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15
(지웅)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예술이고
[놀란 숨소리]
[피곤한 숨소리]
얻을 수 있는 조각을 다 조합해야 완성이 된다
[문이 철컥 열린다]
[문이 철컥 닫힌다]
(지웅 모) [신발을 달그락 벗으며] 자고 있지 왜 일어났어?
(어린 지웅) 엄마, 엄마
저 오늘 있잖아요
친구가 생겼는데요
저랑 이름이 같아요
엄마 피곤해
(지웅 모) 엄마 일하고 오니까 너 자고 있으라고 했잖아
[문이 달칵 열린다]
[잔잔한 음악]
(지웅) 내 인생이 완성될 수 없는 건
가져 본 적 없는 조각 하나 때문이에요
[지웅 모의 힘주는 신음]
[지웅 모의 한숨]
[피곤한 숨소리]
[지웅 모의 한숨]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연옥)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가자
[연옥의 웃음]
(어린 웅) 어?
엄마, 쟤야, 내 친구 웅이
- (연옥) 아 - (어린 지웅) 안녕
(연옥) 안녕, 네가 지웅이니?
아줌마는 웅이 엄마야
(지웅) 남들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어린 지웅과 연옥이 인사한다]
(연옥) 아유, 씩씩하게 생겼네
[옅은 웃음]
우리 웅이랑 친구 해 줘서 고마워
[연옥의 웃음]
(지웅) 가지기 어려운 것도 아닌 [연옥이 말한다]
그 조각이
나에게만 없는 이유
(배달원) 자
응
오케이
[동전이 짤랑거린다]
응
오늘도 혼자 먹어?
아휴
자
다 먹고 밖에 내놓으슈
(지웅) 사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는
[배달원의 힘주는 숨소리]
혼자 있거나 [문이 달칵 닫힌다]
[잔잔한 음악]
혼자 있는 애 옆에 있거나
아주 가끔은
함께한 순간도 있었다는 거
그게 다였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컸을 땐
[한숨]
[뚜껑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젓가락을 달그락 집는다]
많은 게 무감각해졌어요
[지웅이 후루룩 먹는다]
[새가 지저귄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게 익숙해졌다는 건 아니고요
[학생들이 떠들썩하다]
그리고 그때쯤
너도 아빠 없어?
(태오) 응, 뭐야, 너도 없어?
그럼 엄마랑 둘이 살아?
(태오) 응
[태오가 지퍼를 직 닫는다] 너도 힘들었겠네
야, 내가 힘들 게 뭐 있냐?
울 엄마만 고생이지
[태오가 가방을 달칵 잠근다]
(태오) 어젯밤에 엄마 열나는 거 같아서
내가 그렇게 오늘 일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가방을 쓱 메며] 하여튼 아들 말을 안 들어
내가 쪼끔 열나면 세상 호들갑을 떨면서
[어색한 웃음]
엄마랑 사이가 좋나 봐?
안 좋을 수가 있냐?
세상에 우리 둘뿐인데
(태오) 암튼 반장
담임한테 조퇴한다고 말했으니까
다른 쌤들한테도 말 잘해 줘
[차분한 음악]
(지웅) 내일 시험인데 괜찮겠냐?
어, 엄마 아파서 조퇴하고 왔다고 하면
(태오) 등짝 스매시긴 한데
속으론 엄청 좋아할걸?
울 엄만 나 없으면 안 되거든
[옅은 웃음]
- 갈게 - (지웅) 응
(지웅) 궁금해지더라고요
나만 그 조각을 가질 수 없는 그 이유가
도대체 뭔지
[문이 달칵 열린다]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엄만 나 없으면…
엄만 나 없으면 살 수 있어요?
[지웅 모가 술병을 달그락 놓는다]
[헛웃음]
우린 왜 이러고 살아요?
(지웅) 우린 왜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는 척 살아야 하는…
(지웅 모) [술 취한 말투로] 너 없었으면
나 이렇게 안 살았어
[차분한 음악]
너 없었으면
나 이렇게
구질구질하겐 안 살았어
(지웅) 아
그때 알았죠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는 필요 없는 조각이었구나'
'나에겐 간절했던 게'
'그 사람에겐 지옥이기도 했겠구나'
그래서
나도 그 조각을 영원히 갖지 않기로 했어요
내 인생은 한 편의 예술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지루한 다큐의
어느 한 편쯤일 테니까
(웅) 응
아, 미술관에 잠깐 뭐 확인할 거 있어서
나갔다 다시 들어가고 있어
집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금방 들어갈게, 춥다
응
[통화 종료음]
[부드러운 음악]
(연수) 우리 선물 그런 거 하지 말자
기념일이다 뭐다 그런 거 다 쓸데없는 상술에
과소비 자극하는 문화야
서로 간의 마음이 중요하지
난 그런 데에 돈 쓰는 거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해
(연수) 근데 그때는
(연수) 괜히 네 시간 뺏는 거 같아서
싫은 척했던 거야
그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연수) 응
[자동차 경적]
[자동차 엔진 작동음]
(직원) 도와드릴까요?
