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14
(연수) 과거는
무시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속에 더 단단히 갇히게 된다고 해요
(아이1) 연수는 엄마 아빠 없어서 할머니가 오는 거래
(아이2) 너는 왜 엄마 아빠가 없어?
(아이3) 그럼 넌 엄마 아빠 놀이 못 해
나도 하기 싫어
[차분한 음악]
(연수) 제가 그래요
(영지) 너도 걔 좀 그만 챙겨
걘 우리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자기만 생각하잖아
(혜수) 그래
국연수 걔가 언제 한 번이라도 뭐 사 준 적 있냐?
매번 받아먹기만 하지
(지연) 에이, 그래도 걔가 사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
(영지) 그래도 그게 계속 반복되면
염치가 없는 거지
(연수) 시간이 흐르고
[자경의 떨리는 숨소리]
(연수) [울먹이며] 나는 제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난했으면 좋겠어
(연수) 어른이 되어도
아직 겨우
그 놀이터 앞에 선
꼬마일 뿐이더라고요
제 삶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떨리는 숨소리]
[울먹인다]
[헛기침]
[훌쩍인다]
우리
우리 헤어지자
[떨리는 숨소리]
(연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연수) 더는
[훌쩍인다]
[떨리는 숨소리] (연수)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주고
더는
너랑 만날 이유가 없는 거 같아
[감성적인 음악] (연수) 열등감을 이별로 포장하고
[울먹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한다]
(연수) 맛있게 드세요
(손님들) 고맙습니다
[연수가 그릇을 달그락 놓는다] (연수와 손님) 감사합니다
(연수) 아무렇지 않은 척
다 괜찮은 척
다시 익숙해질 거라 믿으면서 버티던
[휴대전화 진동음] 그때였던 거 같아요
최웅의 기억엔
없는 그날 말이에요
이별 후 처음으로
최웅에게서 연락이 왔던 날
[술 취한 말투로] 우리가 헤어진 이유만 알려 줘라
이유만, 연수야
(웅) 네가 나한테 이유를 안 알려 주면
난 내 모든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
버려지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된다고, 내가
[한숨]
[한숨]
[웅이 당황한다]
[한숨]
[떨리는 목소리로] 내 삶이
(연수) 지금 좀
팍팍해
(연수) 집이
(연수) 형편이 좀 어려워져서
내가 여유가 좀 없어
(연수) 근데 그렇다고
네가 내 불행까지
사랑할 이유는 없으니까
(연수) 그래서
[헛웃음]
[한숨]
이유가 고작 그거야?
[웅의 어이없는 숨소리]
차라리 내가 싫어서 떠난다는 게 낫겠다, 국연수
(웅) 그런 게
버리는 이유가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한숨]
(웅) 우리가 헤어졌던 이유가 뭐야?
(연수) 그러니까
과거라는 게 그래요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꼼짝없이 다시 저를 그날에 가둬 세워 두거든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해 버리도록
"건축 박람회"
갑자기 그건 왜?
(웅) 계속 궁금했거든
우리가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었지만
그때마다 확신이 있었거든
그래도 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런데 그날은
(웅)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헤어지자고 하는 네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그때
이유가 뭐였어?
그때는
내가 너무 지쳤었어
(연수) 알잖아, 나 알바도 하고
취준도 하느라 많이 바빴던 거
지난 얘기 꺼내서 뭐 해?
그런 건 기억하지 말자, 우리
지금 다시 만났다는 게 중요하잖아
(웅) 응
(연수) 아, 아, 늦었다
나 얼른 가 봐야겠다
할머니가 내가 요새 맨날 늦게 들어와서 많이 화났어
아, 데려다줄게
아니야, 괜찮아 나 택시 타고 가면 돼
(연수) 너 방금 들어왔을 텐데 얼른 쉬어
(웅) 아, 연수야
조심히 가
(연수) 응
[문이 달칵 여닫힌다]
[한숨]
[차분한 음악]
[조명이 탁탁 켜진다]
(자경) 응, 어
왔어?
저녁은?
먹고 들어온 겨?
뭐여?
뭔 일 있는 겨?
(연수) 아니
일은 무슨
(자경) 저기
오늘 그놈 아가 왔다 갔어
(연수) 알아
내가 부른 거 아니여, 증말로
지 발로 온 겨
[살짝 웃는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할머니 또 혼냈지?
혼은 무슨…
아, 지 할미를 그냥 쌈닭으로 알어
[연수가 피식 웃는다]
[잔잔한 음악]
(자경) 그런디 연수야
(연수) 응
(자경) 너
갸랑 헤어졌던 거
그때
우리 형편이 안 좋아져서 그랬던 겨?
(연수) 어?
그때
너 혼자 다 짊어지느라
일부러 그, 그랬던 겨?
[웃으며] 아니야, 할머니
왜 그렇게 생각해?
그때
그냥 싸워서 헤어진 거야
알잖아, 나 할머니 닮아 가지고 성질머리 더러운 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할머니
[연수의 힘주는 신음]
(연수) 어유
여기가 제일 따듯하다
할머니
우리 오랜만에 오늘 같이 잘까?
[자경이 코를 훌쩍인다]
- (자경) 그… - (웅) 하실 말씀 있으면
편하게 해 주세요
(자경) 잉, 그…
우리 연수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는디
자네가 먼저 찾아왔으니께 내가 하는 말이여
네
(자경) 우리 연수 좋아하는 거 맞지?
