
저 동업 같은 거 안 해요
(엔제이) 친구 할인은 받았으니까
연예인 할인은 없어요?
[웅이 피식 웃는다]
원하시면 더 드릴 수 있는데
(엔제이) 그럼 안 되죠
작가님 그림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요, 뭘
(엔제이) 어?
지금 그 말은 내 안목이, 뭐
형편없다, 뭐, 이런 말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작가님 그림 왜 좋아하는지 알아요?
(엔제이) 계속 보다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왜 작가님 그림을 보면서 위로가 되는지
구불구불한 선들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음악]
이 사람 나처럼 불안함이 가득한 사람인가 싶었고
변하지 않는 것만 그리겠다는 고집을 보면
이 사람 나처럼 외로움이 많은 사람인가 싶었고
그래도 저렇게 완성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무지무지 따듯해요
안정감 있고
마치 누구보다
내면은 단단한 사람처럼
그래서 그게 뜻밖의 위로가 돼요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해 주는 거 같아서
이게
작가님 작품에 대한 내 비평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들 말 듣지 말고 내 말 들어요
내가 가장 많이 샀으니까
[피식 웃는다]
고마워요
그런 말들이 뜻밖의 위로가 되네요
우리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거 보니까
우리 진짜 절친 됐다, 그렇죠?
[웃음]
[엔제이의 웃음]
(엔제이) 아, 아무튼
떠난다고 하니까 아쉽네요
유학 생활 그거 되게 외로운 건데
(웅) 아, 연수랑 같이 갈 거예요
그래요?
제가 연수 없으면 안 되거든요
(엔제이) 아…
국연수 씨가
작가님 정말 많이 사랑하나 봐요
자기 인생보다
작가님 인생을 선택하겠다는 거니까
그거 되게 쉬운 거 아니잖아요
(연수) 할머니
(자경) 응
(연수) 할머니 정말 나 없이 살 수 있어?
(자경) 그럼
당연하지
(연수) 너무 빨리 대답하는 거 아니야?
나 서운해
(자경) 혼자서도
할망구들이랑 할 게 얼마나 많은디
(연수) 그러다가
갑자기 또 쓰러지면 또 어떡하려고?
(자경) 아이, 혈압 약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다 괜찮다잖여
아이고
그러니까
너도 이 할미 걱정 그만하고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잔잔한 음악]
부탁하는 거여
알겄어?
[웃으며] 가자, 가자
어구구, 가자
(엔제이) 자기 인생보다
작가님 인생을 선택하겠다는 거니까
처음이잖아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긴 건
[한숨]
[한숨]
(이훈)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 봐야지, 안 그래?
(자경) 그러니까
이 할미 걱정 그만하고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한숨]
- (동일) 고맙습니다 - (종업원) 맛있게 드세요
해
도대체 제가 그걸 왜 해야 되는데요?
우리가 하는 거잖아, 그거
인생의 순간을 기록해 주는 거
그게 얼마나 값진 건지
출연자들한텐 그렇게 닳도록 얘기를 해 놓고
왜 넌 안 한다 그래?
기록할 가치가 있어야 하죠
[지웅의 한숨]
(지웅) 나는요
모르겠어요
평생을 관심 없다 갑자기 죽는다고 찾아온 엄마도
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돼요?
내,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걸 해야 된다는 게…
나는 진짜 모르겠다고요
너를 위해서 하라는 거야
남은 사람을 위해서라고
그래도 결국 끝까지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할 사람은
남은 사람일 테니까
[한숨] [잔을 탁 내려놓는다]
야
너 어머니 돌아가시면 영정에 넣을 사진은 있냐?
[잔잔한 음악]
웃기지?