(웅) 아, 네
(직원) 선물하시게요? 여자 친구분?
네, 여자 친구요
(직원) 아, 네
여자 친구분이 어떤 스타일이실까요?
어, 되게
예쁜 스타일이요
(직원) 아… [직원의 어색한 웃음]
그게 아니라
여자 친구분이 평소 착용하시는 스타일이요
아, 아
[직원의 옅은 웃음] [멋쩍은 웃음]
그,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
(직원) 아,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
[직원의 고민하는 숨소리]
[고민하는 숨소리]
(웅) 흠…
[놀란다]
[감성적인 음악]
[부스럭거린다]
(연수) 뭐 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웃음]
[피식 웃는다]
[웅의 웃음]
(웅) 집에 오는 길에 할인을 막 하는 거야
안 사면 손해라 그래서
근데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예쁘다
어?
고마워
나 이거 정가에 샀어
(웅) 한 시간 골랐고
아
[웅이 뒤적인다]
귀걸이도 샀어
[연수의 웃음] 귀걸이 한번 해 봐
[웃음]
맘에 들어?
(연수) 응
(웅) 어? [연수의 힘주는 신음]
(연수) 우리 오늘
밖에 나가지 말고 하루 종일 집에서 놀까?
(웅) 응
[감성적인 음악]
알지?
그거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웃음]
(웅) 벌써 다 읽었어?
(연수) 응
[연수의 놀란 숨소리]
[웅의 힘주는 숨소리] (연수) 왜 이렇게 많이 했어?
(웅) 씁, 그러게?
생각보다 좀 많네?
(연수) [파스타를 뒤적이며] 이거 다 어떻게 먹어?
(웅) 아이, 먹을 수 있어
맛있겠지?
[함께 웃는다]
(연수) 맛있겠다
(연수) 진짜 배불러
(웅) 아, 너무 배불러
(연수) 하, 배 봐
(웅) 내 배 봐 [연수의 웃음]
[웅의 웃음]
- 괜찮아, 웅아? - (웅) 어
(웅) 그럼 설거지 가위바위보 할까?
(함께) 가위바위보
(연수) 아직 다 안 그렸어
(웅) 다 그렸어?
[웅이 중얼거린다]
하나, 둘, 셋
[웃음]
(연수) 왜 웃어?
(웅) 아이, 쫑쫑이가 너무 못생겼잖아
아니야!
얼마나 귀여운데
[웅의 웃음]
(연수) 야
[연수가 색연필을 달그락 집는다]
(웅) 야
(연수) 안 해
(웅) 야, 이거 비싼 색연필…
아, 진짜
[TV 소리가 흘러나온다]
[연수의 웃음]
(웅) 아이, 다큐멘터리 보지 말자
(연수) 왜? 이거 내가 보고 싶은 거란 말이야
(웅) 지겹지도 않아?
(연수) 치…
뭐 보고 싶은데?
(웅) 돌려 봐 [리모컨 조작음]
어, 이거
[연수의 한숨]
(웅) 아, 추운데 목도리
목도리 하나 사야지
어, 이거
[문이 달칵 여닫힌다]
(연수) 뭐 해?
(웅) 아…
아무것도 아니야
[웅의 생각하는 숨소리] (연수) 아유
(웅) 근데 생각해 보니까
너 지난번에도 그냥 막 씻고 나오고
그래도 남자 집인데
뭐 어때? 너희 집인데
우리 그때 사귈 때도 아니었거든?
아침 인사가 격하네?
아
친구 하기로 했을 때?
너 친구라고 막 아무 데서나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니지?
왜 대답이 없어?
그땐 너 꼬시려고 그런 거지
[웅의 어이없는 숨소리]
국연수 완전 사막여우
(연수) [피식 웃으며] 야
그럴 땐 그냥 여우라고 그러는 거야
묘하게 기분 나쁘네
변했어, 국연수
(연수) 나 머리 말려 줘
(웅) 어?
머리 말려 줘, 나
야, 그것도 혼자 못 해?
(웅) 애가 어떻게…
[웃으며] 어쩌려고, 참, 진짜 [연수의 웃음]
[감성적인 음악]
[헤어드라이어 작동음]
(웅) 자, 잘 말랐습니다, 손님
(연수) 감사합니다
[웃으며] 오른쪽 귀가 좀 뜨겁네요
(웅) 그래도 아주 잘 말랐습니다, 손님
이거 맛 들여 가지고 계속해 달라 하는 거 아니야?
[연수의 힘주는 신음]
(연수) 해 줘
계속해 줘
(웅) 얘가, 얘가…
야, 너 나 없으면 어떡하려 그래?
[연수의 웃음] 참…
[웅이 숨을 씁 들이켠다]
또, 국연수 또 이상한데?
어디서 또 새로운 콘셉트 배워 가지고 온 거야?
(연수) 아…
평화롭다
[웅이 피식 웃는다]
(웅) 이 봐 안 싸우니까 얼마나 좋아?
(연수) 넌 이럴 때
무슨 생각이 들어?