아마 생각하시는 거보다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래
그럼 다 필요 없고
우리 연수 옆에 계속 있어 줘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되는데…
(자경) 내 말은
오래오래, 아주 오래
계속 있어 달라는 거여
금방 나가떨어지지 말고
[감성적인 음악]
[자경의 한숨]
연수 그것이 어려서부터
맘 붙일 데라곤 나 하나밖에 없었어
제대로 된 가족도 친구도 옆에 하나 못 두고
뭐든
지 혼자 다 끌어안고 삭여
그때 집이 풍비박산 났을 때도
그 어린것이 혼자 다…
암튼
옛날에나 지금이나
자네한테는 마음을 두는 거 같으니까
우리 연수 또 혼자 두지 말고
옆에 꼭 붙어 있어 줘
네
걱정 마세요
[안도하는 한숨]
내가 이렇게 말하믄
너무 부담을 주는 걸 텐디
(자경)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언제까지나 연수 옆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께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여
그런데 할머니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었어요?
(자경) 응?
[당황한다]
[새가 지저귄다]
[호가 중얼거린다]
(호) 어유
아이고, 놀래라, 아, 야, 놀랬잖냐
에헤, 아, 왜…
찍지 마, 이런 건 찍는 거 아니야
오랜만에 찍어 드리는 건데 하나라도 놓칠 수 없죠, 아버지
야, 인간적으로 이런 건 찍는 거 아니지
(호) 야, 야, 하지 마, 찍지 마
(연옥) 웅이 아빠, 그거 뭐야?
(호) 뭐, 뭐? 아니, 왜, 뭐?
(연옥) 그거, 그거 지금 빼돌리는 거지?
(호) 아, 빼돌리긴 뭘 빼돌려? 이 사람
장부 정리하고 이게…
내가 분명 낚싯대는 더 안 된다고 했어, 어?
(호와 연옥) - 그럼 - 집에 둘 데가 없어, 둘 데가
- (호) 아유, 내 말이, 응 - (연옥) 그래, 내놔
(호) 아이, 왜 아니라니까, 이 사람
- (연옥) 내놔 - (호) 이거 내일 인제 재룟값
(호) 다 이거…
(연옥) 지웅아 그거 카메라 좀 한번 돌려 봐 봐
저 양반 몇 장이나 꼬불쳤는지 보게 [지웅의 웃음]
(호와 연옥) - 야, 지웅아, 이거 꺼, 이거… - 어? 얼마나 꼬불쳤니?
- (연옥) 하지 마, 돌려 봐 - (호) 아, 이거 어떻게…
[호와 연옥이 실랑이한다] (창식) 형! 언제 출발할 거야?
[흥미로운 음악] 내가 장비 준비 다 했는데
(호) 창식아, 너 너 일로 와 봐, 너…
(연옥) 당신 지금 당신, 낚시 가려는 거야?
(호) 야, 나랑 얘기 좀 해 너 일로 와 봐 [연옥이 성낸다]
(호와 창식) - 아이, 잠깐만, 아, 일로 와 봐 - 에이그, 형수
[휴대전화 진동음] - (창식) 아니, 형 - (호) 너, 아, 일로 와 봐
- (창식) 물고기 잡으러 가야지 - (호) 야, 물고기를…
[바깥이 소란스럽다]
[휴대전화 조작음]
어
응, 아니야, 이제 가려고
(지웅) 아이, 뭐 아침부터 찾아 댄대, 또?
그래, 알았어, 응
[사무실이 분주하다]
(PD1) 어? 잘 나왔더라, 시청률?
(지웅) 응, 그렇더라
(PD1) 반응도 꽤 좋다더라?
(지웅) 어, 그렇다더라
(PD1) 아, 재수 없어
채란이나 내놔
이제 나 좀 쓰자
넌 기본이 안 돼 있어서 하는 것마다 다 그 모양인가 봐
애가 물건이냐?
(지웅) 쓰긴 뭘 써?
(동일) 김지웅!
(채란) 오셨어요?
이제 출근하면 어떡해?
오래 기다렸잖아
[흥미로운 음악]
저 퇴근한 지 분명 몇 시간 안 됐는데
김 PD
너 나한테 무지하게 고맙지 않아? [지웅이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동일) 막 보은하고 싶고
존경심이 막 솟구치지 않아? 응?
내가 이거 무조건 잘된다고 했잖아
우리 첫방 반응 이런 거 54주 만에 처음이야
[지웅이 부스럭거린다]
너 근데 반응이 왜 이래?
왜? 우, 우리 프로그램 폐지됐어?
아니, 이, 이 정도로 나왔는데 안 좋아?
뭐, 좋습니다
(동일) 얘 또 왜 이래?
야, 채란아, 얘 뭐, 뭐 오늘 무슨 콘셉트야?
선배 요즘에 제대로 못 쉬어서 피곤하실 거예요
(동일) 음, 시위하는 거네
알았어, 인마! 어?
너 이것만 끝나면 너 하고 싶은 그 환경 다큐 그거 하게 해 줄게 [마우스 클릭음]
아, 지금은 좀, 좀 즐겨, 어?
야, 이따가 나 국장님이랑 밥 먹으러 갈 거니까
- 아, 전 괜찮습니다 - (동일) 올래?
[익살스러운 음악]
안 데려가, 새끼야
재수 없는 새끼 싸가지 없는 새끼, 망할 놈의 새끼
아니, 뭐 더 재수가 없어졌네, 어?
(동일) 야, 근데 그, 애들 반응은 어때?
웅이랑 연수 말이야
(지웅) 글쎄요 뭐, 안 물어봤는데?
(동일) 아, 애들 이제 더 유명해질 거 같은데?
어, 이 방송이라는 게 힘이 어마어마하거든
이제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다른 방송국에서 같이 하자고 나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그 정도 아닐 텐데 [동일의 생각하는 숨소리]
이게 유명해지면 또 막 갑자기
(동일) 너도나도 알은척하면서 찾아올 수 있단 말이야
방송이란 게 그래
쓸데없는 사람들까지 다 찾아온단 말이야
연락이 끊겼다가 연락이 되면 무조건 무시하라 그래
그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애들한테 단단히 얘기하라고
- [한숨 쉬며] 선배 - (동일) 응?