맨날 카메라 들고 다니는 놈이
제 엄마 사진 하나 없다는 게
(동일) 나도 그거 하나 없어 가지고 간신히 찾은 게
뭐, 이상한 단체 사진이더라?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활짝 웃고 있는데
[동일의 한숨]
야, 그래도 그게 어디라고
가끔 생각날 때 그 사진 들여다보고 그래
난 네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미워하든 용서하든
그건 나중 일이야
다만 나는
네가 지금 이 시간을
그냥 놓치진 말길 바란다
그게 다야
[웅이 새근거린다]
(연수) 웅아
(웅) 응?
이따 저녁에
솔이 언니네서 볼래?
(웅) 그래
[웅이 새근거린다]
[잔잔한 음악]
(이훈) 그래, 알겠어
뭐, 네 생각이 그런 거면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한숨]
(웅) 아, 정말
이 식당 사장님 부부는 참 손님을 불편하게 해
이 손님은 너무 안 오니까
왔을 때 많이 봐 둬야 해
[웅과 연옥의 웃음]
사랑하느라 바쁘신 분이
(연옥) 여기까진 어쩐 일이시래?
그냥
엄마 밥 먹고 싶어서
아이, 내가 애야?
힘들 땐
든든하게 먹어야 해
나 힘들다고 한 적 없는데?
그래도 엄만 다 알지
[웃음]
[한숨]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살짝 웃는다]
엄마 알고 있었네?
(연옥) 응
알고 있었지
내가 알고 있다는 거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어?
달라질 게 뭐 있어?
우리 아들
누가 뭐래도 엄마 아들인데
우리 웅이
단 한 순간도
엄마 아들 아닌 적 없었어
(연옥) 엄마 아들 해 줘서 고마워
이렇게 잘 자라 줘서도
너무 고맙고
나는
[떨리는 숨소리]
[울먹이며] 나는 내가
엄마 아빠를 닮지 못할까 봐
[잔잔한 음악]
[훌쩍인다]
엄마 아빠처럼 좋은 사람들 되지 못할까 봐
[웅이 훌쩍인다]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닐까'
'부족한 사람은 아닐까'
(웅) '그래서 엄마 아빠가 나를'
'실망하진 않을까'
그게 제일 무서웠어
[떨리는 목소리로] 어휴
근데 어쩌지?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실망한 적 없는데
[웅과 연옥이 훌쩍인다]
너를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모습을 사랑했어
[웅이 훌쩍인다]
[휴지를 쓱쓱 뽑는다]
[함께 살짝 웃는다] [웅이 훌쩍인다]
[연옥의 웃음]
[함께 웃는다]
[연옥이 훌쩍인다]
엄마
(연옥) 응?
(웅) 나는
이제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우리 아들이 이제
맘 편히 잘 잤으면 좋겠어
[웃음] [훌쩍인다]
(연옥) 얼른 먹어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어
[훌쩍인다]
(PD) 엔제이 씨 오늘 마지막 인터뷰 진행할게요
질문들은 여기 다 미리 준비해 뒀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얘기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 오늘 마지막 촬영을 꼭 여기서 하고 싶었던 이유
그것부터 말씀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엔제이) 아, 저, 감독님
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예
뭐 어떤?
[싹싹 소리가 난다]
[추워하는 숨소리]
[문이 달칵 열린다]
(웅) 어휴
많이 기다렸지?
(연수) 아니야, 별로
[웅의 추워하는 숨소리]
밖에 많이 춥지?
[솔이가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웅) 어, 엄청 추워
[웅의 힘주는 신음]
아이, 좀 더 따듯하게 입고 다니라니까
[연수가 피식 웃는다]
[문이 달칵 열린다] (연수) 내가 손 데워 놨어
- 따듯해? - (웅) 응 [문이 달칵 닫힌다]
나 괜찮은데
너 손 차가워져
괜찮아
[옅은 웃음]
결정
했나 보네?