(웅) 음…
뭐, 별로 생각 없는데?
'아, 좋다' 뭐, 이 정도?
난 이렇게 행복하면
꼭 불안해지더라
뭐가?
내가 또 다 망쳐 버릴까 봐
그럴 일 없어
(웅) 걱정 마
연수야
아니다, 다음에
[피식 웃는다]
[연수의 기분 좋은 숨소리]
"건축 학교 입학 안내서"
[은호의 힘주는 숨소리]
[은호의 힘주는 신음]
(은호) 아휴
아, 뭔 택배를 이렇게 많이 시켰어?
뭐야, 근데 이거 죄다 여자…
이거 다 연수 누나 거야?
(웅) 몇 개 안 시켰던 거 같은데?
(은호) 와, 아주 진짜 사랑꾼 콘셉트 오지게 잡네
이거 다 갖다 바치면
연수 누나가 얼씨구나 하고 다 받을 거 같아?
생각보다 좋아하던데?
선물도 계속 받기만 하면은 부담만 된다고
(은호) 하여튼 최웅 아무것도 몰라
[은호의 한숨] 저기에 네 것도 있을걸?
(은호) 어디? 어디 있어? 뭔데?
아
이거?
크기가 약간 서운하긴 한데
고마워, 형 [은호의 어색한 웃음]
아, 맞다, 형
브로슈어 나왔어
짜잔
잘 나왔지?
드디어 오늘 밤이다
마음의 준비 됐어, 형?
[카메라 셔터음] 야간 전시의 새로운 역사를 써 보자고
[휴대전화 조작음] 연수 누나 오늘 온대?
맨 마지막 날에 온대
왜?
(웅) 아이, 첫날엔 기자들도 많이 오고
다큐멘터리 때문에 우리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자기가 시선 뺏는 거 싫대
난 괜찮은데
(은호) 연수 누나 진짜 으른이야, 으른, 응?
생각이 너무 깊어, 정말
아, 이거 뭘까?
[은호가 부스럭거린다]
아이씨 왜 이렇게 안 뜯기냐, 이거?
[은호가 테이프를 박박 긁는다]
[은호가 흥얼거린다]
- (웅) 은호야 - (은호) 어?
이번 전시 끝나면
할 얘기가 있어
뭔데? 지금 해, 그냥
아, 일단 전시회 잘 마무리하고
알았어
(은호) 아,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안 뜯기냐, 어?
형 손톱 길어?
이것 좀 대신 좀 뜯어 줘 봐
근데 이거 뭔데?
씁, 뭐였더라?
아이, 뭐, 특가 할인 뭐였는데
(솔이) 6, 5
4, 3, 2
(은호) 누나
[솔이의 한숨]
(솔이) 널 어쩌면 좋니?
(은호) 오늘 가게 마감하고 뭐 해요?
(솔이) 왜?
내가 마감하고 뭐 하는지
[흥미로운 음악]
그게 왜 궁금해, 은호야?
(은호) 예? 아, 웅이 형 개인전 하니까
뭐, 할 거 없으면 오라고요
늦은 시간에 하는 거라서 뭐, 끝나고 와도 돼요
그럼 너도 있겠네?
매니저인데 당연히 있죠
역시 그렇겠지
하, 너무 노골적이야, 은호
뭐라는 거야? 뭐…
(은호) 올 거예요, 말 거예요? 티켓 줘요?
그래, 뭐
두고 가
(은호) 이, 뭐, 이상하지?
뭐, 어디 아파요?
아니
"초대장"
왜?
근데 왜 눈을 이, 이렇게 떠요?
[은호의 의아한 숨소리]
(은호) 아무튼 저 지금 가 봐야 되니까 가 볼게요
아, 올 거면 미리 말하고 와요
오늘부터 3일 동안 하는 거니까
갈게요
(솔이) 가
(은호) 네
[한숨]
짝사랑
그거 죽을 만큼 힘들지
내가 알지
[한숨]
불쌍한 녀석
안 가
(치성) 어? 어딜, 왜 또 안 가?
너 또 스케줄 째려고?
아니야, 그런 거
(치성) 아, 놀라라
내가 요즘 너 때문에 청심환을 달고 산다
아, 맞다
주말에 다큐 촬영 잡혔어
그거 은근히 길게 찍네?
이제 마지막 회차니까
(치성) 대본 나오면 공유해 줄게
오빠
(치성) 응?
미안
(치성) 어?
왜? 뭐가?
왜, 너 또 무슨 일 저지르려고?
아니, 저지를 거 말고
이미 저지른 거 미안하다고
(엔제이) 요즘 제멋대로 군 거
중요한 거부터 좀 말해 주면 안 될까?
(치성) 다짜고짜 미안하다 그러니까 내가 놀랐잖아
이제 놀랄 일 없게 할게
(치성) 갑자기 왜 그래?
더 불안해지게
[잔잔한 음악]
이제 나도 노력해 보려고
평범하게 사는 거
아
놀랄 일 아주 없다는 건 취소
아직 한두 번 정도 남았어
(치성) 그… 미리 말해 주면 안 될까?