(지웅) 시청률 잘 나와서 들뜨신 건 알겠는데
우리 그 정도 아니에요
왜?
아, 이제 겨우 첫 방송인데
아, 그래도
[지웅이 입소리를 쯧 낸다]
작가님 언제 오신대?
아, 20분 후에요
(채란) 차가 좀 막히나 봐요
(지웅) 그래, 그때 회의 시작하자
네
[지웅이 팔을 쓱쓱 문지른다]
[흥미로운 음악]
(동일) 아유
재수 없는데 일은 잘해
아, 예뻐서 그냥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네
씁, 다음에 한번 깨물어 볼까?
지랄하겠지, 응, 쯧
(연수) 뭐 봐?
(웅) 어?
아, 뭐 잘못 본 거 같아
(연수) 오늘도 작업할 거야?
(웅) 그럼 인제 전시회 얼마 안 남았잖아
(연수) 너 요새 잠 잘 못 자는 거 같던데
전시 준비 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웅의 웃음]
걱정 마, 새벽에 틈틈이 잘게
(연수) 이거 전시 끝나면 다음 건 뭐 할 거야?
뭐, 목표가 있어?
(웅) 씁, 글쎄?
생각 안 해 봤네
(연수) 그래
(웅) 그냥
그냥 좀 쉴까?
너 출퇴근하는 거 데려다주면서
그 새로 한다는 프로젝트는 잘돼 가?
(연수) 뭐, 별다른 일은 없어
(웅) 그건 재미없어?
(연수) 뭐, 재미는 무슨
그냥 일이니까 하는 거지
(웅) 으응
(연수) 응
(웅) 씁
- (웅) 연수야 - (연수) 응?
(웅) 오늘 일 끝나고…
(학생1) 헐, 웅이다 [산뜻한 음악]
이것 봐 이 동네 사는 거 맞다니까? [학생들의 탄성]
(학생2) 헐, 진짜네? 최웅이랑 국연수 맞죠?
(학생3) 야, 언니랑 오빠들이지
스물아홉 살이셔, 이분들
(학생1) 안녕하세요 저희 다큐 다 봤어요
완전 팬이에요!
(학생2) 근데 지금 왜 같이 다녀요?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닌가? [웅과 연수가 당황한다]
(학생1) 설마 방송 다 대본이에요?
[다가오는 엔진음] (학생3) 야, 싸우다가 정들었을 수도 있지
(학생1) 우아, 근데 실물이 훨씬 잘생겼어요, 오빠
[웅의 웃음] (학생2) 근데 진짜 엔제이랑 친해요?
연관 검색어 같이 뜨는 사이던데?
(학생3) 저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도 돼요? [학생1의 탄성]
[학생들의 탄성] - (학생2) 대박 - (웅) 어…
- (웅) 예 - (학생1) 대박 [학생들의 탄성]
(명호) 어, 저기, 저기, 저기
아, 나 맞지?
와, 인물이, 인물이, 아유
(예인) 아, 난 왼쪽 얼굴이 더 괜찮은데
죄다 오른쪽만 나오네?
(지운) 와, 역시 국 팀장님
되게 멋있게 나오시네요
(예인) 그래도 제일 반전은 웅이지
- 10년 전 거랑 같이 보면 진짜… - (지운) 맞아
(예인) 역시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니까
작업실도 되게 크던데?
(명호) 근데 두 사람은 아직도 많이 싸우네
[직원들의 웃음]
아, 팀장님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예인) 그렇죠?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명호가 호응한다]
(연수) 오늘부터 [직원들의 놀란 숨소리]
[마우스 클릭음] 회사 내에서 다큐멘터리 시청은 금지입니다
물론 언급도 금지고요
(명호) 예 [지운과 예인이 대답한다]
(이훈) 국 팀, 국 팀장 이, 이게 뭐야, 어?
내 인터뷰 왜, 왜 안 나오는 거야?
편집된 거야?
내가 진짜 분명 꼭 내보내 달라고 내가 약속…
(명호) 아, 방금, 방금 금지령 내려졌어요, 대표님
- (이훈) 아니, 내가 한 시간을… - (연수) 요즘 회사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하네요
(연수) 소앤 건으로 이목을 끌었을 때
좀 더 확실하게 보여 줘야 되는데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 뭐
특별할 건 없으신 거 다들 아시죠?
아, 그리고 혹시
오늘 저녁에 일정 있으신가요?
[흥미로운 음악] (예인) 그럴 리가요
이렇게 바쁜 시기에 회사 업무에 몰두해야죠
(명호) 아, 예, 그럼요 아, 야근 준비 되어 있습니다 [예인이 호응한다]
야근하려고 바지도 편한 거 입고 왔어요 [명호의 웃음]
(지운) 어, 저도 남아서 선배님들 돕겠습니다
- (연수) 그럼 대표님 - (이훈) 어?
어, 나, 나도 남아야겠지?
아니요, 그
(연수) 오늘 다들 괜찮으시면
제가 회식 자리 한번 쏠까 하는데
괜찮나요?
아, 아, 그…
다큐멘터리로 업무 방해한 것도 있고 해서, 뭐
- (연수) 시간만 괜찮으시면… - (이훈) 나는 너무 조, 좋다! [흥미로운 음악]
(이훈) 어? 국 팀장
(예인) 그럼 오늘 팀장님이랑 저희 다 같이 회식하는 거예요?
불편하시면 제가 계산만…
(이훈) 아니야, 아니야 아니, 아니, 아니 [직원들이 부정한다]
(명호) 그럴 리가요, 예
아니, 이렇게 다 같이 팀장님이랑 회식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니, 근데 진짜 좋습니다 아이, 다들 어떠세요?
(이훈)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나 [직원들이 호응한다]
(명호) 야, 근데 이거 진짜 꿈이야, 뭐야? [예인의 웃음]
잠깐만, 어디 가지? 뭐 먹지?