(연수) 응
[잔잔한 음악]
[문이 달칵 닫힌다]
[신발을 달그락 벗는다]
[연수가 슬리퍼를 쓱쓱 신는다]
하, 쯧
하여튼
꼭 나와 있지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연수의 힘주는 숨소리]
(연수) 할머니
할머니가 그랬잖아
이제 혼자 버티는 삶 그만하고
곁에 사람도 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나게 살라고
그래서 나 이번엔
정말 눈 딱 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고
근데 있잖아, 할머니
나 그렇게 살고 있었더라?
나는 내가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어
[감성적인 음악]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솔이) 야
(연수) 왔어?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 어서 오세요 - (솔이) 야, 야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출입문 종이 딸랑거린다] - (솔이) 야, 오늘 내가 - (연수) 응
(솔이) 시나리오 뭐 하나를 구상을 해 봤거든?
[연수가 호응한다] 아니, 네가 진짜 객관적으로 어떤지 한번…
(솔이) 나 어떡해, 사람들 앞에서 내 번호를 딱 물어보는 거야
[키보드 조작음] (솔이) 제목은 '전지적 사이코 시점'이야
(솔이) 근데 그게 눈빛이 진짜 진실됐었어 [연수와 솔이가 대화한다]
(이훈) 나 너한테 뭐 제안할 게 있는데
선배, 저 지금 바빠서 시간이 없…
(이훈) 너 나랑 일 안 할래?
죄송해요 제가 요새 여유가 없어서
(이훈) 나 그냥 도와 달라는 거 아니고
너한테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 하는 거야
[봉투를 부스럭거리며] 내가 만든 회사에서 꽤 괜찮은 조건으로
아
그리고 계약금 선금도 있어
[이훈의 웃음]
제가 뭐
언제 선배한테 부탁한 적 있어요?
아니, 나도 알아, 연수 너
여유 가지고 취업 준비 하면 큰 회사 갈 수 있는 거
(이훈) 우리 회사 작아, 작은데
나 너한테 일 많이 시킬 거고
뽑아 먹을 수 있는 거 다 뽑아 먹을 거야
그러니까, 어…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투자를
너한테 하고 있는 거라고
이거 읽어 보고
생각 바뀌면 연락 줘
갈게
아, 아
커피 잘 마실게
[살짝 웃는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키보드 조작음]
- (이훈) 연수야 - 네
(이훈) 이, 이거 넣어야 돼 이거, 이거 [연수가 호응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거 같아
알겠지? 어?
우린 컬래버로 살고 컬래버로 죽는 거야
(예인) 팀장님! [예인의 웃음]
(명호) 팀장님! 오늘 PT 진짜 최고셨습니다
[문소리가 달칵 난다] (지운) 그렇게 깔끔한 PT 전 처음 봤어요
(예인) 이번에도 저희가 따낼 수 있을 거 같아요
- (예인) 팀장님 최고! - (이훈) 국 팀장 [직원들의 환호]
(이훈) 나 이제 놀라기도 지쳤잖아
어, 도대체 한계가 어디야?
어디까지인 거야, 도대체?
[이훈의 웃음]
[직원들의 웃음]
맞지, 맞지?
[직원들이 떠들썩하다]
- (명호) 회식, 회식, 회식! - (이훈) 회식, 회식 [예인이 호응한다]
(이훈) 가야지 [직원들의 환호]
(연수) 내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괜찮은 순간들이
항상 있었어
(연수)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나 봐
할머니
나 안 가
웅아
(연수) 나 내 인생이
처음으로 좋아지기 시작했어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길이 뚜렷하게 보여
그래서
좀 더 이렇게 살아 보고 싶어
나는 내 삶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구나 싶어
그래서
좀 더 지금을 돌아보면서 살고 싶어
왜 말이 없어?
(웅) 얼마나 걸릴까 생각했어
(연수) 뭐가?
내가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 하는 생각?
그게 무슨 말이야?