나 약 좀 챙겨 먹고 있게
[피식 웃는다]
(민경) 어이
거기서 뭐 하고 있어?
김 PD 안에 있어?
씁, 혹시 김 PD가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 한다는 소식 아직 없나?
시청률 보면 나한테 되게 고마울 텐데
선배가 지금 그럴 상황은 아닌 거 같아요, 작가님
왜?
이제 바쁜 거 없잖아
(민경) 김 PD 편집도 끝까지 다 해 놨다며?
쟤 왜 저러고 있냐?
어디 초상났어?
(채란) 하, 모르겠어요
요즘에 집에도 정말 안 들어가시고
전에도 이런 적 있는데 이번엔 진짜 심한 거 같아요
하, 쟤는, 쯧
(민경) 어쩜 하는 짓이 점점 더 박동일 닮아 가네
팀장님이요?
그래
넋 나가서 하는 짓이 똑같네
팀장님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신데?
[헛웃음]
말도 마라
걔 쟤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어유
뭔 일 있으면 편집실에 틀어박혀서
몇 날 며칠 안 나오는 게 걔 특기였어
(민경) 가자, 관심 주지 말고
커피나 한잔하고 오자
혼자 있을 시간 좀 주지, 뭐
와
아, 뭐 해? 빨리 와
아, 네
[차분한 음악]
(지웅 모) 나
죽는대
나 죽는대, 곧
(지웅 모) 그러니까
죽기 전에 나 좀 찍어 줘 봐
네가
- (동일) 생큐, 채란 - (채란) 그거 지웅 선배 건데요?
그 회사 전기 다 빨아먹는 놈한테 뭐 이런 거까지 챙겨 줘?
하, 지웅 선배 며칠을 그러고 있는데
(채란) 안쓰럽지도 않으세요?
그런 놈을 밑에 두고 있는 내가 더 안쓰럽다
(동일) 간다, 잘 먹을게
[채란과 민경의 한숨]
아무리 봐도 팀장님은 그런 캐릭터가 아닌 거 같아요
[픽 웃으며] 저래 봬도
김 PD 제일 끔찍하게 챙기는 양반이야, 저거
(민경) 아주 징그럽게 챙기지
(채란) 그런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김 PD가 왜 조연출 때 안 그만두고 여태 붙어 있는지 알아?
"신수산 시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미심장한 음악]
(촬영 감독) 아이, 어디서 이런 쓸모없는 애를 데리고 왔어!
[촬영 감독의 짜증 섞인 탄성]
아, 내가 이런 멍청한 애 데리고 촬영을 해야 되나?
야, 박 PD
- (촬영 감독) 박 PD 어디 갔어? - (동일) 어?
(동일) 왜, 왜, 왜, 왜?
아, 형님
괜히 우리 애한테 또 성질부리지 말고
좋게 좋게 합시다
대기만 지금 몇 시간째냐고
(촬영 감독) 조연출이라고 하루 종일 얼빠져 있고
촬영 안 끝낼 거야?
(동일) 아이, 뭐, 다들 집에 못 가고 있는 거 안 보이시나
아, 오늘 일찍 끝내야 된다고 미리 다 말했잖아!
(촬영 감독) 결혼기념일이라니까
결혼기념일 날 한 번을 집구석에 못 들어가 봤어요
야, 나 마누라한테 이혼당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 내가 형님 형수님한테 싹싹 빌게
(동일) 어? 저, 카메라 잠깐 끄고
어, 다들 밥도 좀 먹고, 어?
야, 너 가 가지고 라면 좀 사 와
(촬영 감독) 일 머리 맞는 애들 만났으면 진즉에 끝났을 걸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하루가 꼬박 지났잖아!
[동일이 입소리를 쩝 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자, 어?
- (촬영 감독) 에이그, 정말, 쯧 - (동일) 감독님도 같이 가
(동일) 아,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
[민경의 옅은 탄성]
(촬영 감독) 아이고, 하
이게 무슨 야식이냐, 아침이냐?
다 끓었냐?
[촬영 감독의 힘주는 숨소리] 예, 이제 드셔도 돼요
(동일) 아유 자, 자, 자, 자, 자, 자, 자
[민경의 놀란 숨소리] - (동일) 아유 - (촬영 감독) 야, 뭐야, 이게?
(동일) 아이, 저기 가서 얻어 왔어
아, 씻어 온 거라서 먹어도 돼
(촬영 감독) 아이, 얻어 올 거면은
게딱지나 오징어 같은 거나 좀 얻어 오지
이게 뭐야? 라면 맛 다 버리게
(동일) 아, 생일인데
[잔잔한 음악] 미역 한 줄기라도 먹어야지
자
(촬영 감독) 생일이야?
(조명 기사) 아따, 이게 뭡니까?