지운 씨, 일단 무조건 맛있는 곳으로 예약하자
네, 제가 찾아볼게요
(이훈) 자, 빨리 우리 다 같이 퇴근 준비 해요, 빨리 [예인이 호응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빨리 [예인의 웃음]
(예인) 네
(이훈) 나, 나 뭐 해?
(지운) 치킨집 찾으세요
- (이훈) 치킨집 - (예인) 치킨 [키보드 조작음]
(종업원) 빵은 뭘로 드릴까요?
(웅) 아, 아무거나 주세요
(은호) 아, 둘 다 화이트로 주시고요
치즈는 아메리칸으로 주세요
데워 주세요
[흥미로운 음악]
(종업원) 안 드시는 야채 있으세요?
(웅) 그건 왜 물어보죠?
(은호) 하나는 다 주시고요 하나 올리브 빼 주세요
[웅의 당황한 숨소리] (종업원) 소스는 어떻게 드릴까요?
(웅) 그냥 맛있게 해 주세요
(은호) 랜치랑 어니언 섞어서 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으이그, 참
[은호가 혀를 쯧 찬다] (웅) 야
[카드를 쓱 꺼내며] 형은 그냥 계산이나 해 주세요
(은호) 진짜 나 없으면 아무거도 못 해, 쯧
(은호) 형, 근데 요즘 이 시간에 자주 깨 있다?
뭐, 이제 아예 잠을 안 자기로 한 거야?
으음, 새벽에 좀 자
(웅) 연수 덕분에
아휴, 내가 얘기할 땐 그렇게 안 듣더니
(은호) 연수 누나가 얘기하니까 듣는다 이거지?
참 나, 사랑꾼 나셨다
형, 당분간은 전시 준비 집중하게
인터뷰랑 그, 잡지 다 거절하고 있어
아, 근데 다큐가 반응이 진짜 좋긴 좋나 봐
방송 출연 섭외도 막 엄청 들어오고 있던데?
다 거절해
(은호) 근데 연수 누나랑 둘이 같이 섭외 오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다 거절해야겠지?
그건 내가 연수한테 물어볼게
[은호의 기가 찬 숨소리]
(은호) 내가 이래서 연애를 안 하지, 어?
자기 결정권이라곤 없고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는 거거든
쯧, 뭐, 이제 앞으로
연수 누나가 하라는 대로 다 하면서 살 거야?
(웅) 야
네가 보기엔 나 같은 애 어때 보여?
(은호) 응?
너무
목표도 없고
대책 없어 보이나?
형 대책 없는 게 뭐, 하루 이틀이야?
뭐야,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왜, 연수 누나가 잔소리해?
아니
(웅) 그냥
애초부터 기대를 안 하나 싶기도 하고
뭔 말이야?
아이, 내가 봐도 내가 너무 책임감 없어 보이기도 하고
(웅) 딱히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그러니까 나한테 기댈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하는 거 같고
[샌드위치를 부스럭 내려놓는다] [한숨]
(은호) 형
형이 그때 성공하겠다고 하고 딱 5년
5년 만에 지금 여기까지 왔어
그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리고 나 눈 되게 높은 사람이야
그런 내가 형 믿고 내 20대 생활 다 바치고 있는 거 안 보여?
쯧, 어이없어
[잔잔한 음악]
[웃으며] 참 아이, 또 뭘 그렇게까지…
(은호)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 뭐, 물론 형이 좀 이상하고
남들보다 더럽게 유치한 건 맞는데
(웅) 어쭈
형 멋있는 사람 맞아
어쨌든 내 눈엔
(웅) 치…
네 눈에는, 뭐 딱히 그딴 거 필요 없거든?
그리고 내가 형한테 다 기대고 있는 거 안 보여?
(은호) 내 월급, 내 식비 내 안식처
다 형한테서 나오는데?
쯧 [은호가 부스럭거린다]
[한숨]
[커피포트를 탁 내려놓는다]
(PD2) 어이, 김지웅이
야, 너 이번 거 잘 나왔다며?
카, 새끼
부럽다
[PD2의 웃음] 한잔 드려요?
(PD2) 아유, 너무 생큐지
(지웅) 형 뭐, 하는 건 잘돼 가요?
(PD2) 아이, 뭐 잘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지웅) 뭐 문제 있어요?
야, 너 엔제이 좀 잘 아냐?
[PD2가 숨을 들이켠다]
엔제이 걔가 원래 그런 캐릭터였나?
왜요?
(PD2) 아니, 애가 좀
이상해
이건 뭐 데뷔 10주년 영상이 아니라
꼭 은퇴 앞둔 원로 가수 영상 같기도 하고
멘털 많이 나가 있던데?
야, 내가 이런 애들 쭉 봐 와서 아는데
꼭 이러다가
사고 한번 칠 거 같단 말이지
그래요?
(PD2) 아, 뭐 일단 찍기는 하는데
제발, 어?
끝날 때까지만 별문제 없었으면 좋겠다
어, 야
나 가 봐야겠다, 저…
내레이션 따러 오기로 해 가지고
야, 아무튼 너 조만간
한턱 크게 쏴야 된다?
(지웅) [웃으며] 알겠어요
(PD2) 간다
[생각하는 숨소리]
[컵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한적한 도로를 달려 이곳으로 왔다'
(엔제이) '쉴 땐 이렇게 오로지 내가 보내고 싶은 시간을 보낸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여유일까?'
[잔잔한 음악]
(PD2) 엔제이 씨?
아…
네, 죄송합니다
(PD2) 아이, 괜찮습니다
다시 가 볼게요
(엔제이) '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엔제이) '좋은 곳 맛있는 음식을 보면'
'친구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대본이 좀 이상해서요
[대본을 사락거리며] 아 어떤 부분이요?