[잔잔한 음악]
너는 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멋진 사람인데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 왔잖아
그런데 연수야
나는 이제야 내가 뭘 해야 될지가 보여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웅) 내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한숨]
그래서
나는…
(연수) 괜찮아, 웅아
[연수의 떨리는 숨소리]
다녀와
그래도 우리 괜찮아
[잔잔한 음악]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연수) 응
변하지도 않을 거고
(연수) 응
꼭 다시 돌아올 거야
(연수) 응
그러니까
나 좀 꼭 기다려 줘
[살짝 웃는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문소리가 스르륵 난다]
왔으면 들어와
왜 그러고 서 있어?
엄마랑 저의 거리는 항상 이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시는 이유가 뭐예요?
내 인생
이대로 가는 게 너무 억울해
(지웅 모) 세상에 왔다 간 흔적도 하나 없이
이대로 가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끝까지 엄만
(지웅) 엄마만 생각하네요
끝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자격 없는 엄마 할게
(지웅 모) 그러니까 넌
행여나 마음 쓰지 마
그냥 적당히
안쓰러워하고
적당히
가끔 보고
지내자
(지웅) 말이 안 맞잖아
그럼 이렇게 찾아온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냥 그렇게 지낼 거면
찾아오질 말았어야지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요
제발
(지웅 모) 그땐
내 마음에 든 병 하나로도 벅차서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같이 있으면
너한테
내 불행을
옮길 거 같아서
가끔
밖에서 보이는 네 모습은
너무 밝은 아이인데
네가 나랑 같이 있으면
같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그게
[감성적인 음악]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내가 너를
안아 주지 못했어
(지웅) [떨리는 목소리로] 나 엄마 용서 안 해요
아니
못 해요
(지웅 모) 그래
엄마가 힘들었다고
나한테 그래도 되는 건 아니잖아
맞아
그래도
엄마는 엄마고
(지웅) [울먹이며] 나는
[떨리는 숨소리]
나는 어린애였잖아
어떻게 엄마가 자식한테 그래?
맞아
어떻게 이렇게 찾아와서
죽는다는 말을 해?
(지웅) 나 엄마
용서 못 해
절대 안 해
[떨리는 숨소리]
(지웅 모) 그래
그런데요
혹시라도 나중에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지웅) 그러니까
좀 더 살아 봐요
엄마도 나도
다시 살아 봐도 되잖아
우리도 남의 인생에 기대지 말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우리 그렇게 살아 보자고
[한숨]
(웅) 스물아홉이었어요
그때 우리가
그 모든 일들이 벌어졌던 때가
그리고
저는 곧 떠날 준비를 했어요
[밝은 음악] [한숨]
부모님께도 바로 말씀드렸고요
이번 달 말에 가게 됐어
(연옥) 아유
여보
(웅) [웃으며] 그런데
의외로 아빠가 삐져서
한동안 절 안 보더라고요
아니, 있을 땐 그렇게 구박하더니
[한숨]
[터치 패드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컴퓨터 알림음]
[웅의 웃음]
또 크게 삐졌던 구은호는
메일로 60페이지짜리 문서를 보내왔어요
[피식 웃는다]
아
김지웅은 바쁘더라고요
촬영을 당하는 중이래요
(지웅) 저는, 어…
그러니까…
선배, 이거 질문이 뭐였죠?
어린 시절
어머니와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김지웅 씨
[지웅 모가 피식 웃는다]
(동일) 자
큐
(지웅) 기억에 남는 거…
아
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가?
어…
엄마랑 낮에 시장을 갔다가 떡볶이를 먹었어요
그때가 아마
엄마가 유일하게 하루 쉬는 날이었을 거예요
[웃음]
같이 손잡고 시장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꽤 좋았거든요
[편안한 음악] (웅) 뭐
맨날 관찰자 어쩌고 하더니
드디어 역지사지 정의 구현이 된 거죠
[힘주는 숨소리]
(TV 속 엔제이) 여러분이 꼭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웅) 아, 엔제이 님은 [TV 속 엔제이가 말한다]
또 한 번 큰 사고를 쳤어요
팬분들께 씩씩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그게 저를 많이 병들게 만들었어요
(웅) 30분짜리 무편집 인터뷰 영상이 [TV 속 엔제이가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공개가 됐거든요
이제 서로 그런 친구가 돼요
(웅) 또 욕을 많이 먹는 거 같은데 [한숨]
그만큼 응원도 많이 받는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연수와는
(연수) 웅아!