아니, 어느 정신없는 놈이 라면에 미역을 처넣…
- (촬영 감독) 먹어, 그냥 - (지웅) 제가 떠 드릴게요
(촬영 감독) 야, 됐어, 그거 줘 봐
너나 빨리 먹기나 해라
불어 터지기 전에
- (촬영 감독) 자 - 많이 먹어
- (동일) 나도, 나도, 나도, 나도 - (촬영 감독) 생축
[촬영 감독이 말한다] (민경) 얼른 먹어
[민경이 말한다]
[동일의 헛기침]
(동일) 뉴스에선 신시장 개장이다
철거 반대 시위로 난리가 났다 뭐다
하루 종일 떠들어 대도, 이것 봐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살아가고 있잖아?
[편안한 음악]
이런 걸 기록하는 게 우리 일이야
특별할 거 없어서 놓치기는 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거기에
별게 없는 우리 일상까지 더해지면
'아'
'그냥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구나' 싶거든
(민경) 그런 말에 속지 마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망가
(동일) 작가님
아, 왜 내 작업 망치고 그래?
나 얘 꼬셔야 된다고
[민경이 픽 웃는다] 씨…
내일 출근할 거지?
먹어, 먹어, 먹어
[한숨]
왜?
그, 라면에 미역 넣어 주는 거
그게 왜?
지웅 선배가 저 조연출 때 그렇게 해 주셨거든요
(민경) 응?
[민경의 웃음]
너도 그거에 넘어갔어?
이야, 김 PD 그 여우 같은 게 너 꼬실 때 써먹었구먼?
야, 역시 [입소리를 쩝 낸다]
드라마보다 다큐 팀이 더 재밌다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밝은 음악]
입장하시겠습니다
(은호)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네, 재밌게 보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예, 즐거운 관람 되세요
[휴대전화 조작음]
(연수) 멋지네, 최웅
[휴대전화 진동음]
[휴대전화 조작음]
응
어, 퇴근해?
(연수) 응, 집 가는 중이야
기사 봤어 오늘 멋있게 하고 갔더라?
[옅은 웃음]
(웅) 아이 생각보다 사람이 좀 많아
긴장되네
드로잉 쇼 때도 사람 많은데 잘했잖아
너 그런 거 은근 잘 즐기던데?
(웅) 아, 그냥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너랑 누워 있고 싶다
(은호) 형
아, 나 가 봐야 될 거 같아
마지막 날에 올 거지?
응, 가서 제일 크게 축하해 줄게
[옅은 웃음]
보고 싶다, 국연수
[피식 웃는다]
(웅) 끊을게
[감성적인 음악]
[휴대전화 조작음]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기자) 규칙적으로 작업하는 편이신가요? [카메라 셔터음]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작업하시나요?
(웅) 건물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울린다]
하루에 평균 열두 시간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세하게 그릴 수 있는 대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물의 높이는 35피트인데…
[키보드 조작음]
[키보드 조작음]
[사람들이 인사한다]
[사람들이 대화한다]
[대화한다]
[사람들이 인사한다]
[캔을 탁 내려놓는다]
[힘주는 숨소리]
[한숨]
(연수) 그리고 고객들 들어오는 동선
확인 한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 (명호) 네, 알겠습니다 - (연수) 어, 아, 이쪽으로 가면
(연수) 북 토크 하는 곳을 한번 보여 드릴게요
(연수) 어, 북 토크를 여기서 진행하는 걸로 하고
자리 배치도 짜서 알려 주세요
아, 그리고 작가님은 가까이서 소통하시는 거 좋아하시니까
원형으로 배치하는 게 좋을 거 같고요
(명호와 연수) - 예, 알겠습니다 - 그리고 드라마 장소 협찬 건은
제가 최종 협의안 업데이트해 놨으니까
(연수) 그거 공유하시면 되고요
- 예, 알겠습니다 - (지운) 예
(명호) 일단 이거 원형으로 체크하자
(명호) 아참 오늘 고오 작가 전시회
마지막 날인 거 다들 아시죠?
다들 초대장은 받으셨어요?
(지운) 저는 어제 여자 친구랑 다녀왔죠
하, 근데 진짜 너무 좋던데요?
(명호) 그래?
부럽네 [지운의 멋쩍은 웃음]
아휴, 나도 여자 친구 있었으면 바로 그냥 갔을 텐데
예인 씨 뭐 하지?
예인 씨 어차피 뭐 갈 사람 없을 거 같으니까
내가 그냥 가 줘야겠다
[명호의 웃음]
[잔잔한 음악]
귀신인 줄 알았잖아
[연수가 피식 웃는다]
[연수의 웃음]
(연수) 왜, 왜들 그렇게 보세요?
(명호) [당황하며] 아, 아 [지운의 당황한 웃음]
아, 팀장님 요새 좀 많이 바뀌신 것 같아요 [지운이 호응한다]
뭔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딱딱하고 그랬던 건 아닌데, 그동안
(지운) 저번에 같이 회식했던 것도 그렇고
팀장님 요즘 되게 기분 좋아 보이시는 거 같아요
(명호) 그렇지? 기분 되게 좋아 보이신다니까 [지운이 호응한다]
그러니까 연애하시는 거 맞죠?