저 친구 없어요
[잔잔한 음악]
네?
(엔제이) 보통은 저럴 때 친구를 생각하는 건가?
(PD2) [대본을 사락거리며] 아
아, 그럼 그 부분을 가족으로 바꿀까요?
[문이 달칵 열린다]
[솔이가 흥얼거린다]
[문이 달칵 열린다]
어? 아직 오픈 전이에요!
[문이 달칵 닫힌다]
(솔이) 이따 5시…
[흥미로운 음악]
잘 지냈어?
우리 쏠
[솔이의 힘주는 신음]
(솔이) 네가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있는 거니, 진섭아?
(진섭) 오랜만에 보니까 좋으면서
또 아닌 척한다
내가?
내가 왜 널 보고 좋아해야 하는 건데?
너 나 보고 싶어 했잖아
(솔이) 미친놈 아니야?
[진섭의 한숨]
[휴대전화 조작음]
(영상 속 솔이) 그 새끼도 지금 이거 보고 있을까요?
진섭아
보고 있냐?
보이냐?
나 좀 봐
나 오늘 단체 예약 열 명 받았다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이게 뭐?
[휴대전화를 탁 접는다]
너도 나 못 잊었잖아
하, 도대체 어느 부분이 그렇게 해석되는 거야?
난 그냥 네 표정만 봐도 알아
근데 이렇게 영상 편지까지 남길 줄은 몰랐지
[흥미로운 음악]
(진섭) 여전히 귀여워
(솔이) 꺼져
[입소리를 쩝 낸다]
[문이 달칵 열린다]
(은호) 누나
[문이 달칵 닫힌다]
어, 손님 있으셨네?
누나, 밖의 간판에 누가 낙서해 놨던데?
- (은호) 아세톤 좀 줘요 - (솔이) 어
알바생?
(은호) [웃으며] 아, 저 알바생 아닌데
그, 손님이 아니라
아는 분인가 봐요?
[은호의 옅은 웃음]
(솔이) [이를 악물며] 야
빨리 가라고
[웃으며] 역시
솔이 남자 많아, 응?
- (진섭) 새 남친 - (솔이) 웃기고 있네!
(솔이) 지금 누가 누구한테…
(진섭) 저 솔이 전 남친이에요
[솔이의 한숨] 그쪽은?
(은호) 아…
(솔이) 야, 김진섭
빨리 꺼지라고
(진섭) 불러 놓고 내쫓는 게 어디 있어?
(솔이) 아, 미친놈 아니야!
누가 누굴 자꾸 불렀대?
오케이
[한숨 쉬며] 그럼 끝나고 잠깐 보자
(진섭) 내가 근처에서 기다릴게
지랄 마세요
빨리 나가
(솔이) 진짜 뭐라도 던지기 전에
[진섭의 한숨]
(진섭) 야, 쏠
나 너 엄청 보고 싶었어
[흥미로운 음악]
이따 연락할게
수고
[문이 달칵 닫힌다]
[솔이의 한숨]
넌 또 왜 왔어?
(솔이) 야, 너 자꾸 진짜
우리 가게 맨날 출근 도장 찍는데
너 자꾸 그러면 내가 진짜 너 알바생으로 부려 먹는 수가 있어
[솔이가 달그락거린다]
[솔이가 탁탁 칼질한다]
(은호) 전 남친이 왜 찾아와요?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
원래 좀 또라이야
[솔이가 탁탁 칼질한다]
[헛기침]
뭐?
아세톤이요
빨리 줘요
[놀라며] 어
[칼을 탁 내려놓으며] 아세톤
(솔이) 아이씨
아세톤 어디 있지?
[솔이가 달그락 뒤적인다]
(은호) 아세톤 저기 있는 거 아니에요, 저기?
(솔이) 응
나보다 잘 아네?
[새가 지저귄다]
[호의 한숨]
- 아버지 - (호) 어유, 깜짝이야
아이, 놀래라, 씨
(웅) 아버지 또 엄마 몰래 삥땅 치다 걸렸다면서요?
네 엄마 아직도 화나 있냐?
(웅) 아버지 진짜 엄마한테 쫓겨나고 싶어?
그거 좀 그만 사
그, 집에 있는 거 다 얻다 쓴대? [호의 한숨]
(호) 네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니지
네가 해 먹은 낚싯대가 멫 개인데
[웅의 헛기침] 야, 그리고 손맛이 달라요, 손맛이
내가 이번엔 진짜 큰 놈으로다가 잡으러 갈라고
내가 고놈만 있었으면 정말…
쯧, 아휴
됐다
아, 뭐, 맨날 지 엄마 편이지 치사한 놈
(웅) 아, 모아 둔 비상금도 없어요?
[호의 한숨]
아휴, 최 사장님
꼴이 말이 아니시네
[웅이 혀를 쯧 찬다] (호) 너 뭐냐?
뭐, 니 아빠 골려 먹을라고 온 거냐?
(웅) 아이
왜, 왜 달라붙고 그래?
아이, 좀 주머니 좀 열어 봐요, 좀
(호) 뭐, 왜, 왜, 야, 뭐, 야, 잉?
야 [편안한 음악]
엄마한테 비밀이에요
(웅) 그걸로 사서 좀 잘 좀 숨겨 두라고
괜히 또 걸려 가지고 나까지 혼나게 하지 말고
(호) 아들! 아들 [웅이 놀란다]
- (호) 아들 - (웅) 아빠, 이러다 들켜
근데 그거 디게 비싼 건데
아이, 그래서 넉넉히 넣어 놨지
아들, 아들, 아들
[웅의 웃음]
아유, 야, 아빠 괜찮은데
(호) 야, 아빠 증말 괜찮아
야, 니가 돈이 어디 있다고
(웅) 어어? 아버지
아들 돈 좀 벌어
(호) 으이구
이거 잠도 못 자고 번 돈을 내가…
언제 이렇게 다 컸어, 그래
[웅을 탁탁 토닥이며] 어? [웅의 웃음]
야, 한번 업어 보자, 어부바
- (웅) 아이, 징그럽게, 아유 - (호) 읏차! 어이구
- (웅) 아유, 참 - [웃으며] 어이구, 야, 어이구
(호) 어? 야, 잠깐, 잠깐, 창식아
[들뜬 목소리로] 창식아 창식아, 창식아
웅이가…
[호가 말한다]
(창식) 형수!