[감성적인 음악]
[연수의 웃음]
- 안 추웠어? - (웅) 응
- 오래 기다렸지? - (웅) 아니
(연수) 가자
(웅) 최고의 시간들을 보냈어요
[멀리서 개가 짖는다]
- (웅) 됐어? - (연수) 응
[함께 웃는다]
(웅) 매일 같은 하루들을
(연수) 근데
너 물 뿌리는 거 진짜 연습했던 거야?
(웅) 그거 내가 원래 한 바가지 뿌리려 그랬는데
참은 거야
씁, 또 그러기만 해 봐
(연수) 그러니까 또 궁금해지긴 하네?
[웅의 당황한 숨소리]
(웅) 아이, 그 말 취소
또 그러지 마, 절대 그러지 마
이제 '만약에' 없어
나 그 '만약에'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안 돼?
- 또! - (연수) 만약에 말이야
(연수) [웃으며] 네가 만약에… [웅의 힘주는 숨소리]
(웅) 하루도 빠짐없이 [연수와 웅이 아웅다웅한다]
완전하게
그리고
출국 날은 꽤 빠르게 다가왔어요 [호가 말한다]
(호) 큰일 났다, 큰일 났어
- (웅) 왜요, 왜, 왜, 왜? - 어유
(호) 아니야, 큰일 났다고 야, 큰일 났어!
(웅) 왜, 왜?
- 왜요? - (호) 기름이 없어
(호) 야, 기름 넣고 가면 우리 늦어
야, 그러면 늦어서 안 되니까
그냥 안 가는 걸로 하자, 아들
아빠, 기름 가득인 거 다 보이거든요?
(웅) 그리고 아직 시간 넉넉해
그…
나 잠깐 어디 갔다 올 데가 있어서
내려서 기다려라
야, 아들
(호) 너 그러면 갔다가
오지 마, 그냥 오지 말고
우리 그냥 비행기 놓치자, 아들, 어?
쯧, 빨리 갔다 올게
[차 문을 톡톡 친다]
[잔잔한 음악]
(웅)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내 인생을 따라다니던
과거와 마주하는 것
그리고 똑똑히 말해 주려고요
더 이상 상처받을 것도
피할 것도
미안할 것도 없다고
이만하면 됐으니
그렇게 각자의 인생에서 놓아주자고
(연수) 그렇게 최웅은
겨울이 끝날 때쯤 떠났어요
저야 뭐, 괜찮았어요
저는 성숙한 연애를 지향하는 사람이니까
[술 취한 말투로] 웅이 보고 싶어
웅이 [경쾌한 음악]
[흐느끼며] 웅이, 웅아
[연수가 엉엉 운다] (솔이) 지구대에 연락 좀 해 줄래?
[은호의 한숨] 저년 저거 내가 오늘 어떻게든 처넣는다, 진짜
웅아, 웅아
나 웅이
(연수) 물론 [연수가 술주정한다]
가끔 [솔이가 말한다]
아주 가끔은
[은호와 솔이가 말한다]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연수) 만약에 말이야
(연수) 옆집 여자 유학생이
너한테 버터를 빌려 달라고 방문을 두드리면
그땐 어떻게 해야 되지?
[웅의 생각하는 숨소리]
(웅) 문 잠그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
(연수) 그렇지
[연수의 흡족한 웃음]
그럼 만약에 말이야
같은 학교 다니는 여자 학생이
너한테 프랑스어를 알려 주겠다고 막 접근을 해 [웅이 잔을 달그락거린다]
그럼 그때 어떻게 해야 되지?