혹시 누구랑…
(연수) 어…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명호) 아니, 그냥 어떤 분이
과연 우리 팀장님을 이렇게 만드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지운의 당황한 숨소리]
그분이 우리가 아시는 분이 아닐까
혹시 장도율 팀장님이 아닐까 뭐, 그런…
[지운의 어색한 웃음]
(지운) 아, 그냥 좀 궁금해서요
얼마나 멋진 분인가 뭐, 그런
[명호와 지운의 어색한 웃음]
(연수) 글쎄요
이건 제 사생활이라
우리 업무 얘기만 하죠
- 아, 지켜 드려야지, 또 - (지운) 네
그럼 저는 관계자 만나고
(연수) 나머지 정리하고 올게요
- (명호) 예, 알겠습니다 - (지운) 네
- (연수) 아, 그리고 명호 씨 - (명호) 예
이따가 예인 씨랑 꼭 오세요
어딜요?
제 남자 친구 전시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안 오면 후회할걸요?
(지운) '남자 친구'…
(명호) 고오 작가?
(채란) 선배
그만 좀 하세요
밥 그만 먹을까?
하,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뭘 그만하라는 거야?
그렇게 미친놈처럼 다니는 거요
앉아, 목 아파
그리고 미친놈이라니?
너 지금 나한테 공식적으로 욕했어, 너
제가 그냥 조용히 지켜만 보려고 했는데요
점점 정도가 심해지는 거 같아서요
실연의 아픔 열렬히 겪는 거 알겠는데요
(채란) 이렇게까지 오래 끌 일은 아니지 않아요?
다 큰 성인이
아, 나 실연도 당했었지?
고맙다, 한 번 더 짚어 줘서
(지웅) 심장이 막 아려 오네?
[웃음]
아니, 국연수 씨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
[픽 웃으며] 그렇게 막 실명 언급해도 돼?
실연당한 사람한테
(채란) 그럼 왜 집에 안 가시는 거예요?
(지웅) 그거야 집에 가기 싫으니까
왜 가기 싫은데요?
(지웅) 그냥?
무슨 일 있으세요?
[한숨 쉬며] 너 나 취재하냐?
팀장님이 보낸 스파이지, 너?
하, 걱정되게 하잖아요, 선배가
(채란) 선배 일 빡세게 하는 스타일인 거 잘 알겠는데요
요즘엔 그걸 넘어서서
안 해도 될 일까지 다 끌어서 하고 계시잖아요
아니, 그리고 저보고는
집에 안 가는 거 습관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
왜 선배는 집에 안 가시는 건데요?
[젓가락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정채란
[피식 웃는다]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너 사람들이 자꾸 나 닮아 간다더라
너 어쩌려 그래?
(채란) 아니, 그러니까
선배가 걱정 안 되게 잘하면 되잖아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지웅) 이제 후배 눈치 보여서 야근도 못 하는 시대가 왔네, 참
아이, 그런 게 아니라…
밥 먹어, 다 식는다
[한숨]
[전화벨이 울린다]
[버튼 조작음]
네
네, 그런데요?
[타이어 마찰음]
[무거운 음악]
[한숨]
[다가오는 발걸음]
(엔제이) 그 눈빛
너무 서운한 거 알아요, 작가님?
아니요, 아니요
너무 뜻밖이어서 놀라서 그런 거예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 웃긴다
(엔제이) 저 정식으로 초대받고 온 거예요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잔잔한 음악]
설마
이거 작가님이 보낸 거 아니에요?
하, 참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줄은…
아니요, 제가 보낸 거 맞아요
그러니까
(엔제이) 작가님 전 까맣게 잊고 잘 살고 있었는데
오라고 해서 온 거예요
근데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었나 봐요?
아, 좀 늦나 봐요
국연수 씨?
(엔제이) 여자 친구가 너무하네
지금까지도 안 온 거면…
아, 그러니까 나 만났으면 이럴 일이 없었…
뭐야? 농담이잖아요, 농담 웃어요, 웃어
[엔제이와 웅의 어색한 웃음]
아, 꽃이 너무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매번 꽃은 내가 주네요
전 받는 게 더 익숙했던 사람인데
(엔제이) 그림은 여전히 좋네요?
사람들은 많이 왔어요?
(웅) 아이, 오시기 전까지 꽤 있었는데
씁, 아,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가?
사람이 좀 없네요
(엔제이) 아
이번 타임 티켓은 제가 샀어요
(웅) 예?
제가 다 샀다고요
네?
친구를 사귀려면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있대요
(엔제이) 시간을 많이 가지거나 감동을 주거나
근데 전 시간보다
감동을 주는 쪽이 더 빠른 거 같아서
[부드러운 음악]
감동받았죠?
[옅은 웃음]
알아요
그럼
우리 친구 해요
진짜 친구
와, 정말 생각보다 독특하시네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그런 척하면 된다고
(엔제이) 저도 이제 평범하게 친구 사귀려고요
이, 이건 전혀 평범한 방법이 아닌데?
아무튼
사람 민망하게 손 이렇게 둘 거예요?