(호) 야, 야, 야, 뭣 햐?
야, 왜 그래? 야, 야, 야, 야, 인마 [웃음]
어?
[무거운 음악]
(엔제이) PD님?
아까 PD님 맞죠?
아, 네
녹음 다 끝나셨어요?
(엔제이) 아니요, 아직이요
뭐, 대사랑 이것저것 수정할 게 있어서 대기 중이라
잠깐 PD님 찾아와 봤어요
매번 이런 게 저녁이네요, PD님은?
[멋쩍게 웃으며] 아, 네
저녁 드셨어요?
아니요, 관리 중이라 못 먹어요
(엔제이) 뭐, 혼자 드시는 거면
앞에 앉아 드릴까요?
혼자 먹는 거 은근히 불쌍해 보이던데
음, 네, 그럼 사양 안 할게요
저 어차피 시간 없어서 혼자 먹긴 해야 되거든요
(엔제이) PD님은 혼자 밥 먹을 때 무슨 생각 해요?
(지웅) 음…
남은 밥과 반찬의 비율을 생각하죠
마지막 숟가락에 마지막 반찬을 먹어야 되니까
(엔제이) 그렇죠?
나 아까 녹음할 때 내레이션 들었어요?
친구 어쩌고저쩌고하는 거
아니, 밥 먹을 때 친구를 왜 떠올린대?
그냥 먹는 거지
(지웅) 그런데
왜 친구가 없어요?
친구를 사귈 수가 없는 환경이니까
(엔제이) 어려서부터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가질 수 있는 걸
못 가지고 살거든요
어, 일하면서 만난 사람하고 친구 하긴 좀 어렵고
그렇다고 일 안 할 때 만나기엔 시간이 없고
뭐, 그러니까 그냥 포기하게 된 거죠
[엔제이가 달그락거린다]
[병을 탁 내려놓는다]
(지웅) 그런데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그냥 그런 척하면 돼요
[잔잔한 음악]
이게 어려운 거 같지만 생각보다
마음먹기에 달렸거든요
그리고 그런 척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살게 되더라고요
환경 탓만 하면서 허비하기엔
이것도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이잖아요
그리고 나만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포기하기 전에
한번 애써 보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다
뭐, 그런 말이에요
지난번부터
(엔제이) PD님한테 뜻밖의 위로를 많이 받네요?
그래요?
씁, PD님하고 나랑
처지가 같은 사람인가?
[숨을 씁 들이켠다] [달그락거린다]
엔제이 님은 월세 받고
저는 월급 받는 처지라
[함께 웃는다]
[지웅이 뚜껑을 달그락 닫는다]
(엔제이) 작가님은 요즘 뭐 하고 지내요?
[피식 웃으며] 그 얘기 왜 안 물어보나 했어요
아, 진짜 너무 궁금한데
내가 연락도 안 하고 안 찾아가겠다고 센 척했거든요
(엔제이) 하, 이거 봐
내가 연락 안 하면 연락도 없어
내가 놓으면 언제든 끝날 사이였어
그러니까
얘기 좀 해 봐요
그 사람 뭐 하고 지내요?
글쎄요 저도 안 본 지 꽤 오래돼서
왜요?
싸웠어요?
저희 그럴 나이 지났어요 [피식 웃는다]
그럼?
[잔잔한 음악]
아, 저 이제 가 봐야겠네요
(지웅) 덕분에 쓸쓸하지 않게 잘 먹었습니다
그럼
[엔제이가 당황한다]
(엔제이) 먹튀하시네, 이분
아니, 얘기 좀 해 주고 가시지
[한숨]
응, 웅아
아, 나 오늘 회식
[멋쩍게 웃으며] 그러니까
이런 거 진짜 안 하는데
내가 다큐멘터리로 좀 양해 구한 것도 있고 해서
[옅은 웃음]
그거 진짜 괜히 찍었어
세상 귀찮게 이게 뭐야?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직원들의 환호]
(이훈) 예, 치킨, 예
[명호의 탄성] - (이훈) [웃으며] 예스, 예스 - (지운) 감사합니다
(이훈) 아니, 근데 예인 씨는
진짜 아파서 못 온 거 마, 맞는 거지?
(명호) 아, 진짜래요
그 사람이 얼마나 회식을 좋아하는데
아니, 가면서 울더라니까?
다들 이 시국에 감기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뭐
아이, 그래도, 뭐 우리끼리라도, 어? [지운이 호응한다]
(이훈) 아이, 난 진짜 근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난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니까?
이거 내가 하자고 한 거 아니잖아, 그렇지?
우리 국 팀장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자고 한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지운의 웃음]
자,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어
[이훈의 웃음] (지운) 사는 건 팀장님인데
대표님이 너무 신나신 거 아니에요?
국 팀장이 나고 내가 국 팀장이거든
(이훈) 우리는 한 팀, 한 몸
우리 회사 대표 얼굴
(명호) 음, 대표님도 아셨네요?
국 팀장님이 우리 회사 대표인 거
(지운) 자, 자, 다시 짠!
[지운의 웃음]
자, 짠
[직원들이 맥주를 벌컥 마신다]
[지운의 탄성] (명호) 야, 야, 근데
이 집 맥주 잘하네, 응? [지운의 시원한 숨소리]
아, 근데 대표님은
어떻게 국 팀장님을 곁에 두셨어요?