(웅) 귀에 꽂은 통역기 보여 줄 거야
(연수) 좋아
아주 좋아, 최웅, 응? [웅의 웃음]
그럼 만약에 말이야 카페에 갔는데…
(연수) 나름 순탄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연수) 어, 예인 씨
아까 PT 자료 팀원들한테 공유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문이 달칵 닫힌다]
아이, 다들 뭐야, 진짜, 어?
(이훈) 아니, 다들 이렇게 일을 잘하면
진짜 나보고, 뭐 어떻게 감당하라고, 더 이상, 어?
[직원들의 웃음]
아, 너무 좋다
아, 나 이제 못 참겠어 그럼 오늘 우리…
(연수) 안 합니다, 회식
나 말도 안 했는데?
저희 어제도 회식했잖아요
자꾸 이러시면 다시 회식 금지령 내립니다
'다시 금지령 내립니다'
(이훈) 어이구 [이훈의 웃음]
그럼 오늘 말고 우리 내일 어때, 내일?
(명호) 내일은 토요일…
(이훈) 그래, 그러면 우리 딱
돌아오는 월요일 날 딱 하면 되겠다, 그렇지?
(예인) 저희 미팅 있잖아요 그, 대표님 빼고
(이훈) 아 [이훈의 웃음]
아, 나 빼고?
[잔잔한 음악]
이미 예약을 했어? 미팅…
나 빼고 예약을 했다는데 아, 알고 있었나?
[이훈이 말한다] (연수)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으니까요
[연수의 한숨]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냐고, 남의 나라에서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아? 어?
[잔소리한다] (연수) 물론
위태로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치…
하루 종일 연락이 없다 이거지, 최웅?
치…
전화 오기만 해 봐 내가 받나 봐라
[휴대전화 진동음]
여보세요?
웅이?
(웅) 응, 기다렸어?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 나 안 기다렸는데?
내가? 연락을?
아니, 전혀
[코를 훌쩍인다] (웅) 미안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치, 야, 최웅
내가 장거리 연애의 핵심은 연락이라고 했지?
너 이런 게 쌓이면
되게 서운하고 오해가 생길 수가 있어
[웅의 웃음]
(웅) 알았어, 퇴근 중이야?
응, 너는?
집이야?
잠은? 잠은 잘 잤어?
밥은? 밥은 잘 챙겨 먹었고?
(웅) 매일 물어보는 건데 안 지겨워?
지겨워?
너 내가 지겨워, 최웅?
(웅) 아이,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어휴, 국연수
갈수록 너무 자주 삐지는 거 같아
어, 나 요새 속 좁아졌어
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너 잠깐 들어왔을 때 여권 내가 숨겨 두는 건데
[웅의 웃음]
(웅) 애교도 더 많아지고
[한숨]
보고 싶다, 최웅
뭐야?
뭐야, 왜 말이 없어?
(웅) 연수야
생각해 보니까
내가 못 하고 온 말이 있더라고
뭔데?
뭐라고?
(웅) 들었잖아
아니, 나 못 들었어
빨리 다시 얘기해 봐
(웅) 사랑해
너…
너 그 말 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린 줄 알아?
아니, 왜
지금까지 한 번을 안 한 거야?
(웅) 사랑해
연수야
[떨리는 목소리로] 진짜 최웅 멍청이
그런 건 얼굴 보고 해야지
너 진짜, 이씨
(웅) 알겠어
그럼 뒤돌아봐
[감성적인 음악]
너…
국연수
사랑해
[옅은 웃음]
네가 여기 왜…
더 보고 싶은 사람이 와야지 뭐 어쩌겠어?
그렇다고 갑자기…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웅의 한숨]
(웅) 야
이 장거리 생각보다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야
(연수)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와
거기는 뭐, 월반 같은 거 없어?