(웅) 아, 죄송합니다
[엔제이와 웅의 옅은 웃음]
(엔제이) 그림
친구 할인 돼요?
[웃음]
예
(동일) 드디어 편집실 거지 한 분이 떠나가십니다, 박수
야, 박수 쳐, 박수
얼른 집으로 썩 꺼지고 다신 보지 말자
(지웅) 일을 잘해도 이런 대접을 받네요, 제가
야, 일 적당히 해도 되니까
(동일) 잠은 좀 집에서 자 둬라, 어?
너 수도랑 전기 안 끊겼어?
그 정도면 끊겨, 인마
또 오버하신다
(동일) 지웅아
오랜만에 그러면 뭐, 술 한잔할까?
- 아니요 - (동일) 그러니까
꺼져, 어? 나도 너랑 있는 거 지겨워
나도 인턴이랑 술…
(동일) 뭐야, 얘? 어디 갔어?
(지웅) 선배
집에 좀 가세요
어, 집 무서워, 아무도 없잖아
[한숨] 들어가겠습니다
(동일) 지웅아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별로요
(은호) 형
연수 누나 아직이야?
슬슬 정리할 시간인데
(웅) 응
그럼 내가 먼저 정리하고 있을까?
(은호) 알았어
[뛰어가는 발걸음]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다가오는 발걸음] [툭툭 소리가 들린다]
(누아) 하여튼 특이해
이런 시간대에 그림 걸 생각을 다 하고
[누아가 브로슈어를 툭툭 친다]
잘 봤다
여전히 좋은데
여전히 발전은 없네, 최웅?
[누아가 픽 웃는다]
(웅)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왔냐?
너도 참…
나 좀 그만 따라다녀
[누아가 피식 웃는다]
그림은 좀 팔렸냐?
(웅) 너랑 놀아 줄 시간 없다
그냥 가
네가 좋아하는 그 기사로 찾아봐
[누아의 한숨]
재수 없어
[누아의 한숨]
야, 너 근데
표절 관련해선 끝까지 한마디도 안 하더라?
(웅) 응
관심 없어서
내가 간다
(누아) 야, 너 뭐가 그렇게 잘났냐?
그렇게 다 무시하면서 살면
막 네 인생이 고귀하고 특별해지고 그런 기분이냐?
뭐?
내가 훔쳤잖아, 네 그림
[무거운 음악]
[웅의 한숨]
(학생) 야, 박태선
(학생) 너 그림 뭐 낼지 정했냐?
완성했어?
어, 나 정했어
[학생의 탄성]
(학생) [웃으며] 죽이는데?
야, 근데 이거
웅이 그림 느낌이랑 좀 비슷한 거 같기도 한데
아, 그래?
[당황한 숨소리]
(누아) 야, 최웅, 어때? 네가 보기에도 그래?
(학생) 야, 네 거 봐 봐
아이, 비슷하면 좀 곤란하지 않겠냐?
다시 그리지, 뭐
(학생) 다시 그린다고? [무거운 음악]
야, 내일이 마감이야
늦으면 어쩔 수 없고
(누아)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그때도 지금도
(웅) 좀 웃기지 않나?
그래서 그게 지금 네가 나한테 따질 문제가 맞나?
(누아) 또 그 얼굴이네, 또
사람 개무시하는 그 얼굴
왜?
관심 더 줘?
관심 없는 척, 욕심도 없는 척
[한숨]
야, 뭐
다 가지고 태어난 너한테는 뭐든 다 쉬웠겠지, 그렇지, 어?
야,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앞에서 그러지는 말지 그랬냐, 어?
(누아) 옆에서 죽어라 목매면서 아등바등 노력하는 사람 힘 빠지게
그거 진짜
기분 더럽거든
그래서
고작 노력한 게 그림 따라 하기야?
궁금하더라
네가 자기 걸 뺏겨도 그런 얼굴일지
(누아) 근데
그래도 변함없는 네 얼굴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냐?
불쌍하더라, 네 인생이
[무거운 음악]
뭐라고?
(누아) 뭐든 쉽게 버릴 만큼 네 인생은
별거 아닌 거 같으니까
그렇게 살면
뭐가 남냐, 네 인생엔?
(은호) 듣자 듣자 하니까, 씨
지금 누가 누구보고 충고질이지?
도둑놈 주제에, 이씨
[은호와 누아의 한숨]
아이, 그럴 줄 알았어
방금
본인 입으로 자기가 표절했다고 분명히 인정했어요
내가 기자님들한테 다 뿌릴 거니까
딱 기다려요
(누아) 야, 이제 네 그림도 보다 보니까 지루하다
텅 비어 있잖아
[은호가 씩씩거린다]
(자경) 아…
아, 왜 아직 이러고 있는 겨?
웅이 그 녀석한테 안 가 봐?
아까 의사 선상님 말씀 못 들었어?
괜찮다잖여
어여 가
난 좀 더 잘라니께
아이고
이 나이 되면 한 번씩 이러는 거여
별거 아니니께 어여 가
일부러 이러는 거지?