응? 뭔 말이야?
(지운) 아니, 국 팀장님 능력치 짱이시잖아요
다른 데서도 많이 데려가려고 했을 거 같은데
아, 뭐야
국 팀장 내 학교 후배잖아
(명호) 진짜요? 대학 후배?
내가 말 안 했나?
(이훈) 동아리 후배였어
그, 내가 그 동아리 회장이었고
[이훈의 웃음]
국 팀장은
나의 그 리더십?
[익살스러운 효과음] 그리고 참신하고 혁신적인 사고방식에
매우 깊이 감명을 받고
지금 나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거잖아
[함께 웃는다]
(명호) 아, 근데 대표님이랑 팀장님이랑
학번이 어마어마…
생각보다 근소해, 근소하다고
(명호) 아…
(이훈) 어쨌든
우리 국 팀장은
대학생 때도 되게 멋있었어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 우리 연수는
[이훈의 웃음]
(연수) 자리 비웠다고 없는 사람 얘기 하는 거 아닙니다
[이훈의 환호] 대표님
(이훈)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자리 비울 생각 하지 마
자, 국 팀장 왔으니까
우리 다 같이 거국적으로 한잔하자, 짠 하자
(직원들) 짠!
[발랄한 음악]
[연수의 헛기침] (이훈) 국 팀장
국 팀장이 사는 거니까
내가 국 팀장 좋아하는 걸로 골라 놨지
- [웃으며] 잘하셨어요 - (이훈) 어?
[이훈의 웃음]
(이훈) 아, 나 진짜 창립 이래
국 팀장이 처음 회식에 이렇게 와서
나 너무 감격스럽잖아, 진짜
자, 다 약속해, 어?
오늘 집에 가지 않기로
약속해, 빨리 약속해
(명호) 아유, 우리 대표님 그만큼 기분이 좋으시다는 거지
그래도 집은 가셔야죠, 한잔하십쇼 [지운의 웃음]
(지운) 근데 진짜 팀장님까지 다 같이 있으니까
다들 평상시보다 더 들뜬 거 같아요
(명호) 진짜요, 팀장님 너무 좋습니다
아이, 가끔씩 이렇게 다들 모여요
[직원들이 호응한다] 그런 의미로 제가 건배사 한번 하겠습니다
- (이훈) 좋아 - (직원들) 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이훈) 그만해, 그만해
- (이훈) 자, 우리 막내가 하자 - (지운) [웃으며] 아, 네
(지운) 걷지 말고 뛰자!
(직원들) RUN, RUN, RUN! [잔들이 쨍 부딪는다]
[명호의 시원한 숨소리] (명호) 아, 시원하다
[이훈의 탄성] (지운) 아, 너무 맛있어요
(명호) 아, 대표님 이거 좀 드세요, 이거
(이훈) 아니야, 그리고 나 진짜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나 진짜 대학…
[솔이가 달그락 정리한다]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은호) 하, 참
누구 기다리나 봐요?
내가?
누구를? 아니?
기다렸나 본데?
아까 그 전 남친 기다렸나 본데?
하, 내가?
(솔이) 아니라니까
뭐, 아까 너도 봤다시피
걔가 나를 못 잊어서 찾아온 거지
나는 아니야
[솔이가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물론 내가 쉽게 잊히지 않는 스타일이긴 해
[익살스러운 음악] 그래서 남자들을 좀 괜히 힘들게 하긴 하는데
뭐, 이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안 물어봤는데?
근데
걔가 아까 기다리겠다고 한 게
(솔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해, 사실
난 전혀 그럴 마음 없는데
아, 걔 혼자 또 얼마나 속앓이를 하고 있겠어?
그래서 이따 오면
잘 달래서 보내려고 했어
그것도 안 물어봤는데?
에이씨
(솔이) 야, 맞다, 너 마침 잘 왔다
나 옆 가게에 뭐 갖다줄 거 있는데
너 가게 좀 보고 있어
아, 왜요, 누나 아, 나 가야 돼요!
(솔이) 아, 잠깐만, 나 빨리 올게
- (은호) 아, 진짜 빨리 와야 돼요 - (솔이) 어
(솔이) 고마워
[은호의 한숨]
(은호) 소개팅에 전 남친에 [문이 달칵 닫힌다]
장사나 열심히 할 것이지 뭔 남자가 그렇게 많아? 씨
아, 또 쓰레기 안 비웠어, 아
아, 진짜 손 많이 간다 손 많이 가
아, 하여튼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도움 없이 하나도 못 하는 사람뿐이냐, 진짜, 이씨
아휴
[한숨]
(진섭) 그래, 인마
500 정돈 빌릴 수 있을 거 같아 [문이 달칵 닫힌다]
[의미심장한 음악] 장사도 잘되는 거 같고
[피식 웃는다]
당연히 바로 가능하지
솔이야
솔이가 언제 내 말 안 들어준 적 있었니?
아까 보니까
바로 흔들리더라고
살살 꼬시면
다시 넘어올 거야
솔이가 쿨해 보여도
은근 찌질한 구석이 있어서
잠깐만
[은호의 한숨]
[옅은 웃음]
아까 봤던 분이다
저기요
네
[흥미로운 음악]
누가 그래요?
무슨…
[은호가 의자를 드르륵 당긴다]
[은호의 한숨]
우리 솔이 누나
누가
장사 잘된대요?
[놀라며] 좀 늦었네?
좀 미안하네? [헛기침]
구은호 밥이나 먹여 보내야겠다
(은호) 그러니까
[작은 목소리로] 쟤 지금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우리 솔이 누나 더 이상 당신 거 아니라고요
[흥미로운 음악]
(솔이) 쟤 미쳤나 봐
[문이 달칵 닫힌다]
(은호) 우리 솔이 누나
은행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정도예요?