몰라
(연수) 좀 더 열심히 해서
조기 졸업 같은 거 할 생각을 해야지
너 이렇게 자꾸 왔다 갔다 해 가지고
언제 공부 끝내고 언제 돌아올래?
야, 국연수
이 상황에 또 그런 얘기 하고 싶냐?
다 우릴 위해서 하는 얘기잖아
(연수) 가끔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환상적인 순간들도 있으니까
그해들을
우린 무사히 보낼 수가 있었고
그리고 정말 약속대로
최웅은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돌아왔어요
[새가 지저귄다]
[솔이의 힘주는 신음]
[힘주는 신음] (은호) 누나
아, 누나!
아, 이솔
(솔이) 이게 또
[문이 달칵 닫힌다] 너 자꾸 말이 짧아진다?
(은호) 우리 지금 빨리 가야 돼요 늦었어요
[은호의 힘주는 숨소리]
(솔이) 아저씨, 아줌마 먼저 가셨어?
예, 벌써 출발했대요
우리도 빨리 가야 돼
(은호) 나와 봐요, 누나
[은호의 힘주는 신음]
[발랄한 음악]
- 은호 운동했니? - (은호) 예?
(은호) 아, 이 정도는 기본이죠
누나, 빨리 정리하고 나와요 나 시동 걸고 있을게
(솔이) 어
하…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보통이 아닌 놈이야, 저거
하, 분명히 나 좋아하는데?
왜 자꾸 아무 짓도 안 하는 거야, 왜?
(은호) 아, 이솔!
(솔이) 이씨
너 자꾸 말이 짧아진다?
(채란) 최웅 씨 부모님 대단하신 분들이셨네요
그렇게 꾸준히 기부를 해 온 거면 금액이 상당할 텐데
(지웅) 그러게
나도 몰랐던 거라
새삼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네
[지웅이 피식 웃는다]
그럼 오늘 국연수 씨도 오세요?
(지웅) [웃으며] 그렇지
(채란) 괜찮으세요?
그래도 실연당했던 사람으로서
[웃음]
(지웅) 너 진짜 끊임없이 짚어 준다
고맙다, 정말
잊을 틈이 없게 해 주네, 참
사람들이 네가 나 닮아 간다는데
이런 건 좀 닮지 마, 어?
그런데요, 선배
왜, 또?
(채란) 지금은 좀 괜찮아지신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저 선배 좋아해요
[편안한 음악]
사람들이 선배 닮아 간다니까 하는 말이에요
선배는 고백도 못 해 봤잖아요
그런 건 닮기 싫어서요
[당황한 숨소리]
그냥 그렇다고요
[채란이 피식 웃는다] [지웅의 헛기침]
[경쾌한 피아노 연주]
(여자) 이민아, 이제 와
(은호) 누나 [솔이의 힘주는 신음]
우리 오늘 저녁 뭐 먹어요?
(솔이) 뭘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봐?
[솔이가 책을 툭 놓는다] (은호) 아이, 데이트하자고요
[솔이가 책들을 툭 놓는다]
(솔이) 난 준비됐어
[은호와 솔이의 헛기침]
[은호가 숨을 씁 들이켠다] 그래서 운동 열심히 했구나?
(호) 예, 아…
예, 아무튼 반갑습니다
아, 그리고 진짜 부끄럽습니다
뭐, 진짜 별것도 아닌데
아무튼 뭐, 같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인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아주 그냥 쪼끔 뭐, 이렇게…
아유, 부끄럽습니다, 아무튼
이제 저희 애가 아주 책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주 끼고 살았습니다
뭐, 저를 닮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애들 모두가 인제 책을 아주 원 없이
- (호) 읽어 봤으믄 좋… - (연옥) 웅아!