연수야
나 두고 가려고
나
떠날 준비 하려고
[한숨]
할미 말 잘 들어, 연수야
(자경) 니 할미 독한 거 알지?
나는 오래오래 살 겨
저승 것 저 썩을 것들이 데리러 와도
꽉 붙들고 안 따라갈 거여
[떨리는 목소리로] 근디
만약이 무서운 겨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너 하나 두고 갈 때가 무서운 겨
[울먹이며] 그런 얘기 하지 마, 할머니
내가 할머니 없이 어떻게 살아?
(자경) 살어야지
나 없어도 살어야지
밥도 잘 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렇게 살어야지
근데 내가 널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어?
[차분한 음악]
[자경의 떨리는 숨소리]
니가
나처럼 살아가는 게
내 천벌이지 싶어
[자경의 한숨]
[훌쩍인다]
[떨리는 숨소리]
나는 할머니만 있으면 돼
(연수) 할머니도 나만 있으면 되잖아
우리 지금까지 잘 살…
(자경) 나는 너만 있으면 디야
나는
늙어 갈 일만 남았으니께
너 하나만 있으면 디야
그런데 너는
연수 너는 이 할미처럼 살지 말어
옆에 사람도 두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랗게 재미나게 살어, 인생을
나 때문에 살지 마, 연수야
[흐느낀다]
[훌쩍인다]
[떨리는 숨소리]
[울먹인다]
그래야 나 죽어서
니 어미 아비 볼 낯짝이 있어
[연수가 흐느낀다]
(솔이) 어?
야, 구은호!
(은호) 어? 누나
(솔이) 어디 가냐?
아, 오늘 전시 끝났나?
네
가게 마감했어요?
응, 했지
(은호) 으응
(솔이) 근데 너 얼굴 왜 그래?
오늘 전시 끝나면 뭐
축하 파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유, 그럴 기분 아니에요
(솔이) 왜?
근데 최웅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있어?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한숨]
[통화 연결음]
[안내 음성]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
[한숨]
[휴대전화 진동음]
너 어디야?
(웅) 이야
먹지도 못하는 술에 자꾸 덤비는 오기는 인정
[지웅과 웅이 픽 웃는다]
[헛웃음]
야, 가성비 좋네
너 지금 겨우 이거 먹고 눈 풀린 거냐?
[피식 웃으며] 나 멀쩡해
[웃음]
에이, 그런 술버릇은 배우지 말지
[한숨]
[웅의 시원한 숨소리]
[웅이 입소리를 쩝 낸다]
뭐, 속도 맞춰 줘?
(웅) 내가 이거 다 비우면 얼추 비슷해질 거 같은데
[피식 웃으며] 허세는…
(웅) 어어? 못 믿네?
그럼 보여 줘야지, 뭐
(지웅) 됐어, 하지 마
내가 너 취하라고 부른 줄 알아?
이거 내 술이야
(웅) 에이
[술을 조르르 따르며] 쪼잔하긴
[숨을 하 내뱉는다]
야
우리 이런 거 되게 오랜만이다, 김지웅
(지웅) 어
나 오늘까지 전시였는데 왜 안 왔냐?
바빴어
[웃음]
심플하네
나 그래도 되게 지금 서운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 지금은?
안 바빠졌어?
다음 주까지 할 일을 다 끝내 버렸거든
야, 너 그렇게 혼자 일을 막 그렇게 하고 그러면은
주변 사람들이 너 싫어해
[피식 웃는다]
[옅은 웃음]
야
우리 엄마 죽는단다
[감성적인 음악]
[헛웃음]
[지웅의 시원한 숨소리]
[한숨]
그런데
[한숨 쉬며] 그런데 왜 하나도 안 슬프지?
뭐가 이렇게 불쌍하냐
누가?
그냥
다
우리
다
[웅이 코를 훌쩍인다]
[통화 연결음]
[휴대전화 조작음]
[통화 연결음]
(동일) 저…
뭐 도와드려요?
누구 찾아오셨어요?
국연수
[감성적인 음악]
(웅) 추운데 여기서 뭐 해?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내가
또 다 망쳐 버린 줄 알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또 나 때문에
[울먹이며] 나 때문에 또 망쳐 버린 줄 알고
미안해, 웅아
미안해
[연수가 흐느낀다]
(연수) 미안해
내가 말했지?
그럴 일 없다고
넌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연수야
웅아
(웅) 응
나 힘들어
[한숨]
(연수) [흐느끼며] 나
나 진짜 힘들어
그래
[연신 흐느낀다]
(솔이) 왜 그렇게 울상인데?
전시 잘 마무리된 거 아니야?
[한숨 쉬며] 망했어요
(솔이) 뭐?
[은호가 잔을 탁 내려놓는다]
유명한 평론가가 아주 혹평을 했어요
왜?
그림들 멋있던데?
뭐라고 혹평했는데?
[입소리를 쯧 낸다]
지금 웅이 형은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할 거예요
(웅) '그러한 감정을 나열한 그의 그림은'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어린아이의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들어가자
너랑 같이 가고 싶어
.그 해 우리는↲
.영화 & 드라마 대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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