걔 대출 많이 받았어요?
(은호) 심각해요
풀 대출
[익살스러운 음악] 내가 보기에
죽을 때까지 누나 저거 절대 못 갚아요
장사 잘되는 거 아니었나요?
그건 더 심각해요
(은호) 어제 들어온 대하 머리 수가
지난달 사람 머릿수보다 더 많아요
[진섭이 숨을 들이켠다]
잘못 찾아왔네
잘못 찾아왔죠?
[진섭이 숨을 씁 들이켠다]
아무튼
알려 줘서 고마워요
(은호) 아, 뭐 안 보고 그냥 가시게요?
뭐 하러 봐요?
서로 맘 아프게
우리 솔
(진섭) 잘 부탁해요
[문이 달칵 열린다]
[문이 달칵 닫힌다]
[옅은 웃음]
[문이 달칵 열린다]
아, 뭐야? [문이 달칵 닫힌다]
누나 금방 온다더니만
뭐…
손님은 안 왔고?
[부드러운 음악]
(은호) 늘 그렇죠
뭐, 갑자기 새삼스럽게
뭐…
왜, 왜요?
뭐 하는 거예요?
(솔이) 아니야
[휴대전화 진동음] [연수의 추워하는 숨소리]
[휴대전화 조작음]
귀신이네?
방금 막 끝났는데
(웅) 술 많이 마셨어?
[옅은 웃음]
아니, 별로
(웅) 집 가고 있어?
(연수) 응
(웅) 데리러 가고 싶었는데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내가?
그랬나?
(웅) 응 [잔잔한 음악]
충분히 혼자 갈 수 있는데 데리러 오는 거
사람들 보기 창피하다고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치…
[웃으며] 별걸 다 기억하고 있어
(웅) 응
별걸 다 기억하고 있지
[연수의 한숨]
근데 그때는
네 시간 뺏는 거 같아서
괜히 싫은 척했던 거야
그리고
데리러 오려면 택시비도 만만치 않으니까
그때는 택시비도 나한테 너무 큰돈이어서
괜히 무서웠거든
(웅) 그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연수) 응
(웅) 알았어
그럼 뒤돌아봐
(연수) 응?
(웅) 앞으로
그런 거 있으면 좀 미리 좀 말해
[감성적인 음악]
네가 말 안 해 주면
난 멍청해서 아무것도 몰라
(웅)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말해 줘
뭐든 다
(연수) 응
(웅) 언젠가는 말해 주겠죠
기다리는 거 그거 자신 있으니까요
네가 말하는 건
다 듣고
다 기억하니까
계속 말해 줘
알았어
(웅) 그리고
이유를 알게 되면
[연수가 피식 웃는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하면 돼요
가자
[연수가 피식 웃는다]
(웅) 그걸 저의 남은
유일한 목표로 하기로 했어요
(웅) 와, 별 많네
- (웅) 춥지? - (연수) 응
(웅) 연수와 평생을 함께하는 것
[스위치 조작음]
[문이 달칵 닫힌다]
[옷을 툭 놓는다]
[차분한 음악]
"건축 학교 입학 안내서"
[한숨]
[웅의 한숨]
[책자를 툭 내려놓는다]
[키보드 조작음]
[새가 지저귄다]
(자경) 아유, 아침부터 뭘 이렇게 거하게 차렸디야?
응?
[자경이 의아해한다]
생선도 구웠어?
어이구, 참
아유, 시원타
[자경이 젓가락을 달그락거린다]
[자경이 중얼거린다]
할머니
맛있어?
새삼
시상 맛나다
[웃음]
이것도 먹어
(자경) 아유, 너 먹어
난 알아서 먹을 겨, 응
[웃음]
할머니, 우리 여행 갈까?
(자경) 응?
아, 여행은 무슨 여행이여?
다리 아파서 걷지도 못햐
왜? 차 타고 가면 되지
날씨도 추워지는데
우리 뜨끈한 온천 가서 푹 쉬다 오자
한 며칠 휴가 내고
(연수) 예쁜 것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오자
너 왜 그랴?
할머니가 좋아하는 생선구이도 내가 많이 해 주고
(연수) 여행도 많이 가고
그리고 예쁜 옷도 내가 많이 사 줄게
할머니 복지관 가서 자랑도 해
(자경) 음…
그러니까
나랑 평생 살아
[감성적인 음악]
(연수) 어디 가지 말고
나랑 오래오래 살아
알았지?
(자경) 연수야
할머니, 나랑 사는 거 싫어?
그게 뭔 소리여?
그렇지?
안 싫지?
할머니 나 안 싫어하잖아
[떨리는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은 나 싫어해도
우리 할머니는
나 안 싫어하잖아, 그렇지?
내가
너를 왜 싫어햐?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나
다신 혼자 되고 싶지 않아, 할머니
[훌쩍인다]
[한숨]
[지웅의 한숨]
(지웅 모) 왔니?
이번엔 꽤 빨리 다시 오셨네요
몇 계절은 지나야 다시 오실 줄 알았는데
얘기 좀 해
피곤해요, 다음에요
(지웅 모) 너 하는 일 말이야
그거
촬영하는 거
[피식 웃는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지웅) 제가 뭘 하는지는 전혀 관심 없으셨던 거 같은데
하던 대로 하세요
- 괜히 안 그러셔도… - (지웅 모) 그거
아무나 다 찍힐 수 있는 거라며?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냥
평범한 사람 아무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 좀 찍어 줘, 네가
[헛웃음]
뭘 찍어요?
나
나 좀 찍어 줘
[한숨]
쉬세요, 저 들어가 볼게요
(지웅 모) 나
죽는대
[감성적인 음악]
나 죽는대, 곧
그러니까
죽기 전에 나 좀 찍어 줘 봐
네가
.그 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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