(호) 아이고, 나 증말
(연옥) 왜 이제 왔어? 일찍 와서 좀 도우라니까
(웅) 나 아침부터 나와서 이거 책 나르고 있었는데?
- (연옥) 그랬어? - (웅) 응
[연옥의 웃음] (호) 아주 우리 웅이만 오면 그냥 NG여
그냥 맨날 NG여
(지웅) 야, 또 못 잤냐? [발랄한 음악]
너 돼지고기를 몇 시간 재운다 그랬지?
(지웅) 몰라, 여덟 시간?
난 열 시간 잤어
(웅) 돼지고기보다 더 많이 잤지
- (연옥) 아이고, 잘했네! - (연수) 안녕하세요! [호의 웃음]
- (호와 연옥) 아, 연수야 - (연수) 왔어?
(연옥) 어유, 넌 오지 말라니까 [연수의 웃음]
피곤한데 주말은 쉬어야지
(연수) 괜찮아요, 당연히 와야죠
이거 어디다 두면 돼요?
(연옥) 2층 [연수와 연옥의 웃음]
(호) 야, 연수야 그거 웅이 다 줘 버려, 그냥
- (연옥) 가, 얼른 - (연수) [웃으며] 괜찮아요 [호의 웃음]
[피식 웃는다]
[하품]
[연수의 못마땅한 숨소리]
너 요새 너무 많이 자는 거 아니야?
곧 전시 시작하면 잠도 못 잘 텐데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좋지
(웅) 아, 이거 언제 다 꽂냐?
(연수) 귀찮다고 대충 꽂지 말고
순서대로 제대로 꽂아
지켜본다?
[힘주는 숨소리]
[책을 쓱 뺀다]
(웅) 그런데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고등학교 때 생각난다, 그렇지?
그러기에 너무 오래되지 않았어?
[연수가 책을 탁 정리한다] (웅) 아니야
그래도 나한텐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이야
사실
나도
너 사실대로 말해 봐
뭘?
너 사실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지?
[연수의 코웃음]
(연수) 최웅 또 자기 멋대로 기억 조작하고 있네
(웅) 에?
아니야, 너 눈빛부터가 달랐어, 그때
(연수) 치, 야, 웃기지 마
씁, 너야말로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한 거 아니야?
어? 너 일부러 그래서 나 따라다녔지?
씁, 내가 너 처음 봤을 때가 언제였더라?
다큐 찍는 날이었나?
- 야 - (웅) 아니면 그 전이었나?
너 일부러 기억 못 하고 있는 척하는 거 다 알아
[연수가 부스럭거린다]
(연수) 야, 너
하나도 안 꽂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림을 왜 그려?
네가 애야?
[책장을 사락 넘기며] 뭐 그리고 있는 거야?
(웅) 사람들은
[감성적인 음악]
누구나 잊지 못하는 그해가 있다고 해요
그 기억으로 모든 해를 살아갈 만큼
오래도록 소중한
[웅의 헛기침]
연수야
(웅) 그리고 우리에게 그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웅) 결혼하자
우리
[새가 지저귄다]
[달그락거린다]
[함께 웃는다]
[달그락 소리가 연신 난다]
(지웅) 촬영하자
(연수) 뭐?
뭐 하라고?
촬영해야 된다고, 너희
(웅) 야, 미쳤냐? 그걸 다시 찍게
너희 지난번 다큐도 또 역주행 중이야
(지웅) 그러니까 결혼을 왜 했어?
사람들이 결혼 생활 보고 싶어 하잖아
(연수) 아니, 뭐 우리는 뭐, 사생활은 없는 거야?
(웅) 야, 우리가 뭐, 보여 달라면 다 보여 주는 뭐, 노예냐?
(함께) 안녕하세요
최웅
국연수
[연수의 옅은 웃음]
(연수) 하나, 둘, 셋
(함께) 부부입니다
[감성적인 음악] [연수의 웃음]
.그 해 우리는↲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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